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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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소망이 있었지.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 그걸 이루었어.  고달프게 살았지만 참 행복하기도 했어.  소망 때문에 오늘까지 살았던 거야.  이제는 날아가고 싶어.  나도 초록머리처럼 훨훨,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

"아, 미처 몰랐어! 날고 싶은 것, 그건 또 다른 소망이었구나. 소망보다 더 간절하게 몸이 원하는 거였어."

알을 품고 엄마닭이 되어보는 것이 소망이었던 양계장 철장 속 닭, 잎싹..자유롭진 않았지만 안전과 먹을 것이 보장되었던 양계장 철장에서 도망나와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과 굶주림, 추위 속에서 엄마가 되는 자기 소망을 이루어낸 용감하고 강인한 닭이다. 

잎싹이 계속 나에게 물었다.  네 소망은 뭐냐고.

그러게 내가 간절히 원했던 소망이 뭐였더라?  지나온 삶 어딘가에서 놓쳐버렸을 내 소망 한 덩이가 문득 궁금해졌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 치뤄야할 댓가가 너무 겁이 나서 내 스스로 슬그머니 놓아버렸던 건 아니었을까.. 그랬던 것 같다.  적당히 타협하고 그럴듯한 자기합리화의 장치로 갖고 있기 불편한 소망을 지워버렸던 것 같다. 

잎싹이 소망을 이룬 댓가가 뭔데? 초록머리를 자기 아기로 만든 것? 결국 초록머리도 잎싹을 떠났잖아. 자기 동족의 무리 속에 섞여서 잎싹을 버려둔 채로 날아가버렸잖아.  깃털이 빠지고 몸은 비쩍 여위고, 편안히 쉴 보금자리 하나 제대로 가져보지도 못하고 늘 가슴 조이며 사는 게 소망을 이룬 댓가였잖아.  잎싹이 고작 뭐라 그랬는 줄 알아?

"소중한 것들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잎싹은 모든 것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야만 했다.  간직할 것이라고는 기억밖에 없으니까."

"나는 괜찮아.  아주 많은 걸 기억하고 있어서 외롭지 않을 거다"

그것도 빈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허전함에 제대로 서있기 조차 힘들어 하면서 겨우 '기억' 하나에 위로를 받으려 했다구.  그럴거면 소망을 이루려고 기를 쓸 이유가 어디 있어? 무슨 의미가 있는데? 차라리 헛간에 사는 암탉이 낫다구. 우아하게 품위를 지켜가며 암탉으로서의 자기 자리를 확실하게 유지하면서 편안하게 사는 걸.

그래도 어느 날 헛간에 사는 오리무리의 우두머리가 잎싹을 보고 말한다.

"헛간의 암탉과는 다른 것 같아. 훨씬 당당해진 것 같고, 우아하고.  참 이상도 하지. 깃털이 숭숭 빠졌는데도 그렇게 보이다니!"

그리고 잎싹을 향해 고개를 조금 숙여 존경을 표시했다. 

갑자기 파울로 코엘료의 글이 생각났다.  꿈들을 죽일 때 '마지막 세 번째 징후는 평화입니다.' 하던..

"삶이 안온한 일요일 한낮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에게 대단한 무엇을 요구하지도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고는 우리는 자신이 성숙해졌다고 여깁니다.  젊은 날의 환상은 내려놓고 개인적이고 직업적인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또래의 누군가 아직도 인생에서 이러저러한 것들을 원한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 놀라게 되는 거죠.  하지만 실상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지요.  우린 자신의 꿈을 위해 싸우기를 포기한 겁니다."  

아마도 나는 내 소망을, 꿈을 죽였나 보다.  마흔의 나이에 갑자기 이제 흔적도 남지 않은 꿈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뭘까... 잎싹이 부럽다. 난 일요일 한낮의 안온함이 좋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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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12-16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참 좋앗어요..저도..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했던 책이 아닌가 싶어요..멋진 리뷰또한 좋아요..

섬사이 2006-12-18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큰딸 5학년 때 사준 책인데, 울딸이 그 때 '엄마, 이책 너무 감동적이야.'하더라구요. 이 책도 두 번째 읽은 건데, 처음 읽었을 때랑 또 다른 느낌이네요. 모든 책을 두세번은 읽어봐야 하나봐요. 큰일이죠?
 
