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중섭은 날마다 두 가지에 집착했다. 하나는 그림, 또 하나는 가족. 화가들은 대부분 그림과 가족을 한자리에 두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땐 가족을 잊고, 가족과 머물 땐 그림을 잊었다. 이중섭은 그림 속에 가족을 두고, 가족 속에 그림을 두었다. 아내가 이남덕이기에 가능했다. 그녀 역시 문화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기에, 그림을 향한 남편의 진심을 투명하게 받아들였다. 이중섭이 기쁠 땐 화가로 기쁜 것이고 슬픈 땐 화가로 슬픈 것이며 화날 땐 화가로 화난 것이다. 부부의 대화는 그림에서 시작하여 그림으로 끝났다. 태현과 태성은 부부가 나눈 화담(畫談)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두 아들이 훗날 아빠처럼 그림을 업으로 삼을지는 미지수지만, 그림을 평생 가까이 둘 것은 확실하다. 네 사람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일궜다. 한국의 예의와 상식도 아니고 일본의 예의도 상식도 아니었다. 사람으로서의 예의와 상식은 너무 거창한 이야기다. 그들은 그림이라는 나라에서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35)

가족을 그렸다. 그림 속에서 가족은 굶주리지 않았고 울지 않았고 아프지 않았고 춥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평화로웠다. 부산과 서귀포의 참담한 현실과 정반대로 그린 까닭을, 아내와 두 아들은 따지지 않았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을 일용할 양식처럼 삼키며 하루를 나고 한 달을 나고 일 년을 났다.


(46-47)

밥은 굶어도 담배를 건너뛸 순 없었다. 술 또한 거의 매일 입으로 들어갔다. 이중섭에게 술과 담배는 갈매기의 두 날개처럼 어울리면서도 목적지는 상반된 생필품이었다.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오르면 희망은 더 희망적으로 절망은 더 절망적이었다. 과장은 허풍이 술자리의 중요한 안주인 이유였다. 이중섭은 대부분 더 절망적인 쪽이지만, 그 감정을 이야기로 풀진 않았다. 담배는 혼자서는 피우지만, 술은 어울려 마셨다. 벗들이 희망적인 상상에 파안대소하고 절망적인 예감에 호곡성을 터뜨릴 때, 이중섭은 위장병이 도진 듯 우울하고 쓰린 얼굴로 듣기만 했다. 정말 견디기 힘들면 울음을 삼키며 눈물만 떨어뜨렸다. 울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서둘러 마시곤 아무 곳에서나 웅크려잤다.


(64)

빈센트 반 고흐에게 해바라기가 있다면 이중섭에겐 단연코 소다. 대작을 그리겠노라고는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밝힌 적은 없다. 화우(畫友)들도 따져 묻기보다는 꼭 그리라고, 이제 때가 되었다고 했다. 완성하고 나면 축하주를 마시자는 이도 있었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오랫동안 많이 그렸다. 두 송이부터 시작해서 열다섯 송이까지, 파리에서도 그렸고, 아를에서도 그렸다. 이중섭 역시 소를 계속 그렸다. 맘을 다 쏟아 그림을 그릴 조건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올리고 그린 것이 소였다. 도쿄에서도 그렸고 원산에서도 그렸다. 서귀포에서는 그리지 않았고, 부산에서는 그리고 싶어 끼적이긴 했지만 흡족하지 않았다. 해바라기를 그린 사람이 고흐 이전에도 많았고 당대에도 많았으며 후대에도 많듯이, 소도 마찬가지다. 조선의 화인들이 그린 소가 몇 마리가 될까. 헤아리기 힘들다. 이중섭과 가까운 선배 중에도 1941년 조선신미술가협회를 함께 만든 진환이 소를 좋아했고 자주 그렸다. 누가 먼저 그렸는가 혹은 얼마나 많이 그렸는가 하는 물음은 어리석다. 문제는 수준이다. 대작이란 두 글자는 작품의 크기가 아니라 최고의 성취를 가리킨다. 이중섭은 통영에서 소를 완전히 새롭게 그려보리라 결심했다. 고흐가 아를에서 전혀 다른 해바라기를 선보였듯이.


(78)

통영은 붉다. 이렇게 밝히면 대부분 고개를 젓는다. ‘통영은 푸르다를 잘못 말한 것이 아닌지 묻는 이도 있다. 이중섭도 통영을 방문객으로 오갈 때는 푸르름에 압도되었다. 전혁림의 그림에서 넘쳐나는 파랑이 과장이 아니라며, 기분 좋게 술잔을 기울였다. 부산에서 그림을 싣고 강구안에 내린 다음 날 새벽, 통영이 붉은 항구란 사실을 목도했다. 늦게까지 마신 환영주에 목이 말라 깨지 않았다면, 숙취로 두통이 심해 바람이라도 쐬자 싶어 산책을 나서지 않았다면, 밤길이 서툴러 되돌아오지 못하고 헤매다가 남망산에 닿지 않았다면, 비가 그치지 않았다면, 중절모를 눌러쓰고 목도리까지 두른 사내가 오르막을 경쾌하게 앞서 걷지 않았다면 통영의 새뜻한 붉음을 영영 몰랐을 것이다.


(89)

시인을 견자(見者) 즉 보는 사람이라 하디. 무슨 것을 봔? 평범한 사람은 아니 보는 걸 본다 이거이야. 기렇게 본 걸, 글로 바꾸문 시인이구 그림으로 바꾸문 화가! 시인은 글 짓는 화가구, 화가는 그림 그리는 시인이다 이 말입네. 화가는 색깔에서 글자를 읽구, 시인은 글자에서 색깔을 본다! A는 흑색이구 E는 백색이며 I는 적색이구 U는 녹색이구 O는 청색이구, 불란서 시인 랭보래 말햇디. 시인이 모음들의 색깔을 맨들 듯, 화가는 색깔들의 모음으로 이야기를 발명해 왓어.”


(92)

통영에선 머리와 손이 따로 노는 이들을 최하로 친다. 말 대신 행동을 믿으며, 그 손으로 그 사람을 평한다. 재산도 학력도 품성도, 단련된 솜씨 앞에선 하찮다.


(118-119)

요쪽은 현실파고 조쪽은 아아파입니더. 유치환 선생님은 아아파의 원로고 윤이상 선배는 허리고 지는 막내축에 속하지예. 삼일 운동 나고 두 파가 생깄십니더. ‘현실파는 일본인들에게 협조해 돈도 벌고 기술도 익혀 실력을 기르자는 입장이고예, ‘아아파는 굶어 죽어도 타협은 못한다는 입장이지예. 윤이상 선배가 운을 딱딱 맞차가 아아파를 설명하신 적이 있심더. 민족의 설움을 제 설움으로 받아들인 아아아아파는 호수같이 맑은 바다 위에 뜬 달을 보고 아아 하구, 봄날 아지랑이 전원서도 아아 하구, 가을 낙엽을 밟으믄서도 아아 한다구 말입니더. ‘아아파들 중엔 옥살이한 사람도 많심더. 팔일오 해방 후에 현실파들은 빠져나간 일본인들 자리를 차지해가 토영 경제권을 잡겄다고 설쳤지예. ‘아아파는 민족혼을 표현하구 가르칠라고 예술가도 되고 교육가도 됐심더. 문호협회도 맨들고…… 펭안남도 평원이 아이라 겡상남도 토영서 태어나싰다믄 돈이나 기술보단 민족의 양심을 지키는 아아파셨을 깁니더.”


