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기는 읽지마세요, 선생님 우리문고 13
마가렛 피터슨 해딕스 지음, 정미영 옮김 / 우리교육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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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방임을 일삼는 부모 때문에 보호의 울타리를 잃은 사춘기 소녀 티시가 견뎌내야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이야기였다.

던프리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일기쓰기를 숙제로 내주시는 걸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개인적이고 비밀스런 내용이라 선생님이 읽지 않기를 원하면 일기 첫머리에 "읽지 마세요"라고 써달라는 선생님의 독특한 일기검사 방식 때문에 티시는 조심스레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티시의 일기는 거의 모두 "읽지 마세요, 던프리 선생님"이다.  그 말 앞에 종종 "제발"이나 "절대로" 같은 말이 덧붙여져  티시의 감추고 싶은 비밀의 질과 양이 그 안에 모두 함축되어 있는 듯 하다.  가혹하고 냉정한 현실 속으로 내던져진 자기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철저하게 감추기'라는 수단을 선택하는 사춘기 소녀 티시의 불안한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티시의 일기 속엔 십대 사춘기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선택한 '일기'라는 형식이 티시의 꾸밈없고 솔직한 속내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읽지 말아달라는 일기를 읽는, 그래서 어쩐지 해서는 안될 일을 저지르는 듯한 기분으로, 또는 그 쾌감으로 책을 읽는 기분도 맛볼 수 있었다. 

이미 세상의 쓴 맛을 보아버린 티시가 보기엔, 하나같이 철부지지만 그 가볍고 무모한 친구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기의 처지와는 너무나 형편이 다른 친구들과 이성친구에 대한 이야기, 이해와 사랑이 부족한 삭막한 학교와 선생님들에 대한 불만,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일해야 하는 자기의 처지에 대한 연민과 불안함, 어린 동생을 보호하고자 하는 티시의 안쓰러운 책임감, 어른들의 무책임과 몰이해, 그리고 불합리한 사회의 냉혹함이 티시의 일기를 통해서 진솔하게 전해져 온다.

"읽지 마세요, 던프리 선생님'이라는 글머리가 "부디 읽어 주세요, 던프리 선생님."으로 바뀔 때까지 티시는 점점 더 깊숙하고 황량한 사막으로 걸어들어가는 아이 같았다. 빠져나오려 안간함을 쓸수록 더 깊숙히 빠지고 마는 사막의 모래늪이 떠오를 정도였다. 믿고 의지할 수 없는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 정신적 방황이 극에 달하는 청소년기에 얼마나 큰 시련이 될 수 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안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로부터 배운 뜨개질을 하고 일기를 쓰며 세상에 대한 분노와 불안을 잠재우는 티시의 모습은 안타까움과 동시에 격정의 시기인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욕구불만과 분노를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할 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개 목줄을 이리저리 마구 잡아끌며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티시의 이웃집 아이 이야기.  종잡을 수 없게 이리저리 휘두르며 강아지를 끌고 다니는 바람에 난폭하고 공격적이 되어버린 강아지는 마침내 주인에게 안락사당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티시는 그 강아지가 자기와 동생 매트와 다를 바 없다며 동일시한다. 순간, 흠칫했다. 밤늦게 학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 학원 버스 안에서 바깥 거리 풍경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무심하고 지친 듯한 눈빛들이 떠올랐다.

책을 덮으며 세상에 던프리 선생님같은 분들이 많이 계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또한 모든 가정이 아이들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빌어도 본다. 이 사회가 아이들을 모두 끌어안아 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품을 가진 사회가 되기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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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06-19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굉장한 리뷰네요 읽어보고파요

섬사이 2007-06-19 12:40   좋아요 0 | URL
중학생 딸아이도, 저도 재밌게 읽었어요.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라 마음잡고 읽으면 금세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홍수맘 2007-06-1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강한 유혹을 전 이겨낼 수 없답니다. ㅠ.ㅠ

섬사이 2007-06-19 12:41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 강하게 요염을 떨었나요? ㅋㅋㅋ^^

향기로운 2007-06-1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섬사이님의 강한 유혹을 결국은...뿌리치지 못하겠어요.. 다음주 알라딘을 습격할지도 몰라요~^^

