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9)

진화생물학자 머렉 콘의 이론입니다. 머렉 콘은 주먹도끼를 만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주먹도끼를 필요 이상으로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쉽게 말해, 멋지게 만든 주먹도끼를 가져가면 이성에게 잘 보일 수 있었다는 거예요. 훌륭한 주먹도끼를 만들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솜씨가 좋다는, 바꾸어 말하면 머리가 좋다는 증거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이걸 섹시한 주먹도끼 이론(Sexy Handaxe Theory)이라고 합니다.


(72)

많은 사람에게 미술은 삶의 부속이나 장식이라는 편견이 있지요. 하지만 미술이야말로 두 발로 걷고 도구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우리가 타고난 생존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153)

피카소는 원시미술에서 이 조형 원리를 읽어냈습니다. 그래서 오른쪽과 같은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지요. 이 그림도 부분마다 뜯어보면 사람 얼굴과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형태를 보는 순간 이 그림에서 사람 얼굴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처럼 닮음이 아닌 배치가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조형 원리의 발견은 현대미술의 문을 여는 대단한 한 걸음입니다. 그래서 피카소를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겁니다.


(167-168)

이에 비추어 우리나라의 빗살무늬토기에 새겨진 빗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연구가 더 필요하겠지만, 이처럼 빗살무늬토기의 빗금을 단순한 무늬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는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 원시미술이 가진 힘이 크게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힘을 인간이 태초부터 품어왔던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만 년 전 원시인들이 처음 벽화를 그린 이래 문명은 복잡하게 변화했고, 온갖 기술과 제도도 현란하게 우리 눈을 어지럽힙니다. 하지만 그런 지금도 원시미술은 우리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왜일까요?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원시미술의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그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하는 호모 그라피쿠스가 살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253)

굳이 따지자면 피라미드 건설은 복지 제도에 가까웠어요. 농사일이 없어 놀고 있는 백성들이 일정한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도록 했던, 고대 이집트식 뉴딜 정책이었던 거죠. 백성들은 일정한 임금을 받으며 피라미드를 쌓았습니다. 돈뿐만 아니라 몸보신하라고 마늘도 나눠줬고요. 몸이 아플 때는 물론이고 친구들과 잔치 약속이 있다는 이유로도 작업에 빠질 수 있었다고 하니 노예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354)

어쩌면 그게 미술사를 공부하는 목적일지도 모릅니다. 미술을 통해 긴 시간 인류가 품어온 바람이나 생각을 이해하고, 그것이 오늘날에는 어떻게 미술 작품에 반영되고 있는지 알아봄으로써 삶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로는 무엇보다도 죽음입니다. 이집트인은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했고 그 고민을 나름의 미학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렇다면 현대 문명이 만들어내는 죽음의 예술은 어떤 의미와 고민을 담고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고대 이집트인이 만들어낸 죽음이라는 거대한 백과사전 안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29)

사람마다 미술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저는 여러분이 미술사 공부를 미술이라는 언어를 익히는 과정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어요. 이 언어를 익히고 나면 그 동안 몰랐거나 오해하고 있던 세계를 조금 더 자세하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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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1)

역사는 자신의 존재에 의거하지 않은 지식인 출신 혁명가들의 나약함과 우유부단에 관한 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과 함께, 출신성분이 혁명가의 진정성을 판별하는 기초 자료가 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그 반대의 경우도 무수히 보여준다. 자기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없더라도 타인에 대한 애정과 정의감만으로 기득권을 버리고 변혁운동에 뛰어들어 아낌없이 죽어간 사례들이다. 자신이 처한 부당한 현실에 분개하고 분노를 폭발시키는 일은 생존의 본능이지만, 타인의 고통에 분노하고 목숨까지 걸어 싸우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인이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지식인이거나 노동자이거나 아무 상관없이, 타인데 대해 얼마나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성품의 문제였다. 드물지만, 이런 이타적인 인간형들은 진정한 혁명가로서의 자질과 존경 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이현상도 그런 유형의 하나였던 것이다.


(193)

좌익 내부의 정적들조차 김삼룡이나 이주하는 말이 통하지만 이현상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고 평했다. 먼저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상대방을 설득하다가 안 되면 감정이라도 분출시키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현상은 끝까지 묵묵히 듣기만 할 뿐, 끝내 자기 고집을 꺾지 않고 원칙을 관철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정적들이 조선공산당 중앙을 비판할 때 공식적으로 이현상의 이름을 거론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현상의 원칙이란 것이 상식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제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지도할 때 보여준 그의 융통성과 현실주의적인 감각이 이 추측을 뒷받침해준다.


