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7 - 제3부 불신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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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한강> 7권이란다. 어느덧 7권이구나. 7권부터 10권까지는 3불신시대의 제목이 붙어 있단다. 7권 첫 부분에 7.4 남북 공동 성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1972 7 4일에 있었던 것이란다. 그러니까 <한강> 3부는 1972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3부의 마지막은 1980 5월까지 이어진단다. 박정희 독사 독재라는 폭주기관차가 자기 마음대로 폭주하던 그런 시기란다. 온갖 불법이 성행하던 시기, 아무도 믿지 못하는 시기그래서 3부의 제목을 불신시대라고 한 것 같구나. , 그러면 제3부의 첫 번째 이야기 <한강> 7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유일민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어느날 재일교포 사업가로부터 연락이 왔어. 아버지의 편지를 가지고 왔으니 만나자고 했어. 아버지의 편지라... 얼마나 보고 싶었겠니. 하지만 그 편지가 불러올 풍파가 눈에 보였기 때문에 유일민은 고민 끝에 그 사람과 만남을 거절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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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아버지, 남쪽의 반공주의를 자극하고 유도하는 행위를 계속하는 북쪽의 저의는 무엇입니까? 모든 정치행위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게 마련인데, 저는 오래 전부터 북쪽이 노리고 있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고 있습니다. 남쪽의 반공주의를 강화시켜 가며 북쪽이 정치적으로 얻는 이득이 무엇일까 하고 신경을 집중시켜 왔습니다. 그동안 한 가지 사실은 확실히 알았습니다. 남쪽의 반공주의가 분단을 강화해 나가듯이 남쪽의 반공주의 강화를 유도하고 있는 북쪽도 분단의 벽을 쌓아올리는데 열중할 뿐 진정으로 민족통일을 이룩할 뜻이 없다는 걸 말입니다.

아버지, 단견이라는 저를 나무라지 마십시오. 저는 우리 집안의 특수성 때문에 몸사리고 조심스럽게 살아오면서 남과 북이 대립하고 있는 분단현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만나지 않고 아버지의 편지를 되돌려보내는 뜻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도 남과 북의 정치적 저의에 대해 계속 관심을 두고 살필 것입니다. 그건 구겨지고 찢겨진 제 인생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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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민이 올바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고 아빠도 생각했단다. 하지만 윗사람들은 더 독하고 무서운 사람들이었단다. 그렇게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일민은 얼마 후에 잡혀 들어가 모진 고문을 당해야 헸어. 이유는 접선한 사람이 있었는데 왜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냐는 거야. 며칠 동안 잠도 안 재우고 자서전을 쓰게 했어.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술집의 자금을 어디서 구했냐고 추궁 당했단다. 유일민은 채옥의 이름을 이야기할 수 없었단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친구 서동철의 이름을 팔 수밖에 없었단다. 유일민이 감금되어 고문당하고 있을 때,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어. 남한과 북한의 대립이 격화되는 시기라서, 약간은 뜬금없는 7.4남북공동성명발표였단다. 조국 통일 원칙도 발표되었어. 얼마 후 유일민도 풀려나게 되었단다. 하지만 더 이상 술집 운영도 할 수 없었어.

 

1.

박정희는 경제를 살린다는 이유로 친기업 정책을 엄청 발표했단다. 그러면서 뇌물도 엄청 먹었지. 그 중에 하나가 사채를 빌려 쓴 사업가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정책인데, 3년 동안 사채를 갚지 않아도 되고, 그 이후에는 매년 분할해서 갚고 이자는 1/3로 팍 줄여준 정책이란다. 사채를 빌려 쓴 사업가들은 대박이었고, 사채업자들은 분노를 일으키는 정책이었단다. 심지어 어떤 사업가들은 이런 정책이 발표될 것을 알고 있었는지 최근에 엄청난 사채를 빌려 쓰고, 이 정책이 발표할 때는 외국에 피신해 있던 사업가들도 있었어. 정말 불법이 판을 치던 시대로구나.

그런데 많은 일반 노동자들도 피해를 입었어.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 줄 수 있어 자신의 돈을 회사에 빌려주고 있었거든. 천두만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야. 자산의 돈과 딸의 돈을 딸의 공장에 빌려주었거든. 얼마 있으면 조그마한 하청공장을 세우려는 꿈이 있었는데.... 3년 동안 돈이 묶이고, 그 이후 일년마다 적은 이자로 받으니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 뿐만 아니라 물가도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도 있어서 3년 뒤 자산의 돈은 그 가치가 더 떨어지게 되는 거야.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자50만원 이하의 사채는 제외하기로 했단다. 천두만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돈을 찾으러 갔더니, 황당한 소리를 들었단다. 공장에서 한 명이 노동자들의 돈을 취합하여 회사에 빌려주었다는 거야. 그러니 회사에서 받은 사채는 50만원이 넘기 때문에  50만원 이하 사채 예외 규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거야. 노동자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 김명숙도 자신의 돈을 회사에 빌려주어 못 받을 처지였어. 김명숙은 방법을 찾다가 검사인 자신의 오빠 김선오에게 부탁했어. 그러자 공장장은 바로 김명숙의 돈을 갚았단다. 검사라는 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 막강하구나. 한편, 김선태는 몇 년째 계속 사법고시에 떨어지고 나서, 결국 비극적인 선택을 했단다.

강숙자의 친구 안경자는 의사 남편 신기훈과 결혼했다고 이야기했었나? 아무튼 안경자는 서울에서 산부인과를 차렸고, 남편 신기훈은 더 공부하겠다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단다. 의학 박사 남편과 병원장 아내.. 그야말로 막강한 스펙 부부가 되겠구나. 그런데 얼마 전부터 미국의 남편의 소식이 끊겼어. 안경자는 남편이 바람 피우고 있다는 것을 의심했으나, 당시 미국에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어. 강숙자는 결혼한 후에도 유일표와 가끔씩 만났단다. 사이 좋은 누나 동생과 같은 사이였지. 강숙자는 자신의 동생 강미현을 유일표에게 소개해주었단다. 일종의 맞선 자리였어. 유일표는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이야기하면서 거절했단다. 자신의 아버지가 어느날 불쑥 내려오기라도 하면 자신의 집안뿐만 아니라 아내의 집도 풍비박산이 날 거라고 말이야그래서 자신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어. 그것은 유일표의 형 유일민도 마찬가지였단다.

유일민은 결혼하지 않는 이유가 하나 또 있는데, 그것은 임채옥 때문이란다. 임채옥은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결혼을 하긴 했지만, 임채옥 역시 여전히 마음 속에는 유일민뿐이었단다. 임채옥은 결혼하고 나서도 유일민을 찾아왔어. 유일민이 설득하여 일년에 한번만 만나기로 했단다. 임채옥의 부모들은 주변 사람들 몰래 미국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단다. 한국은 언제 또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안전한 미국으로 이민하겠다고 한 거야. 자신들 뿐만 아니라 자식들 식구들도 모두 데리고 가려고 했어. 하지만 임채옥은 안 가겠다고 했단다. 다른 이유를 댔지만, 임채옥은 미국에 가면 유일민을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 거야. 결국 임채옥의 부모는 임채옥 식구들만 집에 남겨두고 미국 이민을 가버렸단다. 그래서 자식이다 보니 임채옥 부모는 임채옥에서 큰 돈을 주고 떠났단다.

….

그런데, 임채옥의 아버지 임상천이 이민을 떠나면서 얌전히 떠난 것이 아니란다. 어음을 잔뜩 떼어 놓고 현금을 틀고 튼 거야. 그리고 그 어음의 이름은 동업자인 정동진 앞으로 해 놓고 간 거야. 정동진은 몰려드는 어음을 지급할 수 없어서 회사는 부도 직전이었어. 뒤늦게 자신이 임상천에 사기를 당한 것을 알았지만, 임상천은 이미 미국으로 가버렸단다. 그는 옛친구 남재구에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남재구는 한번 만나 사연을 들은 이후로는 계속 그를 피했단다. 마치 자신이 옛날 한인곤을 피했던 것처럼 말이야.

정동진은 한인곤에게도 도움을 청하려고 했지만 자신이 옛날 한인곤을 매몰차게 군 것이 있어 연락을 하지 못했단다. 정동진은 어렵게 임상천의 딸 임채옥을 만나 임상천의 미국 주소를 알아냈단다. 당시 미국을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갈 돈도 없었단다. 임상천의 주소를 알아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편지를 보내는 것뿐이었단다.

