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그림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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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나 사조들에서 약간 비켜나서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이다. 무려 51명의 작가와 그의 작품들이 걸려있는 전시회에 다녀온 느낌이다. 그것도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유능한 해설자를 독차지하고서.

서문에서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특정한 시대나 사조, 지역, 미술사적 평가 등과 관계 없이 저자 자신의 사적인 기호와 남과 나누고 싶은 작품 등을 먼저 고려해서 선정한 작품들이어서 저자의 생각을 나누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로댕의 <꽃장식 모자를 쓴 소녀>로 시작의 여는 저자의 글은 현재 활동중인 국내 작가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나야 끝을 맺는다. 

개인적으로는 조지아 오키프에 대한 글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주 오래전에 미국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들이 담겨있는 다이어리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그 때가 처음으로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을 접한 것이었는데 기존의 화사하고 아름다운 꽃그림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았었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뭔가 다른 것을 담고 있는 듯한..  저자는 꽃이란 늘 바라봄을 당하는 존재이고 그것을 의식해 더욱 바라봄에 몸을 맡기는 존재라는 점에서 오키프의 꽃그림이 여성성의 정수로 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오키프의 꽃이 여성의 성적 이미지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에 뭔가 찜찜함을 거둬내지 못하고 있던 나로선 만족할 만한 해석을 들었던 것이다.

51명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글들을 읽을 때 굳이 첫글 로댕의 <꽃장식 모자를 쓴 소녀>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글의 차례에 따라가지 말고 책장을 넘기다가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으면 그 부분을 읽는 자유로은 방식을 택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늘 곁에 두고 틈틈이 자주 들춰보고 싶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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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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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은 늘 나에게 난해함으로 다가온다.  고대미술이든 현대미술이든 상관없이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자신이 없다.   감상하고 이해하는 주체는 나 자신인데 나에게 이해받아야할  미술작품이라는 대상에 왜 기선제압을 당하는 건지 생각해보면 억울할 때도 있다.  미술작품이 나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어쩌면 작품을 창조해 낸 작가들의 천재성에 지레 겁을 먹은 거나 아닌지.. 그럴 수록 작품 속에 풍덩 뛰어들어가 구석구석 헤엄쳐다니며 한바탕 신나게 즐기고 싶다는 바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어려운 이론서를 읽어낼 자신은 없었다.  학문적인 난해함에 짓눌려 오히려 더 주눅이 들고 말 것이 뻔했으니까.  그래서 찾아낸 책이 바로 <천천히 그림읽기>다.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숨고르며 알아가자고, 쉬운 것 부터 예를 들어가며 차근차근 가르쳐주겠다는 것 같았다.  기대를 저버리진 않았다. 스무고개를 하듯,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도상학, 정신분석학적 해석법, 사회학적 방법, 기호학적 분석과 수용미학적 접근법이 소개되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갑자기 미술작품의 해석과 분석에 능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그대로 '천천히' 가자.  르네상스양식과 바로크양식의 그림을 대충 구분할 수 있게 된 것만도 어디며, 고전주의 미술에서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미술사적 흐름을 따라가는 행운도 얻었고, 요하네스베르메르의 '금의 무게를 다는 여인', 보티첼리의 '봄', 푸생의 '사계'를 예로 작품해석에 대한 친절한 안내를 받았으며, 다빈치와 고흐의 무의식적 세계를 엿보는 즐거움을 얻었고, 모르던 여성화가 겐틸레스키와 안젤리카 카우프만, 수잔 발라동과 파울라 모더존 베커를 소개받았고,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고상함과 미적 거룩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왔던 작품들이 '브랑주아의 재산 자랑'이기도 했을 뿐 아니라 '교묘한 포르노그라피'가 되기도 했다는 것도 알았으니 이만하면 나로선 만족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거기에 덧붙여 저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 이렇게 한 작품에 대한 해석은 시대마다 달라진다.  따라서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완전한, 최종적인 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한 작품에 대한 해석을 마감하는 것은 곧 작품의 생명을 끊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예술작품은 오직 해석 속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따라서 다양한 해석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

"예술은 작품을 보는 내가 있음으로 해서 완성된다.  나는 단지 작가의 의도를 가만히 서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관람자가  더 이상 아니다.  나의 해석은 작가의 그것보다 더 창조적일 수도 있다.  나는 작품을 창조적으로 읽는다.  창조적 해석을 통하여 나 또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근사하지 않은가."

