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5 - 제2부 유형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한강> 5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5권은 유일표의 친구 이상재의 이야기부터 시작했단다. 이상재는 통일혁명당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뜻밖에 소식을 듣는단다. 자신이 활동했던 통일혁명당이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고 불법정당 활동을 하고 간첩 혐의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어. 그는 충격을 받았어. 이것이 실제인지, 누명을 쓴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았어. 그러면서 자신이 한국에 있다면 감옥에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베트남 참전을 신청하여 베트남에 가게 되었단다.

베트남에서 군생활을 하게 된 이상재는 친척의 빽으로 PX에서 일하게 되었어. PX는 군대 내에 매점이라고 할 수 있어. 아빠도 군대 있을 때 PX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아무튼, 이상재는 통혁당 간첩단 사건으로 배신감도 들었지만, 과연 그것이 진짜일지도 의심을 했단다. 아빠도 통혁당 사건에 대해서 들어봤는데, 당시에 워낙 조작 사건이 많아서 이것도 그런 것인가, 검색해봤는데 이 사건은 실체가 있었던 사건 같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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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상층부 몇 명이 북쪽에 가고, 노동당에 입당을 하고, 거액의 돈을 받아가지고 내려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악명 높은 중정의 고문수사에 의한 조작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개된 재판을 하게 되면 조작이 폭로되고 말 텐데 그럴 수가 있을까. 더구나 한두 명이 연루된 사건도 아니고 70명이 넘게 구속된 대사건을 가지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보다 더 어리석고 어리석은 일은 없었다. 그런 행위가 온몸에 휘발유 뒤집어 쓰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위험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 자신들이 추구했던 운동이 김일성 정권을 편드는 것이었던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남쪽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동시에 직시하고 해결해 나아가는 것이 사회혁신이며, 진정한 통일운동의 길이라고 인식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상층부에서는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인가? 자금이 필요해서? 그건 전혀 말이 안 된다. 돈이 없으면 운동을 중단해야지 돈 때문에 운동의 순수한 목적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게 아니면 상층부에서는 처음부터 그런 의식과 목적을 가지고 조직원들을 속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건 악질적인 흉계고, 속은 자들의 순수한 무참하게 짓밟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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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베트남은 군인들뿐만 아니라 기업들에게도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하여 많이들 갔단다. 그렇게 기업들이 베트남에 진출하면서, 일반 노동자들도 베트남에 갔단다. 문태복이란 사람도 베트남에서 군수업을 하며 일했어. 베트남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 귀국한 후 택시 회사를 차리는 것이 꿈이었지. 그런데 그는 도박에 빠져서, 돈을 모으기는커녕 빚만 늘어가고 있었단다. 그 빚을 벌기 위해 베트남 근무를 계속 연장해야 했단다. 이런 사람이 비단 문태복만이 아니었을 거야.

 

1.

김명숙이란 사람 기억나니? 김선오의 둘째 동생으로 가출해서 차장으로 일하고 있었어. 친구 박보금과 나복녀는 술집 웨이터를 한다면서 차장 일을 그만 두고 나서 한참 연락이 끊겨서 그들을 만나보려고 했어. 김명숙은 박보금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이 하는 일은 그냥 술집 웨이터가 아니고 2차까지 나가 몸까지 파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김명숙은 자신이 그런 일을 안하게 되어 가슴을 쓸어내렸단다. 김명숙도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안 하기로 했었거든. 그런데 나복녀는 폐병 걸린 것이 확인되어 그곳에서도 쫓겨나게 되었대. 그 이후 연락이 안 된다고 했어. 나복녀는 술집에서 쫓겨난 이후 불쌍하게도 사창가에 팔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성병까지 얻게 되고 또 폐병이 도지게 되었어. 결구 나복녀는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여 자살 기도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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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두만의 딸 천말분은 가발 공장에서 가발 만드는 일을 했는데 손놀림이 좋고 빨라서 동료들보다 돈을 많이 받았어. 그들의 보수는 도급제, 그러니까 실적만큼 주는 것이어서 천말분은 화장실 가는 시간, 밥 먹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열심히 가발을 만들었단다. 천두만은 가발공장에 다니는 큰딸의 소개로 가발 공장의 원자재인 머리카락을 사는 일을 했어. 미용사 두 명과 함께 시골을 돌면서 여자들의 긴 생머리를 사는 거야. 당시에는 화학섬유로 만드는 가발도 있었지만, 실제 머리로 만든 가발이 더 품질이 좋았단다. 천두만과 미용사들은 시골에 가서 공짜로 파마를 해주고 머리카락 사는 돈도 준다는 전략을 썼는데, 이것이 잘 먹혀 들어가 벌이가 심심치 않았어. 뿐만 아니라 시골의 아가씨들에게 가발공장의 일자리 알선도 해주어 부수입도 챙겼어. 그에게는 꿈이 생겼어. 자신과 큰딸이 버는 돈을 모아서 조그마한 하청공장을 차리겠다는 꿈이었어.

나복남은 결국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어. 스테인리스 기계에 그만 손가락 네 개가 잘려나가고 말았어. 순식간이었단다. 하지만 공장에서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회사에서 해고까지 당했단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사장 집까지 찾아갔지만 소란을 피웠다며 자신만 파출소에 끌려가고 말았어. 아무도 그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이는 없었어. 그에게 그런 일자리를 주었던 천두만은 미안함 마음이 컸단다. 어떻게든 나복남의 생활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 천두만은 나복남의 손이 다 나으면 자신과 함께 머리카락을 사러 다니는 일을 하자고 했어. 그리고 자신이 공장을 짓게 되면 그곳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면 된다고 희망을 가지라고 이야기했지만 잘려나간 손가락 네 개는 어디서 보상을 받겠니. 나복남은 계속 사장에게 복수를 계획했어. 그래서 자신처럼 공장에서 손가락을 잃고 일자리를 잃은 다른 피해자들에게 연락했지만, 그들은 소극적이었단다. 하지만 그는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접을 수 없었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억울하니 말이야.

김선오의 바로 밑 여동생, 김광자. 그녀는 선생님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다른 꿈이 생겨났단다. 서독에서 간호사로 일하러 간 다음에 그곳에서 틈틈이 공부하여 의대를 가겠다는 꿈이었어. 더욱이 서독은 공부만 잘하면 의대 비용은 무료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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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경은 박부길 사장에게 그만 겁탈을 당했어. 허미경은 자신을 좋아하는 오빠 허진의 친구 이상재의 마음을 알았기에 자신의 몸이 더럽혀진 이후 이상재에게 연락도 안 했어. 이런 소식을 모르는 이상재는 제대 후에 사라진 허미경을 찾아 다녔어. 6개월에 만에 허미경을 찾았지만, 허미경이 박부길의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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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강> 5권에서는 전태일 이야기도 나오는데, 전태일이야 말로 용기 있고 진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도 오래 전에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을 읽었는데 그 내용이 전부 기억나질 않지만, 자신은 충분히 먹고 살고 살 수 있는 재단사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서 헌신했던 위대한 노동자란다. 앞서 이야기했던 <전태일 평전>을 너희들도 나중에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전태일이 노동 운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한강> 5권에 실려 있는 그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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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전태일은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이며 봉투에서 서류를 꺼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이야기 들을 자세를 전혀 갖추지 않은 채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훅 내뿜으며 책상 옆구리에 붙여둔 빈 의자가 있는데도 자리를 권하지 않았다.

저어, 저희들이 일하는 봉제공장들은 작업환경부터 사람으로서 견딜 수 없도록 형편없이 나쁩니다. 먼저, 천장 높이가 1.5미터밖에 안 되어 모두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해야 합니다. 원래는 3미터 높이였는데 사장들이 임대료를 줄이고 돈을 많이 벌려고 절반을 막아 2층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그런 공장들은 대개 8평 정도고, 평균 32명씩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비좁은 공장이 복도로 통하는 문 외에는 세 벽이 모두 막혀 있어 통풍이 전혀 안 될 뿐만 아니라 환기장치도 일절 없다는 사실입니다. 감독관님, 봉제공장은 모두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통풍도 안 되고 환기장치도 전혀 없으니 원단에서 풍기는 코를 찌르는 포르말린 냄새며, 옷감을 재단하고 옷들을 만들면서 끝없이 일어나는 실밥먼지는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대로 공장 안에 갇혀 있어서 공장 안은 언제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침침합니다. 공원들은 그 먼지를 다 마시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지가 많이 나는 옷감일 때는 서너 시간만 일해도 먼지가 앉아 머리가 허옇게 되고, 도시락을 펴놓고 첫숟가락을 넘기기도 전에 밥에 먼지가 허옇게 내려앉아 먼지밥을 먹는 실정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먼저구덩이에서 날마다 14시간씩 일을 하다 보니 기관지염, 진폐증, 폐결핵, 각종 눈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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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자아, 그럼 내 말 똑똑히 들어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분명히 사람이야. 그리고 이 세상 사람은 그 누구나 다 똑같이 평등해. 사람이면 모두가 다 공평하게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는 것처럼 말이야. 사람은 모두 평등하니까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어.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말야. 우리 공원들도 일반 직장인들처럼 하루 여덟 시간 일하고 제대로 봉급받고, 야근을 하게 되면 야근수당을 따로 받고 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져 있어. 그건 나라가 만든 법인데, 그 법 이름이 바로 근로기준법이야. 그런데 그 법이 정확하게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 공원들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기계처럼 뼛골 빠지게 혹사당하면서도 거지꼴을 못 면하고 살고 있는 거야. 그런데 왜 그 법이 안 지켜질까? 사장들이 돈 많이 벌 욕심으로 안 지키기 때문이라고? 그거 맞는 말이야. 그러나 그건 정확한 답이 아니야. 사장들의 잘못은 3분의 1밖에 없어. 그 법이 제대로 확실하게 지켜지게 하려면 사장들 말고 또 책임져야 할 데가 두 군데가 더 있다 그런 말이야. 자아, 이 대목에서 내 말 똑똑히 들어. 그 두 군데 중에 한 군데가 나라에서 만든 법을 제대로 잘 지키나, 안 지키나 감독해야 하는 공무원들이야. 그럼 나머지 한 군데는 어디지?”

