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어린이가 심리적으로 연약하다고 여기는 것은 철저히 현대적인 사고방식이다. 고대에 어린이는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축소형 성인으로 여겨졌다. 대부분의 서구 문명에서 어린이는 선천적으로 악하다고 간주되었다. 부모와 보호자와 할 일은 아이들이 사회화를 통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엄격하게 훈육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체벌과 공포심을 쓰는 전략은 전적으로 용인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67)

도파민은 보상 과정에 관여하는 유일한 신경전달물질은 아니지만, 신경과학자들 대부분은 도파민이 그중 가장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도파민은 보상 그 자체의 쾌락을 느끼는 과정보다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 부여 과정에 더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유전자 조작으로 도파민을 만들 수 없게 된 쥐들은 음식을 찾지 못하고 음식이 코앞에 놓여 있어도 굶어 죽지만, 음식을 입안으로 바로 넣어주면 음식을 씹어서 먹으며 그걸 즐기는 것처럼 반응한다.

 

(185)

그런데 오늘날은 도파민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전형적인 미국인은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앉아서 보내는데, 이는 50년에 비해 50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세계의 다른 부유 국가들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가 공급량이 제한적인 식량을 두고 경쟁하기 위해 매일 10킬로미터를 횡단하도록 진화되었음을 고려하면, 현재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좌식 생활 습관의 역효과는 굉장히 충격적이다.

 

(203)

고통이 너무 심하거나 너무 강력한 형태를 띨 경우, 고통에 중독될 위험은 커진다. 나는 이를 치료 중에 여러 번 목격했다. 내가 맡은 어떤 환자는 너무 많이 달리다가 다리뼈가 골절됐는데, 그렇게 되고도 달리기를 계속했다. 또 어떤 환자는 쾌감을 느끼고 자기 마음속에 계속되는 생각을 없애기 위해 팔뚝과 허벅지 안쪽을 면도날을 벴다. 그녀는 심각한 흉터와 감염의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베기를 멈추지 않았다.

 

(210)

하지만 거짓말에 관한 한 인간에 비할 동물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언어 때문에 우리가 거짓말하는 경향을 띠고 거짓말도 매우 잘한다고 추측한다. 그 논리는 이렇게 연결된다.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는 거대한 사회 집단의 형성으로 막을 내렸다. 거대한 사회 집단은 의사소통 형태의 정교한 발달로 존재할 수 있었고, 그러한 발전은 상호 협동을 이끌었다. 그러나 협동에 쓰인 말들은 상대를 속이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언어가 발전할수록 거짓말은 정교해진다.

 

(223-234)

친밀함은 그 자체도 도파민의 원천이다. 타인과의 사랑, 엄마-자식 간의 유대감, 성적 파트너와 평생토록 갖는 유대감 등과 관련이 있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은 뇌의 보상 경로에서 도파민 분비 뉴런에 있는 수용기들을 옭아매고, 보상-회로관을 강화한다. 간단히 말해 옥시토신은 뇌의 도파민을 증가시킨다. 이는 린홍, 롭 말렌카 등 스탠퍼드대학의 신경과학자들이 치근에 밝혀냈다.

 

(237)

여유 속에서 결핍의 마음가짐이 생겨나는 것처럼, 결핍 속에서도 여유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 심리적 여유는 물질세계 너머의 원천에서 비롯된다우리 바깥의 무언가를 믿거나 그것을 위해 매진하는 자세, 그리고 인간적인 유대감과 의미로 가득한 삶을 만드려는 노력은 비록 가난에 처해 있더라도 우리에게 여유 있는 마음가짐을 갖게 한다.

 

(279)

저울의 교운

1. 끊임없는 쾌락 추구(그리고 고통 회피)는 고통을 낳는다.

2. 회복은 절제로부터 시작된다.

3. 절제는 뇌의 보상 경로를 다시 제자리에 맞추고, 이를 통해 더 단순한 쾌락에도 기뻐할 수 있도록 한다.

4. 자기 구속은 욕구와 소비 사이에 말 그대로 초인적인 공간을 만드는데, 이 공간은 도파민으로 과부하를 이룬 지금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다.

5. 약물 치료는 항상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약물 치료로 고통을 해소함으로써 잃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6. 고통 쪽을 자극하면 우리의 평형 상태는 쾌락 쪽으로 다시 맞춰진다.

7. 그러나 고통에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8. 근본적인 솔직함은 의식을 고취하고, 친밀감을 높이며, 마음가짐을 여유 있게 만든다.

9. 친사회적 수치심은 우리가 인간의 무리에 속해 있음을 확인시킨다.

