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상당한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 후,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타이탄 전공자가 되어 대학원을 졸업했다. 물론 모든 박사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남의 연구를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에게 주는 학위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유일무이하다고 감시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타이탄에 관심을, 학위논문 주제로 삼을 만큼의 관심을 갖는 자가 나 이후로는 아직까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내 연구가 그렇게 지루해 보였나. 하하, 난 괜찮으니 혹시 지금 안쓰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면 거두길 바란다. 국내 천문학계는 대단히 좁은데, 천문학의 범위는 천문학적으로 넓어서 관심을 줄 대상이 너무 많다. 그리고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은 외롭지만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50)

76년마다 돌아오는 핼리혜성도 우리나라 사료에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989년 고려 성종 때의 기록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말인 1835년까지 매번 핼리혜성을 관측하고 기록했다. , 성실한 공무원들이요. 우리 세대도 선조들 못지않게 훌륭하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에는 <조선왕조실록>을 위시하여 수많은 사료가 인터넷으로 무상 제공되고 있다. 본래의 기록은 한자로 된 것이었지만 아주 많은 부분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주제별로 열람할 수도 있고 검색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숙제로 내기 딱 좋다.


(55)

학생들은 대학에 학문을 배우러 오지 않는다. 초등학교 다음 중학교 다음 고등학교에 간 것과 같이 고등학교를 마쳤으니 대학에 진학할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학비보다 열 배는 비싼 등록금이요, 모두가 입어야 하는 교복 대신 모두가 가져야 하는 스펙을 등에 업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젊음은 싸구려 술과 술값보다 비싼 커피와 크고 작은 성추행과 미필자조차 향유하는 선배들의 군대식 갑질, 전공과목 들을 시간을 뺏는 교양 강의와 대학생다운 교양을 쌓을 틈을 주지 않는 전공 강의, 토익 시험과 한국사 시험과 각종 컴퓨터 자격증과 크고 작은 기업의 공모전과 인턴 경력에 소모된다. 과제로 수많은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제대로 된 글쓰기를 연습할 기회는 별로 없다. 대신 비문으로 A4 용지 다섯 장을 채워내는 끈기, 남의 것을 베끼되 표절 여부를 자동으로 검사하는 프로그램에 걸리지 않게 몇몇 표현을 바꿔치기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 비용과 시간과 어처구니없는 문화와 그 젊음은 대체 무엇을 위한 제물인가.


(59).

학자들은 교류를 통해 지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기록을 발표한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학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멀리 있는 학자들과도 교류하기 위해서 편지 형식을 취했던 것이 오늘날 논문의 전신이다. 논문에서는 과거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연구하고 논했던 내용을 정확히 밝히며 인용한다. 남의 업적을 내 것인 양하는 태도는 국가나 가족에 대한 긍지를 느낄 때나 쓰는 것이요, 남의 글 베끼기는 타자 연습할 때나 하는 일이다.


(107)

부모 중 누군가가 본인의 일을 잠시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를 위해 달려가는 것은 양육자로서의 의무다. 아이가 아플 때 엄마가 일을 포기하고 달려가는 건 누군가는 가야 하는데 남편이 안 혹은 못 달려가기 때문이다. 현실이 그런 걸 누가 비난할 수 있겠나. 비난의 대상은 아픈 아이도, 달려가는 엄마도, 못 달려가는 아빠도 아니다. 갈 수 있으면서 안 달려가는 아빠가 있다면 그를 비난할 수 있을 뿐이고, 그런 경우엔 그게 아빠가 아니라 엄마라도 비난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남의 가정 일에 비난할 자격과 기회가 있다면 말이다.


(131)

요즘은 우주탐사선 자료를 쓰고, 직접 관측하더라도 CCTV를 보며 원격으로 망원경에 명령을 보내기 때문에 그렇게 온몸으로 관측하는 일이 드물다. 심지어 망원경을 미국에 설치해놓았더니 시차 덕을 본다. 대낮에 내 연구실에 앉아 미국의 밤에 뜬 달을 관측하니까 밤을 지새울 필요도 없다. 그래도 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이면, 노을도 차분히 지고 공기가 신선한 날이면 나는 관측하기 딱 좋은 날이네하고 중얼거린다. 그러고는 관측자의 일과를 상상한다.


(143-144)

촌극은 그렇게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주 뒤 인터뷰가 실린 호가 출판되자 국내 여러 언론과 매체에서 연락을 해왔다. 내가 <네이처>가 선정한 젊은 달 과학자 다섯 명에 들었다나.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니 흥미로웠다. <네이처>에서 무슨 엄청난 심사나 평가를 거친 것도 아니고 그저 기자가 여기저기 묻고 물어 몇몇 나라의 연구자들과 인터뷰를 했을 뿐인데, 그리고 기사를 읽어보았다면 엄청난 실력자를 골라내려는 목적의 인터뷰가 아니라는 것을 알 텐데, 대단한 침소봉대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당시 나는 대학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이 직급의 이름 풀이를 해보자면 호봉이 높은 박사후연구원이요, 연차나 경험은 조금 더 많지만 비정규 계약직 연구전담 인력이기는 매한가지라는 뜻인데 그걸 언론에서 약칭해 교수로 부르자 갑자기 설국열차의 꼬리 칸에서 앞칸으로 옮겨 탄 효과가 났다. 어이쿠야.


