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멘토 최태성의 한국사 : 전근대편 - 소통하는 한국사 역사 멘토 최태성의 한국사
최태성 지음 / 들녘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학창 시절 국사를 잘 못했는데, 크고 나서 역사책 읽는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 이후 역사에 관련된 책들을 가끔씩 읽곤 했단다. 그런데 최근에 한동안 역사 관련 책을 읽지 않은 것 같아서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중에 하나 꺼내 들었단다. 요즘에는 텔레비전 등 매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최태성 님이 쓰신 <역사 멘토 최태성의 한국사 : 전근대 편>이라는 책이란다.

이 시리즈는 전근대 편과 근현대 편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오늘 읽은 것은 전근대 편이란다. 아빠가 우리나라 통사 관련된 역사책들을 여럿 읽어서 <역사 멘토 최태성의 한국사 : 전근대 편>가 그리 낯설지는 않았단다. 아빠가 책을 읽고 머릿속에 잘 기억하지 못해서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는 없지만, 다시 읽다 보면 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인물들이 떠오르게 되더구나. 그러니 반복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반복을 해도 기억이 오래가지 않으니 안타깝기도 하구나.

<역사 멘토 최태성의 한국사 : 전근대 편>은 우리나라의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해서 나라를 세운 고조선, 삼국시대, 통일신라와 발해, 고려 시대, 조선 시대 후기까지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이 오랜 역사를 이야기하다 보니 각 시대의 중요한 사건과 경제 문화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어. 교과서 읽는 기분도 좀 들었단다. 아빠의 학창 시절 때 국사 교과서보다는 재미있게 말이야.

 

1.

이미 우리나라 역사의 대해서 너희들도 배웠고, 아빠가 예전에 읽은 역사책을 읽고 쓴 독서편지의 내용들과 많이 겹쳐서 오늘은 간단히 아빠가 이 책에서 새로 알게 된 사실 몇 가지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독서 편지를 대신하련다.

아빠가 예전에 늘 이상하게 생각한 것국가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청동기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했는데,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시작되었다고 하고, 고조선은 그보다 앞선 기원전 2333년에 세웠다고 하니 앞뒤가 맞지 않거든..이게 늘 이상하게 생각했어. 그런 이유를 설명해 주었단다. 기록에 의해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은 확실한데, 고고학적 발견에서 우리나라 청동기는 2000년에서 1500년이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하는구나. 그것도 예전에는 기원전 1000년이었대. 고고학적 연구가 더 진행되면 우리나라 청동기는 더 앞당겨질 수 있다고 하는구나. 역사는 사실을 기반으로 두다 보니 그런 차이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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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단군왕검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건국합니다. 고조선의 건국 시기는 조선시대 역사서인 <동국통감>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기원전 2333년으로 잡고 있는데요. 앞서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가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고조선이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고 했으니 이러면 시기가 맞지 않지요. 이유를 볼게요. 예전에는 한반도에서 기원전 1000년경 청동기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그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어요. 현재는 기원전 2000년까지 올라갔는데,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어쩌면 이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어요. 현재는 기원전 2000년까지 올라갔는데,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어떠면 이 시기가 더욱 앞당겨질지도 모릅니다. 기록과 고고학적 성과가 맞닿게 되는 시점도 곧 올 거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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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의 각국의 전성기 시대를 보면 모두 한강 유역을 차지했잖니. 신라의 전성기의 왕은 진흥왕인 것은 너무 유명하잖니. 그런데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것은 그의 배신도 한몫 했다는구나. 전략이라면 전략이지만 배신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열 받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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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도읍을 사비로 옮겼지만, 백제의 본거지는 어디까지나 한강 유역이에요. 백제가 명실상부하게 강국의 위치에 오르려면 자신의 근거지임과 동시에 한반도의 중심인 한강 유역을 확보해야 합니다. 성왕은 백제의 근거지인 한강을 되찾기 위해 신라의 진흥왕과 손을 잡아요. 아직까지는 혼자 힘으로 고구려를 상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 동맹을 통해 백제는 한강 하류를 되찾지만 진흥왕의 배신으로 한강을 도로 빼앗기게 됩니다. 이에 격분한 성왕이 진흥왕과 일전을 벌였다가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백제는 다시 한 번 위기에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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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는 당파싸움으로 망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단다. 아빠도 조선의 당파싸움은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곤 했어. 하지만 당파싸움을 할 수 있던 것은 조선이 선진 정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하더구나. 최태성 님의 의견을 들어보니 맞는 말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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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245)

일제는 자신들의 국권 탈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식민사관을 내세웁니다. 특히 조선시대 붕당정치를 두고 이른바 당파성론을 만들어냈는데요. 한국인은 정치적으로 서로 싸우기를 좋아하는 민족성을 가져 망국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논점이에요. 하지만 이 붕당정치는 일본인은 해보지 못한 선진정치였습니다. 같은 시기의 일본은 꿈도 꾸지 못할 정당정치가 조선 중대에 이뤄지고 있었던 겁니다. 붕당정치는 일종의 정치 투쟁인데요. 주로 상소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냈습니다. 한 세력이 독재하지 못하도록 소수파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인데요. 이는 분명 정치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측면도 있습니다. 붕당정치는 공존이 바탕이 되는 정치 시스템이었어요. 이랬던 붕당정치가 왜곡으로 치달은 것은 일당전제화가 되면서부터입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 환국정쟁으로 변질되면서 폐해가 불거지는데요. 일제의 식민사학자들이 초점을 맞춘 것은 바로 이 시기의 모습입니다. 이걸 전체로 확대 해석하여 마치 붕당정치 자체가 모순인 것처럼 한국인의 국민성까지 들먹였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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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기에서 중기까지 사상의 기반이 되었던 성리학과 조선 후기 부각된 양명학과 실학의 차이점을 예시로 들어주었는데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어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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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학문에서는 양명학과 실학이 나옵니다. 관념을 앞세우는 성리학과 달리 양명학은 실천을 중시해요. 예컨대 사과를 하나 가져와서 이 사과의 맛을 평가하시오리고 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성리학은 이 사과의 는 무엇일까. ‘는 무엇일까, 이 사과가 맛있다고 하면 그것은 일까, ‘일까 하고 자꾸만 관념적으로 해석하려 들어요. 반면에 양명학은 사과를 덥석 깨뭅니다. 먹어봐야 맛이 있는지 없는지 평가할 수 있다는 거죠. 실학은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합니다. 이는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자는 학문으로 일상생활과 밀접한 내용들을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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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까지만 할게.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역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분들에게 저는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책의 끝 문장: 근대는 또 어떠한 시대정신을 우리에게 요구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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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로드 7000km - 의열단 100년, 약산 김원봉 추적기
김종훈 지음 / 필로소픽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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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약산로드 7000km>라는 책을 이야기할게. 이 책은 아빠가 4년 전에 읽은 <임정로드 500km>란 책이란 같이 샀었는데, 이제서야 읽었구나. <임정로드 4000km>를 읽은 것이 얼마 안 된 줄 알았는데, 독서기록을 찾아보니 4년 전이었더구나. 참 세월 빠르다. <약산로드 7000km>란 책은 책 제목에 힌트가 있어. 약산 김원봉에 관한 책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단다. <임정로드 4000km>가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여행 가이드라고 하면, <약산로드 7000km>는 약산 김원봉과 그가 이끌었던 의열단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여행 가이드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19년이기 때문에, 이 책에 나와 있는 여행 정보가 지금과는 조금 다를 수 있겠구나. 하지만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이 활동했던 장소들은 그대로일 테니, 그것으로도 충분히 여행 가이드가 될 수 있겠구나. 그런데 그 길이 7000km라고 하니, 쉽지 않은 길이겠다는 생각은 들었어.

약산 김원봉. 아빠가 약산 김원봉에 대해서 여러 번 이야기를 해서 너희들도 이름은 익히 알고 있겠지. 영화 <암살>에서도 잠깐 등장했던 약산 김원봉. 우리나라가 해방하는데 큰 공헌을 했던 사람에 손꼽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 친일파 고문기술사한테 치욕적인 고문을 당하고 북으로 갔다고 아직도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 그런 반면 20년 동안 일본 군대에서 복무했다가 처벌도 받지 않고 잠시 국군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현충원에 안장되는 현실이런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라는 것이 아주 열 받는구나. 현충원에 묻혀 있는 독립운동가들이 자신의 주변에 친일파들의 무덤이 같이 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복장 터지실까. 심지어 공식적인 친일파 명단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도 현충원에 묻혀 있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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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0)