10.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세상에 몰입함으로써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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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

잠은 학습하고, 기억하고, 논리적 판단과 선택을 하는 능력 등 뇌의 다양한 기능들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우리의 정신 건강에 유익한 기여를 함으로써, 잠은 우리 감정 뇌 회로를 재조정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날 냉철한 머리로 사회적 심리적 도전 과제들을 헤쳐나갈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모든 의식 경험 가운데 가장 난제이면서 논쟁적인 것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꿈 말이다. 인간을 비롯하여 꿈을 꿀 수 있을 만큼 운이 좋은 종들은 모두 꿈꾸기를 통해서 독특한 혜택들을 얻는다. 편안하게 하는 신경 화학 물질에 뇌를 푹 담금으로써 고통스러운 기억을 누그러뜨리고, 과거와 현재의 지식을 뒤섞은 가상 현실 공간을 통해 창의성을 부추기는 것도 잠이 주는 선물 중 하나다.

 

(30)

믿을만하게 되풀이되는 그들의 수면과 각성의 주기가 정확히 24시간이 아니라, 그보다 좀더 길다는 부정할 수 없이 일관된 결과가 나왔다. 20대였던 리처드슨의 수면-각성 주기는 26~28시간이었다. 40대였던 클라이트먼의 주기는 24시간에 좀더 가까웠지만, 그래도 그보다는 길었다. 따라서 햇빛이라는 바깥의 영향을 제거했을 때, 개인의 체내에서 생성되는 <하루>는 정확히 24시간이 아니라, 바깥 세계에서 (실제) 하루가 지날 때마다, 클라이트먼과 리처드슨은 체내에서 생성된 더 긴 시계에 따라서 시간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65)

여기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시간 왜곡 현상이 하나 있다. 잠 자체를 넘어서, 꿈속에서 시간 확장이다. 시간은 꿈속에서는 그다지 들어맞지 않는다. 길게 늘어질 때가 아주 많다. 지난번에 꿈에서 깨어나, 자명종의 다시 알림 단추를 눌렀을 때를 생각해 보자. 관대하게도, 당신은 자신에게 5분 동안 달콤한 잠을 더 잘 수 있도록 허용한다. 당신은 곧바로 꿈으로 돌아간다. 5분을 더 기다린 뒤, 당신의 자명종은 믿음직하게 다시 울리지만, 당신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 시간인 그 5분 이상 동안, 당신은 1시간, 또는 그 이상 꿈을 꾸고 있었던 양 느낄 수도 있다. 꿈을 꾸지 않는 수면 단계, 즉 시간 관념을 모조리 잃는 단계와 달리, 꿈속에서 시간 감각을 계속 지니고 있다. 그저 그리 정확하지가 않을 뿐이다. 꿈꾸는 시간은 실제 시간에 비해 더 길게 오래 늘어날 때가 많다.

 

(117)

그렇긴 해도, 렘수면이 제공하는 탁월한 정서 뇌 능력이 창의성에 영감을 불어넣는 두 번째 혜택보다 우리 인류의 성공을 결정하는 데 더 영향력을 끼쳤다고 봐야 한다. 창의성이 진화적으로 강력한 도구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대체로 개인에게 한정되어 있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해결책들이 렘수면이 함양하는 정서적으로 풍부하고 친사회적인 유대와 협력 관계를 통해 개인 사이에 공유될 수 없다면 말이다. 그런 상태에서 창의성은 대중에게 전파되기보다는 한 개인 내에 고정된 채 남아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135)

파인버그는 깊은 수면 세기의 증감이 청소년기의 위태위태한 고지대를 거쳐서 성년기라는 안전한 통로로 들어서는 성숙을 향한 여행을 돕는다고 주장했다.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그의 이론이 옳다고 뒷받침한다. 깊은 렘수면이 청소년기에 뇌의 마지막 마감 공사와 정밀 검사를 수행함에 따라, 인지 기능, 추론, 비판적 사고는 나아지기 시작하는데, 비렘수면의 변화에 비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관계의 각 시기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운 점이 드러난다. 뇌 안에 인지적 및 발달적 이정표가 놓이기 몇 주 또는 몇 달 전에 반드시 깊은 렘수면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영향의 방향성을 시사한다. 뇌 성숙이 깊은 잠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깊은 잠이 뇌 성숙의 추진력일 수 있다는 것이다.

