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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3 - 가볍게 친해지는 서양 현대미술 방구석 미술관 3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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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조원재 님의 방구석 미술관 시리즈가 새로 나왔단다. 지난 <방구석 미술관> 1권과 2권을 재미있게 읽고 지은이 조원재 님의 다른 책도 찾아 읽었는데, <방구석 미술관> 3권이 새로 출간되어 기뻤단다. 1권에서는 서양 화가들을, 2권에서는 한국 화가들을 이야기해주었는데, 3권에서는 가볍게 친해지는 서양 현대미술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단다. 현대미술은 정말이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장르로, 감상하는 사람이 그 의미를 찾아 해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단다. 그래서 사람마다 해석도 제각각이고 말이지. 정답이 없다는 것이 서양미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과적 감성으로 충만한 아빠는 그런 서양미술은 크게 관심이 없단다.

이 책에는 여섯 명의 미술가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 네 명은 알고 있는 사람이고, 두 명은 처음 보는 사람이란다. 이 여섯 명 중에 그래도 한 명을 고르라고 하면, 아빠는 단연코 살바도르 달리를 뽑겠다. 인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작품만으로 뽑은 것이란다. 살바도르 달리는 비현실적인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사실적인 그림을 고의적으로 비틀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신비감이 가득한 그림을 그렸거든. 물론 이 책에 나오지 않는 작가들도 모두 포함하라고 하면, 달리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잘 모르겠구나. 다른 미술가들도 물론 평론가들이 극찬을 하지만 아빠의 취향은 아닌 것 같구나.

 

1.

첫 번째 소개된 작가는 미술작품을 보면 화가를 곧바로 알 수 있는 몬드리안이란다.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화가 중에 한 명이지. 몬드리안은 네덜란드 사람인데, 아버지는 부업으로 석판화를 제작했고, 어린 몬드리안은 그 일을 도와주었단다. 삼촌도 화가였기 때문에 몬드리안은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접할 수 있었고, 그림, 특히 풍경화에 빠져 살았다고 하는구나. 당시 모더니즘 미술이 유행을 해서, 몬드리안도 모더니즘 미술가인 뭉크와 마티스의 영향을 받았대. 그리고 이후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품을 접하고 그림을 입체주의와 다시 점으로 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시선을 만나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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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그렇습니다. 그림을 꼭 사진 찍은 것처럼 눈에 보이는 대로 똑같이 그려야 하는 절대적 이유가 있을까요? 그 고정관념을 제거하면, 그림은 평면 위에 화가가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장이 됩니다. 이렇게 유럽의 회화는 20세기 초에 이르러 회화는 눈에 보이는 것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고 벗어납니다. , 그리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화가가 더 자유롭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바로 이것이 피카소와 브라크가 20세기 초에 활짝 연 현대미술 혁명의 요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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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몬드리안도 자신이 그려야 할 그림은 추상주의와 입체주의라고 생각을 하고, 그의 그림은 점점 추상적으로 진화해 갔어. 당시 파리에서 약 2년간 그림을 공부하고 그렸는데, 1914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네덜란드로 돌아왔단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5년 동안 네달란드에서 입체주의 그림의 연구해서 그의 그림은 점점 발전, 아니 진화하게 되었단다. 1919년 다시 파리로 돌아왔는데, 피카소 등 파리의 화가들의 그림은 여전히 5년 전의 그림에 머무르고 있었고, 몬드리안은 이제 그들을 벗어나서 자시만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으니, 그 그림들이 요즘에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파랑, 빨강, 노랑 등 원색 위주의 단순화된 사각형 그림들이란다. 누구나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그런 독창적인 그림을 처음 그리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었다는 데 높은 점수를 주어야겠구나.

살바도르 달리는 스페인에서 태어났단다. 살바도르는 구현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대. 달리는 어려서부터 괴짜로 엽기적인 장난도 많이 했다는구나. 대학에 가서도 거만하고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고, 시험 보기를 거절해서 퇴학 당하기도 했대. 괴팍한 천재 기질을 보였나 보구나. 그림도 인상주의, 입체주의 등을 따라 그렸는데 그 실력이 대단했어. 그러다가도 어느 때는 사실적인 고전풍의 그림도 그렸는데, 진짜처럼 정말 잘 그렸단다. 그러다가 프로이트의 무의식 사상을 영향을 받고, 그림도 무의식이나 꿈을 그려내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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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29)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폭발 이미지에서 크나큰 충격을 받은 달리. 이제 달리의 관심사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원자의 세계가 되었죠. 그는 세상의 모든 물질이 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원자 속 세계가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과학적 사실에 흥분합니다. 그는 물질세계의 본질을 회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해답이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에 있다고 여기며 원자물리학, 양자역학 공부에 빠져듭니다. 프로이트보다 하이젠베르크와 아인슈타인을 신봉하기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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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도 난해하기 시작했지. 그런데 다른 현대 미술가들과 달리 달리는 고전주의를 지키면서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시계를 흐물흐물하게 그린 <기억의 지속> 같은 작품이 그의 미술 세계를 나타내는 좋은 작품이었어.

달리는 사랑도 범상치 않게 했단다. 친구의 부인 갈라와 사랑에 빠져 둘은 파리로 도망을 갔단다. 파리 남부 시골 마을에 오두막에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갔어. 달리는 그림에만 전념하고 갈라는 돈을 벌어와서 달리를 지원했단다.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드디어 파리에서 성공을 거두었어. 전시회에서 미국의 화상 줄리앙 레비가 그의 작품을 눈 여겨보고 미국에 소개를 했어. 그러면서 미국에서 포텐이 완전히 터져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단다. 1934년 그의 조국 스페인의 국내 상황이 좋지 않아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지내다가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이후에는 미국에서 지냈단다.

달리와 갈라는 엄청난 돈을 벌여들였는데, 달리는 돈을 엄청 밝힌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어. 갈라도 옛 가난한 시절은 다 잊고 사치의 대명사가 되었단다. 전쟁이 끝나서 스페인으로 돌아왔지만 당시 스페인은 내전이 끝나고 프랭코 군사 독재 시절이었어. 달리는 독재를 지지한다고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어. 갈라도 젊은 남자들과 바람을 피는 등 달리와 갈라의 불화는 심해졌단다. 그의 작품은 훌륭하나 그의 인성과 삶의 태도는 본받지 못하겠구나.

 

2.

세 번째 소개한 미술가는 알베르토 자코메티라는 스위스 사람인데, 미술에 문외한인 아빠는 처음 보는 사람이야. 현대 미술의 입체주의를 조각에 적용시켰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구나. 아빠는 그의 관한 글을 읽어보고, 책에 실린 그의 작품들을 봤지만 그 작품들이 왜 훌륭한지 아직 이해를 하지 못했단다. 조각 작품이니 사진이 아닌 공간에서 실제로 보면 좀 이해하려나?

네 번째 미술가는 그 유명한 잭슨 폴록이란다. 그의 그림 또한 아빠는 높은 점수를 주지 못하겠구나. 아빠의 관점에서 그의 훌륭한 점이라고 하면, 그림이라는 것이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닌 물감을 뿌려서도 그릴 수 있다는 창의성을 보였다는 점 정도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의 창의적인 작품보다 그가 망나니 짓을 많이 하고 다녔다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구나. 망나니라는 표현은 아빠가 한 것이 아니고, 지은이가 표현한 것인데 그 사례를 들어주었는데, 정말 망나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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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205)

제가 현대미술사에 기록되는 위대한예술가를 망나니라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살펴보면 아마 고개가 끄덕여질 겁니다. (정말 쓸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잭슨 폴록의 진짜 면모를 허례허식 없이 전하기 위해) 한 가지 에피소드를 풀어보자면, 폴록은 자신을 아껴준 스승 벤턴의 아내 리카와 불륜을 저지릅니다. 한술 더 떠 25세 폴록은 술에 찌든 상태로 리타로 찾아가 청혼까지 하지만 리카는 거절하죠. 그녀의 거절에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폴록은 벤턴을 찾아가 빌어먹을 놈, 내가 너보다 더 유명해지고 말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역사에 기록하는 위대한 인물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역사에 기록될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과 인간성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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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 중에 괴짜 DNA를 가지고 있는 들이 간혹 있는데, 잭슨 폴록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구나. 성공한 이후에 그에게는 겸손이라는 것은 없고 자만만 가득 차 있었단다. 거기에 알코올중독자도 유명해져 나중에는 미술계에서도 몰락의 길을 걷고 그의 작품들에도 혹평이 쏟아지게 되었단다. 폴록이 성공하는데 많은 도움으로 주고 지지했던 아내 크래스너도 결국 폴록을 떠났단다. 폴록은 결국 술 먹고 난폭 운전을 하다가 나무를 들이박고 죽고 말았단다. 그의 나이 고작 44세였단다. 미술에서 큰 성공이 결국 그를 일찍 가게 한 것 같구나. 그의 창의성만 높이 사야겠구나.

다섯 번째 미술가는 마크 로스코라는 추상표현주의라는 장르를 하는 사람이란다. 러시아 출신 유대인으로 본명은 마르쿠스 코스코비치인데, 미국으로 건너와 크게 성공을 하게 된단다. 그런데 그 또한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해줄지 걱정이라고 했대. 그래도 걱정은 해주셨네. 아빠도 그의 작품들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마크 로스코는 우울증을 앓게 되어 나이 들수록 색채가 점점 어두워졌다고 하는구나. 당시 미국의 미술계는 밝은 계통의 팝아트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점점 어두워진 로스코의 작품들은 점점 인기가 시들어졌어. 결국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삶은 안타까운 삶이로구나.