(205)

그러나 이현상은 도무지 말이 없었기 때문에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맡고 있는지를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하급 간부들은 이현상의 심중이 무엇인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짧게 표현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은유나 비유는 사용하지 않았고, 입에서 내뱉은 말과 다른 생각을 품고 있지도 않았다. 앞에서 한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르지 않았고, 정치적 암투를 위해 사람을 모함하거나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거짓 호의를 베푸는 일이라곤 없었다. 근본적으로 복잡한 생각이나 정치적 욕심이 없는 담백한 사람이라고 보면 좋았다. 따라서 동료들이나 하급자들은 그가 회의 시간 내내 듣고만 있어도 무슨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어쩌다가 한마디 하면 그것이 바로 그의 생각이었다.


(360)

미군이라고 해서 마구 죽이지는 않았다. 미군도 일단 포로로 잡으면 죽이지 않고 며칠 동안 데리고 다니며 교양을 한 다음 살려 보냈다. 이 고지식한 공산주의자는 미워해야 할 것은 제국주의이며 제국주의 국가의 인민들은 다 같은 피해자라는 교리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쫓기는 처지라 포로를 감시하는 일도 쉽지 않아 쏘아버리자고 주장하는 대원도 있었으나 이현상은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 이렇게 살려준 미군들이 유격대의 위치를 파악해 보고하는 바람에 포격을 당하는 일도 생겼지만 이후로도 포로 수칙을 바꾸지는 않았다.


(377)

세속적인 욕심에 무심한 것은 역사를 바꿔온 대부분의 혁명가들이 가진 근본적인 성품이기도 했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과 경쟁을 역사의 동력으로 파악하는 역사가들은 혁명가들의 삶에도 이를 적용하고 싶어하여 세계의 혁명사를 당파 싸움으로 대치시키는 데 몰두한다. 그들은 혁명가들의 마음속에 희생과 용기, 이타주의의 고귀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혁명이 시대적으로 주류가 되었을 때 출세의 기회를 잡기 위해 앞 다투어 뛰어든 투기꾼들의 행태가 그들의 분석에 근거가 되고 합리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그들은 역사의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없게 되고, 결국은 시간 순서대로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하고 그 사이사이에 인간의 욕망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끼워넣는데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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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0-09-08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제가 쓴 이현상 평전 서평이 노동전선 단체에서 출판한 현장과 광장 1호에 실렸습니다.ㅎㅎㅎ

bookholic 2020-09-09 23:39   좋아요 1 | URL
와우, 멋지십니다~~
 















(31)

청결함에 관해선 아빠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느 날 내가 아빠 등을 때수건으로 밀어주고 있을 때 아빠가 말했었다. 우리가 벗겨낸 이 때는 다 어디로 갈까? 너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니? 우리 몸을 깨끗이 하느라고 우린 또 뭘 더럽히고 있는 건지.

(53)

아빠가 미리 얘기해줬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제로 일이 닥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난 잠에서 깨자마자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잠옷 바지가 젖어 있었고 두 손도 온통 끈적끈적했다! 이불에도 묻어 있었다. 사실상 온 사방에 묻어 있었다는 게 정확한 말일 것이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바지를 벗으면서 난 아빠가 얘기해줬던 걸 떠올렸다. 그걸 사정(射精)이라고 해. 밤사이에 그 일이 일어나더라도 겁먹지 마라. 다시 오줌을 싸기 시작한 건 아니니까. 그건 새로운 미래가 시작된다는 신호야. 놀라지 말고 얼른 적응하는 편이 나아. 넌 앞으로 평생 정자를 만들어낼 테니까. 처음엔 뜻대로 조절이 안 될 거야. 성기를 만지작거리며 쾌감을 느끼는가 싶다가 어, 어느새 끝나버리지! 그러다 점차 익숙해지면 절제할 줄도 알게 되고, 결국엔 최선의 요령을 깨우치게 될 게다.

(140)

눈물은 자아의 배설이다. 그 엄청난 양이란! 우리는 울면서 오줌 눌 때보다 훨씬 더 시원하게 자신을 비운다. 맑은 호수에 몸을 던지는 것보다도 더 깨끗이 자신을 청소한다. 그 정화의 과정이 모두 끝나고 나면 종착역에 정신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눈물로 표현된 정신은 비로소 몸과도 좋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낸 몸도 오늘 밤엔 잠을 잘 것이다. 안도의 울음을 실컷 울었으니. 이제 끝났다.

