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슬픔
다니엘 페낙 지음, 윤정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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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소설처럼> <몸의 일기>란 책으로 아빠가 좋아하게 된 작가 다니엘 페나크의 또 다른 책 <학교의 슬픔>을 읽었단다. 아빠가 다니엘 페나크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글 속에 유머와 진지함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야.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빠의 영혼에 영향을 주었거든. 그래서 그의 다른 책을 찾아보다가 선택한 책이 바로 <학교의 슬픔>이란다.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는 지은이의 이름을 다니엘 페나크가 아니고, 다니엘 페낙이라고 적었네. 외국 작가의 이름들이 가끔 출판사마다 다르게 적어서 출간하는 경우가 있는데, 출판협회도 있고 그러니 어디선가 중재해서 작가의 이름은 하나로 통일해서 출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아빠처럼 리뷰를 쓰는 사람들이 책의 지은이도 같이 적어 두는데, 다니엘 페나크로 써야 할지 다니엘 페낙으로 써야할지 고민하지 않도록 말이야.

이 책 <학교의 슬픔>을 보면서 너희들이 생각이 났어. 학교에 가기 싫다는 소리를 많이 하는 너희들이잖니..^^ 이 책의 표지를 보면 교실 안에 세 학생이 보이는데 모두 심각하거나 아주 재미없거나 당황한 표정을 짓는 두 아이와 시계를 쳐다 보는 한 아이의 사진이 있단다. 이 표정들만으로 이 아이들이 학교를 얼마나 싫어한다는 것을 절실히 알 수 있었어. 너희들도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가끔 하지만, 이 정도 표정까지는 아닌데 말이야. ㅎㅎ 어떤 선생님들은 학교 수업을 참 재미있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빠도 생각해보면 수업이 참 지루했던 것 같아. 그리고 에너지 넘치는 그 시절에 책상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도 곤욕이었고 말이야.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어. 이 책은 지은이의 학창 시절의 경험과 선생님이 되어 직접 가르친 학생들과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란다.


1.

지은이가 자신이 어렸을 때 열등생이고, 유급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이해가 가질 않았단다. 이렇게 재미있고 다양한 분야에 글을 쓰시는 분이 어렸을 때는 열등생이었다고 하는데, 믿기지가 않아. 그러면서 자신이 왜 다른 형들과 달리 열등생이 되었나에 대한 원인을 찾아보기도 했어. 교양 있고 안정적인 부모님, 똑똑한 세 형들 사이에서 자신만 돌연변이처럼 느껴졌거든. 알파벳도 제대로 못 외우고, 중학교는 재수를 해서 가고어렸을 때 지은이 때문에 부모님이 무척 걱정을 하셨대. 지은이는 자신이 그렇게 열등생이 된 이유를 자신은 기억도 잘 하지 못하는 여섯 살 때 쓰레기통에 빠졌다가 정신을 잃고 치료를 받았던 일화에서 찾고 있단다. 도저히 원인을 찾지 못하다 그나마 찾아낸 쓰레기통 사건. 그냥 웃으라고 엮은 이야기지만 지은이는 상당히 심각하게 이야기를 했어. 그래서 더 재미있지만 말이야.

아무튼 지은이는 자신을 말하길, 명랑한 열등생이 평범한 생활을 하는 학생이라고 했단다. 그렇게 그런 열등생이 어떻게 선생님이 되고 소설가가 되었나. 그가 열등생이긴 하지만 열등생과 어울리지 않는 취미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책 읽기를 좋아했다는 거야. , 역시 책이 답인가. 그리고 몇몇 선생님들을 잘 만났다고 하는구나. 자기 같은 열등생을 포기하지 않고 잘 지도해주신 선생들 말이야. 특히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은 지은이에게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숙제를 내주었대. 책 읽기를 좋아하는 다니엘 페나크에게 소설을 쓰는 숙제라고 하더구나. 정말 훌륭하신 선생님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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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나를 구해냈던 그리고 나를 교사로 만들었던 선생님들은 그 일을 위해 양성된 게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무능한 학교생활의 기원에 대해서는 괘념치 않았다. 원인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았거니와 나에게 설교를 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위기에 빠진 청소년을 마주한 어른이었다. 그들은 절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던졌다. 그들은 나를 놓쳤다. 하지만 매일같이 다시 몸을 던지고 던지도 또 던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를 거기서 건져냈다. 나와 더불어 다른 많은 아이도 건져냈다. 말 그대로 우리를 낚아올린 것이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생명의 빚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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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초반부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자신이 좋은 선생님이 만나서, 결국 자신도 선생님도 되고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헤피 엔딩의 이야기지금 학교를 다니기 싫어하는 아이들이나 열등생과 그들의 부모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이야기일까? 하지만 그가 다닌 시대가 다르고, 그가 살고 있는 나라가 다르고, 그처럼 좋은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을 수 있고, 그처럼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 같구나. 그래서 선생님들이 더욱 존경스럽구나.


2.

책 후반부는 지은이가 선생님으로 경험들을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아빠의 학창 시절의 선생님들이 떠오르기도 하더구나. 학생들의 거짓말을 모른 척 받아주는 선생님들아빠도 그런 선생님들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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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7)

하지만 선생이 거짓말을 모른 척하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좀더 깊숙이 숨겨진 이유인데, 명석한 의식에 비춰보자면 대충 이런 거다. 즉 그 아이가 교사라는 내 직업의 실패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발전시키지도 공부시키지도 못한 채, 그저 내 반에 들여놓고 그 아이가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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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만 그렇겠니, 부모님들도 그렇겠지. 아직 너희들이 어려서 엄마 아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좀 더 크고 그러면 거짓말을 하겠지? 아빠를 포함한 모든 청소년들이 그러니까 말이야. 아빠도 그걸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모른 척할 때가 있을 거야.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말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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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지쳐버린 수많은 부모들은 사람의 진을 빼는 이런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척한다. 우선은 그들 자신의 고통을 잠시나마 진정시키기 위해(1515년 마리냐노 전투 같은 극소량의 진실은 진통제 역할을 한다), 그 다음엔 가족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하여 저녁식사 시간이 비극으로 선회하지 않도록, 제발 오늘 저녁은 아니기를, 각자의 마음을 찢어놓은 고백의 시련을 늦추기 위해, 요컨대 틈틈이 편지함을 살펴보던 당사자에 의해 다소 교묘하게 위조된 학기말 성적표를 받아들고, 사실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으면 학교생활의 재앙의 범위를 가늠하게 될 순간을 밀어내기 위해서다.

내일 생각해보자.

