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경험을 통해 스스로 가짜와 진짜를 알아보는 눈을 갖는 일은 어떤 조언보다 값지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의 판단력을 갖게 된 사람은 남을 의심하거나 절망하느라 삶을 낭비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그 길에 이르는 과정을 섣부른 충고나 설익은 지혜로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경험하지 않고 얻은 해답은 펼쳐지지 않은 날개와 같다. 삶의 문제는 삶으로 풀어야 한다.


(24-25)

삶은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경험은 우리 안의 불순물을 태워 버린다. 만약 그 친구가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면 랑탕 트레킹은 내 혼에 그토록 깊이 각인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때 그 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믿는다. 경험자들의 조언에 내달려 살아가려는 나를 직접 불확실성과 껴안게 하려고. 미지의 영역에 들어설 때 안내가 아니라 눈앞의 실체와 만나게 하려고. 결국 삶은 답을 알려줄 것이므로. ‘새는 날아서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도 나는 법을 배운다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30)

지금 내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생각의 눈송이들이 소리 없이 쌓이고 있는가. 생각만큼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없다. 마음은 한 개의 해답을 찾으면 금방 천 개의 문제를 만들어 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작가이다. 마음이 자기와 전쟁을 벌이지 않을 때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31)

행복한 일이든 불행한 일이든 이것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그것을 그렇게 큰일로 만들지 말라.’

물론 이런 조언은 함부로 흉내 내선 안 된다. 만약 큰 성공으로 행복해하거나 불의의 상실로 고통받거나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이에게 그것을 그렇게 큰일로 만들지 말라고 조언했다간 당신은 당장 쫓겨나거나 절교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 조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적용할 때 의미가 있다.


(36)

마음속에서 하는 말을 조심하라는 격언이 있다.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해도 자기 자신이 듣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는 무의식 속에서 정신을 부패시키고, 어떤 단어는 기도처럼 마음의 이랑에 떨어져 희망과 의지를 발효시킨다. 부패와 발효는 똑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어떤 미생물이 작용하는가에 따라 해로운 변질과 이로운 변화로 나뉜다.


(40-41)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에 대해 페라이어는 가슴 시린 해석을 내린다.

많은 학자들이 <월광 소나타>는 달빛과는 상관없다고,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경매에서 이 곡을 작곡하기 직전 베토벤이 쓴 에올리언 하프를 사야겠다는 메모가 발견되었다. 바람이 하프의 현에 닿아 소리를 만들면, 바람의 신 아이올리스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에올리언 하프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젊은 연인이 세상을 떠나면 달빛만 있는 행성에 간다는 전설이 있다. 이들이 사는 고독한 섬과 같은 슬픔이 에올리언 하프를 울려 우리에게 전달된다는 생각을 베토벤은 <월광 소나타>에 담은 것이다.’


(47)

영적 교사 페마 초드론은 말한다.

안전하고 확실한 것에만 투자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당신은 행성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59)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의 여정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 계시이다. 길이 막히는 것은 내면에서 그 길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삶이 때로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우리 가슴이 원하는 길이다. 파도는 그냥 치지 않는다. 어떤 파도는 축복이다. 머리로는 이 방식을 이해할 수 없으니 가슴은 안다.


(97)

다만 매장

의 차이는 있다고 나는 믿는다. 생의 한때에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둠 속을 전력질주해도 빛이 보이지 않을 때가. 그러나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층에 매장된 것이 아니라 파종된 것이다. 청각과 후각을 키우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계절이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삶에 열릴 수 있도록.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매장이 아닌 파종을 받아들인다면 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105)

미국 시인 마야 안젤루는 썼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당신이 한 행동을 잊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가는 잊지 않는다.”

나 자신이 실제로 누구인가는 감추거나 꾸미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그것을 드러내며, 내가 주장하는 사상이나 철학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행동이 나에 대해 가장 잘 말해 준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인가? 그것이 가장 진실된 나의 모습에 가깝다.


