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 반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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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책제목에 이끌려서 읽게 된 박선영 님의 <그저 하루치의 낙담>을 이야기하려 해. 이 책은 독특한 책 제목으로 아빠가 몇 번을 책 소개를 읽어보고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사서 읽은 책이란다. 책 제목을 지은이가 지었는지, 출판사가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잘 지은 것 같구나. 누구나 낙담을 하곤 만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고 욕심이 커서일 수도 있고, 아빠도 낙담이라면 남에게 뒤지지 않는 사람일 것 같구나. 그러다 낙담을 하더라도 딱 하루치의 낙담만 하자…

오래 가지 않고 딱 하루치 정도의 낙담이라면 좋을 것 같다. 지은이 박선영 님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분인데, 한국일보에서 17년 동안 기자로 일하고, 7년 전 그만둔 전직 기자 출신 작가란다. 다른 일을 하려고 그만 둔 것은 아니고 그냥 회사가 맞지 않아서 그만 둔 것 같더구나. 오랜 기간 동안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다가 결국은 벗어 버린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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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말 속에서 당장 짐을 싸 도망쳐버리고 싶은 그 많은 날들을 나는 어떻게든 견뎠다. 심지어 인간들을 견디는 그 힘든 일을 기가 막히게 잘해냈다. 나는 나를 세뇌했다. 저 정도면 좋은 사람이라며, 모른 척 한 본 척, 잘 지냈다. 유머와 친화력은 내 무수한 성격적 결함들을 커버하며 조직형 인간의 장점으로 두루 각광받았다. ‘사내정치의 달인’이라는 비아냥이 들려놨을 때, 내가 울었던가 웃었던가. 쟤는 출세하려고 저런다, 누구하고나 잘 지내는 거 봐라, 저게 다 권력 획득을 위한 관리다 등등. 차라리 그런 사짜의 권력의지가 내게 있다면 좋았을 것을. 그럼 분열 없이 행복했을 것인데, 못하기 싫었을 뿐인데 쓸데없이 너무 잘해버려서, 은밀히 이런 고충을 토로하면서 모두가 놀라며 믿어주지 않았던 것. 피부에 들러붙은 피복처럼 몸에 익어버린 처세. 내면과 외면의 격차. 그게 내 고통의 원천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나이에 커리어의 한복판에 주저앉아버린 원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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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 두고 특별한 직업 없이 하고 싶은 것 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그 동안 읽지 못했던 책도 많이 읽고, 아이들 양육에도 신경을 쓰는 그런 삶을 살았다고 하더구나.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즐거운 시간들만 있었다는 것은 아니고 그 이유가 늘 낙담이 있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책제목도 <그저 하루치의 낙담>이라고 지은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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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한심하게 빈둥거렸던 그 긴 시간이 즐거웠다고만 할 수는 없다. 늘 낙담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 대해,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내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나의 미래와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나는 자주 낙담했다. 혼자서 학교 다릴 수 있으면 자식은 다 키운 거라던 내 계산은 완전히 빗나간 오답이어서, 두 사춘기 자녀의 양육이라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과업은 다른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도록 나를 압도했다. 달콤했던 고독이 자각할 새도 없이 위태로운 고립으로 나를 몰아넣은 일도 흔했다. 세상에는 여전히 울 일이 많았고, 나는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자인에 대해 낙담하고 또 낙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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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빠가 앞서 이야기하기를 이 책을 몇 번이나 사기를 망설였다고 했잖아. 그 이유가 에세이기 때문이었단다. 에세이를 안 읽는 것은 아니지만, 잘 모르는 사람의 에세이는 좀 망설인단다. 그 사람의 삶과 생각을 읽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 이 책은 에세이라는 정의를 모두 반영되어 있는 책인 것 같았어. 지은이 박선영 님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들, 기자로써 경험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 경험한 이야기들, 그리고 이 사회를 바라보고 인간을 바라보고 생각한 것들.. 그런 것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단다.

이런 이야기들은 자칫 하면 읽는 이들에게 지루함을 줄 수 있는데, 지은이는 글쟁이더구나. 글이 이렇게 조곤조곤하면서 가끔은 위트가 담겨 있어 재미있게 잘 쓰셨더구나. 아빠는 책에서 좋은 구절이 있으면 키보드로 하지만 발췌를 하잖니, 이 책은 엄청 많은 부분을 발췌했단다. 시간 여유만 있다면 손으로 직접 써볼 텐데, 지금은 그런 여건은 안 되는구나.

그 중에 몇 개를 소개해 볼게. 그땐 몰랐는데, 이십 대가 인생의 봄이었다는 것을 지나고 나서야 알겠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이십 대를 대학에서 시간을 보낼 텐데, 지은이는 대학 시절 외톨이였다고 하더구나. 문득 아빠의 대학 시절을 생각해 보면,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시간들이지만 한참을 멀리 와 있구나. 이제 너희들도 몇 년이 지나면 그런 시절이 올 텐데, 지은이처럼도 아니고, 아빠처럼도 아닌, 후회 없는 인생의 봄을 즐겼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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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대학이란 이상한 곳이었다. 사람들은 즐겁다. 즐겁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다. 비슷한 능력과 비슷한 야심을 가진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사람들은 즐거운데, 나만 혼자 이렇게 달려져 있다. 생애 첫 외톨이 체험이라는 불의의 사태가 발생한 것은 자처한 일임에도 쉽지 않았다. 고립이란 그 나이가 되어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어서, 혼자서 밥을 혼자서 강의를 듣고 혼자서 도서관에 가 있는 끝없는 나날들은 굳은 결의와 심지를 요했다. 자꾸 투항하려는 스스로를 저지하며 나는 남몰래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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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도 두 아이의  부모로써 아이들과 있었던 일들도 많이 이야기하였어. 그 중에 아래 글은 많이 공감이 가더구나. 힘들다는 표현을 다른 방식으로 하다 보니 더 힘들어지는 관계들. 그래도 너희들은 힘들다는 말을 솔직히 해주어 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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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170)

세상에 상처받을 때마다 엄마를 공격하는 대신, 엄마, 힘들어요, 털어놓으면 좋으련만. 아직 어린 너희들에게는 어려운 일이겠지. 세상을 호의도 선의도 예의도 거칠고 황량한 사막으로 만들어놓고 집에서만 너무 많은 사랑을 퍼부은 탓에 너희들이 휘청거린다. 너희가 받는 사랑의 원천이 더 다양했더라면, 우리가 사랑의 에너지를 더 많은 곳에 골고루 나누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겠지. 꼬고 꼬고 또 꼬아놓은 기형적 문제들과 거기에서 갈리는 0.1점의 차이가 너희들 매일의 삶을 옥죄지 않았더라면, 우리들이 이렇게까지 양육고를 겪는 일도 없었을 텐데. 너희들을 달래려 그 많은 특권들을 탕진하듯 누리도록 하지도 않았을 테고, 왜 마음대로 나를 낳아 이 거지 같은 일들을 겪고 하느냐는 원망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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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을 다들 정말 치열하게 사는 것 같단다. 특히 너희들 같은 청소년들이 가장 치열하게 사는 연령대인 것 같아. 아빠가 너희들만 할 때도 친구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한 것 같지는 않구나. 하지만 요즘은 공부하는 양들을 보면 기겁부터 하게 되더구나. 모든 이들이 그렇게 하니 나만 안 하면 뒤쳐지는 기분도 들고… 지은이처럼 대충 살면 안 될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로 인해 대충 살기도 쉽지 않겠지. 어는 때는 법으로라도 대충 살아야 한다는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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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288)

