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고 조리하며 배우는 과학
리틀쿡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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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요리와 과학을 접목시킨 책이 있다.  <요리로 만나는 과학 교과서>라는 책인데 아들 녀석의 장래희망이 요리사인데다 과학을 좋아해서 작년인가 재작년 쯤 사줬었다.  그 때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요리보다는 실험과 과학이론에 대한 설명 쪽에 비중을 크게 두어서 요리 쪽이 좀 심심하다는 것이었다.  요리 이야기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주로 요리 재료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실험이 주된 내용이었다고나 할까? 대신 좀 더 어려운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적어도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의 아이들에게 적당할 것 같다.

그에 비해서 <요리하고 조리하며 배우는 과학>은 우선 요리와 과학 양 쪽의 균형을 참 잘 맞췄다는 느낌이 든다.  또 책의 구성과 편집 방법에 있어서 다양한 사진 자료와 쉬운 설명, 각 꼭지의 적절한 배치 등등이 한눈에 쏙쏙 들어오게 깔끔하고 그 내용이 무척 실용적이다. 그래서 <요리하고 조리하며 배우는 과학>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정도의 아이들이 요리를 통해 과학에 접근할 수 있는 활용도가 큰 학습 안내서라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엄마와 아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책을 들여다보며 실험하고, 실험내용에 대해 이야기 하고나서 즐겁게 요리하는 아기자기하고 다정한 장면들이 구체적으로 연상이 될 정도다.  그것은 아마도 이 책에 ‘아동 요리 지도사’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 세 사람(남은정, 유경희, 장선경)의 축적된 경험과 노련함이 짙게 배어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집에서 아이와 함께 요리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아이들에게 농담 삼아 “너희들, 엄마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는데, 엄마가 아빠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야.  엄마는 매일 칼과 불을 다루고 살잖니.”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만큼 부엌일이라는 게 위험하기도 한데다가 순식간에 부엌이 난장판이 되어버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괴로운 일인 탓이다.  그런 나에게 저자는 요리는 ‘오감을 이용하는 활동이며 어지간한 놀이보다도 더 재미있는데다, 그 과정을 통해 기초 학습 능력도 기를 수 있는, 효과가 확실한 통합 교육’이라며 아이들이 요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재미와 학습 효과를 자랑한다.  그래도 아이들 교육에 웬만한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학습효과’를 위해서 아이들에게 부엌을 내준다는 건 좀 어렵지, 하며 망설이고 있는 나였다.  그런데 “커가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하루가 다르죠. 오늘의 모습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오늘을 채워주는 일인데, 어질러지는 것이 겁나서 못 한대서야 말이 되겠습니까?”며 감성에 호소하는 저자의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얼마 전 세 아이들과 도너츠를 만들 때 세 돌배기 막내의 진지한 눈빛과 완성된 도너츠들 속에서 자기가 만든 도너츠를 찾아들고는 기뻐하던 표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식품들의 다양한 색깔과 각각의 영양소(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그리고 채소와 과일을 각 장의 주제로 삼아서 서른 가지의 요리와 실험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요리가 기껏해야 도너츠나 주먹밥 정도였던 내 빈약한 요리의 경계를 확장시켜 주었다.  게다가 요리하면서 적양배추로 리트머스 시험지를 만들어 산과 염기에 따른 색의 변화를 이야기한다거나, 가을이 되면 단풍이 지는 나뭇잎의 비밀을 밝혀준다거나, 밀가루 반죽을 하며 글루테닌을 이야기하고, 마요네즈를 만들며 계란 노른자의 레시틴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엄마의 위상을 한껏 높이고 아이들로부터 존경의 시선을 얻을 수 있다면, 내 잘난 척의 대가로 부엌이 좀 어질러지는 일 따위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일석삼조의 책이다.  아이들 반찬과 간식을 해결할 수도 있고, 요리를 하며 아이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도 있고, 과학 지식까지 전달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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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X파일을 펼쳐보다 집요한 과학씨, 웅진 사이언스빅 18
가와사키 유키시게.책깨비.양선하 지음, 미에다 미나코.백종민 그림, 곽영직 감수 / 웅진주니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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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조금 더 신뢰가 가는 몇몇 출판사들이 있다.  책 제목만 보고 살까 말까 망설여질 때 표지에서 출판사를 확인하고는 ‘아,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구나. 괜찮겠네..“하며 책을 구입할 때도 있다.  내겐 ’웅진‘도 그런 출판사들 중 하나다.  풍부한 사진자료, 깔끔한 편집, 세련된 디자인 등등이 ’웅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래서인지 어린이 과학 관련 도서에서 더 신뢰가 가는 출판사이다.