전태일은 두 공원 아가씨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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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근로감독관, 노동청 등에 부당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서 이이기했지만 그들 모두 기업의 편에 서서 전태일의 의견을 묵살했어. 오히려 전태일은 회사에서 짤리게 되고, 다른 곳에도 취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단다.

 

2.

유일민은 임채옥이 준 돈으로 술 도매상 사업을 시작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단다. 서동철이 소개해준 남미미라는 전직 여배우가 운영하는 술집에 납품을 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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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임은 복부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어. 강남 쪽에 새로운 개발이 있을 거라는 소문에,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남편으로부터 정보를 알아내어 강남땅을 사들이기 시작했지. 당시만 해도 강남은 허허벌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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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일하는 광부들 사이에는 미국으로 이민 가는 유행이 번졌단다. 미국에는 일자리가 더 많고, 광부처럼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한국에서는 미국 이민이 쉽지 않지만, 독일에서는 그것보다는 쉽게 이민을 갈 수 있었기 때문이야. 배상집은 광부 일을 하면서 틈틈이 공부를 했단다. 자신이 원래 목표로 했던 박사학위를 따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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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백은 처가 등쌀에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어. 장인 어른은 검사인 이규백을 이용하여 이권을 챙기기에만 혈안이고, 아내는 시댁 식구들을 벌레 보듯 혐오하고 말이야. 이게 제대로 된 결혼 생활인지... 돈만 보고 결혼한 자신의 잘못도 적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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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경은 박부길의 첩이 되었고, 박부길은 허미경의 가족들한테도 아파트 한 채를 선물해 주었어. 그렇다고 허미경이 그에게 마음까지 준 것은 아니란다. 자신의 몸을 버려 체념을 한 것 뿐이지. 어느 날 허미경은 할머니와 가족들이 있는 아파트가 붕괴되어 무너졌다는 뉴스를 들었단다. 깜짝 놀라서 그곳에 갔는데 다행히 할머니가 사는 동은 아니고 옆 동이 무너졌단다. 이것은 실제 있었던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이란다. 15동이 그대로 주저앉아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사건이야. 날치기로 허술하게 지은 아파트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지면서 논란이 되었지. 당시 책임을 져야 할 부르도자(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서울 시장은 책임만 회피하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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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284)

원병균은 여러 가지 정황을 세밀하게 살피면서 말을 잃고 있었다. 산비탈은 45도가 족히 될 만큼 경사가 심했다. 그런 급경사에 단층짜리 주택도 아니고 5층이나 되는 아파트를 세운 것이다. 최신 장비나 최신 기술이 있더라도 신경 쓰고 조심해야 할 난공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모든 자재들을 등짐으로 져올리고, 콘크리트 반죽도 삽으로 적당적당 해치우는 형편에 그런 난공사를 한 것이다. 땅값 비싼 서울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평지보다 몇 배 더 강하고 튼튼하게 공사를 하도록 규정을 정하고, 감시했어야 한다. 그러나 산동네마다 솟아오르는 시민 아파트들이 너무 졸속이고 날림이라는 비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돌고 있었다. 그렇지만 부르도자시장은 그런 우려와 비판을 그야말로 불도저처럼 깔아뭉개며 일을 몰아붙여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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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여기까지가 <한강> 5권의 이야기란다.., 해방과 전쟁 이후 나라의 시스템에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자본주의가 물밀듯이 들어오다 보니, 사람은 뒷전이 되고 돈이 우선인 세상이 된 것 같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나 월남 가기로 자원했다. 곧 떠나.”

책의 끝 문장: 박준서는 멀어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까라면 까야지하고 생각했다.

 



미군들은 월남사람들을 ‘국’이라고 부르며 노골적으로 멸시하고 차별했다. 그러나 ‘국’이라는 비칭은 월남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국’은 원래 미국에 사는 중국인들을 천시해 생겨난 것이었고, 그 비하의 지칭에는 아시아 황색인종 전체를 업신여기는 의미가 포괄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군들은 한국군은 연합군으로 자기네와 같다고 애써 구분하면서 월남인들만 ‘국’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이상재는 그 얍삽한 수작이 오히려 역겹고 기분 상했다. 그건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백인들은 아시아인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간주한다는 글을 일찍이 읽었기 때문이다. 황인종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취급해 버리는 백인들의 그 대책 없는 오만과 우월감, 그에 대한 반감이 이상재는 월남에 와서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미군들이 더럽고 냄새난다고 해서 월남사람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6.25 때 한국사람들을 그렇게 취급했던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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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딸 2
정지아 지음 / 필맥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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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나이를 먹었더니,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저녁이 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그렇다 보니 독서 편지 쓰는 것이 하나 둘 밀려 쌓여가고 있구나. 어제는 잠을 좀 많이 자서 그런지 오늘은 좀 컨디션이 괜찮아서, 또 피곤이 몰려오기 전에 얼른 독서편지를 하나 써야겠구나. 오늘 이야기할 책은 지난번에 이어서 정지아 님의 <빨치산의 딸> 2권에 관한 이야기란다. 지난 번에 말한 것처럼 2권은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의 뒷부분 이야기와 정지아 작가님의 어머님의 이야기가 실려 있단다. 그러면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1조국이 부르다의 뒷부분 이야기를 해줄게.

<빨치산의 딸> 1권은 한국전쟁 중 휴전 협상이 진행되면서, 전방에 있던 국군들과 미군들이 빨치산을 진압하기 위해 지리산 인근으로 대거 내려왔고, 그들을 피해 빨치산들은 쫓겨가고 있는 부분까지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국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빨치산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들은 작전 변경을 해야 했어. 그 중에 하나가 위중자수였단다. 유혁운의 연인 김춘옥이 그 작전에 제격이었단다. 왜냐하면 김춘옥의 집안이 잘 사는 집안이었거든. 김춘옥도 그 작전에 흔쾌히 동의하였단다. 위장자수를 한 이후 지하에 침투하여 세력을 키워가기로 했어.

유혁운은 김춘옥의 위장자수 준비를 도와주었어. 믿을만한 지인의 집에 은거하면서 준비를 하였고, 김춘옥은 자수를 하였고 경찰도 김춘옥의 자수를 인정해 주었단다. 그런데 김춘옥의 위장자수를 준비하면서 유혁운도 위장자수를 하라는 설득과 압박을 받았어. 더욱이 산에서 내려 와 있었기 때문에 퇴로까지 막힌 상황이었어. 고민 끝에 유혁운도 위장자수를 하기로 했단다. 위장자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길고 긴 시간싸움이었단다. 경찰의 감시가 이어지는 와중에 지하 세력을 확장하기가 쉽지 않았어. 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나는데 일년의 시간이 필요했어.

위장자수를 하고 일년이 지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옛동지를 만날 수 있었단다. 하지만 그 동지가 배신을 했을 줄이야. 옛 동지의 배신으로 위장자수라는 것이 드러나고 체포되고 온갖 고만을 당했단다.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확정되었어. 그 때가 1954년이었어. 위장자수를 했던 김춘옥은 진짜 자수를 선택했단다. 힘든 산 생활을 하다가 편한 생활을 하다 보니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 같더구나. 그렇게 변심한 김춘옥이 면회를 왔는데, 유혁운은 김춘옥과 결별하였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57년 유혁운은 전향하기로 결심했단다. 전향을 하면 일단 출소할 수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진짜 전향이 아니고 전향인 척 하려고 했어. 밖에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다시 그의 사상을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 여기까지가 1권부터 이어진 1조국이 부르다의 이야기란다. 아빠는 1부를 읽으면서 김춘옥이라는 사람이 정지아 작가의 어머니가 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1.

