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것은 가짜다 - 연암 박지원의 예술론과 산문미학
정민 지음 / 태학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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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읽다보면 누군가 앞서 저만큼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때가 있다.  여러 영역에서 깊이를 더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무척 다행스러울 때가 있다.  게다가 그런 분들이 평범한 가정주부에 지나지 않는 내가 읽고 이해하고 감동할 정도의 쉬운 글로 자신의 전문 영역을 설명해줄 때에는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연암 박지원은 그런 분들이 없었다면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이다.  내가 무슨 재주로 한문투성이의 원문을 읽을 수 있을 것이며, 설사 자전을 찾아 펼쳐가며 읽는다 해도 글 속에 인용된 중국 고사들과 인물들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랬더라면 연암의 글은 자전이 너덜거리도록 뒤져내며 한문을 찾아낸 나의 애쓴 보람도 없이 300년의 시간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낙엽처럼 떨어져 구르며 썩어갔을 것이다. 

처음엔 <책만 읽는 바보>라는 책 속에서 연암의 향기가 코끝을 스쳐갔다. 어쩐지 그 향기가 잊혀지지 않아서 고미숙 님이 쓴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란 책을 찾아 읽었다.  ‘열하일기’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너무 무거워서 일부러 중고생 대상으로 나온 책을 골라 들었던 것이다.  그 책을 읽고는 뭔가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같은 저자의 <열하일기, 유쾌한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이란 책을 더했다. 연암의 열하일기 여정을 따라가면서 연암이라는 인물에 대해 탐구한 책이었는데 이를 통해 비로소 연암이 내게 의미를 주기 시작했다.  그 다음 책으로 골라 든 책이 바로 이 <비슷한 것은 가짜다>였다.

연암의 철학적 사유가 빛나는 코끼리 이야기와 까마귀 이야기로 시작되는 글은 심사心似와 형사刑似, 법고이지변法古而知變 창신이능전創新而能典 등을 논하는 연암의 작문론으로 치닫고 그러다가 연암이 지기들과 나눈 정, 누나를 떠나보내는 마음, 너무 일찍 찾아온 빈궁하고 쓸쓸한 의기 꺾인 중년의 모습이 펼쳐진다.  당시의 경직된 관습과 세태가 연암의 시퍼렇게 빛나고 생생하게 펄떡이는 지적사유를 제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사실이 안타까웠다.

열하일기가 기행문이지만 이 책은 연암의 여정을 쫓아가지는 않는다.  열하일기 중에서 코끼리, 까마귀, 그리고 호곡장을 비롯한 주요 텍스트를 해석한 글이 스물 다섯 편이 실려 있고 저자가 그 글에 대해 설명하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저자는 설명글에서 다른 인물들의 시와 그림, 글들(심지어 현대시인 신동집의 ‘오렌지’, 김윤성의 ‘추억에서’, 박상천의 ‘방생’이라는 시까지도!!)을 끌어오기도 하고 때에 따라 한 페이지에 반이 넘는 각주를 달아놓기도 했다.  연암의 글이라 하면 시퍼런 칼날이나 고막을 찢는 듯한 대성일갈의 목소리를 연상했었는데, 지기들에게 보내는 편지글 중에는 그 애틋함과 애절함에 가슴이 저려오는 것도 있었다.

“이별의 말이 간절해도, 이른바 천리 길에 그댈 보내매 마침내는 한 번 이별일 뿐이라는 것이니 어찌 하겠소.  다만 한 가닥 가녀린 정서가 이리저리 감겨 면면이 끊어지지 않으니, 마치 허공 속의 허깨비 꽃과도 같구려.  와도 어디서 좇아오는지 모르겠고, 떠나가도 다시금 애틋할 뿐이라오.”(p.219)라든가 “저물녘 용수산에 올라 그댈 기다렸지만 오시질 않더군요.  강물만 동편에서 흘러와서는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더이다.  밤이 이슥하여 달이 떠오길래 정자 아래로 돌아왔지요.  늙은 나무가 희뿌연데 사람이 서 있길래, 나는 또 그대가 나보다 먼저 그 사이에 와 있는가 생각했었다오.”(p.221)같은 글은 연암의 인간적인 감수성을 엿보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책의 맨 뒤편, 책에 실린 연암의 글들이 원문으로 묶여있다. 그 글들을 보고 식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자 문맹의 나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내가 정민 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자의 주선 없이는 연암의 숨결을 느낄 수 없었을 터이니.. 

