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대통령 각하. 각하께서는 과학자라는 인종을 잘 모르시는군요. 우리는 특별한 욕심에 사로잡힌 인간입니다. 우리의 본능적인 욕망이란, 지적 욕구입니다. 그 강력함은 보통 사람들에게 식욕이나 성욕과도 같거나 그 이상입니다. 우리에게는 날 때부터 무언가를 알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414)

저는 위험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환경의 문제를 극복하고 건전한 시민 생활을 보냅니다. 혹자는 내면의 분노를 훌륭히 승화시켜서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외부 세계에 대한 분노가 날 때부터 가진 폭력 성향과 연결되어 흉악 범죄자로 치닫는 사람도 나타납니다. 자신의 직장에서 총을 난사하는 그런 패거리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세계를 없애 버리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지금 네메시스 작전이 누스의 마음에 공포와 불안, 그리고 분노를 심고 그의 자존심을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 세계에서 미움받는 존재라고 각인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작전을 진행하면 누스는 고도의 지성을 그대로 혼이 황혜화되겠지요.”

 

(462)

군산 복합체의 중심에 있다 보면 지배 논리란 것이 굉장히 단순하다는 사실에 놀라고는 했다. ‘공포였다. 전쟁으로 돈을 벌고 싶은 정책 결정자는 다른 나라의 위협을 과장하여 국민에게 크게 퍼뜨리기만 하면 됐다. 판단의 근거를 국가 기밀이란 벽으로 감춰 버리면 매스컴도 확인 없이 이 위협론에 올라탔다. 그저 그것만으로 막대한 자금이 세금에서 국방 예산으로 흘러들어 군수 기업 경영자들에게 갈 대가가 순식간에 뛰어올랐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심어진 공포는 국경 밖으로 전파되어 다른 나라도 미국을 따라서 군사 예산을 늘렸다. 이런 국가 간의 긴장은 의심 때문에 현실에 비해 훨씬 고조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진짜 전쟁으로 이어져 특정인만 이득을 얻는 무한한 금맥이 형성됐다. 게다가 위정자로서는 외적을 만들면 덤으로 지지율도 오른다는 이익이 생겼다.

 

(474)

이웃과 친하게 지내기보다 세계 평화를 외치는 게 더 간단하지. 알겠나, 전쟁이라는 것은 형태만 바꾸었을 뿐 서로 잡아먹는 건 똑같네. 그리고 인간은 지성을 써서 서로 잡아먹으려는 본능은 은폐하려 하네. 정치, 종교, 이데올로기, 애국심 같은 핑계를 주물럭대고 있지. 하지만 저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짐승하고 똑 같은 욕구일세. 영토를 둘러싸고 인간이 서로 죽이는 것과 자기 영역을 침범당한 침팬지가 미쳐 날뛰며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어디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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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24년 봄호 - 통권 185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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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녹색평론 2024년 봄 호, 185호를 읽었단다. 얼마 전에 또 한 번의 선거가 끝이 났단다. 야당의 압승으로 끝이 났지만, 보기 싫은 얼굴들이 대거 당선이 되어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더구나. 얼마 전에 Jiny가 학교 숙제라면서 현대 민주정치의 개선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물어봤잖아. 쉽지 않은 숙제로구나. Jiny는 먼저 다수결로 결정되다 보니 소수의견이 무시되는 문제점을 이야기했잖아. 참 좋은 지적인 것 같았어. 우리나라는 대의 민주주의로 선거에 뽑힌 사람들이 국민을 대신 정책을 결정하는데 그 사람들이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점도 있단다.

