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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1 - 제1부 격랑시대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일 년이 금방 지났구나. 작년에 아빠가 조정래 님의 <아리랑> 12권을 다시 읽고 나서, 내년에는 <한강> 10권을 다시 읽겠다고 이야기했었잖아. 그 내년이 올해가 되었구나. 올해 독서 계획 중에 하나인 <한강>을 다시 읽기로 했단다. <한강> 1권을 찾아 앞면지를 펴 보니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2002년 2월 26일이더구나. 23년이 지났지만,
책 앞면지에 적은 날짜는 어제 적은 듯 번짐이 없더구나. 23년 전의 메모가 그대로인 것이
세월의 너무 빠름을 증명하는 것 같았어. 세월 빠름을 다시 이야기하지는 않겠다면서도 23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가 버린 것에 무서움마저 드는구나.
2002년 2월 26일… 아빠는 무엇을 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한강> 1권을 펼쳤을까? 당시에도 독후감을 쓰긴 해서 찾아보니, 뭐에 바빴는지 10권을 다 읽고 퉁쳐서 간단히 적었더구나. 이번에는 너희들에게 독서편지
형식으로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이야기를 해줄게. 올해도 주중에는 다른 책들을 읽고 <한강>은 주말에 1권씩
읽으려고 한단다. 그럼 <한강> 1권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1.
조정래 님의 <한강>은 1950년대
후반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전쟁으로 전국이 폐허가 된 이후 다시 일어나기 위해 온 국민이 몸부림을
치던 그런 시기였지. 그리고 여전히 이승만 독재가 권력의 꼭대기에 있던 시기였단다. 공부를 한다고 돈벌이를 구한다고 너도나도 서울로 올라가기 시작하던 시기도 이 즈음이란다.
유일민도 대학교에 합격하여 입학을
앞두고 서울로 향했단다. 그러면서 동생 고등학생 유일표도 서울에서 공부를 시킨다고 함께 왔단다. 그들은 성북동에 들어서는 움막촌에서 지내기로 했단다. 유일민의 아버지는
빨치산 출신으로 전쟁 때 월북을 하여 어머니 혼자 아이들을 키웠단다. 그렇게 아버지와 인연이 끝났으면
더 좋았겠지만,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유일민과 어머니는 수시로 경찰의 수사를 받곤 했단다.
서울에 처음 오게 된 유일민은
선배 김선오가 서울역에 마중 나와 주었어. 김선오는 일류대 법대생으로 국회의원 강기수가 후원하는 남천장학사에서
지내면서 공부했단다. 강기수는 유일민의 아버지와 악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어. 영악한 국회의원 강기수는 자기 지역 출신의 법대생들에게 숙소와 학비를 대주면서 장학생들을 후원한다는 좋은 이미지를
만들었지만, 실상을 그 학생들을 빨리 사법고시에 합격시켜 자신의 정치적 배경으로 두려는 목적이 있었단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 때면 지역에 함께 내려가서 선거 운동을 도와야 했어. 돈 없는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강기수 의원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단다.
강기수 의원의 딸 강숙자는 고등학생이었는데, 김선오와 선배 이규백이 강숙자의 과외도 해주어야 했어. 그런데도
강숙자는 결국 돈 내고 대학에 입학하였단다. 강숙자의 친구로 의대생 안경자, 역사학도 박영자 등이 있단다. 그들은 남천장학사 학생들과 어울렸는데, 유일민은 김선오의 후배로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지만 깊은 이질감만 느끼고 말았단다. 유일민은 임호태라는 학생의 가정교사 일을 하게 되었는데, 시험 때마다
살얼음판이었단다. 성적이 떨어지면 바로 자리가 잘리기 때문에 학생보다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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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말 마. 성적표 받아오는 날이 사형 언도 받는 날이니까. 성적이 떨어지는
거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제자리걸음만 해도 사형이지. 5등
이내의 경우는 예외지만, 그런 아이들이 가정교사 두는 게 어디 흔한가.
끝없이 성적이 오르기를 바라는 부모들 욕심 앞에서 우리들 목숨은 하루살이야. 아까운 돈
쓰고 있는 부모들 욕심 탓할 게 아니라 가난한 우리들 신세를 탓해야지.”
