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관해 풀리지 않는 의문들
김종성 지음 / 지호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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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몸을 쓰고 살면서도 특별히 아프거나 병이 나지 않으면, 내 몸의 쓰임새와 그 정교성에 대해 심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  특히 다른 어떤 신체 기관보다도 훨씬 많이 일하고 엄청나게 정교한 곳이 바로 ‘뇌’인데,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눈으로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인지, 뇌의 작용이 마음이나 영혼으로 표현되는 쪽에 더 친숙하고 거부감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쩐지 ‘뇌’에게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에게 “내 마음과 영혼을 모두 바쳐서 너를 사랑해.”라는 말 대신에 “내 뇌의 전두엽, 측두엽, 후두엽, 간뇌와 기저핵, 뇌량과 신경전달물질까지 송두리째 바쳐서 널 사랑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하며 가차 없이 차일 확률이 더 커지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굳이 연인에게 신체의 일부분을 바친다면 뇌보다는 심장을 바치는 게 더 로맨틱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뇌는 그 중요성에 비해서 감정적으로는 홀대를 받은 신체 기관이면서, 복잡하고 섬세한 수없이 많은 기능을 수행하는데 비해 밝혀진 게 별로 없는 신비의 영역인 듯.  “내 마음 나도 몰라”는 “내 뇌 나도 몰라”라는 무지에 대한 고백인 셈이다.

신경과 전문의이자 교수이기도 한 지은이는 의학적, 유전학적, 진화론적인 설명으로 우리의 ‘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수필이다.  어떤 분은 이 책의 일부분이 너무 ‘야’하다는 말씀을 하셨다는데, ‘여성의 가슴은 왜 커졌을까?’와 ‘섹스에 대한 고민은 왜 인간만 할까?’라는 제목으로 쓰인 딱 10페이지의 분량을 가지고 하신 말씀인 것 같다.  아마도 이 책에서 ‘잠은 왜 잘까?’라는 글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그래서 ‘권장도서’라는 생각으로 집었다가 화들짝 놀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야’하다는 게 뭘까.  ‘야’하다는 이유로 성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시하는 것도 부작용을 유발하지 않을까.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알 건 다 아는 세상에, 아이들이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 성에 대한 음습하고 왜곡된 시각을 갖게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아예 밝은 곳에 드러내서 ‘성’을 다양한(여기서는 의학적, 진화론적 관점)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게 오히려 더 좋지 않을까.  그런 건전한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야말로 성에 대한 음습하고 왜곡된 시각을 고정화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난 280쪽의 이 책에서 단 10쪽이 ‘야’(?)하다고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금하는 것에 반대다.  게다가 뇌가 ‘성’이나 ‘생식’에 대한 기능만 담당하는 게 아닌 이상 이 책이 뇌에 대한 다양하고 유익하고 재미있는 정보들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참작한다면 더더욱.

그런데 사실 조금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자면 이 책은 ‘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뇌’를 도구삼아 ‘인간’과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래서 읽고 나면, 인간이란 다른 동물들보다 조금 더 우수한 뇌를 가진 생명체일 뿐이라는 생각, 오만을 떨 정도로 그렇게 잘나지는 않았다는 생각, 단호박만한 내 뇌의 작은 부분 하나만 삐끗해도 삶 전체가 엉뚱하게 어긋날 수도 있을 만큼 내가 연약한 존재라는 생각, 그러니 아직 내 뇌가 쓸만할 때 열심히 생각하고 좋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요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의 뇌를 파헤쳐 조사해보고 싶다는 욕구도 모락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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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텍, 우주에 작업 걸다 - 인터넷 소설보다 재미있는 발칙한 우주이야기 생각이 자라는 나무 11
란카 케저 지음, 유영미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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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터넷 소설보다 재미있는 발칙한 우주 이야기’라고 써있는 표지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요즘 책들 표지며 띠지에 너무 과장광고를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도대체 우주에 대한 과학적 설명들을 어떻게 소설이라는 틀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할 수 있을까, SF 공상 과학 소설도 아닌데 그게 가능할까, 하는 의심이 자꾸 솟아났다.  책을 읽기 전에 이런 선입견부터 가지게 되면 별로 좋을 게 없다는 걸 안다. 혐의의 눈길로 읽어가는 책은 긍정적인 평가를 얻는데 불리해지고 그러다보면 읽는 나도 읽힘을 당하는 책도 서로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선 열린 마음으로 만날 준비를 해야 했다.  요즘 장르와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괜찮은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성장소설과 천문학이라고 만나지 못할 게 뭐냐는 마음으로 새롭게 무장하고 책을 펼쳤다.

