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병실에서 안드레이는 창문 근처 초록색 식물 옆에, 내 침대를 마주 보는 작은 침대에 앉아 있고, 간호사들은 내가 침대 위에 앉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문이 닫히고, 우리만 남겨진다. 그가 말한다. 나스티아, 곰을 용서했어? 다시 침묵, 곰을 용서해야 해.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으로 나는 운명에, 연결고리들에, 우리가 향하는 이 모든 불가피한 것들에 저항하고 싶다. 곰을 죽이고 싶었다고, 내 체계 밖으로 곰을 쫓아내고 싶었다고, 내 얼굴을 이렇게 망가뜨려 놓은 것을 무척이나 원망한다고 그에게 소리 지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소리 지르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숨을 몰아쉰다. 그래, 곰을 용서했어.

 

(62-63)

학자로서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연구 주제를 학생들과 공유하고 참여시키는 것, 지식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모든 기회를 이용하는 것, 특정한 대상을 주제로 토론하는 것 모두, 오늘 그 대상이 나라는 사실만 빼면, 의대생들이 여왕벌을 따르는 벌들처럼 교수를 따라 내 병실에 들어온다. 나와 비슷한 또래이거나 겨우 몇 살 더 어릴 뿐인 학생들이 공책을 손에 들고, 흰 가운을 입고, 학구적인 눈빛으로 나의 사례를 설명하는 교수에게 집중한다. 얼굴과 머리에 곰에게 물린 자국, 오른쪽 머리에 난 다수의 상처, 오른쪽 다리에 물린 자국, 그들이 메모를 하는 동안, 나는 그들을 하나하나 관찰한다. 그들은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고, 흰 가운을 걸친 몸에서는 빛이 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여기 도착하고 나서 나를 보러 온 한 지인이 뱉었던, 그다지 섬세하지 않은 말이 떠오른다. 더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도 있었어. 너는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막 나온 사람처럼 보일 뿐이야. 그들의 시선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베일로 얼굴을 감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들이 오늘 저녁 친구들에게 두개악안면외과에 송환된 ‘곰의 여자’ 이야기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이미 혼자 상상한 반응을 억누르고 애쓴다. 얼굴이 다 망가졌어. 불쌍하기도 하지, 전에는 분명 예뻤을 텐데 말이야.

 

(73-74)

프랑스에서 받는 첫 수술 날이다. 내 수술을 담당하는 외과의사와 의료진 내 턱에 소련의 플레이트를 그대로 두는 것에는 위험이 따르고, 따라서 이를 서방의 플레이트로 교체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 플레이트가 너무 큰 나사로, 의료진을 표현을 빌리자면, ‘러시아 방식으로’ 고정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것을 매우 두꺼운 데다, 재활 운동을 어렵게 만들지도 위치에 고정되어 있다. 어쩌면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러시아 사람들을 신뢰한다고 말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우선 집으로 돌아가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도, 모르겠다. 이 밤의 시점에서는 어떠한 진실에도, 어떠한 당연한 것에도 접근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언제는 가능했었나? 그렇게 내 턱은 고요하지만 가차 없이, 프랑스와 러시아의 의료 냉전 현장이 되었다.

 

(88)

그날 밤, 나는 야수를 믿어야 한다고, 그들의 침묵과 그들의 신중함을 믿어야 한다고 쓴다. 경계 태세를, 이 병실의 헐벗은 백색 벽을, 노란 침대 시트를 믿어야 한다고. 중립성과 무관심, 횡단성이 존재하는 비공간 안에서 몸과 영혼에 작용하는 후퇴를 믿어야 한다고. 형태가 없는 것이 조용히 그리고 급작스럽게 구체화되고, 그려지고, 재정의된다. 신경 분포를 막고, 다시 신경을 분포시키고, 섞고, 병합하고, 이식하고, 곰과 그의 발톱이 지나간 내 몸, 피가 흐르지만 죽음이 없는 내 몸, 삶으로, 실밥과 손길로 충만한 내 몸, 여러 존재가 만나는 열린 세계의 모습을 한 내 몸, 그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 없이 회복하는 내 몸, 내 몸은 혁명이다.