(180)

우주 탐사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데, 당장 상업적으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기 때문에 대기업이 돈을 대는 일은 드물다.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정부에 우주 탐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그것이 국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비전을 제시해주는 자문단이 필요하다. 그 조언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 이를 승인하는 최고결정권자와 국회, 그리고 그 실무를 담당하는 수많은 공무원이 현장을 방문하고, 공문서를 작성하고 낸 세금을 기꺼이 우주 탐사에 쓰도록 허락하고, 공감하고, 지지하고,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봐주는 국민이 필요하다. 당신이 꼭 필요하다. 천문학자가 아니라도 우주를 사랑할 수 있고, 우주탐사에 힘을 보낼 수 있다. 우주를 사랑하는 데는 수만 가지 방법이 있으니까.


(244-245)

뉴호라이즌스의 책임연구자 앨런 스턴 박사는 요즘도 명왕성을 행성이라 칭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가 명왕성을 행성이라 부르든 왜소행성이라 부르든 134340이라 부르든,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따돌림받고 소외당하며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자의 심정을 명왕성에 이입시켜려 하든 말든 명왕성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 멀고 어둡고 추운 곳에서, 하트 무늬처럼 보여 지구인에게만큼은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얼음평원 스푸트니크를 소중히 품은 채 태양으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중력의 끈을 잡고 있을 뿐이다. 그 곁에 오랫동안 지켜온 위성 카론은 명왕성의 위성으로 보기에는 너무 덩치가 커서 위성이 아니라 명왕성과 이중행성계를 이루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카론 역시 자신을 무엇이라 부르든 개의치 않는다. 명왕성, 그리고 자신보다 더 작은 여러 위성 친구들과 서로 중력을 주고받으며 아주 오랫동안 멈추지 않을 자신들만의 왈츠를 추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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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두 남자는 미소지으며 산책길을 따라간다. 그 모든 일이 그들 뒤로 아주 멀리 있다. 둘 중 한 사람은 이십오 년간 교직에 있었다. 대략 2500명의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중 상당수는 심각한 난관에 처한 학생들이었다. 두 남자는 저마다 가정을 꾸린 아버지다. 그들은 선생님이 그랬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안다. 열등생이 지루한 푸념 속에 들어앉히는 희망, 그래 그거다…… 선생님의 말이라 급물살을 타고 추락하는 강물 위에서 공부 못하는 학생이 붙잡고 매달리는 부표일 뿐이다. 열등생은 선생님이 한 말을 반복한다.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고, 규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순간적으로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놓여나기 위해하는 말이다. 아니면 사랑받기 위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47)

나를 구해냈던 그리고 나를 교사로 만들었던 선생님들은 그 일을 위해 양성된 게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무능한 학교생활의 기원에 대해서는 괘념치 않았다. 원인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았거니와 나에게 설교를 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위기에 빠진 청소년을 마주한 어른이었다. 그들은 절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던졌다. 그들은 나를 놓쳤다. 하지만 매일같이 다시 몸을 던지고 던지도 또 던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를 거기서 건져냈다. 나와 더불어 다른 많은 아이도 건져냈다. 말 그대로 우리를 낚아올린 것이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생명의 빚을 지고 있다.


(82)

선생이라는 직업이 필연적으로 사라질 때까지 다시 시작하는 일. 만일 우리가 한 명의 학생을 우리 수업의 직설적 현재에 정착시키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의 앎과 그것의 활용에 대한 안목이 이 아이들에게 미치지 않는다면, 그들의 실존은 식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막연한 결핍의 늪지에서 질척거릴 것이다. 물론 우리 선생들만이 그런 갱도를 파낸 것도 아니고, 그걸 메울 줄 몰랐던 것도 우리 책임만은 아니지만, 그때 그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 혹은 몇 년의 어린 시절을 우리 앞에 마주앉아 함께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망쳐버린 학교생활 일 년은 하찮은 게 아니다. 어항 속에서는 영겁의 세월이다.


(96-97)

하지만 선생이 거짓말을 모른 척하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좀더 깊숙이 숨겨진 이유인데, 명석한 의식에 비춰보자면 대충 이런 거다. 즉 그 아이가 교사라는 내 직업의 실패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발전시키지도 공부시키지도 못한 채, 그저 내 반에 들여놓고 그 아이가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하는 것이다.


(98)

지쳐버린 수많은 부모들은 사람의 진을 빼는 이런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척한다. 우선은 그들 자신의 고통을 잠시나마 진정시키기 위해(1515년 마리냐노 전투 같은 극소량의 진실은 진통제 역할을 한다), 그 다음엔 가족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하여 저녁식사 시간이 비극으로 선회하지 않도록, 제발 오늘 저녁은 아니기를, 각자의 마음을 찢어놓은 고백의 시련을 늦추기 위해, 요컨대 틈틈이 편지함을 살펴보던 당사자에 의해 다소 교묘하게 위조된 학기말 성적표를 받아들고, 사실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으면 학교생활의 재앙의 범위를 가늠하게 될 순간을 밀어내기 위해서다.

