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 혼술에서 중독까지, 결핍과 갈망을 품은 술의 맨얼굴
캐럴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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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몇 년 전에 인상 깊게 읽은 책 <명랑한 은둔자>의 지은이 캐럴라인 냅의 또 다른 대표작인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이라는 책이란다. <명랑한 은둔자> 책에서도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이라는 책에 대한 언급도 있어서 찾아보았다가 책 표지가 너무 유혹적이라서 그 유혹에 빠져서 책까지 구입하게 되었구나. 이 책은 알코올 중독에 빠진 지은이가 중독을 극복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아는데, 책 표지의 그림만 보면 오히려 술을 먹고 싶게 만다는 디자인이구나. 술 끊었던 사람도 다시 먹고 싶게 만드는 그런 사진

아빠는 어딘가에 푹 빠지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몸에도 좋지 않다는 술에 중독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단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보니 알코올 중독은 일종의 병이라는 것을 이해했단다. 물론 자신의 의지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치료가 필요한 거야. 지은이는 어쩌다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되었는가. 안타까운 것은 힘들게 알코올 중독을 치료했는데, 마흔두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폐암에 걸려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알코올 중독보다 더 시급한 것은 금연이 아니었나 싶구나.

 

1.

지은이는 자신을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라고 했어. 알코올 중독자에 여러 종류가 있나?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를 검색해 보니, 겉으로 보기에는 사회생활도 잘 하고, 직장에서도 유능하며 가정까지 잘 꾸려나가데 알고 보니 실상은 알코올 중독에 빠진 사람을 이야기하더구나. 지은이는 고등학교 이후 술을 거의 물처럼 먹었다고 했어. 자신의 손이 가는 곳에는 어디에든 술이 있었지. 지은이는 술이 안 좋다는 것을 알기에, 끊어보려고 노력하고 AA(Alcoholics Anonymous)에도 열심히 참석했어. 알코올 중독자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려는 모임이지그렇게 술을 끊거나 줄이려는 노력을 했지만, 술 먹으면 오히려 글이 잘 써진다는 등 늘 술 먹으려는 이유, 아니 핑계를 찾는다고 했어. 이는 지은이뿐만 아니라 AA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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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나는 술 마시는 느낌을 사랑했고, 세상을 일그러뜨리는 그 특별한 힘을 사랑했고, 정신의 초점을 나 자신의 감정에 대한 고통스러운 자의식에서 덜 고통스러운 어떤 것들로 옮겨놓는 그 능력을 사랑했다. 나는 술이 내는 소리도 사랑했다. 와인 병에서 코르크가 뽑히는 소리, 술을 따를 때 찰랑거리는 소리, 유리잔 속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술 마시는 분위기도 좋아했다. 술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우정과 온기, 편안하게 한데 녹아드는 기분, 마음에 솟아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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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쩌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는가? 먼저 유전적 요인을 의심했어. 지은이의 아버지 직계 중에 알코올 중독자들이 몇 분 계셨지만 그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다면 가정 환경 때문인가? 지은이의 집안을 유복한 편이었단다. 정신과 의사였단 아버지 덕분이 상류층에 속해 있었지. 다만 무뚝뚝한 아버지가 집에서도 자신의 직업에서 하는 것처럼 무엇인가 분석하려고 하셨는데 그것이 소심한 지은이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었어. 그렇다면 성격 때문일까? 지은이는 자신의 성격이 소심하다고 했어. 그런데 술을 먹으면 용기가 생긴다고 하더구나. 소심함과 알코올 중독은 관계가 있을까. 지은이는 일란성 쌍둥이라고 하는구나. 쌍둥이 자매인 베키는 지은이와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라고 했어. 물론 알코올 중독자도 아니었고.

