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

그 노트에는 아인슈타인이 통일장이론(unified field theory)’이라 불렀던 궁극의 이른이 미완의 상태로 적혀 있었다. 그의 목표는 신의 마음이 담겨 있는단 한 줄짜리 방정식으로 우주의 삼라만상을 설명하는 것이었으나, 끝내 신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2)

* 빅뱅 직전에 어떤 일이 있었으며, 무엇이 빅뱅을 유발했는가?

* 블랙홀의 내부(또는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는가?

* 시간여행은 가능한가?

* 우리 우주에는 웜홀(wormhole)이 존재하는가?

* 4차원 이상의 고차원 공간은 정말로 존재하는가?

* 우리 우주 외에 다른 우주가 존재하는가? , 다중우주 또는 평행우주가 존재하는가?


(27)

뉴턴이 발견한 운동 및 중력이론은 기존의 운동법칙을 하나의 원리로 묶은 최초의 통일이론이자, 인간의 지적 능력이 낳은 최고의 산물이다. 18세기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포프는 뉴턴에 대한 존경을 담아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자연의 법칙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뉴턴이 있으라!”는 신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났다.


(39)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전기와 자기를 하나로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수학적으로 대칭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맥스웰의 방정식에는 이중성(duality)’이라는 대칭이 존재한다. (전자기파)에 포함된 전기장을 E라 하고 자기장을 B라 했을 때, E B를 맞바꿔도 맥스웰의 방정식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이중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전기와 자기가 동일한 힘의 두 가지 측면임을 의미한다. 맥스웰은 E B 사이의 대칭을 이용하여 전기와 자기를 통일했고, 그 덕분에 19세기 과학은 위대한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55)

시간과 공간이 변한다면, 물질과 에너지를 포함하여 당신이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도 변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체중은 증가한다. 그런데 이 초과질량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움직이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면, 초과 질량의 출처는 바로 운동에너지이다. 이는 곧 운동에너지의 일부는 질량으로 변환되었음을 의미한다.


(83)

양자의 개념은 1900년에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제기한 간단한 질문에서 탄생했다. ‘뜨거운 물체는 왜 빛을 발하는가?’ 물체를 불에 달구면 특정한 색의 빛이 방출된다. 인류는 이 사실을 수천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릇을 만드는 도공들은 가마의 온도가 수천 도에 도달하면 그 안에 넣은 도기가 적색에서 황색을 거쳐 청색으로 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이것은 성냥이나 촛불, 또는 라이터만 있으면 즉석에서 확인 가능하다. 촛불에서 가장 온도가 높은 아래쪽은 푸른색을 띠고, 위로 올라갈수록 온도가 낮아지면서 노란색-붉은색으로 변한다.)


(96)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두고 성공을 거둘수록 더욱 멍청한 이론처럼 보인다고 했고, 전자파의 개념을 처음 도입했던 슈뢰딩거조차도 자신의 이론에 대한 확률적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도 일부 물리학자들은 파동이론의 철학적 의미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이는 중이다. 당신이 어떻게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노벨상 수상자인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양자역학과 관련하여 내가 단언할 수 있는 사실은 한 가지뿐이다. 그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119-120)

지난 100년 사이 최고의 발명품으로 손색이 없는 트랜지스터를 예로 들어보자. 이 조그만 회로소자는 장거리 통신 네트워크와 컴퓨터, 인터넷 등 정보혁명을 견인한 일등공신이다. 간단히 말해서, 트랜지스터는 전자의 흐름을 제어하는 일종의 밸브이다. 수도 파이프에서 장착된 밸브를 돌려서 수량을 조절하는 것처럼, 트랜지스터는 홍수처럼 밀려오는 전자들 중 극히 일부만 통과시키는 초미세 전자밸브의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트랜지스터를 이용하면 작은 신호를 크게 증폭할 수 있다.