우리 좀 대충 살면 안 될까. 부모의 높은 기대로 괴로워하는 저 많은 아이들을 보라. 길거리에 나붙은 저 많은 소아청소년정신과와 심리상담센터의 간판을 보라. 포기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포기와 체념은 사람을 살게 한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인근 학교 학생의 자살 소식을 1년이면 한 번은 꼭 들었다. 과중한 학업 스트레스로 동네 고등학교에서 인도계 학생 한 명이 자살했다는 소식에 학교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는 물론 동네 주민들까지 불러 상담 세션을 연 날이었다. 늦은 밤 집으로 오는 자동차 안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글자가 뭐라고 생각해?” 아이들이 사랑, 가족, 행복 같은 단어들을 댔다. “엄마는 포기하고 생각해. 포, 기.” 백미러에 아이들의 의아한 표정이 비쳤다. “정말 힘들 땐 포기하면 돼. 포기해도 괜찮아. 포기가 인간을 얼마나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해주는데,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어. 삶.” 해보기도 전에 포기할까봐, 맨날 포기할까봐, 그게 무서워서 포기하지 말라고, “포기는 배추 셀 때난 쓰는 말”이라고 가르쳤지만, 우리가 실상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건 포기하는 법인지도 모른다. 언제 포기할 것인지, 어떻게 포기할 것인지, 왜 포기하는 것인지를 가르치는 게 포기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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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는 문과 출신인데 이과적인 감성이 깃들 글도 깊은 생각을 갖게 만들더구나. 에너지 준위가 낮아질 때 빛이 방출한다는 화학 법칙을 통해 높은 곳에서 내려와도 괜찮다고 위안을 주는구나. 그런데 아빠는 왜 최근 줄줄 내려고 있는 주식과 환율이 생각날까? 아빠의 사라진 자산은 빛이 된 것이로구나. 오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빚이 아니고 빛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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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빛이란 전자가 높은 에너지 준위에서 낮은 에너지 준위로 떨어질 때 그 차이만큼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형식이라고 한다. 각각의 전자가 위치하는 궤도인 전자껍질마다 필요로 하는 에너지값이 다르고, 에너지 준위라 불리는 그 특정 값은 직선의 형태가 아니라 불연속적 계단 구조로 상승 혹은 하강한다. 전자가 낮은 계단에서 높은 계단으로 올라설 때 그 차이만큼의 에너지는 빛의 형태(광자)로 흡수된다. 반대로 높은 계단에서 낮은 계단으로 내려갈 때 그 에너지의 차이는 빛의 형태로 방출된다. 빛에 관한 이 설명이 나는 몹시 마음에 든다. 높은 계단으로 올라설 때가 아니라 낮은 계단으로 내려올 때 빛이 나오는 것이다. 올라갈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이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그렇지 않다. 내려와도 괜찮다. 빛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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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서 많은 위안을 갖게 되었어.

내려와도 돼.

실패해도 돼.

포기해도 돼.

낙담해도 돼.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

….

새로운 글쟁이를 알게 되어 좋았단다. 지은이 박선영 님의 신간 소식에 안테나를 켜 놓아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나는 늘 은둔과 도피의 서사에 매혹됐다.

책의 끝 문장: 그래도 괜찮다면, 엄마에게 바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욕망의 지도를 따라서 인생을 살아간다. 내 삶은 지금까지 축적해온 내 선택들의 총합이다. 나는 아마 인생을 다시 살아도 이렇게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내 욕망의 나침반이 결국 같은 지도를 그리게 만들 테니 말이다. 욕망의 지번이 다른 사람들과는 관계가 지속되지 못한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온통 나 같은 사람들이다. 끝내 순정을 포기하지 못한 사람들, 아무리 날렵한 지성과 세련된 유머를 구사해도 알고 보면 우직하기 그지없는 사람들. 촌스러운 사람들. - P42

멀어진다고 해서 좋아하는 마음을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된다. 늘 청결한 욕실을 원한다면 청소라는 노력이 부단히 필요한 것처럼, 멀어지는 마음에도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햇볕을 자주 쐐줘야 한다. 가까이 있는 동안은 이러저러한 사회적치적 자력으로 인해 접시가 잘 깨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관계를 유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멀어지고 나면 이런저런 실금들이 총궐기하면서 관계의 청산을 요구한다. "이런 일들이 있었잖아요! 그만 끝내라고요!" 그렇게까지 하면서 굳이 만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당신은 실금들의 궐기에 패배하고 만 것입니다. 지고 싶지 않다면 전화기를 들어야 하고, 메시지를 보내야 하며, 가끔은 선물을 고르고, 편지를 써야 합니다. 내가 미처 못했을 땐 아무리 바빠도 기쁘게 연락을 받아야 하고, 정말 바빠서 연락을 놓쳤다면 반드시 콜백을 해야 하며, 예기치 못한 편지나 선물에는 산토끼처럼 깡총깡총 뛰면서 반색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멀어지기의 기술입니다. - P89

어 슬프고 더 현명한 사람. 깨달음이란 기쁨과 함께 오지 않고 슬픔과 함께 온다는 것. 사람을 더 현명해지도록 만드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것. 더 현명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더 슬픈 사람이며, 그것이 내가 그토록 강렬하게 슬픔의 수집가가 되려면 이유였던 것이다. 나는 삶을 잘 살고 싶다. 진짜 삶을 살고 싶다. 삶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 삶의 폭력을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고 싶다. 그러려면 슬퍼야 한다. 슬픔에 귀 기울여야 한다. 슬픔만이 나를 그 길로 안내할 수 있다. - P106

너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다. 너에게 인색하기란 내게 몹시 어려운 일이다. 사랑이란 본디 흘러넘치는 것이고, 정량의 사랑이란 고로 형용모순이다. 베이킹용 계량법의 봉긋 솟아오른 밀가루를 자객의 칼날처럼 날카로운 손날로 깎아내는 그런 깍쟁이 같은 사랑은 내게 사랑이 아니다.
- P157

고통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특권이다. 살아남은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오만방자한 발언이다. 하지만 거기엔 일말의 진실이 있고, 그 진실이 누군가에게 격려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살아남으라고, 뚫고 나갈 수 있다고, 세상엔 뜻밖에도 허술한 구석들이 제법 있다고 등 두드려주고 싶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말라고, 주눅 들 것 없다고, 알고 보면 뭐 중뿔난 것도 없다고 손 꼭 잡아주고 싶다. 세상에 내 자리는 없을 것 같아 잔뜩 움츠러든 소녀들, 소년들, 청년들에게 야심을 가지라고, 호랑이를 그리려고 덤벼야 고양이라도 그리는 법이라며, 힘차게 등 떠밀어주고 싶다. - P193

나는 낭비된 여행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여행은 나를 성장시켰고, 나는 여행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그 방랑벽을 선택해 또다시 여행들을 탕진할 것이다. 누구에게든 여행에 탕진된 한 시기는 있는 편이 좋다는 생각한다. 젊어서 할 수 없었다면 나이 들어도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이 삶을 구원한다는 그런 낭만적 생각은 아무 다시는 갖지 않을 것 같다. 내겐 결핍들을 축적해 갈망으로 변환시키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에 쫓겨, 현실이 싫어, 그저 떠나는 것에만 강박적으로 매달렸던 미친 시간들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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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과 독화살 - 역마살로드, 사라져가는 세계의 마지막 기록
장준호 지음 / 시월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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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알라딘 인터넷 서점 신간 코너에서 독특한 책 표지와 그에 맞는 독특한 책제목 <휴대폰과 독화살>이 눈에 띄었단다. 책 소개를 보니 범상치 않은 책이었단다. 일단 지은이 소개를 보니 아빠와는 대척점에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보는 <세계테마기행>, <한국기행> 의 PD를 24년 동안 한 장준호라는 분인데, 안정적인 직업을 박차고 나가 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신 분이란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서 다른 일은 아니고 지난 24년 동안 했던 일이 연장선인데 공영 방송이라서 제한된 영상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답답함을 풀어내기 위해서라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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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래서 힘들었다. 일이 고단해서가 아니라, 내가 진짜 보고 싶은 것과 실제로 보여줄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 때문이었다. 결국 방송국을 나왔다.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더는 내 성격을 속이기 어려웠다. 나는 원래 한곳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직접 움직이며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 가깝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보고 싶은 장면을 끝까지 따라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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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3)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다. 상을 받아도, 시청률이 잘 나와도 정작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그렇게 점점 내 이름을 걸고, 내 시선으로 세상을 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한편으로는 무능하고 둔한 시스템 안에 갇혀 있는 것보다 차라리 나 혼자 하는 편이 낫겠다는 오만한 자신감도 있었다. 근거 있는 확신이었고 동시에 무모한 객기였다. 하지만 때로는 그 정도 객기가 있어야 인생의 방향을 틀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안전한 울타리를 부수고 다시 길 위로 나섰다. 남의 이름 아래 잘 만든 결과물을 납품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실패하고 내 이름으로 살아남는 기록자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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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정적인 방송국을 그만두고 ‘역마살 로드’라는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정말 대단한 용기가 아닌가 싶구나. 아빠는 월급의 중독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는데 말이야. 아빠는 이 ‘역마살 로드’ 채널을 몰랐어. 이 책을 보고서야 찾아보았어. 24년 동안 PD 경험과 그의 파트너이자 전문 촬영감독 서감독이 함께 해서인지 영상 품질이 정말 너무 좋더구나. 유튜브에서만 보기에는 아까울 정도의 영상미였어. 아빠는 책을 다보고 나서 ‘역마살 로드’를 정주행하고 있단다.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휴대폰과 역마살>은 ‘역마살 로드’ 채널을 운영하면서 카메라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고 하는구나. 책도 알차게 잘 구성되어 있지만, 아빠에게 이 책의 가장 큰 성과는 ‘역마살 로드’라는 채널을 알게 된 것이라고 하겠구나.

