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4)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 수년 전 아버지에게 알츠하이머가 닥친 것, 그 때문에 아버지가 기약 없이 입원한 전문 클리닉에 매일 찾아가야 했던 것이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그녀에게는 끝나지 않는 기나긴 시련이었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녀가 스무 살에 결혼한 이래 무언가 하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바라보는 것에 처음으로 부담을 느낄 필요 없이 홀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어머니는 나이 들어 신체가 쇠약해짐에 따라 거동의 자유를 새로 방해받기 전까지 얼마 동안 되찾은 자율성을 여유롭게 누렸다.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 난 그 손님이 자기 남편의 요양원 입소를 유사한 감상으로 환영했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마침내 자유다!’라는 감상 말이다.


(58-59)

어머니 자신도 틀림없이 이런 쇠락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내심 확신하고 인정했다. 해결되지고, 개선되지도 않을 문제였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내가 나아지면…” 또는 내가 회복되면…”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마치 생물학적인 사태의 추이를 변화시킬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을 쫓아버리려는 듯 말이다. 어머니는 무력감에 굴복하기 힘들어했지만 건강 상태가 좀처럼 저항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뻔히 거짓말인 줄 알면서 , 어머니가 괜찮아지시면…” 또는 그래요, 어머니가 다 나으시면…”하고 대답했다. 사실 어떻게 자기 어머니에게 아뇨. 어머니는 회복 못 하실 거예요. 낫지 못하실 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60)

우리는 집으로 되돌아가길, 혹은 진짜 자기 집을 되찾길 기다리며 다소 긴 기간 동안 임시 체류하러 요양원에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영구히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죽을 것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디서인지는 안다. 블라디미르 장켈베비치는 이 라틴어 격언을 즐겨 인용했다. ‘죽음은 확실하나, 시간은 불확실하다. 적어도 우리는 이렇게 적시할 수 있다. 일단 그런 시설에 들어가면 장소는 확실하다, 설령 시간이 아주 머지않은 듯 보인다 해도, 시간보다 훨씬 확실하다고.


(74)

엘리아스는 계속해서 말한다. “해로하는 노부부를 제외하면,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은 오랜 감정적 유대가 최종적으로 끊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 개인이 어떤 긍정적 정서적 관계도 맺은 적 없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건강을 돌봐주는 의사와 간호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노인들은 정상적인 삶으로부터 격리되고 낯선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 그것은 개인에게는 외로운 일이다. 내가 여기서 걱정하는 점은, 아주 고령이 될 때까지도 매우 활발하게 지속되는 성적 욕구의 문제뿐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을 즐기고 같이 있으면서 정서적 만족을 느끼는 인지상정의 문제다.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런 종류의 인간관계 역시 줄어들고 거기에서는 대체물을 찾기 어렵다.”


(100-101)
우리는 공공서비스 관할의 모든 부문에서 그랬듯, 돌봄 인력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의해 프랑스의 병원에서 얼마나 많이 감축되었는지 안다. 그 정책들은 언제나 강력한 비용 절감 계획을 작동시켜왔고, 지금도 그렇다. 병원 근무자들이라면 직종에 관계없이 프랑스의 보건 공공서비스가 파산 상태(다른 나라들이라고 썩 사정이 낫진 않다)에 다다랐다고 자주 강력하게 규탄해왔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았고-반대로 사정은 계속 악화해, 프랑스 정부는 심지어 코로나19 위기 동안 병상 폐쇄라는 살인적인 정책을 추진했다-우리는 그런 상태를 거의 정상으로 받아들이며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 듯 보인다. 기필코 이런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된다. 지치지 말고 계속 분노해야 하며, 이 분노를 소리 높여 강하게 외쳐야만 한다.


(117)

전체주의적성격은 매일매일 두드러져만 갔다. 어머니의 삶 전체가 구획되고 통제되었으며, 그녀를 대신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어머니는 자율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자유, 사람으로서의 지위까지 상실했다. 그렇다. 탈인간화로 인해 노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지경까지 다다른다.


