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아니, 많이 사용했지하고 소장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저 그뿐이었어.” 프리뮬러꽃과 전원 풍경은 한 가지 중대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것들은 그냥 손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자연에 대한 애착은 공장을 분주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하층계급의 경우는 자연에 대한 애착은 포기하도록 결정했던 것이다. 자연에 대한 애착은 포기시키지만 운송가관을 사용하는 경향은 그대로 보존시킨다. 다시 말해서 자연을 증오토록 하면서도 그들을 시골로 보내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지 프리뮬러꽃이나 전원 풍경에 대한 사랑보다 운송기관을 사용케 할 보다 건전한 경제적 이유를 찾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59-60)

그런데 가정은 물질적으로 누추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누추했다. 물질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것은 토끼집과 같았다. 지독히 협소하고 밀집생활의 마찰로 열기가 가득 차고 감정이 새어나왔다. 가족집단의 성원들 사이에는 질식시킬 것 같은 친밀감이 있었고, 위험하기 짝이 없고 광적이고 추잡한 관계가 있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광적으로 애지중지했다. (물론 자신이 낳은 자식을 말한다.) 마치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품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어미 고양이는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우리 아기, 우리 아기하고 한없이 반복하여 말할 줄 알았다.

 

(86-87)

, 이것이 바로 진보라는 것이야. 노인도 일하며 노인도 이성과 교합하며 노인에게도 시간이 없게 되었지. 쾌락으로부터 벗어날 여가가 없으며 잠시도 앉아서 생각할 시간이 없어졌지. 또한 불행히도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무의미한 시간의 터널이 입을 벌린다면 항상 소마가 대기하고 있는 거야. 유쾌한 소마가 있지. 주말에는 반 그램, 휴일에는 일 그램, 호사스런 동방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이 그램, 달나라의 영원한 암흑 속에서 잠자고 싶으면 삼 그램, 그곳에서 돌아오면 시간의 터널을 빠져 저쪽편에 와 있게 되는 거야. 매일매일의 노동과 기분전환이라는 견실한 대지에 안착되는 것이지. 촉감영화로부터 다른 촉감영화로, 이 여자로부터 탄력 있는 여자로, 전자 골프 코스로부터 다른……”

 

(269-270)

이 필자를 감시하기 바람. 세인트 헬레나 섬의 해양생물학 연구소로 전보발령을 내릴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서명을 하면서 가엾게 되었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걸작이다. 하지만 일단 목적론적 해석을 용인하기 시작하면-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아는가! 그것은 상층계급 사이에서 확고한 사상을 지니지 못한 자들이 받은 조건반사 교육을 백지로 돌릴 가능성이 있는 사상이다. 지고의 선()으로서의 행복에 대한 그들의 신념을 상실케 하고 그 대신 인간의 최종목적이 어느 피안에 있다고 믿게 할 위험이 있는 사상이다. 최종목적이란 현재의 인간 영역 밖에 있으며 인생의 목적이란 행복의 유지가 아니라 의식의 강화와 세련이며 지식의 확대라는 믿음을 심어 줄 위험이 있는 사상이다. 사실 그것이 옳은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총통은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의 여건으로서는 용인할 수 없다. 그는 다시 펜을 들어 출판불허라는 단어 밑에다 두 번째 줄을 그었다. 먼저 그었던 줄보다 더 두껍고 더 진했다. 그는 다시 한숨을 지었다. ‘행복에 대한 사색을 허가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하고 그는 생각했다.

