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 - 절망을 이기는 용기를 가르쳐 준 감동과 기적의 글쓰기 수업
에린 그루웰 지음, 김태훈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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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롱비치라는 곳이 있다.  그 동네가 얼마나 험악한지 길 가다 언제 총 맞아 죽을지 모르는 살벌한 분위기에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천지가 따로 없다.  백인과 흑인, 남미계와 아시아계 사람들이 서로 편짜고 총싸움을 벌이고 부모가 마약에 빠져 자녀를 나 몰라라 내팽개쳐두고, 살인과 폭력이 일상의 풍경으로 자리 잡은 곳이다.  아이들도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하루를 버텨내며 대학은커녕 고등학교 졸업도 힘든 끔찍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다.  바로 그 곳에 ‘윌슨’이라는 고등학교가 있다.  그리고 그 구제불능의 아이들에게 에린 그루웰이라는 신참 선생님이 있었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변화는 진심이 통하는 데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루웰 선생님은 친구를 놀리려고 인종차별적인 그림을 그리며 좋아하던 아이들을 꾸짖다가 아이들이 ‘홀로코스트’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알고는 공들여 준비한 수업 계획을 포기하고 ‘관용’을 학습목표로 삼고 아이들에게 다가서기 시작한다. (우리 청소년들은 ‘홀로코스트’라는 용어를 알고 있을까?) 부모에게조차 애정 어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랐던 아이들은 선생님을 통해 격려를 받고 살아갈 힘을 얻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과 정면으로 마주 서서 냉철하게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에게도 희망이 있음을, 그리고 그 희망이 실현 가능하다는 걸, 그리고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깨달아 가는 과정이 일기 형식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이 그린웰 선생님의 국어수업이 진행되는 203호 교실을 ‘진정한 내 집’이라고, 그 교실의 친구들과 선생님을 ‘내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자신들을 믿고 후원해주는 분들에게 기꺼이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속에 들어있는 진심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현장학습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호텔 접수계 일을 하고 백화점에서 란제리를 파는 열정적인 선생님을 아이들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진심에 반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 아이들의 변화가 단지 독서와 글쓰기 때문이었다고 말하지는 말자.  아이들이 그 ‘진심’을 보지 않았다면 독서와 글쓰기도 불가능했을 게 당연하다.

문제아였던 아이들이 진실한 자아를 스스로 발견하고 인종을 넘어서는 우정과 신뢰를 쌓아가며 옳은 것을 위해 행동하는 ‘자유의 작가들’로 우뚝 서는, 그 대견하고 기특한 과정을 읽고 있노라면 아이들이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어른’이라면 아이들을 어떻게 지지하고 격려하며 어른 스스로 아이들에게 어떤 환경이 되어주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런 교육이 가능했던 미국의 교육환경이 참 부러웠다. 국어 시간에 국정교과서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안네 프랑크의 일기>나 <동물농장>, <호밀밭의 파수꾼>, <컬러 퍼플>등등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고, 그 책과 연관된 현장을 방문하고, 관련된 인사를 초대해 강의를 듣고, 질의와 응답의 시간을 갖고, 그것을 기꺼이 후원해 주는 사회적 환경이 있고....  일제고사를 보는 날, 체험학습을 허락해줬다는 이유로 선생님들이 해직되고, 일일이 정부에서 나서서 교과서 내용을 점검하고 참견하고 뜯어고치고,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편지 한 통 쓰는 것도 교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우리의 교육 풍토와 달라도 참 많이 달랐다.  에린 그루웰 같은 분이 우리나라에 오셔서 선생님을 하신다면 아마 해직을 당해도 일찌감치 당했을 거란 생각에 씁쓸하기만 했다. 

이 책은 아이와 함께 다니는 어린이 도서관의 선생님께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자녀 둘을 모두 대안학교에 보내고 계신 그 분은 늘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는 거”라며 웃으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선생님이 계속 생각난 건, 그리고 이 책은 그 선생님께 가야 더 행복하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 건, 그 선생님 또한 좋은 어른,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내가 느끼고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나라에 좋은 어른, 좋은 선생님들이 많아지기를, 그래서 언젠가 우리의 교육환경이 좀 더 자유로워지기를 꿈꾼다.  그 꿈들이 영글어 열매맺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게다.  그럴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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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 마음을 담은 그릇
호연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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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를 보려고 했는데 앞표지 날개에 적힌 작가의 말.