(154)

건강염려증: 몸의 상태에 대해 과도하게 신경 쓰는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 자신이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망상. 정신과 몸이 서로에게 술책을 부리는 것. 어쨌든 처음 경험하는 느낌이라 일시적인 증상의 희생자일까?

(177)

몸은 사랑의 에너지 덕을 어느 정도로나 보는 걸까. 요즘은 모든 게, 정말 모든 게 다 잘 풀린다. 직장 일에서도 지치는 법이 없다.

(188-9)

손님들 앞에서 이 세상의 여덟번째 기적이라고 자랑하며 브뤼노를 흔들어대다가, 아기를 안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것이다. 앞쪽으로 넘어지면서 바닥까지 굴렀다. 정확히 열한 계단. 난 본능적으로 브뤼노를 감쌌다. 계속 구르는 중에도 아기의 머리를 내 가슴팍에 붙이고, 팔꿈치와 이두박근과 등으로 보호했다. 난 아들을 덮고 있는 껍데기였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우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손님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손등, 골반뼈, 무릎뼈, 발목, 등뼈, 어깨, 전부 다 계단 모서리에 부딪혔다. 하지만 난 구르는 와중에도, 가슴이 파이고 배가 움츠러드는 와중에도, 브뤼노가 내 품 안에서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난 본능적으로 인간 완충장치로 변신했던 것이다. 브뤼노가 매트리스 싸인 채 굴렀다 해도 더 안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난 유도를 해본 적도 없고 낙법을 배운 적도 없는데. 부성애의 놀라운 발현?

(190)

순전히 정에 겨워 아기를 어르는 것과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어르는 것 사이엔 이런 차이가 있다. 첫번째 경우, 아이는 자신이 사랑의 중심에 있다고 느낀다. 두번째 경우엔 아이를 창밖으로 던져 버리고픈 충동을 느낀다.

(224)

흠잡을 데 없는 똥. 딱 한 덩어리뿐이다. 완벽하게 매끈하고, 모양도 반듯하다. 차지면서도 끈끈하진 않고, 냄새는 나되 악취는 아니고, 단면이 깔끔하며 균질의 갈색을 띠고 있다. 딱 한 번 힘줘서 쑥 빠져나왔다. 휴지에도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니, 이거야말로 완벽한 장인의 솜씨다. 내 몸아, 참 잘해냈다.

(267)

시선을 피하며 머리를 위아래로 가볍게 흔든다.

: 계속 이야기해봐, 관심 있으니까.

시선은 어느 한 지점에 고정하고 손가락으로 식탁 위에서 피아노 치는 시늉을 한다.

: 그 얘긴 벌써 백 번도 더 했잖아요.

속으로 어렴풋이 미소를 지으며 시선은 테이블보에 고정되어 있다.

: 내가 말은 하지 않지만, 나도 다 생각이 있다고요.

빈정거리는 미소

: 내가 맘만 먹으면 박살을 내줄 텐데.

눈의 역할

: 눈을 돌리는 건 자기 맘을 몰라줘서 답답하다는 의미, 눈을 크게 뜨는 건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 눈꺼풀이 축 처지면 지쳤다는 의미……

(281)

그에 따르면 이명은 아주 적응이 잘 되는 병이라고 한다. 아니, 더불어 사는 거라고 봐야지, 그가 말을 고쳤다. 그래도 어쨌든 고요함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어. 에티엔도 나와 마찬가지로 처음엔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와 똑 같은 비유를 했다. 꼭 내 몸이 켜진 라디오에 연결돼 있는 것 같더라고. 스피커 신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게 정말 달갑진 않더군.

(303)

분만실에서 아기를 받을 때 그들은 둘이었지만, 이제 그들은 영원히 셋이다. 반투명한 작은 손가락들, 활짝 피어오른 뺨, 토실토실한 팔과 종아리, 통통한 배, 주름, 보조개, 아기 천사의 튼실한 궁둥이, 이 빵빵한 타이어 같은 생명체는 그들의 사랑의 결실인 것이다! 또 그 눈길은! 신생아들이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우릴 바라볼 때의 눈길은 어떤 말없는 신성(神性)에 속한 걸까? 이토록 검은 동공, 이토록 선명한 홍채를 가진 두 눈은 무엇을 향해 뜨고 있는 걸까? 누구를 향해 숨겨진 이면을 열어 보이는 걸까? : 앞으로 제기될 모든 질문을 향해. 채워지지 않는 이해의 욕구를 향해. 젊은 부모는 몸의 기운을 다 빼고 난 뒤 정신의 기운까지도 다 탕진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들이 피곤해하는 건, 자기들의 일에 끝이 없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다. …… 그레구아르의 속눈썹이 닫힌다…… 그레구아르가 잠이 든다…… 아기를 침대에 눕히는 실비의 태도는 경건하리만치 조심스럽다. 이 전지전능한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처럼 보이는 놀라운 재주를 갖고 있다.

