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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중국사 - 역사읽기, 이제는 지도다! ㅣ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 3
박한제 외 지음 / 사계절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중국사를 접한 방법은 세계사 속에 단편적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우리나라 역사와 연관되어 있는 중국사의 편린들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오로지 중국사만을 따로 떼어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처음의 기회가 이 책을 통해서였다는 건 내게 참 행운이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중국 고대사 편을 보면 기존에 우리가 ‘황하문명’이라고 부르던 것을 ‘동아시아 문명’이라고 부르고 있고, 다시 그것을 앙소문화, 대문구문화, 하모도문화, 신락.홍산문화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아시아의 신석기 문화는 황하 중심 문화가 주변으로 확대되는 형태가 아니라, 기원과 계통이 다른 문화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p.13)고 하고 있다. 게다가 하-은-주로 이어지는 중국 고대국가 중 은나라를 상商나라로 명명한 것도 특이한 점이었다. 왜 은이 아니라 상일까, 궁금했는데 ‘상의 마지막 수도인 은허궁전과 상왕의 무덤이 발견되고 결정적으로 商이라는 글자가 갑골문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은나라’가 잘못된 명칭임을 분명하게 짚고 있다.
두 번 째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서양의 문명과 제도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주봉건제’와 서양 중세의 봉건제와의 다른 점이라든지,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논하면서 서양의 사상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 지를 설명하면서 읽는 이의 이해를 돕는 세심함이 돋보였다.
한편 책을 펴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지도와 다양한 사진 자료들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만나게 되는 한 두 개의 지도는 그야말로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지도들의 파노라마라 할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수많은 지도들은 어쩌면 너무 시시콜콜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지도를 읽을 수 있는 능력 여하에 따라 그 진가가 발휘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나는 ‘지도를 못 읽는 여자’에 속하는 부류라 그 자세하고 세심한 지도들이 제 빛을 발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인쇄 상태 말끔한 사진 자료들 또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나는 특히 BC.3500-BC.1600년 경 신석기 문화의 유물 사진을 보고 무척 놀랐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라고는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 기껏해야 반달돌칼이던가? 하는 것들만 알았었는데 이 책에 실린 신석기 시대 유물은 그 정교성이나 예술성에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길고 긴 중국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통치제도와 법령들에 대한 용어와 소개는 입이 벌어질 만큼 그 수가 엄청나다. 군국제, 봉건제, 군현제 등의 익숙한 것들부터 강간약지정책, 사민정책, 평균균수법 등등의 용어와 시대적 필요성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간결하게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예로 들자면 오호에 멸망한 한족들의 대규모 冷渡(냉도) 이후 다수 본지인과 관계를 맺으며 동진, 남조 역사에 중요 변수로 작용하게 되는 ‘교구체제’라든가 북송말의 민중 반란의 직접적 원인이 된 ‘화석강’, 여진족(금)의 군사제도인 ‘맹안 모극제’, 위진남북조시대의 관리 선발 제도인 ‘구품관인법’, 당나라의 몽골지배정책인 ‘기미정책’, 청나라 강희제의 관료통제제도인 ‘주접제도’, 근대 중국사회에서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등장한 ‘중체서용론’과 ‘전반서화론’ 등등,,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비교적 중립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72쪽 ‘정관의 치세’편에서 당 태종 이세민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당 태종 이세민이 등극하는 과정에서 형제를 살해하고 동생의 부인을 妃(비)로 끌어들이는 패륜을 저질렀으며 제위기간 중에도 몇몇 도덕적 결함이 드러나는데 이는 수 양제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그(당 태종)는 천하의 명군으로, 양제는 폭군으로 후대에 정형화 되었다. 이는 명군과 폭군의 구별이 반드시 공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명군이 되려면 최소한 정치적 승자가 되어야 하고, 후손들이 오랫동안 계속 집권해야 하며, 생애의 ‘뒤끝’이 좋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현종이 안사의 난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開元(개원)의 치’도 정관의 치 못지않게 평가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 중국의 역사와 관련된 우리역사의 부분에서도 명청교체기에 여러 가지 구실로 명과 청에 차례로 덜미를 잡히는 조선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명과 청의 눈치를 보며 쩔쩔매는 선조나 인조에 비해 폭군이라고만 알고 있는 광해군이 명의 파병요구를 묵살해버리는 실리추구정책을 펴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몇 가지 사실을 이 책 속에서 만나다 보면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그동안 ‘공평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역사의 격동기 때마다 출현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마음에 와 닿았다. 남송이 금으로부터 무력공략을 당할 때 맞서 싸운 농민출신 장군 악비와 금과의 굴욕적인 강화조약 ‘소흥의 화의’ 체결에 앞장 선 진회의 이야기라든가, 또 남송이 몽골의 침략을 받았을 때 기회주의자 가사도의 비굴한 모습과 쿠빌라이까지 감동시킨 21세의 청년 문천상의 분연한 항전과 의연함은 좋은 대조를 이루며 본보기가 되어준다.
근현대사 쪽으로 오면서 동서양을 잇는 찬란한 문명의 중심이었던 중국이 서양열강에 의해 침탈당하고 무너지는 장면은 같은 동양권 국가의 국민으로서 안타까웠다. 물론 그 중국도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우리나라에 끼친 피해가 적지 않지만 말이다. 결국 역사는 강자들 편에서 흐른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여겨지면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심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교양으로서 한번 가볍게 휘 훑어볼 역사서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물론 나의 역사지식이 너무 짧아서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한 번 휘익 읽고 ‘참 재밌네, 참 잘 엮었구나.’라는 한 마디 평으로 끝나버릴 가치의 책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를테면 잘 엮어진 역사 사전이라고나 할까? 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처박아 두는 사람은 없다.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들춰보고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사전의 소장가치다. 이 책의 말미에 붙어 있는 ‘찾아보기’편은 이 책의 사전적 역할에 무척 유용한 쓰임새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풍부한 지도와 도표, 사진자료들이 본문의 글을 보충하는 부가적 의미의 보충자료로 쓰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했다. 읽는 이가 본문의 글과 지도, 도표, 사진들을 보고 그 사이를 유기적으로 오가며 파악하고 이해하면서 역사를 이루는 종횡의 조밀한 그물망을 스스로 엮어갈 수 있다면 이 책의 가치는 더욱 그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