반 토막 난 독립운동사에 약산의 이름을 올려야겠다고 결심한 첫 번째 이유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친일파 7인 김백일, 김홍준, 신응균,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이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만주군에 복무하면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인사들이다. 게다가 해방 후에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아래 다시 국군으로 돌아와 보란 듯이 현역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더 높은 자리로 영전했고 각각 군 사령관과 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이 됐다.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 묻힌 일본군 장교 출신 신태영과 이응준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요 인사 묘역과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들이 묻힌 장군 제2묘역이 있다. 의도했든 아니든 이들 친일파의 묘역이 애국지사 묘역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한 탓에 친일파 무덤이 애국지사 무덤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형태다. 더 화가 나는 건 이름 없이 쓰러져간 수만의 독립군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대한독립군 무명 용사 위령탑역시 친일파 묘역 입구 하단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위령탑 아래가 의열단 출신 김익상과 김상옥, 박재혁, 곽재기, 최수봉, 이종암 등이 잠든 애국지사 묘역이다. 한마디로 친일파의 무덤이 조국 독립을 위해 청춘과 목숨을 다 바친 애국지사와 순국선열보다 더 높고 양지바른 곳에 위치해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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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무덤을 이장하는 법안이 국회에 여러 번 상정되었지만, 폐기 또는 체류 중이라고 하더구나. 이 책이 2019년에 나왔으니, 그 이후에 진전이 있나 검색해 보니 여전히 현충원에 친일파들의 무덤이 있는 것 같구나. 빨간당이 자신의 색깔에 맞게 여전히 친일 행각을 벌이고 있으니, 이런 일조차 험난한 길이 되는구나. 몇 달 전에도 국회에서 친일파 백선엽을 미화한 영화 시사회를 열었다고 하는데, 아빠의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구나.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런데 그런 일본의 국기를 닮은 빨간당을 지지하는 동네 중에 밀양이라는 곳이 있단다. 아주 높은 지지율로 빨간당을 지지하는 그런 곳이란다. 약산 김원봉의 서훈을 앞장 서서 반대하는 빨간당을 지지하는 밀양이라는 곳이 바로 약산 김원봉의 고향이란다. 자기 고향의 자랑스러운 위인의 업적을 깍아내리는 정당을 눈감고 지지하는 곳. 이 또한 아빠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

밀양은 약산 김원봉뿐만 아니라 많은 의열단과 독립운동가들이 태어난 곳이라고 하는구나. 김원봉의 고모부로 독립운동을 한 황상규, 윤세주, 김대지, 고인덕 등이 독립 유공 애국지사 80여 명이 이 곳 출신이란다. 밀양은 의열의 도시라 할 수 있어. 그래서 의열기념관과 밀양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단다. 그리고 약산 김원봉의 아내에서 독립운동가로 전투 중에 총상으로 운명을 달리한 박차정 지사의 묘도 밀양에 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박차정의 묘가 너무 초라하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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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6)

1910년에 태어나, 약산보다 정확히 12살 어렸던 박차정 지사는, 집안이 모두 독립운동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대한제국 탁지부 주사를 지냈던 부친 박용한은 일제의 침략에 분노해 자결했다. 숙부 박일형과 친척들, 오빠들도 모두 항일 운동에 뛰어들었다. 외가 쪽 역시 독립운동가 김두전과 김두봉이 친척인 집안이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 때문에 신간회, 의열단 등에서 활동한 큰오빠 박문희, 둘째 오빠 박문호 등과 함께 박차정 지사 역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일찍이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일신여학교 시절부터 지역을 대표하는 독리운동가로 활약했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 1월 서울 여학생 시위사건을 배후에서 지도했다. 그러나 근우회 사건으로 구금된 다음 일경의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병석에 누워있던 박차정 지사를 의열단에 몸담고 있던 둘째 오빠 박문호가 불렀고, 지사는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합류했다. 1930년 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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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밀양시는 친일파 음악가 박시춘을 기념하는 기념관을 건립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로구나. 이 책이 나올 때는 아직 건립이 안 되었고 여러 시민단체들이 반대하고 있던 중인데, 지금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아직 건립되지 않은 모양이구나.

 

1.

약산 김원봉은 19살에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중국으로 떠나 텐진, 난징, 센양 등에서 활동하가다 지린이라는 곳에서 고모부 황상규를 만나고 신흥무관학교에 가기로 결정했단다. 신흥무관학교를 나오고, 1919 11 10일 지린시 광화로 57호에서 의열단을 만들었단다. 의열단 단장인 의백은 김원봉이 맡았지만, 고모부 황상규가 많은 도움을 주었단다. 의열단의 공약 10조를 읽어보면 그들의 독립투쟁 의지를 엿볼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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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의열단 공약 10>

1. 천하의 정의를 맹렬히 실행한다.

2.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해 신명을 희생한다.

3. 충의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히 자라야 의열단원이 된다.

4. 단의(團義)를 우선하고, 단원의 의()도 급히 실행한다.

5. 의백 일인을 선출해 단체를 대표케 한다.

6.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매월 일차식 사정을 보고한다.

7.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초회(招會)(부름)에 반드시 응답한다.

8. 피사(被死)(죽음을 피하지) 아니하며 단의의 전력을 다한다.

9. 하나의 아홉을 위하여 아홉이 하나를 위해 헌신한다.

10. 단의(團義)를 배반한 자는 척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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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은 박재혁, 김익상 등이 국내외 많은 활동을 해서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했단다. 아빠가 의열단 활동은 이전에 김원봉 관련 책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으니 오늘은 생략할게. 박재혁 님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만 책의 내용을 발췌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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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부산 출신 박재혁은 1920 9월 초 상하이를 떠나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부산에 도착한다. 1920 9 14일 고서상으로 위장한 박재혁은 부산경찰서 서장 하시모토 슈헤이와 마주한다. 그리곤 고서 상자 속에서 미리 준비한 폭탄을 꺼내들고 하시모토에게 나는 상하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 네가 우리 동지들을 잡아 우리 계획을 깨뜨린 까닭에 우리는 너를 죽인다라고 외치며 폭탄을 투척한다. 폭탄에 맞은 서장은 수일 뒤 사망했다.

박재혁 역시 현장에서 폭탄을 맞아 부상을 당하고 체포됐다. 1921 3,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과 상처로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사형 선고 전, ‘왜놈의 손에서 욕보지 말고 차라리 내 손으로 죽겠다라고 결심한 뒤 곡기를 끊고 단식하다 옥사하였다. 의열단다운 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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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웨일즈의 <아리랑>으로 널리 알려진 김산도 의열단원으로 일했었단다. 김산은 김원봉, 김성숙과 가까웠고 베이징에서 자주 모임을 가졌다고 하는데, 당시 베이징에 있던 의열단 본부의 위치를 정확히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구나. 이 책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의열단의 발자취를 쫓던 여행 가이드이기 때문에 의열단과 관련된 장소들을 찾아서 사진도 삽입되어 있단다. 의열단에 도움을 준 이들 중에는 단재 신채호, 이육사도 있어 그들의 흔적도 찾는 노력을 했단다.

아빠가 아는 독립운동가 중에 이태준이라는 분이 계신데, 이 분은 몽골에서 유명한 의사로 활동하던 분이야. 억울하게 러시아 백군에게 죽음을 당하는데, 그가 죽기 전에 폭탄제조 전문가인 헝가리 사람 마자알에게 의열단을 소개해주었고, 이태준이 죽은 이후 마자알은 혼자 의열단을 찾아와 도움을 주었단다. 이 이야기는 아빠가 예전에 읽은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에서 알게 된 이야기인데, 이 책에도 또 나오는구나. 이태준 님에 관한 책을 오래 전에 사두었는데 조만 간에 읽어봐야겠구나.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아.

의열단의 활동은 전에도 이야기했던 종로경찰서를 공격한 김상옥 의거, 오성륜, 김익상, 이종암의 황푸탄 의거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어. 불사신 김익상은 끝내 체포되어 21년간 형살이를 하고 풀려났는데, 다시 경찰이 데리고 간 이후 행적이 묘연해졌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오셩륜은 일제 말기 변절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어.

….

의열단의 발자취를 따라 가다 보면 금륭대학이라는 곳이 있어. 오늘날은 난징대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어. 금륭대학 강당에서 민족혁명당이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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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233)

그런데 이곳(금릉대학)이 우리 역사에서 더욱 중요하게 평가돼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1935 7, 기라성 같은 애국지사들이 금릉대학교 강당인 대례당에 모여 민족혁명당을 만든다. 면면이 화려했는데 의열단 출신은 약산을 필두로 석정 윤세주, 진이로, 박효삼이 함께 했고, 신한독립당 출신으로 지청천과 신익희, 윤기섭이, 조선혁명당 출신은 최동오와 김학교가 함께 했다. 김두봉과 조소앙, 김규식, 김상덕, 최창익, 허정숙, 안광천 등도 동참했다. 2200여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함께했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김구는 위해 중앙집행위원회의 집행위원장 자리를 공석으로 두었으나 마지막까지 고사했다. 임시정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위원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서기부와 조직부와 실질적으로 권한을 행사했다. 서기부의 부장은 약산, 조직부의 부장은 김두봉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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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두 거두라고 하면 약산 김원봉과 백범 김구를 들어 있어. 둘은 지향하는 바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그들의 목표는 오직 조국의 독립이었단다. 임시정부 초창기에 김원봉에 잠시 참여했다가 실망한 후 다른 길을 갔지만, 1940년대에 들어서 그들은 다시 만나고, 당시 김원봉이 이끌었던 조선의용대는 김구의 한국광복군에 편입하게 된단다. 김구와 김원봉은 조선 독립을 위해 듯을 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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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303)

두 사람(김구, 김원봉)은 진심으로 화합해 조국 독립을 바랐다.

