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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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출퇴근길에 영어 공부 좀 하겠다고 EBS 라디오를 듣곤 했었는데, 중간 중간 광고에 자주 나오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단다. 정확한 멘트는 생가나진 않지만, 12시 밤 12시에 만나요, <윤고은의 EBS 북카페>.. 대충 이런 멘트가 있는 광고였어. 아빠도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 방송을 듣고도 싶었지만, 12시와 밤 12시에 라디오를 듣기는 쉽지 않은 시간대지. 그리고 나중에 윤고은 님이 소설가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 그런데 아빠는 그분의 책을 읽은 적이 없었단다. 아빠도 한국문학에 아주 문외한은 아닌데, 어쩌다 윤고은 님의 책을 만날 기회가 없었을까.

그러다가 몇 달 전에 윤고은 님께서 대거상이라는 상을 탔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사실 대거상이라는 것도 처음 들어봤는데, 영국에서 유명한 추리문학상이라고 하는구나. 우리나라 최초로 대거상 번역추리소설 부문에서 수상하셨다고 했어. 뭐야, 추리 소설 쓰시는 분이었어? 라디오 광고에서 들은 윤고은 님 목소리는 엄청 부드러우셨는데, 추리 소설도 쓰셨구나. 갑자기 그 대거상을 탔다고 하는 책이 궁금해졌단다. 그리고 아빠가 추리소설을 쫌 좋아하잖니. 그렇게 알게 되어 읽은 책이 <밤의 여행자들>이라는 책이란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이 2013년이구나. 그 동안 몰라봐서 미안하네.^^ 민음사에서 시리즈로 내고 있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3권이었네. 대거상 수상으로 출판사도 미소를 지었겠네.


1.

주인공 고요나는 정글이라는 여행사에 다니고 있단다. 그런데 이 여행사는 평범한 여행사가 아니었어. 여행사 정글은 재난 장소로 가는 여행상품만 판매하는 독특한 여행사란다. 재난 여행이라는 것이 실제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있어도 그런 곳에 가려는 사람들이 많을까? 남들의 고통을 통해서 얻는 것은 무엇? 이 소설에서 재난 여행을 통해서 얻는 것이 있다고 야기를 했는데, 그래도 아빠는 실제로 이런 상품이 있다 해도 가지는 않을 것 같구나. 아름답고 멋진 곳들도 얼마나 많은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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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 à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 à 내 삶에 대한 감사 à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단계까지 마음이 움직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국 이 모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니까 재난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는 이기적인 위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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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요나는 이 여행사의 10년차 수석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재난 여행 상품을 기획하며 발굴하는 그런 일을 했어. 어느 날 그의 상사인 김조광 팀장이 그에게 성추행을 했어. 다른 회사 같으면 김조광 팀장이 짤려나갔을 텐데, 이 회사는 김조광이 인사권의 50% 이상을 갖고 있어서 김조광을 어떻게 할 수 없었어. 사실 김조광이 이런 성추행을 한 것이 고요나가 처음이 아니었어. 그 이전에 다른 사람들한테도 했어. 그런데 그 성추행 당한 사람의 공통점은 회사에서 좀 위태위태한 사람들업적 부진으로 곧 잘릴 것 같은 사람들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고요나는 성추행의 수모도 수모지만, 자신이 퇴출되는 것인가? 이런 고민도 했어.

여러 번 김팀장의 성추행을 당하고 결국 요나는 사표를 썼어. 그런데, 김팀장은 사표를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요나에게 한 달간 휴가 겸 출장을 주였어. 그들의 여행 상품들 중에 인기가 없는 곳에 가서, 이유가 무엇인지 직접 체험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것이었어. 병 주고 약 주나. 아빠가 요나라면, 그런 건 니가 하라면서 사표 쓰고 김팀장을 고소했을 것 같은데, 소설 속 요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단다.


2.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요나에서 홍보팀에서 추천한 곳은 비싸지만 인기 없는 사막의 블랙홀이라는 상품이었단다. 가상의 조그마한 섬나라 무이에 있는 사막인데, 수십 년 전에 사막 한 바탕에 블랙홀이 생겨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사건이 있었어. 그래서 재난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되었는데, 요즘에는 인기가 시들었단다. 일정은 5 6일 일정으로 직접 가는 항공편이 없어서,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를 까먹었어. , 벌써 일정부터 마이너스.

이번 여행에 같이 간 이들은 모두 다섯 명으로 간신히 숫자를 채웠단다. 교사와 어린 딸, 시나리오 작가, 군대를 갓 제대한 대학생, 그리고 요나. 현지 가이드 루까지 포함하면 여섯 명이었어. 현장을 들러본 요나는 왜 인기가 시들하고 퇴출 후보인지 알게 되었단다. 사막의 싱크홀에 지금은 물어 들어차 있어서 전혀 재난 현장 같지 않았어. 그리고 그 사막에 살고 있는 운다 족과 카누 족이 예전에 전쟁을 벌여 서로 죽이고 죽고 그랬어. 그래서 그 부족들과 하룻밤 같이 체험하는 코스도 있었는데, 그것도 전혀 감흥을 주지 못했어.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상품이었고, 체험자들이 블로그에 여행기를 쓴다면 재난 여행지로는 완전 비추로 작성할 그런 곳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열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데, 열차가 중간에 둘로 갈라져서 한 쪽은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을 모르고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기차는 둘로 갈라졌단다. 그리고 자신의 짐과 일행은 가른 열차 칸에서 공항으로 갔고, 요나는 빈털터리가 되어 혼자 다른 곳으로 향했어. 요나의 고생은 그것이 끝이 아니야. 여건과 지갑은 잃어버리고, 핸드폰 배터리는 다 떨어졌단다. 우여곡절 끝에 무이에서 머물렀던 벨에포크 리조트로 다시 왔단다. 돈도 없고, 여권도 없으니 당장 돌아갈 수 없었어. 그런데 며칠 뒤 여행의 일행이었던 시나리오 작가가 다시 리조트로 돌아왔단다. ? 왜 다시 돌아온 거지?


3.

그 시나라오 작가는 황준모라는 사람인데 그는 벨에포크 리조트와 함께 일하기로 했다고 했어. 무슨 일? 무이의 관광 사업을 다시 살리기 위한 일. 그런데 거기 시나리오 작가가 왜 필요하지?

요나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한국에 있는 자신의 회사인 여행사 정글에 전화를 했어. 그 전화를 듣건 벨에포크 리조트의 매니저 폴은 요나가 여행사 직원이라는 것을 알고 협조를 요청하였단다. 무이 관광 사업을 다시 살리는데 도와달라고 말이야. 그것이 요나의 회사에게도 도움이 되고, 요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냐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 일이라는 것이 좀 그랬단다. 인공적인 싱크홀을 만들고 그것이 자발적으로 생겨났다고 홍보하는 것이야. 앞뒤 정황을 잘 만들고, 사고 발생 뒤 극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시나리오 작가 황준모도 그 곳에 있었던 거야. 요나는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나 보니 얼떨결에 그 사업에 합류하기로 했어. 사고 발생 후 희생자들을 만들기 위해서 시신들도 구해서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었단다. 잔인한 면도 없진 않지만, 일단 이 작전이 성공하면 벨에포크 리조트는 살아날 수 있으니 리조트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지.

