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그러니까 내 말의 포인트는 이거야. 인간은 자꾸 동물을 인간화시키려고 해. 그것도 자기와 친한 동물들만. 그러면서도 인간의 동물화는 참지 못하는 게 또 인간이야. 그러니까 개만도 못한 인간, 돼지 같은 인간, 이런 말에 심한 모욕을 느끼잖아. 나는 말이야. 그게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 무언가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수치심과 모욕을 느끼게 하는 거. 내 말 이해했어?”


(470)

물론 왕세자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프랑스가, 나폴레옹이, 도무지 자신을 왕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었다. 스페인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총사령관 뮈라 장군에게(그는 나폴레옹의 매제이기도 하다) 소식을 넣었으나, 그는 새 국왕을 예방하러 오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핀토 마을로 프랑스군을 보내 모든 도로의 출입을 막아버렸다(그게 어디 뮈라 개인의 뜻이었겠는가!) 아란후에스 별궁에 갇혀 있던 카를로스 4세 국왕은 양위 각서는 모두 무효라고 선언했고(아들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서명했다고, 이래서 자식 교육이 중요한 것이라고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일주일 넘게 핀토 마을에 잘(?) 갇혀 있던 고도이의 호벅지 상처는 차츰차츰 아물고 있었다(고도이는 프랑스군의 호위를 받으며 핀토 마을에서 비야비시오사 마을로 옮겨졌다. 그곳은 고도이의 영지이기도 했다). 왕세자는 분노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나폴레옹의 뜻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추리에 골몰했지만 쉬이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당연히 그럴 수밖에.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할 줄 아는 게 부모에 대한 반항이 전부인, 그저 그런 애새끼에 불과했다).


(511)

박유정은 루시를 집 앞마당 양지바른 텃밭에 묻었다. 루시를 묻고 있는 동안 루시의 자손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녀 옆에 서서 구경했다. 어린 강아지들은 까불거리며 서로 쫓고 쫓으면서 담벼락 근처에서 뛰어놀았지만, 이젠 나이가 들어버린 자두와 가을이, 보름이는 가만히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녀는 루시를 다 묻은 후, 그 옆에 작은 동백나무 하나를 심었다. 그 나무가 루시의 묘비가 되어주었다. 누군가의 묘비를 세워주는 일. 박유정은 그것이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누군가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기억하는 것이 사람의 책이라고. 그녀는 계속 그 일을 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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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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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제작년 10월 기분 좋은 충격을 주었던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또 일년이 지나 작년 10월 새로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는데 처음 들어보는 작가가 받았단다.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너 라슬로라는 분인데, 그의 대표작들을 둘러봐도 모두 처음 보는 책들이란다. 제작년에야 우리나라 작가가 받아서 잘 아는 작가가 받은 거지, 아빠에게 노벨문학상은 원래 숨어있는 진주 같은 작가가 받는 상이었단다. 대부분이 처음 들어보는 작가가 상을 받았으니 말이야. 그리고 그 작가들의 대표작을 한두 권씩 읽어보고 좋아하게 되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아빠 취향이 아닌 작가들도 있어서 한 권으로 끝나는 작가들도 있었단다.

작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라슬로의 책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알마 출판사라는 곳에서만 출간을 해 왔는데, 이렇게 노벨문학상을 탔으니 뿌듯하겠구나. 아빠도 라슬로의 대표작 한 권을 읽어보고자 산 책이 바로 오늘 이야기해 줄 <사탄탱고>라는 책이란다. 사탄과 탱고라는 단어가 뜻으로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소리 내어 읽어보면 제법 어울리는 것 같았어. 탱고의 한 장르처럼 들리기도 했단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에 소개되었지만, 1985년에 쓴 작품이란다.

이 소설을 잘 이해하려면 1985년 헝가리 사회를 알면 좋단다. 아빠도 자세히 모르지만, 상식으로는 1985년 헝가리는 아직 소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절이고 공산주의 사회로 들어선지 반 세기 가까이되던 시기란다. 1990년부터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주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으니, 그보다 5년 전인 1985년은 공산주의 체계의 붕괴 조짐이 점점 눈에 띠던 시절이 아닐까 싶구나. 그런 것을 생각하고 소설을 읽으면 좋을 것 같구나.

이 소설은 오래 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러닝타임이 일곱 시간이 넘어간다고 하는구나. 소설이 박진감 넘치는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데 7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었다니 잠 안 올 때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 그래도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은 들더구나. 그런데 어디서 볼 수 있으려나.

 

1.

이 소설에는 등장인물들이 많이 나오는데다 이름들도 헝가리 이름이라 익숙지 않았단다. 그래도 아빠가 이해한 수준에서 이야기를 해 볼게. 원래 노벨문학상 작가의 책들은 어렵다는 전제를 깔고 읽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읽을 만 했단다.

