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초등학교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이제 힘든 일은 다 끝냈다고 제 몫을 다 해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는 한 가지 대답만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보내야 한다. ‘앞으로 살면서 무얼 해 먹고 살 것인지’, 그것을 알아내는 데
그 아까운 학창시절을 다 보낸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인생의 초반에는 부모님의 선택으로 내 모든
인생이 돌아간다. 공립유치원으로 보낼까, 영어유치원으로 보낼까? 학교는 발레를 보낼까? 아니면 중국어나 영어학원… 다 우리에게 좋은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선택들이다. 우리는 그냥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하나도 모른 채.
(21-22)
나는 계속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이유로,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역사상 교육을
가장 많이 받았지만 역사상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역사상 가장 많은 카페인을 섭취할 뿐만 아니라 역사상 가장 불안정하고 우울하고 콤플렉스가 많은
세대라는 이유로, 살짝 정신이 나간 채로 새벽 3시 27분이 되면 이력서를 여기저기 보내기 시작했다.
(95)
사랑이 우리의 인격을 강화시키듯 증오도 우리를 강인하게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누군가를 미워하면 더 나쁜 사람이 된다. 모든 감각이 살아나면서 사소한 부분들을 감지하는 재능도 예리해지고, 감정도
솟구친다. 일종의 활홀경인 셈이다. 증오 덕분에 나는 악에
대한 무한한 재능을 발견했다. 나의 관찰력은 날이 갈수록 더 날카로워졌으며, 나의 말은 대량 살상 무기로 둔갑했다. 원하지 않아도 증오심은 사람을
변하게 했다. 예전에는 내 감정 제어기가 어떤 상황에서든 돌아갔지만 이제는 먹통이 되어버렸다. 비난이나 트집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옥상에 숨어서 홀로 바나나를 먹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대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자꾸 참고 넘기다보면 안에서 뒤틀린 것들이 살갗
밑에서 욱신거리게 된다. 하지만 계속 대응하지 않기로 한다. 그
사람과 똑 같은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사실 될 수도 있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겠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223)
그렇기는 하지만, 누구든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스물여섯 살이 되어 있으면 자신이 젊음을 잃었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스물여섯 살부터는 ‘카나리아제도 주민 전용 승차권’을 살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카나리아 주민이 될 수 없다는 뜻인가? 젊음과 주민은
상호 배타적인 관계인가? 나는 아직 28유로로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스물여섯 살이 되는 순간 35유로를
내야 한다. 하여간 왜 청년할인은 있는데 성인 할인은 없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내 또래들 대부분이 갈
곳이 없어 부모님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 빌어먹을 경제적 상황에 사회적인 젊음은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끝난다니,
말이 되는가? 하긴 휘발유 가격이 올라도 자기는 항상
20유로어치만 넓으니 상관없다는 멍청이도 있으니까.
(229-230)
“우리는 정말 거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어.” 나는 청중 두 명을 향해 말을 쏟아냈다. “누가 깔리든 말든 바퀴는
절대 멈추지 않아. 나는 점점 나이를 먹고 있어. 내가 바퀴에
깔리면 누군가 나를 대체하겠지. 우리가 미쳐버릴 때까지, 심지어
‘자본주의가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고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게 잘못’이라고 우리를 세뇌할 때까지 자본주의는 우리를 피폐하고 만들고 우리의 생명까지 빨아먹는 아주 병든 시스템이라고.”
(246)
할머니집의 벽은 내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초반의 많은 이야기를 간직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몇몇 기억들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흑역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에피소드, 사춘기 때의
경멸과 오만함을 떨쳐버리는 잊는 방법을 익혔다. 손님이 올 때마다 축 처지던 내 어깨도 지워버렸다. 문제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어땠는지, 할머니가 머리를 어떻게 빗었는지, 할머니 몸에서 어떤 향이 났는지, 옷차림은 어땠는지까지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뚜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냐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할머니’ 하면 얼굴 생김새,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 많이 우시던 모습, 손, 커피를 무척 좋아하시던
모습만 생각난다.
(309-310)
어느 날 스스로를 하나의 회사라고 간주해버린다. 당신의
인생 드라마에선 당신이 최고경영책임자이자 최고운영책임자이자 최고재무책임자다. 그러니 당신은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항상 느끼며 인생에서 단 1분이라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면 안 되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으니까. 돈을 아끼고, 당신의 재능을 더 잘 이용하고, 업무를 다양화하고, 모든 면에서 결과를 최적화해야 한다. 이 모든 게 의미하는지, 당신이 인생에서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당신이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당신을 내쫓겠다고 위협할 직원도
없으니까. 그저 당신은 샤워를 마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그 나이에 마땅히 이루었어야 할 모든
것들, 친구들과 달리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 때문에 스스로를 조금씩 갉아먹게 될 뿐이다. 그러다 귀에서 시계가 재깍재깍 소리를 내는 게 느껴지겠지.