(116)

고정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명칭은 역할에 따른 약속 명사일 뿐이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할 때만 의사이며,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만 교수이다. 밖에 나오면 그 역시 승객이고, 길 가는 행인이며, 관광객이고, 손님일 뿐이다. 만약 그가 의사, 교수라는 명사로 자신을 고정시킨다면 그는 자기 규정에 갇혀 존재가 가진 수많은 가능성과 역동성을 잃는다.


(121)

에게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 허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역동성에 눈뜨게 된다. 그때 지금 이 순간 속에서 열심히 놀이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다른 놀이로 옮겨 간다.


(124-125)

, 이 나무는 걱정을 걸어 두는 나무입니다. 일하면서 문제가 없을 수 없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 문제들을 집 안의 아내와 아이들에게까지 데리고 들어갈 순 없습니다. 그래서 저녁때 집에 오면 이 나무에 문제들을 걸어 두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그 문제들을 가지고 일터로 갑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면 문제들이 밤사이 바람에 날아갔는지 많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176)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어서 만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으며, 누구도 우리의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 삶에 왔다가 금방 떠나고 누군가는 오래 곁에 머물지만, 그들 모두 내 가슴에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179-180)

소설가 보르헤스는 썼다.

우리 삶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들은 각각 특별한 존재이다. 누구든 항상 그의 무언가를 남기고, 또 우리의 무언가를 가져간다. 많은 것을 남긴 사람도 적은 것을 남긴 사람도 있지만, 무엇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누구든 단순한 우연에 의해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이다.”


(205)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구덩이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일이다. 티베트 속담은 말한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209)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얼마만큼 아는 것을 의미할까? ‘안다처럼 정반대의 말과 같은 의미인 단어가 또 있을까? 가까운 관계라 해도 어떤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에 가깝다. 섣부른 판단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잃어 간다. 관계가 공허해지는 것은 서로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이 향하는 방향만 볼 뿐, 그가 어떤 지하수를 길어 올리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 진실한 관계를 맞는다는 것은 자신의 편견을 깨고 그와 함께 계단 끝까지 내려가는 숙제를 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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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때로는 이런 장애를 모두 잊으려고 했지만, 청각장애는 이중으로 쓰라린 경험을 맛보게 했다. 잘 들리지 않으니 더 크게 이야기해주시오, 외쳐달라고, 어찌 이야기하겠는가. 다른 누구보다도 완벽해야 할 내 귀에 장애가 있다고 어떻게 남에게 털어놓는단 말인가. , 난 그럴 수 없어. 한때는 어떤 음악가보다도 완벽했던 내 귀의 장애 때문에, 사람들과 즐겨 어울리고 싶어도 자리를 피해야 한다. 사회에서 어울리지도 못하고, 벗들과 생각을 나누고 세련된 대화를 할 수 없어 세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꼭 필요할 때만 사람들과 지내고, 거의 홀로 마치 추방된 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사람들과 가까이할 때면, 내 비참한 상태가 알려질까 봐 몹시 불안해진다.


(68)

내 안에 있는 것을 모두 표현해낼 때까진 세상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 비참한, 정말로 비참한 삶을 참아내고 있다. 내 육체는 아주 사소한 변화에도 나를 최상의 상태에서 최악의 상태로 전락시킬 만큼 예민하다. 인내. 그것을 내 지침으로 삼아야 했다. 그렇게 참아왔고, 운명의 여신이 내 생명의 밧줄을 끊을 때까지 저항의지를 간직하길 바라왔다. 스물여덟 살에 이미 모든 것을 달관한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예술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92)

, 사랑하는 요제피네, 아는 그저 이성관계로서 그대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오, 나는 당신 그 자체, 우리 앞의 모든 걸림돌을 비롯해 당신의 전부를 사랑하오. 내 모든 감성이 그대에게 사로잡혀 있고. 당신을 만난 그때부터 내 가습은 다른 어떤 사랑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소. 당신은 나를 정복했소. 당신이 나를 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대답을 듣고 싶소. 내가 얼마나 당신을 생각하며, 내 가습이 얼마나 뛰는지. , 신이여, 어떻게 말을 해야 합니까.