2지리산의 영웅들은 앞서 이야기했지만 정지아 작가님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이야기란다. 아빠는 이런 내용을 모르고 읽어서 처음에 읽을 때는 1분의 뒷이야기가 이어지는 줄 알았어. 그런데 좀 읽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고, 이내 정지아 작가님의 어머님의 이야기란 것을 알게 되었단다. 옥남이라는 여자가 있었어. 공부하고 싶어했지만 집안이 어렵다 보니 부모님은 딸까지 공부를 시키지는 않았어. 하지만 혼자 틈틈이 공부를 했단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다가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고, 옥남은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남편은 최규복이란 사람으로 장난기도 많고 재미있는 말도 많이 하는 사람이었어. 처음에는 정을 붙이지 못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최규복에게 정도 붙였단다. 그런데 1944년 최규복은 일제에 의해 전쟁터에 끌려가게 되었고, 다행히 1945년 가을에 몸 건강히 살아서 돌아왔단다. 그 사이에 남편은 사회주의 사상을 알게 되어 사회주의 운동을 하였어. 빨치산 활동도 하게 되었는데, 최규복은 옥남에게 같이 하자고 했단다. 최규복이 빨치산 활동하는 것이 알려지자 경찰은 최규복 집안을 들쑤셔 놓았고 최규복의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어. 옥남도 최규복을 따라 산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빨치산 활동을 했단다. 그리고 산에서 아이도 낳았어. 산에서 도망 다니면서 어린 아가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어. 먹는 것도 편편치 않고 말이야. 결국 아이는 얼마 못 가서 그만 죽고 말았단다.

옥남은 지리산의 이현상 부대에서 소속되어 일했단다. 이름도 본명을 버리고 옥자로 바꾸어 활동했어남편과 한참 떨어져서 일하다가 오랜만에 다시 만나기도 했단다. 그런 와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났어. 1부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물밀듯이 내려와서 산에서 활동하던 빨치산들에게도 활약을 넣어주었지. 더 이상 산에 숨어 활동할 필요가 없어졌어. 이현상 부대는 낙동강 전선에 인력을 지원하기로 했어. 이때 최규복도 참가했단다. 하지만 최규복은 그 전투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단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상황은 급변하게 반전되었어. 전선은 다시 중부 지방에서 형성되었고, 이현상 부대는 중부 지방을 지원하기 위해 태백산맥을 타고 북상하였단다. 전선은 중부 지방에서 계속 올라갔고, 이현상 부대도 계속 북상하여 북쪽 땅까지 가서 거물급 인사인 이승엽을 만나기도 했단다. 그리고 그들에게 또 다른 임무가 주어졌어.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후방을 교란하라는 역할이었어. 그래서 그들은 남부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남하하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몸이 좋지 않았던 옥남에게 북에 남아서 공부하라고 제안했지만 옥남은 끝까지 현장에서 투쟁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며, 남부군에 합류했단다.

남부군은 다시 태백산맥을 타고 내려왔단다. 내려오면서도 여기저기서 국군과 결전을 벌였고, 지리산까지 내려왔어. 지리산을 거점으로 유격활동을 했단다. 지리산에 가보면 세석 산장에서 장대목 산장까지 가는 길에 넓은 평원이 이어져 있고 나무들이 별로 없는 곳이 있는데, 빨치산 토벌을 위해 나무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그렇듯 지리산은 아픈 우리나라의 역사를 고이 간직한 곳이란다. 아빠가 예전에 지리산을 좋아해서 여러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갈 때마다 그곳에 깃든 역사로 인해 숙연해지곤 했단다.

 

2.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지리산에서 유격 활동은 쉽지 않았어. 특히 여자에게는 더욱 힘들었단다. 용변 보는 것도 그렇고 생리 현상도 그렇고 말이야. 하지만 여성 동지들도 꿋꿋하게 유격 활동을 했단다. 북으로부터 지원이 끊긴 남부군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400여명이었던 남부군은 150여 명으로 줄어들었어. 북쪽에서 이승엽 간첩 사건이 일어났고, 그 일이 남부군에까지 전해졌단다. 전쟁 실패의 책임을 남로당 출신인 박헌영과 이승엽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북한의 음모라는 것이 정설이란다. 이 일로 이승엽 측근이었던 이현상도 종파주의자로 비판을 받고, 직책에서 물러났단다. 그리고 1953년 매복 중 죽고 말았대. 이현상이 죽고 나서 남부군을 궤멸되었다고 볼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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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306)

지리산의 가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산꼭대기에서부터 화려하게 타오르는 단풍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순간 낙엽이 지고 거센 북풍과 함께 겨울이 닥쳐오는 것이다. 남부군의 마지막 낙원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11월 초 서남지구 경찰병력이 총동원되어 비행기까지 합동으로 달궁을 공격해 들어왔다. 대형폭탄과 기총사격에 밀려 남부군은 결국 한 달여의 천국을 버리고 그 달 말까지 지리산 곳곳의 골짜기를 전전하면서 월동준비에 바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깊어가는 겨울과 함께 남한 빨치산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그 유명한 수도사단의 공세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후평에서 9백여 명에 가까운 대부대로 승승장구하던 남부군은 이 수도사단의 공세가 끝나고 난 후 150여 명 정도만이 간신히 살아남는다. 그 수많은 인민군 정규부대도 넘지 못한 낙동강을 넘어 종횡무진 적의 심장을 들쑤시고 다니던 남부군, 후평에서부터 지리산까지 몇 천 리 장정 동안 유격부대답게 후방의 적을 마음껏 섬멸하고 다니던 남부군의 사실상의 유격투쟁은 이제 막을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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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아빠가 예전에 안재성 님의 <이현상 평전>을 읽고 쓴 독서편지가 있으니 다시 한번 읽어보면 오늘 해준 이야기랑 연계되어 좋을 것 같구나.

옥남은 부상을 입어 환자트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동료의 배신으로 토벌대에 생포되었고, 산에서 내려오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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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389)

남편의 얼굴이, 이현상, 박종하, 이진범, 양봉순, 다 기억할 수도 없는 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동지들의 피가 스미고 살이 썩은 이 산은 봄이면 더 눈부신 녹음을 피워낼 것이다. 이 산으로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역사는 소용돌이치며 저 거대한 지리산의 산맥처럼 수많은 봉우리를 만들며 흘러갔다. 우리는 어떤 봉우리를 만든 것일까. 우리는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또 다른 동지들이 정상으로 오를 것이다. ‘평등이라는 말만큼 자신의 생명을 걸고 불꽃같은 열정으로 또다시 꿈꾸는 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 혁명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이현상도, 박종하도, 마실 동무도, 김 영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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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가 <빨치산의 딸> 2권의 이야기란다. 1부에서 이야기한 아버지와 2부에서 이야기한 어머니가 만나는 장면까지 나올 것을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이야기는 옥남이 하산하는 부분에서 끝을 맺었단다. 소설 어디선가 다른 소속으로 근무하던 혁운과 옥남이 한번 스치듯 만나 인사를 나눴던 장면이 있긴 했지만 말이야그래서 더욱 여운이 남고, 이후 어떻게 다시 만났는지 궁금하기도 하구나. 그런데 이전에 읽은 정지아 작가님의 책들 중에 부모님이 어떻게 만났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았거든한참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내려 했지만 슬프게도 생각이 나질 않았단다. 독서편지를 뒤져봤지만 그런 내용이 없었어. 아쉬운 기억력을 탓해야겠구나.

빨치산의 딸.. 참 잘 읽었단다.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총부리까지 서로 겨누어야 했나 싶지만, 그들에게는 사상은 목숨보다 중요했나 보구나. 그리고 그들의 열정을 다 마칠 수 있던 것이 또 그들이 믿는 사상인가 보다. 무엇인가 하나에 빠져 온몸을 다 바칠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면서, 아빠는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는구나. 아무튼 정지아 님의 글빨로 인해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책 속에서 지리산이 많이 등장하여 문득 지리산에 가보고 싶구나. 마지막으로 천왕봉에 오른 것이 10년 가까이 되어 가는구나. 체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지리산 천왕봉에 한번 가보고 싶구나. 너희들도 함께 가면 더 좋고…^^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52 4 10일경, 곡성 봉두산에 있던 도당 연락과 분트가 적의 기습으로 전멸당하고 생포자까지 생기는 바람에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기존의 모든 연락루트가 차단됐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그녀는 그 산으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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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딸 1
정지아 지음 / 필맥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공존의 히트를 친 정지아 작가의 30여년 전 작품인<빨치산의 딸> 1권의 이야기란다. 이 책은 총 2권으로 되어 있고 오늘은 1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던 1990년에는 아직 반공의 시대를 살고 있던 시절이라 이 책은 금서로 지정되었고, 출판사 사장은 실형까지 선고 받았고 정지아 작가는 지명수배까지 당했다고 하는구나. 그 이야기는 정지아 작가의 에세이에서도 읽은 적이 있단다. 아빠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통해 정지아 님의 팬이 되었고, 이후 정지아 님의 책들을 하나 둘 찾아 읽고 있단다. 이번에 읽은 것도 그의 연장선상이란다.