 

(124-125)

어른이 살면서 내내 간절히 찾는 은신처를 태아는 이미 가지고 있다. 우리는 때때로 매일 영양분이 유입되는 포궁의 내벽을 우리 주위에 재건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우리가 실패할 때, 세상이 운명의 장난으로 우리를 다시 그곳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한다는 이상한 생각이 든다. 바깥의 무엇인가가 우리를 겉보기에 어딘가 음산해 보이는 문 안에 가두며 내면의 삶을 상시기킨다. 그러나 그 공간은 사실 구원의 공간이다. 사이가 좁은 네 개의 벽, 작은 문과 제한된 접촉, 빅토르 위고는 섬 안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시를 써나갔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미국 버몬트의 숲에서 러시아 이야기를 다시 썼다. 레프 트로츠키는 감옥을 전전하면서 죽음을 피했고, 썼다. 맽컴 라우리는 바다에 직면한 그의 오두막에서 그가 있던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소리를 종이 위에 수집했다. 내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며 화산 아래의 숲에서 머무는 동안 하고 있는 일 역시 그들이 이룬 것과 다르지 않지 않을까? 나를 관통하는 징후와 시대의 모순, 분노, 비극과 완전한 종말을 드러내는 신호들을 더 잘 보기 위해 대담하게 옆으로 비켜나는 것 외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나는 너무나도 다른 짐승의 세계를, 병원에선 너무나도 인간적인 세계를 봤다. 나는 내 자리를 잃었고, 그 중간을 찾는다. 나를 재구성하기 위한 공간, 이 피정은 내 영혼이 다시 회복하는 것을 도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 세계 사이의 다리를, 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포기란 내 내면의 사전에 존재하기 않기 때문에.

 

(126)

가끔 어떤 동물은 인간에게 선물을 주기도 해. 인간들이 처신을 잘했을 때, 그들의 삶 내내 귀를 기울였을 때, 너무 나쁜 생각을 품지 않았을 때, 그녀는 시선을 내리깔고 천천히 숨을 내쉰 다음 고개를 들고 다시 미소를 짓는다. 곰들은 우리에게 선물을 줬지, 너를 살려둠으로써 말이야.

 

(147)

엄마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존재가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거든요. 흠, 그가 중얼거린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차 한 모금을 마신다. 곰이 인간과 다른 점은 그들이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는 거야.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 이해했어요. 곰들이 거울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게 다행이네요. 한 그랬으면 모두 미쳐버렸을걸요! 마시아가 맑은 웃음을 터뜨리고 나도 함께 웃는다.

 

(160-161)

2015년 8월 25일, 그날의 사건은 캄차카 반도의 산 어딘가에서 곰 한 마리가 프랑스 인류학자를 공격한 것이 아니다. 사건은 곰 한 마리와 한 여자가 만나고 세상의 경계가 파열한 것이다. 이는 인간과 짐승이 대면하면서 그들의 몸과 머리에 균열에 생기는 물리적 한계로만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현실과 신화의 만남이고,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고, 꿈과 실재의 만남이다. 이 장면은 오늘날에 전개되었지만 천 년 전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는 우리가 개인적이고 미미한 궤적에 무관심한 도시에 세계에서 나와 곰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라스코 동굴 멱화에서처럼 상처를 입은 들소와 발기된 성기를 하고 비틀거리는 인간의 원형적인 대면이기도 하다. 동굴 벽화의 장면처럼, 결투 결과의 불확실성이 이 놀랍고도 필연적인 사건을 지배한다. 하지만 우물 벽화와는 반대로, 이다음의 일은 수수께끼로 머물지 않는다. 우리 중 아무도 죽지 않았고, 불가능한 일에서 살아 돌아왔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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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생각해보세요. 학교란 기관은 생각보다 기회를 주지 않아요, 실용적이지도 않고도. 평생을 공부했는데 우리가 누군지도 모른 채로 사회에 던져지죠. 먹고는 살아야겠으니 알바하다가, 공부했다가, 어영부영 취업했다가, 다시 퇴사했다가, 쉬다가, 반복 또 반복, 그러다 까딱 잘못하면 고립 청년이 되고요, 좀 잘되면 견딜 수 있는 작업을 찾는 거죠. 그런데 하나의 일을 꾸준하게 해왔다는 건 인내와 끈기가 있다는 거거든요. 게다가 악기는 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 수없이 같은 것을 반복해서 연습해야 하잖아요. 섬세함도 갖춰야 하고요. 저는 김정한 씨야말로 청년귀농프로그램이 원하는 인재상이라고 보거든요.”