 

(141)

안타깝게도 사회도 부모도 십대 청소년이 어른보다 잠을 더 잘 필요가 있으며, 생물학적으로 부모와 잠자는 시간대가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안 되어 있다. 부모가 이 점에서 좌절을 느낀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부모는 십대 자녀의 수면 패턴이 생물학적 명령이 아니라 의식적인 선택을 반영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패턴은 의지에 따른 것도, 타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생물학적으로 강하게 정해진 것이다. 부모라면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포용하고 장려하고 찬미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자녀의 발달하는 뇌에 이상이 생기거나 자녀의 정신질환 위험이 높아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말이다.

 

(217-218)

기분이 극단적으로 좋아지는 쪽으로 갑자기 변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우려되는 문제들이 발생한다. 비록 결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쾌감을 주는 경험에 과민하게 반응하면 감각 추구, 위험, 모험,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면 교란은 중독성 물질을 투여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명확한 징표 중 하나다. 또 수면 부족은 뇌 전두엽 피질이라는 이성적인 사령부의 통제가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끝없는 보상 갈망과 관련이 있는, 수많은 중독 장애들의 재발률도 결정한다. 예방 관점에서 볼 때 이와 관련이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불안, 주의력 결핍, 부모의 마약 경력 등 다른 고위험 요인들을 감안하여 살펴보면 청소년기 말에 일찍부터 마약과 술에 빠질지 여부를 유년기의 수면 부족 여주를 통해 상당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수면 부족으로 진자처럼 양쪽 방향으로 오가는 감정 변화가 서로를 상쇄시키기는커녕 몹시 우려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35)

네데르고르의 발견은 우리 발견에서 빠져 있던 답을 제공함으로써 지식의 고리를 완성시켰다. 부족한 잠과 알츠하이머병의 병리는 상호작용하면서 악순환을 일으킨다. 잠이 부족하면 아밀로이드판이 뇌에, 특히 깊은 수면을 생성하는 영역에 쌓이면서, 그 영역을 공격하여 망가뜨린다. 이 공격으로 갚은 비렘수면이 줄어들면 밤에 뇌에서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능력도 약해진다. 그러면 아밀로이드가 더 많이 쌓이게 된다. 아밀로이드가 쌓일수록 깊은 수면은 줄어들고, 깊은 수면이 줄어들수록 아밀로이드가 더 쌓이는 과정이 계속 되풀이된다.

 

(251)

문제가 생긴 것은 두 주인공인 렙틴과 그렐린이었다. 수면 부족은 포만감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인 렙틴의 농도를 낮추고 허기를 자극하는 호르몬인 그렐린의 농도를 높였다. 생리적으로 이중으로 위협에 처하는 고전적인 사례였다. 참가자들은 수면 부족이라는 위법 행위로 이중으로 처벌을 받고 있었다. 한쪽으로는 <배불러>라는 신호가 제거되고, 다른 쪽으로는 <아직 배고파>라는 느낌이 증폭됨으로써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잠을 적게 잘 때는 음식을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했다.

 

(258)

양쪽 집단 모두 체중이 감소했다. 그러나 체중이 줄어든 원인은 전혀 달랐다. 5.5시간만 잔 집단에서는 체중 감소의 70퍼센트 이상이 지방 외 체중에서 이루어졌다. 즉 지방이 아니라 근육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매일 밤 8.5시간을 잔 집단에서는 훨씬 바람직한 결과가 나왔다. 체중 감소의 50퍼센트 이상이 근육이 아니라 지방에서 이루어졌다. 잠을 충분히 못 자면, 몸은 지방을 내놓기를 몹시 꺼린다. 지방을 간직하고, 대신에 근육을 버린다. 그러니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 다이어트를 한다면, 날씬하고 뽀얀 모습이 될 가능성이 적다. 수면 부족일 때 다이어트는 역효과를 낳는다.

 

(277-278)

어젯밤에 당신은 지독한 정신병적 상태에 빠졌다. 오늘 밤에도 다시 그런 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 진단을 거부하기 전에, 내가 타당한 근거라고 제시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한번 들어 보시라. 첫째, 어젯밤 꿈을 꿀 때, 당신은 거기에 없는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환각을 일으키고 있었다. 둘째, 당신은 진짜일 리가 없는 것들을 믿었다. 즉 망상에 빠졌다. 셋째, 당신은 시간, 공간, 사람을 혼동하게 되었다. 즉 혼란에 빠졌다. 넷째, 당신은 극단적인 감정 사이를 오갔다. 정신과 의사들이 정서 불안이라고 하는 증상이다. 다섯째(그리고 너무나 기쁘게도!), 오늘 아침 깨어날 때, 당신은 이 기이한 꿈속 경험중 전부는 아니라고 해도 대부분을 잊었다. 한 마디로 기억 상실증에 빠졌다. 깨어 있을 때 이런 증상들을 어느 하나라도 겪는다면, 즉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렘수면이라고 부르는 뇌 상태와 그에 따르는 정신적 경험인 꿈은 정상인 생물학적 및 심리적 과정이자,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진정으로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이제야 겨우 그 이유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310)