부모로부터 큰 돈을 받은 임채옥은 그 돈을 다시 유일민에게 주려고 했어. 유일민은 극구 반대했단다. 임채옥이 그 이유를 계속 묻자, 잡혀 들어갔다가 사업 자금의 출처를 이야기해야 했던 일을 이야기했어. 그러자 임채옥은 자신의 이름을 대지, 왜 안 댔냐는 이야기를 했단다. 그런 이유라면 돈 받고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자신의 이름을 대라는 거였어. 정말 유일민을 엄청 사랑하고 있구나.

 

2.

다시 천두만의 이야기를 해줄게. 소설 시작부터 천두만의 일은 늘 꼬이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그야말로 최악의 사건이 일어났단다. 천두만의 딸이 돈을 조금이라도 더 모으려고 새벽까지 일하다가 집에 오는 길에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고 만 거야. 소설 속 인물이긴 하지만 너무 가슴 아픈 사연이구나. 조정래 작가님, 너무 하셨어요. 충격을 받은 천두만은 날마다 술에 취해 세상을 욕하고 분노했어. 그리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며 죽고 싶다고 울었단다. 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전도사 김진홍이라는 사람이 잘 설득하여 남은 식구들, 특이 남은 아이들을 위해 다시 일자리를 찾아나서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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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표의 친구 허진의 이야기를 해주어야겠구나. 허진은 회사에 입사한 이후에 꿈이 명확했단다. 이 회사에서 성공을 하겠다는 것그는 회사에 목숨 건 사람처럼 일해서 한 단계 한 단계 잘 밟아 올라가고 있었단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힘들게 일하던 허진이었으니 그가 성공에 대한 야망은 이해가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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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계엄령을 발표했단다. 유신헌법이라는 것은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뽑는 것이 아니고, 몇몇 선거인단이 대신 뽑는 것이 기본 골조란다. 체육관 선거라고도 했어. 그렇게 헌법을 바꿔 박정희는 평생 대통령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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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그래, 말 잘했다. 이번 사태는 그 누구보다도 대학생들이 그 흑심과 악영향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해. 신문에 보도된 왈 유신헌법이라는 것을 빨간 줄 쳐가면서 조목조목 따져봤는데, 그건 한마디로 법이 아니야. 아까 말한 대로 대통령을 임금으로 바꾼 건데, 이북에서 김일성이 혼자 출마해서 당선되는 것처럼 이쪽도 똑 같은 수법을 만들어냈어. 세상에 소가 웃을 일이지, 달에 사람이 오가는 20세기에 이 무슨 졸렬하고 유치한 만행이냐. , 내가 법을 공부한다는 것에 절망하고 환멸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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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도 중단되어 김선진은 일찍 방학을 했단다. 형 김선오가 찾아와서 김선진에게 고향에 내려가 있으라고 했어. 어머니도 보살펴드리면서 말이야. 아무래도 동생이 시위를 할까 봐 김선오가 미리 선수 친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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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배상집이라는 사람 기억나지? 그 사람은 열심히 공부해서 결국 경제학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후배가 찾아 와서

함께 동베를린에 가자고 했어. 당시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베를린도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으로 나뉘어져 있어 그것을 구분한 장벽이 있었는데 이는 냉전 시대의 하나의 상징이었어. 그러니까 동베를린은 공산주의 동독의 수도인데 그것으로 가자고 했으니 배상집은 거절했지. 자신의 성공에 방해가 요소가 될 것이 뻔하니까. 후배는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설득했지만 배상집을 끝내 거절했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후배의 배후에 정부가 있었고, 배상집의 사상 검증을 위해 떠봤던 것이었어. 배상집의 입장에서 큰일날 뻔한 일이었어. 간호사들도 여전히 힘들게 일하고 있었어.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주말도 쉬지 않고 일했어. 그러다가 탈이 나는 사람도 있었는데,  

김광자의 친구 정남희라는 사람도 아픈 몸을 이끌고 계속 일을 했어. 아스피린만 먹으면서 참고 일했는데, 결국 야근하다가 쓰러져 죽고 말았단다. 이런 안타까운 사연은 소설 속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고 실제에서도 있던 사건이었을 거야. 참 슬픈 역사로구나.

다시 국내 사정을 이야기해줄게. 유신헌법과 계엄령이 발표되고 나서 야당정치인들을 뇌물수수사건으로 대거 체포했단다. 조작 사건이었지. 야당 강성 국회의원이었던 한인곤도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해 정신을 잃기도 했어. 하지만 그는 끝내 결백을 주장했단다. 그의 옛친구이자 지금은 여당 거물급 인사가 된 남재구가 찾아와서 회유했어. 하지만 한인곤은 배신자의 말을 듣지 않았지. 유신헌법에는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1/3을 선임할 수 있는 말도 안되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단다. 그러니 야당은 더욱 힘을 쓸 수 없게 되었지. 대기업 사장 박부길의 아들인 박준서도 그렇게 유정회 국회의원이 되었단다. 박준서의 친구이자 매제인 원병균그동안 4.19 정신을 잃어가는 박준서에 대해 원망을 하긴 했지만, 그가 유정희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은 원망을 넘어 큰 배신감을 받았어. 박준서를 만나 친구로써 따져보았지만, 아버지의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만 들을 수 있었단다.

이상재는 기자로 포항제철 박태준 사장을 취재할 수 있었어. 이 부분은 상당히 많은 지면에서 다루었단다. 당시 포항제철은 우리나라에서 할 수 없다던 제철소의 성공신화를 썼고 그 중심에는 박태준 사장이 있었다는 것이 취재의 핵심이야. 조정래 작가님은 어린이들을 위한 위인전을 몇 편 쓰신 적이 있는데, 그 중에 박태준도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박태준을 높이 평가했던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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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308)

저에 대한 것은 과찬입니다. 저는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오늘의 포철이 이룩된 것은 임직원 여러분들과 공사에 참여한 수많은 분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피땀을 흘려 쌓아올린 공입니다. 다시 말해 공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입니다. 이 말은 후판공장에서 첫 생산된 두루마리 후판 몸체에 제가 쓴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포철 준공을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포철의 성공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계를 비롯해서 재계, 언론계까지 포철은 실패할 거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그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후발국들은 종합제철 건설에 거듭 실패하고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나라가 브라질과 터키입니다. 특히 브라질은 나라가 굉장히 크고 천연자원이 풍부한데도 실패했는데 우리나라는 별다른 자원도 없으니 더 어렵지 않으냐 하는 생각들이었습니다. 성심을 다한 사람의 힘은 하늘도 움직인다는 말을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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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재는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허미경에 대해 잊지 못하고 있단다. 허미경이 버림을 받아 혼자 된 뒤로는 그 마음이 더 커져갔어. 툭하면 허미경의 양품점을 찾아오곤 했어.

….

유일민은 임채옥이 준 돈으로 다시 사업을 준비했어. 당시 각광을 받고 있는 플라스틱 용기 사업을 하였는데, 이것이 잘되어 회사 규모도 조금씩 커져갔어. 여동생 유선희도 그 회사에서 경리를 보며 함께 일했어. 유일민과 유일표의 걱정거리 중에 하나가 동생 유선희가 결혼을 안 하는 것이야. 하지만, 유선희도 오빠들과 마찬가지 이유로 결혼을 안하고 있었단다. 아버지가 내려온다면 자신의 시댁까지 고초를 당하게 될 테니 말이야. 유일민의 어머니 해촌댁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결국 돌아가셨단다. 해촌댁의 유언은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라는 것이었어. 남편과 헤어지고 언젠가는 만날 것이라고 희망을 가지면서도 겉으로는 이야기를 못하고 가슴에만 품은 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으니 유일민의 어머니는 그 한으로 온몸이 가득 차지 않았을까 싶구나.

7권의 이야기는 대충 여기까지란다.

7권에서 계엄령에 대한 내용도 나오는데 이런 역사 대하 소설에서나 나오는 계엄령과 내란이 오늘날에도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아직도 그 내란 세력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구나. 그들이 행한 행태를 보고서도 지지를 하겠다니 이게 말이 되냐 말이야. 내란 세력에 사법부도 포함되어 있다니, 정말 충격적이고대선이 제대로 진행될 지 걱정이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강꼬꾸노 조세이와 야스리가리다.(한국 여자는 싸다니까.)”