섬사이 2007-06-19 13:20   좋아요 0 | URL
제 서재에는 유난히 유혹에 약한, 순진한 분들만 오시나봐요.^^ 알라딘이야 누군가 습격해 주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향기로운 님의 향기로운 습격, 나도 환영인데..^^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나의 고전 읽기 7
박지원 원작, 고미숙 지음, 이부록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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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 학생시절 국사교과서 안에서, 또는 국어교과서 안에서 "배운" 인물이다.  이순신장군이나 세종대왕만큼의 정치적 중요도를 갖고 있지 않아서였는지, 연암 박지원은 미이라와 다름 없었다. 

요즘 우리나라 고전문학과 인물에 대한 출판이 활기를 띠면서, 정치적 중요도를 떠나 우리 나라의 과학, 문학, 철학 등의 분야에서 빛나는 행보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분들에 대한 점검이 이루어지고 또 그 분야의 전문가 뿐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과 청소년들이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정말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아이세움 출판사의 '나의 고전 읽기' 시리즈를 선택하기 전에 잠시 망설였었다.  아이세움 출판사는 내게 '보물찾기'나 '살아남기'시리즈 등의 학습만화를 출판하는 곳이라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화를 출판하는 회사에서 '열하일기'를 너무 가볍게 다루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였다. 저자를 보니 고미숙님이었다.  이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을 쓰신 걸로 알고 있고, 연암 박지원에 대한 강의를 곳곳에서 맡고 계시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출판사를 떠나 "이 분이 쓰신 책이라면.."하는 마음으로 구입한 책이다.   중학생 딸 아이도 언젠가 읽어두어야 할 책이고, 나 또한 언제까지나 연암 박지원을 미이라로 남겨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열하일기 맛보기용으로 딱 좋은 책인 것 같다.  맛보기용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나로서는 좀 미진한 부분이 남는다.  중고등학생들에겐 알맞은 깊이와 내용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함께 구입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기 전에 가볍게 오리엔테이션의 시간을 가졌다 생각하면 억울할 건 없겠지만 연암 박지원과 열하일기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면 다른 책을 좀더 찾아서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중학생 이상의 아이들이 읽기에는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암튼 이 책을 통해 미이라 상태의 연암 박지원을 조금은 깨워놓은 것 같다.  그 경직되고 고지식한 명분중심의 시대에 그처럼 유연하고 막히지 않은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 있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내겐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 좀 더 연암에 대한 책을 읽으며  내 마음 속의 연암이라는 인물에 뼈와 살이 돋게 하고 피가 돌게 해야 겠단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 고전을 새로이 접할 수 있다는 게 고마울 뿐이다.  부끄럽게도 내 마음 속에는 미이라로 남아 있는 옛 분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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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21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너무 인상적으로 본 기억이 있는지라 많이 궁금한데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을 하게 되네요.

향기로운 2007-05-21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해지네요..^^

섬사이 2007-05-21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님, 홍수맘님 / 출판된 연암에 관한 책들이 몇 권 있더라구요. 저자 고미숙님은 <나의 아버지 박지원>(박종채 지음, 박희병 옮김, 돌베개), <비슷한 것은 가짜다>(정민, 태학사),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 (홍대용지음, 김태준 외 옮김, 돌베개), <조선의 협객 백동수>(김영호, 푸른역사),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박지원, 박희병 옮김,돌베개)등을 더 읽어보라고 책 뒷부분에서 추천하고 있어요.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열하일기> 전 3권짜리도 있구요. 관심 있으시면 참고하세요. ^^

향기로운 2007-05-25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참고할게요~^^*

섬사이 2007-05-28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님의 저 웃음마크, 매력적이야요~^^
 
주머니 속의 고래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푸른도서관 17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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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성적이 동일시되는 사회, 일류대 입학이 곧 꿈의 실현이라고 각인받는 아이들, 누구에게서 비롯된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를 꿈을 향해 밤늦게 까지 지치도록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하는 아이들이 바로 우리 아이들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마음 한켠이 저려오게 만든 책이었다.

