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곰을 지켜라 웅진책마을 53
김남중 지음, 김중석 그림 / 우리교육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앞표지 날개에 적혀있는 지은이 소개를 보고는 살며시 웃었다.  작가 소개는 대부분 19**년에 태어나 OO학교를 졸업하고 무슨 무슨 작품으로 등단해서 지금까지 이런 저런 상을 받았다는 식의 글들인데, 김남중이라는 이 작가에 대한 소개글은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지금은 광주에서 살고 있습니다.’라는 글 뒤에 작가가 좋아하는 것들을 열 가지도 넘게 주욱 나열하고 있다.  그 중엔 상추쌈이나 농구공 같이 매우 일상적이고 친근한 것들도 포함하고 있어 작가에 대한 거리감이 좁혀지는 느낌이었다.  틀에 박히지 않은 자기 소개 방법이 참신해서 마음에 들었다.  이 작가가 가지고 있을 유연한 발상에 대한 기대가 스멀거리며 일어서기도 했고.

기대했던 것처럼 이야기 속에서 작가의 유연한 상상력이 드러났다.  ‘주먹곰’이라는, 인간의 가장 이기적이고 잔인한 본성의 극단적 표출이라 할 수 있는 전쟁으로 인한 자연 파괴 때문에  생겨난, 아주 작은 돌연변이 반달곰이라는 설정에서부터 작가적 상상력의 가지 뻗기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마치 작은 곰 인형처럼 보일 게 틀림없는 주먹곰을 둘러싸고 유전자 복제 기술을 통해 애완동물로 상품화하려는 ‘자연의 친구’라는 거대기업과 그에 맞서 예전의 커다란 본래의 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꿈을 간직한 주먹곰을 지켜주려는 강수와 우림이, 강수의 삼촌 명석과 오 피디의 이야기가 박진감 있게 펼쳐져 있어 흥미로웠다.  게다가 책을 읽어 나갈수록 작가의 상상력의 가지가 제법 탄실한 현실비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느껴져 흐뭇했다. 작가의 상상력과 현실 비판의 성공적인 줄타기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작가는 상상과 현실비판의 줄을 오가면서 애완동물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자연의 친구’라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이름의 거대한 다국적 기업을 통해 인간의 이기적인 사고방식, 현대 물질문명이 갖고 있는 파괴적인 속성, 자본의 횡포를 보여주는가 하면, 그 반대로 강수와 우림이라는 어린이를 통해 상처받은 자연의 회복과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따스한 공동체 의식을 보여준다.

애완동물이 뭐냐는 ‘자연의 친구’ 한국지부 사장 마이클 오의 질문은 현대 문명사회 속에서 서로 단절된 인간의 외로움을 아프게 꼬집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질수록 애완동물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기는 거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사귈 때 드는 노력과 혹시 받을지 모르는 상처를 염려하지.  대신 간편하게 돈을 주고 애완동물을 사면 마음이 편하거든.  마음에 드는 동물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고, 바꿀 수 있고, 마음에 안 들면 처분할 수도 있지.”(p.34) 라고 말하며 “사람이 해야 할 역할을 동물에게 기대”하는 인간의 외롭고 딱한 처지를 드러내는 글은 섬뜩하다.  지금은 ‘애완동물’이라는 말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좀 더 끈끈하고 책임 있는 사랑을 기저에 둔 용어가 등장하긴 했지만 그 또한 거꾸로 생각해보면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서 ‘반려’를 기대해야 하는 사람의 외로운 처지를 확연히 드러내는 말이 아니던가.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사람이 동물에게서 ‘인간다움’을 기대하고자 하는, 그리하여 동물에게서 ‘동물다움’을 빼앗는, 인간이 저지르는 이기적 횡포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기를 가만히 빌게 되는 대목이었다.


또한 오 피디의 입을 통해 “사람들이 방송에서 보기를 원하는 것은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깨끗한 자연이었다.  방송에서 깨끗한 자연을 내보내면 사람들이 몰려와 망가뜨린다.  그래 놓고 사람 손때가 너무 많이 묻었다고 투덜거린다.”(p.124)며 자연을 ‘즐기기’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대책 없이 안일하고 이기적인 자연관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주먹곰을 통해 우리도 곰의 한 갈래였음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변한 곰이다. ..... 너도 변한 곰이라고 했다. 사실인가?”(p.126)하는 상처받은 자연의 상징이라는 주먹곰의 물음에 우리 인간도 주먹곰과 같은 자연의 한 갈래임을, 자연과 내가 하나임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칫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현실비판적인 요소들은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 여러 재미난 요소들과 어우러져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첨단 장비들은 작가의 상상력의 대표적 산물인데, 목소리를 잃은 아이 강수가 이용하는 말나팔이라든가 사람과 곰이 서로 대화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곰 통역기, 자연의 친구 연구소가 개발한 자연산 곰 수십 마리에서 추출한 신경 성분을 농축해 만든 곰 동화제, 그리고 임 팀장 측에서 주먹곰을 찾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첨단 장비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런 상상의 첨단 장비들은 때로 그 엉뚱함에 읽는 이의 웃음을 자아내게도 하고 때로는 그 기발함에 유쾌한 기분을 맛볼 수 있게 하여 현실비판의 무거움을 덜고 재미를 더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꼭지산을 영구 자연림화 하는 결말에서는 마음속으로 열렬히 찬성의 박수를 보냈다. 오래 전 동강댐 건설을 두고 개발을 지지하는 측과 환경단체 간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우연한 기회로 동강을 가보게 되었는데, 그 때 내 마음이 꼭 그랬다.  여기는 인간 출입 금지 지역으로 만들어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세계 각국이 모여 자국 영토의 일정 비율을 개발 금지, 인간 접근 금지 지역으로 지정하는 국제법이나 조약을 제정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와 똑같은 상상을 한 작가를 만나고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박진감 넘치는 재미와 깊이 있는 울림을 함께 담아낸 동화를 읽게 되어 즐거웠다.  우리 동화를 읽을 때마다 느꼈던 과감한 상상력의 부족이랄까, 하는 한계의 벽을 허물려는 시도와 미화된 현실이 아닌 비뚤어지고 뒤틀린 부조리한 현실 속의 인간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진지함이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고 있는 창밖을 바라보며 지리산에 방생되었던 반달곰들을 생각해본다.  얼마 전에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본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의 손에 길들여진 동물이 야생에서 겪었을 고초가 새삼 안쓰럽게 다가왔다.  얼마 전 신문에선 앞으로 10년 후엔 개구리를 볼 수 없을 것이란 기사도 읽었었다. 사람의 손은 참 여러 가지 일을 하고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구나 하는 생각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 동화가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연과 생명에 대한 애정과 경외감을 심어줄 수 있기를, 그래서  편리에 길들여져서 개발만이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속에 두려움 없이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했던 우리 기성세대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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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2007-07-26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주먹곰.. 보관함에서 꺼내주고 싶네요.

섬사이 2007-07-26 21:53   좋아요 0 | URL
향기로운님, 다시 지난 번 이미지로 바꾸셨네요. 어쩐지 반가운걸요.^^

홍수맘 2007-07-26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좋은 책 추천받고 가네요.
정말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우리 아이들이 꼭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섬사이 2007-07-26 21:54   좋아요 0 | URL
네,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

네꼬 2007-07-27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리뷰 너무 좋다. 추천! (저도 책날개에 작가 소개 그렇게 하는 거 넘 좋아요.)

섬사이 2007-07-28 07:32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네꼬님.. 잘 지내고 계시죠?

2007-08-01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6 0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