그리고 임기가 있는 선출직이다 보니, 오랜 시간이 필요한 중요한 국가 정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문제점도 있어. 단기간에 성과를 내어 다음 선거에서 이기려고 하는 그런 정책들만 내놓고 있지. 현대 민주 정치의 문제점들이 많지만, 선출직 대의 민주주의는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다는 것이 큰 문제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 그래서 녹색평론에서도 늘 이야기하지만, 국민 숙의제도라든가, 정책의 최종 결정을 시민이 할 수 있는 시민 의회제도, 아니면 아예 추첨제로 국회의원을 뽑는 제도도 소개해주었었단다. 우리나라 현실 정치에 끼어들기 쉽지 않은 제도들인 것 같아. 이번 녹색평론에서도 선거를 앞두고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만 민주주의를 얻을 수 있다면서 선거에 동참하자는 글을 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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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다가오는 선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차악(次惡)을 선택할 것인가, 소신껏 투표를 해야 할 것인가, 혹은 냉소적 무관심으로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을 표출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갈등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투표 용지 바깥으로도 눈을 돌려보자. 제약이 많이 여건 아래에서도 창조적으로 자율적 상호부조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자립적 자치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극복하기 어려워 보이는 문제들도 민중(demos) 가운데에 나오는 힘(kratos)이 있다면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인간다운 세상은 우리 각자의 용기 있는 선택으로 열릴 수 있다는 것을 믿어보자. 그리고 자치(自治), 즉 민주주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다만 이것은 4년에 하루에 끝나는 일이 아니다. 매일 같이 내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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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빠는 이제 진짜로 AI 시대로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든단다. ChatGTP를 필두로 여러 AI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AI가 그림 그림, 사진, 영상, 소설 등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영역들을 침범하고 있다는 게 실감이 간단다. AI가 인간 세계에 마냥 도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이유로 오히려 인간 세계에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하고 있단다. 그리고 AI의 발전은 기후 위기에 닥친 지구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단다. AI를 발전하게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데이터 센터가 세워질 텐데, 데이터 센터는 많은 양의 전기를 먹을 뿐만 아니라, 많은 양의 열을 내뿜게 된단다. 데이터 센터의 세울 때 가장 고심하는 것이 어떻게 열을 내리느냐이거든. AI를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전기에너지가 필요할 테고, 그 전기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 발전소를 만들 텐데, 쉽게 생각하는 것이 원자력 발전소라는구나. 그래서 원자력 발전소 관련 주식이 오르고 있다는 씁쓸한 소식도 들었어. 이번 녹색평론에서는 인공지능에 대해 많은 꼭지를 다루고 있는데, 이런 전기에너지 급증에 대항 우려도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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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

언론은 2024 1월 다보스포럼에서 인공지능으로 인해 생길 에너지 부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보도했다. 인공지능이 생각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쓸 것이므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핵융합에너지 기술의 개발과 원자력발전소의 추가 건립이 구체적인 대안으로 제시되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 2027년 인공지능이 연간 사용할 전력량이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스웨덴 같은 국가들이 각각 1년간 소비할 전력량과 비슷하다고 추정했다. 다보스포럼에서 한 기업가는 인공지능이 활성화되면 데이터센터 등 컴퓨터 전력 수요가 늘어나고, 전기사용량이 2050년쯤엔 지금의 1,000배가 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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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가장 큰 우려는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점이란다. 아무래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살다 보니 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직업을 선택할 때는 인공지능의 영향으로 직업군이 많이 바뀌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인공지능이 사람의 직업군을 너무 침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판사라는 직업은 인공지능으로 대체했으면 좋겠구나. 너무 주관적으로 치우친 판결을 너무 많이 하셔서 국민들을 열 받게 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야.

, 그런데 지구를 죽이면서까지 A/I가 필요한 것인지 잘 모르겠더구나.


2.