 

(88)

방진 커튼을 펼쳐 안으로 들어선다. 아침 햇살처럼 따스한 황색의 LED 라이트가 공간을 빼곡히 덮고 있다. 창문 하나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유일한 태양이 되어주는 인공 불빛 아래 층층이 펼쳐진 사육 틀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각사각. 잎을 갉아 먹는 소리가 마치 빗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먹는 일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한없이 입에 잎을 밀어 넣는 말랑한 생명체들. 밀가루 반죽처럼 부드럽고 젤리처럼 탱글거리며 하얗지도 노랗지도 않은 반투명한 빛깔로 살이 오르는 나의 말캉한 몸뚱이들. 이들이 내가 키우는 빵충이다.

 

(102)

‘누님이 밀었잖아요’라는 투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저 피식 웃음으로 흘려보내며 엑셀을 밟았다. 낭만 농부라니, 세상에. 그 촌스러운 별명이 웃기면서도 싫지 않았다. 낭만은 서울에 다 두고 온 줄 알았다. 어쩌면 내가 두고 온 건 커피와 담배, 대마, 새벽 감성에 취해 끄적이던 곡들. 그리고 한탄과 질투로 여름날 아스팔트 위 껌처럼 엉겨 붙은 지독한 예술병이었는지도 모른다. 트럼펫으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지자, 어린 날의 그때처럼 음악을 즐기게 되었다. 서울의 비좁은 자취방에 살 때와 다르게 이곳은 뒷산에 올라가기만 하면 어떤 소음 공해나 항의 없이 마음껏 불어댈 수 있었으니까. 한껏 마음속 쌓인 음표들을 내지르고 나면 속이 뻥 뚫린 것같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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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말라리아에서 시작된 두 시간의 사색 끝에 월리스는 자연선택이론을 완성해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발전하고 도태하는 자연의 자정 작용은 필연적으로 다음 세대를 진보하게 할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열등한 종은 빨리 죽을 것이고, 우월한 종은 더 오래 남을 것이다. 즉 가장 적응을 잘한 종이 가장 오래 살아남는 것이다. 월리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표본을 수집해온 정글이 해수면의 상승과 하강, 기후 변호, 가뭄 등의 이유로 오랫동안 계속 변해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다가 마침내 “오랫동안 찾아온 자연의 법칙”을 깨달았다.


(59)

당시 다윈은 이미 <종의 기원> 3판을 출간하며, 자연선택 이론의 ‘주인’으로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있었다. 월리스는 다윈의 명성이 높아진 것을 보고도 전혀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과학계는 이제 월리스를 학자로 대우했다. 영국 조류학협회는 월리스를 명예회원으로 인정했고, 동물학회는 그를 특별회원으로 지정했다.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이렇게 발표했다. “월리스 같은 사람은 한 세대에 한 번 나오기도 힘든 인물이다. 열대의 야생 밀림을 아무 탈 없이 돌아다니기에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으로 충분한 자격을 갖췄고, 대단히 훌륭한 수집품을 모았다. 게다가 그 수집품을 분석해서 아주 현명하게 결론을 도출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류학자, 존 굴드는 월리스의 표본이 앞으로의 연구에 아주 요긴하게 쓰일 ‘완벽한’ 자료라고 단언했다.


(73-74)

산업이 발달할수록 이러한 수치는 더욱 커졌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다이아몬드 깃털을 자랑하던 1798년 프랑스에는 깃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술자가 25명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862년에 이르면 120명까지 증가하고, 1870년경에는 280명까지 급증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깃털을 뽑고 가공하는 분야에 종사하다 보니, ‘미가공 깃털 상인 조합’, ‘깃털 염색업자 조합’, ‘깃털 산업 어린이 노동자 보호 협회’ 같은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1890년대 프랑스에는 거의 4만 5000톤에 달하는 깃털이 수입됐다. 런던 민싱가에 있는 경매장에서는 4년간 극락조 15만 5000마리가 거래됐다. 같은 기간, 현재 가치로 약 28억 달러에 달하고 무게로는 총 1만 8000톤에 달하는 극락조가 거래되었다. 한 영국인 딜러는 1년간 새 가죽 200만 장을 팔았다. 미국의 깃털 산업도 상황은 비슷했다. 1900년대까지 8만 3000명의 뉴요커가 모자 관련 업계에 종사하며, 북미 지역에서만 매년 약 2억 마리의 새들이 죽어갔다.