술은 분명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것이 분명하단다. 아빠도 적당량의 술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충분한 것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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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6)

충분하다니? 알코올 중독자에게 그것은 생경한 미지의 언어다. 충분히 마시는 일이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술이라는 보험을 찾고 또 찾는다. 첫 잔을 마시고 따뜻한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면 그다음에는 그 느낌을 지속시키는 것, 그걸 강화하고 증대하는 것, 그걸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아는 리즈라는 여자는 알코올 중독을 탐욕의 병이라고 불렀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에 느끼는 허기, 집착, 불안, 끝없는 결핍감을 일컬은 말이었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이란 많을수록 좋고 많아야 한다. 석 잔을 마실 수 있다면 왜 두 잔만 마시는가? 네 잔을 마실 수 있는데 왜 석 잔만 마시는가? 도대체 왜 멈추는가? 그리고 어떻게 멈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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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에게 술이란 무엇일까. 술에 취하게 되면 성적 접근에 관대해진다고 했어. 술 때문에 사고 치는 경우가 많은데, 지은이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하는구나. 첫 남자친구도 술 취한 상태에서 생겼고 대학 졸업 후 지도교수의 접근도 술 취한 상태라 거절하지 못했다고 했어. 그러면서 성관계에 관대해지면서 밤을 함께 하고 다음날 죄책감을 가진 경험을 이야기했어. 남자 친구가 있는데, 교수님의 유혹에 넘어가 밤을 함께 했어. 결국 맨정신일 때 교수를 찾아가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아빠 같으면 숨기고 싶은 경험들에 대해서도 지은이는 솔직하게 모두 다 이야기해주었단다. 이 책은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고 쓴 글일 텐데, 소심하다면서 이렇게 솔직하게 전부 이야기해도 되나 싶을 정도란다. 문화 차이인가?

 

2.

알코올 중독의 단계별로 이야기를 할 때 처음에는 술이 자신을 유혹하는 단계이고, 그 다음이 되면 혼술을 줄기는 단계가 된다고 하는구나. 한 가게에서 술을 너무 구입하면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아서, 지은이는 여러 가게에서 여러 술들을 구입한다고 하는구나. 정말 소심하긴 소심한가 보구나. 알코올 중독이 되면 술을 마시지 않고 혼자 있는 방법을 모른대. 지은이의 경우 직장에서는 유능한 기자로 인정받았지만 직장 밖에서는 술 없으면 생활을 못할 정도라고 했어.

이 정도 되면 스스로 알코올 중독임을 의심하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자각하게 되지만 술을 멀리하기는 어려운 단계가 되었다는구나. 술 취하면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지만, 다음날 그걸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하더라도 후회하게 된다고 하는구나.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자신이 기억도 못하는 말은 그저 술주정일 뿐이지.

지은이는 알코올 중독 자가테스트를 해보았대. 그 결과 자신은 이미 중기라고 했어. 이제부터 알코올 중독을 끊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했어. 상담도 받아보고 AA에도 나가서 다른 이들과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어. 하지만 쉽지 않았지.

이 와중에 지은이는 알코올 말고 또 하나의 중독에 빠진 적이 있었어. 2년 반 동안 거식증으로 고생했다고 했어. 그 동안 먹는 양이 줄고 몸무게는 54kg에서 37kg까지 빠졌대. 이 때 다행히 술도 줄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거식증에서 빠져나올 때 먹는 음식량이 늘어나는 것처럼 술의 양도 같이 늘어났다고 하더구나.

....