범상치 않은 지은이 장준호 님은 젊은 시절 기타리스트로 밴드 활동을 하는 ‘미대 오빠’였더구나. 상금을 받으면 악기와 앰프를 사려고 KBS 단편영화제에 공모했다가 수상을 하고 나서 방송국 PD로 일하게 되었고 그 이후 24년을 일했다고 하더구나. 앞서 이야기했듯 방송국을 그만두고 지금은 ‘역마살 로드’를 운영 중인데 촬영감독인 서감독, 10개국어를 하는 통역 담당 존. 이렇게 셋이 함께 영상을 만들어간단다. 유튜브 영상을 보면 세 분의 케미가 정말 좋더구나. 눈을 호강하게 하는 영상미뿐만 아니라 다들 유머 감각이 있어서 미소도 자주 짓게 해준다. 그야말로 힐링이 저절로 되더구나.

…

 

1.

이 책에서 소개하는 첫 번째 장소는 아마존 오지란다. 2000년대 크게 인기를 끌었던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 15년 후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서 가기로 했대. 오랜 시간에 걸려 에콰도르 아마존에 도착해서 바메노 공동체 마을에 가서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했단다. 그런데 그들을 처음 맞이한 부족장이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휴대폰을 하는 것을 보고 약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정글과 함께 하는 삶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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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원시의 아이들을 상상하며 33시간의 비행과 이틀간의 이동을 버텨온 우리에게, 정글 한복판의 미니마우스는 청바지를 입은 원주민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시간이 멈춘 박물관이 아니었다. 디즈니 캐릭터가 카누를 타고 들어오는 현대의 아마존이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뒤로 문명의 파도가 얼마나 깊고 빠르게 이 정글의 심장부까지 들이쳤는지 비로소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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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최대의 적은 석유회사라고 했어. 자기들 멋대로 아마존을 훼손시켜 활주로를 만들고 시추 작업을 했어. 예전에 그들에게 항의하러 갔다가 총으로 공격 당해 그 이후로는 피해 지낸다고 하더구나. 지은이가 원주민과 함께 자고, 함께 먹고, 함께 일과를 보내는데 그들이 너무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서 아빠가 더 걱정되더구나. 이름도 모르는 벌레들에게 물리고 정체도 모르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아마존 부족들은 자본주의 악령에 의해 점점 영역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구나. 그러면서 생활터전도 정글의 깊숙한 곳으로 더 이전되고 있었어. 과연 그들의 공동체 생활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

두 번째 오지는 탄자니아 하드자 부족들의 이야기란다. 하드자 부족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수렵채집 부족이라고 하더구나. 원래 그들은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있는 곳에서 생활을 했대. 하지만 탄자니아 정부는 그곳을 관광지로 만들면서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들을 내쫓아서 지금은 척박한 곳에서 힘들게 사냥을 하면서 지낸다고 하는구나. 그날 먹을 것만 사냥하고, 만약 아무 것도 잡지 못한 날은 뿌리 식물로 연명하고 있대. 그런데 탄자니아 정부는 그들의 사냥 활동을 오히려 동물학대와 환경파괴범이라고 비난을 한대. 점점 수렵채집을 살아가기 어렵겠구나. 그러다 보니 하드자 부족 사람들 중 일부는 도시로 나가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그것에도 차별 받고 도시 빈민으로 살거나 다시 돌아오는 이들도 있다고 하는구나. 지은이는 하드자 부족과 함께 사냥을 따라 나섰는데 누군가의 생존을 위해서는 다른 생명이 죽어야 하는 장면을 만나면서 진정한 자연의 삶의 방식을 보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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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09)

그 장면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죽은 원숭이도 안타까웠고, 크게 다친 개도 안쓰러웠다. 20년이 넘도록 다큐멘터리 PD로 현장을 다니며 이런 장면을 여러 번 보아왔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무뎌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불편하다. 그렇다고 내 기준으로 재단할 수도 없다. 하드자에게 사냥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냥 삶의 한 방식일 뿐이다. 인간도, 개도, 원숭이도 모두 각자의 생존을 걸고 있다. 직접 사냥하느냐, 돈을 내고 도축된 고기를 사 먹느냐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지. 우리 역시 다른 생명의 죽음 위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 과정을 보지 않을 뿐이고, 저들은 그 과정을 피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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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오지는 인도네시아 토라자 부족들의 이야기란다. 외지 사람들을 스스럼 없이 받아들이는 토라자 부족은 배처럼 휘어진 지붕의 전통 가옥에서 살고 있단다. 그들은 독특한 장례 문화를 가지고 있어. 장례식에 돈도 많이 들여 엄청 성대하게 연다고 하는구나. 시신도 방부 처리해서 한 동안 집에서 모시고 그 후에는 동굴에 시신을 두는데 마네네라고 하는 축제 때는 그 시신을 다 꺼내서 새옷을 입히고 머리 단장도 새로 해서 가족들과 함께 기념 사진도 찍는다고 하더구나. 그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삶의 연장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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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는 에콰도르 침보라소의 마지막 빙하 장수의 이야기란다. 우쉬카라는 여든 살의 어르신인데, 그의 직업은 고산 지대에 있는 빙하를 채굴하여 파는 빙하 장수라고 하는구나. 예전에는 빙하 장수들이 많았는데, 1980년대부터 냉장고가 보급이 많아지면서 빙하 장수는 모두 사라지고 이제 우쉬카 혼자 남았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빙하를 채굴하려면 예전보다 더 높은 곳까지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구나. 지은이는 우쉬카와 함께 해발 5000미터에 가서 빙하를 캐는 경험을 하는데 그 과정이 고되고 전문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알게 되었어.

이 여행을 마지고 국내에 돌아온 지 얼마 안되어 우쉬카가 밭에서 일하다가 소에 받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대. 마지막 빙하장수의 허망한 죽음이 아닐 수 없구나. 영상과 책에 실린 사진을 본 그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아빠도 안타깝구나. 마지막 빙하 장수 우쉬카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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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이야기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이 이야기란다. 지구 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은 늘 전쟁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도시이지만, 신앙심 깊은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으로 소개해주었어. 이스라엘의 총리 네타냐후가 얼른 자리에서 쫓겨나야 희망을 걸어볼 수 있으려나..

