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고고학은 쉽게 설명하면, 유물을 연구해서 과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지식, 문화 등을 밝히는 것이다. 인간은 왜 그렇게 과거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많았을까?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그렇지 않다. 그건 바로 과거를 생각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인류의 진화하는 숙명에 기인한다.


(44)

앞에서도 말했듯이 고고학 하면 일반인들이 떠올리는 보물찾기의 실상은 사실 죽은 사람을 위해서 넣어놓은 마지막 선물이다. 죽은 자를 위한 선물 그리고 영생을 갈구하는 인간의 영원한 화두를 무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 진시황이 얻고자 했던 불사약, 나아가서 다양한 영화들에서 다시 살아나는 사람들은 영생을 꿈꾸는 인간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모두 영생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대신 영생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무덤을 만들었고, 우리는 그를 통하여 삶에 대해 더 배우게 된다. 영원을 향한 인간의 마지막 바람과 체념이 녹아 있는 기념물이 바로 무덤이다.


(66)

5000년 전 중국에서 새로운 술이 등장했다. 고고학자들이 좋아해 마지않는 술, 맥주다. 스탠포드대학교 고고학자 류리는 2016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최신의 분석방법으로 중국 최초의 맥주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섬서성 웨이허강 유역의 5000년 전 양사오 문화에 속하는, 실크로드가 중국으로 오는 끝자락인 미자야 유적에서 밑이 뾰족하고 주둥이도 좁은, 양조를 하기에 적당한 토기를 발견했고, 그 바닥에 남은 곡물의 찌꺼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양조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수수, 율무, 식물의 구근 덩어리 그리고 보리가 섞여 있음을 알아냈다. 단순하게 곡물을 담는 항아리였다면 이들 재료들을 같이 넣을 리가 없다. 맥주와 같은 술을 빚지 않고는 이 곡물들이 같이 나올 수 없다. 이렇게 중국에서 가장 최종의 맥주가 발견되었다. 게다가 보리는 중국에서 자생하는 곡물이 아니었다. 이는 바로 5000년 전에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동서의 교류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86-87)

즐겁게 살아간다는 건 중요하다. 그것이 정신적인 즐거움이든 육체적인 즐거움이든,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즐거움이 필요하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알 수 없다. 각자에서는 각자의 가치관이 있기 대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즐거움을 추구할 때에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절제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대가 없는 즐거움은 없기 때문이다. 쾌락만을 좇는 대가는 늘 생각보다 위험하고 치명적인 칼날이 되어 우리를 향한다.


(95-96)

과거의 예술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박물관이다. 원래 박물관을 뜻하는 ‘museum’은 음악의 여신 ‘Muse’를 모시는 신전의 의미에서 유래했다. 뮤즈는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다. 기원전 7세기에 활동했던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9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음악뿐 아니라 문예, 미술, 철학 등을 관장했다고 한다. 이 뮤즈를 위한 신전은 음악을 비롯하여 당시의 다양한 예술과 학문이 한데 어우러진 문화의 공간이었다. 즉 뮤즈를 위한 의식에는 음악과 함께 당시에 제작된 최고의 예술품인 회화, 조각 등이 선보여지고, 역사와 철학에 관한 다양한 학문적 성과가 봉헌되었다. 이 뮤즈의 신전은 그리스 문화가 확산되면서 각지로 전파되었다.


(106-107)

가야금 이전에도 또 다른 현악기가 있었다. 서양에서 발달해 실크로드를 통해서 중국과 한국으로 전래된 하프의 일종인 공후이다. 이 공후는 동쪽으로는 알타이까지 이어졌다. 고조선 가요인 <공무도하가>는 공후를 타면서 부르는 노래다. 이 가요를 채록한 사람은 고조선의 하급관리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고조선 당대 또는 고조선 멸망 직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그 지은이에 대해서는 뱃사공, 곽리자고,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 등 다양한 설이 있는데, 아마 많은 노래가 그러하듯 채록되고 확산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이 <공무도하가>는 이후에도 계속 남아서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고대가요가 되었다. <공무도하가> 1세기 때 채옹의 <금조>, 4세기 초에 쓰여진 최표의 <고금주>에 이미 등장한다. 그리고 이후 동아시아 일대에서도 널리 사랑받았다.


(125)

고고학의 원칙 중 하나가 발굴하지 않고 땅속에 두는 것이 가장 큰 보존이라는 점이다. 현재의 최신 기술로 유물을 발굴한다. 하더라도 한계는 있다. 과학과 기술이 시간이 갈수록 발전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어떤 유물이든 지금보다 먼 훗날에 발굴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고고학적 원칙에 맞지 않는 사례가 바로 고분벽화이다.


(193)

고고학만큼 역설적인 학문이 없다. 왜냐하면 과거를 밝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의 유적을 파괴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고고학자들이 수많은 도면과 사진을 남기며 신중하게 발굴을 진행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번 발굴한 유적은 어떠한 경우에도 되돌릴 수 없다. 간혹 유적을 발굴하지 않고 유보하는 경우도 있다. 땅속에 있는 것이 역설적으로 유적을 오래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작정 발굴을 하지 않는 것도 답이 아니다. 발굴을 하지 않으면 정작 과거의 유적과 유물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없기에 오히려 고고학의 발전은 저해된다. 그러니 최소한의 발굴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 것이 고고학 발굴이 지향하는 바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발굴을 수술 자국이 작을수록 좋은 외과수술에 비유하기도 한다.


(197-198)

생각해보자. 왜 레고랜드를 유적지가 많아서 사적지로 등록된 중도 위에 세우려고 했을까. 그곳은 춘천 시내의 한가운데에 위치하여 경치도 수려하고 접근성도 좋은, 아직까지도 개발이 안 된 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땅이 개발이 되지 않은 이유는 1980년대에 이미 이곳에 엄청난 유적이 존재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유적의 규모와 그 의의로 볼 때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조사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대대손손 보존하기 위해 사적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현대의 정치가와 사업가들은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유적이 있다면 빨리 발굴해서 그 위에 무엇인가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을 세우고자 결의했다. 이렇듯 춘천 중도의 문제는 경제논리를 앞세운 현대 자본주의에 있었다.


(204)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1954년에 세계 각국은 전쟁으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는 취지에서 헤이그 문화재보조조약을 체결했다. 전쟁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해도 그 나라의 문화재를 불법으로 없애거나 약탈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는 유럽의 열강들이 경쟁적으로 상대국의 문화재를 폭격하고 약탈했던 것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문화재 약탈의 한쪽 측면만 본 것이다. 서구 열강은 그때까지 전쟁과 침략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나라들에게 약탈한 문화재에 대해 어떠한 보상이나 대책도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유물을 빼앗긴 나라들은 상대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 유물을 반환 받을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만약 이집트가 영국을 침략해서 승리했더라도 영국의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피라미드 유물이나 미라에는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이다.


