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집
전경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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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전경린 님의 <자기만의 집>이라는 책을 이야기할게. 인터넷 서점 구경하다가 지은이 전경린 님을, 전혜린 님과 헛갈려서 클릭하게 된 책이란다. 젊었을 때 책을 많이 읽지 않던 아빠는, 전경린 님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란다. 그래도 이 책이 처음 <엄마의 집>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던 2007년에는 책을 꾸준히 읽던 시절이었는데, 아빠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았구나. 늦게라도 괜찮은 소설을 알게 되어 다행이구나. 너희들이 학원 숙제 때문에 함께 읽는 우리나라의 옛 단편소설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모르고 있는 재미있는 작품들이 꽤 많구나. 읽어야 할 책들과 작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아빠는 유튜브의 유혹에 점점 빠지고 있으니 문제로구나. 2007년에 출간되었던 <엄마의 집> 2025년에 <자기만의 집>으로 재출간되었는데, 아빠는 이 책을 읽은 거야. 엄마만 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기만의 집을 마음 속에 하나씩 짓고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제목을 바꿔서 출간한 것이 아닐까 싶구나.

 

1.

그럼 이야기를 바로 시작해 볼게. 주인공은 스물한 살의 대학교 2학년 생 김호은. 어느 날, 이혼해서 따로 살고 있는 아빠 김헌영이 몇 년 만에 학교로 찾아왔어. 그런데 혼자 온 것이 아니고, 아빠가 재혼해서 낳은 딸 승지를 데리고 왔어. 호민 아빠는 승지를 엄마한테 맡아달라고 하고는, 당황한 호민이 어떤 말도 할 새도 없이 사라지셨어. 호민 아빠도 참재혼해서 낳은 딸을 전처한테 부탁을 하다니.. 승지는 열다섯 살이고, 중학생이야. 승지의 엄마는 8개월 전에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은 아빠한테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어. 승지뿐만 아니라 애완용으로 기르는 토끼 제비꽃도 있었어.

호은은 부모님이 이혼 후 미술학원을 하는 엄마와 둘이 지내다가 엄마가 큰상을 받으면서 유명한 화가가 되셨어. 호은 엄마가 유명한 화가가 된 이후에는 호은은 외가댁에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지냈어. 엄마는 가끔씩 오셨어. 호은 엄마는 이혼 후에도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고 지금은 애인도 있었어.

호은은 승지를 데리고 엄마 집에 왔어. 엄마도 당연히 당황했지. 전남편이 재혼해서 낳은 아이가 왔으니... 일단 그 날은 늦어서 엄마의 집에서 함께 자고, 다음날 다 함께 아빠가 사는 도시로 갔어. 그런데 아빠는 없고, 아파트 열쇠도 없어서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단다. 이 책이 처음 2007년에 출간되었을 때는 핸드폰이 보급되어 있을 때인데, 호은의 아빠는 핸드폰도 없었나 보구나.

아무튼 엄마는 아빠의 친구 경자아저씨한테 전화해서 만났어. 경자 아저씨가 말하길, 그들의 또 다른 절친인 해자 아저씨가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말이 교통사고이지, 자살이나 다름없었대. 해자 아저씨는 엄마도 잘 알던 사람으로 그의 죽음 소식에 엄마도 눈물을 흘렸단다. 그런데 경자 아저씨도 호은의 아빠가 어디 갔는지 모른다고 했어. 경자 아저씨, 해자 아저씨라고 부르긴 했지만, 본명은 아니고 그들이 젊었을 때부터 장난처럼 부르는 별명이란다..

호은 엄마는 아빠가 사는 도시에 아빠를 알 만한 사람들을 찾아보았지만 아빠의 행적을 찾지 못하고 인근J시에 있는 호은의 외가댁으로 갔단다.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외할머니 혼자 계셨어.

J시는 호은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그곳에 오자 K도 생각도 났어. 고등학교 후배였던 K가 자신을 짝사랑하는 것을 알았는데, 어느 날 고백을 하고 호은도 고백을 해서 사귀게 되었어. 아참, K는 여자후배였어. 그런데 K가 연락도 끊은 채 사라졌는데, 얼마 후 KY와 커플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Y는 사실 호은을 쫓아다니던 남학생이었거든. , 배신도 이런 배신이 있나? K가 뭘 오해했나? K가 그렇게 한 행동은 그 일이 있고 2년이 지나서 K가 찾아와서 이야기해주어 알게 되었는데, 아빠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였단다. K는 오해라고 했지만 말이야.

 

2.

호은 엄마는 호은 아빠가 다니던 두부공장에 확인해보니 호은 아빠가 장시간 휴가를 썼대. 이쯤 되자, 호은 아빠가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긴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죽을 병에 걸렸다든가... 호은 엄마는 다시 호은 아빠의 친구들에게 연락해 보았지만 아빠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몰랐던 사실, 승지가 아빠의 친딸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만...

호은 아빠는 대학생 때 학생 운동을 했는데 전경들로부터 도망을 가다가 미술 화실로 뛰어들어 갔는데, 그곳에서 엄마를 만나게 되어 사랑을 키워 나갔다고 했어. 그리고 유인물을 뿌리다가 걸려 1 6개월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어. 호은 아빠는 학교 졸업 후에도, 결혼 후에도 그런 운동권 기질이 있어 엄마와 잦은 의견 충돌이 있었고, 결국 호은이 아홉 살 때 이혼을 한 거야. 그리고 운동할 때부터 알고 있던 여자와 재혼을 한 것이야. 젊었을 때부터 방랑벽이 있었던 호은 아빠는 아직도 변하지 않았나 보구나.

호은과 호은 엄마, 승지는 결국 아빠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다시 엄마의 집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셋이 함께 지내는 생활이 시작되었지. 아직 중학생인 승지는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나이였어. 호은 엄마 윤선은 심성이 착한 사람이야. 승지를 엄마의 집 근처의 학교로 전학시키고, 승지가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잘 대해주었어. 승지도 승지 나름대로 싹싹하고 참 예의 발랐어. 그들은 점점 격 없이 지냈고 실수이긴 하지만 승지의 입에서 엄마라는 말까지 나왔어. 셋 모두 살짝 당황하기도 했지. 셋이 함께 생활하면서 셋 모두 성장해가는 모습이 보였단다. 호은 아빠가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지만, 셋이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엄마의 애인이 좀 삐쳤는지 엄마와 거리를 두긴 했지만..

