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저도 좋아하고 싶어요. 역사책은 의무적으로 조금 읽었지만, 짜증 나고 죄다 지루한 이야기뿐이더군요. 페이지마다 나오느니 교황들과 왕들의 싸움이고 여기에 전쟁이나 역병이 곁들여지고요. 남자들은 죄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고, 여자는 보이지도 않고요. 정말 따분하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따분하다는 게 이상하단 생각도 종종 들어요. 그 대부분이 지어낸 것이 분명한데 말이에요.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연설이라든가, 그들의 생각이나 속셈이나…… 그 대부분이 지어낸 게 틀림없죠. 다른 책에서는 지어낸 게 재미있는데 말이에요.”


(141)

“역사들은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없다는 걸 생각하셔야 해요.”하고 틸니 양이 말했다. “그들은 상상력을 보여주긴 하지만 흥미를 이끌어 내지는 못하죠. 전 역사를 좋아해요. 허위를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데 아주 만족하고요. 역사가들은 주요 사실들에 대해서는 과거 역사나 기록을 근거로 정보를 얻는데, 그런 정보도 실제로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는 한계는 있지만 그런대로 신빙성은 있다고 해야겠죠.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약간의 윤색에 대해서 말하자면, 네, 윤색이긴 해요. 그런데 윤색은 또 그것대로 좋아요. 연설이 잘 꾸며져 있으면 읽기에 즐겁죠. 그걸 누가 썼느냐와 상관없이 말이죠. 흄 씨나 로버트슨 씨가 지어낸 것이라면 카락타쿠스나 아그리콜라나 앨프레드 대제가 실제로 한 말보다 훨씬 즐거움이 크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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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켄드릭 씨, 제가 처음 당신 그림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해도 될까요. 저는 속으로 말했어요. ‘이 사람은 강한 사람이구나.’ 눈에는 걱정도 있고 아픔도 상처도 있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안에는 따뜻함과 친절함이 있다. 그리고 이제 알겠습니다. 이건 좋은 아빠의 얼굴이네요.” 테오는 액자 쪽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전 알아볼 수 있었어요. 이 사람은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라는 걸요. 화가는 그걸 명징하게 담아냈어요. 켄드릭 씨, 직접 만나서 다시 한번 영광입니다.”


(182)

“예술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 자체도 어려운데, ‘좋은 예술’을 정의하는 건 더 어렵죠.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좋은 작품이 아니라 좋은 반응만 있는 걸지도요.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예술 작품이 익숙한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해주거나, 우리가 느껴왔어야 할 감정을 새삼스럽게 다시 느끼게 해준다거나, 우리가 이 세상 속 어디에 서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면, 그런 작품이 ‘좋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작품이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면, 그것이 예술이 지닌 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189)

“그렇다면 이른바 ‘좋은 예술’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좋은 예술은 아이에게도, 거장에게서도 나올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하고요. 이런 관점은 비평가들, 특히 현대 비평가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무엇이 예술로서 정당한지, 무엇이 가치 있고 없는지, 그걸 자기들이 정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어 하죠.”


(232)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우리 잘못일지도요. 엘렌, 나이가 들수록 저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되는 게 있어요. 이 세상이 알게 되는 모든 상처는, 어떤 식으로든, 지금껏 살았던 사람들의 책임이라고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적인 건 아닐지 몰라도,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쩐지 우리는 세상의 모든 상처를 함께 소유하고 있는 건 아닐까.”


(282)

토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지만 문장은 여전히 툭툭 끊겼다. “테오… 전쟁이 나를 바꿔놓은 게 있다면, 최소한 정직하게 만들었겠지. 전쟁이 눈을 뜨게 했어. 인간이란 종족에게 갖고 있던 그 어떤 낭만적인 환상도 사라졌어.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들이 자랑할 게 뭐가 있겠나. 정글, 공포, 총… 그리고 어설픈 애국심이 합쳐져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지 생각하면 구역질이 나 미쳐버릴 것 같아. 어쩌면 우리 모두 안에 살인자가 하나씩은 있다고 생각해.”