…

다음은 캄보다아 쁘릭뚤이라는 마을 이야기란다. 이 책에 소개된 마을들이나 부족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이름들이 왠지 정감들이 가는 이름들이구나. 쁘릭뚤은 호수 위에 수상 가옥들로 이루어진 마을이란다. 겉에서 보기는 낭만 있어 보이지만,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수도도 없는 곳이란다. 먹고, 씻고, 싸는 일을 모두 같은 물에서 이루어진다. 아빠는 그런 상황이라면 제대로 먹지 못할 것 같은데, 지은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먹고 씻고 싸더구나. 이 곳의 주요 수입원은 악어 장사로 하더구나. 그래서 악어를 많이 키웠는데, 최근에 악어 판매가 급감하면서 오히려 애물단지가 되었다고 하더구나.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 악어 한 마리를 사서 악어 요리를 주문했어. 악어를 통째로 삶는 장면은 너무 생경한 장면인데 그 악어 요리로 동네 사람들 모두 함께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고는 아빠도 그 악어 요리의 맛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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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고민 끝에 우리가 악어를 한 마리 사기로 했다. 이곳에 묵는 동안 숙식비와 촬영비를 따로 지불했지만, 그사이 받은 호의와 도움을 생각하면 이런 방식으로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온전히 마음 편한 결정은 아니었다. 내가 온갖 오지를 다니면서 이것저것 잘 받아먹다 보니 그런 걸 좋아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내 선택으로 한 생명이 죽는다는 건 아무래도 껄끄럽다. 이 악어도 생긴 게 무서워서 그렇지 사는 동안 편했던 생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좁은 우리에 갇혀 일주일에 한 번 겨우 먹이를 받아먹는 것도 서러운 마당에 결국 사람 손에 잡혀 죽는다고 생각하면 그 처지가 안쓰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사랑들에게는 실제 도움이 되고, 우리에게는 이곳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 되는 만큼, 내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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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이야기는 일본 후쿠시마의 후타바 마을이란다. 원전 사고 이후 15년이 흐른 후쿠시마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해서 다녀왔다고 했어. 15년이 흐른 그곳은 여전히 방사능 수치는 높게 나왔고, 폐허간 된 마음은 2011년 달력으로 멈춰 있었어. 하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구나.

….

이렇게 책에서의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었지만, 아빠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역마살 로드’ 채널을 통해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보면서 힐링을 하고 있단다. 그들이 가는 곳들이 위험한 곳도 많아서 걱정이더구나. 이 채널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장PD, 멋진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몸을 갈아 넣는 서감독, 체력 담당, 통역 감당에 감초 역할까지 톡톡히 하는 존. 모두들 계속 건강하셔서 모르고 있는 지구촌 방방곡곡 아름다운 곳을 소개해 주셨으면 하는구나. 아빠가 이 채널을 알게 된 후 너희들에게 추천을 하고, 아빠의 지인들에게도 추천을 했는데, 채널이 좀더 성장해서 그들이 여행하는데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으면 좋겠구나.

그러면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2024년, 나는 다니던 방송국을 나와 대출로 마련한 6천만 원을 들고 아마존으로 들어갔다.

책의 끝 문장: 무엇보다, 참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이들의 고민을 우리가 함부로 판단하거나 단정할 수는 없다. 전통을 지키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도 할 수 없고, 문명으로 나가는 것이 반드시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이들을 보면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아마존이나 한국이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내가 겪은 고생은 덜 겪었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을 너무 쉽게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 정글 깊숙한 곳에서 만난 그들의 고민은 낯설면서도 이상할 만큼 익숙했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 P71

더욱이 최근 몇 년 사이 하드자를 둘러싼 풍경은 더욱 기괴하게 변했다. 내가 처음 이들을 만났을 때만 해도 그들은 카메라를 위해 ‘준비된 연기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유튜버들이 하드자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연출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똑 같은 구도로 불을 피우고, 똑 같은 자리에서 춤을 추고, 카메라가 보기 좋은 각도에서 사냥 장면을 반복한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지내봤기 때문에 안다. 진짜 사냥은 그렇게 찍을 수가 없다. 그 거칠고 가시덤불을 뒤덮인 산을 짐승처럼 뛰어다니는 사람들이었다. - P126

마네네라 불리는 이 축제는 우리 식으로 비유하면 설이나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조상을 기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토라자 사람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직접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 머리를 손질하고, 먼지를 털고,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어떤 집은 고인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고, 어떤 집은 선글라스를 씌워주고, 누구는 함께 산책을 하기도 한다. - P134

토라자에서는 장례 전까지 고인을 완전히 죽은 사람으로 부르지 않고 ‘아픈 사람’이라는 뜻의 토 마쿨라로 여기며, 가족이 음식과 물, 담배를 바치는 관습이 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들은 죽음을 우리처럼 어느 한순간의 단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 함께 있는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 아침마다 인사하고 물을 떠다 드리는 일이 가능해진다. 누군가는 그런 일을 건너뛰었다가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기고 사고가 나고, 누구는 죽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우연인지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이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몸은 멈췄어도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 눈에는 낯선 믿음이지만, 이해하고 나면 이들의 일상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관은 방 안에 놓여 있지만, 그 방은 무덤이 아니라 여전히 가족이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이다. - P155

이 위험한 곳이 이곳 아이들에게는 일종의 놀이터였다. 굶주린 악어가 도사리고 있는 악어장 위를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닌다. 심심하면 호수로 풍덩 뛰어들어 수영을 한다. 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장난감도 새끼 악어였다. 입을 리본처럼 생긴 끈으로 단단히 묶은 새끼 악어를 붙잡고 이리저리 들고 다니며 놀았다. 물뱀을 잡아 장난감처럼 만지기도 하고, 악어장 주변에서 이것저것 주워 와 제 나름의 놀잇감을 만들기도 했다. 떠내려온 페트병이나 캔 같은 것들은 따로 모아 두었다가 고물상에 팔았고, 바퀴 빠진 장난감이나 깨진 생활용품이 떠내려오면 그걸 주워서 소중하게 가지고 놀기도 한다. 위험과 가난이 뒤섞인 환경이었지만, 아이들은 그 안에서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놀고 있었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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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6-10-31 0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 유튜브 중에서 역마살 로드의 영상미는 최고죠. 한때 구독자 10만이 안 될때 부터 보면서 왜 이렇게 좋은 채널이 안 뜰까 하면서 봤어요. 남들은 잘 가지 않는 오지로만 탐험하는 이분들이 이제는 책까지 나오고 방송에도 나오시고 이렇게 bookholic 님 리뷰까지 올리셨으니 역마살 로드가 마침내 성공하신 것 같아 제가 다 기쁩니다. ㅎㅎ

bookholic 2026-11-01 00:21   좋아요 1 | URL
일찍 알아보셨군요..^^ 저도 뒤늦게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최근 역마살로드 채널 구독자수가 늘어나니 저도 기쁘더군요~~~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책을 읽긴 했는데, 그 책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지 어려운 책들이 있단다. 오늘 이야기할 책도 그런 책 중에 하나야. 크리스티앙 보뱅이라는 사람이 쓴 에세이 <작은 파티 드레스>라는 얇디 얇은 책이란다. 서문을 빼면 아홉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 얇은 책이지만, 글쓴이의 깊은 사유와 지식을 아빠가 공감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 같구나. 지은이 크리스티앙 보뱅은 프랑스의 대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라고 하는데,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고 그의 책도 이번이 처음이란다. 이 책의 서문을 읽다 보면 책읽기에 관한 책인가 싶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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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어느 페이지의 낱말을 알아보고 큰소리로 읽는다. 그 순간 신(神)의 일부가 사라져가고 낙원에 첫 균열이 간다. 그렇게 또 다른 낱말이 이어진다. 온전했던 우주는 이제 이어지는 문장들에 불과하고 백지 속 유실된 땅들에 지나지 않게 된다. 아이는 학교에 가고, 학생의 신분이 된다. 그런데 이 유실에는 실제로 엄청난 행복이 존재한다. 글을 읽는 첫 경험. 책의 한 페이지를 해독하고 어렴풋한 형체들을 감지할 수 있게 된 첫 경험. 그것은 행복을 넘어서는, 정확히 말해 기쁨이라고 할 만한 무엇이다. 기쁨과 공포라 할 만한 무엇. 기쁨을 어김없이 공포를 수반하고 책들은 언제나 애도를 수반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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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이 전체적으로 지은이의 깊은 영혼 속의 글들을 적어서 공감이 가지 않다가 가끔씩 공감 가는 내용들이 있는데 오늘 독서편지는 그런 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해야겠구나.

