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빨래를 훔친 엄마 트롤 - 스웨덴 편 세계의 전래동화 (상상박물관) 2
안나 발렌베리 지음, 욘 바우어 그림, 박인순 옮김, 엄해영 감수 / 상상박물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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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림에 반했다.  유럽 서북부의 나라 스웨덴의 전래동화를 모아 놓은 이 책의 페이지를 20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손꼽힌다는 욘 바우어(1882-1918)가 그린 그림들이 장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색의 색조로 섬세하게 그려진, 고전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림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나를 오래된 옛이야기의 세계 속으로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얼마 전에 <안인희의 북유럽신화>라는 책을 구입했었는데 그 책 속에는 아서 래컴이라는 사람의 그림이 많이 담겨 있었다.  욘 바우어와 아서 래컴의 그림은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한데, 욘 바우어의 그림이 훨씬 유머 있고 동화적이라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 그림들을 원화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의 가로 길이가 일반적인 책의 길이에 비해 2cm 긴 편인데 그 덕에 책을 펼쳤을 때 시원해보이는 느낌이 들고, 욘 바우어의 그림도 아래 위 여백을 적당히 남겨두고 인쇄되어 그림보기에 답답하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북유럽권의 국가 스웨덴의 동화답게 북유럽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트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 트롤이라는 괴물이, 심술궂고 못생겼지만 익살맞기도 하고, 간혹 사람과 친구가 되어 도움을 주기도 하고, 못된 사람을 혼내주기도 하는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비슷해서 정감있다. 게다가 심술궂고 못된 짓을 많이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면 그 사람에겐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순박한 원칙을 지키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동화, 그것도 오래된 옛 동화이다 보니 권선징악이라든가 착한 사람은 예쁘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못생겼다는 왜곡된 통념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신데렐라나 백설 공주동화에 비하면 그 왜곡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뒤바뀐 아이’라는 이야기에서 비앙카 마리아라는 아리따운 공주와 트롤 아이가 갓난아기 때 뒤바뀌는데 예쁘고 착한 / 못생기고 나쁜 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공주는 공주의 자리에 트롤은 트롤의 자리에 있어야 모든 것이 조화롭고 평화롭고 행복해진다는 메시지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외에 전통적인 미덕들, 선행, 성실, 노력, 친절, 정직, 용기, 겸손, 절제, 보은, 신의, 양심, 지혜 등이 재미있는 이야기와 아름다운 그림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교훈적이라는 무게감 없이 유쾌하고 즐겁다. 

요즘 영화에서나 게임에서나 물리쳐야할 악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트롤이 심술궂긴 하지만 익살스럽고 최소한의 순박한 양심(도움을 준 사람에겐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을 가진 북유럽 전래 동화 속 등장인물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것도 욘 바우어의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좋은 경험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게임 속 흉악한 트롤의 모습 위로 욘 바우어가 그린 트롤의 친근한 모습이 겹쳐지기를!)

'상상박물관의 세계의 전래동화'라는 시리즈가 궁금해졌다.  중국, 필리핀, 미국, 일본, 노르웨이 편이 나와있는 것 같은데 다른 책들도 이 책처럼 그림과 내용이 모두 좋은 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아울러 세계 각국의 보석 같은 전래동화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줌으로써 그들의 내적 억압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옛이야기들을 소홀히 대한 듯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이야기의 원천, 상징과 은유가 가득한 세계, 잊고 있었던 할머니의 무릎베개와 다정하게 이마를 어루만지는 따스한 손길에 대한 기억 속으로 나를 데려다준 책이었다.  소중한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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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8-04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리뷰는 다정하면서 조근조근 할말을 다 해요. 그래서 좋아요. ^^

섬사이 2007-08-04 07:56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같은 분 때문에 모자라는 제가 서재꾸릴 용기를 얻어요. 고맙습니다.

네꼬 2007-08-0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서 래컴 그림을 좋아해요. 근데 욘 바우어는 처음인 거 있죠. 확 궁금.