책의 끝 문장: 유선희는 그제서야 집안일을 맡게 되었을 때처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10월유신’이란 지금까지 있어 온 군부독재가 더욱 강화된 것이 아니었다. 그건 죽을 때까지 권좌를 보장하는 임금의 탄생이었다. 그건 정치제도 중에서 가장 추악한 봉건제도의 부활이었고, 몇백 년의 뒷걸음질이었다.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이승만 독재를 비판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민중의 편에 설 것을 역설하며 후배들을 이끌었던 신 선배는 그때와 정반대의 배를 바꿔 타고 있었다. - P239

"사실 인생이란 게 별게 아니긴 한데 고비고비 잘 풀리지 않으면 그것 참 팍팍한 모래밭인 거라. 죽고 나면 다 헛것인데 산 목숨 하루하루는 심각하고 절실하니까 최선을 다해 노력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숱한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제 나름으로 많은 말들을 했는데 정작 정답은 없는 게 인생이거든. 사는 것, 그것에 열중할 수밖에 없어."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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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배우다
전영애 지음, 황규백 그림 / 청림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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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는 유튜브를 통해 즐겨보는 EBS <건축탐구 집>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단다. 그 중에 특히 시골에 지은 집이 나올 때 유심히 보곤 한단다. 나이가 들다 보니 그런 시골살이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생긴 것 같아. 어느날 아주 작은 시골 집에서 생활하는 인상 너그러운 할머니의 영상을 보게 되었어. 처음에는 시골의 여느 할머니라고 생각했는데, 반전의 반전집에 잔뜩 쌓여 있는 책들. 독문학 일인자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경력에, 괴테의 모든 책을 번역하셔서 괴테 할머니라는 별명을 갖고 계신 전영애라는 분이었단다. 2011년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괴테 금메달이라는 상을 수상하였다고 하는구나.

그가 번역한 책들을 조회해 보니, 아빠가 읽은 책들도 두어 권 있더구나. 아빠가 번역가들을 유심히 보지 않은 죄가 크구나. ^^ 가끔씩 그 분의 유튜브를 보면서 배우고 힐링하고 그랬단다. 몇 달 전에 책도 출간하셔서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빠 친구 중에 한 명이 전영애 님의 <인생을 배우다>라는 추천해 주었단다. 이 책은 최근에 출간된 것은 아니고 십여 년 전에 출간된 책이었단다. 전영애 님의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차에, 친구가 추천해주니 반갑기도 해서 얼른 읽어보았단다. 겉보기와 다르게 참 치열한 삶을 살아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그리고 평생 공부를 하신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 마치 공부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단다. 자신의 공부에 열중하면서도 서울과 독일을 오가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후학 양성에도 무척 힘을 쓰셨더구나. 일분 일초를 허투루 쓰지 않으셨는데, 그가 소원하는 후회하지 않은 삶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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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작가 헤벨이 주는 정답은 이렇다. 천사가 당신에게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물어줄 경우 답해야 할 첫째 소원은,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것. 둘째 소원은 무얼 빌어야 할지 물어서 알게 된 그 소원을 비는 것. 마지막으로 빌어야 할 세 번째 소원이 중요한데, 바로 후회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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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일과 서울을 오가면서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뒷전이라고 했어. 그래도 다행히 아이들이 알아서 잘 큰 것 같다고 했단다. 그렇게 공부만 엄마를 보면서 자란 아이들이 잘못된 길을 가긴 쉽지 않겠지. 유전자도 물려받았다면 더욱 엄마를 닮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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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어두운 밤 지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불 켜진 딸의 방을 쳐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안에 정말로 따뜻하고 아름답게 피어 있구나, 작은 한 송이 지혜의 꽃이. 세상의 비바람 속에서도 견뎌야 할 텐데. (어미가 일하며 힘든 모습을 너무 많이 보인 탓인지 딸은 용돈을 달라고 떼를 써야 할 나이에도 용돈은커녕 학교에 내는 돈조차 안 받으려 들었다. 훗날 장학금 주며 데려가 공부 잘 시켜준 좋은 학교를 잘 마쳤다.)

만년필을 잡으면 글을 쓰지 않아도 손이 따듯하다. 만년필을 놓고 스탠드 불빛 앞에서 손을 펴본다.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주먹을 가만히 쥐었다가 다시 펴면, 내 손안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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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전영애 님은 아이들을 혼자 키운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대. 이웃들, 주변 사람들과 함께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는구나. 우리와 같은 아파트 생활은 쉽지 않은 생활인 것 같구나. 아니다, 요즘은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그런 생활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웃들과 웬만큼 친하지 않고는 말이야. 그래도 아빠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아서 그런지 집 문은 늘 열려 있었고, 이웃에 일이 있으면 서로 아이들도 봐주고 음식도 전해주고 그랬던 같구나. 책을 읽을 때는 전영애 님의 육아 방식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아빠도 어렸을 때 그런 생활을 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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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아이를 나 혼자 기른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어차피 세상에서 살 것이기도 하지만 당장 있으나마나한 어미 대신, 주변 사람들이 내 아이를 한번이라도 아끼는 눈길로 보아주길 바랐다. 나도 이웃아이들에게 그렇게 했다. 늘 문이 열려 있다 보니 가끔씩은, 냉장고 안에는 이웃이 넣어두고 간 김치나 다른 반찬이 들어 있기도 했다. 헌 신발이나 옷가지가 현관문 안에 놓여 있기도 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내 아이들이 어디선가, 아프거나 슬퍼서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그 분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어주셨을 것이다. 내 아이들은, 절절 매며 시간을 쪼개 쓴 어미가 아니라, 그 분들이 키워주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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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야 우리나라 문화가 다른 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잖아. 전영애 님은 어떤 상을 받았는데 그 상금으로 독특한 일을 하셨단다. 독일 도나우 강변에 한옥을 짓는 것이었어. 한옥의 자재를 독일에서 구할 수 없으니 한국에서 자재들을 조달하여 독일에서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한옥을 지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한옥의 이름을 시인의 집이라고 짓고 다른 문인들이 와서 머물다 갈 수 있게 했다는구나. 자재를 독일로 공수하고 그곳에서 조립하는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일까? 아빠 같았으면 생각이 있었어도 그런 번거로움 때문에 실천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야.

자신의 제자들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그 스승에 그 제자들인 것 같더구나. 전영애 님은 스승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만 한 것이 아니고, 제자들의 삶을 통해 자신도 배우는 자세를 보여주었단다. 자신의 자세의 낮추는 모습도 보기 좋았단다. 독일의 여러 문인들과 만남도 이야기를 주었는데, 특히 라이너 쿤체라는 시인과는 각별한 관계였다는구나. 독일에서 전영애 님의 시집을 내주기도 했대.

독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에서 오랫동안 독문학을 가르치셨어.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기 위해 집을 지었다고 하는구나. 경기도 여주에 여백서원이라는 집을 지으셨는데, 그 여백서원이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건축탐구 집>에 소개된 집이란다. 책을 읽고 그 프로그램을 다시 한번 보니, 괴테 할머니는 정말 존경하실 만한 분이구나. 여백서원이 3200평인데, 대부분이 손님들과 책들의 공간이고 자신은 1평도 안 되는 방에서 지내면서 내내 행복한 표정을 갖고 계셨어. 책을 바라보는 표정은 더욱 그래도 전영애 님은 문학과 빼고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지. 전영애 님께서 생각하는 문학을 이야기해주었는데, 결국 사람과 연결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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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252)

나는 지금까지 글을 읽어오면서 문학이란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남기고, 전하고, 읽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글에는 사람이 담긴다. 현실에서는 일일이 다 만나낼 수 없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일, 사람들의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만나보는 일은 세상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의 갈피를 헤아리고 배려하는 것은 아마도 함께 살아가면서 가능 필요한 일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글을 배우고 읽는 궁극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장 힘들여 남기고, 전하고, 읽는 것은 아마도 바른 삶이어야 할 것이다. 글 읽는 시간이란 것도 궁극적으로 바른 삶을 생각하는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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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영애 님께서 최근에 출간한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그토록 따뜻한 분들을 처음 만났던 건, 괴테 탄생 250주년이던 해 여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기념 확회에서였다.

책의 끝 문장: 향기롭기까지 할 리야 없지만, 내 자신에게 혹시 어떤 양질(良質)의 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다스려온 긴 기다림, 견뎌온 어둠의 덕인 것 같다.



