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책을 읽긴 했는데, 그 책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지 어려운 책들이 있단다. 오늘 이야기할 책도 그런 책 중에 하나야. 크리스티앙 보뱅이라는 사람이 쓴 에세이 <작은 파티 드레스>라는 얇디 얇은 책이란다. 서문을 빼면 아홉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 얇은 책이지만, 글쓴이의 깊은 사유와 지식을 아빠가 공감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 같구나. 지은이 크리스티앙 보뱅은 프랑스의 대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라고 하는데,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고 그의 책도 이번이 처음이란다. 이 책의 서문을 읽다 보면 책읽기에 관한 책인가 싶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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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어느 페이지의 낱말을 알아보고 큰소리로 읽는다. 그 순간 신()의 일부가 사라져가고 낙원에 첫 균열이 간다. 그렇게 또 다른 낱말이 이어진다. 온전했던 우주는 이제 이어지는 문장들에 불과하고 백지 속 유실된 땅들에 지나지 않게 된다. 아이는 학교에 가고, 학생의 신분이 된다. 그런데 이 유실에는 실제로 엄청난 행복이 존재한다. 글을 읽는 첫 경험. 책의 한 페이지를 해독하고 어렴풋한 형체들을 감지할 수 있게 된 첫 경험. 그것은 행복을 넘어서는, 정확히 말해 기쁨이라고 할 만한 무엇이다. 기쁨과 공포라 할 만한 무엇. 기쁨을 어김없이 공포를 수반하고 책들은 언제나 애도를 수반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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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이 전체적으로 지은이의 깊은 영혼 속의 글들을 적어서 공감이 가지 않다가 가끔씩 공감 가는 내용들이 있는데 오늘 독서편지는 그런 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해야겠구나.

실연 당하고 자살하려다 실패한 한 여자가 릴케를 읽고 다시 영혼을 되찾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빠는 릴케의 책을 읽은 적이 없어서 이 부분은 크게 공감이 가지 않더구나.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들이 참 많구나. 이 에세이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좋은 작품은 자살도 막을 수 있다는 것 같은데, 지은이는 실패한 자살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이야기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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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그렇다. 눈이다. 당신의 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 두 눈은 이제 우는 일 말고는 쓸모가 없다. 울지 않을 때는 책을 읽는다. 어느 날 당신은 릴케의 한 페이지를 읽는다. 다른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그러다 잉크의 새장을 여는 순간 영혼의 새들이 우르르 당신에게 돌아온다. 실패한 자살이 모두 그렇듯 당신의 자살도 성공을 거둔 것이다. 당신이 잃은 건 생명보다 더한 것이었다. , 투명한 말의 맛, 참된 말에 대한 사랑, 그 모두를 잃은 것이다. 말 앞에서 당신은 먹을 것을 앞에 둔 아픈 아이 같았었다. 그런데 릴케가 당신에게 먹을 것을 다시 준다. 한 편의 시, 이어지는 또 한 편의 시, 한 편의 이미지, 또 한 편의 이미지. 헐벗은 말과 함께 온전한 사실이 돌아온다. 진실과 함께 온전한 영혼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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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쉽게 피로를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지은이가 이야기하기를 피로에 절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쉴 새 없이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구나. 아빠의 이야기 같아서 찔리더구나. 오늘도 야근으로 늦게 퇴근하고 나서도 듀오링고를 하고 유튜브도 보고, 밀린 독서편지를 쓰고 독서편지를 쓰고 나면 졸린 눈을 비비며 밀린 책읽기를 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피로가 가시기 쉽지 않은 생활패턴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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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9)

피로에 절은 사람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그들은 무언가를 쉴 새 없이 하는 사람들이다. 휴식과 침묵. 사랑이 내면으로 파고들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피로에 절은 사람들은 장사를 하고, 집을 짓고, 경력을 쌓는다. 피로를 피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하지만 그러면서 오히려 피로에 빠진다. 그들의 시간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일을 더 많이 할수록 점점 더 적게 하는 꼴이 된다. 그들의 삶에는 삶이 부족하다. 자신과 자신 사이에 유리벽이 존재한다. 그들은 멈추기 않고 유리벽을 따라 걷는다. 피로는 그들의 용모와 손과 말에서 드러나 보인다. 그들에게 피로는 일종의 향수이며 불가능한 욕망과도 같다. 그들은 페르스발처럼, 어머니를 떠난 이 젊은 남자처럼, 들판과 강을, 강과 숲을, 산과 들판을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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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틈틈이 책을 읽으려는 것이 책읽기에 대한 즐거움도 있지만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얻는 만족감도 있는 것 같구나. 지은이는 사랑하듯 책을 읽는다고 하는데, 그것도 좀 공감이 되더구나. 특히 첫인상과 달리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의 경우는 더욱 그런 것 같았어. 만나면 만날수록 좋아지는 사람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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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109)

우리는 사랑을 하듯 책을 읽는다. 사랑에 빠지듯 책 속으로 들어간다. 희망을 품고, 조바심을 낸다. 단 하나의 몸 안에서 수면을 찾고, 단 하나의 문장 속에서 침묵에 가닿겠다는, 그런 욕구의 부추김을 받으며, 그런 욕구의 물리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다. 조바심을 내며, 희망을 품는다. 그러다 때로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처럼, 일체의 조바심을 몰아내고 일체의 희망에 딴죽을 거는 무언가다. 그것은 위로하며 하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유혹하지 않고 황홀감을 준다. 자체 안에 자신의 종말과 죽음의 슬픔, 어둠을 품고 있는 무언가다.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것에 귀 기울이는 자는 이제 자신이 피신할 데도, 의지할 데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서 해방되어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목소리가 어두워질수록 우린 더 분명히 보게 된다. 목소리가 격해질수록 숨쉬기가 한결 쉬어진다. 우린 일체의 문학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온전히 성스러움에 바싹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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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책은 아빠 취향이 아니라서 사랑하지 않을 것 같구나. 아빠가 이 책을 읽다가 당황한 부분들이 몇몇 있는데, 아래와 같은 부분들이야. 어떻게 한 번을 더 읽고, 발췌까지 해보았지만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겠더구나. 책읽기의 세계는 넓고도 너무 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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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5)

당신은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제 이 두 사람에 대해서도 라신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 당신은 제3의 문제에 골몰한다. 부부란 대체 뭘까. 열정은 뭐고 사랑은 뭘까. 당신은 머릿속으로 게임을 벌이며 하나의 규정을 마련한다. 집에 다다르기 전, 그러니까 5분 안에 해답을 찾아낼 것. 결국 게임 종료 직전에 당신은 답을 발견한다. 부부란 김빠진 삶의 장이고, 열정은 분열된 삶의 장이다. 그런데 사랑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집 문 앞에 선 채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참담한 발견에, 이 모든 한심한 정의에 경의를 표한다. 당신은 17세기와 20세기를 싸잡아 비웃고, 사랑과 세상을 함께 품을 수 없는 이 영원한 무능을 비웃는다. 망가지기 쉬운 천사들과 튼튼한 개들을 두고 너무 한탄하지 않으려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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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보뱅의 다른 책들은 좀 읽어볼 만한 것이 있나 검색을 해보니 낯익은 책이 한 권 있더구나. <흰옷을 입은 여인> 평점이 좋아서 아빠가 예전에 구입해서 아직 읽지 않은 책이란다. 나중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읽어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처음부터 우리가 책을 읽는 건 아니다.

책의 끝 문장: 침묵의 희고 작은 드레스.