(119-120)

산다는 것은 시간, 시간성 그리고 당연히 공간성과 관계 맺는 것, 즉 시간 속에 스스로를 투사하고 공간 안에서 움직일 능력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는, 말하자면 고령, 노년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 존재론적 관계를 수정하고 무화하며 파괴한다. 공간성의 상실, 시간성의 소멸은 인간 실존의 조건 그 자체를 규정하는 것을 점차 사라지게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수많은 인잔 존재의 실존과 관련된다. 어떤 면에서는 거의 모든 인간 존재의 실존과 관련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늙는 것이 죽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한 말이다. 정치 담론과 행정보고서에서 이야기되는 기대 수명의 상승과 이른바 인구 고령화는 나이가 아주 많고 의존적인 사람들의 수가 계속 엄청나게 증가할 것임을 함축한다. 삶은 건강한 삶뿐만 아니라 건강하지 않은 삶, 쇠약해진 삶이기도 하다.


(131-132)

이 짧고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서 난 어머니의 이미지를 본다. 그녀는 버림받은 아이였고, 열네 살에 무슨 일이든 하는 하녀, 가정부로, 공장노동자로 위치지어졌다그녀는 스무 살에 결혼해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55년 동안 함께 살았다그리고 이제 여든 살이 넘어서 자유를 발견했고, 모든 순간을 즐기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그녀를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누가 그녀를 책망할 권리를 가로챌 수 있겠는가?


(149)

난 죽음-지워짐에 관한 푸코의 말을 좋아한다. 그는 아리에스의 탄식과 힘 있게 결별하는 발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죽음은 사건 아닌 것이 되었다. 대개 사람들은 사고사가 아니라면 약품들의 덮게 아래 죽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몇 시간, 며칠 또는 몇 주간 의식을 완전히 잃는다. 그들은 지워진다. 우리는 의료와 제약이 죽음과 동반하면서 죽음으로부터 고통과 극적 성격을 앗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난 무언가 통합적이고 극적인 거대 의례로 되돌려지는 죽음의 정화에 관한 온갖 이야기를 별로 지지하지 않는다. 관 주변의 소란스러운 눈물들이 언제나 모종의 냉소주의에서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상속의 기쁨이 뒤섞일 수도 있다. 난 이런 종류의 예식보다는 사라짐의 부드러운 슬픔을 더 좋아한다.

지금 우리가 죽음을 맞는 방식은 내계는 오늘날 통용되는 어떤 가치 체계, 어떤 감수성을 명확히 나타내는 듯 보인다. 향수 어린 충동 속에서 더 이상 아무 의미 없는 관행들을 되살리고자 하는 데는 몽상가적인 무언가가 있다.

그보다는 차라리 죽음-지워짐에 의미가 아름다움을 부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181-182)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암묵적이든 잠재적이든 어머니를 통해 유지되어온 내 과거와의 연속성이 이제 끊어져버렸다. 혹은 몹시 느슨해져버렸다. 내가 어떤 아이였는지, 어떤 청소년으로 자라났는지에 얽힌 일화들을 앞으로 누가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가족의 지형도, 조상의 계보도를 누가 내게 그려줄 수 있을까? (중략) 내 젊은 시절의 기록 보관자이자 역사가는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다.


(195-196)

자기 어머니를 애도하는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잃어버린 젊음을 애도하는 것이라고 알베르 코엔은 쓴다. 내게 이보다 더 적절한 문장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건 망각되거나 부인된 모종의 면모들, 구체적으로 우리가 수치스러워했던 것들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모든 사람에게 당신을 소개한다.” 코엔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해 이렇게 선언한다. “당신을 자랑스러워하며, 당신을 소개한다.” 코엔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해 이렇게 선언한다. “당신을 자랑스러워하며, 당신은 동양식 억양을 자랑스러워하며, 당신은 프랑스어 오류를 자랑스러워하며, 고상한 예법에 대한 당신의 무지를 미치도록 자랑스러워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덧붙인다. “약간 뒤늦은, 이 자부심.” 그는 모두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신 아들들이여, 당신의 어머니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만일 당신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내 죽음의 노래를 읽고 어느 날 저녁 어머니에게 더 부드럽게 대한다면, 나와 내 어머니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내 글쓰기는 헛되지 않을 것이다. […] 내가 당신에게 건네는 이 말들은,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신 아들들이여, 내가 나 자신에게 표할 수 있는 유일한 조의다. 아들들이여, 시간이 있는 동안,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시는 동안이다, 서두르시라. […] 하지만 난 당신들을 안다. 그 어떤 것도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한 오래도록 당신들의 그 끔찍한 무관심을 없애지 못할 것이다. 어떤 아들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리라는 것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아들들은 모두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며, 이 바보들은 곧 벌을 받는다.