, 그럼 시작해보자. 헝가리의 어떤 시골에 있는 집단농장에서 이야기에서 시작한단다. 후터키라는 사람이 슈미트 부인과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단다. 그런데 외출했던 슈미트가 예상보다 빨리 집에 돌아오는 것이야. 아직 후터키와 슈미트 부인은 침대에 있는데 말이야. 후터키는 잽싸게 집밖으로 나가서 정문 쪽으로 오면서 자신도 이제 슈미트의 집에 도착한 것처럼 슈미트에게 인사를 했단다. 그런데 슈미트가 뭔가 숨기려는 분위기였지. 눈치 빠른 후터키는 슈미트가 돈을 몰래 빼돌리려는 것을 알았지. 슈미트는 크라네르와 함께 어디선가 받아온 돈을 가지고 그곳을 도망가려고 했는데 후터키에게 걸린 거야. 이제 어쩔 수 없이 돈은 셋이 나눠 갖기로 했단다.

….

이 소설의 중요 장소 중에 마을에 있는 술집이 있단다. 술집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이상한 소문에 소란스러웠어. 1년 반 전에 죽은 줄 알았던 페트리너와 이리미아시가 마을에 나타났다는 거야. 슈미트 집에 크라네르 부인이 찾아와 그 소문을 알려주어 슈미트와 후터키도 술집에 가려고 했단다. 페트리너와 이리미아시가 어떤 사람이길래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관심을 가질까.

페르리너와 이리미아시는 어떤 정부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들 같았어. 어떤 대위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사람들처럼 보였어. 그들은 일 년 반 전에 그 마을을 떠나면서, 어떤 소년에게 부탁을 해서 자신들이 죽었다는 소문을 내달라고 했단다. 아빠는 분명 소설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메모해서 너희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맞는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왜 그런 행동들을 하는 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았단다. 아빠가 캐치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일단, 계속 이야기를 해 볼게.

이 마을은 대부분이 노동자들만 있었는데, 의사가 한 명 있었단다. 그런데 지금은 정직 당한 의사였어. 이 의사는 정리정돈을 철저하게 하는 사람이야. 물건들의 거리들까지 간격을 맞춰 정리하는 스타일이야, 어떤 스타일인지 알겠지? 의사는 마을 사람들의 행동을 세심히 관찰하여 기록까지 했단다. 예를 들어 후터키와 슈미트가 우왕좌왕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그대로 기록으로 남겼단다. 아마 소설의 첫 장면에 나왔던 후터키가 뒷문으로 나가서 정문으로 오는 것도 그의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을까 싶구나. 그런 의사이지만 자신의 집안일은 전혀 하지 않았어. 크라네르 부인이 가끔 와서 의사의 집안일을 해주었어. 의사는 철저한 정리정돈을 하는 사람이지만, 그와 맞지 않게 술을 엄청 마셔댄단다. 거의 알코올중독자 수준이었어. 그 술 때문에 정직을 당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

마을은 전체적으로 암울하고 가난하고 무엇인가 늘 부족하고 어두운 그런 분위기였단다. 일자리도 없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장사도 잘 안되고…. 그렇다고 그런 마을을 당국에서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어. 각자도생이 필요하지만 자포자기한 사람들이 사는 곳, 그곳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을이란다. 혼자 지내는 호르고시 부인에게는 네 명의 아이들이 있단다. 그 아이들도 먹고 살기 쉽지 않았어. 다 큰 첫째와 둘째 딸은 방앗간에서 몸을 팔며 돈을 벌었지만, 그마저도 수입이 거의 없었어. 아들 서니는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하며 돈을 벌었고 꾀도 좀 있었단다. 일년 반 전에 페트리너와 이리미아시가 죽었다고 소문을 낸 것도 서니가 돈을 받고 한 것이란다.

호르고시 부인의 막내딸은 에슈티케는 주로 혼자 놀았단다. 보살펴 주는 사람도 없어 언니들과 오빠들도 에슈티케에게 관심이 없었어. 집에서 식구들에게 무시만 당한 에슈티케는 가족들 몰래 다락방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곳이 가장 좋았어. 가끔 오빠인 서니가 와서 괴롭혔지만서니는 에슈티케에게 돈을 심으면 나무처럼 자라난다고 거짓말을 해서 에슈티케의 돈을 빼앗아 가기도 했어. 에슈티게는 혼자 놀다가 오빠가 알려준 천국에 가는 방법이 생각났어. 쥐약을 먹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오빠의 말을 그대로 믿고 에슈티케는 실행에 옮겼단다. 에슈티케는 그것이 죽는 것이 아니고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믿었고, 천국에 가서 오빠를 도와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야.

 

2.

