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2009.11 - 전자제품 사용설명서
녹색연합 편집부 엮음 / 녹색연합(잡지)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녹색연합에서 펴내는 월간지다.  줄여서 '작아'라고 불리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이런 잡지가 있다는 걸 알지도 못했다.  운좋게 내 손 안에 들어온 이 잡지는 11월을 '눈마중달'이라고 불러주는 게 정겹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고 문패를 내건 소박함이 마음에 들었다.  녹색연합이 펴내는 잡지니까 물론 환경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테지만, 계간도 아니고 격월간도 아니고, 매달 잡지를 펴낼만큼 환경에 대한 이야기 거리가 많다는 걸 기뻐해야할까, 속상해해야할까.   

11월의 특집은 [전자제품 사용 설명서].  특집 기사 부분부터 찾아 읽어보니 전자제품을 올바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다.  물론 환경적으로 올바르게다.  그러고 보니 전자제품에 대해서 점점 다양해지는 기능들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법을 '사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환경적인 측면에서의 사용법에 대해선 '플러그 뽑기'정도만 알 뿐이다.  실천도 제대로 안 하고 있지만.  

맨처음 주인에게 7년만에 퇴출당하는 오남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TV, 냉장고, 세탁기, 오디오, 컴퓨터가 그들이다.  구입해서 쓰는 동안만을 생각했지 버려진 전자제품들의 처리문제에 대해선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아파트에서 재활용품 수거하는 날 얌전히 내다 놓으면 알아서 수거해가는 게 대부분이고, 재활용 센터에서 수거하지 않는 물품에 대해서만 스티커를 사서 붙이면 그만이니까.  퇴출당한 오남매를 통해 더러는 중고시장을 통해 새 주인을 만나기도 하고, 더러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전혀 다른 쓰임새로 활용되기도 하며(여기선 냉장고가 책꽂이로 변신한다), 또 더러는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EPR)'라는 것 에 의해 회수되기도 하고, 또 더러는 그냥 버려지고, 더러는 해외로 수출이 되거나 폐기되기도 한다.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는 이 책에서 처음 알게된 건데, '생산자가 제품을 생산할 때 재활용 단계까지 고려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제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생산자 쪽에서 회수, 재활용, 폐기처리 등을 물건의 생산단계에서 미리 고려하도록 만든 제도인 셈이다.  그렇다고 모든 걸 생산자에게 떠맡길 수는 없는 법.  소비자 입장에서도 한 번 산 전자제품을 오래오래 잘 쓰는 게 환경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자꾸만 크고 기능이 새로운 것으로 전자제품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꼬집는 글도 있다. 
 '남자 대 전자제품'에서는 '사회적 웰빙'을 지칭하는 로하스가 우리 나라에선 뿌리내리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으면서 가전제품의 경우 대형화로 치닫고 있음을 비판한다.  심리학자 디히터에 따르면 여성들이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에서 '남성성'을 느낀다는데...  힘세고 든든한 남편을 원하듯 크고 유능한 가전제품을 소유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걸까?  예전에 아는 분 집에 갔는데 거실에 17인치 TV가 있었다.  그 앙증맞음에 놀랐고 슬림한 벽걸이 TV가 대세인 오늘날에 17인치 TV로 떳떳할 수 있는 그 분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이 글에선 그런 생활을 '스스로 하는 소박한 생활'이라고 했다.  1936년 그레그가 처음 사용한 용어인데, 삶의 불필요한 외형과 치장을 피하고 삶의 모습을 단순화하여 살자고 주장했단다.  1936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눈으로 보자면 더 덜어낼 것도 없는 소박한 시대일 것 같은데 말이다.   
이 글은 <아름다움의 권력>이라는 책을 쓰신 박은아 님이 썼는데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점이 있는 것 같다.  

전기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세상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에너지를 찾는 사람에 대한 기사도 있었다.  SBS 스페셜 <인간동력> 다큐멘터리를 취재했던 유진규 씨에 대한 기사였는데 기사 제목이 "인간동력, 내가 에너지다'이다.  예전에 TV에서 인간의 걸음으로 핸드폰이나 MP3를 충전하는 장면을 얼핏 본 기억이 있는데 그게 그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싶다.
'인간동력이 즐겁고 재밌다면 사람들은 움직일 것이고 거기서 에너지를 얻으면 된다'는 그의 말에 희망이 느껴진다.  사무실에서 쓸 55와트의 전기를 만들기 위해 아침마다 30분씩 페달을 밟는다는 미국인 데이비드 부처씨는 "일년동안 만든 전기가 바로 뱃살인 거죠."라고 말했다는데, 뱃살을 에너지화 한다는 아이디어에 난 무조건 찬성이다.  

