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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127/pimg_7351811964585066.jpg)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김금희 님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라는 책을 이야기해줄게. 김금희 님의 소설은 <경애의 마음>이라는 장편과 2017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단편 <문상>이라는 소설이 아빠가 읽은 전부란다. <경애의 마음>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었는데, 그냥 그랬던 소설로 기억이 된단다. 그래서 그 다음에 자주 찾지
않은 것 같구나. 이번에 신간 코너에서 알게 되어 책소개를 읽어보니,
창경궁의 대온실에 깃든 역사가 담긴 소설이라고 들었어.
창경궁이라고 하면 일제 시대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어. 일제가 우리의 신성한 궁을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바꾸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란다. 이름도 창경원이라고 바꾸고 말이야. 해방이 된 이후에도 한동안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동물들을 과천으로 옮겨 서울대공원을 만들고, 다시 창경궁으로 복원을 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일제 시대 지어진
대온실은 그대로 두었다고 했어. 이번에 읽은 소설 제목의 대온실이 바로 창경궁에 있는 대온실이란다. 너희들이 어려서 생각이 안 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함께 창경궁
대온실에 가 본 적이 있단다. 인근 대학로에서 어린이 연극을 보고, 시간이
남아서 창경궁을 갔었거든… 너희들이 너무 어렸을 때라서 기억을 못할 수도 있겠구나.
이번에 김금희 님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은 사람들이 이 책을 들고 창경궁
대온실에 가서 기념 사진을 찍기도 한다는데, 우리도 한번 가볼까? 이
책은 읽다 보면 실제 있었던 일인가? 착각할 수도 있는데 작가의 말을 통해 모두 허구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어. 소설가들은 대단하신 것 같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창경궁 대온실을
가도 그 곳에 있는 식물들을 감상하는 것이 전부인데, 대온실을 보면서 그 곳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니까
말이야. 이번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이번에는 김금희 님의 다른 소설들에
관심을 두게 될 것 같았어. 누군가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이 책을 리스트에
넣게 될 것 같구나. 자, 그러면 책 이야기를 해줄게.
1.
소설의 시작은 석모도에서 시작한단다. 석모도는 강화도 옆에 있는 작은 섬인데, 아빠는 두 번 가 본 적이
있단다. 처음 갔을 때는 배 타고 갔는데, 두 번째 갔을
때는 다리가 생겨서 차를 타고 갔었단다. 그 석모도에서 석모도의 헤밍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강영두가
주인공이란다. 남자 이름 같기도 하지만 여자야. 어렸을 때부터
친구인 은혜의 소개로 일자리를 얻어 건축사 사무소에 갔단다. 그 건축사 사무소에서 이번에 창경궁의 대온실을
보수작업하기로 했는데, 그 보수 작업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 달라고 했어. 정식 명칭은 문화재 공사 백서 기록 담당자. 그런데 하필 다른 곳도
아니고 창경궁의 대온실이라니…. 영두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려면 그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좀 해야겠구나.
영두는 네 살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강화도에서 아버지와 둘이 지냈단다. 살림도 넉넉하지 않았어.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인근의 중학교가 없어서 고민을 했는데, 외할머니가
자신의 친구 문자 할머니에게 영두의 거처를 부탁했고, 그렇게 영두는 강화도를 떠나 서울에 와서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어. 외할머니가 소개해 준 문자 할머니는 창경궁 옆 원서동이라는 곳에서 낙원하숙을 운영하셨어. 그곳에서 지내면서 근처 중학교를 다니게 된 거야. 그 집에는 문자
할머니의 손녀 리사도 있었는데, 영두와 같은 학년이었어. 영두는
그렇게 서울살이를 시작했는데, 리사와는 그리 친하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단다. 서울에서 만들어진 인연이라면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이순신과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
그런데 학교에서 중간고사 시험지가
유출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어. 영두는 그것과 관련이 없는 일인데,
리사가 영두도 보았다고 거짓말을 했어. 그로 인해 선생님한테 불려서 영두도 조사를 받았지만, 영두는 끝까지 보지 않았다고 주장했단다. 하지만 이 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다시 강화도로 왔단다. 일 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서울생활이었지만, 이렇게 안 좋은 기억이라서 창경궁 대온실 보수 작업에 참가하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했던 것이란다. 그래도 일단 하기로 했단다. 영두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좀더 하자면, 영두는 강화도로 내려와서 학교에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로 학과과정을 마쳤단다.
문자 할머니가 강화도까지 오셔서 영두를 설득했지만, 영두는 그냥 강화도에 남았어. 그 때가 문자 할머니와 마지막 만남이었어.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 영두가 스물 살 때, 아버지도 돌아가셔서
그 이후 영두는 혼자 지냈단다.
2.