그리고 그 사고일은 8월 첫 번째 일요일로 계획했단다. 그런데 그날 새벽….. 더 엄청난 재난이 그곳에 몰려왔단다. 쓰나미.. 동남아 섬나라였던 무이에게 예상하지 못한 재난은 아니었지만, 예고도 없이 찾아온 갑작스러운 쓰나미가 모든 것을 휩쓸어 갔단다. 그곳에 머물고 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그 동안 아빠가 감정이입을 하며 읽던 주인공 고요나도 마찬가지로 죽고 말았단다. 아빠는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기 때문에 주인공인 죽는 경우 약간의 충격을 받는데, 이번에도 그랬어.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지만, 무이는 쓰나미는 대 재난이 발생해서, 다시 재난여행상품으로 인기를 끌게 되겠지. 결말이 약간은 블랙코미디 요소도 좀 있긴 한데, 주인공은 간신히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참, 요나의 시신은 아직 찾지 못했지? 죽었다고 장담해도 되나? 이 책의 속편이 나와서, 요나가 죽지 않고 살아 나타나서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 어떨까, 그런 상상도 해 보았단다. 예를 들어 피눈물 나는 사람들의 아픔을 여행 상품으로 파는 여행사 정글과 싸우는 휴머니즘? ㅎㅎ 아빠가 너무 나갔나? 아무튼 이 소설을 나쁘지 않게 읽었단다. 윤고은 님의 다른 책들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그리고 윤고은 님이 진행하는 윤고은의 EBS 북카페도 꼭 들어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북상하는 것.

책의 끝 문장: 그러나 거기에도 요나는 없었다.


사막은 스스로 분열하듯이 수많은 색들을 만들어 냈다. 사막에도 채도와 명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막을 말할 때에 수만 가지 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모래의 색에 따라 사막의 색도 달라지면서 이름이 달라졌다. 흰모래사막이 있는가 하면 붉은모래사막이 있었다. 같은 이름의 사막도 그 위에 구름이 얼마나 덮고 있느냐, 구름 위로 햇살이 내리쬐느냐 아니냐에 따라 색이 달라졌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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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07 23: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아직 못 읽어봤어요. 추리소설에 손이 잘 안가서 그런가 봐요 ㅜㅜ 작가님이 라디오도 진행하시는군요. 왠지 궁금합니다 ㅋ 속편이 필요한 작품이라니 여운이 많이 남나봐요 ^^

bookholic 2021-12-08 21:35   좋아요 1 | URL
정통 추리소설은 아니니까 문학을 사랑하시는 새파랑님도 잼있게 읽으실 것 같아요.. 순식간에..^^

scott 2021-12-08 00: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좋았습니다 영어로 번역 된걸로만 읽었지만 이런 스타일에 한국 문학 아주 신선했습니다.책 읽기전 부터 윤고은님 EBS 북카페 들었었는데 글쟁이와 전혀 다른 활달 명랑하신분 ^^

bookholic 2021-12-08 21:36   좋아요 2 | URL
영어로 읽으셨군요.. 역시^^.. 어떻게 번역이 되었을까 궁금하네요~~ 저도 라디오 꼭 들어보겠습니다~~^^

mini74 2021-12-08 00: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속편이 필요하다 ㅎㅎ 저도 동의합니다 *^^*

bookholic 2021-12-08 21:37   좋아요 2 | URL
주인공 고요나 님을 그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 없습니다 ㅎㅎ
 
녹색평론 통권 181호 - 2021년 11월~12월, 창간 30주년 기념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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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녹색평론 181(2021 11-12)>를 읽었단다. 읽기 전에 이번 호가 녹색평론 30주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올해 계속해서 녹색평론 30주년 특별 기획으로 출간하기도 했고그렇다고 거창한 것은 아니었고, 녹색평론답게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글들을 실어 주었단다. 녹색평론을 창간하고 늘 함께하던 김종철 님의 부재가 아쉬웠지만, 김종철 님의 동지이자 따님이신 김정현 님께서 잘 이끌어주셔서 녹색평론이 길을 잃지 않고, 30주년까지 잘 온 것 같구나.

아빠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녹색평론이라는 잡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법정 스님의 책을 통해서였단다. 그래서 그 이후에 빼놓지 않고 읽어봤는데, 아빠도 녹색평론을 함께 한 지가 10년이 넘었구나. 20주년 특집, 25주년 특집이 엊그제 같았는데, 세월은 너무나 빨리 흘러 어느덧 30주년이 되었구나.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이어졌는데, 양질의 책 내용처럼 독자수도 계속 늘어나고 출판사도 번창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리 되지 않은 것 같더구나. 예전에도 녹색평론의 재정적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최근에도 여전한 것 같아. 이 좋은 글들을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 또한 안타깝구나.

갑작스럽게 김종철 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김정현 님께서 녹색평론을 잘 이끌고 계시고는 있지만, 조금은 힘에 부치신 것 같구나. 이번 30주년 기념호 녹색평론을 출간하고, 1년 동안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30년간 쉼 없이 달려왔으니, 1년간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1년은 금방 휙 지나가니 그리 긴 시간도 아니고…. 1년 동안 잘 쉬시고,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바래본다. 식상한 인사말이지만, 녹색평론이 우리 사회에 영원한 녹색 빛이 되어 주기를….


1.

아빠는 녹색평론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단다. 세상을 보는 눈, 사회를 보는 눈, 국가를 보는 눈의 시력을 높여 주었어. 가끔 그 내용이 어려워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비슷한 주제를 다룬 글들을 계속해서 실어주어, 여러 번 읽다 보면 이해가 가기도 했어. 그리고 많은 불편한 진실들도 알게 되었어. 녹색평론은 창간 할 때부터, 그러니까 30년 전부터 그런 불편한 진실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했고, 그런 불편한 진실을 없애기 위해 여러 조언들 해주었단다.

