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멀 피플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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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해줄 책은,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이라는 소설이란다. 이 소설은 영국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고 하더구나. 알라딘 인터넷 서점의 SNS인 북플에서 몇몇 분들이 추천을 해서 알게 된 소설이란다.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라서 아빠와 거리가 있는 책일 거라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소설도 괜찮고 드라마도 괜찮다고 해서 소설 먼저 읽어 보았단다.

책의 광고 문구에는 밀레니얼 세대의 사랑과 불안을 담아낸 가장 젊고 뜨거운 소설이라고 적혀 있었어. 읽기 전에 이 광고 문구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읽고 난 후에는 이 문구가 참 적절하면서도 소설을 한 문장으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하지만 문제는 아빠는 공감하지 못하면서 읽었다는 것. 대한민국 아재와 소설 속 등장인물과는 많은 거리감이 있었어. 아일랜드의 밀레니얼 세대의 젊은이들이 사랑 놀이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단다. 밀레니얼 세대가 아무리 자유분방한 사랑을 하도, 스포츠 놀이하듯이 잠자리를 갖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더구나.

이 소설은 맨부커상 후보에도 올랐는데, 어떤 점을 높이 사서 그 후보에 올랐는지 아빠는 잘 모르겠구나. 오늘날 밀레니얼 세대의 현실을 소설 속에 잘 그린 것을 높게 산 것인지, 아니면 번역본으로 알 수 없는 원문으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 있는 것인지 말이야. 드라마로 만든 이유도 많은 야한 장면으로 이목을 받고 어느 정도 시청률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대한민국 아재의 약간은 꼰대 같은 생각이 들었단다.

 

1.

주인공 메리앤과 코넬이라는 두 젊은이란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는 메리앤과 코넬은 고등학생으로 나오고, 점점 성장해 가서 소설의 끝부분은 이십 대 중반으로 끝을 맺는단다. 메리앤은 엄청난 부잣집 딸에다 공부도 늘 일등을 하는 모범생이야. 하지만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그런 학생이었어. 실제로는 그런 것 같지 않지만, 학교에서는 오만하고 까칠한 이미지에 얼굴도 별로라는 이미지로 알려졌지. 메리앤의 집에 일해주시는 아주머니가 있는데 그 아주머니의 아들이 코넬이란다. 코넬은 메리앤과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고, 코멜은 메리앤의 집에서도 자주 보기 때문에 학교에서 만들어진 그런 이미지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어쩌다 둘은 함께 시간을 갖게 되고 예전부터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실제가 된단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돼. 하지만 메리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보니 코넬은 매리앤과 관계를 학교에서는 비밀로 한단다. 심지어 다른 여자의 졸업 무도회 신청을 받아들이고 메리앤은 큰 상처를 받고 학교까지 그만 두었어.

그렇게 헤어진 메리앤과 코넬은 몇 년 뒤에 다시 만나 예전의 그 애틋한 감정을 되살아나 사랑을 하게 되지만 또 몇몇 오해와 소심함으로 인해 헤어지게 된단다. 그런 과감한 사랑을 하면서도 어찌 진심을 말할 때는 소심해서 말을 못하는지답답하더구나. 그렇게 서로 만났다가 헤어졌다가 반복하다가 결국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여 진짜 사랑을 하게 된다는, 다른 연애 소설과 크게 차이나 보이지 않는 사랑이야기로 아빠는 읽었단다.

이 소설은 기대가 컸던 만큼 아빠는 별로였기에 읽으면서 메모도 별로 안 해서 너희들에게 자세히 이야기해줄 것도 별로 없구나. 사랑의 모습은 수많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그린 사랑이 아주 특별하다거나 극적이거나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단다. 원래는 소설을 읽고 드라마도 이어서 보려고 했는데, 드라마는 생략해야겠다. 그리고 드라마가 특정 OTT에서 서비스를 해주어서 찾아 보기도 쉽지 않더구나. 역시 책은 취향 싸움. 오늘은 여기까지.

아참, 그런데 제목이 노멀 피플?

 

PS,

책의 첫 문장: 코넬이 초인종을 누르자 메리앤이 문을 열어준다.

책의 끝 문장: 너도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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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프 푸셰 -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전면 새번역 누구나 인간 시리즈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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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좋아한단다. 그의 책들을 읽고 실망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아. 그래서 가끔씩 그의 책을 찾아 읽는데, 오늘은 그가 쓴 조제프 푸셰라는 사람의 평전이란다. 조제프 푸셰.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란다. 아니, 아마 들어보거나 읽어봤을 법한 이름이란다. 왜냐하면 그가 살았던 시대가 프랑스 혁명을 관통하는 시대였기 때문이야. 아빠가 프랑스 혁명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된 책들을 여럿 읽었잖니. 그래서 한번쯤은 봤을 텐데,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는 이름이구나. 그건 그가 겉으로 드러내는 것보다 뒤에서 판세나 사람들을 조정하는 그런 삶의 방식을 택해서일 수도 있어.

책 앞면에 보면 나폴레옹도 두려워한 조제프 푸셰의 삶이라고 적혀 있고, 책 뒷면에 보면 프랑스 혁명을 배후 조종한 기회주의자의 삶이라고 적혀 있단다. 조제프 푸셰라는 사람은 프랑스 혁명 한복판에 있던 사람이지만,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키요틴에 목이 잘려 나갈 때 어찌 살아날 수 있는지도 이야기해줄게. 그 힌트는 책 뒷면에 적혀 있는 그의 평가 중에 기회주의의 삶이라는 문구가 힌트가 될 수 있겠구나. 조제프 푸셰라는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해보면 두 권이 나오는데 모두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이란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 책을 두 출판사에서 각각 다른 책 제목으로 출간했더구나.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게.

 

1.

조제프 푸셰는 1759 5 30일 낭트에서 태어났단다. 어렸을 때 교회에서 공부했는데 곧잘 했다는구나. 스물 살부터 서른 살까지는 수도원에서 지내면서 교사 일을 했대. 수학과 물리를 가르쳤다고 하는구나. 그의 첫 사회생활은 뜻밖에도 선생님이었구나. 그것도 거의 10년이라는 세월 동안그것도 욕구를 제한 받는 수도원에서그런 생활은 침묵하는데 익숙하고 자기 통제를 잘 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관리 능력에도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하는구나. 변호사인 로베스피에르와 친하게 지내기도 했대. 프랑스 혁명의 주인공급 인물인 그 로베스피에르 맞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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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삭발한 수도원 교사는 창백하고 신경질적이며 야심에 넘치는 변호사 로베스피에르와 각별히 친해진다. 더군다나 이 둘의 관계는 처남 매부 간으로 발전해 나가려는 참이다. 막시밀리앙의 누이인 샤를로트 로베스피에르는 오라투아르 교단의 교사를 수도승 신분에서 해방시키고자 한다. 곳곳에서 둘이 약혼했다는 소문이 돈다. 왜 이 혼사가 결렬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여기에 두 남자가 서로 증오하게 된 이유가 숨겨져 있는 듯이다. 예전에 친구였던 두 남자는 후일 목숨을 걸고 세계사에 남을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그 무렵 그들에게는 자코뱅도 증오도 낯선 단어이다. 증오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가 삼부회 의원 자격으로 프랑스의 새 헌법을 장만하도록 빈털터리 변호사에게 금화를 빌려준 것도 다름 아닌 삭발승 조제프 푸셰이다. 이 일화는 그가 나중에 자주 맡게 될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다른 사람에게 세계 역사에 남을 경력을 쌓도록 발판을 받쳐 주는 역할 말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옛 친구를 배반하고 등을 밀쳐 쓰러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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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서 선생님 생활을 마치고 서른두 살인 1792년 국민공회의 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다는구나. 국민공회 의원이 된 조제프 푸셰. 루이 16세의 대한 처분 결정 회의에 참석하게 된단다. 푸셰는 다수파인 지롱파(온건파)에 앉아 있었는데 그 이유는 지롱파가 그저 다수파였기 때문이야. 강건파였던 로베스피에르는 푸셰에게 배신감을 느꼈단다. 자신과 친분이 있으니 당연히 자신의 편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루이 16세의 대한 처분 결정 회의에서 온건파가 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루이 16세는 사형이 결정되었단다. 왜냐하면 당시 여론이 사형이었는데, 온건파에서 여론을 거슬러 사형 반대에 표를 던지는 것이 부담스러웠거든. 특히 푸셰는 남들 시선을 의식하고 몸을 사리는 체질이라 온건파임에도 불구하고 사형에 투표를 했단다. 이 일을 계기로 푸셰는 급진파로 방향을 선회했는데, 급진파 중의 급진파로 불렀단다. 리옹에서 리옹 시의회에 의해 혁명파 샬리에가 처형당하는 일이 발생했어. 국민공회는 이것을 반란으로 규정하고 리옹을 파괴하고 관련자를 처형하기로 결정했어. 이를 집행하기 위해 어떤 사람을 보냈는데, 이 사람이 온건하게 대응을 해서, 국민공회는 다시 과격급진혁명주의자인 푸셰를 리옹에 보내기로 결정했단다. 푸셰는 리옹의 도살자라고 불리며 학살을 저질렀어. 단두대가 느리다며 사람들을 모아두고 대포나 총으로 죽였단다. 몇 주 만에 1600여 명을 죽였다고 했어. 푸셰가 그렇게 한 이유는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권력에 밉보이지 않으려는 이유였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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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9)