우리 두 사람은 3.1운동 이후 해외에서 일본제국주의를 향해 계속 분투했다. 그러나 과거에는 한 개의 강적에 대한 투쟁을 통일적으로 강하고 유력하게 진행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군중을 떠난 우리 두 사람의 특수환경의 영향도 없지 않았으나, 주로는 우리가 민족적 경각성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민족혁명의 전략적 임무를 정확히 파악 실천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과거 수십 년간 우리 민족운동 사상의 파쟁으로 인한 참담한 실패의 경험과 중국민족의 최후의 필승을 향하야 매진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민족적 총 단결의 교훈을 이전의 착오를 통해 통감한다. 우리 두 사람은 신성한 조선 민족 해방의 대업을 위해 동심협력할 것을 동지동포 앞에 고백하는 동시에 목전의 내외 정세와 현 단계의 우리 정치 주장을 이하에 진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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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임정 세력과 다시 손을 잡았지만, 여전히 임정 내부에서는 김원봉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는구나. 그래도 결국은 해방을 맞이하게 되고, 조국에 돌아왔지만, 기다리는 것은 경찰이 된 친일파들이었지. 친일파를 청산하기는커녕 그들이 다시 경찰의 요직을 차지하고, 일제 치하에서도 잡혀 본 적이 없는 김원봉이 해방된 조국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까지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니. 거기에 여운형 등도 암살 당하는 남한 사회에 치를 떨었을 거야. 고향인 밀양을 뒤로 하고 북으로 가는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북에 가서도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고, 결국은 한국 전쟁 후에 숙청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잖니. 약산 김원봉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아빠가 더 억울하더구나.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공적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나라에서는 이제라고 공식적으로 그의 공적을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참 도발적이게도 난 약산 김원봉을 통해 반 토막 난 우리 독립운동사를 말하고 싶었다.

책의 끝 문장: 김약산을 기억한다.

 


밀양, 약산 김원봉이 태어난 도시다. 약산의 평생지기 석정 윤세주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약산의 고모부 백민 황상규를 비롯해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독립유공 애국지사만 80여 명이다. 안동과 더불어 인구대비 가장 많은 숫자다. 한마디로 독립유공자의 산실과 같은 장소다. 2018년 봄 약산의 생가터에 밀양시가 의열기념관을 세우고 나서 밀양을 찾아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그러나 2019년 들어 밀양시가 친일파 박시춘을 중심으로 한 <가요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지사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부끄러운 일이다. 약산의 생질 김태영 박사와 밀양 출신 청년들을 중심으로 가요박물관 건립을 막고 있다. - P17

그러나 백민 황상규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큰 족적을 남겼다. 1차 의열단 의거 실패 후 감옥에서 6년여를 보냈다. 출소 후에도 밀양에서 지역 운동을 전개하며 지역 리더로서의 역할을 실천했다. 1927년 12월부터는 신간회의 밀양지회장으로 선출되고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 하지만 고문 등으로 이미 몸이 쇠약해진 상태, 한때 관운장이라 불릴 정도로 강인한 그였지만 과로 등이 겹치며 결핵성 복막염을 앓았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사건이 터지자 황상규는 진상조사단이 돼 몸을 돌보지 않고 사건을 알렸다. 결국 더 이상 버티질 못했다. 1930년 초 황상규는 다시 고향에 돌아와야만 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듬해 9월 황상규는 눈을 감는다. 사인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발생한 폐결핵과 복막염 악화. 의열단의 정신적 스승이자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던 백민 황상규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 P103

김산은 의열단 의백 김원봉과 의열단원 김성숙과 특히 사이가 가까웠다. 베이징에서 자주 모임을 가질 만큼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이였다. 이 만남은 훗날 ‘황포군관학교’라는 공통분모까지 이어진다. 그만큼 각별한 사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단 김산과 약산 모두 책벌레였다. 특히 두 사람이 다 러시아 문학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두 사람은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그만큼 머리도 비상했다. 중앙학교-덕화학교당-금릉대-신흥무관학교를 거친 약산의 비상한 머리야 익히 알려진 바고, 김산 역시 신흥무관학교-난카이대-협화의대-황포군관학교-중산대 등을 거친 수재였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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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6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항일로드도 나왔던데 아직 못읽었네요. 김원봉이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게 말이 안되는데도 여전히 그런 현실이..... 그래도 밀양 항일테마거리에 가면 항일기념관과 항일 체험관이 꽤 잘 꾸며져 있습니다. 밀양에는 독립운동가이자 김원봉님의 부인이었던 박차정님의 무덤이 있는데 김원봉님이 해방루 고향에 돌아올때 유골을 가져와 안장했어요.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산길을 헤매며 찾아간 무덤이 너무 하술하게 관리가 안되어서 많이 부끄럽고 가슴 아팠습니다

bookholic 2025-08-17 08:48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항일로드>는 리스트에 올려 놓겠습니다^^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이념의 색깔을 씌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밀양 여행을 가보겠습니다~~^^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이영채.한홍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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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여전히 내란이 제대로 해결이 안된 시국이란다. 우두머리만 탄핵이 되었지, 곳곳에 내란 세력들이 포진하여 불안함이 가지실 않는구나. 그들이 또 어떤 짓을 할지 예상이 안 되거든. 오늘 이야기할 책은 이런 요즘의 정치 시국과 약간은 관련이 있는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이라는 책이란다. 이 책은 이영채라는 분과 한홍구 님의 공저란다. 한홍구 님은 <대한민국사>를 비롯하여 아빠가 예전에 그 분의 책들을 많이 읽었단다. 이번에 오랜만에 한홍구 님의 책을 읽는 것 같구나. 이영채 님은 처음 알게 분 작가인데, 일본에서 박사를 수료하고 국제사회학과 교수를 하는 분으로 일본 전문가란다.

이 책은 최근에 우경화되는 한국과 일본의 정치판의 우익의 뿌리부터 현 시점까지 정리해서 이야기해주는 책이란다. 이 책이 출간한 것은 2020년으로, 촛불혁명을 통해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정권까지 교체한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보여준, 우리나라 민주주의 전성시대가 아니었나 싶구나. 하기만 그 당시에도 한 켠에는 우익 세력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세력들이 언론과 힘을 합쳐 민주주의 전성기를 짧게 끝내고 괴물 대통령을 만들어냈단다. 그런 우익 세력에, 최근에는 오른쪽으로 더더더 치우친 극우 유튜버들의 선동으로 보수 정당으로 자칭하는 정당은 이제 극우 정당이 되어가고 있단다. 가끔 책에 시의성을 담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도 출간 된 2020년 정치 상황의 시의성을 조금은 고려해서 읽으면 좋겠구나.

 

1.

일본은 점점 우경화가 되고 있어 주변 국가들의 걱정이 늘고 있단다. 최근의 이런 우경화는 고이즈미 총리에서 시작된다고 하는구나. 고이즈미에서 아베로 이어지면서 일본 정치판은 우익이 주류가 되어 버렸단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인 2022년 아베 신조는 암살되었지만, 그 뒤를 이은 총리들도 우경화 성향은 계속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란다. 한편 한국의 우익 세력의 뿌리는 해방 이후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라고 볼 수 있단다. 그들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한국사회의 우익의 중심이 되었어.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관계는 해방 이후 세 번의 국면이 있다고 했어. 먼저 1945년 해방 이후 단절이 이어졌고, 1965년 한일수교 이후의 관계. 이때는 미국의 압력에 의해 강제로 수교를 맺게 된 것이라고 하는구나. 그러면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경제 협력 형식으로 지원을 받게 되었다고 했어. 세 번째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IMF 극복수단의 하나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한 것이야. 이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단다. 일본의 문화가 물밀듯이 들어온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결과는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났단다. <겨울 연가> 등 한국의 문화상품이 일본에 대거 들어가면서 한류의 시작을 알렸단다. 당시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60~70%까지 치솟았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일본이 우경화되고 MB가 독도를 방문하면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18.4%로 급감하게 되었어.

이후 2019년까지 10%대로 이어지면서 일본에서는 혐한주의까지 유행하게 되었단다. 2010년대 아베 내각은 노골적인 극우보수의 역사 정신을 가지고 있단다. 북한이 자신들을 위협한다는 북한위협론과 한반도 위기론을 이용하여 정치 기반을 유지했단다. 당연히 우리나라에 민주세력이 정권을 잡게 되면 거부감을 가졌어. 괴물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일본이 얼마나 좋아했겠냐. 그리고 알아서 친일을 해주는데 또 얼마나 고마워했겠어.