"소통의 통로는 어떤 권위있는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만들어서 우리에게 따르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 통로는 수용자인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통로를 만들 때 요구되는 것은, 딱딱하게 굳은 고정관념을 버리고 항상 다르게 생각하거나 새롭게 보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자, 그러니 내가 뒤샹의 변기, '샘'을 보고 '저게 뭐야? 너무 웃기다.'하거나 '오물을 받아 삼켜야 하는 변기를 보면서 고달프고 쓰디쓴 삶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삼켜야만 하는 인간 삶의 비애를 느낀다.'고 한들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지랴.  명작이라는 작품들이 우리 앞에서 겸손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존재가 바로 우리니까. 보다 당당하고 자신있게 미술작품을 읽는 시도를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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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기본 요리만 제대로 배워라! 요리 다 된다
정미경 지음, 탄산고양이 그림 / 제이앤미디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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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슨 반찬을 올려야 하나, 뭐 해먹을까 하는 고민 좀 안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불만이 많았던 나다.  아마 아이들이 없었다면 맨날 물말은 밥에 김치만 먹는다고 해도 상관없을텐데, 늘 해도 그게 그거인 밥상을 두고 먹는 거에 목숨 건 사람마냥 매일 먹을 거 걱정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참 한심스러웠다.

그래서 가끔 TV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보거나 요리책을 뒤져보거나 아니면 병원, 은행,미장원 등등에 갔을 때 잡지를 펼쳐 요리소개하는 면만 골라 읽으면서, "야, 오늘은 이거 한 번 해먹어 봐야겠다~!"는 탄성을 내지르게 할만한 자극제를 찾곤 했었다. 요즘도 영 주방일하는데 의욕이 생기지 않는지라, 좀 산뜻한 요리책 좀 없나 하고 찾던 차에 이 책을 발견했다.  '20기본 요리만 제대로 배워라'하는 제목을 보고 요리사가 꿈인 아들녀석도 함께 보면 좋겠구나 싶기도 했고..

이 책은 단순한 요리책이라기 보다 요리정보서적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마땅할 것 같다.  일단 시각적인 정보면에선 다소 부족한 점이 있다.  기존 요리책에선 대부분 소개하는 요리의 사진이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고 요리 과정과정이 작은 사진과 곁들여 설명되고 있는 데 비해서 이 책은 사진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기본요리에 대한 설명은 다른 어떤 요리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만큼 자세하다.  꼼꼼한 설명은 사진의 빈자리를 메꾸고도 남는다.

첫장을 살펴보면 기본 요리로 쌀밥과 흰죽이 소개되어 있다.  쌀밥만 살펴보면 밥을 짓는 과정을 쌀씻기, 불리기, 물기제거 및 밥물잡기, 불조절하기, 뜸들이기 등으로 세분화 하여 5페이지에 걸쳐 꼼꼼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조금 더 궁금한 사항은 Q&A코너를 통해 콩밥,보리밥, 현미밥, 쌀뜨물 이용에 까지 더 세세히 설명하고 응용요리로 콩나물밥,무굴밥, 영양밥, 오곡밥, 중식계란볶음밥, 라이스오믈렛,알밥, 캘리포니아롤, 유부초밥 이 소개된다. 이쯤에서 웬만큼 됐다 싶은데 저자는 tip과 Secret Note라고 제목지은 박스코너를 통해서 요리에 더 흥미를 갖게 유도해놓았다.  이 외에도 '요리가 쉬워지는 비결'이라든가 '이야기가 있는 요리'라는 꼭지로 초보자들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요리에 능숙한 사람들까지 재미있게 책을 볼 수 있는 세심함을 갖춘 책이다.

나는 고등어자반을 사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고등어자반이 비린내도 강할 뿐 아니라 너무 짜기 때문인데, 이 요리책의 기본요리로 고등어자반이 소개되고 있는 면을 읽고 다음에 한번 고등어자반을 사서 먹어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자반을 쌀뜨물에 30분 정도 담가두면 비린내가 제거될 뿐 아니라 염도를 약하게 해준다는 내용을 읽었기 때문이다. 