 

(336)

우리의 세계는 <오셀로>의 세계와 같지 않기 때문이야. 강철이 없이는 값싼 플리버 승용차도 만들 수 없어. 사회의 불안정이 없이는 비극을 만들 수 없는 것이야. 세계는 이제 안정된 세계야.인간들은 행복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단 말일세. 얻을 수 없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 그들은 잘 살고 있어. 생활이 안정되고 질병도 없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하게도 격정이니 노령이란 것을 모르고 살지. 모친이나 부친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내라든가 자식이라든가 연인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대상도 없어. 그들은 조건반사 교육을 받아서 사실상 마땅히 행동해야만 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뭔가가 잘못되면 소마가 있지. 자네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창 밖으로 집어던진 것 말일세, 자유라!” 총통은 여기서 웃음을 터뜨렸다. “델타 계급들이 자유가 무엇인지 알기를 기대하다니! 그들이 <오셀로>를 이해하기를 기대하다니! 정말 자네답군!”

 

(339)

우리는 행복과 안정을 신봉하네. 알과 계급으로만 이루어진 사회는 불안정하고 비참해지지 않을 수 없는 걸세. 알파 노동자로 채워진 공장을 상상해 보게-다시 말해서 좋은 유전인자를 지니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책임을 떠맡는 일이(제한이 있겠지만) 가능하게끔 조건반사적으로 단련된 개별적으로 상호연관이 없는 인간들로 채워진 경우를 상상하란 말일세. 그것을 상상해 보란 말일세!”하고 그는 반복했다.

 

(343)

벌써 일세기 반 전에 실험이 행해졌었지. 아일랜드 전역에 걸쳐 네 시간 노동제를 실시했던 거야. 결과가 어떠했는지 알겠나? 다만 불안과 소마 소비량의 증가라는 결과가 따라왔었네. 단지 그것뿐이었지. 세 시간 반이나 늘어난 여가는 행복의 원천이 되기는커녕 그 여가로부터 어떻게 하면 도피할 수 있을까 하는 강박관념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말았단 말일세. 발명국에는 노동절약을 위한 계획이 산적돼 있네. 수천 가지의 계획서가 작성되어 있단 말일세.”

 

(358)

바로, 우리들, 즉 현대 세계야. ‘앞길이 창창한 젊은 시절에만 신에 의존하지 않는다. 신으로부터의 독립은 최후까지 인간을 안전하게 인도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었지? 그런데 우리는 지금 죽을 때까지 청춘과 번영을 잃지 않게 되었단 말일세. 그 결과가 무엇이냐고? 분명 우리는 신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된 걸세. ‘종교적 감정이 모든 손실을 보상해 줄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네만 우리에겐 보상할 손실이란 것이 없는 형편인걸. 종교적 감정은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말았어. 젊음의 욕망이 쇠퇴하지 않는 마당에 왜 구태여 그것의 대용품을 찾아나서겠는가? 최후까지 옛날의 모든 바보스러운 유희를 즐길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기분 전환의 대용품을 찾아나서겠나? 우리의 심신이 계속적으로 활동의 기쁨을 누리는 마당에 왜 휴식을 필요가 있겠나? 소마가 있는데 위안이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사회의 질서가 있는데 불변부동의 그 무엇이 왜 필요하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

그래서 힘들었다. 일이 고단해서가 아니라, 내가 진짜 보고 싶은 것과 실제로 보여줄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 때문이었다. 결국 방송국을 나왔다.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더는 내 성격을 속이기 어려웠다. 나는 원래 한곳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직접 움직이며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 가깝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보고 싶은 장면을 끝까지 따라가고 싶었다.


(22-23)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다. 상을 받아도, 시청률이 잘 나와도 정작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그렇게 점점 내 이름을 걸고, 내 시선으로 세상을 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한편으로는 무능하고 둔한 시스템 안에 갇혀 있는 것보다 차라리 나 혼자 하는 편이 낫겠다는 오만한 자신감도 있었다. 근거 있는 확신이었고 동시에 무모한 객기였다. 하지만 때로는 그 정도 객기가 있어야 인생의 방향을 틀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안전한 울타리를 부수고 다시 길 위로 나섰다. 남의 이름 아래 잘 만든 결과물을 납품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실패하고 내 이름으로 살아남는 기록자가 되고 싶었다.