내일 생각해보자.

내일 생각해보자고……


(110-111)

우선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다. 알다시피 어른과 아이는 시간을 동일하게 지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십 년 단위로 계산하는 어른의 눈에 십 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이 오십이 되면 십 년은 금세 지나간다! 그렇게 빠른 속도감 때문에 어머니들은 아들의 장래를 근심하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오 년 후면 벌써 대학 입시네, 아니 이제 금방이잖아! 이 어린 것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근본적으로 뭐 그리 변할 수 있겠어? 그런데 아이에게 그 시절의 일 년은 천 년과도 같다. 아이의 눈에 자신의 미래는 뒤 이은 며칠 안에 몽땅 달려 있다. 아이에게 장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한을 센티미터로 재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되다라는 동사가 아이에게 주눅들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어른들의 걱정이나 질책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장래란 최악의 상태의 나를 말하며, 바로 그것이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선생님들의 말에서 내가 대충 이해한 바였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시간이란 게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조금도 생각해내지 못했고, 그냥 순진하게 영원히, 언제나 바보일 거라는 그들의 말을 믿었다. ‘영원히언제나는 상처받은 자존심이 열등생에게 시간을 헤아릴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단위였다.


(133)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이란 놀랍고도 짧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렇게 한마디로 말할 수 있겠는걸. 예를 들자면 한 젊은이가 우연히 맞닥뜨린 불행한 사고는 제쳐놓는다 해도 별 탈 없이 흘러가는 평범한 나날조차도 나들이를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옆 마을로 말을 타고 나설 작정을 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으로 말이다.”

이자벨은 존경심을 표하며 그 작가의 이름을 말했다. 프란츠 카프카.


(158)

망쳐버린 시간이 나를 기진맥진하게 했다. 나는 지치고 화가 난 채로 교실에서 나왔다. 그 화는 하루종일 학생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위험이 있다. 자기불만에 휩싸인 선생은 누구보다 재빨리 학생을 야단치기 때문이다. 얘들아, 조심해라, 바짝 기어라, 선생이 자기바하에 빠져버렸으니 맨 처음 걸려든 사람한테 불똥이 튈 거다! 그날 저녁은 집에 가서 숙제 검사 같은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피로와 불쾌한 의식은 좋은 충고자가 될 수 없다! 아니, 그날 저녁은 숙제 검사도, 텔레비전도, 외출도 그만두고 잠자리로 직행! 선생의 첫째 자질은 수면이다. 일찍 자야 착한 선생이 된다.


(275)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막시밀리앵은 젊음만능주의라는 동전의 이면이다. 우리 시대는 젊음의 의무로 이루어져 있다. 젊어야 하고, 젊게 사고해야 하고, 젊게 소비해야 하고, 젊게 늙어야 하고, 유행은 젊고, 축구도 젊고, 라디오방송도 젊고, 잡지도 젊고, 광고도 젊고, 텔레비전도 젊은이로 가득하고, 인터넷도 젊고, 사람들도 젊고, 살아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사람들도 젊게 남아 있고, 우리의 정치인들마저 마침내 다시 젊어졌다. 젊음 만만세! 젊음에 영광을! 젊어야만 한다!


(281)

이때 담임선생님의 질문.

신발은 걸어다니는 데 쓰이고, 상표는 뭐에 쓰이지?”

교실 구석에서 터져나온 돌발 발언.

뽀다구 내는 데요!”

모두의 폭소.


(323-324)

모든 점을 잘 따져보면 이 세 분의 선생님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모른다고 하는 우리의 고백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철자법의 결함을 이유로 내세우며 지 선생님은 내게 얼마나 여러 번 논술문을 다시 쓰게 했던가? 발 선생님은 내가 복도에 멍하니 있거나 자습실에서 몽상에 잠겨 있었다는 이유로 얼마나 여러 번 보충수업을 시켰던가? “시간이 있으니까 우리 한 십오 분만 더 사학을 해보면 어덜까? 페나키오니? , 십오 분만 해보자……”) 익사 위기에서 구해내려는 그 몸짓의 이미지, 자살하려는 몸짓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저 위로 나를 끌어올리려는 그 손목, 내 옷자락을 단단히 움켜쥔 살아 있는 손의 생생한 이미지, 이런 것들이 바로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맨 처음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들의 현존 안에서 그들의 과목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눈을 떴다. 수학자인 나, 역사가인 나, 철학자인 나로. 그러한 나는 이 스승들을 만날 때까지 진정으로 여기 있다는 느낌을 방해했던 나를 한 시간 동안 잠시 잊고, 나를 괄호 속에 집어넣고, 나로부터 나를 치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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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임진왜란은 1592 4 13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700여 척의 배가 부산 앞바다에 나타나면서 시작되어 1598 11월 종결되기까지 동아시아를 뒤흔들었다. 그 영향도 지대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란이 끝난 뒤 명과 일본 모두 왕조나 정권이 교체되었다는 것이다. 그전부터 침체했던 명은 참전 뒤 더욱 허약해졌고 결국 멸망했다. 일본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수립했다. 도쿠가와 막부는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무너질 때까지 250여 년간 존속하면서 일본의 중세를 이끌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전쟁터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조선은 쓰러지지 않았다. 전쟁 이후 조선은 체제를 수습했고, 그동안 지내온 것보다 더 오랜 기간을 존속했다.

