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역사 : 근대 -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황현필 지음 / 역바연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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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역사를 가장 역사답게라는 슬로건으로 역사 유튜브를 운영하는 황현필 님의 신간 <요즘 역사:근대>를 읽었단다. 이번 책은 구독자 100만을 기념하기도 하는 책이라고 하는구나. 아빠도 가끔 황현필 한국사 유튜브를 보는데, 몰랐던 새로운 내용을 알게 좋았단다. 역사라는 것이 그것을 이야기하는 역사가의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황현필 님의 역사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 사관이 많이 공감이 되더구나. 아빠랑 아무래도 정치적 성향이 비슷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역사 사실을 합리적이고 이상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그의 생각에 다들 동의하지 않을까 싶구나.

이번에 새로 출간한 책은 우리나라 근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들 스물한 가지를 뽑아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각각의 사건들은 아빠가 다른 책들을 통해서 여러 번 이야기를 해 준 것과 겹치기도 하더구나. 특히 작년에 읽은 강준만 님의 <한국 근대사 산책( 10)>과 올해 다시 읽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12)> 읽고 이야기해준 부분에서도 소개된 부분들이 많았어. 그래서 오늘은 지은이의 색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한 것들을 몇 개 발췌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단다.

 

1.

우리나라 근대를 여는데 중요한 인물 중에 한 명인 흥선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까지도 상반된 평가들이 많이 존재한단다. 쇄국정책으로 인해 우리나라 근대화가 지연되면서 일제에게 뒤쳐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고, 천주교 신자들 수천 명을 죽인 이력이 있고, 민비와 권력 다툼으로 인해 국력을 소진했다는 안 좋은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란다. 하지만 조선의 오랜 악습을 끝내는 공들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이 책에서는 그런 흥선대원군의 공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어. 하지만, 무너져가는 조선을 바로 세우기에는 너무 늦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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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

물론, 국가적으로 천주교를 문란하다고 여긴 시대였다고 할지라도, 무려 8천여 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를 학살하다시피 한 대원군을 마냥 존경할 만한 인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가를 새로 창업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오직 개인의 통치력만으로 시대적 병폐를 끊고, 이전 세상과의 긍정적인 단절을 이룬 인물로 대원군만 한 인물이 또 있던가?

첫째, 60여 년의 세도정치를 끝냈다.

둘째, 300년 만에 비변사를 해체했다.

셋째, 300년 만에 붕당정치를 끝냈다.

넷째, 300년 만에 경복궁을 재건했다.

다섯째, 400년 만에 서원을 제대로 철폐했다.

여섯째, 역사상 최초로 양반들에게 군포를 부과했다.

어떤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원군이 30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조선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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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서양 열강이 이런 저런 이유를 대고 우리나라를 쳐들어오던 시절이었어. 프랑스가 쳐들어 온 병인양요에서는 프랑스군이 대패하고 돌아갔단다. 이때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 의궤>를 훔쳐서 달아났는데, 이것이 100여 년 뒤에 우리나라 고속철도와 연결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거야. 1995년 우리나라는 고속철도를 도입하면서 어느 나라와 손잡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외규장각 의궤>를 돌려줄 테니 프랑스의 TGV 도입을 제안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프랑스 TGV가 우리나라 고속철도로 들어오게 되었단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프랑스는 <외규장각 의궤>를 한참 동안 돌려주지 않다가 2011년에 되어서야 영구임대 조건으로 우리나라도 돌아왔다고 하는구나. 좀 치사하구나. 나라 간 약속인데 제때 지키지 않고, 나중에도 조건부로 지켰으니 말이야.

미국이 쳐들어온 신미양요에서는 혈전 끝에 미국이 승리를 하긴 했지만, 미국은 조선 백성들의 저항에 대해 깜짝 놀라고, 승리를 했지만 강화도에서 퇴각하기로 결정을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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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미군 대위 틸톤(Mclane Tilton)은 부인에게 아래와 같은 편지를 남겼다.

나는 많은 전쟁을 겪었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의 한 섬에서 치른 전투만큼 끔찍한 기억은 찾아볼 수 없소.”

신미양요는 미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로저스 제독은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 날 퇴각을 결정한다. 조선 출정을 통해 미국과 로저스 제독이 얻어 낸 것은 없었다. 조선을 개항시키기는커녕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대한 사과조차 받아 내지 못한 출정이었다. 일본과는 너무나도 다른 조선에 큰코다친 미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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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 시대 말기 우리나라 시스템은 이미 나라의 기틀로써 많이 무너진 상태였단다. 흥선대원군 마저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되면서, 일본과 서양 열강이 우리나라에 물밀 듯 들어왔단다. 군인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하여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신 지식인들에 의해 갑신정변이 일어났지만 이내 실패하고, 부정부패한 지방 관리들에 불만이 쌓인 농민들 중심으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는 등 조선은 대혼란의 시기였단다. 정부도 무능력하여 나라 안의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든 자국의 힘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데, 일본과 청나라의 군대까지 끌어들였단다. 이웃 나라 간의 우리 정부의 위험한 줄타기는 결국 한 나라의 왕비가 우리나라 궁궐 안에서 다른 나라인 일본의 칼에 맞아 죽는 사건까지 일어났단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왕은 겁을 먹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대피하는 우스꽝스러운 촌극을 연출하였단다. , 창피하도다.

서재필이라는 사람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들어와 우리나라 스스로 독립해야 한다면서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신문을 창간했지만, 그가 그리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하는구나. 그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미국인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활동을 할 때도 조선 사람이 아닌 미국인으로 행동했다는구나. 그가 나중에 현충원에 안장되려고 할 때, 많은 역사가들이 그를 막았다고 하는데, 정부 기관은 좀더 심사를 하고, 많은 역사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할 것이지, 뭐 급하다고 그리 빨리 결정했는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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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서재필의 큰 오점은 따로 있다. 부유한 나라 미국 국적의 서재필이 가난한 나라 자신의 모국 조선에서 너무 큰 돈 욕심을 낸 것이다. 독립협회의 고문 자리를 받아들여 10년을 계약한 서재필은 독립협회가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하자, 남은 7 10개월의 급료를 지급하지 않으면 사퇴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황국협회까지 만들어 독립협의를 해산시키려 한 고종은 그깟 돈이 대수냐며 서재필의 남은 임기만큼의 급료를 모두 지급하였으니, 지금 돈으로 30억쯤이었다고 한다.

<윤치호 일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만일 봉급을 두 배로 올려 주었다면, 서재필은 조선에 남아 있을 생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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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204)

1951년 서재필은 88세의 나이로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눈을 감았다. 이후 미국에서 돌보는 이 없이 방치된 서재필의 묘소가 한국 뉴스에 나오자, 여러 기독교단체가 그의 유해 송환을 주도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서재필의 유해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원에 안장되려는 순간, 한국의 역사가들은 현충원의 정문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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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조선의 수난 역사다시 일으킬 희망도 없이,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로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단다. 500년 긴 역사가 이어진 나라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나라를 다른 나라에 넘겨주었다는 것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란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들의 책임도 컸지만 하필 이 시절 왕이 무능한 고종이었던 이유도 컸을 거야. 그래도 고종이 일제로부터 강제로 폐위당한 이후에는 나라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등 왕다운 모습을 보였다는 평도 있는데, 이 책의 지은이 황현필 님은 고종은 끝내 무능했고, 그는 독립운동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황제권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 것이라고 평가 절하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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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고종은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며 나라까지 잃었음에도 그는 대단히 풍족하게 살았다. 국권피탈기 고종의 행동들은 그저 황제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된 후 고종의 독립운동이란 것들은 모두 자신의 황제권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고종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최소한 잃어버린 강토의 회복과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 신음하는 만백성의 자주성 회복을 천명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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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정도로 간단히 이야기를 마치려고 해. 앞서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그 동안 다른 책을 통해 한 이야기들과 중복이 되어서 짧게 했어. 황현필 님의 책들이 그렇듯 한 가지 소재에 대해서 짤막하게 요점 정리해서 말씀을 해주셔서 읽기 편했단다. 너희들 같은 청소년들도 읽으면 좋을 것 같았어. 문득 학교 교과서에 근대사가 어떤 식으로 기술했는지 궁금하구나. 한번 너희 교과서를 훑어봐야겠구나. , 그럼 오늘은 이만 할게.

