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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평점 :
마리아테레지아의 막네딸,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라고해요'라는 말을 했다는 잘못된 정보로 유명한 그녀이다. 혁명파들에게 그녀는 죽어야만하는 여성이다. 적국인 오스트리아의 여성이며, 구시대의 유물인 왕권에 너무도 가까이 있었기에 그녀는 추악한 여성이여야만했고, 민중의 이름으로 국민의 면도날인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야만했다. 그녀에 대한 측은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믿고 읽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펼쳤다.
14살! 요즘으로 말하면 중학생 나이에 정략결혼에 따라서 프랑스로 시집가야만했다.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말을 배우며 낯선 사람들과 성적으로 무능한 남편에 기대어 철부지 마리앙투아네트의 프랑스살이가 시작되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필력은 '침실의 비밀'편에서도 빛났다. 루이 16세의 성적 무능이 왕권과 그와 왕비에게 미쳤을 정시적 정치적 영향을 뛰어난 문학적 표현으로 묘사했다. 이 책이 쓰여진 1932년 즈음은 심리학이 그리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인데도 심리학적 이해를 바탕으로한 탁월한 묘사가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대단한 다독가였으며, 섬세한 관찰자였을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시집온 것 자체가 그녀의 불행의 씨앗이었다. 루이 14세 시절부터 잦은 전쟁과 베르사유궁전으로 대표되는 웅장한 건축물은 서민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었다. 그뿐인가? 미국독립혁명에 프랑스가 참전하면서 프랑스의 재정은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로코코의 여왕'으로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외면한채 화려한 궁전 생활을 만끼하고 있었다. 그리고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러한 그녀를 비판하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에게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그것이 그녀의 책임인가! 앙시앙 레짐이 그녀의 책임인가! 당시 유럽에서 마리아테레지아를 비롯하여 여성 정치가가 국제 정세를 주도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의 정치를 주도할 수 있었겠는가? 왕은 분명히 그녀의 남편 루이 16세이다. 우유부단하여 여러차례 혁명군을 잠제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는 기회를 놓쳤다. 그뿐인가? 그는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으며, 자신의 어리석은 우유부단함이 그의 가족에게 어떠한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몰랐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판하기 이전에 루이 16세를 먼저 비판해야하지 않을까?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부르붕 왕조의 몰락의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냉혹한 비판에 반감을 갖던 나는 '로코코의 여왕'편을 읽으며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가졌던 연민이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사치와 향략, 안일에 바져있었다. 그녀의 어머니인 마리아테레지아의 훈계도 듣지 않았다. 이제는 프랑스의 왕비로서, 한가정의 어머니로서 철이 들어야만하는 나이이고 위치이다. 그녀는 너무도 철이 없는 여성이었다.
학자들은 그녀의 사치는 과장된 것이며, 다른 왕비들의 평균치보다 그녀의 사치는 높지 않다고 말한다. 프랑스 재정문제의 근본원인은 그녀가 제공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죄일까? 프랑스의 재정은 파국에 이르렀고, 앙시앙 제짐 속에서 민중은 혁명을 갈망하고 있었다. 사회는 변화하고 있었다. 변화하는 사회에 과거와 같은 대응을 한다면 그 처럼 어리석은 자는 없다. 시대가 변하면 과거와 다른 새로운 대응을 해야한다. 그녀가 프랑스 재정 파탄의 근본원인 제공자가 아니라고한다고, 그녀가 왕이 아니라고 한다고, 그녀가 과거 왕비보다 많은 사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면죄부가 발부되는 것은 아니다.