 

(20)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낙관에는 일본 군사력에 대한 낮은 평가도에 꽤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얼마 전에 선조가 신하들을 불러서 의논을 했대요. ‘일본이 진짜 침략할 것 같나?’ 그랬더니 한 신하가 웃으면서, ‘일본은 배 한 척에 100명밖에 못 싣고, 배는 많아봐야 100척 밖에 동원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대요. 그런데 실제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에 동원하도록 지시한 배는 2000척 가까이 됐던 거죠. 조선은 이렇게 일본의 군사력을 한참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즈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국서를 보내왔어요. 그런데 조선 입장에서는 그 국서의 내용이 굉장히 오만방자하게 느껴졌던 거죠. 여기 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가 태몽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태양의 아들이라고 칭한 부분도 있고, 또 자기가 전쟁을 하면 지는 일이 없다면서 자신감을 넘어 오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거든요.

 

(26)

일본인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성격을 이야기할 때 항상 하는 얘기가 있죠. 어떤 사람이 두견새를 선물로 줬는데 이 새가 울지를 않는 거예요. 그러면 이 새를 어떻게 할까에 대해 일본에서 유명한 장군 세 명, 즉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답이 다 달라요. 1번 울지 않으면 죽여버린다. 2번 어떻게든 울게 만든다. 3번 울 때까지 기다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디에 해당할까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면 2번 아닐까요? 어떻게든 울게 만든다.

맞습니다. 정답은 2번이에요. 어떻게든 울게 만든다는 말이 그의 성향을 굉장히 잘 보여 주죠. 새 앞에서 재롱을 부리든 새를 놀라게 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새를 울게 만드는 거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목표가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이루고 마는 집념의 소유자였다고 해요.

재미있는 문제네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인물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아요. 그러면 나머지 두 명은 어떻게 대답했어요?

오다 노부나가는 1울지 않으면 죽여버린다에 해당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49)

송상현이 동래부사로 부임한 게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입니다. 동래부사는 지금으로 치면 부산시장 정도 되는 자리죠. 송상현은 부임과 동시에 성 주변에 나무를 심습니다. 나무가 성책(城柵) 역할을 하도록 한 거죠. 송상현은 또 군사 훈련을 철저하게 시켰다고 합니다. 이때가 꽤 평화로운 시대였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조치죠. 그러므로 송상현은 일본군의 침략을 예견했거나 적어도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유능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91)

어떤 면에서 이순신 장군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쟁을 준비해요.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있으면 곤장을 때리기도 했고요. 당시 이순신 장군의 부하들은 불만을 가졌을지도 몰라요.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한테 맨날 전쟁 준비시키고 함부로 곤장 때리고 그러냐?’ 이런 불만이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그런 걸 보면 이순신 장군은 확실히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아요.

 

(92)

두 사람은 사실 처음부터 관계가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허균의 책을 보면 두 사람이 같은 동네 출신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원균은 부친이 수군절도사까지 지낸 무반 가문 자손이고, 이순신은 할아버지 때까지 굉장히 잘 나가던 문반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두 사람의 무과 합격 시기도 10년 이상 차이가 납니다. 이순신이 한참 늦게 합격했죠. 그런데 임진왜란 직전에 이순신이 종6품인 정읍 현감에서 정3품 전라좌수사까지 일곱 품계가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하고, 계속 승승장구하잖아요. 본래 이순신보다 훨씬 높은 직급에 있었던 원균으로서는 그런 이순신이 탐탁지 않았겠죠.

 

(106)

의병은 경상도 지역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죠. 우선 경상도 3대 의병장으로 곽재우, 정인홍, 김면이 있습니다. 호남 의병장으로는 고경명, 김천일 등이 있고, 지금의 충청도 지역인 호서 의병장에는 조헌, 영규가 있죠. 금강산에서 활약한 사명대사 유정과 함경도의 정문부 장군도 빼놓을 수 없고요. 이렇듯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일본군에게 타격을 가했어요. 그러므로 의병의 봉기는 수군의 승리와 더불어 전쟁의 흐름을 바꾼 핵심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54)

그 재조지은이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 화가 나요. 대체 누가 나라를 구했습니까? 나라를 구한 건 조선의 백성들이에요. 그러면 백성을 섬겨야지 이게 무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런 걸 보면 선조는 그토록 참혹한 전쟁을 치르고도 배운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전쟁 후에도 제대로 된 국가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어요.