(308)

테오는 말을 이었다. “아마 기자님도 항상 시절 문학 시간이든 혹은 따로 공부를 하시다가 위즈워스를 읽어본 적이 있겠지요. 워즈워스는 한 시에서 선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작고 이름 없고 기억되지 않는 친절과 사랑의 행위들’이라고 쓴 적이 있어요. 아마 <틴턴 수도원>이라는 시였죠? 작고, 이름 없고, 기억되지 않는 것. 우리는 원래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특히 요즘 세상 사람들은 무언가 ‘큰 것’, ‘입 소문 나는 것’, 그런 것들을 좋아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워즈워스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373)

“예야, 세상에는 정의도 있고 자비도 있단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면 나는 늘 자비 쪽으로 가라고 말하고 싶구나. 혹여 실수하더라도 자비를 베풀다 실수하는 것이 낫다. 잘못된 자비는 잘못된 정의만큼 사람을 아프게 하진 않아. 그리고 항상 기억해라. 하나님의 눈은 다 보고 계신다.”


(448)

가까운 친구 중 안과 의사가 있는데, 아주 철학적인 분입니다. 그분은 부모가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형식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일은) 아이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이를 가까이 안고 눈을 마주치는 것. 이보다 더 단순한 일이 있을까요? 또 이보다 더 심원한 일이 있을까요? 이보다 무모와 아이를 크게 변화시키는 일이 또 있을까요?


(536)

나는 감사하는 늙은이다.

자랑스러운 아버지다.

지금처럼 살아가거라. 사랑하는 아이야.

진실을 구하라.

아름다움을 만들어라.

좋은 삶을 살아라.

사랑한다, 내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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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병실에서 안드레이는 창문 근처 초록색 식물 옆에, 내 침대를 마주 보는 작은 침대에 앉아 있고, 간호사들은 내가 침대 위에 앉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문이 닫히고, 우리만 남겨진다. 그가 말한다. 나스티아, 곰을 용서했어? 다시 침묵, 곰을 용서해야 해.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으로 나는 운명에, 연결고리들에, 우리가 향하는 이 모든 불가피한 것들에 저항하고 싶다. 곰을 죽이고 싶었다고, 내 체계 밖으로 곰을 쫓아내고 싶었다고, 내 얼굴을 이렇게 망가뜨려 놓은 것을 무척이나 원망한다고 그에게 소리 지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소리 지르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숨을 몰아쉰다. 그래, 곰을 용서했어.

 

(62-63)

학자로서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연구 주제를 학생들과 공유하고 참여시키는 것, 지식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모든 기회를 이용하는 것, 특정한 대상을 주제로 토론하는 것 모두, 오늘 그 대상이 나라는 사실만 빼면, 의대생들이 여왕벌을 따르는 벌들처럼 교수를 따라 내 병실에 들어온다. 나와 비슷한 또래이거나 겨우 몇 살 더 어릴 뿐인 학생들이 공책을 손에 들고, 흰 가운을 입고, 학구적인 눈빛으로 나의 사례를 설명하는 교수에게 집중한다. 얼굴과 머리에 곰에게 물린 자국, 오른쪽 머리에 난 다수의 상처, 오른쪽 다리에 물린 자국, 그들이 메모를 하는 동안, 나는 그들을 하나하나 관찰한다. 그들은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고, 흰 가운을 걸친 몸에서는 빛이 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여기 도착하고 나서 나를 보러 온 한 지인이 뱉었던, 그다지 섬세하지 않은 말이 떠오른다. 더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도 있었어. 너는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막 나온 사람처럼 보일 뿐이야. 그들의 시선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베일로 얼굴을 감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들이 오늘 저녁 친구들에게 두개악안면외과에 송환된 ‘곰의 여자’ 이야기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이미 혼자 상상한 반응을 억누르고 애쓴다. 얼굴이 다 망가졌어. 불쌍하기도 하지, 전에는 분명 예뻤을 텐데 말이야.