작은 책방 길벗어린이 문학
엘리너 파전 지음, 에드워드 아디존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길벗어린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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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은 책방>을 읽다 보면 안데르센이나 그림형제의 동화를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결이 곱고 아름답고 반짝이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그저 그렇게 고운 결만 따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흠칫 놀라게 된다.  그저 아름답기만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고..

<작은 책방>의 이야기에는 갇힌사람들이 등장한다.  꼬마 케이트, 일벌레 나라의 존왕자님, 일곱 공주의 어머니인 왕비님.. 그들 모두 갇혀있으면서도 미지의 밖깥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케이트나 존왕자님, 일곱공주의 어머니인 왕비를 제외한 이야기 속의 다른 인물들은 모두 밖깥세상을 두려워한다. 

존왕자님의 경우 갇혀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물리적 공간에서 갇혀있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제약으로 인해, 예를 들면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서쪽 나라로 가면 안된다는 규범 같은 것들로 인해 심리적으로 갇혀있다.  '서쪽 숲 나라' 이야기에서 서쪽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서쪽 나라를 궁금해하며 엿보려 한다.  

'꼬마 케이트'에서도 마찬가지다. 케이트는 목장도 강도 숲도 가면 안된다고 금지당한다.  케이트가 모시고 있는 도 아씨는 그 곳에 가면 큰일이 난다며 두려워한다. 

'일곱번째 공주님'이야기에서 왕비님은 집시 출신이다. 궁궐 밖의 세상을 그리워하지만 임금님은 왕비님이 도망칠까 두려워 절대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두려워하는 이들이 갖고 있는 것은 선입견, 고정관념, 편견, 스스로 만들어낸 피해의식 들이다.  그것을 부수는 이들은 아직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갖고 있지 않은, 꿈을 간직한 꼬마, 어린이들이다.  그리고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거둬냈을 때 세상은 아름답고 자유로운 공간으로 열려진다.  '서쪽 숲 나라'에서 서쪽 울타리를 넘어서자 아름다운 숲이 펼쳐진다.  글에 쓰여진 대로라면 낙원이 따로 없을 정도다.  서쪽 울타리의 경계가 무너지고 서쪽 숲나라가 낙원으로 바뀐 건 '시'로 표현된 꿈 때문이다.  그래서 늘 꿈이 준비되어 있는 어린이들은  서쪽 울타리를 넘자 마자 낙원을 보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대신들이나 어른들이 괜찮다고 여겼던 북쪽나라, 남쪽 나라, 동쪽 나라가 서쪽 나라보다 더 끔찍했다는 것이다. 그건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눈은 사물을 올바로 보지 못하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뜻일게다.   하녀 셀레나가 아름다운 공주님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도 존왕자님의 셀레나에 대한 고정관념이 허물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셀레나를 하녀가 아닌 자기 배필로 바라볼 수 있는 열린 눈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꼬마 케이트'는  '길'이라는 고정된 규범을 벗어난다. '길'은 목적지까지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안정된 코스다. 그러나 케이트는 오래도록 꿈꿨던 목장과 강과 숲으로 들어서는 쪽을 선택한다.  목장의 풀빛여인도 강에 사는 '강의 임금님'도 숲의 '춤추는 젊은이'도 무섭고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마음의 벽, 선입견, 고정관념을 허물면 우리가 두려워하고 피했던 대상은 친절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변화한다. 

'일곱 째 공주님'이야기에서 왕비님은 '머리를 길러야 한다'는 절대적인 규율을 내버린다.  일곱번째 공주의 머리를 짧게 자르는 대신에 자유와 꿈을 허락함으로써 일곱번째 공주에게 열린 세상을 선물하는 것이다. 

이쯤되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허물어야 할 서쪽 울타리 같은 것은 없는지,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면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사람을 내 선입견이나 편견 때문에 멀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나 사소한 관습이나 가치들 때문에 자신을 옭아매고 내 스스로의 틀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달을 갖고 싶어하는 공주님'이나 '보리와 임금님',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달을 갖고 싶어하는 공주님'에선 등장인물 거의 다가 자기만의 논리에 빠져서 궤변을 늘어놓거나 그저 다수무리의 의견에 편승해서 무작정 쫓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리와 임금님'에서 이집트의 라임금님은 권력과 부의 힘을 과신하는 오만한 인물로 그려졌다.   

그러고보면 엘리너 파전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짧막한 이야기들에 어쩌면 이렇게 많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을까..