 

(166)

류성룡과 이순신은 언제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관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흔히 두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류성룡이 세 살 많아요. 사실 류성룡은 이순신 장군의 형님과 친구였어요. 이순신 장군은 사형제 중 셋째인데, 제일 윗형님 이름이 복희씨의 신하, 희신입니다. 그다음에 중국 제일의 성인으로 치는 분이 요 임금, 순 임금이죠. 그래서 바로 윗형님 이름이 요신이에요. 이 형님하고 류성룡이 친구 관계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순 임금의 신하라는 뜻으로 순신이죠. 그러나 이순신 장군 동생 이름은 뭘까요?

이순신 장군의 동생도 있어요?

, 요순 다음으로 하나라의 우임금이 유명하죠. 치수(治水)를 잘했던 분이요. 이 우임금의 신하라는 뜻에서 동생 이름은 우신이에요.

 

(168-169)

손바닥도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잖아요. 이순신이 그토록 큰 전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덕분이었습니다. 하나는 경상도 지역의 의병이죠. 곽재우를 비롯해서 김면, 정인홍 등이 낙동강 지역을 굳게 지킴으로써 왜적들이 진주를 거쳐 전라도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했고, 덕분에 후방 기지를 든든하게 확보할 수 있었죠. 두 번째는 류성룡이 조정에서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해 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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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1 17: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에 언급된 인물들중에 저의 집안 선조가 ㅋ ㅋㅋ 나라를 지켰냈다는 뿌듯함 북홀릭님 페어퍼에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네요 ^^

bookholic 2021-09-01 19:52   좋아요 3 | URL
ㅎㅎ 누굴까요? 궁금~~^^
scott 조상님~~ 나라를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18)

스탕달 신드롬이 뭔데요?

미술 감상에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빠지면 겪을 수 있다는 증상입니다. 감상에 너무 몰입하다가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빨리 뛰는데 심하면 실신에 이르기도 한다고 해요. 실제로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스탕달이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다가 겪게 되면서 알려진 증상입니다. 요즘도 피렌체 여행객 중에는 이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32)

유럽인에게 후추는 그야말로 새로운 미각의 세계를 열어 주었습니다. 아예 맛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후추 없이 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 거죠. 그렇게 점점 유럽인들은 더 많은 후추를 낙타에 싣고 콘스탄티노플이나 알렉산드리아 같은 지중해 동쪽의 도시까지 가져와야 비로소 유럽의 상인들이 살 수 있었습니다. 후추 값이 거의 금값이라고 할 정도였죠.


(95)

그런데 이 옷 색을 한번 보세요. 커피에 우유를 탄 색처럼 보이지 않나요? 여담입니다만 프란체스코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는 카푸친 수도회사람들이 입었던 옷이 카푸치노 커피색과 똑같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유를 넣은 커피에 카푸치노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106)

우리의 모든 꿈은 추진할 용기만 있으면 이뤄질 수 있다.

-       월트 디즈니


(159)

이성주의가 흑사병 때문에 나온다고요?

, 그렇게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르네상스 때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건 상당 부분 흑사병이라는 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화가가 해부학을 연구한 이유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하고 관련이 있었던 겁니다.


(199)

결국 르네상스의 핵심은 고대 문명의 부활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피렌체는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자신감을 가질 만합니다. 고대를 부활시키려면 고대라는 역사를 지니고 있어야 하겠죠. 피렌체는 그 어느 도시보다 고대의 전통이 강하게 이어져 내려오던 도시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대의 전통이 도시에 각인되어 있었던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225)

물론 15세기부터는 메디치 가문이 정치권력을 점점 독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메디치 가문도 항상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 했습니다. 실제로 메디치 가문은 대중의 지지를 잃게 되면서 여러 번 추방당하기도 하죠. 피렌체 시민들의 정치적 자의식이 어느 도시국가보다도 강했기 때문에 시민 중심의 공화국 체제를 상당 기간 유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시민들이 지녔던 정치적 자의식은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272)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에서 실패로 걸어가는 것이 성공이다.

-       윈스턴 처칠


(293-294)

당시 인문학자이자 미술이론가였던 알베르티는 하늘 높이 솟구친 피렌체 대성당 돔이 토스카나의 모든 사람을 그늘로 덮을 듯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 시기 피렌체 사람들에게 돔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알 것 같죠. 물론 과장처럼 들리기도 해요. 하지만 막상 피렌체에 가서 직접 이 돔과 마주하면 단순한 과장으로 들리지만은 않을 겁니다.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에 30층 높이의 대성당이 우뚝 솟아올라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거대한 돔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하고, 가파르게 솟아오른 윤곽선은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318)

알베르티는 보통 특출 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다양한 방면에서 천재성을 드러냈기 때문에 르네상스 맨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르네상스 맨이라 다재다능한 천재를 가리키는 말로 요즘도 여러 방면으로 재주가 많은 사람을 그렇게 부르곤 합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르네상스 맨이라고 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먼저 떠올릴 거예요. 하지만 시작은 알베르티였다고 봐야 합니다.