마지막 여섯 번째 미술가는 앤디 워홀이란다. 앞서 이야기한 팝아트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지. 체코 이미자 출신으로 어린 시절을 빈민가에서 힘들게 지냈단다.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지원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어. 앤디 워홀은 만화를 모방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이런 것도 과연 미술작품이 될 수 있냐는 논란을 만들었대. 그런데 이렇게 만화를 모방하여 그림을 그린 것이 워홀이 처음이 아니고, 리히텐슈타인이 먼저 시도를 했다는구나.

그래서 워홀은 또 다른 것을 시도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일명 복붙이란다. 복사해서 붙여 넣는 기법인데, 그런 반복 속에 조금씩 다름으로 가미하는 거야. 그냥 모든 것을 똑같이 복사했다면 작품이라고 하기 뭐할 텐데, 워홀은 그런 반복 속의 조금의 다름을 추가하였단다. 그렇게 생겨난 작품들이 워홀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작품이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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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를 다른 시각으로 관찰하면, ‘복제의 시대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미디어에서 텍스트, 이미지, 영상이 무한히 반복적으로 복제되고 있고, 이제는 그 영향이 오프라인까지 범람하며 무엇이 원본이고 복제본인지’,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죠. 이런 현대 사회의 특징을 (일찍이) 1960년대에 예리하게 간파해 예술에 절묘하게 녹인 예술가가 바로 앤디 워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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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화 감독으로도 영화를 만들었는데, 영화 또한 범상치 않은 영화들이었단다. 처음부터 끝까지 런닝 타임 5시간 21분 동안 잠자는 모습만 보여주는 <>이라는 영화를 비롯하여 <이발>, <먹기>, <키스>라는 작품들 남겼다고 하는구나. <> 이외에 작품들도 제목에 나오는 행위로 런닝 타임을 채웠다고 하는구나. 이 정도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소유자라면 인정해야겠구나. 그는 망상에 빠진 솔라니스라는 여성에게 총격을 당하여 사망진단까지 받은 적이 있어. 그런데 의사들은 그가 앤디 워홀이라는 것을 알고 5시간 동안 큰 수술 끝에 살려냈다고 하는구나. 이후 앤디 워홀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잡지사, TV 프로그램에서 많은 활동을 했대. 하지만 총격 사건의 후유증으로 58세에 삶을 마감했단다. 아빠가 오늘 독서 편지를 시작하면서 이 책에 소개된 미술가 중에 한 명을 뽑으라고 하면 달리를 뽑겠다고 했는데, 한 명 더 뽑으라고 하면 워홀을 뽑을 것 같구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미술의 영역을 더욱 넓힌 것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

아빠는 미술에 완벽한 문외한이란다. 그림을 그릴 줄 모르고, 감상할 줄도 모른단다. 그런 아빠가 당대 손꼽히는 미술가를 논한다는 것이 말도 안되지만, 너희들에게는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았단다.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피카소까지는 알겠다.

책의 끝 문장: ‘예술가로서의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추상미술 앞에서 난해함을 느끼며 갸우뚱할지라도,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이미 추상적 이미지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상품은 추상적으로 디자인되어 있고, 우리는 그 추상적 이미지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낍니다. 주변의 모든 건축물은 추상적으로 디자인된 공간을 무척 좋아하고, 심지어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휴식을 취하고 있죠. 21세기에 와서는 누구나 좋아하는 미적 취향이 된 ‘기하학적 추상’. 기하학적 추상에 숨겨져 있는 거부할 수 없는 미적 매력을 누구보다 앞서 또렷이 느낄 수 있는 심미안을 갖췄던 사람.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의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떳떳이 예술가. 그가 바로 몬드리안입니다. - P18

그렇다면, 몬드리안은 고작 십자 모양(+)으로 어떻게 미의 진리를 회화에 표현한 것일까? 그는 하얀 캔버스 평면 위에 ‘여러 개’의 수직선과 수평선을 직각 대립시켜 그렸을 때 ‘자연스럽게’ 사각형 평명(ㅁ)이 생성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수직선과 수평선을 많이 사용할수록 사각형 평면(ㅁ)의 수 역시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을 발견합니다. 더불어, 그 사각형 평면들이 놓인 ‘위치’와 ‘크기’ 모두 제각각임을 발견합니다. 몬드리안 화면 전체에 평형상태를 만들기 위해 수직선과 수평선을 이리저리 이동시키며, 사각형 평면(ㅁ)의 ‘위치 관계’와 ‘크기 관계’를 조율합니다. 그 목적은 캔버스 화면 전체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평화로운, 즉 평형상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해 필요하다면 사각형 평면(ㅁ)에 빨강, 파랑, 노랑, 흰색, 회색 등을 채워 ‘사각형 색 평면’을 만들어 ‘색채 관계’를 조율합니다. - P69

수업이 트렌드에 매우 뒤처져 있다고 여긴 달리가 대학 울타리 안에서 고분고분할 리 만무했습니다. 교수보다 전위적이며 다른 학생보다 훨씬 뛰어난 그림을 그린다고 자신한 나르시시스트 달리는 반바지에 망토를 걸치고 다니며 괴짜 짓을 일삼기 시작합니다. 신임 교수 취임식에서 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취임식장을 박차고 나사 1년 정학 처분을 받습니다. 그 이후에도 괴짜 기질을 참지 못한 달리는 대학 미술사 시험 도중 심사위원인 교수들에게 "심사위원들을 합쳐놓은 것보다 내가 더 똑똑하고, 주어진 문제를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심사받기를 거부"한다고 말하며 퇴학당합니다. 이렇게 착실히 학교 다녀 교수가 되리라 믿은 달리 아버지의 꿈은 산산조각이 됩니다. - P89

세상이 돕는 이런 긍정적 상황에서 예술가로서 체면을 차리고 작업도 더욱 열심히 할 만했지만, 우리의 폴록은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벽화> 작업으로 창작의 고통을 느낀 것이 치유하기 어려운 큰 상처가 되었는지 알코올 중독과 그로 인한 난폭함은 점점 커져만 갔죠. 만취해 술집의 기물을 부수며 난동을 부리는 건 기본. 사람들과 싸우는 것도 예삿일. 급기야 술집에서 폴록의 출입을 제한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렇게 뉴욕 술집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는 눈이 오면 취한 채 도로를 나뒹굴며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고, 눈 위에 오줌을 흩뿌리며 전 세계에 오줌을 싸겠다고 고성방가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보통 망나니라고 부르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위대한 예술가상과는 꽤 다른 모습입니다. - P227

"내가 젊은 청년이었을 때 예술은 고독한 작업이었습니다. 갤러리도, 수집가도, 평론가도, 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황금기였습니다. 우리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대신 비전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다."
비관적인 연설. 모든 것을 가졌기에 잃을 일만 남아서일까?" 66세의 로스코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비전만이 찬란히 넘쳐흐르던 젊은 날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심리 속 로스코의 내면에 남겨진 색채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오직 검정과 회색뿐이었습니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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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 북촌편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황정수 지음 / 푸른역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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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그림을 볼 줄은 모르지만, 화가나 그림 속에 깃든 이야기를 읽는 것은 좋아하는 편이란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 우연히 알게 된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북촌 편>이라는 책을 구입했었단다. 언제 산 것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두어 해는 된 것 같구나. 다른 책에 우선 순위가 밀리다가 이번에 우연히 눈에 맞아 읽게 되었단다. 원래 책 제목이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에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조그맣게 북촌 편이 붙어 있더구나. 그래서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 보니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서촌 편>도 있더구나.

이제 북촌이라고 하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관광지란다. 우리나라의 옛 건물들과 멀리 보이는 초고층 건물들이 잘 어우러진 배경으로 사진들을 많이 찍곤 한단다. 원래 조선시대 북촌에는 부촌들이 살았고, 그들은 광통교 근처의 많은 서화 가게에서 그림들을 샀다고 하는구나. 그러다가 일제 시대 넘어오면서 서화 가게들의 중심이 인사동으로 바뀌게 되었대. 오늘날 인사동도 서울의 주요 관광지 중에 하나인데, 그 탄생은 일제시대 행정 통폐합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관인방의 과 대사동의 를 따서 인사동이라고 했다는구나. 그렇게 과거 북촌에는 화가들의 후원자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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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

도화서 화원들은 궁궐 외에 주문을 받곤 했던 양반 고객들은 대부분 북촌(北村))’에 살았다. 당시 북촌은 벌열 양반과 왕의 인척들이 사는 조선조 최고의 부촌이었다. 화원들의 후원자가 될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북촌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화원 입장에서는 궁에서 멀지 않고, 부수 입을 올릴 수 있는 서화 가게들이 있는 광통교 근처이고, 자신들의 후원자가 사는 북촌에서도 멀지 않은 지역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다. 이 세 곳이 모두 연결되는 중심부가 지금의 인사동 지역이었다. 이러한 입지는 후에 인사동이 서화와 전전(典籍), 고미술 거래의 중심지가 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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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북촌에서 활동하던, 특히 서울을 경성으로 부르던 시기인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화가들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단다.

 

1.

아빠는 조선 말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전후에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은 화가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고, 조금은 놀랬단다. 그들의 작품들이 책에 실려 있었는데,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아빠이지만, 모두 범상치 않은 그림들이었단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문화강국의 저력은 여전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들이 시대를 잘 만났다면 더 많은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들이 살았던 시절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사의 최악의 시절이었단다. 일제 강점기, 광복 후 남북으로 나뉘고, 또 처참한 전쟁에 이르기까지살아남는 것에 신경을 써도 모자랄 판에, 미술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식을 수 없었단다.