섬사이 2007-08-07 23:51   좋아요 0 | URL
어머나, 네꼬님 아서 래컴을 아시는군요. 저는 <안인희의 북유럽신화>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눈여겨 본 게 전부예요. 제 개인적으로는 욘 바우어의 그림이 더 따뜻하고 정감있어요. 이 책 미리보기가 되던데, 관심있으면 한 번 보세요. 제 서재 이미지도 이 책에서 따왔어요. 저작권이네 뭐네 하는 거에 안걸리려나... ^^
 
주먹 곰을 지켜라 웅진책마을 53
김남중 지음, 김중석 그림 / 우리교육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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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표지 날개에 적혀있는 지은이 소개를 보고는 살며시 웃었다.  작가 소개는 대부분 19**년에 태어나 OO학교를 졸업하고 무슨 무슨 작품으로 등단해서 지금까지 이런 저런 상을 받았다는 식의 글들인데, 김남중이라는 이 작가에 대한 소개글은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지금은 광주에서 살고 있습니다.’라는 글 뒤에 작가가 좋아하는 것들을 열 가지도 넘게 주욱 나열하고 있다.  그 중엔 상추쌈이나 농구공 같이 매우 일상적이고 친근한 것들도 포함하고 있어 작가에 대한 거리감이 좁혀지는 느낌이었다.  틀에 박히지 않은 자기 소개 방법이 참신해서 마음에 들었다.  이 작가가 가지고 있을 유연한 발상에 대한 기대가 스멀거리며 일어서기도 했고.

기대했던 것처럼 이야기 속에서 작가의 유연한 상상력이 드러났다.  ‘주먹곰’이라는, 인간의 가장 이기적이고 잔인한 본성의 극단적 표출이라 할 수 있는 전쟁으로 인한 자연 파괴 때문에  생겨난, 아주 작은 돌연변이 반달곰이라는 설정에서부터 작가적 상상력의 가지 뻗기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마치 작은 곰 인형처럼 보일 게 틀림없는 주먹곰을 둘러싸고 유전자 복제 기술을 통해 애완동물로 상품화하려는 ‘자연의 친구’라는 거대기업과 그에 맞서 예전의 커다란 본래의 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꿈을 간직한 주먹곰을 지켜주려는 강수와 우림이, 강수의 삼촌 명석과 오 피디의 이야기가 박진감 있게 펼쳐져 있어 흥미로웠다.  게다가 책을 읽어 나갈수록 작가의 상상력의 가지가 제법 탄실한 현실비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느껴져 흐뭇했다. 작가의 상상력과 현실 비판의 성공적인 줄타기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작가는 상상과 현실비판의 줄을 오가면서 애완동물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자연의 친구’라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이름의 거대한 다국적 기업을 통해 인간의 이기적인 사고방식, 현대 물질문명이 갖고 있는 파괴적인 속성, 자본의 횡포를 보여주는가 하면, 그 반대로 강수와 우림이라는 어린이를 통해 상처받은 자연의 회복과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따스한 공동체 의식을 보여준다.

애완동물이 뭐냐는 ‘자연의 친구’ 한국지부 사장 마이클 오의 질문은 현대 문명사회 속에서 서로 단절된 인간의 외로움을 아프게 꼬집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질수록 애완동물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기는 거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사귈 때 드는 노력과 혹시 받을지 모르는 상처를 염려하지.  대신 간편하게 돈을 주고 애완동물을 사면 마음이 편하거든.  마음에 드는 동물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고, 바꿀 수 있고, 마음에 안 들면 처분할 수도 있지.”(p.34) 라고 말하며 “사람이 해야 할 역할을 동물에게 기대”하는 인간의 외롭고 딱한 처지를 드러내는 글은 섬뜩하다.  지금은 ‘애완동물’이라는 말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좀 더 끈끈하고 책임 있는 사랑을 기저에 둔 용어가 등장하긴 했지만 그 또한 거꾸로 생각해보면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서 ‘반려’를 기대해야 하는 사람의 외로운 처지를 확연히 드러내는 말이 아니던가.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사람이 동물에게서 ‘인간다움’을 기대하고자 하는, 그리하여 동물에게서 ‘동물다움’을 빼앗는, 인간이 저지르는 이기적 횡포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기를 가만히 빌게 되는 대목이었다.