내일 생각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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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아빠가 공감하는 내용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시간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 특히 그랬던 것 같구나. 아빠 같은 나이에 10년은 정말 휙 지나간단다. 그렇다 보니 너희들의 10년 또는 5년도 금방 휙 지나갈 것으로 생각되어, 대학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그럼 그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준비를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게 된단다. 하지만, 지은이가 이야기하길 어른과 아이가 생각하는 시간의 길이가 다르다는 거야. 아이가 생각하는 일 년의 길이는 생각보다 길다는 거지. 그 이야기를 듣고 아빠도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더구나. 일 년이 참 길고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도 많았던 생각. 지금의 일 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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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11)

우선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다. 알다시피 어른과 아이는 시간을 동일하게 지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십 년 단위로 계산하는 어른의 눈에 십 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이 오십이 되면 십 년은 금세 지나간다! 그렇게 빠른 속도감 때문에 어머니들은 아들의 장래를 근심하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오 년 후면 벌써 대학 입시네, 아니 이제 금방이잖아! 이 어린 것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근본적으로 뭐 그리 변할 수 있겠어? 그런데 아이에게 그 시절의 일 년은 천 년과도 같다. 아이의 눈에 자신의 미래는 뒤 이은 며칠 안에 몽땅 달려 있다. 아이에게 장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한을 센티미터로 재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되다라는 동사가 아이에게 주눅들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어른들의 걱정이나 질책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장래란 최악의 상태의 나를 말하며, 바로 그것이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선생님들의 말에서 내가 대충 이해한 바였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시간이란 게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조금도 생각해내지 못했고, 그냥 순진하게 영원히, 언제나 바보일 거라는 그들의 말을 믿었다. ‘영원히언제나는 상처받은 자존심이 열등생에게 시간을 헤아릴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단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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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는 자신이 어렸을 때 열등생으로 겪었던 경험이 있고, 좋은 선생님들을 만난 기억으로 자신도 그런 선생님이 되려고 무척 노력하신 것 같아. 예전에 자신을 잘 이끌어주신 몇몇 선생님들을 늘 생각하면서, 자신도 학생들을 잘 이끌기 위해서 말이야. 물론 변한 시대에 맞게 아이들을 대하기도 하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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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324)

모든 점을 잘 따져보면 이 세 분의 선생님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모른다고 하는 우리의 고백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철자법의 결함을 이유로 내세우며 지 선생님은 내게 얼마나 여러 번 논술문을 다시 쓰게 했던가? 발 선생님은 내가 복도에 멍하니 있거나 자습실에서 몽상에 잠겨 있었다는 이유로 얼마나 여러 번 보충수업을 시켰던가? “시간이 있으니까 우리 한 십오 분만 더 사학을 해보면 어떨까? 페나키오니? , 십오 분만 해보자……”) 익사 위기에서 구해내려는 그 몸짓의 이미지, 자살하려는 몸짓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저 위로 나를 끌어올리려는 그 손목, 내 옷자락을 단단히 움켜쥔 살아 있는 손의 생생한 이미지, 이런 것들이 바로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맨 처음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들의 현존 안에서 그들의 과목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눈을 떴다. 수학자인 나, 역사가인 나, 철학자인 나로. 그러한 나는 이 스승들을 만날 때까지 진정으로 여기 있다는 느낌을 방해했던 나를 한 시간 동안 잠시 잊고, 나를 괄호 속에 집어넣고, 나로부터 나를 치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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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선생님으로서의 경험을 주로 이야기를 했지만, 부모로서도 자신의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도움이 된 것 같구나. 아빠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이 책의 내용을 금방 까먹을 수도 있으니, 이 책을 엄마에게도 추천을 해야겠구나. 그런데 공부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나게 뛰어 놀고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쌓는 것이 아닐까 싶구나. 내일도 가기 싫은 학교를 가야 할 너희들을 생각하니 아빠도 회사 무척 가기 싫구나. 아참, 너희들은 내일 줌 수업이구나, 부럽구나. ㅎㅎ


PS:

책의 첫 문장: 에필로그부터 시작하자.

책의 끝 문장: 그뿐이다.


두 남자는 미소지으며 산책길을 따라간다. 그 모든 일이 그들 뒤로 아주 멀리 있다. 둘 중 한 사람은 이십오 년간 교직에 있었다. 대략 2500명의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중 상당수는 ‘심각한 난관’에 처한 학생들이었다. 두 남자는 저마다 가정을 꾸린 아버지다. 그들은 "선생님이 그랬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안다. 열등생이 지루한 푸념 속에 들어앉히는 희망, 그래 그거다…… 선생님의 말이라 급물살을 타고 추락하는 강물 위에서 공부 못하는 학생이 붙잡고 매달리는 부표일 뿐이다. 열등생은 선생님이 한 말을 반복한다.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고, 규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순간적으로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놓여나기 위해’ 하는 말이다. 아니면 사랑받기 위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 P22

선생이라는 직업이 필연적으로 사라질 때까지 다시 시작하는 일. 만일 우리가 한 명의 학생을 우리 수업의 직설적 현재에 정착시키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의 앎과 그것의 활용에 대한 안목이 이 아이들에게 미치지 않는다면, 그들의 실존은 식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막연한 결핍의 늪지에서 질척거릴 것이다. 물론 우리 선생들만이 그런 갱도를 파낸 것도 아니고, 그걸 메울 줄 몰랐던 것도 우리 책임만은 아니지만, 그때 그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 혹은 몇 년의 어린 시절을 우리 앞에 마주앉아 함께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망쳐버린 학교생활 일 년은 하찮은 게 아니다. 어항 속에서는 영겁의 세월이다. - P82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이란 놀랍고도 짧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렇게 한마디로 말할 수 있겠는걸. 예를 들자면 한 젊은이가 – 우연히 맞닥뜨린 불행한 사고는 제쳐놓는다 해도 – 별 탈 없이 흘러가는 평범한 나날조차도 나들이를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옆 마을로 말을 타고 나설 작정을 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으로 말이다."
이자벨은 존경심을 표하며 그 작가의 이름을 말했다. 프란츠 카프카.
- P133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막시밀리앵은 젊음만능주의라는 동전의 이면이다. 우리 시대는 젊음의 의무로 이루어져 있다. 젊어야 하고, 젊게 사고해야 하고, 젊게 소비해야 하고, 젊게 늙어야 하고, 유행은 젊고, 축구도 젊고, 라디오방송도 젊고, 잡지도 젊고, 광고도 젊고, 텔레비전도 젊은이로 가득하고, 인터넷도 젊고, 사람들도 젊고, 살아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사람들도 젊게 남아 있고, 우리의 정치인들마저 마침내 다시 젊어졌다. 젊음 만만세! 젊음에 영광을! 젊어야만 한다! - P275

이때 담임선생님의 질문.
"신발은 걸어다니는 데 쓰이고, 상표는 뭐에 쓰이지?"
교실 구석에서 터져나온 돌발 발언.
"뽀다구 내는 데요!"
모두의 폭소.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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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5 23: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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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4 문예춘추사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4
요시카와 에이지 지음, 강성욱 옮김, 나관중 원작 / 문예춘추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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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이제 4권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삼국지가 재미있다고 부지런히 읽었더니, 너희들에게 써야 할 독서 편지가 밀리는구나.^^ 밀린 독서 편지를 따라 잡기 위해서 가급적 짧고 핵심적인 내용만 이야기해 볼게.

하비성에서 갇혀 버린 여포는 농성전을 시작했단다. 여포의 책사 진궁은 조조가 정비하기 전에 공격하자고 했지만, 여포는 진궁의 말을 듣지 않고, 처첩의 이야기를 듣고 성 안에서 나오지 않고 수비만 했단다. 그러면서 공격이 아니라 원술에게 도망가려고 해보았지만, 관우와 장비가 감시에 걸려 다시 하비성으로 되돌아갔단다. 여포가 성 안에 있으면서 선정이라도 베풀면 모르겠지만, 부하들을 박대하고 그러니, 반감을 가진 이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그들은 여포의 적토마를 훔쳐서 몰래 성을 빠져나가 조조에게 투항했단다. 이런 성난 부하들의 배신으로 여포는 조조에게 체포되었단다.

