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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과 독화살 - 역마살로드, 사라져가는 세계의 마지막 기록
장준호 지음 / 시월 / 2026년 7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알라딘 인터넷 서점
신간 코너에서 독특한 책 표지와 그에 맞는 독특한 책제목 <휴대폰과 독화살>이 눈에 띄었단다. 책 소개를 보니 범상치 않은 책이었단다. 일단 지은이 소개를 보니 아빠와는 대척점에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보는 <세계테마기행>, <한국기행> 의 PD를 24년
동안 한 장준호라는 분인데, 안정적인 직업을 박차고 나가 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신 분이란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서 다른 일은 아니고 지난 24년 동안
했던 일이 연장선인데 공영 방송이라서 제한된 영상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답답함을 풀어내기 위해서라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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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래서
힘들었다. 일이 고단해서가 아니라, 내가 진짜 보고 싶은
것과 실제로 보여줄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 때문이었다. 결국 방송국을 나왔다.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더는 내 성격을 속이기 어려웠다. 나는 원래 한곳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직접 움직이며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 가깝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보고 싶은 장면을 끝까지 따라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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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3)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다. 상을 받아도, 시청률이 잘 나와도
정작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그렇게
점점 내 이름을 걸고, 내 시선으로 세상을 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한편으로는 무능하고 둔한 시스템 안에 갇혀 있는 것보다 차라리 나 혼자 하는 편이 낫겠다는 오만한 자신감도 있었다. 근거 있는 확신이었고 동시에 무모한 객기였다. 하지만 때로는 그
정도 객기가 있어야 인생의 방향을 틀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안전한 울타리를 부수고 다시 길 위로 나섰다. 남의 이름 아래 잘 만든 결과물을 납품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실패하고 내 이름으로 살아남는 기록자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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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정적인 방송국을 그만두고
‘역마살 로드’라는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정말 대단한 용기가 아닌가 싶구나. 아빠는 월급의 중독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는데 말이야. 아빠는 이 ‘역마살 로드’ 채널을 몰랐어. 이 책을 보고서야 찾아보았어. 24년 동안 PD 경험과 그의 파트너이자 전문 촬영감독 서감독이
함께 해서인지 영상 품질이 정말 너무 좋더구나. 유튜브에서만 보기에는 아까울 정도의 영상미였어. 아빠는 책을 다보고 나서 ‘역마살 로드’를 정주행하고 있단다.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휴대폰과 역마살>은 ‘역마살
로드’ 채널을 운영하면서 카메라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고 하는구나. 책도 알차게 잘 구성되어 있지만, 아빠에게 이 책의 가장 큰 성과는
‘역마살 로드’라는 채널을 알게 된 것이라고 하겠구나.
범상치 않은 지은이 장준호 님은
젊은 시절 기타리스트로 밴드 활동을 하는 ‘미대 오빠’였더구나. 상금을 받으면 악기와 앰프를 사려고 KBS 단편영화제에 공모했다가
수상을 하고 나서 방송국 PD로 일하게 되었고 그 이후 24년을
일했다고 하더구나. 앞서 이야기했듯 방송국을 그만두고 지금은 ‘역마살
로드’를 운영 중인데 촬영감독인 서감독, 10개국어를 하는
통역 담당 존. 이렇게 셋이 함께 영상을 만들어간단다. 유튜브
영상을 보면 세 분의 케미가 정말 좋더구나. 눈을 호강하게 하는 영상미뿐만 아니라 다들 유머 감각이
있어서 미소도 자주 짓게 해준다. 그야말로 힐링이 저절로 되더구나.
…
1.