세상의 일은 다 어렵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하면서, 이를테면 내가 죽지 못해서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제 일인걸요" 하면서 성실히 임하는 것은 많이 다를 것이다. 일의 성과도 다르겠지만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의 삶의 질이 다를 겁니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 지금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 P35

아이들은 아이들일 때 놀아야 한다. 놀아야 몸도 마음도 튼튼해지고 주위를 살피며 세상 이치도 깨닫고, 무엇보다 심심해서 이것저것 해보는 가운데 진정한 창의력이, 생각이 자란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아이 때 아이노릇 잘 해야 학생 때 학생노릇 잘 하고 어른 때 어른 노릇 잘 하는 건 자명한 이치이다. 아이 때는 공부하고, 어른 되어서는 남의 눈치나 보며 그저 놀고 싶어 하고, 저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세상이 가득 차면 어떻게 되겠는가. - P40

공부하느라 고생이 막심한 어미를 일찍부터 보아온 탓에 어려서부터 공부는 절대로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거의 좌우명 삼고 산 것 같다. 그러나 자기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한도 끝도 없이 했다. 그러고 보면 어떤 점에서는 어미로부터 그리 멀리 가지도 않은 것 같다. 온 식구가 그렇다. 다들 가끔씩 만나면 매우 반가워하는 그런 사이가 일찍부터 되어버렸다. - P57

남의 살을 세세히 알 수야 없다. 그러므로 남들은 대체로 편안하거나 그저 그만한 것 같고 나 혼자만 이런 수렁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오해, 어쩌면 그런 오해를 기반으로 우리는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한 구절을 대할 때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 내 눈 앞을 스쳐가는 삶의 굽이굽이들. 그걸 지나고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 P139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눴고, 어딘가에서는 무얼 읽었고, 또 어딘가에서는 뭔가 간절한 생각을 했고, 그런 이유로 소중해진 곳들이 어느새 다 내 자리가 되어 있다. 푸코의 말마따나 이 세상에서 자리 하나 만드는 일은 우리 시대의 개인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어 있는데 ‘나는 참 부자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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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25년 봄호 - 통권 189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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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철마다 읽는 계간지 <녹색평론 2025년 봄 호>, 통권 189권을 이야기해줄게. 지난 녹색평론이 출간되고 이번에 출간되는 사이에 가장 큰 일은 아무래도 12.3 계엄령, 친위쿠데타, 내란이 아닐까 싶구나. 그래서 이번 녹색평론의 부제도 그와 연관된 <시민이 주도하는 개헌운동>으로 되어 있단다. 녹색평론사에서 <녹색평론 2025년 봄 호>을 준비할 즈음에는 당연히 탄핵이 인용될 것이라고 확신하던 분위기여서인지 글들이 모두 탄핵 인용 이후의 대한민국과 헌법이 나아갈 길에 대해 다루고 있단다. 하지만 아빠가 이 책을 읽은 것이 3월말인데, 탄핵 선고가 계속 미루어지면서 설마라는 불안감이 엄습하던 때였단다. 당연히 탄핵 인용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란 수괴가 구속 취소되어 무죄인양 거리를 활보하고, 폭력적인 탄핵 반대를 선동하는 이들이 난동을 부리는 것을 설마라는 불안감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단다. 그래서 <녹색평론 2025년 봄 호>에서 탄핵이 당연하다는 글들이 다소 거리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단다.

그래도 다행히 조금은 늦었지만, 탄핵이 인용이 되어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았었단다. 하지만 여전히 내란 세력들이 도처에서 속 터지는 짓들을 하고 있으니, 아직도 불안함이 자리를 잡고 있구나. 내란 동조자인 대통령권한대행이라는 자가 월권 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 아직 내란의 잔재 세력들이 득실거린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단다. 지금은 내란의 잔불을 완전히 꺼야 하는 시기란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개헌 이야기도 오가기도 하는데, 개헌은 새 정부 들어서서 시민들의 의견을 오랜 시간 신중하게 경청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단다. 기한을 두고 졸속으로 하는 개헌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야.

….

 

1.

이번 탄핵 선고를 기다리면서 불안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불법 계엄을 저지르고,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에 들어가서 유리창을 깨는 것을 온 국민이 전세계 사람들이 다 보고, 내란을 일으키려고 했던 증거물과 증언들이 차고 넘쳤는데도 탄핵 인용이 안 될까 불안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헌법의 기준대로 판단하지 않고, 정무적인 판단을 할까 그랬던 것 같구나,. 헌법재판소는 항소도 하지 못할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정무적인 판단을 해도 되는가. 이 책에서는 그런 헌법재판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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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첫째, 9명 임명직 헌법재판관으로 구성된 헌재가 국민이 선출한 300인 국회 위에 군림하는 것이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둘째, 헌재 결정의 타당성 여부를 가릴 견제 기관이 존재하는가.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한국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가 아니므로) 과두체제이며, (견제받지 않으므로) 독재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과두적인 독재기관은 때때로 민의를 배반하고 독재지향적인 권력, 특권층의 이해에 영합하는 하수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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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AI가 대신 결정을 한다면 더 일찍 더 정확하게 결정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어.

녹색평론에서 오랫동안 주장한 것 중에 하나가 시민회의의 구성이란다. 국가의 중요한 정책, 특히 기한이 오래 걸리는 정책에 대해서는 국민들 중에 차출로 뽑힌 시민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란다. 대한민국 정치가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시민 회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 정권에서는 진지하게 논의되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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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시민의회는 일반시민 중에서 추첨으로 선발된 소규모 대표들이 공공정책에 대해 심도 있는 숙의를 거쳐 결정을 내리는 민주적 기구이다. 시민의회는 통계적으로 전체 시민을 대표할 수 있도록 추첨으로 구성되면, 운용은 숙의를 핵심으로 한다. 숙의는 단순히 사람들의 의견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이성적 토론을 통해 집단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흔히 다수가 참여하는 방식은 정제되지 않은 의견들의 충돌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나, 시민의회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개인들이 참여하더라도 숙의를 통해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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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이 있었단다. 역사는 이 시대를 탄핵의 시대라고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왜 이런 무능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까? 그리고 이런 대통령이 무식한 짓을 하는데 시스템으로 막을 수 없었을까? 그래서 개헌의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단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아빠도 개헌은 필요하다는 생각이란다. 1987년 개정된 헌법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시대도 변한 만큼 그 시대에 맞는 헌법도 필요한 것은 사실이란다. 앞서 이야기했던 시민회의도 개헌을 통해 만들어져야 한단다.

이 책에서는 개헌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나라의 개헌 사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칠레에서 시도했던 개헌은 정권이 왔다갔다 하면서 결국 실패했다고 하는구나. 핀란드와 뉴질랜드에서 이루어진 개헌의 성공은 개헌을 준비하는 우리나라에서 배울만하다는 생각이, 읽을 때는 들었는데, 지금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질 않는구나.

….

그리고 헌법을 개정을 한다면 오늘날 가장 직면한 기후 변화에 대한 내용도 담겼으면 한다는 의견에 아빠도 격하게 공감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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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나는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자연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인간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이 인류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좋은 삶을 구성하는 불가결한 요소라고 믿는다. 자연의 가치와 권리에 대한 존중이 법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 나의 믿음이 법은 더 이상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위 그리고 집단 책임성에 대한 개인 권리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고 생태적 상호의존성을 인정해 인간 삶의 자연적 조건을 내재화하고, 이를 헌법과 인권법, 재산권, 기업의 권리 및 국가 주권을 포함하여 모든 법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오슬로선언의 취지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좋은 삶을 함께 생각하고, 이를 이뤄나가기 위한 개인적인, 또 집단적인 실천을 해야 한다. “나의 행동이 대양의 작은 물방울에 불과할지라도좋은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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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이 책에 실린 정치 이외의 주제들은 크게 와 닿지 않더구나. 몇 개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모두를 환대하는 공원이라는 글에서는 조경가 박승진 님의 공원의 설명을 읽을 수 있는데,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가 보고 싶더구나. 통의동 브릭웰, 대구 미래농원, 목동 오목 공원이 그 공원들이란다.

생태예술가 퍼트리샤 조핸슨의 인터뷰를 실려있는데, 다음 발췌글로 감상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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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나쁜 디자인이 없습니다. 나쁜 디자인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자연의 어떤 부분을 살펴보더라도, 그 기능에 가장 적합한 디자인이 결합돼 있을 것을 알 수 있어요. 자연의 또다른 속성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거예요. 바로 이게 예술과 생명의 차이입니다. 학교에서 저는 예술은 완벽한 형태를 추구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예술작품은 단 하나의 요소를 더할 수도 뺄 수도 없을 만큼 완벽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것이 미켈란젤로나 르 코르뷔지에 등으로 이어져 오는 고전예술 전통입니다. 그런데 제가 했던 작업은 그것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어요. 우선 살아있는 세계를 작품 속에 들어오게 허용하면, 완벽함이라는 것은 순간적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자연은 쉴 새 없이 변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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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남일 님의 히말라야 트래킹 여행기는 부러움만 가득 채웠단다. 아빠는 가까운 산이나 가야겠다. 그리고 이번 호에도 읽을만한 책들의 서평이 실렸는데, <몸이 기후다>라는 책은 읽어보고 싶었단다.

….

정말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다행히 탄핵이 인용되어 대한민국의 창피함이 많이 상쇄된 것 같구나.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못난 짓을 많이 해서 전세계적으로 엄청 창피했는데, 이젠 그런 내란 수괴를 내쫓아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구나. 대한민국 민주주의 시스템을 통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을 탄핵시켰다는 것에 대해 외국에서도 칭찬하고 좋게 평가하는 분위기더구나. 심지어 어떤 나라에서는 부러워하기도 하고… ^^ 이제는 다시는 우리나라에서는 내란을 동조했던 정당에서는 대통령이 나오질 않길 바래.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실로 끔찍한 가정이긴 하지만 12.3 쿠데타가 곧바로 제압될 수 없었다고 상상을 해보자.