아래도 김종철 님의 녹색평론 창간사에 있던 말인데, 지금 이야기를 해도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글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들려주어도 좋은 글이고 말이야. 그만큼 김종철 님은 세상을 보는 눈이 남다르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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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생태학적 재난은 결국 인간이 진보와 발전의 이름 밑에서 이룩해온 이른바 문명, 그 중에서도 특히 서구적 산업문명에 내재한 논리의 필연적인 결과로서의 사회적, 인간적, 자연적 위기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지구상에서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올바른 방식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진실로 심오한 철학적 종교적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녹색평론사> 창간사, 1991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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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집권층들이 그런 말을 새겨 듣지 않은 것이 문제였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지도자들도 이런 것들에 관심이 없었지. 결국 30년이 지난 지구는 기후위기와 끝날 것 같지 않은 무서운 전염병에 커다란 위기에 빠져 있구나. 이런 것들이 자본주의의 병폐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한번 만들어진 시스템을 겁나서 바꾸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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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지난 2~3세기 동안 이른바 문명세계가 산업문명을 통해서 이룩했다고 하는 높은 생활수준은 실은 인간사회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끊임없이 찢고 할퀴는 난폭한 짓을 되풀이함으로써 얻어진 부산물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서구 자본주의의 산물인 산업경제와 그것에 의존해온 근대적 문명은, 그것이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와 지하자원을 대량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것인 한,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종말의 파국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한계를 그 출발점에서부터 내포하고 있다.”(<책머리에>,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녹색평론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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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님의 녹색평론 창간사에서 하나만 더 보자꾸나. 당시만 해도 과학 기술이 우리 인류에 주는 편리함과 빠름으로 인해 과학 기술은 찬양의 대상이었단다. 하지만 그때 이미 과학기술이 인류와 지구 생태계의 대재난을 초래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의 말은 안타깝게도 현실이 되고 만 것 같구나. 이렇듯 세상에는 김종철 님과 같은 선지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적은 게 현실인가 보구나. 누가 사람들을 이렇게 조종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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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오늘날 과학기술의 힘이 막강하고, 부분적이나마 과학기술 수준이 찬탄스러운 것이라 해도, 과학은 여전히 우리의 삶의 바탕과 이 세상과 우주의 근원적인 진리를 해명하는 데에는 너무나 미약하고 부적절한 수단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하물며, 기계론적 우주관과 선형적 진보사관에 의지하여 전개되어온 지난 수세기의 근대과학기술의 성과는 이제 인류의 파멸까지도 배제하지 않는 지구생태계의 대재난을 초래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온 것이 아닌가? 삶의 태반을 망가뜨리면서 그것을 진보와 발전이라고 믿어온 것은 실로 우매의 극치라 할 만하고, 완전한 미치광이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 관계, 그리고 근대과학의 근본가정에 깔려 있는 폭력성에 대한 뿌리로부터의 철저한 반성 없이, 계속하여 더 많은 과학과 더 정교한 기술만을 구한다면 파멸은 불가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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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녹색평론 30년 동안 줄곧 이야기해온 주제 중에 하나가 농촌에 대한 이야기란다. 이번 30주년도 농촌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런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도 같이 제시했단다. 우리나라 농촌의 여러 문제점은 정치 구조에 의해 일어난다고 했어. 중앙집권적 정치시스템이다 보니 농촌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의견이 많이 묵살된다는 거야.

면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모두 반대하는 사업이 그 면에 진행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것이 가능하단다. 그래서 그 면에 사는 국민들이 반대 시위를 하고 말이야. 지방자치제도가 있지만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거지. 지방자체제도가 제대로 동작하기 위해서는 군을 폐지하고 읍면 단위로 이루어져야 하며, 읍면장과 이장은 직접 선거로 뽑아야 한다고 했어. 지금은 군수들이 보이기 사업으로 하다고 보니 자신이 왕처럼 행동하는 것 같아. 면의 국민들과 툭하면 충돌이 일어나고, 비리나 저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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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외국의 지방자치제도를 보면, 군수와 군청이 아예 없는 나라도 많다. 그러니 면의 주민들이 반대하는 사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대한민국도 516 군사쿠데타 이전까지는 그랬다. 516 이전의 기초지방자치는 시, , 면 자치였다. 면장, 읍장도 직선으로 뽑고 면의원, 읍의원도 뽑았다. ()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니었다. 그런데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세력이 쿠데타에 성공하자마자 지방자치를 중단시키면서,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면,읍을 군()으로 강제 통합했던 것이다.

그런데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이런 박정희의 잔재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991년 지방자치를 부활시키면서도 면,읍 자치를 부활시키지 않고 군 단위로 지방자치를 부활시킨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이상한 지방자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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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앙집권적 정치제도로 인해, 남의 동네에 필요한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를 우리 동네에 만드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거란다. 그걸로 끝이 아니고, 그 전기를 남의 동네까지 전송하느라, 고압송전탑을 또 우리 동네와 남의 동네 사이에 있는 동네들에 만들고물론 그 동네의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말이야그래서 반대 시위라도 하려면 하면 님비(NIMBY)라고 비판하고하지만, 누가 진짜 님비(NIMBY)인지는 조그만 생각해 보면 알게 된단다. 그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기 지역의 전기는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데우리나라가 중앙집권적 정치제도가 너무 확고해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은 안 드는구나. 솔직히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우리도 사실 위에서 이야기한 남의 동네근처에 살고 있어서 읽는 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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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렇다면 누가 님비(NIMBY)인가? 전기를 많이 쓰면서도 우리 지역에 발전소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쪽이 님비인가, 아니면 우리 지역에서 쓰는 전기도 아닌데 발전소와 송전선을 우리 지역에 건설하겠다고 밀어붙이니 거기에 반대하는 것이 님비인가? 사실은 서울과 그 인근 지역이야말로 극단의 님비이다. 외부에 전기를 의존하면서도 스스로 전기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곳이다. 게다가 발생하는 생활쓰레기도 자체 처리를 못하고 외부로 반출해서 버리는 도시가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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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런데 이런 방식은 놔두고, 농지를 훼손해가면서 태양광발전을 늘리겠다는 것은 전환이 아니라 공멸로 가는 길이다. 이것은 전력시스템 측면에서 보더라도 매우 위험하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장거리 초고압송전에 의존하는 전력시스템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경우 수도권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초고압송전선 몇 군데에서 동시에 사고가 나면 전력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전은 그 위험을 감추기 위해 송전선을 덕지덕지 건설하고 있지만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해답은 지역분산형으로 전환하고, 자기 지역의 전력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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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30주년 기념호에도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오늘은 한가지만 더 이야기를 하고 마치련다. 비싸지만, 즐겨 먹지는 못하지만 간혹 그 달콤함에 사 먹게 되는 샤인머스켓이라는 과일그것이 예상은 했지만, 유전자 조작까지는 아니지만 성장호르몬을 처리하여 씨가 없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 때 사용한 성장호르몬 지베렐린에 대한 안정성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유전자 조작과 비슷한 것이구나. 예전에 씨가 없게 조작한 과일들을 많이 먹으면 불임의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샤인머스켓을 좀 멀리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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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7)

샤인머스켓은 낯선 과일이다. 칠레와 FTA 협상이 타결된 이후 눈에 띄게 늘어서 수입한 청포도라고 짐작했는데, 우리 땅에서 재배하는 일본 품종인 걸 얼마 전에 알았다. 기껏 육종했건만 한국에 주도권을 빼앗겨 아쉬움이 크다는데, 약삭빠른 일본 자본도 가끔 실수하나 보다. 먹어보니 씨가 없고 아주 달다. 유기농 포도를 재배하는 이는 포도 영양분의 85%가 씨에 있다는데, 샤인머스캣은 왜 씨가 없을까? 그렇게 육종한 걸까? 아니라고 한다. 꽃이 필 때와 열매가 생길 즈음, 식물 성장호르몬인 지베렐린을 두 차례 처리한 결과이다.

지베렐린은 사람과 가축에 해가 없다지만, 복합오염 시대에 우리가 그 위험을 아직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요즘 거봉도 씨가 없다.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을 텐데, 먹기 편해지려고 씨를 꼭 없애야 했나? 바나나도 씨가 없는데, 지베렐린과는 관계없다. 우연히 씨 없는 열매를 찾아냈고, 알뿌리로 번식이 가능한 그 다년생 풀을 집중적으로 재배해 오늘의 바나나 품종이 세계 과일시장을 점유하게 되었다. 씨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깨진 자동차 유리 파편처럼 생긴 씨앗이 촘촘히 박힌 바나나를 발견하면 새 품종을 찾을 기회이므로 팔지 않으니 시장에 나오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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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녹색평론> 창간 3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은 몹시 무겁다.

책의 끝 문장: 숲이 없으면 사람도 살 수 없다.


