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이걸로 슈마허에게 가르쳐줘. 전봇대를 받아 탑승자를 다치게 할 바에야 길고양이를 치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는 걸. 애들한테 걷어차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가르쳐주듯. 세희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눈으로 볼 거 없어. 이미 다 있는 거, 우리 다 하고 있는 거야. 보험사에는 평가액, 은행에는 신용 점수가 있고, 결혼 정보 회사에도 입사 시험에도 학교 시험에도 다 있잖아. 등급, 석차, 점수, 우리 이마엔 이미 바코드가 찍혀 있어. 리더기만 들이대면 하고 얼마짜린지 다 나와. 모른 척하고 아닌 척할 뿐이지.


(164)

사랑만이 고통에도 의미를 주니까요. 그 고통엔 의미가 있어 더욱 고통스러워니까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고통을 견디는 것도 의미가 있는 거예요. 무의미하기만 한 고통은 그걸 겪고 견디는 우리들끼리 무의미하게 만드니까요. 오로지 휘몰아치는 고통만이 있을 뿐이고 우리도, 다른 모든 것도 거기에 이리저리 휘날리기만 하는 티끌들인 거예요. 영인은 쓸쓸히 창밖을 봤다.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다들 그러죠. 자기 인생을 쓰면 책 한 권은 너끈히 될 거라고 하지만 그 책의 대부분은 지루하고 하찮기만 할 거예요.


(198)

어떤 것이 자율이라는 건 필연히 다른 것들이 타율이라는 뜻입니다. 간단한 논리의 문제죠. 무버에 적혀 있는 말처럼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필연히 움직이지 않는 단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밭솥을 생각해보면 쉽죠. 인공지능이 알아서 밥을 짓는다고 우리가 자율밥솥이라고 하나요? 자동밥솥일 뿐이고 자율주행도 결국엔 자동주행일 뿐이죠. 그 반대라면 우린 밥솥이 무슨 밥을 짓든 먹을 수밖에 없고 차들이 어떻게 주행하든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명백한 횡포고 억압이며 사실 별로 낯선 것도 아니죠. 늘 가장 강력하고 악독한 횡포와 억압은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져왔으니까요. 우리가 지금 얼마나 자율적으로 서로를 혐오하고 배척하는지 생각해보면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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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스스로 만든 지옥은 흥미로운 구조물이다. 누구나 평생에 적어도 한 번은 만들게 되어 있다. 어떤 이들의 삶은 그런 지옥일 뿐이다. 성격이 불행을 자초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롤런드는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자기 손으로 고문 기계를 만들고 그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특정한 작업 혹은 술이나 마약 중독 혹은 발각될 위험이 있는 범죄 등 각자에게 맞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금욕적인 종교도 선택지에 들어갈 수 있다. 전체적인 정치체제가 고통을 자초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그때 한때 동베를린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결혼은 이인용 고문 기계로 킹사이즈의 가능성, 공유 정신병의 모든 변종을 아우른다.


(104-105)

유럽 전역에 자기기만의 구름이 드리웠다. 서독의 한 텔레비전 채널은 방사능의 독기가 복수라도 하듯 소비에트 제국만 오염시키고 서구는 안전할 거라고 확신했다. 동독의 한 정부 대변인은 인민의 발전소를 파괴하려는 미국의 음모에 대해 언급했다. 프랑스 정부는 방사능구름의 남서쪽 가장자리가 프랑스와 독일 사이 국경과 일치한다고, 그 구름은 국경을 넘을 권한이 없다고 믿는 듯했다. 영국 당국은 대중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은 없다고 선언했지만, 사천 개의 농장을 폐쇄하고, 사백오십만 마리의 양을 판매 금지하고, 수천 톤의 치즈를 거둬들이고, 어마어마한 양의 우유를 배수로로 흘려보냈다. 모스크바에서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아기들과 아이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우유를 마시게 내버려뒀다. 하지만 곧 이기주의가 만연해졌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상사태에 정면으로 맞서야 했고, 그런 일은 비밀리에 일어날 수 없었다.