 

PS,

책의 첫 문장: 1800, 정조가 갑자기 사망했다.

책의 끝 문장: 옆집 아저씨가 아무리 잘났어도 내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존중하듯이 다소 아쉬운 역사라 할지라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설에 의하면 안동 김씨도 나름 계산을 했다고 한다.
왕이 되기 전, 어린 이 이명복의 연이 끊어져 어느 안동 김씨의 집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보통 아이들 같았으면 겁도 없이 대문을 두들기며 연을 달라고 하든지 그럴 용기가 없다며 차라리 포기할 텐데, 이명복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문 앞에 않아서 하루 종일 울고만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안동 김씨는 이명복의 우유부단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를 왕으로 세워 설령 그의 아버지 이하응이 살아 있는 대원군이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껏 이하응의 처신으로 보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P15

한 사람만 더 언급하자면 동학을 진압한다고 핑계로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을 당시의 일본군 사령관이 오시마 요시마사다. 오시마 요시마사라는 이 낯선 이름은 사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얼마 전까지 일본의 총리였던 아베 신조의 외고조부다. 그리고 전범임에도 사형을 면하고 일본의 총리까지 역임했던 기시 노부스케도 조슈번 출신이자 아베 신보의 외조부다. 당연히 아베 신조 역시 조슈번 출신이고,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정한론의 창시자 요시다 쇼인이었으니 최근 일본의 정치 권력을 잡은 주류들의 사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P96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일본군을 기어이 막아선 이순신.
우리 강토를 짓밟은 외적에게 공포감을 심어 주고, 침략자의 후손들이 우리의 후손을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량해전을 설계했던 이순신.
이순신은 비록 노량에서 전사하지만, 그는 일본 에도막부 탄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후 에도막부와 조선은 250년의 평화를 유지했으니, 이순신의 노력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순신에게 짓밟히고 에도막부에 눌려 있던 자들이 에도막부를 몰아내고, 메이지유신을 단행하면서 정한론이 다시 대두됐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한반도가 다시 침략당했다.
- P97

1592년 임진왜란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
일본이 외세와 치른 전쟁들이다. 모두 일본의 선제공격이었다. 이토록 수많은 선제공격에 앞서 일본은 단 한 번도 전쟁에 대한 선전 포고를 하지 않았다.
일본인이 그리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무사도, 즉 사무라이 정신은 형식이자 겉치레에 불과했다. 사무라이는 자신들이 동경하는 이상향이었을 뿐, 그들 내면의 뿌리에는 닌자 정신이 깔려 있던 것이다.
- P151

민비는 임오군란 당시 도망 중에 만난 진령군이라는 무당을 신처럼 받들고 살았다. 성리학 국가 조선의 궁궐을 무당이 마음껏 드나들었고, 그곳에서 굿판이 벌어졌다. 진령군의 권위는 하늘을 찔렀고, 무당의 결정으로 벼슬이 주어지기도 했다. 민비가 세자의 건강을 기원하며 금강산 1만 2천 봉마다 쌀을 뿌린 것 또한 진령군의 진언 때문이었다. 임오군란 이후부터 민비가 시해되기 전까지 조선의 서열은 고종 위에 민비가 있었고, 민비 위에 무당 진령군이 있었다. - P176

회고의 애국계몽운동단체는 1907년에 조직된 신민회였다.
회장 윤치호와 부회장 안창호를 중심으로 구성된 신민회는 실력양성운동을 전개하여 교육과 산업 진흥에 힘을 쏟았다. 안창호는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웠고, 이승훈은 정주에 오산학교를 세웠다. 기호흥학회, 서북학회, 호남학회 등 각 지역에 학회가 설립된 것도 신민회의 역할이 컸다. 이 밖에 신민회의 주도로 평양에 자기회사가 설립되었고, 대국에는 태극서관이라는 출판사도 설립됐다.
신민회의 또 다른 특징은 비밀결사적 성격이 짙었다는 것이다. 누구도 신민회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지 못했다. 비밀결사의 앞뒤 연락책 정도만 알 뿐이었다. 대신 비밀조직인 만큼 신민회는 일제의 눈을 피해 무언가를 계속 준비했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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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공포는 없으신가요?”

자신은 없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사람은 최초로 죽음학을 했고 죽음에 대한 강의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정작 자기가 암에 걸리고는 감당을 못 했어. 그것을 본 한 기자가 물었지.

당신은 임종하는 사람을 지켜보며 그렇게 많은 희망을 줬는데 왜 정작 당신의 죽음 앞에서 화를  내고 있느냐?’

로스가 이렇게 답했다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어. 동물원 철창 속에 있는 호랑이였지.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 바깥에 있던 죽음이 내 살갗을 뚫고 오지. 전혀 다른 거야.’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 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네.”

 

(44-45)

인터뷰가 뭔가? Inter. 사이에서 보는 거야. 우리말로 대담이라고도 번역하는데, 대담은 대립이라는 뜻이야. 대결하는 거지. 그런데 말 그대로 서로 과시하고 떠보고 찌르면 거기서 무슨 진실한 말이 나오겠나. 위장술밖에 더 나오겠어? 군인들이 전투할 때 왜 위장복을 입겠어살기 위해서 감추고 색을 바꾸는 거지. 인터뷰는 그래선 안 되네. 인터뷰는 대담(對談)이 아니라 상담(相談)이야. 대립이 아니라 상생이지. 정확한 맥을 잡아 우물이 샘솟게 하는 거지. 그게 나 혼자 할 수 없는 inter의 신비라네. 자네가 나의 마지막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왔으니, 이어령과 김수지의 틈새에서 자네의 눈으로 보며 독창적으로 쓰게나.”

 

(55-56)

내가 그 사람에게 물었지.

자네가 가장 잘 아는 게 뭔가?’

꿀벌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꿀벌을 잘 봐. 꿀벌처럼만 하면 좋은 문학이 돼.’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랬지. 인간은 세 가지 부류가 있다네. 개미처럼 땅만 보고 달리는 부류. 거미처럼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사는 부류. 개미 부류는 땅만 보고 가면서 눈앞의 먹이를 주워먹는 현실적인 사람들이야. 거미 부류는 허공에 거미줄을 치고 재수 없는 놈이 걸려들기를 기다리지. 뜬구름 잡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학자들이 대표적이야.

마지막이 꿀벌이네. 개미는 있는 것 먹고, 거미는 얻어걸린 것만 먹지만, 꿀벌은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스스로의 힘으로 꿀을 만들어. 개미와 거미는 있는 걸 gathering 하지만, 벌은 화분을 transfer하는 거야. 그게 창조야.

여기저기 비정형으로 날아다니며 매일매일 꿀을 따는 벌! 꿀벌에 문학의 메타포가 있어. 작가는 벌처럼 현실의 먹이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야. 밥 뻗는 순간 그게 꽃가루인 줄 아는 게 꿀벌이고 곧 작가라네.”