잠을 못 잔 참가자들은 보통은 밤에 렘수면의 재조율 솜씨를 통해 제공되는 그런 예리한 감정 파악 능력이 사라지자, 두려움 쪽으로 치우쳐 있는 기본 설정 상태로 빠져들었다. 온화하거나 좀 다정해 보이는 얼굴조차도 위협적이라고 믿게 되었다. 뇌에 렘수면이 부족할 때, 바깥 세계는 더 위협적이고 피해야 할 곳이 되었다. 믿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잠을 못 잔 뇌의 <>에는 현실과 지각된 현실이 더 이상 같은 것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의 렘수면을 제거함으로써, 우리는 말 그대로 자기 주변의 인간 사회를 읽는 총명한 능력을 제거했다.

 

(342-343)

여기서 수면 상태를 착각하는 증상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역설 불면증이라는 것이다. 이 환자들은 자신이 밤새도록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또는 아예 못 잔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전극 등 수면 양상을 정확히 기록하는 장치를 써서 객관적으로 지켜보면, 그렇지 않다. 수면 기록을 보면, 이들이 자신이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잠을 자며, 너무나도 건강하게 푹 잔다는 것을 시사하는 사례도 있다. 따라서 역설 불면증 환자는 실제로는 잠을 잘 자면서 잠을 못 잔다고 착각, 즉 오인한다. 그래서 그런 환자는 건강 염려증 환자로 분류된다. 비록 그 용어가 경멸적이거나 그저 고상하게 표현했을 뿐인 양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수면 의학자들은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런 진단을 받은 이들을 돕는 심리적 치료법들이 나와 있다.

 

(383)

종이책에 비해 아이패드로 읽었을 때에는 밤에 멜라토닌 분비량이 50퍼센트 이상 억제되었다. 사실 종이책을 읽을 때는 멜라토닌 농도가 자연스럽게 증가했는데, 그에 비해 아이패드로 읽을 때에는 농도 증가가 세 시간까지도 지연되었다. 아이패드로 읽었을 때에는 멜라토닌 농도가 정점에 이르는, 즉 자라고 지시하는 시점이 자정 이전이 아니라 새벽 시간이었다. 인쇄본에 비해 아이패드로 읽은 뒤에 잠드는 데 더 오래 걸린 것도 놀랍지 않다.

 

(390-391)

이 그럴싸한 조언은 제쳐두고, 잠과 알코올이라는 문제에서 타당한 조언은 무엇일까? 금욕주의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겠지만, 알코올이 수면에 해를 끼친다는 증거가 워낙 확실하므로, 술을 마시면 당신과 공부에 피해가 가게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반주를 즐기며, 입맛을 돋우기 위해 미리 한잔 마시기도 한다. 하지만 간과 콩팥이 그 알코올 분해하여 배출하는 데에는 여러 시간이 걸린다. 당신이 에탄올을 빨리 분해하는 효소를 지닌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밤술은 수면을 교란할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자 가장 정직한 조언은 짜증날지 모르겠지만 술을 끊으라는 것이다.

 

(404-405)

위원회는 이런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서, 수면제가 <주관적이로 수면다원적으로 수면 잠복기를 미미하게 개선>할 뿐이라고 적었다. ,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조금 줄일 뿐이라는 뜻이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현재 쓰이는 수면제의 효과가 <작고 임상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결론지었다. 12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수보렉산트(상품명 벨솜라)라는 가장 최근에 나온 불면증용 수면제도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으로 더 의미 있는 수준으로 수면을 개선할 약물이 나올지 모르지만, 처방되는 수면제를 과학적으로 조사한 자료들은 현재로는 수면제가 잠을 푹 자려고 애쓰는 이들에게 건강한 잠을 되돌려줄 해결책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413-414)

카페인과 알코올 섭취를 줄이고, 침실에서 화면 기기들을 치우고, 침실 온도를 내리라는 것 등은 명백한 부류에 속한 방법들이다. 또 환자는 (1) 주중과 주말을 가릴 것 없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일정해야 하고, (2) 졸음이 올 때만 잠자러 가고 저녁 일찍 또는 중간에 소파에서 잠들지 않도록 하고, (3) 잠이 안 오는 데에도 잠자리에서 긴 시간 동안 누워 있지 말고, 일어나서 긴장을 풀어주는 차분한 무언가를 하면서 졸음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4) 밤에 잠들기 어렵다면 낮잠을 피하고, (5)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을 배움으로써 잠자기 전에 불안을 자극하는 생각과 걱정을 줄이고, (6) 밤에 시계를 보면서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시계 글자판이 보이지 않게 두는 것이 좋다.