이 사진은 아프리카에 설치된 '플레이 펌프'란다.  놀이기구가 하나도 없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플레이펌프를 돌리면서 하루종일 노는데, 회전 한 번 하는데 물이 1리터에서 많게는 150리터까지 나온다고. 
아이들은 놀아서 좋고, 물 생겨서 좋고, 에너지 절약되어서 좋고...  인간의 두뇌는 이렇게 쓰여야 하는 건데 말이다.
아프리카 곳곳에 쳔 여대가 설치되어 있다는 플레이 펌프를 돌리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다.  사진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밝아진다. 
속으로는 "물을 아껴야지, 물을.."하는 죄책감도 살짝 들었다.   

 

본론이다.  '전자제품사용설명서'. 5대가전 텔레비젼,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컴퓨터를 시작으로 주방가전인 김치냉장고,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음식물쓰레기처리기, 전기밥솥, 생활가전에 속하는 정수기, 공기청정기, 청소기, 드라이어, 비데,  계절가전인 전기난로, 온풍기, 전기장판, 선풍기 총 19개의 전자제품들에 대해서 소비전력, 한 달 전력소비량, 소비성향, 환경문제, 생태적 사용지침이 세세하게 실렸다.  찬찬히 읽고 있자니 마음이 영 불편하다.  이럴 때보면 나도 그다지 착하게 살아오질 못한 것 같다.   

현정권의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은 어김없다.  '2011년 세계 유기농 대회' 개최지로 선정될 만큼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팔당의 유기농단지가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앞두고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내몰리면서 존립이 어렵다는 기사가 실렸다.  30년 동안 이뤄온 유기농단지를 갈아엎고서 정부가 만들겠다는 게 자전거도로, 야영장, 야외 음악당, 야외 공연장 같은 것들이란다.  기사를 읽는 나도 속이 상한데 당사자들은 어떨까.  "다행히 팔당지역 문제는 지면과 방송을 통해 보도되고 국정감사에서까지 말이 나오니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국에는 또 다른 '팔당'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팔당 농민의 글에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4대강 사업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나보다.  환경공학과 환경계획학을 공부하고 기후변화 행동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있다는 김미형씨가 쓴 시론을 보면 가끔 사람들이 그런단다.  "환경과 생태를 살리는 커다란 국책사업을 국가가 나서서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생태복원 관련 누리방에 정부가 올린 글을 보고는 국가차원에서 환경복원 사업을 하고 있냐며 관심을 보이는 생태복원 전공 외국인 친구도 있단다.  기가 찰 노릇이다.  사업을 벌이는 주체가 워낙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도 않고, 지들끼리 들떠서 좋아 난리치는 꼴을 보고 있으면 신경안정제 주사라도 한방 센 걸로 놔주고 싶은 기분이다.  에휴,,, 그만하자.  이젠 진저리가 난다.  

무거운 환경 이야기만 실린 건 아니다.  '할아버지 모릎에 앉아서'라는 꼭지는 참 다정하고 따뜻한 분위기다.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어린 세대가 지혜롭고 현명한 어른과 만나는 자리다.  이번 호에는 세상 종말이 두려운 혜진이란 아이의 글이 실렸다.  그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해주는 대답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뭐 땜에, 너무 아득해서 암만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걸 가지고 골치를 아프게 해? 혹시 일부러 골치 앓는 게 취미라면 또 모르겠지만....(중략)... 당장 오늘 밤 자기 목숨이 끊어질 수도 있는 게 사람인데, 그 전에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안 해도 될 걱정을 껴안고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좀 우습구나..... (중략)... 너도 쓸데없는 걱정으로 괜히 겁 먹지 말고 오늘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나 잘 하거라.  아니면 동무들과 신나게 놀든지."
아이 입장에서는 졸지에 '쓸데없는 걱정이나 하는 아이' 취급을 받은 게 억울하달 수도 있겠지만 독자입장에서는 천만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어둔 밤에 길을 가려면 등불 하나만 있으면 돼.'라며 오늘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는 말씀을 할아버지의 정감있는 손글씨로 맛볼 수 있어 행복했다.  그 할아버지의 존함은 이 현자, 주자.  혹시 동화작가가 아니신지???  

100쪽이 살짝 넘는 얇고 가벼운 잡지지만 들어있는 내용들은 묵직하고 알차다.  늘 막연하게만 다가왔던 환경문제들의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하고 흥청망청 단계에 이른 우리 삶을 점검하기에도 적당한 것 같다.  환경과 공동체적인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까이해 볼만한 잡지일 듯.   

E.F. 슈마허의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자발적 가난>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생각만 하지 말고 정말로 읽어보자, 좀!!!!