일본의 정신은 야스쿠니 신사를 뿌리로 두고 있는데,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이 이것을 일반 신사처럼 생각한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지. 야스쿠니 신사의 말뜻은 국가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의 말이래. 하지만 본질은 메이지유신 이후 전쟁에서 죽은 이들을 합사해 놓은 곳이란다. 합사한다고 실제 시신을 가져도 놓은 것도 아니고, 이름만 적으면 끝이라고 하는구나. 그렇게 합사된 사람이 246 6000명이고, 이들을 모두 신격화했어. 그런데 이 중에는 그곳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사람들, 특히 한국, 대만 국적의 사람들도 있다는구나. 유가족들이 취소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일본정부는 일본을 위해 죽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자신들이 보살펴주겠다는 의미인데,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누가 그곳에 합사하고 싶겠니.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전범들도 그곳에 합사하게 되었단다. 천황도 이들의 합사를 반대했대. 그래서 천황은 야스쿠니 신사에 가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총리들도 야스쿠니 신사에 가지 않다가 1984년에 총리가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갔는데, 그때는 야스쿠니 신사가 어떤 신사인지 잘 모르고 갔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그 이후로는 또 안 갔대. 그러다가 고이즈미가 총리가 된 이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공식화 되었다고 하는구나. 이제는 거의 연례행사가 된 것 같더구나. 미안함을 모르는 족속들

일본 우익의 뿌리는 아베의 정신적 스승인 조슈번에 있다고 한다. 메이지 유신 때 정한론을 주장하던 극우단체인 일본의회 소속의 사람이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이 역사수정주의를 주장하면서 우익세력이 만든 역사교과서 채택율이 높아지게 되는데 그런 책으로 배운 이들이 자라서 우익의 지지세력이 된단다. 메이지 유신은 조슈와 사쓰마 지역에서 시작되었는데, 핵심 인간들로 요시다 쇼인과 그의 제자들이 있단다. 이것은 아빠가 예전에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 책 이야기할 때도 했던 것 같구나. 그래서 조슈 출신들의 우익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지. 전쟁후 보수의 본류는 요시다 시게루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총리를 하고 있을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일본은 한국전쟁을 이용하여 손쉽게 전후에서 회복할 수 있었단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더만, 이렇게 사악한 일본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주다니

 

2.

이제 한국 우익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일제 시대 친일파들은 돈 또는 신념에 따라 친일파가 되었단다. 대부분이 돈을 위해 친일파가 되었고, 신념에 따라 친일파가 된 이는 이광수와 윤치호 같은 사람을 들 수 있단다. 그럼 진정한 친일파의 시작은 누구부터인가? 을사늑약 전에 일본과 친했던 인사로 친일파로 봐야 하는가? 예를 들어 갑신정변의 주역들도 친일파로 봐야 하는가? 친일파는 맞지만 이완용, 송병준 같은 친일파와 같은 급으로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 지은이의 의견에 아빠도 동의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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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24)

갑신정변(1884)의 주역은 김옥균, 서재필, 서광범, 박영효입니다. 이 사람들 친일파일까요? , 친일파 맞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친일은 지금 이야기하는 친일과 아주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다르게 봐야 합니다. 그때는 아직 일본의 침략적 본질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전이었습니다. 구한말 우리가 보는 일본에는 분명 두 가지 성격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할 모델로서의 일본입니다. 이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를 침략해오는 일본이지요. 적어도 1894년 갑오농민전쟁 이후에는 침략성이 아주 확고하게 드러났지만, 그 전에는 조선인들이 일본에서 많이 배우려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박영효나 김옥균이 취한 방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 사람들을 이완용, 송병준과 같이 취급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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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친일파는 일진회를 조직했던 송병준 때부터라고 하는구나. 송병준은 친일을 하는데 있어 이완용과 대립과 경쟁까지 했다는구나. 김가진이라는 사람도 친일을 했었는데,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독립운동을 하려고 망명을 했고, 그의 후세들도 독립운동을 했다는구나. 친일로 변절한 자들만 있는지 알았는데 이렇게 친일했다가 독립운동으로 전향한 이들도 있었구나. 일제 시대에 수 많은 친일파들이 생겨났고, 그들이 해방후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상태로 이어졌기 때문이란다.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로 이어지면서 친일파의 청산 기회는 더 멀어져만 갔고 오늘날에 이른 거야. 분하기 짝이 없구나.

이렇게 제대로 청산되지 않으니 <반일 종족주의> 같은 책도 버젓이 출판되는 거야. 당시 이 책은 논란이 많은 책이었단다. 우리나라 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일본 극우 입장에서 책을 썼으니 말이야. 이 책은 일본에서 번역되어 공존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대. 이 책의 저자 이영훈과 그의 스승 안병직은 유명한 경제학자였다고 하는구나. 이영훈의 경우 대학 때 학생 운동도 하다가 잡혀서 군대로 끌려가기도 했다는구나. 이런 사람이 어찌 그리 변했는지.. 일제 시대 친일파로 변절한 이들과 같은 부류로구나. 2005년 이영훈의 스승 안병직이 이사장을 맡은 뉴라이트라는 단체가 등장한단다. 이놈들은 역사교과서까지 냈는데, 다행히 채택율이 0%를 기록하고 있단다. 하지만 뉴라이트들은 오늘날 친일파의 주요세력이 되어 활동하고 있단다.

…            

그럼 앞으로 한일 관계 개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방 후 400만 해외동포가 있었는데, 그 중에 200만명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대. 해방 후 귀국을 한 이들도 있었지만, 재산을 가져가지 못하는 등 제한 사항이 많아서 일본에 정착하여 사는 이들이 60만 정도 되었다고 하는구나.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란다. 그들은 재일조선연맹, 재일본조선거류민단(민단) 등을 만들어 활동을 했대. 재일조선연맹은 좌익이 주도로 해서 만들어 일본경찰에 의해 해체되었다가 나중에 조총련으로 다시 만들어졌으나 오늘날 세력이 많이 약해졌다고 하고, 민단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활동을 하고 있대. 재일조선인의 처우는 오늘날까지 차별이 이어지고 있는 문제점이 있어. 그들은 한동안 무국적자로 지내다가 1965년 한일수교 이후 국적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어. 당시 대한민국과 북한의 국적에서 선택할 수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대한민국의 국적을 선택했대.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재일조선인을 받아주는데 관심이 없는 반면에 북한에서는 적극적으로 재일조선인을 받아주어 약 10만 명의 사람들이 북한행을 선택했다고 하는구나. 초기에는 잘 대우해 주었지만, 나중에는 불행한 삶을 살다가 다시 탈북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대.

한일수교 이후 재일조선인들 중에 남한으로 유학을 오는 사람들도 있었대. 그런데 박정희 정권을 이들을 간첩으로 누명 씌워버렸다고 하는구나. , 사악한 사람이구나. 재일조선인들의 삶은 참 고들프구나. 일본에 있으면 차별 받고, 북한에 가도 홀대 받고, 남한에 가면 간첩 취급하고재일조선인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줄어들고, 그들의 정체성은 점점 일본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구나. 대한민국정부는 재일조선인 문제에 대해 논의된 적이 없으니 이 또한 큰 잘못이 아닌가 싶구나.

..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 그러나 그것을 청산할 것 같은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구나. 일본시민사회의 역사관은 자신들의 잘못된 역사를 인식하는 등 선명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어, 이런 일본시민사회와 협력을 해야 하지만, 일본사회가 보수극우화 된 이후에는 일본시민사회는 많이 쇠퇴했다고 하는구나. 예전에 일본시민사회가 무척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말이야. 일본과 한국이 치고 박고 싸우지 않을 바에는 서로 공존 협력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을 보면 쉽지 않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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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일관계를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한국이 일본과 협력하지 못하면 동아시아에 미래는 없을 것이다.’ 역시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지요. 물론 한국에는 북한이라는 동족이 있지만 이미 70년이나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장래 북한과 공존해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당장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지요. 또한 중국은 어쩔 수 없이 한국에는 큰 나라일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일본을 포기하면,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의 대립 사이에 끼어서 한반도는 영원히 분단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싫든 좋든 실리적으로 이웃인 일본과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한반도의 평화로운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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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전혀 반성하지 않는 우경화된 일본 정부가 있는 한또라이 친일 대통령이 하던, 과거 청산 없는 협력은 공존이 아니라 그냥 친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란다. 앞으로 새로 들어서게 될 정부는 어떤 해법을 가지고 일본과 관계 개선을 하지 모르겠으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우경화된 일본이 계속 오른쪽만 쳐다보는 한 쉽지 않을 것 같구나. 선거를 정말 잘 해야겠다고 생각되는 요즘이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일본에서 생활한 지 20년 이상이 지났다.

책의 끝 문장: 새로운 한국, 새로운 한반도, 새로운 동아시아를 꿈꾸는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처음으로 방문한 일본인의 집이라 긴장하며 잘하지도 못하는 서투른 일본말로 첫인사를 했다. 나의 인사가 끝나자, 하타케야마 부부는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 정부를 대신해서 사죄한다"라고 인사를 했다. 처음 받는 인사 치고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나의 가족 중에는 강제 연행을 당한 사람도 일본군 ‘위안부’도 없다고 손사래를 치며 젊은 부부를 일으켜 세웠지만,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일본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이미지로 생생히 남아 있다. - P8

일본 극우보수세력의 실체는 일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배가 청산되지 못한 한국사회에도 그 잔영이 남아 있다. 이른바 친일 부일세력으로 불렸던 이들은 한국사회의 엘리트로 변모해 해방 후 우리 사회의 기본 골격을 만들고 유지시켜왔다. 한국사회는 한국전쟁 후 반공 및 한미일 안전보장의 틀 속에서 이른바 안보경제의 의존관계를 맺으며 일본사회와 공존해왔기 때문에 친일 부일세력들의 실체를 해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을 통해서 장기간에 걸쳐 군사정권을 민주정권으로 바꾸고 과거사 청산을 위해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 전후에 일어난 국가폭력의 실체를 파악해가는 과정 속에서 청산되지 않은 일본 식민지의 뿌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 P17

