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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와가 여기 있었다 ㅣ 한림 고학년문고 11
닐 슈스터만 지음, 고수미 옮김 / 한림출판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발음기호가 따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다. [ə]는 가장 흔한 모음이지만 음가가 거의 없는데 ‘슈와’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고 한다, 어리거나 젊은 시절에 영어사전을 자주 들춰보며 발음기호를 확인하던 나는 발음기호에 적힌 그대로 정직하게 [ə]를 발음하려고 애를 썼는데 말이다. ‘으’와 ‘어’의 중간 어디쯤의 정확한 소리를 내보려고 간혹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내 어린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슈와’라는 성을 가진 한 아이, 친구들에게 ‘슈와’라고 불리던 아이는 정말 [ə]랑 닮아서 눈에도 잘 띄지 않을 뿐 아니라 기억 속에서 자꾸 지워지고 마음에서 빠져나가 버린다.
또 다른 한 아이, 앤치 보나노는 ‘가운데 아이 증후군’(40쪽)이 있다. 앤치에게는 프랭크라는 잘난 형이 있고 크리스티나라는 주목받는 여동생이 있다. 앤치는 그냥 ‘거기’ 있는 애일뿐이다. 그래서 앤치는 슈와의 기분이 어떨지 조금은 알 것 같고, 자꾸 신경이 쓰인다.
십대의 아이들에게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의 시간만큼 똑같은 크기의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과도하게 자기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경향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희미한 존재감은 십대인 슈와와 앤치에게 꽤나 신경 거슬리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게 꼭 앤치와 슈와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삶이 우울해지거나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 같이 점심을 먹거나 영화를 볼 사람이 없을 때, 하루종일 어느 누구도 내게 카톡도 문자도 보내지 않을 때, 그럴 때마다 나의 존재감이 흐릿해지는 쓴맛을 맛보게 되지 않나? 그러다보면 첫사랑의 기억 속에 내가 얼만큼의 흔적으로 남아있을지, 혹은 직장에서 나는 과연 얼마나 쓸모있는 존재감 확실한 부품인지, 친구들 사이에서 얼마나 소중한 친구로 인정받고 있는지, 가족들에게 나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앤치의 엄마가 주방을 자신의 영역으로 고수하고 싶어하는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앤치의 엄마가 고백처럼 내뱉던 말이 기억난다.
“......하지만 가끔 사람은 일을 하면서도 문득 삶이 의미 없다고 느낄 때가 있어. 가족과 함께 집에 있으면서도 문득 자기 인생은 어디에도 없고, 모든 사람의 인생처럼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지. 어느 쪽이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바구니는 무거워져. 달걀이 깨질 수도 있고.” (216쪽)
결국 우리는 세상에 자기의미를 심으며 살아가려고 애를 쓴다. 앤치도 슈와도 괴팍한 크롤리 영감과 앤치의 부모님, 슈와의 사라진 엄마, 그리고 우등생 프랭크 형과 동생 크리스티나까지도.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한 가지. 자기의미는, 혹은 존재감은 누가 부여해주는 거지?
“슈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아.”
“네가 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너는 그 사람을 어떻게 아니? 나무를 생각해 봐, 앤치. 숲에서 쓰러지는 나무 말이야. 나무 쓰러지는 소리가 날 때 거기에 아무도 없다면, 나무는 정말로 소리를 내지 않는 거고,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못하면 너는 정말로 거기에 없었던 거야.” (202쪽)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의 기억력에 의지해서 존재하고 있는 걸까. 그건 어쩐지 자존심 상한다. 나 스스로를 그리 썩 대단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의 기억력에 의지해서 내 존재를 확인받아야 한다는 걸 흔쾌히 인정하기는 찜찜하다. 저 위의 문장을 한참을 노려보다가 혼자 중얼거렸다.
“슈와,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내려면 먼저 나무 스스로 크게 자라야 해.”
우리는 항상 누군가가 날 눈여겨 봐주기를 바라지만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야무진 렉시는 우리에게 이렇게 반문한다.
“괜찮아. 느껴지는데 굳이 보일 필요는 없잖아?” (153쪽)
누군가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도, 누군가가 나를 잘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무척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클립처럼 존재감 희미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미의 영역을 찾아가는 것은 무지무지 용감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책 속에서 슈와가 보여준 클립들은 하나하나가 얼마나 경이롭고 소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우리가 미처 마음을 기울여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을 뿐.)
이 책은 한림 고학년문고 시리즈 중 하나지만 개인적으로 청소년 책으로 분류해 둔다. 내용과 그 내용이 품은 의미들이 청소년들에게 더 적합할 것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