작은 것이 아름답다 홈페이지  http://www.jaga.or.kr/
작은 것이 아름답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greenjag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계절의 홈베이킹
사계절의 홈베이킹 - 마요가 알려 주는 스위트 레시피
한마요 지음 / 나무수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아, 이런이런..  홈베이킹이라니.  몇 번 이야기했던 것 같기도 한데, 난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남이 차려준 걸 맛있게 먹는 거, 그냥 대충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우는 거, 그런 걸 더 좋아한다.  요리에 관심이 있는 아들녀석이 몇 번인가 오븐을 사자고 조른 적이 있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난 확고부동하게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주욱 훑어보고 나서 할 수 있는 말은 "이런 걸 손수 만들어 먹고 사는 사람도 있구나..."였다.  내가 이런 걸 만드는 상상보다 우리 집 앞에나 위나 아래 쯤,, 가까운 이웃에 이런 거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살아서 가끔 얻어먹을 수 있으면 참 행운이겠다, 하는 상상이 더 즐거웠다.   이런 걸 손수 만들어 먹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저자소개글을 봤더니 동양화를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밥보다 케이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더운 여름 날엔 찬밥에 물말아서 김치 한 쪽 올려놓고 맛있다며 먹는 나랑은 참 동떨어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어떻게 하면 미술적인 감성과 디저트를 잘 조화시킬 수 있을까' 를 고민하며 살아가고 '그것을 직접 시도하는 매순간이 행복'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책 속에 들어있는 쿠키며 케이크며 일단, 참 예쁘다.  사실 서양요리 디저트에서 모양이나 장식이 너무 예쁜 것들은 대부분 너무 느끼하거나 달치다는 게 내 개뿔같은 지론인지라, 이 책에 나오는 베이킹 요리들도 그런 게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다행히 아파트 같은 동 옆라인에 작은 전기 오븐을 갖고 아이들에게 쿠키며 빵을 구워주는 이웃이  산다.  우리 집에 커피 한 잔 하러 놀러 왔을 때, 이 책을 보여주었더니 "어머~~~ 이 책 너무 괜찮다."하며 좋아한다.   
"책 크키가 좀 작지 않아?" 했더니
"언니. 요리책이 크면 요리할 때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해서 안 좋아요.  작은 게 좋죠." 한다.
음,, 그렇구나. 
그녀가 돌아간 다음 책을 펴들고 꼼꼼히 살펴봤다.  

제목에 알맞게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누어 베이킹 요리들이 선보이고 있는데 본격적인 요리 들어가기에 앞서 도구들과 재료들, 기본반죽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사실 베이킹 요리에 필요한 도구들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오븐은 물론이고 대부분이 우리집에는 없는 관심 밖의 도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담아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얼마 전 떡 만드는 요리책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도구에 대한 설명이 길어서, 떡 만드는 일 자체가 길고 복잡하게 느껴졌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재료들에 대한 설명은 유제품류, 가루류, 설탕류, 견과류, 초콜릿들, 베리류, 향신료들로 나누어져 있는데 설탕의 종류 하나만 하더라도 10가지나 되어서 깜짝 놀랐다.  비타민, 미네랄, 미량 원소등이 포함되어 있는 유기농 설탕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만큼은 나는 자신이 있었다.  유기농 설탕을 쓰고 때에 따라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마스코바도 슈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쩐지 조금 이 책을 들여다 보고 있을만한 자격을 얻은 것 같은 기분에 우쭐해졌다.  하지만 이 설탕은 일반 마트에선 구하기 어려운데, 홈 베이킹을 하는 사람들이 따로 재료를 구입하는  곳에선 이런 물건들이 다 갖춰져 있는 것일까.  하긴 옆라인에 사는 그녀도 가끔 '방산시장'으로 장을 보러 가곤 한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고 밝고 구김이 없는 사람들인 것 같다.  부럽구나.    

홈베이킹 요리의 기본다지기도 타르트 반죽과 쿠키 반죽에서 각종 크림, 머랭 등 아홉 가지가 소개된다.  여기서 출발하고 모든 것이 여기서 응용되는 거겠지.  그런데 '머랭'이 뭘까.  케이크 반죽에 넣어 섞거나 무스케이크, 마카롱을 만들 때 쓰이는 거라는데, '마카롱'은 또 뭐래?  이래저래 내가 요리 방면에 무식하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사계절의 맛과 분위기를 잘 살린 베이킹 요리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다섯 살 난 딸아이는 이 책을 끌어안고 다니며 엄마 속은 모르고 "엄마, 나 이거 만들어줘.  와~~ 이거 예쁘다."하며 난리도 아니다.  나도 "요거 괜찮네.."하는 게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가을 편에 들어있는 '홈메이드 뮈슬리'와 '뮈슬리 바'다. 오트밀과 각종 견과류등이 들어가는데 아침에 애들 학교갈 때나 남편 출근할 때, 출출해지면 먹으라고 간식으로 싸주면 참 좋을 것 같다.  
 