…

실연 당하고 자살하려다 실패한 한 여자가 릴케를 읽고 다시 영혼을 되찾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빠는 릴케의 책을 읽은 적이 없어서 이 부분은 크게 공감이 가지 않더구나.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들이 참 많구나. 이 에세이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좋은 작품은 자살도 막을 수 있다는 것 같은데, 지은이는 실패한 자살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이야기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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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그렇다. 눈이다. 당신의 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 두 눈은 이제 우는 일 말고는 쓸모가 없다. 울지 않을 때는 책을 읽는다. 어느 날 당신은 릴케의 한 페이지를 읽는다. 다른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그러다 잉크의 새장을 여는 순간 영혼의 새들이 우르르 당신에게 돌아온다. 실패한 자살이 모두 그렇듯 당신의 자살도 성공을 거둔 것이다. 당신이 잃은 건 생명보다 더한 것이었다. 말, 투명한 말의 맛, 참된 말에 대한 사랑, 그 모두를 잃은 것이다. 말 앞에서 당신은 먹을 것을 앞에 둔 아픈 아이 같았었다. 그런데 릴케가 당신에게 먹을 것을 다시 준다. 한 편의 시, 이어지는 또 한 편의 시, 한 편의 이미지, 또 한 편의 이미지. 헐벗은 말과 함께 온전한 사실이 돌아온다. 진실과 함께 온전한 영혼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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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쉽게 피로를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지은이가 이야기하기를 피로에 절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쉴 새 없이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구나. 아빠의 이야기 같아서 찔리더구나. 오늘도 야근으로 늦게 퇴근하고 나서도 듀오링고를 하고 유튜브도 보고, 밀린 독서편지를 쓰고 독서편지를 쓰고 나면 졸린 눈을 비비며 밀린 책읽기를 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피로가 가시기 쉽지 않은 생활패턴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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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9)

피로에 절은 사람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그들은 무언가를 쉴 새 없이 하는 사람들이다. 휴식과 침묵. 사랑이 내면으로 파고들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피로에 절은 사람들은 장사를 하고, 집을 짓고, 경력을 쌓는다. 피로를 피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하지만 그러면서 오히려 피로에 빠진다. 그들의 시간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일을 더 많이 할수록 점점 더 적게 하는 꼴이 된다. 그들의 삶에는 삶이 부족하다. 자신과 자신 사이에 유리벽이 존재한다. 그들은 멈추기 않고 유리벽을 따라 걷는다. 피로는 그들의 용모와 손과 말에서 드러나 보인다. 그들에게 피로는 일종의 향수이며 불가능한 욕망과도 같다. 그들은 페르스발처럼, 어머니를 떠난 이 젊은 남자처럼, 들판과 강을, 강과 숲을, 산과 들판을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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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틈틈이 책을 읽으려는 것이 책읽기에 대한 즐거움도 있지만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얻는 만족감도 있는 것 같구나. 지은이는 사랑하듯 책을 읽는다고 하는데, 그것도 좀 공감이 되더구나. 특히 첫인상과 달리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의 경우는 더욱 그런 것 같았어. 만나면 만날수록 좋아지는 사람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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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109)

우리는 사랑을 하듯 책을 읽는다. 사랑에 빠지듯 책 속으로 들어간다. 희망을 품고, 조바심을 낸다. 단 하나의 몸 안에서 수면을 찾고, 단 하나의 문장 속에서 침묵에 가닿겠다는, 그런 욕구의 부추김을 받으며, 그런 욕구의 물리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다. 조바심을 내며, 희망을 품는다. 그러다 때로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처럼, 일체의 조바심을 몰아내고 일체의 희망에 딴죽을 거는 무언가다. 그것은 위로하며 하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유혹하지 않고 황홀감을 준다. 자체 안에 자신의 종말과 죽음의 슬픔, 어둠을 품고 있는 무언가다.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것에 귀 기울이는 자는 이제 자신이 피신할 데도, 의지할 데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서 해방되어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목소리가 어두워질수록 우린 더 분명히 보게 된다. 목소리가 격해질수록 숨쉬기가 한결 쉬어진다. 우린 일체의 문학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온전히 성스러움에 바싹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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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책은 아빠 취향이 아니라서 사랑하지 않을 것 같구나. 아빠가 이 책을 읽다가 당황한 부분들이 몇몇 있는데, 아래와 같은 부분들이야. 어떻게 한 번을 더 읽고, 발췌까지 해보았지만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겠더구나. 책읽기의 세계는 넓고도 너무 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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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5)

당신은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제 이 두 사람에 대해서도 라신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 당신은 제3의 문제에 골몰한다. 부부란 대체 뭘까. 열정은 뭐고 사랑은 뭘까. 당신은 머릿속으로 게임을 벌이며 하나의 규정을 마련한다. 집에 다다르기 전, 그러니까 5분 안에 해답을 찾아낼 것. 결국 게임 종료 직전에 당신은 답을 발견한다. 부부란 김빠진 삶의 장이고, 열정은 분열된 삶의 장이다. 그런데 사랑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집 문 앞에 선 채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참담한 발견에, 이 모든 한심한 정의에 경의를 표한다. 당신은 17세기와 20세기를 싸잡아 비웃고, 사랑과 세상을 함께 품을 수 없는 이 영원한 무능을 비웃는다. 망가지기 쉬운 천사들과 튼튼한 개들을 두고 너무 한탄하지 않으려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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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티앙 보뱅의 다른 책들은 좀 읽어볼 만한 것이 있나 검색을 해보니 낯익은 책이 한 권 있더구나. <흰옷을 입은 여인> 평점이 좋아서 아빠가 예전에 구입해서 아직 읽지 않은 책이란다. 나중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읽어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처음부터 우리가 책을 읽는 건 아니다.

책의 끝 문장: 침묵의 희고 작은 드레스.



그런데 때론 어떤 사람들에게, 더 적은 수의,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름 아닌 독자들이다. 가던 길을 남들이 포기하는 여덟 살 혹은 아홉 살 무렵에 이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독서의 길로 뛰어드는 그들은 언제까지나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그 길이 끝이 없음을 알고 기뻐한다. 기쁨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그들은 출발점에, 첫경험에 집착한다.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경험이다. 그들은 언제나 그 지점에 머무르며 삶이 다해가는 순간까지 책을 읽는다. 고독을 발견했던, 그러니까 언어들의 고도고가 영혼들의 고독을 발견했던 첫 경험의 언저리에 머문다. 그들은 황홀감에 취해 세상에서 물러나 이 고독을 향해 간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고독의 골은 깊어진다. 더 많이 많을수록 아는 건 점점 더 적어진다. 이 사람들이 작가와 서점, 출판사, 인쇄소를 먹여 살린다. - P14