주인공 안텍은 이 책 속에서 사춘기 소년의 많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재클린과 프리치를 두고 설레면서도 사랑에 대해 고민 하고 선택을 하는 것이라든가, 자기를 두고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아픈 기억들을 대견스럽게 극복해가는 과정, 아빠의 새 여자친구 비너스 아줌마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소신 있게 밝히고 아빠에게 뼈있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 의젓함, 환경미화원인 아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이해하고 남들에게 아빠의 입장을 변호해 주는 품 넓고 속 깊은 모습, 비너스 아줌마를 통해 알게 된 천문학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그려가는 미더운 모습까지... 사춘기 소년이 가질만한 걱정거리들과 자잘한 일상들과 가족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들은 비록 문학적 깊이를 거론하기엔 부족함이 있을지는 몰라도 인터넷 소설과 비교해서 재미를 따진다면 기죽지 않을 만큼 소설의 줄거리는 재미있었다.

아빠의 여자 친구 비너스 아줌마가 안텍에게 거대한 우주와 은하, 태양계, 행성 등등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나 안텍이 여자친구 프리치와 데이트하면서 천문학 지식을 설명하는 부분은 좀 현실성이 없다 싶기도 하지만 스토리가 기대되는 소설을 읽으며 만나게 되는 우주에 대한 글들은 ‘지식 습득의 고생스러움’이라는 거부감을 녹이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청소년들에게 인문학 서적이나 과학서적들은 읽기 쉬운 책이 아니라는 걸 안다.  일단 재미없고 따분한데다 학교와 학원에서 쏟아놓는 지식을 소화하기에도 벅찬 우리 청소년들에게 그런 책들까지 읽으라고 권하려면 엄마인 나도 좀 미안해질 정도다. 그러므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자꾸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발랄한 성장 소설 틈새에 끼워 넣은 과학 지식은 소설을 따라 끝까지 읽힌다는 막강한 장점을 획득하게 되는 듯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담고 있는 천문학 지식이 두루뭉실하게 대충 때우는 식의 얄팍한 지식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소설 속에서 비너스 아줌마나 안텍을 통해 전달되는 지식도 있지만 ‘비너스 아줌마의 쪽지’라든가 ‘아빠의 교양 백과사전’, ‘우주에서 온 메시지’같은 제목을 단 팁이 페이지 하단이나 오른 편에 구성되어 내용을 더 보충 설명하거나 개념을 정리해 주기도 하고, 한 챕터가 끝나는 마지막 부분에는 ‘안텍의 책가방 속 이야기’라는 꼭지가 있어 그 장에서 다룬 천문학 지식을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요점을 짚어주고 있기 때문에 꽤 성실하게 신경을 썼다는 인상을 받았다. 

처음에 우려했던 것보다 만족하며 책을 덮을 수 있어서 좋았다.  청소년의 입맛을 자극하는 그저 맛있기만 한 정크푸드 같은 책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청소년들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몸에 좋으니까 먹으라고 강요하는 쓰디 쓴 한약 같은 느낌의 책도 그에 못지않게 문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양 쪽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절충한 책이라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에게 좀 덜 미안해하며 읽어보라고 권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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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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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간되어 인터넷 서점 여기저기에 모습을 드러낼 때, 난 이 책의 표지를 보고는 피식 웃었더랬다.  만화야? 그런데 주인공 한 번 되게 촌스럽네. 요즘 순정만화 남자 주인공들이 얼마나 뽀샤시한 꽃미남들인데 요즘 트랜드에 맞지 않게 인물이 저게 뭐야... 남자애들이 즐겨보는 학원 폭력 명랑 만화(이런 장르가 있나?)라면 좀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그런데 만화 표지치고 참 심심하다. 그리고 이름이 완득이가 뭐야, 완득이가..  만득이도 아니구.. 대충 내 느낌이 이랬었다.