(339)

우리처럼 소심한 보통 사람들이 자기 능력으론 조금도 제어할 수 없는 기계들(비행기, 기차, , 자동차, 승강기,  롤러코스터)을 어떻게 맘 편하게 믿고 생명을 맡길 수 있는 건지! 사용자의 수가 워낙 많다는 사실이 우리의 걱정을 가라앉히는 건 아닐까? 다시 말해 인간의 지성을 믿는다는 얘기다. 그토록 많은 능력자가 힘을 모아 이 기계를 만들었고, 그토록 많은 비판적 지성이 매일매일 그것들에 자기 몸을 맡기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뭔가. 거기다 통계학적 논거까지 덧붙인다. 목을 러뜨릴 위험은 그런 기계 안에 들어가 있을 때보다 길을 건널 때 오히려 더 크다는 식으로. 또한 운명의 힘이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운명을 기계의 우연에 맡겨야 한다고 해서 속상해할 것 없다. 악의를 가졌을지도 모르는 세포 대신에 차라리 순진한 기계가 우리 운명을 결정짓도록 놔두는 게 낫다.

(458)

내 몸과 나는 서로 상관없는 동거인으로서, 인생이라는 임대차 계약의 마지막 기간을 살아가고 있다. 양쪽 다 집을 돌볼 생각을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사는 것도 참 편안하고 좋다. 그러나 최근의 혈액검사 결과를 보며, 이젠 마지막으로 펜을 들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평생 자기 몸에 관해 일기를 써온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을 거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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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강수량은 땅의 단단한 정도를 결정한다. 비가 적게 오는 서양의 땅은 단단하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돌이나 벽돌 같은 무겁지만 단단한 건축 재료를 이용해서 벽으로 지붕을 받치는 벽 중심의 건축을 했다. 반면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인 동양은 장마철에 땅이 물러지기 때문에 무거운 재료로 만든 벽은 쓰러진다. 따라서 가벼운 건축 재료인 나무를 사용하였고, 자연스럽게 나무 기둥으로 지붕을 받치는 기둥 중심의 건축을 하게 되었다.


(62-3)

벼농사는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때 많은 물을 다뤄야 하기에 치수를 위한 토목 공사가 많이 필요하다. 물을 담는 작은 저수지인 를 만들어야 하고 모내기도 집단으로 모여서 한다. 벼농사를 지을 때는 저수지나 다른 사람의 땅에서 사용한 물을 내 논으로 내려 받아서 사용하고 다시 그 물을 물길을 내어서 이웃의 땅으로 전달해 주어야 한다. 벼농사에서는 농사에 가장 중요한 물을 함께 힘을 합쳐서 공동으로 사용해야만 한다. 시기를 놓치면 농사가 어려운 품종이기 때문에 노동의 형태도 집단적으로 집중해서 심고 태풍이 오기 전에 집중적으로 추구하는 형식을 띤다. 이러한 노동의 과정을 통해서 벼농사 지역은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과 집단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게 된다. 벼농사는 옆에 있는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지을 수 없다. 다른 말로, 이웃과 잘 지내지 않으면 생존을 위협받는 것이 벼농사 지역에서의 삶이다. 그래서 벼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우리 할머니는 서울에 와서도 이웃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생활하셨다.


(64)

반면 밀 농사는 씨 뿌리는 모습부터 다르다. 벼농사를 지을 때는 함께 줄을 맞추어서 모를 심지만, 밀 농사 지을 때는 땅 위를 혼자 걸어 다니면서 씨를 뿌린다. 집단으로 모여서 일하는 경우가 적다. 밀은 맨땅에서 자라고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비가 집중호우 없이 적당히 고루 내리는 지역에서 농사짓기 때문에 관개수로를 만들 필요도 없다. 밀 농사는 벼농사에 비해서 서로 협력할 필요도 없고, 모여서 살 필요도 적다. 자연스럽게 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관개수로 토목공사를 하고 집단 모내기를 하면서 벼농사를 짓던 사람에 비해 개인주의적 성격이 만들어지게 된다. 벼농사 지역의 이혼율이 밀 농사 지역보다 매우 낮은 이유도 이와 같은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유럽 여행을 가면 자연 속에 오두막이 띄엄띄엄 있는 평온한 시골 풍경을 볼 수 있는 반면, 동양의 시골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다. 농사 방식은 마을의 풍경도 다르게 만들었다. 노동 방식이 문명의 성격을 결정지은 것이다.