(132)

약력은 다양한 원자의 핵을 단단하게 유지시킬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원자핵이 더 작은 입자로 붕괴되는 과정에 관여한다. 앞서 말한 대로 지구의 내부가 뜨거운 이유는 그곳에서 방사성붕괴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산폭발과 지진을 일으키는 막대한 에너지의 원천은 약력인 셈이다. 중성자는 상태가 불안정하여 양성자와 전자로 붕괴되는데(이것을 베타붕괴beta decay라 한다.), 붕괴 전과 붕괴 후의 물리량이 보전되려면 제3의 입자가 도입되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유령입자로 알려진 뉴트리노이다.


(141-142)

둘째, 표준모형은 각기 다른 힘을 서술하는 여러 이론을 인위적으로 묶어놓았기 때문에 다소 부자연스러우면서 누더기 같은 인상을 준다(한 물리학자는 표준모형을 칭찬하는 것은 마치 오리너구리와 땅돼지, 고래를 하나로 묶어서 희한한 동물을 만들어놓고 자연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라고 우기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동물을 예뻐할 생명체는 엄마밖에 없다고 말했다.)


(160)

블랙홀과 관련된 책과 논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블랙홀에서는 아무것도 탈출할 수 없다고 했지만, 호킹은 이것이 양자이론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양자역학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블랙홀이 완전이 검은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빛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때문인데, ‘완벽한 암흑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확정성원리에 위배된다. 양자세계에서는 암흑조차도 불확실하다. 그리하여 호킹은 블랙홀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양자복사quantum radiation를 방출한다는 혁명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179)

1920년대에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우주에 적용하다가 난관에 봉착했다. 당시 대부분이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하지도, 수축되지도 않으면서 항상 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서 얻은 해는 우주가 격렬하게 팽창하거나 수축된다고 강변하고 있었다(아인슈타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것은 리처드 벤틀리가 제기한 질문의 해답이었다. 중력이 작용해도 우주가 붕괴되지 않는 이유는 팽창하는 힘이 중력을 압도할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다).


(206)

* 대칭은 무질서에서 질서를 만들어낸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와 표준모형은 다양한 원소와 소립자로 매우 혼란스럽지만, 대칭을 도입하면 깔끔하게 정리된다.

* 대칭은 이론의 공백을 메워준다. 대칭을 도입하면 이론에 나타난 공백으로부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와 소립자를 예측할 수 있다.

* 대칭은 무관해 보이는 객체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대칭은 시간과 공간, 물질과 에너지, 전기와 자기, 그리고 페르미온과 보손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더 큰 항목으로 통일시킨다.

* 대칭은 의외의 자연현상을 알려준다. 대칭은 반물질과 스핀, 쿼크 등 새로운 입자와 물리량을 예측했으며, 결국 사실로 판명되었다.

* 대칭은 이론을 망칠 수도 있는 의외의 결과를 제거해준다. 양자보정에서 나타난 무한대와 변칙은 대칭을 통해 제거할 수 있다.

* 대칭은 고전적인 이론을 업그레이드해준다. 끈이론의 양자보정은 매우 엄밀한 과정이어서, 원래 이론을 수정하여 시공간의 차원을 결정해준다.


(212-213)

홀로그램 원리hologram principle라는 기이한 이중성도 예상치 못한 발전을 이끌었다. 홀로그램이란 3차원 물체의 모든 정보를 2차원 플라스틱 평면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평평한 면에 레이저를 쪼이면 갑자기 허공에 3차원 입체 영상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3차원 영상의 모든 정보가 2차원 평면스크린에 저장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영화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나 로봇 R2-D2를 실물처럼 볼 수 있고, 디즈니랜드에 있는 유령의 집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는 유령을 만들 수도 있다.


(216)

스티븐 와인버그는 끈이론을 북극점을 찾기 위한 인류의 노력에 비유했다. 고대에 작성된 모든 지도에는 북극점에 커다란 구멍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그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구 어디서나 나침반의 바늘은 그 신비한 장소를 가리켰지만, 북극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북극점이 존재한다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하나도 없었기에, 일부 사람들은 북극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9년에 미국에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가 마침내 북극을 정복했다.