세계의 역사는 대개는 용감한 자들의 역사로 서술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게 다는 아니다. 세계의 역사는 비겁한 자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정치란 공동체의 의견을 선도하는 것이라고 믿으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지도자는 공동체의 의견이라는 법정을 만들고 거기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바로 이 법적 앞에서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기도 한다. 전쟁도 항상 이러다가 일어난다. 위험한 말로 불장난을 하고 민족 감정을 자극하다가 정치가는 범죄를 범하게 된다. 이 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악덕과 잔인성도 인간의 비겁함만큼 많은 피를 흘리게 한 적은 없다. 따라서 조제프 푸셰가 리옹에서 대중을 학살한 것은 공화주의자의 열정 때문이 아니다.(그는 열정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자신이 온건주의자로 밉보일까 봐 두려워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중요하다. 설마 그가 수천 번 리옹의 도살자라는 호칭을 부인한다 할지라도 그의 이름은 이 호칭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히게 된다. 그가 나중에 공작의 망토를 두른다 해도 손에 묻은 핏자국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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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국민공회는 로베스피에르가 공포정치를 벌이고 있었단다. 그의 앙숙이나 반대파를 모두 단두대로 보내고, 혼자 정권을 차지하고 있었어. 그런 와중에 로베스피에르는 리옹에 있던 푸셰를 호출했단다. 거의 단두대행이 확실했어. 푸셰도 머리를 굴렸어. 푸셰는 일단 로베스피에르의 반대파인 자코뱅클럽과 친분을 쌓았고 나중에는 자코뱅클럽의 총재가 되었어. 권한을 갖게 된 푸셰는 로베스피에르의 소환 명령을 무시했어. 그러자 로베스피에르는 푸셰 탄핵 연설을 했고, 국민공회는 이를 받아들여 푸셰는 탄핵당했어.

푸셰는 반격을 준비했단다. 이 반격에서 지면 죽을 수도 있었어. 푸셰는 '불안'을 이용했어.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로베스피에르의 살생부에 올랐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어. 그런 식으로 푸셰는 반대 진영의 세력을 확정해갔단다. 이를 눈치챈 로베스피에르는 그들을 한번에 날릴 연설을 준비했는데 너무 눈치를 늦게 챈 것 같구나. 푸셰가 설득한 반대파가 총 700명 중 600여 명이나 되었어. 오히려 로베스피에르가 체포되었고, 곧바로 다음날 단두대로 향했단다. 많은 사람을 단두대로 죽인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단두대에서 처형 당한 것은 알았지만 그것을 주도했던 것이 푸셰라는 것은 처음 알았단다.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당하는 날 많은 파리 시민들이 환영을 했다고 하는구나.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지만, 그의 공포정치는 그렇게 공감을 얻지 못했던 거야.

로베스피에르가 죽고 나서도 세력간 다툼은 더 심해지고 처형은 계속 되었어. 푸셰는 프랑수아 바뵈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은 배후로 물러나 일종의 피신을 했는데 결국 그도 체포 명령을 피할 수 없었단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이후 3년간 그의 이름은 중앙무대에서 사라졌단다.

 

2.

3년간 푸셰는 빈곤에 허덕이며 살았대. 옛 동료인 바라스는 사람이 푸셰에게 일자리를 주었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바라스가 총재가 되었고, 총재가 바라스는 지저분한 불법 사업을 푸셰에게 부탁을 했어. 그런 불법 사업을 통해 푸셰는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자본의 막대한 힘을 알게 되었단다. 그리고 총재정부는 그를 경찰장관으로 임명하면서 3년의 암흑기를 끝낼 수 있었단다. 반대파인 왕당파는 푸셰의 과거 이력을 알고 있어 긴장했단다. 하지만 푸셰는 예전에 그가 아니야. 경찰장관이 된 푸셰는 지코뱅클럽을 해체시켰단다. 그리고 돈 맛을 알게 된 푸셰는 경찰장관 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많은 정보를 이용하여 투자를 하고 큰 돈을 벌게 되었단다.

당시 프랑스는 여러 명의 총재가 이끄는 총재정부가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총재정부도 곧 무너질 것 같다는 소문이 들었어. 이집트로 쫓겨나듯 전쟁을 하고 있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언제든 파리로 진격한다는 소문이 있었어. 푸셰의 정보에 의하면 나폴레옹 파나파르트는 이미 프랑스 근처에 와 있다고 했어.

푸셰는 발 빠르게 움직였단다. 푸셰는 나폴레옹을 접견했어.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소문도 있었어. 그런데 경찰장관인 푸셰는 소문을 모르는 첫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저울추가 나폴레옹으로 넘어갔다고 판단했거든.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았단다.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우회적으로 도왔던 푸셰는 경찰장관 자리를 유지했단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푸셰의 과거이력을 알고 있어서 신임하지 않았고 언제든지 자르려고 마음 먹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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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며칠 수 제1통령 보나파르트는 출정했을 때보다 백배는 더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 그러고는 모든 장관과 친구들이 그가 패배했다는 첫 번째 소식을 듣자마자 그에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즉시 누군가로부터 들은 게 분명하다. 첫 번째 희생자는 너무 많이 앞서 나갔던 카르노이다. 그는 장관직을 잃고, 푸셰를 포함한 다른 장관들은 직책을 유지한다. 푸셰는 워낙 조심스러워서 충성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물론 충성했다는 증거를 남기지도 않았다. 그는 한심한 꼴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믿을 만한 인물임을 입증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니 그의 변함없는 모습을 또 한 차례 확인시킨 셈이다. 만사가 잘 될 때는 믿을 만한 인물이지만 만사가 꼬일 때는 믿지 못할 인물이 바로 푸셰이다. 보나파르트는 그를 해고하지 않는다. 나무라지도, 벌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날부터 그는 푸셰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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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파르트는 푸셰에게 경찰장관을 그만 두게 하고, 그 조건으로 엄청 큰 돈과 땅을 주었단다.

푸셰는 몇 년 뒤 다시 경찰장관이 되었단다. 나폴레옹을 푸셰를 이용하려고 했던 거지.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면서 나폴레옹과 푸셰는 황제와 신하 관계가 되었어. 나폴레옹도 푸셰가 눈엣가시처럼 느껴졌지만 이용은 해야 했으니 나폴레옹은 푸셰와 앙숙관계인 탈레랑를 등용시켜서 서로 감시하게 했단다. 그런데 탈레랑과 푸셰가 화해하는 계기가 생겼어. 나폴레옹은 자신의 형에게 왕자리를 주려고 아무런 이득도 없는 스페인 전쟁을 일으켰단다. 이 전쟁을 탈레랑과 푸셰 모두 반대를 하게 되면서 둘은 화해를 했단다. 둘이 친해졌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돌아와 텔레랑을 해임하고 다시 전쟁터로 돌아갔어.

그렇게 되자 프랑스 안에서는 푸셰가 일인자가 되었어. 진정한 일인자가 프랑스 밖에서 전쟁하고 있었으니 말이야.. 그런데 영국은 나폴레옹이 프랑스에 없다는 것을 알고 프랑스를 침략했단다. 그 영국군을 푸셰가 멋지게 패퇴시켰단다. 이 승리에 자신감(?)을 얻은 푸셰는 군대를 또 소집했단다. 나폴레옹이 이 소식을 듣고 돌아왔고, 푸셰에게 백작 지위라는 당근을 주었고, 오트란트 공작이 되었단다.

겉으로는 친해 보이지만, 나폴레옹과 푸셰는 앙숙이었어. 결국 꼬투리를 잡은 나폴레옹은 푸셰를 경찰장관 자리에서 해임시켰지. 푸셰는 경찰장관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자신이 모았던 자료 중에 중요한 것만 빼돌리고, 나머지는 모두 불에 태워버렸단다. 나폴레옹은 이 일로 푸셰를 파면하였고, 푸셰는 이탈리아로 도망을 갔단다. 얼마 후 사면되긴 했지만, 푸셰는 관직에 오르지 않고 3년간 유배 생활을 했는데 이제 그도 52세가 되었어.

 

3.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 갔다가 패배를 했고 엘바 섬으로 유배를 갔어. 그리고 루이 18세가 정권을 잡았지. 루이 18세가 되면서 푸셰를 등용했단다. 눈치 빠른 푸셰는 정세를 파악하며 아직 나폴레옹의 힘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여 루이 18세와 나폴레옹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다가 엘바섬에서 탈출하여 부활한 나폴레옹 편에 붙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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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그는 이런 말로 왕의 동생을 진정시킨다. “너무 늦었습니다. 왕께서는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나폴레옹이 벌이는 모험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황제를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저 저를 믿어 주십시오.” 이렇게 그는 왕정의 호감을 얻는다. 만일 부르봉 가문이 승리를 거두면 자신이 그들의 조력자라고 생색을 낼 수 있다. 만일 나폴레옹이 승리하면 부르봉 가문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다. 그는 여러 차례 양다리를 걸쳐서 일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수법을 성공적으로 구사해 왔으니 이번에도 똑같이 하면 된다. 그는 이제 황제와 국왕, 두 군주를 동시에 충성스럽게 섬기는 신하가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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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다시 황제가 되었어. 당시 푸셰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높아서 그를 그냥 무시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다시 경찰장관에 지명했단다. 예전보다 더욱 앙숙 관계가 된 나폴레옹과 푸셰는 서로 약점을 찾으려고 했어. 나폴레옹은 다시 전쟁을 일으켰고,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푸셰를 제거하려고 했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군에 대패하면서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단다. 이 나폴레옹의 유배를 주도한 것은 바로 당시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푸셰였단다.  나폴레옹이 물러나고 다들 공화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푸셰는 루이 18세와 비밀 협약을 맺고 있었어. 루이 18세에게 푸셰는 원수였지만 황제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손을 잡았어. 루이 18세는 황제 자리에 오르자마자 내각 의장을 푸셰의 앙숙인 탈레랑을 지명했단다. 쯧쯧.. 푸셰의 눈칫밥도 나이를 먹으면서 시들했는지 루이 18세를 황제로 만들어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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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332)