저자는 나에게 따끔한 질문을 던졌다.
“서구의 담론만이 진짜인 양 행세하는 동안, 정작 우리 것은 기름 때에 절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린 물건이 되고 말았다.  이제 서여오가 그랬듯이 뭇 사람이 버린 가운데서 그 그릇의 값어치를 알아보고 묵은 때를 벗겨낼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p.315)

질문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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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07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좋은아침이에요.^^
연암의 산문미학, 정민선생 책이군요. 담아가렵니다.
언제나 성실하고 알찬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섬사이 2007-09-09 08:50   좋아요 0 | URL
일요일이 밝았네요. 가족분들과 즐거운 시간 가지시길 바래요.
잊지 않고 찾아오셔서 마음에 힘을 주는 글 한 마디 남겨주셔서 고마워요.
요즘 저는 공연히 마음만 바빠서는 제 서재 하나 꾸리는 것만으로도 허덕거리네요. 다른 님들 서재에도 부지런히 들러봐야 할텐데.. ㅠ.ㅠ

2007-09-07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09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leeza 2007-09-10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암의 글들을 읽으며 맘껏 사유하고 있는 요즘이예요. 비슷한 것을 넘어서서 제 3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가고 있죠. 님의 리뷰를 보니 참 기분 좋아지네요~

섬사이 2007-09-11 18:53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이자님. 연암 박지원의 글을 좋아하시나봐요. 저야 이제 겨우 발끝을 살짝 적신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발끝만 살짝 적시고도 짜릿했답니다. ^^
 
차이의 존중 -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조너선 색스 지음, 임재서 옮김 / 말글빛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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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유대교에 대한 나의 생각은 패쇄적이고 배타적인 종교, 선민사상을 부여잡고 유난스런 우월감에 사로잡힌 종교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은 갖고 있지만 그럴수록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차이의 존중’이라는 이 책이 유대교의 유명한 랍비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은 그래서 의외였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독단의 종교라 생각한 유대교의 지도자이자 , 지금은 팔레스타인과 날카로운 분쟁 중에 있는 이스라엘인인 저자가 ‘차이'를 존중하자는 주장을 펴는 것은 뭔가 어불성설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현대 민주적인 자본주의의 경쟁적인 시장경제체제, ’세계화‘에 따른 폐단들을 정확히 읽고 진단하는데,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세계화’가 한 나라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 간에 있어서도 혜택의 분배에 있어 제외되어 열악한 처지로 내몰리는 많은 집단이 양산될 것이고 현대 시장의 너무나 빠른 변화는 우리를 불안감에 사로잡히도록 할 것이며,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부족주의’가 생겨나면서 국지적인 분쟁과 익명성이 보장된 테러에 노출될 것이고, 환경은 파괴되고,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가 무너지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일은 점점 더 힘겨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가장 많이 기대고 있는 두 가지, 정치와 경제는 각각 절차적인 의미의 관리와 소비욕구의 충족, 이윤의 극대화라는 기능만을 제공할 뿐,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평화와 행복의 경지로 우리를 이끌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민주적 자본주의의 맹점, 세계화의 폐단이 드러나는 현실을 고발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세계를 파편화하는 ‘부족주의’를 경계함과 동시에 모든 것을 일원화 하려는 ‘보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고, 또 경제나 정치발전의 과정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방향성을 통해 통제하고 바람직하게 실현해 나가는 것이며,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개인과 개인 뿐 아니라 국가간에 있어서도)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사회정의로서의 자선을 베풀고, 모든 이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여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줌으로써 권력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경쟁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신뢰를 토대로 협동의 미덕을 발휘하고, 분쟁과 복수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용서를 통한 화해를 이루는 것이다.