(237)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공장을 다시 보러 갔다. 외벽은 국민전선의 포스터와 그라피티로 뒤덮여 있었다. 내부는 모든 것이 황폐한 인상을 주었다. 유리창은 깨져 있었고, 바닥엔 짙은 녹색의 깨진 병 조각들, 유리 파편들이 널려 있었다병뚜껑을 고정하기 위해 여성 노동자들이 금속 링을 거는 빨간 고무 패킹들 또한 오렌지색으로 바랜 채 흩어져 있었다. 이 황량한 무대를 두고 나는 어머니의 것이었던 세계에서 어머니의 실존이 어떠했을지 생각했다. 오늘날 바람이 쓸고 간 텅 빈 공간을 한때 가득 채웠던 유기체들에게는 숨 막힐 정도로 격렬했을, 물론 [유리 제품] 제조용 가마들에서 내뿜던 열기에 대해. 지옥같이 참기 어려운 소음에 대해, 온갖 직무의 극단적인 난도에 대해, 자재들에서 나오는 분진의 위험성에 대해, 떄로는 심각했을 숱한 노동 재해에 대해지나간 과거에 대해 생각했다. 어머니를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 난 생각했다. , 이것이 어느 서민 여성의 삶이었고, , 이것이 그녀의 노년이다. 난 그렇게나 빨리 세번째 단어를 덧붙여야만 하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263)

엘리아스가 쓴 이 말을 틀렸다고 하기란 불가능하다. “아직도 활기차고 가끔은 기분 좋은 느낌으로 가득한 자신의 몸이 느릿해지고 쉬 피로하며 어둔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다시 말해 노인들, 죽어가는 사람들과의 동일시는 다른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은 자신이 늙고 죽을 것이라는 관념을 극구 부정하려 하며 그에 저항한다.”


(299)

결국 근본에 있는 정치적 문제는 이것이다. 누가 말하는가? 누가 발언할 수 있는가? 이 기본이 되는 정치적 행위가 가장 극심하게 지배받고 박탈당하고 취약한 사람 가운데 그렇게 많은 이에게 여전히 접근 불가능하다면 그들에 관해서, 그들을 위해서 말하고 그들을 보이게 하는 것이 작가에게, 예술가에게, 지식인에게 돌아오는 과제가 아닐까?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그들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것,” 또는 어쩌면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또는 그들에게 이제는 없는, 아니면 의존적인 고령자들의 경우처럼, 그들이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그 목소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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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걸로 슈마허에게 가르쳐줘. 전봇대를 받아 탑승자를 다치게 할 바에야 길고양이를 치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는 걸. 애들한테 걷어차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가르쳐주듯. 세희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눈으로 볼 거 없어. 이미 다 있는 거, 우리 다 하고 있는 거야. 보험사에는 평가액, 은행에는 신용 점수가 있고, 결혼 정보 회사에도 입사 시험에도 학교 시험에도 다 있잖아. 등급, 석차, 점수, 우리 이마엔 이미 바코드가 찍혀 있어. 리더기만 들이대면 하고 얼마짜린지 다 나와. 모른 척하고 아닌 척할 뿐이지.


(164)

사랑만이 고통에도 의미를 주니까요. 그 고통엔 의미가 있어 더욱 고통스러워니까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고통을 견디는 것도 의미가 있는 거예요. 무의미하기만 한 고통은 그걸 겪고 견디는 우리들끼리 무의미하게 만드니까요. 오로지 휘몰아치는 고통만이 있을 뿐이고 우리도, 다른 모든 것도 거기에 이리저리 휘날리기만 하는 티끌들인 거예요. 영인은 쓸쓸히 창밖을 봤다.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다들 그러죠. 자기 인생을 쓰면 책 한 권은 너끈히 될 거라고 하지만 그 책의 대부분은 지루하고 하찮기만 할 거예요.