(362)

예술만큼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예술만큼 확실하게 세상과 이어주는 것도 없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443)

사실 레오나르도의 생애에서 이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났습니다. 뭐든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작업 기간이 한없이 길어지다가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는 프로젝트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지나치게 완벽주의자였던 작가 개인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대작을 위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줄 만한 아량을 가진 후원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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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25 21: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너무 좋아오 *^^*

bookholic 2021-08-26 09:01   좋아요 2 | URL
읽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발췌하면서 새로움을 만났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더 기억을...~~ 즐거운 하루 되세요^^

scott 2021-08-25 22: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 좋습니다

bookholic 2021-08-26 09:01   좋아요 2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시원한 하루 되십시오..^^
 














(12-13)

아침에 일어나자 마음속의 공허가 느껴졌다. 바깥 대기는 온화했다. 나무 사이를 지나온 바람의 녹색 물결이 내 안으로 바다를 실어왔고, 그 소리와 더불어 떠나고 싶은 욕구가 밀려왔다. 잠에 쫓겨 갔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부르르 몸을 흔들어 그것을 떨쳐냈다. 사람들이 결혼으로 행복해 하듯 나도 음악 안에서 행복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음악에 관한 모든 질문에 하나의 대답으로 충분하다고 결론 내림으로써 이미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던가. 음악이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는 가운데 우주를 향해, 상충하는 것들이 화합점을 향해 나아가는 움직임이라는 것이 그 대답이 아니었던가.


(18)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수습하리라. 내게는 여유와 사랑과 고독이 필요했다. 그러면 은밀히 나를 괴롭히는 불안, 나를 압박하고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의문의 근원과 그에 대한 대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21)

아프리카는 성격이 분명한 대륙이다. 아프리카라는 단어 속에는 코끼리의 울음소리와 치타의 으르렁 소리, 사자의 포효가 있고, 나아가 강렬한 태양 아래 쩍쩍 갈라지는 대지의 소리가 있다. 그곳에서는 공허조차 생동감에 넘친다. 아프리카는 지구라는 행성이 들려주는 원시의 노래다. 이 대륙의 본질 속에는 깊이 있고 유쾌한 그 무엇, 유쾌하지만 꼭 즐겁다고는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느껴진다. 알티플라노의 인디언들이 서글프고 수심에 찬 것만큼이나 근원에 닿아 있는 유쾌함 말이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세상이라는 목신의 피리 속에 깃든 잉카족의 그 천식성 숨결은 언제나 내 마음을 죄어들게 했다. 자신들의 신이 살해당한 후 귀머거리가 된 하늘을 향한 그 말 없는 애원, 소통이 불가능해진 그 대화, 드넓은 피라미드의 계단 위로 속절없이 흘러내린 그 많은 피, 그 종족은 핏속의 혈구를 회복시키지 못했다. 그들의 음악에서는 빈혈증세가 느껴진다. 산소 결핍과 신들의 무분별에 짓눌린 그 종족. 치명적인 코카나무 잎에 마취된 남녀들, 현실을 거부하고 조상이 그려놓은 하늘의 어둑한 별들 속에서 죽고자 하는 그들의 갈망.


(43-44)

그의 얼굴 전체가 환하게 밝아졌다. “행운이 함께해 집중할 줄 아는 학생들을 만났을 때 내가 그들의 마음에 새기고자 했던 게 바로 그거랍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공부하고 심화하는 데 만족하지 말고, 무엇보다도 적절한 때에 전인미답의 것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이런 열의야말로 배움이고, 이런 배움의 과정 가운데 열심히 헌신하기만 한다면 인간은 최상의 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현재 있는 것을 무시하지 않는 겸손,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소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오만을 가져야 하지요.”


(44-45)

그러면 선생님, 어떤 학생이 좋은 학생, 최상의 것을 성취하는 학생일까요?”

간단하게 대답하지요. 이전의 지식을 답습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 학생, 그렇다고 이전에 보지 못한 것을 만들어내는 데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학생. 아울러……”

아울러?”

현재 존재하는 걸 포착할 채비가 되어 있는 학생, 순간의 신비를 관통할 준비가 되어 있는 학생이지요. 그렇습니다. 좋은 학생이란 순간을 타는 곡예사입니다.”


(50)

그렇지요. 많은 예술가와 영웅과 성자들이 그런 위대한 교훈을 주고 있지요. 자유로워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역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유로워지는 것은 위대한 창조의 알파벳을 배우기 위한, ‘지금 여기에 낙원을 쓰기 위한 준비일 뿐입니다. 따라서 모든 글쓰기는 어쩔 수 없이 사랑의 편지가 됩니다. 시인 오든은, ‘글을 쓸 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개념을 좀 더 밀고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오직 사랑 때문에 죽어야 하고 그런 죽음은 비극이 아닙니다. 인간이 뭔가를 창조하는 건 바로 이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서고, 그 창조가 끝나는 것도 오직 이 죽음에 의해서지요.”