(58)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원시의 아이들을 상상하며 33시간의 비행과 이틀간의 이동을 버텨온 우리에게, 정글 한복판의 미니마우스는 청바지를 입은 원주민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시간이 멈춘 박물관이 아니었다. 디즈니 캐릭터가 카누를 타고 들어오는 현대의 아마존이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뒤로 문명의 파도가 얼마나 깊고 빠르게 이 정글의 심장부까지 들이쳤는지 비로소 실감했다.


(71)

이들의 고민을 우리가 함부로 판단하거나 단정할 수는 없다. 전통을 지키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도 할 수 없고, 문명으로 나가는 것이 반드시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이들을 보면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아마존이나 한국이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내가 겪은 고생은 덜 겪었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을 너무 쉽게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 정글 깊숙한 곳에서 만난 그들의 고민은 낯설면서도 이상할 만큼 익숙했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106-109)

그 장면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죽은 원숭이도 안타까웠고, 크게 다친 개도 안쓰러웠다. 20년이 넘도록 다큐멘터리 PD로 현장을 다니며 이런 장면을 여러 번 보아왔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무뎌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불편하다. 그렇다고 내 기준으로 재단할 수도 없다. 하드자에게 사냥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냥 삶의 한 방식일 뿐이다. 인간도, 개도, 원숭이도 모두 각자의 생존을 걸고 있다. 직접 사냥하느냐, 돈을 내고 도축된 고기를 사 먹느냐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지. 우리 역시 다른 생명의 죽음 위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 과정을 보지 않을 뿐이고, 저들은 그 과정을 피하지 않을 뿐이다.


(126)

더욱이 최근 몇 년 사이 하드자를 둘러싼 풍경은 더욱 기괴하게 변했다. 내가 처음 이들을 만났을 때만 해도 그들은 카메라를 위해 준비된 연기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유튜버들이 하드자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연출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똑 같은 구도로 불을 피우고, 똑 같은 자리에서 춤을 추고, 카메라가 보기 좋은 각도에서 사냥 장면을 반복한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지내봤기 때문에 안다. 진짜 사냥은 그렇게 찍을 수가 없다. 그 거칠고 가시덤불을 뒤덮인 산을 짐승처럼 뛰어다니는 사람들이었다.


(134-135)

마네네라 불리는 이 축제는 우리 식으로 비유하면 설이나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조상을 기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토라자 사람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직접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 머리를 손질하고, 먼지를 털고,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어떤 집은 고인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고, 어떤 집은 선글라스를 씌워주고, 누구는 함께 산책을 하기도 한다.


(155-156)

토라자에서는 장례 전까지 고인을 완전히 죽은 사람으로 부르지 않고 아픈 사람이라는 뜻의 토 마쿨라로 여기며, 가족이 음식과 물, 담배를 바치는 관습이 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들은 죽음을 우리처럼 어느 한순간의 단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 함께 있는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 아침마다 인사하고 물을 떠다 드리는 일이 가능해진다. 누군가는 그런 일을 건너뛰었다가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기고 사고가 나고, 누구는 죽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우연인지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이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몸은 멈췄어도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 눈에는 낯선 믿음이지만, 이해하고 나면 이들의 일상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관은 방 안에 놓여 있지만, 그 방은 무덤이 아니라 여전히 가족이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이다.


(260-261)

이 위험한 곳이 이곳 아이들에게는 일종의 놀이터였다. 굶주린 악어가 도사리고 있는 악어장 위를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닌다. 심심하면 호수로 풍덩 뛰어들어 수영을 한다. 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장난감도 새끼 악어였다. 입을 리본처럼 생긴 끈으로 단단히 묶은 새끼 악어를 붙잡고 이리저리 들고 다니며 놀았다. 물뱀을 잡아 장난감처럼 만지기도 하고, 악어장 주변에서 이것저것 주워 와 제 나름의 놀잇감을 만들기도 했다. 떠내려온 페트병이나 캔 같은 것들은 따로 모아 두었다가 고물상에 팔았고, 바퀴 빠진 장난감이나 깨진 생활용품이 떠내려오면 그걸 주워서 소중하게 가지고 놀기도 한다. 위험과 가난이 뒤섞인 환경이었지만, 아이들은 그 안에서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놀고 있었다.