4개월 뒤, 불쑥 사라졌던 호은 아빠가 불쑥 되돌아왔어. 고맙다면서 승지를 다시 데려가겠다고 했어. 자유로운 영혼인지 모르겠지만 호은 아빠는 아직 철이 덜 든 것 같구나. 승지와 토끼 제비꽃과 헤어지는 것을 엄마도 슬퍼하는 것 같았어. 하지만 헤어지는 자리에는 나오지 않았어. 호은과 승지, 그리고 괴짜 아빠 셋이 점심을 먹고 헤어졌단다. 이젠 그 이전과 다른 관계가 되지 않을까 싶구나. 엄마도 호은에게 승지와 자매처럼 지내라고 했어. 승지도 언제든지 호은과 윤선이 보고 싶을 때 마음 편히 와서 만날 수 있을 것 같구나. 가족처럼 서로 축하해주거나 위로하고 그러면서 말이야.

소설이 술술 잘 읽힐 뿐만 아니라 손 난로처럼 훈훈함마저 느껴지기도 하구나. 가족의 의미도 새겨 볼 수 있어 좋았어. 그리고 이 책에 좋은 문구들도 많아서 좋았단다. 몇 개 소개하면서 오늘 독서 편지를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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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사람은 누구나, 아무리 못난 인간이라 해도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다. 새삼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자기중심적인 꿈을 통해 그 사실을 학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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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꿈은 상실되고 자신을 돈과 바꾸어 살아야 하니, 삶 자체가 하루하루 이렇게 소모적이기만 한 건가 싶죠. 참 다들 고독하고 가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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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실제로 사람이 만나는 건, 드라마와 달라. 말할 수 있는 게 아냐. 질서 있는 인과관계도 없고. 착각과 도취, 혹은 무지한 고집과 자기합리화와 이상한 자포자기 같은 것이 운명을 만들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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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그래서 엄마의 사랑엔 죄의식과 슬픔과 희생과 희망이 뒤섞여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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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사랑이 다시 온다 해도 난 뒷걸음질할 것만 같다. 사랑은 나를 격정적으로 만들고, 균형 잡힌 관계들을 훼손시키고, 내 일상의 페이스를 무너뜨린다. 내 사랑에 대해 내가 보는 눈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눈은 다를 것이다. 무엇보다 사랑은 반드시 끝이 난다. 대체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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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그러니, 내가 태어난 이유는 모른다 해도 그 의미는 앞으로 내가 만들어가야 할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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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사랑은 바라지 않아도 늘 있어. 너를 바라보는 이 순간에, 햇빛 속을 걸을 때나 비 오는 날 우산을 펼칠 때, 한밤중에 창문 밖에 걸린 반달을 볼 때도,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할 때도, 차 한 잔을 마시거나, 홀로 밥을 끓일 때에도, 아침 일곱 시와 오후 두 시와 밤 열한 시에, 사랑은 늘 거기 있어. 많은 마음이 차오를 때까지 깊은 숨을 쉬어봐. 그러면 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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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을씨년스러운 늦겨울 아침이었다.

책의 끝 문장: 내가 엄마와 아빠와 아무리 무수히 헤어져도, 그건 삶일 뿐 이별이 아니라는 것을.


캥거루는 새끼를 배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다. 엄마의 배주머니 속에서 땅 위를 통통 튀어 오르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어미가 무척 힘들 것 같지만, 새끼를 품 안에 넣고 뛰는 편이 탄성에너지를 받아 오히려 힘이 덜 든다고 한다. 캥거루 어미는 애기 집 청소를 할 때 앞주머니를 벌리고 얼굴을 밀어 넣어 혀로 핥는다. 캥거루가 뛸 수 있는 높이에 대해서는, 삼 미터부터 십삼 미터까지 의견이 분분했다. - P14

일상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적 고뇌를 가족과 나누는 것은 무리이다. 일상과 존재의 경계에서 가족 간의 절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성장기 내내 가족과 소원하게 살아온 엄마는, 아마도 천성적으로 그랬듯이, 이모와 외할머니 앞에서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가족 공동체의 내부는 다정과 간섭이 넘치지만 사실, 한 치만 건너서 들으면 또 얼마나 이기적이고 흉한 공모인가. - P95

봄이란 하나의 계절이라기보다 겨울과 여름 사이의 격렬한 신경전 같다. 비와 바람과 햇빛과 눈이 서로의 매력과 무기를 다 동원해 밀고 당기고 엎치락뒤치락거렸다. 한겨울같이 기온이 떨어졌다가 삼월 마지막 날엔 깃털 같은 바람이 목덜미를 간질이더니 사월 첫날에는 눈이 내렸고 다음 날엔 황사 때문에 모든 것이 바랜 사진처럼 누렇게 보였다. 그런 날은 의식조차 현실감각을 잃고 부유하는 느낌이었다. 그 사이로 개나리와 목련, 벚꽃이 귀신들처럼 피어났다. 꽃은 한 송이 한 송이마다 자기의 세계를 열며 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꽃 하나가 필 때마다 세계가 하나씩 생긴다고. 사람도 그렇게 자기를 꽃피워야 한다고. - P115

"엄마와 아빤 너무 일찍 만났어. 세상을 모를 때 말이야. 그 시대의 대담한 청춘들이 그랬듯 엄마와 아빤 세속적인 모든 것을 경멸했어. 권위적인 것, 관습적이고 통념적인 것, 집단적인 것, 가족주의, 유교적인 위계질서와 의례들을 비롯한 모든 고착된 질서들, 유명 브랜드 제품들, 공교육, 돈…… 우린 그런 것들을 우습게만 여겼어. 그땐 정말 둘이 의기투합이 됐었단다. 우린 평생 가난하고 자유롭게 살자고 맹세했으니까. 가난하게, 간결하게, 자유롭게. 그게 네 아빠의 모토였지." - P202

"호은아, 사랑이든 삶이든, 난 그게 내 몫의 강물을 헤엄쳐 건너는 일 같아. 그 물은 내 존재로부터 솟아 나와 큰 강을 이루어, 누구에게나 혼자 건너야 하는 강이 있는 거야. 언젠가 아저씨와 내가 헤엄쳐 건너야 할 물을 다 건너고 햇살 따스한 기슭에 닿아 옷을 말리면 좋겠다. 그게 결혼이라도 좋고 아니라도 좋아. 넌 사랑의 결실이 뭐라고 생각하니?"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흔히 말하듯 아이, 하나의 가정 같은 거 아닐까……
"사랑의 결실은 변태야. 변화를 겪고 달라지는 것. 계속 사랑하는 건 계속 달라져 가는 거야."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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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