(144)

음악가도 일종의 시인이라오. 두 눈의 마술이, 불현듯 음악가를 위대한 영혼이 노니는 아름다운 세계로 옮겨가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게 하는 거라오. 당신과 함께 지내는 동안 내게 떠오른 영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소.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 아름답던 비 내리는 5월은 내게 충만한 순간이었소. 아름다운 주제가 당신의 눈에서 내 가습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언젠가 베토벤이 죽은 뒤에도 그 음악은 세상을 매혹할 거요. 하느님이 시간을 더 허락해주신다면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리운, 그리운 베티나,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엔 거짓이 없다오. 우리는 서로의 정신까지 사랑하지 않소? 나는 언제까지나 그대의 정신을 구하오. 당신이 인정해주는 것은 온 세상 그 무엇보다 기쁜 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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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때때로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로 표현된다. 가식적으로 들리겠지만, 여기서 진리의 의미는 단순하다. 진리란 자신이 가진 과학적 증거를 근거로 우리가 지금 믿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누군가의 가설을 재검증했는데 검증 결과가 원래 가설과 일치하면 원래 가설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이 애초의 실험 결과를 재현하지 못하거나 현상을 더 훌륭하게 설명하는 새 가설을 찾아내면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견해나 더 나은 증거에 비추어 생각을 바꾸는 것은 과학적 진보의 구성 요소다. 그렇다면 현재의증거를 바탕으로 우리가 참이라고 믿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현재로서는 진리라는 표현이 더 나을 것이다.

 

(40)

마틴은 올빼미의 눈이 정면을 향한 이유에 대해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올빼미의 눈이 매우 커야 할 뿐 아니라-빛이 약한 곳에서 날아다녀야 하니까-귓구멍이 매우 커야 하는데, 이 때문에 두개골에서 눈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정면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틴이 묻는다. “그곳 말고 어디에 갈 수 있었겠는가?” 올빼미 두개골에 눈과 귀(그리고 뇌) 자리가 얼마나 부족한가 하면 귓구멍으로 눈알 뒤쪽을 볼 수 있을 정도다!

 

(53~54)

물론 사람은 대체로 오른손잡이 아니면 왼손잡이다. 눈도 우세한 쪽이 있다. 75퍼센트는 오른쪽 눈이 우세하다(우리가 눈을 다르게 쓴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눈이 양옆에 달린 새는 두 눈을 다른 용도로 쓴다. 이를테면 햇병아리는 먹이처럼 가까운 대상을 볼 때에는 오른쪽 눈을 쓰고 포식자처럼 먼 대상을 볼 때에는 왼쪽 눈을 쓴다. 게다가 한쪽 눈을 일시적으로 안대로 가린 기발한 행동 실험에서 새들이 어느 쪽 눈을 쓰느냐에 따라 과제(이를테면 박새와 유럽어치가 먹이를 찾는 것) 수행 능력에 큰 차이가 생겼다.

 

(57)

짐작했겠지만, 오른쪽 눈을 뜨고 자는 새는 뇌의 우반구가 휴식을 취한다(오른쪽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좌반구에서 처리하고 왼쪽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우반구에서 처리하기 때문이다.). 한쪽 눈을 뜨고 자는 것이 무척 유용한 경우는 두 가지다. 첫째는 근처에 포식자가 있을 때다. 오리, , 갈매기는 땅에서 잘 때 여우 같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기 쉽기 때문에 한쪽 눈을 뜨고 있는 게 유리하다. 청둥오리를 연구한 바에 따르면 무리 한가운데에서 자는-상대적으로 안전한-녀석들은 가장자리에서 자는-포식자에게 잡히기 쉬운-녀석들에 비해 눈을 뜬 채 자는 시간이 훨씬 적으며 무리 가장자리에 있는 녀석들은 포식자가 접근할 만한 방향을 바라보는 눈을 뜨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111)