(226)

일본의 이 식민 패러다임을 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가 층을 달리해서 존재했음을 밝히면 된다. 하지만 층을 구분해서 발굴하는 방법이 한국에 널리 도입된 것은 1970년대 이후였다. 반면에 북한의 사정은 달랐다. 도유호(1935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한국 최초로 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1세대 고고학자. 1946년에 월북하여 북한 고고학의 기초를 수립했다.)가 이끄는 북한의 발굴단은 1953~1954년도에 회령 오동의 수혈주거지를 발굴하고, 그 주거지들에 중첩이 있음도 함께 발견했다. 또한 1957년에는 황해도 지탑리 유적에서 빗살무늬토기층과 청종기시대 문화층을 분리시켜서 그 지긋지긋하던 금석병용기설을 폐기하고 청동기시대의 존재를 주장하게 되었다. 우리는 국사시간 첫머리에 빗살무늬토기=신석기토기’, ‘민무늬토기=청동시시대라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배운다. 그런데 이것을 발굴로 증명한 것이 바로 도유호가 발굴한 지탑리 유적이었다.


(245-247)

요서지역에서 홍산문화로 시작되어서 비파형동검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문명의 흐름은 만주 일대에서도 아주 독특하여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중국과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서 매년 이 유적을 조사하는 것도 이 지역에서 독특한 문명이 발생했던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서이다. 이제까지 한국과 중국에서는 홍산문화가 어느 나라의 것이냐는 소모적인 귀속 논쟁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홍산문화의 숨겨진 또 다른 가치는 바로 그 소멸과 정에 있다. 홍산문화를 만든 사람들은 작게 쪼개진 마을들로 흩어졌고, 그 결과 홍산문화의 옥을 만드는 기술과 제사의 풍습은 이후 시대로 확산되었다. 그렇게 본다면 사실 버려진 홍산문화의 제사유적은 고대인들의 현명한 삶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254)

후지무라의 조작은 단순히 한 고고학자의 공명심에 비롯된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들의 역사를 무조건 올리려고 하는 일본의 쇼비니즘적 시각과 야합한 결과이다. 후지무라가 유물을 파묻다 발각된 카미타카모리 유적은 사실 후지무라가 구덩이에 자기가 만든 석기 몇 개를 파묻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후지무라에 의해 이 석기는 70만 년 전의 구석기인들이 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던 유물로 변했다. 이 말이 맞다면 세계 최초의 제사유적이 발견되었다는 뜻이다. 세계 문명의 기원이 일본이며,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도(신토이즘)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뛰어난 종교라는, 극우 세력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얘기였다. 후지무라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는 곧 바로 극우 성향의 교과서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니시오 간지 회장이 쓴 교과서 <국민의 역사>의 첫머리에 내세우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연대가 앞선 문명이 일본에 존재했다라는 여러 황당한 망언의 기반으로 활용했다. 극우세력의 준동에 후지무라의 위조가 동원되었지만 일본의 고고학계는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암묵적인 동조를 했다. 극우 사관이라는 독버섯이 자라기 좋은 환경에서 후지무라의 위조는 더욱 활개를 칠 수밖에 없었다.


(269-271)

그렇게 한국인이 주도한 첫 고분 발굴지에서는 놀랍게도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그릇이 나왔다. 이에 청동그릇이라는 뜻의 호우를 따서 이 이 고분을 호우총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명문에 따르면 이 그릇은 광개토대왕의 사후 2년인 을묘년(415)에 만든 기념 그릇 중 10번째에 해당한다. 당시 신라를 밀려오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광개토대왕의 고구려 구원을 요청했다. 이 호우의 발견으로 당시 신라의 고구려의 관계가 유물로 증명된 것이다. 사실 신라 고분에서 고구려의 유물이 나온 예는 그때가 유일했으니, 이 호우총은 비록 일본인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엄청난 발견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호우총에서는 호우 말고도 흥미로운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특히 발굴단장 김재원 박사는 한 유물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나무에 옻칠을 한 물건인데 두 눈을 부라리듯 험상궂은 도깨비의 형상을 한 유물이었다.


(282-283)

(슐리만)가 발굴한 유물은 실제 트로이 왕국에서 사용한 것과는 다른 형식이라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지적을 무시하고 이 황금을 트로이의 마지막 왕으로 전쟁을 벌인 프라이모스의 이름을 따서 프라이모스의 황금이라고 명명해버렸다. 그러나 그가 발굴한 황금은 3200년 전에 살았던 프라이모스 왕보다 1000년이나 더 오래된, 4400년 전의 황금이라는 것이 현재의 정설이다. 물론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빌미가 되었다. 아리러니하게도 슐리만은 이 프라이모스의 황금을 파기 위하여 그 위에 쌓여 있었던 트로이의 문화층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 최초로 트로이 유적을 발견한 인물이자 트로이 유적을 없애버린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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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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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최은영 님의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었단다. 최은영 님의 책은 그 전에 <쇼코의 미소> <밝은 밤>을 읽었는데, 둘 다 좋았지만 아빠는 특히 장편인 <밝은 밤>이 아주 좋았단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아빠는 단편보다는 장편 체질은 것 같아. 이번에 읽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지은이가 최은영 님이라고 고른 책인데, 책 앞 표지에 최은영 소설집이 아니고 최은영 소설이라고 써 있어서 아빠는 장편 소설인줄 알았단다. 하지만 이 책은 중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더구나. 이 경우 보통 소설집이라는 적는데, 그냥 소설로만 적혀 있네. 비록 장편은 아니었지만, 이 책에 나와 있는 모든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단다. 표제작인 <아주 희미한 빛이라도> 2020년 젊은작가상을 받은 작품이었다고 해서, 아빠 독서이력을 찾아보니 2020년에 읽었던 작품이더구나. 당시 써 놓은 독서편지를 보니 내용도 생생히 기억나더구나. 그런데 제목은 기억나지 않았던 거구나. 저질 기억력이구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다시 읽어봤는데, 2009년 용산 사건과 그 시대를 살았던 두 젊은이의 우정을 잘 접목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 같구나. 이 소설의 이야기는 2020년에 이야기했으니 패스할게.


1.