백일천하라는 나폴레옹 주연의 막간극이 끝난 후 1815 7 28일 국왕 루이 18세는 백마가 이끄는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다시 파리로 입성한다. 푸셰가 열심히 준비한 덕에 국왕은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환영 인파가 마차를 에워싸고 집집마다 걸린 부르봉 왕가의 흰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미처 깃발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급히 수건이나 식탁보를 지팡이에 달아서 창문가에 걸쳐 놓는다. 저녁에는 수많은 불빛이 도시를 환히 밝히고 기쁨에 겨운 사람들은 영국과 프로이센 점령군의 장교들과 춤추기까지 한다. 성난 고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서 사전 예방책으로 배치된 헌병들은 할 일이 없다. 정말이지 그리스도의 뜻을 가장 잘 따르는 국왕의 새 경찰장관은 새 주군을 맞을 준비를 완벽하게 해 두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튈르리 궁에서 나폴레옹 황제를 공손히 모셨던 충실한 신하 오트란토 공작은 이제 같은 장소에서 루이 18세를 기다리고 있다. 22년 전 바로 이 장소에서 그는 루이 18세의 형인 폭군루이 16세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던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성왕 루이의 후손에게 공손히 절을 하며 서류에는 폐하를 진심으로 섬기는 충성스러운 신하라고 서명한다. (친필로 쓰인 10개 이상의 보고서에는 이런 글귀가 한 자 한 자 적혀 있다.) 그가 벌인 미치광이 공예 중에서 가장 아찔한 재주를 부린 셈이었다. 하지만 이 재주를 마지막으로 줄타기와 같던 그의 정치 역정은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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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8세와 탈레랑은 푸셰를 왕의 시해자이자 리옹의 학살자를 죄목을 씌어 파면하고 추방시켰어. 푸셰는 프라하로 유배를 갔다가 다시 오스트리아 린츠로 유배를 가서 푸대접을 받으며 지내다가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서 병으로 세상을 떴다고 하는구나.  1820 12 26일이었어.

프랑스 대혁명 전후 시대서로 죽고 죽이는 정치판에서 단두대에서 죽지 않고 병사를 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구나.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야비하게 또는 얍삽하게 살아남았는지 알겠더구나. 그의 목표는 생존이었던 것 같구나. 굳이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 적당히 권력과 부를 차지하면서 생존하는 법.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정치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단다. 그런 사람들이 또 권력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열 받곤 하지. 오늘날에도 여기저기 조제프 푸셰가 있는 것 같구나.

이번 책도 슈테판 츠바이크의 놀라운 글솜씨에 감탄하게 되었고, 프랑스 혁명의 또 다른 조연 조제프 푸셰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구나. 오늘 쓴 편지를 다시 읽어 보니 문맥이 이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아 메우지 못하겠구나. 양해 바람.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조제프 푸셰, 살아생전 막강한 권력을 행상했던 그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 중 하나이다.

책의 끝 문장: 흐릿하게 사라자는 그의 자취를 포착해서 뒤얽힌 인생항로를 모조리 찾아내고 싶은 유혹, 파란만장한 운명을 알아내서 너무도 특이한 정치적 인간 푸셰가 정신적으로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를 알아내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조제프 푸셰는 평생 막후의 인물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 막후의 인물은 결코 눈에 보이게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권력을 온전히 가지고 있으며 모든 끝을 손에 쥐고서 조종하지만 결코 책임자로 거론되지는 않는다. 항상 누군가를 일인자로 만들어 방패로 내세우고 그의 뒤에 서서 그를 앞으로 몰아가다가 그가 지나치게 앞으로 나갔다 싶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거침없이 등을 돌리고 마는 것, 바로 이것이 푸셰가 가장 좋아하는 역할이다. 정치사를 통틀어 가장 노련한 모사가인 푸셰는 공화국과 왕정과 황제의 제국을 무대 삼아 펼쳐지는 숱한 에피소드에서 스무 번이나 의상을 바꿔 가며 한결 같은 명배우의 솜씨로 이 역할을 연기한다. - P32

특히 천재는 무언가를 창조하려면 한동안 고독을 견뎌 내야 한다. 멀리 추방되어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야만 참된 과업의 폭과 높이를 측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복음은 모두 유배를 거쳐서 생겨났다. 위대한 종교의 창시자 모세와 예수, 무함마드와 붓다, 모두 중대한 가르침을 전하기에 앞서 침묵의 광야로 가야 했고 사람들과 동떨어져 지내야 했다. 밀튼은 실명했고 베토벤은 청력을 잃었으며 도스토옙스키는 유형을 갔고 세르반테스는 감옥에 갇혔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에 숨어 지냈으며 단톄는 망명을 했고 니체는 살이 에이는 듯 추운 앵가딘 지역을 거주지로 택했다. 물론 이들은 맨 정신으로는 이런 삶을 원하지 않았겠지만 이들의 수호신은 이런 일이 일어나게끔 은밀이 조율했다. - P131

그러나 어떻게 해야 공화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하다. 그들 중 하나를 내각에 들여 놓으면 된다. 진짜 공화주의자 하나만 있으면 부르봉의 백합기를 빨갛게 치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물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귀족들은 고심하다가 갑자기 조제프 푸셰라는 사람을 떠올린다. 이 사람은 2, 3주 전에 모든 접견실을 돌아다니며 고관들을 예방했고 왕과 장관들의 책상을 수많은 건의서로 뒤덮었다. ‘그래, 이 사람이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부려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빨리 이 사람을 은거 생활에서 끌어내자!’ 어떤 정부가 난관에 처하거나 유능한 중개자나 협상가, 질서를 창출할 사람을 필요로 할 때면 그 정부는 늘-총재정부든, 통령정부든, 황체치하든, 왕국이든 상관없이-깃발을 들고 행렬을 이끌 줄 아는 남자 조제프 푸셰에게 눈을 돌린다. 결코 믿은이 가지 않는 성격을 지녔지만 외교적 수완을 갖춘 믿음직한 일꾼이기 때문이다. - P271

후일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된 패배자 나폴레옹은 푸셰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내게 진실을 들려준 건 배신자들뿐이었다." 사무친 원한을 토로하는 대목에서조차도 메피스토펠레스만큼이나 비상한 능력을 갖춘 푸셰를 경탄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천재가 가장 못 견뎌 하는 것이 범속함이기 때문이리라. 푸셰가 자신을 기만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폴레옹은 어쨌든 푸셰는 자신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목이 마른 사람은 물에 독이 들어 있음을 알면서도 그 물을 향해 손을 뻗치는 법이다. 나폴레옹은 충실하고 무능한 사람보다는 믿을 수 없지만 영리한 사람을 신하로 삼는 길을 택한다. 10년을 치열하게 대립했던 사람들이 어중간한 우정을 나눈 사람들보다 서로 더 긴밀한 사이가 되는 경우는 놀랍게도 종종 있다. - P287

세계 역사를 한번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자가 권력을 잃으면 전과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게 된다. 그는 러시아 조정에 여러 차례 변죽을 울렸지만 초청장은 오지 않고 웰링턴도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벨기에는 국내에 이미 왕년의 자코뱅파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바이에른 왕국은 조심스럽게 말을 돌리고 오랜 친구 메테르니히 공작은 이유 없이 쌀쌀하게 군다. "아, 그러십니까! 오트란토 공작께서 그러고 싶으시다면 오스트리아 영토로 들어와도 됩니다. 오스트리아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공작의 체류를 묵인하려 합니다. 하지만 빈으로 와서는 절대 안 됩니다. 당신이 빈에 머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탈리아로 가서도 절대 안 됩니다. 빈에서 멀지 않은 동북부 주를 제외한 다른 지방의 소도시를 택하신다면 조용히 처신하겠다는 조건하에 공작의 체류를 허가하겠습니다." - P346

15년 동안 운명이 위협적으로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던 순간이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날렵하게 운명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곤 했다. 마침내 그가 꼼짝도 못하게 되자 운명은 이 패배자를 사정없이 후려갈긴다. 정치인으로서 굴욕을 겪은 것도 모자랐는지 조제프 푸셰는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사생활에서도 뼈아픈 굴욕을 겪게 된다. 1817년 프라하에서 일어났던 작은 에피소드는 마치 소설가가 지어내기라도 한 듯이 너무도 재치 있게 푸셰가 어떤 내적 굴욕을 겪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극을 겪은 푸셰에게 이제 불행은 섬뜩한 캐리커처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그는 남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정치인 푸셰에 이어서 이제는 남편 푸셰가 굴욕을 당할 차례이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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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설자은 시리즈 1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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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해 줄 책은 정세랑 님의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라는 책이란다. 지은이 정세랑 님은 <보건의사 안은영>, <지구에서 한아뿐> 등 많은 히트작을 쓴 작가인데, 아빠는 한 권도 읽지 않았더구나.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보니 딱히 안 당겼다고나 할까? 정세랑 님의 <재인, 재욱, 재훈>이라는 책을 예전에 구입했었는데 앞 부분을 읽다가 아빠 취향이 아닌 것 같아서, 나중에 읽어야겠다고 덮었던 기억이 있구나. 그런데 작년에 나온 정세랑 님의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평도 좋고 너희들도 읽을 만한 것 같아서 샀단다.