특히 빈곤과 관련된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저자의 글에 따르면 빈곤에는 최저생활수준을 의미하는 빈곤과 상대적 빈곤이 있는데 유대교의 랍비들은 가난한 이들의 인간의 존엄함을 보호하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소박한 장례식을 치러주어야 한다는 규칙’(p.203)이 있고 또 ‘축제일에도 부잣집 소녀들은 좋은 옷이 “없는 소녀들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도록” 빌린 옷을 입어야’(p.203) 한다는 것이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부’와 ‘소비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다른 이들보다 우월해지려고 애쓰는 듯한 우리 현실의 세태와 비교할 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우리나라의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도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줄 만큼의 깊은 아량과 배려의 마음도 함께 갖춰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시’와 ‘사치’의 이미지를 벗어나서 ‘자발적 가난’과 ‘부의 사회 환원’의 덕을 갖춘 존경받는 부자가 많아진다면 세상은 좀더 믿을만한 것이 되지 않을까.

저자가 유대교 랍비인 까닭에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어쩌면 이런 부분들 때문에 읽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종교에 대한 이야기 역시 생각해 볼만한 것이 많다.  저자가 인용한 구약의 여러 내용들이 사회정의 실현과 빈곤하고 차별받는 계층에 대한 의무와 나와 다른 이방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종교가 이런 역할들을 올바르게 실행에 옮기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오직 “너희는 세상 끝까지 가서 내 복음을 전하라”는 성서 구절이 강조되어 교세확장이라는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닌지,  급변하는 시대의 물살 속에서 영적인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현대인들에게 현실에 맞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지, 소외계층에 대한 사랑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오직 내 종교만이 옳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다른 종교를 모두 이단 취급하고 배척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교회 자체가 시장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저자는 이 시대 종교가 풀어가야 할 과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낯선 자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임재하심을 보고 유례없이 강력한 힘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무력한 자들과 배고프고 가난하고 무지하고 배움이 짧은 자들, 인간적 잠재력의 표현 기회마저 빼앗긴 자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것이 위대한 종교인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가 영적이고 실제적인 조상으로 경배하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신앙이다.”(p.343)라고.  그리고 “갈등과 투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를 끌어들일 때 모름지기 종교인이라면 반대 목소리를 더욱 분명히 해야 한다”(p.28)면서 우리가 “인간 가능성의 영역을 감소하는 게 아니라 확장하”는(p.342) “차이의 존엄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다양성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도 배울 것(p.343)"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말은 조목조목 너무나 올바른 나머지 너무 이상적이란 느낌을 받는다.  저자의 말대로 된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게 가능할까?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를 그려놓은 것만 같아서 오히려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이상’이 없는 것보다는 존재해야 하는 것이 낫다.  적어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알려주니까 말이다.  세계가 함께 같은 이상을 꿈꾸며 비틀거리면서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는 있을 것이다.

책 끝의 ‘옮긴이의 말’에서 저자가 이 책을 쓰고는 보수적인 유대 집단의 ‘공분’을 사는 바람에 꽤 떠들썩한 물의를 빚었고 그 때문에 2판에서는 몇 구절 수정을 해야 했다고 한다.  옮긴이의 말마따나 <차이의 존중>이라는 책은 출판되면서부터 ‘차이의 존엄’을 인정받지 못하는 가련한 처지였다는 것이 무척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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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3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제목이 몹시 땡기는 책
보관함에 담습니다~ :)

섬사이 2007-09-02 09:48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으며 체셔님 생각이 났었더랬죠. 이유는,,, 모르겠어요. ^^

씩씩하니 2007-08-3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만으로도 너무나,,가슴에...깊은 느낌이 남는 그런 책이에요....
아~......읽어줘야하는데..이렇게 좋은 책을..
그런데..왜 이리.요즘 책이 손에 안잡히고 이렇게 마음이..공중에 뜬 듯이 안정이 안되는지...원~~
님의 일목요연..확,,머리에 와닿는..리뷰..너무나 감사하여요~~

섬사이 2007-09-02 09:49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좀 멍한 상태라서.. 환절기 증후군인지..^^ 그런데도 좋게 읽어주시니 고맙습니다.