<>

이 작품은 단행본으로도 나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짧은 소설이라서 그런지 이번 소설집에도 포함을 시켰구나. 해진과 정윤은 같은 학교 대학신문사 선후배 사이였단다. 정윤이 선배이고, 해진이 후배였어. 해진이 졸업한 지도 오래되었는데 오랜만에 모교에 갔다가 오랜만에 정윤을 우연히 만났어. 정윤과 대학신문사 편집부 선배 용욱의 결혼식 때 보고 처음이었어. 그러면서 해진은 옛 생각이 떠올랐단다. 대학교 일학년이었던 해진은 무턱대고 대학신문사에 지원해서 최종 합격 두 명에 포함되었어. 나머지 한 명은 글쓰기를 무척 잘하는 희영이었어.

희영이는 여성 문제를 주로 기사로 썼단다. 그것 때문에 남자 선배들이 싫어하기도 했어. 해진과 희영은 함께 주제 조사도 했는데, 희영이 고른 여성 문제로 가정 폭력에 대해 조사를 했단다.  그러면서 직접 여성 인권 집회에도 참가했어. 희영이 계속된 여성 문제를 기사를 쓰다 보니, 정윤 선배도 희영 의견에 반대하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단다. 3학년이 되어서 희영은 대학신문사를 그만 두었고, 졸업 후 여성인권 사회운동가가 되어 활동을 했단다.

희영은 자신의 주관이 뚜렷했단다. 생각해 보면 대학교 일학년이면 이제 고등학교 갓 졸업했을 때인데 그때부터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바를 알았던 것 같아. 반면, 해진은 대학 신입생 때 글쓰기도 서툴러서 대학신문사 편집부 일을 힘들어 있는데, 해가 거듭되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졸업하고는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정식 기자까지 되었단다. 안타깝게도 사회운동가를 하던 희영은 병에 걸려 39살 짧은 삶을 마감한단다.

이 소설의 제목을 왜 <>으로 했을까? 사람마다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 있다는 것을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이 소설은 대학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어서 그런지 읽을 때 아빠의 그 시절 친구들이 생각나더구나.


2.

<일년>

세 번째 작품은 <일년>이라는 작품이란다. 병원에 입원 중이던 지수는 8년만에 다희를 우연히 만났단다. 8년 전, 27살인 지수는 한 회사의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고, 다희는 인턴으로 그 회사에 들어왔단다. 사는 곳에 같은 근방이고 해서 같이 카풀을 하게 되었는데 지방출장도 같이 가곤 했어. 둘이 친해지긴 했는데, 성격은 전혀 다른 성격이었어. 지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다희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활발해 보였어. 둘이 같이 있는 시간이 있다 보니 지수도 어느 날은 자신의 속마음도 이야기를 했어. 그렇게 성격이 물과 기름처럼 다르지만 서로 섞여서 또 다른 좋은 물질을 만들 수 있었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다희는 인턴 이후 정규직에서 떨어졌단다.

보통 그렇게 친하게 되었다면 회사에 떨어져도 가끔 연락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도아빠도 퇴사한 사람들과 거의 연락을 안 하는 것을 보니, 연락이 끊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8년 만에 병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안부를 전하고, 그 이후로도 병원에서 몇 번 만났지만 지수가 퇴원하면서 또 연락은 끊기게 되었단다. 지수 성격에 굳이 연락처를 물어볼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아빠와 참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를 소설 속에 만난 것 같더구나…^^


3.

<답신>

이 소설도 참 좋고도 안타깝더구나. ‘가 언니의 딸 조카에서 보내는 편지 형식이란다. 그런데 읽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더구나. ‘ 4살 때,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때문에 엄마는 도망을 하고, 3살 많은 언니와 는 고모할머니 집에서 지내게 되었단다. 언니는 고등학생 때 못된 학교 교련 선생님을 만나 추행을 당하면서도 계속 그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졸업 후까지 그 선생님을 만나 21살에 그만 임신을 하게 되었어. 교련 선생님은 마지못해 결혼한다는 식으로 티를 내면서 언니와 결혼했어.

형부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단다. 언니를 종처럼 부려먹었어. ‘가 언니 집에 몇 번 놀러 가서도 그런 모습을 보게 되어 는 언니에게 뭐라 했더니 언니는 형부를 감싸는데 급급했어. 형부 때문에 언니 집에 가지 않았는데, 사랑스러운 조카가 태어나고는 안 갈 수가 없었단다. 너무 사랑스러운 조카를 보기 위해서

는 호텔 식당에 취직을 했는데, 그 호텔에서 우연히 형부를 보았어. 어떤 여고생과 함께 있는 형부를 말이야. 화가 난 는 형부에게 가서 따지듯 이야기하고 여고생과 따로 둘이 만나 공감해주면서도 충고도 해주었단다. 얼마 후 형부의 학교에서는 형부와 그 학생에 대한 조사를 했대. 형부는 당연히 가 신고했다고 생각을 했어. 화가 난 형부는 를 찾아와 폭력을 휘둘렀어. 언니에게 이야기했지만 언니도 를 믿지 않았어. 언니는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려는 것 같았어. 어느날 언니가 집으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형부는 언니가 대준 대학교 학비를 왜 주었냐고 언니를 폭행했단다.

보고만 있을 수 없던 는 형부를 폭행했는데 형부가 크게 다치게 되었어. 재판에서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고 하는 언니가 형부 편을 드는 바람에, ‘는 실형을 받고 감옥까지 가게 되었어. 몇 년 뒤 출소를 했지만 언니의 연락은 없었어. 8년 뒤에 고모할머니의 장례식 때 언니를 잠깐 보고 또 연락이 끊겼어. 이젠 언니가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고, 조카가 얼마나 컸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도 몰랐단다. 어느덧 23살이 된 조카. 조카의 23살 생일 날, ‘가 조카에서 편지를 썼단다. 그 편지 전문이 이 소설이란다. 보낼 수 없는 편지, 받을 수 없는 편지.. 어린 시절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조카를 생각하면서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는데, 언젠가는 다시 꼭 만났으면 좋겠구나.


4.

<파종>

민주가 8살 때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15살 많은 오빠 민혁이 민주를 키웠단다. 오빠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자란 민주는 결혼까지 했지만 딸 소리가 5다섯살 때 이혼을 하고 말았어. 실패한 결혼이라고 할 수 있지. 이혼을 한 민주는 딸 소리를 데리고 여전히 혼자 살고 있는 오빠의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게 되었단다. 소리는 삼촌을 잘 따르고 텃밭도 함께 가꾸며 나름 행복하게 지냈단다. 그런데 민혁은 소리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만 병으로 죽고 말았어. 민혁이 죽고 시점이 소리가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시점이라서 더 충격이 컸을 것 같구나.