(52)

그런대로 애를 쓰긴 했지요. 학교(school)의 어원이 된 여가라는 뜻의 그리스어 스콜레(schole)’에는 시제가 없답니다. 자유의 시제인 셈이지요.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시제가 아니라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서, 뭔가를 배울 수 있도록 위한 것입니다. 학교는 자유를 수련하는 곳이고 학생이란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에게서 필요한 것, 잉여의 것을 덜어내는 존재입니다. ‘스콜레는 본질적인 시제인 셈이지요. 현실 속에 실재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여는 시제이자, 가장 인간적인 행위, 곧 글, 사랑, 세계의 발견 같은 영혼의 활동에 스스로를 내어주는 시제입니다. 스승은 가르침을 주지만 작품 역시 사랑을 가르치지요. 당신은 음악가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81)

개개의 공간에는 독특한 소리가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도시를 생각해 보세요. 두 눈이 천으로 가려지고 청각만을 쓸 수 있는 상태에서 당신이 어딘가에 떨어졌다고 해보죠. 그렇다 해도 거의 즉각적으로 그곳이 프랑스의 어느 도시란 것 정도만 알 수 있을 거예요. 성당의 종탑에서 시간을 알리는 소리, 뛰어노는 아이들의 외침 소리, 아침마다 열리는 하수구의 물소리, 창문 아래로 지나가는 유리 장수의 외침 소리 같은 게 들릴 테니까요. 그것이 도시라는 것, 하지만 파리나 리용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소도시라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대도시라면 줄곧 이어지는 자동차 소리, 전철이 우틍거리는 소리, 열차가 삐걱대는 소리, 소방대와 구급차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상점이나 자동차의 경보음이 줄곧 들려올 테니까요. 가엾은 사이렌들! 과거에는 노래를 부르더니 오늘은 울부짖고 있네요.”


(88)

한밤중 달을 향해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제겐 그렇답니다. 또 너울거리는 대양 속에 울려 퍼지는 고래의 노랫소리도 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늑대의 커다란 외침소리가 으뜸이죠.”


(119)

뉴욕을 떠나면서 나는 휴가, 곧 여행이 내게 필요한 휴식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의 판에 박힌 일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빡빡한 일정이 표시된 시간표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나 자신에게 생각을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이란 사물함 속에 넣어두고 떠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 끝에 이르러도, 극지나 적도에 가도 사람은 여전히 자기 고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옥이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유일한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135-136)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언제든 무력감이 솟구칠 수 있고, 그와 더불어 절망이 엄습할 수 있다. 그럴 때면 온 힘을 기울여 자신을 통합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환기시켜야 한다. 그런 빛살, 그런 열정, 그런 문장 없이는 자신 안에서 그 무엇도 완벽해질 수 없다. 내게는 그것이 음악과 늑대인 셈이다.

어떤 행위에 속에 어떤 생각 속에 완벽하게 몰입하기 위해서는 강한 에너지와 견고한 믿음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 무수한 상황들을 모두 통제한다는 것은 충족시키기 어려운 바람이다. 하지만 그런 바람 없이 기적은 과거에도 일어날 수 없고, 지금도 일어날 수 없을 터.


(139-140)

오랫동안 나는 톨스토이와 더불어 지냈고,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광란의 밤을 보냈으며, 독일 소설들과 더불어 때로는 격분하고 때로는 즐거워했다. 고갈되었다는 느낌이 들거나 속수무책의 악의와 맞닥뜨릴 때면 언제나 책 속에서 도움을 구했다. 책 속에서는 심술궂은 이들조차 저속하거나 비루하지 않았다. 책 속에서는 속속들이 어리석은 이를 거의 만날 수 없었다. 독서는 언제나 나를 언제나 지복의 경지에 이르도록 해주었다. 강렬한 감정, 다시 말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열정적인 가슴을 갖도록 해주었다.


(166)

예술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어요. 예술은 사랑을 펼치죠. ‘곧 진정한 사랑을 믿는 이들의 작품 속에는 사랑의 실존에 대한 기쁨이 표현되어 있어요. 조토의 프레스코화를 보고 감탄한 적이 있나요? 아레초에 있는 시바 여왕의 눈길을 본 적이 있나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어보셨나요? 언어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하지 못하지만, 가장 내밀한 마음속의 느낌을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하지만, 예술은 드러내지요. 예술은 영혼과 친숙하게 반말로 이야기합니다. 예술의 소통 대상이 바로 영혼이기 때문이죠. 예술에는 구원하는 힘이 있습니다. 예술은 종교, 곧 사랑과의 관계를 새롭게 합니다. 거기에 창조, 즐거움, 공감 같은 다른 이름을 붙일 수도 있어요. 조금 전 당신은 지성과 악의 새로운 결합을 강조했죠. 예술은 지성을 직관적인 사랑으로 돌려놓습니다. 왜냐하면 예술이란 특별한 힘이고, 예술의 능력은 아름다운 희망이기 때문이죠. 예술은 제 영혼을 무한하게 만들어줍니다.”


(183-184)

고백하건대, 나는 잠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잠이 건방진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엄하게 대한다. 잠자는 것을 좋아하고 육체적으로 잠이 몹시 필요한 나는 아주 기분 좋게, 관능적인 쾌감까지 느끼면서 잠의 품에 안겨 몸을 웅크린다. 침대에 들어가 눕는 순간 내 몸은 서양가새풀이 된다. 가장 깊은 꽃잎 속까지 나는 잠을 초대한다. 하지만 종종 연주회에 대한 신경성 긴장이나 피로가 잠에 맞서 바리케이드를 친다. 그럴 때면 다가온다 해도 잠의 포옹은 표면적인 것에 머문다. 이따금 결합이 이루어지면 잠은 나를 일으켜 이끌어간다. 내 꿈은 그와 하나가 된다.