그런데 어라? 마케팅 차원에서 한 두주 메인에 뜨다가 사라지고 말겠지 했던 이 촌스런 표지의 책이 점점 더 자주 내 눈에 띄기 시작하는 거였다.  게다가 꽤 좋은 평가로 이어지는 기다란 꼬리를 달고.  이거, 학원 폭력 명랑 만화 아니었어?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시시껄렁한 녀석한테서 의외의 번쩍이는 면모를 발견하고는 놀라서 눈이 커다래진 기분이랄까.  어라, 요 녀석 봐라? 네가 그렇게 대단하단 말이지, 어디 한 번 만나보자, 완득이..  그래서 만났다.

제 1부 첫 장 ‘체벌 99대 집행유예 12개월’ 에서 나 한 대여섯 번은 웃은 것 같다.  분량으로 보면 12페이지 8줄이다.  딱 그만큼 읽고는 소설 속에 기꺼이 몸을 던졌다.  난쟁이 아버지, 완득이가 어릴 때 집을 나간 베트남인 엄마, ‘몸은 짱이지만 말은 꽝인’ 정신지체 민구 삼촌, 유들유들 뻔뻔하고 참 재수없게 말하는 재주를 가진 담임 똥주는 자라나는 청소년 완득이가 짊어지고 헤쳐 나가야 하는 사중고 인물들이다. 사실 소설 속 완득이의 가난하고 외로운 처지를 생각하면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낄낄거리면 안 되는데 김려령이라는 이 작가는 그 우울하고 갑갑한 완득이의 현실을 참 경쾌하고 밝게 풀어내고 있다.  마치 권투에서 짧게 끊어 치는 잽처럼.

미화의 과정을 밟거나 아니면 진지한 무게감이 없어서 불만인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중간고사 준비한답시고 고달픈 하루를 살아가는 내 딸과 아들에게 “얘들아, 이거 읽어봐라. 킹왕짱 재밌어.”라며 권할 수 있는 책이라서 좋았다.  아이들에게도 완득이의 경쾌함이 먹혔는지 큰딸은 시험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도 완득이를 붙들고 있었다. 청소년 소설로서 이만한 미덕이 어디 있으랴.

그렇다고 이 책, 마냥 밝고 웃긴 책은 아니다.  이 책을 읽다가 딱 내 기분 같은 구절 하나를 발견했는데, ‘웃는데 그 웃는 모습이 싫었고, 웃으면서도 울까 봐 괜한 걱정을 했었다.’(p.57)라는 구절이다.  그래, 딱 그랬다. 낄낄거리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짠해지는 거, 웃을까 울을까 망설여야 할 상황이 올까봐 조마조마한 기분, 희망이 어리는 마무리 속에서도 어쩐지 쓸쓸해지는 위태로운 느낌.....  완득이가 보여주는 현실이 별빛 같은 희망 하나로 버티기엔 너무 거칠고 가혹하다는 이 궁상스러운 생각을 확 거둬치우고 싶다. 행복한 기분으로 완득이를 응원하고 싶었다.  순진한 십대 청소년들은 희망의 언어들에 쉽게 넘어갈지 모르겠지만 이제 가슴 속에 능구렁이 쉰 마리쯤 들어앉히고 사는 내 나이쯤이 되면 우주 밖 저 멀리서 내려오는 별빛으로 삶의 구질구질함을 가리려는 노력 자체가 참 쓸쓸해진다. 