(131)

두 사람을 묶어 비교하는 역사는 오래되었다. 카인과 아벨이 그러하고, 유비와 조조가 그러하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그러하다. 음악가인 베토벤과 모차르트, 작가인 괴테와 실러도 이 범주에 든다. 화가들도 종종 언급되었는데, 대중은 고흐와 고갱을 제일 많이 입에 올렸다. 이중섭과 그의 친구들이 자주 논한 화가는 피카소와 마티스였다.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질투도 하고 경쟁도 한, 서로의 작품 세계를 인정한 라이벌이었다. 열에 일곱은 피카소를 우위에 뒀고 마티스를 선호하는 화가는 셋이 될까 말까였다. 이중섭은 소수파에 속했다.


(132)

피카소가 분방한 방외인이라면 마티스는 수도하는 교수다. 피카소는 무리와 어울리며 으뜸이 되기를 갈망했고 마티스는 홀로 숙고한 작품으로 무리에 충격을 주기를 바랐다. 피카소가 불이라면 마티스는 물이다. 물이긴 하되 그림 속에서 펄펄 끓는 물이다. 피카소는 그림 외에도 각종 기행(奇行)으로 유명했다. 때마다 바뀌는 뮤즈의 이름과 사진이 잡지와 신문에 실리고, 작업을 위해 사들인 저택과 사진이 잡지와 신문에 실리고, 작업을 위해 사들인 저택과 즐겨 참여한 파티도 세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기행은 그림값을 떨어뜨리기는커녕 몇 배 혹은 몇십 배 뛰어오르게 했다. 작품은 작품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들러붙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은 화가가 피카소였다. 스스로 이야깃감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귀찮아하지도 않았다.


(168-169)

사람은 둘로 나뉘디. 전쟁을 겪은 사람과 겪디 않은 사람! 전쟁을 모르는 남해바닷가 사람들보다두 내래 니순신 장군님과 더 가깝다구 느께. 장군님두 나두 전쟁을 겪엇으니까니. 둥세전이냐 현대전이냐, 나라과 나라 사이 전쟁이냐 나라 안 전쟁이냐, 요딴 식으로 나누딘 말라마야…… 전쟁은 전쟁! 전사자보다 몇 배 많은 삶을 뒤흔들구 파괴해. 새로운 무서움이구 낯선 끔찍함이라 이거이야. 죽는 것두 두렵다만, 개진 걸 다 잃구 사는 것두 무시무시하긴 마찬가지디. 가솔두 친구두 돈두 직업두 없이 사는 자의 슬픔과 고통을 장군님께선 아셔. 하루라두 빨리 전쟁을 끝내구 싶으셨던 것이야. 길멘서두 서두르다 패하문 그 피핸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가. 냉정하게 버티며 견딘 사내! 전쟁이 무슨것인가를 온몸 온 맘으로 깨달은 사내! 통영 앞바다는 장군님이 오가신 물길이디. 내래 세빙관이나 충렬사나 착량묘에 가문 전쟁부터 떠올려. 장군님과 함께 고민할 문제니까니. 이 망할 전쟁이 몸과 맘에 새긴 상처를 장군님께 보여드리려구 붓을 놀렛던 것이야. 알것어?”


(174)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갓 넘어갔을 때, 이중섭은 전투하듯 예술을 하겠노라 말하곤 했다. 그만큼 치열하게, 죽을 각오로 임하겠다는 뜻이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더 이상 예술을 전쟁에 비유하지 않게 되었다. 전쟁과 예술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예술은 평화다. 평화여야 한다.


(202-203)

속삭이는 소, 친구가 많은 소, 여물을 맛보고 찡그리는 소, 코뚜레를 흔들며 나무 그늘에서 조는 소, 우는 소, 되새김질하며 거품 흘리는 소, 기뻐 껑충껑충 뛰는 소, 노리는 소, 송아지를 불러들이는 소, 뒷발질에 열심인 소, 실수하는 소, 떨어진 꽃잎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소, 교접하는 소, 어미 소에게 도움을 청하는 소, 코를 박고 물을 마시는 소, 올려다보다가 별을 발견하고 놀라는 소, 밭 가는 소, 날아가는 멧비둘기와 참새를 따라 고개 돌리는 소, 외톨이를 자처하는 소, 내달리는 소, 빼앗는 소, 머리에 머리를 부딪치는 소, 고집부리는 소, 벽을 들이받는 소, 엎드려 기다리는 소, 가지 않겠다고 버티며 뒷걸음질하는 소, 앞발을 땅을 파헤치는 소, 꼬리를 흔들어 벌레를 쫓는 소, 먼저 알아보고 다가와서 인사하는 소, 오르막길 앞에서 한숨 쉬는 소, 늙었지만 병들지 않은 소, 멍한 눈으로 세월을 되씹는 소, 웃는 소, 새끼 낳는 소, 먼저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소, 어미 소를 싫어하는 소, 숨는 소, 산책을 즐기는 소, 잠든 소, 병들어 마른 소, 절뚝거리는 소, 용서하는 소, 냄새 맡는 소, 멈춰 기다리는 소, 죽은 소.


(246)

이중섭이 가장 오래 가까이 두고 들여다본 화가는 루오였다. 루오를 접한 후부터는 마음의 시소에 얹는 화가들의 위치가 바뀌었다. 루오가 홀로 한쪽을 차지했고 고흐와 고갱과 마티스를 반대쪽에 묶어 얹었다. 고흐와 고갱과 마티스가 제 뜻을 발산하는 방식이라면, 루오는 그것을 색으로도 누르고 형상으로도 눌렀다. 곡진했다. 타인에게 내뿜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난타해 무너뜨렸다. 이중섭은 고흐처럼도 그려 보고 고갱처럼도 그려 보고 마티스처럼도 그려 보았다. 눌변과 머뭇거림과 내면을 파고드는 자신의 성향과 어울리는 화가는 루오였다.


(254)

아우슈비츠 이후, 역사에 대한 낙관을 아예 접은 예술가들도 나왔다. 한국전쟁과 맞닥뜨린 이중섭은 도쿄에서 연애할 때처럼 사랑이 충만한 세상을 줄기차게 그릴 수는 없었다. 피란민의 눈에 비친 세상은 만물이 화평하기는커녕 살아남기 위해 매일매일 죽고 죽이는 전쟁터였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러하기에, 아주 가끔은 아비규환을 잊을 만큼 강력한 유토피아를 그려보고 싶기도 했다. 사람은 희망 없인 살 수 없는 족속이다. 도쿄의 엽서화에서 둘만의 꿈을 속삭였다면, 월남 후 그린 유토피아는 끔찍한 체험에 바탕을 두되, 더 많은 이들이 따스함을 느끼고 미소 짓기를 바랐다. 현실엔 없는 행복이란 비판을 받았지만, 부산과 서귀포와 통영을 떠돈 이중섭만이 발견한 신사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2023년 프랑스 콩쿠르 상 수상작을 읽었단다. 아빠가 콩쿠르 수상작을 가끔 읽는데, 최근 수상작들은 작품성뿐만 아니라 재미도 함께 담고 있는 것 같구나. 그래서 이번 책도 인터넷 서점에서 보고 망설임 없이 샀단다. 책 제목은 <그녀를 지키다> 지은이는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물론 처음 들어보는 작가란다. 작가 소개를 보니 소설가이면서 영화감독으로도 성공한 사람이라고 했어. 책이 생각보다 두껍더구나. 600페이지가 넘어서 지루하면 끝까지 읽기 힘들 텐데, 하는 걱정을 했는데역시 이번 콩쿠르 수상작도 최근 트렌드를 따라 가는 것 같았어. 작품성과 재미, 두 마리를 다 잡은 듯했어. 어떤 조각가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역사 소설의 성격을 띠면서, 시대의 관습을 이겨내려는 한 여자의 이야기까지 담고 있었어. 책 두께가 괜히 두꺼운 것이 아니었구나. 책 두께가 두껍다 보니 할 이야기도 많고 바로 시작하자.