이 책에서 소개하는 첫 번째
장소는 아마존 오지란다. 2000년대 크게 인기를 끌었던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 15년 후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서 가기로 했대. 오랜 시간에 걸려 에콰도르 아마존에 도착해서 바메노 공동체 마을에 가서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했단다. 그런데 그들을 처음 맞이한 부족장이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휴대폰을 하는 것을 보고
약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정글과 함께 하는 삶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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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원시의 아이들을 상상하며 33시간의 비행과 이틀간의 이동을 버텨온 우리에게, 정글 한복판의 미니마우스는 청바지를 입은 원주민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시간이 멈춘 박물관이 아니었다. 디즈니 캐릭터가 카누를 타고 들어오는
현대의 아마존이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뒤로 문명의 파도가 얼마나 깊고 빠르게 이 정글의 심장부까지
들이쳤는지 비로소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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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최대의 적은 석유회사라고
했어. 자기들 멋대로 아마존을 훼손시켜 활주로를 만들고 시추 작업을 했어. 예전에 그들에게 항의하러 갔다가 총으로 공격 당해 그 이후로는 피해 지낸다고 하더구나. 지은이가 원주민과 함께 자고, 함께 먹고, 함께 일과를 보내는데 그들이 너무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서 아빠가 더 걱정되더구나. 이름도 모르는 벌레들에게 물리고 정체도 모르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아마존
부족들은 자본주의 악령에 의해 점점 영역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구나. 그러면서 생활터전도 정글의 깊숙한
곳으로 더 이전되고 있었어. 과연 그들의 공동체 생활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
두 번째 오지는 탄자니아 하드자
부족들의 이야기란다. 하드자 부족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수렵채집 부족이라고 하더구나. 원래 그들은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있는 곳에서 생활을 했대. 하지만
탄자니아 정부는 그곳을 관광지로 만들면서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들을 내쫓아서 지금은 척박한 곳에서 힘들게 사냥을 하면서 지낸다고 하는구나. 그날 먹을 것만 사냥하고, 만약 아무 것도 잡지 못한 날은 뿌리
식물로 연명하고 있대. 그런데 탄자니아 정부는 그들의 사냥 활동을 오히려 동물학대와 환경파괴범이라고
비난을 한대. 점점 수렵채집을 살아가기 어렵겠구나. 그러다
보니 하드자 부족 사람들 중 일부는 도시로 나가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그것에도 차별 받고 도시 빈민으로 살거나 다시 돌아오는 이들도 있다고
하는구나. 지은이는 하드자 부족과 함께 사냥을 따라 나섰는데 누군가의 생존을 위해서는 다른 생명이 죽어야
하는 장면을 만나면서 진정한 자연의 삶의 방식을 보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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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09)
그
장면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죽은 원숭이도 안타까웠고, 크게 다친 개도 안쓰러웠다. 20년이 넘도록 다큐멘터리 PD로 현장을 다니며 이런 장면을 여러 번 보아왔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무뎌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불편하다. 그렇다고 내 기준으로
재단할 수도 없다. 하드자에게 사냥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냥 삶의 한 방식일 뿐이다. 인간도, 개도, 원숭이도
모두 각자의 생존을 걸고 있다. 직접 사냥하느냐, 돈을 내고
도축된 고기를 사 먹느냐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지. 우리 역시 다른 생명의 죽음 위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 과정을 보지 않을 뿐이고, 저들은
그 과정을 피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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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오지는 인도네시아 토라자
부족들의 이야기란다. 외지 사람들을 스스럼 없이 받아들이는 토라자 부족은 배처럼 휘어진 지붕의 전통
가옥에서 살고 있단다. 그들은 독특한 장례 문화를 가지고 있어. 장례식에
돈도 많이 들여 엄청 성대하게 연다고 하는구나. 시신도 방부 처리해서 한 동안 집에서 모시고 그 후에는
동굴에 시신을 두는데 마네네라고 하는 축제 때는 그 시신을 다 꺼내서 새옷을 입히고 머리 단장도 새로 해서 가족들과 함께 기념 사진도 찍는다고
하더구나. 그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삶의 연장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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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는 에콰도르 침보라소의
마지막 빙하 장수의 이야기란다. 우쉬카라는 여든 살의 어르신인데, 그의
직업은 고산 지대에 있는 빙하를 채굴하여 파는 빙하 장수라고 하는구나. 예전에는 빙하 장수들이 많았는데, 1980년대부터 냉장고가 보급이 많아지면서 빙하 장수는 모두 사라지고 이제 우쉬카 혼자 남았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빙하를 채굴하려면 예전보다 더 높은 곳까지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구나. 지은이는 우쉬카와 함께 해발 5000미터에 가서 빙하를 캐는 경험을
하는데 그 과정이 고되고 전문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알게 되었어.
이 여행을 마지고 국내에 돌아온
지 얼마 안되어 우쉬카가 밭에서 일하다가 소에 받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대. 마지막 빙하장수의 허망한
죽음이 아닐 수 없구나. 영상과 책에 실린 사진을 본 그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아빠도 안타깝구나. 마지막 빙하 장수 우쉬카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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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이야기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이 이야기란다. 지구 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은 늘 전쟁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도시이지만, 신앙심 깊은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으로 소개해주었어. 이스라엘의 총리 네타냐후가 얼른 자리에서 쫓겨나야 희망을 걸어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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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캄보다아 쁘릭뚤이라는
마을 이야기란다. 이 책에 소개된 마을들이나 부족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이름들이 왠지 정감들이 가는 이름들이구나. 쁘릭뚤은 호수 위에 수상
가옥들로 이루어진 마을이란다. 겉에서 보기는 낭만 있어 보이지만,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수도도 없는 곳이란다. 먹고, 씻고, 싸는 일을 모두 같은 물에서 이루어진다. 아빠는 그런 상황이라면 제대로 먹지 못할 것 같은데, 지은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먹고 씻고 싸더구나. 이 곳의 주요 수입원은 악어 장사로 하더구나. 그래서 악어를 많이 키웠는데, 최근에 악어 판매가 급감하면서 오히려
애물단지가 되었다고 하더구나.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 악어 한 마리를 사서 악어 요리를
주문했어. 악어를 통째로 삶는 장면은 너무 생경한 장면인데 그 악어 요리로 동네 사람들 모두 함께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고는 아빠도 그 악어 요리의 맛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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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고민
끝에 우리가 악어를 한 마리 사기로 했다. 이곳에 묵는 동안 숙식비와 촬영비를 따로 지불했지만, 그사이 받은 호의와 도움을 생각하면 이런 방식으로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온전히 마음 편한 결정은 아니었다. 내가 온갖 오지를 다니면서
이것저것 잘 받아먹다 보니 그런 걸 좋아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내 선택으로 한 생명이 죽는다는 건 아무래도
껄끄럽다. 이 악어도 생긴 게 무서워서 그렇지 사는 동안 편했던 생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좁은 우리에 갇혀 일주일에 한 번 겨우 먹이를 받아먹는 것도 서러운 마당에 결국 사람 손에 잡혀 죽는다고 생각하면
그 처지가 안쓰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사랑들에게는 실제 도움이 되고, 우리에게는 이곳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 되는 만큼, 내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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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는 일본 후쿠시마의
후타바 마을이란다. 원전 사고 이후 15년이 흐른 후쿠시마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해서 다녀왔다고 했어. 15년이 흐른 그곳은 여전히 방사능 수치는 높게 나왔고, 폐허간 된 마음은 2011년 달력으로 멈춰 있었어. 하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구나.