날씨가 궂은 어느 날, 술집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어. 술집에 모여 든 사람들은 이리미아시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걱정들을 하면서 이야기를 했어. 왜 그들은 이리미아시에 대해 걱정을 할까, 궁금하구나. 술집에 슈미트 부인도 왔어. 슈미트 부인은 상당한 미모를 가지고 있어서 마을의 모든 남자들이 좋아했어. 어떻게 하면 잠자리를 같이 할까 궁리들을 했어. 슈미트 부인이 술집에 온 것은 이리미아시가 살았다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서야. 다른 사람들은 이리미아시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기대했는데, 슈미트 부인도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기쁜 마음을 감추고 있었어. 사실 슈미트 부인은 이리미아시와도 몰래 사랑을 나누었거든그리고 슈미트 부인을 만족시켜준 유일한 사람이었고

술집에는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모였어. 그들은 술을 먹고 탱고를 추기도 했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남자들은 대부분 슈미트 부인과 춤을 추려고 했고 그보다 더한 것을 원하는 듯했어. 술집 주인도 슈미트 부인이 외투를 벗게 하려고 평상시 아끼던 난방도 빵빵하게 틀어댔고, 결국 목표도 달성했지. 그들이 그렇게 술집에 모여 있는 것은 이리미아시를 기다리는 것 같았어. 이쯤 되니 이리미아시는 단순한 소설 속 인물 같지가 않고, 지은이가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것 같았어. 예를 들어 과거 헝가리의 영광 같은 것 말이야. 피폐해진 마을을 다시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 그가 죽지 않고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 같았어. 그렇게 소설의 1부가 끝이 났단다.

 

3.

2부는 특이하게 챕터의 순서가 6부터 거꾸로 내려오게 배치했단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작가가 그렇게 구성한 의도는 잘 모르겠더구나. 술집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잠들기 시작해서 모두 잠들었단다. 그리고 얼마 후 드디어 그가 왔단다. 이리미아시.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서 그를 반겼어. 이리미아시는 그들에게 연설을 하기 시작했어. 이리미아시의 연설은 어젯밤 헛간에서 발견한 소녀의 시신 이야기부터 시작했단다. 이리미아시는 에슈티케의 시신을 발견한 거야. 아무에게도 관심도 받지 못하고 보호받지도 못한 소녀의 죽음은 자살의 형태를 띠었지만 그것은 타살이나 마찬가지라고 했어.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했지. 자신이 떠난 후 이 마을은 몰락되었다고 비판하면서도 앞으로 희망을 이야기했단다. 그들에게 이곳 시골을 떠나 새로운 정착지에서 시범경제를 해보자고 했단다. 모두에게 일정한 수입을 보장할 수 있고, 서로 힘을 모아 살아갈 수 있다고 했어. 그러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단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투자금이 필요하다고 했단다. 그리고 모인 돈 일부는 에슈티케의 장례비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를 투자금으로 사용하자고 했단다.

이리미아시의 연설은 모두에게 호응을 얻어서 마을 사람들은 몇몇만 빼고는 모두 길을 떠나기로 했단다. 이리미아시가 이야기한 곳은 알마라는 도시인데,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곳으로 떠났단다. 지은이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책들을 꾸준하게 번역출판한 출판사 이름이 알마라고 했는데, 이 소설에 나오는 도시 이름을 따서 지은 것 같구나.

그들은 수레에 짐을 잔뜩 싣고 출발을 했는데, 가다가 누군가 의사이야기를 했단다. 의사에게 자신들이 떠난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이야. 자신들이 없으면 의사는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이미 떠나온 이상 돌아갈 수 없었어. 사람들은 길을 가면서 서로 시기하는 일도 생기고 불만들이 쌓이기 시작했어. 그들은 이리미아시와 만나기로 한 곳에 도착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이리미아시가 오지 않았어. 그들은 이리미아시에게 속은 것은 아닌가 의심을 하기도 했어. 그리고 그것이 서로 상대방의 책임이라서 고성을 오가며 싸우기도 했단다. 그 때 이리미아시가 도착을 했단다. 싸우던 사람들만 민망하게 되었지.

이리미아시는 다시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어. 자신이 세웠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면서, 당분간 뿔뿔이 흩어져서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어. 사람들은 속으로 의심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돌아갈 마을도 없고 이리미아시를 믿을 수밖에 없었어. 이리미아시가 준비한 트럭을 타고 그들은 어떤 역광장에 내려서 각자 새로운 일자리를 소개받고 뿔뿔이 흩어졌단다. 그들이 전재산을 털어 모아둔 투자금은 이리미아시가 가지고 도망을 갔단다. 과거의 영광을 다시 오게 할 희망인줄 알았던 이리미아시는 결국 한낱 사기꾼이었던 거야. 그리고 정보원이기도 했어. 이리미라시와 페트리너는 정보원으로 주민들을 감시하여 상위에 보고하는 사람들이었어.

의사 이야기를 좀 해야겠구나. 의사는 술먹고 쓰러져서 몇 주간 병원에 입원했다가 마을로 돌아왔어. 마을에 오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 의사는 마을 사람들을 관찰하여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없어졌으니 어쩌나, 잠시 걱정하다가 어차피 그의 공상으로 쓸 수 있다면서 다시 관찰 일기장을 펼쳤단다.

….