처음에 책 제목만 들었을 때는 SF 소설인줄 알았단다. ‘금성이라는 단어 때문에그런데 책 소개를 읽어보니, ‘금성 Venus가 아닌, 옛신라의 수도인 서라벌, 오늘날 경주를 부르는 또 다른 말이더구나. 아빠도 예전에 국사 시간에 금성이라는 지명으로 배웠던 기억이 있구나. 그러니까 이 책은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단다. 옛신라의 성씨 중에 설 씨가 흔히 있었단다. 설총, 설총의 아빠인 원효대사도 설 씨였거든신라 시대를 다룬 역사 교양서를 읽어본 적은 있지만, 신라 시대를 다룬 역사 소설은 읽은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구나. , 최인호 님의 <해신>을 읽었구나. 그런데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그런 정통 역사소설은 아니란다. 소설 속 인물들과 사건은 모두 허구란다. 그야말로 시대와 배경만 빌려왔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돼. , 그러면 어떤 이야기인지 시작해보자.

 

1.

설미은은 남매들이 전염병으로 죽고 말았단다. 그 똑똑했던 다섯째 오빠 자은도 그만 전염병으로 죽고 말았어. 자은 오빠는 원래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말이야. 그런데 셋째 오빠 호은은 자은 대신 미은에게 대신 당나라 유학을 가라고 했단다. 자은의 중국 유학은 쓰러져는 집안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염병으로 그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했어. 자은의 바로 아래동생 미은은 자은과 용모도 비슷하고, 머리도 똑똑하였기 때문에 충분히 대신 유학을 갈 수 있다고 호은은 생각했어. 한 가지. 여자라는 것만 들키지 않으면 말이야. 미은은 그렇게 남장을 하고 자은이 되어서 중국 유학을 떠났단다.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의 사극에서 가끔씩 남장여자가 주인공인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도 그런 류의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남장한 것을 들키면 안 되는 긴장감과 애틋한 러브라인도 있으려나? 이 소설이 다른 남장여자 주인공의 사극과 어떤 점이 다를까? 이런 생각도 하면서 읽었단다.

소설의 이야기는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그런데 그 돌아오는 배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호은의 지인이었던 선장은 자은에게 부탁하여 살인 사건을 조사해 달라고 했어. , 추리 소설인가 보구나. 추리 소설을 보면 주인공 옆에서 보좌하는 사람이 보통 등장하는데 이 소설도 당연하다는 듯 그런 규칙을 갖고 있었단다. 자은을 도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이는 목인곤이라는 백제 출신 도공이었단다. 목인곤은 아주 어렸을 때 아직 백제가 망하기 전에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인데 그 사이에 백제가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란다. 자은과 목인곤은 협력하여 살인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게 된단다.

신라 땅에 도착한 설자은과 목인곤. 인곤은 대뜸 자신을 금성에 식객으로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어. 그러면서 자은이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남자가 할 일이 분명 있을 것이라면서 데려가 달라고 했어. 자은이 여자라는 것을 비밀로 하겠다고 했지. , 기대와 달리 이야기는 점점 식상해져 가는 느낌이었단다. 남장여자라는 특별할 것 없는 주인공. 그의 비밀을 알아챈 남자 주인공. 둘이 협심하여 사건사고를 해결해 나가는 스토리새로운 것을 찾아보려 했으나 아빠는 결국 찾지 못했단다.

이 소설에서는 앞서 이야기했던 배 안의 살인 사건 포함하여 네 가지 사건이 발생하고, 설자은과 목인곤이 잘 해결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추리 소설을 비교적 많이 읽지 않은 너희들이 읽어보면 재미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 책의 뒷날개를 보면 설자은 시리즈로 계속 출간된 예정이라고 하더구나. 아빠가 읽은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설자은 시리즈 1권이었던 것이고

….

오늘 소개한 책은 아빠의 취향과 좀 거리가 있는 것 같아서, 독서 편지도 짧게 마무리하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너희들의 취향에는 맞을 수 있으니 한번 읽어보렴. 고증이 잘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옛신라의 수도 금성의 모습도 소설을 통해서 만날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설자은은 오래 머물렀던 장안을 사신단과 함께 떠나, 육로로 등주까지 왔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은 그다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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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 - 고종의 밀사 헐버트의 한국 사랑 대서사시
김동진 지음 / 참좋은친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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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일제 시대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을 하시고, 자신의 모든 삶을 쏟아 부으셨단다. 그런데 그런 독립운동가들 중에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신 고마운 분들이 있어.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분이 호머 헐버트가 아닐까 싶구나. 헐버트는 아빠가 책을 통해 간간히 만났고, 역사 관련 유튜브를 통해서 알게 되고 나서, 정말 대단한 분이고 존경할 만한 분이라고 생각했단다. 우리나라 독립과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리는 데 평생을 노력하신 분이고, 나중에는 우리나라에 다시 오셔서 우리나라에서 돌아가시고, 그의 소원대로 우리나라에 묻히신 분

그런 헐버트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책을 검색해 보았고, 그렇게 알게 된 책, 김동진 님의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라니!>라는 책을 읽었단다. 이 책을 읽고 깜짝 놀랐단다. 다른 역사서나 유튜브에서 단편적으로 접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셨고, 이런 분들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미안함을 느꼈단다. 비록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지만, 헐버트만큼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서 일했고, 우리나라를 알리는데 진심이었던 사람이 있었을까 싶구나.

지은이 김동진 님은 전문 작가가 아니시고, 제이피모건체이스은행 한국 회장을 역임했던 금융인이었다고 하는구나. 그런 그가 어떻게 헐버트에 관한 책을 쓸 수 있었을까. 김동진 님은 대학 시절에 헐버트의 <대한제국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고 헐버트에 푹 빠지셨다고 하는구나. 그 이후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헐버트에 대한 연구를 하셨고, 헐버트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쓰신 책이 바로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라고 하는구나. 2010년에 헐버트의 첫 평전을 쓰고 2019년 그 이후 더 모은 헐버트의 자료를 추가하여 개정판을 쓰셨단다. 아빠가 읽은 것은 2019년 개정판이란다. 아빠가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신 할 건데, 그보다 너희들도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헐버트의 삶을 통해서 여러 배울 점도 얻을 수 있고, 구한말부터 일제시대의 우리나라 역사 공부도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1.

헐버트는 1863 1 26, 미국 버몬트에서 태어났단다. 3 3년 중에 차남이었어.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 아버지의 권유로 1884년 조선에 선교사로 오기로 했어. 그런데 그가 오려고 하던 1884년 갑신 정변이 일어나서 일정이 연기되었고, 2년 뒤 1886년 조선에 첫 발을 디뎠단다. 서양인의 눈에 당시 서울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가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가 있는데 상쾌하고 맑은 공기의 도시라고 몇 번씩 이야기를 했단다. 오늘날 탁한 공기의 서울과는 무척 대조적이었구나. 그런데 그때보다 지금이 좋은 것은 그때 뱀이 많았다는 것. 아빠는 뱀이 너무 싫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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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2)

헐버트 눈에 비친 서울은 자연의 상쾌함이 넘쳐나는 도시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보낸 첫 편지(1886 7 10)에서 서울은 쾌적한 도시입니다. 제가 얼마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잘 지내고 있는지를 알면 어머니는 안도하실 것입니다.”라고 썼다. 그는 또 신문 기고문에서, “서울은 높이 치솟은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원형극장 한 가운데에 놓여 있는 느낌이다. 산 정상을 따라 만들어진 서울의 성벽은 거리가 5~6마일 정도가 된다. 높이는 몇몇 곳에서는 2,000 피트도 더 된다. 도시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보이 이곳 사람들은 참으로 맑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라며 서울의 공기를 반복적으로 칭찬하였다. 서울에는 매가 머리 위에서 시도 때도 없이 맴돌고, 밖에 나다니면서 정신을 못 차리다간 뱀이 목덜미에 떨어질 판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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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는 언더우드의 집에서 머물면서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학교인 육영공원의 개교 준비를 했단다.