하지만어떤 화가들은 미술에 재능이 있지만 나라의 독립이 중요하다면서, 미술을 관두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이 있었고, 어떤 화가들은 뛰어난 재능이 있었지만, 친일 활동으로 인해 그 재능을 인정 받지 못한 이들도 있었고, 또 어떤 화가들은 훌륭한 재능이 있었지만, 광복 후 자신이 믿는 사상에 따라 북으로 가서 남한에서는 잊혀진 이들도 있었단다. 이렇듯 그 시대를 사는 화가들은 시대와 싸워야 했단다. 이 책에 소개된 화가들은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었단다. 그리고 작은 꼭지로 소개해 주어 읽은 지 두어 주 되었더니 또 다 잊혀져 가는구나. 요즘은 뉴스를 좀 즐겨 찾다 보니 책 읽는 시간도 줄고, 독서 편지는 더 밀리게 되었구나.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막상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려니 잘 생각이 안 나는구나. 이 책에서 나온 화가들의 이름이라도 남겨두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책의 목차에 나온 부분을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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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동양화단의 좌장 안중식

다재다능하고 신비로운 서화가 지운영

근대 전각의 길을 개척한 전각 명인 오세창

근대 난초 그림을 정립한 서화가 김응원

근대 서화계의 어른으로 불린 김용진

서양화의 시작을 알린 고희동

조선조 마지막 내시 출신 서화가 이병직

독립운동에 앞장선 서화가 김진우

임금의 초상을 그린 인물화의 귀재 김은호

금강산을 잘 그린 산수화의 거장 배렴

기억상실증으로 불행했던 비운의 화가 백윤문

남과 북에서 공명을 누린 서화가 이석호

장애를 극복한 의지의 화가 김기창

한국 문인화의 정형을 정립한 장우성

한국적 인상파 화법을 완성한 화가 오지호

해방 후 좌익 미술계를 이끌었던 길진섭

월북한 감성적 모더니스트 최재덕

근대 나전칠기를 개척한 공예가 전성규

현대 건축의 산실 공간 사옥과 김수근

근대 미술의 요람 중앙고보와 휘문고보

사진관, 화랑까지 경영한 서화가 김규진

근대 서예의 체계를 정립한 김돈희

한국 최초로 시사만평을 그린 이도영

조선미술전람회 입선한 명월관 주인 안순환

금강산 그림 전통을 이은 산수화의 명인 변관식

늘 경계인이었던 월북 서양화가 임군홍

유럽에 이름 떨친 첫 한국화가 배운성

좌수서의 신경지를 개척한 서예가 유희강

한글 서예를 개척한 김충현과 김씨 4형제

죽음으로 예술을 완성한 비운의 조각가 권진규

국립중앙박물관 최초의 유물사진가 이건중

화가들도 흠모했던 슈퍼스타 최승희와 매란방

천도교 중앙대교당을 설계한 나카무라 요시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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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훌륭한 화가들이 시대를 잘 만났다면 어땠을까? 안타까운 마음에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오늘 독서편지는 짧게 마칠게. 아참, 오늘부터 정상적인 대한민국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어 정말 다행이구나.

 

PS,

책의 첫 문장: 조선 후기 예원을 이끌었던 추사 김정희(1786~1856) 문하에는 양반에서 중인, 평민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의 제자들이 드나들었다.

책의 끝 문장: 그런 면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안중식은 솜씨 좋은 서화가였을 뿐 아니라 국민 계몽의 필요성을 느낀 개화사상가이기도 했다. 1906년에는 대표적인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대한자강회(大韓自彊會)에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이듬해 <대한자강회월보> 제8호 첫 페이지에 을사늑약에 항의하다가 자결한 충신 민영환(閔泳煥)(1861~1905)을 기리는 <민중정공혈죽도>를 그려 싣기도 했다. 또한 이듬해에는 어린이용 교과서 <유년필독>과 진보적이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잡지 <청춘(靑春)>, <아이들보이>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1913년에 창간된 <아이들보이>에는 군복을 입고 백마를 탄 우리나라의 옛 무사를 그린 삽화가 표지화로 실리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근대적인 면모를 보이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보면 전통적 기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한계도 있다. - P29

고희동은 그동안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역사적 의미와 새로운 조형 방법을 후진에게 가르친 미술 교육자로서 높이 평가받았다. 화단을 형성하고 이끌어나간 미술 행정가의 성격이 강해 일부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초’였음에도 결국 서양화를 포기하고 동영화로 돌아온 화가로서의 정체성 문제는 더욱 그에 대한 평가를 박하게 만들었다. 이런 치우친 평가가 과연 정당한지 의문이다.
실제 전하는 그의 작품들은 당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화가들 못지않은 개성과 미덕을 가지고 있다. 원근이 살아 있는 생동감 넘치는 산수화나 뛰어난 색채감을 보이는 개성적인 화면은 다른 화가들에게서 보기 어려운 새로운 면이다. 이는 현대에 와서 더욱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화가로서의 고희동에 대해 더욱 정치한 연구가 필요하다.
- P88

첫눈에 반한 김기창은 박래현이 도쿄로 돌아가자 계속 편지를 보내 그녀의 환심을 산다. 김기창의 4년간의 끊임없는 열정에 박래현에 처음에는 ‘바위 덩어리처럼 시커먼 물체’처럼 보였던 그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어, 결국 두 사람은 4년 뒤 결혼한다. 결혼한 두 사람은 부부 이전에 예술적 동반자였다. 미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미술세계를 넓혀갔다. 같은 공간에서 살며 작업하다 보니 두 사람의 예술세계는 서로 다른 듯 닮아갔다. 마치 피카소와 브라크의 그림이 서로 닮아 예술의 동반자임을 드러냈듯이, 김기창과 박래현의 그림은 어느 시기까지 서로 비슷한 면을 많이 보였다. - P154

사람들이 현대사옥을 정경 유착의 결과물로 이야기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 건물 건축의 첫째 의문은 건축의 허가가 정당했는지의 문제이다. 우선 크기가 너무 크다. 지금도 너무 커 위압감을 느낄 정도인데 1983년에는 어떤 정도였을지 상상이 될 것이다. 더구나 이곳은 창덕궁이 바로 옆에 있어 건축법상 이렇게 높고 큰 규모의 건물이 들어서서는 안 된다. 실제 주변 다른 곳의 경우 고도제한을 받는다. 이런 높은 건물이 어떻게 허가를 받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 P235

2001년 월북한 서양화가 배운성의 작품 48점이 발견되자 한국미술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때 발견된 작품이 대부분 유화 작품이어서인지 주로 그의 유화 작품에 대해서만 언급되었다. 그러나 당시 유럽이나 한국에서 배운성이 미술세계가 주목을 받은 것은 유화보다는 판화 부문이었다. 배운성이 한국에 돌아왔을 1940년 당시에도 한국 화단과 언론에서의 관심은 그의 기구한 삶과 함께 뛰어난 판화 실력이었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서 대서특필한 기사도 ‘세계적인 판화가’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실제 배운성은 여러 살롱전과 공모 전람회에서 판화로 입상했으며, 개인전에서도 유화 못지않게 판화를 전시하곤 했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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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도둑 - 예술, 범죄, 사랑 그리고 욕망에 관한 위험하고 매혹적인 이야기
마이클 핀클 지음, 염지선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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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드디어 탄핵이 가결되었구나. 아직 끝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놈의 업무가 정지되었으니 정말 다행이구나. 헌법재판소에서는 빠르고도 올바른 판단을 하여 얼른 안정적인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이제 아빠의 책읽기와 독서편지도 정상 궤도를 찾아야겠구나.

오늘 이야기할 책은 마이클 핀클의 <예술 도둑>이라는 책으로 예술품 도둑에 관한 이야기란다. 예술품 도난 사건은 오늘 어제의 이야기는 아니란다.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도난 사건 이후 더 유명해졌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그 외에도 유명한 예술품들 중에는 도난당한 이력을 가진 작품들이 꽤 있어. 이 책에서도 이 책의 주인공이 훔친 것은 아니지만, 예술품 도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몇몇 예술품 도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너희들도 관심 있어 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뭉크의 <절규> 도난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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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3)

<모나리자>를 훔친 도둑도 처음에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8개월 동안 수리공으로 일했다. 1911 8월 어느 월요일 오전 7, 빈센초 페루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작업복을 입고 다른 직원들과 함께 박물관에 들어갔다. 대청소 때문에 박물관은 폐장했고 보안 요원도 대부분 쉬는 날이었다. 페루자는 특별히 중요한 몇몇 작품에 추가로 안전 장치를 설치하는 일을 맡았는데, 그 덕분에 벽에 걸린 <모나리자>를 떼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모나리자>를 들고 나선형으로 된 직원용 계단 아래에 있는 방으로 재빨리 숨어들어갔다. 그러고는 그림을 액자에서 분리한 뒤 백양목 화판(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나무 화판에 그림을 그렸다)을 천으로 감싸서 밖으로 들도 나왔다. 페루자는 <모나리자> 말고 다른 작품은 훔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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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1994년 노르웨이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첫날 새벽, 두 명의 남자가 오슬로 국립 미술관 외벽에 사다리를 걸친 후 2층 창문을 깼다. 경보음이 울렸지만 보안요원은 오작동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꺼버렸다. 범인은 전선을 자르고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를 훔쳐 도주했다. 사다리와 가위는 그대로 두고 갔는데 노르웨이어로 보안이 엉망이라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쪽지도 함께 남겼다. 노르웨이에는 예술품 범죄 전담 수사팀이 없었지만 노르웨이 정부에서 영국 경찰 본부 소속 찰리 힐을 영입해 사건을 맡겼다.