이렇게 소설이 끝이 났단다. 그들이 소설 중간에 잠시 가졌던 희망이 꽃을 피웠으면 좋았겠지만, 1985년 무너져가는 공산주의 국가 헝가리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어. 앞서 이야기했지만 소설이 술술 읽히는 것은 아니고, 소설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낯설어서 아빠가 소설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는 않지만, 지은이가 공산주의 사회를 비판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소설을 읽고 나니, 이 소설로 영상화한 7시간 짜리 <사탄탱고>영화가 더 궁금해지는구나. 어떻게 영상으로 옮겼는지 한번 보고 싶은데, 일단 어떻게 볼 수 있는지 함 찾아봐야겠구나. 올해는 어떤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탈까. 작년에 유럽 남성 작가가 받았으니, 올해는 비유럽 여성 작가가 받으려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어느 시월의 아침 끝없이 내릴 가을비의 첫 방울이 마을 서쪽의 갈라지고 소금기 먹은 땅으로 떨어질 즈음(이제 첫서리가 내릴 때까지는 온통 악취 나는 진흙 바다가 펼쳐져 들길로 다니기도, 도시로 가기도 어려울 터이다), 후터키는 종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책의 끝 문장: 하지만 움직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그 또한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았는데, 돌연 주위의 말 없는 물건들이 신경을 건드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제가 스무 살이 넘은 건 아시죠. 제 동생도 곧 스물이 되고요. 이러고만 살 수는 없어요. 박사님이 오시기 전에 그 얘기를 하던 참이었어요. 저희는 얼마나 돈을 모을 수 있었을지? 상상이 되세요? 사람이라도 죽일 것 같은 기분이예요. 정말요!" - P108

애매하게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야말로 근근이 버티고 계시다는 사실 말이지요. 이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되면 아니라고 하십시오! 벌써 몇 년 전부터 여기 세상의 끝, 이 가망 없는 지역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생계를 꾸려보자고 하지 않았던가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1년 반 전에 보고 헤어질 때, 여러분은 술집 앞에 모여서 저희가 길을 꺾어 들어 보이지 않게 될 때가기 손을 흔들어주셨지요. 아직도 기업이 납니다. 그때 여러분들은 아이디어가 넘쳐났고 멋진 계획들과 충만한 의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보는 여러분은 그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더 남루해지고, 이런 제 표현을 용서하십시오. 이전보다 더 어리석어졌습니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요? - P241

불행한 나의 친구들이여. 여러분이 무릎을 꿇고만 이 고난이란 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우리의 친구 후터키 씨가 거듭 말하듯이 부스러진 회벽, 내려앉은 지붕, 무너진 담당, 닳아버린 기와 따위가 같은 겁니까? 아니면 그보다는 깨진 환상, 암담해진 전망, 쇠약해진 무릎, 의지력의 쇠퇴 같은 것을 떠올려야 할까요? 제가 가혹하게 표현한다고 해서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하게 말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점잔 빼고 소심하게 굴며 전전긍긍하는 것은 모든 것을 더 나쁘게 만들 뿐입니다. - P250

"자, 너무 가슴에 담아두지 마세! 보다시피 다 좋은 쪽으로 해결 나지 않았는가…"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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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홈즈
전건우 지음 / 몽실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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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유쾌한 소설 한 편을 이야기해줄게. 유쾌하다고는 하지만 살인도 벌어지고, 살벌한 결투도 벌어지는 하드 코어 요소도 담겨 있다고 해야겠구나.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함과 유머 감각은 유지한 소설, 전건우 님의 <살롱 드 홈즈>라는 소설이란다. 책표지 또한 그럼 유쾌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단다. 한참 전에 우연히 인터넷 서점에서 알게 되어 구입한 책인데, 이제서야 읽었단다. 그 사이에 이 소설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그 드라마는 보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화끈하고 시원하고 유쾌한 드라마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이 든단다. 지은이 전건우 님은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다른 작품들도 함 찾아 읽어봐야겠구나.

 

1.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한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주부탐정단의 활약을 그린 소설이란다. 추리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읽다 보면 배후 세력이 어떤 사람인지 추측이 되긴 하지만 문제되지는 않는단다. 주부탐정단이 어떻게 범인을 잡아가는지 초점을 맞춰 있으니까

주인공 공미리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남편을 죽이는 꿈을 자주 꾸지만 아주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았어. 공미리의 남편은 축구 중계에 미쳐 가정생활을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란다. 그러니 공미리가 남편을 죽이는 꿈을 자주 꾸지. 공미리는 어렸을 때부터 추리 소설을 즐겨 있고 탐정이 꿈이었는데, 지금은 우울증에 걸린 아줌마로, 가끔씩 병원에 다닌단다. 얼마 전부터 옮긴 병원의 신경정신의 박도진의 상담을 받고 많이 좋아진 것 같았어.

공미리는 추경자, 박소희 등과 함께 전지현이 운영하는 광선 슈퍼에서 자주 모인단다. 그들은 광선 슈퍼에서 부업으로 곰인형의 눈을 붙이는 일을 하곤 했어. 나이 순으로 보면 전지현, 추경자, 공미리, 박소희 이런 순이란다. 추경자는 남편이 경찰이라서 그런지 좀 과격하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박소희는 일류대학교에 합격했다가 못된 놈을 만나 임신을 하여 학교를 중퇴하고 미혼모로 부모님이 있는 광선아파트로 돌아온 거야. 아이 아빠는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내뺐다고 하는구나.