그런데 때론 어떤 사람들에게, 더 적은 수의,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름 아닌 독자들이다. 가던 길을 남들이 포기하는 여덟 살 혹은 아홉 살 무렵에 이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독서의 길로 뛰어드는 그들은 언제까지나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그 길이 끝이 없음을 알고 기뻐한다. 기쁨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그들은 출발점에, 첫경험에 집착한다.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경험이다. 그들은 언제나 그 지점에 머무르며 삶이 다해가는 순간까지 책을 읽는다. 고독을 발견했던, 그러니까 언어들의 고도고가 영혼들의 고독을 발견했던 첫 경험의 언저리에 머문다. 그들은 황홀감에 취해 세상에서 물러나 이 고독을 향해 간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고독의 골은 깊어진다. 더 많이 많을수록 아는 건 점점 더 적어진다. 이 사람들이 작가와 서점, 출판사, 인쇄소를 먹여 살린다. - P14

위대한 책은 그 책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시작된다. 어떤 책이 위대하다는 건, 그 책에서 점차 드러나 보이는 절망의 위대함을 의미한다. 책 위에 무겁게 드리워져 책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한참을 가로막는 그 모든 어둠을 의미한다. 책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 책이 있기 전, 글이 써지기도 전에 모든 것이 시작된다. 즉 아버지의 떠도는 그림자가 있고, 번잡한 날들 속에서 첫 시구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라신과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담갈색 밤이 있다. 사방에서 꿈은 짓밟히고, 자신과 지나치게 밀착되어 글쓰기는 불가능해진다. 불만에 찬 왕,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갈가리 찢긴 유년기에 너무 밀착된 상태로는 글쓰기가 불가능하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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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홍한별 지음 / 위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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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홍한별 님의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라는 에세이란다. 이 책은 여러 평론가들과 리뷰어들이 추천하여 관심을 갖게 된 책이란다. 지은이 홍한별 님은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전문 번역가셔. 그래서 아빠가 읽은 책 중에 홍한별 님이 번역한 책이 있는지 봤더니,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이라는 책을 비롯하려 세 권을 읽었더구나.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라는 책은 지은이가 번역가로서 경험한 것과 생각한 것을 적은 글들이었어. 책 제목은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서 따온 제목이란다. <모비 딕>에서 이슈메일이 흰 고래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분량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흰 색은 결국 다른 색을 칠하고 난 빈 여백이라고 했어. 지은이는 번역과 흰 고래와 비슷하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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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번역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흰 고래 같은 텍스트를 만났을 것이다. 잡히지 않는 공허. 포착할 수 없는 의미. 이쪽을 붙들면 저쪽을 놓치고, 저쪽을 잡으면 이쪽이 사라지는 단어를, 의미를 고정하는 순간 무수한 틈이 생겨버리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붓질을 더할수록 더럽혀지기만 하는 순백을?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번역은 얼마나 투명해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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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번역을 처음 시작한 아주 오래 전부터 번역은 논란이 되는 경우들이 많았대. 성경 같이 중요한 책을 번역을 할 때는 단어 선택이 중요하다고 하는구나. 성경의 잘못된 번역의 대표적인 것이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라고 하는구나. 원문에는 무화과로 되어 있는데 사과로 번역을 해서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를 다들 사과로 알고 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성경을 최초로 영어로 번역한 위클리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죽은 후 30년이 지난 후 묘지에서 그의 시신을 꺼내어 화형을 시켰다고 하는구나. 감히 성경을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게 번역을 하다니, 그것은 교회의 권위를 도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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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이에 반발하여 속어 번역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다. 성경 번역은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므로 그 자체로 엄청나게 위험했다. 중세 말기에 존 위클리프(c.1328~1384)는 라틴어 불가타를 영어로 번역해 일반인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했다. 위클리프의 사상과 번역은 두 세기 뒤에 일어난 16세기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번역은 근세를 추동하는 동인이 되었다. 성경 번역이 종교개혁을, 그리스 로마 고전 번역이 르네상스를 일으킨 요인 중 하나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성격 번역은 종교개혁 시기에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고 권력 투쟁의 핵이었다. 성경이 번역되자 성직자를 거치지 않고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번역 성경은 민족 언어와 문화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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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읽으면서 자연스럽고 어색하지 않게 읽히는 번역본을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했어. 원문을 직역해서 읽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나쁜 번역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직역과 의역 논란이 있다는구나. 의역은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번역하는 것으로 번역자들의 개입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오히려 번역자의 개입이 많다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우가 있대. 번역가들 중에 일부러 직역에 가깝게 하는 사람이 있대. 그렇게 해야 원문에 최대한 가깝다는 거야. 물론 그로 인해 번역투 문장에 읽기 어색한 문장들로 뭇매를 맞는 경우가 있단다. 한 때는 독자들을 위해 의역을 많이 했는데 최근에는 좀더 직역에 가깝게 번역하는 경향이 있다는구나. 이렇듯 의역과 직역의 장단점이 있다 보니 의역을 하면 의역이 심하다고 비난 받고, 직역을 하면 번역투라고 비난 받는다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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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10여 년 전에는 직역이냐 의역이냐를 놓고 두 번역가가번역 배틀이라는 형식으로 맞붙은 신나는 일이 있었다(번역이라는 단어 다음에 이렇게 흥미진진한 단어가 붙은 적이 유사 이래 또 있었던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자기 마음대로 원문에 담긴 정보를 삭제하고 번역해서는 안 된다”(이덕하)는 주장과쉽게 읽히는 노씨의 번역에 대해서는주요 정보가 완곡한 표현으로 번역되어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술술 읽히는 것이 다가 아니다등의 비판이, 우리말로 부드럽게 옮겨지지 않은 이씨의 번역에는정보만 있을 뿐 정서가 없다’, ‘읽기 불편하다등의 비판이 나왔다.” 직역이냐 의역이냐의 해묵은 논쟁을 종식할 줄 알았는데, 싱겁게도 무승부로 얼버무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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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역과 직역 논란을 읽으면서, 부커상을 수상했던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번역 논란이 있다는 생각이 났단다. 이 책에서도 당시 일었던 번역 논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었어. 의역이 아닌 오역에 가깝다는 논란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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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2016년 데버라 스미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The Vegetarian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뒤에 번역 논쟁이 뜨겁게 벌어졌다. 최근에 구체적인 사례를 두고 이만큼 열띤 논쟁이 벌어진 일은 없었을 듯하다. 처음 수상 소식이 들려왔을 때 (한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던) 한국인들은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쾌거라며 들떠서 축하하고 칭찬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인터넷에 The Vegetarian의 오역 의심 사례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번역 작품을 원본과 비교해본 국내 번역가들은 다들 나처럼 아연했을 듯싶다. 데버라 스미스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유로운 번역을 했던 것이다. 만약 국내 번역가가 외국의 유명한 작품을 그렇게 번역했다면 곧 오역 논쟁에 휩싸였을 것이고 영원히 출판계에 발을 붙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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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버라 스미스의 번역 논란은 외국의 번역관과 국내의 번역관 차이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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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48)

서양의 번역 관행과 우리나라의 번역 관행이 크게 다르고 기준점도 다르니 충실성의 개념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 한국어로 쓰인 책을 번역 출간할 때는 출판사 편집부에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한국처럼 편집자가 원본과 번역본을 한 문장 한 문장 대조하고 비교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 반면 우리나라의 번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원문 충실성을 훨씬 중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번역 논쟁은 거의 언제나 원문을 기준으로 놓고 벌어지는 오역 논쟁이었고, 원문의 의미를 잘못 이해했거나 곡해한 번역이 어떤 이유로든 옹호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서양 번역 전통은 (여성 혐오적 표현이지만 한 번만 더 쓰자면) 충실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미녀(Les Bells infideles)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고 스미스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여전히 그 기조가 이어진다. 스미스의 번역이 부정한(infidele) 것은 분명하지만 본인이 충실할 생각이 없다는 번역관을 밝혔는데 윤리적 의무를 저버렸다느니 배신을 했다느니 비난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스미스의 번역에 대해서는 미녀(belle)인지 아닌지만 따지면 된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수행하는 번역 비평은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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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미권에서 번역자의 이름을 책표지에 적지 않는 경우가 많대. 번역자의 이름을 적은 경우가 3%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는구나. 왜 그럴까?