(273)

고민 끝에 우리가 악어를 한 마리 사기로 했다. 이곳에 묵는 동안 숙식비와 촬영비를 따로 지불했지만, 그사이 받은 호의와 도움을 생각하면 이런 방식으로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온전히 마음 편한 결정은 아니었다. 내가 온갖 오지를 다니면서 이것저것 잘 받아먹다 보니 그런 걸 좋아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내 선택으로 한 생명이 죽는다는 건 아무래도 껄끄럽다. 이 악어도 생긴 게 무서워서 그렇지 사는 동안 편했던 생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좁은 우리에 갇혀 일주일에 한 번 겨우 먹이를 받아먹는 것도 서러운 마당에 결국 사람 손에 잡혀 죽는다고 생각하면 그 처지가 안쓰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사랑들에게는 실제 도움이 되고, 우리에게는 이곳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 되는 만큼, 내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10-111)

설령 그 사진이 잿더미 속에서 재생되어 나온다고 해도 지금으로서는 증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사진을 발견했을 당시, 오세아니아는 유라시아와 전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그 세 사람은 분명히 유라시아의 정보원에게 나라를 팔아먹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 후로 두 번인가 세 번쯤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윈스턴으로서는 몇 번의 변화가 더 일어났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자백서는 본래의 사실이나 날짜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될 때까지 몇 번이고 고쳐 쓰이곤 하기 때문이었다. 과거는 이미 변조되었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조될 것이다. 그를 악몽처럼 괴롭히는 것은 그 같은 엄청난 사기 행위가 행해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과거를 날조함으로써 즉각적으로 얻게 되는 이점이 무엇인지는 명백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동기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동기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펜을 들고 글씨를 썼다.

나는 방법은 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른다.

 

(216-217)

이건 예외적인 경우야. 사람이 죽는 문제하고는 달라. 당신은 어제를 비롯한 과거가 깡그리 지워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직 과거가 어딘가에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건 저 유리덩어리처럼 아무 말도 전하지 못하는 물체일 뿐이야. 이미 우리는 혁명 당시와 그 이전 시대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모든 기록은 폐기되거나 날조되었고, 책이란 책은 모두 다시 쓰였으며, 모든 그림도 다시 그려졌어. 또 모든 동상과 거리와 건물에는 새 이름이 붙었고, 역사적인 날짜마저 모두 새롭게 고쳐졌지. 물론 이런 작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행해지고 있어. 한마디로 역사는 정지해 버린 거야. 이젠 당이 항상 옳다고 하는 이 끝없는 현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물론 나는 과거가 날조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 하지만 나 자신이 날조 행위를 하면서도 내게는 이것을 증명할 길이 전혀 없어. 일단 날조되고 나면 그 어떤 증거물도 남아 있지 않게 되니까. 결국 유일한 증거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인데, 과연 사람들이 내 기억을 믿어 주기나 할까? 그런 장담할 수 없는 일이야.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나는 딱 한 번 그 사건 이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증거를 가졌던 적이 있었어.”

 

(263-264)

그러나 이 같은 식의 일률적인 부의 증가는 계층적 사회의 파괴를 초래할 위험(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가 파괴다.)을 안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적게 일하고 배불리 먹으며 목욕탕과 냉장고가 있는 집에서 자동차와 비행기까지 소유하고 산다면, 사회의 핵심을 이루는 불평등 구조는 틀림없이 붕괴되고 말 것이다. 만약 부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개인적 소유와 사치라는 의미에서 부가 공평히 분배되는 한편으로 권력이 소수 특권계급에 의해 장악되는 사회를 상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회는 오랫동안 안정을 유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시간적 여유와 함께 경제적 안정을 똑같이 누리게 되면 빈곤에 허덕인 나머지 사회에 무관심했던 대중이 마침내 눈을 뜨게 되고, 또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결국은 소수의 특권층이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됨으로써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계층 사회의 장기적인 존속은 가난과 무지를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하다. 20세기 초 몇몇 사상가들이 꿈꾸었던 농경 사회로의 회귀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 그것은 거의 전 세계에 걸쳐 준본능(準本能)이 되다시피 한 기계화 경향과 맞지 않기로 하거니와 공업에서 낙후된 국자는 군사적으로 무력해질 뿐만 아니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공업 선진국가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82-283)