결국 이러한 문제의식들은 생명협동운동으로서 직거래운동과 유기농운동을 결합해 도농상생의 공동체를 일구기 위한 한살림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여기서 직거래운동은 유통마진을 줄여 생산자, 소비자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것에 머물지 않고, 상호 신뢰를 통해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내는 새로운 경제운동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기농운동 역시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을 줄여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순환과 생태계 복원, 생명존중 실천이라는 의미를 폭넓게 담고 있다. 따라서 친환경 유기농업의 등장 이유를 우루과이라운드 등 농산물 수입개방 상황에서 국내산 농산물의 경쟁력 강화 차원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런 운동적 관점을 놓친 매우 협소한 시각이다. - P25

고도로 화폐화된 자본주의사회는 세계화와 도시화로 필연적으로 귀결되어, 수많은 사회문제와 환경문제를 낳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지역화’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화폐에 담겨 있는 본래적 의미를 잘 살린다면, 화폐(국가화폐와 은행화폐) 의존적인 삶을 벗어나 지역화된 사회로 이행하는 데 지역화폐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홍동면의 지역화폐운동은 궁극적으로 화폐(지역화폐도 포함)가 부족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한 공동체로 가는 이해 도구로 지역화폐만큼이나 유용한 것도 없다. - P47

신혼부부 앞에서 주치의는 "태어날 당신 아들은 운동을 좋아할 텐데 야구에 적성이 맞고, 투수보다 유격수를 추천"할지 모른다고 리 실버는 전망했다. 젊어서 담배를 하루 한 갑 이상 피우면 60세 이전에 폐암에 걸릴 확률이 80%가 넘으니 금연을 권하거나 수정란 유전자를 폐암을 피할 유전자로 바꾸라고 권유할 것으로 예견하면서, 그런 현상을 피할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자식에게 좋은 유전자를 주입하는 걸 누가 통제할 수 있겠는가? 좋은 유전자로 세대마다 바꾼 부유층은 그렇지 못한 일반 계층과 어울리지 않을 텐고 그렇게 10세대 이상 지나면 서로 다른 종으로 구별되고 서로 관심이 없어질 거라고 실버는 예상했다. 침팬지에게 인간이 애정을 느끼지 않듯. - P61

라운드업은 광범위한 효능을 지닌 제초제일 뿐만 아니라 광범위하게 생명체들을 죽이는 독극물이다. 꽃가루를 매개하는 유익한 곤충이나 토양 생물을 말살한다. 라운드업레디 작물들로 인해 북반구에서 왕나비의 90%가 사라졌고, 과학자들이 ‘곤충 대멸종’이라고 부르는 현실 속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GMO 대두를 이용하여 가짜 고기를 생산하는 일을 ‘환경적으로 책임 있는 선택’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P80

"지난 2~3세기 동안 이른바 문명세계가 산업문명을 통해서 이룩했다고 하는 높은 생활수준은 실은 인간사회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끊임없이 찢고 할퀴는 난폭한 짓을 되풀이함으로써 얻어진 부산물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서구 자본주의의 산물인 산업경제와 그것에 의존해온 근대적 문명은, 그것이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와 지하자원을 대량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것인 한,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종말의 파국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한계를 그 출발점에서부터 내포하고 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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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사 우종영의 바림
우종영 지음 / 자연과생태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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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나무의사 우종영 님이 몇 년 전에 쓰신 에세이 한 편을 읽었단다. 제목은 <나무의사 우종영의 바림> 책 제목에 있는 바림이란 단어는 아빠는 처음 보는 단어였단다. 지은이 우종영 님이 나무의사이고 나무와 산을 무척 사랑하시는 분이라서, ‘바림이 한자로 수풀 림()이라고 생각하고 바림이 어떤 숲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니더구나.

바림은 순 우리나라 말로 그림을 그릴 때 물을 바르고 마르기 앞서 물감을 먹인 붓을 대어, 번지면서 흐릿하고 깊이 있는 색이 살아나도록 하는 일이라고 하더구나. 뜻도 좋고 발음소리도 좋은 순 우리말을 하나 알게 되어 시작부터 좋았단다. 이 책은 나무의사 우종영 님에 틈틈이 적어두었던 글들을 주제별로 엮은 글이란다. 틈틈이 문득문득 생각을 적은 글이라고 해서 결코 가볍지 않았단다. 인문학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글도 있고, 자연과학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글도 있고,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글들이 많았단다. 물론 나무에 관련된 글들이 가장 많았지. , 그럼 아빠의 마음에 스며드는 듯한 바림 같은 우종영 님의 글들 몇 개를 소개해 볼게.


1.

5 부로 구성되어 있어. 1부에서는 나무가 사람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면 어떤 내용으로 쓸까? 라는 지은이의 상상에서 시작된 글들의 모음이란다. 첫 번째는 가로수가 쓴 편지였는데, 아마 나무의사 우종영 님이 가장 불쌍하게 여기는 나무가 가로수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구나. 시멘트의 작은 틈에 뿌리를 내리고, 툭하면 가지를 잘리는 고통을 받는 가로수. 하루 종일 매연과 소음으로 시달리는 가로수. 아빠는 그 동안 별 생각이 보던 가로수였는데, 이 글을 읽고 보니 정말 불쌍한 생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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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도시 빌딩숲은 광합성을 방해한다.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숲,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 빌딩을 처음 만난 날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와 흔들린 만큼 빛이 뿌려지는 공평한 숲이 아니다. 그나마 햇빛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건 다행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당시 최고 권력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우쭐대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었을 때, 햇빛을 가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나무는 디오게네스와 달리 우쭐대는 빌딩 숲 사이에서 나무 큰 나무들 사이로 이사 온 것 같구나. 나도 얼른 커야겠다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빛을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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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나무 예찬에 관한 글들이 실려 있단다. 아빠도 나무를 좋아하는 편이란다. 산에 가면 많은 나무들이 함께 뿜어내는 향기가 좋고, 곧게 뻗어 중력을 거스르며 자라는 나무의 기개가 좋고, 스스로 아름다운 모습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것과 함께 어우러져 환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도 좋단다. 예를 들어 겨울에 눈 덮인 나무의 모습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잖아.