거기에 악취까지 동반되어 공포스러운 광경은 더욱 끔찍하게 와닿았다. 썩어 가는 살에서 나오는 역겨우면서 달착지근한 냄새가 사방으로 수 km까지 뒤덮었다. 다가가는 병사는 시신을 눈으로 보기 전에 냄새부터 맡을 수 있었다. 악취는 그가 먹는 상한 빵에도, 마시는 고인 물에도, 입고 있는 넝마가 된 군복에도 배어 있었다. 1차 세계대전 때 싸운 로버트 C. 호프먼 중위는 20여 년 뒤 미국이 두 번째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이렇게 경고했다. “죽은 지의 악취를 맡아본 적이 있나요? 모래알 하나를 보고서 애틀랜틱시티의 해변을 떠올린다고 상상해 보세요. 생지의 악취와 오래 전에 죽어 쌓여 있는 병사들에게서 나오는 악취의 차이가 그 정도는 될 겁니다.” 호프먼은 시신을 묻은 뒤에도 <여전히 악취가 지독해서 몇몇 장교가 심하게 알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34-35)

클레어에게는 다행히도 헤럴드 길리스라는 선견지명을 지닌 외과의사가 얼마 전부터 영국 시드컵의 퀸스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얼굴 재건만을 전담하는 세계 최초의 외과의사 중 한 명이었다.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길리스는 기존에 초보적인 성형 수술 기법들을 개선하고 상황에 맞게 변형시킨 끝에 완전히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오로지 지옥 같은 참호에서 망가진 얼굴과 정신을 복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흔들림 없이 일에 매달렸다. 이 엄청난 도전 과제를 해내기 위해서 그는 사람들을 모아 독특한 의료진을 조직했다. 그들은 찢겨 나간 부위를 복원하고 파괴된 것을 재창조하는 일을 맡았다. 외과 의사, 내과 의사, 치과 의사, 방사선 의학자, 화가, 조각가, 가면 제작자, 사진사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재건 과정을 도왔다. 길리스의 주도하에 성형 수술 분야는 진화를 거듭했고 새로 개척된 방법들을 표준화하면서 이윽고 현대 의학의 한 분야로 적법하게 자리 잡기에 이른다. 그 뒤로 이 분야는 전 세계 성형외과 의사들의 재건과 미적 혁신을 통해 우리 자신과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방식에 도전하면서 점점 번창해 왔다.


(80)

그 해 봄에 새로운 이들이 길리스와 모리슨만은 아니었다. 저명한 과학자 마리 퀴리도 병원을 방문했다. 퀴리는 라듐을 발견한 유명 인사했다. 1903년에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고 1911년에 또 한 번 받았다. 전쟁이 터졌을 때 퀴리는 연구를 중단하고서 자신이 연구하던 방사성 원소를 모두 납으로 코팅된 용기에 담아 보르도의 안전 금고로 옮겨 독일군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치했다. 그런 뒤 자신의 재능을 전쟁 쪽으로 돌려 병상, 발전기, 엑스선 기계, 사진 현상 암실 설비를 갖춘 차량을 고안했다. <꼬마 퀴리>라는 별명이 붙은 이 차량은 전쟁터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 세계적인 물리학자이자 화학자는 전시에 엑스선 기계를 갖춘 진료소 200곳을 세우고, 여성 방사선학 전문가 150명을 훈련하여 운영을 돕도록 했다.


(193)

길리스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칼을 움직여 환자의 가슴에서 특징이 사라진 얼굴에 이식할 피부를 떼어 내기 시작했다. 그 의료진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가슴에 그려진 얼굴 전체를 떼어내어 손상된 얼굴을 덮을 거예요. 코는 갈비뼈에서 떼어낸 연골을 넣어 만들 거고요. 살아있는 진짜 피부로 덮을 겁니다. 피부 조직은 자연적으로 공급되는 피를 받아서 이식편처럼 새 자리에서 자랄 거예요. 그런 뒤 남은 흉터를 다 없앨 겁니다.”


(262-263)

온갖 교훈을 터득하고 혁신을 이루었음에도 퀸스 병원의 길리스 곁에는 환영받지 못하는 동료가 늘 함께했다. 바로 실패였다. 전쟁의 막바지에도 초창기 못지 않게 환자의 죽음은 심한 타격을 안겨주었고 그는 조종사의 죽음에 황망해했다. 길리스는 스스로를 비난했고 <완벽한 결과를 얻으려는> 욕망에 빠진 바람에 수술 시기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고 나중에 인정했다. 그는 럼리의 얼굴 전체를 한꺼번에 재건하려고 시도하는 대신 얼굴의 4분의 1씩을 단계적으로 재건했어야 한다고 회상했다. 그는 럼리에게 <아주 단호한 태도를 취해서> 수술 시기를 미루고자 설득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온갖 질문을 했다. 무거운 심경으로 그는 이렇게 토로했다. <이 용감한 친구가 좀 더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다면 좋았을 것을.>


(272)

길리스는 으레 그랬듯이 수술을 앞두고 자신의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는 발라디에의 편지를 옆에 두고서 벨의 얼굴을 재건할 계획을 마음속으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코였다. 코는 감염되었음에도 기적처럼 남아 있었다. 하지만 코가 허약해진 상태이기에 사소한 실수만 해도 아예 망가질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술 시간이 다가오자 길리스는 자신이 적고 스케치한 내용들을 살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을 시간이 되었을 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전 프로그널 땅의 중심이었던 본관을 나섰다. 그는 새로 깎은 잔디밭을 가로질러서 새로 지어진 건물로 향했다. 환자들이 지내고 있는 병실과 그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수술실이 거기에 있었다.


(309)

그 소식이 알려지자 수십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한 사람은 길리스가 기사 작위를 받자 이렇게 썼다. <선생님께서 제게 보여 준 경이로운 친절과 제 삶을 살 가치로 있게 만들어 준 모든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또 한 환자는 자신의 위턱 일부가 사라진 적이 있다고 말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편지를 보냈다. <너무나 멀쩡해 보여서 11년 전에 거의 불에 다 죽을 뻔했다고 말하면 믿으려 하지 않아요.> 길리스의 노련한 손이 닿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삶이 과연 어찌 되었겠느냐고 말하는 편지도 많았다. 이렇게 쓴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가기 전의 나 자신을 생각하면 정말로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길리스는 그들의 얼굴을 복원했지만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이 워낙 많았기에 그에게는 얼굴 없는 이들로 남았다. 한 병사는 이렇게 썼다. <선생님이 저를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부상병 중 한 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우리가 선생님을 기억하니까요.>


(316-317)

