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정경옥 옮김 / 살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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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브라이슨의 책에는 독특한 유머가 있다. 글을 재미있고 위트있게 쓰는 책을 읽는 것은 나름의 흥미가 있다. 사실 '발칙한 영어'를 일기 보다는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라는 부재에 끌려서 이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미국의 역사라는 그릇에 영어라는 음식을 빌 브라이슨이라는 소스를 뿌려 만든 작품이다. '미국 이라는 그릇'을 기대했던 나는 '영어라는 음식'을 즐기지 못했다. '영어라는 음식'을 학교 교육을 통해서 맛 보았다. 그러나 '빌 브라이슨이라는 소스'를 뿌렸다 한들 영어의 생소함과 어려움은 음식맛을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꾸역꾸역 600페이지를 읽고 나만의 방식으로 음식 후기를 남긴다. 


 빌 브라이슨은 미국의 역사를 즐겁게 해체한다. 정통 미국 역사책은 필그램파더에서 시작하는 자유를 찾아 미국인들이 서부 개척을 통해서 자유를 아메리카대륙에 확대시켰으며 세계 1,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자유의 파수꾼으로서 세계 경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서술한다. 이른바 '자유의 확대'가 미국 주류 역사학의 거대한 서사이다. 그런데, 빌 브라이슨은 이러한 신화와 네러티브를 해체한다. 그만의 유쾌한 필체로 근엄한 주류 역사 서술을 무장해제시킨다. 

  청교도들인 필그램파더가 자유를 찾아서 플리머스 바위해안에 첫발을 내딛었다는 신화를 살펴보자. 빌 브라이슨은 필그램 파더들이 암초의 위험을 무릎스고 플리머스 바위해안에 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필그램 파더 이전에도 먼저 온 미국인들이 있었음을 지적하며 수많은 이주자 중에서 필그램파더를 미국사의 시작으로 꼽는 미국인들의 의도에 시원한 유머를 날려준다. 

  그렇다면, 청교도들은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미지의 땅, 아메리카로 왔을까? 아니다. 빌 브라이슨은 냉정하면서도 정확하게 청교도들이 아메리카로 온 이유를 설명한다. 


  '고향땅에서 오랫 동안 박해를 받은 그들이 아메리카에서 원한 것은 오로지 그와 똑같이 편협한 제도를 독자적으로 확립할 기회였다.'-462쪽


  '종교의 자유'라함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자유로이 믿을 수 있는 자유를 뜻한다. 그러나, 청교도인들은 '청교도만 믿을 수 있는 자유'를 원했다. 이러한 자유는 자유라기 보다는 속박이다. 정확히 그들이 원했던 것을 찝어내어 정확한 표현을 사용한 점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실 초기 청교도들과 함께 사는 삶이 유쾌할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사실상 또다른 속박이기 때문이다. 자위행위도 중대 범죄로 처벌 받았으며, 코네티컷 뉴헤이븐이라는 사람은 마을에 외눈 박이 돼지가 태어나자, 수간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지기까지했다. 어느 것이든지 극단에 치우치면 그것이 새로운 속박의 굴래가된다.  "청렴하면서도 포용력이 있고, 어질면서도 결단을 잘 내리고, 사리에 밝으면서도 지나치게 파헤치지 않고, 곧으면서도 지나치게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면, 이것을 가리켜 꿀범벅이 달지 않고 해산물이 짜지 않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덕이다.(淸能有容,仁能善斷明不傷察,直不過矯 是謂 "蜜餞不甛,海味不함",是懿德)"라는 채근담의 당부를 청교도인들은 귀담이 들어야할 것이다. 

  빌 브라이슨은 미국 독립 혁명의 민낯을 파헤친다. 미국인 대영제국의 압제에 대항하여 용기있게 독립 혁명을 일으켰다고 주류 역사학자들은 서술한다. 그러나, 당시 영국 시민 모두가 투표권을 갖고 있는 상황이 아닌 당시에 유독 아메리카에 있는 영국령 식민지만 압제했다는 말은 논리적이지 않았다.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구호만 듣는다면 영국이 엄청난 세금을 미국인들에게 부여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영국령 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낮은 세금을 내고 있었다. '이것이 반역이라면 최대한 이용하자',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고 알려진 페트릭 헨리는 이러한 말을 하지 않았으며 영국에 강력한 저항을 표시하지도 않았다. 자유의 획득을 위해서 압제에 저항했다는 미국 독립혁명의 신화를 빌 브라이슨은 유쾌하게 깨부스고 있다. 

  나라를 만든자는 그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신화를 만든다. 소위 '정사'로 알려진 역사는 그들의 신화를 역사적 사실이라 주장한다. 빌 브라이슨 책의 유쾌함을 그러한 '정사'에게 시원한 일침을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필그램파더들이 미국에 온 이후, 세계의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미국으로 밀려왔다. 이민자들이 미국 대륙에 발을 내딛자, 친절한 미국인이 다가와서 일자리를 소개해주고겠다며 이민자의 가방을 들어준다. 그리고 이민자는 모든 재산을 사기당하며 미국 생활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3분의 1정도의 유럽 이민자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유렵인들이 쉽게 미국에 정착했다는 생각은 나의 선입견이었다. 

  미국에 정착한 수많은 이민자들은 미국 영어에 새로운 단어를 선물했다. 미국 영어는 다양한 유럽언어 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언어에서 단어를 들여왔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영국의 템스강을 위해서 만들어진 언어로 미시시피의 웅장함을 표현하려는 사람들은' 적절하게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영어를 새롭게 창조하고 재해석해야했다. 문화와 자연환경이 바뀌면 이를 표현하는 언어도 변화해야한다. 이것은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영어, 호주식 영어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민자들은 미국에 새로운 창조력을 불어 넣었다. 미국은 세계 초 강대국으로 군림한다. 미국인들도 풍요의 시대를 맞이한다. 집안일을 줄이기 위해서 다양한 전자제품이 미국가정을 가득 채운다. 그렇다면 그들은 행복해졌을까? 빌 브라이슨은 아니라고 말한다. 소비성 품목이 더 증가했을뿐, 여가 시간이 증가하지는 않았다. 주택의 규모가 커졌으며, 생활양식이 다양화졌고, 집안의 청결 기준이 철저해지면서 우리가 상상하는 여유로운 여가 생활과 휴식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현실과 비슷한다. 각종 전자 제품이 가사일을 줄여주었지만, 맞벌이를 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보다 많은 소비를 해야한다. 집안일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여가 시간은 그리 크게 늘지 않는 역설적 상황은 한국에서도 진행중이다. 


  마트에서 흔히 보는 '오레오'가 1912년 3월 6일 부터 미국에서 팔리기 시작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과자라는 소소한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모른는 영어 단어에 집착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책을 읽는 시간 자체가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사소하지만 재미 있는 미국의 생활사를 유쾌하게 탐험한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당신은 소소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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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2-12-31 1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배배꼬인 말을 이렇게 두꺼운 책을 낼 정도로 꾸역꾸역 내뱉는 사람은 빌브라이슨 뿐일거에요, 쿠쿠

강나루 2023-01-03 20:49   좋아요 1 | URL
빌 브라이슨만의 특징이지요.

레삭매냐 2023-01-03 1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국 생활사를 유쾌하고
가치 파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재밌지 않을까 싶
습니다.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미국 건국 신화를 통렬하
게 저격하는 시니컬한 빌
브라이슨 스타일이 마음에
쏙 드네요.

강나루 2023-01-03 20:47   좋아요 1 | URL
영단어에도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