(198)

어떤 것이 자율이라는 건 필연히 다른 것들이 타율이라는 뜻입니다. 간단한 논리의 문제죠. 무버에 적혀 있는 말처럼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필연히 움직이지 않는 단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밭솥을 생각해보면 쉽죠. 인공지능이 알아서 밥을 짓는다고 우리가 자율밥솥이라고 하나요? 자동밥솥일 뿐이고 자율주행도 결국엔 자동주행일 뿐이죠. 그 반대라면 우린 밥솥이 무슨 밥을 짓든 먹을 수밖에 없고 차들이 어떻게 주행하든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명백한 횡포고 억압이며 사실 별로 낯선 것도 아니죠. 늘 가장 강력하고 악독한 횡포와 억압은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져왔으니까요. 우리가 지금 얼마나 자율적으로 서로를 혐오하고 배척하는지 생각해보면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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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스스로 만든 지옥은 흥미로운 구조물이다. 누구나 평생에 적어도 한 번은 만들게 되어 있다. 어떤 이들의 삶은 그런 지옥일 뿐이다. 성격이 불행을 자초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롤런드는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자기 손으로 고문 기계를 만들고 그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특정한 작업 혹은 술이나 마약 중독 혹은 발각될 위험이 있는 범죄 등 각자에게 맞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금욕적인 종교도 선택지에 들어갈 수 있다. 전체적인 정치체제가 고통을 자초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그때 한때 동베를린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결혼은 이인용 고문 기계로 킹사이즈의 가능성, 공유 정신병의 모든 변종을 아우른다.


(104-105)

유럽 전역에 자기기만의 구름이 드리웠다. 서독의 한 텔레비전 채널은 방사능의 독기가 복수라도 하듯 소비에트 제국만 오염시키고 서구는 안전할 거라고 확신했다. 동독의 한 정부 대변인은 인민의 발전소를 파괴하려는 미국의 음모에 대해 언급했다. 프랑스 정부는 방사능구름의 남서쪽 가장자리가 프랑스와 독일 사이 국경과 일치한다고, 그 구름은 국경을 넘을 권한이 없다고 믿는 듯했다. 영국 당국은 대중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은 없다고 선언했지만, 사천 개의 농장을 폐쇄하고, 사백오십만 마리의 양을 판매 금지하고, 수천 톤의 치즈를 거둬들이고, 어마어마한 양의 우유를 배수로로 흘려보냈다. 모스크바에서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아기들과 아이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우유를 마시게 내버려뒀다. 하지만 곧 이기주의가 만연해졌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상사태에 정면으로 맞서야 했고, 그런 일은 비밀리에 일어날 수 없었다.


(150)

천재가 인생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 연주도 하고, 요트도 타고, 명성도 좋아하고, 자신의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순수한 기쁨도 느끼며 충분히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지저분하게 이혼하고, 양육권 싸움을 하고, 여자 문제로 골치를 앓으며, 다비트 힐베트르가 자신의 업적을 가로챌 거라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양자역학을 비판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빚진 뛰어난 시달리고, 양자역학을 비판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빚진 뛰어난 젊은이들과 갈등을 빚었다. 차라리 멍청하거나 평범한 게 나을까? 그렇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멍청이도 불행에 이르는 자기만의 길이 있다.


(227-228)

베를린과 저 유명한 앨리사 에버하르트는 어떻게 그의 인생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롤런드는 그의 일상에 정착한 과대망상적인 기분에 젖어, 자신의 존재를 형성하고 결정지은 크고 작은 개인적이고 세계적인 사건 사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곤 했다. 그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었다-모든 인간의 운명이 그런 식으로 정해지니까. 전쟁만큼 개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공적인 사건은 없었다. 만일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해 이등병 베인스가 소속된 스코틀랜드 사단이 이집트 주둔 계획을 철회하고 북프랑스로 가서 됭케르크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그가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전투 부적격 판정을 받아 올더숏에 배치되어 1945년에 로절란드를 만나는 일이 없었더라면, 롤런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젊은 제인 파머가 전후에 영국 식단을 개선하겠다는 시릴 코널리의 뜻에 따라 후딱 알프스를 넘어갔더라면, 앨리사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흔하면서도 경이로운 일이었다.