학교 문을 열고 나서 헐버트는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어. 자신이 좀더 훌륭한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조선의 말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금방 한글에 능숙해졌단다. 우리말이 익숙해지면서 고종과 친해지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

1888년 결혼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곧바로 다시 돌아왔단다. 신혼 여행도 조선에서 하고,

신혼집도 서울 정동에 차렸단다. 결혼한 이후에는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열심히 공부를 하고 그렇게 조선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조선의 문제점도 알게 되었어. 조선의 근대화에 가장 큰 걸림돌은 청나라라고 생각했어. 그 밖에 당시 국내외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였고 이를 고종에게 조언해주시고 했어. 뿐만 아니라 이때부터 해외언론에 조선에 대한 내용을 기고하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한글로 된 제대로 된 교과서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도 헐버트가 만들었단다. 아빠가 예전에 다른 책 이야기하면 이야기했던 <사민필지>라는 책이란다. 그러니라 우리나라 근현대 최초의 교과서는 헐버트가 만든 <사민필지>라는 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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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헐버트는 조선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제대로 볼 책이 없다는 점을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이 직접 서양에서 가르치는 근대 서적을 출판하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는 부모에게 보낸 편지(1890 1 27)에서 저는 조선인들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조선인들이 저를 붙들도록 하겠습니다.(I am going to make myself so valuable to Koreans that they can afford to let me go.)”라면서 조선에 계속 남아 종교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 정치경제, 국제법 등을 망라한 서양의 근대 서적을 조선 글자로 소개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더 나아가 조선의 전설과 신화를 수집하고 있으며 앞으로 책을 낼 예정입니다. 조선어와 여타 언어 사이의 유사성도 연구하고 있습니다.”라며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영역에 도전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비쳤다. 뒤이어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선교사들이 성서 번역에만 관심이 있다면서 자신은 수학책도 소개하고 학교용 교과서 출판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헐버트의 이러한 결기는 조선이 근대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진정성에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사민필지>의 저술과 교과서 편찬 등의 결과물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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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필지>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까. 기본적으로 세계 지리에 관련된 내용인데, 그 외 각 나라의 사회상, 정치제도도 모두 담고 있어, 백과사전 사회 편이라고 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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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사민필지>는 단순한 세계지리 책이 아닌 각 나라의 사회제도를 폭넓게 담은 일반사회책이기도 하다. 헐버트는 서양에서 출판된 지리, 사회책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회과학 지식을 동원하여 <사민필지>를 저술하였다. <사민필지>는 머리말에 이어 태양계, 땅떵이(지구)를 설명하고, 이어서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순서로 각 대륙의 나라를 개별적으로 소개하였다. 각 나라 설명에서 조선인들의 상식이 미치지 못하는 종교, 군사력, 정치체계, 사회제도 등을 담았다. 헐버트는 각 나라의 정치체계를 설명하면서 정사를 임금이 마음대로 하는 나라와 백성의 주장을 존중하는 나라로 구분하였다. 미국은 대통령을 4년마다 선출하고, 국민 대표기관인 의회가 있고, 재판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고 기술하였다. 이 땅의 청년들에게 주권재민 사상을 심어주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여긴다. 헐버트는 또 각 나라를 4등급으로 분류하여  정치체계의 좋고 나쁨을 구분하였다. 1등급은 미국을 포함해 12개 나라이고, 러시아, 일본은 2등급에, 조선은 청나라와 함께 3등급에 분류되었다. 조선은 전제군주의 나라로 신분제가 있고, 한자를 힘써 공구부하고 유고만을 준행하며, 신앙의 자유가 없다고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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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가 한글을 금방 익힌 이후로는, 한글 예찬자가 되어서 여러 차례 한글의 우수함을 알렸단다. 우수할 뿐만 아니라 쉽게 배울 수 있어 자신의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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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그는 또 영국이나 미국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했고, 식자들이 심혈을 기울였으나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글자 하나당 발음 하나의 과제가 이곳 조선에서 수백 년 동안 존재했다. 감히 말하건대 아이가 한글을 다 떼고 언어생활을 시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영어 ‘e’하나의 발음과 용법의 규칙과 예외를 배우는 시간보다 적게 든다.”라고 조선어가 영어보다 우월함을 설파했다. 그는 이어서 어떤 문장에 영국인들이 스무 단어를 써야 할 때 조선인들은 열세 단어만 쓰면 된다.”라고 조선어의 언어학적 우수성을 갈파하였다. 또한, 동사의 어형 변화 형태를 설명하면서 영어 ‘give’와 우리 말 주다를 비교하였다. 그는 “’준다의 어근이며, ‘주게는 미래시제의 어근이고, ‘주어는 과거시제의 어근이다. 직설법 형태의 어미는 모두 이지만 어간과 어미 사이의 음절 이 들어가 주난다가 되고, 이를 준다로 줄여서 말한다.”라고 풀이하여 언어학의 천재성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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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아 갔단다. 이것은 고종 황제가 도장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유효한 조약으로 볼 수 없었단다. 헐버트는 을사늑약의 무효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모국이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정신을 위배했다고 주장했단다. 미국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어. 고종의 친서를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 당시 미국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즈벨트에게 전달하려 했지만 미 정부는 무시하고 만나주지 않았단다. 미정부는 몰래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하고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조선의 지배권을 인정하기로 했거든.

헐버트는 <한국평론>이라는 월간지를 만들어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글들을 매달 실었어. 그리고 미국 <타임스>의 특파원으로서 조선 독립을 주장했다. , 언론을 통해서 일본의 부당함을 알라고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단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글의 우수성을 세상에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설화, 한국 시, 한국 소설, 판소리 등 한국 문학들도 외국에 소개를 하였단다. 또 하나 놀라온 것은 한국의 음악을 외국에 알리면서, 아리랑을 최초로 음계에 작성한 것도 바로 헐버트라고 하는구나. 정말 대단하신 분이네아리랑을 음계로 옮긴 것뿐만 아니라 아리랑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의 음악성에 대해 칭찬을 했는데, 오늘날 K-pop의 유행을 예견한 것이라고 지은이는 이야기했단다. 아빠도 대략 공감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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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90)

헐버트는 대중음악의 대표 노래로 아리랑을 선택하였다. 그는 아리랑을 현저히 빼어나고 듣기에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노래라면서, “조선인들에게 아리랑은 음식에서 쌀과 같은 존재이다.”라고 아리랑의 위치를 설정하였다. 그는 아리랑을 조선 음악의 최고봉으로 평가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주식인 쌀에 비유함으로써 조선인들의 아리랑에 대한 정서까지도 읽어냈다. 헐버트는 아리랑은 1883년부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리랑의 진짜 마지막 공연은 까마득한 미래의 일로서 아마도 아리랑은 한민족의 영원한 노래가 될 것이다.”라고 아리랑의 미래를 예견하였다. 그는 아리랑 후렴구 노랫말은 서정시요, 교훈시요, 서사시라면서, “조선인들은 즉흥곡의 명수이다. 부르는 이들마다 노래가 다르다. 조선인들이 아리랑을 노래하면 바이런이나 워즈워스 같은 시인이 된다.”라고 조선인들의 예술적 끼를 칭송하였다. 조선 음악이 나라 밖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때 헐버트는 한민족의 음악적 재능을 세계에 설파하였던 것이다. 이는 우리 젊은이들이 오늘날 케이팝K-pop으로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을 한 세기도 전에 예견한 혜안이었다.

====================

….

한국의 다섯 가지 위대한 발명품이라면서 외국 언론에 소개했는데, 그 다섯 가지는 거북선, 금속활자, 현수교, 폭발탄, 그리고 한글이었어. 특히, 거북선은 모형 제작까지 하여 소개를 했다는구나. 한국의 역사도 정리하여 <한국사>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우리나라의 온전한 통사를 저술한 첫 번째 책이라고 하는구나. <한국사>는 단군부터 고종까지의 역사를 저술했대.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 책이 무려 800쪽이 넘는다는구나. 정말 정성을 들여 썼다는 것이 느껴지는구나.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해보니 이 책의 영문판, 한글판 모두 구입할 수 있더구나. 그 책의 내용이 어떨지 무척 궁금하구나. 기회 되면 꼭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헐버트는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리는 데도 힘썼단다. 그리피스라는 사람이 <은둔의 나라, 조선>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 나온 여러 오류를 지적하였대. 특히 일본인이 쓴 글로 바탕으로 안 좋게 쓴 부분들이 많아서 그리피스에게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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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220)