또한 오 피디의 입을 통해 “사람들이 방송에서 보기를 원하는 것은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깨끗한 자연이었다.  방송에서 깨끗한 자연을 내보내면 사람들이 몰려와 망가뜨린다.  그래 놓고 사람 손때가 너무 많이 묻었다고 투덜거린다.”(p.124)며 자연을 ‘즐기기’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대책 없이 안일하고 이기적인 자연관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주먹곰을 통해 우리도 곰의 한 갈래였음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변한 곰이다. ..... 너도 변한 곰이라고 했다. 사실인가?”(p.126)하는 상처받은 자연의 상징이라는 주먹곰의 물음에 우리 인간도 주먹곰과 같은 자연의 한 갈래임을, 자연과 내가 하나임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칫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현실비판적인 요소들은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 여러 재미난 요소들과 어우러져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첨단 장비들은 작가의 상상력의 대표적 산물인데, 목소리를 잃은 아이 강수가 이용하는 말나팔이라든가 사람과 곰이 서로 대화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곰 통역기, 자연의 친구 연구소가 개발한 자연산 곰 수십 마리에서 추출한 신경 성분을 농축해 만든 곰 동화제, 그리고 임 팀장 측에서 주먹곰을 찾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첨단 장비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런 상상의 첨단 장비들은 때로 그 엉뚱함에 읽는 이의 웃음을 자아내게도 하고 때로는 그 기발함에 유쾌한 기분을 맛볼 수 있게 하여 현실비판의 무거움을 덜고 재미를 더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꼭지산을 영구 자연림화 하는 결말에서는 마음속으로 열렬히 찬성의 박수를 보냈다. 오래 전 동강댐 건설을 두고 개발을 지지하는 측과 환경단체 간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우연한 기회로 동강을 가보게 되었는데, 그 때 내 마음이 꼭 그랬다.  여기는 인간 출입 금지 지역으로 만들어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세계 각국이 모여 자국 영토의 일정 비율을 개발 금지, 인간 접근 금지 지역으로 지정하는 국제법이나 조약을 제정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와 똑같은 상상을 한 작가를 만나고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박진감 넘치는 재미와 깊이 있는 울림을 함께 담아낸 동화를 읽게 되어 즐거웠다.  우리 동화를 읽을 때마다 느꼈던 과감한 상상력의 부족이랄까, 하는 한계의 벽을 허물려는 시도와 미화된 현실이 아닌 비뚤어지고 뒤틀린 부조리한 현실 속의 인간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진지함이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고 있는 창밖을 바라보며 지리산에 방생되었던 반달곰들을 생각해본다.  얼마 전에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본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의 손에 길들여진 동물이 야생에서 겪었을 고초가 새삼 안쓰럽게 다가왔다.  얼마 전 신문에선 앞으로 10년 후엔 개구리를 볼 수 없을 것이란 기사도 읽었었다. 사람의 손은 참 여러 가지 일을 하고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구나 하는 생각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 동화가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연과 생명에 대한 애정과 경외감을 심어줄 수 있기를, 그래서  편리에 길들여져서 개발만이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속에 두려움 없이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했던 우리 기성세대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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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2007-07-26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주먹곰.. 보관함에서 꺼내주고 싶네요.

섬사이 2007-07-26 21:53   좋아요 0 | URL
향기로운님, 다시 지난 번 이미지로 바꾸셨네요. 어쩐지 반가운걸요.^^

홍수맘 2007-07-26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좋은 책 추천받고 가네요.
정말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우리 아이들이 꼭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섬사이 2007-07-26 21:54   좋아요 0 | URL
네,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

네꼬 2007-07-27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리뷰 너무 좋다. 추천! (저도 책날개에 작가 소개 그렇게 하는 거 넘 좋아요.)

섬사이 2007-07-28 07:32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네꼬님.. 잘 지내고 계시죠?