 

(73-74)

프랑스에서 받는 첫 수술 날이다. 내 수술을 담당하는 외과의사와 의료진 내 턱에 소련의 플레이트를 그대로 두는 것에는 위험이 따르고, 따라서 이를 서방의 플레이트로 교체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 플레이트가 너무 큰 나사로, 의료진을 표현을 빌리자면, ‘러시아 방식으로’ 고정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것을 매우 두꺼운 데다, 재활 운동을 어렵게 만들지도 위치에 고정되어 있다. 어쩌면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러시아 사람들을 신뢰한다고 말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우선 집으로 돌아가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도, 모르겠다. 이 밤의 시점에서는 어떠한 진실에도, 어떠한 당연한 것에도 접근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언제는 가능했었나? 그렇게 내 턱은 고요하지만 가차 없이, 프랑스와 러시아의 의료 냉전 현장이 되었다.

 

(88)

그날 밤, 나는 야수를 믿어야 한다고, 그들의 침묵과 그들의 신중함을 믿어야 한다고 쓴다. 경계 태세를, 이 병실의 헐벗은 백색 벽을, 노란 침대 시트를 믿어야 한다고. 중립성과 무관심, 횡단성이 존재하는 비공간 안에서 몸과 영혼에 작용하는 후퇴를 믿어야 한다고. 형태가 없는 것이 조용히 그리고 급작스럽게 구체화되고, 그려지고, 재정의된다. 신경 분포를 막고, 다시 신경을 분포시키고, 섞고, 병합하고, 이식하고, 곰과 그의 발톱이 지나간 내 몸, 피가 흐르지만 죽음이 없는 내 몸, 삶으로, 실밥과 손길로 충만한 내 몸, 여러 존재가 만나는 열린 세계의 모습을 한 내 몸, 그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 없이 회복하는 내 몸, 내 몸은 혁명이다.

 

(124-125)

어른이 살면서 내내 간절히 찾는 은신처를 태아는 이미 가지고 있다. 우리는 때때로 매일 영양분이 유입되는 포궁의 내벽을 우리 주위에 재건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우리가 실패할 때, 세상이 운명의 장난으로 우리를 다시 그곳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한다는 이상한 생각이 든다. 바깥의 무엇인가가 우리를 겉보기에 어딘가 음산해 보이는 문 안에 가두며 내면의 삶을 상시기킨다. 그러나 그 공간은 사실 구원의 공간이다. 사이가 좁은 네 개의 벽, 작은 문과 제한된 접촉, 빅토르 위고는 섬 안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시를 써나갔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미국 버몬트의 숲에서 러시아 이야기를 다시 썼다. 레프 트로츠키는 감옥을 전전하면서 죽음을 피했고, 썼다. 맽컴 라우리는 바다에 직면한 그의 오두막에서 그가 있던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소리를 종이 위에 수집했다. 내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며 화산 아래의 숲에서 머무는 동안 하고 있는 일 역시 그들이 이룬 것과 다르지 않지 않을까? 나를 관통하는 징후와 시대의 모순, 분노, 비극과 완전한 종말을 드러내는 신호들을 더 잘 보기 위해 대담하게 옆으로 비켜나는 것 외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나는 너무나도 다른 짐승의 세계를, 병원에선 너무나도 인간적인 세계를 봤다. 나는 내 자리를 잃었고, 그 중간을 찾는다. 나를 재구성하기 위한 공간, 이 피정은 내 영혼이 다시 회복하는 것을 도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 세계 사이의 다리를, 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포기란 내 내면의 사전에 존재하기 않기 때문에.

 

(126)

가끔 어떤 동물은 인간에게 선물을 주기도 해. 인간들이 처신을 잘했을 때, 그들의 삶 내내 귀를 기울였을 때, 너무 나쁜 생각을 품지 않았을 때, 그녀는 시선을 내리깔고 천천히 숨을 내쉰 다음 고개를 들고 다시 미소를 짓는다. 곰들은 우리에게 선물을 줬지, 너를 살려둠으로써 말이야.