성형수술로 돈을 벌었든 못 벌었든 간에 딜리스는 미용 수술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대중뿐 아니라 의료계 내부에서 나오는 의문들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오로지 허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수술을 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들어 줄 코가 헛수고가 된다면 내가 이런 일을 굳이 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길리스가 때때로 내면의 갈등을 느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얼굴의 주름을 제거하다가 문득 내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면서도 수술을 받은 이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환한 표정을 볼 때면 과연 환자를 거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딜리스는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에게는 사소해 보일 일탈이 당사자에게는 심한 고민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당시의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미용 수술이 원하는 이에게 약간의 추가 행복을 안겨주기에 정당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 그는 그렇다고 결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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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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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비르지니 데팡트라는 프랑스 작가의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라는 책이란다. 독특한 책 제목에 관심이 생겨 한 번 눈이 가고, 평점이 좋아서 한 번 더 눈이 가서 구입하게 된 책이란다. 책 제목만 봤을 때는 스릴러물이겠구나, 생각했단다. 읽어보니 사회 소설인데,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조언 같은 문장들도 있어서 좋았단다. 그런다면 왜 제목이 <친애하는 개자식에게>인가아빠는 얼마 전에 나온, 제목만 들어본 드라마 <친애하는 X에게>와 연관성이 있나, <친애하는 X에게>라는 드라마까지 검색해 보게 되었단다. 결론은 전혀 관련 없더구나.

….

오스카라는 40대 남성 작가가 주인공 중에 한 명이란다. 오스카가 파리에서 우연히 영화 배우 레베카를 목격하게 되었어. 레베카는 예전에 엄청 잘 나가던 유명한 영화배우인데, 50대가 되어서 그런지 나이 든 모습이 자신이 예전에 알고 있던 모습과 너무 달라서, 그 소회를 SNS에 적었어. 그런데, 그 글을 레베카가 본 거야. 여배우에 대한 외모에 대한 평가는 조심해야 하는데…. 레베카는 자신에 대한 오스카의 평가를 보고 화가 엄청 나서 그에게 바로 메일을 보냈단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라는 제목으로그리고 내용도 그리 곱지 않았어. 격분하여 쌍욕이 담긴 메일을 보냈단다.

그 메일을 받은 오스카는 곧바로 사과의 메일을 보냈단다. 사실 자신의 누나 코린이 레베카와 어린 시절 친한 친구였다면서, 자신도 어린 시절 레베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했어. 그러면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메일을 보냈어. 오스카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면 자신이 쓴 글을, 유명한 영화배우 당사자가 볼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구나. 오스카가 사과의 메일을 보냈지만,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지 화가 잔뜩 담긴 메일을 두어 번 더 보냈단다.

이 책은 오스카와 레베카가 주고 받은 이메일로 이야기를 전개해 간단다. 그러다가 중간에 조에 카타나라는 사람의 SNS에 포스팅한 글이 등장한단다. 이 글로 인해 오스카는 큰 위기를 겪게 되지

 

1.

조에 카타나는 오스카의 책을 홍보하는 일을 담당하던 사람이었어. 신입사원으로 들어왔다가 얼마 안 있다가 그만 둔 사람이란다. 조에는 어느날 SNS에 오스카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단다. 몇 년 전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미투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구나. 조에가 운영하는 블로그는 1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영향력 있는 블로그였단다. 그런 블로그의 글이 올라왔으니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단다. 뉴스에도 나오게 되었어. 오스카는 억울하다고 생각했지만, 성추행이라는 것이 늘 가해자의 생각과 피해자의 생각이 다르니까

당시 자신이 조에 카타나를 좋아해서 고백한 것이고, 술 취한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키스를 하려고 했던 적은 있다고 했어. 단순이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는 거지이 일에 대해서 주변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그들도 오스카가 잘못했다는 말뿐이라고 했어. 이 일이 있고 나서 오스카는 스케줄이 엉망이 되었고,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와 계획했던 여행도 취소하고, 딸 클레망틴을 보기도 부끄러운 상황이 되었다고 했어.

당시 오스카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 때문에 약물 중독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약물을 끊으려는 모임인 NA에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이 미투 사건으로 NA모임에도 나갈 수가 없었어. 오스카는 이 일에 대해 레베카에게 메일을 썼어. 레베카가 오스카보다 경험이 많아서인지 레베카는 이제 조언을 해주고, 자신도 마약에 빠져 어려운 일에 빠진 적이 있었다면서 현재 어려움에 빠진 오스카를 공감해주며 위로해 주었단다. 친애하는 개자식이 이젠 조언을 주고 받는 친구가 된 것 같았어.

….

이런 시기에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했단다. 그 시기에 살고 있던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인 코로나 바이러스. 프랑스도 전 도시가 봉쇄령에 빠졌어. 코로나 바이러스가 모든 이슈를 잡아먹으면서 오스카의 미투 사건도 잠잠해졌어. 조에 카타나도 코로나에 걸리게 되었어. 조에의 블로그를 모니터링하고 있던 레베카는 조에에게 연락해서 격리하고 있는 조에에게 생필품과 먹을 것들을 직접 갖다 주었단다. 유명한 배우가 직접 자신에게 먹을 것과 생필품을 가져다 주었다? 이것은 블로그에 글감으로 최고였을 거야. 조에는 이 에피소드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그 글을 오스카도 보았단다. 오스카는 레베카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앙숙이나 마찬가지인 조에에게 그런 친절을 베푼 것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단다. 이제 메일을 끊겠다고 했어. 다 큰 어른들이 생각이 참 얕구나레베카는 오스카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사과를 했어. 오스카도 마음을 풀어져서 다시 메일을 보냈어.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격리 생활은 일상이 되었어. 오스카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한때 고생을 많이 했고, 지금은 거의 치유가 된 상태였어. 그런데 미투 사건으로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단다. 그러면서 자기합리화를 했어. 자신이 마약이나 술을 끊기에는 나이가 적다고 말이야.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고 다시 마약과 술을 하려고 했나? 레베카는 그런 그를 설득하고 또 설득하여 결국 오스카는 마약과 술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단다. 또 그런 오스카를 레베카는 응원했어.

 

2.

아빠가 생각하기에, 오스카는 레베카와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한 단계 성장하는 것 같았어. 그러면서 조에에게 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반성하게 되었어.

SNS에 오스카와 일을 올린 조에 또한 악성 댓글로 시달리고 있었어. 심적으로 많이 불안해 하고 신경과 진료도 받았어. 그 일을 알게 된 레베카가 찾아와 조언도 해주었단다. 오스카의 누나 코린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갔어. 코린도 페미니스였는데, 조에와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더구나. 병원에서 조에를 만났는데 못 본 척 하고 지나갔다가 두어 번 더 마주쳐서 결국 미소를 한 번 지었는데, 그 일을 두고 조에는 오스카에게 큰소리로 욕설을 하며 비난했단다. 조에는 여전히 오스카는 자신의 가해자였던 거야. 오스카는 곧바로 진심으로 사과했지만, 조에는 그것마저 진심이 아니고 자신을 얕보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더 심한 욕을 하고 심지어 오스카의 얼굴에 침까지 뱉고 그 자리를 떴단다.