최근에 아파트 단지에 출몰하는 성추행범이 골칫거리였어. 그런데 그 놈의 물건이 작다고 하여, 쥐방울이라는 별명이 생겼어. 경찰에 신고를 해도 강력범죄가 아니니까, 크게 신경도 쓰지 않았어. 그래서 공미리는 우리들이 잡아보자고 제안을 했고, 다른 이들도 모두 오케이를 했단다. 그렇게 주부탐정단이 출범했단다.

주부탐정단은 아파트 경비인 김광규에게 도움을 요청했단다. 김광규로부터 쥐방울 피해자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어. 피해자들이 여자이다 보니, 같은 여자들에게 이야기를 더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공통적으로 쥐방울에게서 흙냄새, 꽃냄새가 났다고 했단다. 주부탐정단이 쥐방울의 행적을 쫓는다는 소문이 나자, 어떤 아주머니부터 연락이 왔어. 이십 대인 딸이 있는데 이틀째 소식이 없다면서 말이야. 경찰은 이십대 여자가 이틀째 소식이 없는 것은 늘쌍 있는 일로 치부했지만, 자신의 딸을 가장 잘 아는 엄마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 딸은 퇴근 후 헬스장에 갔다고 나간 뒤로 연락이 끊겼다고 했어.

이건 그 동안의 쥐방울의 행적도 좀 다르긴 했지만, 성추행범들은 점점 과감해지고 강도가 세어진다는 통계로 봤을 때 피해자를 납치해서 더 심한 짓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 주부탐정단은 역할을 분담하여 공미리와 추경자는 탐문 수사를 맡았고, 박소희와 전지현은 CCTV를 담당했단다. 그들의 이런 활동은 당연히 남편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무시를 받았단다. 그래서 남편들이 출근하고 나서 모여서 조사를 했어. 공미리는 신경정신의 박도진에게 이 사건에 대한 조언을 받을 수 있었지.

 

2.

소설은 중간중간 범인의 일인칭 시점의 글들이 있단다. 쥐방울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읽다 보면 쥐방울이 아닌 살인범의 이야기했단다. 광선아파트에 쥐방울보다 더 살벌한 싸이코패스가 있었던 거야. 이 싸이코패스는 단독 범행을 저지르고 있는 듯 보였지만, 그를 뒤에서 코칭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어. 그리고 그 사람의 정체는 얼마 안 가서 드러나게 된단다.

경비원 김광규는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잘려진 사람 손과 스마일 배지가 들어 있는 검정색 비닐봉지 발견한단다. 스마일 배지는 몇 달 전 경기 남부에서 일어났던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일명 스마일맨의 상징이었단다. 며칠 동한 잠잠했던 살인사건이 이번에 서울 광선아파트에서 일어난 거야. 스마일맨의 특징은 시신을 유기하지만 머리는 버리지 않는 특징이 있었단다. 자신의 집이나 별도의 장소에 피해자들의 머리를 모아 놓았을 것이라는 것이 경찰들의 분석이었어.

이번 범행도 마찬가지였단다. 잘려진 손이 발견되고 얼마 안되어 나머지 시신도 발견했단다. 피해자는 앞서 이야기했던 헬스장에 갔다가 실종된 이십 대 여성이었어. 쥐방울 사건은 이제 사건도 아닌 것처럼 보였어. 주부탐정단의 타겟은 스마일맨이었단다. 그런데 그 시신이 발견된 날 주부탐정단의 막내 박소희가 실종되었어. 공미리와 전화통화 중에 갑자기 끊긴 전화와 함께이번 소행도 스마일맨이라고 생각했어. 공미리를 비롯한 주부탐정단은 이제 남 이야기가 아니었단다. 박소희를 죽이기 전에 스마일맨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어. 공미리와 추경자, 전지현은 범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단다.

그 와중에 자신이 스마일맨이라면서 자수를 했다는 소식이 대서특필되었어. 경찰도 그를 범인으로 단정짓고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했어. 그런데 그 사람이 공미리도 다니는 미소신경정신과의 박도진 의사의 환자였단다. 우연일까? 아니면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일까. 공미리는 이 자수범을 알아 보고 경찰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경찰은 공미리의 말을 믿지 않으려고 했단다. 스마일맨이 자수를 했다고 생각한 경찰은 더 이상 수사를 하려고 하지 않았지.

주부탐정단은 이제 그들끼리 진짜 범인을 찾아야 했어. 그들은 아파트 경비 김광규의 도움을 받아서, 스마일맨이 광선아프트 6 101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범인과 쫓고 쫓기고, 혈투까지 하게 된단다. 범인 뿐만 아니라 배후에 인물이 아주 잘 알고 있던 사람이라는 것까지 밝혀내게 되지. 그리고 박소희도 구할 수 있었어.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범인은 자주 등장하지 않아서 예측하기 쉽지 않았지만, 범인을 배후에서 조정한 이는 쉽게 예상이 가능했단다. 그래도 소설은 나쁘지 않았어.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 각색되었을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 긴 드라마를 볼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김박복 할머니는 그날 밤 악마를 만났다.

