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경 평전 - 한글운동의 선구자
김삼웅 지음 / 꽃자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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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김상웅 님의 인물 평전을 가끔 읽는데, 오늘은 그런 책읽기의 일환으로 김삼웅 님의 <주시경 평전>을 읽었단다. 근현대에 한글 운동을 하신 주시경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주시경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적을 것 같구나. 아빠도 그랬거든. 어린이를 위한 주시경 위인전은 좀 있어도 어른들이 볼만한 주시경에 관한 책이 적은 것 같았어.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주시경은 짧은 삶을 살다가 가셨더구나. 그래서 그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 하지만 한글 사랑만큼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던 분이란다. 주시경은 1876년 황해도 봉산군 쌍산면에서 태어나셨는데, 같은 해에 백범 김구도 황해도에서 태어나셨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김구보다 훨씬 앞 세대이신 줄 알았는데, 동년배셨구나. 주시경이 1914 37세 나이로 요절해서 그렇게 생각이 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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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기에 인재가 많이 나타나듯이, 같은 해에 황해도 해주에서 백범 김구가 출생하였다. 김구와 주시경은 걷는 길이 달랐으나 목표는 다르지 않았다.

김구는 동학에 들어가 소년접주가 되고 신민회 참가, 105인 사건, 투옥, 해외망명, 임시정부 주석 등을 지내며 항일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쳤다. 주시경은 서재필이 발행한 <독립신문>에 참여한 이후 국내에서 한글과 국문의 연구와 후진 양성에 짧은 생애를 바쳤다. 독립협회 등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만났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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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의 본명은 주상호로 어렸을 때 큰아버지댁에 양자로 지냈어. 그리고 좀 커서는 서울에 가서 배재학당에서 공부를 했대. 그렇게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나갔단다.

 

1. 한글은 우리나라의 정체성

배재학당에서 많은 인연을 맺게 되는데, 스승으로 있던 서재필과 인연을 맺게 되어 20대 초반에 최초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 창간에 참여하게 된단다. 주시경은 독립신문에 자신의 글을 싣기도 했어. 이후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의 위원으로 참여했단다. 독립협회가 고종을 폐위하려고 한다는 헛소문이 돌았는데, 이 헛소문 때문에 독립협의 간부들이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어. 이때 주시경도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단다. 이 헛소문은 영향력이 세지는 진보세력인 독립협회를 무너뜨리려고 한 친러수구파들이 조작한 것이었어.

서재필이 미국으로 떠난 후에, 주시경은 이종일이 창간한 <제국신문>에서 근무했단다. 제국신문이라는 이름 때문에 보수 성향의 신문이라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이 신문은 순한글로 된 신문으로 대중과 부녀자를 상대로 한 신문이었단다. 주시경은 나라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계몽해야 한다는 생각하여 전덕기 목사 등과 함께 국민계몽운동에 동참하였고, 청년학원에 교사로 일하게 되었어. 그러면서 1906 <대한국어문법>이라는 문법책을 출간했단다. 그 전까지 제대로 된 한글 문법에 대한 책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맞춤범과 문법 체계의 기초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단다.

1907년에는 <안남망국사>를 번역하여 반면교사로 삼게 했단다. 3년뒤 결국 우리나라도 망하고 말았지만… 1907년에는 또 대한제국 학부에 국문연구소가 창립되었는데, 이곳의 책임위원으로 위촉이 되어 활동했단다. 그래서 <국문연구의정안>을 작성하여 한글의 문자 체계와 표기법 통일안을 마련했어. 나라가 위기가 빠졌던 당시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애를 썼는데, 주시경은 한글을 통해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신 거야. 그야말로 한글 연구와 보급에 모든 걸 걸었어. 사실 우리나라와 한글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잖니. 한글은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일맥상통하고 말이야. 주시경 또한 한글이 곧 우리나라임을 여러 글을 통해서 이야기했는데, 1910 <국어문법>의 서문에서도 잘 나타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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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174)

이 마음이 없으면 몸이 있어도 그 몸이 아니요, 터가 있어도 터가 아니니, 그 국가의 성쇄도 언어의 성쇄에 있고, 국가의 존부도 언어의 존부에 있는 것이니, 그 국가의 존부에 있는 것이니, 그 국가의 존부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금의 세계 열국이 각각 제 언어를 존숭하여, 그 언어를 기록하여 그 문자를 각각 자음이 다 이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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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에는 <국어문전음악>, <소리길>을 출간하였어. 주시경이 한글 연구는 앞서 이야기한 국문연구소의 책임의원으로 했던 것인데, 1910년 경술국치가 일어나면서 국문연구소는 강제 폐지고 말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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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광문회에 참여하여 국어사전 편찬 준비를 했어. 광문회는 후에 조선어학회로 되었고, 광복 후에는 한글학회가 되었단다. 광문회에서 활동하던 주시경은 처음으로 우리글을 한글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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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란 이름은 주시경 님이 지어 쓰기 시작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나, 현재 남아 있는 최초의 기록으로는 신문관 발행의 어린이 잡지 <아이들 보이>의 끝에 가로글씨 제목으로 한글이라 한 것이 있다. 이 이름이 일반화하게 된 것은 한글학회전신인 조선어연구회’(1921 12 3일 창립)에서 1927 2 8일 창간한 기관지 <한글>을 발행한데 이어 또 훈민정음 반포 8주갑 병인면(1926) 음력 9 29일을 반포기념일로 정하여 가갸날로 명명한 뒤, 1928년에는 가갸날한글날로 고쳐 부르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는 1946 10 9한글날이 공휴일로 제정되면서부터라 하겠다. 그런데 이 한글이란 이름을 제일 먼저 지은 분은 신명균(1889~1941) 님이라고도 하고, 최남선(1890~1957) 님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믿을 만한 말이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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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이 1914 7 27일에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병명은 허로증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빈한에 의한 영양실조와 과도한 연구와 강의에 의한 과로사로 추정된다고 하는구나. 주시경 선생이 그렇게 빨리 돌아가시지 않고 한글 연구를 더욱 해주시고 광복까지 맞이했다면 우리나라 한글은 더 발전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구나. 주시경 선생이 일찍 돌아가셨지만, 그의 제자들이 이어서 한글 운동을 주도하였단다. 남한에는 최현배 님이, 북한에서는 김두봉 님이 바로 주시경 선생의 제자로 한글 운동을 이어가셨다고 하는구나.