힐은 말이 빠르고 입에 욕을 달고 살며 윤리 의식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미술품 딜러로 위장했다. 그는 위장 첩보 작전이 연극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다른 점은 한마디만 실수해도 머리에 총을 맞을 수 있다는 것 정도다. 힐은 작전 중에 도청 장치나 무기를 소지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총 맞기 딱 좋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작전 중 쓰는 이름으로 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신용 카드를 가지고 다니는 편이 낫다. 3개월에 걸쳐 접촉한 끝에 노르웨이 도둑들은 의심을 거두었고 힐은 작품을 현금으로 구매하겠다는 미끼를 던졌다. 피오르가 내려다보이는 한 외딴 오두막에서 <절규>를 회수했고 네 명의 공범은 노르웨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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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할 <예술 도둑>은 그런 예술품 도둑 중에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데 무려 300여 개가 넘는 작품을 훔쳤다고 하더구나. 먼 옛날 이야기도 아니란다. 1995년에 처음 훔쳤다고 하니 최근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지. 박물관의 경비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보안이 되는 줄 알았는데 300개가 넘는 예술품을 훔치는 동안 안 잡힐 수가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하구나. 아님 그 도둑이 신기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그 도둑이 다른 예술품 도둑과 달리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자신이 아름다운 작품을 갖고 싶어서 훔쳤다고 하는데 그런 이유로 범행이 드러나는 데까지 오래 걸렸을 수도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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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6)

브라이트비저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술품을 훔쳤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지금까지 미학을 논한 예술품 도둑은 없었다. 여러 언론사와 장시간 인터뷰를 할 때도 그는 이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죄를 감추려는 마음 따위 없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당시의 감정을 현재 시제를 사용해 즉각적으로, 그리고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자세히 묘사한다. 정확성을 위해 필요 이상의 말을 할 때도 있다. <아담과 이브> 사건의 구체적인 정황을 설명할 때는 야구 모자와 가짜 안경을 쓰는 등 변장을 하고 현장으로 돌아가 나사를 뺀 방식과 작품을 감상하는 척할 때 취했던 자세 등을 재연하기도 했다. 다른 절도 사건도 비슷하게 재연했다. 그가 한 말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경철 보고서가 수백 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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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설적인 도둑의 이름은 스테판 브라이트비저라는 사람이란다. , 그럼 그의 이야기를 해볼게.

 

1.

브라이트비저는 어렸을 때 몸이 유약하고 친구도 별로 없었다고 하더구나. 그러다가 어른이 되어서야 앤 캐서린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대. 브라이트비저가 처음 훔친 것은 박물관에 전시해 놓은 수발총이라는 것이었대. 처음 훔쳤을 때는 누군가 잡으러 올까 봐 엄청 떨렸다고 했어. 두 번째 절도부터 앤 캐서린과 함께 했다고 하는데, 그들은 계획까지 짜고 박물관에서 쇠뇌를 훔쳤어. 이것은 브라이트비저가 어렸을 때부터 갖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어. 이 때가 1995년이었단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절도를 하고 나서 자신을 체포하러 올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 다음부터는 좀더 과감해졌단다.

숨겨 나오기 쉽지 않은 그림도 훔쳤어. 그렇다면 그들의 모든 시도가 성공한 것은 아니야. 절반은 들어갔다가 시도도 하지 않고 나오곤 했어. 브라이트비저는 직업이 없는 백수로 엄마의 집의 다락방에서 지냈는데, 그들이 훔친 작품들을 다락방에 하나씩 모아두기 시작했단다. 브라이트비저는 도서관에서 예술품에 대해 공부를 하였고, 관련된 책도 모아서 자신이 있는 다락방에 미술에 관련된 책이 500권도 넘어서 미술도서관을 방불케 했단다. 브라이트비저와 앤 캐서린의 도둑은 점점 횟수도 많아지면서 자신들을 스스로 합리화하기를, 예술의 역사는 절도의 역사라고도 이야기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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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03)

이처럼 예술의 역사는 절도의 역사와 맥을 함께 한다고 브라이트비저는 이야기한다. 인류가 기록을 시작한 초창기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도굴꾼을 조심하라는 문구가 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 역시 예루살렘에서 언약궤를 빼왔고 페르시아는 바빌로니아를, 그리스는 페르시아를, 또 로마는 그리스를 약탈했다. 반달족은 로마의 부를 탐했다. 16세기 초 에스파냐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에르난 코르테스는 각각 잉카와 아스테카를 파괴하고 강탈하지 않았는가.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은 1648년 프라하에서 그림 1,000점을 빼앗아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군들에게 하사했다.

나폴레옹은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하기 위해 훔쳤고 스탈린은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채우기 위해 훔쳤다. 히틀러는 야심만만한 수채화가였으나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에서 두 번이나 입학을 거절당했고 나중에는 고향인 오스트리아 린츠에 직접 박물관을 지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을 모두 모아놓고자 했다. 1759년 계몽 시대에 개관한 세계 최초의 국립 미술관인 영국 박물관은 어떠한가. 영국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품목인 베닌 브론즈와 로제타석은 각각 나이지리아와 이집트에서 약탈했고 엘긴 마블스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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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트비저와 앤 캐서린은 거의 사회 생활을 하지 않고 다락방에서 그들이 훔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으로 대신했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었다고나 할까. 작품을 들고 오다가 어머니가 보게 되면 모조품이라고 이야기하거나 벼룩시장에서 샀다고 둘러댔단다. 그의 집은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 있었는데 그가 갖고 싶은 예술품은 유럽 여기저기 널리 퍼져 있었단다. 독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등 그들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예술품을 훔쳐왔단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지만 그들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어. 스위스의 예술 범죄 전문 경찰인 폰데이뮐의 예리한 눈에 그들이 들어온 적은 있었어. 폰데이뮐은 스위스 박물관에서 예술품이 사라진 날 보안카메라에 젊은 남녀가 한 쌍을 보았어. 그가 조사를 해보니 그 커플을 목격한 사람들이 꽤 되었어. 프랑스에서도 14개의 도난 사건을 의심하고 조사를 시작했어. 브라이트비저가 쉽게 잡히지 않은 이유가 일반 예술품 절도범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어. 일반 예술품 절도범은 불법 경로로 훔친 예술품을 판매하거나 박물관에 연락하여 돈을 요구하거나 지하시장에서 화폐 대용으로 예술품을 사용한다고 했지만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브라이트비저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단다.

브라이트비저가 좋아하는 미술품은 16세기에서 17세기 북유럽 작품이었단다. 그는 현대 미술들은 분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좋아하지 않았단다. 아빠도 현대 미술은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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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많은 도둑이 눈독 들이는 피카소의 작품에는 관심이 없다. 현대 미술은 예술을 느끼기보다는 분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에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티치아노와 보티첼리 같은 르네상스 시대 슈퍼스타들의 작품 역시 훌륭하고 강렬하긴 하지만 브라이트비저에게는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심지어 다빈치의 작품조차 그저 그렇다. 브라이트비저는 예술가들이 돈 많으 후원자에게 종속되어 그들이 원하는 작품 스타일과 구도, 색감을 구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이 위대한 화가들이 자신의 감각을 완전히 일깨우지 않고 재능에만 의지하는 바람에 작품을 망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재능을 좀 덜하더라도 감정적으로 깊이가 있고 진정성을 보여주는 예술가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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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트비저와 앤 캐서린은 2년 넘게 한달에 세번 주말마다 절도를 해서 1997년에 이미 200여 점의 작품을 훔쳤어. 하지만 그들이 갖고 싶은 예술품은 끝이 없었단다. 그들은 여전히 배가 고팠지.

 

2.

스위스 루체른 박물관에서 훔치다가 처음으로 경비원에서 붙들려 경찰서까지 갔어. 브라이트비저는 처음이라고 하면서 사과를 하며 용서를 빌었단다. 집행유예와 벌금, 그리고 스위스 입국 금지령으로 끝나고 풀려났단다. 이 때 폰데이뮐에게 연락을 했다면 좀 달라졌을 텐데해당 경찰서에서 초범으로 결론짓고 마무리를 했단다. 스위스에서 돌아와서 브라이트비저와 앤 캐서린은 도둑 예술품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기도 했어. 그리고 앤 캐서린은 이제 도둑질을 그만두자고 했단다. 하지만 브라이트비저는 경찰에 잡히고도 다시 풀려난 사실에 대해 더 용기가 생겼어. 앤 캐서린도 갈등을 했단다. 그래서 덜 훔치고 더 조심하기로 타협을 봤단다. 그러나 브라이트비저는 점점 훔치는 빈도가 늘어났고 앤 캐서린이 만류했지만 이젠 앤 캐서린의 말도 듣지 않았어.

얼마 전에 앤 캐서린이 그들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몰래 중절수술을 했는데 그 사실을 브라이트비저가 알고 홧김에 앤 캐서린의 뺨을 때렸어. 앤 캐서린도 화가 나서 브라이트비저의 다락방에서 나와 자기 아파트로 갔단다. 그 일이 있고 네 달 동안 브라이트비저는 절도를 하지 않았고 앤 캐서린에게 잘못을 빌고 용서해 달라고 했어. 브라이트비저에게 앤 캐서린은 훔친 예술품보다 더 아름다운 예술품이라고 생각했거든. 앤 캐서린은 브라이트비저를 용서하며 다시 같이 지냈지만 앤은 이제 절도에 끼지 않았어.

이젠 브라이트비저 혼자서 절도를 하게 되었는데 도벽증에 걸린 사람 같았어. 앤 캐서린은 브라이트비저에게 도둑질을 하더라도 절대로 스위스에서는 하지 말라고 했지만 브라이트비저의 도박증세는 심해져서 그런 말도 들리지 않았어. 브라이트비저는 스위스의 한 박물관에서 장갑도 끼지 않고 지문을 잔뜩 남긴 채 작품을 훔쳐 왔어. 앤 캐서린의 조언에 따라 그가 남긴 지문을 다시 지우러 갔다가 브라이트비저는 그만 경찰에 체포되었단다. 담당 경찰 마이어는 브라이트비저를 심문하는데 너무 침착한 것을 보고 이번 건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수사를 확대했단다.