 

(428)

잠을 덜 잔 직원은 덜 생산적이고, 동기 부여가 덜 되고, 덜 창의적이고, 덜 행복하고, 더 게으른 뿐 아니라, 더 비윤리적이기까지 하다. 사업에서는 평판이 일을 성사시키느냐 파탄내느냐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당신의 회사에서 잠이 부족한 직원은 당신의 평판이 나빠질 위험을 더 높인다. 앞에서 자제력을 발휘하고 감정 충동을 억제하는 데 중요한 전두엽이 수면 부족으로 활성이 억제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뇌 영상 실험에서 나온 증거를 설명한 바 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더 감정에 휩싸여서 성급하게 선택을 하고 의사 결정을 내렸다. 직장에서 더 중대한 업무를 처리할 때도 같은 결과를 나오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474)

직원이 약 5만 명인 대형 보험사 애트나(Aetna)는 검증된 수면 추적기 자료를 토대로, 잠을 더 많이 자는 직원에게 보너스를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애트나의 회장 겸 CEO인 마크 베르톨리니는 이렇게 설명했다. <직장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더 나음 판단을 내리는 일이야말로 우리 사업의 토대와 직결됩니다. 졸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럴 수가 없어요.> 밤잠을 일곱 시간씩 20일 이상 계속 잔 직원은 하루당 25달러, 최대 500달러의 보너스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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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과학자들은 노화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시각을 점수화해서 연구에 사용한다. 뉴질랜드의 젊은 성인들을 관찰한 연구에서, 노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전반적으로 더 나쁜 생활 습관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동년배보다 몸과 마음의 건강 상태 또한 좋지 않았다. 나이 듦에 대한 시각은 수명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이가 든다는 착각>을 쓴 예일대의 베카 레비(Becca Levy) 교수팀이 장년기의 미국인 660명을 23년간 관찰했더니, 노년에 대해 긍정적 사고를 하는 이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보다 7.5년 더 생존했다.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들의 혈중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더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수명을 7.5년 줄이는 효과는 평생 하루 한갑 정도 담배를 피우는 것과 비슷하다.

 

(27)

“40이 새로운 20”, “50~60대는 신()중년이라는 말은 우리의 삶이 헬스용 고무밴드를 잡아 늘인 것처럼 오른쪽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2005년 프랑스에 살고 있는 40세 여자는 향후 44.7년을 더 살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1952년에서는 30세 여자가 44.7년을 더 살 수 있었다. ‘40이 새로운 30’은 지난 50년간 우리가 건강하고 젊게 살 수 있는 10년을 얻게 되었다는 말이다. ‘신중년은 지금의 60대가 과거의 50대처럼 건강하고 사회적 활력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기대수명(한 시점에 태어나는 사람이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간)이 꾸준히 증가했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건강수명도 늘어나면서 개개인의 생애 주기 자체가 늘어지고 있는 것이다.

 

(33-34)

노화의 정의는 유전자와 환경이 시간의 흐름과 상호작용하여 세포, 조직, 기관, 개체에 일으키는 구조와 기능의 변화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질병이나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체 구조와 기능이 쇠퇴하는 현상으로 정의하지만,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지혈증 같은 많은 질병은 그 자체가 생물학적 노화의 결과인 경우가 많으므로 원인을 별도로 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생물학적 기전이 때에 따라 강화되기도, 약화되기도 하므로 생체 구조와 기능이 꼭 쇠퇴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시간과 유전,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벌어지는 무척이나 광범위한 변화를 노화로 묶을 수 있다. , 태어난 시점부터 생식이 가능한 연령대까지의 변화인 성장과 발달과정은 통상적으로 노화에 포함하지 않는다.

 

(82)

7 8천 명의 캐나다 인구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더니 흡연, 신체 활동, 음주, 식사 네 가지 요인에 따라 20세기에 기대할 수 있는 여명이 남자는 16.8, 여자는 18.9년까지 달라질 수 있음이 나타났다. 12만 명 이상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분석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50헤를 기점으로 기대할 수 있는 여명의 차이가 흡연 적정 체중, 신체 활동, 음주, 식사의 적절성에 따라 남자는 14.0, 여자는 12.2년까지 달라짐을 보였다. 최근에 미국의 성인 72만 명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낮은 신체 활동, 마약 중독, 흡연, 스트레스, 과음, 나쁜 식사, 나쁜 수면위생, 부족한 사회관계의 8가지 생활 습관을 합쳤을 때 40세를 기점으로 남성은 24, 여성은 21년의 수명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121)

순서를 바꿔 혈당 상승을 느리게 만드는 방법이다. 흰쌀밥을 먹기 전에 채소를 먼저 먹는 방법인데, 정제 곡물을 채소와 배합해서 복합 탄수화물처럼 만드는 것이다. 채소를 포함한 식이섬유 à 고기, 생선 등 단백질 à 탄수화물의 순서로 먹는 것이 혈당을 느리게 올린다.