….
이렇게 책에서의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었지만, 아빠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역마살 로드’ 채널을 통해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보면서 힐링을 하고 있단다. 그들이
가는 곳들이 위험한 곳도 많아서 걱정이더구나. 이 채널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장PD, 멋진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몸을 갈아 넣는 서감독, 체력
담당, 통역 감당에 감초 역할까지 톡톡히 하는 존. 모두들
계속 건강하셔서 모르고 있는 지구촌 방방곡곡 아름다운 곳을 소개해 주셨으면 하는구나. 아빠가 이 채널을
알게 된 후 너희들에게 추천을 하고, 아빠의 지인들에게도 추천을 했는데, 채널이 좀더 성장해서 그들이 여행하는데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으면 좋겠구나.
그러면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2024년, 나는
다니던 방송국을 나와 대출로 마련한 6천만 원을 들고 아마존으로 들어갔다.
책의 끝 문장: 무엇보다, 참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이들의 고민을 우리가 함부로 판단하거나 단정할 수는 없다. 전통을 지키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도 할 수 없고, 문명으로 나가는 것이 반드시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이들을 보면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아마존이나 한국이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내가 겪은 고생은 덜 겪었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을 너무 쉽게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 정글 깊숙한 곳에서 만난 그들의 고민은 낯설면서도 이상할 만큼 익숙했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 P71
더욱이 최근 몇 년 사이 하드자를 둘러싼 풍경은 더욱 기괴하게 변했다. 내가 처음 이들을 만났을 때만 해도 그들은 카메라를 위해 ‘준비된 연기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유튜버들이 하드자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연출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똑 같은 구도로 불을 피우고, 똑 같은 자리에서 춤을 추고, 카메라가 보기 좋은 각도에서 사냥 장면을 반복한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지내봤기 때문에 안다. 진짜 사냥은 그렇게 찍을 수가 없다. 그 거칠고 가시덤불을 뒤덮인 산을 짐승처럼 뛰어다니는 사람들이었다. - P126
마네네라 불리는 이 축제는 우리 식으로 비유하면 설이나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조상을 기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토라자 사람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직접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 머리를 손질하고, 먼지를 털고,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어떤 집은 고인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고, 어떤 집은 선글라스를 씌워주고, 누구는 함께 산책을 하기도 한다. - P134
토라자에서는 장례 전까지 고인을 완전히 죽은 사람으로 부르지 않고 ‘아픈 사람’이라는 뜻의 토 마쿨라로 여기며, 가족이 음식과 물, 담배를 바치는 관습이 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들은 죽음을 우리처럼 어느 한순간의 단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 함께 있는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 아침마다 인사하고 물을 떠다 드리는 일이 가능해진다. 누군가는 그런 일을 건너뛰었다가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기고 사고가 나고, 누구는 죽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우연인지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이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몸은 멈췄어도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 눈에는 낯선 믿음이지만, 이해하고 나면 이들의 일상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관은 방 안에 놓여 있지만, 그 방은 무덤이 아니라 여전히 가족이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이다. - P155
이 위험한 곳이 이곳 아이들에게는 일종의 놀이터였다. 굶주린 악어가 도사리고 있는 악어장 위를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닌다. 심심하면 호수로 풍덩 뛰어들어 수영을 한다. 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장난감도 새끼 악어였다. 입을 리본처럼 생긴 끈으로 단단히 묶은 새끼 악어를 붙잡고 이리저리 들고 다니며 놀았다. 물뱀을 잡아 장난감처럼 만지기도 하고, 악어장 주변에서 이것저것 주워 와 제 나름의 놀잇감을 만들기도 했다. 떠내려온 페트병이나 캔 같은 것들은 따로 모아 두었다가 고물상에 팔았고, 바퀴 빠진 장난감이나 깨진 생활용품이 떠내려오면 그걸 주워서 소중하게 가지고 놀기도 한다. 위험과 가난이 뒤섞인 환경이었지만, 아이들은 그 안에서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놀고 있었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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