진궁도 조조에게 잡혔고, 조조는 그 옛날 자신을 살려주었던 옛 인연을 생각해서 그를 살려주려고 했지만, 진궁은 투항하지 않겠다는 본인의 의지가 강해서 결국 처형당했단다. 여포에게 충성해서 무엇을 얻겠다고여포의 경우도 워낙 싸움을 잘 하니 살려주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늘 주인을 배신하는 여포를 살려주면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아서, 결국 여포는 교수형에 당하고 말았단다.

여포가 떠나간 서주성의 백성들은 조조에게 서주성을 유비에게 맡아달라고 했어. 그러자 조조는 질투를 느꼈단다. 여포를 무찌르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모두 허창으로 이동했단다. 유비도 함께 갔단다. 그래서 유비는 허창에 머물고 있던 황제 헌제를 만났어. 헌제는 유비가 황족이고 관계를 따져 보니 자신의 황숙이라면서 좋아했단다. 여포와 전투에서 이긴 조조는 더욱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단다.

헌제를 더욱 멸시하고 자신이 황제가 되려는 마음을 먹었어. 사냥에 가서도 다른 이들의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황제를 조롱했단다. 그렇게 되자 헌제는 조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했어. 그러면서 헌제의 국구인 동승에게 밀서를 전달했단다. 조조를 제거하라는 내용의 밀서였어. 동승은 측근들과 그 뜻을 함께 했고, 유비를 몰래 찾아가 유비와도 뜻을 함께 하기로 했단다.

어느 날, 조조는 유비를 초대하였어. 그러면서 이 시대의 영웅이 누구냐고 유비에게 물어봤어. 내심 조조라고 답을 받으려고 물어본 것인데, 눈치 없는 유비는 계속 다른 사람들만 이야기를 했단다. 결국 답을 받지 못한 조조는, 조조 자신과 유비만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했어.


1.

원소에게 패배한 공손찬은 결국 자결을 했단다. 이 소식을 들은 유비는 조조에게 5만 군사를 빌려서 서주성으로 향했단다. 공손찬은 유비가 예전에 모셨던 사람이니까 복수를 하려고 한 거야. 조조가 유비에게 군사를 빌려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 조조의 참모들은 뒤늦게 반대를 했어. 유비의 세력만 키우는 격이라면서 말이야. 조조는 그제서야 자신이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차주를 시켜 유비를 쫓게 했단다. 관우와 장비가 그를 손쉽게 막아냈단다. 조조는 차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는 원소와 유비를 한꺼번에 치는 작전을 펼쳤단다. 유비는 위장술로 조조의 출격을 지연시켰어. 그래서 조조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다시 허창으로 돌아왔단다.

헌제에게 조조를 죽이라고 밀서를 받은 동승은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되자 마음의 병에 생겼어. 태의 길형이 동승을 진료를 해 보게 되었는데, 길형은 동승의 마음의 병의 원인을 알게 되었어. 길형도 동승과 뜻을 함께 하기로 하고, 자신이 독약으로 조조를 죽이겠다고 했어. 하지만 사전에 그 음모가 드러나 길형과 동승은 모두 숙었어. 그리고 동승과 함께 모의했던 사람 중에 마등과 유비도 포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조조가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지. 곧바로 유비가 머물고 있는 소패성과 서주성을 공격했단다. 유비는 대패하고 원소가 머물고 있는 기주로 도망갔어. 꼬이고 꼬이는 관계들이구나. 공손찬을 자결하게 만든 원소를 공격하려고 길을 나섰던 유비가 원소에게 구해달라고 하게 되다니유비가 기주로 도망을 가고 관우는 하비성에서 조조군을 막아내고 있었어. 조조는 예전부터 관우를 흠모하고 있어서, 관우의 마음을 얻으려고 생포하라고 했단다. 관우는 수적으로 열세이다 보니 결국 조조에게 생포되었어.

조조는 관우를 그야말로 극진히 대했어. 관우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여포한테 빼앗은 적토마도 주었어. 관우는 유비의 위치를 알게 되면 곧바로 떠난다고 했어. 조조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 자신이 더 잘 해주면 관우도 결국 자기의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관우의 마음은 끝내 얻지 못했단다. 또 하지만 관우는 조조가 자신을 잘 대해 준 것에 대한 마음의 빚은 있었어. 빨리 청산하고 싶은 빚이었지. 때마침 원소가 조조를 공격해 봤어. 원소의 부하 중에 안량이란 자가 있는데 그는 조조의 장수를 하나 둘 죽이면서 승전보를 올렸는데, 관우는 이때가 조조의 빚을 갚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면서 그 안량을 단칼에 죽였단다. 안량이 관우에 의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원소는 관우의 형님인 유비를 죽이려고 했지만, 유비가 잘 설득해서 죽음은 면할 수 있었단다. 안량이 죽고 나서 이번에는 안량의 동생 문추가 나섰지만, 이번에도 관우에게 죽음을 당했어. 전투 중에 관우는 우연히 유비의 부하인 손건을 만나고 유비가 원소와 함께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관우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유비에게 돌아가려는 계획을 세웠단다. 여기까지가 4권까지의 이야기란다.

삼국지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나온단다. 너희들에게 줄거리를 이야기할 때는 중요 인물만 이야기해 주게 되는데, 그런 중요 인물들조차도 참 많구나. 아빠도 읽은 지 며칠이 지나면 다 까먹는 인물들이 많아. 다행히 몇몇 이름들을 적어 놓아서 그걸 참고하고 이야기해 주는 거야. 가끔 악필이라서 못 알아볼 때도 있지만 말이야.. ㅎㅎ 그래서 아빠가 이야기해주는 사람들 중에 이름이 잘못된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바람. ,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여포가 망루 위로 모습을 드러내더니 짐짓 딴전을 부리며 말했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북쪽으로 뻗은 대로를 혼자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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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3 문예춘추사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3
요시카와 에이지 지음, 강성욱 옮김, 나관중 원작 / 문예춘추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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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3권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일본에서는 출간한 원서는 8권짜리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0권으로 출간된 것이라고 하는구나. 읽기 편하게 했다고 하는데, 8권짜리를 10권으로 출간하여 왜 읽기 편한지 모르겠구나.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 아무튼 오늘도 밀린 독서편지를 만회하기 위해서 거두절미하고 바로 삼국지 3권의 이야기를 해볼게.

….

황제인 헌제를 모시고 있던 양표가 이각과 곽사 사이를 이간질했다가 오히려 헌제나 더 힘들게 되어 그들을 다시 화해시키려고 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각과 곽사 사이는 다시 화해하지 못할 정도로 안 좋아졌어. 계속 싸움박질. 양표는 양봉, 서황과 함께 황제를 낙양 근처 홍농으로 몰래 옮겨서 모시기로 했어. 하지만 그들을 보좌할 군인들이 별로 없었어. 이락의 산적 무리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는데, 다행히 서황이 이락을 죽이고 위기를 모면했어. 결국 그들은 황제를 데리고 이번에는 낙양으로 이동했단다. 이각과 곽사의 계속된 싸움은 대기근이 일어나서야 화해를 하였단다. 화해를 하고 나니 사라진 황제가 생각이 났을 테고, 이각과 곽사는 황제를 데리고 오기 위해 낙양으로 출동했어. 양표와 헌제의 일행들은 양표의 의견에 따라 산동 지역에 있는 조조에게 도움을 청했고,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이각과 곽사의 군대에 맞섰어. 그리고 이각과 곽사를 무찌르고, 이제 헌제는 조조의 보호 아래에 있었어. 말이 보호 아래였지, 권력이 조조에게 넘어갔다고 볼 수 있었지..