조에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까지 하지 오스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조에가 큰소리고 오스카에 욕설을 퍼붓다 보니 주변 사람들도 그들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지. 누군가 그들을 동영상으로 찍었어. 조에가 오스카의 얼굴에 침을 뱉는 장면도 말이야. 그 영상이 온라인에 다시 업로드되고조에는 또다시 사이버 테러를 당했단다. 그런데 그 장면 이전에 조에와 오스카가 함께 있는 장면이 얼핏 보면 다정하게 대화하는 것처럼 보여서, 이번에는 조에를 응원하던 진영에서도 조에를 비난하기 시작했단다. 조에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오스카를 응원한다면서 그의 책을 더 사주어 오스카의 책판매량이 느는 아이러니한 일도 있었어. 이미 오스카는 깊이 반성하고 있어서 이런 현상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했어. 레베카는 끝까지 조언을 해주었는데, 그런 조언들이 아빠가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삶을 대하는 태도로 배울만한 글들이 여럿 있었단다. 몇 가지 발췌해 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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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255)

사회적 명성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커다란 격차에서 발생한 산물이에요. 자기 마을이나 계층에서 이름을 얻는 그런 문제가 더는 아닙니다. 19세기 초 세공 장인의 명성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아마도 당시에는 가치가 있었을 겁니다. 어떤 영역에서 노력을 제공하고 그 분야에서 재능을 가지고 있었겠죠. 최선을 다해 윤리적 방식으로 작업하면, 주변 사람에게서 존경과 애정이 보상으로 따라왔을 테고요. 사실 그에 대해 잘 모릅니다. 내가 아는 범위는 20세기입니다. 미디어로 전파되는 명성이죠. 어떤 계층이 선택한 개인에게, 그를 바라보는 이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권리가 부여되었습니다. 대형 스크린 앞 관객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연기가 어떠하든 변화시킬 수 없고, 절대적으로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러요. 영화는 전개될 것이라고 예고한 대로 전개됩니다. 텔레비전 방송이 방영될 때도 마찬가지요. 브라운관 앞에서 무슨 짓을 하든지 상관 없어요. 그 과정에서 어떤 충격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상황이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개입하게 된 거죠. 개입에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모욕임을 다들 바로 이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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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286)

헛소리입니다. 감정은 오존층에 뚫린 구멍이고 기후변화이며 변함없는 화산 용암이자 바이러스의 폭격입니다. 공장이나 극장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감정을 기쁘게 맞이할 수 없습니다. 감정은 당신을 복종시키기도 합니다. 늘 미소를 따다가도, 겁을 집어먹을 수도 있어요. 감정은 당신을 뒤죽박죽으로 휘저어 놓습니다. 감정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듬을 수 있는 수공예품이나 개인의 창작물이 아닙니다. 감정은 도자기 그릇이 아니니까요. 우리 세대에 급격히 퍼진 감정은 절망입니다. 집단적으로 퍼져 있어요. 지구 중심에 요란하게 상륙했습니다. 우리 모두를 봉기시킨 것은 바로 그 감정입니다. 각자 사소한 메시지, 자신만의 공식을 가지고 돌진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당신이 세계의 지도자이든 대양의 중심을 떠다니는 표류물이든 상관없이 감정은 동일합니다. 우리는 감정에 구애 받습니다. 그것은 다른 무엇도 대적할 수 없는 화음이며, 무슨 일이 발생하든 울려 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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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당신의 절망을 파괴하는 유일한 기술은 희망입니다. 무척 간단한 문제죠. 희망은 절망을 지우는 단 하나의 해독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압수당한 것 또한 희망입니다. 디스토피아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지평선이 되어버린 겁니다. 미래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되리라 믿는 건 머저리라는 방증입니다. 그것은 승리한 전체주의입니다. 획일화된 신념이 우리 상상의 세계를 빼앗은 셈이죠. 대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멍청이들에게나 유익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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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일로 열심히 조언하던 레베카는 메일 속 세상은 너무 좁다면서, 만나자고 하면서 소설을 끝이 났단다. 주인공들이 메일을 주고 받는 것을 보면서 문득 메일로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요즘은 실시간으로 날라가는 메신저로 안부를 전하다 보니 사적인 메일을 쓴 적이 정말 오래된 것 같구나. 회사에서 업무 메일을 쓰는 게 고작이니 말이야. 그런데 메일을 써도 사람들이 읽어보지 않을 확률이 높을 것 같구나. 아빠도 개인 메일을 확인한 것이 정말 오래된 것 같으니 말이야. 세상은 늘 변하지만 짧고 빠른 방향으로만 변하는 것 같구나. 오늘 읽은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는 책제목과 달리 두 주인공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단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빠가 이 책을 읽은 지 시간이 꽤 지나서, 뭔가 빼먹은 부분도 있는 것 같고, 잘못 알려준 부분도 있는 것 같구나. 늘 독서 편지를 밀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싶지만, 이미 밀린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이라도 다 쫓아간 다음에 다짐을 해야겠구나. 밀린 독서편지를 위해서 앞으로 좀 짧게 짧게 써야겠다.^^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파리에서 우연히 레베카 라테를 봤다.

책의 끝 문장: 편지 속이 좁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나이의 역사에는 어떤 정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오십 세에 쓰러집니다. 우리가 동경하던 성격적 특징은 왜곡되고, 오만함은 희한으로 변하며, 유머에는 요실금 환자의 지린내가 나고, 매력은 변절되어 버립니다. 청소년기의 변화와 비교할 수 있겠으나 더 비참하죠. 목소리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거나 사유의 융통성이 그대로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랜 친구들을 보석처럼 간직하세요. 여전히 함께 있을 때 편한 사람을요. 점점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더 지혜로워지거나 더 흥미로워지거나 더 관대해진 사람들이죠. 끔찍한 난파 사고의 생존자라도 되는 양 곁에 그들을 잡아두세요. - P71

오늘날은 모두들 좋은 소리만 듣고 싶어하죠. 모두들 착실한 학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실 구석 난방기 옆에 앉아, 헛소리를 지껄이며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얼간이는 오늘날엔 인기가 없죠. 프레베르의 시에 나오는 열등생은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기업에서 쓰는 언어밖에 모르니까요. 진지함, 책임감, 고위직의 관점, 최고 수치의 기록, 우리가 견뎌야 할 유일한 도전은 흥미롭지 않습니다. 난장판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손에서 시작해야 즐거운 일이 되는 겁니다. - P77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 내게 무척이나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 셈입니다. 열정은 더는 원할 때 진열장에서 꺼낼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나를 끌어당기는 게 없어요. 빛나는 것도 없고 나를 뒤흔드는 것도 없습니다. 나는 백만 번이라도 홀로 하는 사랑으로 고통받거나 죽는 편을 택할 거예요. 버림받거나 배신당하거나 창피를 당하거나 학대받는 편을 택할 거예요. 권태에 빠지는 것보다 그 어떤 상처라도 받는 편을 택할 겁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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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110)

제 심장을 손안에 쥐었대도 못하시고

제가 그걸 보관하고 있는 한 안 됩니다.