 

1.

주인공의 이름은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 프랑스 사람이란다. 아버지가 석공이셨는데, 아들도 훌륭한 조각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미켈란젤로라고 지어주셨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미켈란젤로에게는 왜소증이 있었어. 미켈란젤로의 아버지는 세계 1차 세계대전 참전했다가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미켈란젤로의 어머니는 아들의 조각 공부를 위해 아들을 이탈리아에 있는 삼촌 알베르토에게 보냈단다. 알베트토도 조각을 하고 있었거든.

삼촌 알베르토는 이탈리아 피에트라달바 지역에 살고 있었단다. 알베르토는 조카를 처음 봤는데, 조카가 왜소증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런 조카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단다. 미켈란젤로는 알베트로의 도제로 일하면서 조각을 배우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싫어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미모라고 불러 달라고 했단다. 아빠도 이제부터 미모라고 할게.

삼촌 알베르토는 술주정이 심해서 술에 취하고 나면 미모를 때리고 그랬어. 알베르토의 도제는 미모뿐만 아니라 별항, 엠마누엘레 쌍둥이도 있었단다. 미모는 그들과 친하게 지냈단다. 어느날 심한 폭우가 쏟아졌는데, 그 폭우로 인해 오르시니 후작의 저택에 있는 조각상이 파손되어 수리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단다. 미모도 삼촌을 따라 그 저택에 갔는데, 그곳에서 13살 동갑내기 비올라를 우연히 만났단다. 조각가의 도제와 후작의 딸은 신분 차이가 있어 대놓고 만날 수 없는 사이였지. 그들은 그 이후 가끔씩 묘지에서 몰래 만나며 우정을 쌓아갔단다. 어쩌면 사랑일수도

비올라는 미모에게 책을 빌려주었고, 미모는 그 책을 열심히 읽었단다. 비올라에게는 꿈이 있었어. 공부를 많이, 열심히 하는 것과 하늘을 나는 것이라고 했어. 그래서 비올라는 책도 많이 읽어서 아는 것도 많았어. 비올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날개를 보완하면 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 그러면서 비올라는 미모에게 하늘을 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비올라가 미모에게 빌려준 책을 후작에게 걸렸어. 후작은 당연히 미모가 훔친 것이라고 생각했어. 미모도 그 책을 비올라가 빌려 준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지. 결국 미모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매질을 당하는 벌을 받았단다.

이 일을 주관한 것은 후작의 아들이자 비올라의 오빠 스테파노였단다. 천사 같은 소녀와 악마 같은 오빠..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 비올라에게는 오빠가 세 명 있는데, 첫째 오빠는 전쟁에 참전했다가 죽었고, 둘째 오빠가 스테파노이고, 셋째 오빠는 좀 이따가 등장한단다.

….

1918년 전쟁이 끝나고, 1919년 유럽에는 사회주의 물결이 들이닥쳤단다. 노동자들의 폭동이 일어나서 오르시니 가문도 표적이 되어, 노동자들이 오르시니의 농장에 불을 냈어. 스테파노는 스라드리스타라고 부르는 파시스트 행동대원들을 알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강제 진압을 했고, 여덟 명이 죽고 말았단다. 이렇게 시대가 흉흉한 시절이었단다.

 

2.

시대가 흉흉했지만, 비올라는 꿈을 위해 정진했단다. 미모, 별항, 엠마누엘레가 날개 제작에 도움을 주었어. 하지만 그들의 첫 번째 비행은 실패하고 말았단다. 1920 11 22. 비올라의 생일을 앞두고, 비올라는 미모에게 비밀을 하나 이야기해주었어. 집 근처 숲의 동굴 속에서 몰래 곰을 키운다는 거야. 어렸을 때 새끼곰을 알게 되어 키웠는데, 지금은 그 곰이 무척 커졌다고 했어. 미모에게도 소개해주었는데, 그 곰의 이름은 비얀카이고 비올라를 아주 잘 따랐단다. 미모는 비올라의 생일 기념으로 곰 조각상을 만들어 주었어. 그런데 그 조각상이 정말 훌륭했단다. 열여섯 살짜리가 만들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후작이 그 곰 조각상을 보고 극찬을 할 정도였어. 그래서 미모는 비올라의 16번째 생일 잔치에 초대받게 되었단다.

앞서 이야기한 셋째 오빠 프란체스코가 미모를 찾아왔어. 프란체스코는 수도사 지망생이었어. 프란체스코는 미모에게 잘 대해주었고, 그들은 그 이후로 오랜 시간 우정을 쌓게 된단다. 비올라의 16번째 생일 잔치. 후작은 그날 중대 발표를 했단다. 비올라의 약혼 발표로 6개월 뒤에 약혼을 한다고 했어. 미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지만, 비올라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어. 당시 이탈리아에서 여자에게 결혼은 모든 경력의 단절을 의미했고, 집에서만 지내며 사교 활동이나 하는 그런 일이었어. 하지만 비올라에게 위대한 꿈이 있었잖니. 그녀는 자신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지붕 위에 올라가 새로 만든 날개를 달고 날아 올랐단다. 생일 파트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어. 비올라는 잘 날아가다가 회오리 바람을 만나 30미터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어.

한편 삼촌 알베르토는 미모를 피렌체의 필리포 메티 공방으로 보냈단다. 미모는 비올라의 소식도 궁금했고, 비올라와 멀리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지만, 삼촌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피렌체 메티의 공방에 오게 되었어. 미모는 메티의 공방에서 조각을 하고 싶었지만, 두오모 성당 보수 작업만 해야 했어.

뒤늦게 비올라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단다. 비올라는 3주만에 코마 상태에서 깨어났지만, 다시는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어. 여기저기 골절상이 많아서 여전히 병원에서 지낸다고 했어. 미모는 계속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이 오지는 않았어. 한참 뒤에야 편지가 왔는데,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말라는 가슴 아픈 편지였단다. 미모는 깊은 상심에 빠졌고, 모든 것을 그만두고 떠나고 싶은 생각을 실천에 옮겼어. 메티의 공방을 그만두고 방황했어.