어떤
선배가 쓰디쓰게 웃으며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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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민과 유일표가 살고 있는
움막촌에는 소작농으로 일하던 농민들도 많이 올라왔단다. 기술도 없고 일자리도 없으니 그들은 지게꾼일
등을 하며 하루벌이를 했단다. 그런 사람 중에 천수만이라는 사람도 무작정 상경하여 움막살이를 했어. 지게꾼으로 일했어. 고향 사람인 나삼득은 식구들과 좀더 일찍 상경하였어. 같음 움막집이지만, 어느 정도 터를 잡은 듯 했단다.
…
이렇게 다들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엄청난 태풍이 한반도를 덮쳤단다. 요즘도 큰 태풍이 올 때마다 가끔씩 소환되는
태풍 ‘사라’가 그 주인공이란다. 태풍 ‘사라’로 많은
피해, 특히 전라도 쪽 피해가 컸다고 하는구나. 재산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많이 죽었는데, 김선오의 아버지도 태풍 사라로 돌아가시고, 이규백의 형도 태풍 사라로 돌아가셨단다. 김선오는 자신의 꿈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에 상심이 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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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42)
상복을
입은 김선오는 아버지 영전에 망연히 앉아 있었다. 비가 아무리 심하게 퍼부었어도 아버지는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아니, 비가 심하면 심할수록 아버지는 더 나가서
논을 돌보려고 했을 것이다. 열 마지기의 논, 그건 아버지의
육신이었고 생명이었다. 소작인의 자식으로 태어나 손수 그 열 마지기의 논을 장만한 것은 아버지의 크나큰
긍지였고 자랑이었다. 지주와 소작인 사이에 철저한 착취구조 속에서 그것은 거의 기적 같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자신이 고등학생이 되고서였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더욱 크고 강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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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45년 해당 이후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1950년대 후반에도 이어졌단다. 오히려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이 푸대접을
받곤 했단다. 광복군 출신으로 대령으로 복무하고 있는 한인곤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어. 군 내부에서 계속 차별을 받다가 결국 대령으로 예편했단다. 그보다
먼저 중령으로 예편한 남재구는 일자리를 못얻어 수위로 일하고 있었는데, 직장을 찾아가보니 그것도 그만
두었다고 한다. 한인곤의 둘도 없는 친구이기 때문에 한인곤은 신문 광고까지 내면서 친구 남재구를 찾았단다. 결국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되었단다.
….
유일민의 친구 서동철이란 사람이
있어. 서동철의 아버지도 빨치산 출신이야. 유일민의 아버지와
다른 점은 돌아가셨다는 거야. 그래서 경찰의 조사는 받지 않았지. 서동철은
유일민보다 먼저 서울에 올라와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반공청년단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말이 반공청년단이지, 정치깡패였단다.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는데, 자유당의 이승만은 온갖 불법적인 방법을 선거를 준비했어.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돈으로 투표용지까지 사서 대리 투표하는 방법도 있었어. 야당 민주당에서는 조병옥이라는
후보가 나왔는데, 이승만을 압도할 인기를 누리고 있었어. 하지만
미국에서 돌연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단다. 결국 장면 후보가 대통령 후보가 되었어.
군인을 그만둔 한인곤은 민주당에서
경호대로 일하면서 정치에 발을 들였단다. 자유당은 정부기관을 이용하여 야당의 선거유세를 계획적으로 방해를
했어. 온갖 불법을 일삼은 이승만이 다시 대통령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불법선거시위가 장난이 아니었어. 그런데 마산에서 일어난 시위에서 11명이
죽고 많은 사람이 다쳤단다. 이 일로 시위는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어.