 

(122-123)

단순당과 정제 곡물에 의해 혈당이 빠르게 오르는 상황에서는 즐거움의 호르몬인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머릿속에서 분비된다. 이 때문에 많은 현대인이 탄수화물에 중독되어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도파민과 엔도르핀에 대한 목마름이 생기기에 흔히 당이 땡긴다고들 말하는 것이다. 당 중독 회로는 생활 습관 개선으로 사그라들게 만들 수 있다. 진료실을 찾은 환자들에게 우선 일주일만 단순당과 정제 곡물을 멀리하라고 권한다. 이렇게만 geh 오후에 늘 느끼던 머릿속의 안개가 사라지고 서너 시면 어김없이 당기던 단 음식이 어느 순간 떠오르지 않는다. 확실한 실천이 동반되면 1~2주 이내 부종이 개선되고, 저장돼 있던 글리코겐이 분해되어 체중이 3~4kg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135)

기초대사량 계산하는 법

남자 : 88.362+(13.397 x 몸부게kg) + (4.799 x cm) – (5.677 x 나이)

여자 : 447.362+(9.247 x 몸부게kg) + (3.098 x cm) – (4.330 x 나이)

 

(161)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자면, 현대인은 잠이나 운동, 머리 비우기의 결핍에 따른 피로감, 한마디로 왜곡된 생활에 따른 불편감을 그와는 상관이 없는 영양제로 해소하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영양제로 몸에 들어오는 영양 성분은 이미 충분한 경우가 많아서, 영양제 보충이 피로감 회복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작다. 만일 통상의 영양제로 피로감이 개선된다면 현실적으로는 플라세포(placebo) 효과일 가능성이 높다.

 

(182-183)

걷기는 정신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바르게, 그리고 긴장 없이 걷는 과정에서 여러 관절의 부드럽고 율동적인 움직임을 자각하며, 풍경과 소리를 느끼고,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살피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마음챙김 명상이 된다. 실제 숲속을 걸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감소한다는 연구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 활동을 할 때 우리의 뇌는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엔 분비한다. 이 호르몬은 기분을 좋게 하고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운동, 특히 걷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은 뇌 유래 신경성장인자인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수치를 증가시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뇌의 BDNF 수치가 높아지면 신경 세포의 성장과 생존이 촉진되며, 신경세포 간의 연결이 강화되어 기억력과 학습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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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밸의 표정은 거의 무너지는 듯했다. 마지막 부분이 조금 이상하게 들리긴 했겠지만. 하긴 대체 누가, 해내야 할 복잡한 인생이 그토록 많은 마당에 평생 순진하게 살기를 선택하겠는가? 특히 비즈처럼 훈련 중인 초인이라면 말이다. 밸은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무엇으로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순간에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었다. 처음으로 나는 밸이 끝없이 끌어모아야 했던 에너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과거가 무너져 내렸기에, 현재가 계속 이어지도록 만들기 위해 온갖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했다. 나는 밸에게 몸을 기대고 웅크리며 그녀가 나를 안도록 했다. 최대한 세게 나를 꽉 안으라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날 뭉개 버려도 좋아. 밸의 힘은 놀라웠다. 그녀에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단순히 에너지 고갈의 연료라는 걸 깨달은 게 그때였다.

 

(467)

물론 쉬운 답은 내게 엄마가 없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엄마가 없는데 과연 누가 완전히 괜찮을 수 있을까? 내 말은, 평생 아무렇지 않게, 꾸준히 자신감 있게, 불가피한 신경쇠약을 겪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없다는 게 공백의 전부는 아니었다. 물론 그 동굴에 들어가 보면 그렇게 보일 수는 있었다. 서늘하고 축축한 넓은 공간에 펜 라이트를 비추면, 익숙하고 끔찍한 윤곽선이 나타난다. 하지만 사실 그 동굴은 훨씬 더 춥고 거대한 의문의 극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로비일 뿐이다. 그래서 펜 라이트를 서둘러 꺼버리게 된다.