(225)

초대형 가속기가 완성되면 끈이론에서 예측된 미니블랙홀의 존재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끈이론은 중력과 소립자를 모두 포함하는 만물의 이론이므로, 물리학자들은 가속기에서 미니블랙홀이 발견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미니블랙홀은 진짜 블랙홀과 달리 에너지가 입자 몇 개 분량밖에 안 되기 때문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매순간 지구로 쏟아지는 우주선의 에너지가 미니블랙홀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도 지구는 멀쩡하니까, 미니블랙홀이 지구를 삼킬 걱정은 붙들어 매도 된다.)


(233-234)

인류원리는 우리 우주와 관련된 이상한 실험적 사실을 설명해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의 모든 상수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세팅된 것 같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미국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우주는 마치 우리가 등장할 것을 처음부터 예견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핵력이 지금보다 조금만 약했다면 태양이 점화되지 않아서 태양계는 암흑천지가 되었을 것이고, 강력이 지금보다 조금만 강했다면 태양은 이미 수십억 년 전에 연료가 고갈되어 죽은 별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핵력의 세기가 기적처럼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252)

그러나 이 세상을 이해할 때에는 증명 가능하고 재현가능하며 반증도 가능한과학을 동원해야 한다. 이것이 논지의 핵심이다.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면서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에 대한 평가는 평론가마다 각양각색인데, 이 상황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흐를수록 몇 개의 방정식으로 축약되면서 더욱 단순하고 강력해진다. 이것이 바로 물리학의 매력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과학을 넘어선 영역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선뜻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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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노인들은 도망치지만 어디로 갈지 모른다.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 ‘그들의 집은 다달이 오르탕시아 요양원의 거주비를 대느라 매물로 나왔다. 그들의 정원은 텅 비고, 그들의 고양이는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이제 그들의 집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만, 그들 각자의 서가에서만 존재한다. 나는 그 각각의 서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157-158)

빨간색 윗도리를 입었어야지, 그게 더 어울리는데, 오늘은 머리가 엉망이네, 방 좀 정리해라, 물건들 좀 여기저기 두지 마, 네가 내 립스틱 가져갔었구나, 그래, 알았어 우리 강아지, 이건 벗기는 것 좀 도와주렴, 가게에 같이 가자, 오후 4시에 데리러 갈게, 네가 물어봐서 대답한 거야, 시간이 없구나, 숙제는 했니, 이게 다 뭐니, 저것 봐, 너무 예쁘지, 그건 안 돼, 이걸 사줄게, 아예 시작도 하지 마라, 식탁 좀 차려줘, 아니, 안 돼, 안 돼, 좋아, 알았어, 정말 이번 한 번뿐이다,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마, 저녁 6시 이후엔 초콜릿이나 탄산음료 금지야, 아침 안 먹으면 못 간다, 외투 입어, 밖이 추워, 이 난장판이 다 뭐니, 양치질은 했니, 언제 다 클래, 가서 샤워해, 염려 마, 괜찮으니까, 사랑해, 잘 자렴, 오늘 아침엔 왜 이렇게 예쁠까, 그거 너한테 아주 잘 어울린다, 네 역사지리 선생님이 전화하셨더라, 늦었다, 이제 그만 자렴, 수학이 얼마나 중요한데, 괜찮아, 우리 아기, 저 남자애는 누구니, 넨가 독서 싫어하는 거야 알지만 그대로 이 책은 좋아할 거야, 몇 시에 데리러 갈까, 그 애 부모님은 뭘 하시니, 전깃불 꺼, 맨발로 걷지 마, 병원 가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토 달지 말고, 이리 와서 안아줘, 말 안 들으면 아빠 부른다.