중학생 이후 소리와 민주는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어. 고등학생이 된 소리를 자주 자퇴하고 싶다는 말을 했단다. 민주와 딸 소리의 갈등의 원인은 민혁의 부재로부터 시작되었던 거야. 둘은 처음으로 둘이 텃밭에 가서 밭을 일구고 파종을 하면서 다시 예전처럼 친해졌단다. 민혁이 죽은 이후 한 번도 가지 않았었거든. 파종이 또 하나의 생명을 싹 틔우는 시작이듯이 민주와 소리의 관계가 새롭게 싹을 틔어 값진 열매를 맺기를하늘에 있는 민혁 삼촌이 크게 미소 지을 수 있게


5.

<이모에게>

희진은 엄마가 23살 때 태어났단다. 희진의 엄마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가 있었어. 22살 차이였어. 희진이 태어났을 때 이모는 혼자 살고 계셨는데, 희진의 엄마와 아빠가 맞벌이라서 이모는 희진의 집에 들어와 살면서 희진을 보살펴주었단다. 그러니까 희진은 엄마 아빠보다 이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 밖에 이모와 함께 나가면 할머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그런데 엄마가 희진을 낳은 후 유산을 여섯 번이나 했단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임신을 하면 위험하니 임신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희진의 아빠는 계속 둘째를 원했어.

희진의 아빠는 권위주의로 만들어진 사람 같았어. 서울대까지 나와서 지 잘난 줄만 알았지, 집안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어. 사업을 하다고 계속 망해서 집안 사정도 안 좋아졌어. 그러자 처형, 그러니까 희진의 이모와도 갈등이 쌓였어. 결국 희진이 고등학생 때 이모는 집을 나가 독립하셨단다. 희진이 그렇게 반대를 했지만 아빠와 이모의 골은 너무 깊었어. 이때 이모는 마음을 굳혔는지 희진이 그렇게 만류했는데도 냉정하게 집을 나갔단다.

희진의 아빠도 사업이 망해서 열세 평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단다. 희진은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소위로 임관하고 나서 25살에 7년만에 이모를 만났단다. 이모가 냉정하게 집을 떠나서 한동안 희진도 이모에게 삐쳐 있었거든. 다시 이모를 만나고 나서 그 이후에는 일년에 한두 번씩 이모를 만났어. 그리고 79살이 된 이모는 뇌졸중에 걸리셨고, 엄마가 이모 집에 들어가서 보살펴주셨지만 결국 이모는 그렇게 돌아가셨단다. 희진의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채워주셨던 이모. 이모의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 이 소설 또한 가슴 먹먹해짐이 느껴졌단다.


6.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마지막 소설은 기남이 딸 우경의 가족을 만나러 홍콩으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단다. 기남의 가족 구성원을 먼저 이야기를 해주어야겠구나. 우경은 기남의 둘째 딸이고, 첫째 딸은 진경이었단다. 진경은 박사까지 땄지만 알코올 중독이 있었어. 동생 우경과 그리 친하지도 않았어. 그런데 알고 보니 진경은 기남의 친딸이 아니었단다. 기남은 진경의 계모였단다. 기남은 어렸을 때 버림을 받고 이집 저집에서 식모로 일하면서 자랐는데, 남편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애가 있는 유부남이었어. 기남이 남편과 살기 시작했을 때 진경은 다섯 살이었단다. 그리고 우경이 태어났는데 진경보다 여덟 살이 어리단다.

진경은 커서 미국 교포인 제임스와 결혼하여 미국에 살다가 이번에 회사 때문에 홍콩으로 이사를 와서 기남이 우경 식구를 만나러 가게 된 거야. 그런데 기남은 진경보다 오히려 친딸인 우경의 눈치를 더 보는 것 같았어. 홍콩에서 지내는 것도 불편했고, 자신의 실수로 인해 우경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싫었어. 그런 모습이 손자 마이클에게도 보였는지, 마이클이 기남에게 와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를 했단다. 소설 속에서는 기남의 노년 생활만 짧게 그려졌지만, 기남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훤히 보이는 듯 하구나. 진경이 비록 친딸이 아니지만, 사랑을 다 주면서 키웠을 것 같구나. 진경이 기남에게 자신의 엄마여서 좋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둘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알기에 코끝을 찡하게 하더구나.

….

이렇게 이 책에 나온 소설들을 급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모든 소설들이 따뜻함으로 덮여 있고 그 안에 사랑과 정()이 있는 것 같았단다. 바쁘게 돌아가는 이 세상, 스마트폰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보드라운 이불 같은 소설들아주 좋았단다. 최은영 님의 다음 작품들도 기대해봐야겠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그녀의 수업은 금요일 오후 세시 삼십분에 시작했다.

책의 끝 문장: 그 작고 연약한 순간이 아직은 자신을 떠나지 않았음을 바라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의 이름으로 나온 글이나 번역서를 찾을 수 없었다. 구 년 전의 내 눈에는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강해 보였던 그녀가 어디에도 자리잡지 못하고, 글이나 공부와 무관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를 얼어붙게 한다.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머물렀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떠난, 떠나게 된 숱한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까. 이 질문에 나는 온전한 긍정도, 온전한 부정도 할 수 없다. 나는 불안하지 않았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 P43

다희의 눈썹. 다희가 얘기할 때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눈썹을 보면서, 사람에게 눈썹이라는 게 있었구나. 눈썹이라는 게 꼭 마음과 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그리고 사실 그녀는 귤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도. 그렇게 껍질을 까서 하나하나 손바닥에 올려주던 마음이 고마워서 그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고, 결국엔 귤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도. 다희가 더 깊은 이야기를 할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는 말도.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고는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 증오하기도 하니까. 애초에 그녀는 깊은 이야기를 할수록 서로 가까워진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는 말도. 그렇지만 다희가 그녀로 하여금 말하게 했고, 그 사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말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말라고 싶었다는 사실도. 하지만 그녀는 그중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 P120