그렇게 웃을까 울을까 하는 심정이 되었을 때, 완득이가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윤하와의 첫 뽀뽀가 웃음 발동의 원인을 제공하긴 했지만 완득이는 개천물이 얼은 것을 보고도 웃고, 윤하의 종군기자 꿈 생각을 하면서도 웃고, 똥주가 준 홀딱 벗은 생닭 두 마리를 보고도 웃는다.  그런 완득이를 보며 나도 웃었다. 그래, 우리는 희망의 힘이 아니라 긍정의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구나, 완득아, 희망을 따라 사는 게 아니라 지금 이 구질한 삶을 긍정하면서 그저 열심히 살면 되는 거구나.  완득이가 결국은 날 TKO 시켰다.  그래, 완득아, 더럽고 치사해도 악착같이 잘 살아라...  그런데 나 같은 아줌마 TKO 시키니까 좋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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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나오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유럽 2 - 이탈리아·영국·에스파냐·폴란드·러시아 교과서에 나오는 유네스코
이형준 글,사진 / 시공주니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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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는 이탈리아, 영국, 에스파냐, 폴란드, 러시아, 이렇게 다섯 나라의 세계 문화유산에 대한 소개가 실려 있다.  딸아이가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보고 싶어서인데, 그런 딸아이 덕에 이 책을 펼치기도 전에 에스파냐에 대한 부분이 가장 궁금했다. 

가우디의 건축물에 대한 사진들은 너무 좋았다.  카사밀라와 구엘 저택, 구엘 공원, 성가족 성당까지 다양한 앵글로 구석구석을 잡아낸 사진들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성가족 성당의 사진이 한 장밖에 없는 게 좀 아쉽긴 했지만.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 그 아쉬움을 채울 수 있었는데, 1권의 포츠담 상수시 궁전처럼 이번에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의 관심을 끈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미술관련 책에서 자주 등장하던 피렌체인데, 미술이나 화가와 관련된 소설이나 이론서들 속에서 자주 접한 장소이면서도 그저 그뿐, 특별한 관심을 쏟았던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의 아름다운 조각분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그리고 지금은 피렌체 시청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늠름한 인상의 베키오 궁전, 미켈란젤로도 감탄한 ‘천국의 문’을 가진 세례당과 두오모로 알려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깜찍한 피노키오 목각인형 등.  화려함은 적지만 어쩐지 피렌체에서는 문화와 예술이 속속들이 스며있는, 그래서 만약 내가 그 곳에 서 있게 된다면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내 안에 스며들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나의 관심을 끈 다른 한 곳은 에스파냐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이다.  서유럽에 세워진 아랍 최고의 유적지라서 그런지 유럽의 높고 화려한 궁전들과는 다르게 소박하면서도 품위가 느껴지는 외관을 가졌다.  그러나 내부는 엄청나게 정교하고 화려한 이슬람 특유의 문양으로 가득 차 있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책 속 사진을 노려보며 좀 더 자세히 보려고 기를 써야 했다.  연못과 나무, 꽃들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정원도 직접 가서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다.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인 에스파냐에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돌보지 않았던 궁전이었는데, 1832년에 미국의 역사학자 워싱턴 어빙이 써서 출간한 <알람브라 이야기>라는 책이 인기를 끌고 나서야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지금의 모습으로 궁전이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이제 기타연주곡 ‘알함브라의 추억’을 들으며 구체적으로 떠올릴 영상 하나를 갖게 된 것 같다.

이 책 속에서 만나는 문화유산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이국적이며 신비로워서 글을 읽으며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다른 차원의 세계로 빨려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내 집 소파에 앉아 어느새 유럽을 한바퀴 돌아보고 난 듯한 착각도 들고, 새삼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아울러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언젠가는 후대에게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기도 한다. 