먼지가 뽀얗게 내려 앉은 책더미 속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엘리너 파전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창문으로 환하게 들어오는 햇살 속에서 금빛 먼지들이 무리져 춤추고 꿈을 꾸는 듯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쫓아가는 여자아이.  문득 나도 그런 책방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실과 구분되는 조금은 비밀스런 공간,  방해받지 않고 책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는 마법같은 공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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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세계명화이야기
삼성출판사 편집부 지음 / 삼성출판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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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절판된 책을 가지고 리뷰를 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라는 책을 읽다가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났다.  큰 아이 유치원 다닐 무렵 사준 책이다.  이 책과 함께 <어린이를 위한 세계명화>라고 지O사에서 나온 책도 구입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책이 아이들이 보기에 훨씬 수월하다.  수월하다는 의미는 책의 크기에 맞게 그림의 크기가 시원시원할 뿐 아니라 인쇄의 질도 더 좋고 그림에 대한 설명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체로 써놓았기 때문이다.

큰아이의 경우 아뇰드 브론치노의 작품인 <시간과 사랑의 비유>라는 그림을 재미있어 했다.  아마 그림만 보았으면 벌고벗고 있는 여자와 아이들만 얼핏보고 넘겨버렸을 그림인데, 저자 김선정씨가 이야기처럼 풀어놓은 글을 통해 수수께끼처럼 숨어있는 그림들의 의미를 알고는 무척 재미있어 했다. 

절판이 되었다니 무척 아쉽다.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아이들은 전시된 작품들 앞에서 조용히 머물러 있는 일 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아이들과 같이 미술전시회를 가면 작품앞에 머물러 감상할 틈도 없이 아이따라 휙휙휙 지나쳐버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출구에 와있게 된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올 때면 얼마나 허무한지.. 그럴 때 저자 김선정씨처럼 재미있고 쉽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해줄 수 있다면 아이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작품의 외형 뒤에 숨겨진 넓은 세계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음악분야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주회가 마련되어 있는 것을 접하게 된다.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라든가 곡이나 악기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가며 진행되는 이야기 음악회등이 그것이다.  예술의전당이나 국악원 등에선 상설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미술분야에서는 아이들에게 만들기나 그리기를 지도하는 것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안다.  예술분야에서는 배우기 보다 즐기기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아이가 그것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미술관련서적과 전시들이 양적으로도 다양해질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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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닝스는 꼴찌가 아니야 사계절 아동문고 16
앤터니 버커리지 지음, 최정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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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닝스는 꼴찌가 아니야>를 읽으며 내내 즐겁고 유쾌했다.  제닝스와 더비셔가 벌이는 말썽을 따라가다보면 '맞아, 어릴 땐 충분히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어.'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짓게 되는 것이다.

영국의 전교생이 79명밖에 되지 않는 조그마한 초등학교의 기숙사 - 온통 남자아이들 뿐이다 -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제닝스와 수줍음 많고 소심한 더비셔의 일상은 늘 사건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사건들을 제닝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건 아이들의 생각과 심리를 작가가 너무 잘 알고 써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건 하나 하나를 어쩌면 그렇게 애들 눈높이에 맞춰 구상해 써갔는지.. 감탄스럽다. 

한 가지 더, 제닝스와 더비셔가 말썽을 일으키는 배후엔  말썽을 일으키도록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상황들이 있다.  제닝스와 더비셔는 말썽을 일으킬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상황안에서 자기나름대의 대처법으로 움직였을 뿐인거다. 

정해진 시간 안에 달리기를 마치지 못하면 벌을 주겠다는 선생님 때문에 버스를 타게 된것이고, 자유시간에 아무 일도 안하고 그냥 노는 꼴을 못보는 선생님 때문에 우표사건이 터진 것이며, 학교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설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극장으로 제닝스와 더비셔를 들여보낸 삼촌 때문에 극장사건이 일어난 것이니까..

오히려 어른들 특히 윌킨스 선생님 같은 분은 제닝스와 더비셔의 말을 무시하고 귀담아 듣지 않는 잘못을 저지르고, 권위와 규율, 체면 등을 너무 중시하는 바람에 아이들의 순수한 생각을 짓밟는 우를 범하는 문제 선생님이다.  그런데 정말 살다보면 윌킨스 선생님 같은 어른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느닷없이 야단부터 치고 보는 어른들 앞에선 누구나 문제아가 되어버리고 마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 윌킨스 선생님이 연극에서 헨리 5세의 대사를 외우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은 통쾌하다.  물론 윌킨스 선생님이야 선생님의 권위를 내세워 공연 당일 날 연극무대에 오르지 않겠다며 오히려 제닝스를 야단쳤지만 말이다.