그즈음 알자스 지방의 라인-론 운하에서 다량의 예술 작품들이 발견되어 경찰에 신고가 되었어. 경찰이 출동하여 작품들을 건져냈는데 675억원의 가치가 있다고 했단다. 마이어도 이 소식을 듣고 여기서 나온 사진들을 브라이트비저에게 보여주며 유도심문을 하였고, 브라이트비저는 결국 그 작품들을 자신이 훔친 것이라고 자백을 했단다. 그리고 훔친 작품들은 자신이 머물고 있던 다락방에 있다고 했어.

마이어는 프랑스 경찰에 연락하여 협조를 요청하고, 브라이트비저가 지낸 다락방을 찾아갔어. 그런데 그 많던 예술 작품들이 싹 사라지고 텅 비어 있었단다. 누군가 라인-론 운하에 갖다 버린 거야. 누가 그랬을까? 앤 캐서린? 브라이트비저의 어머니? 하지만 라인-론 운하에 그림들은 없었는데 그 많은 그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일이 커지면서 마이어는 앞서 이야기했던 예술품 절도 전담 형사인 폰데이뮐과 만났단다. 브라이트비저는 대부분 죄를 자백하면서도 앤 캐서린은 죄가 없다고 했고, 어머니는 아예 자신의 절도 사실을 모른다고 했어. 그림의 행방을 위해 브라이트비저의 어머니 스텐겔을 소환했단다. 앤 캐서린도 소환했는데, 자신은 브라이트비저의 절도에 관여하지 않았고 다락방의 존재도 모른다고 했어. 브라이트비저의 절도는 8년간 200여회 저지르면서 300여 점을 훔친 것으로 확인되었어.

 

3.

브라이트비저가 체포되던 날, 앤 캐서린은 혼자 돌아와서 스텐겔에게 브라이트비저의 체포 소식을 이야기하고 자신은 자기의 아파트로 돌아갔단다. 스텐겔은 곧바로 다락방으로 올라갔고, 깜짝 놀랐단다. 그 동안 아들의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하여 다락방에는 오지 않았거든. 스텐겔은 아들이 나쁜 짓을 가끔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 스텐겔은 아들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단다. 아들에게 가장 큰 벌은 이것을 다 없애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작품들을 없앤 것이 아니라 아들을 벌 주기 위해서 없애 버렸던 것이란다. 그래서 조각상 등은 운하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 갖다 버렸고 그림들은 숲 속 공터로 가지고 가서 태워버렸다고만 이야기를 했어. 어느 숲에서 태웠는지는 끝내 이야기하지 않았어.

브라이트비저가 훔친 그림들의 가격은 모두 합쳐 약 1 4000억에서 2 7000억이라고 하는데 금액이 너무 커서 감도 잘 오지 않는구나. 어머니 스텐겔도 체포되었단다. 브라이트비저는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어. 어머니와 이혼하여 따로 살던 아버지가 면회를 와서 미안하다면서 브라이트비저를 도와주겠다고 했단다. 브라이트비저는 조사를 받을 때 초지일관 자신은 예술품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 것이라고 했어. 절도범이 아니라 수집가라고 주장했어. 브라이트비저는 스위스에서 재판을 받고 결국 4년형에 벌금형 선고를 받았단다.

프랑스에서도 소란이 일어났어. 2005 1 6일 프랑스에서도 다시 재판을 받았단다. 브라이트비저의 어머니는 4개월 형에 집행유예 8개월을 받았어. 앤 캐서린은 모든 협의를 부인했어. 브라이트비저와 함께 박물관에 가긴 했는데 인질이 된 기분이었고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했어. 그로 인해 앤 캐서린은 징역 하루를 선고 받았단다. 브라이트비저는 프랑스에서 받은 재판에서는 2년형을 선고 받았어. 1년 뒤 브라이트비저는 모범수로 석방되었어. 하지만 앞으로 3년간 박물관과 전시회 입장 금지라는 법령을 받았어.

브라이트비저는 아버지와 연락하면서 지냈고 어머니와 화해를 했어. 어머니에게 그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물어보았지만 어머니는 답하지 않았단다. 브라이트비저는 출옥 후에 예술품 보안 컨설턴트 일도 계획했단다. 브라이트비저보다 이 일에 더 적합한 사람은 없을 것 같구나. 스테파니라는 새로운 애인도 만났어.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대필작가를 통해 책도 쓰기 시작했단다. 이제 새 사람이 되어 과거의 죄를 반성하고 새 삶을 살아가는 날만 있을 줄 알았어. 아마 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기대하고 있었을 거야. 하지만 브라이트비저는 면세점에서 다시 절도를 하다가 다시 체포되었단다.

이 일에 크게 실망한 아버지는 브라이트비저에게 다시 연락하지 않았어. 책도 실패로 끝나고 더 이상 취업도 되지 않았어. 한 번은 용서를 해주지만 두 번까지 용서하기는 쉽지 않았지. 어머니와 스테파니만 용서를 해주었지만, 브라이트비저는 또 물건을 훔쳤고 이번에는 스테파니가 신고를 하여 다시 감옥에 가게 되었단다. 그의 절도 행각은 감옥을 들락날락하게 했단다. 이 책을 쓴 지은이 마이클 핀클이 브라이트비저와 인터뷰를 하는데 그 기간에도 브라이트비저는 계속 절도를 해서 경찰에 잡히고 재판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는데, 그는 가장 나쁜 버릇을 들인 것 같구나.

예술품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소유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서 삐뚤어진 방법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병이 된 것 같았어. 그런 면에서 브라이트비저는 감옥이 아니라 병원에 가야 할 것 같구나. 그런데 브라이트비저의 어머니가 진짜 그 그림들은 다 태워 버린 것인가?

 

PS,

책의 첫 문장: 사냥 준비가 끝났다.

책의 끝 문장: 브라이트비저는 4달러 짜리 안내 책자 한 권을 슬쩍 집어 들고는 유유히 문을 빠져나온다.



브라이트비저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 작품은 성적으로 자극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침대가 가까이에 있으면 좋다. 기둥이 네 개 달린 침대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파트너도 옆에 있다면 타이밍이 절묘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빼면 그는 방에 있는 작품 하나하나를 금지옥엽 보살핀다. 온도와 습도가 괜찮은지, 빛은 적절한지, 먼지가 많지는 않은지 세세히 살핀다. 그는 자신의 방이 박물관보다 작품에 더 좋은 환경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를 야만적인 다른 도둑들과 하나로 묶는 것은 잔인하고도 불공평한 처사다. 브라이트비저는 예술 도둑이 아닌 조금 색다른 방식의 예술 수집가로 여겨지기를 원한다. 그도 아니라면 예술 해방가라 불려도 좋다. - P37

브라이트비저가 내부 액자를 한번 잡아당겨 보니 벨크로 몇 개로 고정한 게 전부다. 벨크로를 뜯어내는 소리가 커다란 전시관에 울려 퍼졌지만 그림은 금세 느슨해졌다. 브라이트비저는 망설임 없이 액자채로 바지 안에 밀어 넣고 셔츠로 덮어 가린다. 바지 앞쪽이 툭 튀어나와 어색하지만 경비원이 이쪽을 쳐다본다 해도 브라이트비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쪽으로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이제 재빠르게 몇 걸음만 걸어 타일 바닥을 지나면 마법처럼 바로 문이 나온다. - P139

더 심각한 문제는 이제 브라이트비저가 작품을 제대로 돌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예술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큰 사명이라고 늘 주장해왔지만, 그뤼예르성의 섬세한 융단을 창문으로 던지고 침대 밑에 처박아두는 것은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르네상스 시대 그림들은 어떠한가. 거의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벽에서 잡아채 급하게 액자에서 빼내고 차 트렁크에 실어 덜컹거리는 길을 이동한다. 보안 카메라를 등지고 훔쳤던 약제상 유화는 나무판 세 개가 결합되어 있는데, 다락에서 이미 화판 사이가 벌어지고 뒤틀리기 시작했다. - P197

어미는 다락으로 올라간다.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아들이 도둑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락을 직접 볼 마음의 준비가 된 건 아니다. 제정신인 사람이 모았다고 볼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예술 작품으로 가득한 공간. 다행히도 아들과는 달리 다락에 들어서자마자 색감에 취하거나 아름다움에 빠져들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나이만 먹었지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어린애 같은 아들 덕에 인생을 망친 듯하다. 그녀는 방을 보며 ‘전부 훔친 물건이겠구나’ 생각한다. 장물을 은닉해주는 것 역시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300개가 넘으니 시소도 300건 이상일 수 있다. 모욕을 당하고 감옥에 갇혀 결국 파멸할 것이다. 스텐겔은 다락에 있던 예술품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을 향한 화살"처럼 느껴졌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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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4-12-19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정말 흥미진진한 얘기네요!
근데, 처벌도 참 관대했던 듯 느껴집니다.
훔친 물건을 수집가라고 항변했다니... 참나. -정신이상 문제로 판결이 난 것일까요.
하튼 재밌습니다.