이금이님의 이야기 속엔 늘 아픔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아픔은 아픔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 속 아이들은 아픔을 통해 성장하고 타인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이야기 속 아픔은 가난과 소외, 장애와 편견, 또는소통의 단절이기도 하다.  이 책 안에서도 아픔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연호는 가난과 사생아라는 굴레에 허덕이며 어쩔 수 없는 자기연민과 패배주의에 싸여 허덕이곤 한다.  주변의 이웃과 친구들로부터 철저하게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려는 연호의 몸부림은 처절하기만 하다.  그런 연호에게 "꿈"이란 사치이고 자기 안에 숨겨진 노래에 대한 열망조차도 가난하고 추레한 자기의 삶을 가리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연호에겐 고래를 키울만한 주머니조차 주어지지 않아 보인다.  준희와 민기의 도움으로 자기의 꿈을 찾게 된 연호는 꿈을 위해 땀을 흘리면서 그제서야 희망을 본다.  열등감에서 벗어나 다른 이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 

준희는 얼굴의 점과 공개입양아라는 아킬레스 건을 가지고 있다.  그 아킬레스 건은 힙합과 렙을 통해, 항상 귀에 꽂고 다니는 MP3 이어폰에 의해 가려지고 보호된다.  생모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원망과 증오를 함께 품고 살아가는 준희는 연호의 모습을 통해 다른 사람의 불행을 바라보고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불행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해나간다.  자신의 아킬레스 건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과 남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민기.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나고 평범한 성적을 받는 평범한 아이지만  잘생긴 외모로 연예기획사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몇 번 받고는 자기의 꿈을 연예인으로 정한 아이다.  친구 현중이와 함께 오디션을 수도 없이 보지만 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연호와 준희를 보면서 민기는 꿈을 너무 가볍게 다루고 너무 성급하게 이루려했던 자신을 반성한다.  행정고시 패스라는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던 우수한 성적의 누나 민주가 2년제 대학의 애견미용관리학과를 지원하겠다는 꿈을 밝히고도 부모의 회유에 흐지부지 그 꿈이 사라져가는 걸 보면서,  같은 학원에 다니는 여학생을 통해 남들에게 비친 보잘 것 없는 자기 모습을 확인하면서, 민기는 자아에 눈을 뜨고 좀더 신중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민기의 친구 현중이는 "접을 수 있으면 그게 꿈이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의 꿈이 우리의 기대에 못미친다는 이유로 그 꿈을 접으라 할 때가 많다.  아니 아예 눈길 한 번 안주고 무시해버리곤 한다.  아이의 꿈은 주머니 속에서 더이상 커나가지 못하고 죽어가는 건 아닌지, 그 죽은 꿈의 잔해가 어느 날 아이에게 발견되어 아이를 경악하게 하는 날이 오진 않을런지, 우리 앞에 죽은 꿈의 잔해를 꺼내 놓고 민기의 누나 민주처럼 목놓아 울고 절망을 쏟아놓는다면 그 때 우린 어떻게 해야하는지..   심지어 내 주머니 속의 사멸 직전의 고래를 꺼내서 아이의 주머니 속에 넣어주고는 "이게 너의 꿈이야."라고 거짓말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는다. 

가끔은 우리 아이의 주머니 속을 들여다 봐야겠다.  무슨 빛깔의 어떤 고래가 있는지, 잘 크고 있는지.. 행여 내가 원하는 빛깔의 고래가 아닐지라도 그 고래가 내 아이를 행복하게 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다면 아이와 함께 고래 이야기를 나누며 고래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  내 기대와 욕심을 스스로 꺾는 것이 결코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꿈은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우리 아이들을 통해 다양한 빛깔로 드러날 것이다.  그 아름다운 빛깔을 보며 그 때 내가 욕심을 버리길, 내 스스로 기대를 꺾기를 참 잘했노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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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7-05-13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 너무 멋져요~~ 그리고 책 참 많이 읽으시네요. 아이들 셋 키우시면서 시간도 없으실 텐데 대단하십니다! 저도 더 노력해야겠어요!!