 

(74-75)

차이는 있어. 남자들만 느낄 수 있는 고독의 신호가 있다네. 파이브 어 클락 새도(five o’clock shadow)라고 들어봤나? 샐러리맨들이 오후 다섯시가 되면, 깨끗했던 턱 밑이 파래져. 퇴근 무렵, 면도 자국에서 수염이 자라 그림자가 생기네. 그게 오후 다섯시의 그림자야. 매일 쳇바퀴 돌 듯 회사에 나와 하루를 보낸다. 문득 정식 차리면 오후 다섯시. 수염 자국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지면 우수가 차오른다네. 오늘 뭘 했지? 내일도 또 이렇겠지. 다시 전철을 타고, 술집에 가고, 이윽고 집에 돌아가 아내를 만나고….. 그게 샐러리맨의 고독이지.”

오후 다섯시. 남자의 얼굴에 수염 그림자가 생길 때, 여자는 립스틱 자국이 지워진답니다.”

 

(125-126)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건 로 사는 거라네. 떼 지어 몰려다니는 거지. 그게 어떻게 인간인가? 그냥 무리 지어 사는 거지. 인간이면 언어를 가졌고, 이름을 가졌고, 지문을 가졌어. 그게 바로 only one이야. 무리 중의 그놈이 그놈이 아니라 유일한 한 놈이라는 거지. 그렇게 내가 유일한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남을 사랑하고 끌어안고 눈물도 흘릴 줄 아는 거야.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남을 끌어안겠나? 내가 없는데 우리가 있어? 그런데 나 없는 우리?’ 아니 될 말씀이야. 큰일 날 소리지. 그래서 내가 사이를 강조했잖아. 나와 너 사이. 그 사이에 나도 있고 너도 있다는 거지. 자네와 나 사이에 interview가 있는 것처럼.”

 

(144)

밤사이 내린 눈은 왜 그렇게 경이로울까요?”

변화잖아. 하룻밤 사이에 돌연 풍경이 바뀌어버린 거야. 우리가 외국 갔을 때 왜 가슴이 뛰지? 비행기 타고 몇 시간 날아왔더니 다른 세상이 된 거야. 하루하루 똑같던 날들에서, 갑자기 커튼콜 하듯 커튼이 내려왔다 싹 올라가니까 장면이 바뀌어버린 거야. 막이 내렸다 올라가는 건 일생 중에 그렇게 많지 않거든. 외국 여행을 한다든지, 수술했다 마취에서 깨어난다든지…… 그런데 일상에서 유일하게 겪을 수 있는 게 간밤에 내린 눈이라네. 잠자는 사이 세상이 바뀐 거지. 보통 쿠데타가 밤에 일어나잖아. 자고 일어났는데 탱크가 한강은 넘어 세상이 싹 달라진 거야. 밤에 내린 첫눈이 그래. 쿠데타야. 오래 권력을 누리지 않고 바로 사라지는 쿠데타. 오래 있어 봐. 눈 녹으면 지옥이지. 곧 사라지니까 그만큼 좋은 거야. 아름다운 쿠데타.”

 

(168)

길 잃은 양은 자기 자신을 보았고 구름을 보았고 지평선을 보았네. 목자의 엉덩이만 쫓아다닌 게 아니라, 멀리 떨어져 목자를 바라본 거지. 그러다 길을 잃어버린 거야. 남의 뒤통수만 쫓아다니면서 길 잃지 않은 사람과 혼자 길을 찾다 헤매본 사람 중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나. 길 잃은 양은 그런 존재라네. 그런 의미에서 나한테는 종교조차 문학이었다네. 신학에서 자를 빼면 시학이잖아. 보들레르도 니체도 나는 성경을 읽는 마음으로 읽었지.”

 

(171)

천재가 있으면 특별 교육시켜야 해요. 특권이 아니에요. 오히려 불쌍한 애들이지. 하나님이 인간들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쓸모를 못 찾은 놈에게 눈곱 하나 떼서 붙여주면 그 아이가 화가가 되고, 귀지 좀 후벼서 넣어주면 그 아이가 음악가가 되는 거예요.

너 세상 나가면 쓸모없다 조롱받을 테니, 내 눈곱으로 미술 해먹어라. 너 세상 나가면 이상한 놈이라고 왕따 당할 테니 내 귀지로 음악 해먹어라.’

그게 예술가예요. 예수가들은 그 재능 빼면 세상 못 살아요. 아무것도 못해서 범죄자 돼요. 그러니 자비를 베풀라는 말이에요. 학교 만들어주는 게 자비에요.’

그 얘기 듣고 사람들이 웃고 잠시 침묵했어. 총리가 그럼, 통과된 걸로 알겠습니다하고 땅땅땅 때린 거야. 그 순간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생겨났다네. 한예종 아이들이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오면 내가 그래.

너희들은 five minute kids, 5분 동안 태어난 아이들이야.’

 

(191)

나에게 행복은 완벽한 글 하나를 쓰는 거야.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지. 그러니까 계속 쓰는 것이고.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글은 실패한 글이라네. 지금까지 완성된 성인들 중에 글을 쓴 사람은 없어. 예수님이 글을 썼나? 공자가 글을 썼나? 다 그 제자들이 쓴 거지. 역설적으로 말하면 쓰여진 글은 완성되지 못한 글이야. 성경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인간이 쓴 글이고 세상의 모든 경전, 문자로 쓰여진 것은 결국 완성되지 못한 그림자의 흔적일 뿐이네. 나 또한 완성할 수 없으니 행복에 닿을 수 없어. 그저 끝없이 쓰는 것이 행복인 동시에 갈증이고 쾌락이고 고통이야. 어찌 보면 고통이 목적이 돼버린 셈이지.”

 

(225)

그렇지. 갑작스럽게. 물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영적 판, 인화지가 있어야 셔터를 눌렀을 때 빛이 담기지. 종이 넣고 아무리 셔터 눌러봐야 거기에 뭐가 나와. 0.001초의 셔터를 끊어주는 그 짧은 순간에 감광지에 비치는 모습, 그게 영의 세계야. 순식간에 다른 세상을 보는 거지. 그런데 내 딸 민아처럼 하나님을 진실로 믿으면 영성의 세계에 들어가 거기서 머무는데, 나는 미끄러져서 계속 땅에 떨어져. 그래서 영성이 아니라 땅 지()자 지성이 되는 거야. 땅의 성이지.”

 

(245-246)

제 기억으로는 88올림픽 때 굴렁쇠 소년이 반바지를 입고 굴렁쇠를 굴리며 갈 때, 사이렌이 울렸던 것 같습니다.”

그 제목이 silence였지. 내가 올림픽에서 수십 억 지구인들에게 들려준 것도 바로 그 침묵의 소리야. 꽹과리 치고 수천 명이 돌아다니던 운동장에 모든 소리가 딱 끊어지고 어린애 하나가 나올 때, 사람들은 듣고 본 거야. 귀가 멍멍한 침묵과 휑뎅그레한 빈 광장을…… 그게 얼마나 강력한 이미지였으면, 그 많은 돈 들여서 한 공연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시끄럽던 운동장이 조용해지고 소년이 굴리던 굴렁쇠만 기억들을 하겠나. 그게 어린 시절 미나리꽝에서 돌 던지며 정적에서 나온 이미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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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세상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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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명인 피에르 르메트르의 신작 소식을 듣고 바로 샀단다. 792페이지나 되는 책을 분책하지 않고 한 권으로 출간한 출판사 열린책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세계1차대전과 2차대전을 다룬 3부작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그 이후 프랑스 사회를 이야기하는 4부작을 쓰겠다고 했는데, 4부작 중에 첫 번째 책이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것이란다. 제목은 <대단한 세상>이라는 책이란다.

아빠가 프랑스 역사, 특히 현대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배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읽은 부분도 있단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서사가 재미있고, 작가의 블랙 유머 스타일의 글들도 재미있어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단다. 다만 책이 무거워 한 손으로 들기 어려웠다는 점…^^ 그래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분책하지 않고, 두툼하게, 디자인도 예쁘게 잘 만든 것 같구나. 그러면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게.