책의 끝 문장: 무엇보다도 그에게 천지간 농업으로서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있을 논밭 신령님들의 말씀들을 받아 쓰”(<다시 심고心告-혼자 보고 혼자 들은 말>)는 일이기도 할 터이기 때문일 것이리라.

 



윤석열과 그 일당이 주장하는 통치행위라는 예외적 권력은, 왕에게 법을 지키지 않아도 특권을 주었던 중세에나 있을 법한 일로서 독재자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윤석열이 입에 달고 다니던 자유민주주의란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며 왕이나 권력자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법치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비상계엄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발동한 것인지를 헌법과 법률에 규정해 놓았다. 그 규정을 지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길이다. 윤석열이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자였다면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이 원리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전혀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며 압제를 저지를 수 있는 이상성격자에 불과하다. - P43

한국사회가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로 발전하기 위해, 시민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모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필자는 시민의회와 양원제를 결합한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시민의회와 양원제의 도입은 일회성 개헌을 위해서도 유용하지만, 지속적인 민주주의 발전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읍면동 민회에서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기초지자체 민회, 광역지자체 민회를 거쳐 국가 민회를 구성하는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 이는 국민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고, 정치적 견제와 균형을 강화하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완화하는 유력한 방안이 될 것이다. 이제는 정치권이 아닌 국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 P71

취재 후 1년 6개월가량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치는 더욱 오염됐다. 그 결과 우리 앞에 남은 것은 폐허다. 가장 정치적이어야 할 대통령은 철저하게 정치를 버렸다. 가장 헌법을 할 대통령은 헌법을 무시하고 공화국을 배신했다. 이 위험하고 불성실하며 비민주적인 대통령은 분명 대가를 치를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이후’는 얼마나 다를까. 국민의힘은 내란우두머리 피의자 대통령과 절연하긴커녕 부정선거 음모론과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마저 에둘러 감싸고 있다. 방탄 논란과 강경 일변의 전략에 갇힌 민주당은 갈등과 대립을 끊어내고 미래로 나아갈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두 정당의 적대적 공생만 견고해지는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만 말하는 것은 정확한 처방이 될 수 없다. 오랜 실패에서 확인됐듯 개헌은 신속한 방법도 아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이 맡겨져 있는, 선거 직전에 반짝 다루다 거대 양당의 최대 이익만 반영하고 마는, "정말 중요한" 선거제도를 논의해야 할 때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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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디 에센셜 The essential 1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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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한강 작가님이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기념으로 책 두어 권을 샀다고 했잖아. 그 중에 한 권이 <디 에센셜 한강>이라는 책이란다. 디 에센셜 시리즈는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기획한 시리즈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엮은 시리즈란다. 당연한 거겠지만, 문학동네 출판사에서는 이미 한강을 높이 평가한 듯 하구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 작가님의 대부분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갔는데, 물론 이 책도 베스트셀러 한 자리를 차지했지. 이 책을 2023년에 미리 기획한 사람은 문학동네에서 보너스 좀 받았으려나?^^ 이런 생각도 문들 들었단다.

책이 예쁘게 잘 디자인되었단다. 디 에센셜 시리즈는 모든 책들이 작가마다 한 가지 색상으로 표지 디자인을 했단다. 아무래도 출판사에서 작가들의 색을 정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버지니아 울프는 빨간색, 조지 오웰은 밝은 파란색, 김수영은 녹색등등. 한강 작가님은 흰색이었단다. 작품 자체가 순수해서 그럴 수도 있고, 한강 작가님 소설 중에 <>이란 작품이 있어서도 그렇게 정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아무튼 디 에센셜 시리즈는 책 디자인이 예뻐서 다른 시리즈들도 다 모아놓으면 인테리어로 좋을 것 같더구나.

이제 <디 에센셜 한강> 책 이야기를 해보자. 이 책에는 장편 소설 <희랍어 시간>과 단편 <회복하는 인간><파란 돌> 두 편과 시 5, 산문 8편이 실려 있었단다. 아빠는 그 동안 한강 작가님의 작품은 장편 소설들만 읽었는데,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장르와 산문들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단다. 모든 작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할 것 같고, 몇몇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1.

장편 <희랍어 시간>은 단행본으로도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 받은 작품이란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보면 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이라고 했는데, 위 선정 이유 중에 한 부분인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이라는 부분이 소설 <희랍어 시간>에 아주 잘 어울리는 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특히 시적인 산문이라는 부분소설이긴 한데, 시와 같은 소설이었어. 소설의 형식으로 쓴 시라고 할까, 시의 형식으로 쓴 소설이라고 할까.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들도 많이 있어서 읽기는 쉽지 않았어. 하지만 중간중간 언어를 가지고 마법을 부린 듯한 문장들이 영혼까지 닿았단다. 그래서 아빠가 발췌한 문장들도 많은 책이란다.

15살 때 식구들과 함께 독일로 이민간 남자. 17살 때 눈이 불편해서 안과에서 갔는데, 유전병 때문에 앞으로 시력이 계속 안 좋아지다가 마흔 살 즈음에는 결국 실명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 어린 나이에 얼마다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까. 그 이후 남자의 안경은 점점 두꺼워져 갔단다. 그런데 그 남자는 그 안과 의사의 딸을 사랑하게 되었어. 그 안과 의사의 딸은 청력을 잃어 말을 들을 수 없었어. 하지만 입술 모양으로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단다. 그 소녀는 어렸을 때부터 몸도 허약해서 늘 병원에서 지냈어. 그렇다 보니 그 남자가 소녀가 만난 첫 남자라고 할 수도 있었어.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남자는 그 소녀에게 고백을 했는데 그만 퇴짜를 맞고 말았지. 소녀는 자신이 건강하지 못해 사랑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싶어. 소녀는 결국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20대 때 그는 독일에서 친구와 등산을 갔다가 사고로 친구가 죽었어. 이렇게 젊었을 때 두 번의 큰 죽음은 그에게 큰 마음의 상처가 되었어. 이후 방황하다가 남자는 31살에 한국으로 왔단다. 그는 대학에서 희랍 철학 학위를 받아서,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희랍어 교양 강좌를 가르쳤단다. 희랍어를 배우는 사람은 당연히 적었어. 희랍어는 그리스어란다. 예전에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어떤 출판사에서는 <희랍인 조르바>로 출간하기도 했단다. ‘희랍이라는 말은 그리스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남자가 한국에 들어온 지도 어느덧 6년이 되었고, 그의 시력은 점점 더 나빠졌단다. 학생들은 그가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지만, 거의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나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어. 그의 수강생 중에 한 여자가 있었단다.

여자는 십대 때 갑자기 말이 안 나오는 증세를 겪었어. 그 일로 정신과 진료도 받았지. 나중에 이상한 외래어 발음을 보고 이걸 읽으면서 다시 말문이 트였다고 했어. 그 이력 때문에 나중에 이혼할 때도 아홉 살 아들의 양육권을 남편한테 빼앗기고 말았어. 세 번의 재판을 했지만, 남편은 여자의 정신과 진료 이력을 문제 삼았고, 결국 여자는 아들의 양육권을 빼앗기도 만 거야. 그런 여자는 또 다시 말이 안 나오는 증상이 찾아왔단다. 무슨 수를 쓰려고 해도 말이 나오지 않았어. 오래 전에 이상한 외래어를 읽으면서 말문이 트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것을 기대하고 이상한 외래어인 희랍어 수업을 듣게 된 거야.

….

어느날 남자가 자신이 일하는 아카데미 건물에서 새를 쫓아가다가 어두운 지하 계단에서 넘어지고 다치고 말았는데, 안경도 떨어지면서 깨져서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단다. 도와달라는 목소리를 듣고 온 여자가 그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단다. 눈을 잃어가는 남자. 말을 잃어버린 여자. 둘은 그렇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소설이란다.

 

2.