<빨치산의 딸>은 정지아 작가의 초기작이지만 그 때부터 필력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었단다. 처음 출간된 것은 1990년인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출간되자 금서 처리가 되었고, 그로부터 15년 뒤인 2005년에 새로 출간되었단다. 아빠가 읽은 것은 2005년도판인데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히트를 친 후 2023년에 다시 한번 개정판이 나왔더구나. 요즘 아이들은 빨치산이 지리산 근처 어디쯤 있는 산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고 해서 너희들에게도 함 물어봤더니, 아직 빨치산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빨치산은 비정규 게릴라 부대를 말하는데 이것은 영어 partisan 을 한국식으로 이야기하다가 변형된 것이란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조선인민유격대를 보통 빨치산이라고 한단다. 그래서 반공의 시대에 빨치산은 거의 금기어나 마찬가지였고, 빨치산들이 체포되어 자유민주주의 진영으로 전향하지 않으면 계속 감옥에 있어야 한단다. 그런 사람들이 오랫동안 감옥에 있어서 장기수(長期囚)라고 했는데, 아빠가 어렸을 때 그런 장기수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간혹 나왔던 기억도 있구나. 정지아 작가님은 <아버지의 해방일지>나 에세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듯이 부모님들이 빨치산 경력이 있던 분들이었어.

이 소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바로 정지아 작가님의 가족의 이야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단다. 2권으로 되어 있고, 책의 구성은 아주 긴 프롤로그가 있고, 1부와 2부가 있단다. 프롤로그에서는 정지아 작가 자신을 모델로 한 이야기가 실려 있고, 1부에서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이야기가 실려 있고, 2부에서는 정지아 작가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이야기가 실려 있단다.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 줄 <빨치산의 딸> 1권의 이야기는 프롤로그와 1부 대부분의 내용까지란다. 1부의 나머지 부분과 2부의 이야기는 <빨치산의 딸> 2권에서 이야기해줄게.

 

1.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받아들였지만, 100년도 안 되어 그 실험을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인단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일부 나라에서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니까 말이야. 한 때 그런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해주겠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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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래전에 쓴 글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다시 한번 역사라는 것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 현대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목숨까지 걸게 했던 사회주의는 이미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지고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 쿠바 정도가 사회주의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사회주의를 현실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니 사회주의란 소련이나 중국으로 대표되는 어떤 제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사회주의는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가리키는 추상명사였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은 언제나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추구하는 동물이므로, 사회주의가 사멸했다고 하는 지금 이 시간에도 더 나은 어떤 세상,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던 옛 사람들의 기록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위안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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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초등학생이었던 지아. 당시 아버지는 감옥에 있었고, 친구들로부터 빨갱이의 딸이라고 놀리며 따돌림을 받아야 했어. 결국 어머니는 그런 이력을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서울로 이사하기로 하고 은평구 갈현동으로 이사 왔단다. .. 은평구 갈현동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동네로구나. 지아가 중학생이 되고 글솜씨가 좋다는 것을 인정 받으면서 학교에서도 인정 받는 학생이 되었단다.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중학교 때 처음으로 어머니도 빨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대. 그래서 늘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 사춘기였던 지아는 이런 부모님의 이력에 불만이 많았고, 엄마와 심한 갈등을 빚기도 했대. 왜 빨갱이를 해서 이렇게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냐면서 말이야. 하지만 어머니는 그럴수록 자신의 선택에 대해 당당하셨다고 했어.

1979 8월 특사로 아버지가 8년만에 출소하셨어. 그리고 얼마 후 1979 10월에는 반공의 상징이자 독재정권의 심장인 박정희가 암살당했단다. 새로운 세상이 오는가 싶었지만, 두 달 뒤에 너희들과 함께 본 영화 <서울의 봄>의 실제 배경인 1212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어. 1980년 지아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늘 소설만 읽었어. 그러자 성적이 계속 떨어졌지. 아버지는 시골에 내려가서 살자고 했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고향 구례로 내려오게 되었어.

지아는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단다. 부모님은 고향인 반내골에 정착을 하셨고, 두 분은 평생 해본 적이 없는 농사를 처음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처음 하는 농사이다 보니 서툴고 돈벌이도 제대로 안되었단다. 구례에 내려와도 가난은 벗어나기 어려웠지. 지아는 재수를 해서 원하는 학과에 진학을 했고, 대학에 들어가서야 제대로 된 지식과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어. 그러면서 부모님의 행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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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6)

역사란 세계사 책 속에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걷는 이 길, 내가 사는 이 반내골에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다는 게 신비로웠다. 구름 위로 솟은 지리산을 볼 때면 가슴이 뛰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삶이 비로소 구체적인 형상을 띠고 다가왔다. 할머니의 말대로 공산당이 모두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다면, 설령 두 분 때문에 연좌제 정도가 아니라 목숨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반쪽짜리 역사였거나 어쩌면 완전히 잘못된 역사인 것만은 분명했다. 영어단어와 수학공식은 배웠지만, 이승만과 박정희의 공적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학교에서는 내 혼란의 일부분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왜 세상에는 차별이 있는지, 왜 나는 공산당의 딸로 태어나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지, 할머니를 통해서 모든 것을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할머니는 책에 씌어진 역사와는 다른, 보통사람들의 역사가 있다는 것, 내 부모는 그 역사의 와중에서 그것이 옳든 그르든, 없는 사람들의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신념으로 목숨까지 내던졌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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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도 바뀌어서 부모님은 옛 동지들을 만나서 회포도 풀고 그랬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빨치산의 딸은 가난과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했단다. 긴 프롤로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지은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 형식을 빌려서 들려주었단다. 아참, 지은이 정지아의 이름은 부모님이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지리산의 와 백아산의 를 따서 지어주신 것이라고 하는구나.

 

2.

1부의 제목은 조국이 부르다란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작가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이야기란다. 때는 1945 4월 정운창은 구례역 철도원으로 취직을 했단다. 1945 4월이면 2차세계대전의 막바지이고 일제가 마지막 발악을 하던 시기로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끌려가던 시기였단다. 철도원이라는 직업은 다행히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대. 얼마 안 있어 해방이 되고 친일파들을 처치할 수 있어 기뻐했는데,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친일파들이 다시 고용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어. 일제시대 후반기부터 새로운 사상인 사회주의가 지식인들과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퍼져 있었단다. 당시는 이것이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친일파가 다시 극성을 부르고, 노동자들의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1946 9월 전국적인 총파업이 시작되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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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그러던 9월 전국적인 총파업이 시작됐다. 그가 소속해 있는 철도에서의 파업이 총파업이 불씨였다. 애당초 철도파업이 내건 요구사항은 쌀을 달라는 대부분 인민들의 요구와 별다른 바 없었다. 일급제 반대, 기본급료 인상, 가족수당 일인당 육백 원 지불, 물가수당 인상, 식량을 본인에게 네 홉, 가족에게 세 홉씩 지급할 것, 운수부 직원도 동등하게 대우할 것 등이 노조의 요구조건이었다. 당시 모든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엄청난 물가상승으로 일제시대의 삼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철도국장 맥크라인은 철도노조가 제출한 요구조건에 대하여 인도 사람은 굶고 있는데 조선 사람은 강냉이를 먹고 있으니 행복하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군정청의 회답이 없자 철도노조는 24일 오전 9시를 기해 사만여 노조원들이 일제파업에 돌입했고, 26일에는 서울지역 출판부문 노동자들이 동조파업에 들어갔다. 그들은 26경성지방 총파업 출판노동조합 투쟁위원회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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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대화가 아닌 무력 진압을 선택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남한 정부에 실망한 이들 중에 북으로 가려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남북한 이동이 자유롭지 않게 되면서 다시 내려오기도 했대. 운창은 남로당에 가입을 하고 본격적인 사회주의 활동을 했단다. 대부분의 좌익 활동하던 이들이 가명을 쓰고 활동을 했는데, 운창은 유혁운이라는 가명을 사용했어. 하지만 체포되어 감옥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어. 동지들의 이름을 끝내 불지 않아서 더 심한 고문을 받았지. 다시 풀려나서는 1948년 여수순천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때 저항군에 합류하여 계엄군과 맞서 싸웠어. 전세가 불리해지자 산으로 대피했어. 운창의 아버지는 골수 우익이라서 피해를 입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엄군에게 그만 총살당하시고 말았어.

산에 들어간 이후에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게릴라 작전을 펼쳤단다. 곡성, 화순, 광주, 구례로 이동하면서 게릴라 작전을 펼쳤지만, 토벌대의 대대적인 공격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었어. 유격대는 절멸의 위기가 있었어. 그런데 그 때 전쟁이 일어났어. 북쪽에서 많은 동지들이 밀고 내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그 소식이 전해진 지 얼마 안되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다는 거야. 그들이 있던 곳은 모두 북한 인민군의 점령지가 되어서 산에서 활동하던 빨치산들은 모두 산에서 내려와 인민해방군으로 각 지방을 관리하게 되었단다.