일을 맡고 건축사 사무소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다들 좋은 사람들 같았어. 영두도 창경군
대온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보고서 준비를 했단다. 창경궁의 대온실을 처음 만든 이는 일본의 건축학자
후쿠바 노보루로 이 책에서 나오는데, 이 부분은 실제 인물인줄 알았단다. 그런데 책 뒤편에 나오는 일러두기를 읽어보니, 창경궁의 대온실의
총책임자는 후쿠바 하야토라는 사람으로, 소설 속의 후쿠바 노보루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했단다. 이 소설은 창경궁의 대온실을 뺀 나머지 부분은 모두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생각하면 돼.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실제로 최근에 창경궁의 대온실 보수 작업이 있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는데, 그것도 소설 속 허구란다.
암튼… 영두는 옛 설계도면을 보다가 대온실의 지하에 배양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이번 보수 때 이곳 지하까지 복원을 해야 하지 않냐고 의견을 내고, 담당공무원과
의견이 분분하여 갈등을 빚기도 하는데, 이번 복원의 책임자인 건축사 사무소장 빼자고 하여 일단락되었단다. 하지만 영두뿐만 아니라 다른 건축사 사무소 직원들은 문화재 보수를 하면서 원래 있는 곳을 보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어.
…
창경궁이 창경원이던 시절 식물원뿐만
아니라 동물원도 있었는데, 일제 시대 말기, 동물들 먹이를
줄 형편도 안 될 정도로 어려워지자, 일제는 동물원의 동물들을 대규모 학살하는 만행을 일으켰단다. 그 때 동물의 시신을 대온실 지하에 숨겼다는 소문도 있었어. 다시
찾은 창경궁… 그리고 자신이 지냈던 낙원하숙의 자리에 가보니 지금은 빈집으로 남아 있었어. 몇 년 전 문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줄곧 빈집이었던 거야. 명의는
리사로 되어 있는데, 리사는 미국에 살고 있었어. 영두는
빈 낙원하숙 집에 다시 갔다가 문자 할머니가 남긴 글들을 보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 글을 통해 한 사람의
일생을, 그러니까 문자 할머니의 인생을 다시 알게 되었단다. 문자
할머니가 일본인이었다고 이야기가 있는데, 그 글을 읽어보니 실제로 일본인이었고, 일본인인 할머니가 어쩌다 한국땅에서 지내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단다.
3.
일제 시대 창경궁 관리 공무원
박목주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하였는데, 그
일본인 아내는 재혼이었고 이미 딸 마리코가 있었어. 박목주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한 이후 아들 유마를
낳았단다. 그러니까 마리코와 유마는 엄마는 같은데, 아버지는
다른 남매였단다.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이 모두 일본으로
돌아가야 해서 일본인 엄마는 일본으로 돌아갔어. 다시 올 것을 기약하고 갔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단다. 마리코와 유마는 한국인 아버지 박목주가 있으니 한국에서 지내는데 문제 없었단다.
이제부터 마리코는 박진리, 유마는 박유진이라는 한글 이름으로 생활했어. 하지만, 마리코는 아버지도 일본인, 어머니도 일본인으로 순수 일본인이었단다. 마리코의 엄마도 다시 한국에 못 온 이유 중에는 한국전쟁도 있었을 거야. 해방이
된지 얼마 안되어 전쟁이 일어나고, 서울에 있던 박목주는 피난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그런데 이창충이라는 동료가 있었는데, 그가 황실 심부름이라면서 박목주에게
일을 시켰어. 피난준비를 하던 박목주는 아이들을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대온실 지하 배양실에 잠시 머무르게
했어. 이틀이면 갔다 올 것 같다고 생각하여 안전을 위해 자물쇠를 잠그고 갔어. 진리와 유진은 지하 배양실에서 둘이 숨어 있었단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런데 약속했던 이틀이 지났지만
아버지 박목주는 오지 않았어. 진리는 자신들을 두고 혼자 피난을 갔나?
이런 생각까지 했어. 진리와 유진이 지하에 머무르고 있다가 유진이 열병이 나서 심하게 앓아서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없다고 생각했어. 진리는 창문을 깨어 문을 열고 무작정 달렸어. 밖은 어두운 밤이었어. 간신히 약방을 찾아 약을 사서 다시 돌아오다가
절룩거리며 오는 아버지 박목주를 만났어. 다리를 다쳐서 늦었다고 했어.
그런데 이창충이 갑자기 나타나 박목주를 쏴 죽였단다. 이창충은 진리를 보지 못하고 돌아갔고, 진리는 무서워서 지하실로 돌아왔단다. 하지만 동생 유진은 끝내 숨을
거뒀어. 그순간 그곳에 이창충이 찾아왔고, 진리에게 못된
짓을 하려고 했고, 진리는 숨겨두었던 주사기로 이창충의 눈을 공격하고 도망갔단다. 그런 아픔을 가진 진리가 바로 낙원하숙의 문자 할머니였던 것이란다. 그렇게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던 거였구나.