집요한 과학씨를 처음 만났다. ‘웅진 사이언스빅 시리즈’의 열여덟 번째 책인데 제목에 ‘외계인 X파일’이란 글자가 눈길을 끌었다. ‘외계인’이니 ‘X파일’이니 하는 낱말이 아이들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더없이 좋겠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외계인의 존재여부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슨 이야기를 끌어내려는 걸까, 하는 궁금증으로 책을 펼쳤다.  1장에서는 외계인의 존재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주 어딘가에 지구처럼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별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생명체가 살기 위한 조건(대기, 온도, 먹을 것, 물)을 알아본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조건을 갖춘 행성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우리 태양계에 있는 8개의 행성과 목성의 위성들, 혜성과 유성을 언급하며 우주전체로 관심을 넓혀간다. 

2장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부터 근세 과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외계 생명체에 대해 어떤 사유를 해왔는지를 살펴보고 그동안 인간이 외계인의 존재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외계인을 화두로 삼아서 우주와 생명체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고 있는 셈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책으로 그 접근 방법이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집요한 과학씨의 집요함이 느껴지지 않은 점은 좀 아쉽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아직 용어의 개념이 확실하지 않을 때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페이지마다 작은 박스를 만들어 행성과 위성, 혜성, 유성, 태양계와 은하계 등등에 대한 용어를 정확하고 쉽게 설명해 준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너무 일러스트에 의존하다보니 사진자료가 없다는 점이다. 일러스트가 아이들에게 더 친근하고 쉽게 받아들이는 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실제 태양의 사진, 행성과 위성의 사진들을 본다면 더욱 신비로워하며 경탄하지 않을까 싶다. 책 뒷부분에라도 사진자료를 덧붙여준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 지식을 모두 알려 주기보다는 지식 탐험의 출발점’이 되고자 한다는 이 책의 출판의도를 고려한다면 시시콜콜한 용어설명을 따지고 사진자료의 부재를 트집 잡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지식탐험의 출발점으로 삼고 이 책을 통해 발현된 호기심을 증폭시켜 나갈 수 있다면 용어에 대한 궁금증이나 사진자료 따위 금세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조금만 더 집요하고 친절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미련처럼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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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둥글 지구촌 문화 이야기 함께 사는 세상 2
크리스티네 슐츠-라이스 지음, 이옥용 옮김, 안나 침머만 그림 / 풀빛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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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니 어쩌니 말이 무성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단순히 넓은 세상을 보여준다는 것 말고 세계의 다양성을 느끼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지도 하나 실어 놓지 않은 (대륙의 모양을 삽화처럼 실어 놓은 것은 제외하고) 용감함을 충분히 눈감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대륙의 크기 순서대로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오세아니아, 5대륙으로 나누어 소개되는 이야기에는 단순히 어떤 나라가 있고, 인구가 몇이고,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담겨 있는 게 아니라, 그 나라 아이들의 놀이, 공부, 음식, 학교와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친근한 문체로 소개되어 있어 아이들이 세계 각국의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이야기에서는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과 아프리카 대륙에서 부족들 간의 분쟁이 많은 이유, 서구 열강들이 제멋대로 그어놓은 반듯반듯한 국경선이 초래한 비극들, 빈곤과 미성년자의 노동력 착취, 서구 열강의 식민통치의 결과로 생긴 언어의 다양화 등 세계 문화의 어두운 배경까지 아이들 수준에 맞춰 잘 담아냈다는 것 또한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오세아니아 대륙 이야기에서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인 아보리진에 대해 비교적 긴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것,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과 캐나다처럼 부유한 나라의 아이들과 함께 남미 대륙의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꿈을 잃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뤄져 있어서 풍요로운 나라의 아이들이건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이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소중한 존재들임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들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강대국 앞에서 우리의 자존감을 잃지 않는 것, 제3세계의 어려움에 눈감지 않는 것, 아프리카나 남미 국가들의 분쟁과 가난의 원인이 그들의 무능 탓이라기보다 강대국의 식민통치와 이권유지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세계의 다양성을 차별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바라볼 줄 아는 것 말이다.  지식을 나열한 문화 이야기가 아니라서 오히려 이 책이 세계 각 국의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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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 스패로우 선장의 모험 Carlton books
존 매튜스 지음 / 삼성당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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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우리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이 지른 감탄의 소리들을 들려주고 싶다.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 만화 ‘원피스’ 등에 매료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해적>은 또 다른 상상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나 다름없었다.