(77)

기둥 중심의 건축으로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건축 공간이다 보니 여러모로 주변과의 관계가 중요한 건축으로 발전했고, 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집단행동이 필요해져 사람 간의 관계에 무게를 두는 가치관이 형성됐다면, 건축을 통해서는 사람과 건축과 주변 자연환경과의 관계에 무게를 두는 디자인관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113)

바둑과 동양 건축물의 배치 모습에서도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만약 바둑돌을 건물이나 담장으로 보고, 바둑돌이 만드는 빈 집을 마당으로 본다면, 바둑판의 돌이 놓인 패턴과 동양 건축물 배치의 패턴이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바둑돌들이 둘러싸서 빈 공간을 만들 듯이 동양 건축에서는 건물과 담당으로 둘러싸서 마당 같은 빈 공간을 만들면서 건축물이 성장한다. 혹은 검정색 돌이 건축물, 흰색 돌이 자연이라고 생각하고 보아도 좋다. 둘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패턴이 정해지고 곳곳에 빈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 바둑과 동양 건축의 공통점이다.


(117)

서양의 문화는 양식이라는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의 반복을 통해서 공간을 만들어 가는 형식이다. 이는 마치 체스에서 각각의 말들이 다른 형태의 규칙과 위계를 가지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양식 혹은 규칙을 만들고 규정하기 좋아하는 것이 서양 문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동양의 나무 기둥과 보를 가지는 구조 양식은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다만 건물은 놓인 대지의 조건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반응하면서 건물의 배치를 변화시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유기적이고 상대적인 공간을 연출해 왔다. 물론 여기에도 풍수지리 같은 보이지 않는 규칙은 존재했지만, 그 풍수지리라는 규칙도 물과 산과 사람의 상대적인 관계에 관심의 초점이 있다. 이렇듯 동양 건축은 양식보다는 상대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여겨 왔다.


(153)

극동아시아 문화는 유교가 지배적이었다. 사후 세계보다는 현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땅 위에서의 현실 삶에서 충이나 효 같은 관계를 중요시했다. 기둥 구조를 써서 기둥과 기둥 사이로 주변 환경이 잘 보이는 동양의 건축은 땅과 연결되어서 집을 짓는 개미처럼 주변 환경과의 관계성이 중요시 되는 건축의 성격을 띤다. 반면에 유럽은 이집트, 그리스, 기독교에서 공통적으로 사후 세계, 이데아의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위로부터 오는 형이상학적 원칙을 중요시 했다. 이들은 땅과는 관련 없이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관념적으로 무에서 새로운 법칙을 만든다. 이러한 문화적인 특징은 주변의 아무런 영향 없이 내제된 법칙에 의해서 허공에 집을 짓는 벌과 비슷하다. 서양의 공간은 주변과의 관계를 맺지 않고 자족적이고 자기 완결적이기 때문에 벌집처럼 기하학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피라미드판테온도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자족적인 법칙에 의해서 디자인되었다. 그리고 그 법칙은 수학적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렇게 서양의 종교적 공간은 기하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184)

도자기에 그려진 중국식 정원 디자인과 중국 철학은 자연을 대하는 유럽인의 자세를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곧바로 정원 디자인에 반영되어서 기존의 기하학적 형태의 정원 디자인에서 야생 상태의 자연으로 환원시키듯 디자인하는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인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우리가 알 만한 정원 중 픽처레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곳은 뉴욕 센트럴 파크. ‘센트럴 파크가 있는 지역이 지금의 공원처럼 원래 그렇게 나무가 울창하고 시냇물이 흐르는 곳은 아니었다. 그곳의 언덕, 나무, 수 공간 등은 실제 자연을 재현해 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디자인되고 건설된 것이다. 실제로 센트럴 파크의 호수는 인공 호수고 흐르는 물은 모터 펌프를 이용해서 물을 공급하는 곳도 있다. 이처럼 자연을 모방해서 자연스럽게디자인하는 것이 픽처레스크 정원 양식이다.