(344-345)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어쩌면 내가 틀렸는지도 몰라. 난 완전히, 그리고 빨리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어. 잔인한 짓이었고, 미안하게 생각해. 정말 미안해…… 그게 늘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야. 당신이 매일 섹스를 요구하는 거. 하지만 아기는…… 아기의 요구는, 아기는 나를 소멸시켰지. 아기와 당신……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어. 생각도, 인격도, 바라는 것도, 바라는 건 잠뿐이었지. 난 침몰하고 있었어. 벗어나야만 했어. 집을 떠난 날 아침……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그게…… 그 이야긴 안 할래. 당신은 좋은 아빠고 래리는 어리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당신도 괜찮아질 거라고, 조만간. 난 괜찮지 않았지만 이미 선택을 했으니 내가 해야 하는 걸 했어. 이거.”

그녀는 다시 토트백에 손을 넣어 그가 카페에서 본 책을 꺼냈다.


(393)

현대 가정의 중심은 더 이상 거실이나 응접실, 가장의 서재가 아니다. 이제 주방이 중심이며, 주방의 중심은 식탁이다. 아이들이 대화와 관련된 무언의 규칙, 타인과 어울리는 법 같은 기본적인 예의를 배우는 곳이니까. 아이들은 평생 습관이 될 규칙적인 식사의 중요한 리듬과 의식을 습득하고, 식사 후 정리를 도와주는 간단한 첫 의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식탁은 우편물을 뜯어보고, 주인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손님으로 온 친구들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467)

요란한 논쟁, 떠들썩한 분석, 두려운 예언, 축하, 분노 어린 한탄, 그의 삶이 그에게서 흘러나가고 있었다. 삼 주 전 일이 벌써 희미해지거나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걸 조금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안 그러면 살아갈 가치가 거의 없을 테니까. 그가, 그리고 최근에 만난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읽고, 보고, 이야기한 것. 사적이거나 공적인 삶. 자신의 실패와 불만과 꿈은 담지 않기로 했다. 마침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거나 하는 날씨 이야기도,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쏜살 같은 시간이나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좋았던 기억과 나빴던 기억에 대해서도, 오직 그가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한 말만 담기로 했다. 적어도 하루에 반시간은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정신. 해마다 새 노트를 쓰는 것이다. 다 채우든 못 채우든. 일 년에 노트 세 권을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십 년, 지극히 운이 좋으면 삼십 년. 그럼 아흔 권이 된다! 아주 장대하고 단순한 프로젝트였다.


(472-473)

롤런드는 이십대 후반, 독학에 전념할 때 과학에는 미지근한 정도의 관심만 있었다. 공부는 계속하면서도 과학에는 인간미가 결여되어 있다고 믿었다. 화산, 떡갈나무 잎, 성운 같은 것의 숨겨진 작용-다 좋지만, 그를 매료시키지는 못했다. 과학은 인간이 혼자 또는 함께 번영하거나 실패하고, 사랑이나 미움을 느끼고 결정을 내리는 중요한 영역에 자리잡았을 때, 미약하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제안만 내놓았다. 이미 알려진 것, 정신의 평행우주에서 오래전부터 이해되거나 뇌 안의 사건들에 대해 자명한 이치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물리적 설명을 제공했다. 이를테면 개인적 갈등 같은 일에. 그건 오디세우스가 이십 년 동안 집을 떠났다가 절룩거리며 돌아왔을 때 그와 페넬로페 사이에 부부싸움이 벌어진 후로 문학에서 이천칠백 년 동안 알고 논쟁해온 문제였다. 이것도 이타카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쩌면 그들이 나중에 화해할 때 페넬로페의 동맥에 다른 많은 물질과 함께 옥시토신이 흐르고 있었음을 아는 건 흥미로울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우리에게 그들의 사랑에 대해 무엇을 더 말해주겠는가?