우리가 일제 청산을 애타게 부르짖었지만 결국 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에 권세를 누리던 자들이 그대로 살아남았지요. 그리고 그들이 대한민국 군대를 운영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미국이 군을 해체했지만, 한국에서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육성한 일본군과 만주군의 조선인 장교들을 그대로 쓴 겁니다. 그들이 위안대를 만들었고, 그 규모와 위치를 <6.25사변 후방전사>에 자랑스럽게 실적이라고 써놓았습니다. 우리가 일본 군국주의를 반대해야 하는 이유, 아니 박정희식 군국주의에 빠진 ‘그 식구’들을 반대하는 겁니다. - P80

이토 히로부미는 쇼카손주쿠에서 공부한 요시다 쇼인의 제자였습니다. 한미한 가문의 하급 사무라이로, 처음에는 존왕양이적 입장에서 각종 테러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었죠. 그러다가 1863년 조슈번에서 선발한 영국 유학생의 한 사람으로 외국 생활을 하며 영국의 선진문물에 압도되어 존왕양이론자에서 개국론자로 근본적인 사상 전환을 하게 됩니다. 존왕양이파는 원래 한국의 위정척사파와 크게 바를 바 없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위정척사파들이 내 목은 잘라도 상투는 못 자른다고 버틸 때 이토 등 존왕양이파들은 서구 문물을 접하고 스스로 상투를 잘라버린 것입니다. 19세기 후반 한국과 일본의 결정적인 차이가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 P100

그런데 일본에서 외국인 학교를 각종학교로 취급하는 것은 조선학교 때문입니다. 외국인 학교를 정규학교로 규정하는 순간 조선학교에도 보조금을 지급하고 각종 제도로 보호해주어야 하는데 그러기는 싫은 것이지요. 그렇다고 조선학교만 각종학교로 취급하면 너무나 노골적인 차별 정책이 되어버립니다. 그 때문에 아예 모든 외국인 학교를 정규학교로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인 정책을 취하는 것입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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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필의 진보를 위한 역사 - 진짜 진보의 지침서 & 가짜 극우의 계몽서
황현필 지음 / 역바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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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달째 불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그나마 내란 수괴가 갇혀 있을 때는 잠시 불안의 감정이 줄어들었는데, 말도 안되는 억지 이유로 풀려난 이후에는 불안 지수가 마구 솟고 있단다. 뉴스를 봐도 억울하고 분노할 소식들만 들려오고,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그렇게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단다. 어떻게 몇몇 사람들이 못된 마음만 먹으면 내란 수괴가 버젓이 풀려날 수 있단 말인가. 또 그 내란 수괴를 옹호하고 폭동을 일으키는 이들, 그들을 뒤에서 앞에서 선동하는 자들, 심지어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타 먹는 국회의원들마저 내란 수괴를 지지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요즘이란다.

불안과 분노이것을 치유할 방법이 마땅치 않단다. 그나마 아빠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의 글과 영상을 보는 것이 치유의 한 방법이란다. 그래도 불안하단다. 내란 수괴의 탄핵 여부를 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들 또한 어떤 협박을 받거나 회유를 받거나 하면 흔들릴까 불안하단다. 예상보다 늦어지는 판결 또한 불안을 부추기고 있단다. 우리 편의 대표적인 사람 황현필 님이 이런 시기에 신경안정제와 같은 책을 한 권 내셨단다. <황현필의 진보를 위한 역사>

작가의 말에서 황현필 님은 친일매국 세력과 역사 전쟁은 한다고 하셨어. 어쩌다 아직 이 땅에 친일매국 세력이 판을 치고, 대통령까지 되었단 말이냐. 우리 사회가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가 균형 있게 존재해야 하는데, 스스로 보수라고 일컫는 정당과 세력은 보수가 아니고 극우로 변질되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황현필 님은 그들은 극우의 정의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어. 매국적이고 독재 추종하고 반민족적이면서 내란을 옹호하는 세력을 칭하는 용어는 역사상 없었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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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극우는 전체주의, 순혈주의, 자국중심주의, 군국주의 등의 특징을 보이며, 자민족우월주의로 타민족에 대해 배타적이다. 이런 성향들은 처절한 애국심으로 드러나면서 폭력성을 띠기도 한다. 나치즘과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가 대표적인 극우이다. 그러나 친일매국과 반공 우파들은 자국보다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자민족우월주의는커녕 조선을 비하하며 같은 민족인 북한에 대해 배타적이고 혐오하는 감정을 지녔기에 통일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는 반민족 세력이다. 세상에 이런 극우는 없다. 그렇다면 이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매국적이고, 독재를 추종하고, 반민족적이고, 자학사관에 빠져 있고, 최근에는 내란과 학살을 옹호하는 이들을 칭하는 용어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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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뉴라이트의 식민사관에 대해 조목조목 팩트를 근거로 반박을 해주고 있단다. 아빠가 뉴라이트의 역사책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아서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 도대체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에 치우쳐 있더구나. 창피한 정도로….. 그런 사람이 쓴 친일 식민사관의 역사책은 일본 극우 세력이 주장하는 내용들을 많이 인용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 책이 다시 일본에서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정말 나라 망신은 다 시키고 있구나. 뉴라이트들이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가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것이야. 뉴라이트 인간들이 역사책을 썼지만, 뉴라이트 인간들은 역사 전공이 아니라 경제 전공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근대화의 기준을 경제적인 성장에만 초점을 두었다고 했어. 하지만 이마저도 잘못된 내용이라면서 황현필 님은 팩트를 들어 반박했단다. 근대적 정책이나 건물, 종교, 학교, 병원, 제도 등은 모두 일제강점기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거야.

일본이 철도도 만들어 주었다고 고마워해야 하지 않냐고 그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은 미국이 만들었고, 경부선도 처음에는 영국이 맡았다가 일본에 넘겨진 것이라고 했어. 그리고 우리나라에 철도를 놓은 준 것을 고마워할 일이 절대 아닌 거야. 다른 나라를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철도를 만드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들 말대로 실제로 잘 살게 되었다면, 왜 해방 이후 남한의 경제는 최악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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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5)

조선이 해방을 맞이하자 한반도에 있던 일본인들은 재산을 챙겨 일본으로 도망가거나 한반도 어딘가로 잠적했다.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의 자본가들이 사라진 것이었다. 주요 산업 시설은 대부분 북한에 집중되어 있었고, 해방 직후 북한은 남한으로의 전력 송출을 끊어 버렸다. 그로 인해 남한은 전력 무방비 상태에 놓여 공장 가동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해외 공포와 독립운동가들이 귀국하면서 남한의 인구는 급속히 증가했다.

쌀도 부족했고 생필품도 부족했다.

인플레이션은 당연했다.

굶어 죽는 사람이 발생했다.

해방 직후 남한은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일제강점기에 우리가 근대화되었더라면, 해방 직후 남한의 가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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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들의 또 다른 특징이 독재를 찬양하는 일이란다. 독재를 벌이다가 민중의 의거에 의해 쫓겨난 이승만을 찬양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왜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든단다. 이승만을 찬양하다 보니 김구를 깎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역사관이란다. 치졸하기 그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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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뉴라이트의 이승만 띄우기에 대해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뉴라이트가 김구를 깎아내리는 이유는 이승만을 띄우기 위해서다. 이승만 추종자들이 아무리 이승만을 띄우려 해도, 김구에게 눌려 이승만이 높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승만 추종자들이 이승만에게 형광등 300개를 켜 대도 이승만의 얼굴에는 김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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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우리나라가 분단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기는 듯 하다. 아빠가 그러할진대, 당시 살았단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힘없는 나라가 해방이 되었을 때 강대국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여만 했던 거란다. 당시 패전국인 일본을 둘러 나눈다는 방안도 있었대. 그런데 일본에서 자국 분단을 강력히 반대를 해서 실행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를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 미국과 소련이 통치하는 신탁통치..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탁, 찬성하는 친탁당연히 반탁이 대세였단다. 그런데 소련이 반탁으로 주장하고 미국이 찬탁을 주장했대. 소련이 우리나라를 생각해서 반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를 그냥 두면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해서 반탁을 했다는구나. 신탁통치를 하면 미국이 남한에 들어와 있을 테니 말이야. 미국이 찬탁한 이유도 같은 이유였어. 어차피 미국이나 소련도 모두 자국의 이익을 위한 거지, 우리나라를 생각해주는 게 아니야. 우리나라 사람들만 분단을 막겠다는 생각으로 신탁통치를 반대한 거지..

해방 이후 아무리 나라가 혼란스럽다고 해도 안 좋은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단다. 4.3사건의 비극이 또한 이승만과 미군정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건이란다. 하지만 뉴라이트는 이것 또한 북한의 소행이라고 하는구나. 뉴라이트는 이승만도 찬양하고 박정희도 찬양하는데, 박정희가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이 이승만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이승만이 하야하고 나서 하와이에 가 있을 때 귀국 의사를 보였는데, 박정희가 절대 안 된다고 하여 죽을 때까지 우리나라에 못 봤다고 하는구나. 이승만은 정적을 가장 많이 죽인 사람이고, 사적인 복수를 위해 권력을 휘두른 악마 중에 악마 같은 사람이란다.

