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빨래를 훔친 엄마 트롤 - 스웨덴 편 세계의 전래동화 (상상박물관) 2
안나 발렌베리 지음, 욘 바우어 그림, 박인순 옮김, 엄해영 감수 / 상상박물관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림에 반했다.  유럽 서북부의 나라 스웨덴의 전래동화를 모아 놓은 이 책의 페이지를 20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손꼽힌다는 욘 바우어(1882-1918)가 그린 그림들이 장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색의 색조로 섬세하게 그려진, 고전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림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나를 오래된 옛이야기의 세계 속으로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얼마 전에 <안인희의 북유럽신화>라는 책을 구입했었는데 그 책 속에는 아서 래컴이라는 사람의 그림이 많이 담겨 있었다.  욘 바우어와 아서 래컴의 그림은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한데, 욘 바우어의 그림이 훨씬 유머 있고 동화적이라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 그림들을 원화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의 가로 길이가 일반적인 책의 길이에 비해 2cm 긴 편인데 그 덕에 책을 펼쳤을 때 시원해보이는 느낌이 들고, 욘 바우어의 그림도 아래 위 여백을 적당히 남겨두고 인쇄되어 그림보기에 답답하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북유럽권의 국가 스웨덴의 동화답게 북유럽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트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 트롤이라는 괴물이, 심술궂고 못생겼지만 익살맞기도 하고, 간혹 사람과 친구가 되어 도움을 주기도 하고, 못된 사람을 혼내주기도 하는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비슷해서 정감있다. 게다가 심술궂고 못된 짓을 많이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면 그 사람에겐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순박한 원칙을 지키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동화, 그것도 오래된 옛 동화이다 보니 권선징악이라든가 착한 사람은 예쁘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못생겼다는 왜곡된 통념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신데렐라나 백설 공주동화에 비하면 그 왜곡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뒤바뀐 아이’라는 이야기에서 비앙카 마리아라는 아리따운 공주와 트롤 아이가 갓난아기 때 뒤바뀌는데 예쁘고 착한 / 못생기고 나쁜 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공주는 공주의 자리에 트롤은 트롤의 자리에 있어야 모든 것이 조화롭고 평화롭고 행복해진다는 메시지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외에 전통적인 미덕들, 선행, 성실, 노력, 친절, 정직, 용기, 겸손, 절제, 보은, 신의, 양심, 지혜 등이 재미있는 이야기와 아름다운 그림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교훈적이라는 무게감 없이 유쾌하고 즐겁다. 

요즘 영화에서나 게임에서나 물리쳐야할 악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트롤이 심술궂긴 하지만 익살스럽고 최소한의 순박한 양심(도움을 준 사람에겐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을 가진 북유럽 전래 동화 속 등장인물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것도 욘 바우어의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좋은 경험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게임 속 흉악한 트롤의 모습 위로 욘 바우어가 그린 트롤의 친근한 모습이 겹쳐지기를!)

'상상박물관의 세계의 전래동화'라는 시리즈가 궁금해졌다.  중국, 필리핀, 미국, 일본, 노르웨이 편이 나와있는 것 같은데 다른 책들도 이 책처럼 그림과 내용이 모두 좋은 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아울러 세계 각국의 보석 같은 전래동화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줌으로써 그들의 내적 억압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옛이야기들을 소홀히 대한 듯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이야기의 원천, 상징과 은유가 가득한 세계, 잊고 있었던 할머니의 무릎베개와 다정하게 이마를 어루만지는 따스한 손길에 대한 기억 속으로 나를 데려다준 책이었다.  소중한 책이 될 것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7-08-04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리뷰는 다정하면서 조근조근 할말을 다 해요. 그래서 좋아요. ^^

섬사이 2007-08-04 07:56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같은 분 때문에 모자라는 제가 서재꾸릴 용기를 얻어요. 고맙습니다.

네꼬 2007-08-0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서 래컴 그림을 좋아해요. 근데 욘 바우어는 처음인 거 있죠. 확 궁금.

섬사이 2007-08-07 23:51   좋아요 0 | URL
어머나, 네꼬님 아서 래컴을 아시는군요. 저는 <안인희의 북유럽신화>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눈여겨 본 게 전부예요. 제 개인적으로는 욘 바우어의 그림이 더 따뜻하고 정감있어요. 이 책 미리보기가 되던데, 관심있으면 한 번 보세요. 제 서재 이미지도 이 책에서 따왔어요. 저작권이네 뭐네 하는 거에 안걸리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