(203)

오늘날 인간은 스스로에게 동물을 혹사할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인간은 동물을 이용하고, 종 전체를 아사시키고 질식시키고 멸절시킵니다. 대양 저 멀리에서 수백 년의 수명을 지난 거북이들이 해파리인 줄 알고 먹은 비닐 봉투가 위장에 가득 쌓여 죽어갑니다. 인간이 동물을 신성에 가장 가까운 존재로 여기고 그 절대적인 무구함을 부러워하는 그런 시대가 다시 올까요? 이집트인이나 아스텍족이 섬기던 신으로서의 동물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미트라가 숭배하던 힘센 수소는요? 인간이 동물과 자신의 혈연관계를 존중하고, 살아있는 존재와 대지와의 근원적인 관계를 가꾸어나가던 그런 시대는 어디로 간 걸까요?


(216-217)

구름에도 음악이 있다. 모차르트 소나타 같은 작고 둥근 흰 구름. 모리스 라벨과 에릭 시터 같은 풀어헤쳐진 긴 구름. 베토벤 같은 묵직하고 검은 안개구름. 브람스의 구름에는 성당의 하늘 같은 갈라진 틈이 있는데, 그 틈으로 빛줄기로 이루어진 붉은 광채가 비쳐 나온다. 그 광채가 어디에서 솟아나오는지는, 태양에서인지 지옥에서인지 혹은 희망에서인지 알 길이 없다.


(235)

그렇습니다. 자유, 다시 말해서 원치 않는 것을 사랑으로 거부하고, 원하는 것, 받아들일 만한 것을 받아들이는 선택권 말입니다. 저는 불필요한 것들에서 벗어나 빛에 도달했습니다. 청빈의 정신을 넘어서만이 도달할 수 있는 빛 말입니다.


(237)

습관이나 나태로 말미암아 자신의 가슴과 영혼을 진지하게 천착하고 탐색하는 것을 그만둘 때 슬픔이 찾아옵니다. 이런 끊임없는 탐색 속에서만이 인간은 점점 더 소박해지고 진지해져서 모든 수식을 버리고 본질을 이해하고 추구하는 최고의 기술입니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자신의 스타일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스타일을 발견한다는 것은 죽음과 맞서 싸울 무기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효과적으로 삶을, 그리고 빛을 지켜낼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무기는 그뿐인지도 모릅니다.


(246)

진정한 엘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 내 영혼의 가치에 어울리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아주 특별한 천분, 곧 자신만의 스타일에 어울리는 삶을 산다는 뜻이다. 내 스타일은 피아노, 믿음, 글쓰기에 대한 희망이 아닌가. 내 몸은 또 다른 생명을, 음악을, 결혼을, 음을 품고 있다. 내게 도전하는 음악, 나를 충족시키는 음악은 나를 무화시킬 수도, 나를 나 이상으로 들어 올릴 수도 있다. “당신의 삶이 음악의 연장선상에 놓이기를.”이라고 그 교사는 초입에서 그는 나에게 열쇠를 주었다. 세상을 여는 그 열쇠는, 나누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황폐하다는 의미일 터였다.


(247-248)

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가? 우리 자신이 아니라면 아무도 그 일을 할 수 없다. 행복이 타인에게서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게으르고 무분별해서 자신의 정수에서 행복을 놓치는 것과도 같다. 또한 상대의 본질적인 자유를 빼앗고 그것을 훼방하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피상적인 행복에 만족하지 않는 데 있다. 훌륭한 그림이나 시나 노래에 스스로 헌신하듯 행복에 자신의 삶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249)

갈매기 한 마리가 작은 배의 돛 위에서 웃음을 터뜨렸고, 세 마리 제비가 하늘을 가르며 태양을 향해 날아올랐다.

나는 나 자신을 축소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활짝 펼치고 싶었다.

또다시 나는 내 운을 시험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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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21 11:1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엘렌 그리모 글도 잘 쓰는 군요
피아노 연주 실력도 뛰어나지만
이분 늑대도 키운다고 합니다 ^ㅅ^

bookholic 2021-08-21 15:24   좋아요 3 | URL
이 책에서도 뉴욕 늑대 센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늑대에게 물린 에피소드도...ㅠㅠ
정말 대단하신 분 같아요~~

mini74 2021-08-21 17: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요즘 음악에 홀릭하신건가요 ㅎㅎ 앞에 요스케 이야기도 재미있고. 이 책도 문장이 참 좋아요 *^^*

bookholic 2021-08-22 06:10   좋아요 0 | URL
ㅎㅎ 재미있다고 하는 책들 찾아 읽다가 우연히 겹쳤어요~~
저는 scott님이 들려주는 음악으로 충분~~^^
즐거운 일요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