그러다가 비차로 서커스단에 들어갔단다. 비차로, 사라, 미모 이렇게 셋이 함께 다녔어. 앞서 이야기했듯이 왜소증인 미모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서커스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그들은 패싸움에 휘말려 비차로가 몇 달 동안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서커스 영업도 중단되었단다. 그러던 중 비올라의 오빠 프란체스코가 바티칸 성당 소속의 신부가 되어 찾아왔어. 미모를 조각가로 채용하고 싶다면서 말이야. 그의 제안은 파격적이었어. 오르시니 가문의 소속으로 있으면서 바티칸의 일도 하는 것이라 했어. 미모를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어. 많은 돈도 좋았지만 그보다 비올라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

2년 만에 피에르타달바에 돌아왔어. 삼촌 알베르토는 남쪽으로 이사 가고, 그가 쓰던 공방은 미모가 사용할 수 있었는데, 미모는 결혼한 친구 별항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헛간에서 지내겠다고 했단다.

오르시니 가문의 초대를 받아 갔어. 비올라는 많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비올라는 미모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단다. 비올라는 어렸을 때 미모와 소통했던 나무 그루터기에 그들이 몰래 만나 우정을 쌓았던 묘지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남겼지만, 미모는 일 때문에, 아니 일 핑계를 대고 로마로 떠났단다. 미모의 큰 잘못이었지.

이후 미모는 조각가로 크게 성공하게 된단다. 프란체스코와 우정은 더 도타워지고, 오르시니 가문과 잘 지내게 되었지만, 비올라는 여전히 볼 수 없었단다. 그러다가 비올라의 결혼 소식을 들었어. 가문의 명성에 걸맞는 유능한 변호사라고 했어. 미모의 가슴은 무너지는 듯했지.

….

 

3.

다시 과거로 돌아가보자. 1918 6 24. 그들은 10년 후 묘지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단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1928 6 24. 미모는 그 약속을 잊지 않고 묘지로 갔는데, 비올라도 그 약속을 잊지 않고 나왔단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들은 짧게 안부 인사만 전하고, 이젠 친구로 다시 만나게 되었단다. 비올라는 이제 결혼을 하였으니…. 비올라의 남편 캄파나는 밀라노, 미국 등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주말에만 온다고 했어.

비올라는 임신이 안 되어 병원에게 치료 받았지만 계속 실패했어. 그렇게 되자 캄피나는 바람을 피웠고, 비올라에게 폭행까지 가했단다. 비올라와 캄파나 사이는 점점 안 좋아졌고, 비올라는 미국에 보내달라고 폭발하듯 이야기를 했어. 캄파나는 미국에 보내주겠다고 했단다. 얼마 후 캄파나는 비올라를 영화 스튜디오를 데리고 왔단다. 그곳은 미국처럼 꾸며 놓았는데, 캄파나가 이야기하기를 이곳이나 미국이나 똑같다고 이야기를 했단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건지, 일부러 약 올리려고 그런지비올라는 크게 분노했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모는 비올라에게 함께 미국에 가자고 해서 길을 떠났단다. 그런데 프란체스코가 이를 말리며 미모와 중재하여 비올라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단다. 비올라는 미모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였고 그 이후 미모도 멀리하게 되었단다.

어떤 날은 비올라가 사라졌어. 며칠 동안 식구들이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어. 미모는 그들만의 장소인 묘지에 가보았지만 그곳에도 없었어. 혹시나 하고 미모는 비올라의 곰 비얀카가 살고 있는 동굴에 가보니, 그곳에 있었단다. 비얀카가 죽어서 동굴에게 그를 추모하고 있었던 거야. 그 때 미모와 비올라는 다시 화해를 했단다. 캄파나와 비올라 사이는 더욱 안 좋아졌어. 캄파나는 가족들 앞에서 대놓고 비올라를 비판했어. 그리고 비올라의 사적인 것도 폭로했단다. 비올라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말이야.

사실 비올라는 시()를 쓰고 있었는데, 비밀로 해달라고 했거든. 그런데 그것을 까발린 거야. 홧김에 비올라는 나이프로 캄파나의 어깨를 찌르고 말았단다. 진작에 이혼을 했어야 했는데, 당시 아마 당시 유럽도 이혼은 못하는 분위기였던 가봐. 하지만 이런 폭행 사건까지 가족들 앞에서 벌어졌으니, 더 이상 어쩔 수 없었어. 프란체스코가 나서서 이혼을 제안했어. 그런데 캄파나는 반대를 했단다. 캄파나는 오르시니 가문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야. 캄파나가 이혼을 반대하자, 프란체스코는 혼인 자체를 무효로 하자고 했는데, 캄파나는 또 반대를 했어.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캄파나가 저지른 강간 사건까지 이야기하면서 혼인을 무효 시켰단다. 프란체스코는 캄파나의 강간 사건까지 알면서 동생과 함께 살게 그냥 두었던 거야. 점점 비호감이네.

….

미모는 점점 자신의 실력을 인정 받아서 1942년에는 이탈리아 왕립 아카데미 정회원 자격을 받게 되었어. 그런데 정회원의 자격을 인정받는 행사에서 미모는 파시스트를 비판하는 연설을 했어. 그 일로 그는 아카데미 회원 자격 박탈당하고 체포까지 되었단다. 그가 갑자기 이렇게 파시스트를 비판한 것은 얼마 전의 일 때문이었어. 얼마 전에 서커스를 함께 했던 비차로가 찾아왔는데, 사라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갇혔다는 거야. 미모에게 도와달라고 비차로가 찾아왔고, 미모는 인맥을 써서 사라를 풀어주었단다. 이 일을 경험하고 미모는 파시스트를 비판한 것이란다. 파시스트를 비판한 연설 이후 그의 작품 대부분이 파괴되었어. 그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피에타 상만 사크라 수도원에 옮겨서 지하 창고에 보관하였어.

 

4.

또 세월이 흘러 1946년 묘지에서 다시 만난 비올라와 미모. 비올라는 제헌 의회 선거에 출마한다고 했어. 여자가 의회 선거에 나간다는 것은 당시에는 드문 일이었어. 집에서도 반대를 했단다. 그런데 경쟁 후보는 오르시니 집안의 앙숙이었던 감발레 집안의 아들이었어. 비올라를 지지해주어야 할 오빠들이 감발레 집안과 밀약을 해서, 땅을 양도 받는 대신 비올라 후보 사퇴를 약속한 거야. 그러면서 프란체스코는 미모에게 같이 설득해 달라고 했어. 당시 비올라는 살해 협박도 받고 있었어. 미모도 살해 협박까지 받고 있으니 이번만은 포기하자고 비올라에게 이야기했지만, 비올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어.

비올라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꿈이 정해지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잖니. 미모는 비올라에게 다시 한번 미움을 사고 로마로 돌아갔단다. 그런데 가는 길에 큰 지진이 일어났단다. 엄청나게 큰 지진이었어. 미모는 비올라 걱정에 다시 오르시니 저택으로 향했는데, 오르시니 저택은 폭삭 무너져 내렸고, 비올라는 그만 시신으로 발견되었단다. 오르시니 가족 중에 프란체스코만 로마에 머무르고 있어서 변을 당하지 않았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1946 6 1, 실제로 이탈리아에 큰 지진이 나서 472명이 죽었다고 하는구나.