 

(147)

엄마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존재가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거든요. 흠, 그가 중얼거린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차 한 모금을 마신다. 곰이 인간과 다른 점은 그들이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는 거야.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 이해했어요. 곰들이 거울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게 다행이네요. 한 그랬으면 모두 미쳐버렸을걸요! 마시아가 맑은 웃음을 터뜨리고 나도 함께 웃는다.

 

(160-161)

2015년 8월 25일, 그날의 사건은 캄차카 반도의 산 어딘가에서 곰 한 마리가 프랑스 인류학자를 공격한 것이 아니다. 사건은 곰 한 마리와 한 여자가 만나고 세상의 경계가 파열한 것이다. 이는 인간과 짐승이 대면하면서 그들의 몸과 머리에 균열에 생기는 물리적 한계로만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현실과 신화의 만남이고,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고, 꿈과 실재의 만남이다. 이 장면은 오늘날에 전개되었지만 천 년 전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는 우리가 개인적이고 미미한 궤적에 무관심한 도시에 세계에서 나와 곰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라스코 동굴 멱화에서처럼 상처를 입은 들소와 발기된 성기를 하고 비틀거리는 인간의 원형적인 대면이기도 하다. 동굴 벽화의 장면처럼, 결투 결과의 불확실성이 이 놀랍고도 필연적인 사건을 지배한다. 하지만 우물 벽화와는 반대로, 이다음의 일은 수수께끼로 머물지 않는다. 우리 중 아무도 죽지 않았고, 불가능한 일에서 살아 돌아왔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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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생각해보세요. 학교란 기관은 생각보다 기회를 주지 않아요, 실용적이지도 않고도. 평생을 공부했는데 우리가 누군지도 모른 채로 사회에 던져지죠. 먹고는 살아야겠으니 알바하다가, 공부했다가, 어영부영 취업했다가, 다시 퇴사했다가, 쉬다가, 반복 또 반복, 그러다 까딱 잘못하면 고립 청년이 되고요, 좀 잘되면 견딜 수 있는 작업을 찾는 거죠. 그런데 하나의 일을 꾸준하게 해왔다는 건 인내와 끈기가 있다는 거거든요. 게다가 악기는 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 수없이 같은 것을 반복해서 연습해야 하잖아요. 섬세함도 갖춰야 하고요. 저는 김정한 씨야말로 청년귀농프로그램이 원하는 인재상이라고 보거든요.”

 

(88)

방진 커튼을 펼쳐 안으로 들어선다. 아침 햇살처럼 따스한 황색의 LED 라이트가 공간을 빼곡히 덮고 있다. 창문 하나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유일한 태양이 되어주는 인공 불빛 아래 층층이 펼쳐진 사육 틀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각사각. 잎을 갉아 먹는 소리가 마치 빗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먹는 일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한없이 입에 잎을 밀어 넣는 말랑한 생명체들. 밀가루 반죽처럼 부드럽고 젤리처럼 탱글거리며 하얗지도 노랗지도 않은 반투명한 빛깔로 살이 오르는 나의 말캉한 몸뚱이들. 이들이 내가 키우는 빵충이다.

 

(102)