(240, 241)

인터넷에서 르 코브쥐이에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근대 건축의 5원칙이 나온다. 근대 건축의 5원칙은 근대 건축이라면 가질 법한 다섯가지 특징을 코르뷔지에가 정리해 놓은 것이다. 여기서 간단히 소개한다면, 1. 필로티, 2. 옥상 정원, 3. 자유로운 평면, 4. 자유로운 입면, 5. 리본 수평창이다.

그런데 사실 르 코르뷔지에가 이야기한 근대 건축의 5원칙이라는 것이 두 번째 항목인 옥상 정원을 제외하고 나면 다 동양의 기둥식 구조의 건축에서 보이는 디자인과 거의 똑같다.


(245)

생각은 창작아 자신이 의식을 하건 안 하건 상관없이 영향을 받고 진화하는 법이다. 산업혁명으로 늘어난 제품들을 팔기위해서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를 비롯해서 1886년에는 에펠탑이 지어진 파리 만국박람회,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등 수많은 박람회의 국가관을 통해서 세계 각국의 건축 디자인이 교류되고 소개되었다. 이러한 문화적인 흐름 속에서 이미 서양의 문화는 다른 대륙의 문화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러한 거대한 시대 흐름 속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공간에 대한 생각이 서양식에서 동양식으로 점차적으로 진화해 갔을 것이다.


(310)

그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과 같이 공간이 넘쳐 나는 지역에서는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 거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건축이 발전해 왔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대표적인 예다. 멀리 떨어진 도시로 이동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발전한 건축 시스템이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 같은 섬나라에서는 공간이 부족하고 시간을 오히려 남는다. 이런 경우에는 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지연시키는 쪽으로 건축이 발전해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같은 면적의 공간이라도 이동 시간을 늘리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면 많은 기억이 남게 되고, 따라서 공간이 더 넓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일본 전통 정원의 경우, 좁은 공간을 넓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일본 전통 정원의 경우, 좁은 공간을 넓게 인식되게 하려고 분절되고, 회전하고, 돌아가는 식의 장치를 만들어서 시간을 지연시켰고 그렇게 함으로써 같은 공간이라도 실제보다 더 넓게 인식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357)

건축에서 가장 변화하지 않는 것은 중력이라는 법칙이다. 많은 건축이 다양한 디자인을 하지만 태초부터 바뀌지 않는 건축의 본질은 중력과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대 건축에서는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형태의 건축물이 디자인되기도 한다. 구조적으로 파격적인 디자인은 본능적으로도 파격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항상 감동을 준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랜드마크 건물은 구조적으로 만들기 어려운 건축물들이었다. 이런 현상을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388)

한 공간에 모이지 못하면 종교는 집단 공간이 만드는 권력을 잃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염병은 종교 단체 최고의 적이다. 역사적으로 중세 때 흑사병으로 천 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위를 가졌던 교회가 힘을 잃었고, 이후 르네상스라는 인문 개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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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우리 몸은 거의 줄곧 다소 완벽하게 조화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37.2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우주이다. 두통, 배앓이, 별난 멍이나 뾰루지는 모두 우리가 불완전함을 선언하는 정상적인 과정들이다. 우리를 죽일 수 있는 것들은 수천 가지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집대성한 국제 질병 사인 분류에 따르면, 8,000가지가 넘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하나를 전부 피하다가 한 가지에 걸릴 뿐이다. 우리 대다수에게는 그리 나쁜 장사가 아니다.

(21)

인간 삶의 기적은 우리가 어떤 약점들을 타고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의 유전자는 심지어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 인간도 아니었던 먼 조상들로부터 온 것임을 잊지 말기를, 그들 중에는 물고기도 있었다. 작고 털로 덮이고 굴속에서 살던 조상들도 많았다. 우리의 체제는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우리는 30억 년에 걸친 진화적 비틀고 다듬기의 산물이다. 아예 새롭게 시작하여 우리 호모 사피엔스에게 필요한 것들을 갖춘 몸을 지닌다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무릎과 등이 망가지지 않은 채 서서 걷고, 목이 메어 캑캑거릴 위험 없이 음식을 삼키고, 자판기에서 뽑아내듯이 아기를 쑥쑥 낳는 몸을 갖춘다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따뜻하고 얕은 바다에서 떠다니는 단세포 방울로서 기나긴 역사를 거치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 뒤로 일어난 모든 일들은 하나의 기나긴 흥미로운 사건이었지만, 꽤 영광스러운 사건이기도 했다.