손주화, 윤현식, 황종규, 하승수 이렇게 네 분이 정치 개혁은 주민자치로부터라는 대담이 실려 있는데, 하시는 말씀들이 좋았단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정치인들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지방소멸과 지방자치에 대해 좋은 의견들을 내놓으셨단다. 지방 소멸을 해결하겠다고, 지방을 서울처럼 만들려는 정책은 잘못되었다고 했어. 참석자의 말씀대로 지방이 서울처럼 되길 기다리는 것보다 서울로 이사하는 것이 빠르니까 말이야. 물론 집값 걱정이 있긴 하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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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윤현식) 현 정치구조 아래에선 지방소멸을 막겠다는 정책 자체가 지방소멸을 가속화하게 돼 있습니다. ‘잘산다는 모델이 서울이고, 정책의 방향이 서울을 따라잡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전국정당이 대중에게 내놓는 정책의 모델은 서울입니다. 그런데 지방에서 사는 사람이 자기 동네가 서울처럼 되길 기다리는 게 빠를까요, 그냥 서울로 이주하는 게 나을까요? 지방은 서울을 모델로 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정치인들의 집권을 위한 장단에 놀아나는 것밖에 안됩니다. 그러니까 서울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자고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중앙에서는 나올 수 없어요. 군소정당도 전국적 지지에 갈급하니까 거시적인 얘기를 할 수밖에 없죠. 미시적인 의제는 들어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그렇지만 다른 얘기가 안 나오는 한 이 구조를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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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양대 정당 체제하에서는 지방소멸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척 어렵다고 했어. 지방의 작은 생활권 단위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도 했단다. 주민자치를 입법화하여 직접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어. 이번 독서 편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우리나라 현대 민주정치의 문제점과 맥을 같이 하는데, 주민자치가 살아나야 좀더 직접민주정치를 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지방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단다. 우리나라 국민성으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주민자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좀 들긴 했단다. 너무 이상적인 의견인 것 같기도 했단다. 우선 실천을 해 나가면서 이상과 현실을 좁혀야 하지 않나,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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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황종규) 그건 관이 파트너를 선택하기 때문이에요. 지역정당, 자치 그리고 시민적 실천, 이런 것들이 지금 굉장히 힘든 상황인 건 틀림없어요. 그러나 양대 정당의 정치적 독점 문제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죠. 세계 어디에서든 대의제는 주민들의 생활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삼을 방법도 없고, 원래 그런 제도가 아니에요. 우리가 대의제에 그걸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사회적 위기, 질곡을 해결하려면 작은 생활권 단위의 정치를 복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핵심은 생활권 단위 당사자로서의 주민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주민자치를 입법화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민이 정치에 참여해야 하고 주민자치를 진짜 지방자치라고 말은 하지만, 법에 주민의 자치권이 명시되어 있지 않거든요. 자치권을 갑고 있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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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이외에도 지방자치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실었단다. 그런 이야기 중에 바닷가 모래밭의 오사용에 대한 예를 들면서, 국민들이 좀더 정치에 참여하면 그런 오사용을 방지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단다. 아빠는 바닷가의 모래밭이 그렇게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단다. 무슨 말이냐면 바닷가 모래밭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것인데, 특정 개인에게 상업 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해 주고 있다는 거야. 그 개인의 땅도 아닌데 말이야.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아빠처럼 바닷가 모래밭에 세워진 상업시설들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해야 할 땅을 특정인이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야. 그걸 많은 사람들이 알고 또 그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지차체에서도 쉽게 허가를 내주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한단다. 아는 것이 힘. 지금이라도 관련 지차체에서는 아름다움 모래밭을 되찾기 위한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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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82)

바닷가 모래밭은 누구의 것인가? 모두의 것이다. 환경주의의 과격한 주장이 아니라 법에서 바닷가 모래밭은 공유수면이고, 모두의 것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두의 것인 바닷가 모래밭을 특정인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독점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온당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바닷가 모래밭을 누릴 자유와 권리가 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그것을 빼앗기고 있었다.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함께 바닷가 모래밭을 지켜야 한다. 바닷가 모래밭을 지키기 위해서 소송을 하고 시위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바닷가 모래밭이 모두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바닷가 모래밭을 누군가가 독점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부당하다고 느낀다면, 모래밭을 특정인이 독점하는 방식의 상업행위는 확산되기 어려워진다. 지차체들도 허가를 내주는 것을 주저하게 될 것이다. 나도 이번에 양양에 직접 가보지 않았다면 바닷가 모래밭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바닷가 모래밭을 빼앗기도 나서야 그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그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이 문제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바닷가 모래밭을 지켜야 한다.

=======================

….

보통 녹색평론에서 서너 권의 책 서평을 실어주는데, 이번 호에서는 여섯 권을 소개해 주었단다. 그 중에 아빠는 라리사 짐버로프의 <음식의 미래>와 김해자 님의 <니들의 시간>이라는 책을 읽어보고 싶더구나. 라리사 짐버로프의 <음식의 미래>는 책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먹거리에 관한 책이란다. 먹는 것이 곧 우리의 몸이 되니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겠니. 그러면 어떻게 먹어야 할까를 이야기하고, 음식 쓰레기에 대해 대처하면서 지구도 구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되어 있다고 했어. 지구를 걱정하면서도 먹거리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있다면 읽어볼 만 책인 것 같았어.