‘누님이 밀었잖아요’라는 투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저 피식 웃음으로 흘려보내며 엑셀을 밟았다. 낭만 농부라니, 세상에. 그 촌스러운 별명이 웃기면서도 싫지 않았다. 낭만은 서울에 다 두고 온 줄 알았다. 어쩌면 내가 두고 온 건 커피와 담배, 대마, 새벽 감성에 취해 끄적이던 곡들. 그리고 한탄과 질투로 여름날 아스팔트 위 껌처럼 엉겨 붙은 지독한 예술병이었는지도 모른다. 트럼펫으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지자, 어린 날의 그때처럼 음악을 즐기게 되었다. 서울의 비좁은 자취방에 살 때와 다르게 이곳은 뒷산에 올라가기만 하면 어떤 소음 공해나 항의 없이 마음껏 불어댈 수 있었으니까. 한껏 마음속 쌓인 음표들을 내지르고 나면 속이 뻥 뚫린 것같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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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말라리아에서 시작된 두 시간의 사색 끝에 월리스는 자연선택이론을 완성해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발전하고 도태하는 자연의 자정 작용은 필연적으로 다음 세대를 진보하게 할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열등한 종은 빨리 죽을 것이고, 우월한 종은 더 오래 남을 것이다. 즉 가장 적응을 잘한 종이 가장 오래 살아남는 것이다. 월리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표본을 수집해온 정글이 해수면의 상승과 하강, 기후 변호, 가뭄 등의 이유로 오랫동안 계속 변해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다가 마침내 “오랫동안 찾아온 자연의 법칙”을 깨달았다.


(59)

당시 다윈은 이미 <종의 기원> 3판을 출간하며, 자연선택 이론의 ‘주인’으로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있었다. 월리스는 다윈의 명성이 높아진 것을 보고도 전혀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과학계는 이제 월리스를 학자로 대우했다. 영국 조류학협회는 월리스를 명예회원으로 인정했고, 동물학회는 그를 특별회원으로 지정했다.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이렇게 발표했다. “월리스 같은 사람은 한 세대에 한 번 나오기도 힘든 인물이다. 열대의 야생 밀림을 아무 탈 없이 돌아다니기에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으로 충분한 자격을 갖췄고, 대단히 훌륭한 수집품을 모았다. 게다가 그 수집품을 분석해서 아주 현명하게 결론을 도출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류학자, 존 굴드는 월리스의 표본이 앞으로의 연구에 아주 요긴하게 쓰일 ‘완벽한’ 자료라고 단언했다.


(73-74)

산업이 발달할수록 이러한 수치는 더욱 커졌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다이아몬드 깃털을 자랑하던 1798년 프랑스에는 깃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술자가 25명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862년에 이르면 120명까지 증가하고, 1870년경에는 280명까지 급증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깃털을 뽑고 가공하는 분야에 종사하다 보니, ‘미가공 깃털 상인 조합’, ‘깃털 염색업자 조합’, ‘깃털 산업 어린이 노동자 보호 협회’ 같은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1890년대 프랑스에는 거의 4만 5000톤에 달하는 깃털이 수입됐다. 런던 민싱가에 있는 경매장에서는 4년간 극락조 15만 5000마리가 거래됐다. 같은 기간, 현재 가치로 약 28억 달러에 달하고 무게로는 총 1만 8000톤에 달하는 극락조가 거래되었다. 한 영국인 딜러는 1년간 새 가죽 200만 장을 팔았다. 미국의 깃털 산업도 상황은 비슷했다. 1900년대까지 8만 3000명의 뉴요커가 모자 관련 업계에 종사하며, 북미 지역에서만 매년 약 2억 마리의 새들이 죽어갔다.


(285)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박물관 표본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했다. “기술적인 면에서 보면, 일정 시간 후에는, 아마 100년 정도는 되겠지만, 표본들에서 뽑아낼 수 있는 과학적인 데이터는 이미 모두 뽑아냈겠지요. DNA로 이제 더는 할 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의 역할이 뭐죠? 그 새들이 멸종되지 않고 더 오래 살게 하려는 것이었죠. 하지만 제대로 안 됐잖아요. 지금도 멸종되는 새가 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죠. 밀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345)

그들은 모두 수세기에 걸쳐 새들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에게 새들은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신념이 있었다. 그 새들이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신념과 과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므로 같은 새라도 그 새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계속 제공될 거라는 신념 말이다.

또 다른 쪽에는 에드윈 리스트가 속하는, 깃털을 둘러싼 지하세상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혀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지위를 탐하며, 몇 세기 동안 하늘과 숲을 약탈해온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지식이냐 탐욕이냐, 이들 사이의 전투에서 탐욕이 승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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