(37)

우리 손가락 끝에 소용돌이무늬를 만들게 한 진화적 명령이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모른다. 우리 몸은 수수께끼로 가득한 우주이다. 몸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는 우리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분명히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어나는 일도 아주 많을 것이다. 어쨌거나 진화는 우연한 과정이니까. 지문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개념은 사실은 하나의 가정이다. 당신과 지문이 일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그 누구도 절대적으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정확히 똑 같은 두 개의 지문을 발견한 사람이 아직까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43)

피부에서 자주 일어나지만, 왜 일어나는지 이유를 제대로 모를 때가 많은 또 한 가지가 바로 가려움이다. 모기에게 물렸거나 뾰루지가 났거나 쐐기풀에 찔려서라는 식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가려움도 아주 많지만,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가려움도 아주 많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독자는 조금 전까지도 전혀 가렵지 않았던 이곳저곳을 긁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 그냥 내가 가려움이라는 말을 꺼내서이다. 우리가 가려움 쪽으로 왜 그렇게 암시에 쉽게 넘어가는지, 아니 뚜렷한 자극 요인이 전혀 없음에도 왜 가려움을 느끼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뇌에서 가려움을 전담하는 영역은 따로 없으므로, 가려움을 신경학적으로 연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76)

뇌의 크나큰 역설은 우리가 세계에 관해 아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는 결코 세계를 본 적도 없는 기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공된다는 점이다. 뇌는 지하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소리도 빛도 없는 곳에 있다. 통증 수용기도 전혀 없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따뜻한 햇볕도 부드러운 바람도 결코 느끼지 못한다. 우리 뇌에는 세계가 그저 모스 부호를 두드리는 것 같은 전기 펄스의 흐름일 뿐이다. 뇌는 당신을 위해서 이 밋밋하고 중립적인 정보로부터 활기차고, 삼차원이고, 감각적인 우주를 만든다. 말 그대로 창조한다. 당신의 뇌가 바로 당신이다. 그밖의 모든 것은 그저 배관과 비계(飛階)일 뿐이다.

(116)

더욱 비정상인 부위는 코이다. 포유동물은 대개 둥그스름하게 튀어나온 코가 아니라, 주둥이가 달려 있다. 하버드 인류진화생물학과 교수 대니얼 리버먼은 인간의 코와 그 안의 복잡한 굴이 호흡 효율을 높이고, 오래 달릴 때 과열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에 도움을 주려고 진화했다고 본다. 이 배치는 분명히 우리에게 딱 맞는다. 인류와 그 조상들은 약 200만 년 동안 튀어나온 코를 가지고 있었다.

(157)

한마디로 목젖은 신기한 부위이다. 우리 몸에서 가장 커다란 입구, 지나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입구의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로 이상하게도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우리가 목젖을 잃을 일이 거의 없을 것이 분명하며, 설령 잃는다고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기이하게도 이중으로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178)

적혈구는 수명이 약 4개월이다. 쉴 새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바쁘게 일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제법 길다. 그 기간에 몸을 약 15만 번, 수백 킬로미터를 돌 것이다. 이윽고 너덜너덜해지면 청소 세포(scavenger cell)가 수거하여 지라로 보낸다. 지라는 매일 약 1,000억 개의 적혈구를 폐기한다. 분해된 적혈구는 대변을 갈색으로 만드는 주된 요소이다.(같은 과정의 부산물인 빌리루빈은 소변을 노랗게 만들며, 멍히 사라질 때 노랗게 변하는 것도 빌리루빈 때문이다.)

(200)

뇌하수체는 종종 으뜸샘(master gland)이라고 불린다. 아주 많은 것들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뇌하수체는 성장 호르몬, 코르티솔, 에스트로겐, 테스토스테론, 옥시토신, 아드레날린 등 많은 호르몬을 생산하거나 그 생산을 조절한다. 운동을 격렬하게 하면, 뇌하수체는 엔도르핀을 혈액으로 분출한다. 엔드로핀은 먹거나 섹스를 할 때에 분비되는 바로 그 화학물질이다. 엔도르핀은 아편제와 아주 비슷하다. 오랜 달릴 때면 느끼는 쾌감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도 이 물질 때문에 나타난다. 우리 삶에서 뇌하수체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우리가 그 기능을 대강이라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도 한참 지나서였다.