19세기 독일의 해부학자들은 오리의 부리 끝 기관에서 처음으로 촉각 수용기를 관찰했다. 오리의 촉각 수용기는 두 종류가 있다. 크고 정교한 수용기는 에밀 프리드리히 구스타프 헤르프스트(1803~1893)가 발견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라 명명했다. 그는 이 수용기를 1848년에 오리의 뼈에서 먼저 발견한 뒤에 1849년에 입천장에서, 1850년에는 피부에서, 1851년에는 혀에서 발견했다. 헤르프스트 소재는 압력과 (따라서) 촉각에 민감하여 길이가 약 150마이크로미터이고 너비가 약 120마이크로미터인 타원형이지만 이따금 길이가 1밀리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두 번째 수용기는 그란드리 소체로, 1869년에 이 수용기를 처음 발견한 벨기에의 생물학자 그란드리의 이름을 땄다. 그란드리 소체는 작고(길이와 너비가 약 50마이크로미터) 구조가 단순하며 움직임에 민감하다. 두 수용기는 유두의 원뿔형 몸체에 함께 들어 있는데, 작은 그란드리 소체가 헤르프스트 소체 위에 분포하여 매우 아름다운 구조를 이룬다.

 

(212-213)

새들이 어떻게 길을 찾는지에 대한 연구는 오래고 험난한 역사가 있다. 1800년대 중엽에는 비둘기 같은 새들의 귀소 방법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대립했다. 하나는 새들이 둥지에서 밖으로 나갈 때 길을 기억한다는 견해인데, 증거는 전혀 없다. 또 하나는 지구가 일종의 거대한 자석이며 새에게 여섯 번째 감각이 있어서 지구 자기장을 감지한다는 비교적 최근의 발견을 바탕으로 삼는다. 소설가 쥘 베른은 이 견해를 재빨리 받아들였다. <해터러스 선장의 모험과 항해(1866)>의 주요 등장인물은 자기력의 영향을 받아 늘 북쪽으로 걸었. 새가 사람과 달리 자각을 이용하여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러시아의 동물학자 알렉스 폰 미덴도르프가 1859년에 처음 했지만, 18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영국의 앨프리드 뉴턴을 비롯한 대부분의 조류학자들은 여기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217)

오른쪽 눈과 왼쪽 뇌는 어떻게 자각을 처리할까? 단지 오른쪽 눈이 빛에 더 민감해서일까? 빌트슈코는 진상을 알기 위해 유럽울새에게 일종의 콘택트렌즈를 씌우는 후속 실험을 실시했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에 씌운 렌즈는 같은 양의 빛을 받아들이지만 하나는 뿌옇게 처리되어 영상이 흐릿하게 보였고 또 하나는 투명했다. 이번에도 결과는 놀라웠다. 오른쪽 눈에 뿌연 렌즈를 씌워 세상을 보게 했더니 유럽울새는 방향을 찾지 못했다. 이에 반해 오른쪽 눈에 투명한 렌즈를 씌웠더니 여느 때처럼 정밀하게 방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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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사실이라는 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같아.

그게 그렇게 무서우니까 세상엔 그렇게 많은 거짓말들이 있는 거겠지.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다 이해해. 너무너무 이해해.

나는 지금도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미치겠거든.

 

(225)

나는 시현이를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그 아이를 이해할 수는 없었어. 자꾸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시현이에게 겹쳐 보였거든. 내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고 어머니는 허드렛일을 하며 나를 키웠지.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내 학비를 내 손으로 벌면서 살았어. 사는 시현이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론 참을 수 없이 답답한 거야. 저 아이는 좋은 학교에 다니고 과외 선생님까지 있는데 이렇게 쉬운 수학 문제를 틀리다니. 제 방 가득히 책이 있는데 읽지 않다니. 외국에서 온 원어민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는 데 영어가 싫다니. 나는 그 모든 걸 혼자 힘으로 다 해냈는데, 이 아이는 이렇게 서투르다니!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단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났고, 그 아이가 점점 미워졌던 거야. 그래,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미워했단다.”