조조가 헌제에게 수도를 허남의 허창으로 옮기자고 했어. 헌제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는데, 반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지. 헌제는 반대하지 못했지만, 헌제를 모시고 있던 양봉과 서황은 이 천도를 두고 황제를 훔쳐간다고 하면서 조조를 공격했단다. 조조군에서는 허저가 나서서 싸웠는데, 그들은 백중지세였어. 조조는 허저와 대등한 실력을 보이는 서황이 탐나서 싸움을 중단시켰단다. 그리고 서황을 설득해서 결국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단다.

황제를 데리고 있게 된 조조는 이제 그걸 잘 이용했단다. 황제의 칙령이라면서 각 지방의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렸어. 황제의 칙령이라면서 유비와 여포에게 원술을 공격하라고 했어. 그것이 조조의 짓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들 반대했지만, 답답하신 원칙주의자 유비는 황제의 명은 지켜야 한다면서 원술을 공격하기로 했어. 유비는 악법도 법이라고 외칠 사람 같더구나.

유비는 서주성을 장비에게 맡기고, 원술을 공격했어. 싸움은 잘 하지만 술 때문에 늘 사고치는 장비에게 본성인 서주성을 맡기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구나. 일단 장비에게 술을 먹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서주에 남겼단다. 그러나 말뿐인 장비의 금주 약속금방 그 약속을 깨고 술에 취해 곤드레만드레. 소패성에 머물고 있던 여포가 배신을 하고 장비가 지키고 있던 서주성을 공격했어. 결국 여포는 서주성을 차지하게 되었어. 이 또한 유비의 판단 미스에 대한 결과였지. 장비는 유비를 찾아가 잘못을 빌었고,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서주성으로 돌아왔어. 여포는 서주성을 다시 유비에게 주겠다고 했는데, 유비는 괜찮다면서 작은 소패성으로 이동을 했단다. 이런 융통성 없는 유비 같으니


1.

원술 밑에서 힘을 키우고 있던 손책. 손책은 아버지 손견이 돌아가시고 나서 계속 원술 밑에 있었으나 자신의 땅인 강동으로 돌아가려고 했어. 열일곱 살의 손책이 할 수 있는 것을 별로 없었지. 하지만 손책에게는 아버지가 남긴 황제의 옥새가 있었어. 손책은 그 옥새를 원술에게 맡기면서 군사를 빌려달라고 했어. 원술은 그 옥새에 눈이 어두워 그렇겠다고 했지. 손책은 그렇게 강동으로 돌아갔단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 손견이 다져놓은 것이 있어서, 강동 지역의 여러 인물들이 그에게 모여들었어. 주유, 장소, 장굉 등이 그런 사람들이었고, 그러면서 강동에서 서서히 세력을 키워나갔어.

강동을 괴롭혀오던 유요를 공격하였고, 유요의 부하였던 태사자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어. 강동에서 세력을 키워가던 손책은 소패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성장하게 된단다. 유요를 무찌른 이후, 왕랑의 회계성도 차지했고, 왕랑의 부하였던 중상도 자신의 진영으로 포섭했어. 손책이 사람 부리는 능력이 있는 것 같구나. 손책의 부하 중에 주태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큰 병에 걸렸는데, 중상의 친구인 화타가 주태를 고쳐주었단다. 화타는 아주 유명한 명의인데, 삼국지에도 가끔 등장하여 더 유명한 사람이란다.

북쪽 지역의 원술은 여포에서 금은보화를 보내서 유비와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데 성공했어. 그리고 원술은 자신의 아들을 여포의 딸과 정략결혼을 시켜서 여포를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어. 거의 성사가 될 뻔했는데, 여포의 부하 진규가 여포를 설득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단다. 당시 상황은 제후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조금의 틈만 보이면 공격해서 서로 땅을 차지하려는 그런 상황이었단다. 조조도 유비를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는데, 그때 조조의 신하들 중에 유비를 죽이자는 의견들이 있었으나, 조조는 민심을 얻은 유비를 죽이는 것이 부담스러웠어. 유비는 소패성에서 패하고 예주목으로 근거지를 옮겼단다.

조조는 장수라는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을 공격을 공격했는데, 15만 대군의 조조군을 이길 수 없었어. 조조는 장수의 숙부인 장제의 미망인을 데리고 차지했단다. 이에 화가 난 장수는 조조에 반격을 하기로 했어. 수적으로 불리하지만, 장수에게는 가후라는 지략가가 있었어. 이 싸움에서 조조는 많은 장수들을 잃고 대패하여 다시 허창으로 도망가듯 돌아왔단다.

손책이 강동으로 가면서 옥새를 원술에게 주었다고 했잖아. 원술은 자신이 옥새를 가지고 있으니, 스스로 황제라고 칭했어. 그리고 20만 대군을 이끌고 여포의 서주성을 공격하기로 했단다. 자신이 제안한 정략결혼을 여포가 깨버려서 여포에게 화가 나 있었거든여포 밑에는 진규, 진등 부자가 있었는데 이들을 뛰어난 전략가였단다. 진규, 진등 부자가 원술 진영에 내분을 몰래 일으켜서 전력을 약화시키고, 여포는 유비에게 도움을 청해서 관우가 와서 도와주어 원술의 20만 대군 공격을 막아냈단다.

조조는 계속해서 황제의 가짜 칙령을 이용했어. 황제의 칙령이라면서 손책, 여포, 유비에게 조조군과 함께 원술을 다 같이 공격하라고 했어. 하지만 그렇게 원술을 공격하려고 하니 뒤쪽에서 유표와 장수가 움직인다는 정보가 입수되어 조조는 다시 허창으로 돌아와야만 했단다. 오늘 길에 조조는 자신을 공격하려고 했던 유표와 장수를 공격하였어. 또 그렇게 공격하고 있다 보니, 이번에는 원소라는 자가 허창을 공격한다는 소식에 전해져서 유표와 장수와 싸움을 멈추고 허창으로 돌아왔단다. 한쪽의 틈이 보여 공격하려고 하면, 자신의 뒤쪽에 틈이 생겨 공격받을 위기에 빠지는 그런 형상이었어. 그래서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고 서로 눈치보고 서로 이간질 시키려고 하고 그랬어.

조조가 허창으로 돌아오자 원소를 허창에서 물러나고 공손찬을 공격했어. 그러면서 조조에게 도움을 요청했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조의 허창을 차지하려고 했던 자가 이번에는 조조에게 도와달라고? 조조는 괘씸하다고 생각했지만, 또 이해득실을 따져봐야 했어. 순욱, 곽사 등 원소 돕는 것을 찬성하는 이들도 있고 말이야. 일단 기다리기로 했단다. 그러면서 조조는 유비를 슬쩍 떠 보았어. 함께 여포를 치자고 말이야. 유비가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조조는 하후돈, 하우연, 이전 등을 소패성으로 보내 유비와 함께 여포를 공격하게 했어. 이 싸움에서 하후돈은 한쪽 눈을 화살에 맞아 잃게 된단다. 유비도 이 전투에서 여포에게 쫓겨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단다. 도망길에 유비는 조조를 만나게 되었고, 조조와 함께 다시 여포의 서주성을 공격했어. 여포 밑에 지략과 진규, 진등 부자가 있었다고 했잖아. 사실 그들도 여포를 싫어했어. 어쩔 수 없이 여포 밑에 있었던 것이지그들인 조조와 유비가 공격할 때 여포를 배신하기로 했어. 진규와 진등 부자의 기묘한 지략으로 여포를 궁지에 몰아 넣고 유비와 조조의 연합군이 서주성을 공격하게 되어 여포는 싸움에서 지고 하비로 도망을 갈 수밖에 없었단다.