(600)

소중한 내 사랑, 언제든 당신이 원할 때 나를 강에 뿌려줘. 이십 년이 걸린다 해도 상관없어. 당신 혼자 힘으로 다리까지 와서, 우리가 서 있었던 곳에 서서 우리에 대해, 그때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만 하면 돼. 난 십대 때 불가리아인과 사랑에 빠졌지. 그는 언젠가 유명한 시인이 되겠다고 했어. 그 꿈을 이뤘는지 궁금하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으니까. 나는 사십 년 넘게 지난 뒤 같은 장소로 돌아가서 당신과 사랑에 빠졌지. 아니, 오래전까지 당신을 사랑했음을 깨달았지. 차를 몰고 당신과 함께 산길을 달리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옆에 앉아서 지도도 봐주고, 펜션의 조율도 안 된 피아노로 내가 신청한 감상적인 곡을 연주해준 당신, 정말 고마워. 다 고마워. 이 여행이 당신에겐 고통이리라는 거 나도 알아. 당신에게 고마워해야 할 또하나의 이유지. 이 아름다운 강을 당신 혼자 찾아오게 해서 정말 미안해. 내 사랑,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잊지 마! 대프니.


(674)

롤런드에게 죽음의 한 가지 심각한 문제점은, 이야기에서 제외된다는 점이었다. 이야기를 이렇게 멀리까지 따라왔으니,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에게 필요한 책은 한 해에 한 장씩 백 개의 장으로 구성된 21세기 역사였다. 상황을 보아하니, 그는 그 책의 4분의 1도 읽지 못할 것 같았다. 그저 목차를 훑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재앙적인 지구온난화는 막을 수 있을까? 중국과 미국 간의 전쟁이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될까? 전 세계로 퍼진 인종차별적 민족주의가 더 관대하고 건설적인 무언가로 대체될 수 있을까? 우리는 현재 진행중인 대멸종을 되돌릴 수 있을까? 열린사회가 번영할 수 있는 새롭고 더 공정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우리를 현명하게 만들어줄까, 아니면 미치거나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까? 우리는 이 세기를 핵미사일 교환 없이 관리할 수 있을까? 그가 보기에는, 그저 무사히 21세기의 마지막날, 책의 마지막 장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한 승리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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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165)

너는 다른 남자들이 즐기는 것을 보면 늘 좋아했고, 너도 조금 즐겼다. 나 역시 지금 내가 아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전에 나는 앎에는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에는 아무리 배워도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침대 옆 장에 책을 잔뜩 쌓아놓고 밤늦도록 읽어치웠고, 책을 팔아서 다음 책을 사는 데 보탰다. 시간이 지나면 배움이 줄어들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지나치게 많이 안다. 나 자신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이야기를 엿들은 사람이 된 기분이다. 그러므로 천천히 해야 한다.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혼자서만 알고 있어야 한다. 너무 가득 담긴 잔을 들고 있어서 쏟을까 봐 못 움직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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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왕검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건국합니다. 고조선의 건국 시기는 조선시대 역사서인 <동국통감>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기원전 2333년으로 잡고 있는데요. 앞서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가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고조선이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고 했으니 이러면 시기가 맞지 않지요. 이유를 볼게요. 예전에는 한반도에서 기원전 1000년경 청동기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그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어요. 현재는 기원전 2000년까지 올라갔는데,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어쩌면 이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어요. 현재는 기원전 2000년까지 올라갔는데,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어떠면 이 시기가 더욱 앞당겨질지도 모릅니다. 기록과 고고학적 성과가 맞닿게 되는 시점도 곧 올 거라 생각됩니다.

 

(65-66)

백제는 신라나 고구려에 비해 존재감이 상당히 미약합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쓸 때 백제에 대한 기사를 많이 빼버린 탓도 있고, 일제 강점기의 식민사관이 백제에 대한 내용들을 왜곡 또는 축소해버린 데에도 원인이 있지요. 하지만 이런 식의 문제적 기록 태도는 흔하게 목격됩니다. 아무리 객관성을 표방하는 역사 서술이라고 해도 서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역사를 살필 때 해당 역사서가 쓰인 시대의 배경을 반드시 함께 둘러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백제는 결코 만만하고 왜소한 나라가 아니었어요. 한때 고구려 땅은 물론 요서와 일본까지 진출했던 강대국입니다.