고등학생들이 먼저 앞장섰고, 대학생들도 동참했단다. 그
이후에는 전 연령층의 사람들이 시위에 동참을 했단다. 이것이 그 유명한, 너희들도 알고 있는 4.19 혁명이란다. 경찰은 시위대에 총으로 응수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하지만 시위는
더욱 커지고 조용하던 대학교수들도 시위에 동참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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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253)
고등학생들까지
터져나오고 있구나. 저것들이 세상이나 정치를 뭘 안다고. 투표권도
없는 미성년자들이. 헌데 아니야…… 고대생들이 데모를 일으키기
전에 전국에서 일어난 그 많은 데모는 전부 고등학생들이 일으키지 않았나. 데모대 중에 제일 무서운 게
물불 가리지 않는 고등학생들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고등학생들이 왜 그렇게 대학생들보다 먼저 데모를
시작하게 된 거지? 가만있거라…… 그게…… 아아 그렇구나.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선거기간 동안 야당 유세장에 못 가게 아느라고 일요일에도 등교를 시키고, 갑자기
시험을 치르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글짓기를 시키고…… 그런
처사에 대해 유일표가 얼마나 불평 불만을 했던가. 그 따위 치졸한 처사들이 고등학생들을 자극해 불평불만을
사고 결국 정치의식까지 길러준 것이로구나. 이거야말로 자업자득이 아니고 뭔가. 그나저나 물불 가리지 않는 고등학생들까지 저렇게 터져나오면 이 판이 어떻게 될까? 정말 엎어지는 것 아닐까?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닌가. 글쎄…… 한 정권이 그리 쉽게 무너질 리 있나. 한바탕 불평 불만을 터뜨리고 가라앉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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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표도 이 시위에 적극 동참했지만, 유일민은 아버지의 이력 때문에 참여할 수 없었어. 동생이 시위에
참석했다는 것을 알고 동생을 찾으러 나섰다가 시위 행렬에 끼게 되었는데, 유일민은 계속 갈등하고 자신을
자책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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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
나는
오늘 무엇이었는가. 방관자였는가, 구경꾼이었는가, 훼방꾼이었는가. 방관자는 비겁자다,
다같이 궐기하자고 하지 않았는가. 방관자보다도 더 나쁜 존재. 비겁자도 못 되는 나는 무엇인가. 비겁자보다도 더 나쁜 명칭…… 이기주의자, 기회주의자, 파렴치한…… 그 어느 것도 합당하지가 않았다.
유일민은
자신이 인간벌레 같은 부끄러움과 혐오감에 묻혀 있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구급차에 실리는 부상자들을 보았을
때, 피 흘리는 여학생이 업혀가는 것을 보았을 때, 피범벅된
시체를 떠메고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을 보았을 때 가슴 푸들거리는 데모의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끝내 행동화하지 못한 자신은 참으로 하잘 것 없고 한심스런 인간벌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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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갈등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남천장학사 학생들이었단다. 시위에 참석하는 것은 자신들을 후원하는
강기수 의원에 배신하는 행동이라 생각했지만, 무엇이 정의인지 모두 알고 있었단다. 어떤 이들은 시위에 참석하고, 어떤 이들은 시위에 참석하지 않았단다. 김선오는 계속 갈등하다가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도 시위에 참석하지 않았단다.
전국적인 시위는 결국 이승만의
하야를 이끌어내면서 4.19 혁명은 성공의 깃발을 꽂았단다.
…
여기까지가 <한강> 1권의 이야기란다. 독재를 끌어낸 국민들을 보면서, 오늘날 독재를 하려던 코끼리를 끌어낸
국민들이 떠오르더구나. 우매하고 야욕에 넘치는 지도자들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런 괴물들을 끄집어내리는 힘을 가진 국민들 또한 있단다. 그런
지도자들을 가진 우리나라가 부끄럽다가도 그런 국민들은 가진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구나.
오늘 내란 수괴가 구속이 취소는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난다. 아직 내란은 진행 중이란 명심해야겠구나.
얼른 내란의 수괴는 대통령 탄핵되고, 내란을 범한 죄를 달게 받았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그를 따르는 내란의 힘은 공중분해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새벽 어스름이 스러져 가고 있는 한겨울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세상을 떠난 큰누나 같기도 했던 그 여자의 수심 깊은
얼굴이 어른거렸다.