중간중간 케이크와 음료를 파는 카페를 소개하는 페이지가 있는데, 남편 사무실이 있는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청담동 쪽의 카페도 나와있어서 '잘난 척'하고 소개해줬다.  책 뒷편에는 예쁜 선물포장법과 그릇이야기가 들어있다.









 

  

요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답게 나는 그릇에도 별 관심이 없는데, 그릇이야기에 소개된 것들 중에 '버얼리'라는 그릇이 그 중 마음에 들긴 했다. 은은한 청화백자를 연상시키는 그릇인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커피잔 하나에 5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가격.  가까이하기엔 너무 사악한 그릇이구나.   
선물포장법에 나오는 사진들 하나하나가 참 기분이 좋다.  이런 선물을 받는다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요리를 좋아하고 만든 요리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은 부지런하고 밝고 구김이 없을 뿐 아니라 참 따뜻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얼마 전에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하마터면 울 뻔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주먹밥 식당을 하는 사치에가 만화 '독수리 오형제'의 주제가 가사를 묻는 토미를 처음 만나  집으로 데려와 따끈한 저녁을 차려주는 장면이었다.  따끈한 밥, 따끈한 식탁이 주는 든든함이랄까, 온기랄까 하는 것에 대한 느낌이 뱃속부터 울컥하게 치밀어 올랐던 거다.  요리를 한다는 건 물질에 마음을 담는 행위인지도 모르겠구나...   

오븐을 사버릴까, 고민하는 요즘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9-11-2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넘 탐나요

섬사이 2009-11-25 22:26   좋아요 0 | URL
홈 베이킹을 좋아하는 분들은 탐낼 것 같은 책이긴 해요.
요리를 싫어하는 저도 '오븐을 살까..'고민했으니까요.

꿈꾸는섬 2009-11-24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받고 제 생활과 너무 먼 얘기라 아직 들춰보지도 않았어요. 전 요리에 대한 욕심이 없네요. 근데 책은 정말 예쁘더라구요.^^

섬사이 2009-11-25 22:27   좋아요 0 | URL
저도 요리는 영~~~
그래서 오븐 욕심은 접기로 했어요. ^^
책은 리뷰에 등장한 이웃에게 줬지요.

비로그인 2009-11-25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븐은 있는데 사용하지를 못하는 것은, 그보다 더한 재료들을 챙기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서울에는 꽤나 유명한 시장이 있다는데 부산에서는 어디에 가야할지(어딘가에서 구할 수 있으나 안구하는 게으름), 그리고 베이킹의 재료는 오븐 말고도 저울, 핸드믹서 등등의 도구가 더 있으며 칼날 공포증 때문에 믹서를 못돌리는 저에게는 오븐마저도 무용지물이 되어 오븐은 스테이크와 군고구마와 생선의 영역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예쁜 베이킹 도서를 볼 때마다 제 오븐도 이제 이런 것을 만들게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리뷰, 잘 읽었어요.

섬사이 2009-11-25 22:28   좋아요 0 | URL
저는 가스레인지에 붙어 있는 그릴에 만족하고 있어요. 거기에 고구마를 굽거나 생선을 굽는 정도는 가능하거든요. ^^
어떤 분은 오븐에 애들 운동화를 말린다는 분도...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모더니즘+제국주의+몬스터+종교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를 연대순으로만 생각했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이라는 제목이 ‘욕망’, ‘근대’, ‘제국주의’, ‘괴물’(자본주의/사회주의/파시즘), ‘종교’라는 주제를 키워드로 삼아서 세계사를 조망하리라는 걸 눈치 챘으면서도 역사는 연대순으로 차근차근 전개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진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욕망’이 주제라면 인류 욕망의 변천사쯤을 기대했던 건지도 모른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런 서술방식이 낯설어서인지 처음엔 맥락이 잘 잡히질 않았다. ‘뭘 얘기하려는 거지? 이거 역사책 맞아?’하는 생각에 당황스러웠다. 첫 장, 욕망의 세계사에서 ‘세계를 양분하는 근대의 원동력’을 이야기하는데 커피와 홍차가 등장하는 것부터가 그랬다. 커피와 홍차, 금과 철, 헐리우드 영화와 홈드라마, 글로벌 브랜드와 도시의 번영,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고 가끔 화제로 떠오르는 것들을 열거하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그런데 뭐?’하는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앞부분에서 나온 내용이 뒷부분의 내용과 연결되면서 조금씩 맥락이라는 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에 대한 내용은 제2장 서양 근대화의 힘에서 살짝 다루어진다. 요지는 자본주의가 직업을 신이 내린 소명으로 생각한 칼뱅의 ‘예정설’에서 비롯되었으며 프로테스탄트 세계를 중심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금욕주의적인 자세로 자신을 위한 재화소비를 죄악시하면서 근면, 검소하게 살았던 프로테스탄트들은 축적된 재화를 투자의 형태로 소비할 수밖에 없었고, 그 투자가 계속 확대 재생산되면서 자본주의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제 4장 세계사에 나타난 몬스터들에서 다시 다루어진다.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인간의 본성(욕망)에서 비롯된 자연적인 시스템이며 인간의 욕망이 멈추지 않는 한 자본주의도 멈출 수 없다는 것. 칼뱅파 프로테스탄트들의 금욕적인 검소함에 뿌리를 두었다는 자본주의는 자기 존재의 근원을 잊고 무한 자기증식을 계속한 결과 욕망을 먹고 사는 덩치 큰 괴물이 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욕망과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기호를 소비하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글로벌 브랜드, 글로벌 기업을 탄생시키고 경제적 제국주의를 건설하게 되는 것이다.  