“철없는 상상과
손발의 수고로움이 혼인하면
이런 만화를 낳는가보지요.
두 분의 결합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정말 오랜만에 만화책을 읽었다. 얼마 전 <역사를 담은 도자기>라는 어린이책을 읽고 우리 도자기에 대한 약간의 기초지식을 얻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만화로 도자기의 어떤 점을 ‘알게’될까, 내심 기대했었다.

그런데 내가 뭔가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었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앎’에 대한 책이 아니었다.  이 책은 도자기의 ‘겉’이 아니라 도자기 속의 그 ‘텅 빈 공간’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만화를 읽으면 어느 박물관 도자기 유물전시실 의자에 앉아서 어느 도자기 하나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도자기에게 말을 걸고 도자기의 텅 빈 공간이 자기 속을 다 보여줄 때까지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자기를 가지고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화로 풀어낼 수 있을까. 

푸하하 깔깔깔 대는 커다란 웃음을 주지는 않는다.  그저 살짝 입 꼬리가 당겨 올라갈 만큼의 웃음, 눈매를 다정한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어 줄 만큼의 미소, 그러다 콧등이 찌르르 울릴 만큼의 감동으로 목구멍이 조이는, 그런 책이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고 ‘온기’에 대한 이야기이고 ‘우리’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신기하게도 도자기 속에서 나와 도자기 속으로 들어간다.

난 뭔가 착각하고 살았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드는 책.  알아야 느낄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앎’으로 느낌을 채우려 하지 않았나 싶어 가슴 속이 따끔거렸다.  안다는 것과 바라보고 느낀다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는 걸 너무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그 독특함 때문에 더욱 사랑스럽고 소중한 책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이 만화를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작가 소개를 읽어보려고 했더니, 책날개엔 결혼 축하 카드 같은 글만 있다.  도자기를 공부하는 고고미술사학과 학생이라는 것 외에 어떤 개인정보도 드러내지 않는 게 내심 서운하면서도 과연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또 그를 겉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정보를 통해 ‘알려고’ 했고, 그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그런 것 따위로는 절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이 책 속에 들어 있는 만화에 이어 실리지 않은 것이 있을까 싶어 네이버 웹툰에서 ‘도자기’를 찾아봤다.  아쉽게도 2007년 9월 26일자로 마지막화가 올라와 있었는데,  그게 이 책의 마지막 편 내용인 것으로 봐서 아마 웹툰에 올려진 만화의 거의 전부가 이 책 안에 들어 있는 모양이다.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라니 무지 섭섭하다.

도자기를 비롯한 예술작품과 ‘사적인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들, 김춘수의 <꽃>과 같은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멋진 작품과 좋은 관계를 맺고 의미를 나누는 일은 내 주변의 소소한 일상과 그 일상 속의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정을 나누고, 내 하루의 작은 삶을 사랑하는 데서 출발하는 거라는 가슴 찡한 속삭임을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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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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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그 이름만으로도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진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같은 굵직한 작품들은 책을 펼쳐보기도 전에 기를 질리게 만드는, 고전 명작으로서의 카리스마가 철철 흘러넘치는 것만 같다.  감히 용감무쌍 덤벼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런 작품을 쓰는 사람은 비범한 천재이고 그의 삶 역시 밤하늘에 걸린 찬란한 별처럼 고결하고 숭고하고 특별할 것만 같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찌릿하고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그 즉시 오금이 저려와 깨갱거릴 것 같고, 내 얄팍하고 천박한 속내가 드러날까 두려워 입 한 번 뻥긋하지도 못할 것 같다.  그게 바로 내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이었다.

이 책이 재미있는 건 나의 이런 선입견을 뒤집어 놓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과시하기 좋아하고 시쳇말로 잔뜩 폼 잡으며 남들에게 있어 보이고 싶어서 아버지에게 미리 자기 몫의 유산을 당겨 달라고 요구하는 철없는 망나니(?)였으며 출판사에 선불을 사정하며 글을 써서 살아가는 세상살이에 야무지지 못한 작가였다면서 그동안 도스토예프스키의 주변에 자욱하게 껴있던 신비감의 연막을 가차 없이 거둬내고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길에 도박에 빠져 땡전 한 푼 없이 가진 돈을 모두 날리고는 돌아갈 여비도 없어서 투루게네프에게 구걸하듯 편지를 쓰고는 나중에 적반하장으로 돈을 빌려준 투르게네프를 두고 온갖 비난을 서슴지 않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측은해 보이기까지 한다.