소설은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시작한단다. 레바논은 프랑스로부터 1943년에 독립했지만, 독립 이후에도 서로 협력 관계에 있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레바논에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던 것 같구나. 베이루트에서 비누 공장으로 크게 공상한 루이 펠티에라는 사람이 있었어. 루이의 아내는 앙젤이라는 사람이고, 그들에게는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었단다.

루이는 첫째 아들 장에게 비누 공장을 물려주려고 했지만, 장은 비누 공장에 적성이 맞지 않았으며 태도도 불성실했단다. 우체국장 딸 준비에브와 결혼한 이후 파리에 취직하여 파리에 살고 있었단다. 장의 별명은 뚱땡이인데, 아내 준비에브도 장에게 뚱땡이라고 부르고 무시하는 발언을 많이 하더구나. 준비에브는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먼, 그런 스타일의 아내였단다.

둘째 아들 프랑수아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고등사범학교를 진학하기 위해 파리로 갔단다. 하지만 고등사범학교에 적성이 맞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언론 관련 일을 찾다가 르 주르날이라는 신문사에 취직을 하게 된단다. 셋째 아들 에티엔은 베이루트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의 애인 레몽이 인도차이나 전쟁에 갔다가 소식이 끊겨 걱정을 하다가 레몽을 찾기 위해 직접 인도차이나로 가기로 마음 먹었단다. 에티엔이 남자인데 애인이 전쟁에 갔다고 하니 레몽이 여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레몽은 남자란다. 에티인과 레몽은 동성애였단다. 마지막으로 딸 엘렌은 아직 학생으로 베이루트에서 부모님과 지내고 있는데, 오빠들이 하나둘 베이루트를 떠나고, 막내 오빠마저 인도차이나에 간다고 하니 엘렌도 베이루트를 떠나고 싶어한단다.

주요 등장 인물들은 이 정도로 하면 다 한 것 같구나.

 

1.

레몽을 찾아 인도차이나 반도로 온 에티엔은 사이공에 도착했단다. 당시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베트남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을 벌이고 있던 시기였어. 베트남에 사이공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지금은 이름이 호치민으로 바뀌었단다. 베트남의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 익숙지 않은 에티엔은 그곳 생활을 적응하는데 애를 좀 먹었단다. 레몽이 베트민들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소문을 들었어. 레몽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에티엔은 사이공에 있는 외환국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외환국에는 국장 장케, 동료 가스통 등이 있었어. 아참, 에티엔은 사이공에 자신의 고양이도 함께 데리고 왔는데 그 고양이의 이름은 조제프란다. 외환국에 일하면서 에티엔은 주변 사람들에게 레몽의 사촌이라고 하면서 레몽의 부대 소식을 물어보았어. 아무래도 애인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볼 것이 뻔하니 사촌이라고 했나 보구나.

에티엔은 외환국에서 일하면서 환전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이상한 환차익으로 부당하게 돈을 벌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 환차익을 이용하면 돈을 두 배로 뻥튀기를 할 수 있었는데 그 사실을 외환국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는데 쉬쉬하고 있었단다. 에티엔은 환전을 승인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부당하게 환전을 하는 것으로 망설이게 된단다. 양심상 도장을 찍기 어려웠던 것이지. 그 일로 사이공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어.

….

, 이제 파리에 살고 있는 다른 형제들 이야기를 해볼게. 첫째 아들은 알고 보니 완전 싸이코패스더구나. 자기 뜻대로 안되면 화를 참지 못하고, 그때 눈에 띄는 약자들, 특히 여자들을 죽이곤 했단다. 그렇게 파리에서 두 명을 죽였는데, 알고 보니 베이루트에서도 살인을 저지른 전적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베이루트를 도망쳐 파리로 온 것이었던 거야. 어느 날은 장은 준비에브, 프랑수아와 함께 영화를 보다가 화가 나는 일이 생겼고, 화장실에 갔다가 그곳에 일을 보고 있어 어떤 여인을 그 자리에서 죽였단다. 그냥 홧김에 말이야. 그 사건은 나중에 화장실에 온 다른 사람에 의해 발견되었단다. 영화는 중단되고 극장은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로 혼란스러웠어.

장과 준비에브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준비에브는 피가 묻은 장의 옷을 보게 되었어. 그리고는 조심하라고 한 마디만 하고 말았단다. 준비에브도 장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알고 있었나 봐. 극장에 있던 프랑수아는 화장실에서 일어난 여인, 그것도 미인의 살인 사건은 자신이 특종 기사를 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 프랑수아는 기자를 신분을 이용하여 살인사건 현장에서 가서 피해자의 수첩에서 신분증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그 여자는 그들이 보고 있던 영화의 여자 주인공으로 초특급 여배우인 메리 램슨이었던 거야. 프랑수아는 곧바로 신문사로 들어가서 기사를 써 내려갔단다. 그리고 이 기사로 인해 프랑수아는 인해 인정 받는 기자가 되었고, 그 후속 보도로 인해 신문사도 매출이 올라갔어.

한편 베이루트에 홀로 남은 엘렌은 방황의 길을 걷는단다. 20살 많은 수학 선생님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 수학 선생님은 유부남이었어. 그런데 그 사실을 엘렌의 아버지 루이 펠티에가 알고 있었어. 루이는 이걸 어떻게 해결했을까? 엘렌을 혼냈냐고? 아니야, 딸 몰래 수학 선생님을 파멸시키는 작전을 펼쳤는데, 그 작전이 성공하여 수학 선생님은 교직에서 쫓겨나고 말았단다. 아버지 루이는 그저 비누 공장으로 성공한 짠순이 부자인 줄 알았는데, 자식들을 사랑하는 남다른 방식이 있는 것 같구나. 앞으로도 그런 일이 더 나오는데 좀 이따 이야기해줄게.

 

2.

에티엔은 레몽의 뒷조사를 계속 했는데 결국 레몽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이후 에티엔은 타락의 길을 걷는단다. 앞서 이야기했던 불법 환차익 거래를 승인해 주는 대신 뇌물을 엄청 받았고, 그 돈으로 도박장을 드나들었고, 아편도 하면서 타락의 길을 걸었지. 하지만 다시 정신차리는 계기가 있었는데, 적군인 베트민들도 외환국의 환차익을 부당 수입을 얻는 정황을 포착했어. 베트민들은 불법 환차익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군자금으로 써서 프랑스와 전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프랑스와 베트남이 전쟁을 하고 있는데, 베트남도 프랑스 돈으로 군수품을 사서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인 거지. 프랑스 돈으로 무기를 산 베트민들이 자신의 애인 레몽을 죽인 것이고이 사실을 외환국장에게 이야기를 하고 정부기관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증거가 없다고 무시를 당했단다.

그 뒷이야기는 잠시 후에

다시 엘렌의 이야기를 해보자. 18살인 엘렌은 메모 한 장 남기고 베이루트를 떠나 무작정 파리에 왔단다. 오빠 프랑수아와 장을 차례로 만나 잠자리를 부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재워주긴 하겠지만, 싫어하는 표정들이었어. 화가 난 엘렌은 호텔에서 자겠다고 다시 거리로 나왔는데, 소매치기를 만나 돈과 짐을 모두 다 털리고 말았단다. 예나 지금이나 파리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하는 모양이구나. 아버지의 지인이 호텔을 운영한다는 것이 생각나서, 그 호텔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이미 아버지 루이가 와 있었단다. 엘렌이 파리를 떠난 사실을 알고 바로 그 다음 비행기로 파리로 온 루이. 장과 프랑수아를 만나고 엘렌의 이야기를 듣고 혼자인 엘렌이 이 호텔로 올 것을 예상하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역시..