거칠고 비밀스런 모험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겉표지부터가 압권이다. 빨간 루비 눈알과 금니 하나가 반짝이는 해골이라니... 게다가 군데군데 불에 그을린 듯한 표지그림은 해적선 깃발 한 폭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느낌이다.





표지를 넘기면 속표지에 붙어 있는 편지 봉투. 해골인장 스티커를 살살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안의 내용을 펼쳐보면 해적규약이 적혀있다.  이 책을 읽는 순간부터 우리는 해적이란 말이지!!! 책 주인의 서명까지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적어 넣으며 얼마나 뿌듯해할지 안 봐도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이 책 속에는 이런 아기자기한 장치들이 여러 군데 숨어 있다. 

해적은 ‘버커니어’, ‘코세어’, ‘해변의 형제들’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가장 처음에 일어난 해적활동이 기원전 7세기 지중해와 에게 해에서 벌어진 약탈행위라니 해적의 역사가 생각보다 참 유구하구나, 싶다.  1660년부터 1730년에 이르는 시기가 ‘해적의 황금시기’라고 한다.  아마도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도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해적의 옷차림을 살펴보는 것도 즐겁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해적 패션을 살펴보면, 잭 스패로우가 얼마나 패션감각이 뛰어난 해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한 쪽에 해적 속어가 책 속의 작은 책처럼 붙어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 2탄의 제목 ‘망자의 함’은 관을 의미한다고 적혀있다.  ‘꼬리가 아홉 달린 고양이’라든가 ‘달콤한 장사’, ‘사수의 딸에게 키스하다’, ‘밧줄 춤을 추다’ 라든가 하는 속어가 설명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예를 들어,
‘자, 왈왈이를 잘생기게. 이제 달콤한 장사를 벌여야지. 이번 장사에서 장화를 빼돌리거나 하는 썩은 달걀이 발견되면 장사가 끝난 다음 사수의 딸에게 키스를 해야 할 거야. 그것도 꼬리가 아홉 달린 고양이가 덤벼들테니 당하기 전에 조심하는 게 좋을걸. 얼마 전에 바닷개밧줄 춤을 춘 것 모두 알고 있지? 다들 조심하도록 해. 닥쳐! 달콤한 장사를 벌이기 전에 굵은 밧줄부터 꼬자구~“ 란 말을 듣는다면 그것이 해적들의 속어임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보라색으로 표기한 글들은 모두 해적 속어들이지만 해석을 일일이 달기는 곤란하다.) 단, ’젠장 맞을 니 눈깔‘이라고 하면 그건 욕이니까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알아두는 게 좋을 듯.



해적들의 깃발을 ‘졸리 로저’라고 부른다는 것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해적 깃발이 있다는 것도.  개인적으로 잭 랙컴의 졸리 로저가 가장 맘에 든다.  어떤 건 좀 우스운 것들도 있는데, 악명을 떨쳤다는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의 깃발도 우스운 깃발 중 하나다. 