위대한 책은 그 책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시작된다. 어떤 책이 위대하다는 건, 그 책에서 점차 드러나 보이는 절망의 위대함을 의미한다. 책 위에 무겁게 드리워져 책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한참을 가로막는 그 모든 어둠을 의미한다. 책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 책이 있기 전, 글이 써지기도 전에 모든 것이 시작된다. 즉 아버지의 떠도는 그림자가 있고, 번잡한 날들 속에서 첫 시구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라신과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담갈색 밤이 있다. 사방에서 꿈은 짓밟히고, 자신과 지나치게 밀착되어 글쓰기는 불가능해진다. 불만에 찬 왕,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갈가리 찢긴 유년기에 너무 밀착된 상태로는 글쓰기가 불가능하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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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홍한별 지음 / 위고 / 202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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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홍한별 님의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라는 에세이란다. 이 책은 여러 평론가들과 리뷰어들이 추천하여 관심을 갖게 된 책이란다. 지은이 홍한별 님은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전문 번역가셔. 그래서 아빠가 읽은 책 중에 홍한별 님이 번역한 책이 있는지 봤더니,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이라는 책을 비롯하려 세 권을 읽었더구나.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라는 책은 지은이가 번역가로서 경험한 것과 생각한 것을 적은 글들이었어. 책 제목은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서 따온 제목이란다. <모비 딕>에서 이슈메일이 흰 고래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분량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흰 색은 결국 다른 색을 칠하고 난 빈 여백이라고 했어. 지은이는 번역과 흰 고래와 비슷하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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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번역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흰 고래 같은 텍스트를 만났을 것이다. 잡히지 않는 공허. 포착할 수 없는 의미. 이쪽을 붙들면 저쪽을 놓치고, 저쪽을 잡으면 이쪽이 사라지는 단어를, 의미를 고정하는 순간 무수한 틈이 생겨버리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붓질을 더할수록 더럽혀지기만 하는 순백을?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번역은 얼마나 투명해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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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번역을 처음 시작한 아주 오래 전부터 번역은 논란이 되는 경우들이 많았대. 성경 같이 중요한 책을 번역을 할 때는 단어 선택이 중요하다고 하는구나. 성경의 잘못된 번역의 대표적인 것이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라고 하는구나. 원문에는 무화과로 되어 있는데 사과로 번역을 해서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를 다들 사과로 알고 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성경을 최초로 영어로 번역한 위클리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죽은 후 30년이 지난 후 묘지에서 그의 시신을 꺼내어 화형을 시켰다고 하는구나. 감히 성경을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게 번역을 하다니, 그것은 교회의 권위를 도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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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이에 반발하여 속어 번역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다. 성경 번역은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므로 그 자체로 엄청나게 위험했다. 중세 말기에 존 위클리프(c.1328~1384)는 라틴어 불가타를 영어로 번역해 일반인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했다. 위클리프의 사상과 번역은 두 세기 뒤에 일어난 16세기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번역은 근세를 추동하는 동인이 되었다. 성경 번역이 종교개혁을, 그리스 로마 고전 번역이 르네상스를 일으킨 요인 중 하나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성격 번역은 종교개혁 시기에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고 권력 투쟁의 핵이었다. 성경이 번역되자 성직자를 거치지 않고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번역 성경은 민족 언어와 문화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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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읽으면서 자연스럽고 어색하지 않게 읽히는 번역본을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했어. 원문을 직역해서 읽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나쁜 번역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직역과 의역 논란이 있다는구나. 의역은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번역하는 것으로 번역자들의 개입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오히려 번역자의 개입이 많다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우가 있대. 번역가들 중에 일부러 직역에 가깝게 하는 사람이 있대. 그렇게 해야 원문에 최대한 가깝다는 거야. 물론 그로 인해 번역투 문장에 읽기 어색한 문장들로 뭇매를 맞는 경우가 있단다. 한 때는 독자들을 위해 의역을 많이 했는데 최근에는 좀더 직역에 가깝게 번역하는 경향이 있다는구나. 이렇듯 의역과 직역의 장단점이 있다 보니 의역을 하면 의역이 심하다고 비난 받고, 직역을 하면 번역투라고 비난 받는다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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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10여 년 전에는 직역이냐 의역이냐를 놓고 두 번역가가 ‘번역 배틀’이라는 형식으로 맞붙은 신나는 일이 있었다(번역이라는 단어 다음에 이렇게 흥미진진한 단어가 붙은 적이 유사 이래 또 있었던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자기 마음대로 원문에 담긴 정보를 삭제하고 번역해서는 안 된다”(이덕하)는 주장과 “쉽게 읽히는 노씨의 번역에 대해서는 ‘주요 정보가 완곡한 표현으로 번역되어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술술 읽히는 것이 다가 아니다’ 등의 비판이, 우리말로 부드럽게 옮겨지지 않은 이씨의 번역에는 ‘정보만 있을 뿐 정서가 없다’, ‘읽기 불편하다’ 등의 비판이 나왔다.” 직역이냐 의역이냐의 해묵은 논쟁을 종식할 줄 알았는데, 싱겁게도 무승부로 얼버무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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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역과 직역 논란을 읽으면서, 부커상을 수상했던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번역 논란이 있다는 생각이 났단다. 이 책에서도 당시 일었던 번역 논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었어. 의역이 아닌 오역에 가깝다는 논란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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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2016년 데버라 스미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The Vegetarian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뒤에 번역 논쟁이 뜨겁게 벌어졌다. 최근에 구체적인 사례를 두고 이만큼 열띤 논쟁이 벌어진 일은 없었을 듯하다. 처음 수상 소식이 들려왔을 때 (한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던) 한국인들은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쾌거라며 들떠서 축하하고 칭찬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인터넷에 The Vegetarian의 오역 의심 사례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번역 작품을 원본과 비교해본 국내 번역가들은 다들 나처럼 아연했을 듯싶다. 데버라 스미스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유로운 번역을 했던 것이다. 만약 국내 번역가가 외국의 유명한 작품을 그렇게 번역했다면 곧 오역 논쟁에 휩싸였을 것이고 영원히 출판계에 발을 붙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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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 논란은 외국의 번역관과 국내의 번역관 차이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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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48)

서양의 번역 관행과 우리나라의 번역 관행이 크게 다르고 기준점도 다르니 충실성의 개념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 한국어로 쓰인 책을 번역 출간할 때는 출판사 편집부에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한국처럼 편집자가 원본과 번역본을 한 문장 한 문장 대조하고 비교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 반면 우리나라의 번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원문 충실성을 훨씬 중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번역 논쟁은 거의 언제나 원문을 기준으로 놓고 벌어지는 오역 논쟁이었고, 원문의 의미를 잘못 이해했거나 곡해한 번역이 어떤 이유로든 옹호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서양 번역 전통은 (여성 혐오적 표현이지만 한 번만 더 쓰자면) 충실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미녀(Les Bells infideles)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고 스미스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여전히 그 기조가 이어진다. 스미스의 번역이 부정한(infidele) 것은 분명하지만 본인이 충실할 생각이 없다는 번역관을 밝혔는데 윤리적 의무를 저버렸다느니 배신을 했다느니 비난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스미스의 번역에 대해서는 미녀(belle)인지 아닌지만 따지면 된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수행하는 번역 비평은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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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미권에서 번역자의 이름을 책표지에 적지 않는 경우가 많대. 번역자의 이름을 적은 경우가 3%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는구나. 왜 그럴까?

…

번역을 하다 보면 우리말에 없는 말들이 있는데, 그런 말들을 번역을 하다 보면 우리말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는구나. 없던 말들이 새로 생겨날 수도 있다는 거야. 그 중에 대표적인 말이 ‘그녀’란다. 아빠는 예전에 당연히 오래 전부터 ‘그녀’라는 말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오덕 님의 책을 읽고 우리말의 3인칭은 ‘그’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녀는 ‘she’를 번역하려고 생긴 말로 그 이후에 우리말에도 자연스럽게 쓰이게 된 것이래. 우리나라의 말에는 남녀 차별이 없었던 것이지. 아빠도 이오덕 님의 책을 읽은 이후에는 ‘그녀’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한단다. ‘그’라는 3인칭대명사도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하고 고유명사(이름)을 주로 쓰려고 노력한단다. 서양에서도 요즘에는 남자와 여자를 구별해서 부르는 3인칭 대명사 he/she를 구분해서 쓰지 않고 they를 3인칭 복수 겸 단수 대명사로 쓰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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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이런 부침을 겪은 ‘그녀’는 여전히 쓰이기는 하되, 굉장히 불균형하게 쓰인다. 언어학자 안소진은 신문, 잡지, 문학, 비문학, 구어 등으로 분류된 말뭉치에서 ‘그녀’의 출현 빈도를 조사해서, 텍스트의 종류에 따라 ‘그녀’가 나타나는 빈도가 크게 달라짐을 보였다. 문학 말뭉치와 순(純)구어 전사 자료에서 무려 298배의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전체 ‘그녀’ 출현 건수 중에서 83퍼센트가 문학 말뭉치에서 나타났다. 반면 순구어에서는 사실상 ‘그녀’를 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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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75)

우리는 ‘그/그녀’를 유럽어에서 받아들여 쓰게 되었는데, 이제는 서양에서도 남녀를 구분하는 대명사를 불편하게 여긴다. 자신이 이분법적 성별 체계에 속하지 않는 논바이너리(non-binary)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명서 ‘he/she’ 대신 ‘they’를 삼인칭 복수 겸 단수 대명사로 쓰는 경향이 눈에 뜨인다. 경칭으로도 ‘Ms’나 ‘Mr’ 대신 ‘Mx’를 붙이기도 한다.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친구에게 들었는데, 이렇게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한 학생을 임의로 ‘he/she’로 지칭하면 차별이 될 수 있어서 늘 신경 쓰고 조심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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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밖에 여러 가지 번역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외국어에 능숙하지 못한 아빠 같은 사람들에게 번역가들은 참 고마운 사람들이란다. 그들이 없었다면 그 많은 좋은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했으니 말이야.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최근에는 직역이 경향이라고 하지만 아빠는 적당히 번역가의 창작이 들어간 의역이 나은 것 같구나. 아빠는 읽기 편해야 책에 더 집중할 수 있거든. 물론 원문의 의도를 벗어나면 안되겠지. 그건 의역이 아니고 오역이 될 테니 말이야. 지은이 홍한별님의 번역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도 읽기 번하게 잘 쓰시는 것 같더구나. 같은 외국 작품의 번역본이 여러 권이 있고, 그 중에 홍한별 님의 번역한 책이 있다면 그 책을 골라야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고등학교에 다닐 때 미술 선생님이 하얀 석고상을 그리라고 시킨 일이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나도, 번역에 관한 글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속 번역을 할 것이란 생각을 한다.