부끄러움. 마이클의 말이 맞았다. 기남은 부끄러웠다. 우경의 눈에 비칠 자신의 모습이, 그애가 오래전 자신을 멀리 떠난 일이, 진경의 알코올중독이, 두 아이가 결국 화해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른 사실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남편에게 단 한 번도 맞서지 못하고 살았던 시간이, 그런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란 것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부모에게 단 한순간도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가, 하지만 그 사랑을 끝내 희망했던 마음이…… 기남은 이 모든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워서. 기남은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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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지리산 노고단에서 끝없이 뻗어나간 산줄기들을 굽어보며, 지리산은 장대하고 우람하고 숙연한 산이다. 그리고 지리산은 역사의 무덤이다. 인간의 삶은 갈등을 잉태하고, 그 갈등은 역사를 탄생시키며, 그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로 삼아 성장한다. 이 땅의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지리산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품어 보듬었고, 끝내는 그들의 무덤 노릇까지 해주었다.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지리산의 그 역할은 변함이 없었다. 지리산은 아흔아홉 골짜기를 열어 8만이 넘는 빨치산들을 받아들였고, 끝내는 그들을 영원히 품에 잠들게 했다. 세계의 현대사에서 그 유례가 없는 죽음의 의미를 캐려고 나는 열 번이 넘게 그 고산준령을 오르내렸다. 나는 지리산의 적막 속에서 빨치산들의 열혈 투쟁을 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숭고한 정신을 느끼고는 했었다. 인간의 인간다운 세상을 향해 끝없이 몸부림치는 인간의 숭고함. 그 몸부림은 시대를 초월한 인류 역사의 불변의 과제였고, 현실적으로 어리석은 소수 인간들의 희생 위에서 인류의 역사는 발전되어 왔던 것이다. 그 숭고한 정신은 인간 긍정의 모태고, 소설의 영원한 테마다. <태백산맥> 마지막 장면에서 하대치와 그의 동료들이 어둠 저편으로 찾아가는 것도 사회주의를 넘어선 바로 그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발걸음이다.


(98)

담배를 하루 평균 3~4갑을 피우고, 커피를 5~6잔 마시며 열흘에서 보름을 자는 시간 빼놓고는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첫째 나타나는 증상이 두 다리가 10 20배로 퉁퉁 부어오른 착각이 든다. 그래서 얼른 만져보면 그렇지 않아 주무르고는 한다. 두 번째가 변비 증상이다. 옛날에 똥줄이 탄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실감하게 된다. 세 번째가 머리에서부터 차츰 차츰 피가 줄어들어 온몸이 하얗게 표백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네 번째가 걷는데 다리가 내 뜻과는 다르게 휘뚱거릴 뿐만 아니라 발 밑이 어질어질 기울어지고 흔들리고 출렁거린다. 그런 증상들이 날이 갈수록 겹쳐져오다가 막바지에는 잠자리에 누우면서 온몸이 녹아 흘러 땅속으로 잠기는 듯한 느낌 속에서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나고 말지하는 생각으로 정신을 잃듯 잠이 든다. 그 죽음과 소생의 되풀이 속에서 원고지는 쌓여갔다.


(188)

하바로프스크의 아무르 강변에 동포들이 일군 마을 이름은 ‘3.1’. 조국에서 일어난 3.1운동에서 따온 것이다. 그 독립 의지가 가슴 뭉클하다. 동포들은 짧은 여름에는 농사를 짓고, 긴 겨울에는 아무르강의 두꺼운 얼음을 뚫어 생선 중에서 최고로 치는 철갑상어를 낚었다. 영하 30도의 추위를 견디며, 그것을 판 돈이 독립 자금이 되고 자식들의 학자금이 되었다.


(210)

원고를 쓴 기간만 <태백산맥> 6. <아리랑> 4 8개월이었다. 마흔에 <태백산맥>을 시작했는데 <아리랑>을 끝내고 보니 쉰셋이 되어 있었다. 내 인생 장년의 세월이 정말 눈 깜짝할 아이에 흘러가버린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쓰느냐고. 삶의 보람이 가장 커서인가? 소설은 사나이의 생애를 바칠 만한 가치가 있어서인가? 그 대답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두 원고를 쌓아놓고 그 사이에 서며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나려 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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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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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벵하민 라바투트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를 멈출 때>라는 책을 읽었어. 그 책은 수학자와 과학자에 에피소드를 소설로 쓴 책인데, 양자역학 등 흥미로운 소재로 쓴 소설이지만, 읽는 것은 쉽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구나. 하지만 양자역학에 관심이 많은 아빠에게는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했어. 그 책을 쓴 벵하민 라바투트의 신작 <매니악>이라는 소설이 새로 나와서 읽어봤단다. 소설 제목 매니악(Maniac)은 광적으로 열중한다는 영어 단어인데, 이 책을 읽다 보면 폰 노이만이 개발한 컴퓨터의 이름이기도 한데, 그건 조금 이따 이야기해줄게. 그 외 말고 너희가 이 책의 제목을 보더니 노래 “Maniac”을 흥얼거리더구나.

소설 <매니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부마다 한 사람과 과학, 특히 컴퓨터 역사의 중요한 사건을 다루고 있단다. 1부에서는 불확정성과 양자역학을 연구했던 에렌페스트라는 사람이고, 2부는 오늘날 컴퓨터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만든 폰 노이만이고, 3부는 알파고와 바둑 대결을 했던, 너희들도 알고 있는 우리나라 바둑기수 이세돌이란다. 이세돌이 이런 외국 소설의 등장인물로 나오니 반갑고 신기하기도 하구나.

, 그럼 그들의 이야기를 해볼게.

 

1.

먼저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파울 에렌페스트는 1927년 그 유명한 솔베이 5차 회의에 참석을 했었고, 세계 최고의 정모 사진이라고 하는 그 사진 속에도 있던 사람이고, 아인슈타인의 친구이기도 해. 그는 양자역학의 한 축인 통계역학을 연구하였단다. 그런데 이 책에서 파울 에렌페스트를 다룬 것은 불행한 그의 가정사였단다. 그는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는데, 결국 다운증후군 장애를 겪고 있는 막내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함으로써 삶을 마감했단다. 파울 에렌페스트의 스승이 루트비히 볼츠만인데, 볼츠만도 자살로 삶을 마감한 이력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2부에서는 천재 과학자 폰 노이만에 관한 이야기란다. 가장 많은 장수를 차지하고 있고, 이 소설의 제목 <매니악>도 폰 노이만이 만든 컴퓨터 이름에서 따왔으니 실질적인 주인공이 아닌가 싶구나. 폰 노이만은 헝가리 출신으로 원래 이름은 노이만 야노시 러요시라고 한단다. 2부의 진행 방식은 좀 폰 노이만의 주변 인물이 폰 노이만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단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하여 구성하는 경우가 있는데, 2부의 구성이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단다. 폰 노이만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로 유명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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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6)

우리와 다른 외계인, 진정한 천재가 존재한다니. 전교생이 그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두 살에 글을 깨쳤다고 했다.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했고, 여섯 살에 암산으로 여덟 자리 숫자 두 개를 나눗셈할 줄 알았으며, 한번은 여름방학 때 펜싱 교사 머리에 불을 붙인 벌로 아버지 서재에 감금되었다가 심심풀이로 미적분을 혼자 깨쳤고 급기야는 마흔다섯 권이나 되는 빌헬름 옹켄의 일반 역사서를 달달 외웠다. 모든 소문을 진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마침내 그 아이가 운동장에서 내 쪽으로 뒤뚱뒤뚱 걸어오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는 적잖이 실망했다. 아직 통통하게 살이 찌기 전이었음에도 움직일 때 어쩐지 투실투실하고 굼뜬 느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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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재는 27살에 프린스턴 대학교의 정교수가 되었어. 자타공인이던 폰 노이만은 자신보다 더 천재가 나타났다고 하는 순간이 있는데, 1930년 학회에서 만난 쿠르트 괴델이라는 사람이란다. 이 사람도 유태인으로 미국으로 망명 온 과학자인데, 아빠가 다른 책들에서 여러 번 이야기를 해주었던 사람이란다.