그 싸움에서 이긴 유비와 조조 연합군유비는 다시 서주성에 복귀하게 되었어. 유비가 진작에 서주성을 여포에게 안 빼앗길 수 있었고, 빼앗긴 다음에도 여포가 서주성을 돌려준다고 했을 때 받았다고 하면 이런 고생을 안 해도 되었을 텐데괜한 힘만 뺐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

여기까지가 3권의 이야기인데,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서로 동맹 맺고, 또 서로 배신하고아주 정신이 없구나. 금방 잊어버릴 것 같아서 자세히 썼더니 정신 없는 글이 되어버렸구나.


PS:

책의 첫 문장: “, 화목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책의 끝 문장: “여포는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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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10-22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국지 초반의 파란만장한 서사
가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이각과 곽사 무리를 물리치고
결국 조조가 헌제를 옹위해서
천하패권을 위한 대의명분을
장악하는 과정이 리얼하네요.

장수의 모사 가후와 조조의
가신 곽가는 당대 최고의 책사
였다고 들었습니다.

bookholic 2021-10-22 21:19   좋아요 0 | URL
등장인물이 많고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정신 없어요~~^^
 
삼국지 2 문예춘추사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2
요시카와 에이지 지음, 강성욱 옮김, 나관중 원작 / 문예춘추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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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2권을 이야기해보자꾸나. 갈 길이 머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1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조조가 동탁을 죽이려다가 실패해서 도망갔다고 했었지. 그런데 쫓아오던 관군에게 그만 잡히고 말았단다. 그런데 관군 중에 진궁이라는 자가 조조를 흠모하고 있었어. 몰래 조조를 탈출시키고 조조와 함께 조조의 고향인 하남의 진류로 갔단다. 그런데 조조와 함께 생활하다 보니, 진궁은 자신이 생각하던 조조가 아니었음을 깨달았어. 간사하고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심지어 그를 구출해 낸 것까지 후회할 정도였어. 하지만, 지금 선택지가 없으니 조조 곁에서 그를 돕기로 했단다.

조조는 고향에서 황제의 밀서를 가지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각 지방의 제후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모이라고 했어. 그렇게 조조의 고향으로 모인 여러 제후들무려 18명이나 모였어. 원수, 원술, 하후돈, 하후연, 손견, 공손찬 등등공손찬 밑에 있던 유비, 관우, 장비도 공손찬과 함께 왔단다. 그렇게 모인 18명이 한마음 한 뜻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로 딴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어. 그래도 일단 동탁을 공격하기로 모였으니 다들 동탁을 공격하려 나섰단다. 동탁도 대대적인 반격을 했어. 그야말로 동탁 대 반동탁의 대격돌이었어.

동탁 진영의 화웅은 손견, 원소 부대를 잇달아 무찔렀어. 이를 만회하기 위해 나선 이가 관우였단다. 여기서 그 유명한 장면이 나온단다. 따라 놓은 술 한 잔이 식기도 전에 적진에서 화웅의 머리를 베어와 버렸어. 그때까지만 해도 관우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 일을 보고 제후들 모두 깜짝 놀랐지.. 동탁 진영의 에이스 여포가 적토마를 타고 방천극을 휘두르자, 반동탁군들은 또다시 밀리는 형상이었어. 이번에는 장비가 여포에 맞서 싸웠는데, 장비도 밀리는 형상이었어. 이때 유비와 관우가 나서 도와주었고, 결국 여포가 도망을 도망을 갔단다.

일진일퇴를 벌이는 동탁과 반동탁 세력승상의 위치에 있던 동탁은 전세를 바꿔보기 위해 수도를 옮기려고 했어. 낙양에서 장안으로자신이 황제도 아닌데 마음대로 수도를 옮기다니.. 그의 본성을 알 수 있구나. 밑에 있던 부하들도 죄다 반대를 했지만, 이런 인간이 부하들의 말을 들을 리가 있나수도를 장안으로 옮겼단다. 옮기면서 낙양을 모두 불태워버렸어. 연합군들은 폐허가 되어버린 낙양에 도착을 했단다. 당시 총대장은 원소가 맡고 있었는데, 원소는 잠시 쉬면서 정비를 하자고 했고, 조조는 동탁을 추격해야 한다고 했어. 서로 의견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조조는 군사들을 데리고 동탁을 추격했어. 하지만 동탁 진영 이유의 계략에 빠져 조조는 전투에서 지고 말았고 화살까지 맞았어. 조조의 동생 조홍은 죽기 직전 하후돈과 하후연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했단다. 조조는 낙양으로 돌아와 자신의 패배를 원소가 도와주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며 대판 싸우고 집으로 돌아갔단다.

폐허가 된 낙양에서 손견은 우연히 옥새를 손에 넣게 되는데, 이것을 하늘이 자신을 점지한 것이라고 해석을 했어. 그러면서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안되겠다면서, 옥새를 몰래 숨겨서 자신의 지역인 강동으로 돌아갔단다. 조조와 손권이 돌아가고 나니 반동탁을 위해 모인 연합군의 결속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다른 제후들도 모두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단다.


1.

한나라의 황제는 이름뿐이고, 여러 제후들이 힘 자랑을 하는 시대였으니, 이곳 저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서로 땅을 빼앗으려고 했어. 이젠 동탁에 신경쓰기 않고, 자신들의 땅 넓히는데 신경을 썼어. 원소는 공손찬을 속이고 기주 땅을 차지했고, 공손찬의 동생 공손월을 죽이고, 공손찬도 원소군에게 죽음을 당할 뻔했으나, 지나가던 낯선 이가 살려주었는데, 그 낯선 이가 바로 조자룡 조운이란다. 삼국지의 캐릭터 중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은 캐릭터가 바로 조운이란다. 조운은 신임이 두텁고 충성심이 뛰어나고 거기에 싸움도 잘 하거든예전에 아빠도 삼국지라는 게임을 할 때, 조운을 얻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몰라. 그리고 조운을 얻으면 아주 든든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공손찬을 구해준 인연으로 조운은 공손찬과 함께 있던 유비를 만나게 되고, 서로 존경과 호감을 갖게 되었단다. 유비는 공손찬의 추천으로 평원에 상()이라는 관직을 받고 떠났단다.

원소와 원술은 서로 형제인데 사이가 안 좋아졌단다. 원소는 형주 양양성의 주인 유표와 사이가 좋은데, 원술은 유표와 앙숙의 관계였단다. 원술은 그 대신 손견과 친분을 가지고 있었는데, 손견을 설득하여 유표를 공격하라고 했고, 손견은 자신감 있게 유표를 공격했으나, 그 전투에서 그만 죽고 말았어. 강동 땅은 손견의 첫아들 손책이 이어받게 되었어.

왕윤이라는 한나라 신하가 있었단다. 반동탁 연합군도 흐지부지되어 동탁은 더욱 기세등등했어. 동탁의 악행을 보다 못한 왕윤은 미인계로 그를 없애려고 했어. 어릴 때 버려진 아이 초선을 딸처럼 키웠는데, 그 딸이 어여쁘게 자랐단다. 왕윤은 마음이 아팠지만, 나라를 위해서 그 딸 초선을 이용하여 동탁과 여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했어. 초선에게 그 뜻을 이야기하니 초선도 왕윤의 뜻을 받들기로 했단다.