금방 승리로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낙동강에서 한동한 소강 상태로 이어졌고, 얼마 후에는 인천을 빼앗겼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지. 얼마 후 남한은 서울도 수복하면서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어 국군은 북으로 치고 올라가고 있었어. 그러자 산에서 내려왔던 빨치산들은 다시 쫓기는 몸이 되어 산으로 들어갔단다. 다시 유격 게릴라군이 되어 활동하게 되었어. 그들의 임무는 후방에서 국군을 공격하여 전방에 있는 국군 세력을 남쪽으로 유인하는 것이었어.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방에서는 휴전 협상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어. 이것은 후방의 빨치산들에게는 청천벽력의 소리였단다. 왜냐하면 전방에 있는 국군들이 후방으로 대거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야. 예상은 현실이 되어 전방의 국군들은 빨치산쪽으로 이동하였어. 지리산, 백운산, 백아산에서 빨치산들은 대규모 국군들에 맞서야 했어. 지원이 끊긴 그들의 싸움을 쉽지 않았지. 많은 동지들이 죽어나갔어. 그런 힘든 시기일수록 서로 의지하는 힘은 강해지고 그러면서 사랑도 하게 되었단다. 유혁운은 김춘옥이라는 동지와 사랑하게 되었어. 하지만 둘 모두 사랑보다는 혁명이 먼저라고 생각했단다. 외롭게 싸워가든 그들에게 드디어 지원군이 나타났어. 북에서 보낸 남부군이 그들이야. 남부군과 합세하여 국군에 대항했어. 하지만 국군은 미군과 연합하여 총공세를 했는데, 세균전과 화학전까지 이용했어.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재귀열이라는 병에 걸려 죽고 네이팜 탐에 죽고 말았단다. 그들의 전력이 엄청나게 열세였지만, 그들은 혁명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게 된단다.

여기까지가 <빨치산의 딸> 1권의 이야기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은이의 필력이 좋으셔서 금방금방 책장이 넘어간단다. 그리고 마치 그곳에 있는 것만 같았어. 그렇게 어려움에 빠지고 옆에 있던 동지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계속 항쟁할 수 있는 신념이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빠라면 그렇게 못했을 텐데 말이야.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내 인생 최초의 싸움은 아버지 때문에 시작되었다.

책의 끝 문장: 이제 밀알이 되는 것, 땅에 뿌려져 더 많은 밀로 태어날 그날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것, 그것이 남은 그들의 자리였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어항 속의 금붕어였을 뿐이었다. 어항의 벽을 깨뜨릴 수 없다면 굴욕적으로 숨쉬느니 어항 벽에 머리를 박고 죽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내게는 벽을 깰 방법이 없었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 있을 따름이었다. 판검사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다든가, 판검사가 될 수 없으니까 가능한 한도 내에서 의사라도 되겠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음으로 해서 세상을 비웃어주고 싶었다. 나는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살기로 했다. 나를 소외시킨 세상을 오히려 내가 소외시킨면서 말이다. - P33

천하의 개망나니 박종하는 46년 말이 되면서 차차 변하기 시작했다. 동네사람들은 천하의 박종하를 저렇게 얌전하게 만든 게 누구냐며 수군거렸다. 박종하를 변화시킨 장본인은 곧 밝혀졌다. 바로 공산당이었다. 주먹이나 휘두르는 것으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말뿐인 해방조선 젊은이의 답답함이 무신자를 위한 평등한 새 세계 건설과, 친일파를 비호하며 조선을 새로운 식민지로 만들려는 미 제국주의로부터의 민족해방이라는 이 땅의 역사적 사명을 알아가면서 비로소 진정한 자기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조직활동을 시작하면서 놀랍게 변해가는 박종하를 보며 마을사람들은 공산당의 위력에 혀를 내둘렀다. 당시 남조선 대부분의 인민이 그랬지만 박종하와 같은 동네 사람들이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노인네나 젊은이들이나 모두가 좌익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동네에서 조금 말썽피우는 사람을 보면 으레 "저놈 공산당 만들어야 사람 된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 P151

"동무들! 우리는 조선노동당 당원들이오. 굶주리고 짓밟힌 무산대중을 위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가들이오. 혁명가는 이미 자기를 버린 지 오래요, ……혁명가는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혁명당을 따라야 하오. 동무들은 한 지도자의 일시적인 오류로 혁명사업을 그르쳤다고 해서 영원히 혁명을 포기하겠다는 거요? …… 이번 전쟁은 언젠가 중앙에서 다시 검토될 것이오. 그때 모든 과오들이 가려지고 비판되겠지요. 이 점 명심하고 동무들 몇 명이서 북으로 가겠다는 거요? 이미 퇴로도 끊겼소. 지금까지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지금 당장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를 결정하시오. 내 말이 옳다고 생각되면 각자 자기 부서로 돌아가 자기 임무를 다하시오." - P262

묻혀진 역사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세계 어디에도 한국의 현대사와 같은 뼈아픈 비극은 없었고, 또 그렇게 철저하게 묻혀진 비극의 역사도 없다. 아직까지도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치열했던 그 시기의 이야기는 금기로 묻혀져 있다. 최근 들어 간혹 한두 사람의 묻혀진 이야기들이 비밀스럽게 들춰지기도 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흐름이 사실대로 밝혀지지 않는 한 한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거대한 물줄기의 한 지류일 뿐이고, 그 작은 흐름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도 도도한 원 물줄기가 제자리를 잡을 때뿐일 것이다. - P363

박갑출도 전적으로 그의 견해에 동의했다. 이제 남한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은 보라빛 먼 날의 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간부들 중의 어느 누구도 이전과 같은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당장 다시 오리라고 믿지 않았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최후까지 싸우다 죽는 것과, 언제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다시 오고야 말 혁명의 결정적 시기에 대비해 도시로 들어가 지하조직을 구축하는 길뿐이었다. 그날이 언제쯤일까? 10년 뒤일 수도 있고 어쩌면 50년 뒤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뿌린 싹이 해방의 그날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좋았고, 살아서 볼 수 없는 날을 위해 준비하는 것도 좋았다. 단지 이 결정적 시기를 해방으로 성공시키지 못한 쓰라림이 남는 것뿐이었다. 이제 밀알이 되는 것, 땅에 뿌려져 더 많은 밀로 태어날 그날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것, 그것이 남은 그들의 자리였다. -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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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4 - 제2부 유형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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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한강> 4권을 이야기해줄게. 4권부터는 2유형시대의 제목을 가지고 있단다. 유형시대가 정확히 어떤 뜻을 의미하는지 좀 찾아봤는데, 찾을 수가 없구나. 2부를 읽으면서 그 뜻을 대충 유추해 봐야겠구나. 소설 속에서 년도가 나오지 않지만, 소설 속 역사적인 사건을 유추해 보면 <한강> 4(2부 유형시대) 1964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안경자의 아버지는 광주에서 잘 나가는 병원을 하는 병원장이란다. 안경자의 동생을 김선오가 가르쳤는데 그때부터 안경자의 아버지는 김선오를 눈 여겨 보았어. 김선오가 검사에 합격하게 되자, 안경자의 아버지는 김선오를 신랑감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뜻을 이야기했단다. 김선오는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병원장의 딸을 아내로 둔다는 것만큼 경제적 이익은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한가지 걸리는 것이 있단다. 김선오는 그 동안 안경자의 친구였던 박영자과 사귀고 있었어. 김선오가 순천으로 발령되어 오면서 거리적으로 멀어지긴 했지만 애인은 애인이니까 말이야. 김선오는 며칠을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안경자를 선택하고 안경자의 아버지를 찾아갔단다. 그런데 김선오에게 복병이 있었단다. 강숙자. 자신을 멸시하던 김선오를 오래 전부터 싫어했던 강숙자. 강숙자는 안경자와 박영자 둘 모두의 친구잖니. 강숙자는 안경자에게 김선오와 박영자 사이에 대해서 다 이야기를 했단다.

충격을 받은 안경자는 아버지에게 이야기하고 김선오와 일을 없었던 것으로 했단다. 김선오는 박영자와도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속이 쓰렸지만 자신의 잘못을 누구에게 탓하리오. 김선오는 자신의 검사 월급으로는 딸린 가족들을 챙기기 부족하다면서 걱정했단다. 김선오, 많이 타락했구나.

또 다른 사랑 이야기. 임채옥과 유일민의 사랑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끝나가려고 한단다. 임채옥의 아버지 임상천이 임채옥이 유일민과 사귀는 것을 알게 되었어. 임상천은 자신의 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집에 감금시키고 일민을 못 만나게 했단다. 이 충격으로 임채옥은 하혈을 했는데, 알고 보니 임채옥은 임신을 하고 있었던 거야. 임상천은 사람들을 시켜 유일민을 반쯤 죽여 놓고 다시는 임채옥을 만나지 말라고 경고했단다.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꿈을 펴지 못한 유일민은 사랑도 이렇게 제대로 할 수 없구나. 등장인물 중에 가장 불쌍한 사람인 것 같아.