작년에는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라는 책의 독서편지에서도 이야기했던 사람이야. 폰 노이만은 학회에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단다. 이후 폰 노이만은 몇 달 동인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연구해서 따름 정리를 발표하기도 했다는구나. 그리고 폰 노이만은 핵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에도 참가를 했어. 작년에 이야기해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책의 독서편지에서도 잠시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단다.

핵폭탄의 시험 폭발이 성공을 거둔 후, 그 위력이 엄청난 것을 본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정부에 폭탄 사용을 만류하게 된단다. 하지만 폰 노이만은 적극 지지를 한단다. 폰 노이만이 물리와 수학 분야에 있어 초천재인 것은 맞지만 다른 분야에는 좀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윤리적인 면을 판단하는 것도 좀 부족했던 것 같아. 다른 과학자들이 핵폭탄을 만류하는 동안 폰 노이만은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가 좋은지 알려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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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154)

실험 직후 우리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서신이 돌기 시작했다. 일본을 상대로 폭탄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대통령을 설득하는 탄원서였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학자 중 백오심 명 이상이 탄원서에 서명했다. 유럽의 전쟁은 끝난 후였다. 히틀러도 이미 총을 쏴 자결했으니, 우리가 실제 그랬던 것처럼 일본 민간인 이십만 명을 죽일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일본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기만 했다면, 일본 장군이 단 한 명이라도 폭탄 실험 장면을 목격했다면 그걸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랬으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탄원서는 트루먼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탄원서가 결과를 바꿨으리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만든 폭탄은 이미 군의 손에 넘어가 있었으니 어쨌거나 그들은 그 무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최상의 표적을 고르기 위해 위원회도 벌써 꾸린 터였다. 그런데 폭탄을 지면이 아니라 높은 공중에서 터뜨려야 한다고 군을 설득한 다름 아닌 폰 노이만이었다. 그래야 폭풍파의 피해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이 커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심지어 그는 최적의 높이가 600미터, 대략 2천 피트쯤이라는 계산도 직접 도출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 높이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예스러운 목재 가옥 지붕 위로, 우리가 만든 폭탄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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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노이만은 끝까지 세상을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시작으로 바라보았다고 하는구나.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스스로 계산하는 기계장치를 개발하는데 힘쓰는데, 그것이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이라는 결실로 나타났단다. 이후 줄리언 비글로와 함께 더 좋은 컴퓨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서, CPU에 의한 제어 장치, 기억 장치, 논리연산 장치로 구성된 컴퓨터를 개발한단다. 프린스턴 연구소에 있을 때 만나 결혼한 두 번째 아내 클라리 단도 컴퓨터 프로그래밍 개발에 참여하여 순서도를 제작하기도 했어. 그리고 그들은 수학분석기와 숫자 적분기 및 계산기가 가증한 업그레이드된 컴퓨터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MANIAC이었단다. MANIAC Mathematical Analyzer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의 약자였단다. 이 컴퓨터를 이용하여 최초로 체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행하기도 했어. 그 뿐만 아니라 군에서는 매니악을 이용하여 수소 폭탄 제조에도 이용이 되었어. 컴퓨터가 군에 의해 많이 생산되었단다. 초창기 컴퓨터는 대부분 군사용으로 쓰였던 거야.

폰 노이만은 53세에 안타깝게도 췌장암 진단을 받았어. 암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그는 계속 연구에 매진했단다. 그러면서 기계가 생물체들처럼 스스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것이 그의 사후 계속 연구되어 오늘날 알파고와 같은 AI 컴퓨터들로 이어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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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어떻게 기계가 스스로 생명을 얻어 살아갈 수 있는가? 튜링이 그의 기계를 구상한 것처럼 나도 이 문제를 철저하게 공식화할 수 있을 것 같네.” 연치는 죽기 몇 달 전 내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알레프제로(Aleph-zero)라고 명명한 일종의 자동기계가 존재하며, 이는 다음과 같은 속성을 지니는데, 만일 당신이 알레프제로에게 무엇에 관한 서술을 제시하면 그 정보를 흡수해 두 개의 사본을 생성한다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증명할 계획을 이미 세웠다고 했다. 튜링이 컴퓨터의 탄생으로 이어진 사고실험을 고안했을 때, 또 괴델이 불완전성정리를 증명했을 때 사용한 것과 같은 논리 방법, 자기 참조적이며 재귀적인 추론을 사용해, 단순히 1 0의 문자열이 아닌,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대상을 생성하는 이론적 기계를 설계해낸 것이다. 그는 일종의 임계점, 티핑 포인트가 존재하며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비로소 기계의 진화가 시작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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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지막 3부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전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단다. 이세돌과 AI 컴퓨터인 알파고가 바둑을 둔 것이 얼마 전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2016년으로 벌써 8년의 시간이 지났구나. 정말 세월이 빠르긴 하구나. 아무리 AI라고 하지만 바둑은 체스와 달리 경우의 경우가 너무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이세돌의 승리를 점쳤단다. 하지만 첫 번째 경기를 마치고, 두 번째 경기를 마치고 어쩌면 알파고를 한 번도 이길 수 없겠다는 예측들이 나왔던 기억이 나는구나. 결국은 이세돌이 4대국에서 한 판을 이겨 전체 스코어 4 1로 알파고가 최종 승리했는데, 그 한 번의 승리가 AI 컴퓨터를 인간이 이긴 유일한 경기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알파고는 그 이후 계속 더 진화하여 인간이 접바둑을 두고도 이기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이 책에서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어 반가웠단다. 이세돌의 목소리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은 좀 독특하다고 생각할 텐데, 아빠는 그것이 천성적으로 타고나고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어렸을 병을 앓고 목소리가 그렇게 변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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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이세돌, 쎈돌, 바둑 9, 동시대 누구보다 창의적인 바둑 기사. 첨단 인공지능 시스템과 대전을 치러 패배를 안긴 유일한 인간, 그는 열세 살이 되던 해에 목소리를 잃었다.