책의 끝 문장: “살롱 드 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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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폴 오스터 : 항상 손으로 글을 씁니다. 대개 만년필을 쓰지만 종종 연필도 씁니다. 고쳐 쓸 생각이 있을 때는 연필로 쓰지요. 타자기나 컴퓨터에 직접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자판은 제가 글을 쓰는 것을 늘 방해합니다. 자판 위에 손가락을 얹으면 명징하게 생각할 수 없어요. 그런 점에서 펜은 훨씬 더 원시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말이 몸에서 흘러나오고, 그 말들을 종이에 새겨넣는 과정을 느끼는 것이지요. 늘 글쓰기는 촉각적인 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육체적인 경험이라고 해야겠지요.


(156-157)

폴 오스터 : 저는 항상 스스로에게 되돌아가는 책에 이끌렸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를 책의 세계로 이끌어간 책에 이끌렸습니다. 비록 그 책이 저를 세상으로 데려가긴 했지만요. 말하자면 원고 자체가 주인공인 셈이지요. <폭풍의 언덕>은 그런 종류의 소설입니다. <주홍 글씨>는 또 다른 예입니다. 물론 틀은 허구적이지만 그것은 이 이야기들에 근거와 신빙성을 줍니다. 전통적인 형식의 이야기들은 작품을 실제라고, 이 소설에 사용된 틀은 작품을 환상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그리고 일단 소설 속에 일어난 사건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만들면, 그 비현실성이 역설적으로 이야기의 진실성을 높입니다. 말들은 보이지 않는 작가인 신에 의해 돌 위에 새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과 피를 가진 사람들의 노력을 재현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매우 매혹적입니다. 독자는 이야기에서 거리를 두고 관찰하기보다는 이야기 전개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다.


(177-178)

폴 오스터 : 잘 모르겠네요. 이제 저는 오십 대에 접어들었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하더라고요. 신간이 훌쩍훌쩍 흘러가 버리기 시작하고, 살아온 삶이 남은 삶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몸이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하고, 전에 통증을 느끼지 않던 부위에 통증과 고통을 느끼게 되고, 사랑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했어요. 나이가 오십 쯤되면, 우리 모두는 귀신에 씌인 것처럼 살게 되지요. 귀신이 우리 안에 살면서, 산 사람들에게 하는 것만큼 죽은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요. 젊은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스무 살 먹은 젊은이라고 해서 자신이 죽을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사람의 죽음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요. 자신에게 이런 상실이 계속해서 쌓이는 것을 직접 겪기 전까지는 그런 일들이 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인생은 너무나 짧고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알 수 없지요. 결국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정말로 사랑하는 걸까요? 정말로 몇 사람뿐이겠지요. 몇 명 되지 않을 거예요. 이 사람들이 대부분 죽고 나면 당신의 내적 세계의 지도는 변할 겁니다. 제 친구 조지 오펜은 늙는 것에 대해 제게 어린아이가 늙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기인한 일인가.”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228)

이언 매튜언 : 저는 종종 모든 문장이 그 자체의 과정에 희미한 해설을 담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 느낌이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당신이 이 느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기껏해야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지시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며, 언어가 한 사람의 정신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정신으로 생각과 느낌을 전달할 때 언어의 감각적이고 정신에 감응하는 능력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279)

필립 로스 : 일반 독자에게요? 소설은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지요. 기껏해야 작가는 독자들이 책을 읽는 방식을 바꿀 뿐입니다. 이것이 제가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또한 충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소설을 읽는 것은 깊고 독특한 기쁨이며, ()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정치적 정당화를 요구하지 않고 흥미롭고 신비로운 인간 활동입니다.


(348)

레이몬드 카버 : 좋은 소설은 부분적으로는 한 세상의 소식을 다른 세상으로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그 목적 자체로 훌륭해요. 하지만 소설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거나 어떤 사람의 정치적인 입장을 바꾸거나 혹은 정치체제 자체를 바꾸거나 고래나 레드우드 나무를 구하거나 하는 것은 못합니다. 당신이 이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말이에요. 그리고 소설은 이런 어떤 것과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소설은 단지 그것에서 얻는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뭔가 지속적이고 오래하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읽는 데서 오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지요.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이런 불꽃을 쏘아 올리는 어떤 것이랍니다.


(37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글쓰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조심스럽게 행해지는 일은 모두 다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글쓰기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란 저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요구하는 편입니다. 완벽할 때까지 글을 써야 하는 것 역시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종종 과대망상증에 걸려 있어서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이며 또한 사회적 양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숭앙하는 것은 아주 잘 마무리한 글입니다. 여행을 할 때 조종사가 작가로서의 제 수준보다 나은 수준의 조종사라는 것을 알게 되면 무척 기쁩니다.