(285)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박물관 표본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했다. “기술적인 면에서 보면, 일정 시간 후에는, 아마 100년 정도는 되겠지만, 표본들에서 뽑아낼 수 있는 과학적인 데이터는 이미 모두 뽑아냈겠지요. DNA로 이제 더는 할 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의 역할이 뭐죠? 그 새들이 멸종되지 않고 더 오래 살게 하려는 것이었죠. 하지만 제대로 안 됐잖아요. 지금도 멸종되는 새가 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죠. 밀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345)

그들은 모두 수세기에 걸쳐 새들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에게 새들은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신념이 있었다. 그 새들이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신념과 과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므로 같은 새라도 그 새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계속 제공될 거라는 신념 말이다.

또 다른 쪽에는 에드윈 리스트가 속하는, 깃털을 둘러싼 지하세상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혀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지위를 탐하며, 몇 세기 동안 하늘과 숲을 약탈해온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지식이냐 탐욕이냐, 이들 사이의 전투에서 탐욕이 승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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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낮이건 밤이건 들려오는 징과 피리와 꽹과리 소리에 남측은 상시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아 피가 나올 때까지 제 귓속을 후벼 파거나 머리카락을 쥐어뜯거나 점잖지 않은 욕설을 뱉어댔다. 대중 음악의 세례 속에서 자라난 젊은 미군들이 특히 힘들어하여 ‘박자, 저 염병할 박자 좀 어떻게 해줘’하고 비명 지르다 까무러치곤 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흥겨운 로큰롤 리듬에 길들여 있던 그들에게 징지쿵삐리딱징땡땡 하는 엇박자 굉음은 그저 고문이었다. 이 음파 고문에 남측은 집단 공황을 일으켰다. 숫자만 많았다 뿐이지 개별 전투력은 허접했던 중공군이 고작 악기 연주-여보게 그게 과연 연주인가-로 무섭게 기세를 올리는 중이었다. 당장 뾰족한 수가 필요했다.


(100)

하지만 그게 바로 전쟁이었다. 총알이 떨어져 아무 작대기나 들고 싸우다 수류탄이라도 하나 생기면 세상을 다 얻은 양 우쭐해져서 상대편 모인 곳으로 던졌다. 그 수류탄이 터질 때마다 부근에 있던 수많은 군인이 방사형으로 날아갔다. 부모가 있고 친구가 있고 꿈이 있는 이들이었다. 거기서 무시했다면 고향에 돌아가 연인을 만들고 가족을 만들고 음탕한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 한 성씨의 시조도 될 수 있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 수십 명이 싸구려 화약을 채운 수류탄 하나로 신의 공에 맞은 볼링 핀처럼 쓰러졌다. 그렇게 하여 얻은 건 고작 한두 뼘의 땅인데, 사실 군인 대부분이 저 멀리 북쪽이나 저 아래 남쪽 출신이어서 철원의 험준한 땅덩어리 한두 뼘을 맹렬히 탐낼 이유가 없었다. 따져보면 이유는 딱 하나, 남북 수령 간의 사이가 안 좋아 졸개끼리 머리통 터지게 싸우는 것이었다.


(178-179)

들어라, 미개한 국민이 자유만 원한다면 한탄하던 해방 직후의 남한 지도층은 북한이 쳐들어오니 자유가 위협받는다고 난리를 쳤다. 그들은 북한을 혐오하려 자유를 내세웠음에도 자유를 억압하기 때문에 북한을 혐오하는 척했다. 이윽고 북한이 패퇴하자 지도층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무슨 복지원이니 무슨 학원이니 고상한 이름들을 단 강제수용소를 전국 방방곡곡에 세워 국민의 자유를 회수했다. 백골단이나 땃벌레나 각목부대 등의 이름으로 움직이는 관변 정치 깡패들도 기승을 부렸다. 준공무원을 자처하는 이들 정치 깡패는 사람의 어디를 때리면 가장 아픈지, 가장 상처가 크게 나는지, 가장 오랫동안 낫지 않는지 외과 의사만큼 잘 아는 자들이었다. 다만 지도층도 정치 깡패도 박복대의 자유는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박복대가 입은 미국 군복 때문이었다. 군인도 아니고 군무원도 아닌 관계로 박복대의 군복에는 계급장이 없었다. 다만 이름이 적혀 있었다.