 

(244)

시현이 이모네 집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나는 시현이네 집에서 살아보았지만 시현이는 이모네에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른다. 허름함의 첫 충격을 극복하기만 하면 시현은 스마트폰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곳을 좋아할 것이다. 하루 종일 유튜브를 들여다보며 춤동작을 연구할지도 모른다. 곽은태 선생님 부부가 꿈꾸는 시현의 미래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게 될지도 모르고, 나는 그런 시현의 미래에 대해 아무 책임도 질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달콤한 무심함을 시현에게 한 숟갈만 떠먹여주고 싶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 최고의 가정에서 자란 시현이 단 하나 가지지 못한 바로 그것, 허술하고 허점투성이인 부모 밑에서 누리는 내 마음대로의 씩씩한 삶 말이다.

 

(269-270)

만약 고양이를 키워도 된다면 나는 시현의 집에서 살 것이다라는 문장은 잠시 다녔던 영어 학원에서 늘 들었던 지겨운 조건법 시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If는 최고로 골칫덩어리라서 일단 그것이 달리면 문장의 시제는 4차원 시공간처럼 마구 뒤틀리고 아이들의 미간은 고통스럽게 찡그려진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시현은 강아지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같은 문장이 성립되고 강아지의 이름은 벡터가 되며 약속이 깨지는 순간 강아지는 쫓겨난다. 강아지는 수학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걸 아버지학교가 곽은태 선생님에게 단단히 가르쳐주었을까? 호랑이 같은 눈을 가질 내 고양이에게 나는 결코 그런 이름을 지어주지 않을 것이다.

 

(270)

곽은태 선생님의 반석 같은 어깨 위에서 엉덩이춤을 추며 자랐을 시현을 한없이 부러워한 시간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두드리기만 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부모의 어깨 위도 알고 보니 멀미 나게 흔들리는 곳이었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어깨는 없다.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한때 시현이 악마처럼 사악한 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 아이도 나처럼 격렬한 어지러움에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더 이상 시현을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타인의 부러워하는 시선 속에서, 남들은 모르는 어깨 위의 흔들림을 견뎌야 했던 시현이 나보다 더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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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아옌데는 시대를 통해 만들어졌다. 새로운 사회계급이 국가경제에서 제 몫을 요구하기 위해 싸우고, 자기 사회를 어떻게 운영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투쟁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이념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던 시대였고, 혁명은 이룰 수 이 없는 꿈이 아니라 분명한 가능성이었다. 지구촌의 다른 수많은 사람들처럼, 아옌데의 생각도 그 시대의 거대한 이념을 바탕으로 꼴을 갖추었다. 그것은 바로 마르크스주의였다. 이를 통해 아옌데는 역사를 해석하는 수단을 얻었고, 절대다수의 인간들이 고통받고 있는 소외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착취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킴으로써, 사회주의는 또한 압제자들을 자유롭게 하는 길도 제시했다. 말 그대로 아메리카혁명과 프랑스혁명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었다. 아옌데는 바로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삶을 살았다. 그가 권력을 추구했다면, 그것은 이런 이상이 실현되는 나라와 세상을 만드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을 통해 그는 칠레를 변혁했고, 이를 통해 칠레 인민과 역사 속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40)

아옌데는 부와 권력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발파라이소에서의 삶의 현실적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었고, 당시의 요동치는 정세는 아옌데를 부촌인 비냐델마르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프롤레타이아트의 항구도시에 걸맞게 했다. 1972년 레지스 드브레와의 인터뷰에서 아옌데는 스스로를 발파라이소 항구 출신을 일컫는 자랑스러운 포르테뇨이자, 포르테뇨 출신 첫 대통령이라고 표현했다.


.