헐버트는 미국인 그리피스가 1882년에 쓴 책 <은둔의 나나(Hermit Nation)>에 대해서도 강한 이의를 제기했다. 이 책은 서양에서 조선에 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책으로 헐버트도 조선에 오기 전에 이 책으로 조선을 공부하였다. 그런데 헐버트가 조선에 와 보니 이 책에 오류가 너무 많았다. 헐버트는 회고록에서 그리피스가 조선에 와 보지도 않고 일본인이 쓴 글만 읽고 책을 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은둔을 뜻하는 ‘hermit’이라는 단어도 오늘날의 한국인을 표현하기에 부적합하다면서 한국인들은 그저 편안하게 은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새로운 문물을 도입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리피스가 미국의 한 잡지에 한국에 대해 글을 기고하며 <한국, 난쟁이 제국(Korea, the Pigmy Empire)>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기고문 내용도 백제를 히악시(hiaksi)’라고 하는 등 오류가 넘쳐났다. 헐버트는 분노를 제어할 수 없었다. 그는 <한국평곤> 1902 7월호에 그리피스 기고문에 대한 반박의 글을 실어 “’pigmy’라는 단어는 아프리카의 왜소한 흑인종을 가리킨다. 미국인들이 이 기고문을 읽으면 한국인을 미개한 열등 민족으로 인식할 것이 뻔하다.”라며 그리피스에게 한국에 관한 글을 쓰려면 제발 한국에 직접 와서 보고 쓰라고 호소하였다. 1904년 런던의 한 수도원 행사에서 헐버트는 그리피스와 직접 맞닥트리기도 했다. 그리피스가 일본과 영일동맹을 맺은 영국은 행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친일 연설을 하자 헐버트는 그리피스에게 다가가 어디 두고 보자라며 대판 설전을 벌였다고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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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이야기했듯이 헐버트는 을사늑약의 부당성에 대해 주장했는데 그것을 <대한제국의 종말>이라는 책을 통해서 지적했단다. 이 책은 일본의 부당성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국 미국의 친일정책도 강하게 비판했어. 이 책은 외국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일본은 이 책을 사들여 불태워버리기도 했다는구나. 구린 것이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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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헐버트는 <대한제국의 종말>에서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일본의 침략주의를 고발하였다. 중요한 사실은 자신의 모국 미국의 친일정책을 비난하는 용기를 보여 주었다. 그는 을사늑약 당시 미국의 처신에 대해 한국에 어려움이 닥치니 미국이 제일 먼저 한국을 저버렸다. 그것도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인사말도 없이(When the pinch came we were the first to desert her, and that in the most contemptuous way, without even say good-bye.)”라고 공사관을 맨 먼저 철수한 미국을 맹비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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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간 사람들은 이상설, 이준, 이위종이렇게 학교에서 배웠던 기억이 있단다. 사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서 인터넷에서 좀 찾아봤단다. 암튼 우리나라 세 사람만 학교에서 배웠던 것 같은데, 당시 헐버트도 고종의 특사 자격으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을 했단다. 그는 거기서 세계 각국 언론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약탈해간 문화재에 대해서 맹비난했단다. 일본이 경천사 십층 석탑을 약탈해갔는데 그것을 알게 된 헐버트가 그것을 국제 여론전을 펼친 것이란다. 이것은 헐버트뿐만 아니라 베델이라는 사람도 함께 동참하여 여론전을 펼쳤어. 결국 일본은 그것을 돌려주겠다고 했고, 1918년에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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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재팬크로니클>이 석탑 약탈을 공식화했음에도 다나까는 계속 버티며 석탑을 돌려주지 않았다. 헐버트는 국제 여론에 호소하기로 마음먹었다. 헐버트는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헤이그에서도 석탁 약탈 사실을 폭로하였다. 1907 7 10일 헤이그 평화클럽에서 일본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연설을 하며 경천사 십층석탑 약탈 사건을 예로 들었다. <만국평화회의보>가 헐버트의 주장을 보도하자 <뉴욕포스트>등 국제적인 신문들이 이를 받아 대서특필하였다. <뉴욕타임스>도 헐버트 회견 시가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베델도 <대한매일신보> 등을 통해 계속적으로 일본에 석탑 반환을 촉구하였다. 석탑 약탈에 대한 비난 여론이 국제적으로 들끓자 당황한 일본 외교관들이 석탑을 한국에 돌려줄 것을 본국에 건의하기까지 했다. 일본은 1918년에 가서야 석탑을 돌려주었다. 두 외국인 헐버트와 베델이 이 문제를 국제여론전으로 몰고 감으로써 결국 석탑이 한국에 돌아온 것이다. 돌아온 석탑은 조선총독부 창고에서 뒹굴다가 우여곡절 끝에 2005년 용산 국립중앙박물과 개관과 함께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헐버트가 현장에 가서 사진으로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면 경천사 십층석탑은 아마도 우리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현장 사진 증거가 없었다면 일본이 과연 약탈을 인정했겠는가? 헐버트가 희망한대로 언젠가 석탑이 원래 자리인 경천사에 원형대로 복원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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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만국평화회의의 특사 사건은 후폭풍이 거셌단다. 일제는 고종을 강제로 폐위시키고 순종을 황제 자리에 앉혔단다. 그리고 궐석재판을 열어 이상설에게 사형을, 이미 순국한 이준과 이위종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어. 그리고 헐버트에게는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단다.

 

3.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국내로 들어오지 못한 헐버트는 미국으로 돌아가서 언론을 통해 조선의 독립과 일본의 만행을 계속 고발했단다. 친일 미국인들이 있는데 그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어.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스티븐슨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아빠가 몇 번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이란다. 우리나라 장명환 의사와 전명운 의사가 동시에 저격하여 사망했던 그 사람스티븐슨이 헐버트와 논쟁을 벌인 이력이 있어서 스티븐슨이 죽고 나서 헐버트는 신변 위협을 당하기도 했대.

한국을 떠난 지 2년인 1909년 가을. 헐버트는 유럽과 시베리아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 서울에 다시 돌아왔단다. 일본의 철저한 감시 속에 두 달 가량 서울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가 머물고 있는 동안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일이 있었어. 그래서 헐버트가 그 일의 배후라는 소문도 돌았다는구나. 감시가 심해서 국내에서 특별한 활동을 못했던 헐버트는 두 달 뒤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단다. 미국에 가서도 여전히 계속 미국 정부 특히 루즈벨트 대통령을 비판했단다. 을사늑약에 대해 미국의 책임이 크다고 말이야.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결국 죽기 전에 을사늑약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는구나.

헐버트는 미국에 머물면서 1919 3.1운동의 소식을 들었어. 3.1운동을 3.1혁명이라고 하면서 비폭력 시위를 한 한민족의 숭고한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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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343)

헐버트는 3.1혁명을 어떻게 정의하였을까.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발행되던 <미주 한국평론> 1919 10월호에 <1차 세계 대전과 한국(Korea’s Part in the War)>를 기고하였다. 헐버트는 이 글에서 인류애가 고상함이나 영웅주의에 묻힌다면 이는 인류에 대한 모반이다. 3.1혁명은 신의 손(hand of God)’이 작용한 것이며 한국의 독립은 천부적 권리이다.”라고 천명했다. 그는 또 이듬해 1 <국제관계>지에 기고한 <일본과 한국(Japan in Korea)>에서, 일본과 한국의 반목은 일본이 역사적으로 한국의 군사력을 얕보는 데서 기인한다고 진단하였다. 이어서 한민족은 3.1만세항쟁에서 원한과 증오를 표출하는 대신, ‘자유를 달라(We must and shall be free)’고만 외쳤다면서 3.1혁명의 비폭력 정신을 평가하였다. 이는 한민족의 문명 수준을 말해 준다고 덧붙였다. 헐버트는 1949 7월 죽음을 앞두고 가진 언론 회견에서는 3.1혁명을 한민족 역사에서 가장 숭고한 정신문화적 가치라고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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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이후 1919년 파리강화회의가 있었는데, 헐버트는 여운형과 함께 독립청원서를 작성하는 등 여전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을 하셨어. 그 이후에도 계속 여러 언론을 통해 한국에 대한 글들을 기고했다는구나. 세월이 흘러 1940년대가 되었고, 헐버트의 나이도 80대가 되었어. 80대 나이에도 한국에 관한 글은 계속 기고했대. 헐버트가 자신의 모교에 남긴 신상기록부를 보면 그가 한 평생 우리나라와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노력했음을 할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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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2004년 다트머스대학을 방문하여 헐버트 기록을 추적하던 중 헐버트가 졸업 45주년을 앞두고 모교에 제출한 졸업 후 신상기록부가 눈에 들어왔다. 헐버트가 70을 바라보며 친필로 작성한 자신의 삶의 흔적이었다. 필기체로 휘갈겨 쓴 기록부를 세세히 읽다가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헐버트는 신상기록부 나의 일생(My Life Story)>란에 자신과 한민족의 관계를 정의하는 글을 남겼다:

나는 천팔백만 한국인들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싸워왔으며, 한국인들에 대한 사랑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나의 한민족에 대한 충심은 값어치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원문 : I have been fighting for the rights and liberties of 18,000,000 people whose love I hold as my most precious possession and whatever the outcome I dream that loyalty to such a cause is worthwh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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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광복멀리서나마 헐버트는 얼마나 기뻐했을까. 헐버트는 1949 7 29 40년 만에 다시 우리나라에 왔단다. 얼마나 감회가 새로웠을까. 다시 온 한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가졌더라면 좋았겠지만, 우리나라에 온지 일주일 만에 그만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그리고 그의 생전 소원대로 우리나라에 묻히셨다고 하는구나. 양화진 선교사 묘원에 가면 그의 묘지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구나.

누가 다른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헌신적인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정말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단다. 지은이 김동진 님이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헐버트를 평가하는 글이 있는데, 그 글로 오늘 독서 편지를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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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헐버트는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진정한 세계주의자이자 영원한 한민족주의자였다. 그는 한민족은 두뇌가 우수하고, 독창성이 뛰어나다. 교육유전자가 남달라 성공 잠재력이 무한하다. 위기가 닥치면 단결하여 나라를 지켜 내는 끈기와 생존력을 지녔다.”라며 한민족의 우월성을 논리적으로 풀이하였다. 헐버트는 또 생을 마감하면서, 한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이라고 증언하며 한글 등 다섯 가지 예를 들었다. 헐버트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한민족의 미래 가치를 확신한 참 한민족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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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 2월 한국과 일본은 한일의정서에 서명하였다.

책의 끝 문장: 그리하여 한민족이 세계 속에 우뚝 서리라는 헐버트의 꿈을 꽃피워야 하지 않겠는가.