번역을 하다 보면 우리말에 없는 말들이 있는데, 그런 말들을 번역을 하다 보면 우리말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는구나. 없던 말들이 새로 생겨날 수도 있다는 거야. 그 중에 대표적인 말이 그녀란다. 아빠는 예전에 당연히 오래 전부터 그녀라는 말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오덕 님의 책을 읽고 우리말의 3인칭은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녀는 ‘she’를 번역하려고 생긴 말로 그 이후에 우리말에도 자연스럽게 쓰이게 된 것이래. 우리나라의 말에는 남녀 차별이 없었던 것이지. 아빠도 이오덕 님의 책을 읽은 이후에는 그녀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한단다. ‘라는 3인칭대명사도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하고 고유명사(이름)을 주로 쓰려고 노력한단다. 서양에서도 요즘에는 남자와 여자를 구별해서 부르는 3인칭 대명사 he/she를 구분해서 쓰지 않고 they 3인칭 복수 겸 단수 대명사로 쓰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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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이런 부침을 겪은 그녀는 여전히 쓰이기는 하되, 굉장히 불균형하게 쓰인다. 언어학자 안소진은 신문, 잡지, 문학, 비문학, 구어 등으로 분류된 말뭉치에서그녀의 출현 빈도를 조사해서, 텍스트의 종류에 따라그녀가 나타나는 빈도가 크게 달라짐을 보였다. 문학 말뭉치와 순()구어 전사 자료에서 무려 298배의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전체그녀출현 건수 중에서 83퍼센트가 문학 말뭉치에서 나타났다. 반면 순구어에서는 사실상그녀를 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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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75)

우리는/그녀를 유럽어에서 받아들여 쓰게 되었는데, 이제는 서양에서도 남녀를 구분하는 대명사를 불편하게 여긴다. 자신이 이분법적 성별 체계에 속하지 않는 논바이너리(non-binary)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명서 ‘he/she’ 대신 ‘they’를 삼인칭 복수 겸 단수 대명사로 쓰는 경향이 눈에 뜨인다. 경칭으로도 ‘Ms’ ‘Mr’ 대신 ‘Mx’를 붙이기도 한다.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친구에게 들었는데, 이렇게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한 학생을 임의로 ‘he/she’로 지칭하면 차별이 될 수 있어서 늘 신경 쓰고 조심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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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여러 가지 번역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외국어에 능숙하지 못한 아빠 같은 사람들에게 번역가들은 참 고마운 사람들이란다. 그들이 없었다면 그 많은 좋은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했으니 말이야.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최근에는 직역이 경향이라고 하지만 아빠는 적당히 번역가의 창작이 들어간 의역이 나은 것 같구나. 아빠는 읽기 편해야 책에 더 집중할 수 있거든. 물론 원문의 의도를 벗어나면 안되겠지. 그건 의역이 아니고 오역이 될 테니 말이야. 지은이 홍한별님의 번역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도 읽기 번하게 잘 쓰시는 것 같더구나. 같은 외국 작품의 번역본이 여러 권이 있고, 그 중에 홍한별 님의 번역한 책이 있다면 그 책을 골라야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고등학교에 다닐 때 미술 선생님이 하얀 석고상을 그리라고 시킨 일이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나도, 번역에 관한 글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속 번역을 할 것이란 생각을 한다.

 



자, 나보코프는 잡힐 듯 말 듯한 흰 고래를 분석하고, 주석을 달고, 해설해서, 결국 잡았나? 탑이 높아질수록, 가능한 한 많은 의미를 더할수록, 흰 고래는 점점 시커메지고, 번역이 실패했다는 증거는 쌓여간다. 주석의 탑은 번역 불가능성의 웅대한 증거다. 번역은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 번역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만다는 조바심이 탑을 이룬다. 이 탑은 무한의 영역으로 뻗는다. 번역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번역은 무한하다. - P33

번역가들은 왜 배신자일까? 신이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살지 못하게 언어를 흩어놓았는데도 갈라진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해서, 니므롯처럼 신의 뜻에 반한 배신자가 되었나? 서로 다른 언어 사이를 오갈 때는 손실이 불가피하므로 원저자든 독자든 누군가를 배신하게 없었느냐는 것이다. - P45

나도 번역이라는 일이 탐정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탐정소설 속 탐정의 목표는 범죄가 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저질러졌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이다. 탐정이 모든 정황과 맥락을 고려해 가장 그럴듯한 한 가지 서사를 완성하듯이, 번역가도 단어들의 단서를 모아 매끈한 하나의 문장, 빈틈없는 하나의 줄거리를 만든다. 번역가는 흩어진 의미의 조각들을 이렇게 맞추어보고 저렇게 맞추어 보며 도무지 옮겨지지 않는 것을 옮기려고 애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스르륵 퍼즐이 풀린다. 비어 있는 한 자리에 딱 맞는 단서/단어를 끼워 맞추자 이야기가 완결된다. 이렇게 문장을 완성할 때의 희열. 결국 번역을 하는 이유는 번역이 이런 일이기 때문이다. 드물게 찾아오는 완성의 감각. - P65

단테가 <신곡>을 씀으로써 이탈리아어를 발명했다는 말이 있다. 중세에는 문어와 구어가 분리되어 있어서, 고등교육, 과학, 철학, 신학 등의 학문과 공공 기록 등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라틴어가 쓰였다. 당시에 진지한 주제로 책을 쓸 때는 라틴어로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나, 단테는 라틴어가 아닌 속어로 <신곡>을 씀으로써 이탈리아 문화와 언어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으로부터 이탈리아어의 표준이 생겼고 이탈리아어 문학이 시작되었으며 이탈리아 민족문화와 국가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었다. - P90

나는 잘 읽히는 번역문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어 독자가 자연스러운 논리로 글을 읽게 하려고 이쩌면 나에게 허럭된 것보다 더 많이 개입할 때가 있다. 마치 편집자가 된 것처럼 원문에 가위를 댈 때도 있다(있는 것을 잘라내거나 없는 것을 집어넣는다는 말은 아니다. 문장을 합하거나 나누거나 문장구조를 뒤틀거나 긍정과 부정을 뒤집을 때가 있다). 그런데 번역 원고를 다듬고 고치다가 피츠제럴드처럼 진부함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해진다. - P134

또 영어와 한국어는 너무나 다른 언어라서 좀 더 많이 개입할 필요가 있다(이 점에 있어서는 "영어와 한국어는 너무 거리가 멀다"고 한 데버라 스미스와 내 생각이 일치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를 ‘많이’ 개입한 것으로 보느냐의 기준은 크게 달라서 같은 말을 해도 무척 다른 이야기이긴 하다.) 영어에서 한국어로 올 때는 문장을 완전히 뒤집거나 구문을 재배치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러지 않고 영어의 특유 표현(수동태, 물주(物主) 구문, 완료, 진행, 사역 등)을 그대로 옮기면 어색한 번역 투가 되고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가기 십상이다. 영어와 한국어는 언어의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서 좀 더 적극적으로 번역해야 한다. - P158

번역가가 하는 일은 원본을 훼손하거나 손상하는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살아 있도록 생명을 주고 되살리는 일이다. 번역가는 "상상력과 독창성과 자유로움을 요하는 연금술 같은 정교한 공정을 통해 텍스트의 의미를 복원"한다. 에코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나르키소스가 하는 말을 따라 할 뿐이지만,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나르키소스가 하는 말을 따라 할 뿐이지만,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나르키소스가 점점 말라가다 소멸한 뒤에도 계속 나르키소스의 목소리를 따라 하고 다양하게 반향하며 울려 퍼지게 한다. 나르키소스는 침묵할지라도, 그 침묵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에코의 목소리를-빈 산에 울리는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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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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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책제목이 눈에 띠어 알게 된 책이란다. 좀 과격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지은이는 이랑이라는 분인데 아빠는 처음 보는 사람이야. 지은이 소개를 읽어보니, 이랑이라는 분은 가수이기도 하고, 영화연출을 전공하여 뮤직비디오, 단편영화, 웹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했다는구나.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사람인가 보구나. 아빠도 너희들과 최신 가요를 가끔 듣는데, 이랑이라는 분은 기억에 없구나. 음악 장르가 포크라서 우리가 듣는 음악과 좀 거리가 있던 것 같구나.