비올라가 죽은 시점으로 미모의 삶도 끝났다고 생각했어. 그의 삶에서 예술 부분만 남고 모든 것은 그때 끝이 났어. 미모는 그 이후 40년 동안 사크라 수도원에서 지냈단다. 평생 마음속에 비올라를 품고 말이야.

이 소설의 주인공 미모와 비올라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인지만, 안타까운 결말이 안타깝구나. 결국 이 소설은 사랑이야기인데, 사랑 이야기만큼 서사적인 것이 또 어디 있겠니.

소설 속에서 미모가 피에타 상을 조각한 것으로 나오는데, 역사상 가장 유명한 피에타 상은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이끈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이 아닐까 싶구나. 너희들도 잘 알지? 그런데, 이 책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왔단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은 바티칸 성당에 전시되어 있는데, 예전에 보호막 없이 오픈되어 있었어. 그런데 1972년 라슬로 토스라는 사람이 바티칸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을 15번이나 망치질로 손상시켰다고 한다. 그 이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는 방탄유리 안에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고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너희들과 엄마에게 이야기를 해주니 다 알고 있었다고 하는구나. 심지어 엄마가 이야기하기를, 예전에 바티칸 여행 갔을 때 가이드께서 설명해주셨다고... 아빠도 분명 들었을 텐데, 좁쌀만한 기억력오늘 다시 이렇게 써 놓는 이유도 조금이라도 기억을 오래 유지해 보려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소설 참 재미있게 읽었단다. 두께가 만만치 않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지만, 누군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조심스럽게 추첨해보고 싶구나. 지은이 장바티스트 앙드레아는 눈 여겨 보았다가 그의 신작이 나오면 또 읽어봐야겠다.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그들은 서른둘이다.

책의 끝 문장: 하늘에 새들이 날던 시절 태어났던 미모 비탈리아니는 위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내 부모는 늙었다고,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야. 그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이지. 그들은 앞으로 우리는 말을 타듯이 날게 되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여자들은 수염을 달고 남자들은 보석으로 치장하리라는 걸. 내 부모의 세계는 죽었어. 넌 좀비를 무서워하지만 네가 무서워해야 할 건 바로 그 세계라고. 그 세계는 죽었는데도 여전히 움직이거든. 누구도 그것을 보고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으니까. 바로 그런 까닭에 그건 위험한 세계야. 그 세계는 저절로 무너져." - P145

나의 표정에 별항은 겁에 질린 모양이었다. 입을 헤벌리고 나를 응시했으니까. 그러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리석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대리석은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의 평행 육면체였다. 나의 구상을 실현하기에 완벽했다. 하지만 비올라의 생일은 11월 22일까지는 고작 열흘이 남았다. 나는 제일 좋은 도구를, 치오가 날은 닳고 자루는 갈라져서 손가락에 가시만 남기는 도구들을 쓰게 하고는 만져 보는 것조차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던 도구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래야만 할 바로 그 장소를 쪼았다. 별항이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 P199

많은 사람들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든 피에타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려고 옷 주름의 완벽함, 해부학적 정확성, 몸짓의 우아함, 그 밖의 이런저런 것들을 강조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전문가들이야 불쾌하든 말든,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은 얼굴에 있다. 성모가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한, 그는 자신의 성모를 곱사등이로 만들어도 괜찮았을 거다. 거의 패배한, 피로가 포기의 순간, 영혼을 내맡긴 그 순간에 포착된 여인의 얼굴. <포착된>이라는 말에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조각가가 그 모습에 생명을 불어넣는 데 3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미켈란젤로는 스냅 사진을 찍은 거였다. 단순한 끌과 대리석 덩어리만으로 무장하고 전투를 치러 낸 3년.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이 그 얼굴의 전부는 아니다. 그 얼굴에는 자신에게 벌어졌던 모든 일이, 앞으로 곧 일어나려고 하는 모든 일이 담겨 있다. - P357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만약 전부 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다르게 선택할 수도 있겠지, 미모. 네가 단 한 번도 틀리는 법 없이 처음부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넌 신인 거야. 네게 품은 그 모든 사랑에도 불구하고, 네가 내 아들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조차 신을 낳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 P422

비올라는 단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고마웠다. 비올라가 입원해 있으면서 왜 나를 멀리했는지 그제야 이해했다. 이제 그 시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련다. 모든 감옥은 다 거기서 거기이니까. 수감자들 역시 동일한 죄를 저질렀다. 즉,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믿었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를 냈다는 죄. - P5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

그리스 조각상들이 양쪽으로 전시된 갤러리에서 걸음을 멈춘다. 조각상 사이에 놓인 초록 벤치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본다. 코발트빛 하늘이 점점 보랏빛과 장밋빛으로 물들어 간다. 황혼은 일출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느려지는 것을 느낀 곳은 여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밖에 없다. 과거, 현재, 미래가 객차처럼 순서대로 흐르지 않고 서로서로 반투명하게 겹쳐져 있다. 몇 년 전의 일은 어제처럼 생생하고 가깝게 느껴지고, 내일은 몇 년 뒤처럼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63-64)

샤워를 마친 후, 몸에 수건을 두른 채로 절름거리며 나와 침대에 쓰러진다. 내 몸의 모든 관절에 묵직한 추가 묶여 있는 느낌이다. 내가 누운 자리 아래 모든 층을 지나 로비까지, 그리고 지구의 중심까지 몸이 꺼져버릴 것이다. 자낙스 한 알을 혓바닥에 올리자 그제야 몸이 다시 위로 떠오른다. 선선한 바람, 희미하게 들리는 자동차 소리에 눈이 스르륵 감긴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잠이 쏟아지면서 검은 새가 나오는 꿈이 시작된다. 윤기 흐르는 흑단 같은 깃털, 굽은 노란색 부리, 기름방울처럼 반지르르하고 큼직한 눈. 전에도 이 새를 본 적이 있다. 검은 새가 앞장서서 날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간다. 그러자 다른 새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이해 하늘을 검게 물들인다. 까악까악 울음소리의 장막이 나를 감싸고 내 몸을 상공으로 들어 올린다. 나를 둘러싼 검은 새들이 빙글빙글 구름 위로 솟아오르며 깃털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그러다 갑자기 나를 붙잡고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곤두박칠힌다.


(77-78)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 생각나는 사람 아닌가.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다. 멋진 남자, 멋진 여자들과 친밀함을 나누고, 웃고, 서로 호의를 보였으며, 좋은 시간을 함께 했다. 그러나 다음 극장에서 새로운 일정을 시작하고 나면 더는 그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몇 달 동안 내 상상을 완전히 사로잡은 이들도 있었지만, 헤어지고 나면 더는 그들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은 내 안에 어떤 공간도 차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내 머리와 가습에 큰 공간을 차지한 채 몇 년을, 어쩌면 평생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내 영혼 깊숙이 파고들어 자리를 잡기 때문에 나 자체가 사라지지 않고서는 그들을 떠나보낼 수 없다. 나는 어린 시절 친구들을 자주 떠올리는데, 그렇다고 그때의 관계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아니다. 친구들을 그리워하던 나조차 이제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148)

모든 것은 입 밖에 내지 않을 때 더욱 강해진다. 두려움도, 슬픔도, 욕망도, 꿈도.