이 책은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결국 ‘너희도 이처럼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아름다운 자취를 남기며 살아가야 한다고.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읽을 때, 아이들은 인류가 남긴 상처 뿐 아니라 아름다움에도 눈을 뜨게 될 것 같다.  그런 아름다움을 향해 우리 아이들이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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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나오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유럽 1 - 프랑스·독일·그리스·노르웨이 교과서에 나오는 유네스코
이형준 글,사진 / 시공주니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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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책이 탐이 났던 것은 큰딸이 올여름 유럽 여행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여행을 떠나기 전 예비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고 가야 그만큼 받아들이는 폭과 깊이가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서양미술사나 그리스로마 신화정도는 읽게 했지만 이 책을 보는 순간 내가 빠트린 게 있었구나 싶었다.  유럽에 가서 미술관만 보고 올 것도 아닌데, 왜 미술 쪽만 생각했을까.  아마 유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유명한 화가들과 곳곳에 세워진 조각들, 그리고 미술관이라서 그랬나보다.  아무튼 이 책이 무척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을 전공한 전문 사진작가답게 선명하고 시원시원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읽기 전에는 ‘여행담’ 쪽에 더 비중을 두었으면 어쩌나 살짝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이 주가 된 책이었다.  친절한 ‘~어요.’ 또는 ‘~습니다.’ 문체로 문화유산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참 조곤조곤하게 잘 설명하고 있어서 청소년이나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읽기에도 무난할 것 같았다.  각 장 끝마다 딸려있는 ‘흥미진진 포인트’, ‘감상 포인트’를 통해서  본문에서 부족했던 설명을 추가하고, 직접 가서 문화유산을 보게 될 경우 어떤 식으로 감상하면 더 좋을지를 설명하고 있어 작가의 세세함이 드러난다.

1권에는 유럽하면 떠오르는 나라 프랑스와 독일, 그리스, 노르웨이의 문화유산에 대한 글과 사진이 들어있다.  프랑스 그 중에서도 파리에 대한 은근한 동경을 갖고 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파리보다도 더 가보고 싶은 곳이 새로 생겼다.  그 곳은 바로 독일의 포츠담 상수시 궁전이다.  포츠담이야 역사시간에 배운 ‘포츠담 선언’ 덕분에 꽤 익숙했지만 상수시 궁전은 생소했다.  상수시는 프랑스 어로 ‘근심 없는’이라는 뜻이라는데, 이 책에서  본 상수시 궁전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상수시 궁전은 ‘사색의 황제’, ‘철학자 황제’, ‘예술가 황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진 프리드리히 2세가 애정을 갖고 지은 궁전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상수시 궁전도 작가의 말처럼 ‘소박하고 아담’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지만, 베르사유 궁전에 비하면 뭔가 고즈넉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것 같긴 했다.  특히 궁전 전체 면적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넓은 정원이 매력적이라는데, 인공적인 분위기의 정원이 아니라 자연스런 편안함이 흐르는 정원이라니 그 곳에 가서 상수시라는 이름대로 ‘근심 없이’ 조용하게 거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맨발로 걸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이 정원을 만든 페터 요제프 레베라는 정원사와 철학자, 예술가, 문인들과 어울렸던 프리드리히 2세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한가롭게 거닐다가 일본으로부터의 우리나라 독립을 확인하는 포츠담 선언의 현장 체칠리엔호프 궁전도 비장한 마음으로 둘러보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창피하고 민망했던 부분이 있다. 프랑스 편에 카르카손 요새도시가 소개되고 있는데,  난 카르카손이 그저 보드게임 이름인 줄 알았었다.  몇 해 전에 아이들에게 카르카손이라는 보드게임을 사 준 적이 있었다.  성을 짓는 게임이었는데, 이제야 그 게임 이름이 왜 카르카손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난 죽을 때까지 카르카손은 보드게임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참 끔찍하면서도 실소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나보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라는 명찰 뒤엔 그에 어울리는 역사와 문화, 예술, 종교의 배경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이 말은 그 배경이 되는 역사, 문화, 예술, 종교 등등의 지식이 없이는 그 문화유산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니 무조건 중요한 것이고 그러니 무조건 잘 보존해야 한다는 식의 단순함과 교과서에 나오는 거니까 그게 무엇이든 달달 외워라 하는 식의 구시대적 주입식 교육으로 버티기에는 세상이 너무 열려있지 않은가.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열려 있는 세상을 향한 작은 징검다리가 되어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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