부르붕 왕조라는 배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선장인 루이 16세는 폭풍우가 밀려오는데도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사냥이나 다니고, 자물쇠를 따는 취미에 몰두했다. 어찌나 무능했던지, 혁명이 일어나던 날의 일기에도 '아무일도 없었음'이라는 한심한 기록을 남겼다. 그렇다면, 묻겠다. 당신이 루이 16세라는 선장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선장이 아니니, 그의 무능을 탓해야지, 나는 나의 분수에 맞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아야하는가? 비상 상황에는 비상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폭풍우의 한가운데로 가기 전에 무능한 선장에게서 키를 빼앗아야했다. 그리고 배를 안전하게 운행해야한다. 폭풍우를 피하지 못했다면, 폭풍우에 맞서며 이를 헤쳐나갈 길을 모색해야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그녀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빈으로 도망가는 극박한 상황 속에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무능한 남편 루이16세에게 현명한 조언을 하지도 못했다. 그것이 그녀가 무죄가 아닌 이유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빠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황제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요제프 황제의 검소함과 민중친화적인 모습을 슈테판 츠바이크는 냉소적으로 뵤사하고 있으나, 사치와 향략에 쩔어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비교한다면 너무도 훌륭한 황제이다. '위선은 악마가 보이는 선에대한 최대한의 경의'라는 말이 있다. 위선 조차도 없다면 그 사회는 너무도 야만적인 사회이다. 요제프 황제의 검소함과 민중친화적인 모습이 위선이라할지라도 최소한의 위선마져 잃어버린 프랑스의 부르붕왕조는 너무도 야만적이다. 요제프 황제가 동생에게 '민중이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르붕왕조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다.
혁명은 루이 16세를 먼저 단두대에 보냈다.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로 보내기로 결심했다.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그녀의 목을 단두대의 이슬로 만들 증거가 없었다. 그녀가 오스트리아 군대가 프랑스로 진군하길 바라면서 쓴 편지가 지금은 오스트리아 문서고에 있지만, 당시 혁명정부에는 그러한 증거가 단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다. 그녀가 그녀의 아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았다는 죄목을 뒤집어 씌웠다. 근친상간이라는 죄목은 혁명정부의 추악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우리 인류 역사에 커다른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다. 인류에게 자유 평등 우애라는 보편의 이념을 확산시킨 고귀한 혁명이다. 그렇다면, 혁명의 승리를 위해서, 구시대 유물을 없애기 위해서 혁명은 어디까지 폭력과 야만을 허용할 수 있을까?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폭력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야만을 야만적인 방법으로 다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숙명이다. 악마는 천사에게 비겁한 방법으로 싸움을 건다. 천사는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악마와의 싸움에서 이기려한다면 천사의 패배는 너무도 명약관화하다. 그렇다면, 선의 승리를 위해서 천사는 악마에게 얼마만큰의 속임수를 쓰는 것이 허락될까?
마리 앙투아네트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녀의 시신은 다른 시신들과 함께 매장되었다. 루이 18세가 그녀의 시신을 찾도록 명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수많은 혁명의 희생자들 속에서 잠들었을 것이다.
단두대의 칼날이 그녀를 향해 돌진했을 찰나!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합스부르크가의 가훈은 "제3자로 하여금 싸우게 하라. 그래도 다행스런 오스트리아여, 그대는 혼인하라"이다. 그녀가 합부르크가의 가훈을 찢어 버리고, '공주님 저와 결혼해요'라는 말을 건넸던, 어린 모차르트와 결혼했다면 그녀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합스부르크가의 가훈을 찢어버린 용기도 없었다.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남편을 대신해서 프랑스를 통치할 지혜도 없었고, 결단력도 없었다. 그녀가 유죄라면, 용기도, 지혜도, 결단력도 없이 변화하는 시대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죄목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죄목이 아니길 바란다.
괴테는 마리 아웉아네트와 루이 16세의 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한 국왕을 빗자루로 쓸 듯이
그렇게 쓸어버렸단 말인가?
국왕들이 아직도 있다면
의연하게 서 있을 텐데."
무능은 죄인가? 죄이다. 능력이 되지 않으면서도 만민이 우러르는 자리를 차지하고 배를 수렁속으로 빠뜨렸다면, 무능은 죄이다. 그자리에 있을 능력이 없다면,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왔어야만했다. 무능한 남편을 둔 것은 유죄일까? 유죄이다. 무능한 남편을 현명하게 이끌지 못했다면, 무능한 남편이 현명하게 권좌에서 내려오도록 안내하지 못했다면, 유죄이다. 혁명이라는 폭풍우는 '나는 그 자리에 없었어요. 그러한 힘이 나에게는 없었엉요.'라는 변명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단호함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 민이 주인된 국가에 사는 우리도 주인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시대의 폭풍우는 우리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