그런 나무들을 잘 자라는 게 하는데 여러 요소들이 있어. 햇빛, 흙 속의 영양분, 적당한 물 등. 그런데 아빠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단다. 바람. 바람은 나무에게 방해만 주는 녀석인 줄 알았거든. 가끔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으로 나무가 뿌리지고, 뿌리 채 뽑히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야. 물론 그런 강한 바람은 나무의 적이지만, 살살 시원하게 부는 바람은 나무에게 필수라고 하는구나. 나무의 대사활동에 도움을 주고, 뿌리는 튼튼하고 하고, 과일 나무는 과일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말이야. .. 숲 속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문득 떠오르니 갑자기 산에 가고 싶구나. 우종영 님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늘 산에 가고 싶게 만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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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바람은 빛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뀐 것이다. 만약 바람이 없다면 잎의 온도는 엽록소가 파괴될 만큼 올라갈 것이며, 증산작용을 하지 못해 대사활동이 떨어진다. 맛있는 과일과 곡식과 맺지 못한다. 바람은 나무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다. 꽃가루를 옮겨 주기도 하고, 씨앗을 멀리 보내 주며, 뿌리의 발달을 돕는다. 나무를 옮겨 심고 지주목을 받쳐 주어야 하는 것도 바람에 흔들려 새롭게 태어나는 뿌리가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지주목이 오래도록 나무가 흔들리지 못하게 한다면 뿌리는 깊고 멀리 뻗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 때 흔들리지 않으므로 자기 뿌리가 그만큼 든든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에 너무 강한 바람은 나무를 넘어트리거나 가지를 부러트리기도 하고, 깃발이 흔들리는 것처럼 한쪽 가지를 몽땅 빼앗아 가기도 한다. 특히 외따로 자라는 나무에게 바람은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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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에서는 나무의 본성에 대한 글들이란다. 같은 생명체이긴 하지만 사람을 비롯하여 다른 생명체들과 다른 나무만의 특징들을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다른 생명체와 다른 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아무래도 오래 사는 것이 아닐까 싶구나. 몇 백 년, 몇 천 년 된 나무들을 예사로 볼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런 오래된 나무들의 속은 대부분 비어 있다고 하더구나. 마치 노자의 사상처럼 말이야. 비어야 채울 수 있다는 듯실제로 그 비어 있는 곳에 다른 생명체들을 품는다고 하는구나. 작은 동물들의 안식처가 되는 것이지()란 것은 나무처럼 오래 사는 생명체여야 깨달을 수 있는 것 같구나. 비움이 좋다는 진리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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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오래된 나무는 대부분 속이 비어 있다. 나무는 하늘과 땅이라는 두 개의 젖꼭지를 물고 양쪽에서 자양분을 취하는 유일한 생명체다. 가지는 하늘에 근본을 두고 뿌리는 땅에 근본을 둔다. 두 개의 근본을 가지며 나이를 먹을수록 중심을 비우므로 하늘과 땅의 소통을 이룬다. 속이 비어 있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이다. 노자는 비어 있음으로써 유용하다고 했다. 마차 바퀴통은 중심이 비어야 살을 끼워 저항을 줄이며 구를 수 있고, 그릇은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사람도 어딘가 비어 있어야 다른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있듯이, 나무는 속을 비워 냄으로써 많은 생명체를 품는다. 나무의 텅 빈 속은 아늑하며 따뜻하고 숨기 좋으므로 하룻밤 쉬어 가는 동물이 번갈아 드나드는 공간이 된다. 살아서 몸을 보시하는 보살의 화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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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에서 나무와 바람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 더 하셨는데, 그 이야기가 너무 공감이 가고 좋아서 또 발췌해 보았단다. 아빠도 너희들에게 바람 같은 존재가 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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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나무에게 바람은 어떤 존재일까? 만약 나무가 태어나자마자 학교에 들어갔다면 바람은 무서운 훈육주임이고, 사춘기에는 친구, 청년기에는 연인, 사회에 진출하면 질서와 규율, 노년기에는 스킨십을 잊지 못하게 하는 추억이다. 숲속에서 태어난 어린 나무에게 바람이란 큰 나무나 겪는 일이지만, 가끔씩 큰 나무도 감당 못하는 바람이 불어올 때면 어린 나무에게도 무서운 존재로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뿌리를 사방으로 뻗어 나갈 것이다. 좀 더 커서는 바람을 맞아놀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친구처럼 대하고, 이제 어엿한 나무가 되면 바람을 그리워하게 된다. 장성해 숲의 주인이 되어 갈 즈음이면 바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더 크고자 하는 욕망을 통제한다. 노년이 되면 무성했던 가지와 잎도 사라지고 엉성한 가지 사이로 바람마저 피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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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우종영 님의 책 중에 가장 처음 읽은 책은 <나도 나무처럼 살고 싶다>란 책이란다. 그 책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문구가 나무는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는 거야. 그러면서 사람도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 사랑하는 가족들도 마찬가지이고 말이야. 그 문구가 이번 책에서도 다시 한번 소개되어 반가웠단다. 나무처럼 일정 간격 두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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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 오래된 숲일수록 소소해지며, 적당한 간격으로 서 있음을 볼 수 있다. 생물학 용어에서 개체거리란 어떤 생물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른 개체와 유지해야 할 거리를 말한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경쟁관계가 되며, 너무 떨어져 있으면 관계를 맺을 수 없으므로 개체거리가 중요하다. 풍매화의 꽃가루나 곤충을 이용해 수분하는 나무도 개체 간 거리가 필요하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하므로 근친관계가 이루어지기 쉽다. 따라서 무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서로 유전자 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집단적으로 분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꽃에 신경 쓰지 않는 풍매화는 바람이 부는 봄날 일시에 꽃가루를 날려 보내야 한다. 나무에게는 부부라는 개념이 없고, 정자에 해당하는 꽃가루를 무작위로 방출해 암술의 주두에 닿으면 수정되는 방식, 즉 물고기처럼 체외사정으로 성교하는 셈이다. 그런 일은 분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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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에서는 나무가 우리에게 베풀어 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나무가 우리에게 베풀어 준 것을 어디 손으로 헤아리겠니. 지은이는 그 중에 나무들이 자신에게 걷기를 충동질했다고 하는구나. 좋아하는 나무를 보기 위해서는 걸어야 하니까. 그러면서 걷기에 대한 예찬을 쏟아내는데, 좋은 글들이 참 많았단다. 모든 글들을 마음에 새기고 그의 말 따라 아빠도 부지런히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은이가 이야기한 걷기에 대한 예찬을 모두 적고 싶지만, 너무 양이 많아서 두 문단만 뽑아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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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걷기는 끊임없이 몸과 타협해야 한다. 기계를 돌보는 엔지니어처럼 몸 구석구석을 점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동안 쓰지 않아서 퇴화한 근육들이 아우성을 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마음은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가슴에 있어야 할 영혼은 발바닥에 머무르며 온몸은 발바닥의 지시를 받는다. 걷기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일이다. 잔잔한 고통을 통해 몸과 마음이 화해하는 행위다. 그동안에 잊었던 몸 구석구석을 돌아보게 하며 서로가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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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걷기란 이동 수단이 아니라 내면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수단이다. 걷기란 수많은 질문과 답이 오가는 과정이다. 자연스럽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의문점들이 떠오른다.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말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동안 잘 있었니, 미안해, 주로 마음이 몸에게 일방적으로 화해를 청하는 모습이다. 몸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강조하지만, 그런 경지는 걷기를 통해 잠시 맛볼 수 있다. “나는 나의 몸이다라고 한 그의 말처럼 걷기에서 내 몸과 나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 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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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제 5부는 지은이 우종영 님의 직업인 나무의사로서 나무에 대한 예우와 나무의사로서의 경험들을 이야기해 주었단다. 그러면서 나무를 생명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다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어. 나무들이 사람들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들도 아마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할 텐데 말이야. 최근 인권에 빗대어 동물권이라는 말들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처럼 생명체인 나무권에 대한 이야기도 했단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생존권을 주어야 한다고 했어. 가로수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간신히 목숨만 이어가는 그런 환경에 처해진 나무들은 없도록 말이야.

지은이 우종영 님은 정말 나무를 사랑하는 분 같더구나. 아빠가 그런 나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지만, 길가에 있는 가로수를 보면서 위로의 쓰다듬을 하곤 해야겠구나. 그들 또한 생명체임을 생각하고 말이야. 고맙다. 나무야.