(384-38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주요한 이유는 명성이 개인적인 삶을 침해아기 때문입니다. 명성은 친구들과 같이 있는 시간,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가지요. 명성은 사람들을 진짜 세계로부터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을 계속 쓰기를 원하는 유명한 작가는 명성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야만 합니다. 진심으로 들리지 않을 테니 정말로 말씀드리고 싶지 않지만, 명성이라거나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과 관련한 많은 일을 겪지 않도록, 제가 죽은 뒤에 제 책이 출판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제 경우에 명성과 관련한 유일한 이점은 명성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명성은 상당히 불편합니다.  문제는 하루 24시간 내내 유명하기 때문에, ‘, 난 내일까지 유명하지 않을 테야.’라거나 단추를 누르면서 난 지금 여기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422)

어니스트 헤밍웨이 : 맞습니다. 만일 작가가 관찰하는 것을 멈춘다면 그는 끝장난 것이지요. 그러나 의식적으로 관찰할 필요는 없으며 관찰한 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을 거예요. 그러나 나중에는 그가 관찰하는 것 모두가 그가 알고 있거나 본 것들로 이루어지는 거대한 자산이 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항상 빙산의 원칙에 근거하여 글을 쓰려고 애썼습니다. 빙산은 전체의 8분의 7이 물속에 잠겨 있지요.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안 쓰고 빼버린다 해도, 그것은 빙산의 보이지 않는 잠겨 있는 부분이 되어 빙산을 더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작가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여 안 쓰는 것이라면 이야기에는 구멍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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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 기대도 받고 논란도 일으키고 있지만 이 사업으로 인해 드디어 우리나라 농어촌에도 숨통이 트이고 희망이 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우리 농어촌은 역사 이래로, 특히 산업화 이래 소외와 착취와 배제의 대상이었다. 2000년 이후 본격적인 농어업, 농어촌 정책들이 추진되었지만 성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컸던 제 사실이다.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농어촌지역은 인구감소가 더욱 격화되어 감소를 넘어 인구 멸절의 상황에 접어들고 있다. 농어촌의 소멸은 단순히 인구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류의 생명과 지속성의 소멸을 의미한다. 농어촌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는 인류의 생존은 지속될 수 없다. <녹색평론> 발행인이자 기본소득론자였던 고 김종철 선생님이 평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런 일을 하는 농부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14)

부동산 세제에서 가장 중요한 세금은 무엇일까? 보유세다.왜냐하면 보유세가 지대(임대) 수입을 일정부분 환수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부동산 가격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시세차익의 규모를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양도소득세를 높이는 경우에는 투기목적으로 보유한 부동산을 안 팔고 버틸 수 있고, 또 가격 상승기에는 가격을 떠넘길 수 있지만, 보유세를 강화하면 버티기도, 떠넘기기도 불가능하다. 보유세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한데, 그러나 2023년 현재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5%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0.33%의 절반 이하이며, 30개중 중에서 20위에 머물러 있다. 상위권 국가들(이스라엘 1.24%, 그리스 0.94%, 미국 0.83%)과 비교하면 5~8배 현저한 격차를 보인다.


(18)

국민주권정부인 이재명 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만든 정부인가. 인류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항쟁, 길게 보면 3, 짧게는 6개월 동안 더위와 추위, 비바람을 무릅쓰고 광장으로 나온 위대한 주권자 국민들의 항쟁으로 만든 정부다.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에 놀라워하고 부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에게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야 한다. 그래서 부동산이다. 당장 큰 변화가 없더라도 국민들에게 이렇게 몇 년 지나면 나도 주거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구나하는 전망을 줘야 한다. 그래야 청년과 신혼부부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지방도 살아날 수 있다.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면 한국사회의 수많은 개혁과 추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부동산 문제 해결에 나라의 존망이 걸려 있다고.


(20)

초고령사회 문턱을 넘은 대한민국에서 나이 듦은 더 이상 소수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마주한 거대한 질문이 되었다. 그 질문의 한가운데에 노인은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자리한다. 시가 8억이 넘는 아파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노인의 비극은, 이 질문이 단순히 주거빈곤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은 가졌을지언정,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된 채 고립된 삶은 존엄한 노후라 부를 수 없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고령 1인 가구는 급증하고 있으며, 이들의 일상은 외로움과 돌봄 공백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48)

앞으로 수년 이내에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세계의 환경을 과열시킴으로써 불러온 위기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가 우리에게 닥쳐올 때, 인류는 다만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지난 500년 동안 지구를 지배해온-그리고 기후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인-정치와 경제 시스템을 둘 다 포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자본주의와,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성정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근본원리, 그리고 이것을 지지하고 보호하는 국가시스템은 물러나고, 규모가 작고 오염을 일으키지 않으며 공격성이 없는 사회들로 구성된 세계가 들어서야 할 것이다. 이 사회들은 자원을 많이 소비하지 않고, 인간적인 규모의 자치정부로 유지될 수 있다.