bookholic 2024-12-21 11:30   좋아요 1 | URL
예술품 보안이 이렇게 허술한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가 훔쳐서 사라진 예술품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 -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답
조원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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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방구석 미술관> 시리즈의 지은이 조원재 님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작년에 들었는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이제서야 읽었단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라는 책이야.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책을 쓰곤 하는데 이 책도 그런 측면을 이야기하고 있단다. 아빠가 10년 다이어리를 쓰고 있는데, 자기 전에 그날 있었던 일을 메모 형식으로 간단히 적는단다. 그런데 어느 때는 계속 비슷한 내용의 반복일 뿐이야. 그래서 너무 졸린 날은 어제와 비슷이라고 적은 날도 있었단다. 지은이는 이런 반복적인 삶에서 예술적 행위를 찾는구나. 반복적인 삶에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늘 같은 일 속에서 다른 점을 찾고, 그것을 즐겁게 느끼는 것 또한 예술적 행위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화가 이우환 님의 어머니 일화를 이야기해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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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

화가 이우환은 어릴 적 어머니와의 대화를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한다. 소년 시절 그는 쌀을 씻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매일 똑 같은 쌀 씻기를 하면서 어떻게 즐거우실 수 있냐고.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똑 같은 쌀 씻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신은 그 일을 할 때마다 매일 다르게 느낀다고. 어떤 때는 시원한 물이 생기를 주고, 지저귀는 새소리에 흥이 오르기도 한다고. 쌀과 물과 손이 하나가 되어 잘 움직일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어 매일 쌀 씻는 것이 항상 새롭다고. 어린 후환의 눈에 매일같이 반복되는 어머니의 쌀 씻기는 지루하기 짝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쌀 씻기는 매일, 매 순간 전혀 새롭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행위였다. 이를 우리는 예술적 행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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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듣고 매일 지나오는 퇴근길이 다시 보였단다. 퇴근길에 가로수들이 색상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요즘은 더욱 실감이 되더구나. 아빠는 비슷한 시간이 늘 같은 거리를 지나지만, 가로수는 계속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공기의 느낌도 점점 달라지니 어제와 오늘이 같다고 볼 수 없겠구나. 지은이에 따르면 아빠의 퇴근길은 예술적 행위가 되는구나. 그러니까 지은이가 이야기하려는 핵심 우리 삶은 예술 그 자체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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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삶과 예술, 예술과 삶. 이 둘은 너무나도 닮아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예술은 우주 어딘가에 지구로 떨어진 출처가 불분명한 운석 같은 것이 아니다. 예술은 분명히 인간의 삶 속에서 나온 것이다. 엄마의 배 속에서 나온 아기가 엄마를 빼닮듯, 인간의 삶 속에서 나온 예술이 인간과 삶을 쏙 빼닮지 않을 수는 없다. 아이가 엄마의 정수를 담고 있듯, 예술은 인간과 삶의 정수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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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렘브란트는 수많은 자화상을 그린 사람으로도 유명하단다. 20대 젊었을 때부터 삶을 마감할 때까지 자주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어.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라 이야기를 한단다. 젊은이 한풀 꺾인 렘브란트의 50대 자화상에 대해 지은이가 설명을 해주었는데, 이제 막 50대에 들어선 아빠도 그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담긴 감정이 공감이 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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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50대에 그의 내면을 물감으로 물질화한 이 자화상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한껏 찌푸린 미간과 꼿꼿이 당겨 세운 하관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삶의 난관에 당당히 맞서겠다는 의지가 엿보임과 동시에, 검고 큰 눈동자에서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감지되어 때문이다. 중년이 되어 맞닥뜨린 어떤 난관의 거친 파도 앞에서 렘브란트는 전의를 불태우려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그는 그런 내면의 심정을 숨김없이 마주했고, 속속들이 자화상에 밝히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50여 년을 산 한 화가의 자아 성찰의 힘과 진정성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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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는 자화상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지은이는 아빠처럼 그림에 소질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과 이야기하기 위해 일기를 써보라고 제안하는구나.

앞서 삶과 예술은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둘 모두 처음에는 허접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듭하지만, 꾸준하게 나아가면 결국 그 허접함은 비범함이 된다고 말이야. 너희들도 젊은 시절 실수와 시행착오를 하게 되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말고 비범함으로 가는 단계라고 생각하면 좋겠구나. 또 예술은 누군가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들의 예를 들어주었어. 돌을 예술로 만든 이우환, 물방울을 예술로 만든 김창열, 소쿠리를 예술로 만든 최정화 등이 그들이란다. 그들의 작품이 책에 실려 있는데, 감탄할 만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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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예술가가 예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언가에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하고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힘으로부터 예술이라는 삶의 꽃은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우리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에겐 무언가에 의미를 발견하고 부여하는 능력이 있다. 이 능력으로 인해 우리는 대량생산된 물감으로 오밀조밀 칠해진 화면을 보며 예상치 못했던 무언가를 느낄 수 있고, 버려진 나뭇조각을 이리저리 그러모아 만든 독특한 구조물을 보며 색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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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 낯설게 보기란 것이 있단다. 예술가는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모습을 낯설게 보는데, 그것은 일상 속에서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낸다는 것을 말해. 그렇게 예술이 되는 것이지. 평범했던 우리 삶을 낯설게 보면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예술이야. 우리 삶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예술이 담겨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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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라는 평범한 이가 바다를 매 순간 낯설게 보고자 노력하며 그것의 숨겨진 미를 매 순간 새롭게 발견하고 감동하는 일상. 그 낯설게 보는 눈으로 미술관에 가 작품의 숨겨진 미를 새롭게 발견하며 미적, 지적 쾌감을 느끼는 일상. 그 눈으로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미를 새록새록 발견하는 기쁨. 그 눈으로 내 삶에 주어진 것들을 새롭게 보고 항상 감사히 여기는 풍요. 그 눈으로 세상에 놓인 모든 것을 새롭게 보며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놀라운 마법.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마법 같은 일상과 삶이 먼 곳에 있는 것 같지 않다. 낯설게 보고자 하면, 모든 것에서 그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샘솟아 나는 마법이, 예술이 펼쳐지니 말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돌을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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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삶과 예술의 또다른 공통점, 둘 다 정답이 없다고 하는구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정답은 없지, 자시만의 삶을 살아갈 뿐. 예술도 자기만의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창조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자기만의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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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 그런 예술을 창안해 낸 우리 인간의 삶 역시 정답이 없다. 예술을 즐기기 위해 나에게 예술이 무엇인지를 먼저 스스로 정의해야 하듯, 삶을 즐기기 위해 나에게 삶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당연히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가르쳐둔다 한들 자신이 몸소 체험을 통해 깨닫지 않는 이상 삶에 깊이 스며들지 않는다.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만의 삶의 정의를 체험하고 감각하며, 그 속에서 숱한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영감을 얻고 깨닫는 과정을 반복해 가며 삶에 대한 자기 나름의 정의를 찾아나가야 한다. 예술가를 자기 나름의 예술의 정의를 정립해 자기만의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창조하듯, 삶을 사는 우리도 자기 나름의 삶의 정의를 정립해 자기만의 독창적인 을 창조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삶은 예술과 하나가 된다. 인간은 삶과 다르지 않은 예술을 삶 속에서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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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식상한 말이지만,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보라고 했어.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 경제적 수입과 연계되면 좋겠지만, 그것은 쉽지 않더구나.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 부부가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독특하게도 포장이라는 것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이야. 별 거 없이 어떤 사물을 포장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다른 이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기도 했대.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그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했대. 결국 그들의 포장은 하나의 예술 행위이자 작품이 되었어. 프랑스 파리의 퐁네프 다리도 포장을 했다는구나. 행정적인 절차 포함하여 퐁네프 다리를 포장하는데 10년을 준비했다는데, 전시는 14일만 하고 철거를 했다는구나. 긴 준비 기간에 비해 전시기간이 짧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미학은 10년 동안의 준비 과정에 있다고 했대. 멋지시네.

지은이 조원재 님도 젊은 시절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대학 졸업 후 무작정 미술 여행을 떠났다고 하는구나. 일본과 유럽에서 긴 여행을 마치고 바뀐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대. 그 여행을 통해서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하네. 그래서 일탈이 필요하다고 하는구나. 자신의 의지로 한 일탈은 참 를 찾는 과정이라고 하는구나. 비록 여행을 통해서 지은이처럼 참 를 찾을 수 없을지라도, 세상을 보는 눈도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여행과 일탈은 좋을 것 같구나.

어떤 화가 한 명이 있었어. 그 화가도 일탈 후 화가가 되었대. 16살 때 화랑에서 일하던 그는 7년 후 해고 당하게 되었는데 자발적 일탈로 벨기에 광산에서 전도사를 하면서 광산 일도 도와주었대. 광산에서 5년간 전도사 일을 했는데, 다른 전도사들의 멸시를 받게 되어 쫓겨나게 되었다는구나. 그리고 다시 자신의 쓸모를 찾고 있던 그는 자신이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27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구나. 그 화가는 바로 빈센트 반 고흐였대. 아빠가 이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를 축약해서 하다 보니 재미가 반감되었구나. 지은이는 그 사람의 정체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하게 하면서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가서 마지막에 짜잔, 정체를 밝혔단다.

지은이 조원재 님은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독자를 끌어당기는 글솜씨를 가지고 있는 것 같구나. 이 빈센트 반 고흐의 예를 이야기해 준 이유는 자발적 일탈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라는 것이었어. 한 번 일탈로 안되면, 두 번, 세 번 일탈을 해보라고생각해 보니 아빠는 그런 일탈을 한 번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구나.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할 수 밖에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

(304)

한 차례 자발적 일탈을 감행했음에도 자신에 대한 자각이 여전히 흐릿하다면, 두 번째 자발적 일탈을 감행하면 된다. 그 후에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여전히 불투명하다면, 세 번째 자발적 일탈을 감행하면 된다. 화랑에서 일을 하다, 불쑥 기숙학교에서 선생을 하다, 불쑥 광산으로 간 빈센트처럼. 한 번, 두 번, 세 번그 모든 불확실한 일탈의 감행이 모여 건강한 방황으로 정의되리라 믿는다. 그 일탈의 체험과 기억이 쌓이면 쌓일수록 자신의 정체가 점점 밝고 분명해지리라. 수많은 시도 끝에 점점 초점이 또렷해지는 피사체처럼.