, 질투심을 조심해요.

그것은 희생물을 비웃으며 잡아먹는

푸른 눈의 괴물이랍니다. 오쟁이 진 자가

운명임을 확신하고 죄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는 더없이 행복 속에 산답니다.

오 그러나, 푹 빠졌지만 의심하고

수상히 여기지만 강렬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얼마나 저주받은 시간을 헤아리겠습니까!


(118)

이 손수선을 카시오의 숙소에 떨구고

그가 발견토록 해야지. 질투하는 사람에겐

공기처럼 가볍고 하찮은 물건도

성경 말씀처럼 강력한 확증이야.

이게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

무어인은 벌써 내가 준 독약 먹고 변했어.

위험한 상상은 그 본질이 독약인데

맛이 고약한 줄 처음엔 거의 모르다가

약간씩 핏속으로 퍼지기 시작하면

유황불처럼 타는 거야. 그렇다고 했잖아.


(156-157)

저 하늘이 뜻하여

고난으로 날 시험하려고 낸 맨머리 위에다

갖가지 아픔과 치욕을 쏟아 붓고

이 몸을 가난에 뼛속까지 빠뜨리며

나와 내 희망을 포로로 넘겨줬다 하더라도

난 내 영혼 어디선가 한 줌의 인내심을

찾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나더러

경멸하는 시간의 느린 부동의 손가락질

시계판 숫자처럼 받으라고 하는 건…… , ,

하지만 난 그것도 잘, 아주 잘 견딜 거다.

그러나 내 심장을 갈무리해 둔 곳

내가 살거나 아니면 삶을 유지 못하는 곳

내 생명수가 흐르거나 말라붙은 샘

바로 그곳에서 버림을 당하거나

또는 더러운 두꺼비 쌍쌍이 뒤엉키어

알 까는 웅덩이로 그곳을 지키게 된다면!

그럴 경우 얼굴빛을 바꾸어라

그대 장밋빛 입술의 어린 천사 인내심아,

맞아, 지옥처럼 험악하게 보이거라!


(169-170)

있어요, 수십 명이. 게다가 그들이 놀고 얻은

이 세상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이요.

하지만 전 아내들이 타락하게 되는 건

남편들 잘못이라 생각해요. 예를 들면

그들이 밤일을 소홀히 하면서

우리의 보물을 딴 여자 허벅지에 싼다든지

아니면 유치한 질투심을 터뜨리고

우릴 구속하거나 또는 우릴 때린다든지

약심 품고 용돈을 줄이면, 원 참,

우리도 성깔이 있잖아요. 남편들은 아내들도

자기들과 꼭 같은 감각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고요. 보고, 냄새 맡고

단 것과 신 것을 둘 다 맛보는

혓바닥을 가진 건 남편들과 같다고요.

남편들이 우리를 단 여자와 바꿀 때

하는 짓이 무엇이죠? 재미 보는 건가요?

그렇게 생각해요. 그게 정으로 시작되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약하니까 실수해요?

그도 맞죠. 그럼 우린 정 없어요?

놀고픈 욕망도 약함도 남자처럼 없냐구요?

그러니까 그들은 우리한테 잘해야죠.

안 그러면 그들이 잘못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함을 알려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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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오만과 편견 - 189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제인 오스틴 지음, 김유미 옮김 / 더스토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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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얼마 전에 브론테 자매들에 관한 책,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을 읽고 나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다른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이 생각났어. 그래서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더구나. 20여 년 전에 읽었는데 줄거리도 잘 생각 안 나고 그랬거든. 최근에 초반본 표지를 그대로 재출간해주는 것이 유행인데, 아빠가 읽은 것은 초반본 표지로 출간한 <오만과 편견>이란다. 초판본 표지라고 했지만 오늘날에 봐도 아주 좋더구나. 책값 지원을 받아서 책값도 무척 저렴하구나. 커피 한 잔 값.

인터넷 서점에서 작년 말쯤부터 올 초까지 제인 오스틴에 관한 책들이 눈에 많이 띄었어. 아빠가 최근에 읽어서 그런 것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2025 12 16일이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하는구나. 250주년 기념으로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고,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도 많이 재출간되었단다. 다시 읽은 <오만과 편견>은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20여 년 전에 읽었을 때도 이렇게 재미있게 읽었나? 싶었어.

그럼 바로 이야기를 해보자.

 

1.

영국의 롱본이라는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베넷 부부에게는 다섯 명의 딸이 있었어. 첫째부터 제인, 엘리자베스, 메리, 키티, 리디아가 그들이야. 베넷 부부의 이웃집인 네더필드 파크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 왔는데, 젊은 갑부인 찰스 빙리 씨였어. 딸들이 아닌, 베넷 부인이 더 설렜단다. 자신의 딸들 중 한 명과 잘 엮이면 좋겠다면서 말이야. 김칫국도 이런 김칫국이 없구나.

당시 영국의 사회는 사교 모임은 일상적인 활동이었어. 빙리는 마을 사람들과 친지들을 초대하여 무도회를 열었어. 빙리는 이 무도회에 누이들과 친구 다아시 씨를 데리고 왔어. 다아시는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빙리보다 더 부자라는 소문이 돌았어. 그래서 많은 부인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었어. 하지만 다아시는 그런 관심을 싫어했고 오만하고 거만하게 이야기를 했더니, 부인들은 바로 그를 멀리 했단다. 특히 베넷 부인은 다아시가 자신의 딸들을 무시해서 더욱 싫어했단다. 베넷 부인은 빙리 씨에게만 관심을 가졌어. 다아시는 성격상 춤도 싫어하고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싫어했어. 아빠로서는 다아시를 백분 이해할 수 있겠구나. 더욱이 다아시는 무도회에서 관심 가는 여자도 없어서 지루할 뿐이었어.