(150)

천재가 인생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 연주도 하고, 요트도 타고, 명성도 좋아하고, 자신의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순수한 기쁨도 느끼며 충분히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지저분하게 이혼하고, 양육권 싸움을 하고, 여자 문제로 골치를 앓으며, 다비트 힐베트르가 자신의 업적을 가로챌 거라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양자역학을 비판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빚진 뛰어난 시달리고, 양자역학을 비판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빚진 뛰어난 젊은이들과 갈등을 빚었다. 차라리 멍청하거나 평범한 게 나을까? 그렇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멍청이도 불행에 이르는 자기만의 길이 있다.


(227-228)

베를린과 저 유명한 앨리사 에버하르트는 어떻게 그의 인생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롤런드는 그의 일상에 정착한 과대망상적인 기분에 젖어, 자신의 존재를 형성하고 결정지은 크고 작은 개인적이고 세계적인 사건 사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곤 했다. 그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었다-모든 인간의 운명이 그런 식으로 정해지니까. 전쟁만큼 개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공적인 사건은 없었다. 만일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해 이등병 베인스가 소속된 스코틀랜드 사단이 이집트 주둔 계획을 철회하고 북프랑스로 가서 됭케르크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그가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전투 부적격 판정을 받아 올더숏에 배치되어 1945년에 로절란드를 만나는 일이 없었더라면, 롤런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젊은 제인 파머가 전후에 영국 식단을 개선하겠다는 시릴 코널리의 뜻에 따라 후딱 알프스를 넘어갔더라면, 앨리사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흔하면서도 경이로운 일이었다.


(344-345)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어쩌면 내가 틀렸는지도 몰라. 난 완전히, 그리고 빨리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어. 잔인한 짓이었고, 미안하게 생각해. 정말 미안해…… 그게 늘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야. 당신이 매일 섹스를 요구하는 거. 하지만 아기는…… 아기의 요구는, 아기는 나를 소멸시켰지. 아기와 당신……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어. 생각도, 인격도, 바라는 것도, 바라는 건 잠뿐이었지. 난 침몰하고 있었어. 벗어나야만 했어. 집을 떠난 날 아침……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그게…… 그 이야긴 안 할래. 당신은 좋은 아빠고 래리는 어리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당신도 괜찮아질 거라고, 조만간. 난 괜찮지 않았지만 이미 선택을 했으니 내가 해야 하는 걸 했어. 이거.”

그녀는 다시 토트백에 손을 넣어 그가 카페에서 본 책을 꺼냈다.


(393)

현대 가정의 중심은 더 이상 거실이나 응접실, 가장의 서재가 아니다. 이제 주방이 중심이며, 주방의 중심은 식탁이다. 아이들이 대화와 관련된 무언의 규칙, 타인과 어울리는 법 같은 기본적인 예의를 배우는 곳이니까. 아이들은 평생 습관이 될 규칙적인 식사의 중요한 리듬과 의식을 습득하고, 식사 후 정리를 도와주는 간단한 첫 의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식탁은 우편물을 뜯어보고, 주인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손님으로 온 친구들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467)

요란한 논쟁, 떠들썩한 분석, 두려운 예언, 축하, 분노 어린 한탄, 그의 삶이 그에게서 흘러나가고 있었다. 삼 주 전 일이 벌써 희미해지거나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걸 조금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안 그러면 살아갈 가치가 거의 없을 테니까. 그가, 그리고 최근에 만난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읽고, 보고, 이야기한 것. 사적이거나 공적인 삶. 자신의 실패와 불만과 꿈은 담지 않기로 했다. 마침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거나 하는 날씨 이야기도,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쏜살 같은 시간이나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좋았던 기억과 나빴던 기억에 대해서도, 오직 그가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한 말만 담기로 했다. 적어도 하루에 반시간은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정신. 해마다 새 노트를 쓰는 것이다. 다 채우든 못 채우든. 일 년에 노트 세 권을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십 년, 지극히 운이 좋으면 삼십 년. 그럼 아흔 권이 된다! 아주 장대하고 단순한 프로젝트였다.