(63-64)

이렇게 인류 대다수가 바라는 일을 어찌하여 각국을 대표하는 자들이 모인 국제회의는 의결하지 못하는 것일까. 기대와 결과의 간극은 충격적일 정도로 크다. 지구 주민들은 이미 지구의 이익이라는 원리를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발언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이 있는가? 가끔 실시되는 여론조사 외에 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가? 아무 데도 없다! 그러니까 다자주의 외교가 기후에 관한 대화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편파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재계나 산업계는 물론이고, 큰 시민사회단체들도 COP 협상가들과 만날 기회가 있지만 수십억 명의 보통사람들은 바로 자기자신의 미래가 달린 문제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82)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트럼프의 이번 결정이 즉흥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APEC 회의가 열리기 전인 8월에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한미 정상회담 주의제는 관세협상이었으나, 어쩌면 그보다 더 중대했던, 관세협상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 것은 한국 핵잠수함 건조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 관한 합의였을 가능성이 있다. 관세협상이 타결됨으로써 핵잠수함 승인과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가 타결됨으로써 관세협상도 마무리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93)

이스라엘은 2025 9 9일 사전 통보도 없이 하마스 지도부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카타르 수도 도하 소재의 하마스 건물을 탄도미사일로 공격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카타르의 반발에 놀란 미국은 서둘러 카타르 안보 보장을 약속하였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요 비나토 동맹국으로 받아들였다. 카타르 공습이라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이스라엘은 미국의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10 8일 하마스와 기자 휴전에 합의했다. 휴전은 3단계로 나뉘어 진행 중이지만, 휴전 이후에도 가자 주민이 무려 300명 이상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113-114)

2025 11 8일 오전 10, 산황동 417번에 우리는 모였다.

청량한 산소를 내쉬는 나무들 사이에서

생명의 종을 울리기 위해.

경종이며, 다시 시작하자는 초대의 울림이다.

우리는 나무와 새, 흙과 비와 바람의 이름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다시 부른다.

민주주의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알린다.

생존 네트워크의 형제자매인 숲 생명들.

우리는 그들의 권리를 대신해

종을 들었다.

오늘의 종소리는

한 그루 나무, 한 마리 새, 한 송이 꽃, 한 조각 차돌의 소리다.

개발이라는 미명, 경제라는 사탕발림으로 생태민주주의의 목에

도끼를 대는 자들이여, 함께 살아가자.

벨 데모크라시

폭력이 아닌 울림으로,

침묵이 아닌 공명으로,

학살 방조가 아닌 생명 껴안기로,

파괴가 아닌 회복으로 세상을 움직일 것이다.

-       벨 데모크라시 선언문


(154-155)

우리가 집단적으로 인간으로서의 목적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병든 사회가 맞습니다. 인류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자기자신을 학대하고 공격하는 사람을 우리는 정신적 장애가 있다고 진단하잖아요. 우뇌가 가능하지 않는 사회는 기계적, 관료적으로 과부하가 걸리게 됩니다. 감정이나 영적 측면에 대한 이해는 극히 피상적인 것이 되고, 예술은 기괴한 모습을 띠게 됩니다. 물론 나는 지난 세기의 미술이나 음악, ()가 모두 끔찍하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내가 아는 최고의 예술작품도 그 시기에 나왔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우리의 우뇌가 기능을 아예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거예요. 비유하자면, 우리가 라디오 수신기를 하나 샀다고 해봅시다. 처음에는 신이 나서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보지만 결국 두어 개 방송밖에 안 듣게 될 거예요. 그러나 내가 수신을 하지 않는다고 다른 채널들에서 방송을 안내보내는 건 아니잖아요. 이것솨 똑같아요. 우리는 얼마든지 우뇌가 제공하는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157-158)

우뇌는 실재하는 것과 직접 접촉하지만, 좌뇌는 사물을 유형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재현합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가짜의 세계를 인식하는 거예요. 시인 워즈워스가 바로 그것을 지적했어요. 자신이 소년이었을 때에는 산들이 말을 걸었고, 폭포, , 나무와 대화할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살아있는 존재들을 그 표상이 대신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좌뇌가 지배하는 우리 문화는 우리의 인식 속에서 그런 살아있는 존재들을 모두 제거했고, 그래서 우리는 극히 빈약한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177-178)

며칠 전 서울에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탔다. 퇴근시간이어서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일이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문자만 오갈 뿐, 얼굴도 목소리도 사라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미디어가 깊숙이 들어와버린 것이다. 전화기가 발명되었을 때만 해도 얼굴은 보지 못해도 목소리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관계의 폭이 오히려 넓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자의 시대다. 과연 문자메시지가 눈빛과 온기를 대신 할 수 있을까. 관계는 약해지고 외로움은 더 깊어지고 있다. 협동은 제도나 계약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나누며 관심과 책임을 공유할 때 비로소 우리가 생긴다. 관계가 무너지면 협동도 설 자리가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복잡한 정책과 이론이 아니다. 미디어 대신 사람에게 시선을 돌릴 때, 새로운 협동의 씨앗이 싹튼다.


(194)

우리는 아이들이 그들의 삶의 테두리를 넘을 수 있게 돕고자 했다. 농촌마을과 생명, 자연의 신비로움을 되새겨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다. 가게가 없어서 간식을 사 먹기 어렵고, 문화적 혜택도 전무하며, 부모와 떨어져서 낯선 할머니 집에서 생활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아이들이 이곳에서 지내는 것을 행복해하고 도시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참새 소리에 아침을 맞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시골마을, 공동체의 진가를 오히려 도시 아이들이 농촌 주민들에게 알려주는 듯하다. 아이들은 안다. 온몸으로 느낀다. 인간의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렇게 아이들은 자유롭고 자존감 높고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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