(159)

그러나 진짜 내 모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로는 나조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곳, 우주의 중심에 있으니 그제야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내 기억이 존재할 때부터 항상 억눌러 왔던, 암석도 녹이는 뜨거움이 피부 아래서 온몸을 약동하고 있었다. 이제 댐의 수문을 열어 모두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227-228)

나는 수명과 기상 사이의 회색 지대를 좋아한다. 모서리 없이 부드러워서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나는 딱딱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아틸라가 아니다. 흔히들 내가 매일 아침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곧바로 자기 훈련의 루틴을 시작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이렇게 안개 자욱한 호수에서 뗏목을 타고 최대한 오랫동안 떠 있는 걸 무엇보다 좋아한다. 노를 저어서 꿈과 생각의 조각들을 건져 올리고, 그것들을 추억과 환상으로,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으로 분류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포인트 슈즈에 바느질을 하는 일(사소한 것, 기억).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어딘가로 운전해 가는 엄마(중요한 것, 환상:엄마는 평생 운전을 배우지 않았고, 우리 모녀는 어느 곳도 함께 가본 적이 없다). 전혀 일어난 적 없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완벽한 상상이 우리의 삶과 정체성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참 놀랍다. 그러나 머릿속의 모든 건 실재하며, 그 자체의 질량과 중력을 가지고 있다. 물질보다 더 많은 암흑물질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우주처럼.


(312-313)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우아함이, 모스크바에는 감동이 있다. 그러나 유혹을 하는 도시는 오로지 파리뿐이다. 파리에 살다 보면 도시의 구석구석이 언젠가 내 눈에 발견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믿게 된다. 이를테면 구불구불해진 벽으로 몇 세기나 더 늦게 지어진 이웃 건물에 기대어 세월의 무게를 버티고 있는 중세 건물, 부르주아지들이 모인 몽마르트 한가운데 숨겨진 비밀 돌길 옆으로 나란히 들어선 작은 집들.


(387)

무용수들은 공과 사, 이성과 감정을 분리하는 방법을 일찌감치 배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선생님이 심하게 야단치며 평소처럼 틀리지 말고 완벽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릴 때, 끔찍하게 싫은 파트너와 춤춰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신경이 약한 사람, 춤보다 감정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이 세계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나는 언제나 내 감정보다 춤을 우선시했다. 춤이 없으면 내 인생의 어느 감정도 의미 없을 테니까. 적어도 나는 여태 그렇게 믿었다.


(464)

언덕을 도로 걸어 내려온 뒤 벨리브 자전거에 올라탔다. 미끄러지듯 내리막길을 달리자, 부드러운 밤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뒤로 흩날렸다. 날이 추워져서 재킷을 입고도 몸이 떨렸지만, 발로 페달을 아주 살짝만 밟아도 바퀴가 스스로 가속할 때마다 기묘하고 짜릿한 예감이 들었다. 살면서 황홀한 깨달음의 순간을 이미 몇 차례 경험한 적 있었다. 바르나에서 감자티베리에이션으로 무대에 올랐던 밤에, 내가 사샤를 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그때처럼. 내리막길 거리를 활주하면서 나는 이런 직감이 중력을 거스르는 무중력상태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아챘다. 내가 점프를 사랑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자유롭다는 걸 깨달았다. 사샤로부터, 레옹으로부터, 내게 고통과 분노를 주었던 모든 것들로부터. 나는 마침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모든 것에 대해 애정과 연민이 느껴졌다.


(469)

내가 말했듯이, 아무리 멀리 날아가는 새도 결국엔 고향으로 돌아온다. 최대 수년간 땅에 발 한 번 딛지 않고 공중에서 잠자며, 같은 종을 한 번도 보지 않으면서 홀로 바다 위를 나는 앨버트로스도 결국은 영겁의 서식지, 이들 모두가 태어난 바로 그곳으로 돌아온다.


(510-511)

나는 깊은숨을 내쉰다. 이미 조금도 쉴 틈 없이 꽉꽉 들어찬 2030년도 일정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내년 봄, 우크라이나 국립발레단과 마린스키 발레단이 아시아에서 합동 순회 공연을 할 예정이다. 우리 극장에서의 프로그램 외에도 내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투어이다. 물론 이는 드미트리도 잘 아는 사실이다. 수십 년간 각국의 발레계 최고위층 인사들과 쌓아놓은 인맥을 총동원해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나도 열심히 나섰다. 우리의 인류애를 드러내고 아픔을 치유하고 양심을 회복하는 예술의 신성한 의무를 역설하느라 여러 차례 무대에 섰고, 그보다 열 배도 넘는 횟수의 화상회의를 진행했다. 때로는 이런 언어의 사치성에 머리가 빙빙 돈다. 우리가 같이 올라 춤춘다고 해서(꼭 발레가 아니라 그 어떤 숭고한 예술이라도) 무너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예술이 배고픈 자를 먹이거나 무고한 자를 보호하거나 죽은 자를 되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집에 가는 길에, 스튜디오에서, 또는 무대에서 나를 감동시키는 무언가를 볼 때면, 진실과 아름다움이 만나는 지점이 어딘가 있다는 걸 믿을 수밖에 없다. 그 지점에 영영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는 오랫동안 머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녁 공기 속에서 그곳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끼고, 그거면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실의 흑역사 - 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톰 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톰 필립스라는 사람이 쓴 <진실의 흑역사>라는 책을 이야기할게. 흑역사라고 하면 숨기고 싶어하는 안 좋은 기억을 이야기하잖니. 그 주체가 진실? 진실의 흑역사라고 하면 거짓을 의미하겠지?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로 되어 있단다. 이 책의 첫 문장도 당신은 순 구라쟁이다.”라고 시작한단다. 우리가 일상생활에 알게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고 하는구나. 가벼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거짓말이면 몰라도 심각한 영향을 주는 거짓말을 의도적으로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들은 특히 조심해야겠지. 정치인들 같은 사람들 말이야. 정치인들이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하면, 정치인들의 어느 나라나 신뢰도가 낮은 것으로 조사된단다. 하지만 지은이가 월 정치인들이 다른 직업군에 비해 거짓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라고 하는구나. 또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거짓말을 정말 많이 하는 정치인 중에 한 명이라고 하는구나. 이 책은 미국에서 2019년에 출간된 책으로 트럼프 1기 때 나온 책이란다. 그래서 트럼프가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하는지 통계까지 들어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그런데 그렇게 거짓말을 많이 하는 트럼프를 또 찍어주다니, 미국 사람들도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

(16)

사람들은 지금이 역사상 전례가 없을 만큼 사실이 통하지 않는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럴 만하다. 비근한 예로, 현재 미국 대통령이 매일같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그건 거짓말이라고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무엇이 사실인지 자기도 모르면서, 알아볼 생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별반 다를 게 없다. <워싱턴 포스트> 팩트체킹 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사 작성 시점 기준으로 취임 이래 869일 동안 거짓이거나 오해를 유발하는 주장 10,796건 했다고 한다. 특히 2018년은 유례없는 기만의 해였다고 한다.

======================

그러나 아무리 트럼프라도 우리나라 내란 수괴만큼 거짓말에는 이길 수 업지 않을까 싶구나.

 

1.