이번에도 루이는 엘렌에게 화를 내기 않고 따뜻하게 대해주고 호텔 방도 알아봐 주었단다. 다음 날 아들들인 장, 프랑수아와 며느리 준비에브도 함께 모였어. 루이는 엘렌을 베이루트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고 파리에 머물 수 있게 집을 구해주겠다고 선언했어. 그리고 엘렌이 어리니 그 집에서 프랑수아와 함께 지내라고 했고, 장과 준비에브도 서운하지 않게 그들이 준비중인 가게 비용도 보태주겠다고 했단다. 이런 배려심 깊은 아버지인데, 그런 아버지에게서 어떻게 장 같은 싸이코패스가 태어날 수 있는지

….

메리 살인사건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나도 진전이 없었어. 그러다가 증인이 나타났어. 메리가 죽기 전에 화장실에 나오던 어떤 여인이 남자와 어깨를 부딪혔다는 거야. 이 사실이 신문을 통해 알려지자 장은 긴장을 했단다. 증인의 진술에 따라 많은 남자들이 법원으로부터 소환장을 받았는데, 장은 자신이 명단에 빠진 것에 안심을 했단다. 하지만 준비에브는 법원을 찾아가 항의를 했어. 파리 시민으로 법원 소환을 받는 것은 의무인데 자신의 남편 장이 빠졌다면서 말이야. 준비에브, 참 독특한 캐릭터이구나. 그렇게 장은 다시 긴장을 했어. 법원에서도 잔뜩 긴장을 해서 벌벌 떨고 그랬어. 하지만 증인을 다른 사람을 지목했는데, 그 사람은 유사 범죄 이력이 있던 사람이었단다. 누구나 범인으로 생각할 만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는 계속 부인하고 명확한 증거도 없어서 다시 풀려나고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되었단다.

….

사이공에서 불법 환차익이 베트민들에게 들어간다는 정황을 포착한 에티엔계속 조사를 해보니 프랑스의 주요 정부 요인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증거도 확보하게 되었어. 기자로 일하고 있는 형 프랑수아에게 전화를 했어. 환차익 부당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하고 기사를 써달라고 했어. 증거를 가지고 가겠다면서 말이야. 그리고 먼저 전화로 약자 10개를 불러주었단다. 에티엔은 증거 서류를 입수하고 떠날 준비를 했는데 그의 집에 누군가 침입하여 에티엔을 도와주었던 베트남 청년을 죽였단다. 그리고 에티엔도 공격을 당해 무작정 도망을 갔어. 추적을 피해 사이공을 탈출하는 경비행기를 탔지만 비행기 폭발 사고로 그만 죽고 말았단다.

 

3.

아버지 루이는 에티엔의 사망 소식을 전보로 받았단다. 여행 중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는 내용이었어. 루이뿐만 아니라 식구들 모두 큰 충격에 빠졌단다. 특히 에티엔과 가장 친했던 엘렌의 상심은 말할 수 없이 컸단다. 프랑수아는 에티엔의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죽기 얼마 전에 전화통화한 내용을 알고 있었잖아. 프랑수아는 앨렌이 알려주었던 알파벳 10개를 이용하여 외환국 관련 사람들을 알아보았어. 그리고 두 사람의 거물급 인사를 의심하게 되었단다. 에티엔이 알려준 알파벳 10개와 관련된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사이공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이력도 있었어. 프랑수아는 인터뷰를 가장해서 그 중 한 명을 만났어. 인터뷰를 마치면서 은근 슬쩍 그러면서도 기습적으로 사이공 근무 이력을 물어보았어. 그리고 그 얼굴에서 당황함을 볼 수 있었지.

그런데 얼마 후 프랑수아, , 엘렌은 모두 누군가에게 강제로 연행되었단다. 엘렌은 친구가 마약을 훔치는데 망 본 일이 있는데 그것으로 잡혀 들어간 줄 알고 걱정했고, 장은 자신의 살인 사건이 드디어 드러난 줄 알았어. 장은 메리를 죽인 이후, 또 한 명의 여자를 죽였는데 그 여자는 나중에 알고 보니 지인의 딸이었고, 현장에 지문이 남아 있다고 해서 초조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강제 연행되다 보니 그 일로 잡힌 줄 알았던 거지. 그런데 알고 보니 에티엔의 일 때문이었단다.

정보부에서 그들을 강제 연행한 것이었고, 부모님도 파리에 오고 있다고 했어. 정보부 요원들은 프랑수아에게 경고를 했어. 지금 조사하고 있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일가족이 제대로 생활하지 못 하겠다고 경고를 했어. 그들이 모르고 있었던 그들의 부모님의 온갖 비리도 온 세상에 다 퍼뜨릴 거라고 했어. 부모님의 비리가 무엇이냐고? 아버지 루이는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었는데, 참전 이후 사기로 돈을 벌어들였고 그 돈으로 비누 공장을 차린 거라고 했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파리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만났고, 아버지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더 이야기를 해주었어.

1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들에게 국가는 무관심하였고,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으며, 그렇게 번 돈으로 참전용사협회를 만들어 생활이 어려운 참전 용사들을 도와주었다고그리고 나중에 사기로 번 돈은 모두 돌려주었다고 했어. 뿐만 아니라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친분도 있다고 했단다. 그동안 자식들에게 숨겨왔던 아버지 루이의 비밀을 다 이야기해주었어. 아빠가 들어보니 그리 큰 잘못도 아니구만루이는 알고 보니 자식들 몰래 뒤에서 후원을 해주고 있었더구나. 프랑수아는 에티엔의 준 정보에 대한 후속 조사는 하지 않기로 했단다. 남아 있는 식구들의 명예를 지키기로 했어.

엄마 앙젤은 에티엔의 유품을 가지러 직접 사이공에 가기로 했단다.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 있으면 알아보기도 하고앙젤은 딸 엘렌과 함께 사이공으로 갔어. 앙젤은 사이공에 오고 보니 에티엔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어. 외환국와 정부 기관을 찾아가 에티엔이 밝히려고 했던 환차익 부당 거래 의혹을 이야기했지만 모두 증거가 없었고, 에티엔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어. 에티엔의 친구 로안을 만났고, 로안으로부터 에티엔의 유품이 담긴 트렁크를 받을 수 있었어. 앙젤과 엘렌은 에티엔의 죽음을 조사하다 보니, 환차익 부당 거래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에티엔의 죽음은 사고가 아닌 타살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지. 에티엔이 생전에 도움을 많이 주었던 중국인 차오를 만나게 되었는데, 차오를 통해서 여러 정보를 알게 되고, 에티엔의 죽음에 그의 친구였던 로안이 깊숙이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로안이 친구를 배신하고 에티엔을 죽인 거야. 하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었고, 사이공의 경찰들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그들을 믿을 수도 없고 말이야.

결국 앙젤은 엄마의 해결법을 썼단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법. 앙젤은 청부업자를 고용해서 로안을 저격했단다. 그 일을 성공적으로 마친 앙젤과 엘렌은 레바논 베이루트로 돌아왔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

책의 뒷편에 옮긴이의 글이 실려 있는데, 그 글에 그런 내용이 있더구나. 이 소설의 이야기를 이전 3부작에 나왔던 사람의 가족 이야기라는 거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해주지 않겠다고 하네. 아빠의 기억력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잖니. 그래서 이전 독서 편지를 뒤져보았단다. 찾았다.