logos678 2007-05-13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 2, 저희 반 학급문고 중 가장 인기있는 책이네요. 저도 읽어보고 싶은데, 늘 대출중이라 읽을 틈이 없어요. 이금이씨 글은 멋부리지 않으면서도 맘에 와닿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섬사이 2007-05-14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디뽕님은 칭찬쟁이선생님~ ^^ 그리고 애가 셋이라서 책 읽을 시간이 생기는 것 같아요. 다른 취미활동을 전혀 할 수가 없거든요. 아직 어린 막내때문에.. ㅠ.ㅠ

로고스님,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이금이님이 아이들의 생활을 참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진솔하게 쓰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맡고 계신가봐요? 우리 큰딸이 중2라서 그런지 중2 담임선생님이시라니 괜히 더 반갑네요.

홍수맘 2007-05-1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보고 싶어지네요. 홍이를 핑계로 제가 먼저 구해 읽어봐야 겠어요. 요즘 님 덕분에 이책저책 보고 싶은 책이 많아졌답니다. ^ ^.

섬사이 2007-05-15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예요. 물론 현실은 이야기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래도 이런 책을 통해 엄마로서의 마음가짐을 한 번 가다듬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중학교 1학년 반올림 3
수지 모건스턴 지음, 이정임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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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고 이름 붙여진 공간은 아이들에게 참 많은 생각과 느낌들을 표출해내게 하는 곳임엔 틀림없다.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학교가 아이들의 주요생활공간인 만큼 그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단 생각이 든다.

첫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이보다 내가 더 심난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은 본격적인 고생길로 접어든다는 뜻이었고,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의 막이 오른다는 의미였다.  딸아이도 조금 큰 치수의 교복을 입고 어정쩡한 모습을 하고  첫 중학생활을 두렵고 어색한 마음으로 견뎌나갔던 것 같다. 서양도 그런 점에선 별반 다를 게 없는 듯, 수지 모건스턴의 <중학교 1학년>에 등장하는 마르고의 허둥대는 모습들이 친근하다.  적극적이고 활발하고 오지랖 넓은 마르고가 좌충우돌하며 시행착오를 겪어가는 모습들이 사랑스럽다. 

이 책에서 수지 모건스턴은 특유의 익살과 위트가 넘치는 문체로 학교교육의 헛점들을 꼬집고 있다.  예를 들어 학교의 개혁을 의논하려고 모인 자리에서 어른들은 "가능성"을 모색하기 보다 "불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도네 국어선생님의 독서카드를 이용한 독서독려법도 그렇다.  아이들은 "깃털처럼 가벼운 경량급 책"들을 찾아 체면치레 정도의 장수채우기를 하고 독서의 질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는 선생님은 카드 매수에 따라 상을 준다. 

내 오감을 모두 동원해서 알고 받아들여 깨우쳐 진정 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앎을 덮어두고 암기만을 목적으로 한 지식 습득 수준의 앎만을 강요하는 학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어느날  마르고는 국어시간에 프로방스 지방에 부는 서른 아홉가지의 바람의 이름을 배운다.  마르고는 그 바람의 느낌까지도 알고 싶어서 프로방스 알피유 산꼭대기에 올라가 그 바람들을 하나하나 맞아보며 그 바람의 이름을 불러보는 상상을 하지만 말도네 선생님은 바람의 이름들을 암기해오라는 숙제만 던져주고는 바람에 대한 공부를 끝내버리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학습태도와 성적과 점수만을 가지고 마르고네 반 아이들이  "형편없는 아이들"이라고 단정지어버리지만 아이들이 만든 선생님들에 대한 성적평가도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은 교육이라는 것이 교사와 제자들간의 상호작용이라면 제자들이 "형편없다"는 것이 어찌 학생들만의 잘못이겠는가라며 모건스턴이 우리에게 던지는 재치있는 질문인 것같다. 

마르고는 몽상에 잠긴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학습 계획을 짜고 함께 공부하는 그런 앎의 터전을, 모임을, 현장을..... 그럼 역사-지리나 자연 과학이 와전히 동떨어진 별개의 과목만은 아닐것이다.  또 문학이며 그 밖의 과목들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될 것이다.  언젠가 자연 과학 시간에 '종의 진화'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다. 그럴 때 국어 시간에 거기에 맞춰 찰스 다윈 시대의 책들을 공부할 수 있었다면,  역사 시간에 그 시대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탐구할 수 있었다면....."