개소리 순환고리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잘못된 정보를 어떤 사람이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언론이나 위키피디아에 업데이트도 되고, 잘못된 정보를 말한 사람이 그 언론이나 위키피디아를 보고 자신이 말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게 되는 것을 개소리 순환고리라고 한다고 하는구나. 이건 참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구나. 그렇기 때문에 언론은 누군가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팩트 체크를 하고 기사로 실어야 하는 것이란다. 하지만 일단 기사로 올리고 아니면 말고 라는 생각을 가진 경우가 많단다. 그렇게 가짜 뉴스가 많으니 어찌 신문이나 뉴스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겠니.

그렇다면 가짜 뉴스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1733년 출판업으로 크게 성공한 타이탄 리즈라는 사람의 부고가 신문에 실렸단다. 그의 나이 고작 3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충격적인 소식이었단다. 부고 같은 것을 거짓으로 올릴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타이탄 리즈가 죽은 줄 알았단다. 하지만 타이탄 리즈는 버젓이 살아 있었어. 자신의 부고 소식을 들은 타이탄 리즈는 직접 등판하여 자신이 살아 있다는 기사를 썼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기사를 믿지 못했어. 당시에는 TV나 인터넷이 없었으니 살아있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기 어려웠으니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리기 쉽지 않았겠구나. 그리고 타이탄 리즈의 부고를 낸 사람은 다른 사람이 타이탄 리즈인 척 하고 기사를 쓴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더 먹혔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이런 가짜 뉴스를 퍼트린 사람이 누구냐면, 자서전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랭플린 자서전>을 쓴 프랭클린이란다.

그래, 맞아. 작가이자, 정치가이자 과학자이자 발명가이자 유명작가이자 외교가이자 시민운동가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프랭클린이라고 하는구나. 프랭클린은 당시 출판업을 하고 있었는데, 경쟁 출판업자를 이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심한 거짓말을 했던 거야. 아무튼 프랭클린은 타이탄 리즈의 부고 소식을 알리면서 자신의 출판사도 널리 알려져 성공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고 하는구나. 프랭클린은 그 이후에도 가짜 뉴스로 돈을 벌었다고 하는구나. 이미지 확 깨는구나.

======================

(77)

첫 사기 시도를 보란 듯이 성공시킨 프랭클린은 기분 좋게 그다음 행각을 이어나갔다. 1730년에는 자신이 필라델피아에서 간행하던 신문 <펜실베이니아 가제트>에 한 마녀재판에 관한 기사를 완전히 지어내서 실었다. 실제로는 당시 미국에서 수십 년간 이렇게 할 마녀재판이 열린 적이 없었다. 그런 다음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으로 옮겨가서-또다시 가상의 인물이 되어 글을 쓰면서-불쌍한 타이탄 리즈를 죽은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

1439년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보급된 이후 신문도 발전하게 되었어. 오늘날의 정보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겠지만 당시에도 신문의 과잉 정보와 허위 정보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글들이 많았다고 하는구나. 17세기 유럽 전역에 커피하우스가 유행을 하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입에서 입으로 허위 정보들이 퍼져나갔다고 했어. 그래서 1675 12 29, 찰스 2세는 커피하우스 금지령까지 내렸다고 하는구나. 그렇다고 언론의 가짜 뉴스가 멈출 리 없겠지. 미국에서 언론이 시작된 이후 유럽과 미국의 거리로 인해 거짓 뉴스는 더욱 심해지기 시작했다는구나.

그렇다면 왜 가짜 뉴스를 쓸까? 그것이 돈이 되기 때문이란다. 거짓이라도 자극적인 기사를 내면 사람들이 신문을 사게 되니까 말이야. 대표적인 것이 지금은 유명한 <>지의 거짓 뉴스란다. 1835 8월 리처드 애덤스 로스라는 사람은 최신 망원경으로 달에 희귀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는 연재 기사를 썼단다. 그는 유명 과학자의 이름까지 팔아서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처럼 연재 기사를 썼단다. 그리고 그 시리즈의 대미는 달에 박쥐 인간이 살고 있다는 기사로 마무리했는데,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사를 믿었다고 하는구나. 이 연재 기사로 인해 <>지는 급부상하게 되었다는 구나.

그 외에 이 책에는 유명한 가짜 뉴스에 대한 사례를 이야기 주었단다. 있지도 않던 살인마 잭 이야기, 히틀러 일기장 위조 사건, 혜성의 독성 이론, 고양이 연쇄 살해 등. 혜성의 독성 이론은 지구로 다가오는 혜성에 독성 성분이 있어 사람들을 죽일 것이라고 하면서 그로부터 지킬 수 있는 가짜 약을 판매했다고 했고, 고양이를 연쇄 살해하는 엽기적인 사건을 결국 자동차의 로드 킬이었다고 하는구나.

 

2.

역사적으로 남을 만한 거짓말은 어떤 것이 있을까. 역사적으로 남길 정도면 스케일이 커야겠지. 오랫동안 지도에 그려져 있던 아프리카의 커다란 콩 산맥이라면 역사적으로 남을 거짓말이 아닐까 싶구나. 100년 넘게 세계 지도에 버젓이 그려져 있던 콩 산맥은 실제로는 없었다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지도에까지 실렸을까. 유력한 지리학자들이 콩 산맥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를 듣고 지도를 그리게 되었다는구나. 그런데 그 이후 아프리카를 탐험한 탐험가들도 그 구라에 동참하게 되었대. 아프리카에 갔는데 지도에 버젓이 있는 콩 산맥을 못 봤다고 하면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제대로 탐험하지 않았다고 할까 봐, 그리고 자신이 길을 잘못 들어 못 봤을 것이라 생각하고 콩 산맥을 봤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당시에는 사진기도 없었으니 증거가 없었으니 봤다고 하면 그만이었을 테니 말이야.

그리고 북극을 서로 먼저 발견했다고 하는 두 사람이 있었단다. 피어리라는 사람과 쿡이라는 사람이 그들이다. 그들은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자신이 먼저 북극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어. 여론도 양쪽으로 갈렸다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진실은 둘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하는구나. 둘 다 북극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네.

그레거 맥그레거라는 사람은 없는 나라를 만들어 땅을 팔아먹었대.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많은 유럽 사람들이 신대륙으로 이주를 하던 1823, 그레거 맥그레거는 포야이스라는 새로운 나라가 있다면서 이 나라의 땅을 유럽 사람들에게 팔았다고 하는구나.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땅을 사고 그레거 맥그레거 알려준 좌표로 왔지만 그가 이야기한 것과 달리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는구나. 먹을 것도 구하기 어려웠고 잘 곳도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하는구나. 거짓말을 하더라도 이런 사악한 거짓말을 하면 안될 텐데

책의 뒤쪽에는 정치인들의 거짓말과 장사꾼의 거짓말과 집단 망상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아빠가 메모를 해두지 않아서, 패스해야겠구나. 한 가지만 발췌글을 소개할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통계적으로 봤을 때 의외로 정치인들이 생각만큼 거짓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

(189)

정치인이 거짓말을 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큰 거짓말도 하고, 작은 거짓말도 하고, 온갖 크기의 거짓말을 다 한다. 직업 신뢰도를 조사해보면 정치인이 꼬박꼬박 꼴찌로 나온다. 부동산 중개업자와 심지어 (믿기지 않지만) 언론인보다도 더 낮게 나온다. ‘정치인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대다수의 정치인은 사실 생각만큼 그렇게 거짓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게 대체 뭔 소린가 싶을 것이다. 특히 작금의…… (막연히 세상에 대고 손짓하며) 이런저런 사태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하지만 믿어주기 바란다. 정치인들의 말을 팩트체킹하는 게 내 직업니다. 사실 정치라는 직업 활동에서 거짓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가 흔히 가진 통념보다 아주, 아주 적다.