헐버트는 영어에서 학생들이 ‘f’와 ‘r’, ‘v’, ‘th’ 등의 발음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발견했다. ‘will not’을 ‘willot’으로 발음하는 등 연어 발음에서도 어려움이 나타났다. 헐버트는 학생들이 장치 국제무대에서 영어를 원활하게 구사해야한다면서 발음 교정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문장 암송이 영어 공부의 첩경이라며, 학생들이 문장을 완전히 암송해야만 집에 갈 수 있게 했다. 학생들은 한문 서예를 공부해서인지 펜으로 영어 쓰기는 아주 잘했다. 일부 학생은 심지어 자신보다 더 잘 썼다고 회고했다. - P47

헐버트는 대한제국이 을사늑약으로 사실상 주권을 잃지 을사늑약 다음 해인 1906년 <대한제국의 종말(The passing of Korea)>에서 ‘한국의 살길은 교육뿐’이라면서 한국인들에게 교육에 전념하여 힘을 기르기를 호소하였다. 그는 "한국인들은 미개해서 자치 능력이 없다고 국제적으로 떠들고 다니는 일본인들의 멸시를 상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라며 한국인들에게 교육을 통해 일본을 따라잡고,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를 바랐다. 그는 또 미국에게 조미수호통상조약 정신을 위배했다며 지금이라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한국에 교육 투자를 강화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면서 "교육에 대한 투자에서 가장 크게 효과를 낼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이 말은 한국인들의 깊숙이 아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라며 한민족의 성공 잠재력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 P127

"만약 조선이 한글 창제 직후부터, 과도한 지적 부담을 주고, 시간을 낭비하고, 반상제도를 고착시키고, 편견을 추구기고, 게으름을 조장하는 한자를 내던져 버리고 자신들이 모든 소리글자 체계인 한글을 받아들였더라면 조선에게는 ‘무한한 축복’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허물을 고치는데 너무 늦다는 법은 없다. 이제라도 한글을 써야 한다."
헐버트는 또 1896년 10월 <조선소식>에 "나는 영국인들이 라틴어를 버린 것처럼 조선인들도 결국 한자를 버리리라 믿는다."라고 하여 이미 백 년도 훨씬 전에 한글 전용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전용하고 한자가 보완적 기능을 하는 현실을 보면서 헐버트의 예지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P150

헐버트는 책을 마치며 한민족에세는 참으로 감동의 글을 남겼다. 그는 "예언자 흉내를 내는 것은 역사가의 본분이 아니며, 역사가는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 예단하려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한민족이 장차 경이적인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희망하는 예단은 허용돼야 한다."라고 하여 한민족이 세계 속에 우뚝 서리라고 예언하였다. 헐버트가 한민족 역사를 15년 동안 천작하며 내린 한민족의 잠재력에 대한 확신이자 결론이지 않은가.215 - P215

헤이그 특사 파견 사건은 나라의 운명은 물론이고 고종 황제와 특사들 개인의 운명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의 책임을 묻는다면서 7월 20일 고종을 황제 자리에서 퇴위시키고 순종을 황제 자리에 앉혔다. 7월 24일에는 소위 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한국의 내정까지 공식적으로 접수하고, 대한제국 군대도 해산시켰다. 헐버트는 특사증을 발급한 고종 황제가 퇴위 되어 더 이상 특사 자격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는 1919년 미국 의회에 제출한 ‘한국 독립 호소문’에서, 일본이 고종 황제를 재빨리 퇴위시킨 것은 자신이 고종 황제의 특사로 조약상대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친서를 무효화시키기 위한 것이 하나의 이유였다고 밝혔다. 일제는 궐석재판을 열어 정사인 이상설에게는 사형을, 이미 서거한 이준과 이위종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헐버트도 일제의 위협에 한국에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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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07-19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북플 글을 읽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릴줄 몰랐습니다.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bookholic 2024-07-20 00:06   좋아요 1 | URL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헐버트에 삶에 대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 피해 없이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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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는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유시만 작가님을 좋아한단다. 그의 글을 읽고 그의 말을 들어보면 아빠가 생각하는 바와 같은 방향을 갖고 계시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는 탑재되지 않은 뛰어난 통찰력과 분석력이 정말 뛰어나신 분이란다. 자신이 이해한 바를 쉽게 설명해주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계셔. 유시민 작가님을 알게 된 것이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처음 그 모습과 자세를 일관되게 보여주고 계신단다. 누군가는 정치할 때보다 얼굴이 많이 편안해지고 여유로워 보인다고 하지만 아빠는 예전에 날카로운 눈매의 모습도 무척 마음에 들었단다. 그리고 유시민 작가님은 스스로 지식 소매상이라고 하실 만큼 그의 책을 읽다 보면 다방면의 상식을 쌓게 된단다.

유시민 작가님이 경제 전공이라서 예전에 경제 관련 책들도 쓰셨는데 경제에 문외한이었던 아빠에게 도움이 되었고, 작년에는 과학 관련 책까지 쓰셔서 영역을 넓히셨단다. 가끔씩 정치 평론에 대한 책도 써서 정치 흐름에 대해 이해를 하는 경우도 있지. 유시민 작가님의 신간이 나오면 바로 읽곤 하는데 이번에 나온 신간도 신간 알림이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단다. 읽은 지 좀 되는데 너희들에게는 이제서야 이야기해주는구나.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책을 읽다 보면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게 된단다. 그의 이름을 적지 않아도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기 때문에 유시민 작가님이 책에서 단 한번도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안 할 줄 알았어. 이 책을 읽다 보니 조금 걱정이 되더구나. 그를 너무 비판을 해서, 혹시 또 검찰조사를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너무나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검찰의 이성은 어디로 갔는가. 그들은 세금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흠이 없는 사람은 없단다. 그런데 그 흠을 침소봉대하는 것이 오늘날 검출의 중요 임무인 것 같구나. 진보 정치인은 왜 무결해야 하는가? 아빠는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누구나 흠도 있고 약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게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처벌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해. 그에 반해 보수 수구 세력은 더 큰 약점과 불법도 기소 없음으로 처리되는 세상. 그것에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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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완벽하게 훌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조롱당해야 한다면, 조금의 약점만 드러나도 기소되고 유죄판결을 받아야 한다면, 의도하지 않은 오류를 죽음으로 책임져야 한다면, 누가 감히 진보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정치검찰과 보수언론은 말했다. “완벽하게 선할 수 없다면,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한 톨 나지 않을 자신이 없다면, 수치와 불명예의 구렁텅이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고 싶지 않다면, 정의니 공정이니 평등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지 말라. 노무현과 노회찬과 조국의 최후를 보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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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의 대통령 당선은 민주주의 단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단다. 유능한 사람이 당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세탁이든 언론이 밀어주었든 무능한 자도 표만 많이 얻으면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란다. 그를 찍은 이들이 일년도 채 안돼 후회를 하지만 결정은 번복되지 않는단다. 아무 일 없길 바라며 5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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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포퍼의 말처럼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선하고 유능한 권력자는 없다. 민중은 선하고 유능한 사람을 뽑기도 하지만 사악하고 무능한 인물을 선택하기도 한다. 250년 전만 해도 국민이 권력자를 선출하는 국가는 미합중국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지구촌의 문명국가는 대부분 민중이 보통선거로 권력자를 선출한다. 선하고 유능한 권력자만 뽑은 나라는 없다. 사악하거나, 무능하거나, 사악하면 무능한 인물도 뽑았다. 민주주의 선거제도의 피할 수 없는 약점이다. 똑같이 민주주의를 하는데도 정부 수준이 나라마다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권력자가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면서 서슴없이 악을 저지른 나라도 있지만 어떤 권력자도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막는 나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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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민주주의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결국은 시스템으로 방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예전에 아빠는 대통령 한 명 바뀌었다고, 나라가 확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어느 정도 민주주의 시스템이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MB 정권과 박근혜 정권을 보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 시스템이 그리 잘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래서 2년 전에 그가 당선되고 나서 좀 무서웠단다. 또다시 나라가 나락으로 가면 어쩌나, 하고그런데 그 무서움이 현실이 되는 것은 얼마 가질 못했단다. 무능해도 이리 무능할 수가 있을까. MB때나 박근혜 정권 때도 내가 해도 그것보다는 잘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아빠도 모르게 내가 해도 그보다 잘할 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오더구나. 유시민 님은 그를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 같다는 비유를 했는데 너무 적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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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은 정치적 사고였다. 표를 준 유권자들도 그가 이토록 무지하고 무능하고 포악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윤석열은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와 같다. ‘의도가 아니라 본성때문에 문제를 일으킨다. 도자기가 깨지는 것은 그의 의도와 무관한 부수적 피해일 뿐이다. 그를 정치에 뛰어들게 한 동력은 사회적 위계(位階)의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는 생물학적 본능이었다. 그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회적 선과 미덕을 이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회적 선과 미덕을 이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다. 국민을 속이지 않았다. 검찰총장으로서 대통령 후보로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그를 정확히 보려 하지 않았던 유권자가 적지 않았다. 화장과 조명으로 윤석열의 결함을 감춰준 언론에 속은 시민도 많았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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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큰 공을 세운 역적 중에 하나는 언론이란다. 예전에 기자라고 하면 비판의식을 갖춘 지식인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오늘날 기자라고 하면 기레기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단다. 유시민 작가님도 오늘날 기자는 그저 회사원에 불과하다고 이야기를 했어. 그의 말에 동감했단다. 그러니 기자 너희들도 되도 않는 괜한 자부심을 갖지 말길 바란다. 지금 이 사태를 만든 가장 큰 공범은 너희들이니.. 나라가 골로 가고 있는데, 책임이라도 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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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7)

기자는 사회에 책임을 느끼는 지식인이 아니다. 민중을 위해 싸우는 투사도 아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기자는 사는 게 괴롭다. 월급을 받고 상사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회사원일 뿐인데 비리를 폭로하고 불의에 항거하며 인권에 정의를 위해 싸우라고 하니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기자가 자본과 정치권력의 간섭과 횡포에 맞서 언론 자유와 편집된 독립을 위해 싸우던 시대는 지나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사실 그런 시대는 있지도 않았다. 그런 것처럼 보인 때가 잠깐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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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한국 언론은 저널리즘 규범을 무시한다. 무엇보다 사실을 존중하지 않는다. 정치권력과 유착해 이권을 따고 광고주를 위해서 기사를 쓴다. 대주주의 대리인이 보도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한다. 기자의 독립성이나 편집의 자율성 같은 것은 안중에 없다. 이념적 균형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기계적 중립도 지키지 않는다. 윤석열과 국힘당에 불리한 사실은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보도한다. 유튜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탐사보도 전문 기자가 윤석열 정부와 정치검사의 비리를 보도하면 그 비리를 심층 취재하는 게 아니라 보도한 기자의 신상을 털고 보도 내용을 공격해 신뢰성을 훼손하는 데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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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가 손바닥에 ()’자를 쓰고 TV 토론에 나올 줄이랴 상상이나 했겠니. 손바닥에 ()’자를 쓰고 TV토론에 나온 사람을 설마 백성들이 찍어주겠나, 했어. 아빠는 당연히 그가 당선될 리 없다고 생각했어. 선거 전날 그가 당선되면 어쩌지? 걱정하는 친구에게 절대로 그럴 리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쳤던 기억이 아직도 나는구나.