PS:

책의 첫 문장: 가을, 가로수 낙엽들은 갈 곳을 잃고 가벼운 몸을 뒤척이다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책의 끝 문장: 나무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모름지기 명의가 되려 하지 말고 직업인으로서 존경받는 직종을 만들어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무뿌리에는 살아있는 세포들이 밀집되어 있다. 그런 만큼 신선한 산소도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토양 속 틈은 뿌리들에게 생명의 공간이다. 제주도나 울릉도에 가서 숲길을 걸으면서도 마음이 편한 것은 화산석이라 뿌리들이 숨 쉬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제주 산천단의 천연기념물인 곰솔을 보면 탐방객 때문에 길옆은 답압이 심할 텐데도 싱싱하게 잘 자란다. 화산석에 숭숭 뚫린 공기구멍 덕분이다. 나무의 뿌리 분포는 대부분 지표면 15센티미터 안에 물려 있다. 뿌리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숨 쉬기를 원하는지 알 수 있는 증거다. 가로수는 늘 어두운 땅속에서 물과 양분, 신선한 산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부족함을 벗 삼아 느린 숨을 쉬며 길 위에서 수행한다. - P20

나무는 사람을 닮고 사람은 나무를 닮는다. 오랜 세월 동안 같이 겪었을 홍수와 가뭄, 추위와 더위,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옹이 박힌 나이테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다. 사람은 갔지만 나무는 살아남아 사람의 삶을 증언하기도 하고, 질긴 생명력으로 이 땅에 살다간 조상들과 닮아서 그들의 숨결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신선했던 민초들의 삶을 보듬어 주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해 주며 스스로 신이 된 신목들을 만나 본다. - P34

토머스 파켄엄의 말을 들어보자.
"오래된 나무들의 크기는 수령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대신 나무의 장수는 스트레스와 관련된 같았다. 가장 오래된 브리슬콘소나무는 더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열악한 환경을 선택했다. 겨울에는 눈보라에 시달리거나 폭설에 파묻혔고 봄여름에는 뙤약볕에 바짝 말라 버렸다. 눈 녹은 물 이외에는 마실 것도 없었고 생장이 가능한 시기는 1년에 고작 몇 주에 불과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수준으로 생장이 느려졌다."
- P63

흙이 발효되는 냄새와 얼굴에서 온몸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습기, 들뜬 꽃들의 분 냄새, 나는 그것들을 내 몸 안에 가두어 두려고 큰 숨을 들이쉬고는 내뱉질 못했다. 며칠 전만 해도 인쇄소에서 잉크 냄새에도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밤에는 기계 위에 걸쳐 놓은 마루에서 잠을 자야 했다. 무엇인가가 내 몸을 꽃향기와 흙 내음 속으로 격렬하게 내몰았다. - P80

멈춤이 자람보다 중요한 것은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어서다. 나무의 생장을 멈추게 하는 상태를 스트레스 상태라고 하며, 생장하기에 적절치 못한 상태에 접어들었을 때를 뜻한다. 나무는 고온과 저온, 동해와 냉해, 바람, 대기오염, 수분 등이 많고 적음에 따라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때 생장을 멈추기 못한다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각 나무는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므로 상대적인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나무는 상대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182

나무 진단은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나무의 껍질은 나이와 환경을 대변한다. 세월에 따라 변하는 시간의 지문이다. 젊은 껍질과 늙은 껍질이 공존한다. 해쓱한, 까칠한, 촉촉한, 검은, 검버섯, 푸른, 이끼, 거칠고 부드러움, 질감과 색감이 조응하며 언어로 드러난다. 본질은 그 언어 속으로 숨는다. 마침내 나무의사는 언어를 뒤지며 원인을 찾아낸다.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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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01 07: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이 좋아하는 에세이라니 급관심이 갑니다. 나무는 잘 모르지만 나무 보는걸 좋아하는데 읽어보고 싶어요 ^^

bookholic 2021-12-02 07:48   좋아요 2 | URL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저는 우종영 님의 책들이 다 좋았어요~~^^
기회가 닿는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쌀쌀한 날씨지만 따뜻한 하루 되시고요~~

mini74 2021-12-01 2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이란 단어에 이런 뜻도 담겨 있군요 참 예뻐요. 나무이야기와 에세이라. 저도 관심이 갑니다. ~

bookholic 2021-12-02 07:53   좋아요 1 | URL
좋은 우리말들이 많이 있는데, 잘 쓰지는 못하네요...
우종영 님의 책에는 나무 이야기 속에 사람 이야기가 있어서 더 좋았어요...
오늘 하루도 행복하고 따뜻하고 편안한 하루 되시길~~~^^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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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전에 아빠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안녕 드뷔시>란 책을 읽고 이야기해 줄 때, 이야기한 것처럼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란 책은 아빠가 인터넷 서점에서 라흐마니노프 관련된 책을 찾다가 알게 된 책이란다. 장르는 무려 추리 소설.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로 부르는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한 추리 소설의 두 번째 이야기가 바로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란다.

라흐마니노프에 대해서 아빠는 잘 모르고, 너희들도 좋아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만 알아. 그래서 라흐마니노프에 관한 책을 검색해 봤는데, 아빠 입맛에 맞는 책은 찾지 못했고, 이 소설책만 알게 되었구나. 이 소설에 보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나와 있었단다. 좀 긴 글이긴 한데 너희들에게 알려주고 싶구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을 들으면서 한번 두들겨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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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43)

라흐마니노프는 1893년 볼쇼이 극장에서 상연된 오페라 <알레코>를 통해 신진 작곡가로 화려하게 데뷔한다. 그러나 4년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된 <교향곡 제1>은 비평가들에게 지독한 혹평을 받았다. 거침없는 독설과 신랄한 비판, 작곡가의 성격까지 언급해 가며 헐뜯기를 서슴지 않는 비판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젊은 라흐마니노프를 노이로제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우울증과 정신쇠약, 심지어 그 무렵에 연인 안나 로디젠스카야와의 관계가 끝난 것도 한몫 해 라흐마니노프는 창작 의욕을 잃었다. 표정에서는 웃음기가 싹 가셨고 곡상은 음표 하나 떠오르지 않았다. 가극단의 지휘자도 사임하고 말았다.

그를 걱정한 가족이 아는 사람을 통해 톨스토이에게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썼다. 톨스토이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작가인 데다 라흐마니노프도 그를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라흐마니노프를 절망의 늪에서 구해 내는 데는 그가 적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문호화의 첫 만남은 최악의 결과로 끝난다. 라흐마니노프가 톨스토이 앞에서 새 가곡 <운명>을 선보였지만, 다 듣고 난 후 이 작가가 라흐마니노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런 음악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라흐마니노프는 더 침울해졌다. 식욕이 감퇴하고 육체적으로도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을 만난다. 당시 유럽은 프로이크의 주요 저서가 출판되던 시기로 심리요법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달 의사도 최면요법을 통한 노이로제 치료 전문 의원을 러시아에 개업한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달 의사를 찾아가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다행히 최면요법이 효과를 보여 차차 안정감과 자신감을 되찾는다. 이리하여 1901년 완성한 곡이 <피아노 협주곡 제2>이다.