"불가능성"만을 모색하는 어른들의 '심사숙고'보다 마르고의 몽상이 더 나아보인다.  

학창시절 내내 영어를 공부하고도 외국인을 만나면 입 한 번 못떼보고 허둥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만 치더라도 12년동안 음악과 미술과 체육을 배웠건만 어느 음악가 하나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방법과 즐거움조차도 배우지 못했고, 자신있는 운동종목 하나 갖지 못했다.  12년 동안 왜 그런 것들이 생활 안으로 스며들어올 수 없었을까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왜 그런 것들은 학교 밖에서 따로 배워야 했을까.. 왜 학교 안에선 자극 받지 못했을까.. 안타까운 생각들은 계속 이어진다.

"과연 학교가 우리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주장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가야 할 길을 일러 줄 수 있을까?
그 길을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밝혀 줄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학교에서 인생을 알 수 있을까?
인생의 비밀을 배워서 터득할 수 있을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마르고가 던지는 질문들이 가볍지 않은 무게로 다가온다.  이제 가능성을 모색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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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7-05-1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정말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 들 때가 많아요. 그런데 학교에 있다 보면 그런 것에 점점 익숙해지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서 무서워요. ㅠ.ㅠ

섬사이 2007-05-13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선생님들만의 잘못은 아닌 것 같아요. 학교라는 제도 뒤에 숨은 뭔가 검은 힘같은 게 있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가능성은 선생님들만이 모색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학교와 정부, 사회 전체가 나서서 모색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려운 거겠죠? 그러니 앤디뽕님, 힘내세요. 몇몇 이해하기 어려운 선생님들도 있지만 정말 존경스런 스승님도 많이 계시다는 걸 알고 있어요. 절망적인 교육현실과 힘든 여건 속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애쓰시는 선생님들께 진심어린 존경의 마음을 보내드리고 싶어요. 학부모들이 희망을 걸고 믿을 수 있는 분들은 교육현장에서 땀흘리시는 선생님들밖에는 없답니다. 힘내세요.

알맹이 2007-05-13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분이 있다면 감사할 일이지요, 정말. 그런데 사실 저도 '검은 힘'을 계속 느껴 왔어요.. 이번 주말에 연수를 하나 듣고 왔는데 거기서도 참 우리 나라 교육 현실에 대해 많은 절망을 느꼈답니다. 그래도 주말에 안 쉬고 자발적으로 와서 연수를 듣는 70여 분의 선생님들과,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멋진 강사 선생님들을 보며 희망도 얻었습니다. ^^

섬사이 2007-05-14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희망이 살아있으면 언젠간 변하겠지요. 대한민국 선생님들 화이팅입니닷~~!!!
 
초콜릿 전쟁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0
로버트 코마이어 지음, 안인희 옮김 / 비룡소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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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해두지만, 이 책은 희망이나 꿈, 낭만 같은 것들로 예쁘장하게 포장된 세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세상은 아름다운 거라는 달콤한 속삭임도, 정의는 끝내 승리한다는 열정적인 외침도 없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다.  책을 읽는 동안 세상의 치부를 들여다보고 확인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트리니티라는 명문사립 남자고등학교.  평범한 고등학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작가는 그 속에 악의적인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담아놓았다.

  
레온선생은 예측할 수 없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인 인물이다.  초콜릿 판매를 통해 학교의 재정상태를 해결하고 학교에서의 자기 위치를 확고히 함으로써 교장이라는 한 단계 높은 자리로 올라서기를 바라는 야망가이며 사랑으로 채워야할 선생님이라는 직분의 자리를 권력욕으로 채우고 군림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레온선생의 변덕스러운 비열함 앞에 당황하며 눈치를 보고 위축된다.

트리니티고등학교의 또하나의 축, 야경대.  학교 내의 비밀서클로서 그들만의 규칙으로 학교를 지배하는 또 다른 계층이다.  학생들을 지배하고 선생님들을 농락하는 이 잔인한 통제세력의 중심에는 아치라는 냉혹하고 지능적인 책략가가 있다.  그는 야경대의 명령권을 거머쥔 실세이다.