 

(551-552)

널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틸러. 어떻게 그러겠느냐? 결국 우린 모두 평범한걸. 신체적 존재로서 말이지. 그래 나의 소중한 콘스턴스조차 말이야! 우리는 우리의 차이점과 예외성을 최대한 활용하지. 노력하고 밀어붙이고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자신을 설득해. 하지만 어느 시점에는 우리 세포의 복제 속도가 느려진단다. 아니면 내 질병이 그렇듯이 그 복제가 멈추지 않게 되지. 너는 젊고 쉽게 세포를 재생할 수 있는 긴 시간을 앞두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 과정은 진정한 기적이야. 심지어 마법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지. 분수 수준에서 필요한 무수히 많은 작용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그건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코드야. 죽음과 삶의 춤. 이 춤이 우리의 구성 성분 안에 있어. 언제나 말이야. 문제는 그 코드가 잘못됐을 때 다시 설정할 수 있느냐는 거다. 만일 다시 설정한다면, 계속해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까? 서구에서는 연금술사들이 납을 금으로 바꾸는 것 같은 일에 주된 관심을 두었다. 금이라니! 끝에 가서 금이 무슨 소용이라고. 하지만 연금술에 관한 초기 도교의 문헌을 읽어 보면, 사람들이 영생을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걸 알 수 있어. 통일 중국의 첫황제 진시황도 그런 사람이었다. 퐁은 도교 연금술은 물론 진시황에 대한 수많은 문헌과, 그와 관계된 다른 철학적인 저작들을 보내 줬어. 진시황은 의원들에게 특별한 약초와 광물로 만든 약을 준비하게 했지. 그중에는 비상과 수은도 포함돼 있었다. 신화 속에 나오는 불멸의 꽃을 채취하라고 전설 속 섬의 산으로 사절단을 보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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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신규식은 1911년경 한국인은 거의 없고 한국독립운동가들도 주목하지 않던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그곳에 한국독립운동기지를 구축하여 민족혁명의 앞길을 연 선각자였다. 그는 독립운동을 위해 독립운동가를 불러모으고 조국의 젊은이들을 불러들여 중국이나 미국의 학교에 보내고 혹은 직접 세운 학교에서 독립운동의 인재를 양성해 가면서 상하이를 한국독립운동의 전략적 기지로 구축하여 마침내 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았던 독립운동자였다.

 

(100)

물론 신한혁명당의 주도자들이 국제정세에 대한 잘못된 분석과 보황주의 노선 등의 한계를 보였다. 하지만 이 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와 중국 지역 독립운동 조직이 봉쇄당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각지의 운동역량을 재정비하여 독립전쟁을 결행할 전략을 감행하려한 점에서 분산된 독립운동역량을 단일화한 선구적 무장투쟁으로 규정할 수 있다. 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신한혁명당의 활동은 독립운동계에서 공화주의 노선이 이념으로 정립되는 견인차가 되었던 것과 이후 독립운동의 최고기관으로 국내의 민중적 기반 위에 선 정부가 조직되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해 준 점에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129-130)

우리나라를 욕심낸 나라를 귀국이다. 지금 태평양회의를 앞두고 본국에서는 대화에 대표를 파견하려 한다. 귀국은 국제조약에 따라 대회에서 한국의 독립문제를 제출하여 주기를 바란다. 이 문제는 귀국의 자구책 가운데 상책이다. 발칸문제 때문에 유럽전쟁이 일어났듯이 지금 귀국의 지위가 바로 서방의 발칸사정과 똑같다. 때문에 동아전쟁이 일단 발동되면 귀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먼저 참여할 것이 조금도 의심되지 않는다. 본국 문제가 토의될 것을 핵망하며 귀 정부를 재촉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귀국을 위한 자구책이며 양국을 위한 일이다.”

 

(141-142)

1922 8월 초순 찌는 듯이 무더운 여름 날, 신규식은 여느 때처럼 창가에 섰다. 살이 홀쭉히 빠진 그의 양볼에는 깊게 주름이 잡혔다. 그는 백지장처럼 하얗고 움푹 팬 눈으로 창밖의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다가 갑자기 나는 아무 죄도 없고, 나는 아무 죄도 없소. 그럼 잘들 있으시오! 우리 친구들이요. 나는 가겠소. 여러분들 임시정부를 잘 간직하고 삼천만 동포를 위하여 힘쓰시오. 나는 가겠소. 나는 아무 죄 없소라는 자책하는 듯한 독백을 남기곤 입을 다물었다.