<오르부아르>에 알베르 마야르라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은행 돈을 빼돌려 추모비 카탈로그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구나. 그리고 <대단한 세상>에서는 배려심 깊은 아버지 루이 펠티에의 본명이 바로 알베르 마야르라는 하는 부분이 있었단다. 뒤늦게 알게 된 이 깨알 같은 재미. 아빠가 예전에 이사벨 아옌데 소설들을 읽으면서 이쪽 소설 등장인물이 저쪽 소설에 나오는 것에 대해 재미있다고 했던 적이 있잖아. 그런 것처럼 피에르 르메트르도 그런 기법을 사용해서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셨구나. 옮긴이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텐데, 힌트를 주어 알게 되었단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다음 소설을 읽을 때도 등장 인물들을 유심히 봐야겠구나. 피에르 르메트르의 새로운 4부작의 시작나쁘지 않구나. 아빠 취향에 딱 맞는 책이었어.

다음 편을 기대하면서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할게.

 

PS,

책의 첫 문장: 프랑세로()를 따라가는 가족 행렬은 해를 거듭해 가며 여러 모습을 보여 왔지만, 여태껏 장례 행렬처럼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책의 끝 문장: “…… 정말 잘됐다, 자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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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12 - 제4부 동트는 광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마지막 12권에 대해 이야기해줄게. 주말마다 한 권씩 읽었는데, 금방 12권이 끝나는구나. 그만큼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 같구나. 2024년이 시작한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6월이구나. 너희들에게 계속 천천히 자라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는데, 주문이 잘 안 먹히는구나. 어찌들 그리 쑥쑥 자라는지….

, 그러면 <아리랑> 12권을 시작해 보자.

윤철훈의 동지였던 최현옥이 체포되어 온갖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고문을 다하지만 끝내 정보를 불지 않고 견뎠단다. 하지만 자신이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간수들이 방심한 틈을 타 벽에 머리를 박고 그만 자살하고 말았단다. 최현옥을 고문했던 인물은 <아리랑> 전체 중에 최고의 빌런 중에 한 명인 양치성이었어. 양치성은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는 악랄한 친일경찰이 되었는데, 그를 보고 있으니 실체 인물 노덕술이 떠오르더구나. 일제 시대 악랄한 친일경찰로 그의 별명은 고문전문가였단다. 더 열 받는 것은 그런 악랄한 친일파가 해방 후에 다시 대한민국의 경찰과 헌병의 요직을 맡았다는 점이란다. 반일 행위로 체포되었지만, 이승만의 입김으로 무죄판결까지 받았다고 하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어디에 있단 말이냐.

공허 스님의 아들인 전동걸은 동경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한다고 했잖아.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는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고 했었지. 공산주의 동료인 일본인 지요꼬와 같은 교포 유학생인 이미화 사이에서 말이야. 시간이 갈수록 전동걸은 이미화에게 더 마음을 두었단다. 하지만 일본의 감시와 통제가 심해지면서 일본 내 공산주의 활동이 점점 어려워졌어. 그래서 중국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독립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단다. 전동걸도 그렇게 중국으로 떠나야 했단다. 이 때 지요꼬와 위장 연인으로 해서 중국을 갔단다. 그 머나먼 길을 위장 연인으로 가다 보니, 그것도 둘 사이에 애틋한 감정이 있던 사이였는데, 위장 연인에서 위장이 떨어지게 되었단다. 동경에 남아 있는 이미화만 불쌍하게 되었구나. 중국에 도착한 전동걸은 조선의용대에 참여하여 중국 팔로군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단다.

 

1.

김제에서 대지주인 하시모토는 김제읍장까지 차지하게 되었어. 1940년대 들어서면서 일제가 벌인 전쟁들 때문에 공출이 점점 심해지고, 징용도 점점 늘어나다 보니 하시모토는 자신의 농장에서 일할 소작인들이 줄어들어 불만이 많았어. 그렇다고 겉으로 일본정부에 불만을 표출할 수 없으니 속으로만 삭혀야 했지. 나쁜 놈. 국내에서 젊은이들을 징용해가는 것은 노무보국회에서 주관했단다. 노무보국회 소속의 이시바시라는 악질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을 징용해가는 사냥한다고 하는 놈이었어. 아무나 잡아서 징용을 보냈는데, 차득보도 농사짓다가 붙들려 끌려가고 말았단다.

….

징용뿐만 아니라 군대에 끌고 가는 징병도 이어졌어. 징병도 부족하다 보니 학생들을 상대로 징병을 하는 학병제를 실시했단다. 친일파 최남선과 이광수는 학병 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했다는구나. 변절의 아이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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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11월에 들어서 총독부에서는 대학, 전문학교, 고등학교에까지 징집영장을 일제히 발급했다. 그리고 중추원에서는 <학병 불지원자는 휴학시켜 징용키로 결정>했다. 그러니까 학도지원병이란 <지원>은 허울좋은 장식일 뿐이었다. 이에 발맞추어 이광수와 최남선은 학병지원 권유연설을 하기 위해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다. 결국 제1차로 학병적격자 1천 명 중에 959명이 지원을 완료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가운데 관부연락선 곤륜환이 미국잠수함에 격침되어 54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행했다. 그리고 12월로 접어들면서 징병 적령을 1년 낮추는 긴급사태가 야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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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규와 유승현은 학생들이 학병으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학생들을 지리산으로 빼돌리려는 계획을 세웠단다. 지리산에는 이현상 중심으로 빨치산이 조직되어 있었거든. 송중원의 아들 송준혁도 학병 대상자였단다. 무작정 준혁을 지리산을 빼돌리게 되면, 남아 있는 식구들이 피해를 보게 되므로, 정도규와 유승현은 방법을 하나 찾았단다. 송준혁이 가짜 유서를 쓰고 지리산으로 도망가고, 송준혁의 엄마가 그 가짜 유서를 들고 경찰서에 가서 아들을 찾아달라고 울면서 연기를 하는 것이었지. 당시 학병을 가지 않고 자살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하니 참 가슴 아픈 일이구나.

학병으로 끌려가는 많은 조선 학생들이 불쌍했지만, 학병으로 끌려가서 고소한 이도 있었으니 박용화였단다. 박용화 생각나지? 어렸을 때부터 일본을 숭상하던 이로 초등학교 선생님 하다가 더 성공하고 싶어서 동경법대에 입학한 사람. 그냥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었으면 학병에 끌려가지 않았을 텐데, 동경법대에 들어가는 바람에 학병에 끌려가고 말았단다. 본인 자신도 얼마나 억울해 하는지…. 일본의 재판관이 되려고 했던 일이니 자신이 감수해야겠지. 박용화는 결국 버마 전선에 배치되었단다. 훈련 받을 때는 일본이 계속 승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실전에 와보니 일본이 계속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어. 그제서야 일본에 속은 걸 알았는데 방법이 있나. 뿐만 아니라 그 전쟁터에서 조선의 소녀들이 위안부로 있다는 것을 알고 또 한번 분개를 했단다.

이 시절 또 하나 아픈 역사인 위안부 이야기도 가슴 아프지만 해야겠구나. 일본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 벌 수 있다면서 조선의 젊은 여인들을 속여서 동남아 전선까지 끌고 가서 위안부로 만들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어. 그렇게 속여서 데리고 오기도 했지만 강제로 끌고 가기도 했단다. 친일파로 전향한 문인들은 위안부가 되라는 시들을 쓰고 연설을 하고 있으니, 화가 치솟는구나. 지난 총선에서 김활란을 욕했다고 비판 받은 후보자가 있었는데, 이화여대에 김활란 동상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더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이화여대 학생들을 김활란의 행적을 알고 있다면, 그 동상을 쓰러트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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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228)

시인 주요한은 1941 <국민문학> 11월호에 <댕기>라는 시를 썼다.

 

나라의 부름받고 가실 때에는

빨간 댕기를 드리겠어요

몸에 지니고 싸우시면

총알이 날아와도 맞지 않아요.

 

북쪽에서 돌아오는 기러기는

갈대 밑에 재우겠어요

꿈에 돌아오시는 당신은

원앙침에 주무시게 하겠어요.