이 책의 편집 상태가 좀 아쉬웠단다. 그 전에 김삼웅 님의 평전들을 보면, 인용한 글들은 문단을 달리 하고 들여쓰기와 글자 크기를 작게 해서 확실히 구분을 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구분이 없었단다. 그래서 이 글이 지은이 김삼웅 님의 글인지, 다른 책에서 인용한 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단다. 그렇게 아쉬운 편집이었지만, 그래도 주시경 선생의 짧지만 뜨거운 나라 사랑, 한글 사랑의 열정을 자세히 알게 되어 좋았단다. 그리고 오늘날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배우려는 사실에 뿌듯함이 느껴지는데, 이런 것들이 주시경 선생 같은 분들의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한단다. 주시경 선생의 삶과 생각을 많은 이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구나. 그의 삶은 짧았지만, 그의 사상은 영원하리.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우리나라의 심장부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책의 끝 문장: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학자나 사상가의 이름이나 아호를 붙인 연구소가 많이 설립되어 우리의 학문이 건전한 토대 위에 서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한글은 지난 700년 동안 한민족의 정체성이고, 분단 70년이 되는 지금 남북 겨레의 공통점이다. 남북 8천 만 겨레와 해외 교포 교민 800만의 원형질이다. 이 원형질은 한국어(조선어)를 통해 공유된다. 세계 200여 국가 중에서 우리가 통역 없이 대화가 가능한 언어는 한국어뿐이다. - P12

조선 글자가 페니키아에서 만든 글자보다 더 유조하고 규모가 있게 된 것은, 자모음을 아주 합하여 만들었고, 단지 받침만 때에 따라 넣고 아니 넣기를 음의 돌아가는 대로 쓰나니, 페니키아 글자 모양으로 자모음을 옳게 모아 쓰려는 수고가 없고, 또 글자의 자모음을 합하여 만든 것이 격식과 문리를 더 있어 배우기가 더욱 쉬우니, 우리 생각에는 조선 글자가 세계에서 제일 좋고 학문이 있는 글자로 여겨지노라. - P78

가령 동서양 사기(史記)라든지 성경현전(聖經賢傳)이라든지 법을 규칙 같은 천만사를 모두 국문으로 번역하고 아무쪼록 국문을 연구하여 남이 알기 쉽도록 만들겠더면 사람마다 세계 형편도 알기 쉬울 것이요, 성경현전의 좋은 말과 좋은 행실을 보아서 모두 지식도 늘도 행실도 점잖아질 터이요, 내 나라 일과 남의 나라 일을 보아 분변하는 애국성(愛國性)도 생길 터이거늘, 한문으로 기록한 책만 보아야 하겠고 수 십 년을 공부하여야 성공할는지 말는지 한 한문 공부만 하여야 될 줄만 아나니, 어느 겨를에 다른 것은 아니로되 국문을 등한히 여기고 힘쓰지 아니할 것이 아니기로 두어 마디 설명 하거니와 국문이 발달되는 날에야 우리 대한이 세계에 독립부강국이 될 줄로 짐작하노라. - P151

다시 해가 바뀐 1909년 2월 23일 통감부는 출판물의 원고 검열과 배일 항일 출판물의 압수를 합법화하는 출판법을 공포했다. 이 조처로 연말까지 5,767권의 민족운동 관련 책이 압수되어 소각되거나 일본으로 실려갔다. 9월 2일을 기해 일본군이 남한의병 대학살작전을 전개하여 의병의 씨를 말렸다. 영국 기자 F.A. 맥켄지는 일본군의 잔학상을 전하며, 번잡하고 유복했던 마을 제천이 "온전한 벽도 대들보도, 파손되지 않은 그릇도 하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지도상에서 사라졌다"고 보도하였다. 일본군은 의병학살에 이른바 ‘삼광작전(三光作戰)’이라 하여 "모두 죽이고 모두 탈취하고 모두 불태우는" 야만성을 드러냈다. - P166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리어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리어지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를 나아가게 하고자 하면 나라 사람을 열어야 되고, 나라 사람을 열고자 하면 먼저 그 말과 글을 다스린 뒤에야 되나리라.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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