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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세종 - 마음을 지배하니 세상이 나를 따른다
백기복 지음 / 크레듀(credu)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세종의 하루하루가 어땠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신하들과 무슨 대화를 나누고, 세종의 습관과 버릇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사소한 궁금증들로 탄생되었다는 이 책은 세종대왕의 위대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것이 세종의 탁월한 ‘마음의 다스림’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세종 이도(저자는 대왕으로서의 위대함보다 인간 이도로서의 인간적 갈등과 고뇌의 극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와 집현전 학사 열 명과의 일화를 통해 세종이 가지고 있던 비범한 ‘마음의 힘’을 정리해 놓았다. ‘마음경영법’이라고 소개된 열 가지의 목록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인들에게도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는 데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첫 장의 최만리와의 일화다. 최만리는 집현전 부제학으로서 보수파였으며 성리학 원칙주의자였던 까닭에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에 격렬히 항의한다. 그 항의의 수위가 꽤 높아서 책을 읽는 내가 '그 옛날 하늘같은 왕에게 이렇게까지 말을 해도 괜찮았을까?‘하고 걱정이 될 정도였다. 최만리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야비하고 상스럽고 무익한 글자‘라서 ’새롭고 기이한 한 가지 기예에 지나지 못한 것‘이며 ’학문에 방해되고 유익함이 없으므로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 옳은 점을 찾아 볼 수 없다‘(p.20)는 것이다. 아무리 맘에 안 들기로 그래도 왕이 몇 년에 걸쳐 만들어낸 것을 두고 저리 막말을 해댈 수 있나 싶은데 절대 권력자 세종은 괘씸죄를 걸어 유배를 보내든가 그것도 아니면 벼슬을 빼앗아버릴 수도 있으련만 최만리를 설득하기 위해 애를 쓴다. 결국 최만리가 그 해 낙향하고 이듬해 목숨을 다하는 것으로 사건은 끝났지만 세종은 여전히 최만리를 아껴 그가 떠나 비어버린 부제학 자리를 3년이나 그대로 두었다 한다.
이 일화를 소개하며 저자는 진정한 안티에 대해 이야기 한다. 진정한 안티란 서로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이 깔려 있으며 각자가 치밀한 논리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만리는 세종의 진정한 안티였고, 세종은 안티와 더불어 토론하고 설득할 수 있는 탁월한 역량과 자세를 가진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경영에 성공하려면 비판받지 않고 결정된 사항들에 대해 쉽게 신뢰를 보내지 말 것이며 더 나아가 자청해서라도 비판과 안티를 끌어들여야 한다.‘(p,.26)면서 ’안티 사랑‘을 주장한다. 충분히 공감하지만 실천하기엔 참 어려운 사항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형식으로 술이 과하여 문제를 일으키곤 했던 윤회와의 일화를 통해 ‘자기 절제’를, 출신의 빈약함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하는 능력을 보였으나 인간성면에선 문제가 있었던 김문과의 일화에서는 ‘마음의 균형(밸러스트)’를, 출세와 벼슬에 뜻이 없었던 강희안과의 일화를 통해서는 ‘자기적합화’를, ‘집대성’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학문이 뛰어났던 박팽년과의 일화를 통해서는 ‘자기계발’과 ‘몰입’의 중요성을, 세종의 믿을만한 의논대상이었던 정인지와의 일화를 통해서는 ‘전문성’을, 강직한 성품과 절개로 공동선을 위한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하위지와의 일화를 통해 ‘공동선을 위한 자기변화’를, 세종이 이개 등을 시켜 만든 <명황계감>을 이야기 하면서 ‘타산지석과 자기 경계’를, 책을 읽다 잠이 든 신숙주에게 갖옷을 덮어주었다던 유명한 일화를 통해 ‘아낌과 위함, 배려와 이해’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세의 문장가이자 당대의 지성이었으나 도량이 좁고 사생활에 문제가 많았던 변계량과의 일화를 통해 ‘공정성 확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얼마 전부터 우리 옛사람과 옛글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 즐겁고 읽고 난 후의 만족감도 크다. 그건 아마도 내가 존재하는 근원, 뿌리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마치 잘라놓은 통나무처럼 하나의 사물과 다를 바가 없던 역사적 인물들에게서 살아 있는 숨결을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어서 세종대왕에 대한 단편적이고 교과서적이었던 나의 통나무같은 지식 위로 가지가 뻗고 잎이 돋는 듯한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었다. ‘자기계발’과 ‘마음 경영’이라는 주제로 뽑아낸 세종대왕과 열 명의 신하에 대한 이야기는 위인전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독서가 되었다. 대왕 세종으로서의 위엄과 근엄 뿐 아니라 인간 이도로서의 번민과 갈등이 함께 느껴졌던 것이다.
특히 선왕의 실록에 집착하며 보게 해 달라 조르는 부분이나 자신의 왕권을 보위하기 위해 선왕에 의해 몰살을 당한 처가 심온의 집안을 생각하며 중전인 소헌왕후에 애틋한 마음을 품었다는 이야기 등은 인간 이도로서의 연약하고 감성에 치우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굳이 ‘자기계발’을 목적으로 삼지 않더라도 ‘동방의 요순’이라 일컬어졌던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에 대한 살아있는 일화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독서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의 뒷부분에 실린 이 책에 언급된 세종을 비롯한 열 명의 신하들에 대한 간략한 인물설명과 집현전에 대한 글은 책을 읽은 후 내용을 다시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다만 본문에 나오는 당시의 여러 책들과 벼슬 명칭과 용어들에 대해 미주를 달아놓아 책을 읽다가 번번이 뒤를 펼쳐 찾아보는 불편함이 있었다. 페이지 아래에 각주를 달아놓았다면 읽기가 더 편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