최능진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1948년 이승만에 대항하기 위해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국회의원 선거로 나왔을 때 이승만과 같은 지역구로 입후보했대. 최능진은 독립운동가 출신의 경찰로 친일 청산에 노력을 많이 하신 분이야. 김구, 김규식과 함께 통일 정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어. 이승만의 지역구에서 최능진의 지지율은 무려 90%. 이승만이 온갖 불법을 사용하여 최능진의 후보 등록을 막아서 이승만이 단독 후보로 당선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야. 최능진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감옥에 가두고 6.25전쟁 때 총살형으로 죽였다고 하는구나. 선거에서 이겼으면 됐지.. 끝까지 복수를 하다니마치 오늘날 내란수괴를 보는 듯 하구나. 이승만의 평가는 멀리 영국의 한 정치인도 정확하게 보고 있는데 뉴라이트들은 눈을 감고 사는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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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영국의 브로크웨이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학살을 저지른 이승만을 체포해야 한다. 유엔에 있는 영국 대표는 이승만을 부정하고 그의 정권을 끝내도록 요구해야 한다.”

영국의 레이놀즈 뉴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이승만이 우리가 지금까지 지키고자 했던 모든 명분을 완전한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다. 이승만이 한국을 통치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만큼 유엔이 한국을 맡아야 한다.”

한국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또 다른 책임을 져야 하는 미국은 침묵을 택했지만, 영국은 침묵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희대의 자국민 학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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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25 전쟁은 확실히 남침이란다. 남침이라는 뜻을 정확히 몰라서 남침이 남한이 쳐들어갔다고 잘못 알고 있는 이도 있다고 하는데, 남침은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왔다는 뜻이란다. 소련을 등에 업고 같은 동족에 총부리를 겨눈 북한은 백 번 말해도 잘못을 저지른 거야. 하지만 6.25전쟁은 미국과 소련의 시나리오에 의해서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란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6.25 전쟁은 미군이 남침을 유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대. 미국은 전쟁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어서 자국민들을 사전에 일본으로 빼돌리고 했대. 그리고 낙동강 전선을 구축하고, 인천 상륙 작전을 기획한 문서가 이미 전쟁 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왜 미국은 한국전쟁이 필요했던 것일까. 전문가들은 6.25전쟁을 통해 미국이 전세계에서 진정한 대권을 갖게 되었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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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6.25전쟁으로 미국이 세계의 패권국이 되었다는 주장은 다수의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미국을 지구적 차원의 패권국으로 부상하게 해 준 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도 제2차 세계대전도 아니고, 6.26전쟁이었다. 미국의 패권에 기여한 정도란 측면에서 보면 어떠한 사건도 6.25전쟁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저비스, <한국전쟁이 냉전에 미친 영향>

 

6.25전쟁을 통해 미국의 세기가 시작되었음을, 다시 말해 미국이 지구적 차원이 패권국이 될 수 있었다. – 6.25전쟁 참전용사의 아들이자 대법권 마이클 펨부룩, <미국의 세계가 시작된 곳>

 

6.25전쟁을 통해 미국이 지구적 차원의 패권국으로 부상하고자 할 당시 필요한 체계를 구축할 있었다. – 조지위싱턴대 교수 리처드 쏜턴, <강대국 국제정치와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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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듯이 뉴라이트는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를 찬양하다 못해 신격화를 하고 있단다. 일왕에 혈서까지 쓰고 일본육사장교가 된 사람을 그렇게 찬양한다는 것은 한국 사람임을 부정하는 것이란다. 박정희의 공을 이야기할 때 경제적 성공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당시 세계적인 흐름과 성실한 우리나라 국민의 공이 더 크지 않았을까 싶구나. 박정희는 공을 이야기하기 전에 온갖 정치 비리, 인권 탄압, 온갖 만행을 먼저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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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박정희정권의 경제개발은 1960~1970년대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개발과 시대 흐름을 같이했다. 특히 냉전체제 경쟁에서 자유 진영의 승리를 위한 미국의 경제적 지원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한국인의 근면성과 성실함은 어느 국가와도 견줄 수 없다. 한국인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잘 먹고 잘산다. 더군다나 한국인은 영리하고 학구열도 높다. 여기에 부정할 수 없는 천민자본주의적인 마인드가 더해져, 남보다 잘살고 싶은 열망이 우리의 경제성정에 불을 지폈다. 이러한 요소들을 무시한 채, 오로지 박정희가 없었다면 우리는 가난했을 것이라는 자학적이고 피동적인 마인드를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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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공 정신과 남북 냉전을 권력 유지에 이용하던 박정희가 뜬금없이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단다. 이건 얼마 전 조정래 님의 <한강>을 이야기하면서 이야기했었지.. 그런데 알고 보니 통일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남북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는구나. 그러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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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남한에서 유신헌법이 통과된 지 두 달 후인, 12, 북한에서는 신사회주의 헌법이 제정되면서 김일성이 주석에 취임했다. 남한의 박정희는 초강력 대통령이 되었고, 북한의 김일성은 갑자기 주석직을 신설하고 주석이 된 것이다. 통일 분위기가 조성된 이후 남북한 양국의 독재 권력이 오히려 강화된 것이었다. 박정희와 김일성이 서로 짜고 통일 분위기를 이용하여 자신들만의 권력을 강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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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황현필 님은 뉴라이트 집단을 정리해 주었는데, 깊이 공감이 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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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495)

다시 정리하자면,

뉴라이트는 몰역사적, 친일 반민족적, 친독재적 성격을 지닌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뉴라이트는 인간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한 집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뉴라이트는 일제강점기에 수탈당한 조선인에 대한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 이승만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민간인을 오히려 빨갱이로 취급한다. 또한, 위안부 할머님들에 대한 망언을 일삼고, 세월호 유가족을 조롱하는 비인간적, 패륜적인 성향을 보인다.

뉴라이트는 정의로움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잠재적 매국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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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이 책에 다른 부분들도 모두 좋았단다. 너희들도 이 책을 한번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데, 시간이 없겠지? 아빠가 이 책에서 읽은 내용들을 가끔씩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대신하자.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금의 이 불안한 시간이 얼른 끝났으면 좋겠구나. 며칠 전 뉴스를 보는데 분노가 치밀면서 숨이 확 막혀 오더구나. 그래서 아빠는 탄핵 인용이 될 때까지 뉴스와 기사를 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단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썸네일을 보게 되지만, 클릭은 하지 않기로 했단다. 얼른 이 시간들이 다 지나가고 정상적인 시간이 찾아오길그나저나 반민족적 반독재적 매국노 세력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숨을 좀 깊게 들이마시면서 오늘은 이만 하련다.

 

PS,

책의 첫 문장: 보수(保守)는 보호하고 지킨다는 뜻이다.

책의 끝 문장: 독자들은 과연 이 책의 점수를 어떻게 줄 것인가?





보수가 중시하는 자유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자유만 넘쳐나는 사회가 되면, 산업혁명 때 노동자들처럼 인간다운 대우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반대로, 진보가 중시하는 평등만이 강조되어 인간의 본능인 자유가 침해당하는 수준까지 이르면, 공산주의와 가까워진다. 따라서 자유주의와 평등주의가 적절히 섞여 균형을 이루었을 때 올바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진보와 보수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두 존재하는 것이 맞다. - P7

임시정부의 리더들은 장제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카이로에 가서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총통께서 일본 패망 후 한국의 독립에 대한 확약을 받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후 장제스는 카이로회담에서 루스벨트를 설득하여 한국만큼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식민지 상태였더라도 독립을 시키기로 약속을 받았다.
- P190

여운형의 독립운동에 열등의식을 느끼는 친일매국 세력들,
여운형의 통일노선에 열등의식을 느끼는 분단주의자들,
여운형의 탈이데올로기에 열등의식을 느끼는 반공주의자들,
여운형의 인간애에 열등의식을 느끼는 독재와 학살 추종자들.
이들에게 여운형은 두려움 그 자체다.
- P217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해방되면서 조선에 남아 있던 일본인들이 자신의 안전을 우려했듯이 친일파들 역시 독립운동가나 일반 조선인들의 보복을 두려워했다. 일본인은 돌아갈 곳이 있었지만, 친일파는 갈 곳이 없었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하거나, 야반도주하여 산속으로 숨어들기도 했고, 변장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또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집에 틀어박혀 조선인 눈에 띄지 않으려 애를 썼다. 개중에는 광복을 반기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든 친일파들이 있었다. 이들은 우스갯소리로 ‘8월 15일부터 태극기를 든 자들’이라고 한다. - P273

단재 신채호는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으로 꼽았다. 그러나 신채호가 이 시대에 살아 있다면 ‘제일대사건’으로 ‘이승만의 친일파 처벌 실패’를 꼽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이승만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이승만이 독재를 했든지 6.25전쟁 때 무능의 극치를 보였든지 간에 이승만이 친일파 처벌만 제대로 했더라면 나는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서 역할을 다했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모든 대립은 이승만이 친일파를 처벌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 P277

결국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 기억되는 서울역회군(1980.5.15)이었다.
당시 회군을 결정했던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은 그 후 전두환이 만든 민정당의 후신인 보수 정당에서 국회의원만 5선을 했고, 국회부의장이 되었다. 회군을 반대했던 서울대 복학생 대표 이해찬은 노무현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회군에 대한 또 다른 반대자, 당시 서울대 대의원의장 유시민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또한, 당시 경희대 학생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었다. 이들을 역사의 죄인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들은 광주의 죽음에 대해서 아파해야 했다.
- P412