이 곡이 대중에게 가닿고 극찬받는 것은 선율의 아름다움과 장대함은 물론 곡 전체에 러시아의 세기말적 분위기가 감돌고 있기 때문이리라. 불안과 절망이 가라앉아 있는 제1악장에서 혁명의 흥분과 환희가 폭발하는 제3악장까지. 마치 그 후에 발발하는 러시아혁명을 예언하는 듯한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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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그럼 소설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

주인공 미사키 요스케는 <안녕 드뷔시>에서도 나왔던 그 천재 피아니스트이면서 예리한 추리력을 가지고 있던 그 사람이란다. 대학교에서 음대 강사로 일하고 있었어. 그가 일하고 있는 학교의 주요 학생들을 이야기해줄게. 기도 아키라는 평범하고 가난한 음대생으로 전공은 바이올린이란다. 남들이 악기 연주 연습을 할 때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서 돈가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 그런데도 학비가 밀린 상태라서 잘못하면 다음 학기는 다니지 못할 수도 있단다. 기도 아키라의 친구 쓰게 하쓰네. 하쓰네는 첼로를 전공하였고, 실력이 뛰어났단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하쓰네. 할아버지 쓰게 아키라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이면서, 같은 대학의 학장이었어. 우연히도 기도 아키라와 이름이 같네

학교에서는 이번에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게 되었고, 연주자들은 오디션을 뽑는다고 했어. 곡명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이야. 피아노 협주곡이다 보니 메인은 피아노인데 피아노는 앞서 이야기한 학장 쓰게 아키라가 맡기로 했어. 워낙 유명한 피아니스트라서 그가 학생들과 피아노 협주곡을 한다는 소문이 나자 외부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기도 아키라도 이 오디션에 관심이 있었단다. 그런 큰 무대에 서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오디션에 합격하면 학비가 면제된다고 했어. 학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악기 연습이 부족한 아키라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단다. 아키라는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단다.


2.

하지만, 학교에는 바이올린을 엄청 잘 연주하는 이루마라는 학생이 있었어. 바이올린 부분에서 일등을 하면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가는 콘서트 마스터도 겸할 수 있는데, 이루마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오디션 당일 이루마가 최상의 연주를 했지만, 콘서트 마스터에 뽑히지는 못했어. 아무도 눈치를 못 챘지만 심사위원장으로 참석한 쓰게 아키라 학장은 그가 부상을 숨기고 연주했다는 것을 알았어. 이루마가 무리하지 않게 하려고 콘서트 마스터는 우리의 주인공 기도 아키라라가 되었단다.

기도 아키라는 이루마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루마는 콘서트 마스터에 떨어진 이상 오케스트라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어. 콘서트 마스터에 관심이 있어서 오디션에 참가한 거라고 했거든. 그리고 이루마는 남들이 모두 존경하는 쓰게 학장을 싫어한다고 했어. 그러면서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어. 쓰게 학장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쓰게 학장처럼 천재 같은 소질을 갖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성화에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대. 쓰게 아키라는 실력이 자신보다 늘지 않는 자신의 아들을 혹사시키면서 피아노를 연습시켰단다. 그렇게 젊은 시절까지 피아노만 죽어라고 연습하던 아들은 결국 손가락이 부상이 와서 다시는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었단다. 그때 쓰게 학장은 아들과 절연을 했고, 아들은 집을 떠나서 지금까지 무엇을 하는지 몰라. 그 쓰게 학장의 아들이 바로 기도의 친구 하쓰네의 아버지였던 거야. 너무 무자비한 사람이구나. 명예만 하는 정 떨어지는 사람.

….

이제 연습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이 시점에 사고가 터졌단다. 학교의 악기 보관소에서 2억엔이 넘는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가 사라졌단다. 마지막으로 빌린 사람은 하쓰네였고. 마지막으로 보관소를 지키고 있던 경비원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했어. 그리고 보관소는 밤새 열쇠로 꽉 잠겨 있었다고 했어. 도대체 어떻게 사라진 걸까.

첼로가 사라져도 연습을 해야겠지. 지휘자는 에조에 부교수가 맡기로 했는데, 강압적이고 학생들에게 폭언을 하고 그랬어. , 요즘도 이런 선생님이 있으려나? 싶을 정도로 폭압적이었단다. 그리고 사라진 첼로의 범인이 누구일까 하는 생각에 오케스트라 단원의 결속력도 떨어졌어. 사실 기도 아키라도 콘서트 마스터를 처음 하는 것이라, 잘 이끌어가지 못했단다. 날짜는 다가오는데 오케스트라는 점점 산으로 가는 기분이었단다.


3.

대학교에서 계속 이슈와 사건들이 일어났단다. 먼저 자매결연을 맺은 미국의 대학교로부터 다량의 마약을 유입한 것이 밝혀졌단다. 하지만 익명이라서 누가 그랬는지 몰랐단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지휘를 맡았던 에조에 부교수가 무책임하게 지휘를 그만 하겠다고 했어. 후임도 정해주지 않고, 학교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관둬도 되나?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있어도 되나 보네. 이젠 콘서트 마스터인 아키라가 지휘자까지 섭외를 해야 하나? 그렇다고 콘서트 단원들이 단합이 잘 되냐? 그들도 자신들의 이력에 도움이 되어 계속 연습을 하고 있지, 이미 마음은 떠났고, 불협화음은 계속되었어.

그 와중에 미사키 요스케 선생님이 지휘를 하기로 했대. 피아노뿐만 아니라 지휘도 할 줄 안다고? 너무 사기 캐릭터인 듯싶구나. 그런데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단다. 이번에는 쓰게 학장이 살인 협박 메일을 받은 것이었어. 이 일로 연주회를 할 수 없다면서 쓰게 학장은 그만 두었어. , 다행히 지휘자를 다시 구했는데, 이번에는 이번 연주회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피아니스트가 없어지다니. 쓰게 학장이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많은 관심을 갖던 연주회였는데 말이야. 이 소설의 최고의 빌런이구나.

요스케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았어. 따로 생각해 둔 사람이 있었나 봐. 요스케는 이번 연주회의 피아니스트를 학생에서 뽑자고 했어. 정말 순수한 아마추어 연주회지만 멋지게 해내려는 것이었어. 요스케는 피아니스트로 학생 중에 최고 실력자인 시모시와 미스즈로 하기로 했어. 그 이야기를 들은 아키라는 놀랬어. 시모시와 미스즈는 피아노는 최고이지만, 인성이 좋지 않아서 다른 악기들과 연주할 때 조화가 되지 않아 협주곡은 거의 안 했거든. 사기 캐릭터인 요스케에게 불가능이 뭐가 있겠니, 잘 설득해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잘 연주를 해 내겠지. 그것 뿐이겠니불가사의한 사건들의 내막도 다 밝혀내는 것도 요스케가 되겠지. 너무 완벽한 사람으로 나오니 좀 식상해지기도 하네. 너무 뻔한 스토리 라인에 실망이었단다. 간간이 나오는 음악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만이 위안. 그럼 어떤 내막이 있었냐고? 아참, 그 내막을 알기 전에 한가지를 알려주어야겠구나. 첼리스트 하쓰네의 손이 마비가 와서 병원에 가봤는데, 다발경화증이라는 치명적인 병명으로 확인이 되었단다. 다발경화증이라고 하면 천재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가 걸렸던 그 무서운 병이란다. 연주자에게는 치명적인 것이란다. 그리고 이 병은 유전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아. 힌트가 되겠니? 맞아, 하쓰네의 할아버지이지 학장인 쓰게 아키라도 다발경화증이 있었어. 쓰게 아키라는 명예를 중요시 하는 사람으로 자신이 다발경화증이라는 것을 숨기려고 했단다. 미국에서 몰래 마약을 들여온 것도 그였어. 그 마약은 다발경화증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거든.. 그런데 마약 밀수가 들통이 나서 더 이상 마약을 먹지 못하자, 다발경화증이 악화되어 연주를 할 수 없는 상태였어. 그런데도 숨기고 싶어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던, 하쓰네가 할아버지에게 연주를 그만두게 할 핑계거리를 만들어 준거야. 바로, 살인협박 메일을 보내는 거였지. 첼로를 숨긴 것도 하쓰네의 짓인데, 그것도 연주회를 방해하기 위한 것이었단다.