 

(72)

도읍을 사비로 옮겼지만, 백제의 본거지는 어디까지나 한강 유역이에요. 백제가 명실상부하게 강국의 위치에 오르려면 자신의 근거지임과 동시에 한반도의 중심인 한강 유역을 확보해야 합니다. 성왕은 백제의 근거지인 한강을 되찾기 위해 신라의 진흥왕과 손을 잡아요. 아직까지는 혼자 힘으로 고구려를 상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 동맹을 통해 백제는 한강 하류를 되찾지만 진흥왕의 배신으로 한강을 도로 빼앗기게 됩니다. 이에 격분한 성왕이 진흥왕과 일전을 벌였다가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백제는 다시 한 번 위기에 빠집니다.

 

(165-166)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지배층에 보내는 위험신호였어요. ‘이대로는 안 되니 개혁하라는 일종의 주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종은 즉위 초 개혁 정치를 좀 하는가 싶더니 이내 정치를 멀리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집니다. 정치 기강은 더욱 문란해질 수밖에 없지요. 문벌귀족 역시 이겼다고 기고만장합니다. 자기들 배불리기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문벌귀족들은 또한 군인에게 지급되던 군인전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요. 중앙군인 2 6위는 직업군인입니다. 월급을 받아서 먹고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월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으니 군인들이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문벌귀족들은 자신의 특권을 강화하고 권력을 집중시키느라 무신을 차별합니다. 재상으로의 승진도 제한하고, 심지어 과거시험에 무과를 두지도 않았어요.

 

(244-245)

일제는 자신들의 국권 탈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식민사관을 내세웁니다. 특히 조선시대 붕당정치를 두고 이른바 당파성론을 만들어냈는데요. 한국인은 정치적으로 서로 싸우기를 좋아하는 민족성을 가져 망국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논점이에요. 하지만 이 붕당정치는 일본인은 해보지 못한 선진정치였습니다. 같은 시기의 일본은 꿈도 꾸지 못할 정당정치가 조선 중대에 이뤄지고 있었던 겁니다. 붕당정치는 일종의 정치 투쟁인데요. 주로 상소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냈습니다. 한 세력이 독재하지 못하도록 소수파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인데요. 이는 분명 정치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측면도 있습니다. 붕당정치는 공존이 바탕이 되는 정치 시스템이었어요. 이랬던 붕당정치가 왜곡으로 치달은 것은 일당전제화가 되면서부터입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 환국정쟁으로 변길되면서 폐해가 불거지는데요. 일제의 식민사학자들이 초점을 맞춘 것은 바로 이 시기의 모습입니다. 이걸 전체로 확대 해석하여 마치 붕당정치 자체가 모순인 것처럼 한국인의 국민성까지 들먹였던 거예요.

 

(346)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일본과 국교를 단절하지만 17세기가 되자 일본과의 관계가 다시 풀리기 시작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 막부가 다시 수교할 것을 요청해온 탓입니다. 1607, 조선 정부에서는 승려 유정 등을 일본에 보내 조선인 포로들을 송환해오게 합니다. 임진왜란 때 금강산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한 사명대사 유정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담판하여 조선인 포로 1500명을 데리고 돌아옵니다.

 

(376)

학문에서는 양명학과 실학이 나옵니다. 관념을 앞세우는 성리학과 달리 양명학은 실천을 중시해요. 예컨대 사과를 하나 가져와서 이 사과의 맛을 평가하시오리고 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성리학은 이 사과의 는 무엇일까. ‘는 무엇일까, 이 사과가 맛있다고 하면 그것은 일까, ‘일까 하고 자꾸만 관념적으로 해석하려 들어요. 반면에 양명학은 사과를 덥석 깨뭅니다. 먹어봐야 맛이 있는지 없는지 평가할 수 있다는 거죠. 실학은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합니다. 이는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자는 학문으로 일상생활과 밀접한 내용들을 연구합니다.

 

(400)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어요. 건국이념도 체제 유지 이념도 성리학이었습니다. 조선의 성리학은 16세기 들어 절정의 꽃을 피우다가 양 난 이후 삼정의 문란과 더불어 사회의 지평이 흔들림에 따라 존립마저 위태로워집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자리를 자주적이고 민족적이며 근대 지향적인 실학에 내어주지요. 하지만 조선 후기 실학자에겐 개혁을 이뤄낼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결국 비주류로 묻히고 말아요. 또한 조선 후기에는 사회적으로 신분제가 동요하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트는 등 변화의 바람이 일었지만 지배층은 성리학만을 내세우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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