작금의 반일 정서가 싫은 친일파들은 이렇게 말한다.
"중국은 천년의 적이고, 일본은 백년의 적이다."
사실 이 말은 북한의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유언으로 했던 말이다. 신친일파와 일부 꼴통 보수들은 김정일의 말을 신줏단지 모시듯 믿고 있다. 진정한 종북이다. 최근 김정은도 이 말을 달고 산다고 한다. 이는 미국과 관계 개선을 바라는 북한 정권이 북한 주민들의 반중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의도와 함께 나온 말이었다. 북한이 이러한 대중외교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편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 중 한 나라가 중국이라고 하니, 역시 반갑다. 언젠가 통일을 두고 중국과 대립할 수 있는 우리입장에서는 북한동포들의 중국에 대한 거부감을 싫어할 이유는 없다.
- P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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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 개정 증보판 남산의 부장들
김충식 지음 / 폴리티쿠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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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2024 12 3. 40여 년만의 비상 계엄 선포. 그것은 단순히 불법 비상 계엄이 아니었고, 치밀하게 준비된 친위쿠데타이자 내란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단다. 비상 계엄의 핑계거리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북한을 자극했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는데, 북한이 그런 자극에 반응을 했다면 우리는 지금 전쟁 속에서 끔찍한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소름 끼치면서도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런데도 아직도 그를 옹호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 더욱 열 받고 화가 나는구나. 윤은 실패한 전두환이었어. 전두환을 따라 하려고 했으나 실패했어. 전두환이 쿠데타에 성공을 했지만, 결국 사형 선고를 받은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윤은 왜 전두환을 따라 하려고 했을까. 알코올중독자이자 정신병자라서 할 수 있는 판단이 아닐까 싶구나.

이런 시국에 문득 떠오른 책이 한 권 있단다. 김충식 님의 <남산의 부장들>이란 책이란다. 아빠가 몇 년 전에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가 김충식 님의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책을 구입했단다. 책이 생각보다 엄청 두꺼워서 읽기 망설이다가 이번 12.3 내란을 겪고 나서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10.26 사건의 전후를 다룬 영화였는데, <남산의 부장들> 1961년 군사 쿠데타부터 1980 5공이 세워질 때까지의 이야기를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부장들의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려나는 책이란다. 당시 중앙정보주가 남산에 위치하고 있어서 책의 제목이 <남산의 부장들>이라고 한 거야. 또한 이 책은 박통 시절의 우리나라 역사라고 할 수 있단다.

역사는 권력자의 중심으로 쓰여지다 보니,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잡고 있던 박정희와 그 측근들의 이야기는 곧 그 시절의 역사가 되니까 말이야. 아빠가 이 시절의 현대사를 다룬 책들을 여럿 읽은 적이 있고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굵직한 내용들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단다. 그러나 상세한 내용들과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들은 아무래도 아빠가 직접 겪은 시절이 아니므로 새롭고 놀라운 것들도 있었단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민주화되지 않은 당시는 억압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했겠다는 사실이야. 그런데 자칫 잘못 했으면 그런 시절로 다시 돌아갈 뻔했으니, 큰일 날 뻔했구나.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관련자들은 모두 중형으로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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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71 12 6일 대통령 박정희는 돌연 국가비상사태라는 것을 선포했다. 특별담화 형식으로 발표된 비상사태는 북의 위협을 빗대 체제 강화를 꾀한, 말하자면 제1차 유신이었다.

놀랍게도 이는 헌법적 근거가 박약한 것이었다. 청와대측은 궁색한 나머지 당시 대통령 취임선서의 나는 국가를 보위하고…’라는 구절에 비상사태 선포의 근거가 있다고 우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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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인데, 놀랍게도 2024 12 3일에 일어난 일과 너무 유사하구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빠는 깜짝 놀랬어. 역사는 반복된다고… 1971년이면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 10년이 된 시점이란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친위쿠데타를 벌인 거야.

…..

1961 5 16일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사 쿠데타로 그가 정권을 잡는 과정도 이야기해주고, 그의 측근들이 한 짓들도 이야기를 해 주는데, 그의 측근들, 그러니까 그의 똘마니들은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알력 다툼하는 것처럼 보였단다. 김형욱, 김종필, 이후락, 김재규 등. 이 책에서는 이름의 영어 알파벳으로 쓰기도 하고 이름으로 쓰기도 했는데, 이름으로 통일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시절에 익숙하지 않는 독자들도 있으니까 말이야.

1대 중앙정보부장인 김종필은 정치를 한다면서 그만 두고, 이후 짧은 시간 동안 김용순, 김재춘이 맡았다가 김형욱이 중앙정보부장이 되면서, 60년대 박정희 공포 정치가 극성을 부리게 되었단다. 김형욱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극우주의자였단다. 그는 법보다 주먹과 총칼이 앞섰던 사람으로, 박정희의 3선 개헌을 완성하는데 (박정희 입장에서 보면) 공을 세운 사람이었어. 하지만, 박정희는 애완견을 오랫동안 곁에 두지 않았어. 70년대 버림을 받고 중앙정보부장에서 물러나고, 김계원이라는 사람이 1년 정도를 하다가 이후락이란 사람이 바통을 이어받았단다. 이후락이라는 자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나쁜 놈이었단다.

1971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질렀으며, 공작을 부렸고, 상대 진영 후보를 협박하였다고 하는구나. 그들은 야당인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이기기 손쉬운 유진산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김대중이 후보가 되자 박통이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예전에 <김대중 자서전>을 읽고 쓴 독서 편지가 있는데 그 편지를 참고해도 좋을 것 같구나. 암튼 이후락은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 지금도 큰 돈인 600억원을 쓰고, 지역 감정을 유발하는 비겁한 행태를 부려서 결국은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었다는구나. 그런데 아주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는구나. 그런데 그것을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 선거 이후 박정희가 종신 집권을 마음먹지 않았을까 싶구나.

….

이후락이 벌인 일 중에 의외에 일이 있는데 바로 평양에 잠입하여 김일성을 만나 7.4공동성명을 이끌어낸 것이란다. 반공을 일삼던 박정희 독재 정권이 갑자기 햇볕 정책을 하다니…. 아빠도 학창 시절 이 부분을 배울 때 좀 의아해했단다. 하지만 남북의 관계 개선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 1970년대는 이후락의 전성 시대라고 할 수 있었지. 그래서인지 이후락은 선을 넘는 행동을 하게 된단다. 1973년 김대중 납치극을 벌인 거야. 일본에 망명중인 김대중을 납치하여 일본 바다로 데리고 가서 죽이려고 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CIA에서 만류해서 살아난 사건이란다. 이 이야기도 아빠가 예전에 <김대중 자서전> 이야기할 때 했었단다. 오늘은 <김대중 자서전>에서 한 이야기랑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 그 때 쓴 독서 편지를 다시 한번 읽어도 좋을 것 같구나. 김대중 납치 사건은 박정희의 지시가 있었는지 결국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누군가는 박정희가 시킨 일이라고 하지만, 이 책의 지은이 김충식 님은 정황상 박정희의 지시 없이 이후락이 단독으로 벌인 사건이라고 하였단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과 관계가 악화되고, 남북관계도 깨지고, 일본과 관계도 악화되었단다. 무엇보다 이 일로 이후락은 버림받게 되고 몰래 출국했다는구나.

 

2.

박정희는 이후락 후임으로 1973 12월부터 신직수를 중앙정보부장에 선임했어. 이 때에는 박정희 독재에 항거하는 학생 운동이 점점 심해지던 시절이었단다. 그래서 긴급조치가 발령되었어. 1974 1  발령된 긴급조치 1호는 이후 9호까지 이어지는데 독재 정권을 강화하는데 쓰이는 악법 중에 악법이었단다. 그것을 신직수가 주도하였단다. 이렇게 시국은 점점 불안정해지는 가운데 재일동포 문세광은 박정희를 시해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육영수 여사가 피살당하였단다. 이 일로 박정희는 큰 충격에 빠진 듯 했고, 한국 정부는 일본에 강력하게 항의를 했지만, 이번 사건은 김대중 납치 사건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으로 한국인이 한국에서 저지른 범죄라면서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했단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박정희를 14년간 경호했던 경호실장 박종규가 물러나게 된단다. 박종규 후임으로 온 경호실장이 그 유명한 차지철이란다. 국내 정세는 점점 불안정해지기만 하고,  남북 관계에도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벌어진단다. 1976 8 18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일어난단다. 북한군이 도끼로 미군을 살해한 사건인데, 박정희는 이 사건에 열불을 내고 강경 대응을 했단다. 전쟁까지 일으키려고 했는데, 미군이 강하게 자제시켰단다. 1976년 재미 동포 박동선이라는 사람이 미국 의회에 불법 로비를 한, 일명 코리아 게이트 사건이 발생하여 박정희 정부와 미국의 카터 정부는 관계가 악화되었어. 이 코리아 게이트로 인해 신직수가 물러나고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이 되었단다.