유명한 해적들을 소개받는 것도 재미있다.  헨리 모건은 초상화에서부터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데 해적질하던 사람이 기사 직위까지 받고 자메이카의 총독의 자리에까지 올랐다니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앤보니나 메리리드 같은 여성해적들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끌리는 해적은 윌리엄 키드다.  해적 허가증을 가지고 해적 노릇을 하던 윌리엄 키드는 해적 행위에 대한 죄로 체포되었을 때 허가증을 이유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항해 중에 허가증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수 없어 결국 1701년 교수형을 당한다.  그것도 시체가 썩을 때까지 쇠사슬에 매달려 있는 교수형을.  그런데 200년이 흐른 뒤 윌리엄 키드의 해적 허가증이 런던의 정부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큰딸과 나는 뭔가 음모의 냄새가 난다면서 “이거 잘 만들면 이야기가 되겠는데~”하며 좋아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결과 윌리엄 키드가 해적으로 활동하던 당시는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앤여왕 시기이다.  18명의 아이를 모두 사산하거나 일찍 잃은 앤여왕의 시대이니만큼 왕위의 후계자를 두고 정치적 혼란이 극에 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윌리엄 키드 선장의 죽음에 대한 비밀에 흥분이 되기도 했다.  혹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다음 이야기의 소재로 이 이야기는 어떨까 하며 큰딸과 함께 공상의 나래를 펼치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해적들이 항구에 내리면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도박이었다고 한다.  18세기 카드 세 장이 첨부 되어있었는데 카드 뒷면은 잭 랙컴의 졸리 로저가 나부끼는 해적선이 바다를 배경으로 떠있는 그림이다. 

해적들은 어떻게 사라지게 된 걸까?  윌리엄 키드 선장의 의문의 교수형이 집행되 뒤 영국정부는 해적 행위를 영원히 없애겠다는 결심을 새로이 했다고 한다. (역시 음모와 계략의 냄새가 진동한다.) 반 해적행위에 대한 법안이 모든 식민지 국가에서 통과되고 효력이 발휘되기 시작하자 18세기 말에 이르러 해적들의 전성기는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책에 들어 있는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의 현상수배 포스터와 1722년 바르톨로뮤 로버츠의 부하들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문이 그 당시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전달해 주고 있다.




지금도 해적들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엄청난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이름을 떨친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 윌리엄 키드, 헨리 모건의 그 막대한 재산의 행방이 아직 묘연하다고 한다.  맨해튼 근처의 카디나 섬이나 노스캐롤라이나 해안 근처의 오크라코크 섬에서 해적의 보물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데..  이 책에서도 프랑스에서 1758년에 만든 자메이카 보물지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해적들 덕분에 보물을 거머쥔 진짜 주인공들은 바로 해적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영화로 재생산해낸 사람들이 아닐까.  이를테면  매력적인 해적 존 실버 선장이 등장하는 <보물섬>을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라든가, 길버트와 설리반이 쓴 희극적인 오페라 <펜젠스의 해적들>이라든가, ‘캐리비언의 해적’ ‘후크선장’등의 해적영화를 만든 헐리우드 영화사들 말이다.




해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흥미로운 사진 자료와 첨부자료, 그리고 세련된 그래픽과 디자인으로 치장한 책을 통해 만나는 일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에게 이 책을 꺼내 보여주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핸드폰에 이 책의 사진을 담아 학교에 가져가기도 했다. (학교 친구들이 사진으로 찍어오라고 부탁했다나...) 지금이야 해적을 낭만적인 모험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실제로 해적과 맞닥뜨린다면 끔찍하고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허구로서의 해적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서의 해적을 소개받으면서도 여전히 그 이름 위에 낭만을 덧씌우는 아이들을 보며 그저 웃음 짓는다.