아무튼, 이 책의 독특하고 과격한 제목으로 눈에 띠어 책 소개와 책 리뷰를 읽어보았는데, 아빠와 좀 다른 영역에서 생활하고 다른 사고 방식으로 생활하시는 분이라 흥미가 더 가서 읽게 되었단다. 특히 이 책을 읽고 쓴 리뷰 중에 이 책이 상당히 솔직하게 쓴 책이고 그것이 큰 장점이라는 식의 평이 있었어. 사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속마음을 좀 숨기거나 각색해서 쓰는 것이 사람 마음인데, 글을 그렇게 솔직하게 썼다면 진실된 에세이를 읽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참고로 지은이 이랑은 가명처럼 보이지만 본명이라고 하는구나.

 

1.

, 그러면 책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지은이 이랑은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이긴 하지만 이전에도 책도 여러 권 쓰신 작가이기도 해. 2019년에도 자신의 가족에 대한 에세이를 준비하다가 범위를 줄여서 자신과 엄마와 언니의 기록을 쓰려고 했대. 그런데 2021년 겨울 갑자기 언니가 자살을 했다는구나. 매일 함께 살던 가족의 자살은 정말 아픈 기억과 상처로 마음 속에 남을 것 같구나. 지은이도 언니의 자살 이후의 글들은 고통과 아픔 속에서 글을 써야 했다. 그 고통과 아픔 때문에 글도 천천히 쓸 수밖에 없었다는구나. 이런 고통과 아픔의 내용이다 보니 책을 출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하다가 출간하자는 의견이 있어서 책으로 출간했다는구나. 책도 우리나라보다 일본과 대만에서 먼저 번역출간 되었고, 그 이후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다고 하는구나. 좀 독특한 출간 이력을 가지고 있구나.

….

먼저 자신의 가족을 소개했어. 지은이의 가족은 지은이와 부모님과 언니와 남동생 이렇게 다섯 명이었어. 자신의 집안은 대대로 가족 폭력이 비일비재했던 집안이라서, 자신과 언니와 남동생은 그런 폭력적인 가족의 대를 끊자면서 비혼 선언을 했다는구나. 부잣집 딸인 엄마가 오빠의 친구의 아버지와 결혼을 했는데 결혼하게 된 사연은 이렇대. 엄마가 젊은 시절에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집에서는 엄마를 미친 년으로 취급을 했대. 오빠가 자신의 친구에게 그런 엄마를 구제해 달라고 부탁을 했고, 엄마는 그런 내막도 모르고 지금의 아버지와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이라고 했어.

결혼 후에도 엄마의 우울증 증세는 가끔씩 있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혼자 산에 올라가서 소리 지르고 오기도 하셨대. 그런데 그렇게 혼자 산에 갔다가 강간 당할 뻔한 일이 있었어. 그 일이 있고 나서 산에 가지 못하는 엄마는 집의 옷장에서 소리를 지르곤 했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하셨어. 지은이의 엄마가 그렇게 우울증이 있었던 것은 가족 환경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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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에 물든 대가족 집안에서 태어난 우리 엄마 김경형의미친년 인생은 엄마 탓이 아니다. 엄마 탓은 아니지만 엄마가 미친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잔혹한 굴레 속에서 나 또한 미친년으로 자라났다. 그나마 나는 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있는 미친년이라 다행이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엄마의 미친년 역사도 무척 소중하기에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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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폭력적이라고 했다는구나. 지은이 이랑도 우울증을 보이는 엄마와 폭력적인 아버지의 가정환경이라서 그런지 고등학교는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봤다고 했어. 언니 이슬은 그래도 모범적인 생활을 해서 특수 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었어. 그리고 취미로 친구들과 댄스팀 드웨즈퀸즈를 만들어 활동도 했어.

….

이 책이 엄마와 딸들의 이야기이니까 엄마와 자신의 이야기 말고 언니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어. 언니는 일명 장녀병에 걸린 사람이었어. 외할머니가 계셨는데, 외할머니는 100억 재산을 상속 받을 수 있었는데, 이 재산을 죽은 아들의 아내, 그러니까 며느리와 손자에게 모두 빼앗기고 말았대. 외할머니가 편찮으실 때 간병하는 것은 엄마와 장녀인 이슬이었고 병원비도 언니가 꼬박꼬박 냈다고 했어. 하지만 이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 언니는 100억 상속을 받은 외숙모의 자식들, 그러니까 사촌들에게 같이 지불하자는 메일을 보내려고 했어.. 하지만 소심한 언니는 이 메일을 써 놓기만 하고 몇 번을 다듬고 수정하였는데, 결국 보내지 못했단다. 지은이는 언니의 자살의 원인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힘을 소진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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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언니는 가족이 싫다고 10대 때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내가, 부럽고 미웠을까.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없던 언니에게 나는 수차례그만두라고 말을 했다. 언니는 그때마다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허약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은 뭐라고 부를까. 소진사(消盡死)? 가끔 그렇게 가진 힘을 다 소진하고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평생 남을 위해 살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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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은이 주변에는 삶을 일찍 고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어. 2016년에는 친구 M이 성형수술 후유증으로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고, 2017년에는 친구 D가 간암 말기를 선고를 받고 2020년에 삶을 마감하였고, 2021 12월에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언니가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단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잇단 죽음으로 지은이도 힘들고 때론 자신도 죽음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구나.

지은이에게도 죽음의 그림자도 드리웠단다. 2021년 자궁경부암을 선고 받고 치료를 받았다고 했단다. 그리고 2023년에는 갑자기 두 눈이 잘 보이지 않았대. 혹시 뇌종양은 아닐까 걱정해서 병원에 갔는데 원추각막이라는 병인데, 이 원추각막이라는 병도 희귀 질환으로, 완치는 어렵고, 진행을 늦출 수만 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눈 수술을 세 번이다 했대. 그리고 공황 장애로 자신도 모르게 쓰러지기도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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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땅에 발을 붙이고, 정신과 몸을 붙여내고야 만다. 반면에 나는 너무 오랫동안 머리만으로 산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몸을 놓고 살았다. 감정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는 방법이 대체 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겪는 공황은 머리의 파업일지도 모르겠다. 정신적으로 한계를 느끼니 몸 전체를 셧다운시켜서 몸도 머리도 멈추게 해버리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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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던 지은이에게 큰 힘이 되었던 반려묘 준이치가 있었어. 그런데 그 준이치도 2025 2월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구나. 지은이 주변에 죽음이 있어서 혹시 지은이가 힘들거나 아플 때 자살을 생각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지은이는 죽음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때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책을 마무리했단다. 그래, 지은이의 다재다능한 재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아빠보다 젊은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이상하기도 하지만,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더 좋은 글과 좋은 음악들을 들려주면 좋겠구나.

유튜브에서 이랑의 음악을 찾아봐서 들었는데, 아빠 스타일의 음악은 아니지만 개성 넘치는 음악이더구나. 지은이 이랑 님이 좋아하는 인간상에 대해서 이야기해준 부분이 있는데, 그 인간상이 아빠 마음에도 들더구나.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은 해보고 싶구나. 이 나이에 그 동안의 성격과 성품이 바뀌기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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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206)

나는 자신의 약함을 아는 인간을 좋아한다. 약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하는 인간이 좋다. 살아나가는 두려움을 아는 인간이 좋다. 살아갈 방법을 무언가에 의탁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려는 인간이 좋다. 자신의 방법을 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 좋다. 더 탁월한 방법으로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 좋다. 겪기 않은 이야기로 끝없이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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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글의 분위기라든가, 자신의 허물과 개인사에 대해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명랑한 은둔자>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의 지은이 캐럴라인 냅이 떠오르더구나. 아빠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시간이 날 때 두 분의 책을 한번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을 듯.. 지은이 이랑의 삶에 응원을 보내며 오늘 독서 편지를 마치련다. 이랑 님의 다른 책들도 한번 찾아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사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책의 끝 문장: 잘 자.