 

(145-146)

신규식이 순국한 지 1년 후에 그의 역사관이 담긴 한국통사 <한국혼>이 출간되었다. 중국학자 후린이 다음과 같은 글을 서문에 적어 신규식의 독립투쟁의 산증인이 되었다. “한국 문제는 일본 군벌이 일본 국민에게 남긴 하나의 큰 빚이다. 이 빚은 언젠가 청산되어야 한다. 폴란드가 독립하고 체코가 새롭게 부흥하였으며 인도의 이집트 역시 기필코 독립할 것이다. 한국 문제 또한 오래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신규식 선생 그는 비록 우리를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베트남의 혁명가도 그를 기려 계속해 영웅들 일어나 마음모아 배를 저어가니 나라의 혼은 살아날 것이고 선생 또한 영원하리라고 하였다.

 

(157)

황커치앙에게 보낸 시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우선 극악무도한 자를 죽이고,

이어 약속을 어긴 이웃 일본을 죽이고,

남은 힘으로 뭇 요물들을 물리쳐.

태평양으로 내던진 뒤 피먼지를 씻노라

 

제국주의와 봉건주의를 반대하는 그의 진보적인 태도는 위안스카이에 의해 살해된 중국의 근대 민주 혁명가를 애도하기 위해 쓴 수많은 시속에 집중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168)

셋째, ‘국지정신(國之靜神)’나라의 문헌은 국사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국사를 잊었다 함은 곧 나라의 정신을 잃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 결과, ‘슬프다! 우리나라는 지금부터 다시는 역사가 있을 수 없으며, 지금까지는 비록 있다고 하더라도 없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국사를 잊게 된 원인은 5천 년 이래 당한 대외적인 침략에 있으며, 후세 역사가들이 외국에 아첨하고 국내의 사서를 무시한 존화사관(尊華史觀) 때문이었다고 파악하였다. 그리고 구학문, 신학문을 하는 모두를 향하여 자국의 역사는 모르나 중국의 역사는 잘 알고, 서양의 문명은 말하면서 자국의 문명역사는 모르는 사대사상이라고 공격하였다. 그는 소양(주자)에서 무릎 꿇고 감히 스스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겨우 남이 뱉은 찌꺼기의 침을 핥는 것이며, 온몽을 백조(白潮)(신문학의 유파)에 적시는 것은 그 껍데기를 입어보기 전에 먼저 나의 정신을 장사지내는 것이다라며 무비판적인 신구학문에 대한 맹종을 정신의 죽음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므로 사대사상과 존화사관에서 벗어나 신채호가 대동사(大東史)를 기초하고, 박은식인 광문회(光文會)를 창설하고, 나철이 대종교를 개창해 단군을 숭배하는 등 국사와 한국혼을 찾으려는 시도를 이어받아 국혼(國魂)이 흩어지지 않도록 할 것을 주장하였다.

 

(173-174)

무력주의가 이미 타파되었으므로 세계 평화에 대한 소망은 동아시아의 영구적인 평화 유지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며, 동아시아에 영구적인 평화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패권주의를 쓸어내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패권주의를 청산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우리 한국의 독립으로부터 시작해야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당시 이미 일본의 대륙침략 야욕을 간파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이 독립해 그들의 침략을 막아낸다면 비단 세계로 뻗치는 그들의 야심을 제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안전도 보장될 것이다.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종식된 뒤 일본이 비록 전쟁으로 스스로 망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해군력은 여전히 확장되고 있으며, 시베리아에서의 병력 또한 여전히 증강되고 있다. 그들의 의도를 짐작해보건대 동아시아를 하나의 커다란 전쟁터로 만드는 데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진단하였다. 마치 1937년 이후 자행된 악행을 예견한 듯한 탁월한 그의 혜안을 엿볼 수 있다.

 

(181)

신규식의 삶은 인간사랑, 민족사랑으로 가득찬 가장 인간적인 민족지도자의 모습을 대표한다. 그의 시에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바람을 담아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풍류를 알고 인생을 노래하던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소유한 인사였다. 하지만 민족적 국가의 존립조차 위태로운 한말, 식민지시대를 살아야 하는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민족문제 해결이란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시대 인식을 실제 삶으로 구현해 냈던 믿음직한 선현 중 하나가 되었다. 자신이 그렇게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변했던 민족역사 속의 선현들처럼 닮아 민족자결, 민족독립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생을 바쳤다. 우리의 구명부는 오직 민족자결이라는 한가지 소망을 가슴에 새기며 결코 앞에 나서지 않고 통합의 울타리가 되어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감내해 낸 그럼 민족운동가였다. 그의 뒤를 이은 우리가 결코 소홀히 여겨서는 안되는, 반드시 기억하고 기려야 하는 일제시대 민족운동가 중 한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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