단편 <희복하는 인간>당신이 주인공이야. 당신에게는 언니가 한 명 있었어. 언니는 당신에게 열등감을 가졌어. 당신은 고집 세고 서른 넘게 연애도 못하고, 부모와 관계가 안 좋아 경제적인 도움도 받지 못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당신을 부러워했어. 언니는 결혼하여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을 가졌는데 말이야. 당신과 언니는 이런 상황이다 보니 소원했었는데 어느 날 언니가 당신과 함께 병원에 가자고 해서 갔어. 그런데 무서운 병에 걸린 언니그리고 투병하다가 언니는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말았어. 당신은 발목을 겹질려 한의원에서 쑥찜을 받다가 화상을 입고 며칠 방치했다가 덧나서 병원에 가서 화상 치료를 받았어. 그러면서 아팠던 언니를 생각하며 언니와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병원에서는 화상을 입고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핀잔을 주고, 수술이 필요해 보이지만, 새 살이 나는지 지켜보자고 했어. 다행히 상처에서 새살이 나긴 했지만 아주 더디게 진행되었어.. 그래도 당신은 언젠가는 다 회복하게 될 거야

<파란돌>이라는 단편은 짝사랑했던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는 형식의 소설이란다. 오랜만에 당신에게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었어. 17살 때 먹으로 그린 그림을 보고 당신은 평가를 해주었어. 그러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당신의 화실에 와서 그려도 좋다고 했어. 당신은 친구의 삼촌이었어. 당신은 병을 앓고 있었는데, 상처가 나면 안 아무는 병을 앓아서 조심하면 지내야 했지. 그 병 때문에 술과 담배가도 안 했어. 혼자 조용히 그림 그리는 화가가 잘 어울리는 직업인 것 같았어. 매일 당신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당신을 사랑하게 되고, 첫키스도 당신과 하고당신은 얼른 얼른 크라고 했지. 하지만 당신은 결국 그 병으로 인해 죽고 말았어. 이후 주인공은 자라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결혼 생황도 순탄치 않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때문에 불행했고,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어. 그런 상처 입은 영혼의 이야기가 짧게 이어졌단다.

….

아빠가 게을러서 읽고 나서 바로 독서 편지를 써야 하는데, 두어 주 지난 다음에 쓰다 보니... 메모를 해두었지만 위 두 편의 단편 소설들은 제대로 된 이야기가 잘 생각나지 않는구나. 위 내용이 소설과 다를 지라도 이해해 주길 바래.

….

이 책을 통해 한강 작가님의 산문들도 처음 읽어보았다는데, 소설보다 산문이 더 읽기 편했단다. 붓 가는 대로 쓰신 것 같아서 읽기 편했고, 한강 작가님의 어린 시절 삶과 가족과 일상과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 가난하여 진짜 피아노는 못치고 피아노 학원도 가지 못하고 종이 피아노를 치면서 연습했다고부모님도 얼마나 가슴 아파했을까.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학원을 보내주셔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따뜻한 부모님의 사랑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어. 한강 작가 님의 아버지도 유명한 작가님이란다. 한승원 작가님으로 아빠는 한강 작가님 책보다 한승원 작가님의 책을 더 많이 읽은 것 같구나. <아버지가 지금, 책상 앞에 앉아 계신다>라는 산문은 작가인 아버지에 관한 글인데, 공감 가는 문장이 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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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어느 순간, 갑자기 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자식에게 찾아온다. 그것이 자식의 운명이다. 인생은 꼭 그렇게 힘들어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 없이. 불만도 연민도 없이. 말도 논리도 없이. 글썽거리는 눈물 따위 없이. 단 한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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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통해서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도 그 소설들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실려 있는데, <소년이 온다>를 쓸 때 작가님의 심정이 담긴 글이 좋았단다. 다시는 이런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이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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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2012년 겨울부터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한 자료를 읽으면서 나는 내면의 투쟁을 치르고 있었다. 인간의 잔혹함을 증거하는 자료들과,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존엄을 증거하는 자료들 사이에서 나는 분열을 겪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광주는 더 이상 하나의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인간의 폭력과 존엄이 극단적으로 공존한 시간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어 있었다. 신대륙의 학살, 아우슈비츠, 보스니아, 관동과 난징의 학살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잔혹함과,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그 폭력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던 연약한 몸짓들에 대해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거의 포기하려 했던 어느 날, 5 27일 새벽 군인들이 돌아와 모두를 죽일 것임을 알면서 광주의 도청에 남았던 한 시민군, 섬세한 성격의 야학 교사였던 스물여섯 살 청년의 마지막 일기를 읽었다. 기도의 형식을 한 그 일기의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순간 내가 쓰려는 소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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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렇게 이 책에 실린 몇 편의 작품을 소개해주면서 마칠게. 한강 작가님의 다른 책을 또 읽게 되면 이야기해줄게.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고 자신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유언했다.

책의 끝 문장: 허락된다면 다음 소설은 이 마음에서 출발하고 싶다.



수년 전, 아이가 마음껏 놀게 하려고 일부러 맨 아래층에 얻은 집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좀처럼 발을 구르거나 뛰어다니려 하지 않았다. 거실에서 줄넘기 연습을 해도 된다고 그녀가 말하자 아이는 물었다. 지렁이랑 달팽이들이 시끄러워하지 않을까? - P25

그렇게 상상하며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이 지루해질 때쯤. 천천히 뒷산의 산책로를 오르기도 합니다. 연푸른 나무들은 한 덩어리로 일렁이고, 꽃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색채로 번져 있습니다. 산기슭에 있는 작은 절의 대중방 마루에 앉아 나는 쉽니다. 무거운 안경을 벗어들고,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흐릿한 세계를 둘러봅니다. 잘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 시간입니다. 거대한 물질의 느리고 가혹한 흐름 같은 시간이 시시각각 내 몸을 통과하는 감각에 나는 서서히 압도됩니다. - P42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한다는 중간태의 희랍어 문장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할 때, 진실 역시 어리석음에서 영향을 받아 변화할까요. 마찬가지로 어리석음이 진실을 파괴할 때, 어리석음에도 균열이 생겨 함께 부서질까요. 내 어리석음이 사랑을 파괴할 때, 그렇게 내 어리석음 역시 함께 부서졌다고 말하면 당신은 궤변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목소리. 당신의 목소리. 지난 이십 년 가까이 잊은 적 없는 소리. 내가 아직 그 목소리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면, 당신은 다시 내 얼굴에 그 단단한 주먹을 날리겠습니까. - P49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귀신에 홀리는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그 무렵 나는 처음으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기 전에 이미 당신의 얼굴은 내 눈꺼풀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눈꺼풀을 열면 당신은 천장으로, 옷장으로, 창유리로, 거리로, 먼 하늘로 순식간에 자리를 옮겨 어른거렸습니다. 어떤 죽은 사람의 혼령이라도 그토록 집요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 여름밤 내 책상 옆의 작은 거울 속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어설픈 수화를 연습하는 내 상반신이 비쳐 있었지만, 거기 어른을 나는 매 순간 알아보았습니다. - P50

그에 비하면 언어는 수십 배 육체적인 접촉이었다. 폐와 목구멍과 혀와 입술을 움직여, 공기를 흔들어 상대에게 날아간다. 혀가 마르고 침이 튀고 입술이 갈라진다. 그 육체적인 과정을 견디기 어렵다고 느낄 때 그녀는 오히려 말이 많아졌다. 긴 문어체의 문장으로, 유동하는 구어의 생명을 없애며 말을 이어갔다. 목소리도 평소보다 커졌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수록 점점 사변적으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런 순간들이 반복되는 시기에는, 혼자 있는 시간에도 글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없었다. - P62

아름다운 사물들을 믿으면서 아름다움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은 꿈을 꾸는 상태에 있는 거라고 플라톤은 생각했고, 그걸 누구에게든 논증을 통해 설득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세계에선 그렇게 모든 것이 뒤집힙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오히려 모든 꿈에서 깨어난 상태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현실 속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믿는 대신 아름다움 자체만-현실 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아름다움만을-믿는 자신이. - P105

그 순간, 불쑥 오래된 한 단어의 기억이 절반쯤 잘린 채 떠올라 그녀는 그것을 붙들려 한다. 오래전에는 해가 진 직후와 해가 뜨기 직전의 어스름을 호(呼)……로 시작하는 한자어로 불렀다고 했다. 멀리서 오는 사람을 알아볼 수 없어, 큰 소리로 불러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는 뜻의 단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서양식 표현과 비슷한 연원을 가진, 호……로 시작되는, 끝끝내 완전해지지 않는 그 단어가 목구멍보다 깊은 곳에서 뒤척인다. - P176

지금 내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떠오른 이미지는, 펜촉 또는 송곳을 들고 자신이 뚫다 만 종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어렴풋한 옆얼굴이다. 그들이 내쉬는 더운 숨이 구멍들을 통과해 가장 단순한 언어가 된다. 그들은 어떤 소리를 내지도 움직이지도 않는데, 간결한 부호 같은 언어들이 그 구멍들에서 새어나온다(들립니까, 나는 지금 온 힘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내 말을 듣고 있습니까). 실핏줄을 타고 흐르는 따뜻한 피 같은, 우리가 가진 생명의 가장 연한 부분, 또는 어떤 목소리의 이미지.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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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6 - 제2부 유형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한강> 6권의 이야기란다. <한강> 시리즈를 아빠가 20여 년 만에 다시 읽는 거잖아. 아빠의 기억력이 좋지 않는 것이 장점이 되기도 하는구나. 이번에 읽는 것이 새로 읽는 기분이거든…^^ 물론 아주 굵직한 내용이나 사건들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말이야. , 그럼 <한강> 6권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김광자는 서독에서 간호사 일을 하면서 틈틈이 의대 시험 준비를 했단다. 서독에 오기 전부터 의사의 꿈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했어. 김광자를 비롯한 우리나라에서 간 간호사들의 일상 생활을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었단다.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조금이라도 더 보내려고 대부분 주말에도 아르바이트를 했단다. 그들이 하는 일이 주로 치매 환자들을 돌보는 무척 힘들고 고된 일이었어. 그들이 성심 성의껏 일하다 보니, 서독에서는 한국 출신 간호사들에 인정을 해주고  우리나라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도 만들어졌단다.