한반도 서쪽 끝자락의 작은 섬 비금도에서 서울로 상경한 지 오 년째, 프로 바둑 기사가 된 지는 육 개월째이던 1996, 폐에 알 수 없는 병증이 생겼다. 기관지가 상해 성대가 마비되었으니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으나 희한하게도 일부 단어를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일시적이었던 실어증의 근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질병(심오한 내적 혼란의 징후가 아니라 정말 질병이었다면)의 여파로 결국 기관지 신경이 영구적으로 마비됐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도 장난감 인형에서 나올 법한 독특하고 새되고 밭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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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은 목소리만 특이한 것이 아니라 바둑 기풍에 있어서도 독특하다고 하는구나. 아버지의 영향으로 5남매가 모두 어렸을 때부터 바둑을 배웠는데 이세돌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구나. 최연소로 프로 9단을 땄으며, 가끔 허세부리기도 하고 돌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K pop을 좋아하는 대한민국 젊은이이고 K 드라마도 즐겨 본다고 하더구나. 바둑을 둘 때도 예상치 못한 수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이 주특기였대. 하지만 이세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둑이었고, 그가 바둑을 은퇴하기 전까지는 매 순간 바둑만 생각하면서 지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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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30)

그에게 바둑이란 호흡과 같아서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바둑을 생각한다. 머릿속에 바둑판이 하나 있어서 새 전술이 떠오르면 그 바둑판에 돌을 둔다. 술을 마시고 드라마를 보고 당구를 칠 때도 늘 그런다.” 지금껏 눈 뜨고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바둑에 바치느라 놓친 것들이 아쉽지는 않은지, 사실상 정규교육이란 걸 받지 않았고 초등학교조차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은퇴를 앞두었는데 곧 닥쳐올 일에 맞설 준비는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바둑이야말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대답했다. 바둑의 무한한 복잡성은 인간 정신의 내적 작동 방식을 거울처럼 비추며, 바둑의 전술과 수수께끼와 풀 수 없어 보이는 난해함이 바둑을 우리 우주의 아름다움, 혼란, 질서를 유일하게 비견할 인간의 창조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바둑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러니까 돌의 위치와 관계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세에 숨겨진, 거의 감지할 수조차 없는 패턴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게 신의 정신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 이세돌에게는 승패보다는 바둑의 가장 심오한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따라서 모든 수를 전부 이해하기 전까지는 절대 게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김지석은 말했다. “한번은 이세돌과 새벽 두 시까지 술을 마셨는데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더니만 자기가 막 이기고 온 대국을 만취한 채로 복기하겠다며 흑돌과 백돌의 수 하나하나 다시 두기 시작했다. 이기기는 했으나 딱 한 수가-심지어 자신이 두었던 수인데!-완벽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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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대적한 알파고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알파고는 데미스 허사비스라는 사람이 개발을 했단다. 데미스는 어린 시절 체스를 잘 두어 대회에 입상하기도 했대. 대학에서는 프로그램과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는데 인지신경과학 박사 학위도 땄다는구나. 학창시절 많은 논문을 읽었는데 그 중에는 폰 노이만의 논문들도 포함되어 있었어. 2011년 그는 딥마인드라는 스타트업 회사를 창업했고, 2014년 구글이 4억달러라는 천문학자 금액으로 인수를 했단다. 회사가 인수된 이후에도 데미스는 딥마인드를 경영했으며, 알파고를 개발하게 된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바둑이라는 것은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단다. 그것을 다 고려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어. 그 경우가 수가 얼마냐 하면 아빠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숫자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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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바둑판에서 가능한 자리의 수, 즉 두 사람이 대국할 때 발생하는 고유한 돌 배열의 가짓수는 너무 커서 2016년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규명되었다.

208,168,199,381,979,984,699,478,633,344,862,770,286,522,453,884,530,548,425,639,456,820,927,419,612,738,015,378,525,648,451,698,519,643,907,259,916,015,628,128,546,089,888,314,427,129,715,319,317,557,736,620,397,247,064,84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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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전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알파고가 41로 완승을 했단다. 이것은 이세돌뿐만 아니라 그 경기를 지쳐봤던 관람객, 시청자들그리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이란다. 인간이 수십 년 동안 갈고 닦아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다는 것더 이상 인간이 가장 뛰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앞으로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세돌도 알파고의 대전을 끝내고 소회를 이야기했고, 이 대전과 상관없이 사전에 계획한 대로 은퇴를 했다고 하는구나. 그는 바둑 은퇴를 하고,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며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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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102)

일종의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제대로 결정타를 날렸죠. 어떻게 해도 이길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어요.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바둑을 뒀습니다. 그때 바둑은 예의와 매너가 전부였어요. 게임보다 예술을 배우는 것에 가까웠죠. 크고 난 후에야 바둑을 두뇌 게임으로 생각하게 됐지만 배울 때는 예술이었어요. 바둑은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예술작품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주 달라졌어요. AI가 도래하면서 바둑의 개념 자체가 바뀌어버렸습니다. 굉장한 충격이에요. 알파고는 나를 그냥 이긴 것이 아니라 무너뜨렸습니다. 이후로는 계속 바둑을 뒀지만, 은퇴는 진즉에 결심했어요. AI가 등장한 후로는 내가 최정상에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복귀해서 미친듯이 노력해 최고의 바둑기사가 되더라도, 최고일 수는 없어요. 세계 최고가 되어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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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가 이 책에 대해 아빠가 대충 이해한 것이란다. 이 소설이 심도 깊은 과학 지식을 좀 갖추고 있어야 이해하기 쉬웠을 것 같은데 아빠는 그 정도는 아니라서, 쉽지 않게 읽었단다. 너희들에게 이야기한 부분도 아빠가 이해한 부분과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주어, 어쩌면 책의 핵심이 빠져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이 책이 여전히 인기가 있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겠구나.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1993 9 25일 아침,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는 암스테르담에 얀 바테링크 교수가 세운 환아 교육 시설에 걸어들어가 열다섯 살 난 아들 바실리의 머리를 총으로 쏜 뒤 자신에게도 총을 겨눴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의 이름은 알파제로이다.