(254)

운동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점은 명백하지만,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덴마크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 18,000명을 조사한 연구자들은 규칙적으로 달리는 사람이 달리기를 하지 않는 사람보다 기대수명이 5-6년 더 길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과연 그 혜택이 진정으로 달리기 덕분일까? 아니면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아무튼 더 건강하고 절제하는 삶을 사는 경향이 있어서, 땀을 흘리며 뛰든 말든 간데 더 게으른 사람들보다 결과가 더 낫게 나온 것일 것?

(304)

문제는 당시의 흡연자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았지만-1940년대 말에는 미국 성인 남성의 80퍼센트가 피워댔다-폐암에 걸리는 사람은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비흡연자들 중에서도 폐암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따라서 흡연과 폐암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이 아주 명확해 보였다고는 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이 아주 많은데 그중 일부만 죽는다면, 그 죽음을 한 가지 원인 탓으로 돌리기가 어렵다. 폐암의 증가가 공기 오염 때문이고 본 전문가들도 있었다. 도로 포장용 아스팔트의 사용 증가가 원인이라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

(307-8)

딸국질은 가로막이 갑작스럽게 경련하면서 수축하는 현상이다. 그럴 때 후두가 놀라서 갑자기 닫히면서 딸꾹 하는 소리가 난다. 딸꾹질이 왜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딸꾹질 세계 기록은 아이오와 주 북서부에 살던 찰스 오스본이라는 농민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는 67년 동안 계속 딸꾹질을 했다. 딸꾹질은 1922년 오스본이 도살하기 위해서 무게가 130킬로그램인 돼지를 들어올리려고 할 때 시작되었다. 무엇인가 딸꾹질 반응을 촉발했다. 처음에는 1분에 약 40분이나 딸꾹질이 나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1분에 20번까지 줄어들었다. 그는 거의 70년 동안 약 43,000만 번 딸꾹질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0년 여름, 갑자기 수수께끼처럼 딸꾹질이 멎었고, 그는 다음해에 세상을 떠났다.

(356)

모든 동물은 잠을 자는 듯하다. 선충과 초파리 같은 아주 단순한 동물들조차도 꼼짝하지 않는 시간이 있다. 필요한 수면 시간은 동물에 따라 크게 다르다. 코끼리와 말은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잔다. 그들이 왜 그렇게 조금 자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른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훨씬 더 많이 잔다. 포유동물 중 수면 챔피언이라고 여겨지는 동물은 세발가락나무늘보로서, 하루에 20시간까지도 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수면 시간은 포획된 개체들을 연구한 결과이다. 즉 주변에 포식자가 없고 달리 할 일도 없는 개체들이었다. 야생 나무늘보는 하루에 10시간 남짓 잔다. 즉 우리보다 엄청나게 더 많이 자는 것은 아니다. 특이하게도 몇몇 조류와 해양 포유류는 한 번에 뇌의 절반씩만 잘 수 있어서 반쪽이 쿨쿨 자는 동안 다른 반쪽은 깨어 있다.

(370-1)

우리가 하품을 왜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태아도 엄마 뱃속에서 하품을 한다. (딸꾹질도 한다.) 혼수상태인 사람도 하품을 한다. 하품은 우리의 삶에서 아주 흔하게 접하는 것이지만, 하품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몸에 지나치게 많이 쌓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일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나와 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인지를 설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 차가운 공기를 머리로 집어넣어서 졸음을 조금이라도 쫓는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하품을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운이 샘솟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지금까지 그 어떤 연구도 하품과 활력 사이에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 적이 없다. 심지어 하품이 피로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사실 하품을 가장 많이 하는 시간은 밤에 잠을 푹 자고 일어났을 때의 처음 2분 동안이다. 가장 푹 쉬었을 때 말이다.

(481)

이런 건강의 차이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연령대에 걸쳐서 나타난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세계의 다른 부유한 국가들에서 태어나는 아이보다 유년기에 사망할 확률이 70퍼센트 더 높다. 부유한 국가들 중에서 미국은 의학적 건강의 거의 모든 척도에서 최저 수준이거나 그 근처에 놓인다. 만성 질환, 우울증, 약물 남용, 살인, 십대 임신, HIV 감영 면에서도 그렇다. 낭성섬유증 환자도 미국보다 캐나다에서 평균 10년을 더 오래 산다. 아마 가장 놀라운 점은 이 모든 불행한 결과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시민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일 것이다. 대학 교육을 받은 부유한 백인 미국인들도 다른 나라들의 비슷한 사외, 경제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서 열악한 양상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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