(297)

루이 할아버지네 카페를 매각한다는 소식은 밀리에 폭탄을 투하한 듯한 충격을 안겼다. 남자들 대부분이 거짓 루머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카페 앞에 모여들었다. 엘렌 엘이, 자기들의 엘렌 엘이 자기들의 카페를 판다니! 너나없이 모두 모였다. 늙은 사람들, 젊은 사람들, 은퇴자들, 알코올의존자들, 한창때의 노동자들, 농부들, 용감한 사람들, 게으른 사람들, 퇴역 군인들, 수공업자들, 사제, 노동자들, 관리반장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녀가 그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날 수 있단 말인가? 그녀 없이 그들은 어쩌라고? 이제 그들의 바짓단 길이는 누가 맞춰주고, 주중에 그들이 먹고 마실 것은 누가 제공하며, 그들의 똑 같은 푸념은 누가 들어주고, 담배는 누가 팔고, 보들레르는 누가 돌보고, 1등처럼 3등까지 경주마 순위는 누가 예상해주고, 누가 그녀처럼 웃어준단 말인가? 그들 모두가 아침과 정오와 하루 끝의 진액을 잃은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일상의 골칫거리, 돈 걱정, 아이들, 아내, 꼬박꼬박 가져와야 할 월급의 압박 속에서, 카페 문을 밀고 들어와 두서너 마디 흰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만큼, 이 술병들의 정원에 들어서는 것만큼 위안이 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루이 할아버지 카페는 그들이 마주치고, 악수를 나누고, 공장과 납품과 가축과 고용주의 수확에 대한 정보와 최신 뉴스들을 교환하는 교차로였다. 그곳은 겨울에도 늘 따뜻했다. 엘렌 엘이 직접 난로의 장작을 지켰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에선 늘 좋은 냄새가 났다. 그것이 정오에 제공되는 단일 메뉴의 냄새든 장미 향이든. 좀 취했다고 장미 향 좋은 걸 모르는 건 아니니까. 라디오가 뉴스와 사랑 노래를 흘려 보내며 시간에 리듬을 부여했고, 그들이 한 잔의 커피나 술에 입술을 적시는 사이 삶은 제각각 흘러갔다. 가볍게, 너무나 가냘파서 한 손가락으로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이상화된 여인 엘렌 엘만큼이나 가볍게.


(308-309)

그동안 그녀는 이 순간을 수천 가지 상황으로 상상해왔다. 낮에, 잠에, 저녁에, 겨울에, 정오에, 일요일에, 여름에. 하지만 그녀가 카페 밖에 있고 그가 안에 있는 이런 상황은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카페 문을 미는 것이 그가 아닌 그녀가 되리라는 것은. 그녀는 자신이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면 그가 그녀를 안아 올려 빙 돌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폭발하여 찬란한 광휘와 환희가 분출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왜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일들은 우리가 그것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것일까? 왜 모든 것이 결국 타이밍의 문제일까?


(402)

그녀가 명언을 남기고 떠났다. 세상엔 사람 수만큼의 새들이 있다. 그리고 사랑이란, 여러 사람이 같은 것을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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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그러니 가족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고, 법에 호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안나는 경찰과 법정이 자신을 돕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남편이 하는 짓은 대부분 법적으로 정당하며, 정당하지 않은 일들? 그런 것들은 안나가 입에도 담을 수 없다. 주님 앞에서조차. 로마에서는 어떤 경우 남편은 아내를 죽여도 된다. 순간적인 격정에서 비롯된 행위라면 죄가 되지 않는다. 여자의 생명에는 그 정도의 가치밖에 없다. 아니, 법은 그녀를 돕지 않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혼인 무효 청구를 할 수 있지만, 변호사를 고용할 돈도 없을뿐더러 그럴 돈이 있다 해도 서류가 도착하자마자 필리프는 그녀를 죽일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누가? 어떻게 빠져나갈 길을 찾을 수 있을까?


(234)

어째서지?” 지롤라마는 옆에서 몸을 말고 있는 고양이에게 묻는다. “로마의 총독은 아내를 죽도록 패거나 아예 죽이는 남자를 벌할 시간은 없으면서, 젊은 처녀의 명예를 짓밟는 남자를 벌할 시간은 없으면서, 어째서 남자 하나는 죽어 나자빠지면 이토록 어마어마한 수사를 벌이고 경찰을 잔뜩 동원해 감옥 하나를 용의자로 가득 채운단 말이냐? 어째서 남자의 목숨이 수레 가득한 여자들의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이냐??