김해자 님의 <니들의 시간>은 시집이란다. 아빠가 지난 녹색평론 184호에 실린 김해자 님의 <삼십년 후, 소년 소녀에게>라는 시를 너희들에게 소개해 준 적이 있었잖니. 그 시도 시집 <니들의 시간>에 실려 있다고 하는구나. 그 밖에 시의 언어로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는 것 같았어. 아빠가 시를 많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시집은 한번 읽어보고 싶더구나. 그래서 리스트에 올려 놓았단다.

이상 녹색평론 2024년 봄 호, 185호의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았다. 약간 아쉬운 이번 총선의 결과였지만, 국민의 뜻은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단다. 그렇게 충분히 보여주었는데, 과연 그 분은 국민의 뜻을 제대로 볼까? 아니면 지금처럼 해온 것처럼 철저히 외면할까? 총선 이후 몇몇 언론에 비친 모습과 인선을 보니 변하지 않을 것 같구나. 아직도 3년도 더 남았구나. 너무 길다.


PS,

책의 첫 문장: 인공지능(AI)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다.

책의 끝 문장: 그래야 정치적 승리도 사회경제적 발전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는 에너지가 끝없이 요구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보를 전송하고 보관하고 처리하는 기반시설은 지금껏 인류가 볼 수 없었던 엄청난 규모의 기계인데 지금도 시시각각 빠른 속도로 비대해지고 있다. 2025년이 되면 데이터 처리를 위한 설비가 잡아먹는 전력이 전 세계 전력 소비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거기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세계 전체 배출량의 5%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다. 미국 환경사회학자 리처드 요크에 따르면, 재생에너지원들이 늘어나서 예전보다 전체 에너지 생산에서 비중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화석연로 소비가 줄어들고 있지는 않다. 생산되고 있는 에너지 총량이 확대되고 있을 뿐이다. 2023년에 전 세계 석유 수요는 역사상 최대치에 이르렀고, 인구 1인당 전력 소비량도 정점을 찍었다. (모든 에너지원으로부터의) 에너지 소비는 꾸준하게 해마다 1~2% 증가하고 있다. - P6

기술과 법에 의존하는 태도는 오히려 다양한 우회로와 부작용을 만들어낼 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간 인지능력은 기술과 달리 거의 진화하지 않는다.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싱크 어게인>에서 "대상이 물건일 때 사람들은 열정을 다해 업데이트하지만 대상이 지식이나 견해일 때는 기존 것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개발한 도구는 인간지능을 넘어설 정도로 똑똑하고 강력해졌지만 인간은 그 똑똑한 도구에 압도당할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사람은 살아가는 ‘양복 입은 구석기인’으로 불린다. 하버드대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류의 진짜 문제는 인간 정서는 구석기 시대에, 제도는 중세에 머물러 있는데 기술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 P20

디스토피아는 ‘인공지능 대 인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미래가 아니라, 권력을 흡수한 거대기업이 인공지능을 내세워 시민(노동자)을 일터에서 내쫓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현재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가장 먼저 뿌리쳐야 할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 이상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현대판 애니미즘’ 신앙이다. 김진석에게서도 얼핏 볼 수 있었던 이런 신앙의 문제점은 인간의 문제를 인간의 가치(인문적)로 푸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항상 해결책이라는 기술우월주의의 품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럴수록 인간은 점점 인공지능의 볼모가 된다. - P40