 

아무르의 얼음도 여름에는 녹겠지요

녹았어도 소식이 없는 여름일랑

까만 댕기에 하이야 간호복 입고

저도 나라 위해 있는 힘 다 바치겠어요.

 

서강 저녁놀의 타는 듯한 붉은 핏빛은

장렬하게 싸우다 산화하신 당신의 피

무언의 개선, 마을 역 앞에서

하이얀 댕기 드리우고 만세를 외치겠어요.

 

그리고 시인 노천명은 1942 3 4일자 <매일신도> <부인근로대>라는 시를 썼다.

 

부인근로대 작업장으로

군복을 지으려 나온 여인들

머리엔 흰 수건 아미 숙이고

바쁘게 나르는 흰 손길은 나비인가

 

총알에 맞아 뚫어진 자리

손으로 만지며 기우려 하니

탄환을 맞던 광경 머리에 떠올라

뜨거운 눈물이 피잉 도네

 

한 땀 두 땀 무운을 빌며

바늘을 옮기는 양 든든도 하다

일본의 명예를 걸고 나간 이여

훌륭히 싸워 주 공을 세워주

 

나라를 생각하는 누나와 어머니의 아름다운 정성은

오늘도 산만한 군복 위에 꽃으로 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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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또한 시인 모윤숙은 친일의 시들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한 직후에 <조선임전보국단>이란 친일어용단체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우리들 여성의 머릿속에 대화혼(大和魂)이 없고 보면 이 위대한 승리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며 여성들이 일제의 전시동원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나설 것을 역설했다.

그리고 이화여전 교장인 김활란은 1942 <신세대> 12월호의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라는 글에서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반도여성은 웃음으로 내 아들과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야 한다>며 여성들이 일제의 전시동원에 앞장서라고 충동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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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동남아 전선까지 위안부로 끌려간 이들의 삶은 더욱 비참했단다. 위안부 생활 자체가 비참한 생활이었는데, 그 외에도 병에 걸려 죽고, 실성해서 버림 받고, 뱀에 물려 죽고, 군대와 함께 있다 보니 폭격에 의해 죽기도 했단다. 생존자가 거의 드물었단다. 이런 짓을 하고도 일본은 사과를 안 하려고 하니 기가 차는구나. 그런 일본에 과거를 잊자고 하는 우리나라 사람도 있다는 것은 더 기가 차는구나.

 

2.

배필룡은 비행장 활주로로 징용을 와서 생활했단다.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도 흘러 약속했던 2년이 거의 다 되었단다. 어느덧 한 달 반이면 2년이야. 일제는 지금 하고 있는 활주로 작업을 일찍 끝내면 일찍 집에 보내준다고 해서, 사람들은 더 열을 올려서 작업을 했단다. 그런데 그곳에 호열자라는 전염병이 돌았어. 걸린 사람들을 격리하는 것이 맞지만, 일제는 그들을 산채로 묻기로 했단다. 그리고 그 일을 다른 조선인 노무자에게 시켰어. , 잔인한 놈들

드디어 활주로 작업이 끝난 어느날. 미군의 공습 때문에 반공호에 피신해 있었는데, 일본 군인들이 그 반공호에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난사했단다. 그리고 입구를 시멘트로 막아버렸대. 그곳에서 죽은 사람이 4000여명이라고 하니 패망을 앞둔 일제는 점점 미쳐가고 있었단다.

사할린으로 징용 갔던 노무자들도 2년이 지났지만 배가 없다는 핑계로 집에 보내주지 않았고, 그곳에서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으면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단다. 징용으로 끌려온 차득보는 북해도에서 도로 작업에 투입되었단다. 차득보 또한 계약 기간이 끝나도 집에 오지 못했어. 일본이 보내주지 않았거든. 간혹 도망가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잡혀와 공개처형을 당했단다. 그런데도 도망가려는 이들이 계속 생기는 이유는 이곳 생활이 그렇게 비인간적이고 고통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야. 차득보도 억수로 비가 오는 날, 도망을 갔단다. 북해도에 살고 있는 아이누 족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을 했단다. 차득보는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어.

….

일제의 패망이 가까워오고 있었단다. 총독부는 마지막 발악을 했어. 국내뿐만 아니라 만주에 있는 조선인들도 징병해갔어. 만주의 지삼출의 마을에도 징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끌려갔단다. 그러던 어느날 만주 정착지에 일본군이 싹 사라져 버렸단다. 일본이 드디어 패망한 거야. 그곳에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내로 돌아가기로 했단다. 하지만 귀향길도 쉽지 않았어. 중국 사람들의 공격으로 패싸움이 일어났어.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공격한 것은 그들도 일본인과 한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결국은 국내로 돌아오던 발길을 다시 만주로 돌린 이들이 있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까지 비극적으로 끝이 났단다. 우리나라도 비록 해방이 되었지만, 이내 둘로 나뉘면서 해방 아닌 해방을 맞이했어. 그리고 둘로 나뉜 나라는 또 전쟁으로 이어지고,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지. 그 비극 이야기는 조정래 님의 <태백산맥>에서 이어진단다.

….

이렇게 조정래 님의 <아리랑> 두 번째 읽기가 끝이 났구나.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3차 읽기도 해보고 싶구나. 그 정도로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을 아빠 머릿속에 저장해두고 싶구나. 너희들도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학교 공부에 정신이 없으니 읽기 어려울 테고나중에 성인이 되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아리랑>뿐만 아니라 <태백산맥>, <한강>도 모두 추천한다. 시대 순으로 읽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이런 순서로 읽으면 좋을 것 같구나. 그 때는 함께 책 이야기도 하면 좋을 것 같구나. <아리랑>은 두 번 읽었고, <태백산맥은>은 세 번 읽었으니, 다음에는 <한강> 2차 읽기를 해야겠구나. 아빠 생각에 내년쯤 <한강> 2차 읽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럼, 이제 <아리랑> 12권 끝.

 

PS,

책의 첫 문장: 지하최조실은 어둠침침했다.

책의 끝 문장: 남자들이 거의 다 쓰러져 갈 즈음 여자들과 아이들의 모습은 끝없는 광야 저쪽에 점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전동걸은 3개월 동안의 군사훈련을 마쳤다. 조선의용군의 기본 군사훈련은 혹독하리만큼 강도가 높고 맹렬했다. 사격이며 분대전투 같은 훈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유격전 훈련은 가히 살인적이라고 할 만했다. 먹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지니지 않고 완전무장을 한 채 태항산록 그 끝없는 골짜기와 봉우리를 열흘 이상씩 타넘는 것이었다. 먹을 것은 어떻게 해서든 산중에서 구해야 했다. 뱀이고 개구리고 승냥이고 까마귀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야 했다. 산열매도 따먹었지만 절대로 따먹으면 안되는 것이 있었다. 감, 호두, 대추가 그것이었다. 그것들은 태항산록을 따라 마을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꾸고 있는 과실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생업으로 삼아오는데다 수확량도 엄청나 그 세 가지는 태항산 명물로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그 열매들을 단 하나도 손댈 수 없는 것은 <인민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 P198