유일민은 임채옥을 잊기 위해 서독 광부를 준비하였단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독에 돈을 벌러 가기 위해 광부와 간호사로 많이 갔거든. 유일민은 빨리 광부 경력증을 받기 위해 뒷돈도 쓰고 그랬단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버지 이력 때문에 서류에서 떨어지고 말았단다. 뒷돈 쓴 것 때문에 빚만 남았단다. 도대체 이곳에서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구나. 유일민의 동생 유일표도 돈이 없어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갔단다.

 

1.

4.19 혁명 때 대학생으로 참여했던 박준서. 박영자의 오빠이기도 하지.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서 사업을 배웠단다. 아버지에게 형들보다 더 인정을 받기 위해 정말 열심이었단다. 4.19 혁명 때 정의를 향한 젊은 혈기는 사업을 향한 혈기로 바뀌어 있었어.

나복남의 동생 나윤자는 봉제 공장에서 일했는데, 봉제 공장은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이었단다. 장소를 확보하려고 일층 중간에 칸막이를 두어 2층으로 만들어 노동자들은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했고, 환풍시설이 제대로 없어서 먼지 속에서 작업을 해야 했단다. 그래서 폐병 걸리는 노동자들이 가끔 있는데, 그런 병에 걸렸다고 회사에서 의료비 지원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병에 걸린 사람을 잘라버렸단다. 정말 사악한 놈들이구나.

당시 가장 큰 사회적 이슈는 한일협정이었단다. 일제시대의 보상을 돈 몇 푼으로 끝내려고 하는 한일협정. 당시는 해방이 된지 20년도 안 된 시점이니 사람들이 얼마나 울분에 찼겠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일협정반대 시위를 했단다. 야당 정치인들 중에서도 이를 강력히 비판하고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어. 대표적인 사람이 한인곤이었단다. 정부가 이를 그냥 보고만 있겠니. 중앙정보부에서 직접 나섰어. 한인곤을 직접 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을 겨냥했어. 한인곤의 아버지 한무규의 회사에 세무조사를 해서 정미소 소유를 박탈시켰어. 회사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결국 한인곤은 자세를 낮추고, 이젠 공화당이 된 친구 남재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단다. 이것이 당시 권력 잡은 이들이 휘두르는 권력의 진실이었단다.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이 검찰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들과 가족들을 털어 기소하고 그러잖니. 검찰권력이 너무 막강하구나.

김선오의 동생 김명숙은 가출한 이후 친구들과 함께 차장 일을 했는데, 성추행에 가까운 몸수색을 당하는 것이 정말 괴로웠단다. 어느날 맥주홀의 서빙 자리를 제안 받게 되는데, 술집이라는 인식 때문에 김명숙은 그 제안을 거절했단다. 그런데 그게 정말 잘 한 것이었어. 알고 보니 그곳은 성접대까지 하는 술집이었던 거야.

유일표는 군대에 들어간 이후에 아버지 때문에 주기적으로 조사를 받고, 보직도 계속 바뀌었단다.

 

2.

유일민이 서독 광부를 가려고 준비했었다고 했잖아. 그때 같이 준비했던 친구 배상집은 최종 합격이 되어 독일에 갔단다. 그곳 생활도 쉽지 않았어. 석탄 가루 날리는 탄광에서 하루 종일 몸을 쓰며 일을 해야 했어. 그런데 어느날 통역을 맡은 이가 통역을 잘못하여 한 노동자가 거의 죽을 뻔한 일이 있었어. 이에 독일 관리자는 평상시 독일어를 할 줄 아는 배상집을 눈여겨보고 배상집에서 통역 일을 시켰단다. 그래서 배상집은 이제 탄광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어.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유일민. 이번에는 월남파병 근로자를 신청했으나 이번에도 신원조회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단다. 당시 월남, 그러니까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어. 군인들 파병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많이 갔단다. 우리나라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서 많은 노동자들이 베트남으로 향했단다. 유일민은 그곳도 갈 수가 없었어. 어느날 유일민은 우연히 임채옥을 만났어. 임채옥은 유일민에게 도망가자고 했어. 도망가지 않으면 자신은 부모님이 시키는 강제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어. 유일민은 자기 아버지 때문에 안 된다고 했어. 만의 하나 자기 아버지가 내려오면 자기뿐만 아니라 임채옥의 가족까지 파탄 날 수 있다면서 안 된다고 했어. 그러면서 이제 진짜로 헤어지자고 했단다. 임채옥은 눈물을 머금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임채옥은 자신이 틈틈이 모아 놓은 돈이라며 당시로서는 거금인 50만원을 주려고 했단다. 유일민은 당연히 안 받으려고 했지. 임채옥은 그 동안 있었던 일, 아이를 임신했던 일과 낙태했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어. 유일민은 임채옥의 진심을 받아들여 돈을 받았단다. 유일민은 결국 임채옥의 도움으로 사업을 할 수 있었단다. 사업은 신원조회가 필요 없었지. 유일민은 친구 서동철에게 조언을 받아 술 도매업을 하기로 했단다.

….

그 밖에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쭉 간단히 이야기해줄게. 천두만은 월남 파견 근무를 지원했지만 떨어졌단다. 유일표의 친구 최주한은 카투사로 입대하여 근무를 해서 편하긴 했지만 미군들의 인종차별로 스트레스가 심했어. 안경자는 결국 의대 선배인 신기훈과 결혼하게 되었어. 김선오의 또 다른 여동생 김광자는 유부남에 속아 사랑에 배신을 당하고 서독에 가기로 결심했어. 간호학원에서 간호사 자격을 획득하고 독일어 학원을 다니며 독일어 공부도 열심히 했단다. 강기수는 공화당으로 당을 옮겨 다시 한번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단다. 박정희는 윤보선을 상대로 지난번보다 여유로운 표차로 대통령 재선에 성공을 했어.

이 시설 또 하나의 큰 사건이 있었어. 북한 공작원 31명이 청와대 뒷산까지 침략했던 거야. 이 중에 29명이 사살되고 한 명은 북으로 되돌아 도망갔고, 김신조 한 명만 투항하여 잡혔던 사건이란다.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란 사건인데 가장 깜짝 놀란 사람들은 군인들이 아닐까 싶구나. 이 일로 갑자기 군생활이 6개월이 늘어났는데 제대를 앞둔 사람들에게도 적용이 되었단다. 제대를 코 앞에 두고 군생활이 6개월이 늘어나다니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 일어난 거지군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그들이 느꼈을 분노를 모두 이해할 것 같구나. 그뿐만 아니라 군인 훈련도 빡세져서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을 받아야 했어.

….

여기까지 <한강> 4권의 이야기란다. 조정래 님의 소설은 살아있는 삶을 그대로 쓰셔서 정말 실감이 나는구나. 그 시절을 함께 살고 있는 기분이란다. 기쁜 일보다 슬프고 억울하고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아서 그렇지..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화순을 지나면서 비치기 시작한 눈발은 기차가 광주에 도착했을 때는 꽤나 탐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 오면 내가 위로주 살게.”



김선오는 눈을 맞으며 한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득한 눈발 저쪽에 무등산이 그 우람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광주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산, 광주에 오면 누구나 바라보는 산, 언제나 중후하고 의연하고 듬직하고 넉넉한 자태의 무등산은 겹겹의 눈발이 지어내는 환상적인 옷을 입으며 묘한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광주를 내려다보듯 보듬듯 하고 있는 그 산을 무시로 바라보며 무등의 의미를 가슴에 새겼던 지난날을 김선오는 왠지 슬픈 감정으로 더듬고 있었다. 등수를 매길 필요가 없도록 으뜸이 되겠다는 꿈 속에는 고등고시 최연소 합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자신의 모습은 무엇인가……
"꿈은 클수록 좋고, 욕망은 치열할수록 좋다."
- P10

"그게 말입니다…… 얼핏 보면 항아리에 담아놓는 것이 더 손해일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따지고 보면 꼭 그럴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왜냐하면 딴 그릇에 따로 내와도 깍두기가 모자라게 되면 사람들은 또 달라고 합니다. 그럼 다시 갖다 주느라고 일손만 많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항아리에 담아두면 그 일손을 덜게 됩니다. 그리고 또…… 딴 그릇에 두 번 내온 것이 많아서 남기게 되면 그건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항아리에서 각자가 먹을 만큼씩만 꺼내 먹으면 그런 낭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항아리에 이렇게 담아두면 인심을 후하게 쓰는 것 같아 손님들을 기분 좋게 하고, 그게 더 손님을 끄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 P37

"허진으로서는 어쩔 수 없을 거야. 자기 할아버지와 집안을 생각하면 그 심정이 어떻겠어. 일본놈들이 백배사죄하며 돈을 싸짊어지고 와도 시원찮을 판인데, 오히려 이쪽에서 사죄 같은 건 상관없이 어서 돈이나 좀 달라고 매달리는 형국 아니냔 말야. 그러니 자기 할아버지가 짓밟히고 모독당하는 것 같고, 괜히 헛된 일 한 것 같고, 또 엉망이 된 집안 꼴을 보면 얼마나 기막히겠어. 우리가 허진의 심정을 다 알 수는 없는데, 어쩌면 죽고 싶은 심정으로 데모를 하는지도 몰라."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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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필의 진보를 위한 역사 - 진짜 진보의 지침서 & 가짜 극우의 계몽서
황현필 지음 / 역바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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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달째 불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그나마 내란 수괴가 갇혀 있을 때는 잠시 불안의 감정이 줄어들었는데, 말도 안되는 억지 이유로 풀려난 이후에는 불안 지수가 마구 솟고 있단다. 뉴스를 봐도 억울하고 분노할 소식들만 들려오고,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그렇게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단다. 어떻게 몇몇 사람들이 못된 마음만 먹으면 내란 수괴가 버젓이 풀려날 수 있단 말인가. 또 그 내란 수괴를 옹호하고 폭동을 일으키는 이들, 그들을 뒤에서 앞에서 선동하는 자들, 심지어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타 먹는 국회의원들마저 내란 수괴를 지지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요즘이란다.