제목에서 암시하다시피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사상이나 문학사적인 업적, 작품의 테마보다는 ‘세속적인 차원에서 소설에 드러난 돈의 메시지만을 살펴’(p.204)보는 경향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 <미성년>, <도박꾼>,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렇게 7개의 작품을 가지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열심히 읽다보면 도스토예프스키나 등장인물들의 돈에 대한 이야기에 빠져서 “잠깐, 지금 내가 읽고 있는 부분이 무슨 작품에 대한 글이지?”하고 앞으로 돌아가 작품명을 확인한 적도 몇 번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의 곤궁한 삶이 비록 대문호다운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을지 몰라도 당시 농노가 붕괴되고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지는 러시아, 더 정확하게는 상테페테르부르크의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했고, 돈과 인간이 한데 엉켜서 굴러가는 삶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심도 깊은 직관력을 갖게 한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작품마다 구체적이며 사실감 있게 드러난다는 돈에 대한 이야기는 요즘 시중에 나오는 펀드나 부동산, 경매, 10억 만들기 등과 같은 재테크 관련 서적과는 차원이 다른 돈 이야기이다.  그의 작품 속 돈 이야기는 단순히 ‘돈’이 아니라 인간의 복잡 미묘한 심리와 위선을 까발리고 부와 가난, 행복과 구원에 대해 성찰하기 위한 심오한 것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마 도스토예프스키가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본다면 혀를 끌끌 차지 않을까.  철학이 없는 돈, 구원의 희망이 거세된 돈, 인간에게 자유가 아니라 종속의 사슬만을 던져주는 돈, 맹목이 되어버린 돈에 대해 그가 뭐라고 일침을 가할지 상상해 보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재에 밝지 못하고 곤궁을 벗지 못한 것은 수학에 낙제점을 받을 정도로 그 쪽 방면에 재능이 없어서라기보다 돈 너머에 있는 형이상학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백년이 훌쩍 넘었건만 아직도 우리는 돈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다. 돈방석을 깔고 앉을 수 있는 방법이나 매스컴과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돈의 깨끗하거나 더러운 도덕성 시비문제, 또는 아주 가끔씩 돈의 숭고한 쓰임새에 대해.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돈과 뗄 수 없는 애증의 관계를 맺게 된 우리의 돈에 대한 생각들이 아닐까.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은 좋은 거야.  그런데 너 자신도 좋은 사람이냐? 네가 살고 있는 세상도 좋은 세상이냐? 너나 네가 살고 있는 세상이 돈을 좋은 것으로 만들 만큼 그렇게 좋으냐?”고 묻지 않을까.

도스토예프스키라는 대문호와 그의 작품, 그리고 그가 말하는 돈에 대해 깔끔하고 재미있게 정리된 책이라서 읽는 일이 즐거웠다. 다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읽으면 이 책의 저자가 말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돈’을 글 속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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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보다 소중한 우리미술가 33 - 오늘의 한국미술대가와 중진작가 33인을 찾아서
임두빈 지음 / 가람기획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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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 작품을 보면 늘 당황하곤 했다.  아마 작품이 전시장 벽에 걸려 있는 게 아니라 어디 바닥에라도 놓여있었다면 상하좌우를 구분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허다했다.  오랜 시간과 미술 비평가들이 훌륭하다고 검증해준 유명한 화가와 작품이 아니라면 -박수근이나 이중섭 같은- 현대화가의 이름은 낯설고 그들의 작품은 더욱 난해하기만 했다.

유명한 서양화가들의 전시회를 비싼 입장료를 지불해가며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감상인지 눈도장인지 모르게 둘러보고 나오면, 어쩐지 ‘이게 아닌데..’하는 느낌, 아무리 유명하고 휼륭하다 해도 내 정서와는 맞지 않는 듯한 느낌에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어정쩡해지곤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옛 미술작품들은 어떨까 싶어 기웃거려 보기도 했다. 옛 그림들 역시 나 같은 문외한은 누군가의 친절한 설명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의 문맹과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옛 그림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져 뿌듯해지긴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현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긴 어려웠다.