또하나 멸치볶음의 경우 불을 끈 뒤에 마요네즈를 넣어주면 윤기가 날 뿐 아니라 고소한 맛을 더해주고 멸치가 서로 달라붙는 것도 방지해준다고 한다. 

그 밖에도 배추를 절일 때 정제되지 않은 천일염을 쓰는 이유, 파의 흰부분은 양념장에 푸른 부분은 국물이나 볶음요리에 사용해야 하는 이유 등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단순한 요리책이라고 할 수 없다.  이건 요리정보책이다. 나에게도 아들에게도 요리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15년차 주부로 이제 새로움과 창의성을 상실한 나의 부엌에도 조금은 신선한 바람이 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 바람이 언제 또 잠들지 알수는 없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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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임이네 2006-12-18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부는 매일 무슨 반찬으로 한끼 를 준비해야할지 늘 고민이죠 .
저도 요번에 블로그에서 음식으로 유명해진 분이 요리책을 내셨더군요 .
얼마전 알라딘에 주문해 두었답니다.빠르고 간변하게 음식을 만들수 있을까해서요 ,ㅎㅎ
꽃임이가 배 아프다고 잠들어서 낮에 시간이 나서 잠시 들어와 봅니다 .
오늘도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라며 .

섬사이 2006-12-18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임이가 배가 아프다니 걱정이네요. 꽃임이네님 감기는 다 나으셨어요? 영양가 있는 맛있는 음식해 드시고 꽃임이도 꽃임이네님도 구연동화 멋지게 끝낸 우리 꽃돌이도 기운내고 건강하세요.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 - 바로크에서 현대까지 미술사를 바꾼 명화의 스캔들
조이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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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말이었을까? 현대미술관으로 뉴욕현대미술전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 때 본 다른 작품들은 거의 다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는데 앤디워홀의 작품 (마릴린 먼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과 신디셔먼이라는 사진작가의 작품만 기억난다.  신디셔먼의 사진은 작품집에서 보며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엄청난 크기의 대작이었던 데서 오는 충격이었던 것 같다.  신디 셔먼이 나와 같은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곱상한 사진이 아니라 꽤 실험적인 사진(내가 생각하기에)이어서 사진집에서 볼 때도 인상적이었는데 거대한 작품을 앞에 두고는 감탄에 감탄을 마지 않았다.  이래서 실제 작품을 봐야 하는 거로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또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워홀의 작품은?  그 생경함 때문에 기억이 난다. 전시관을 보다가 난데없이 생뚱맞은 마릴린먼로. 그것도 갖가지 원색으로  똑같은 마릴린먼로를 여러 장 이어붙인 듯한... 실크스크린이라고? 그건 미대 다니던 오빠들이 포스터 작업 같은 거 할 때 쓰던 방법이었는데.. 오빠가 밀대로 실크스크린 물감을 밀어서 종이에 찍어내면 나는 그걸 한 장 한 장 잘 마르게 펼쳐 두곤 했었는데.. 이게 대체 뭐가 좋은 작품이라는 거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겠구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꽤나 보수적인 부류에 속하는 인간형인가 보다.  새로운 정신, 새로운 시도, 새로운 모험 따위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걸 보면 말이다.

여기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라는 책에는 전통과 보수, 고전주의 정신, 기존의 사조흐름 따위에서 벗어난 작품으로 온갖 비방과 욕설을 뒤집어쓰고 스캔들에 시달리면서 새로움을 창조해나갔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창조력이 부족한 단순 무식한 자연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아야 했던  카르바조, 예술의 척도를 전통의 권위에서 개인의 주관성으로 옮겨온 낭만주의의 프리드리히, <올랭피아>, >풀밭위의 식사> <나나>같은 전통적인 누드화와 차별되는 작품때문에 또는 새로운 색의 시도로 구설수에 올라 괴로워했으나 종국엔 '인상주의를 가능하게 한, 미술사에서 기술적으로나 묘사방식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이룩하여 20세기 회화를 전면적으로 바꿔놓은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마네, 얼치기에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고 나치의 예술정책에 희생되어야 했던 뭉크,  레디-메이드 대량복제예술의 시대를 여는 뒤샹과 워홀이 그들이다. 