경기 수도권은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시한폭탄 같다. 재정자립도가 높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가는 지역의 생태환경을 우회적으로 증거하는 척도이다. 개발수익이 나면 그 개발수익 전체를 다시 자연을 정화하고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일에 쏟아부어도 제로포인트에 근접하지 못할 지경인데, 그 수입을 또다른 개발을 위한 개발에 투자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현실을 직시한다면 지역의 정치인들이나 단체장들은 인사말을 이렇게 열어야 할 것이다-플라스틱 사용을 줄입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줄이고 친환경농법 예산을 늘립시다, 일정량의 탄소배출 업체는 앞으로 우리 지역에 발 디딜 수 없도록 합시다, 지금 당장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들의 미래는 없습니다. - P108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과연 기업이 주도하는 데이터 기반 스마트농업은 이미 지속 불가능하다고 판정된 현행 농식품체계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동화와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농기계를 사용하는 정밀농업은 에너지와 투입재 사용을 줄이면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가? 더 많은 실증적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사례들을 통해 도출되는 답은 ‘아니요’에 가깝다.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 투입재에 대한 농민의 의존성을 높이고, 농민의 권리와 자율성을 침해할 공산이 크고, 에너지와 투입재 사용을 줄인다는 증거도 불충분하다. 여기에 더해, 농업분야의 금융화화 농민의 부채,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탈숙련화를 가져오고, 이들에 대한 착취, 감시가 확대되는 등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P154

첫째는 음식물 ‘업사이클링’이다. 전 세계 식량 생산량은 인구에 비해 모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양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 문제다. 맛과 영양에 문제가 없지만 크기와 모양이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농장에서 그냥 썩어가는 작물의 양이 상당하다. 슈퍼마켓의 냉장고에 있다가 버려지는 음식들은 가공과 유통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폐기할 때도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옛날 분들은 "음식 남기면 천벌 받는다"고 하셨다. 이제 이 말은 은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인류가 버리는 음식들로 기후변화와 생태재난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것을 천벌이라고 한다면 받아 마땅한 천벌이다. 멀쩡한 음식을 버리지 않고 잘 활용할 수 있는 생산과 유통 기술을 더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런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가장 먼저 연구해야 한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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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

남로당이 불법화되자 그때부터 서청의 민중 탄압은 더욱 포악해졌다. 이 무렵에 많은 서청 단원들이 경찰로 특채되었고 제주경찰서 서장도 서청 출신이 되었다.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한라산에 백두산 호랑이가 왔노라! 공포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었다.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공포였다. 구타가 일상화되어 한번 걸려들면 언제 끝날지 모를 고문과 구타를 견뎌야 했다. 남로당의 민애청 소속 청년들은 지하로 더욱 깊이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민애청에 속하지 않은 청년들도 잡히면 민애청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가 어려워 무조건 도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상이 있든 없든, 뭔가 한 일이 있든 없든 간에 잡히기만 하면 무조건 개 패듯이 했다.  


(41-42)

미군정은 서청에 이어 도내 우익 청년 단체도 경찰 보조 인력으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10월 말경에 미군방첩대의 지휘 아래 몇 개의 군소 우익단체를 합친 단일조직체 대동청년단(대청)이 결성되었다. 그동안 여론에 밀려 좌익이 붙인 삐라를 떼고 그 위에 자기네 삐라를 덧붙이는 따위의 소극적인 활동밖에 할 수 없었던 그들이 아연 활기를 띠며 수배당한 청년들이 지하로 잠적하여 생긴 빈 공간을 차지하려 달려들었다. 서청과 마찬가지로 경찰을 도와 피의자 검거에 나서는 무서운 존대로 변신한 것이었다. 우익 학생 조직인 학생연명(학련)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그들은 세를 불리려고 시국 강연회, 삐라와 포스터 살포 활동을 맹렬히 벌여나갔다. 이제 법을 쥔 자는 우리다! 우리가 법이다! 우리 말이 법이다! 우리가 빨갱이라고 하면 빨갱이다!


(42-43)

그렇게 공포에 짓눌린 가운데서도 단독선거 반대를 내건 2.7사건이 터졌다. 설마설마하던 남조선만의 단독 선거 책동이 1월 중순이 되자 바로 눈앞의 현실로 나타났는데, 5 10일 이전에 남쪽만의 선거를 치른다고 했다. 지난 삼년 동안 온 나라 백성이 갈구해온 통일국가의 꿈에 대한 공식적인 전면 부정이었다. 온 천지가 분노와 탄식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남로당과 민전이 2 7일을 기해 전국적 총파업을 일으키고 김구와 김규식 등 우익 세력이 이에 적극 호응함으로써 단독선거 반대의 함성이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터져나왔다. 공장 노동자, 부두 노동자 들이 파업을 단행했고, 전기 노동자는 송전을 중단했고, 철도 노동자는 철도 운행을 중지했고, 통신 노동자는 통신을 두절시켰다. 수많은 학생, 농민, 노동자들이 가두시위에 나섰고 경찰지서들이 공격당했다.