종교와 제국주의도 서로 연관을 맺는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면서 제국의 야망과 하나가 되었고, 이슬람교는 관용적인 측면을 갖고 있으면서 전 세계적인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는 글로 정리가 되긴 하지만 종교를 거론하면서 근대의 시작이라는 르네상스에 대한 야콥 부르크하르트와 요한 호이징가의 서로 다른 관점을 설명하는 세밀함도 잊지 않는다. 종교를 앞세워 식민지를 개척, 정복하는 오만하고 폭력적인 제국주의를 현대의 미국과 이라크의 관계에서 재발견한다거나 경제 쪽으로 그 영역을 옮긴 현대의 제국주의는 자기 모습을 감추고 맹렬히 침략을 감행하는 중이라고 경고하고, 종교에 대한 욕구가 다시 높아지고 있는 오늘의 세계가 지향해야 할 것은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일신교적인 세계가 아니라 많은 신들을 포함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신화의 세계일 것이라는 충고하고, 근대에서는 시선을 지배하는 것이 권력이었다면 지금은 ‘정보를 쥐는 자’가 권력의 중심을 장악한다고 조언하고, 신흥자본주의국가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과 인도의 거대한 인구가 물건의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게 될 때 지구 환경의 급속한 파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세심함도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에 읽은 역사서인데 처음엔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 서술방식이 무척 새로웠다. 역사를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처음 경험한 셈이다. 경제학자 우석훈 씨는 해제글에서 ‘한국의 역사학이 죽었다’며 안타까워한다. 내가 상상하며 읽은 그의 어조는 안타까움을 넘어선 통탄에 가까웠다. 탄탄한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일본의 역사학과 비교도 안 되게 우리의 역사학은 사료가 사라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한문으로 된 1차 사료를 해독할만한 한문 실력을 갖춘 사람도 명맥이 끊어져 가고 있는 중이란다. 그러니까 우리는 역사를 통해 오늘의 세계를 조망할 수 있기는커녕 지난 시대의 사건과 연대를 찾아내어 묵은 때를 벗기는 일조차 지지부진하다는 것일까. 일본의 역사학자도 아닌 문학부 교수가 쓴 역사책 하나에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내가 좀 청승맞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
오주석 지음 / 월간미술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오주석 님이 2005년 2월 백혈병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유고집으로 나온 책은 모두 3권인 것으로 안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가 돌아가신지 1년 후인 2006년 2월 출간되었고, 2008년 4월에 '독화수필집'이라는 <그림 속에 노닐다>가, 그리고 올 4월에 이 책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이 출간된 것이다.

생전에 동아일보와 잡지 <북새통>에 연재하셨던 글들로 정해진 지면 탓이겠지만 전작들에 비해 아쉬울 만큼 글들이 짧다. 모두 27점의 그림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중에 김명국의 <달마도>,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김정희의 <세한도>, 김홍도의 <씨름>, <송하맹호도>, <마상청앵도>, 정선의 <금강전도>, 7점이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2권에서 자세히 다룬 적이 있는 작품들이다. 거기에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에 나오는 작품과 겹치는 <이재초상>, 변상벽의 <모계영자도>, 신윤복의 <미인도>, 강세황의 <자화상>, 김홍도의 <해탐노화도> 등을 포함한다면 오주석 님의 책을 꾸준히 접해온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다소 가볍고 싱겁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골몰하기는 싫고 세상의 잡다한 일들에서 눈을 돌려 그저 담백한 마음을 그림과 맞대고 싶어질 때 펼쳐보기에는 그만일 것 같다. 책의 편집에서도 그런 의도가 엿보인다. 본문은 페이지 반쯤까지 내려오고 그 나머지는 여백이다. 종이값이 아깝다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눈이 시원하다. 그렇다고 여백으로 남은 공간이 그저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쪽은 작가 소개글로 이어지고, 어느 쪽은 작품의 설명을 도와줄 확대된 부분그림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지난해에 나온 유고집이 <그림 속에 노닐다>였는데, 이 책은 책 속에서 노닐기가 좋다. 눈이든 마음이든..