지은이의 쌍둥이 자매 베카는 의사가 되고 결혼도 하는 등 부모님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완수한 것으로 보였어. 지은이는 베카와 친하게 지내고 힘들 때는 의지를 하곤 하지만, 베카와 비교해 보았을 때 아무래도 자신은 실패한 인생이라는 기분이 들기도 했어. 그러면 또 술에 빠지고술에 취했을 때면 남자친구와 싸우고 술 때문에 헤어지고.. 그럼 또 술을 찾고.. 필름이 끊긴 날이면 자신의 행동과 말 실수에 대한 걱정으로 일손이 잡히지 않지. 정말 최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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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술 깬 아침의 막막한 걱정. 내가 아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모두 그런 경험이 있고,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파티 다음날 잠에서 깨어 전날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짓을 했는지, 오전 내내 걱정에 잠겨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참다 못하면 파티 주최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반응을 살핌으로써 우리 행동의 단서를 찾아내려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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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술은 망상을 낳는다. 술과 함께 하는 인생은 모험 가득한 낭만의 행로로 여겨지고, 밝은 햇살 아래 출렁이는 눈부시고 역동적인 바다처럼 느껴진다. 단 한 잔의 술로도 우리 가슴은 에너지와 열정에 부풀어 오르고, 조금 전까지 가슴을 짓누르던 문제를 몽땅 해결할 수 있을 듯 자신만만해진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다. 술은 우리 인생을 정체시키고, 바위처럼 그 자리에 붙박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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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술 깬 아침의 막막한 걱정. 내가 아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모두 그런 경험이 있고,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파티 다음날 잠에서 깨어 전날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짓을 했는지, 오전 내내 걱정에 잠겨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참다 못하면 파티 주최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반응을 살핌으로써 우리 행동의 단서를 찾아내려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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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에 이중생활이 있다는구나. 술에 취해서 실수를 하여 남자친구가 아닌 사람과 밤을 보내고 나면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려고 보니 동시에 두 명의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고,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심지어 어떤 때는 임신을 했는데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었대. 그 아이를 낙태하면서 자신은 타락했다는 생각을 하지만 술을 끝내 끊지 못하는 생활의 반복이었어.

지은이가 3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3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술을 더 많이 먹게 되었대.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지은이한테 한 이야기는 술 끊으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담배를 끊으라고 했대. 이 책에서는 담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은이가 나중에 폐암으로 요절하게 되었으니, 어머니는 딸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계셨던 것 같구나.

지은이는 그렇게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했어. 쌍둥이 자매 베카의 계속된 잔소리와 자신도 더 이상 늦어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병원과 재활센터를 찾아가게 된단다. 그곳에는 지은이처럼 자기혐오를 하면서 인생의 밑바닥을 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재활센터에서 알코올 중독을 치유하는 비중이 3분의 1 정도 된다고 하는구나. 생각보다 높은 수치 같구나. 물론 나중에 다시 재발하는 사람들도 많다는구나. 지은이는 그 3분의 1에 포함되어 어둡고 긴 알코올 중독의 터널에서 빠져나왔단다. 이후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그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 담배를 물곤 했다는구나. 담배 말고 사탕이나 초콜릿을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싶구나. 알코올 중독에서 치유되고 나니, 삶이 더 명확해지고 남자 친구도 한 명으로 정리하고 제대로 된 삶을 찾기 시작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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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술을 끊고 나서의 첫날 아침 느낌을 이야기하고 싶다. 마치 나의 옛 인생에서 쑥 뽑혀 나와 맑고 깨끗하고 독립적인, 꽃과 빛이 가득한 새 들판에 내려진 느낌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느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 몇 주가 지나는 동안 내게는 자신감과 안도감, 드디어 내 인생의 개선에 나섰다는 인식에서 나온 희망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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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 AA에도 계속 나가서 성공 사례를 공유하기도 했대.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흔 두 살에 폐암에 걸려 죽고 말았구나. 그렇게 요절하지 않았다면 지은이 캐럴라인 냅의 책들을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구나. 만약 술을 끊지 않았다면 더 오래 살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도 들더구나. 그의 알코올과 싸움에서 이겨낸 것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좀더 일찍 그 싸움을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더구나.

….

아빠가 생각하기에, 식상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술은 사람 사는 세상에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되, 지나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담배는 백해무익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단다. 너희들도 아빠와 같은 생각을 갖길 바라면서, 오늘 독서 편지는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요약해서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은 사랑이었다.


다른 사람이 진정한 버전의 나를 눈치채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파티장이나 술집에서 다섯 잔째 와인을 기울이는 나를 본 사람들도 그지 조심스러운 사람이 어쩌다 긴장을 풀고 조금 흐트러지는 정도로 여겼을 뿐이다. 친한 친구들은 내 눈을 보면 술에 취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내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눈빛이 흐릿해지는 것이 보이면, 내가 내 속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약간 비틀거리거나 평소마다 목소리가 조금 커져도 사람들에게 취했다는 말을 듣는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조용하고 얌전하게 술에 취했다. 어수선해지는 건 내 머릿속일 뿐이었다. - P34