(68-69)

, 여러분, 이제 울음을 멈춥시다! 언제까지 우리가 울기만 할 겁니까? 언제까지 우리가 매 맞기만 할 겁니까? 저놈들은 용철이처럼 우리도 매를 때려 죽일 거우다. 저놈들한테 매 맞아 죽을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앉은 채 매 맞아 죽을 순 없지 않습니까? 우리 일어납시다. 일어나서 싸웁시다. 싸웁시다! 복수합시다! 여러분, 저 악독한 서청 강도들을 이 땅에서 몰아냅시다! 여기는 우리 땅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 땅을 저 침략자들이 짓밟고 있습니다. 저 육지 놈들이, 저 육지 경찰 놈들이, 저 서청 놈들이 이 땅을 짓밟고 있습니다. 침략자들을 물리칩시다!”


(86)

미군정이 딘 소장을 둘러싼 최고 수뇌부가 항공편으로 날아들어 비밀회의를 열었는데, 딘 소장을 대변한 경무부장 조병옥이 화평 정책을 내세운 김익렬 연대장을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하면서 무섭게 몰아붙였다. 김익렬이 모처럼 얻어낸 산부대와의 약속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미군정 당국에 의해 파기되었다. 정책은 화평이 아닌 강경 무력 진압으로 급선회했다. 남쪽만의 단독선거인 5.10선거가 코앞으로 닥쳐왔으므로 그전에 군대를 투입해 저항 세력을 속전속결로 진압해버리자는 것이 미군정의 의도였다. 순식간에 경비대의 대이동이 이루어졌다. 온건파 김익렬이 해임되었고, 9연대도 일부만 남기고 육지부로 전출시키고 수원에 있던 11연대를 불러들였다.


(87)

갑자기 교체된 11연대는 9연대와 달리 일본군이 쓰던 99식 장총 대신에 미제 카빈총으로 무장하고 군비 일체를 미제로 일신했다. 박격포, 로켓포 등 중화기도 들어왔다. 일본군 출신 중령 박진경이 연대장이었다. 그 무렵 경비대에서는 그때까지 주도권을 잡고 있던 민족주의 세력이 제거되고 그 자리를 일본군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박진경은 북소학교 운동장에 박격포와 로켓포를 진열하고 사살한 시체들을 관덕정 마당에 늘어놓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수많은 사람들을 연행해 포로수용소에 수감했다.


(95-96)

조천리 사람들은 목장에 도착한 즉시 이슬 젖은 풀밭에 선 채로 얼마 동안 집회를 가졌다. 조천리와 와흘리 산부대 청년들 몇 명이 번갈아가며 연설을 했다. 저놈들은 우리를 반역자라고 하는데, 왜 우리가 반역자인가? 우리는 미군정에 반대하는 것이지 민족에 반역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통일 정부를 세우자는 주장이 애국이지 왜 반역인가? 오히려 단독정부를 지지하여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반역 행위다. 이 나라의 허리를 잘라서는 안 된다, 국방경비대는 우리 편이니 곧 해결이 날 것이다 하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 하는 행동이 과연 잘하는 일인지, 큰 죄를 짓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128-129)

외세에 대한 싸움이 이제는 동족 간의 싸움으로까지 번져갔다. 산과 해변의 대립은 살벌했다. 좌우 양쪽이 번갈아 서로를 죽이고, 그 가족을 죽이고, 그 집에 불을 질렀다. 복수심에 눈멀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친구가 친구를 잡아먹고, 친척이 친척을 잡아먹었다. 천년의 공동체, 무엇으로도 끊어낼 수 없을 것 같던 끈끈한 우애와 혈연의 공동체, 씨줄 날줄로 정교하게 엮인 그 돈독한 공동체가 무참히 찢겨나가고 있었다. 일찌감치 군경에 장악당한 읍내의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위에 붙어라, 아래 붙어라 산에 붙어라, 해변에 붙어라.”


