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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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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바로알고, 내일을 고민한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유신’을 읽고-

  

 

한홍구 교수를 현대사학자이자, 현재사학자라고 한다. 글쎄? 내가 대학교 학부시절, 대학원에 진학하려다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모든 응시자가 다들 합격했는데, 유독 한명만 탈락했다고 한다. 왜? 떨어졌을까? 교수님이 ‘자네, 어느 시대를 연구하고 싶은가?’라고 묻자, ‘네, 저는 1970년대를 연구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교수님은 ‘자네는 정치학과에 가게’라는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한세대가 지나야 역사학자들이 연구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상식’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현재사학자’라고 자신을 당당히 밝히는 한홍구 교수! ‘현재’는 누구나 다들 알고 있고, 그렇기에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믿고 있다. 이러한 ‘상식’과 선입관이 물론 나에게도 잠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숲속에 있기에 숲을 보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리듯이, 오늘을 살고 있기에 자신이 역사의 어느 부분에 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오늘을 바로 알기 위해서, 현대사를 바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을 살아가면서 느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1.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더 무지한 우리.

푸른 눈의 현각 스님이 불교에 빠져들게 되었던 계기가 바로,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었다고 한다. 자신이기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고,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하버드를 다니던 학생을 불교로 입문하게 만든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우리는 “현재를 아는가?” 그리고 지금 이순간과 가장 가까운 “1970년대를 아는가?”라는 질문에 선듯 대답하기 힘들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한국근현대사를 처음 가르치던 때, 현대사는 시험에 잘 나오지 않는다는 선입관과 현대사는 시사일 뿐, 역사가 아니기에 나는 잘 알고 있다고 착각을 했다. 그러나, 현대사에 대한 맥락을 모르고, 단순한 사건만을 알았기에 제대로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1970년대에 관한 심도 있는 서술한 책을 만나기는 더욱 힘들었다. 이러한 갈증을 이 책은 깔끔히 해소해 주었다. 특히 간혹 신문에 간단히 언급되는 ‘김대중 납치 사건’, ‘긴급조치와 민청학련’, ‘인혁당 재건위 사건’, ‘YH사건’ 등을 한홍구 교수는 특유의 차분하고 은유적이고 쉬운 어투로 쏟아내고 있다. 각각의 개별적인 사건으로 이들 사건을 알고 있었던 나에게 이들 사건이 하나의 맥락속에서 연결고리를 가지고 역사의 거대한 흐름속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역사학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위해서 학문을 위한 학문연구를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왔던 나에게는, 이처럼 쉬운 표현과 위트 있는 어투의 책은 무척이나 신선했다. 그뿐이니라, 과거사 진상 조사 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정부의 자료를 섭렵하면서 깊이 있고 신문에서도 읽지 못한 사건의 이면을 읽을 때면, 마치 첩보영화를 보는 듯한 박진감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김형욱의 실종과 죽음’에 관해서는 그동안 신문지상에서 제기된, 다양한 설들보다도 한걸음 더 진실에 다가간 서술을 해주었기에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이밖에도 동일방직 노동조합과 반도상사 노동조합, 도시 산업 선교회를 탄압하기 위해서 정부나 중앙정보부가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는 한홍구 교수 책을 읽은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통일벼의 빛과 허상, <신동아>에 실린 “1960년대 전반 농촌 인구 100명 가운데 1.3명이 ‘헌 마을’을 떠났는데 왜 1970년대 후반에는 해마다 3.7명이 ‘새마을’이 된 농촌을 떠났는지 설명할 수 없게 된다.”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새마을 운동의 신기루를 설명할 때는 닫혔던 가슴이 확 열리는 느낌이었다. 농촌에서 자랐기에 농촌이 날로 살기 힘들다는 것을 피부로 체험했는데, 초등학교에서는 “오늘날 처럼 농촌이 잘살게 된 이유는?”이라는 시험문제에, 정답은 “새마을 운동”이었다. 현실이 괴로운데 현실이 행복하다는 전제하에서 답을 물어보는 문제를 나는 풀수가 없었다. 이러한 진실들을 다른 책에서 얻기란 참으로 힘들었기에 이 책의 가치가 더욱 커 보이다.

 

 

2. 새롭게 알게 된, 너무도 어두운 그림자들

몇해전, 연수를 갔다가 일반사회 교사 출신의 교장이 역사과 선생님을 상대로 교육과정 연수를 진행했던 때가 기억난다. 역사공부를 자신은 TV드라마 ‘무인시대’를 보면서 한다고 자랑하더니, “우리가 자랑스러운 것은 많이 가르치고, 부끄러운 것은 안가르치자”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관련 서술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역사를 배우는 여러 목적이 있다. 그 중에서 한가지가 역사적 교훈을 얻는 것이다. 과거의 슬픈 역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 것! 그것을 위해서 올바른 역사교육이 절실한 것이다.