(472-473)

롤런드는 이십대 후반, 독학에 전념할 때 과학에는 미지근한 정도의 관심만 있었다. 공부는 계속하면서도 과학에는 인간미가 결여되어 있다고 믿었다. 화산, 떡갈나무 잎, 성운 같은 것의 숨겨진 작용-다 좋지만, 그를 매료시키지는 못했다. 과학은 인간이 혼자 또는 함께 번영하거나 실패하고, 사랑이나 미움을 느끼고 결정을 내리는 중요한 영역에 자리잡았을 때, 미약하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제안만 내놓았다. 이미 알려진 것, 정신의 평행우주에서 오래전부터 이해되거나 뇌 안의 사건들에 대해 자명한 이치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물리적 설명을 제공했다. 이를테면 개인적 갈등 같은 일에. 그건 오디세우스가 이십 년 동안 집을 떠났다가 절룩거리며 돌아왔을 때 그와 페넬로페 사이에 부부싸움이 벌어진 후로 문학에서 이천칠백 년 동안 알고 논쟁해온 문제였다. 이것도 이타카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쩌면 그들이 나중에 화해할 때 페넬로페의 동맥에 다른 많은 물질과 함께 옥시토신이 흐르고 있었음을 아는 건 흥미로울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우리에게 그들의 사랑에 대해 무엇을 더 말해주겠는가?


(600)

소중한 내 사랑, 언제든 당신이 원할 때 나를 강에 뿌려줘. 이십 년이 걸린다 해도 상관없어. 당신 혼자 힘으로 다리까지 와서, 우리가 서 있었던 곳에 서서 우리에 대해, 그때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만 하면 돼. 난 십대 때 불가리아인과 사랑에 빠졌지. 그는 언젠가 유명한 시인이 되겠다고 했어. 그 꿈을 이뤘는지 궁금하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으니까. 나는 사십 년 넘게 지난 뒤 같은 장소로 돌아가서 당신과 사랑에 빠졌지. 아니, 오래전까지 당신을 사랑했음을 깨달았지. 차를 몰고 당신과 함께 산길을 달리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옆에 앉아서 지도도 봐주고, 펜션의 조율도 안 된 피아노로 내가 신청한 감상적인 곡을 연주해준 당신, 정말 고마워. 다 고마워. 이 여행이 당신에겐 고통이리라는 거 나도 알아. 당신에게 고마워해야 할 또하나의 이유지. 이 아름다운 강을 당신 혼자 찾아오게 해서 정말 미안해. 내 사랑,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잊지 마! 대프니.


(674)

롤런드에게 죽음의 한 가지 심각한 문제점은, 이야기에서 제외된다는 점이었다. 이야기를 이렇게 멀리까지 따라왔으니,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에게 필요한 책은 한 해에 한 장씩 백 개의 장으로 구성된 21세기 역사였다. 상황을 보아하니, 그는 그 책의 4분의 1도 읽지 못할 것 같았다. 그저 목차를 훑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재앙적인 지구온난화는 막을 수 있을까? 중국과 미국 간의 전쟁이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될까? 전 세계로 퍼진 인종차별적 민족주의가 더 관대하고 건설적인 무언가로 대체될 수 있을까? 우리는 현재 진행중인 대멸종을 되돌릴 수 있을까? 열린사회가 번영할 수 있는 새롭고 더 공정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우리를 현명하게 만들어줄까, 아니면 미치거나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까? 우리는 이 세기를 핵미사일 교환 없이 관리할 수 있을까? 그가 보기에는, 그저 무사히 21세기의 마지막날, 책의 마지막 장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한 승리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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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165)

너는 다른 남자들이 즐기는 것을 보면 늘 좋아했고, 너도 조금 즐겼다. 나 역시 지금 내가 아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전에 나는 앎에는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에는 아무리 배워도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침대 옆 장에 책을 잔뜩 쌓아놓고 밤늦도록 읽어치웠고, 책을 팔아서 다음 책을 사는 데 보탰다. 시간이 지나면 배움이 줄어들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지나치게 많이 안다. 나 자신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이야기를 엿들은 사람이 된 기분이다. 그러므로 천천히 해야 한다.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혼자서만 알고 있어야 한다. 너무 가득 담긴 잔을 들고 있어서 쏟을까 봐 못 움직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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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단군왕검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건국합니다. 고조선의 건국 시기는 조선시대 역사서인 <동국통감>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기원전 2333년으로 잡고 있는데요. 앞서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가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고조선이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고 했으니 이러면 시기가 맞지 않지요. 이유를 볼게요. 예전에는 한반도에서 기원전 1000년경 청동기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그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어요. 현재는 기원전 2000년까지 올라갔는데,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어쩌면 이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어요. 현재는 기원전 2000년까지 올라갔는데,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어떠면 이 시기가 더욱 앞당겨질지도 모릅니다. 기록과 고고학적 성과가 맞닿게 되는 시점도 곧 올 거라 생각됩니다.