…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박유진이
인천요양원에서 지내는 것을 알게 되었어. 문자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영두는 인천요양원을 찾아가 박유진을 만났단다. 진리는 유진이 죽은
줄 알았지만, 사실 죽지 않았어. 그리고 진리에게 공격 당한
이창충이 박유진을 데리고 나와서 치료해주었다고 했어. 그 이후에도 이창충은 박유진을 보살펴주어 박유진은
이창충을 자신의 은인이라고 생각했어. 이창충이 뒤늦게 죄를 뉘우친 것일까. 영두는 박유진에게 문자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이창충이
한 나쁜 짓은 이야기하지 않았어…
….
여기까지 굵직한 줄기의 줄거리란다. 그 밖에 영두와 은혜 사이의 우정 이야기, 영두와 건축사 사무소
사람들의 보수 작업 이야기, 어른이 된 이후 다시 만난 영두와 순신 이야기, 어른이 된 이후 다시 만난 영두와 리사 이야기 등도 담겨 있단다. 김금희
님은 이번 소설로 다시 보게 되었단다. 글에 흡입력도 있고, 짤
짜여진 틀 안에서 이야기 전개로 자연스러웠어. 다른 작품들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너희들도 바쁘지 않으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텐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창경궁에도 또 한번 가보고 싶구나. 가 본 적도 오래되었으니
말이야.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처음에 배운 건 수리의 종류에 관한 용어들이었다.
책의 끝 문장: 나는 잎을 다 떨구고 가지를 층층이 올려 나무로서
강건함을 띠는 벚나무를 올려다보다가 기쁘게 뒤돌아 다시 섬으로 향했다.
필요한 내용을 찾았는지 한동안 집중해서 읽던 산아가 사전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오늘 면접에서 받아 온 옛날 건축에 관한 사전이라 설명하고 몇몇 용어를 알려두었다. 중수는 손질하여 고치는 것, 중창은 다시 짓는 것, 재건은 크게 일으켜 세우는 것이라고. 한옥에서 문은 창살무늬에 따라 이름이 다 달라서, 세로살을 꽉 채우고 가로살을 위아래와 중간에만 넣은 건 세살문, 가로살과 세로살을 다 채운 문은 만살문, 문 중간에 빛이 들어갈 수 있도록 사각형이나 팔각형으로 작은 창을 낸 문은 불발기문, ‘完’자 형태로 살을 짠 문은 완자문, ‘亞’자 무늬가 있으면 아자문이라 한다고. - P18
학생 수가 많아서 그런지 교실은 마치 퍼즐판처럼 세밀한 경계로 각자 나뉘어 있었다. 전교생이라고 해봤자 서른명도 되지 않는 석모도에서 그물처럼 성글었던 구분들이 여기서는 한층 촘촘해졌다. 어디 사는지, 출신 초등학교가 어딘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느 학원을 다니는지가 너무 중요한 기준이었다. 내 하굣길을 누가 볼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어 보였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각자 학원 승합차를 타고 일시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 P84
그러자 당연한 수순처럼 순신이 수난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순신에게 손바닥을 펼쳐보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 얼음조각이 놓여 있다고 상상해보라고. 그러면 어떻겠어? 하고 물었다. 순신은 아주 시원할 것 같다고 해서 내 김을 빼놓았다. 나는 지금이 겨울이라 생각해보라고 다시 조건을 달았다. 이제 더 이상 매미도 울지 않고 나뭇잎도 일렁이지 않는다고, 길이 얼어 자전거를 탈 수도 없고 옷 밖으로 몸을 내놓으면 아플 정도로 바람이 차고. 그런 겨울에 손바닥에 얼음이 있으면 손이 얼겠지, 아프고 따갑고 시렵겠지, 그런데 얼음을 내던질 수는 없고 가만히 녹여야만 한다고 생각해봐. 그 시간이 너무 길고 험난하게 느껴지겠지. 그런 게 수난이고 그럴 때 하는 게 기도야. - P158
우리는 방을 나와 서로의 얼굴을 최대한 보지 않은 체 인사하고 퇴근했다. 나는 차창을 열어놓고 속력을 내어 섬으로 돌아갔다. 얼른 가서 무화과나무가 있는 마당을 지켜보며 마루에 누워 섬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정작 마을에서는 파도가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물결치는 소리만이 섬 소리의 전부는 아니었다. 배를 타고 나갔다 빈 배로 돌아온 사람들의 불평 소리, 어느 집에서인가 쓰레기를 쌓아놓고 타닥타닥 태우는 소리, 밥을 짓거나 부엌에서 그릇을, 외할머니가 ‘설음질’이라고 부르던 것과 똑같이 설렁설렁 닦는 소리, 말린 생선을 노리는 고양이들의 착지, 마을 노인정에서 들려오는 노래방 소리, 소라껍데기에 귀를 가져다대고 그 안에서 바닷소리를 발견해내듯 그런 섬의 소리를 변별하다보면 다시 평정이 찾아올 것이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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