한홍구 교수는 어쩌면 너무도 부끄럽고, 슬픈 역사이기에 숨기고 싶은 기억들을 정면으로 서술하고 있다. 군사독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군사독재에 저항한 역사는 민주화를 성취하기 위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기지촌 정화운동’, ‘베트남 파병이 남긴 것’이 바로 우리가 감추고 싶은 역사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슬픈 역사는 ‘기지촌 정화운동’이다. 군대에서 정신교육 시간에, “나라의 남자가 멍청하면 그 나라의 여자가 고생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나라의 남자가 멍청해서일까? 광복이된 조국에서 많은 여성들이 ‘양공주’로 불리우며 살아왔다. 국가가 이를 방조내지 조장했다. 한홍구 교수는 “양공주에 기생한 국가 포주 제도”라고 서술했다.

 

“1964년 한국의 외화수입이 1억 달러에 불과하던 시절, 미군 전용 홀에서 벌어들인 돈은 근10퍼센트인 970만 달러에 달했다. 한국 정부는 주말 외출을 나온 미군들이 오키나와나 일본으로 가 성매매하는 것을 국내에서 흡수하기 위해 기지촌 여성들에게 영어와 에티켓을 교육하려 했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녀들을 “산업전사”, “안보전사”라는 명칭을 붙여 예절교육까지 시켰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는 미군들이 훈련하는 사이사이에 욕구를 풀 수 있도록 훈련 중에도 이런 일을 했다니 정말 믿기지 않았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까? 한 시민단체의 설문조사 결과 고등학생의 47%가 돈 10억 원을 주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는 것은 괜찮다고 답을 했다고 한다. 상하이에서 어느 잘사는 집 청년이 나이 많아 보이는 농공의 뺨을 때리고 매값으로 돈을 던져주는 장면을 본 사람의 이야기를 했더니, 한학생이 “나도 천만원 주면 맞을 텐데....”라는 농담 섞인 말을 했다. 나는 긴 한숨이 나왔다. 돈이면 무엇이던지 다할 수 있어도 될까? 지조 있는 가난한 처녀가 부유한 창녀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옛말인가?

외화를 벌기 위해서 이땅의 가난한 처녀들이 “양공주”로 생활하는 것을 방조하고, “산업전사”, “안보전사”라는 명칭을 붙여준, 당시의 정부를 합리화할 수 있을까? 우리사회에 넘쳐나는 도덕불감증과 황금만능주의에 환멸이 난다. 아무렇지도 않게, “부자되세요”라는 말을 외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고사성어가 현실로 다가오는 요즘의 우리사회를 반성해봐야 하지 않을까? 경제 성장만하면, 돈만 벌면, 독재를 해도 되고, 비도덕적인 일을 해도 된다는 생각이 혹시 이 시기부터 싹튼 것은 아닐까?

 

 

3. 1970년대, 오늘이 만들어지다.

1848년 프랑스에서 2월 혁명이 시민의 승리로 끝났다. 그후, 국민 투표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루이 나폴레옹이었다. 이후, 그는 나폴레옹 3세로서 황제에 즉위한다. 일련의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이후, 나폴레옹 1세의 통치시대를 제대로 알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서도 펼쳐지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기를 바로 보지 않고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박근혜 스스로 아버지에게서 정치철학을 배웠다고 말하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이러한 지금의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 냉철하고도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다. 유신이라는 괴물은 가장 큰 머리 하나만 잘려나갔을 뿐이다. 10.26사건으로 그는 갔지만, 그의 잔당들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김재규가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지만, 유신의 잔당들이 벌인 광주에서의 유혈사태를 막지는 못했다. 권력 서열상 1위 박정희와 2위 차지철, 3위 김재규는 죽었지만, 4위 전두환과 5위 노태우가 살아 남아있었다. 그들이 유신이라는 괴물의 다른 머리를 내밀며, 다른 모습으로 다시 우리에게 나타났다. 유신이라는 괴물은 마치 그리스 신화의 ‘히드라’ 처럼 다른 얼굴로 아직도 살아있는지도 모른다.

민주화 정권이 들어서고 10년이 흘렀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는 강고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박정희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민주주의의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묻고 싶다. 이책에서 한홍구 교수는 ‘신유신의 밤’이라는 글에서 자신의 고민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한홍구 교수의 고민을 나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가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소극으로 두 번 되풀이된다”는 말처럼,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백성들이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지키려는 노력이 없다면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과연 어리석은 백성이 아닌지 묻고 싶다.

 

 

대학시절, 전공이 무엇이냐고 물은면, 나는 자신있게 “역사”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상대방은 한심하다는 듯이 “뭘먹고 살려고 역사과에 갔어!”라고 반문한다. 그들에 눈에는 대학은 취업훈련소로 보였나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의 본래 가치보다는 돈이 되는가에 달려있다. 돈이 된다면 그가 했던 잘못이 용서되고 미화되기도 한다. 그런데, 돈이 되지 않는 그 “역사”를 가지고 전쟁이 일어났다. 동아시아 3국의 역사전쟁은 물론, 한국 내부에서 시작된 “교과서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황금만능의 시대”에 돈이 되지 않는 역사에 이렇게 사생결단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러한 본원적인 질문에 우리가 답하려면, 멀수록 돌아가라는 겪언 처럼, 과거의 역사를 다시 공부하며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홍구 교수의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유신’은 이러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필독서이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고,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된 역사를 만들고 싶다면, 바로 기록하고, 바로 기억하자!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길이고, 가장 효과적인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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