전통적인 흐름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용기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뉴욕현대미술전을 본지 20 여 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나는 다다이즘이나 아방가르드 작품에는 약간 소화불량 증세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뒤샹이나 워홀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 까지는 무리겠지만 그들의 예술관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때 작품은 작가의 지적인 행위임과 동시에 관람자 또한 예술 작품을 보면서 지적인 탐구와 놀이를 해야 한다.  그의 예술론에 유희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라는 말은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대량복제가 가능한 시대에 예술은 더이상 숭고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 - 예술가 자신까지도 - 상품으로 존재하며 예술은 돈을 버는 사업이라는 말은 수긍을 하면서도 어쩐지 씁쓸해진다. 

난 아직도 고흐나 르노와르, 샤갈, 모네 등의 작품에 더 끌린다.  사진작품도 솔직히 말하면 만레이나 신디셔먼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나 유진스미드의 인간가족같은 것들이 좋고,, (만레이의 <유리눈물>이란 작품은 인상적으로 남았지만)  물론 진품은 구경하기도 힘들고 기껏해야 인쇄된 종이조각을 보고 흐뭇해하는 수준이다.  결국 고상한 척 하면서도 대량복제시대의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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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엄마 김순영의 아이밥상 지키기
김순영 지음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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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모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되었던 내용을 책으로 발간했던 것인데, 방송이라는 매체가 가진 여러가지 제약들 때문에 미처 방송에 내보내지 못했던 것까지 묶어서 펴낸 책이었다.  그 책을 읽으며 우리가 무심코 먹고 있는 것들에 대해 얼마나 놀랐는지..

그 이후에 내 식생활패턴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먹거리에 대한 찜찜함은 늘 마음 한구석에 옹크리고 있어서 아이들 군것질거리를 사주거나 외식을 할 때면 개운치 않은 무언가가 찌꺼기처럼 남곤 했다.  알면서도 실천할 수 없었던 나와는 달리 '환경엄마'라는 별칭까지 얻어가며 '아이밥상을 지키'고 있다는 책 제목에 끌려서 책을 펴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 김순영씨가 우리 엄마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서라면 아이와의 싸움에서 엄마들이 당당히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제철 유기농 재료로 음식을 준비하고, 육류 위주의 식단을 바꾸고, 식용유의 사용을 자제하고, 현미밥을 먹고, 패스트푸드를 멀리한다는 갖가지 원칙들이야 이미 웬만한 주부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원칙들이다. 실천이 안되서 그렇지..

그런 원칙들 보다 이 책에서 더 유심히 봐야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엄마'로서의 저자가 그런 나쁜 먹거리들의 위험과 유혹으로부터 밥상을 지켜온 과정들이다.  아이들에게 식품첨가물과 유전자조작식품들에 대한 위험성을 알려주고, 아이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의 점심 식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는 실천의 움직임들이 나에겐 더 크게 다가왔다.

책의 뒷부분에는 환경엄마 김순영씨가 제안하는 건강밥상 요리법들이 나와있다.  이유식부터 아이들 간식거리에 이르기까지 나와있는 요리법이 꽤 다양하다. 

책을 읽었으니 실천이라도 해봐야지 싶어 요리법 중에 현미식혜를 만들어 보았다.  현미라 그런지 일반식혜의 밥알 보다 거칠고 뻣뻣했다.  그래도 건강에 좋다는데... 저녁에 아이들과 남편에게 예쁜 그릇에 담아 냈다.  아이들과 남편의 반응. "이게 뭐야?" 

"뭐긴~~ 식혜지. 어서 먹어봐. 내가 특별히 공들여서 만든거야."

"근데 왜 시커매?"

"몸에 좋은 현미로 만들어서 그래."( 먹진 않고 자꾸 따져 묻는 애들과 남편에게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에이~~ 좀 그렇다."

마지못해 한모금 입에 떠넣더니, 우리 남편이 하는 말.

"난 됐다.  OO 엄마 다 먹어. "

그날 밤,  마누라가 건강에 좋다고 해서 만든 건데 애들 앞에서 그냥 '맛 괜찮네'하며 먹어주지 한 모금 먹는 시늉만 하고는 '너 다 먹어라'하면 어떻게 하냐며 난 남편에게 싸움을 걸었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밥상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은 고난의 길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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