교내의 막강한 권력의 두 축 - 레온선생과 야경대 -가 초콜릿 판매에 연합전선을 구축하면서 학교 안의 위선과 폭력, 집단적 광기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제리 르노, 속임수 없는 "풋볼의 정직한 부딪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미술 작업에서 "깔끔한 구도와 각도가 반듯한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소년이다.  그러나 약제사인 아버지의 일상을 바라보며 삶이 "그토록 따분하고 지겹고 지루"하게 마냥 흘러가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소년이기도 하다. 

제리는 레온선생이 요구하는 초콜릿 판매를 거부한다.  처음에 그것은 레온선생과 야경대에 대한 저항도 아니었고, 그저 흘러갈 뿐인 지루한 삶에 아무 생각없이 자신을 맡기기 싫다는, 자기 삶의 주도권을 거머쥐고 싶다는 자기 의지의 표현일 뿐이었다.  아니면 되풀이되는 어머니의 죽음의 환영 반대편에서 자기가 살아있음을 증명해보이고 싶은 욕구의 표출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제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레온선생과 야경대에 반기를 들고 저항한 영웅이 되었다가 다시 그들의 계략에 의해 학교의 숭고한 목표를 방해하는 경멸의 대상이 되어 아치의 계획으로 만들어진 집단적인 폭력의 광기 앞에 철저하게 망가지고 무너지고 버림받는다.

이야기는 레온선생과 야경대의 실세인 아치, 그리고 제리를 주축으로 전개되지만 이 책에 가장 중요한 인물들은 따로 있다.  그건 트리니티 고등학교의 다른 학생들이다.  제리가 홀로 우리 사회에 대한 메타포인 트리니티 고등학교의 구조적 모순과 악의적인 권력에 맞설 때 400명의 다른 학생들은 무얼 했을까.. 그들은 방관자였다.  제리가 초콜릿 판매를 거부하기 전까지, 레온선생의 경멸어린 시선을 견디며 '아니오'라고 대답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거부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조차도 생각하지 못하는 방관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립적 방관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부패한 권력을 가진 세력이 자기를 장악하도록 순순히 스스로를 내맡기고, 욕심과 잔인함, 폭력의 광기로 영혼과 정신이 물들 때까지 스스로를 방관해버린 것이다.  스스로를 방관하고 초콜릿 판매에 호응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안위와 평화는 지킬 수 있었을지 모르나  악의 부패한 권력앞에 무릎을 꿇었으며 철저한 복종을 맹세하고, 열광했던 것이다.

쓰러진 제리는 친구 구버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네가 해야 할 일을 잘하라고 말하지.  하지만 진짜로는 그런 뜻이 아냐.  그들은 네가 너의 일을 하기를 바라지 않아.  네 일이 동시에 그들의 일이 아니라면 말이야.  웃기는 일이지만, 구버, 속임수야.  우주의 질서를 방해하지마라, 구버,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어." 
사회적 모순에 저항했던 제리는 결코 승리하지 못했다.

이 책이 보여주는 이 불편한 진실을 언제까지나 감추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악의 기세등등함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하여 언젠가 세상에 나아가 부패한 사회의 모순과 권력을 마주하게 되거든 그것에 동조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지켜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절대로 스스로를 방관해선 안된다고 가르쳐주고 싶다.  이 책이 보여주는 절망을 현실에서 되풀이하진 말라고,  트리니티 고등학교의 나머지 400명의 학생들 중 하나가 되진 말라고, 할 수만 있다면 제리의 편이 되어주라고, 그래서 이 세상에 희망이 숨쉬게 해달라고, 그렇게 간절히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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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04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잠 들어 있는 이 책! 꺼내야 겠어요. ^ ^.

비로그인 2007-05-0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흠... 멋있다. 잘 읽었어요 추천! ^^

섬사이 2007-05-07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읽으면서 어쩐지 <호밀밭의 파수꾼>의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책이었어요.

체셔님, 관심을 갖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