(269)

뇌를 쉬게 하고 잠을 청하는 법:

빨간 장미 케이크 하나, 화이트와인 식초 한 숟가락, 달걀흰자 하나, 여성의 젖 세 숟가락을 섞여 가열 접시에 올려 숯불에 데운 뒤 장미 케이크를 접시 위헤 올리고 같이 데운다. 육두구 하나를 케이크 위에 올리고, 두 겹 천 사이에 놓은 뒤, 열기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뜨겁게 하여 이마에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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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의경은 강인한 생명력이란 결국 에 대한 항구적이고 독자적인 재생 의지에 달려 있음을 인식했다. 살아남은 개개의 객체들이 때로는 잘려나간 부위를 때로는 상처 입은 부위를 스스로 복원시켜 생명을 연장하였고, 자율적인 복원 능력을 상실한 것들은 결국 도태되고 소멸해버리고마는 진정한 생명의 원리를 의경은 오히려 생물학의 연구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작고 보잘것없는 생명체의 놀라운 재생력에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생의 신비에 감동했다. 그것은 단지 실증적 실험의 결과로써 뿐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생의 본질을 직접 볼 수 있게 하는 특별한 경험세계였고, 의경은 바로 그 본성에 포진해 있는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과 그 실재를 재생의 의미로 정의하였다.


(106-107)

한국의 지성인들은 대부분은 아주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습자를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서체를 획득하게 됩니다. 그것은 개개인이 지향하는 정신적 이데아를 미적인 것으로 표상하는 하나의 도구였습니다. 사람들은 개성을 담은 서체로써 그때그때 강하게 혹은 유연하게 자기 사상을 표출하기도 하고, 동시대인과의 예술적 세계관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서예는 그 자체로 한국의 전통문화입니다. 그것은 나를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생명의 원동력이면서, 동시에 언제 어디서든 나의 영혼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게 하는 예술혼의 원천이지요. 사람들은 가장 독특하면서도 난해한 글자체인 초서로 운()에 갇혀 있는 시 문학을 아주 자유분방하고 추상적인 회화예술로 바꾸어 놓지요. 붓은 나 자신을 아주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도구입니다.


(115)

유럽인들은 낯선 나라 사람들의 이름을 말할 때 최대한 빠르고 불분명하게 중얼거리는 나쁜 습관이 있다. (…) 내가 어떤 사람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였다. 나는 습관대로 내 이름 두 글자를 한 글자 한 글자 아주 정확하고 발음하여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나 그가 내 이름에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아서 나는 위대한 시인 이--백까지 소환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모든 노력은 그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내가 그에게 인사를 할 때마다, 그는 매번 내 이름을 틀리게 불렀다. 그는 한 번은 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 한 번은 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이라 부르기도 했다. 더욱이 그가 나를 어떤 교수에게 소개하면서 내 이름을 또 그렇게 불러서 나는 화가 났다. 그는 나 말고도 진짜 팅이라는 사람의 이름조차도 제대로 발음하지 않았다. 팅은 나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그는 지나치게 냉정하게 의례적인 것을 따지는 사람이어서 내가 머리도 잘 빗지 않고, 또 항상 나의 넥타이가 삐뚤어져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나는 이런 내 동료에게 창피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천 번도 더 내 본래의 이름을 고수하려 하였다.


(125)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고, 오직 이 종교만을 추종했다. 그들은 다른 모든 가르침을 그릇된 교리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미신이니, 우상숭배이니 하는 말들을 했고, 사람들을 기독교와 이교도로 신앙인과 비신앙인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진리라는 것이 오직 하나의 가르침에만 주어져야만 한다고 했다. 정말 새로운 개념 종교가 나타났다! 이후 사람들은 구교인지 아니면 신교인지 둘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물었다. 기독교인들은 한국 땅에서 자신들의 선교 임무를 수행해나갔다. 그들은 기독교 학교를 설립했고, 시민들을 교육하였다. 그들은 이 땅의 모든 우상 숭배자들을 몰아냈고, 당목을 베어냈고, 미신적인 종이형상과 신모(神帽)를 불태워버렸다. 새로운 가르침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곳곳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127)