그러고 보니 서양화보다는 우리 옛 그림들이 노닐기 좋다는 생각이 든다. 서양화들은 선과 면, 색채들이 너무 강렬하다. 심지어 모노톤의 그림들도 서양화들은 왁자지껄 소리지르고 아우성치는 것 같다. 뭔가 들어줘야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렇지 않아도 지금을 살아가야 하는 나는 동네 큰 길에만 나가도 밀려 오가는 차들과 네온과 바쁜 사람들 속에 파묻히게 되고 귀에 들려오는 소식은 기쁘고 반가운 일보다 흉흉하고 심란한 것이 더 많다. 어쩌면 우리 삶에 한 점의 담백한 수묵화 속 같은 여백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우리 옛 그림 앞에서는 쉽게 고요해지고 차분해진다.

오주석 님이 해석해주는 우리 옛 그림들의 분위기도 그렇다. 김수철의 청아한 <하경산수도>에서는 천석고황의 정을 읽어내고 이정의 <풍죽도>에서는 어진 군자의 진정을 살핀다. 정선의 <통천문암도>에서는 강원도 통천 앞바다의 성나 넘실대는 파도의 결 속에서 도를 이루어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군자의 뜻을 찾아낸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설레어 애타는 연정을 전해오고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는 자연과 고요히 하나가 되어 어느새 그도 하나의 풍경이 되고 산수가 되어 버린 노인의 평화로운 미소를 보여준다. 정선의 <만폭동도>에서는 우르릉거리며 쏟아져 흐르는 물소리에 내 귀를 씻을 수도 있을 것만 같고, 김명국의 <답설심매도> 속에 아직 눈도 녹지 않은 겨울 끝자락에 매서운 추위를 마다않고 어딘가에 피어있을 매화 한 송이를 찾아 나귀를 타고 훌쩍 떠나가는 선비가 부럽다. 겨울의 끝을 알려줄 어딘가 피어 있을 매화 한 송이.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그 그림 속 선비보다 더 성급해진 나는 겨울이 시작되기도 전에 매화 욕심을 부려본다.

단원에 대한 책을 따로 한 권 묶을 정도로 각별히 단원을 사랑하셨던 분이니 이 책에서도 단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단원의 그림 6점이 소복하다. <황묘농접도>, <해탐노화도>, <송하맹호도>, <씨름>, <소림명월도>, <마상청앵도>. 세인들에게 단원이 풍속화가로만 알려진 것이 안타까우셨을까. 풍속화 <씨름>과 함께 산수화에 영모도까지 골고루 뽑아 실었다. 유머러스한 단원의 스승 강세황의 작품과 단원의 제자라서 그런지 어쩐지 화풍이 단원과 닮아 보이는 김득신의 작품까지 아울러 감상할 수 있다.

그림들이 숨막힐 정도로 와락 달려들지 않아서 좋다. 그냥 조용히 다가와 나를 살며시 안고 등을 다독여주는 정도랄까. 그렇다고 오주석님의 이 책이 마냥 감상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마냥 감상적인 사람은 지친 누군가를 안고 다독여줄만한 힘이 없는 법이다. 오주석 님은 다른 인물이라고 알려진 초상화를 다른 시기에 그려진 이재초상이라고 밝혀낸 바 있는 아주 예리한 분이시다.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해서 그런 예리함이 날을 감출 리가 없다.

사소한 아쉬움이 있다. 책 속에서 호초법이니, 어자엽이니, 몰골법, 부벽준, 쌍구법, 해조묘, 태점 같은 우리 그림을 그리는 기법에 대한 용어가 나온다. 미루어 짐작해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좀 더 정확한 설명이 따라 붙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9-11-14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두고 못 읽은 오주석 선생님 책들이 몇 권 있는데 천천히 보고 싶어요. 다 보고 나면 아쉬움이 더 커질 거예요. 한국의 미 특강보다는 만족감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참 좋은 책이었어요.^^

섬사이 2009-11-16 14:2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이 책은 이 책대로의 맛이 있더라구요.
저도 "여전히 참 좋은 책이었어요."^^

순오기 2009-11-17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미 특강을 못 본 분들에게는 좋을 듯해요.
고등학교 독서회에서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를 토론하곤
이 책을 꼭 보라고 소개해줬어요.^^

섬사이 2009-11-18 02:57   좋아요 0 | URL
그동안 나온 오주석님의 책들이 좀 '빽빽한' 책들이라
좀 헐렁한 분위기의 이 책도 좋았어요. ^^
 