 



자, 나보코프는 잡힐 듯 말 듯한 흰 고래를 분석하고, 주석을 달고, 해설해서, 결국 잡았나? 탑이 높아질수록, 가능한 한 많은 의미를 더할수록, 흰 고래는 점점 시커메지고, 번역이 실패했다는 증거는 쌓여간다. 주석의 탑은 번역 불가능성의 웅대한 증거다. 번역은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 번역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만다는 조바심이 탑을 이룬다. 이 탑은 무한의 영역으로 뻗는다. 번역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번역은 무한하다. - P33

번역가들은 왜 배신자일까? 신이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살지 못하게 언어를 흩어놓았는데도 갈라진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해서, 니므롯처럼 신의 뜻에 반한 배신자가 되었나? 서로 다른 언어 사이를 오갈 때는 손실이 불가피하므로 원저자든 독자든 누군가를 배신하게 없었느냐는 것이다. - P45

나도 번역이라는 일이 탐정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탐정소설 속 탐정의 목표는 범죄가 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저질러졌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이다. 탐정이 모든 정황과 맥락을 고려해 가장 그럴듯한 한 가지 서사를 완성하듯이, 번역가도 단어들의 단서를 모아 매끈한 하나의 문장, 빈틈없는 하나의 줄거리를 만든다. 번역가는 흩어진 의미의 조각들을 이렇게 맞추어보고 저렇게 맞추어 보며 도무지 옮겨지지 않는 것을 옮기려고 애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스르륵 퍼즐이 풀린다. 비어 있는 한 자리에 딱 맞는 단서/단어를 끼워 맞추자 이야기가 완결된다. 이렇게 문장을 완성할 때의 희열. 결국 번역을 하는 이유는 번역이 이런 일이기 때문이다. 드물게 찾아오는 완성의 감각. - P65

단테가 <신곡>을 씀으로써 이탈리아어를 발명했다는 말이 있다. 중세에는 문어와 구어가 분리되어 있어서, 고등교육, 과학, 철학, 신학 등의 학문과 공공 기록 등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라틴어가 쓰였다. 당시에 진지한 주제로 책을 쓸 때는 라틴어로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나, 단테는 라틴어가 아닌 속어로 <신곡>을 씀으로써 이탈리아 문화와 언어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으로부터 이탈리아어의 표준이 생겼고 이탈리아어 문학이 시작되었으며 이탈리아 민족문화와 국가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었다. - P90

나는 잘 읽히는 번역문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어 독자가 자연스러운 논리로 글을 읽게 하려고 이쩌면 나에게 허럭된 것보다 더 많이 개입할 때가 있다. 마치 편집자가 된 것처럼 원문에 가위를 댈 때도 있다(있는 것을 잘라내거나 없는 것을 집어넣는다는 말은 아니다. 문장을 합하거나 나누거나 문장구조를 뒤틀거나 긍정과 부정을 뒤집을 때가 있다). 그런데 번역 원고를 다듬고 고치다가 피츠제럴드처럼 진부함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해진다. - P134

또 영어와 한국어는 너무나 다른 언어라서 좀 더 많이 개입할 필요가 있다(이 점에 있어서는 "영어와 한국어는 너무 거리가 멀다"고 한 데버라 스미스와 내 생각이 일치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를 ‘많이’ 개입한 것으로 보느냐의 기준은 크게 달라서 같은 말을 해도 무척 다른 이야기이긴 하다.) 영어에서 한국어로 올 때는 문장을 완전히 뒤집거나 구문을 재배치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러지 않고 영어의 특유 표현(수동태, 물주(物主) 구문, 완료, 진행, 사역 등)을 그대로 옮기면 어색한 번역 투가 되고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가기 십상이다. 영어와 한국어는 언어의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서 좀 더 적극적으로 번역해야 한다. - P158

번역가가 하는 일은 원본을 훼손하거나 손상하는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살아 있도록 생명을 주고 되살리는 일이다. 번역가는 "상상력과 독창성과 자유로움을 요하는 연금술 같은 정교한 공정을 통해 텍스트의 의미를 복원"한다. 에코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나르키소스가 하는 말을 따라 할 뿐이지만,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나르키소스가 하는 말을 따라 할 뿐이지만,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나르키소스가 점점 말라가다 소멸한 뒤에도 계속 나르키소스의 목소리를 따라 하고 다양하게 반향하며 울려 퍼지게 한다. 나르키소스는 침묵할지라도, 그 침묵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에코의 목소리를-빈 산에 울리는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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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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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책제목이 눈에 띠어 알게 된 책이란다. 좀 과격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지은이는 이랑이라는 분인데 아빠는 처음 보는 사람이야. 지은이 소개를 읽어보니, 이랑이라는 분은 가수이기도 하고, 영화연출을 전공하여 뮤직비디오, 단편영화, 웹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했다는구나.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사람인가 보구나. 아빠도 너희들과 최신 가요를 가끔 듣는데, 이랑이라는 분은 기억에 없구나. 음악 장르가 포크라서 우리가 듣는 음악과 좀 거리가 있던 것 같구나.

아무튼, 이 책의 독특하고 과격한 제목으로 눈에 띠어 책 소개와 책 리뷰를 읽어보았는데, 아빠와 좀 다른 영역에서 생활하고 다른 사고 방식으로 생활하시는 분이라 흥미가 더 가서 읽게 되었단다. 특히 이 책을 읽고 쓴 리뷰 중에 이 책이 상당히 솔직하게 쓴 책이고 그것이 큰 장점이라는 식의 평이 있었어. 사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속마음을 좀 숨기거나 각색해서 쓰는 것이 사람 마음인데, 글을 그렇게 솔직하게 썼다면 진실된 에세이를 읽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참고로 지은이 이랑은 가명처럼 보이지만 본명이라고 하는구나.

 

1.

자, 그러면 책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지은이 이랑은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이긴 하지만 이전에도 책도 여러 권 쓰신 작가이기도 해. 2019년에도 자신의 가족에 대한 에세이를 준비하다가 범위를 줄여서 자신과 엄마와 언니의 기록을 쓰려고 했대. 그런데 2021년 겨울 갑자기 언니가 자살을 했다는구나. 매일 함께 살던 가족의 자살은 정말 아픈 기억과 상처로 마음 속에 남을 것 같구나. 지은이도 언니의 자살 이후의 글들은 고통과 아픔 속에서 글을 써야 했다. 그 고통과 아픔 때문에 글도 천천히 쓸 수밖에 없었다는구나. 이런 고통과 아픔의 내용이다 보니 책을 출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하다가 출간하자는 의견이 있어서 책으로 출간했다는구나. 책도 우리나라보다 일본과 대만에서 먼저 번역출간 되었고, 그 이후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다고 하는구나. 좀 독특한 출간 이력을 가지고 있구나.

….

먼저 자신의 가족을 소개했어. 지은이의 가족은 지은이와 부모님과 언니와 남동생 이렇게 다섯 명이었어. 자신의 집안은 대대로 가족 폭력이 비일비재했던 집안이라서, 자신과 언니와 남동생은 그런 폭력적인 가족의 대를 끊자면서 비혼 선언을 했다는구나. 부잣집 딸인 엄마가 오빠의 친구의 아버지와 결혼을 했는데 결혼하게 된 사연은 이렇대. 엄마가 젊은 시절에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집에서는 엄마를 미친 년으로 취급을 했대. 오빠가 자신의 친구에게 그런 엄마를 구제해 달라고 부탁을 했고, 엄마는 그런 내막도 모르고 지금의 아버지와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이라고 했어.