작전은 이랬단다. 여포를 초대해서 여포에게 초선을 준다고 약속을 했다가 동탁에게 초선을 준 것이었어. 여포에게는 동탁이 초선을 데리고 갔으나 곧 여포에게 줄 거라고 이야기해두었어. 당시 동탁은 여포의 양아버지였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동탁은 초선에게 푹 빠져 있었고, 이에 화가 난 여포는 결국 동탁을 죽였단다. 반동탁 연합군이 모여서도 이루지 못한 일을 왕윤과 초선의 계략으로 쉽게 처단할 수 있었단 거야. 하지만 이 작전은 해피 엔딩이 아니었단다. 동탁의 부하였던 이각과 곽사가 왕윤을 죽이고, 동탁이 가지고 있던 권력을 다시 잡았어. 초선은 동탁이 죽은 뒤에 미인계가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자결을 했단다. 여포만이 자결한 초선을 보고 크게 상심에 빠졌단다. 그리고 이각과 곽사가 다시 권력을 잡았으니 여포 자신은 동탁을 죽인 중범죄자가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되었어.


2.

서주라는 지역의 태수는 도겸이라는 착한 사람이었단다. 도겸은 자신의 지역에 왔던 조조의 아버지인 조숭을 잘 대해주고, 돌아가는 길도 호위 500명을 붙여서 보냈단다. 그러나 호위를 맡았던 장개는 황건적 출신이었는데,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며 조숭과 일행을 죽였단다. 이 소식을 들은 조조는 도겸이 시킨 것으로 생각하고, 총 공격을 감행했단다. 도겸은 유비에게 도움을 청해서 유비, 관우, 장비, 조운이 도와주려 왔어.

조조가 서주를 공격하는 동안 비어 있는 조조의 본거지 연주의 복양성을 도망 신세였던 여포가 공격하여 점령해 버렸어. 여포가 힘만 셌지, 이런 지략이 없을 텐데, 누가 도와 준건가? 그래, 맞아. 그런 작전을 펼친 사람은 진궁이었어. 진궁이 여포의 책사로 들어가 있었어. ? 진궁은 조조를 구했던 그 사람? 앞서 진궁이 조조를 구출해주었다가 후회하고 어쩔 수 없이 조조 밑에 있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조조가 도겸의 서주를 공격한다고 했을 때, 진궁은 도겸이라는 사람의 성품을 알고 그가 조조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서주 공격을 강력하게 반대를 했었어. 그러나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더 이상 조조와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길을 떠났고, 그래서 찾아간 이가 여포였던 거야. 그런데 하필 여포라니.. 진궁이라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여포를 선택한 것을 보니, 참 사람 볼 줄 모르는 사람이구나. 아무튼 진궁의 계략으로 여포는 큰 승리를 거두고 조조는 화상을 입는 등 중상을 입고 간신히 도망쳤단다. 자신이 죽은 척 하면서 여포를 함정에 빠뜨렸으나, 간신히 탈출한 여포는 그 이후 복양성 안에서 나오지 않고 수비만 했단다.

서주성의 주인 도겸의 나이는 일흔그는 노화로 죽었는데, 그는 죽기 전에 서주를 유비에게 주려고 했어. 그동안 유비를 지켜봤는데, 관대하고 착한 사람이었거든. 하지만 유비는 몇 번이고 거절을 했어. 결국 도겸은 죽고 도겸의 부하들과 백성들이 유비를 찾아와 서주를 맡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단다. 어쩔 수 없이 유비는 서주의 태수가 되었단다.

한편 조조는 복양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을 했단다. 복양성에서 수비만 하던 여포는 어느날 성 밖으로 나가서 싸웠어진궁이 그렇게 나가지 말라고 말렸는데 말이지. 여포는 조조군에게 밀리기 시작하면서 다시 성으로 들어오려고 했지만, 여포를 배신한 전씨가 성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여포는 갈 곳을 잃고 도망 다녔단다. 여러 제후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지만 착하디 착한 유비는 여포를 도와주었단다. 관우와 장비가 다 반대를 했는데 말이야. 아빠는 유비를 좀 안 좋아한단다. 그가 관대하고 착한 것 빼고는 가진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리고 관대하고 착한 것도 좀 때와 장소와 사람을 가려가면서 착해야 하는데, 모든 이에게 착하게 구니 말이야. 유비는 여포를 도와준 것에 멈추지 않고 서주성마저 여포에게 주려고 했어. 다행히 주변의 적극적인 만류로 여포는 소패성에 물러났단다. 여포의 괴팍한 성격을 못 알아본다고 쳐도 소문이 자자하게 난 것은 알 텐데, 그런 여포에서 성과 성 안에 백성을 맡긴다는 것이 말이 되니? 관우와 장비가 그렇게 반대를 하는데도 여포에게 서주성을 주려고 했다니정말 답답한 노릇이로구나.

헌제를 모시고 있는 신하 중에 양표라는 사람이 있단다. 헌제가 이름뿐인 헌제이지만, 그래도 이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어. 이각과 곽사 사이를 이간질하는데 성공하여 이각과 곽사는 성 안에서 서로 치고 박고 했단다. 이렇게 치고 받으면서 이각이 몰래 황제인 헌제를 성 밖으로 빼돌렸어. 이로 인해 헌제는 오히려 성 밖에서 굶주린 생활을 하게 되자, 양표는 다시 이각과 곽사를 중재하려고 했단다.

이름뿐인 황제 헌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수많은 싸움꾼들이 치고 박는 이 싸움들은 언제 끝날 것인가. 분명한 것이 이 싸움들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것그들은 무엇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일까. 자신들의 목숨뿐만 아니라 죄 없는 백성들의 목숨까지 내고 싸우는 것일까. 삼국지에서 죽은 사람들이 총 몇 명인지 한번 세우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구나. 전투 장면을 보면 적으면 수천 명 또는 수만 명, 보통 수십만 명씩 참여하는 전쟁에서, 절반 이상씩 죽었다는 전투가 대부분인데그렇게 죽은 사람들을 모두 더하면 몇 명이나 될까. 세상의 소설들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단다. 삼국지 2권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조조를 잡으라는 체포령이 전국 각지로 전해졌다.

책의 끝 문장: 어쨌든 그 역시도 속이 복잡한 인물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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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4 - 임진왜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4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신병주 감수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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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가끔씩 읽는 <역사저널 그날> 시리즈. 4권을 읽었단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조선시대를 다룬 제 4권의 이야기를 읽었어.