유시민 작가님이 이야기하기를 그는 어리석기 때문에 위험한 스타일의 권력자라고 이야기한단다. 절대공감. 무슨 정책을 함에 있어 정말 모르고 추진하는 것 같고, 기자회견을 잘 하진 않지만, 해도 동문서답하기 일쑤란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다른 나라 정상들과 회담을 할지 걱정이구나. 영악한 정상들이라면 속여먹기 참 좋은 사람이 아닐까 싶구나. 아빠 친구들도 만나서 이야기하면 그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정말 창피하다고 하더구나.

유시민 작가님이 그를 전두환과 비교를 했는데, 일리가 있는 설명이더구나. 우리는 지금 5공에 살고 있는 것 같구나. 5공도 결국은 지나갔으니, 지금의 이 시절도 결국은 지나간다고 좋게 생각해야 하는가. 그런데 남아 있는 기간이 너무 길어 괴롭구나. 긴 터널을 지나는데 아직 반도 통과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괴롭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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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155)

윤석열은 전두환과 비슷한 데가 많아서 평행이론이 나올 만하다. 전두환은 군부 쿠데타로, 윤석열은 검찰 쿠데타로 직속상관을 공격해 권력을 차지했다. 전두환이 극소수 정치군인을 권력의 핵심으로 기용해 권력을 운용한다. 둘 모두 야당을 불순세력이라 여기며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한다.

두 사람 모두 좌파가 장악한 언론을 정상화해 여론을 바로잡겠다면서 표현의 자유를 탄압한다. 부부와 함께 민중의 조롱을 받는다는 것과 닮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크게 다르다. 전두환은 물리적 폭력으로 반대세력을 고문하고 죽였지만 윤석열은 기껏해야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괴롭힐 뿐이다. 그런 것만 가지고는 국민의 저항을 억누르지 못한다. 윤석열은 전두환만큼 기괴하지만, 힘과 능력은 전두환에 닿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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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행보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맞나 싶을 때도 있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의 방류를 옹호하는 것이나,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제거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맞나? 싶은 생각이 절로 나는구나. 대통령이 잘못을 하면 주위에서 만류하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 나물에 그 밥인지 아니면 주종관계에 철저한 조직인지 모르겠구나. 그 이유를 유시민 작가가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주었는데, 앞으로는 그와 그 주변인들에게 기대를 접게 만드는 그런 설명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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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사람은 능력이 저마다 다르다. 능력은 일반지능, 전문 지식, 업무 자세, 타인을 대하는 태도, 전략적 사고 능력, 경험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A급이라고 하자. A급은 A급을 알아보고 좋아한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경우도 흔하다. A급 책임자가 전권을 쥐면 주로 A급 인재를 기용한다. 그러면 그 A급들이 또 다른 A급을 불러들인다. 그러나 B급을 조직 책임자로 임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B급은 A급을 반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B급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B급 책임자는 기껏해야 B급을 기용한다. 아부를 잘하면 C, D급도 마다하지 않는다. A급은 기용하려고 해도 어렵다. A급 능력자는 B급 밑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조직은 C급 이하 등외까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으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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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를 탄핵하라는 국민 청원이 국회 게시판에 올라왔고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인기(?)리에 찬성표가 올라가고 있단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변함이 없다. 선거를 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건이 터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들이 목소리를 높여도 아랑곳하지 않는구나. 왜냐? 그는 그것도 모른다. 자신이 무능한 것조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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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모든 불행의 원인은 잘못된 만남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와 인간 윤석열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대통령직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기 객관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본인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더닝-크루거의 존재를 입증하는 사람이다. 너무 어리석어서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 운명이 그를 덮친다. 자신에게 왜 그런 운명이 닥쳤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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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혁신당의 구호처럼 삼 년은 너무 길다. 아니, 세 달도 너무 길고 삼 일도 너무 길다. 세월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고 한탄하는 경우가 있는데 세월을 천천히 가게 해주어 고맙다고 해야 하나, 농담을 하곤 한단다. 세월이 빨리 가도 좋으니 어떤 식으로든 그의 권력이 끝났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시는 이런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오늘 독서 편지를 쓰는데 다시 분노게이지가 올라갔더니 오타가 많은 것 같구나. 이해 바람.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총선이 끝난 후 시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정책과 국정에 임하는 태도를 바꿀지, 바꾼다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바꿀지 지켜보았다.

책의 끝 문장: 그러니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윤석열이라는 병을 이겨내자고.



플라톤의 잘못은 의미 없는 질문을 한 것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미덕인지 아는 철학자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따지지 말자. 문제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권력을 쥐어줄 방법이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권력을 상속하는 왕정국가에서는 생물학적 우연의 축복을 받아야 통치자가 될 수 있다. 귀족정 국가에서도 높은 신분을 타고나지 않으면 권좌가 접근할 수 없다. 민중이 권력자를 선출하는 공화정도 다르지 않다. 철학자가 선거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지혜롭든 어리석든, 표를 많이 받는 자가 권력을 차지한다. - P21

아이히만 재판 보고서 격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렌트는 ‘악의 비속함(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썼다. 보통 ‘악의 평범성’으로 번역하지만 나는 ‘비속함’이 아렌트의 생각을 더 잘 표현한다고 본다. 아이히만은 나치 핵심 권력자들의 홀로코스크 기획 회의에 참석했고 유대인 학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법정의 아이히만은 사악한 살인자라기보다는 지극히 비속한 공무원이었다. 아렌트는 그의 잘못이 ‘자기 머리로 사유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악을 행하는지 여부를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객관화’와 ‘자기 성찰’을 하지 않았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능력이 전혀 없었다. 아렌트는 이것을 ‘전적인 무능’이라고 했다. - P30

나는 완벽하지 않다. 어떤 면에서도 완전무결한 존재는 될 수 없다. 완벽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움츠리지는 않는다. 불완전한 모습으로,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면서, 때로 길을 잃고 방황하면서 자연이 준 본성에 따라 사회적 미덕과 선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사람들과 손잡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내일의 세상을 오늘보다 무엇 하나라도 낫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태려 한다. 윤석열을 보면서 마음에 새긴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관용이 악의 지배를 연장한다는 것을. 부족한 그대로, 서로 다른 그대로 친구가 되어 불완전한 벗을 관대하게 대하면서 나아가야 악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 P44

국민은 이념적 균질 집단이 아니다. 국민을 균질 집단으로 만들면 사회는 히틀러의 독일, 스탈린의 소련, 마오쩌둥의 중국, 김일성 일가의 북한처럼 된다. 국민은 복잡한 이질 집단이다. 사람마다 정치적 이상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다르다. 어떤 정책도 모든 국민의 동의를 얻지는 못한다. 민주주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헌법과 법률에 정당 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보장하도록 명시했다. - P77

그는 위험한 스타일의 권력자다. 사악한 권력자보다 어리석은 권력자가 더 위험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스스로는 현자라고 확신한다.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원하는 것을 무시하고 정반대 선택을 주저 없이 한다. 비판하는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 가족과 주변까지 괴롭힌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 만족감을 느낀다. - P147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대한 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친일파라 그런다고 하지만 나는 무지성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후쿠시마의 사고 원전에서 나온 핵 오염수에 어떤 방사성 물질이 들어있는지 모른다. 오염수의 유해성 여부를 판정하는 기준과 해양 방류의 윤리적 쟁점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그러면서도 핵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사람을 가리켜 ‘1 더하기 1을 백이라고 한다’라고 비난했다. 그는 심각한 다툼이 있는 과학적 쟁점을 그런 방식으로 처리한다. 정보를 공유하고 논리의 규칙에 따라 토론하는 게 아니라 의견이 다른 사람을 머저리라고 비난한다. 자신이 머저리면서. - P165

자유로운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조국 자신도 모른다. 길든 짧든, 그는 그 시간에 자신을 남김없이 불태울 것이다.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리는지, 그가 불탄 자리에 무엇이 남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는 있다. 조국과 윤석열의 운명이 완전하게 엇갈린다는 것이다. 둘의 싸움을 둘 모두 명예롭게 끝낼 방법은 없다. 윤석열에게 조국은 이재명과 다른 존재다. 윤석열의 시선으로 보면 이재명은 ‘아직 죽이지 못한 자’다. 싸움을 멈추고, 공존을 시도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조국은 ‘이미 죽였던 자’다. ‘이미 죽였던 자’와는 공존할 수 없다. 조국도 마찬가지다. ‘다시 살아난 자’는 자신을 죽였던 자를 죽여야 살아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윤석열의 가장 위험한 적은 이재명이 아니라 조국이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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