 



내 감정들에 이미 정해진 간단한 이름들이 있다는 것을 진작 배웠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까. 이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이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나는 ‘나만의 이름 짓기’를 했기 때문에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이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걸 몰라서, 모든 것에 새로운 이름을 짓고 싶어하는 지금의 내가 된 걸까.
이미 만들어져 있는 말을 이리저리 조합해, 원래 있던 것과 새로 나타난 모든 것에 이름을 짓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 P22

온 가족 구성원이 화가 많고 예민한 우리집에선 언제나 고성방가가 끊이질 않았다. 동시에 예술적 기질도 많아서 엄마 아빠는 시를 쓰고 노래를 하고, 동생은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하고, 언니는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그리고는 또 박 터지게 싸우다 한 번씩, 한 명씩 부엌에서 칼을 쥐고 나와 휘둘렀다. 어떻게 보면 스펙터클, 어떻게 보면 지옥 같은 광경이 자주 펼쳐졌다. 장례식상에서마저 댄스 공연을 하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욕하고 소리지르며 싸운 것까지도 전부 괴롭고 웃긴 우리 가족의 풍경이었다. 귀신이 된 언니가 그 모습을 봤다면 다들 미쳤다며 껄껄 웃을 것 같았다. - P80

언니는 가족이 싫다고 10대 때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내가, 부럽고 미웠을까.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없던 언니에게 나는 수차례 ‘그만두라’고 말을 했다. 언니는 그때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허약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은 뭐라고 부를까. 소진사(消盡死)? 가끔 그렇게 가진 힘을 다 소진하고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평생 남을 위해 살던 사람들. - P110

깊은 사랑과 냉철한 이성과 오래된 우울감이 함께 존재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언니에게 말하고 싶다.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을 모른다고 서로 말하던 우리 두 자매였는데, 언니가 떠난 뒤에 나는 강렬하게 원하는 것이 생겼음을. 그래서 무척 아프고 괴롭지만 굉장한 것을 배우고 있음을 언니에게 꼭 말하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으로 어쩐지 언니에게 전해질 거라고 느낀다. - P149

(204-205)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정신과 몸은 사실 하나였다. 영혼, 정신, 마음이라고 불리는 그것들 모두가 결국 ‘몸’ 자체였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찰나의 순간으로 결정되는 부재를 감당할 수 없어서 온몸으로 영혼의 실재를 기도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존재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닿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들의 부재와 나의 외로움을 달래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그들의 몸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내 몸을 가지고 그들의 기억과 함께 살고 있다. 내가 살아 있고, 기억하는 동안 내 세계에 그들은 함께 있다. (다만 영혼이나 유령으로서가 아니라 기억으로서.)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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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뭇잎에서 숨결을 본다 - 나무의사 우종영이 전하는 초록빛 공감의 단어
우종영 지음, 조혜란 그림 / 흐름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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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오랜만에 나무의사 우종영 님의 책을 이야기하려고 해. 우종영 님의 책을 처음 만난 것이 이제는 20년이 되었구나. 그렇다고 많이 읽은 것은 이번이 여섯 번째로구나. 아빠가 예전부터 등산을 좋아해서 나무에 대한 책이 눈에 쏙 들어왔던 것 같구나. 그리고 우종영 님의 글들이 너무 좋았어. 나무들이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고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들도 다시 보게 되었어. 산에 가게 되면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나무들의 모습과 나무들이 주는 기운에 힐링하곤 하는 것 같았어.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책은 우종영 님의 <나는 나뭇결에서 숨결을 본다>라는 책이란다. 이번 책도 우종영 님의 나무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 있더구나. 그동안 나무의사를 30년동안 해오시면서 자연으로 받은 삶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책으로 엮으신 것 같구나. 그리고 최근에 급격하게 우리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 급격한 기후변화는 우리뿐만 아니라 나무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단다. 그 영향은 물론 안 좋은 영향으로 많은 식물들이 멸종위기를 맞이하고 있단다. 나무들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니 그렇다 보니 기후변화에 대한 공격에 도망갈 수도 없으니 큰일이구나. 더 늦기 전에 이에 대해 온세계가 대응책을 찾아야 할 텐데 자본주의의 성장논리가 아직 세계를 지배하고 있어서 걱정이구나.

 

1.  

이 책은 생, , , , 성이라는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누고 각 장마다 생태감수성에 관련된 단어를 선택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단다. 그런 글들 중에 아빠의 마음을 울린 글 몇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독서편지를 대신할게.

...

이 책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생태감수성이란 무엇인가? 생태감수성은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을 가지는 것이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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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생태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은 모든 생명체가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환경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행동합니다. 지구 환경 문제를 거시적이면서도 실천적인 측면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자연과 자신의 삶이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주변의 다른 생명체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표현합니다. 이들은 생태계에도 깊이 공감하며 모든 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 특정 새나 식물의 부재와 같은 현지 생태계의 미묘한 변화에 주목하기도 합니다. 환경 윤리를 따르는 제품을 구입하거나 일회용품 사용을 피하고, 지금 세대와 미래 세대가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는지를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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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일상 생활에서 어떤 날은 흙으로 된 땅을 한번도 밟지 않고 지내는 날도 많단다. 포장된 도로와 인도에서만 생활하다 보면 땅을 밟지 않고도 생활하게 돼. 그리고 우리는 더욱이 신발을 신고 지내잖니. 지은이는 맨발로 땅을 밝아보라고 하더구나. 생각해보니 아빠도 맨발로 땅을 밟아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구나. 바닷가에서 가야 맨발로 모래사장을 걸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오래 전 일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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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땅과 교감하며 발맘발맘 걷다 보면 생태감수성도 생깁니다. 땅과 접촉하지 않는 사람은 신(God)과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신발을 신으면서부터 인간은 자연과 멀어졌습니다. 걷기를 통해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알싸한 고통이 다른 생명의 아픔처럼 전해오면서 환경을 보호하려는 마음도 생깁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스킨십을 원합니다. 부드러운 발바닥으로 땅을 어루만지면 땅의 기운이 온몸을 정화해줍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폴 스르트르는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혼자서 걸으며 길 위에 떨어진 나뭇가지나 조그만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무심히 떠가는 구름을 쪼개보거나 이웃 구름과 만나게 해서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보기도 할 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걷기는 나무가 그토록 하고 싶어 하는 일입니다. 일단 걸어보세요. 걷기의 힘이 무한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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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이나 식물들의 이름을 보면 재미있는 이름들이 참 많단다. 물론 아빠가 알고 있는 이름들은 몇 개 안되지만 말이야. 이 책에서는 재미있는 이름을 소개해주면서 이름에 라는 접두어가 들어간 것은 약간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구나. 개들이 싫어하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이셨어. 그래도 순우리말로 된 이름들이 정겹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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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이름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복이 허리춤에 다는 복주머니처럼 생긴 복주머니꽃은 한때 개불알꽃이라고 불렸습니다. 꽃봉오리를 숙이고 있다고 하여 할미꽃, 제비꽃의 방언인 앉은뱅이꽃, 갈고리 같은 가시의 쓰임새를 상상한 며느리밑씻개, 비하의 의미를 지닌 개똥쑥, 개옻나무, 거지딸기 같은 이름도 있습니다. 동물에도 꼽추재주나방, 무당벌레, 벙어리뻐꾸기, 송장벌레, 문둥이박쥐 등 부정적인 이름이 많습니다. 개가 들으면 기절할 이름인 개나리, 개비자, 개여뀌, 개살구처럼 가 접두어로 들어가면 부정의 의미를 지녀 어떤 것의 아류쯤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바꿔 생각하면 개들의 사회에서 못된 개를 일컬어 사람 같은 개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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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의사답게 나무에 대해서 이야기도 빼놓지 않으셨어. 우리가 산에 가면 나무들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도시에서 느끼는 바람과는 확실히 다르단다. 아빠는 그냥 시원한 바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지은이는 나무와 바람의 관계를 좀더 소중한 관계로 비유했는데, 아주 공감이 가면서 아빠에게도 바람과 같은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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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71)

