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손가락 이야기 산하작은아이들 15
로랑 고데 외 지음, 백선희 옮김, 마르탱 자리 그림 / 산하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 이 책의 일러스트다.  사람의 손이 참 재미있고 다양하게 그려져 있어서 그 그림을 훑어보는 것으로 이 책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  다섯 손가락으로 이렇게 저마다 다른 상상을 펼쳐갈 수도 있구나.  나라면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고 펼쳐보였을까.  
모두 여섯개의 이야기(맺음말 '손가락들의 왕'까지 포함해서)가 들어있는데 어쩌면 손가락이라는 국한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꾸려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 

'엄지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처럼 손가락들끼리 나 잘났다고 싸우는 이야기는 좀 식상한 면이 없지 않았으나 따돌림을 당하던 엄지가 큰손톱 아저씨에게 "아저씨 생각에는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p.10)라고 묻고 큰손톱 아저씨가 "네가 꼭 해야 할 일을 하면 되겠지."(p.10)하고 대답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기타줄처럼 지리링 울리기도 한다.

검지를 위한 한편의 시 '검지는 재주가 많아'는 검지의 다양하고도 생생한 표정(?)들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것도 개구쟁이 꼬마 아이의 검지 손가락.  내 신체의 말단에 붙어 있는 작은 손가락 하나가 아니라 부지런히 움직이고 바쁘게 일을 하는 살아있는 손가락을 말이다. 

중지를 위한 동화 '네 이름은 중지란다'   손가락 중의 큰형 중지는 다른 네 손가락의 비난과 놀림에도 과묵한 큰 형님이다.  큰 형님의 외로움을 아는가.  태어날 때부터 점지받은 큰형님으로서 가운데에서 중용을 미덕을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어려움은?  그런 큰형님 중지에게 빨간 바탕에 까만 점을 가진 노래하는 딱정벌레(틀림없이 무당벌레겠지?)가 찾아온다.  중지는 딱정벌레에게 자기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딱정벌레는 과묵한 중지가 웃을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엄지와 검지와 약지가 폭로하는 중지에 대한 불평을 중지의 멋진 장점으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딱정벌레와 중지와의 환상적인 조화는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게으름뱅이 약지에 대한 변호문 '약지가 게으름뱅이라고요?'는 이 책 중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동화다.  못하는 게 없고 세상에 없는 물건도 뚝딱 만들어내는, 사랑도 하지 못할 만큼 아주아주 바쁜 사람 마뉘엘의 약지 손가락 크라파투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과는 다르게 아무 하는 일도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이 자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크라파투는 어느날 파티를 벌이다가 쫓겨날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주인 마뉘엘에게 아름다운 짝 벨라를 소개해주고는 그 보답으로 오히려 반지를 끼는 사랑의 손가락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세상을 바라보고 기억해두는 일을 함부로 여기지 말라는, 어찌보면 예술가들에 대한 찬가일 수도 있는 이야기다. 

온갖 지저분한 일을 도맡아 처리해야 하는 새끼손가락의 이야기 '노노의 새끼손가락, 리리'. 노노라는 꼬마는 새끼손가락을 이용해서 코도 후비고 귀지도 파낸다. 근데 노노의 새끼손가락 리리가 어느날 화가 났다.  다른 손가락들의 놀림도 참고 늘 노노가 원하는 곳으로 가던 리리가 노노의 귓 속에 박혀서 몸을 부풀리고는 빠져 나오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일종의 파업시위인 셈..  리리는 서로 대화를 하고, 일도 좀 나눠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여러분도 새끼손가락으로 산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조금은 알아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나도 말하고 싶다.  엄마로 산다는 게, 주부로 산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조금은 알아달라고.  서로 대화도 하고 일도 좀 나눠서 하자고. ^^

맺음말 '손가락들의 왕'이야말로 자기 잘났다고 싸우는 손가락들의 모습이다.  비교적 곱고 예쁜 모습으로 등장 했던 다섯 손가락들이 언성을 높이고 서로 싸우고 욕을 하며 비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서로 자기 잘났다는 싸움의 결말은 다들 못났다로 끝을 맺고 만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자기 잘난 싸움의 모든 결말이 그런 것처럼.

책 뒷부분의 작가 소개글들이 재밌다.  틀에 박힌 작가 소개가 아니라 이 책에 글을 쓴 다섯작가가 각자 자기 소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을 해보면, 손잡고 함께 해야 할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는 작가의 말도 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좋아서 교사 일을 그만두고 서점을 운영하며 수많은 책들과 함께 하는 생활의 즐거움을 누렸다는 작가의 이야기에서 삶이 변화하는 순간에 반짝이는 빛을 느끼기도 했다.

외국작가가 쓴 책은 우리나라 작가가 쓴 책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좀더 경쾌하고 밝고 유머러스하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정서를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슬픔까지도 축축 늘어뜨리지 않고  밝음으로 전환시키는 그들의 힘이 때론 부럽기도 하다.  다섯 손가락의 이야기를 우리나라 작가들이 썼다면 어떤 이야기가 탄생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그 둘을 함께 비교해 본다면 정말 재밌고 흥미로울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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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6-14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마지막 구절의 외국 작가들의 책의 특징, 공감합니다. 생각이 한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성은 우리에게는 조금 부족한 점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섬사이 2007-06-14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의 느낌이 아니었나봐요. hnine님도 그렇게 느끼신 걸 보면.. <해리포터>가 처음 나왔을 때, 다른 건 몰라도 작가의 그 생생한 상상력만큼은 절 깜짝 놀라게 했더랬어요. 정말 감탄스러웠죠. 그 상상력의 끝이 궁금해서 해리포트 시리즈를 출간될 때마다 사서 읽고 있다니까요. ^^ 우리나라는 아직 자유로운 상상의 여건이 부족한 거 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