================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예술이란 무엇인지 물어본단다. 지은이는 예술을 삶에서 행한 어떤 행위가 행위자에게 정신적 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작업라고 이야기하는데, 문득 이 사람 나이가 궁금하더구나. 그래서 찾아보니 이제 39살이네. 아빠보다 한참 어린데, 저런 걸 깨닫다니여행과 일탈을 하게 되면 참 를 발견하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깊은 생각도 얻을 수 있는가 보구나. 지은이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진정으로 행하는 삶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이고 싶더구나.

================

(321)

예술인가 무엇인가?” 그래서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삶에서 행한 어떤 행위가 행위자에게 정신적 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작업. 그것이 예술이다.” 겉으로 예술을 하고 있는 듯 보이는 이가 실제로 정신적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정말 그 행위를 왜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정신적 만족을 충성하게 누리는 예술이 되기 위한 해답은 결코 우리 바깥에 있지 않다. 우리 안에 있다. 자기 내면에서 울리는 자신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흔들림 없이 행하는 삶을 창조해 가야 한다. 그 어떤 외부의 압력과 강요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자기 내면에서부터 끝없이 선명하게 울려오는 나만의 그림 그리기를 평생 흔들림 없이 행한 세잔처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진정으로 행하는 삶. 이런 삶은 필연적으로 정신적 만족을 동반한다. 그렇게 정신적 만족을 누리는 삶을 사는 이를 두고 우리는 예술가라 부른다.

================

….

아빠는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눈을 장착하지는 못했단다. 그래서 이 책에 담겨 있는 많은 작품을 보면서 큰 감흥은 느끼지 못했지만, 많은 새로운 작품들을 보게 되어서 좋았단다. 아빠가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들에도 좋은 내용도 많고, 많은 예술가들도 소개해 주어서 좋았어. 아빠의 변변치 못한 기억력으로 오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아빠가 주변 사람들에게 책 추천을 잘 안 하는 편인데, 누군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이 책은 추천해 주고 싶구나. 물론 너희들도 좀더 커서 읽어보면 좋겠구나.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어릴 적 우리는 모두 예술가였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그것을 단 한 번뿐인 당신의 삶에서 행할 때, 당신에게 예술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다른 대상이 아닌, (당신 자신)이 된다.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이 있다. 평생에 이뤄지는 단 한 번의 만남, 단 한 번뿐인 일. 이 말은 차 마시는 행위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다도(茶道)에서 쓰인다. 어제도 차를 마셨고 엊그제 역시 차를 마셨지만, 차를 마시는 지금 이 순간은 평생에 단 한 번 일어나는 일임을 가슴에 새겨 차 한 모금을 아주 새롭게 음미한다는 마음의 자세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한 인간이 지닌 지성의 문제로, 누군가가 가르쳐주고 알려준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이 내면에 지닌 지성으로 해내는 일이다. 우리의 일상이, 삶이 아무리 매일 반복되더라도 매 순간은 진실로 새로운 순간이다. 우리가 지성을 발휘해 그 진실을 매일 매 순간 의식하려 노력한다면, 무미건조하게 여기던 것들 것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전혀 다른 의미로, 전혀 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의 평범한 삶 속에 듣도 보도 못한 색과 형과 향을 지닌 꽃이 피어날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의 삶에 예술이 피어날지 모른다. - P31

정말 <모나리자>를 봤는지, <모나리자>를 누가 언제 그렸는지, 그림을 그린 화가는 어떻게 살았는지, 화가가 살던 시대상은 어땠는지, 그를 후원해준 사람은 누구이고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 ‘<모나리자>라는 작품에서 파생되는 나오는’ 지식을 알고 있는지 묻는 것이 아니다. <모나리자>라는 그림 자체, 그 이미지 자체, 그 물리적 대상 자체를 진심으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보기 위해 노력했는지 묻는 것이다. 예술작품 하나를 몸으로 만나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진심을 다해 보고 듣고 감각하며 생각하고 느끼는 체험을 했는가 묻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 체험의 과정 속에서 당신만의 독창적인 ‘의미’가 내면에서 샘솟듯, 꽃피듯 생성되었다면, 그 작품은 평생 당신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당신 스스로 창조한‘의미’와함께 생생히 살아 숨쉬게 될것이다. 그리고 그 작품은 당신의 기억 속에 생생히, 또렷이 남아 있는 ‘본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당신의 정신을,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구성할것이다. - P62

인간은 모두 자신에게 무지한 백지상태로 태어난다. 누군가는 삶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영영 자신에 대해 정확히 모를 수도 있다. 다른 누군가는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스스로 번데기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 번데기 속에서 누군가는 자기만의 해답을 발견해 찢고 나와 나비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실패하기도 한다. 물론, 거듭된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다면 끝내 나비가 될 수도 있다. 애벌레가 번데기 껍질을 까고 나와 나비가 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이는 온전히 애벌레의 선택과 노력에 달렸다. 지금 우리는 그 과정 어디쯤에 있을까?

- P94

그렇다. 이 모든 행위는 사회적으로 비생산적이고 쓸모없이 보이는 것이다. 나태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사회적으로 비생산적이고 쓸모없이 보이는 행위에 골몰할 힘을 얻게 된다. 내 눈을 넘어 오감을 강렬하게 사로잡으며 뒤흔드는 작품을 만났을 때, 거대한 나태함으로 그것을 영혼이 흠뻑 젖을 때까지 감각하고 생각하고 느낄 한없는 시간의 여유를 창조할 수 있다. 그 작품과 대화를 나눈 뒤에도 우리는 변함없이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 나태해지는 시간의 공터를 습관처럼 만들어놓을 수 있다면, 당신을 흔들었던 그 작품은 당신의 삶과 맞물리며 어느 날 어느 순간 불현듯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나태함으로 그 작품을 마음속으로 붙잡아 한껏 곱씹어 보며 진정 내 영혼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나태한 시간이 모여 당신의 기억을 구성하고, 나아가 당신의 내면, 당신만의 독창적인 정체성을 구성할 것이다. - P112

예술의 순간을 체험하는 것이 예술가가 아닌 이에게 무슨 가치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건 오직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체험뿐이라고. 내가 하는 체험만이 지금과 내일의 나를 빚는 재료가 되는 것이라고. - P237

삶에서 하는 일 자체를 예술로 만든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서 자신만의 수단과 통찰로 진진하고 순수한 ‘나만의 작품’을 시도했다고 말하는 세잔의 정신을 본다. 내가 미술관에 가서 만난 어떤 작품. 그 작품만이 지닌 고유한 형식과 재료, 그만의 독특한 색채와 형태, 그만의 오묘한 에너지와 개성, 그만의 비범한 철학과 주장을 내 몸과 정신으로 직접 파헤쳐 마주했을 때 느끼는 희열. 그러니까 세상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그 작가만의 독창적인 미학과 감각을 외부로 표현해 낸 작품을 만났을 때 맞이하는 찬란한 기쁨. 그 감정과 동일한 것을 나는 일상에, 도처에 있는 이들에게서도 본다. 그 감정과 동일한 것을 나는 일상에, 도처에 있는 이들에게서도 본다. 그러니까 그들 모두 예술가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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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 - 영화의 상상력은 어떻게 미술을 훔쳤나
한창호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영화와 그림에 관한 책을 한 권 소개해줄게. 이 책은 아빠의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란다. 한창호라는 분이 쓴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라는 책이란다. 이미 책 제목에 영화와 그림이 모두 다 들어가 있네. 아빠가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그림은 음...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겠구나. 간혹 어떤 그림을 보았을 때, 마음에 드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유명한 그림을 찾아보러 가거나 그림에 감동 받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말이야. 전에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에셔의 그림과 그런 스타일의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란다. 이과생이 좋아할 만한 그림…^^

책 제목에 영화라는 제목이 있으니 조금은 책의 진입 장벽이 높지는 않겠지, 하며 책을 펼쳤단다. 지은이는 한창호라는 분인데, 이탈리아에서 영화 공부를 위해 유학을 7년동안 했다는구나. 유학을 마무리를 하면서 귀국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네 21이라는 잡지책에서 칼럼 투고 제안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그때 문득 생각한 것이 영화와 미술을 접목한 글이었대. 당시만 해도 영화와 미술에 함께 다룬 시도를 우리나라에서는 한 적이 없어서 처음 시도하는 것이었다고 하네. 이 책이 출간된 것은 2005년이란다. 좀 오래되었지? 영화도 2005년 이전의 영화들이란다. 모두 너희들이 태어나기 이전의 영화들^^

 

1.

이 책의 구성은 대충 이렇단다. 유명한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그것을 영상에 담긴 영화를 소개해주고, 그 그림과 영화의 한 장면을 비교 설명해 준단다. 그리고 그림과 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말이야. 예를 들어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젊은 여인의 초상>이라는 그림과 존 조스트의 영화 <뉴욕의 베르메르의 모든 것>의 한 장면. 베르메르의 <젊은 여인의 초상>이라는 그림은 아빠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이 그림을 보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그림이 떠오르게 된단다. 맞아.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화가가 바로 베르메르란다. 그 그림과 함께 소개해준 영화 <뉴욕의 베르메르의 모든 것>은 제목조차 처음 들어보는 영화란다. .. 지은이가 영화 전공자이다 보니, 참 많은 영화를 봤을 테고 그 중에 미술과 관련된 영화를 고르다 보면 아무래도 예술 영화로 부르는 영화를 많이 고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단다.