2007-08-01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6 0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섯 손가락 이야기 산하작은아이들 15
로랑 고데 외 지음, 백선희 옮김, 마르탱 자리 그림 / 산하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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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 이 책의 일러스트다.  사람의 손이 참 재미있고 다양하게 그려져 있어서 그 그림을 훑어보는 것으로 이 책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  다섯 손가락으로 이렇게 저마다 다른 상상을 펼쳐갈 수도 있구나.  나라면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고 펼쳐보였을까.  
모두 여섯개의 이야기(맺음말 '손가락들의 왕'까지 포함해서)가 들어있는데 어쩌면 손가락이라는 국한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꾸려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 

'엄지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처럼 손가락들끼리 나 잘났다고 싸우는 이야기는 좀 식상한 면이 없지 않았으나 따돌림을 당하던 엄지가 큰손톱 아저씨에게 "아저씨 생각에는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p.10)라고 묻고 큰손톱 아저씨가 "네가 꼭 해야 할 일을 하면 되겠지."(p.10)하고 대답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기타줄처럼 지리링 울리기도 한다.

검지를 위한 한편의 시 '검지는 재주가 많아'는 검지의 다양하고도 생생한 표정(?)들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것도 개구쟁이 꼬마 아이의 검지 손가락.  내 신체의 말단에 붙어 있는 작은 손가락 하나가 아니라 부지런히 움직이고 바쁘게 일을 하는 살아있는 손가락을 말이다. 

중지를 위한 동화 '네 이름은 중지란다'   손가락 중의 큰형 중지는 다른 네 손가락의 비난과 놀림에도 과묵한 큰 형님이다.  큰 형님의 외로움을 아는가.  태어날 때부터 점지받은 큰형님으로서 가운데에서 중용을 미덕을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어려움은?  그런 큰형님 중지에게 빨간 바탕에 까만 점을 가진 노래하는 딱정벌레(틀림없이 무당벌레겠지?)가 찾아온다.  중지는 딱정벌레에게 자기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딱정벌레는 과묵한 중지가 웃을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엄지와 검지와 약지가 폭로하는 중지에 대한 불평을 중지의 멋진 장점으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딱정벌레와 중지와의 환상적인 조화는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게으름뱅이 약지에 대한 변호문 '약지가 게으름뱅이라고요?'는 이 책 중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동화다.  못하는 게 없고 세상에 없는 물건도 뚝딱 만들어내는, 사랑도 하지 못할 만큼 아주아주 바쁜 사람 마뉘엘의 약지 손가락 크라파투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과는 다르게 아무 하는 일도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이 자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크라파투는 어느날 파티를 벌이다가 쫓겨날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주인 마뉘엘에게 아름다운 짝 벨라를 소개해주고는 그 보답으로 오히려 반지를 끼는 사랑의 손가락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세상을 바라보고 기억해두는 일을 함부로 여기지 말라는, 어찌보면 예술가들에 대한 찬가일 수도 있는 이야기다. 

온갖 지저분한 일을 도맡아 처리해야 하는 새끼손가락의 이야기 '노노의 새끼손가락, 리리'. 노노라는 꼬마는 새끼손가락을 이용해서 코도 후비고 귀지도 파낸다. 근데 노노의 새끼손가락 리리가 어느날 화가 났다.  다른 손가락들의 놀림도 참고 늘 노노가 원하는 곳으로 가던 리리가 노노의 귓 속에 박혀서 몸을 부풀리고는 빠져 나오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일종의 파업시위인 셈..  리리는 서로 대화를 하고, 일도 좀 나눠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여러분도 새끼손가락으로 산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조금은 알아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나도 말하고 싶다.  엄마로 산다는 게, 주부로 산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조금은 알아달라고.  서로 대화도 하고 일도 좀 나눠서 하자고. ^^

맺음말 '손가락들의 왕'이야말로 자기 잘났다고 싸우는 손가락들의 모습이다.  비교적 곱고 예쁜 모습으로 등장 했던 다섯 손가락들이 언성을 높이고 서로 싸우고 욕을 하며 비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서로 자기 잘났다는 싸움의 결말은 다들 못났다로 끝을 맺고 만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자기 잘난 싸움의 모든 결말이 그런 것처럼.

책 뒷부분의 작가 소개글들이 재밌다.  틀에 박힌 작가 소개가 아니라 이 책에 글을 쓴 다섯작가가 각자 자기 소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을 해보면, 손잡고 함께 해야 할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는 작가의 말도 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좋아서 교사 일을 그만두고 서점을 운영하며 수많은 책들과 함께 하는 생활의 즐거움을 누렸다는 작가의 이야기에서 삶이 변화하는 순간에 반짝이는 빛을 느끼기도 했다.