찰스 빙리는 파트너를 바꾸어가면서 춤을 추었는데, 제인하고만 두 번을 추었어. 그 사실을 알게 된 베넷 부인은 빙리 씨가 제인에게 청혼할지도 모른다면서 기대에 부풀어 올랐지. 제인은 마냥 성격 좋은 사람이라서 다른 사람의 좋은 점만 보기 때문에 빙리에게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어. 제인에 비해 동생 엘리자베스는 사람을 볼 때 늘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본단다.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는데 그것의 영향일 수도 있겠구나. 무도회가 끝나고 빙리는 제인이 마음에 든다고 다아시에게 이야기했고, 다아시는 제인이 웃음이 헤픈 것 같다는 평가를 했단다.

두 번째 사교 모임에서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다시 만났는데, 첫 만남에서 느끼지 못한 지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어 춤을 권했단다. 그런데 엘리자베스는 춤 추고 싶지 않다면서 거절했어. 당시 부잣집 잘 생긴 총각이 권한 춤을 거절하는 것은 평범한 것은 아니었을 거야. 아마 다아시도 좀 당황했을 거야. 그뿐만 아니라 엘리자베스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의도대로 말하고 행동했단다. 그것 때문에 빙리의 누이들의 눈 밖에 나기도 했어. 그런데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을 알게 되자, 빙리의 누이 캐롤라인은 질투하기도 했어.

베넷 씨는 아들 없이 딸만 다섯 명이야. 딸에게는 상속을 할 수 없었나 봐. 그래서 베넷 씨의 재산은 자매들의 사촌인 윌리엄 콜린스 씨에게 돌아가게 된대. 콜린스는 목사인데 좀 멍청하고 아둔한 사람으로 나온단다. 그런 콜린스 씨가 집에 방문했어. 콜린스 씨는 딸들 중에 한 명과 결혼하겠다고 이야기했어. 너무 당연하듯이 이야기를 하더구나. 콜린스가 와서 보니 제인이 가장 예뻐서 제인에게 청혼하려고 했으나, 베넷 부인이 이야기하기를 제인은 곧 약혼한다고 해서, 두 번째로 예쁜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하려고 했어. 엘리자베스 성격상 그 청혼을 받아주겠니. 당시 영국의 문화를 자세히 모르긴 하지만 김칫국 먹는 것이 유행인가 보구나.

엘리자베스의 이모이자 베넷 부인의 여동생인 필립스 부인이란 사람이 있어. 필립스 부인의 초대로 이모의 아들인 데니와 데니의 군대 친구 위컴을 알게 되었어. 데니와 위컴은 모두 장교였는데, 위컴은 다아시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대. 엘리자베스는 위컴과 이야기를 해보니,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위컴과 다아시가 어렸을 때는 친하게 지냈는데 지금은 사이가 멀어졌다고 했어. 그 이유는 다아시가 못된 짓을 많이 했고, 다아시 때문에 위컴 자신이 목사가 못 됐고, 군인이 되었다고 했어.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한 점점 안 좋게 생각했단다.

네더필드에서 또 무도회가 열렸어. 엘리자베스는 위컴이 참석하길 기대했는데 위컴은 오지 않았어.

아무래도 다아시와 마주치기 싫어서 그런 것 같구나. 그 무도회에는 엘리자베스의 눈에 거슬리는 남자가 둘이나 있었어. 다아시와 콜린스였어. 콜린스는 자꾸 집적댔어.. 그리고 여자 중에 거슬리는 사람은 한 명, 자신의 엄마 베넷 부인이었어. 베넷 부인은 혼자 마음 속에 품고 있어야 할 말들을 입으로 쏟아내고 그랬어. 창피하신 줄도 모르고 말이야. 그런 엄마 때문에 오히려 엘리자베스가 창피했지.

다음날, 눈치 없는 콜린스는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했고, 엘리자베스는 그 자리에서 거절을 했단다. 베넷 부인은 그런 딸을 질책했고, 아버지는 콜린스가 좀 아둔해서 신랑감이 아니라고 엘리자베스의 거절을 잘했다고 생각했어. 콜린스는 엘리자베스가 청혼을 거절하자, 이번에는 엘리자베스의 친구인 샬럿 루카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콜린스가 이번에는 샬럿 루카스에게 청혼을 했고, 샬럿은 그 청혼을 승낙했단다.

 

2.

빙리의 여동생 캐롤라인 빙리로부터 편지가 왔어. 빙리가 네더필드를 떠나 런던으로 간다고 했어. 다시는 네더필드를 올 계획이 없다고 했어. 그리고 빙리가 다아시의 동생 조지애나와 잘 될 것처럼 썼단다. 베넷 부인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고, 제인도 찰스와 잘 통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상심이 컸단다. 엘리자베스는 그 편지는 캐롤라인 혼자만의 생각이라면서, 제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

외숙모 가드너 부인이 방문했단다. 가드너 부인은 베넷 부인과 정반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지적이면서 분별력 있으면서도 우아한 사람이야. 그래서 엘리자베스도 가드너 부인을 좋아한단다. 가드너 부인은 상처 입은 제인을 런던에 있는 외숙모 님에 집에 머물게 했단다. 마음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도록 말이야.

위컴의 소식이 전해졌어. 위컴은 돈 많은 킹 양과 사귀고 있다는 소식이야. 엘리자베스는 위컴을 좋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킹 양과 사귄다는 소식에도 크게 상처 받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자신이 위컴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어.

….

퀼리엄 콜린스와 샬럿 루카스가 결혼을 하고 나서 그들이 살고 있는 로징스 파크에 사람들을 초대했어. 엘리자베스도 그곳에 갔는데, 그곳에 다아시도 왔단다. 부인들의 극성스러운 말들을 피해서 산책을 하려고 나갔는데 우연히 다아시를 만나게 되었어. 하지만 그와 거리를 두려고 해서 못 본 척 하려고 했어. 다아시가 제인 언니와 빙리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해서 더욱 그를 멀리 하려고 했단다. 그런데 어느날 다아시가 엘리자베스를 찾아와 뜻밖에 고백을 했어. 생각지도 못했던 고백이기도 하지만, 오만한 다아시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그 자리에서 차갑게 거절했단다. 그러면서 제인과 빙리 씨 사이에서 다아시의 역할과, 위컴의 권리를 빼앗은 일에 대해 면전에 대고 비난 했어.

다음 날,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서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단다. 전날 엘리자베스가 한 비난에 대한 반박문 같은 것이었어. 제인의 일은 자신이 잘못 봤을 수도 있다면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어. 자신이 생각하기에 제인과 엘리자베스는 지적인 사람이지만, 엘리자베스의 엄마인 베넷 부인과 어린 동생들이 좀 천박하고 교양 없어 보여서 그 집안과 멀리해야 한다고 찰스 빙리에게 조언을 해주었다고 했어. 다아시가 이야기한 것이 거짓이 아니라서 엘리자베스도 속상했단다. 그리고 또 하나, 위컴의 대한 것은 바로 잡고 싶다고 했어. 위컴은 사기를 쳐서 자신의 돈을 뜯어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동생 조지애나, 그것도 열다섯 살밖에 안 된 조지애나를 꼬셔서 도망가려고 했다는 거야. 조지애나를 사랑해서도 아니고, 3만 파운드 때문에 말이야. 그런 일을 겪고 나서 위컴를 멀리하게 된 것이라고 했어. 그러면서 사촌인 피츠윌리엄에게 확인해보라고 했단다.