수학이란 신의 정신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숭배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수학에는 진정한 힘이 깃들어 있으며, 그 힘은 손쉽게 악용될 수 있다. 그 힘은 오직 인간만이 소유한 능력에서 탄생했는데, 은혜로운 우리의 신은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과 발톱 대신에, 그만큼 위험하고도 치명적인 힘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이에 관해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나에게 어떠한 심판이 내려지건 간에, 차마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그가 미래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내가 누구보다 먼저 보았음을. 그가 가진 능력이란 참으로 진귀하고 아름다워서 지켜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 나는 그것을 보았지만, 다른 것도 보았다. 우리 모두를 묶어두는 자제력을 상실한, 사악하고 기계 같은 지성. 그런데 왜 침묵했냐고? 그가 너무 우월했으니까. 나보다도. 우리 모두보다도. - P111

정말 모든 상황마다 합리적인 행동 경로라는 게 있을까? 조니는 이를 의심할 여지 없이 수학적으로 증명해냈으나 그건 오직 양측의 목적이 정반대로 다를 경우에 한정되었다. 그러니 우리의 추론에는 관찰안이 좋은 사람이면 단박에 발견해낼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 이론 전체의 틀을 떠받치는 최대최소정리는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주체를 상정한다. 그런 주체는 오직 이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며, 규칙을 완벽히 이해하고 자신의 이전 움직임을 모조리 기억할 뿐 아니라, 게임이 한 단계 진행될 때마다 자신과 상대방의 행동이 일으킬 수 있는 결과를 오차 없이 파악하고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정확히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자는 조니 폰 노이만뿐이다. - P176

에니악의 특징은 계산이 일어나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다는 거였다.
내부로 걸어들어가면 비트값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누구도 숫자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실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조니는 예외였다.
계산의 현장 한가운데 잠자코 서서 눈앞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던 그를 기억한다.
기계가 또다른 기계 안에 들어가 생각하는 모습을.
그는 다음날 나를 고용했다. 고등연구소에서 더 다은 기계를 함께 만들자는 거였다.
나는 곧장 연구소로 가는 기차를 탔다.
- P186

기계가 못하는 일이 있다고들 한다. 기계가 못하는 일이 정확히 뭔지 내게 말한다면, 나는 언제든 그걸 해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
- 존 폰 노이만
- P213

클라리는 자기 남편이 그렇게나 컴퓨터를 좋아하더니 아예 컴퓨터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연치는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계산했고, 그게 아니면 루프에 빠지거나 서서히 멈춰버리거나 오류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절대 미친 것이 아니었다. 대화할 때는 어느 때보다 명민했고, 사후 출간되어 읽은 그의 말년 연구는 생각할 거리가 풍부했으며, 수학적으로 아름다웠고, 기술적으로는 역시나 그의 연구답게 빈틈이 없었다. 그가 정말로 선을 넘어 이성이 굴레이자 제약이 되는 세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성을 옆으로 치워두어야만 하는 영역으로 들어가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표면적으로 암시한 신호는 단 하나, 암이 그의 혈액뇌장벽을 넘어서기 직전 그의 조지타운 집에서 내가 목격한 참으로 혼란스러운 일화였다. - P270

미래를 감춰놓은 베일을 걷어낼 수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과학이 다음에 어디로 진일보할지, 다가올 세기에 일어날 과학 발전의 비밀이 무언지 일별할 수 있다면,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 다비트 힐베르트
- P317

"사실은 알파고가 확률을 계산하는 기계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수를 본 순간에 생각이 달라졌어요. 알파고는 분명 창의적입니다. 그 수가 알파고에 대한 나의 시각을 바꾸었어요. 바둑에서 창의성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단순히 좋은 수, 위대한 수, 강력한 수를 두는 능력이 아닙니다. 의미 있는 수를 두는 능력이죠." 대국이 끝난 후 인터뷰를 진행한 다큐멘터리 제작진에게 그는 말했다. 이세돌은 평소였으면 포기했을 시점을 훌쩍 넘겨 세 시간을 어 기계와 싸웠다.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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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페 2024-05-02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4-05-04 14:3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185)

이건 진심이다! 좀 생기 있게 살아 봐! 네가 그 조로라는 노상 강도가 갖고 있는 용기와 기백의 반만큼이라도 가졌다면 원이 없겠다! 그 사람은 원칙을 갖고 있어. 그걸 위해 싸우고 있고. 그 사람은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고 있어. 나는 그 사람을 존경한다! 난 네가 하릴없이 빈둥거리면서 맥없이 몽상에나 젖어 지내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그 사람처럼 죽거나 감옥에 갇힐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싶다.”


(193)

앉아요. 안 그러면 발포할 거요! 나는 돈 알레한드로의 댁에서 당신들과 싸우러 온 게 아니오. 나는 어르신을 존경하기 때문에 그런 짓은 할 수 없소. 나는 당신들 자신에 관한 진실을 말해주러 온 거요. 당신네 가문들은 지사를 세울 수도 있고 끌어내릴 수도 있는 힘을 가졌어요! 대의를 위해서 하나로 뭉쳐요. 그렇게 해서 인간다운 삶을 살란 말이오. 마음속에 두려움만 없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거요. 모험을 좇기를 원하시오? 불의를 싸우는 삶에는 모험이 차고 넘쳐요.”


(201-202)

저는 경험도 없고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지도 않습니다.”

돈 디에고는 그렇게 말하고는 피곤해 뵈는 눈길로 돈 카릴로스를 쳐다보면서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를 몹시 연모하는 것처럼 쳐다보는 게 제일 좋을 거요. 우선, 결혼 얘기는 절대 하지 말고 사랑에 대해서만 얘기해 봐요. 쓰잘 데는 없는 얘기는 일절 하지 말고 울림이 풍부한 낮은 목소리로 은근하게 말해 봐요. 처녀들에게 의미심장하게 들릴만한 얘기를. 여러 가지 의미가 깃든 얘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은근하면서도 효과적이지.”


(205)

아 좋은 수가 떠올랐어요! 실연한 남자라면 어떻게 행동할까요? 당연히 코가 쭉 빠져서 기운이 하나도 없이 지낼 겁니다. 그리고 세상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으려 들겠죠! 어느 면에서는 아가씨가 저를 구해 준 셈입니다. 아가씨가 저를 사랑해 주지 않는 바람에 저는 번민에 싸여서 지내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제가 바보처럼 말 타고 정신없이 뛰어다니지 않고, 싸움도 하지 않고 양지쪽에 앉아서 멍하니 공상에 잠기거나 명상을 해도 하등 이상하게 생각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저는 마음껏 평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실연을 해서 그런다고 생각해 줄 거고.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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