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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스캔들 ㅣ 창비청소년문학 1
이현 지음 / 창비 / 2007년 5월
평점 :
네모반듯한 신도시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자리 잡은 신설학교인 우리 새빛중학교. 하지만 '새롭다'라는 것은 단지 이름과 시설뿐이다. 군내 나는 교칙들과 꽉 막힌 선생님들, 더불어 칙칙함의 절정을 보여주는 교복까지. 그야말로 고리타분의 결정판이다. (p.8)
학교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없었던 사물함과, 정수시설, 깨끗한 도서관, 아이들 체격에 맞춰 제작된 좀 더 크고 넓은 책상과 의자, 교실마다 갖춰진 컴퓨터와 TV... 그래서 어쩌다 아이들 학교에 가면 외관과 시설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다. 학생 인권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긴 하지만 일제시대와 군부정치 시대를 거치며 만들어진 군대식 학교문화가 아직도 군림하고 있는 듯한.
우리집 근처 자사고에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집에서는 잠만 재워서 보내주시면 됩니다.'라고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섬뜩했던 건 그 말 속에는 학교와 학부모간의 모의가 담겨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의견은 쏙 빠진 채, 부모는 잠만 재워서 학교에 보내면 학교는 잘 짜여진 프로그램대로 아이들을 공부시키겠다는 뜻이니까 일종의 거래라고 해야하나. 요즘 듣는 인문학 강의에서 푸코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학교의 훈육권력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 자사고의 이야기와 이 책에서 훈육권력의 실상을 확실하게 본 것 같은 느낌이다.
나도 학교가 싫고, 공부가 지겹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학교 밖이라고 해서 더 나은 것도 아닌 것 같으니까. 아니, 학교 밖으로 튕겨져 나간 아이들의 처지가 어떤지는 들리는 소문만으로도 암담하다. 대안학교니 홈스쿨링이니 유학이니, 그럴듯한 이야기들은 멀게만 느껴진다.
외고에 가고, 그럴싸한 대학에 가고...... 그 후에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 목표가 가장 선명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p.24)
고리타분의 결정판이라고 하면서도 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의 허우적거림을 작가는 이렇게 정리했다. 학교를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서자니 너무 막막한 뜬구름이라 아이들은 자기가 가는 길이 그저 최선이라고 믿을 뿐이다. 그리고 부모들도.
고리타분의 결정판 학교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인 진숙경. 새빛중학교 2학년 5반에 온 서른 살 늦깎이 교생이자 미혼모이며 일주일에 두 번 클럽 무대에 서는 무명가수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마약이나 도박을 한 것도 아니니 사실 교생으로서의 결격사유가 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학부모의 거센 항의와 함께 학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된다.
고리타분의 결정판 학교에 가장 나쁜 예가 되어주는 두 인물, 2학년 5반 담임교사와 학생주임. 이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일제강점기의 일본 순사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선량한 사람들을 끌어다가 말도 안되는 자백을 강요하고 고문을 일삼고 온갖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는.
이쯤되면 고리타분의 결정판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교생 진숙경과 담임교사와 학생주임 사이에 있는 아이들이 걱정스럽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톡톡 튀는 아이들은 인터넷에 비밀카페를 만들어 익명으로 즐길 수 있는 자기들만의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지만 이 카페를 통해 교생 진숙경의 낱낱이 공개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던 것. 게다가 담임과 학생주임의 모략과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같은 반 친구의 증명할 수 없는 잘못에 대한 내부고발에 말려들고 만다. 그 결과 '스톰'이라는 정체불명의 조직에 연루되었다는 죄로 송은하라는 아이가 지목당하고 결국 가출과 무기정학이라는 극단의 상황을 맞게 된다.
그래도 돌아버릴 것 같다. 화가 나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다. 그런데도 내가 대체 누구에게 화가 난 것인지 모르겠다. 뭔가를 향해 돌팔매질이라도 하고 싶은데 대체 무엇을 겨냥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p.141)
고리타분의 결정판인 학교, 비뚤어진 교사,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안에서 뒤틀릴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비혼모 늦깎이 무명의 클럽가수 교생 진숙경은 이 부당한 현실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싫어. 그렇게는 못 해. 두고 봐. 내가 가만있나. 뒤에서 애들 패고, 애들 협박해서 고자질이나 시키고....... 그래놓고 내가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임용고시 본다며? 그럼 졸업을 해야 할 거 아냐."
"됐어. 이따위 학교, 오래도 안 와. 이게 학교냐? 이게 교육이야?"
"그럼 대체 어쩌겠다는 건데?"
(중략)
"너한테도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잖아. 나한테는 이게 그런 일이야. 이런 상황에서 알았다고 무릎 꿇는 일, 그냥 도망치는 일..... 그럴 순 없어. 그러니까 이해해줘." (p.115)
진숙경이 교생으로 온 2학년 5반에 다니는 이보라와의 대화다. 사실 이 책은 진숙경의 조카인 보라가 화자가 되어 서술되고 있다. 보라는 저항하겠다는 이모 진숙경의 모습을 보며 '튀지 않는다. 밟히지도 않는다'(p.6)던 자기만의 학교생활백서 1조를 포기하고 진숙경이 자기 이모라는 것을 밝히고 저항에 가담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담임이 같은 반 친구를 패는 동영상을 검색 순위창에 뜨게 하기 위해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소심한 클릭질에서 바들바들 떨면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담임의 협박에 맞서는 용기까지, 중학생 2학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을 보여준다.
이모 덕분에 3학년들에게도 나는 제법 유명 인사가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나를 여간이 아닌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저 그런 범생이었던 이보라의 처지가 이렇게 달라질 줄이야.
그런 시선들이 따갑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의 시선에 대해서라면 당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요즘 새롭게 배워가는 중이다. (p.210)
오래 전에 읽었던 <초콜릿 전쟁>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 책에서도 학교 안의 권력이 등장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처절하게 진다. 이 책에서는 담임이 사표를 쓰고 학교를 떠난다. 진숙경과 이보라, 아이들의 저항은 성공한 걸까? 고리타분의 결정판인 학교를 바꿔놓았을까? 그 견고하고 완강한 틀의 한 쪽 귀퉁이라도 찌그려트린 걸까?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난 아이들이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배웠다면 그것도 큰 성과라고 믿는다.
그래도 난 믿고 싶다. 나쁜 선생님들보다 훌륭한 선생님들이 훨씬 더 많다고. 그리고 아이 셋을 키우는 동안 (셋째는 이제 겨우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지만) 그렇게 파렴치하고 못된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다. 오히려 좋은 선생님이 더 많았다. 운이 좋았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환경의 틀 안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의 자질을 갖춘 분이라도 그 자질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아이들도 더욱 힘겨워질 게 뻔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현 작가의 책을 읽어가는 동안 글의 얼개를 참 잘 엮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신음소리를 잘 듣고 그런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려는 작가의 마음도 느껴진다. 이제 <영두의 우연한 현실>을 읽는다.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고맙다. 이현이라는 작가가 어른들을 위한 소설가나 시인이 되지 않고 우리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작가가 되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