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미술관련 책들을 읽는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두 오빠들이 모두 미대를 나온 덕분에 어려서부터 미술 원서들을 보며 자랐지만 작품과 화가들을 연결시켜 기억하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얻어 듣거나 어떤 그림 하나에 푹 빠져본 기억은 없다.  그런데 이제와서 어릴 적 스쳐갔던 그림들이 문득문득 궁금하고 그리워져서, 미술관을 기웃거리거나 미술관련 책들을 뒤적이게 된다.  그것도 감히 전문 서적들을 뒤적일 용기는 없어서 비교적 유순하고 친절해 보이는 책들을 골라 읽곤 하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세 권의 미술서적을 읽었다.  하나는 서경식 씨가 쓴 <나의 서양 미술 순례>이고, 또 하나는 손철주 씨가 쓴 <인생이 그림 같다>, 그리고 가장 나중에 읽은 책이 이 <교수대 위의 까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 사람의 글은 저마다 풍기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서경식 씨의 <나의 서양미술순례>는 저자 자신의 불행한 가족사와 어우러져 세 권의 책 중에서 가장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목에 들어있는 '순례'라는 말에 걸맞게 유럽의 미술관들을 여행하며 만난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작품 속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거나 옥중에 갇혀있는 형들을 걱정하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순례'는 단순히 타국의 미술관을 여행하며 감상한 미술작품에 그치지 않고 그 길의 여정에서 느끼는 '삶의 고단함'이라든가 '부조리한 인생'을 탐색하는 '과정'의 시간들이 진지하게 흐른다.  지금도 그 책을 떠올리면 축축하게 비가 내리는 어둡고 추운 거리를 홀로 걷는 듯한 기분에 젖는다.
손철주씨가 쓴 <인생이 그림 같다>는 세 권의 책 중에서 가장 부담없이 경쾌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강희맹의 '고사관수도'로 시작하는 이 책은 동서고금의 작품을 총망라하고 있는데다가 걸걸하고 화통하다가도 낭만적인 감상이 슬그머니 끼어드는 글이어서 시원시원하면서도 애틋한 맛이 나기도 한다.  

그에 비해서 진중권 씨의 글은 명쾌하고 단호하며 빈틈이 없어 보인다.  미술에 대해 식견이 어두운 내가 느끼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얼마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지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일요일 늦은 아침처럼, 부스스한 머리에 눈꼽도 떼지 않은 눈으로  멍하니 세상을 바라보는 일 같은 건 거의 죄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처음에 말했듯이 난 '비교적 유순하고 친절해 보이는 책'들을 골라 읽는 편인데 솔직히 진중권 씨의 글은 유순하기 보다는 까칠하고 친절하기 보다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낭만적 감성이 슬쩍 새어나오는 건 기대도 하면 안되고, 내 기억으로 사적인 여담을 슬그머니 내비친 건 알브레히트  뒤러의 <책을 삼키는 요한>이라는 목판화를 다루는 장에서 유학 시절 뒤러의 목판화 전집을 싸게 구입하게 된 이야기와 피터르 브뤼헐의 <교수대 위의 까치>를 이야기하는 장에서 어릴 적 '배꼽이 배보다 크다'는 속담을 듣고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는 이야기가 전부였던 것 같다.   그래서 머리말에 진중권 씨가 "이 책이 강단에서 미처 하지 못한 수업의 강의록이 되었다."라고 밝히지 않았더라도 나는 명강을 하는 엄한 선생님 앞에 앉은 얌전한 학생의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작가, 작가의 삶, 연대, 당시의 사회,정치적 상황, 예술사조 등을 모두 무시하고도 작품과 나, 단 둘만의 내밀한 관계 맺기를 통해서 감상이 가능하다는, 그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도 손철주 씨와 진중권 씨의 말투는 참 다르다.
손철주 씨는 머리말에서 선배에게 쓰는 편지글 형식을 빌어 이렇게 쓰고 있다.
'.... 저는 떠들 게 있으면 더 떠들어라 하는 주의입니다.  창피당하면 어떻습니까.  연습이 천재를 만드는 거나 무쇠가 두들겨 맞고 단련되는 거나 같은 발버둥 아닙니까.  수업료 안 내고 익히려 드는 게 도둑놈 심보지.  클 놈치고 좌충우돌 안 하는 거 봤습니까.  그림도 마찬가집니다.  보이는 대로 한 마디씩 지껄이고 쥐꼬리만한 지식이라도 갖다 붙여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그러면서 눈이 트이는 겁니다.
맞습니다, 김선배.  전문가들 말 어렵게 하는 건 큰 병폡니다.  그거 다 믿지 마세요.  누가 뭐라 하든 제 눈에 꽂히면 다죠, 뭐. ' 
읽으면서 큭큭 웃음이 날 만큼 마음이 느슨하고 가벼워진다.   