나무에게 바람이란 어렸을 때는 무서운 훈육 주임이고, 사춘기에는 친구이고, 청년기에는 연인이며, 장년기에는 질서와 규율이고, 노년기에는 스킨십을 잊기 못하게 하는 추억과 같습니다. 멀리 벋어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나무가 좀 더 커서는 바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친구처럼 대하고, 어엿한 나무가 되면 바람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연연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가 장성하여 숲의 주인이 되어갈 즈음이면 바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더 크고자 하는 욕망을 통제하는 훈육 주임이 됩니다. 그러고 보니 훈육 주임이 두 번 등장입니다. 무서운 것도 잠시, 수백 년이 흘러 노목이 되면 무성했던 가지와 잎들도 사라지고 엉성한 가지들 사이로 바람도 피해가고 가지들의 울렁거림도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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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은 더러운가? 사람들은 보통 흙이 묻으면 흙의 종류와 상태를 불문하고 모두 더럽다면서 털어내려고 하는데, 흙의 입장에서 보면 더러운 흙은 따로 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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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91)

흙이 더럽다는 인식을 두고는 흙의 입장과 사람의 입장이 서로 다릅니다. 사람들은 흙 속에 동물의 똥이나 사체들이 들어 있어 흙을 더럽다고 여기고, 흙의 입장에서는 오염 물질이 유입되거나 못하는 가장 주된 원인은 밟혀서 다져진 땅이 되었을 때입니다. 정상적인 흙은 광물질45퍼센트, 수분25퍼센트, 공기25퍼센트, 유기물5퍼센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수치에서 흙 속의 절반이 비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빈 공간이 줄어들면 물과 공기가 저장되지 못하고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내뿜은 탄산가스마저 빠져나가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식물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죽고 썩어들어가면서 에너지를 순환하지 못하고 흙이 더러운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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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속을 비운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나이가 먹을수록 욕심이 더 쌓여가 속을 채우려고만 하니, 나무에게 좀더 배워야겠구나. 물론 아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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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나무는 속을 비웁니다. 오래된 나무는 대부분 속이 비어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중심을 비우므로 하늘과 땅의 소통을 이룹니다. 비어 있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텅 빈 공간입니다. 노자는 마차 바퀴의 중심이 비어 있어서 유용하다고 했습니다. 나무는 속을 비워내므로 많은 생명체들이 그 안에 깃들어 삽니다. 아늑하고 따뜻하며 숨기 좋은 그곳은 하룻밤 동물들이 쉬어가고 새들의 집이나 곤충들의 사냥터가 되기도 합니다. 살아서 몸을 보시하는 보살의 화신인 것이지요. 한편 나무가 속을 비운다는 것은 과거를 잊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는 지나간 시간을 잊고 오로지 현재에만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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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오늘 너희들에게 소개해준 그들 이외에도 좋은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단다. 그래서 너희들도 읽어보면 좋겠지만, 너무나 바빠서 쉽지 않겠지? 그나저나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해 세계의 과학자들과 지도자들이 좀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전쟁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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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386)

인류는 현재 기후 변화라는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풍족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소비를 줄이고, 나무처럼 자연의 회복 능력을 믿으며, 서로 협력하면서 작은 문제부터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일 때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찾아올 것입니다.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큰 희망입니다. 뛰어난 지능을 지난 과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미래를 이해하고 싶다면 과학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고들 합니다. 과학의 시선이 지금 이루어야 할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한 것에 머물 때,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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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시간이 다 되었다는 듯이 신호등이 깜박거립니다.

책의 끝 문장: 과학의 시선이 지금 이루어야 할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한 것에 머물 때,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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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
유시민.김세라 지음 / 은빛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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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두어 달 전에 유튜브 <매불쇼>를 보다가 초대 손님으로 나온 유시민 작가님의 신간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라는 책을 알게 되고, 인터넷 서점으로 가서 주문해서 읽었단다. 누군가는 유시민 작가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빠에게 유시민 작가는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스승님과 같은 분이란다. 그래서 그의 신간이 나오게 되면 꼭 읽곤 한단다. 이번에 나온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라는 책의 부제는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로 되어 있단다. 강순희라는 분을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강순희라는 분은 어떤 분일까? <매불쇼>에서 유시민 작가가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대충 해주셔서 강순희 님이 인혁당 사건의 유가족이라는 것을 알았단다.

인혁당 사건은 인민혁명당 사건의 줄인 말로, 1964년 첫 번째 인혁당 사건이 있었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두 번째 인혁당 사건이란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두 번째 인혁당 재건위 사건인데,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해서 자백을 받는 식으로 누명을 씌우고 속전속결로 재판을 진행하여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내린 지 하루도 안되어 사형을 집행하는 만행을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렀단다. 전세계에도 유례가 없는 사법살인의 사례로 알려졌단다. 암울한 독재 시대의 잊지 못할 잔상이구나. 그들뿐만 아니라 연좌제로 그들의 가족도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했는데,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의 강순희 님은 인혁당 사건의 사법살인의 희생자 우홍선 님의 아내 되시는 분이란다.

1998년 인혁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운동이 시작되었고, 2005년에 다시 재판이 시작되어 2007년에 사형 선고를 받은 8명에 대해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가 내려졌단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 다행이라고 하기도 뭣 하구나.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이라도 달래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우홍선 님의 아내 강순희 님은 직접 유시민 님께 연락을 하셔서 자신의 자서전 작업을 부탁하셨다고 하더구나. 이 책은 강순희 님이 2011 4.9통일평화재단과 진행한 인터뷰한 내용과 최근에 유시민 님과 진행한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이란다.


1.

강순희 님은 1933년 함경북도 박천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어. 아버지가 하얼빈에서 와이셔츠 사업을 하셔서 어렸을 때는 하얼빈에서 자랐대. 세 살 때 하얼빈으로 이사를 가서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4학년까지 지냈다고 했어. 그리고 광복 2년 전에 다시 박천으로 돌아와서 해방을 맞았다고 하는구나. 북한에서는 해방 후 대대적으로 토지개혁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 강순희 님의 아버지의 땅도 나라에 몰수 당했다고 했어. 그리고 사업을 위해 아버지는 남한에도 오가곤 했다는구나.

강순희 님은 평양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어. 고등학교 3학년 때 전쟁이 일어나서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는구나. 대전에서 옷가게를 하다가 아버지의 의견으로 다시 부산까지 내려왔대. 강순희 님은 부산에서 남강고아원이라는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살피는 일을 했어. 그러다가 지인 소개로 한국은행에 취직시험을 보고 합격을 했다는구나. 그렇게 한국은행에 취직했지만, 강순희 님의 꿈은 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에 회사에 다니면서 야간대학교를 다녔대. 그러다가 결혼을 하면서 그 꿈을 잠시 중단했다는구나. 당시에 우리나라 사회에서 여성이 회사를 다니면서 야간대학교를 다니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결혼까지 했으니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구나.