그러면 아빠가 본 영화는 별로 안 나오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갑자기 이 책의 진입장벽이 높겠군, 하는 생각도 같이 들었어. 그리고 책장을 책장을 펼쳐 읽어가는데, 정말 아빠는 본 영화가 안 나오는데, 본 영화는 둘째치고 제목이라도 들어본 영화가 안 나오는구나. 아빠도 나름 영화를 많이 보고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이 책에서 소개해준 영화가 30편이 넘는데 아빠가 처음부터 끝까지 본 영화는 팀 버튼의 <배트맨> 한 편 인 것 같구나. 보다가 중간에 관둔 영화가 두 편 정도 되는 것 같고대부분 안 본 영화,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 영화로구나. 아빠가 영화를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하면 안되겠구나. 그런데 이 책에서도 소개된 영화 중에 보고 싶은 영화들도 몇 편 있는데, 이 오래된 영화들은 어디서 찾아봐야 하나.

아빠가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학창 시절 좋아하는 영화 OST가 있는데 그 영화도 이 책에서 소개가 되었단다. 영화 <바그바드 카페> 이 책의 줄거리를 소개해 주었는데, 한번 보고 싶더구나. 학창 시절 묘한 분위기의 이 영화의 OST “I’m calling you”만 좋아했지, 영화 <바그바드 카페>를 볼 생각은 하지 않았거든. 이 책에서 내용을 대충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보고 싶구나. “I’m calling you”를 좋아하며 듣던 것이 얼마 전 같은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니... 유튜브에서 “I’m calling you”를 검색해서 들어보니, 옛 기억들도 같이 떠오르는구나. 이것이 음악의 힘인가. 영화와 그림에 관한 책을 이야기해주면서 아빠가 뜬금없이 음악을 칭찬하고 있구나. ㅎㅎ

이 책에서 소개한 영화들에 비해 그림과 화가들은 비교적 익숙한 그림과 화가들을 소개해 주었단다.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셀레, 르네 마그리트, 샤갈 등등 구스타프 클림트를 이야기해줄 때 빈에 사는 세 명의 유명한 구스타프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재미있더구나. 빈에서는 구스타프라는 이름이 유행했나 보구나. 구스타프 클림트, 구스타프 말러, 구스타프 슈니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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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19세기 말, 데카당스의 세련되고 퇴폐적인 기운이 가득한 도시, . 문학, 음악, 미술에서 세기 말 낭만주의의 정점에 있던 예술가 세 명이 바로 쇠락의 도시 빈에서 서로 이름을 떨친다.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 구스타프 말러(1860~1911), 그리고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가 바로 그들이다. 슈니츨러와 클림트는 동갑이고, 말라는 이들보다 두 살 위다. 말러는, 레퀴엠보다 더 비극적인 <교향곡 5>에서 잘 보여줬듯, 지독한 비관주의자다. 그의 검은 음악은 우리를 죽음의 고요 속으로 이끈다. 반면, 클림트는 생명이 넘치는 황금빛 회화로 우리를 에로스의 환희로 초대한다. 이 두 예술가의 사이에, 곧 죽음과 에로스 사이에 슈니츨러의 문학 세계가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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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아빠가 이 책에 나온 영화 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본 영화는 <배트맨>이 유일하다고 했잖아. <배트맨> 시리즈는 영화가 너무 많아서 아빠도 그 시리즈를 다 보지는 않았단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팀 버튼의 <배트맨>은 확실히 기억한단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주인공 배트맨 때문이 아니라 악당 조커 때문에그만큼 강렬한 캐릭터로 자리를 차지한 빌런, 조커. 아빠도 그 영화를 보면서 잭 니콜슨이 연기를 참 잘하는 배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잭 니콜슨이 조커를 그렇게 강력한 캐릭터를 만들어서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에 조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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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207)

어떻게나 악당이 실감 나게 연기를 해대는지, 주인공 배트맨의 존재는 잘 기억나지도 않고 조커의 인상만 강렬하게 남은 영화가 <배트맨>이기도 하다. 만약 조커 일당이 무고한 사람들만 죽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주인공인지 헷갈릴 정도로 캐릭터들 사이의 중심은 조커에게로 쏠려 있다. 조커 일당이 배트맨과 싸우는 방법도 아주 인상적이다. 배트맨은 첨단과학과 거대자본이 있어야만 소유할 수 있는 무기들을 지고 하늘을 날고 땅 위를 쏜살같이 달린다. 반면에, 악당들은 재래식 소총을 들고 맨몸으로 배트맨과 싸운다. 어찌 보면 요즘 세상과 참 많이 닮은 전투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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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영화들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곤 한단다. 그런 원작 소설로 만든 영화 중에 로만 폴란스키의 <테스>라는 영화도 이 책에서 소개를 해주었단다. 토머스 하디의 원작 소설 <테스>는 우리 집에도 있는데, 아빠는 아직 읽지는 않았단다. 영화 <테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영화뿐만 아니라 소설도 읽어보고 싶더구나. 먼저 <테스> 책부터 어디 있나, 찾아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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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연애소설 주에 토머스 하디의 <테스>만큼 인기가 높은 작품도 드물 것이다. 특히 여성 독자들에겐 더하다. 여성이 과거를 고백하는 게 과연 잘한 것인가 아닌가같은 소재는 우리처럼 가부장적인 사회에선 더욱 먹혀들었다. 테스는 잘 알려져 있듯이 그 과거를 고백한 대가로 인생을 망치는 순진한 처녀다. 이런 간단한 연애 이야기의 소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문학적으로 승화된 언어 때문이지, 이야기의 독특함 때문은 아닌 듯하다. 특히 토머스 하디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처럼 자연의 감정을 묘사하는 데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선배 워즈워스가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뛴다며 자연에서 희망을 찾았다면, 하디는 이와 반대로 고독을 맛본다. 하디의 자연에는 절망이 있다. 쓸쓸한 고독 속에 방황하는 농촌 사람들의 무너진 인생이 하디 소설의 테마다. <테스>는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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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 책이 출간 당시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나? 이 책이 주목을 맞고 인기를 끌었다면 후속작도 나올 법한데 검색해보니 없더구나. 하기야 아빠도 최근에 친구의 추천으로 알게 된 책이니 아주 큰 인기를 끈 것 같지는 않구나. 당시에는 후속작이 없지만 20년 가까이 지난 2024년 한번 써봐도 되지 않을까 싶구나. 그 사이에 수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고, 그 영화들 속에서도 숨어 있는 미술 작품들이 있을 텐데 말이야.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

책 제목이 영화가 들어 있어서 가볍게 시작했지만, 알 수 없는 영화 소개로 크게 공감은 갖지 못했지만, 영화 속 숨어 있는 명화들을 알게 된 좋은 기회인 것 같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1999년 여름 베로나에서의 일이다.

책의 끝 문장: 콘스터블, 토머스 하디 그리고 폴란스키를 연결하는 하나의 개념은 절망한 풍경이다.

 


모든 것이 삶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데 집중됐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던 만발한 꽃이나 잘 익은 과일들이 이젠 기쁨이 아니라 삶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데 이용됐다. 만발한 꽃은 곧 시들 듯, 우리도 곧 죽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가장 전형적인 소재가 정물화 속의 해골, 모래시계, 그리고 촛불일 것이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면 또 촛불이 다 타고 나면, 그 다음은 말 그대로 ‘무(無)’만 남는 것 아닌가? 우리가 문리를 깨우치려고 붙잡고 씨름하던 ‘책’, 그리고 과학 관련 도구들도 바니타스의 단골 소재였다. 파우스트가 책 더미에 둘러싸여 진리를 깨우친 뒤, 결국 삶의 허무에 슬퍼했듯, 책과 과학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 모두 허무하다고 화가들은 그린다. - P48

미술사가들에 따르면 로코코의 시작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죽음(1715)과 일치한다. 베르사유 공전의 장대하고 영웅적인 17세기의 바로크와 고전주의가 물러나고, 파리의 살롱을 중심으로 작고 예쁜 실내 장식 같은 예술들이 18세기 초엽부터 시작됐다. 절대 권력자의 독재에 질린 귀족들이 궁전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 자신들의 고향인 파리로 돌아간 뒤, 궁전 예술과는 아주 다른 ‘사적인 취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품들을 좋아했는데, 이를 예술사에선 로코코라고 부른다. - P80

마르크 샤갈(1887~1985)도 경계인이다.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이다. 지금의 벨로루시공화국의 비텝스크에서 태어난 샤갈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자유시민으로 살지 못하고 일종의 불법체류자처럼 숨어 살았다. 당시 유대인은 러시아 시민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인도, 그렇다고 유대인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서 방황한 인물이다.
샤갈의 세상은 집시의 세상과 닮았다. 이성과 상식은 없고, 마법적인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결혼한 신랑 신부는 하늘을 날고, 동물의 머리를 한 신랑은 가냘픈 신부의 뺨에 입맞춘다. 집보다 닭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바이올린 연주자는 늘 지붕 위에 앉아 있다. 닭, 황소, 양들은 사람의 가장 절친한 이웃인 듯 빠짐없이 등장하고, 이들이 사는 마을은 늘 축제로 흥청망청이다. 샤갈의 세상은 쿠스투리차의 영화처럼 카오스의 미학이 지배하고 있다.
- P160

1916년 스위스의 취리히. 모든 유럽이 전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을 때, 전쟁이 싫다는 이유로 몇몇의 삐딱한 젊은이들이 영세중립국 스위스의 이 도시로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규모의 학살 전쟁을 겪으며 이들은 우리 인류가 이룩한 모든 긍정적인 가치들을 거부하는 극단적인 예술 운동을 전재한다. 소위 ‘거부’의 미학운동이라 하는 아방가드르 ‘다다(Dada)’는 이렇게 전쟁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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