늘 신을 향한 믿음 속에서 성장해온 한국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세 개의 낯선 종교들을 받아들였다. 중국의 유교, 인도의 불교, 팔레스티나의 기독교가 그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 모든 종교를 숭상했지만, 오히려 그 낯선 객들이 서로 화합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서로 싸우고 또 서로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런데 그런 종교들마저 이젠 유물론에 위협을 받고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 종교들이 언제 이 땅에서 유기될지, 또는 어느 하나가 다른 것들을 정복하게 될지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오늘날까지 한반도에서는 단 한 번도 종교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 민족은 그들의 땅에 들어온 모든 가르침에 감사하지 않았던가. 유교에서는 도적적 질서를, 불교에서는 절제를, 기독교에서는 이웃사랑을 배웠다. 그런데 유물론을 통해서는 무엇을 배워야 한단 말인가?


(142)

창공의 어두운 벨벳 속에 박혀있는 작은 은빛 점으로 빛나고 있는 허공의 별을 가리키며, 서양 사람들에게 저 별들은 아득히 먼 별 무리 어딘가에 있는 Altair Wega이지요. 두 별은 저기 하늘에서 서로를 바라보고는 있지만, 자존심이 강한 청년별과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소녀별은 서로를 찾을 수도 만날 수도 없지요. 그것은 두 성좌 사이에 바로 강물이 놓여 있기 때문이겠죠. 그 두 별 사이에 있는 너무도 광대한 은하수, 우리 고향에선 그 희뿌연 우윳빛 길을 은하수라고 부르지요.”


(204-205)

독일에서 이름난 잡지와 지역신문에서 연이어 화려한 찬사의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책은 매혹적인 삶으로 충만한 낯선 문화의 먼 나라 신비로운 이야기일 뿐 아니라, 마지막 행에 이르러 깊은 감동으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의 고국 땅에서 나온 큰 울림이다. 그곳에서 모든 것은 격정과 힘을 얻는다. 우리는 작가가 고향이라고 말하는 동양의 신비한 나라, 수천 년 동안 유지해온 심오한 정신과 본성 그대로의 순수성을 강탈했던 일본 군대의 포악성에 밤새도록 생각의 끈을 놓지 못했다. 이미륵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울쳐 있었고, 부유하게 태어난 그의 정신적 기질은 비슷한 성향을 지닌 중국의 문화를 섭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그때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어가게 된다.(…)

그는 자신의 이별이 그토록 오랜 세월 계속될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독일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이곳 독일에서 제2의 고향을 찾았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늘 연평도와 고요한 송림, 고향의 언덕, 그리고 한국에 두고 떠나온 사랑했던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너무도 섬세하고 순수한 책이다.”


(298)

이미륵은 절대 자유의 신봉자였다. 그는 오늘날의 교육이 개성을 억압하고 획일화시킨다고 인식했다. 그는 부모가 원하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주입하고 있고, 아이들은 스스로 지식을 깨우치기보다는 부모가 숟가락으로 떠넘겨주는 것을 떠받아 먹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아이들에겐 자유가 필요하고, 그 자유를 통해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충분히 쉬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론과 정치적 주제 포스터가 생을 구원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오직 인간 영혼의 가장 내면적인 가치를 울리게 했을 때 삶을 구할 수 있게 되고, 치유 받을 수 있게 된다고 역설했다. ‘인간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내적인 것으로부터 일어나야 하고, 의사는 피딱지와 오물딱지를 씻겨줄 뿐, 진정한 치유는 자기 속으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 아물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331)