(68)

지구촌 차원의 경제위기가 촉발한 혼란 속에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브라질에서는 제툴리오 바르가스 독재체제가 들어섰다. 베네수엘라, 페루, 아르헨티나도 권위주의 정권이 수립됐다. 엘살바도르에서는 마르티네스 장군이 소규모 공산당을 짓밟고 3만여 농민을 학살했다. 니타라과에서는 1933년 소모사가 아우구스토 산디노를 암살하고 독재체제를 강화했으며,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트루히요가 집권했다. ‘볼셰비즘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이들 정권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30년 경제위기의 여파로 차관과 쌍무협정을 통한 간접 통제에 기반을 둔 경제체계가 형성됐다. 미국이 힘이 약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를 11로 맞상태하면서 우위를 점하는 정치적 체제도 마련됐다.

(74)

현실적인 보탬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아옌데는 프리메이슨에 고결하고 숭고한 사명이 있다고 여겼다. 프리메이슨 회원은 현대적 기준을 활용해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을 규정하고, 이를 통해 소외도 실업도 저임금도 없는 사회,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고통받지 않는 사회를 건설해내려 했다. 이를 위해 제대로 기능하는 효과적인 사회복지제도를 만들어 모든 이들에게 폭넓은 문화적 혜택의 문호를 열어젖혀야 한다는 것이다. 아옌데는 이 같은 내용을 프리메이슨의 사명으로 채택할 것을 줄기차게 요청했다. 또한 노동계급 출신과 청년 지식인 회원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운영의 민주화에도 더욱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92)

라틴아메리카의 지지가 필요한 것은 신생 국제연합(유엔) 무대에서뿐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필수 천연자원을 싼값에 조달해온 상황을 지속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이 전후 유럽 재건을 위해 마련한 마셜 플랜에 들어간 막대한 재원을 제공한 것도 결국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이었다. 그러니 공산당에 대한 탄압이 재개된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칠레 소수 지배계급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공의식은 이제 미국 정부 및 미국계 다국적 기업과 공유됐다. 이때부터 이들 세 부류는 이른바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 함께 싸우게 된다.


(94)

당시 연설에서 아옌데는 칠레의 기존 민주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거론했다. 그는 현재 칠레 사회 구성원들이 누리는 자유는 허울일 뿐이며, 권력과 생산수단을 손에 쥔 극소수만이 자유를 누리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현실 인식에 기초에 지금으로서는칠레에서 사회주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당이 칠레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체제를 존중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현행 민주주의 체제가 선거 결과와 노동조합, 사회적 권리를 존중하는 한, 그리고 사상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보장하는 한 우리는 법체제 안에서 활동해나갈 것이다.”


(95)

그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합니다.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기회이며, 지속적으로 나아지기를 열망하는 정신적 태도이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의장님, 민주주의는 원칙과 사상, 이념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의식적 노력의 결과물이지, 단순히 정책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96)

그러니 혁명은 다른 정치세력과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 역시 일정한 형태의 혁명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인민전선 정보는 종말을 고했지만, 인민전선이 거둔 성과는 아옌데에게 평화적 혁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우쳐주었다. 칠레 국가 기구는 정책 목표를 바꿔 급격한 변혁을 추진하더라도 그 과정을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유연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아옌데는 이런 관점을 남은 삶 동안 확고하게 유지했다. 인민전선은 비록 막을 내렸지만, 그 실험은 1973년은 물론 그 이후까지도 칠레 사회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평화적 방식을 통해서도 혁명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10)

아옌데는 구리 업계가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사이, 칠레 정부가 차관을 얻기 위해 외국 정부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분개했다. 또 정부 내 어느 누구도 미국과 칠레 간 불평등한 구리협정이 체결됐다거나, 미국계 구리 업계와도 별도의 협정을 맺었다는 점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는 이런 현실은 칠레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구리 업계의 오만한 태도와도 모순되며, 칠레의 국가적 자존심에도 먹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구리 재벌 6명이 쥐락펴락하고 있는 칠레를 포함한 국제 구리 시장은 제국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아옌데는 구리 생산을 감독하고, 생산된 구리를 국제시장에 수출하는 업무를 총괄할 국영 구리 기업 창설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구리 생산원가를 파악함으로써, 칠레 경제의 중요한 부문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었다.