순오기 2007-09-26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려고 올라온 서평 주욱~ 보다가 꾹 누릅니다.
님 서재 들어와 가끔 읽어보는데 댓글은 처음 남기려나~~~ 잘 모르겠네요.
어쨋든 좋은 서평에 끌려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섬사이 2007-09-26 23:2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아틀라스 중국사 - 역사읽기, 이제는 지도다!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 3
박한제 외 지음 / 사계절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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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국사를 접한 방법은 세계사 속에 단편적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우리나라 역사와 연관되어 있는 중국사의 편린들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오로지 중국사만을 따로 떼어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처음의 기회가 이 책을 통해서였다는 건 내게 참 행운이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중국 고대사 편을 보면 기존에 우리가 ‘황하문명’이라고 부르던 것을 ‘동아시아 문명’이라고 부르고 있고, 다시 그것을 앙소문화, 대문구문화, 하모도문화, 신락.홍산문화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아시아의 신석기 문화는 황하 중심 문화가 주변으로 확대되는 형태가 아니라, 기원과 계통이 다른 문화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p.13)고 하고 있다.  게다가 하-은-주로 이어지는 중국 고대국가 중 은나라를 상商나라로 명명한 것도 특이한 점이었다.  왜 은이 아니라 상일까, 궁금했는데 ‘상의 마지막 수도인 은허궁전과 상왕의 무덤이 발견되고 결정적으로 商이라는 글자가 갑골문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은나라’가 잘못된 명칭임을 분명하게 짚고 있다.

두 번 째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서양의 문명과 제도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주봉건제’와 서양 중세의 봉건제와의 다른 점이라든지,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논하면서 서양의 사상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 지를 설명하면서 읽는 이의 이해를 돕는 세심함이 돋보였다.

한편 책을 펴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지도와 다양한 사진 자료들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만나게 되는 한 두 개의 지도는 그야말로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지도들의 파노라마라 할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수많은 지도들은 어쩌면 너무 시시콜콜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지도를 읽을 수 있는 능력 여하에 따라 그 진가가 발휘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나는 ‘지도를 못 읽는 여자’에 속하는 부류라 그 자세하고 세심한 지도들이 제 빛을 발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인쇄 상태 말끔한 사진 자료들 또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나는 특히 BC.3500-BC.1600년 경 신석기 문화의 유물 사진을 보고 무척 놀랐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라고는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 기껏해야 반달돌칼이던가? 하는 것들만 알았었는데 이 책에 실린 신석기 시대 유물은 그 정교성이나 예술성에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길고 긴 중국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통치제도와 법령들에 대한 용어와 소개는 입이 벌어질 만큼 그 수가 엄청나다.  군국제, 봉건제, 군현제 등의 익숙한 것들부터 강간약지정책, 사민정책, 평균균수법 등등의 용어와 시대적 필요성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간결하게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예로 들자면 오호에 멸망한 한족들의 대규모 冷渡(냉도) 이후 다수 본지인과 관계를 맺으며 동진, 남조 역사에 중요 변수로 작용하게 되는 ‘교구체제’라든가 북송말의 민중 반란의 직접적 원인이 된 ‘화석강’, 여진족(금)의 군사제도인 ‘맹안 모극제’, 위진남북조시대의 관리 선발 제도인 ‘구품관인법’, 당나라의 몽골지배정책인 ‘기미정책’, 청나라 강희제의 관료통제제도인 ‘주접제도’, 근대 중국사회에서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등장한 ‘중체서용론’과 ‘전반서화론’ 등등,,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비교적 중립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72쪽 ‘정관의 치세’편에서 당 태종 이세민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당 태종 이세민이 등극하는 과정에서 형제를 살해하고 동생의 부인을 妃(비)로 끌어들이는 패륜을 저질렀으며 제위기간 중에도 몇몇 도덕적 결함이 드러나는데 이는 수 양제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그(당 태종)는 천하의 명군으로, 양제는 폭군으로 후대에 정형화 되었다.  이는 명군과 폭군의 구별이 반드시 공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명군이 되려면 최소한 정치적 승자가 되어야 하고, 후손들이 오랫동안 계속 집권해야 하며, 생애의 ‘뒤끝’이 좋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현종이 안사의 난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開元(개원)의 치’도 정관의 치 못지않게 평가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 중국의 역사와 관련된 우리역사의 부분에서도 명청교체기에 여러 가지 구실로 명과 청에 차례로 덜미를 잡히는 조선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명과 청의 눈치를 보며 쩔쩔매는 선조나 인조에 비해 폭군이라고만 알고 있는 광해군이 명의 파병요구를 묵살해버리는 실리추구정책을 펴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몇 가지 사실을 이 책 속에서 만나다 보면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그동안 ‘공평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역사의 격동기 때마다 출현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마음에 와 닿았다. 남송이 금으로부터 무력공략을 당할 때 맞서 싸운 농민출신 장군 악비와 금과의 굴욕적인 강화조약 ‘소흥의 화의’ 체결에 앞장 선 진회의 이야기라든가, 또 남송이 몽골의 침략을 받았을 때 기회주의자 가사도의 비굴한 모습과 쿠빌라이까지 감동시킨 21세의 청년 문천상의 분연한 항전과 의연함은 좋은 대조를 이루며 본보기가 되어준다. 