(208)

인쇄란 정교하고 전문적이긴 하나 숙달된 노동자한테는 다소 지루한 작업이다. 뉴스를 물어 와 기사 쓰는 신문사와 달리 의뢰인이 써 온 글을 사용하는 것이어서 약간의 교정 교열과 판형 및 용지 선택, 조판 등 뻔한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복대는 그 무한 반복이 좋았다. 박복대는 전쟁이 터지기 전만 해도 자신이 농사를 무한히 반복하며 늙을 줄 알았다. 그에 비하면 인쇄라는 무한 반복은 몸이 더 편하고, 더 배울 게 많고, 보수도 아무튼 농사보다야 많고, 자연재해라는 예상치 못한 골탕을 먹을 일도 적고, 글씨를 연습하거나 인쇄물을 읽는 등 자유롭게 사용할 시간도 많았다. 세상에 이런 작업이 있는 줄 알았다면 천생 농부인 아버지도 당장 갈아탔을 것이다. 말은 거의 없지만 눈이 마주칠 때마다 씩 웃어주는 황 씨, 변 씨랑 지내는 것도 좋았다. 작업 전 청소, 교정 교열, 식자, 인쇄, 작업 후 청소와 뒷정리로 이어지는 매일의 일과가 퍽 행복했다. 시간이 잘 갔다. 무엇보다도 저녁밥이 너무나 맛있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갈 때마다 이번에는 대체 어떤 반찬과 어떤 국이 나올까 궁금해 애가 탈 지경이었다. 한국에 있는 진미라는 진미는 모두 먹는 것 같았다. 자연히 살이 뒤룩뒤룩 쪘다. 한 해가 안 되어 80킬로그램을 훌쩍 넘겼다. 스무 살 넘은 나이에 키도 더 자라 177센티미터나 되었다. 당시 한국 남자의 평균 체격보다 많이 컸다.


(238)

들어라, 박정희 시대가 저물고 이제 세상이 좋아지나 했더니만 웬걸, 불과 두 달도 못 돼 또 다른 군인 자식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게 웬 횡재냐 하면서 허리 좀 펴보려 했던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좌절했다. 한복 입은 모진 할아버지를 만나 죽도록 맞고, 그놈이 가자 이때다 하고 튀어나온 군복 입은 땅꼬마한테 또 죽도록 맞았는데, 그놈도 간 후 고개를 들어보니 저 앞에 군복 입은 대머리가 해머를 질질 끌며 오는 중이었다. 그게 바로 전두환의 등장을 대하는 시민들의 심정이었다. 이놈의 군인들은 적과 싸울 땐 부리나케 도망치던 주제에 제 나라 국민 두들겨 패는 일에는 미슐랭 레스토랑 앞에서처럼 줄을 서 있는 모양이었다.


(349)

박복대는 오랫동안 모른 채 살아왔다. 상한 고통만큼 잃은 고통도 큼을 모르고, 크게 쓰러지면 다시 일어날 수 없음을 모르고, 우리 삶이란 아찔한 상실의 연속임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러나 피비린내 진동하는 화암동 계곡에 홀로 서세 된 박복대는 제 인식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조연화에게 매달렸다. 조연화는 박복대와 정반대였다. 그녀는 손쓸 수 없이 다쳐버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돌보았다. 자기 삶을 쪼개가며 간호했다. 그런 이유로 초자연적인 치유의 비밀을 알기도 전부터, 알고 나서는 더더욱, 그녀에게 박복대는 저 참담한 헌신에서 눈을 떼 잠깐이나마 쉬게 해주는 존재였다. 박복대에게 조연화가 마땅히 달려가야 할 목표였다면, 조연화에게 박복대는 숨 돌릴 수 있는 휴식이었던 셈이다. 둘이 서로에게 자신을 가져다 묶은 이유는 그처럼 달랐다. 박복대는 자신을 완전케 해주는 사람을 찾아서, 조연화는 자신을 쓸모없게 해주는 사람을 찾아서.