하지만 간혹 안 좋은 일도 있었단다. 의대 유학생들에게 사기 당하고 버림 받은 간호사들도 있었단다. 간호사들은 광부들과 연애들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결혼한 광부가 결혼한 사실을 속이고 연애를 하는 경우도 있었어.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런 저런 일도 생기는가 보구나. 그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이나 광부들의 성실한 노력으로 국가 이미지도 높아졌고,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광부 중에 박갑동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김치를 잘 담궈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단다. 그 먼 타지에서 매일 독일 음식만 먹다 보니 한식 특히 김치가 얼마나 그리웠겠냐. 그런 김치를 잘 담그는 사람이 인기가 좋은 것은 당연했을 거야. 박갑동은 자신의 김치 솜씨로 짝사랑하던 간호사 서미향과 사귀게 되기도 했단다.

5권에서도 등장한 전태일에 관한 이야기도 또 나온단다. 그의 결말을 알고 있기에 너무 가슴 아팠단다. 전태일은 동료 재단사들과 함께 바보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근로기준법을 공부하여 노동운동을 계속했단다. 피복공장들의 불법 노동의 실태를 알리는데 애를 썼지만 정부 기관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려고 했어. 5권에서 이야기했지만 오히려 그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서 회사에서 잘리고 다른 곳에 취직도 어렵게 되었어. 그러다가 선거 기간이 다가오자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전태일과 바보회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정치인들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어.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역시 안면몰수로 그들을 무시했단다.

전태일은 노동자들과 함께 몇 번의 시위를 했지만, 경찰의 강제 진압에 의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단다. 결국 그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했단다.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극단의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그는 자신의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 자살을 하고 말았단다. 그는 죽기 전에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라고 외치면서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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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전태일은 두 손에 이마를 대고 차가운 방바닥에 엎드렸다.

주여, 약한 저에게 용기와 확신을 주소서. 제가 저의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저의 죽음이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주소서.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돈 많고 권력 가진 자들의 서로 작당해서 속이고 또 속이고, 거기에 정부까지 한통속이 되어 있습니다. 그 벽은 높고 높으며, 두껍고 두껍습니다. 그 벽을 어찌해야 깰 수 있겠나이까. 그 벽을 깨고 모든 사람끼리 빈부도, 강약도, 귀천도 없는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 한 몸을 육탄으로 날리는 길뿐이라고 여겨지옵니다. 이 미천한 몸 하나 육탄으로 날아가 산산이 부서져서 천대받고 억눌려 사는 모든 노동자들이 눈 똑바로 뜨고 자기들을 보게 하고자 하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다함께 뭉쳐 일어나 그 벽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인간다운 세상을 이룩해 내는 데 한 톨 불씨이고자 하나이다. 이 결심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번뇌하였으나 이 길이 가장 옳은 길이라 여겨지옵니다.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2천 년 동안 끝없이 부활하시기 위함이었나이다. 이 나약한 자 감히 주님의 가르침을 한 중 거름이 거고자 하오니 주여, 부축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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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두만은 여전히 가발용 머리카락을 사러 산골 마을을 돌아다녔단다. 이제는 나복남도 함께 다녔어. 나복남은 스테인리스 공장에서 사고로 손가락이 잘리고 쫓겨나고 말았잖아. 그런데 가발용 머리카락을 구하는 것이 예전만 못했단다. 워낙 경쟁이 심하다 보니 웬만한 시골 구석까지 다 쓸어들 갔거든. 가발 공장도 이제는 인조 머리카락으로 많이 바뀌기도 했고 말이야. 그래도 천두만은 조금만 더 돈을 모으면 딸과 함께 가발 하청공장을 차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단다.

나복남은 천두만 아저씨와 시골 원정을 다녀온 후 집에 와서 피복공장에 다니는 동생 나윤자로부터 전태일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단다. 전태일의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놀라운 이야기뿐이었어. 자신은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전태일은 2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런 노동 운동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고, 자신은 충분히 먹고 살수 있는데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 운동을 한 것에 놀라웠고, 사업주의 불법 노동 실태를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야. 자신은 자신의 억울한 일에 대해 복수할 생각만 했지, 그렇게 법으로 해결할 생각은 못했는데 말이야. 그래서 나복남은 그때부터 근로기준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단다.

….

이 시절 월남, 그러니까 베트남에 많은 사람들이 파병 가기도 하고 일하러 갔다고 했잖아. 문태복이라는 사람은 도박에 빠져서 돈을 제대로 못 모으고 있다고 했지. 그는 잃은 돈을 도박에서 벌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도박을 했지만 그에게 늘어난 것은 빚뿐이었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박 일행 중에 사기를 치는 일당이 있었어. 그들은 돈을 벌 만큼 번 다음에 서로 다투는 쇼를 하고 그 벌로 추방되어 귀국을 하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이 다 계획된 것이었다는 것이 그들이 떠난 후에 알려졌단다. 문태복만 빚이 너무 많아서 월급을 받는 족족 빚을 갚느라 한 푼도 남지 않았단다. 택시를 사겠다는 그의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갔지.

김명숙은 차장 일을 그만두고 가발공장에서 일했어. 어느덧 가출한 지 십 년이 거의 다 되었어. 이제 마음을 새로 잡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고향집에 가 보았단다. 그런 그를 어머니는 여전히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셨어. 다른 형제들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단다. 큰 오빠 김선오는 검사가 되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가족과 점점 멀리하려는 것을 알게 되었어. 큰 언니 김광자는 서독에서 간호사가 되었고 언니가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했어. 남동생 김선태도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 고시 공부를 하고 있고, 여동생 김금숙은 사법대에 입학해서 공부를 하고 있고, 막내 김선진은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어. 다른 식구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만 초라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김선태는 고등고시에 또 떨어지고 말았단다. 떨어질 때마다 형 선오에게 무시를 받았어. 누나 김광자가 멀리 독일에서 그를 지지해주었고, 돌아온 김명숙도 그를 응원해 주어 다시 한번 도전하기로 했단다. 명숙도 선태와 함께 지내면서 뒷바라지를 해주고 자신은 양재(디자인) 학원을 다니면서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갔어.

유일표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해줄게. 그들도 어느덧 29살이 되었단다. 허진은 드디어 회사에 입사를 했고, 이상재는 신문기자가 되어 일을 했고 최주한도 입사하여 포항제철 관련된 을을 했어. 하지만 유일표는 여전히 아버지의 월북 이력 때문에 일반 회사에 취업을 할 수 없었어. 여전히 근로재건단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이들에게 야학을 가르치고 있었단다. 아이들이 사고를 치면 해결하는 일도 있어. 어느 날은 한 아이가 마약유통에 관여되어 경찰에 입건되었어. 재건단 단장인 이용진과 유일표가 경찰에 며칠씩 가서 선처를 구했지만 소용이 없었어. 유일표는 고민하다가 강숙자 누나 찬스를 썼단다. 강숙자는 유일표의 일이라면 늘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거든. 이번에는 강숙자는 남편 홍석주 판사에게 부탁을 했고, 그 아이는 바로 풀려날 수 있었단다.

이 시절 한강 넘어 강남이 처음 개발하기 시작을 했는데, 그 소식을 먼저 알게 된 정부 기관의 고위직의 부인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어. 강남의 땅들을 대거 사기 시작했단다. 한인곤의 동생이지만 오빠와 달리 돈 욕심이 많은 한정임도 그 대열에 끼어들었단다. 그때 그렇게 산 사람들의 땅은 그 이후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 되어 강남 갑부가 되었고, 그 후세들은 여전히 그 돈의 영향력에 있을 거야.