근현대사 쪽으로 오면서 동서양을 잇는 찬란한 문명의 중심이었던 중국이 서양열강에 의해 침탈당하고 무너지는 장면은 같은 동양권 국가의 국민으로서 안타까웠다.  물론 그 중국도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우리나라에 끼친 피해가 적지 않지만 말이다.  결국 역사는 강자들 편에서 흐른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여겨지면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심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교양으로서 한번 가볍게 휘 훑어볼 역사서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물론 나의 역사지식이 너무 짧아서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한 번 휘익 읽고 ‘참 재밌네, 참 잘 엮었구나.’라는 한 마디 평으로 끝나버릴 가치의 책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를테면 잘 엮어진 역사 사전이라고나 할까? 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처박아 두는 사람은 없다.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들춰보고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사전의 소장가치다.  이 책의 말미에 붙어 있는 ‘찾아보기’편은 이 책의 사전적 역할에 무척 유용한 쓰임새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풍부한 지도와 도표, 사진자료들이 본문의 글을 보충하는 부가적 의미의 보충자료로 쓰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했다. 읽는 이가 본문의 글과 지도, 도표, 사진들을 보고 그 사이를 유기적으로 오가며 파악하고 이해하면서 역사를 이루는 종횡의 조밀한 그물망을 스스로 엮어갈 수 있다면 이 책의 가치는 더욱 그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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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3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내용을 꼼꼼하게 설명해 주셨네요. 중궁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갈 수 있는 책이란 느낌이 드네요.^^

섬사이 2007-08-19 04:30   좋아요 0 | URL
중국에 대해선 늘 세계사나 국사 안에서만 배웠더래서 아는듯 모르는듯 했는데 중국사만 따로 떼어서 보니까 훨씬 낫더라구요. 역사지식이 짧아서인지 읽기가 쉽진 않았지만요.^^

프레이야 2007-08-13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고학년/중학 중국사책에도 은나라를 상나라로 명시해두었더군요.
마지막 단락, 역사를 이루는 종횡의 조밀한 그물망을 스스로 엮어가는 일,
이게 역사를 공부하는 기본조건 같아요. 추천^^

섬사이 2007-08-19 04:32   좋아요 0 | URL
어머, 전 이 책에서 '상나라'라는 말을 처음 보았는데 이미 '상나라'로 출판된 중국사책들이 있었군요.