해적은 이제 현실이 아니라 꿈이며 낭만으로 변한지 너무 오래라서 굳이 아이들에게서 그걸 빼앗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08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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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동자 모모타로 - 일본 편 세계의 전래동화 (상상박물관) 5
플로렌스 사카데 지음, 요시스케 구로사키 그림, 강지혜 옮김 / 상상박물관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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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들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인데... 내가 이 그림을 어디서 본 걸까?  무척 낯익은 화풍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어릴 적에, 그러니까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에 부모님이 사주신 동화책 전집이 떠올랐다.  그림동화, 안데르센동화, 아라비안나이트, 이솝우화를 비롯해서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등의 각 나라별 전래동화를 엮은 열다섯 권 안팎의 전집이었는데 그 중 일본 동화책에 이런 그림이 그려있지 않았나 싶다.  그림 작가의 소개 글을 보니 1905년 출생의 작가다. 아마도 이미 작고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내가 어릴 때 본 그 동화책의 삽화를 그린 장본인이 이 분이라고 해도 이상한 게 없을 성 싶다.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전래동화라면 늘 그렇듯이 일본도 예외 없이 권선징악과 보은의 주제, 용감하고 착하거나 어리석고 심술궂은 인물들, 교훈적인 줄거리 등이 등장한다.  역사상 우리나라와 참 껄끄럽게 얽힌 나라 일본.  우리의 전래동화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일본의 옛날이야기들을 읽고 나니 이렇게 곱고 예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어째서 잔혹한 전쟁을 벌였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꼼꼼히 살펴보니 우리 옛이야기와 다른 점이 있기도 했다.  일본 특유의 사무라이 문화라고 해야 할까?  ‘복숭아동자 모모타로’에서는 집을 떠나 도깨비들을 무찌르러 가는 모모타로가 무사 복장을 하고 ‘일본인’이라고 쓰인 깃발을 들고 칼을 차고 떠난다.  보물을 싣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모타로의 손에는 일장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부채가 들려있다.  ‘이쑤시개 무사’에서도 작은 무사들이 이쑤시개를 가지고 싸움을 벌이고 영주가 딸의 방에서 기다란 검을 빼들고 앉아있는 그림도 있다. ‘한 치 동자’도 검으로 도깨비를 물리치고 심지어 우리 전래동화 ‘팥죽할머니와 호랑이’의 호랑이 응징장면이 연상되는 이야기인 ‘게와 원숭이’에서 못된 원숭이를 응징하는 절구와 밤송이, 호박벌까지도 그림에서는 옆구리에 검을 차고 있다.

우리나라 전래동화에도 장군이나 검을 쓰는 무사들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던가... 금방 떠오르는 이야기가 없다.  아기장수 우뚜리라든가 김덕령 이야기라든가 홍길동전, 전우치전 등등이 있지만 주로 탐관오리를 벌하거나 왜적에 맞서는 이야기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고, 비록 대결의 이야기라고 해도 결국엔 도교 사상 쪽으로 맞물리는 게 대부분인 것 같다.  더구나 주인공들은 ‘승리와 영광을 거머쥔 영웅’보다는 ‘비운의 영웅’ 쪽에 가깝고 내용도 옛이야기나 전래동화라고 보기엔 이야기 구조도 좀 길고 복잡해서 아주 어린 아이들이 읽을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의 전래동화 자체에도 무사 분위기를 풍기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1905년 출생의 요시스케 구로사키라는 이름의 그림 작가가 혹시 일본 군국주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검이나 무사 그림 속에 ‘일본’에 대한 군국주의적 암시가 많이 들어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해는 없으시기를..  이 책 속에는 소박하고 친근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많다.  무사 분위기를 풍기는 이야기는 서너 편에 불과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 것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일본의 전래동화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은 것 같다.

하나 더 사족을 붙이자면 예전에 읽은 동화에 대한 이론서에서 우리가 친숙하게 알고 있는 도깨비가 사실은 일본의 ‘오니’라는 글을 보았다.  원래 우리나라 도깨비는 다리가 하나 뿐인 모습인데, 어느 틈엔가 일본의 ‘오니’가 우리나라 도깨비로 둔갑을 해버렸다고. 이 책의 옮긴이의 말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잃어버린 우리 도깨비의 모습을 빨리 찾아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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