불안과 분노이것을 치유할 방법이 마땅치 않단다. 그나마 아빠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의 글과 영상을 보는 것이 치유의 한 방법이란다. 그래도 불안하단다. 내란 수괴의 탄핵 여부를 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들 또한 어떤 협박을 받거나 회유를 받거나 하면 흔들릴까 불안하단다. 예상보다 늦어지는 판결 또한 불안을 부추기고 있단다. 우리 편의 대표적인 사람 황현필 님이 이런 시기에 신경안정제와 같은 책을 한 권 내셨단다. <황현필의 진보를 위한 역사>

작가의 말에서 황현필 님은 친일매국 세력과 역사 전쟁은 한다고 하셨어. 어쩌다 아직 이 땅에 친일매국 세력이 판을 치고, 대통령까지 되었단 말이냐. 우리 사회가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가 균형 있게 존재해야 하는데, 스스로 보수라고 일컫는 정당과 세력은 보수가 아니고 극우로 변질되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황현필 님은 그들은 극우의 정의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어. 매국적이고 독재 추종하고 반민족적이면서 내란을 옹호하는 세력을 칭하는 용어는 역사상 없었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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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극우는 전체주의, 순혈주의, 자국중심주의, 군국주의 등의 특징을 보이며, 자민족우월주의로 타민족에 대해 배타적이다. 이런 성향들은 처절한 애국심으로 드러나면서 폭력성을 띠기도 한다. 나치즘과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가 대표적인 극우이다. 그러나 친일매국과 반공 우파들은 자국보다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자민족우월주의는커녕 조선을 비하하며 같은 민족인 북한에 대해 배타적이고 혐오하는 감정을 지녔기에 통일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는 반민족 세력이다. 세상에 이런 극우는 없다. 그렇다면 이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매국적이고, 독재를 추종하고, 반민족적이고, 자학사관에 빠져 있고, 최근에는 내란과 학살을 옹호하는 이들을 칭하는 용어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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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뉴라이트의 식민사관에 대해 조목조목 팩트를 근거로 반박을 해주고 있단다. 아빠가 뉴라이트의 역사책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아서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 도대체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에 치우쳐 있더구나. 창피한 정도로….. 그런 사람이 쓴 친일 식민사관의 역사책은 일본 극우 세력이 주장하는 내용들을 많이 인용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 책이 다시 일본에서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정말 나라 망신은 다 시키고 있구나. 뉴라이트들이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가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것이야. 뉴라이트 인간들이 역사책을 썼지만, 뉴라이트 인간들은 역사 전공이 아니라 경제 전공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근대화의 기준을 경제적인 성장에만 초점을 두었다고 했어. 하지만 이마저도 잘못된 내용이라면서 황현필 님은 팩트를 들어 반박했단다. 근대적 정책이나 건물, 종교, 학교, 병원, 제도 등은 모두 일제강점기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거야.

일본이 철도도 만들어 주었다고 고마워해야 하지 않냐고 그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은 미국이 만들었고, 경부선도 처음에는 영국이 맡았다가 일본에 넘겨진 것이라고 했어. 그리고 우리나라에 철도를 놓은 준 것을 고마워할 일이 절대 아닌 거야. 다른 나라를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철도를 만드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들 말대로 실제로 잘 살게 되었다면, 왜 해방 이후 남한의 경제는 최악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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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5)

조선이 해방을 맞이하자 한반도에 있던 일본인들은 재산을 챙겨 일본으로 도망가거나 한반도 어딘가로 잠적했다.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의 자본가들이 사라진 것이었다. 주요 산업 시설은 대부분 북한에 집중되어 있었고, 해방 직후 북한은 남한으로의 전력 송출을 끊어 버렸다. 그로 인해 남한은 전력 무방비 상태에 놓여 공장 가동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해외 공포와 독립운동가들이 귀국하면서 남한의 인구는 급속히 증가했다.

쌀도 부족했고 생필품도 부족했다.

인플레이션은 당연했다.

굶어 죽는 사람이 발생했다.

해방 직후 남한은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일제강점기에 우리가 근대화되었더라면, 해방 직후 남한의 가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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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들의 또 다른 특징이 독재를 찬양하는 일이란다. 독재를 벌이다가 민중의 의거에 의해 쫓겨난 이승만을 찬양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왜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든단다. 이승만을 찬양하다 보니 김구를 깎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역사관이란다. 치졸하기 그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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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뉴라이트의 이승만 띄우기에 대해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뉴라이트가 김구를 깎아내리는 이유는 이승만을 띄우기 위해서다. 이승만 추종자들이 아무리 이승만을 띄우려 해도, 김구에게 눌려 이승만이 높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승만 추종자들이 이승만에게 형광등 300개를 켜 대도 이승만의 얼굴에는 김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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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우리나라가 분단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기는 듯 하다. 아빠가 그러할진대, 당시 살았단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힘없는 나라가 해방이 되었을 때 강대국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여만 했던 거란다. 당시 패전국인 일본을 둘러 나눈다는 방안도 있었대. 그런데 일본에서 자국 분단을 강력히 반대를 해서 실행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를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 미국과 소련이 통치하는 신탁통치..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탁, 찬성하는 친탁당연히 반탁이 대세였단다. 그런데 소련이 반탁으로 주장하고 미국이 찬탁을 주장했대. 소련이 우리나라를 생각해서 반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를 그냥 두면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해서 반탁을 했다는구나. 신탁통치를 하면 미국이 남한에 들어와 있을 테니 말이야. 미국이 찬탁한 이유도 같은 이유였어. 어차피 미국이나 소련도 모두 자국의 이익을 위한 거지, 우리나라를 생각해주는 게 아니야. 우리나라 사람들만 분단을 막겠다는 생각으로 신탁통치를 반대한 거지..

해방 이후 아무리 나라가 혼란스럽다고 해도 안 좋은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단다. 4.3사건의 비극이 또한 이승만과 미군정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건이란다. 하지만 뉴라이트는 이것 또한 북한의 소행이라고 하는구나. 뉴라이트는 이승만도 찬양하고 박정희도 찬양하는데, 박정희가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이 이승만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이승만이 하야하고 나서 하와이에 가 있을 때 귀국 의사를 보였는데, 박정희가 절대 안 된다고 하여 죽을 때까지 우리나라에 못 봤다고 하는구나. 이승만은 정적을 가장 많이 죽인 사람이고, 사적인 복수를 위해 권력을 휘두른 악마 중에 악마 같은 사람이란다.

최능진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1948년 이승만에 대항하기 위해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국회의원 선거로 나왔을 때 이승만과 같은 지역구로 입후보했대. 최능진은 독립운동가 출신의 경찰로 친일 청산에 노력을 많이 하신 분이야. 김구, 김규식과 함께 통일 정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어. 이승만의 지역구에서 최능진의 지지율은 무려 90%. 이승만이 온갖 불법을 사용하여 최능진의 후보 등록을 막아서 이승만이 단독 후보로 당선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야. 최능진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감옥에 가두고 6.25전쟁 때 총살형으로 죽였다고 하는구나. 선거에서 이겼으면 됐지.. 끝까지 복수를 하다니마치 오늘날 내란수괴를 보는 듯 하구나. 이승만의 평가는 멀리 영국의 한 정치인도 정확하게 보고 있는데 뉴라이트들은 눈을 감고 사는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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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영국의 브로크웨이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학살을 저지른 이승만을 체포해야 한다. 유엔에 있는 영국 대표는 이승만을 부정하고 그의 정권을 끝내도록 요구해야 한다.”

영국의 레이놀즈 뉴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이승만이 우리가 지금까지 지키고자 했던 모든 명분을 완전한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다. 이승만이 한국을 통치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만큼 유엔이 한국을 맡아야 한다.”