박정희는 3선 개헌을 강행했단다. 원래 대통령은 2번까지만 가능했는데 그 법을 바꿔 세 번까지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3선 개헌이었어. 이 법에 대해 반대하는 분위기가 아주 강했단다. 지금이야 3선 개헌이겠지만, 또 대통령이 되면 4, 5선 계속 개헌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이것은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더 이상 국민이 대통령을 뽑지 않고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는 유신 헌법이 만들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된단다. 이 때 야당 대통령 후보로 젊은 김대중이 나서게 되는데 김대중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단다. 그 때 박정희가 들고 나온 것이 지역 감정이었단다. 아주 노골적인 지역 감정 작전으로 경상도에서 몰표를 얻게 되는데 이것으로 박정희는 3선에 성공하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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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156)

바로 그거요. 모든 신문들도 은근히 그런 냄새를 풍기고 있고, 세상 인심도 그리 돌아가고 있듯이 이번 선거는 분명 우리 경상도와 전라도의 싸움일 수밖에 없소. 여러분은 이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유권자들에게 주지시켜야 해요. 우리끼리니까 터놓고 하는 얘긴데, 유권자 설득작전에서 그냥 막연하게 우리가 같은 경상도니까 경상도를 찍자 해서는 효과가 좋지 않아요. 특히 지식수준이 낮고 단순한 사람들일수록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이건 된장이고 간장이고 고추장이다 하는 식으로 꼭꼭 찍어서 쉽게 말해야 효과가 나요. 다시 말하면, 우리 경상도가 이렇게 잘살게 된 건 누구 덕이냐? 다 각하 덕이다. 왜냐하면 각하께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1, 2차 단행하시면서 덕을 제일 많이 입히신 데가 우리 경상도 아니냐. 부산, 대구를 양대 중심으로 해서 발전시키는 것은 더 말할 것 없고, 울산을 개발했고, 마산에 수출자유지역을 만들었고,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하지 않았느냐. 다 이런 혜택으로 딴 데보다 더 잘살게 된 것이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폐일언하고 우리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똘똘 뭉쳐 또다시 각하를 찍어 대통령으로 받들어야 한다. 만약에 우리가 힘을 합치지 않아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지금까지 누렸던 그 모든 혜택이 다 전라도땅으로 가버린다. 여러분, 이런 사실들을 명백하게 주지시켜야 한다 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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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두만 아저씨는 여전히 나복남에 대한 자책감을 가지고 있어. 나복남의 아버지 일도 그렇고 나복남의 취직자리도 자신이 알아봐 준 것이고 그곳에서 사고로 손가락이 잘려났으니까 말이야. 천두만은 고민하다가 서동철을 찾아가 나복남의 취직 자리를 부탁하려고 했어. 서동철은 나복남의 사연을 듣더니 그 억울함에 분개를 했어. 당장에 스테인리스 회사의 사장을 찾아가서 주먹으로 해결했단다. 서동철은 그 자리에서 거금의 보상금을 뜯어내서 나복남에게 주었단다. 법이 못한 일을 서동철이 한 방에 해결해 준 거야. 서동철이 한 행위가 비록 정당하지는 못했지만, 속은 다 시원하더구나. 어차피 당시 법이라는 것이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 자본가의 편이니 법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었으니 말이야. 나복남은 서동철의 도움으로 받은 보상금으로 가게를 차릴 수 있게 되었어.

이규백은 여전히 처가살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 아내의 쌀쌀맞음과 처가 식구들의 멸시는 참을 수 없었지. 사고를 치고 다니는 처남이 오히려 고맙게 생각했단다. 처남이 사고를 치고 다니면 이규백이 처리를 해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처가 식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 말이야.

한인곤을 야당 국회의원으로 쓴소리를 계속 하다가 결국 어디론가 끌려가 며칠 고문을 당하고 약점이 잡혀 그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되었어.

이상재는 기자가 되었다고 했잖아.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썼어. 서울 판자촌을 개발하면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성남으로 내쫓게 되는데 성남으로 내쫓긴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 공장을 300개 짓기로 약속을 했단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어. 그렇다 보니 성남으로 쫓겨난 사람들은 생계 위협을 느꼈어. 당시만 해도 교통이 안 좋아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것은 불가능했어. 성남 지역을 취재를 간 이상재는 충격을 받았어. 그곳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어. 돈을 벌기 위해 십대 소녀들이 몸을 팔기도 했고, 굶주리다 못해 아기를 삶아 먹었다는 소문도 있었어. 결국 폭동이 일어났지만 정부를 방관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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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은 옛 조폭 두목이 십 년 만에 감옥에서 출소를 했어. 그러면서 조폭간의 세력 다툼이 있었어. 서동철파가 이기긴 했지만 서동철도 칼에 등을 찔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단다. 면회 간 유일민서동철이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었어. 그 이유는 유일민에 예전에 방탄조끼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 서동철의 유일민의 말을 듣고 그 방탄조끼를 입었기 때문이란다. 조폭 서동철과 유일민. 서로 다른 영역에서 삶을 그려가지만 그들은 진정한 친구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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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까지의 이야기는 대략 이 정도란다. 6권으로 4권부터 이어진 제2부 유형시대가 끝이 났단다. 마지막 3부 불신시대는 7권부터 10권까지의 이야기인데, 이것도 조만간 이야기해줄게. 어느덧 4월이구나. 몇 주 전 탄핵도 인용되어 이제 진짜 봄이 찾아왔구나. 이 봄도 금방 지나가겠지만, 함께 이 봄을 즐기자꾸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비켜요, 난 독일사람이에요!”

책의 끝 문장: 수상하잖아?



"응, 나도 이번 사건으로 모든 걸 알게 된 건데, 우리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사람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나라에서 법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근로조건이라는 게 있어. 하루에 일은 여덟 시간만 한다. 야근을 시키면 야근 수당을 따로 지급해야 한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쉬어야 한다. 공장 안의 작업환경은 건강을 해치게 해서는 안 된다, 하는 식으로 정해놓은 거야. 그밖에도 노동자들을 위한 법이 많은데, 그 법들을 다 합해놓은 게 근로기준법이라는 거야. 그런데 사장들은 그 법을 하나도 안 지키잖아. 그래서 그 사람은 모든 걸 법이 정한 대로 하게 하려고 우리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들고일어나게 하는 일을 시작했어. 그걸 노동운동이라고 해." - P57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일까…… 배운 것이 많은가…… 아니지, 스물두 살에 벌써 재단사 노릇을 했다면 아무리 짧아도 5년은 봉제공장밥을 먹었을 것 아닌가. 그럼 아무리 많이 배웠어야 중학교밖에 더 나왔겠는가. 그렇다면 많이 배웠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스텐공장은 일하는 모든 조건이 봉제공장에 비해 나빴으면 나빴지 좋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자신은 막소주나 마시며 불평을 했을 뿐이지 그 사람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다른 공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어린 사람이 남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다니…… 그게 똑똑한 것인가…… 어리석은 것인가…… 이 야박하고 약아빠진 세상에서 그런 사람이 있다니…… - P60

월출산은 바위산의 아름다움이 더없이 빼어난 산이었다. 월출산의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은 두 가지 사실이 합해져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방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산줄기라고는 없이 질펀한 들녘일 뿐인데 어찌 그렇게 거대한 바위산이 솟을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바위산이 되 무작정 커서 위압적인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봉우리들이 모여 산을 이루고, 그 산들은 겹겹이 큰 산을 이루어내며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하게 조화되어 있었다. 넓은 들판 가운데 솟아 더욱 우람해 보이고, 그러면서 수많은 봉우리들이 어우러져 섬세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월출산은 바위산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그 겹겹의 봉우리에 안개가 감겨 있을 때는 범접하기 어렵게 신령스럽기 그지없었고, 눈이 하얗게 내려 있으면 신선의 세상이 저기가 아닌가 싶게 신비스러움은 절정을 이루었다. - P95

그 길을 따라 사나이의 젊은 꿈도 접고, 야속한 운명에 절망하며 절룩절룩 걸어가고 있는 한 남자의 외롭고 슬픈 모습이 영화의 라스트 씬처럼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지금의 영상이 아니라 그 시를 외웠던 중학생 때의 영상이었다. 그 영상은 변함이 없는데 왜 시는 떠오르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야 간간하게 말하면 세월 따라 잊혀진 것이었다. 그런데 최주한은 야릇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마치 누구한테 빼앗겨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느낌의 배면에는, 그럼 나는 서울에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회의가 도사리고 있었다. 결국 그것을 빼앗아간 것은 서울이었다. 중학생 시절에 비해 서울에서 보낸 세월은 긴 세월이었다. 그 세월은 중학생인 어린 시절 한때 외웠던 시를 잊혀지게 할만도 했다. 그런데도 엉뚱하게 상실감이 드는 것은 자신이 처한 궁색한 처지 때문일 수도 있었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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