얼마 후에 엘리자베스는 가드너 외숙모와 외삼촌과 함께 여행을 갔어.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적이면서 우아한 가드너 외숙모를 좋아했잖아. 그들과 여행은 엘리자베스에게 진정한 힐링이 되었어. 그런데 여행지에서 우연히 다아시를 또 만났단다. 그런데 얼마 전 오만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어. 예의 바르고 싹싹하게 행동을 해서, 엘리자베스도 좀 놀랐단다. 위컴의 일에 대해서는 자신이 오해를 해서 미안함도 좀 있었지. 외숙모와 외삼촌은 다아시를 처음 만난 것인데, 그를 좋게 평가했단다.

엘리자베스는 마음의 문을 조금 열게 되었어. 다아시는 자신의 동생 조지애나를 소개해 주기도 했어. 며칠 후 여행중인 엘리자베스에게 집에서 급한 편지가 왔어. 막내 리디아가 위컴과 사라졌다는 거야. 엘리자베스는 이제 위컴이 어떤 작자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했고, 동생 리디아가 위컴에게 사기 당한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어. 엘리자베스는 외삼촌, 외숙모, 그리고 다아시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어. 외삼촌과 외숙모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이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어. 일단 같이 롱본에 같이 가자고 했어.

롱본에 도착하자 베넷 씨는 리디아를 찾으러 런던에 가고 없었어. 외삼촌도 런던에 가서 베넷 씨를 만났어. 외삼촌은 베넷 씨를 다시 집으로 보내고 자신이 해결해 보겠다고 했어. 며칠 뒤 외삼촌의 편지가 도착했어. 위컴과 리디아를 찾았고, 위컴과 이야기를 해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았다고 했어. 적은 결혼지참금을 조건으로 위컴과 리디아가 결혼을 했다는 거야. 외삼촌이 말씀은 안 하셨지만, 위컴의 빚은 외삼촌이 처리해 준 것 같았어.

얼마 후 리디아와 위컴의 결혼식을 했고 그들은 롱본을 찾아왔단다. 리디아가 이야기하기를 결혼식에 다아시가 참석을 해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했어. 이건 누가 봐도 엘리자베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인 것 같은데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편견이었음을 깨닫기 시작했어. 그런 엘리자베스의 변화된 모습을 본 다아시는 다시 한번 청혼을 하게 되고, 편견이 사라진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청혼을 받아들였단다. 빙리도 다시 제인과 다시 만나 그들도 좋은 커플이 되었어.

….

오만에 사로잡혔던 다아시. 편견에 사로잡혔던 엘리자베스. 그들은 오만과 편견의 허물을 깨고 사랑이라는 결실을 얻게 되었구나. 이 소설이 오랫동안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자기 주장 강한, 시대를 앞서간 엘리자베스의 매력 때문 아닌가 싶구나. 사람 관계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오만과 편견이 아닌가 쉽구나. 자신도 모르게 오만함을 갖게 되고, 편견을 가지고 남들을 평가하는 경우가 있어. 그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처음에는 별로였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중에 진면목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제인 오스틴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20여년 전에 본 영화 <오만과 편견>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시간을 한정되어 있고 보고 싶은 소설, 영화들은 많고독서 편지 쓰는 시간이라도 줄여봐야겠구나.

그래서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사람들은 돈이 많은 미혼 남자는 당연히 신붓감을 찾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책의 끝 문장: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더비셔에 데리고 와서 두 사람이 맺어지는 계기를 만들어 준 사람들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결혼을 잘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네 방법도 나쁘지 않아. 어떻게든 돈 많은 남편을 구하겠다든지, 시집을 꼭 가야겠다고 결심했다면 나라도 그런 방법을 택했을 거야. 하지만 언지의 감정은 그런 게 아니야. 언니는 계획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게 아니거든. 언니는 지금 자기가 그 남자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 건지, 그런 감정이 바람직한 건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단 말이야. 언니가 그 남자를 안 지 고작 보름밖에 안 됐어. 메리턴에서 그분과 네 번 춤을 추었고, 그 사람 집에서 아침에 한 번 본 적이 있고, 그 후로 네 번인가 같이 식사를 했지. 그 정도로 언니가 그 남자를 파악할 수는 없는 거잖아." - P44

사실 제겐 배려심이 부족합니다.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기엔 너무 고집이 세죠. 저는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동이나 부족한 점을 빨리 잊지 못합니다. 저에게 무례한 사람들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죠. 그런 감정을 없애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더군요. 저는 남을 잘 용서하지 못하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한번 잘못 본 사람은 끝까지 좋아할 수가 없으니까요." - P106

숙모, 정말 너무 기뻐요! 숙모는 제게 새로운 활기와 생기를 선사해 주셨어요. 절망과 우울은 이제 그만 안녕을 고해야죠. 바위와 산 같은 자연에 비하면 남자 따위는 하잘것없는 존재예요. 정말 멋진 여행이 될 거예요. 우리는 자기가 무얼 봤는지 제대로 설명도 못하는 여행자는 되지 말아요. 우리가 갔던 곳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훤히 꿰고 있어야 해요. 호수와 산과 강이 머릿속에서 마구 뒤엉키게 해서는 안 돼요. 어느 곳의 경치를 묘사할 때도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면서 말씨름을 해서는 절대 안 되죠.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기감정에 빠져서 지루한 여행담으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그런 여행자가 되면 절대 안 돼요." - P271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전 그런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협박에 겁먹어서 부당한 일에 응하지는 않습니다. 영부인께서는 다아시 씨가 따님과 결혼하기를 바라시지만, 제가 원하시는 확답을 드린다고 해서 두 사람의 결혼 가능성이 커지는 건 아니겠죠. 그분이 제게 마음이 있으시다면, 제가 그분의 청혼을 거절했다고 해서 따님에게 청혼을 할까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영부인꼐서 제게 이런 부탁을 하시는 것부터 상식에 어긋난 일이고 더욱이 그런 부탁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도 전혀 설득력이 없군요. 제가 이런 논리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저를 대단히 잘못 보신 겁니다. 조카분께서 영부인이 이 문제에 관여할 권리는 분명 없으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부디 더 이상 이 문제로 절 괴롭히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 P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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