그는 결코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 같다. 한국인 이미륵의 내면 깊숙이 깃들어 있었던 그의 사상과 그의 유산들. 그것은 지혜의 단편이고, 동양의 질서이고, 조화이며, 신의 장소이다. 꽃잎의 그림자는 꽃잎 아래 드리우고, 강줄기는 강바닥 속에서 결코 넘치는 일이 없으며, 밤을 배회하는 사람의 길 위에 뜬 달과 저 멀리 떠난 친구를 기다리며 잠들지 못하는 책상 위의 갓등도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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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어느 페이지의 낱말을 알아보고 큰소리로 읽는다. 그 순간 신()의 일부가 사라져가고 낙원에 첫 균열이 간다. 그렇게 또 다른 낱말이 이어진다. 온전했던 운주는 이제 이어지는 문장들에 불과하고 백지 속 유실된 땅들에 지나지 않게 된다. 아이는 학교에 가고, 학생의 신분이 된다. 그런데 이 유실에는 실제로 엄청난 행복이 존재한다. 글을 읽는 첫 경험. 책의 한 페이지를 해독하고 어렴풋한 형체들을 감지할 수 있게 된 첫 경험. 그것은 행복을 넘어서는, 정확히 말해 기쁨이라고 할 만한 무엇이다. 기쁨과 공포라 할 만한 무엇. 기쁨을 어김없이 공포를 수반하고 책들은 언제나 애도를 수반하기 마련이니까.


(14-15)

그런데 때론 어떤 사람들에게, 더 적은 수의,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름 아닌 독자들이다. 가던 길을 남들이 포기하는 여덟 살 혹은 아홉 살 무렵에 이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독서의 길로 뛰어드는 그들은 언제까지나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그 길이 끝이 없음을 알고 기뻐한다. 기쁨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그들은 출발점에, 첫경험에 집착한다.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경험이다. 그들은 언제나 그 지점에 머무르며 삶이 다해가는 순간까지 책을 읽는다. 고독을 발견했던, 그러니까 언어들의 고도고가 영혼들의 고독을 발견했던 첫 경험의 언저리에 머문다. 그들은 황홀감에 취해 세상에서 물러나 이 고독을 향해 간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고독의 골은 깊어진다. 더 많이 많을수록 아는 건 점점 더 적어진다. 이 사람들이 작가와 서점, 출판사, 인쇄소를 먹여 살린다.


(26-27)

그렇다. 눈이다. 당신의 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 두 눈은 이제 우는 일 말고는 쓸모가 없다. 울지 않을 때는 책을 읽는다. 어느 날 당신은 릴케의 한 페이지를 읽는다. 다른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그러다 잉크의 새장을 여는 순간 영혼의 새들이 우르르 당신에게 돌아온다. 실패한 자살이 모두 그렇듯 당신의 자살도 성공을 거둔 것이다. 당신이 잃은 건 생명보다 더한 것이었다. , 투명한 말의 맛, 참된 말에 대한 사랑, 그 모두를 잃은 것이다. 말 앞에서 당신은 먹을 것을 앞에 둔 아픈 아이 같았었다. 그런데 릴케가 당신에게 먹을 것을 다시 준다. 한 편의 시, 이어지는 또 한 편의 시, 한 편의 이미지, 또 한 편의 이미지. 헐벗은 말과 함께 온전한 사실이 돌아온다. 진실과 함께 온전한 영혼이 돌아온다.


(35-36)

발작 상태는 세상의 본성이다. 전쟁이 잇따르고 발명도 이어진다. 총매상고가 집계되면 자살률도 집계되며, 기아의 저편에는 달콤한 환락이 자리한다. 세상은 그것들 모두의 잡탕이다. 그것들이 모두 함께한다. 사랑만 예외이다. 사랑은 그 무엇과도 함께하지 않는다. 사랑은 아무 데도 없다. 전시(戰時)에 부족한 식량처럼, 죽어가는 사람의 짧은 호흡처럼, 사랑도 모자란다. 놀이에 몰두해 있는 아이에게 시간이 모자라듯 사랑도 그렇게 부족하다. 사랑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정말로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우리 안에 자리한 사랑의 욕구를 채워주기엔 시간은 늘 역부족이다. 우리 안에 자리한 목소리와 피의 요구, 창공 같은 그 목소리에 흐르는 우윳빛 피의 요구를 채워주기에는 말이다. 혜성 같은 사랑은 영원히 단 한 번 우리의 심장을 스친다. 밤낮없이 지켜야 그걸 목격할 수 있다. 오랫동안,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사랑의 본성이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이 사실 이야말로 사랑이 갖춘 위엄이자, 사랑의 놀라운 특성이다. 소음과 부산함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온갖 발작으로부터도 훌쩍 떨어져,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사랑은, 그리고 사랑의 가볍고 경쾌한 자각이자 더없이 겸허한 형상이며 각성한 얼굴인 시(), 심오한 기다림이고 달콤한 기다림이다. 부드럽고도 오묘하게 반짝이는 희망이다.