따라서 누군가 지금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우리 화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 가르쳐준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현대 미술의 난해함과 서양화가들의 유명작품과 우리 정서와의 불일치, 우리 옛 그림과 나 사이에 가로 놓인 시간의 두께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현역 미술가 33인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이 내 관심을 끌어당긴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저자가 내 기대를 배반하지 않아서 우리나라 현대 미술의 대표 화가 33인과 그 작품들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무척 시원시원했다.  아무렇게나 휘두른 듯한 붓 자국이 난무하는 작품 속에서 ‘역동적인 회화미’라든가 ‘작가의 디오니소스적 충동’이라든가 ‘설화적이고 신화적인 정조’ 또는 ‘해방감과 자유의 감정’을 느끼고 발견하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에 이 책의 가치가 더욱 부각되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한 작가를 지켜보는 일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책은 아무데나 펼쳐도 33인의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한두 개쯤은 볼 수 있을 정도로 작품의 사진 자료가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추구해온 미술세계의 커다란 흐름이랄까 분위기랄까 하는 것들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어쩌다 한 번 전시회를 구경(?)갔다 와서는 작품을 이해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희망사항일 뿐이며 작가의 예술적 열망과 창작의 노고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작가의 작품이 마음속으로 스며들어올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오래도록 소중하게 그림을 바라보는 일, 어쩌다 한 번씩이 아니라 애정을 갖고 전시회를 지속적으로 찾아가는 발품과 마음씀을 잊지 않는 일이 현대미술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가 4년여의 시간과 혼탁한 미술계에서 보석을 건져내 그 가치를 재조명하는 공을 들여 세상에 내놓은 책이니만큼 그 의의도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가 몇 가지 아쉬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두식 화가에 대한 글에서 마지막 글 마무리가 이상하게 끊겨 있었다. 아무래도 출판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 같은데 2쇄에서는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또 하나는 저자의 글에서 설명하고 있는 작품이 책에 실려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왕에 작품을 실을 거라면 저자가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작품을 실어주는 편이 독자 입장에서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의 작품 설명을 읽고 그 작품 사진을 찾는데 없을 경우 무척 실망스러웠다.  또 하나는 작품 사진에 적어도 작가와 작품명, 작품크기, 재료, 작품제작연도 정도는 빠짐없이 표기해주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이두식 화백의 작품은 모두 11개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사진 밑에 모두 ‘이두식’이라고만 되어 있을 뿐 작품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2005년에 그린 그의 작품을 보자’(p.178)는 저자의 글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또 임영길 화백에 대한 글에서는 그의 <철학적인 불>이라는 작품에 대한 설명이 강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그 작품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밖에 원문자 화백의 작품은 작품 3개에만 그나마 2004년이라는 작품연도가 적혀 있엇고 나머지 작품에는 <사유공간>이라는 제목 하나만 있을 뿐이다.  심재현 조각가의 작품도 <그늘 날개>를 제외하고는 작품명, 크기, 제작연도가 모두 전무했다.  서승원 화백의 작품들도 <동시성>이라는 제목만 있었고, 작품명이 아예 없는 작품도 하나 있었다. 저자의 노고에 비해 출판의 세심함이 충분히 미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33인의 작가 중 홍익대 출신이거나 홍익대와 관련이 있는 작가가 23명이었고 서울대 출신 화가가 4명, 그 외가 6명이었다.  홍익대 미대의 명성이야 모르고 있는 바가 아니지만 저자의 모교가 홍익대라서 그런지 유난히 홍익대 출신 화가들에 대한 글이 많은 것이 어쩐지 불편했다.  저자가 주창한 것으로 보이는 ‘범생명적 초월주의’에 참여한 듯한 몇몇 작가들에 대한 글들을 읽을 때에도 좀 생뚱맞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느낌이며 이 느낌이 내 치졸하고 못난 의심증에 불과하다고 믿고 싶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아직 소개하지 않은 훌륭한 작가분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 그 분들은 다음에 집필할 책에 반드시 소개할 생각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다음에 나올 책에는 저자의 깊은 심미안과 탁월한 문력(文力)이 더욱 강한 힘을 보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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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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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게 얼마나 될까?  우리와는 지구 정반대편에 위치했다는 아득한 거리감 외에도 생활방식이나 삶에 대한 태도가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곳이라는 막연함이 전부였던 것 같다.  태양의 제국 잉카,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 이구아수, 불꽃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했던 혁명가 체 게바라와 칠레의 슬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기타 줄을 튕기던 손이 으깨지면서도 숨이 끊어질 때까지 저항의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는 빅토르 하라, 울창한 아마존 밀림, 격정의 탱고,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찬찬, 펠레와 호나우드를 키워낸 축구열정, 화려한 리우 카니발, 만년설의 안데스, 제국의 발톱에 처참히 희생된 대륙, 빈곤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곳, 억압에 대한 저항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거센 땅, 해방신학의 모태가 된 슬픈 땅.....  가만히 따져보니 단편적이고 막연한 것들 밖에 없다.