한국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또 다른 책임을 져야 하는 미국은 침묵을 택했지만, 영국은 침묵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희대의 자국민 학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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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25 전쟁은 확실히 남침이란다. 남침이라는 뜻을 정확히 몰라서 남침이 남한이 쳐들어갔다고 잘못 알고 있는 이도 있다고 하는데, 남침은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왔다는 뜻이란다. 소련을 등에 업고 같은 동족에 총부리를 겨눈 북한은 백 번 말해도 잘못을 저지른 거야. 하지만 6.25전쟁은 미국과 소련의 시나리오에 의해서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란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6.25 전쟁은 미군이 남침을 유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대. 미국은 전쟁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어서 자국민들을 사전에 일본으로 빼돌리고 했대. 그리고 낙동강 전선을 구축하고, 인천 상륙 작전을 기획한 문서가 이미 전쟁 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왜 미국은 한국전쟁이 필요했던 것일까. 전문가들은 6.25전쟁을 통해 미국이 전세계에서 진정한 대권을 갖게 되었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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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6.25전쟁으로 미국이 세계의 패권국이 되었다는 주장은 다수의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미국을 지구적 차원의 패권국으로 부상하게 해 준 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도 제2차 세계대전도 아니고, 6.26전쟁이었다. 미국의 패권에 기여한 정도란 측면에서 보면 어떠한 사건도 6.25전쟁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저비스, <한국전쟁이 냉전에 미친 영향>

 

6.25전쟁을 통해 미국의 세기가 시작되었음을, 다시 말해 미국이 지구적 차원이 패권국이 될 수 있었다. – 6.25전쟁 참전용사의 아들이자 대법권 마이클 펨부룩, <미국의 세계가 시작된 곳>

 

6.25전쟁을 통해 미국이 지구적 차원의 패권국으로 부상하고자 할 당시 필요한 체계를 구축할 있었다. – 조지위싱턴대 교수 리처드 쏜턴, <강대국 국제정치와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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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듯이 뉴라이트는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를 찬양하다 못해 신격화를 하고 있단다. 일왕에 혈서까지 쓰고 일본육사장교가 된 사람을 그렇게 찬양한다는 것은 한국 사람임을 부정하는 것이란다. 박정희의 공을 이야기할 때 경제적 성공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당시 세계적인 흐름과 성실한 우리나라 국민의 공이 더 크지 않았을까 싶구나. 박정희는 공을 이야기하기 전에 온갖 정치 비리, 인권 탄압, 온갖 만행을 먼저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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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박정희정권의 경제개발은 1960~1970년대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개발과 시대 흐름을 같이했다. 특히 냉전체제 경쟁에서 자유 진영의 승리를 위한 미국의 경제적 지원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한국인의 근면성과 성실함은 어느 국가와도 견줄 수 없다. 한국인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잘 먹고 잘산다. 더군다나 한국인은 영리하고 학구열도 높다. 여기에 부정할 수 없는 천민자본주의적인 마인드가 더해져, 남보다 잘살고 싶은 열망이 우리의 경제성정에 불을 지폈다. 이러한 요소들을 무시한 채, 오로지 박정희가 없었다면 우리는 가난했을 것이라는 자학적이고 피동적인 마인드를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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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공 정신과 남북 냉전을 권력 유지에 이용하던 박정희가 뜬금없이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단다. 이건 얼마 전 조정래 님의 <한강>을 이야기하면서 이야기했었지.. 그런데 알고 보니 통일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남북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는구나. 그러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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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남한에서 유신헌법이 통과된 지 두 달 후인, 12, 북한에서는 신사회주의 헌법이 제정되면서 김일성이 주석에 취임했다. 남한의 박정희는 초강력 대통령이 되었고, 북한의 김일성은 갑자기 주석직을 신설하고 주석이 된 것이다. 통일 분위기가 조성된 이후 남북한 양국의 독재 권력이 오히려 강화된 것이었다. 박정희와 김일성이 서로 짜고 통일 분위기를 이용하여 자신들만의 권력을 강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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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황현필 님은 뉴라이트 집단을 정리해 주었는데, 깊이 공감이 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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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495)

다시 정리하자면,

뉴라이트는 몰역사적, 친일 반민족적, 친독재적 성격을 지닌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뉴라이트는 인간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한 집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뉴라이트는 일제강점기에 수탈당한 조선인에 대한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 이승만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민간인을 오히려 빨갱이로 취급한다. 또한, 위안부 할머님들에 대한 망언을 일삼고, 세월호 유가족을 조롱하는 비인간적, 패륜적인 성향을 보인다.

뉴라이트는 정의로움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잠재적 매국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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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이 책에 다른 부분들도 모두 좋았단다. 너희들도 이 책을 한번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데, 시간이 없겠지? 아빠가 이 책에서 읽은 내용들을 가끔씩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대신하자.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금의 이 불안한 시간이 얼른 끝났으면 좋겠구나. 며칠 전 뉴스를 보는데 분노가 치밀면서 숨이 확 막혀 오더구나. 그래서 아빠는 탄핵 인용이 될 때까지 뉴스와 기사를 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단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썸네일을 보게 되지만, 클릭은 하지 않기로 했단다. 얼른 이 시간들이 다 지나가고 정상적인 시간이 찾아오길그나저나 반민족적 반독재적 매국노 세력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숨을 좀 깊게 들이마시면서 오늘은 이만 하련다.

 

PS,

책의 첫 문장: 보수(保守)는 보호하고 지킨다는 뜻이다.

책의 끝 문장: 독자들은 과연 이 책의 점수를 어떻게 줄 것인가?





보수가 중시하는 자유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자유만 넘쳐나는 사회가 되면, 산업혁명 때 노동자들처럼 인간다운 대우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반대로, 진보가 중시하는 평등만이 강조되어 인간의 본능인 자유가 침해당하는 수준까지 이르면, 공산주의와 가까워진다. 따라서 자유주의와 평등주의가 적절히 섞여 균형을 이루었을 때 올바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진보와 보수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두 존재하는 것이 맞다. - P7

임시정부의 리더들은 장제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카이로에 가서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총통께서 일본 패망 후 한국의 독립에 대한 확약을 받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후 장제스는 카이로회담에서 루스벨트를 설득하여 한국만큼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식민지 상태였더라도 독립을 시키기로 약속을 받았다.
- P190

여운형의 독립운동에 열등의식을 느끼는 친일매국 세력들,
여운형의 통일노선에 열등의식을 느끼는 분단주의자들,
여운형의 탈이데올로기에 열등의식을 느끼는 반공주의자들,
여운형의 인간애에 열등의식을 느끼는 독재와 학살 추종자들.
이들에게 여운형은 두려움 그 자체다.
- P217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해방되면서 조선에 남아 있던 일본인들이 자신의 안전을 우려했듯이 친일파들 역시 독립운동가나 일반 조선인들의 보복을 두려워했다. 일본인은 돌아갈 곳이 있었지만, 친일파는 갈 곳이 없었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하거나, 야반도주하여 산속으로 숨어들기도 했고, 변장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또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집에 틀어박혀 조선인 눈에 띄지 않으려 애를 썼다. 개중에는 광복을 반기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든 친일파들이 있었다. 이들은 우스갯소리로 ‘8월 15일부터 태극기를 든 자들’이라고 한다. - P273

단재 신채호는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으로 꼽았다. 그러나 신채호가 이 시대에 살아 있다면 ‘제일대사건’으로 ‘이승만의 친일파 처벌 실패’를 꼽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이승만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이승만이 독재를 했든지 6.25전쟁 때 무능의 극치를 보였든지 간에 이승만이 친일파 처벌만 제대로 했더라면 나는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서 역할을 다했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모든 대립은 이승만이 친일파를 처벌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 P277

결국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 기억되는 서울역회군(1980.5.15)이었다.
당시 회군을 결정했던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은 그 후 전두환이 만든 민정당의 후신인 보수 정당에서 국회의원만 5선을 했고, 국회부의장이 되었다. 회군을 반대했던 서울대 복학생 대표 이해찬은 노무현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회군에 대한 또 다른 반대자, 당시 서울대 대의원의장 유시민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또한, 당시 경희대 학생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었다. 이들을 역사의 죄인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들은 광주의 죽음에 대해서 아파해야 했다.
- P412

작금의 반일 정서가 싫은 친일파들은 이렇게 말한다.
"중국은 천년의 적이고, 일본은 백년의 적이다."
사실 이 말은 북한의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유언으로 했던 말이다. 신친일파와 일부 꼴통 보수들은 김정일의 말을 신줏단지 모시듯 믿고 있다. 진정한 종북이다. 최근 김정은도 이 말을 달고 산다고 한다. 이는 미국과 관계 개선을 바라는 북한 정권이 북한 주민들의 반중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의도와 함께 나온 말이었다. 북한이 이러한 대중외교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편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 중 한 나라가 중국이라고 하니, 역시 반갑다. 언젠가 통일을 두고 중국과 대립할 수 있는 우리입장에서는 북한동포들의 중국에 대한 거부감을 싫어할 이유는 없다.
- P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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