 

(65-66)

백제는 신라나 고구려에 비해 존재감이 상당히 미약합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쓸 때 백제에 대한 기사를 많이 빼버린 탓도 있고, 일제 강점기의 식민사관이 백제에 대한 내용들을 왜곡 또는 축소해버린 데에도 원인이 있지요. 하지만 이런 식의 문제적 기록 태도는 흔하게 목격됩니다. 아무리 객관성을 표방하는 역사 서술이라고 해도 서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역사를 살필 때 해당 역사서가 쓰인 시대의 배경을 반드시 함께 둘러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백제는 결코 만만하고 왜소한 나라가 아니었어요. 한때 고구려 땅은 물론 요서와 일본까지 진출했던 강대국입니다.

 

(72)

도읍을 사비로 옮겼지만, 백제의 본거지는 어디까지나 한강 유역이에요. 백제가 명실상부하게 강국의 위치에 오르려면 자신의 근거지임과 동시에 한반도의 중심인 한강 유역을 확보해야 합니다. 성왕은 백제의 근거지인 한강을 되찾기 위해 신라의 진흥왕과 손을 잡아요. 아직까지는 혼자 힘으로 고구려를 상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 동맹을 통해 백제는 한강 하류를 되찾지만 진흥왕의 배신으로 한강을 도로 빼앗기게 됩니다. 이에 격분한 성왕이 진흥왕과 일전을 벌였다가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백제는 다시 한 번 위기에 빠집니다.

 

(165-166)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지배층에 보내는 위험신호였어요. ‘이대로는 안 되니 개혁하라는 일종의 주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종은 즉위 초 개혁 정치를 좀 하는가 싶더니 이내 정치를 멀리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집니다. 정치 기강은 더욱 문란해질 수밖에 없지요. 문벌귀족 역시 이겼다고 기고만장합니다. 자기들 배불리기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문벌귀족들은 또한 군인에게 지급되던 군인전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요. 중앙군인 2 6위는 직업군인입니다. 월급을 받아서 먹고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월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으니 군인들이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문벌귀족들은 자신의 특권을 강화하고 권력을 집중시키느라 무신을 차별합니다. 재상으로의 승진도 제한하고, 심지어 과거시험에 무과를 두지도 않았어요.

 

(244-245)

일제는 자신들의 국권 탈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식민사관을 내세웁니다. 특히 조선시대 붕당정치를 두고 이른바 당파성론을 만들어냈는데요. 한국인은 정치적으로 서로 싸우기를 좋아하는 민족성을 가져 망국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논점이에요. 하지만 이 붕당정치는 일본인은 해보지 못한 선진정치였습니다. 같은 시기의 일본은 꿈도 꾸지 못할 정당정치가 조선 중대에 이뤄지고 있었던 겁니다. 붕당정치는 일종의 정치 투쟁인데요. 주로 상소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냈습니다. 한 세력이 독재하지 못하도록 소수파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인데요. 이는 분명 정치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측면도 있습니다. 붕당정치는 공존이 바탕이 되는 정치 시스템이었어요. 이랬던 붕당정치가 왜곡으로 치달은 것은 일당전제화가 되면서부터입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 환국정쟁으로 변길되면서 폐해가 불거지는데요. 일제의 식민사학자들이 초점을 맞춘 것은 바로 이 시기의 모습입니다. 이걸 전체로 확대 해석하여 마치 붕당정치 자체가 모순인 것처럼 한국인의 국민성까지 들먹였던 거예요.