조선시대에 왜와 교류를 하였는데, 조선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조선 사람들이 왜를 방문하곤 했단다. 임진왜란 전에도 조선통신사가 다녀왔는데, 갔다 온 사람들의 의견이 전혀 달랐어. 김성일이라는 사람은 일본은 전혀 전쟁 준비를 하지 않아서 전쟁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했고, 황윤길과 허성이라는 사람은 일본이 전쟁 준비를 하니 대비해야 한다고 했어. 하지만 당시 왕이었던 선조는 김성일의 의견에 따랐단다. 특별히 전쟁 준비는 하지 않았어. 물론 황윤길의 말에 따라 전쟁 준비를 했다고 해서, 그 흐름이 많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당시 조선은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하고 있었단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인 듯 하구나. 당시 조선의 신하들은 왜에 대해 무시하는 성향이 있어서 그들이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고 생각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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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낙관에는 일본 군사력에 대한 낮은 평가도에 꽤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얼마 전에 선조가 신하들을 불러서 의논을 했대요. ‘일본이 진짜 침략할 것 같나?’ 그랬더니 한 신하가 웃으면서, ‘일본은 배 한 척에 100명밖에 못 싣고, 배는 많아봐야 100척 밖에 동원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대요. 그런데 실제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에 동원하도록 지시한 배는 2000척 가까이 됐던 거죠. 조선은 이렇게 일본의 군사력을 한참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즈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국서를 보내왔어요. 그런데 조선 입장에서는 그 국서의 내용이 굉장히 오만방자하게 느껴졌던 거죠. 여기 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가 태몽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태양의 아들이라고 칭한 부분도 있고, 또 자기가 전쟁을 하면 지는 일이 없다면서 자신감을 넘어 오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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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국 이래 200여 년 동안 큰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던 이 땅에 전운이 감돌고 있던 걸 이 곳에 살고 있는 이들만 모르고 있었어.


1.

당시 일본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고, 그 힘을 과시하는 한편 넘쳐나는 무신들의 에너지를 발산할 목표로, 그리고 자기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조선을 쳐들어왔단다. 원래는 명나라를 공격한다는 목적으로 길을 내달라고 했는데 조선이 떠 받치는 명을 친다는데 길을 내주겠니그렇다고 조선이 잘 막은 것은 아니야. 1592 4 13일 부산 앞바다에 나타난 일본군들이 한양에 도착한 것이 5 2일이라고 하니.. 20일만에 부산에서 한양까지 치고 올라갔다는 것은 거의 무사 통과였다고 볼 수 있단다. 그나마 저항했던 것이 동래성과 탄금대에서의 전투였어. 동래성의 당시 부사는 송상현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나라에서는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지 않았지만, 나름 1년 전부터 전정에 대한 대비를 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역부족이었대. 하지만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숨어 있는 위인 송상현이라는 분을 알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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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송상현이 동래부사로 부임한 게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입니다. 동래부사는 지금으로 치면 부산시장 정도 되는 자리죠. 송상현은 부임과 동시에 성 주변에 나무를 심습니다. 나무가 성책(城柵) 역할을 하도록 한 거죠. 송상현은 또 군사 훈련을 철저하게 시켰다고 합니다. 이때가 꽤 평화로운 시대였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조치죠. 그러므로 송상현은 일본군의 침략을 예견했거나 적어도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유능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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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 28일 탄금대에서 전투가 있었어. 당시 조선 최고의 장군이자 기마전의 대가였던 신립 장군조정에서는 신립 장군에 큰 기대를 하였고, 당연히 신립 장군이 막아주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하지만 탄금대는 기마전에 유리한 지형이 아니었고, 그날따라 비가 와서 땅이 질척하고, 말을 이용한 기동성이 장점인 기마전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면서 대패했다고 하는구나. 8000여명의 군사들이 죽고, 신립도 자결을 하였대. 탄금대가 뚫렸으니 한양까지는 아무런 방비도 없었어. 그렇다고 왕이라고 유능했냐그것도 아니야.. 왜군이 한양 입성하기 이틀 전에 선조는 몰래 측근들과 함께 도망을 갔단다.

백성들의 민심은 왕에 대한 분노 그 자체였어. 선조 일행은 개성, 평양을 거쳐 단숨에 의주까지 도망을 갔단다. 해결책도 없이 의주까지 가서는 명으로 망명할 생각까지 하고 명나라에 편지까지 썼는데 명나라에서는 부담을 느끼고 거절했다고 하는구나. , 참으로 창피한 일이구나. 평양과 의주 사이에 영변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세자인 광해군에게 분조를 하면서 나라를 맡겼다고 하는구나. 당시 광해군의 나이가 18살이었어. 그러니까 18살 아들에게 올라오는 왜군을 막으라고 하고, 자신은 도망을 간 거야. 참 무능도 하구나


2.

그대로 나라가 왜에 넘어가는 상황이었지. 남쪽에서 이순신이 하나둘 왜군을 격파한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야. 전라 좌수사에 있던 이순신은 전쟁이 일어나기 한참 전부터 전쟁 준비를 했다고 하는구나. 혹독하게 했다고 하니 이순신은 이 전쟁을 예견한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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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어떤 면에서 이순신 장군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쟁을 준비해요.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있으면 곤장을 때리기도 했고요. 당시 이순신 장군의 부하들은 불만을 가졌을지도 몰라요.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한테 맨날 전쟁 준비시키고 함부로 곤장 때리고 그러냐?’ 이런 불만이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그런 걸 보면 이순신 장군은 확실히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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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해전 승리를 시작으로 연전 연승을 거둔 이순신은 한산 대첩으로 전쟁의 분위기를 확 바꾸어 놓았단다. 수군의 승전보에 힘을 받았는지 육지에서는 힘을 쓰고 있었어. 김시민 장군이 큰 활약을 보인 진주 대첩에서 왜군에게 대승을 거두었단다. 관군의 힘뿐만 아니라 곽재우 등 의병들이 큰 도움이 되었단다. 진주 대첩은 관군과 의병의 합작승리라고 할 수 있었어. 진주 대첩 패배에 열 받은 왜군이 보복을 한다고 나중에 진주의 많은 백성들이 죽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말이야.

명나라에서 지원이 왔어. 아무래도 가만히 있다가는 자신의 땅에서 전쟁을 할 것 같으니 지원을 보내 조선에서 싸운 것이지. 명나라 이여송이 이끄는 명군과 조선군이 합작으로 평양성을 7개월만에 탈환했단다. 그리고 나서 1593년부터 강화회담이 시작되었는데, 이 회담은 4년 가까이 이어지다가 결국 결렬이 되었고, 다시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정유재란이었단다. 회담이 열리던 4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이순신이 파직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어 감옥에 있었어. 전쟁 영웅을 이렇게 취급해도 되는 거니.. 무능한 왕이 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난단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왜군이 함정을 파고 유혹했어그 함정에 말려들면 조선군의 대패가 눈에 보였단다. 선조 왕은 공격하라고 명령했고, 이순신은 왜군의 함정인 것을 알고 공격하지 않고 있었어. 그 이유로 이순신을 파직시키고 죄인을 서울로 압송한 것이래심지어 사형까지 당할 뻔했는데, 정탁 등 몇몇이 말려서 사형은 면하고 백의종군을 하였다고 하는구나.

이순신의 후임으로 원균이 왔는데 그는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고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고 남쪽 바다를 책임졌어. 그 전에 원균의 패배로 조선의 전투배는 12척뿐이었단다. 어떤 사람이 나중에 한 척을 더 가지고 와서 13척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말이야. 여기서 그 유명한 말을 이순신 장군께서 하신 것이란다. 신은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다고 말이야이순신 바다의 흐름을 이용하여 12척의 배로 대승을 거둔단다.  그것이 바로 명량대첩이야일본도 다시 한번 좌절을 느꼈을 거야. 그리고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유언으로 조선에서 군대를 철수하라고 했대. 그래서 전쟁은 그렇게 끝이 나게 되었단다.

그때 후퇴하는 일본군을 총공격하게 되는 이순신 장군그 전쟁에서 승리를 하였지만 이순신 장군은 목숨을 잃었단다. 이순신 장군은 이 전쟁을 통해 전쟁 영웅으로 많은 백성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단다. 선조의 반응은 시쿤둥. 이 전쟁을 이길 수 있던 이유는 명나라가 도와주어서 그렇다는 평을 내놓았단다.