사건의 내막은 이랬던 것이고, 연주회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성공적으로 잘 끝냈단다.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났단다. 이해가 좀 안 되는 것은, 하쓰네의 할아버지였단다. 다발경화증을 그렇게까지 숨겨야 했었나 싶어. 그걸 밝히고도 명예를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명예를 꼭 음악적 재능으로만 지켜야 하는가? 훌륭한 지도자로써 또는 인간됨으로 충분히 명예를 지킬 수 있을 텐데 말이야. 하기야 아들과 절연까지 하는 인성을 보면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인 것 같구나.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3권은 제목에 쇼팽이 들어가 있는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나중에 읽게 되면 또 이야기해주마.


PS:

책의 첫 문장: 시가 2억 엔인 첼로가 완전한 밀실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이 늙은 피아니스트는 잠든 것처럼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피가 끓고 가슴이 뛴다는 표현이 있는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하고 있으면 정말 혈액 온도가 올라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양팔의 근육이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소리를 내면 낼수록 이 악기가 생물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목소리를 충실히 실체화해 주는 연주자를 내내 찾아다녔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거짓이라 생각되면 개방현으로 모든 현을 켜 보면 된다. 단 하나의 음인데도 다양한 뉘앙스와 색채로 변화해 갔다. 이것이 생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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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27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뻔한 스토리 이지만 음악, 음악가에 관해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움을 ^ㅎ^

bookholic 2021-11-27 20:30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그건 인정....
but, scott 님보다는 적은 것 같아요..^^
 
영원한 유산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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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 심윤경 님의 <설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어. 그래서 우연히 인터넷서점에 이번에 읽은 <영원한 유산>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단다. 지은이가 심윤경 님이었거든. <설이>를 괜찮게 읽어서 한 번 읽어보기로 했단다.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는 소설의 주 무대인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줄여서 언커크(UNCURK)란 조직이 지은이가 허구로 만들어낸 조직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존재했던 조직이라고 하더구나. 그리고 그 조직의 본부로 쓰인 곳이 실제로 친일파 윤덕영의 벽수산장이라는 적산가옥이었다고 해. 그러니까 실제 있었던 장소를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라고 하더구나.

어떻게 그런 소설을 만들 수 있었냐면, 지은이가 어렸을 할머니와 찍은 사진 한 장 뒤로 낯선 유럽식 뾰족탑이 있었다는 거야. 그 사진은 책 뒤편 작가의 말에 실려 있어서 볼 수 있단다. 사진으로 봐도 개인의 집이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엄청나게 큰 집처럼 보였단다. 낮은 집들 사이에 높고 뾰족한 건물이 이국적이었어. 지은이의 그 건축물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소설이란다. 그 언커크 본부를 둘러싼 지은이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를 간단히 줄여서 이야기를 해볼게.


1.

주인공은 윤원섭이라고 하는 여자란다. 벽수산장의 주인이었던 윤덕영의 막내딸이야.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윤덕영은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윤원섭은 가상의 인물이니, 참고하렴. 때는 1966년 사기죄로 서대문 형무소에 있던 윤원섭을 출소하게 된단다. 윤원섭은 감옥에 있으면서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 줄여서 언커크의 대표에게 편지를 보냈어. 당시 대표는 호주 사람 데이비드 애커넌이라는 사람이야. 편지를 보낸 이유는 그 집, 그러니까 언커크의 본부 때문에 방문 좀 해보고 싶다고 했어.

그래서 애커넌은 원섭이 출소하는 날에 맞춰 언커크에서 통역으로 일하는 이해동과 윤덕영이 살 때 머슴으로 있다가 지금은 언커크에서 잡일을 하는 공팔묵을 서대문형무소에 보냈단다. 원섭은 키가 훤칠하고 신세대 감각을 자신 여자였단다. 나이는 40대 후반이었지만, 잘 꾸미면 그것보다 훨씬 어리게 보였단다. 원섭은 언커크 본부, 그러니까 자신의 옛집에 왔단다. 애커넌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원섭은 자신의 아버지는 친일파가 아니고 나라를 위해 애쓴 사람으로 설명했어. 집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어. 하지만 진실은 골수 친일파였을 뿐.

그리고 아무도 모르고 있는 비밀통로와 비밀 공간인 다락방의 존재를 알려주었지. 그것을 무척 신기해하는 애커넌말도 잘 하고 외모도 뛰어난 원섭에게 애커넌이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더욱이 애커넌은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였거든. 애커넌은 원섭에게 당분간 언커크에서 같이 일을 하자고 했단다. 언커크에 대한 홍보동영상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고, 원섭도 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은 비밀공간이었던 다락방에서 일하겠다고 했단다.

통역사 해동이 보기에는 원섭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어. 골수 친일파의 딸이었으니까 말이야. 그럼에도 잘못을 반성은 하지 않고, 자기의 아버지는 친일파는 아니고 나라를 애쓴 사람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니 말이야. 그걸 언커크 사람들한테 통역해주어야 하는 이고 자신이니 더 기분이 나빴지. 해동의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투옥되고, 출소한 뒤 감옥에서 얻은 병으로 돌아가셨으니 더욱 원섭을 미워했어. 해동은 엄마도 일찍 돌아가셔서 고모가 보살펴 주다가 미국인 선교사에게 맡겨져 자랐어. 그래서 영어를 잘하게 되고 통역으로 일하게 된 것이고 말이야.


2.

원섭이 애커넌과 친해지면서 아니 애커넌을 조종을 해서 그런지, 원섭이 원하는 대로 언커크를 옛 벽수산장 시절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사업을 하게 되었어.. 그것을 주도하는 것은 원섭이고, 애커넌은 이해동에게 그 일을 도와주라고 했어. 친일파의 집을 복원하는 일을 돕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어. 결국 해동은 갈등을 하다가 이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었단다. 고모가 소개시켜준 손진형이라는 아가씨와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었는데 말이야.

해동은 언커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던 와중에, 언커크 건물에 화재가 났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어. 해동은 자신도 모르고 언커크로 달려 갔단다. , 그 건물이 화재로 폐허가 되어 버렸어. 그곳에 원섭도 있었는데, 원섭은 여전히 당당했어. 그러면서 더 제대로 복원을 할 수 있겠다고 했어. 해동을 본 원섭에게 해동에게도 도와달라고 했지만, 해동은 거절하고 그 자리를 떠났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어. ‘작가의 말에서 보니 실제로 언커크 본부는 1973년 화재로 불타고 철거되었다고 하더구나. 사진 속 뾰족 건물에서 시작한 소설이긴 한데, 좀더 박진감 넘치고 좀더 흥미진진한 이야깃살을 붙였으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게 아니면 원섭의 벽수산장에서 살던 옛이야기라든가, 애커넌의 이전 이야기라도 더 살을 붙였으면 좋았겠다 싶었어.

오늘은 짧게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1966년이 시작된 지 며칠 안 된 한겨울, 그들은 서대문형무소 앞에 서 있었다.

책의 끝 문장: 해동은 언커크 언덕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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