(361)
어김없이 돌아온 쓰레기 같은 월요일, 이메일로 충분히
대신할 수 있는 거지 같은 아침 미팅. 회사생활은 이 두 가지의 반복이었다. 그 와중에 복숭아색 정장을 입은 마카레나는 내 머리를 드럼세탁기처럼 핑핑 돌게 했고, 내가 거짓말할 걸 알면서도 멍청한 질문만 던졌다. 모두가 진실을
요구하면서, 막상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면 그 진실을 넘기지 못해 캑캑대는 꼴이 우스꽝스러웠다. “이건 너무 쓰고, 너무 짜잖아.
설탕을 한번 넣어봐” 하며 진실을 가장한 거짓을 원했다.
여기서 계속 일하려면 내가 얼마나 더 당신에게 비굴하게 굴어야 하느냐고 마카레나에게 묻고 싶었다. 이제
눈에 뵈는 것도 없으니까.
(392-393)
예전에 셀리아 비얄로보스가 텔레비전에서 젊은이들은 지금 당장 노후를 위해 저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 세대가 공적연금을 제대로 받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적어도 한 달에 2유로, 즉 커피 한 잔이나
담배 한 갑 살 돈을 아껴 저축하라는 얘기였다. 그 충고를 듣자마자 그녀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진정한 재테크의 천재이자 캔디크러시 게임의 달인이시여, 왜 아무도
그런 생각을 못 했던 걸까요? 제가 지금부터 매달 2유로씩
저축하면, 65세나 68세가 되었을 때 엄청난 갑부가 되어
연금이 아예 필요 없겠죠?”라고. 언제 은퇴할지 누가 알겠는가. 몇 달 후엔 은퇴 연령이 70세로 늘어날 수도 있는데. 어쨌든 은퇴한다고 해도 완전히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슈퍼마켓 계산원이나 주방 보조, 배달앱 기사 일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셀리아와 함께 토크쇼에
참석한 이들 중 단 한 명도 그녀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이 바로 우리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왜 집을 사고 가정을 이루지 않으냐고 비아냥거리는 꼰대들이다. 베이비 붐세대 놈들, 너네랑 사정이 다르다고.
(402-403)
단골 바에 갔다가 술 취한 놈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때 화장실에서 나가고 싶으니 비켜달라고
말하지 못했을 뿐인데, 그런 일 때문에 그 가게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뿐인데, 왜 내가 “여자들은 꼭 단체로 화장실에 가더라”하는 같잖은 농담을 들어야 할까? 누군가가 나를 붙잡아 자기 욕망을
채우고는 나를 우물이나 도랑 혹은 그가 나를 발견했던 곳에 버릴까봐 불안해하지 않고, 이른아침에 음악을
들으며 조깅할 권리는 나한테는 없는 걸까? “엄마, 걱정
마. 지금 집이야”하며 엄마를 안심시키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까?
(412-413)
좋은 남자들은 여자 말에 토를 달거나 여자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자가 거실의 소파와 테이블 사이를 빗자루로 쓸 때 발을 들어준다. 식기세척기
안에 있는 접시를 정리하기도 한다. 가끔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도 있다.
그들은 여자를 자기들 밑에 있는 존재를 여기지 않는다. 결코 여자를 해치지 않을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회사 임원 열 한 명 중 아홉 명이 남자인 이유를 숙고하진 않는다. 그들은
인생에서 얻은 모든 기회가 자기가 필사적으로 일한 결과고, 여자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한 건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는다. 나는 그들을 싫어하진 않는다. 그냥 그런 남자들을 보면 지긋지긋하다. 선의가 반드시 미덕과 장점이
되지는 않으니까.
(447)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가족, 예를 들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삼촌이나 할머니가 돌아가시더라도, 내가
심한 우울증에 걸리더라도, 몸이 아프더라도, 계속 일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우리의 삶은 무슨 일이 있어도 노동만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듯이 흘러간다. 사람보다, 다른 것들보다 일이 더 중요한 셈이다. 가장 두려운 점은 내가 다른 것들을 우선시하며 노동을 그만둘 경우, 나를
대체할 사람은 차고 넘친다는 것이며, 나 또한 그걸 알고 주저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