 

(346)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일본과 국교를 단절하지만 17세기가 되자 일본과의 관계가 다시 풀리기 시작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 막부가 다시 수교할 것을 요청해온 탓입니다. 1607, 조선 정부에서는 승려 유정 등을 일본에 보내 조선인 포로들을 송환해오게 합니다. 임진왜란 때 금강산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한 사명대사 유정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담판하여 조선인 포로 1500명을 데리고 돌아옵니다.

 

(376)

학문에서는 양명학과 실학이 나옵니다. 관념을 앞세우는 성리학과 달리 양명학은 실천을 중시해요. 예컨대 사과를 하나 가져와서 이 사과의 맛을 평가하시오리고 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성리학은 이 사과의 는 무엇일까. ‘는 무엇일까, 이 사과가 맛있다고 하면 그것은 일까, ‘일까 하고 자꾸만 관념적으로 해석하려 들어요. 반면에 양명학은 사과를 덥석 깨뭅니다. 먹어봐야 맛이 있는지 없는지 평가할 수 있다는 거죠. 실학은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합니다. 이는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자는 학문으로 일상생활과 밀접한 내용들을 연구합니다.

 

(400)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어요. 건국이념도 체제 유지 이념도 성리학이었습니다. 조선의 성리학은 16세기 들어 절정의 꽃을 피우다가 양 난 이후 삼정의 문란과 더불어 사회의 지평이 흔들림에 따라 존립마저 위태로워집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자리를 자주적이고 민족적이며 근대 지향적인 실학에 내어주지요. 하지만 조선 후기 실학자에겐 개혁을 이뤄낼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결국 비주류로 묻히고 말아요. 또한 조선 후기에는 사회적으로 신분제가 동요하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트는 등 변화의 바람이 일었지만 지배층은 성리학만을 내세우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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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그러니까 내 말의 포인트는 이거야. 인간은 자꾸 동물을 인간화시키려고 해. 그것도 자기와 친한 동물들만. 그러면서도 인간의 동물화는 참지 못하는 게 또 인간이야. 그러니까 개만도 못한 인간, 돼지 같은 인간, 이런 말에 심한 모욕을 느끼잖아. 나는 말이야. 그게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 무언가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수치심과 모욕을 느끼게 하는 거. 내 말 이해했어?”


(470)

물론 왕세자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프랑스가, 나폴레옹이, 도무지 자신을 왕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었다. 스페인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총사령관 뮈라 장군에게(그는 나폴레옹의 매제이기도 하다) 소식을 넣었으나, 그는 새 국왕을 예방하러 오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핀토 마을로 프랑스군을 보내 모든 도로의 출입을 막아버렸다(그게 어디 뮈라 개인의 뜻이었겠는가!) 아란후에스 별궁에 갇혀 있던 카를로스 4세 국왕은 양위 각서는 모두 무효라고 선언했고(아들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서명했다고, 이래서 자식 교육이 중요한 것이라고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일주일 넘게 핀토 마을에 잘(?) 갇혀 있던 고도이의 호벅지 상처는 차츰차츰 아물고 있었다(고도이는 프랑스군의 호위를 받으며 핀토 마을에서 비야비시오사 마을로 옮겨졌다. 그곳은 고도이의 영지이기도 했다). 왕세자는 분노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나폴레옹의 뜻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추리에 골몰했지만 쉬이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당연히 그럴 수밖에.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할 줄 아는 게 부모에 대한 반항이 전부인, 그저 그런 애새끼에 불과했다).


(511)

박유정은 루시를 집 앞마당 양지바른 텃밭에 묻었다. 루시를 묻고 있는 동안 루시의 자손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녀 옆에 서서 구경했다. 어린 강아지들은 까불거리며 서로 쫓고 쫓으면서 담벼락 근처에서 뛰어놀았지만, 이젠 나이가 들어버린 자두와 가을이, 보름이는 가만히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녀는 루시를 다 묻은 후, 그 옆에 작은 동백나무 하나를 심었다. 그 나무가 루시의 묘비가 되어주었다. 누군가의 묘비를 세워주는 일. 박유정은 그것이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누군가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기억하는 것이 사람의 책이라고. 그녀는 계속 그 일을 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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