마노아 2007-08-1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지를 것인가 계속 고민 중이에요. 사실 사고 싶은데 며칠 내로 살 것인가 몇 달 내로 살 것인가의 고민이에요^^ㅎㅎㅎ

섬사이 2007-08-19 04:34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이 아틀라스 세계사에 조목조목 달아놓은 오자와 잘못된 점을 지적해 놓은 리뷰를 보았어요. 마노아님이 이 책을 읽는다면 역사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는 저보다 훨씬 도움이 될 서평을 쓰실 수 있을텐데..이 책에 대한 저의 느낌 중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수정할 기회도 얻을 것 같구요. 님의 서평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
 
대왕 세종 - 마음을 지배하니 세상이 나를 따른다
백기복 지음 / 크레듀(credu)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세종의 하루하루가 어땠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신하들과 무슨 대화를 나누고, 세종의 습관과 버릇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사소한 궁금증들로 탄생되었다는 이 책은 세종대왕의 위대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것이 세종의 탁월한 ‘마음의 다스림’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세종 이도(저자는 대왕으로서의 위대함보다 인간 이도로서의 인간적 갈등과 고뇌의 극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와 집현전 학사 열 명과의 일화를 통해 세종이 가지고 있던 비범한 ‘마음의 힘’을 정리해 놓았다.  ‘마음경영법’이라고 소개된 열  가지의 목록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인들에게도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는 데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첫 장의 최만리와의 일화다.  최만리는 집현전 부제학으로서 보수파였으며 성리학 원칙주의자였던 까닭에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에 격렬히 항의한다.  그 항의의 수위가 꽤 높아서 책을 읽는 내가 '그 옛날 하늘같은 왕에게 이렇게까지 말을 해도 괜찮았을까?‘하고 걱정이 될 정도였다. 최만리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야비하고 상스럽고 무익한 글자‘라서 ’새롭고 기이한 한 가지 기예에 지나지 못한 것‘이며 ’학문에 방해되고 유익함이 없으므로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 옳은 점을 찾아 볼 수 없다‘(p.20)는 것이다.  아무리 맘에 안 들기로 그래도 왕이 몇 년에 걸쳐 만들어낸 것을 두고 저리 막말을 해댈 수 있나 싶은데 절대 권력자 세종은 괘씸죄를 걸어 유배를 보내든가 그것도 아니면 벼슬을 빼앗아버릴 수도 있으련만 최만리를 설득하기 위해 애를 쓴다.  결국 최만리가 그 해 낙향하고 이듬해 목숨을 다하는 것으로 사건은 끝났지만 세종은 여전히 최만리를 아껴 그가 떠나 비어버린 부제학 자리를 3년이나 그대로 두었다 한다. 

이 일화를 소개하며 저자는 진정한 안티에 대해 이야기 한다.  진정한 안티란 서로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이 깔려 있으며 각자가 치밀한 논리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만리는 세종의 진정한 안티였고, 세종은 안티와 더불어 토론하고 설득할 수 있는 탁월한 역량과 자세를 가진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경영에 성공하려면 비판받지 않고 결정된 사항들에 대해 쉽게 신뢰를 보내지 말 것이며 더 나아가 자청해서라도 비판과 안티를 끌어들여야 한다.‘(p,.26)면서 ’안티 사랑‘을 주장한다. 충분히 공감하지만 실천하기엔 참 어려운 사항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형식으로 술이 과하여 문제를 일으키곤 했던 윤회와의 일화를 통해 ‘자기 절제’를, 출신의 빈약함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하는 능력을 보였으나 인간성면에선 문제가 있었던 김문과의 일화에서는 ‘마음의 균형(밸러스트)’를, 출세와 벼슬에 뜻이 없었던 강희안과의 일화를 통해서는 ‘자기적합화’를, ‘집대성’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학문이 뛰어났던 박팽년과의 일화를 통해서는 ‘자기계발’과 ‘몰입’의 중요성을, 세종의 믿을만한 의논대상이었던 정인지와의 일화를 통해서는 ‘전문성’을, 강직한 성품과 절개로 공동선을 위한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하위지와의 일화를 통해 ‘공동선을 위한 자기변화’를, 세종이 이개 등을 시켜 만든 <명황계감>을 이야기 하면서 ‘타산지석과 자기 경계’를, 책을 읽다 잠이 든 신숙주에게 갖옷을 덮어주었다던 유명한 일화를 통해 ‘아낌과 위함, 배려와 이해’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세의 문장가이자 당대의 지성이었으나 도량이 좁고 사생활에 문제가 많았던 변계량과의 일화를 통해 ‘공정성 확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얼마 전부터 우리 옛사람과 옛글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 즐겁고 읽고 난 후의 만족감도 크다. 그건 아마도 내가 존재하는 근원, 뿌리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마치 잘라놓은 통나무처럼 하나의 사물과 다를 바가 없던 역사적 인물들에게서 살아 있는 숨결을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어서 세종대왕에 대한 단편적이고 교과서적이었던 나의 통나무같은 지식 위로 가지가 뻗고 잎이 돋는 듯한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었다.  ‘자기계발’과 ‘마음 경영’이라는 주제로 뽑아낸 세종대왕과 열 명의 신하에 대한 이야기는 위인전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독서가 되었다. 대왕 세종으로서의 위엄과 근엄 뿐 아니라 인간 이도로서의 번민과 갈등이 함께 느껴졌던 것이다. 