그러니 제닝스는 꼴찌도 아니고, 천부적인 말썽꾸러기라고도 할 수 없다.  차라리 단순하다고 할 만큼 순수하다.  도토리에서 떡갈나무를 보는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라고 했던가?  아이들의 장난이나 실수를 말썽이나 문제행동으로 보지 않고 그 뒤에 숨은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도량을 가져야겠다.  아이들은 우리가 어떤 눈으로 바라보아 주는지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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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소년 - SF 미스터리, 4단계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3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프란츠 비트캄프 그림, 유혜자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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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소년, 인스턴트 아이, 결점을 제거한 고도의 생산과정을 거친 완제품이 바로 콘라트이다.  정말 티끌만한 결점 하나 없이 네모 반듯 완전무결한 아이다. 학교에선 늘 '보기드문 천재'요 '모든 어린이의 모범'이라는 극찬을 받아서 어른들을 기쁘게 하는 아이다.  그래서 정이 안가기도 하지만..  반면에 바톨로티 부인은 "차분하게, 단정하게, 얌전하게, 목표, 진지함, 규칙적, 교육적, 공손한 예의, 전통, 주부, 적절하게, 순종적으로'따위의 말을 가장 싫어하는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지만 청소, 빨래, 식사준비에 있어선 낙제감이다.  

콘라트는 정말 구제불능이다.  싸울줄 도 모르는 겁쟁이에다가 선생님께 일러바치는 고자질쟁이 배신자다.  시험볼 때 좀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안면몰수하고 가르쳐주지도 않는 치사한 녀석이다.  혼자만 잘나가지고는 다른 애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나쁜 녀석이다.   바톨로티부인은 좋은 엄마다.  아이를 위해서 집세를 내기 위해 모아둔 돈과 비상금을 아낌없이 털어내는 희생적인 엄마다.  아이가 어디에다 장난감을 어질러놓고 놀던 전혀 방해될 게 없다는 너그러운 엄마다. 아이가 사탕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다정한 엄마다. 

이 책을 읽으며 맞닥뜨리는 문제는 우리가 어느 쪽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난 괜찮은 엄마일지도 모른다.  집을 늘 깔끔하게 유지할 만큼 청소를 잘하지는 못해도, 요리솜씨가 부족해서 아이들에게 풍성한 식탁을 차려주지 뭇해도,  아이들이 원하는 걸 다 해주지 못해도, 내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이를 지각시킬 뻔한 적도 두어번 있지만 말이다..

배달사고로 만나게 된 콘라트와 바톨로티였지만 그 둘이 마음을 열고 정을 쌓아가고 마침내 바톨로티는 콘라트에게 고백을 받는다 " 엄마가 제 엄마예요. 그것도 좋은 엄마예요."라고.. 자신감을 찾은 바톨로티는 콘라트에게 뽀뽀로 화답하고, 배달사고를 수습하고 콘라트를 되찾아 가려는 하늘색 제복의 회사사람들로부터 콘라트를 지켜낸다.  (우리 엄마들 또한 아이들이 해주는 칭찬에 얼마나 약한가!)

그러니 콘라트가 어쩌구 바톨로티가 저쩌구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사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인지는 콘라트와 바톨로티가 말해주고 있다.  서로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열고 정을 나누는 것이라고.. 그렇게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기도 하는 거라고..

깡통소년을 읽었으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완제품"으로의 모습을 강요하지 말아야겠다.  나또한 "완제품"엄마가 아니니까.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이들이 아이들 세상에 마음 편히 있을 수 있게 해줘야겠다. 아이들의 실수를 너그러운 눈으로 보아주고 어질러놓은 아이들 방도 잔소리하지말고 치워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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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임이네 2006-12-0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완제품이라는 말에 저 쓰러집니다 .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는게 젤루 어려우니말이죠 ^^*

섬사이 2006-12-06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임이네님은 정말 잘하고 계신 것 같던데요.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챙겨주는 모습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두아이 데리고 다니기 쉽지 않은데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