"아니야, 그건 보통의 경우고 난 비적떼라는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일찍 냉수 마시고 속차려야 될 것 같애. 생각해 보면 51년 김홍일 장군 예편 때부터 우리 광복군이나 독립군 출신들의 앞날은 결정났던 거야. 도대체 김홍일 장군이 어떤 분인가. 김구 선생을 도와 이봉창, 윤봉길 의사가 사용할 폭탄을 제조한 독립투사고, 중국 정규군 소장으로 왜놈들과 맞서 싸운 걸출한 인물인 거야 세상이 다 아는 것 아닌가. 그런 분은 겨우 별 둘 달고 예편당하고, 독립군들 등뒤에 총질해 댔던 만군 출신 정일권이가 그 새파란 나이에 마구 별 달아대며 참모총장을 해먹는 판이니 볼장 다 본 거지. 말이 좋아 중국 대사로 파견이지 속을 들여다보면 김홍일 장군을 유배시킨 동시에 군부에서 독립운동 세력의 중추를 제거해 버린 것이었어. 그 다음부터 독립운동 세력은 진급은 안 되는 것만이 아니라 추풍낙엽 신세들이 되지 않았나. 참, 우리도 만군 출신 못 된 게 천추의 한이로구만 그래." - P49
그런데 동네사람들의 춤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작지가 그냥 자기들 것이 되는 줄 알았는데 유상몰수 유상분배로 돈을 내고 사게 되어 있었다. 그것도 헛김 빠지는 일인데 더 기막힌 일이 또 있었다. 논 열 마지기를 소작하던 사람을 예로 놓고 보면 그 사람 앞으로 돌아온 것은 서너 마지기뿐이었다. 나머지는 농지개혁을 하네 마네 하며 질질 끌어오는 몇 년 동안 지주들이 소작인들은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넘겨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실망한 소작인들이 더 놀란 것은 그 다음이었다. 딴 사람들에게 팔아넘긴 줄 알았던 그 논의 태반이 지주들과 짜고 명의만 살짝 바꾸어놓은 것이었다. 그건 결국 농지개혁을 하나마나였지만 법에 걸리지 않으니 소작인들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 P59
"아닙니다. 이건 대처방법이 근본적으로 잘못돼서 그런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 <경향신문>을 폐간시키면서 미군정법령 88호를 끌어다가 적용시킨 것에 대해 위헌이라고 한 것부터가 발상이 잘못됐고, 방향이 어긋났다 그겁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수립과 동시에 미군정은 종식됐고, 따라서 군정법도 완전히 폐기처분됐습니다. 그런데 엄연히 독립국가고 법치국가에서 집권자의 편익을 위해 미군정법을 끌어다 적용시키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독립국가의 정통성을 전면 부인하는 반역행위이고, 법치국가의 존엄성을 완전히 파괴하는 반란행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미군정법을 끌어다 대는 건 일제 총독부의 법을 끌어다 대는 것과 뭐가 다르냐 그겁니다. 이 점을 부각시켜 정부를 비판하고 공격해야 하는데 엉뚱하게 위헌이다 뭐다 하고 있으니 일이 해결될 게 뭡니까." - P116
"여기 대학의 양심은 증언한다. 우리는 보다 안타까이 조국을 사랑하기에 보다 조국의 운명을 염려한다. 우리는 공산당과의 투쟁에서 피를 흘려온 것처럼 사이비 민주주의 독재를 배격한다. 조국에의 사랑과 염원이 맹목적 분격에 흐를까. 우리는 얼마나 참아왔는가. 보라! 갖가지 부정과 사회악이 민족적 정기의 심판을 받을 때는 왔다. 이제 우리는 대학의 양심으로 일어나노니 총칼로 저지 말라. 우리는 살아 있다. 동포의 무참한 살상 앞에 안일만을 탐할소냐! 한숨만 쉴소냐! 학도여, 우리 모두 정의를 위하여 총궐기하자." - P245
그러나 오늘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혁명은 어째서 일어나는 것인지. 혁명은 어떻게 성취되는 것인지, 혁명을 왜 위대하다고 하는지, 왜 혁명에 몸을 던지는 것인지, 구름이 걷히듯 확연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혁명이란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 속에서 응결된 분노와 증오의 집단적 폭발이었다. 그 인식은, 불투명하고 원망도 섞여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이해이면서 발견이기도 했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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