특히 선왕의 실록에 집착하며 보게 해 달라 조르는 부분이나 자신의 왕권을 보위하기 위해 선왕에 의해 몰살을 당한 처가 심온의 집안을 생각하며 중전인 소헌왕후에 애틋한 마음을 품었다는 이야기 등은 인간 이도로서의 연약하고 감성에 치우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굳이 ‘자기계발’을 목적으로 삼지 않더라도 ‘동방의 요순’이라 일컬어졌던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에 대한 살아있는 일화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독서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의 뒷부분에 실린 이 책에 언급된 세종을 비롯한 열 명의 신하들에 대한 간략한 인물설명과 집현전에 대한 글은 책을 읽은 후 내용을 다시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다만 본문에 나오는 당시의 여러 책들과 벼슬 명칭과 용어들에 대해 미주를 달아놓아 책을 읽다가 번번이 뒤를 펼쳐 찾아보는 불편함이 있었다.  페이지 아래에 각주를 달아놓았다면 읽기가 더 편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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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름왕자 2007-08-06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고 추천 하고 갑니다... ^^

섬사이 2007-08-07 23:45   좋아요 0 | URL
어름왕자님, 반갑습니다. 모자란 글인데도 관심을 갖고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꾸벅~

프레이야 2007-08-0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입니다.^^ 님, 글을 읽으니 세종의 덕목을 우리시대의 최고의 경영자 자질로
꼽는 이유를 더욱 잘 알겠습니다. 자신의 안티팬과도 손잡을 수 있는.. 아주
어려운 일이지요.

섬사이 2007-08-07 23:4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나의 반대편에 선 사람을, 그것도 내맘대로 처단할 수도 있는 사람에게 애정과 신뢰를 보낸다는 것 참 어려운 일일텐데 세종대왕은 그렇게 하셨더라구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대목이었어요.

비로그인 2007-08-07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봤어요.

섬사이 2007-08-07 23:47   좋아요 0 | URL
민서님도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관심을 갖고 읽어주셔서 더욱 고맙습니다. 꾸벅~^^

비로그인 2007-08-08 07:56   좋아요 0 | URL
저는 전부터 자주 들어왔었고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만나요.