그들이 지리산 속에 있으면서도 나라 밖에서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까지 샅샅이 알고 있는 것은 <미국의 소리> 단파방송을 청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소식은 이렇게 선요원들을 통해서 각 조직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키나와를 점령당한 위기 속에서 일제가 일억총옥쇄(一億總玉碎)라는 새로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학생들이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일억총옥쇄의 일억이란 일본사람들 7천만, 조선사람들 3천만을 합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일억총옥쇄란 일본과 천황에게 충성을 다바쳐 일본사람 7천만과 조선사람 3천만은 다같이 깨끗하게 죽자! 하는 뜻이었다. 그건 패전의 위기에 직면한 일제가 발악적으로 내세운 집단자살의 구호였다. 그런데 지식인들은 총독부가 조작하고 있는 승전의 보도에 취해 일본이 조선을 2백 년 동안 지배할 거라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일억총옥쇄를 여기저기서 열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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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위종의 미국 횡단 여행은 한 달이 걸렸다. 위종은 9월 신학기에 중급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를 왕복했던 기차 여행은 위종의 의식을 더욱 성숙시켰으며 사물을 보는 그의 시각을 놀라울 만큼 넓고 깊어졌다. 그는 이른 나이에 문명의 진보가 인간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몸으로 직접 체험했다. 그 여행은 인종차별과 같은 인간의 부정적인 일면을 일깨우기도 했지만 반면에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위종의 인성을 변화시키며 그의 의식을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127)

위종은 그날, 눈 덮인 겨울궁전 광장에서 흰 눈 위에 뿌려지던 노동자들의 붉은 피를 잊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눈밭에 뿌려진 선홍색 핏자국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지금까지 위종에게 그저 아름답고 낭만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피의 일요일이 지나간 이 도시는 위종에게 다른 의미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위종은 요즈음 이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음산한 기운이 자신의 의식 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을 받았다. 위종은 자신의 의식 속에 슬금슬금 똬리를 틀고 있는 이 기운이 자신을 오랫동안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것은 혁명의 기운이었다.

 

(144-145)

공고사(控告詞)

대한제국 황제 폐학의 칙명을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대표로 파견된 전 부총리 이상설, 전 평리원 검사 이준,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 참서관 이위종은 존경하는 각국 대표 여러분께 다름과 같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대표 여러분, 대한제국의 독립은 1884년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강대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에 의해 보장되고 승인되어왔습니다. 그러나 1905 11 17일 당시의 의정부 참관이었던 이상설은 일본이 만국공법을 무시하고 무력을 이용한 것으로 말미암아 예부터 유지해온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의 호의적 외교관계가 파기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에 관하여 우리 대표단은 존경하는 여러분께 일본이 현재의 결과에 이르기까지 자행했던 모든 협박 그리고 폭력 및 범법 행위를 보고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일본의 폭력 수단이 만국공법을 위반하였음을 탄핵합니다. 각각 대표 여러분께서는 이러한 일본의 행동이 국제조약을 명백하게 위반했는지 아닌지를 공평한 입장에서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일본인은 대한제국 황제 폐하의 동의 없이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둘째, 일본인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고자 대한제국 정부에 무력을 사용했습니다.

셋째, 일본인은 대한제국의 모든 법률과 관례를 위반했습니다.

 

(163-164)

그 순간 연설회장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적이 감돌았다. 위종은 조용한 장내를 천천히 둘러보며 잠시 숨을 고른 뒤에 입을 열었다.

세상에 부자와 빈자가 있듯이 강한 나라가 있으면 약한 나라도 있습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모두 먹어치우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을 정의의 신이 지배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믿는 정의의 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웃의 재물을 탐해서는 안 되고, 이웃을 사랑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자 예수의 가르침이 아닙니까?

하지만 문명국가의 시민이자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는 여러분은 지금 일본의 침탈과 압제로 고통받는 우리 대한제국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아직 잘 조직되어 있지는 않으나 독립과 자유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확고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인의 잔인하고도 비인도적인 침략이 종말을 고할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에 처하더라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다시 하나로 뭉쳐서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저항할 것입니다.”

 

(175)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열강들은 식민지 탈취라는 목적을 책상 아래 숨기고 입으로만 평화를 부르짖었다. 이런 자리에서 일본의 불법적인 외교권 탈취라는 한국 대표단의 주장은 애초부터 잠꼬대 같은 소리에 불과했다. 더불어 암암리에 식민지 나눠먹기를 묵계했던 열강들이 한국 대표단의 참가 봉쇄를 담합했기 때문에 특사들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헤이그를 떠나야 했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의 문이 인류의 평화와 이익보다는 오직 국익만을 좇는 제국주의 국가들에만 열려 있었다는 것이 대한제국 특사들에게는 불운이었다.

 

(222-223)

근대적인 유럽식 장교 교육을 받은 위종은, 나이는 약관이었지만 이미 전술과 전략 등 전반적인 군사 분야에서 모든 의병장을 지휘하고도 남을 만한 능력이 있었다. 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와 같은 외국어 구사 능력도 탁월했고 만국공법과 전제주의와 공화주의 정치 체제에 관해서도 해박했다. 위종의 국제 정세에 관한 깊은 통찰력과 법 지식은 안중근이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안중근은 만국공법과 세계사를 포함하여 열강들의 제국주의 행태에 관한 위종의 논리 정연한 해설을 들으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그것은 지금까지 안중근이 경험하지 못했던 신학문이 깨우쳐준 충격이었다.

 

(231)

연해주 연합의병은 1908년 여름의 국내진공작전을 끝으로 최재형계와 이범윤계가 완전히 갈라서고 말았다. 동의회 결성 당시부터 내재되어 있던 양측의 갈등이 깊어져 더 이상 함께 의병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연해주 토박이 세력이었던 최재영계와 간도에서 망명해왔던 이범윤계의 세력이 쌍방의 지휘체계를 그대로 유지한 채 연합작전을 벌인다는 것은 처음부터 한계가 있는 전략이었다. 여기에 이범윤의 군자금 횡령 같은 문제가 불거져 양측이 더욱 반목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의 잘잘못을 들추어냈고 두 계파 사이의 갈등은 깊어만 갔다.

 

(254)

러시아 정부의 대일본 유화 정책의 실체를 파악한 위종은 이런 환경에서 대규모 의병전쟁으로 항일운동을 강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투쟁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더구나 만주 지역에 파병된 일본군은 아예 만주를 점령하기 위해 더욱 많은 병력을 증파했다. 따라서 만주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러시아와의 충돌은 시간 문제였다. 어느 한쪽이 물러서지 않는 한 또 한 번의 전쟁을 피할 수가 없었다. 위종은 조국 독립을 위해서는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프랑스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했지만 영국과 미국은 이미 일본과 야합하여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으며, 신해혁명으로 갓 태어난 신생 중국은 내전으로 남의 형편을 눈여겨볼 처지가 아니었다. 따라서 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만이 그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다.

 

(269)

제정러시아 역시 일본과 동일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위종의 판단이었다. 다만 일본을 서두르는 편이고 러시아는 좀 느릴 뿐 목적지는 역시 식민 제국주의였다. 주변의 약소국을 식민지로 탈취하는 것도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동일했다. 이와는 반대로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은 반제국주의 혁명이었다. 볼셰비키 지도자 레닌은 각 민족의 운명은 민족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민족자결원칙을 최초로 주장했다. 레닌의 민족자결원칙은 비록 러시아 내 소수민족의 자치와 독립에 국한된 주장이었지만 위종은 그의 주장이 조선의 민족 해방에도 강력한 우군이 되리라고 확신했다.

 

(303-304)

우수리 원주민과 자작나무는 한국인과 소나무의 관계와 같다. 이들은 사람의 영혼은 나무에서 태어나며, 이승에서 삶을 마치면 남자의 영혼은 버드나무로, 여자의 영혼은 자작나무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이들은 숲속의 모든 나무에 정령이 깃들어 산다고 여긴다.

봄이 되면 나무는 잠을 깨고 새로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다. 숲에서는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는, 영혼이 영원히 순환하는 곳이라고 이들은 생각했다.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살아 있으며 서로 에너지를 교환한다고 믿었다. 그 에너지는 자연에서 잠시 빌려 쓰다가 언젠가는 자연에 돌려줘야 하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삶과 죽음이란 이런 주기의 반복이며 에너지의 순환일 뿐이다. 따라서 이들은 나무도 꼭 필요한 만큼만 베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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