"술을 마시면 내 마음 가득한 더러운 기분이 사라졌어요." - P101

술을 마시면 내가 원하는 성숙한 모습의 내가 되어 메를로의 섬세한 맛을 논하고, 그것이 구이 요리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떠들 수 있었다. 나는 자리에 잘 어울렸고, 삼촌들, 숙모들, 부모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는 것도, 술잔을 입에 댄 채 다른 사람들이 술 따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다 편안했다. 나는 술을 통해서 상태를 변화시킨 것 같았고, 그런 느낌은 내게 안도감을 주었다. 여기에서 ‘두려움+술=용기’라는 또 하나의 방정식이 생겨난다. - P107

비극은 그 보호막이 작용을 멈추면서 시작한다. 변신의 수학은 바뀐다. 이것은 불가피한 결말이다. 장기간에 걸친 과음은 우리 인생을 망가뜨린다. 다른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 맺은 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업무에 장애가 발생한다. 재정 문제, 법적 문제에 부딪히거나 경찰과 부딪힐 수도 있다. 고통이 커지면 어느 순간 옛 수학(불편+술=불편 없음)은 전처럼 들어맞지 않게 된다. 편안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소심함이나 두려움, 분노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좀 더 깊고 근원적인 것을 찾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방정식은 더욱 강력하고 완전한 내용으로 바뀐다. ‘고통+술=자기 망각’이라는. - P114

알코올 중독자들은 책임 회피의 귀재들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늘 타인이나 사물 탓으로 돌리는 것, 이것은 알코올 중독자를 가려내는 징후기도 하다. 이들은 관계가 꼬이는 엉켰을 때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한다. 그해 여름 나는 데이비드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언제나 그에게 의문에 찬 눈길을 던졌다. 그에게는 뭔가 부족했다. 뭔가 마땅치 않았다. 나한테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내가 가진 거대한 결핍감의 크기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내 소망의 부조리함도 감지하지 못했다. - P139

술이 없으면 나는 우리에 갇힌 동물 같았다. 그러니 늘 술을 끼고 살 수밖에 없었다. 술이 없으면 나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생각과 팔다리가 내 것이 아닌 듯했고, 그것들을 사용할 방법도 나를 멀리 비켜가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일요일 아침이면 늘 그런 느낌을 받았다. 홀로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면 텅 빈 하루의 시간밖에는 아무것도 나를 기다리는 것이 없었다. - P164

혼술이 역설은(그러면서 정말로 위험한 것은) 우리가 정서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만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혼자 술 마시던 시절, 술이야말로 내 진정한 감정의 문을 열어주는 유일한 도구라고 느꼈다. 술을 마시고 녹아내린다. 술을 마시고 녹아내린다. 술을 마시고 흐느낀다.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에게 전화 걸어 고통을 호소한다. - P166

그 순간 나에 대한 오기가 솟았다. 처참한 내 인생이 한눈에 들어왔다. 술 마시고 싸우고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뛰어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민망한 인생, 지루한 인생, 게다가 극도로 피곤한 인생이었다. 결국 남는 게 무엇인가? 이 모든 소동이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우리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피하고자 술을 마시지만, 다음날 아침 깨어나면 그 선택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개의 목에 걸린 줄처럼 우리를 끌어 내리고 우리의 전진을 방해한다. 모멸감, 이 모든 일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아찔함. 마이클, 줄리안, 우울증, 불안, 거짓말, 술, 술, 술…… 내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고 또 흘러갈 것이다. 아버지의 인생이 그랬듯이. - P330

‘나는 알코올 중독자다. 그러니까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자시 인정은 밀물과 썰물처럼 한순간 차올랐다가 다음 순간 빠져버린다. 술 마시던 시절의 일을 돌이켜보면, 내가 올코올 중독자라는 증거는 많고도 많았다. 알코올을 들이켜면 내게는 강박 충동과 자제력 상실이라는,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는 일련의 생리적 반응이 일어났다. 그래도 나는 아직 알코올 중독이 영구적인 진해성 질병이라는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술을 마시고 자제력을 잃지 않았던 적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알코올에는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순기능도 있지 않은가? 그냥 꼭 한 잔만 하면 안 될까? 이런 질문은 수많은 알코올 중독자에게 같은 두려움과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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