1977년에는 미국으로 망명을 간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박정희의 비리를 폭로하기 시작했어. 김형욱은 미국 의회 청문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회고록을 통해서 박정희의 비리를 폭로하려고 했어. 박정희는 사람을 보내서 협상을 했고, 돈을 받고 회고록 원본을 받아 오기도 했단다. 그런데 그 전에 유출된 사본이 있었던 거야. 그 유출된 사본으로 인해 김형욱의 회고록이 출간되었고, 김형욱은 파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단다.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 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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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4대 중앙정보부장은 김형욱이었다. 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증발해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확정되지 않은 인물. 누군가에 의해 영원히 제거됐을 것이라는 추측만 김형욱의 운명은 박정희 정권의 영욕을 상징하는 듯하다. 김형욱의 별명은 뚝심의 돈까스였다. 이 별명은 남재희 정치부 기자가 지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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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호실장 차지철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갈등은 점점 심해지고, 박정희는 차지철의 의견에 많이 치우쳐 있었단다. 차지철의 권력이 정점을 이루고 있던 시절이었어. 심지어 차지철의 말 한마디에 민간 기업의 건물 높이까지 조정했다는구나. 1979년 여름부터 김재규는 박정희로부터 신임을 점점 잃게 되고, 이런 불만들과 차지철의 오만과 어지러운 국내 상황들이 어우러져 그가 결국 박정희를 제거하게 되었단다.

1976 10 26일 김재규가 일을 벌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그로 인해 오랜 독재 정권이 끝나게 되었단다. 하지만 또 다른 괴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박정희 아래서 때를 기다리며 성장하던 괴물 전두환에게 10.26 사건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보다 직책이 높은 이들도 있었지만,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10.26 사건의 조사를 주관하면서 세력을 넓혀 갔고,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서 또다시 군사 정권을 세워버리고 말았단다. 누가 봐도 사악하고 불의의 악마 같은 사람이란다. 그런데 2024 12.3 내란을 저지른 윤이 전두환을 흠모했었다고 하니, 머릿속을 열어 보고 싶구나. 보나마나 알코올에 찌든 녹아 내린 뇌가 있겠지….

오늘은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장들의 이야기가 담긴 <남산의 부장들>에서 인상적인 부분들과 이야기를 해서 전체적인 맥락이 이어지지 않은 점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예전에 읽은 <김대중 자서전>이 자꾸 떠올랐단다. 너희들이 나중에 이 책을 읽게 된다면 <김대중 자서전>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나저나 헌법재판소에서 얼른 윤석열 탄핵 최종 판결이 얼른 났으면 좋겠구나. 아직도 복귀를 꿈꾸고 있는 윤석열과 그를 지키려고 하는 수구 정당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한국 중앙정보부장 10명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의 끝 문장: 5공의 팡파르가 울려 퍼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낙선의 5.16혁명 데모는 대질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강영훈 씨는 사실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군이 정치에 개입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육사생도를 정치에 끌어들이는 그런 짓은 쿠데타의 경우에도 금기로 되어야 한다. 그 당시 육사 출신 대위 몇 사람과 내가 대질했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4년제 육사 출신 셋을 복도에서 만났는데 그중의 하나가 전두환이었다. 하지만 내가 육본에 갔던 그날, 같은 11기 출신이라 해도 김성진(80년대 체신부장관) 등과 같은 장교는 지지 데모에 반대했고, 관망하는 사람도 많았던 것이다.
- P47

정보부가 캔 미량의 석유는 유리병에 담겨 청와대에 올려졌다. 박 대통령은 너무 기쁜 나머지 국무회의 때 유리병에 담긴 원유를 탁자 위 재떨이에 붓고 불을 붙여보였다.
그러나 경제성이 없는 석유였다.
애당초 비서실장 김정렴과 오원철 등은 "탐사가 끝날 때까지 발표 않는 게 좋겠습니다"고 건의했다. 박 대통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유 노다지’를 기대하고 정치적 효과에 사로잡힌 듯 그것을 발표해 버렸다.
희망이 크게 부풀면 절망도 깊다.
보통 한두 구멍 뚫다 마는 석유 시추는 포항에서는 무려 12구멍이나 시추되었다. ‘석유 원년(元年)’이니 하는 성급한 기대는 무참히 깨져갔다. 그리고 탐사 과정에서부터 주민들의 방대한 토지를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어 놔 90년대까지도 민원의 대상이 되었다.
- P629

그 무렵 박 대통령은 추가적인 미군 철수에 맞서 핵무기 개발을 꿈꾸고 ‘작전지휘권’을 지렛대 삼아 대미흥정을 벌였다. 그의 비공개 어록.
"미국 사람들은 작전권 이양 문제에 신경과민이다. 주한미군이 적어도 현수준을 유지하면 미군이 지휘관이 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주한미군 수가 현수준 이하로 감축되면 다시 작전지휘권 문제를 협의하겠다. 여기에 대해 미국 측은 못마땅해 가고 있고 답변이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자기 나라 군대를 몇 명 없고 장군만 몇 있다든지 하는데 남의 나라 60만인데 4만밖에 안 되는 미군이 지휘관을 갖고 있는 것도 이상한 상태 아닌가.
그러나 전쟁이 나면 해공군과 병참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6.25 때부터 이날 이때까지 작전지휘권을 미군한테 맡겨온 것이다. 이 문제는 휴정협정하고도 아무 관계가 없어."
- P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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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5-02-12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들’은 우리가 불타기(분노·증오)에 치닫기를 바란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불타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하고도 안 싸워요. 그러나 ‘그들’이 일삼는 갖은 막짓과 바보짓을 멀쩡히 지켜보면서 ‘그들’한테 마음을 안 빼앗기면서 ‘우리 보금자리 살림짓기를 사랑으로 할’ 적에, 그들은 오히려 힘을 잃습니다.

‘그들’은 늘 우리가 ‘그들 쳐다보기’를 하면서 ‘그들 민낯에 불타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우리가 언제쯤 싸움을 걸려는지 기다리지요. 그들은 ‘몸돌봄(정당방위)’를 외치려고 노려봅니다. 그들은 아직 그물(법)에 걸리지 않는 테두리에서 ‘우리’를 놀리거나 괴롭히면서 ‘우리가 먼저 주먹질·불타기’를 하기를 바라요. 그래야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불기운(분노 에너지)’으로 그들 벼슬자리를 더 단단히 지키거든요.

바로 이런 불기운이 그동안 일본굴레(일제강점기)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에 이르는 수렁에서 ‘그들’이 일삼은 짓입니다. 그들은 들너울(민주화)을 아예 짓밟거나 싹을 꺾지 않습니다. 그들한테 맞서려는 불길이 있어야 오히려 그들이 거머쥔 벼슬자리를 더 단단히 틀어쥐기 때문입니다.

저는 1970∼80년대에 어린날을 보내며 온갖 주먹놈을 겪고 지켜보았습니다. 국민학교나 마을에서 아이들은 돈있는 집이나, 힘센 주먹이거나 하면, 시험성적이 높거나 하면, 다들 이런 것을 휘두르면서 또래와 동생을 때리고 돈을 빼앗기 일쑤였습니다. 국민학교 여섯 해 내내 얻어맞고 돈을 빼앗기는 나날이었는데, 나라에 큰놈(대악마)이 있으면, 배움터와 마을에 작은놈(소악마)이 어우러지는 길을 바로 ‘그들’이 단단하게 세운 셈입니다. 1970∼80년대뿐 아니라 1950∼60년대와 1900∼40년대에도 이런 큰놈·작은놈 얼거리는 똑같았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주머니에 1원 한 푼조차 없으면 더 얻어맞더라도 뭘 빼앗기는 일은 없더군요. 그들이 주먹이 지쳐서 때림질을 그칠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면 오히려 때림질이 지겹다면서 침을 뱉고서 떠나요. 어려운 말로 ‘비폭력·무저항’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가 늘 불타올라서 그들하고 어지럽게 뒹굴며 싸우기를 바라더군요. 그래서 그들하고 안 어울리고, 안 불타오르면 오히려 그들은 ‘그들 스스로 벌이는 바보짓’을 느끼고 돌아보고 되새길 틈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느덧 모지리 윤씨가 바보짓을 일삼은 지 석 달이 흐르는데, 우리나라는 지난 석 달 동안 ‘대통령 없이 멀쩡히 잘 굴러가는 나라’를 보여줍니다. 아니, 우두머리라는 자리는 오히려 없어도 되고, 그런 자리를 맡는 나라지기가 없어도 걱정할 일이 없는 줄, 나라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알뜰살뜰 살림을 꾸릴 적에 든든히 지키는 줄 알아보는 나날로 삼아야지 싶습니다.

그들이 왜 우리가 불타오르기를 바라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불타오르면서 그들한테 손가락질을 하고 싸움박질로 얼크러지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돌아볼 짬이 사라지고, 우리 집을 멀리하고 말아요. 그들을 모두 몰아낸 자리에는 무엇을 세워야 할까요? 또다른 모지리가 우두머리나 나라지기를 차지하면 똑같은 굴레가 찾아올 뿐입니다. 우리는 이즈음에 ‘아이들이 물려받을 아름길’을 어떤 손으로 어떻게 살림하면서 사랑누리로 가꾸어야 슬기롭고 어진 어른으로 설 만한지 생각할 일이라고 봅니다. 《아나스타시아 1∼10》(블라지미르 메그레) 같은 책이야말로 오늘날 찬찬히 읽고 새기고 나눌 노릇이지 싶습니다.

bookholic 2025-02-13 09:29   좋아요 0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해주신 아나스타시아는 꼭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