지배계급들은 언제나 자유사상에 어느 정도 물들어 있었고, 무슨 일이든 대충대충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데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을 중시한 나머지 백성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중세의 가톨릭교회마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관대한 편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과거의 어떤 정권이든 시민들을 끊임없이 감시할 힘이 없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인쇄술의 발달로 보다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영화와 라디오로 인해 한층 용이해졌다. 특히 텔레비전의 발전과 함께 기계 하나로 동시에 송수신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고했다. 모든 시민, 적어도 요주의 인물들을 하루 24시간 내내 경찰의 감시 아래 둘 수 있고, 다른 모든 통신망은 폐쇄시킨 채 정부 선전만 듣도록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정부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게 하고 의견 통일까지 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287-288)

초기의 위태로웠던 시절에는 당이 세습 체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반대 세력을 무마시키는 작용을 했다. 소위 특권 계급이라는 것을 상대로 투쟁해 온 지난 시대의 사회주의자들은 세습적이 아닌 것은 영구적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그들은 과두 체제가 영속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굳이 드러내 놓고 사실 그대로를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며, 세습적인 귀족 사회는 늘 단명했지만 가톨릭교회 같은 선임 체제는 수백,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과두 체제의 본질은 아버지에게 아들로 이어지는 부자 세습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세계관이나 생활양식 등을 산 사람이 고수하는 데 있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후계자를 지명할 수 있는 한 지배계급이다. 당은 그들의 혈통이 아니라 당 자체를 영속시키는데 관심이 있다. 계층적 구조를 언제나 동일하게 유지하는 한 누가 권력을 장악하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362)

윈스턴은 한동안 말문을 열지 않았다. 피로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열정에 들뜬 광적인 빛이 오브라이언의 얼굴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는 오브라이언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오브라이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은 자체의 목적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나약하고 비겁한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를 수호할 수도 없거니와 진리와 접할 줄도 모른다. 당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 자체가 자기보다 강한 타인에 의해 통치되거나 체계적으로 기만당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와 행복 중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하는데, 대부분 행복을 더 선호한다. 당은 약자의 영원한 수호자이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희생하며, 선을 구현하기 위해 악을 행하는 헌신적인 집단이다.

 

(366)

우리는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에 물질도 지배할 수 있네. 실재란 머릿속에 있지. 자내도 차츰 알게 될 걸세. 우리가 못하는 건 없네. 눈에 보이지 않게 할 수도, 공중을 날 수도 있지. 그 외 무엇이든 할 수 있다네. 원한다면 비눗방울처럼 이 마루 위를 둥둥 떠다닐 수도 있지. 당이 원하지 않으니까 안 하는 것뿐이네. 자연의 법칙에 대한 19세기적인 사고방식을 버려야만 하네.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창조하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2)

나는 앞에서 우리를 버리고 간 아버지가 홀연히 찾아와 고무공을 사준 것을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때 얼마나 아버지가 그리웠는지. 하지만 나를 꼭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이미 아버지를, 아버지의 사랑을 포기한 상태였다. 단 한 사람, 어머니만을 믿고 의지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머니마저 나를 버리고 간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유곽의 기생으로 팔려 한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어머니는 나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그저 고달픈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팔아버리려고 한 것이 틀림없다.