외국작가가 쓴 책은 우리나라 작가가 쓴 책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좀더 경쾌하고 밝고 유머러스하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정서를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슬픔까지도 축축 늘어뜨리지 않고  밝음으로 전환시키는 그들의 힘이 때론 부럽기도 하다.  다섯 손가락의 이야기를 우리나라 작가들이 썼다면 어떤 이야기가 탄생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그 둘을 함께 비교해 본다면 정말 재밌고 흥미로울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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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6-14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마지막 구절의 외국 작가들의 책의 특징, 공감합니다. 생각이 한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성은 우리에게는 조금 부족한 점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섬사이 2007-06-14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의 느낌이 아니었나봐요. hnine님도 그렇게 느끼신 걸 보면.. <해리포터>가 처음 나왔을 때, 다른 건 몰라도 작가의 그 생생한 상상력만큼은 절 깜짝 놀라게 했더랬어요. 정말 감탄스러웠죠. 그 상상력의 끝이 궁금해서 해리포트 시리즈를 출간될 때마다 사서 읽고 있다니까요. ^^ 우리나라는 아직 자유로운 상상의 여건이 부족한 거 같죠?
 
무대로 간 빨간 모자 산하작은아이들 16
조엘 포므라 지음, 백선희 옮김, 마르졸렌 르레이 그림 / 산하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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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동극의 희곡을 읽어본 경험이 없다. (그게 뭔 자랑이라고..쯧쯧) 내가 읽어 본 희곡이라고는 셰익스피어 작품 몇 개, 그 다음엔 예전에 동문선에서 <현대영미희곡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책 네 권, 그리고 입센의 <인형의 집>이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러니 아동극의 희곡을 받아든 내가 잠시 당혹스러웠던 점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더구나 연극이란 게 희곡의 내용과 짜임새도 중요하겠지만, 연출가의 능력이나 배우의 역량에 따라서도 변화무쌍하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희곡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안목의 그 깊이는 헤아릴 길이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고전적인 <빨간 모자>와 가장 먼저 차별화 되는 점은 아이와 엄마와의 관계에 좀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자세하게 다루고자 했다는 점이다.  언제나 바빠서 아이에게 관심을 주지도, 아이와 놀아주지도 못하는 엄마와 온갖 방법으로 엄마의 관심을 끌려는 아이 '빨간 모자'가 있다.  아이는 엄마가 예쁘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괴물 흉내를 내고 있을 때조차도. 어쩌면 아이가 혼자서 할머니 댁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도 엄마의 관심을 끌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엄마가 내준 과제를 해결하고 마침내 홀로 할머니 댁을 향해 집을 나선다.  산길을 가는 부분에서 혼자 길을 나서는 아이의 불안함과 설레임이 잘 드러난다.  너무 불안해서 집으로 돌아가 버릴까 하다가 깜짝 놀랄 할머니 생각을 하고는 금세 마음을 다잡는 아이의 마음이 잘 묘사되었다.  그 다음엔 원래 빨간모자 이야기대로 늑대를 만나는데 이 부분에서 늑대는 꽤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음흉한 매력이라는 게 있다면 이 늑대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늑대는 할머니 댁으로 가서 할머니를 잡아먹고는 아이를 기다린다.  마침내 아이가 할머니 집으로 들어서고, 할머니인 체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늑대와 아이는 이야기를 나눈다. 늑대는 어서 아이를 잡아먹으려고 하지만 아이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다.  원래의 빨간 모자 이야기보다 훨씬 섬뜩하고 긴장감 있는 분위기가 흐른다.  연극무대의 팽팽한 긴장, 어두운 무대 위에서 빨간 모자와 침대에 누운 늑대에게로만 뻗어나간 동그란 조명의 빛, 객석의 조용함, 겁에 질린 듯한 아이의 목소리와 아이를 얼른 잡아먹지 못해 짜증이 난 듯 점점 음흉함을 드러내는 늑대의 목소리, 그 긴박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불현듯, 빨간 모자를 침대로 끌어들이려는 늑대에게서 성폭력의 위험도 느꼈다면 나의 지나친 비약일까.  이 세상의 모든 빨간모자들에게 늑대가 누워있는 침대를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싶은 생각을 나만의 느낌으로 묻어두라고 한다면야 굳이 고집부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새로운 장르의 글을 접하면 늘 신선함을 느끼게 된다.  예전에(꽤 오래된 예전이지만)  처음에 밝혔던 희곡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했던 것 보다 더 큰 희곡의 재미를 만끽하며  즐겁게 읽던 기억이 난다.  희곡에 대한 호기심은 비록 만화책 <캔디캔디>의 테리우스 때문이었지만,  흐흠... 요즘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편독'이라는 말이다.  음식물 섭취에서도 '편식'이 나쁘듯이 아이들에게 너무 한 장르, 한 주제에 국한된 책만 읽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에서 생긴 말일 것이다. 그런 의도에서 본다면 '희곡'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가장 관심받지 못하는 장르이고 유아나 어린이들을 위한 요즘 공연물들의 양적인 성장을 생각할 때 아이와 함께 재미있는 희곡작품을 찾아 읽어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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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도 학교에 가야 한다 난 책읽기가 좋아
수지 모건스턴 글, 세르주 블로흐 그림, 김진경 옮김 / 비룡소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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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뤼에스테르 공주는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신는다.   드레스를 풍선처럼 부풀게 만드는 철사 속옷도 벗어던지고, 치렁치렁한 드레스 치맛단도 싹뚝 잘라버린다.  궁전에서 벗어난 공주는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고 세상 속에 섞여들며 공주가 아닌 "아이"가 된다.