섬사이 2007-08-09 08:08   좋아요 0 | URL
어머나, 그러셨어요? 고맙습니다. 앞으로 자주 뵈어요. ^^
 
- 생각하는 그림들
이주헌 지음 / 예담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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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목’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이라고 나와 있다.  또 ‘심미안’이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안목’ 또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별하여 살피는 마음의 눈’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가끔 미술작품이나 사진작품 같은 것들을 마주하게 되면 그 안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몰라 난감해질 때가 많다.  마치 눈 뜬 장님이 된 것처럼 그 앞에 멍하니 서서 그저 “참 잘 그렸다.”라는 말 한마디 외엔 딱히 떠오르는 구체적인 느낌이 없어서 당황하게 되곤 한다.
그래서 작품을 보는 안목이나 심미안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만 뼈아프게 확인하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그런 눈을 가져봤으면, 하고 더욱 바라게 된다.  작품의 역사적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 수준 높은 미학 지식, 다양한 갈래의 예술사조에 대한 숙지, 색채와 형태에 대한 예민한 직관, 상징을 읽어내는 능력 등등을 갖추지 못했음을 자조自照하게 되는데, 결국 난 그림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 아닐까 의심하며 고민을 끝내곤 했다. (길게 고민해봤자 뾰족한 수가 없다.)
그래도 남은 아쉬움을 어쩌지 못하고는 가끔 미술관련 책을 읽는 걸로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그것도 너무 어려운 책은 읽어낼 자신이 없어 슬쩍슬쩍 피해가면서. 
이 책 <생각하는 그림들 정>에서 저자는 미술에 관한 이론체계나 축적된 지식들을 배제하고 개별 작품에 대한 저자의 느낌과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치 “그런 거 몰라도 돼요.”하는 것 같다. 
글머리에서 저자는 “비록 미술사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체계적으로 얻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구체적인 작품을 보고 즐기는 데는 만족스런 길잡이가 되도록 노력했다. 어찌 보면 큰 감동을 주는 작품 하나와 진지하게 만나는 것이 미술 전반에 관해 많은 지식을 얻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는 친절한 가이드인가. 
책읽기의 부담을 덜어내고 책장을 넘겨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살이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그래서 그림 속에 담겨진 사람이나 풍경의 모습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작가의 말을 의지 삼아 용기를 내 본다. 
..........

그림보다도 저자의 글이 먼저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사람, 그림 보는 재주와 글 쓰는 재주를 함께 가진 복 받은 사람이구나, 하는 부러움을 먼저 느꼈다.  볕이 잘 드는 넓고 시원한 창가에서 그림 하나를 펼쳐 놓고 고요히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를 정도로 그림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가 자분자분하다.
그림 속으로 이렇게도 들어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작품에 대한 설명이 너무 가볍고 시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읽어갈수록 나도 이 남자처럼 그림 앞에 고요히 머물면서  조심스럽게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단 생각이 커져갔다. 내 소소한 일상, 내가 나누었던 사랑들, 내가 느꼈던 아픔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내가 마주한 그림 속에 투영되어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까지 언감생심 품어가면서 말이다.
물론 미술 감상에 필요한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지식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그림을 읽고 감상하는 데 그리 큰 지식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 예술 감상이란 저자의 말처럼 “나 자신을, 나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테니까.  
화가의 의도나 전문적인 배경지식 같은 거 대충 덮어버리고 서툴게라도 그림과 가까이 하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심청이의 아비처럼 번쩍 눈을 뜰 수 있을까?  그림에 대한 문맹, 또는 난독증에서 벗어나 한 폭의 그림이 온전히 마음으로 젖어드는 그런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이 책과 같은 시리즈로 <생각하는 그림들 오늘>이 있다.  <정>보다 앞서 출판된 생각하는 그림들 시리즈의 첫 책이건만 어쩌다 보니 <정>부터 꺼내 읽게 되어 순서가 뒤바뀌었다. <오늘>에는 우리나라의 현대미술작품에 대한 이주헌 님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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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0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헌의 그림읽기를 좋아합니다. 이 책은 보지 못했어요.^^
님, 좋은 책 자분자분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섬사이 2007-08-02 08:36   좋아요 0 | URL
아~~~ 자분자분... ^^ 그 말이 생각이 안나고 자꾸 '조근조근'이란 말만 떠오르는 거예요. 전라남도 방언이라는데 그 말이 언제 내 머리 속에 입력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도무지 자리를 비키지 않아서 리뷰 쓰면서 단어 고르는데 땀을 뻘뻘 흘렸죠. 혜경님이 간단하게 해결해주시네요. 고맙습니다. 수정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