 

(121-122)

이웃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근처 들판에서 놀곤 했다. 내가 집에 돌아와 마당 청소 등을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누구누구야, 하며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가위바위보를 하거나 토라지거나 화내거나 울거나 웃거나 하는 소리가 손에 잡힐 듯 들려왔다. 뜰 앞 울타리 사이를 비집고 보면 여자아이 남자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한데 모여 오비가 땅에 끌리는 줄도 모르고 뛰어놀았다. 잡거나 잡히거나 하는 모습이 잘 보였다. 얼마나 즐거울까. 얼마나 자유로울까.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가난뱅이가 부러웠다. “우리 집은 말이야. 가난뱅이들과는 격이 달라. 아이를 밖에 내팽개쳐둘 순 없어.”라고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고, 고상한 교육방침에 따라 집에 갇혀 있는 내 자신이 불쌍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말이 단지 나를 노예처럼 부리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더욱 슬퍼졌다.

 

(185-186)

아아, 기차여! 7년 전 너는 나를 속이고 이곳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고통과 시련 속에 나를 혼자 두고 갔다. 그동안 너는 몇백 번 몇천 번 나를 지나쳐 갔다. 늘 곁눈으로 흘끗 보며 말없이 지나쳤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너는 나를 데리러 왔구나! 너는 나를 잊지 않았구나. 아아. 어디든 데려가주렴! 얼른, 얼른! 그저 빨리 여기에서 벗어나게 해주렴!’

 

(262)

나의 불행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요코하마에서, 야마나시에서, 조선에서, 하마마쓰에서, 나는 줄곧 학대당했다. 나는 자신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모든 과거에 감사한다. 나의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도, 외삼촌에게도, 이모에게도. 아니, 내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고, 가는 곳마다 모든 환경 속에서 학대받을 만큼 학대받은 나의 운명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나의 아버지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에서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다면, 아마 나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성격,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에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적으로 불운한 탓에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벌써 열입곱 살이 되었다.

 

(331)

사회주의는 나에게 특별히 새로운 것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겪어오면서 느낀 감정들이 정당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줄 뿐이었다. 나는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그 때문에 나는 돈을 가진 자로부터 혹사당하고 괴롭힘을 받았으며 들볶였고 억압당했다. 또한 자유를 빼앗겼으며 착취당하고 지배당했다. 이런 나는 힘을 가진 자들에 대해 항상 마음 속 깊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조선의 할머니 집 아인 고 씨를 동정했던 것도, 불쌍한 개마저 동지처럼 느꼈던 것도, 그 외에 이수기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할머니 주위에서 일어난 많은 일에서 억압당하고 고통받고 착취당하는 불쌍한 조선인에 대해 한없이 동정했던 것도 이러한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던 반항심과 동정심은 순식간에 사회주의 사상에 의해 불이 붙어버렸다.

 

(360)

실제로 당시의 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일에 열정을 갖던 당시 나는 고학을 해서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확실히 깨달았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고학을 하더라도 훌륭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훌륭하다고 대접받는 사람만큼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한 진정한 만족과 자유를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나 자신이어야만 한다.

 

(373)

나는 당신 가슴속에서 내가 찾아 헤매던 것을 발견했어요. 당신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해요.”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나는 하찮은 사람이오. 나는 그저 죽을 수 없어 살고 있는 사람이오.”

그는 이렇게 다소 냉소적으로 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25-226)

훗날, 동이는 우물가에서 들었던 울음소리가 실은 귀신의 소리가 아니라 아코디언이 자신에게 들려주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아코디언이 전해주는 소리에 늘 슬픔과 분노만 담겨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거기엔 수많은 사연과 감정이 뒤엉키고 산 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가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동이는 연주를 통해 그 이야기를 다시 세상에 풀어놓았다. 아코디언을 치는 동안, 슬픔과 고통은 깊은 깨달음으로 정화되고 안개처럼 뿌옇게 가려졌던 진실은 거울처럼 선명해졌다. 그렇게 동이는 글자가 아닌 소리를 통해 벽 너머의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더듬더듬 찾아가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