지엄하고 근엄한 왕의 뼈대만 남았을 뿐 파산한 왕 조르주114세는? 말그대로 폼생폼사의 왕으로, 그것도 경의를 표하는 사람도 없고 왕이라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그저 왕이라는 허울에 목을 맨 스스로의 왕일 뿐이다.  자기가 왕이라는 사실은 조르주 114세 그 자신에게만 중요한 사실이 된지 오래다.  그러나 그 틀을 깨지 못할 뿐 아니라 그 틀을 지켜내기 위해 안감힘을 쓴다.   알뤼에스테르 공주가 혹시라도 공주라는 사실을 잊을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자기의 온 존재가 "왕"이라는 직함(?) 하나에 걸려 있기라도 하듯.

때가 잔뜩 탄 석고상처럼 굳어버린 존재인 조르주 왕과 포르투나 왕비, 그리고 알뤼에스테르 공주가 살아 있는 존재가 되는 순간은 "왕"이라는 폼생폼사의 틀을 깨는 순간이다.   알뤼에스테르 공주가 구두와 철사 속옷을 벗고 기다란 치맛단을 잘라내는 순간,  조르주 왕이 알뤼에스테르 공주의 성화에 못이겨 학교로 입학서류를 내러 집을 나서는 순간, 그리고 포르투나 왕비가 딸의 운동화를 사러 시장으로 나서는 그 순간.

나에게 그 순간은 언제일까.  나는 어떤 틀 속에 갖혀 있을까.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싶은 모습과 내가 되고자 하는 나의 모습, 그 틀 속에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을 가둬두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나 또한 조르주 왕처럼 남들은 전혀 신경도 안쓰는 허울 뿐인 내가  만들어 놓은 그 틀에 스스로 갇혀서 전전긍긍하며 내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지금의 내모습 그대로 세상으로 나아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웃고 즐기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남들에게 내 눈꼽도 보여주고, 내 이에 낀 빨간 고추가루도 보여주고,  책을 베고 자다가 뺨에 생긴 책 모서리 자국도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래서 내가 너랑 다를 게 없고, 너 또한 나만큼의 단점을 가진 사람이란 걸 서로 확 펼쳐보이면 우리가 서로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수지 모건스턴의 책을 읽다보면 가벼움 속에 담긴 삶의 짜릿한 진실들과 만나곤 한다.  너무 무겁지 않고 경쾌하게 느껴지는 마법에 걸린 삶의 진실, 그것을 읽는 즐거움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이 순간이 바로 나의 구두와 철사속옷을 벗어던지고 기다란 치맛단을 잘라내며 행복을 만나는 그 순간일지도 모른다.  모두 벗어던지고 경쾌하고 유괘하게 걸음을 옮기는 나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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