(408)

부랑자의 재활을 위해 형제복지원이 있는 게 아니었다. 형제복지원의 운영을 위해 부랑자가 필요했다. 부랑자가 ‘나 부랑자야’하고 말할 리야 없겠으나 들어보면 어처구니없이 잡혀 온 원생이 너무 많았다. 집 주소를 쓰고 보호자 이름을 대고 전화번호까지 또박또박 읊어봤자 소용없었다. 용구산 공원에서 꽃을 꺾다가 잡혀 온 꼬마가 있었다. 자갈치시장에서 생선을 구경하다가 잡혀 온 소녀가 있었다. 늦게까지 회사 업무를 보고는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터벅터벅 걷다 잡혀 온 남자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잡혀 온 사태를 전혀 이해 못했고, 작은 아버지가 국회의원을 했다느니 매형이 큰 사업을 한다느니 큰 소리로 바락바락 대들다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그쯤에서 멈췄으면 좋으련만, 어디 두고 보자며 대놓고 이를 갈았는데 이 협박에 위협을 느낀 조장들한테 두들겨 맞아 자대 배치도 받기 전에 깨꾸닥했다. 그의 협박은 거짓말이 아니어서, 정말로 일주일 뒤에 전직 국회의원인 작은아버지와 크게 사업하는 매형이 찾아와 무덤을 파고 시신을 인수해 갔다.


(597)

아는 얼굴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많은 추억을 대체 어쩌라는 건지 몰라 막막한 심정이었다. 맥이 풀리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요한 신부님마저 떠나자 이제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게 걱정되어 우리 다정한 신께서 박복대가 잘 아는 얼굴, 툭하면 꿈에 나오던 얼굴,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 하나를 노숙자 차림으로 창신시장 국밥집에 데려다 앉혀놓았다.


(615)

하지만 박복대는 한국전쟁은 경험했다. 북한군에게도 맞아봤고 중공군과 유엔군에게도 맞아봤고 남한군에게도 맞아봤고 깡패에게도 맞아봤고 서북청년단에게도 맞아봤고 경찰에게도 맞아봤다. 시민한테도 맞아봤고 어린애한테도 맞아봤고 자랑은 아니지만 동생과 애인한테도 맞아봤고 병 고치는 의사한테도 맞아봤고 부자한테도 맞아봤고 거지한테도 맞아봤고 외국인한테도 맞아봤고 자동차한테도 맞아봤고 젠장 곰한테도 맞아봤다. 춘천에서 맞아봤고 홍천에서 맞아봤고 서울에서 맞아봤고 이북에서 맞아봤고 철원에서 맞아봤고 대구에서 맞아봤고 광주에서 맞아봤고 삼청교육대에서 맞아봤고 형제복지원에서 맞아봤고 무슨 연구소에서 맞아봤고 깊은 산속에서 맞아봤고 자기가 사장으로 군림하는 식당에서 맞아봤다. 분명하게 맞아봤고 모호하게 맞아봤고 적당히 맞아봤고 무분별하게 맞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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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인간의 삶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하게 채우는 것들은 유대적인 관계, 온갖 느낌과 감정, 삶의 경험과 기억들이다. 하지만 삶이 끝나는 순간 이 모든 것들은 형태도 없이 사라지며 잊히고 만다.

금이 간 세상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내 차례가 돌아왔다. 언젠가는 맞부딪쳐야 할 일. 마치 누군가 갑자기 내 뺨이나 콧잔등에 주먹질을 하는 것만 같다.


(53)

책장 앞에 서서 지난 수년 동안 우리가 사 모았던 책을 찬찬히 살펴보기도 했다. 수십 년간 일정한 간격으로 차곡차곡 사 모은 책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나무의 나이테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99)

모든 것이 끝이었다. 어쩌면 운명이란 것은 삶이 자연스럽게 끝나기도 전에 이미 그 목적을 이행하도록 결정지어진 것이 아닐까? 비록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제 얼마 가지 않아 내 신체 중에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근육들은 시들어 버릴 것이다.

내 손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마치 악몽처럼 느껴졌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때가 늦었다는 생각에 더더욱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은 공포였다.


(118)

우리가 우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꽤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우리 또한 초신성 폭발로 인해 생성된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이니까. 그렇다. 우리는 우주의 티끌, 우주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를 우주의 티끌이라 칭하기보다 우주의 불꽃 또는 섬광이라 부르면 어떨까? 우리는 우주의 암흑 속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124)

나는 이 세상 전부를 빌려 살아왔다.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한다. 할부는 생각할 수도 없다. 단번에 모든 것을 갚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 채무 문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 내겐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아들과 며느리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손녀딸 사라가 있다. 친구와 동료들도 있다. 하지만 무릎을 꿇고 애원해도 변하는 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삶이 내게 건네주었던 선물이자 빚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지나온 삶에 감사하며 빛을 갚아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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