강순희 님이 우홍선 님을 만나 결혼한 사랑이야기도 해주셨어. 강순희 님의 친구의 남편이 전쟁 중에 죽어서 그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우홍선 중위가 찾아왔는데 강순희 님도 한자리에 있어서 같이 만나게 되었고, 둘은 첫눈에 반해서 사귀는 사이로 발전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단다. 그때가 1956년이었는데, 당시 한국사회에서 결혼 후에 여자가 회사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어. 하지만 양가 부모님 모두 개방적이시고 좋은 분이시라 결혼 후에도 한국은행을 계속 다니셨대. 아이들도 낳고 하면서 결혼한 후에도 10년을 더 다니시다가 퇴직금이 사라진다는 해서 그 전에 그만 두셨다고 하더구나. 딸 셋 아들 하나를 낳고 애처가 남편과 함께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생활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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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강순희) 그 사람이 맨날 그랬어요. 사람은 살면서 선택을 잘해야 하는데 배우자를 잘 고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나를 잘 만났다고 생각했는지, 내 의견을 무시하지 않았어요. 무시했으면 내가 가만있지도 않았겠지만, 남편 떠난 다음에 지인이 해준 이야기인데, 한번은 얘기를 하다 말고 일어서더래요. 무슨 약속 있냐고 하니까 아내를 만나기로 했다면서 휙 가버렸대요. 그때는 어이없었다 하더라고. 그 사람하고 이웃에 산 적이 있어요. 갈현동 살 때였는데 바로 길 건너편으로 이사온 거예요. 그 집에 놀러 갔을 때 남편이 과일을 포크로 찍어서 나한테 줬어요. 그걸 보고 다른 집 여자들이 남편한테 자가지 긁었나 봐. 남편들이 안 되겠다고, 우리더러 빨리 이사 가라고 우스개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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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64년 통일운동 모임이 있어 참석을 했을 뿐인데, 이 모임을 인혁당 사건으로 조작하여 수배령이 내려졌단다. 1년 동안 도피하다가 잡혀서 구치소에 들어갔고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다고 하는구나. 억울했지만 그래서 집행유예라서 다행이었구나. 출소한 후에도 사업을 하며 평범한 생활을 했다고 하는구나. 그 사건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혀질 즈음인 1974 2차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일어났어.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사건은 완전히 조작된 사건이었어. 그래서 무죄로 판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무죄를 호소하는 편지를 정부 관련자를 비롯하여 여기저기 편지를 쓰셨다고 하는구나. 박정희와 육영수에게도 편지를 썼다고 했어.

하지만 1974 7 11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곧이어 9 7 2심에서도 사형 선고를 받았대.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되었어. 그때부터 다른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가족들과 함께 본격적인 구명 운동을 했다고 하는구나. 조지 오글 목사,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하여 국내외 종교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었어. 수많은 사람들의 탄원서도 받아냈단다. 이 때 명동성당에서 강순희 님이 호소문을 낭독했는데 그 글도 명문이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글을 보고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없겠다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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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136)

(유시민) 그 호소문을 보면 좋겠다 싶어서 찾아봤어요.

우리들은 살고 싶습니다. 평화롭게 살고 싶습니다. 저희들은 10년 전에도 없었고 현재도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조작된 인혁당에 묶여 사형선고를 받은 피고인들의 아내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인혁당을 조작하여 북괴에 이롭게 하는 것은 무슨 법, 무슨 조에 해당하는지 만천하에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부디 저희들의 남편을 정치 제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이름 없고, 힘없고, 보잘것없는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정치 제물로 삼는다면 그 제물 위에 피는 꽃은 무슨 꽃이 피더라도 향기 없는 꽃이요, 빛깔 없는 꽃이요, 생명력이 없는 꽃일 것입니다. 죽이고 난 다음에는 살릴 수가 없습니다. 이 절실한 호소를 모른 체 묵인함으로 저희들의 남편을 제물로 바치려 하는 자들과 같은 편에 서는 결과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중정에서는 저희 남편들을 사형을 시켜 마땅한 죄를 지었다고 합니다. 저희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저 무시무시한, 온 권력을 다 가진 정보원들과 아무 힘없는 저희들과 누구의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물론 둘 다 믿을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이 당연하고 옳은 자세일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다 못 믿겠으니 가만히 있자!’하는 것은 공정한 입장에 선 것이 아니라 정보원들과 같은 편에 서서 저희들이 남편을 죽이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또한 저희들이 원하는 공명정대한 재판을 죽이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또한 저희들이 원하는 공명정대한 재판을 하라고 하신다면 이는 저희들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다 못 믿겠으니 온 국민이 납득이 가는 공정한 재판을 하자 하는 가장 공정한 입장이며 국민의 권리며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시지 마십시오. 만약 포기하신다면 8인의 생명을 죽이는 데 도움을 준 결과가 될 것입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살인자들의 편에 서게 되는 결과가 되리라 믿습니다. 저희들의 남편은 주교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니요, 시인도 아니요, 교수도 아니요, 목사도 아닙니다. 따라서 인혁당원도 결코 아닙니다. 이름 없고, 힘없고, 짓눌린, 선량한 대한민국의 한 국민입니다. 더 이상 저희는 사형이라는 몸서리쳐지는 말을 들을 기력이 없습니다. 피를 토하는 아픔과 절망을 의식하며 여러분 앞에 호소 드리는 바입니다. 1974 12 5. 가족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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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청원하고 호소했지만, 대법원은 1975 4 8일 사형을 선고했단다. 좌절감을 느낀 가족들은 앞으로 어떻게 투쟁해야 할지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았어. 사형 선고를 받은 다음날 면회를 위해 감옥을 찾아갔지만 이미 사형 집행을 하고 난 후였단다. 이런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불과 50년 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란다. 이 사법살인을 저지른 가해자는 그럼 누구인가.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단다. 아빠도 이 사건에 대해서만 알지 이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 악한들은 누군인지 몰랐단다. 아빠의 기억력이 나쁘지만 조금이라도 기억하기 위해 그들을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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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민복기(1913~2007)는 이완용의 사돈이자 자신도 일제 귀족 작위를 받았던 민병석의 아들로 경성에서 태어나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고 경성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다음 경성지방법원 판사가 되었다. 미군정청 법률심의국장을 거쳐 이승만 박정희 정부의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대통령 비서관, 법무부 차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으로 승승장구하다가 1968년부터 10년 넘게 대법원장 자리를 지켰다. 두 번째 임기에 인혁당재건위 사건 상고를 기각해 사형에서 징역 15년까지 모든 피고인의 형을 확정했던 그는 1978년 정년퇴임하면서 내 재임 시의 공과는 후세의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전두환의 국정자문회의 위원 위촉을 받아들였고 국정자문회의 위원직도 수행했던 민복기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이미 내려졌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부친과 나란히 올랐던 민복기의 이름은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영원히 박정희가 자행한 사법살인의 하수인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당시 대법관은 민복기, 홍순엽, 이영섭, 주재황, 김영세, 민문기, 양병호, 이병호, 김윤행, 임항준, 한환진, 안병수, 이일규 등 13명이었으며 반대 의견을 낸 사람은 이일규 한 사람뿐이었다는 사실을 덧붙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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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을 허망하게 잃었지만, 강순희 님에게는 아이들이 있었단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살아가야 했단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그리움 또한 잊지 않았어. 세상을 떠난 남편을 위한 편지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사모곡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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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저 구름 넘어 아득한 곳에 당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 당신을 만나기 위해 남은 여생을