진중권 씨는?  자신이 선호하는 미술작품의 취향을 설명하는 데도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수준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정서적 감동, 지각적 쾌감, 지성적 자극, 영성의 울림. 그렇게 분류하고 나서야 자신이 작품의 지적 측면에 끌리는 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다음 자신이 예술작품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제시한다.  애니그마, 창조적 독해, 회화의 푼크툼. 이 세 가지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수많은 암호를 생성해내는 애니그마 머신에 가까운 예술작품을 제대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문제를 제기하고 의제를 설정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수용자의 개별적이고 사밀한 체험을 통해 작품의 해석을 다양화할 수 있는 문학으로서의 해석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롤랑 바르트는 푼크툼이라고 했다) 
진중권 씨의 글이 훨씬 더 분석적이고 집요하며 지적 분위기를 풍긴다.  진중권 씨가 들으면 질색하실 테지만, 그가 이 책에 부려놓은 그만의 푼크툼이 나에겐 또 하나의 스투디움이 되어버린 것 같다.   

당연히, '소장하고 싶은 작품들의 가상 컬렉션'이라는 12점의 그림 속을 그는 파,고,든,다.  마치 "대충 넘어가는 일 따위 내 사전엔 없어!"하는 것처럼 단호하고 철저하다.  한  점의 그림을 설명하기 위해 딸려 나오는 작품들의 수는 어떤가.  예를 들면 '사라진 주체'라는 제목이 붙은 7장에서 요하네스 굼프의 1646년작 <자화상>이 등장한다.  자화상을 설명하기 위해 끌어들인 작품이 무려 20여 점에 이른다.   각 장마다 작품을 설명하는 데 인용한 회화이론과 기존의 해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철학을 비롯해 신경생리학까지 망라하는 배경 지식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푼크툼을 직조(織造)해가는 솜씨 또한 일품이다.  "이 책은 독자들을 향한 적극적 독해의 요청, 다시 말해 '그림을 이처럼 읽어보라.'거나 '이와는 다른 식으로 읽어보라.'는 채근에 가깝다"(p.18) 라고 했지만 미안하게도 지금 나는 그가 쓴 이 책 한 권을 곱씹고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행복하다.    

책을 읽으면서 그가 참 철저하고 유능하며 성실한 지식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사회에 대한 그런 성실성 때문에 이 수상쩍은 세상을 살아가며 나처럼 어수룩하고 더덜뭇한 사람에 비해 더 큰 상처를 입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작은 몸통에 커다란 머리를 가진 역사의 천사는 아마도 지식인을 가리킬 것이다.  천사의 작은 몸통은 현실의 무능함을, 커다란 머리는 과도하게 발달한 그의 관념성을 상징한다.  정의는 관념이고, 폭력은 물질이다.  그리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원시적인 물질의 힘이다.  그 때문에 천사는 날개를 편 채로 거센 바람에 밀려 끝없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부조리야말로 삶의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정상적 상태라는 것, 그것이 교수대 위의 까치가 연출하는 풍경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세상의 진리,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 말하지 않는 비밀인 모양이다.'라는 그의 글이 성실한 지식인으로서의 자조적인 한탄처럼 들려서 마음에 턱하니 걸린 채로 안쓰럽게 펄럭인다.   그가 <교수대 위의 까치>를 보며 '세상에 태어나면서 둘로 쪼개져야 했던 자신의 반쪽'같은 느낌을 받는 건, 그가 브뤼헐이 보았던 세상의 부조리를 지금 이 자리에서 똑같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는 '섣불리 세상을 바꿔놓으려는 노력은 외려 세상을 재앙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그는 이 뒤집힌 세계를, 그것의 부조리함, 그것의 불합리함을 있는 그대로,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런 부조리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사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조건이 아닌가?'하는 말로 공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의 상처가 문득 걱정스러워진다.  그는 아끼고 싶은 사람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09-11-13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이렇게 세권의 책을 비교, 분석해주신 님의 꼼꼼함도 대단하십니다.
이 책, 안 읽고 못 지나가겠는걸요? ^^

섬사이 2009-11-13 11:40   좋아요 0 | URL
분석까지는 아니구요...^^;;
읽어보실만 할 거예요.

순오기 2009-11-17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댓글 달았는데 교수대 위의 까치가 여기 있군요.^^
우리도 지난 금욜 이 책 토론했는데,
회원들께 좋은 책 추천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들었어요.^^

섬사이 2009-11-18 02:57   좋아요 0 | URL
예, 진중권 씨의 글은 '딱' 떨어져서 좋아요. ^^

프레이야 2009-11-26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추천이야요^^
저도 지금 이 책 읽고 있어요.
그는 매력적인 사람, 분명 맞아요.


섬사이 2009-11-27 00:34   좋아요 0 | URL
이번에 진중권 씨가 경비행기 타러 필리핀으로 떠나 몇 년 머물 거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정말 참 멋진 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