======================

이 책의 지은이 톰 필립스는 이 책 이외에 <인간의 흑역사>라는 흑역사 시리즈가 있는데, 그 책도 기회되면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당신은 순 구라쟁이다.

책의 끝 문장: 그야 물론,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진실은 아버지를 하나만 두었으나 거짓말은 수천 명의 사내가 낳는 사생아로서 여기저기 곳곳에서 태어난다"라고 1606년 앨리자베스 시대의 작가 토머스 데커는 한탄한 바 있다. 또 16세기의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는 수필 <거짓말쟁이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짓의 얼굴이 진실의 얼굴처럼 하나뿐이었다면 상황은 더 나았을 것이다. (…) 하지만 진실의 반대는 그 모습이 수십만 가지이며 펼쳐질 마당이 무한이니 거기엔 끝도 한계도 없다." - P26

그 밖의 종류로는 우선 ‘여론몰이’라는 게 있다. 정치인들의 기만술책 중 하나다. 여론몰이의 교묘한 점은 꼭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거짓을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대놓고 거짓말하는 정치인도 많지만, 여론몰이 기술의 정점은 진실만 말하면서도 완전히 거짓된 주장을 펴는 것이다. 정직의 벽돌을 가지고 허튼소리의 집을 짓는다고나 할까. 그 다음으로는 ‘망상’이라는 게 있다. 틀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옳다고 철석같이 믿는 능력으로, 그 형태는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거나 집단 히스테리에 빠지거나 대세에 굴종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아마도 가장 만연하게 퍼져 있고 피해도 가장 큰 형태가 되겠는데, ‘개소리’라는 게 있다. - P30

당시엔 뉴스를 갈구하는 사람들을 이처럼 어이없게 바라보는 시선이 팽배했을 뿐 아니라, 인쇄물의 폭증이 인간과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리라는 불안감도 만연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정보 과부하에 대한 우려가 심각했고, 불길한 말들이 나돌았다. 1685년 프랑스 학자 아드리앵 바예는 이렇게 암울하게 예측했다. "하루가 다르게 엄청난 기세로 폭증하는 서적으로 인해 앞으로 다가올 수백 년은 로마제국 멸망에 뒤이은 수백 년에 못지않은 야만시대로 퇴보하리라 충분히 우려할 만하다. - P66

보통 ‘날조, 위조, 가장’을 뜻하는 ‘faking’이라는 단어는 그 이전까지 주류 담론에서 다루어지는 개념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도둑, 사기꾼, 배우 등 일부 불미스러운 직업군에서 쓰이는 은어였을 뿐이다. 앞서 뱀 기사를 연구했던 언론사학자 터커에 따르면, 그 용어는 1880년대 말 바야흐로 새로운 직업군으로 발돋움하고 있던 언론인 업계에 상륙했다. 그런데 그 말뜻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저지르면 업계에서 매장당하는 죄악’ 같은 개념이 아니었다. 몇몇 연구자들에 따르면 ‘faking’ 즉 ‘꾸며내기’는 언론인의 필수능력으로 여겨졌다. - P97

정치인은 일어나서 아침밥 먹기 전에 여섯 번은 거짓말할 기회가 있다. 그뿐 아니라 거짓말하기 좋은 무대와 잘 들어주는 청중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는 항상 듣기 좋거나 무대와 잘 들어주는 청중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는 항상 듣기 좋거나 화를 돋우는 거짓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곧 좋은 시대가 온다거나, 우리가 고생하는 게 누군가의 탓이라거나, 세상은 복잡하거나 애매하지 않고 흑과 백으로 시원하게 가를 수 있다거나 하는 말들 말이다. (방금 얘기가 남의 얘기처럼 들리는 독자가 있다면, 본인 얘기일 가능성이 높다.) - P191

그런 노력이 통한다는 믿음을, 그리고 그런 노력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선거에서 졌다고 세상은 진실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며 자포자기하는 태도는 그리 어른스럽다고 하기 어렵다. 인터넷은 개소리 생산 공장이고 아무도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다는 생각도 역시 바람직하진 않다. 지금까지 이 책에서 살펴봤지만, 사람들이 그런 우려를 하는 게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루머의 난무, 신생 통신 기술에 대한 집단 공황, 가짜 뉴스에 대한 공포, 정보의 홍수에 대한 두려움, 전부 여러 세기 동안 있었던 현상이다. 과거에도 잘 넘겨냈고, 이번에는 잘 넘겨낼 수 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하고 자포자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가짜 뉴스’ 담론의 제일 우려스러운 점은 사람들이 가짜 뉴스를 믿는다는 점이 아니라, 진짜 뉴스도 믿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 P2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4-85)

용왕의 병은 다름 아닌 술병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봉건국가의 무능한 왕을 풍자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를 두고 대립하는 별주부와 토끼는 왕을 옹호하거나 왕을 비판하는 각각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교 사회의 규범 중 하나인 을 드러내는 별주부와 임금을 조롱하는 토끼 중,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아마 토끼에게 더 마음이 끌릴 것입니다. 별주부가 임금의 무능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노력이 부족함을 스스로 한탄하는 모습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별주부가 답답하거나 미련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지금 시대에는 권력 앞에서 자신의 지혜로 스스로를 지키는 토끼 같은 인물에 더 쉽게 마음이 끌리기 때문이지요.


(180)

<도솔가>에서 월명사가 부르는 노래는 신과 인간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의 노래는 인간의 고통과 해탈을 이야기하는 중요한 요소를 포함합니다. 도솔천은 신적인 존재가 사는 곳으로, 이 노래를 통해 인간은 신과 소통하려 하며, 구원의 길을 찾고 있습니다. 신라시대는 불교가 널리 퍼져 있던 시기였으며, 사람들은 인생의 고통을 극복하고자 불교적 구원을 열망했지요. <도솔가>의 가사는 불교적 해탈의 길을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이 노래는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려는 신성한 존재의 자비와 구원을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죠. 세속적인 고통에서 벗어나 신과의 소통을 통해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이 노래는 당시 신라 사람들에게 종교적 소망의 길을 제시한 중요한 철학적 의미였을 것입니다.


(206-207)

<원가>에서 잣나무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집니다. 잣나무는 변하지 않는, 견고한 존재로 나타나며, 왕과 신하 간의 굳은 약속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효성왕이 신충을 잊고 뜻하지 않게 배신한 것은, 잣나무가 말라죽어간다는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약속의 무효화와 신하의 원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잣나무가 변치 않은 푸르름을 유지하는 것처럼, 왕도 신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신뢰를 이어가야 한다는 교훈을 자연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또리 2025-07-08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bookholic 2025-07-09 22:5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