가시밭길을 걸어서 걸어서

단 한번 만이라도 만날 수만 있다면,

나 어떤 가시밭길이라도 멀다 하지 않고

외롭다 하지 않고 고달프다 하지 않고

힘껏 달리고 달려가련만

! 이처럼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니

, 시작도 끝도 없이 밀려오는

이 서러움을 감당할 길이 없고나,

감당할 길이 없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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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순희 님의 억울함을 속으로 삭이지만 않고, 밖으로도 쏟아 부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병이 나지 않으셨을까 싶구나. 억울하게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자에게 독재자도 무섭지 않았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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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강순희) 택시 기사들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이웃 사람들도 다 좋았어요. 그때 우리집 골목은 양쪽으로 집이 쭉 있었으니까, 한 집에서 큰 소리가 나면 다 들렸는데도 내가 맨날 문 열어놓고 소리 질렀어. ‘박정희 살인마!’ ‘민복기 살인마!’ 하도 분해서 나도 잡아가라, 모르는 사람이 우리집 쪽을 쳐다보면 이웃집 아줌마들이 그냥 지나가라고 했지. 다들 우리 부부를 안타깝게 봤던 것 같아. 그 골목에서 우리 아들 친구네가 살았는데 그 엄마가 하는 말이, 우리 부부가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일부러 내다보곤 했었대. 가뭄이 심해서 동네에 물차가 온 적이 있어요. 물통을 갖다 놓고 물을 받는데 제대로 안 되는 거야. 열불이 나서 한마디 했지. ‘, 이 개새끼야! , 박정희 새끼 잡아 먹고 싶은데 오늘 어느 놈이든지 박정희 대신 잡아먹어야 되겠다!’ 물차 운전사가 막 뭐라고 했어.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날 건드리지 말라고 말리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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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강순희 님의 인터뷰의 내용을 읽다 보면 아빠에게도 좋은 가르침을 주는 글들이 참 많았단다. 구순을 넘긴 어르신의 인생에 대한 정의도 요즘 심리적으로 조금 힘들었던 아빠에게 위안을 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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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강순희) 중학교 다닐 때였는데 공책에 인생이란?’하고 써놓은 적이 있어요. 담임 선생님이 그거 보고 놀렸어. ‘, 순희, 벌써 인생을 생각하냐?’ 인생이 뭘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자기한테 주어진, 자기 앞에 펼쳐진 운명을 열심히 살아가는 거, 그게 인생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서 극복하며 사는 거, 그게 인생이다.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장애물이 닥쳐도, 원망 같은 거 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그런 게 쌓여 인생이 된다. 애들한테 늘 그렇게 얘기했어요. 나도 그렇게 살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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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힘껏 노력하는 사는 것, 쉽지 않은 삶의 철학인데 그것을 실천하면서 사셔서 남편을 억울하게 잃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 같구나. 그리고 그런 삶의 자세로 한 평생을 살으셔서 인터뷰를 하신 유시민 님도 나도 아흔세 살까지 산다면 아흔세 살의 강순희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씀하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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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강순희) 사는 동안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해요. 불행하지 않았어요. 행복하게 만났고, 행복하게 살았고, 행복하게 애들 키웠고, 일도 닥치는 대로 행복하게 했고, 남편 때문에 싸울 때도 있는 힘을 다했어요. 행복이란 게 사람마다 달라요. 남들 눈에는 행복해 보여도 그 사람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행복했다’ ‘불행했다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은 거예요. 주어진 운명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며 살았다는 걸로 나는 만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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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읽은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한 분의 좋은 스승님을 만난 기분이란다. 아빠가 오늘 독서편지를 쓰면서 책의 내용을 많이 인용했는데, 그 외에 좋은 글들도 많아서 더 많이 따로 발췌를 했단다. 50년 전 같은 사법살인이 설마 우리나라에서 다시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2024년에 그 근처까지 갈 뻔한 사건이 있었기에 방심할 수는 없단다. 인간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그리고 당시 사법시스템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 사법 카르텔이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2년여 동안 목격을 했단다. 이런 시스템을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개혁이 되었으면 좋겠으나 사법부가 잡고 있는 권력이 너무 막강하여 지지부진한 것 같더구나. 국민들의 공감대의 힘이 약해지기 전에 얼른 사법 개혁이 진행되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2025 5 21일 오후,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가 떴다.

책의 끝 문장: 나도 아흔세 살까지 산다면 아흔세 살의 강순희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강순희) 노무현 대통령 생각하면 유시민 작가 생각나고, 유시민 작가 생각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나요. 내가 구순 잔치에 노무현 대통령 초대하고 싶었어요. 돌아가셔서 못 하게 되었으니까, 문재인 대통령하고 유시민 작가 초대하려고 했어. 그랬는데 윤석열이 대통령 되는 바람에 구순 잔치를 안 했어요. - P16

(199)
(강순희) 다시 볼 수 없다는 거, 딱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데 어디 가도 볼 수가 없다는 거, 그게 참 기가 막히더라고. <전쟁과 평화> 영화에서도 남자 주인공이 죽자, 여자가 제일 먼저 한 말이, ‘당신 어디 있느냐’는 거였어요. 나는 그 사람 만나려고 산소에 갔어요.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 꼭 갔지. 택시 타고 다녔어. 누구 보기가 부끄럽더라고. 그래서 버스를 못 타는 거야. 밖에 나가지도 못하겠고, 누구를 만나지도 못하겠더라고요. 꼭 내가 잘못해서 남편이 죽은 것 같았어. 누가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나 혼자 그랬던 건데, 이거 이해하기 힘들 거예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다들 그랬대요.
- P199

(강순희) 택시 기사들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이웃 사람들도 다 좋았어요. 그때 우리집 골목은 양쪽으로 집이 쭉 있었으니까, 한 집에서 큰 소리가 나면 다 들렸는데도 내가 맨날 문 열어놓고 소리 질렀어. ‘박정희 살인마!’ ‘민복기 살인마!’ 하도 분해서 ‘나도 잡아가라, 모르는 사람이 우리집 쪽을 쳐다보면 이웃집 아줌마들이 그냥 지나가라고 했지. 다들 우리 부부를 안타깝게 봤던 것 같아. 그 골목에서 우리 아들 친구네가 살았는데 그 엄마가 하는 말이, 우리 부부가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일부러 내다보곤 했었대. 가뭄이 심해서 동네에 물차가 온 적이 있어요. 물통을 갖다 놓고 물을 받는데 제대로 안 되는 거야. 열불이 나서 한마디 했지. ‘야, 이 개새끼야! 나, 박정희 새끼 잡아 먹고 싶은데 오늘 어느 놈이든지 박정희 대신 잡아먹어야 되겠다!’ 물차 운전사가 막 뭐라고 했어.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날 건드리지 말라고 말리고 그랬어요. - P201

(강순희) 도대체 어떤 놈이 내 남편 명예를 회복시켜 줄 수 있느냐, 네깟 것들이 무슨 명예회복을 해주느냐, 이게 나라냐, 나도 힘 있으면 이놈의 세상 확 뒤집어엎고 싶다, 힘이 없어서 못 하는 거다, 이 세상 뒤집어엎으려고 한 게 내 남편의 명예인데, 이 명예가 어때서? 명예 회복 같은 거 신청 안 한다, 돈 몇 푼 보상받는 거 안 한다. 내 생각은 그런 거였어. 명예회복 신청해서 보상받으면 더 분하고 더 억울할 것 같았어. 사람이 죽고 없는데 뭐가 필요하단 말이야? 이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 같지가 않은 거야. 그래서 신청을 안 했어요. 재심 무죄 판결 나고 나서 한명숙 총리가 우리를 공관에 초대했어요. 2007년 2월쯤이었지, 아마? 한 총리가 왜 여태 명예회복이 안 되었냐고 걱정하기에, 내가 안 한 거라고 이유를 싹 설명하고 재판으로 해결했으니까 이제는 할 거라고 했어요. 그 후에 신청해서 했고. - P232

(262)
(강순희) 아무 여한이 없어요. 오늘 밤에 죽는다 해도 괜찮아. 남편 일로 좀 힘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 다 했으니까. 신랑도 잘 만났고, 사랑도 잘 했고, 남편 일로 싸울 때도 잘 싸웠어요. 자기한테 주어진 것을 극복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잖아요. 나한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내 힘껏 노력하고 살았어요. 최선을 다했어요. 남편 죽었을 때는 막 같이 죽고 싶었지. 그런 생각이 든 순간이 여러 번 있었어. 그렇지만 아이들 위해 살아야겠다 싶어서 고비를 넘겼어요.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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