이 책에 끌리며 눈독을 들였던 것도 나의 무지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혹시라도 라틴과의 아득하고 막연한 거리감을 조금이라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었다.

‘화첩기행’이라는 책제목답게 화가의 그림이 많이 실려 있고, 신춘문예 당선 경력이 있는 작가답게 글이 수려하다.  화가의 손끝에서 살아난 그림들은 라틴의 느낌을 정겹게 전해온다.  글 끝에 TIP처럼 붙은 짤막한 설명글에 간혹 우표만한 크기의 사진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전적으로 글과 그림에 의존해야 하는 여행 이야기이고 사진 한 장 없이도 라틴의 느낌이 가슴으로 전해져오는 책이다.

쿠바,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6개국의 여행기는 단순히 어떤 장소나 유적에 대한 기록이기보다 각 나라의 예술, 문학, 자연, 건축물, 춤, 대표적인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펼쳐져 있고 각 나라의 문화와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작가의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무엇보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여행담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1785년에 문을 연 고서점이 시내 한복판에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150년 역사의 카페 토르토니가 문학과 예술의 태동지로 살아 있는 문화의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우리나라 어느 대학가에 200년이 넘은 고서점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거나 문인들이 자주 모이던 제비다방, 밀다원, 금강다방이나 음악감상실 돌체 같은 곳이 아직도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문화수준은 그 위상을 더 한층 높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부러움이 함께 일어났다.  갑자기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만족할만한 개발이익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숭례문에 불을 지른 70대 노인은 바로 우리 사회의 상징이며 우리의 숨기고 싶은 자화상이 아닐까. 수준 높은 문화와 예술을 지키고 키워낼 수 있는 토양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 들어있는 라틴국가 사람들의 삶보다 우리의 삶이 조금 더 물질적으로 풍요로울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삶이 더 찬란할지를 놓고 보면 자신이 없었다.

문화생활을 경제적, 시간적 여유를 가진 자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게다가 그나마도 어디까지나 적극 가담자로서가 아니라 소극적인 관람자로서 향유되는 것이 대부분인지라 어디서나 밴드가 연주되는 쿠바나 길거리에서 탱고의 향연이 벌어지는 아르헨티나, 화가 베니토 킨케라 마르틴의 캔버스가 되어 화려한 색채의 작품으로 거듭난 라 보카의 골목과 낡은 집들,  거리의 악사 마리아치 밴드의 음악이 흐르는 멕시코의 이야기는 너무나 낯선 동시에 동경을 불러 일으켰다.

헤밍웨이, 체 게바라, 프리다 칼로, 보르헤스, 파블로 네루다, 로맹가리 같은 유명인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아가는 남미의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는 지금의 내 생활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곳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 첫 느낌, 미소, 눈빛의 마주침이 돈이나 열쇠보다 우선이란다.’(p.45)는 작가의 글에서는  태양처럼 밝고 바다처럼 시원시원하게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그들의 낙천적인 기질이 느껴졌다.  ‘그래도 삶이란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힘든 노동 끝에 아내가 구워준 토르티야와 테킬라를 마실 수 있다면 이 생도 견딜 만하지 않은가. 이파리를 가시로 바꾸며 저 선인장들이 뜨거운 태양을 견뎌내듯, 산다는 건 어차피 무언가를 견뎌내는 것이 아니던가....’(p.128)하는 글은 삶에 대한 체념이나 낙관 따위는 넘어선 민초들의 무엇에도 꺾이는 법 없이 지독하리만큼 강인하고 질긴 삶에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

혹독하고 기구한 역사를 가졌으면서도 과장이 필요치 않는 자연스러움으로 밥 먹고 잠자고 배변하듯 문화와 예술을 생활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표현할 줄 아는 그들의 낭만과 열정이 부러웠다. 

책을 덮고 나니 우리의 삶이 너무 기형적으로 느껴졌다.  원색의 화려함을 가진 그들에 비해 우리의 삶은 지루한 무채색에 가깝단 생각에 답답해져온다.  어둡고 공기 탁한 노래방이 아니라 뜨거운 태양 쏟아지는 탁 트인 장소에서 큰 소리로 노래 한 곡 불러본다면 답답한 속이 뻥 뚫릴 것 같다. 남미의 태양을 훔쳐오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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