(141)

칠레 언론의 선동 공작은 아옌데를 악마로 만드는 데 집중됐다. 미국은 아옌데의 정적을 적극 지원했다. 필요한 공작금은 아낌없이 투입했다. 오랜 세월 칠레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했지만, 미국이 이 정도 규모로 개입한 것은 칠레 선거 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CIA 칠레 지부는 1953년부터 우파 뉴스통신사와 교양 잡지, 주간 신문들을 지원해왔다. 1961년부터는 주요 정당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반공 선동전을 확산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선거관리위원회가 워싱턴과 산티아고에 설치되어, 칠레의 민주적 선거 절차를 전복하기 위한 미국의 개입 방식을 조율했다.


(176-7)

아옌데의 집권은 칠레에서 마르크스주의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 했던 미국의 노력이 실패했음을 뜻했다. 아옌데 취임 이틀 뒤인 11 6일 닉슨 미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해 아옌데 정부를 붕괴시킬 방안을 논의했다. 닉슨에게는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아옌데가 끼칠 영향이 위험천만해 보였다. “남아메리카의 잠재적 지도자들이 칠레와 유사한 시도를 하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내버려두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가 아예 우리 손에서 떠나간 것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를 미국 수중에 유지하기를 원한다.” 닉슨은 이런 식으로 말을 이었다. 이날 회의에 따라 결정된 사항은 표면상 냉정하고 적절한입장을 이해하고, 칠레에 맞서기 위한 미국의 노력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며, 칠레의 모든 대외경제, 금융 분야 협력을 봉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180)

칠레에서 복지제도는 사람들의 행동과,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사고체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과 연계돼 있었다. 칠레 국민들은 그저 국가의 관대한 복지 혜택을 수동적으로 받는 존재가 아니라, 존엄한 삶을 누리기 위해 복지정책 입안하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복지제도 운영 전반에 대한 참여를 요구할 수 있게 했다. 복지정책 입안과 집행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참여가 필요했다. 또 노동자는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고,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도 기업 운영과 계획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집권 후 인민연합 정부가 취한 첫 번째 조치는 칠레노동조합총연맹을 창립 약 20주년 만에 처음으로 법적으로 인정하는 합의서에 서명하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은 앞서 노동조합 총회 등에서 논의됐던 것으로, 아옌데 정부 아래서 노동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첫걸음이었다.

(229)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군부 절대다수가 반란에 가담했습니다. 이 어두운 시기에, 지난 1971년 제가 드렸던 말씀을 여러분께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차분하고 평정심을 유지한 채 말입니다. 저는 사도도 아니고 메시아도 아닙니다. 저는 순교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저는 인민이 제게 부여한 과업을 완수하려는 사회적 투사일 뿐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리는 세력, 칠레 절대다수 인민의 의지를 무시하려는 세력이 깨닫도록 할 것입니다. 순교자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저는 여기서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반역의 무리에게 알리겠습니다. 듣게 하겠습니다.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칠레 인민들이 제게 부여한 사명을 완수한 뒤에야 저는 모네다궁을 떠날 것입니다.


(236)

조국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반역이 우리에게 강요한 이 잿빛의 쓰디쓴 순간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그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자유로운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당당하게 걸어갈 드넓은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말입니다. 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적어도 제 희생을 통해 범죄자와 비겁한 자, 반역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도적적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269)

아옌데 정부의 붕괴를 지켜보면서, 라틴아메리카는 물론 전세계 좌파 진영이 인민연합 정부의 패배에서 교훈을 얻고자 했다. 아옌데의 패배는 제국주의가 어떠한 좌파 정부에게라도 활용할 수 있는 대응방식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전세계 좌파는 칠레의 민주적 사회주의에서 여전히 영감을 얻고 있다. 칠레의 사례는 한편으로 선거를 통한 혁명 세력의 집권이 가능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다른 한편으로 칠레의 경험은 혁명적 과정을 효과적으로 방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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