결혼 후에도 엄마의 우울증 증세는 가끔씩 있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혼자 산에 올라가서 소리 지르고 오기도 하셨대. 그런데 그렇게 혼자 산에 갔다가 강간 당할 뻔한 일이 있었어. 그 일이 있고 나서 산에 가지 못하는 엄마는 집의 옷장에서 소리를 지르곤 했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하셨어. 지은이의 엄마가 그렇게 우울증이 있었던 것은 가족 환경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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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에 물든 대가족 집안에서 태어난 우리 엄마 김경형의 ‘미친년 인생’은 엄마 탓이 아니다. 엄마 탓은 아니지만 엄마가 미친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잔혹한 굴레 속에서 나 또한 미친년으로 자라났다. 그나마 나는 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있는 미친년이라 다행이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엄마의 미친년 역사도 무척 소중하기에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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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폭력적이라고 했다는구나. 지은이 이랑도 우울증을 보이는 엄마와 폭력적인 아버지의 가정환경이라서 그런지 고등학교는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봤다고 했어. 언니 이슬은 그래도 모범적인 생활을 해서 특수 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었어. 그리고 취미로 친구들과 댄스팀 ‘드웨즈퀸즈’를 만들어 활동도 했어.

….

이 책이 엄마와 딸들의 이야기이니까 엄마와 자신의 이야기 말고 언니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어. 언니는 일명 ‘장녀병’에 걸린 사람이었어. 외할머니가 계셨는데, 외할머니는 100억 재산을 상속 받을 수 있었는데, 이 재산을 죽은 아들의 아내, 그러니까 며느리와 손자에게 모두 빼앗기고 말았대. 외할머니가 편찮으실 때 간병하는 것은 엄마와 장녀인 이슬이었고 병원비도 언니가 꼬박꼬박 냈다고 했어. 하지만 이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 언니는 100억 상속을 받은 외숙모의 자식들, 그러니까 사촌들에게 같이 지불하자는 메일을 보내려고 했어.. 하지만 소심한 언니는 이 메일을 써 놓기만 하고 몇 번을 다듬고 수정하였는데, 결국 보내지 못했단다. 지은이는 언니의 자살의 원인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힘을 소진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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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언니는 가족이 싫다고 10대 때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내가, 부럽고 미웠을까.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없던 언니에게 나는 수차례 ‘그만두라’고 말을 했다. 언니는 그때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허약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은 뭐라고 부를까. 소진사(消盡死)? 가끔 그렇게 가진 힘을 다 소진하고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평생 남을 위해 살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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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지은이 주변에는 삶을 일찍 고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어. 2016년에는 친구 M이 성형수술 후유증으로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고, 2017년에는 친구 D가 간암 말기를 선고를 받고 2020년에 삶을 마감하였고, 2021년 12월에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언니가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단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잇단 죽음으로 지은이도 힘들고 때론 자신도 죽음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구나.

…

지은이에게도 죽음의 그림자도 드리웠단다. 2021년 자궁경부암을 선고 받고 치료를 받았다고 했단다. 그리고 2023년에는 갑자기 두 눈이 잘 보이지 않았대. 혹시 뇌종양은 아닐까 걱정해서 병원에 갔는데 원추각막이라는 병인데, 이 원추각막이라는 병도 희귀 질환으로, 완치는 어렵고, 진행을 늦출 수만 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눈 수술을 세 번이다 했대. 그리고 공황 장애로 자신도 모르게 쓰러지기도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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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땅에 발을 붙이고, 정신과 몸을 붙여내고야 만다. 반면에 나는 너무 오랫동안 머리만으로 산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몸을 놓고 살았다. 감정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는 방법이 대체 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겪는 공황은 머리의 파업일지도 모르겠다. 정신적으로 한계를 느끼니 몸 전체를 셧다운시켜서 몸도 머리도 멈추게 해버리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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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던 지은이에게 큰 힘이 되었던 반려묘 준이치가 있었어. 그런데 그 준이치도 2025년 2월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구나. 지은이 주변에 죽음이 있어서 혹시 지은이가 힘들거나 아플 때 자살을 생각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지은이는 죽음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때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책을 마무리했단다. 그래, 지은이의 다재다능한 재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아빠보다 젊은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이상하기도 하지만,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더 좋은 글과 좋은 음악들을 들려주면 좋겠구나.

유튜브에서 이랑의 음악을 찾아봐서 들었는데, 아빠 스타일의 음악은 아니지만 개성 넘치는 음악이더구나. 지은이 이랑 님이 좋아하는 인간상에 대해서 이야기해준 부분이 있는데, 그 인간상이 아빠 마음에도 들더구나.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은 해보고 싶구나. 이 나이에 그 동안의 성격과 성품이 바뀌기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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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206)

나는 자신의 약함을 아는 인간을 좋아한다. 약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하는 인간이 좋다. 살아나가는 두려움을 아는 인간이 좋다. 살아갈 방법을 무언가에 의탁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려는 인간이 좋다. 자신의 방법을 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 좋다. 더 탁월한 방법으로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 좋다. 겪기 않은 이야기로 끝없이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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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글의 분위기라든가, 자신의 허물과 개인사에 대해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명랑한 은둔자>와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의 지은이 캐럴라인 냅이 떠오르더구나. 아빠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시간이 날 때 두 분의 책을 한번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을 듯.. 지은이 이랑의 삶에 응원을 보내며 오늘 독서 편지를 마치련다. 이랑 님의 다른 책들도 한번 찾아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사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책의 끝 문장: 잘 자.

 



내 감정들에 이미 정해진 간단한 이름들이 있다는 것을 진작 배웠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까. 이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이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나는 ‘나만의 이름 짓기’를 했기 때문에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이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걸 몰라서, 모든 것에 새로운 이름을 짓고 싶어하는 지금의 내가 된 걸까.
이미 만들어져 있는 말을 이리저리 조합해, 원래 있던 것과 새로 나타난 모든 것에 이름을 짓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 P22

온 가족 구성원이 화가 많고 예민한 우리집에선 언제나 고성방가가 끊이질 않았다. 동시에 예술적 기질도 많아서 엄마 아빠는 시를 쓰고 노래를 하고, 동생은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하고, 언니는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그리고는 또 박 터지게 싸우다 한 번씩, 한 명씩 부엌에서 칼을 쥐고 나와 휘둘렀다. 어떻게 보면 스펙터클, 어떻게 보면 지옥 같은 광경이 자주 펼쳐졌다. 장례식상에서마저 댄스 공연을 하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욕하고 소리지르며 싸운 것까지도 전부 괴롭고 웃긴 우리 가족의 풍경이었다. 귀신이 된 언니가 그 모습을 봤다면 다들 미쳤다며 껄껄 웃을 것 같았다. - P80

언니는 가족이 싫다고 10대 때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내가, 부럽고 미웠을까.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없던 언니에게 나는 수차례 ‘그만두라’고 말을 했다. 언니는 그때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허약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은 뭐라고 부를까. 소진사(消盡死)? 가끔 그렇게 가진 힘을 다 소진하고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평생 남을 위해 살던 사람들. - P110

깊은 사랑과 냉철한 이성과 오래된 우울감이 함께 존재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언니에게 말하고 싶다.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을 모른다고 서로 말하던 우리 두 자매였는데, 언니가 떠난 뒤에 나는 강렬하게 원하는 것이 생겼음을. 그래서 무척 아프고 괴롭지만 굉장한 것을 배우고 있음을 언니에게 꼭 말하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으로 어쩐지 언니에게 전해질 거라고 느낀다. - P149

(204-205)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정신과 몸은 사실 하나였다. 영혼, 정신, 마음이라고 불리는 그것들 모두가 결국 ‘몸’ 자체였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찰나의 순간으로 결정되는 부재를 감당할 수 없어서 온몸으로 영혼의 실재를 기도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존재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닿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들의 부재와 나의 외로움을 달래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그들의 몸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내 몸을 가지고 그들의 기억과 함께 살고 있다. 내가 살아 있고, 기억하는 동안 내 세계에 그들은 함께 있다. (다만 영혼이나 유령으로서가 아니라 기억으로서.)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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