3.

임진왜란을 끝내 승리로 이끄는데 공을 세운 또 한 사람이 있다면 류성룡이라는 사람이란다. 류성룡은 인재를 알아보는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었어.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종6품인 정읍 현감으로 있던 이순신을 정3품 전라좌수사로 추천한 이가 바로 류성룡이었단다. 이것은 신의 한 수였던 거지.. 임진왜란에 행주대첩에서 큰 공을 세운 권율 장군이란 사람도 있는데, 이 사람도 류성룡이 추천한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류성룡과 이순신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래.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순신의 형님과 류성룡이 친구 사이였다고 하는구나. 어렸을 때부터 옆에서 지켜봤을 때 이순신의 남다른 능력을 알아보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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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류성룡과 이순신은 언제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관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흔히 두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류성룡이 세 살 많아요. 사실 류성룡은 이순신 장군의 형님과 친구였어요. 이순신 장군은 사형제 중 셋째인데, 제일 윗형님 이름이 복희씨의 신하, 희신입니다. 그다음에 중국 제일의 성인으로 치는 분이 요 임금, 순 임금이죠. 그래서 바로 윗형님 이름이 요신이에요. 이 형님하고 류성룡이 친구 관계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순 임금의 신하라는 뜻으로 순신이죠. 그러나 이순신 장군 동생 이름은 뭘까요?

이순신 장군의 동생도 있어요?

, 요순 다음으로 하나라의 우임금이 유명하죠. 치수(治水)를 잘했던 분이요. 이 우임금의 신하라는 뜻에서 동생 이름은 우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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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하면 유명한 책이 한 권 있단다. <징비록>이란 책이야. 임진왜란이 끝나고 임진왜란에 대해 기록한 책이고, 앞으로는 전쟁을 잘 대비하자는 내용도 있다고 했어. 아빠도 오래 전에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단다. 읽고 쓴 독후감이 있으니 한번 찾아봐서 읽어봐야겠구나. 이 책은 나중에 일본으로 유출되기도 했는데, 그곳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4.

선조의 아들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책들에서도 이야기를 하고, 한명기 님의 <광해군>을 읽고 쓴 독후감을 참고해고 좋을 것 같구나. 오늘은 아주 간단히 이야기할게. 선조와 의인왕후 사이에 아이가 없었어. 후궁인 공빈 김씨가 낳은 아이가 아들들이 있는데, 임해군과 광해군이었단다. 광해군이 두 살 때 엄마인 공빈 김씨는 죽었어. 선조의 첫아들 임해군이 세자에 책봉되는 것이 원칙이나, 임해군의  성격이 무척 안 좋았대. 그래서 광해군이 세자에 책봉이 되었고, 의인왕후의 양자가 되었대. 의인왕후는 양아들 광해군에게 잘 해주었다고 하는구나. 선조는 역대 왕 중에 선위하겠다고, 그러니까 왕을 아들에게 넘기겠다고 가장 많이 이야기한 왕이었다고 하는구나. 20번을 넘게 이야기했대. 그럴 때마다 신하들과 광해군은 무릎 꿇고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야 했고참 골치 아픈 왕이로구나.

또 의외의 변수가 생겼어. 의인왕후가 죽고 51살인 선조가 새로운 왕비를 맞이했어. 그 왕비가 아들 영창대군을 낳았다고 하는구나. 진정한 적자가 태어난 것이지영창대군이 잘 자라면 세자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 그런데 선조는 갑작스럽게 죽고 말았단다. 그래서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단다. 어찌 보면 우여곡절 끝에 오른 왕위였어.
여기까지가 <역사저널 그날 4>의 이야기란다이제 학교에서 너희들도 역사를 조금씩 배우는 것 같더구나. 아빠가 어렸을 때는 역사를 싫어했는데, 그런 아빠를 닮았는지 너희들도 모두 역사가 재미없다고 하는구나. 너희들에게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재미를 느끼게 하려면 아빠가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고 그래야 하는데…. 연구가 필요할 것 같구나. 아니면 역사를 재미있게 가르쳐주는 이를 찾던지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임진왜란의 역사적 무게는 조선 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사실에서 가장 또렷하다.

책의 끝 문장: ‘나도 좋은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700여 척의 배가 부산 앞바다에 나타나면서 시작되어 1598년 11월 종결되기까지 동아시아를 뒤흔들었다. 그 영향도 지대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란이 끝난 뒤 명과 일본 모두 왕조나 정권이 교체되었다는 것이다. 그전부터 침체했던 명은 참전 뒤 더욱 허약해졌고 결국 멸망했다. 일본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수립했다. 도쿠가와 막부는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무너질 때까지 250여 년간 존속하면서 일본의 중세를 이끌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전쟁터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조선은 쓰러지지 않았다. 전쟁 이후 조선은 체제를 수습했고, 그동안 지내온 것보다 더 오랜 기간을 존속했다. - P13

두 사람은 사실 처음부터 관계가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허균의 책을 보면 두 사람이 같은 동네 출신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원균은 부친이 수군절도사까지 지낸 무반 가문 자손이고, 이순신은 할아버지 때까지 굉장히 잘 나가던 문반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두 사람의 무과 합격 시기도 10년 이상 차이가 납니다. 이순신이 한참 늦게 합격했죠. 그런데 임진왜란 직전에 이순신이 종6품인 정읍 현감에서 정3품 전라좌수사까지 일곱 품계가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하고, 계속 승승장구하잖아요. 본래 이순신보다 훨씬 높은 직급에 있었던 원균으로서는 그런 이순신이 탐탁지 않았겠죠. - P92

의병은 경상도 지역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죠. 우선 경상도 3대 의병장으로 곽재우, 정인홍, 김면이 있습니다. 호남 의병장으로는 고경명, 김천일 등이 있고, 지금의 충청도 지역인 호서 의병장에는 조헌, 영규가 있죠. 금강산에서 활약한 사명대사 유정과 함경도의 정문부 장군도 빼놓을 수 없고요. 이렇듯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일본군에게 타격을 가했어요. 그러므로 의병의 봉기는 수군의 승리와 더불어 전쟁의 흐름을 바꾼 핵심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P106

그 재조지은이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 화가 나요. 대체 누가 나라를 구했습니까? 나라를 구한 건 조선의 백성들이에요. 그러면 백성을 섬겨야지 이게 무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런 걸 보면 선조는 그토록 참혹한 전쟁을 치르고도 배운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전쟁 후에도 제대로 된 국가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어요. - P154

손바닥도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잖아요. 이순신이 그토록 큰 전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덕분이었습니다. 하나는 경상도 지역의 의병이죠. 곽재우를 비롯해서 김면, 정인홍 등이 낙동강 지역을 굳게 지킴으로써 왜적들이 진주를 거쳐 전라도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했고, 덕분에 후방 기지를 든든하게 확보할 수 있었죠. 두 번째는 류성룡이 조정에서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해 줬기 때문입니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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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17 1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라를 구한 건 조선의 백성들]

마지막 문장 -‘나도 좋은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북홀릭님 주말 아들과 딸과 함께 ~
행복 따숩게 ^ㅅ^

bookholic 2021-10-18 00:25   좋아요 0 | URL
광해군이 아버지만 잘 만났어도 성군이 되었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아, 주말이 다 가버렸습니다.
오랜만에 꽉 찬 주5일이 무섭게 기다리고 있네요..
그래도 즐거운 한 주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