(38-39)

피로에 절은 사람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그들은 무언가를 쉴 새 없이 하는 사람들이다. 휴식과 침묵. 사랑이 내면으로 파고들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피로에 절은 사람들은 장사를 하고, 집을 짓고, 경력을 쌓는다. 피로를 피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하지만 그러면서 오히려 피로에 빠진다. 그들의 시간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일을 더 많이 할수록 점점 더 적게 하는 꼴이 된다. 그들의 삶에는 삶이 부족하다. 자신과 자신 사이에 유리벽이 존재한다. 그들은 멈추기 않고 유리벽을 따라 걷는다. 피로는 그들의 용모와 손과 말에서 드러나 보인다. 그들에게 피로는 일종의 향수이며 불가능한 욕망과도 같다. 그들은 페르스발처럼, 어머니를 떠난 이 젊은 남자처럼, 들판과 강을, 강과 숲을, 산과 들판을 오간다.


(47)

위대한 책은 그 책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시작된다. 어떤 책이 위대하다는 건, 그 책에서 점차 드러나 보이는 절망의 위대함을 의미한다. 책 위에 무겁게 드리워져 책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한참을 가로막는 그 모든 어둠을 의미한다. 책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 책이 있기 전, 글이 써지기도 전에 모든 것이 시작된다. 즉 아버지의 떠도는 그림자가 있고, 번잡한 날들 속에서 첫 시구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라신과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담갈색 밤이 있다. 사방에서 꿈은 짓밟히고, 자신과 지나치게 밀착되어 글쓰기는 불가능해진다. 불만에 찬 왕,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갈가리 찢긴 유년기에 너무 밀착된 상태로는 글쓰기가 불가능하다.


(54-55)

당신은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제 이 두 사람에 대해서도 라신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 당신은 제3의 문제에 골몰한다. 부부란 대체 뭘까. 열정은 뭐고 사랑은 뭘까. 당신은 머릿속으로 게임을 벌이며 하나의 규정을 마련한다. 집에 다다르기 전, 그러니까 5분 안에 해답을 찾아낼 것. 결국 게임 종료 직전에 당신은 답을 발견한다. 부부란 김빠진 삶의 장이고, 열정은 분열된 삶의 장이다. 그런데 사랑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집 문 앞에 선 채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참담한 발견에, 이 모든 한심한 정의에 경의를 표한다. 당신은 17세기와 20세기를 싸잡아 비웃고, 사랑과 세상을 함께 품을 수 없는 이 영원한 무능을 비웃는다. 망가지가 쉬운 천사들과 튼튼한 개들을 두고 너무 한탄하지 않으려고 웃는다.


(108-109)

우리는 사랑을 하듯 책을 읽는다. 사랑에 빠지듯 책 속으로 들어간다. 희망을 품고, 조바심을 낸다. 단 하나의 몸 안에서 수면을 찾고, 단 하나의 문장 속에서 침묵에 가닿겠다는, 그런 욕구의 부추김을 받으며, 그런 욕구의 물리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다. 조바심을 내며, 희망을 품는다. 그러다 때로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처럼, 일체의 조바심을 몰아내고 일체의 희망에 딴죽을 거는 무언가다. 그것은 위로하며 하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유혹하지 않고 황홀감을 준다. 자체 안에 자신의 종말과 죽음의 슬픔, 어둠을 품고 있는 무언가다.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것에 귀 기울이는 자는 이제 자신이 피신할 데도, 의지할 데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서 해방되어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목소리가 어두워질수록 우린 더 분명히 보게 된다. 목소리가 격해질수록 숨쉬기가 한결 쉬어진다. 우린 일체의 문학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온전히 성스러움에 바싹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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