(189-190)

방화에 살인에 도취된 자들이 환각 속에서 계속 불을 지른다. 고함치고 총을 난사한다. 겨우 불을 피해 벗어난 사람들을 향해 총알이 사정없이 날아간다. 참새떼가 날고, 닭이 날고, 사람들과 개, 돼지, , 말 들이 달아난다. 총격에 쫓긴 사람들이 혼비백산 울담을 타고 넘어 산 쪽으로 도망친다. 근처의 대숲이나 덤불숲에 뛰어든다. 닭들도 덤불 아래로 오르르 숨어든다. 죽어가면서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내년 농사를 위해 보관 중이던 씨앗 망태가 타고, 이 집 저 집 곳간에서 쥐를 없애고 곳간을 지켜주던 업신 구렁배암들이 타 죽는다. 닭 한마리라도 구해보려고 옆구리에 끼고 달아나던 소년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울담을 넘어 도망치던 청년이 총에 맞아 돌덩이 하나 가슴에 안고 엎어지고, 아기 안은 아낙이 솜옷 입은 등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른 채 허둥지둥 달아나다가 쓰러진다. 쌀독은 물론 간장독, 된장독, 부엌의 물 항아리, 솥단지들이 개머리판에 맞아 와장창 깨진다. 죽음의 위협을 느낀 노파들이 궤 속에 보관 중이던 호상옷 보따리를 챙겨 허리춤에 매고 불 밖으로 나가려고 허둥대고, 매운 연기를 마시고 캑캑거린다.


(199-200)

하늘이 무너져내린다. 어느 순간 검은 구름이 크게 찢기면서 그 틈새로 기울어진 저녁 햇빛이 폭포수처럼 눈부시게 쏟아진다. 그 사다리를 타고 주황빛 불의 날개를 펄떡거리면서, 불의 칼을 휘두르면서 수많은 천사들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려온다. 불의 칼, 불의 날개들이 이글거리면서 지상을 휩쓴다. 하느님이 명령한다. “그러니 너희는 당장에 가서 아말렉을 치고 그 재산을 사정 보지 말고 모조리 없애라! 남자와 여자, 아이와 젖먹이, 소떼와 양떼, 낙타와 나귀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라!” 최고 사령관 로스웰 브라운이 단호하게 천명한다. “사태의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오직 진압뿐이다!” 이승만이 명령한다. “공비 토벌을 빨리 끝내라. 시일을 끌면서 이렇다 저렇다 보고하지 말고, 공비가 없어졌다는 보고를 듣고 싶다.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불순분자를 제거하라! 지체 말고 단숨에 처리하라! 가혹하게 응징하라!” 조병옥이 맞장구친가. “온 섬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태워버려야 한다!” 월남민 교회의 목사가 설교한다. “한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서청 여러분을 위해 하느님께 축복을 청합니다. 여러분의 승리는 곧 하느님의 승리입니다. 어서 그 붉은 무리들을 소탕하고 오시오!” 연대장 송요찬이 외친다. “일본 군대는 이러지 않았어! 더 잔인하게! 더 잔인하게!”


(245-246)

사람은 누구나 미워하는 마음 없이는, 증오 없이는 싸우지 못하는 법, 지휘관은 신병의 마음속에서 증오의 불씨를 지피려고, 인간 정신의 가장 어두운 부분, 밑바닥 깊이 숨어 있는 야만성을 일깨우려고 악을 써댔다. 그러나 빨갱이에 대한 증오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니, 증오조차 없이 죽여야 했다. 아무리 하느님은 뜻, 하느님의 명령이라지만 무고한 사람을 학살하고 있다는 생각이 신병을 괴롭혔다. 그러나 우물쭈물할 수가 없었다. 상관이 무서웠다. 한라산의 산군보다 더 무서웠다. 우물쭈물했다간 무지하게 얻어맞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여전히 두려웠다.


(250)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직급의 경찰에게 즉결처분권이 주어져 있었다. 고문과 살인이 너무도 흔해졌고 그 자체에 쾌감을 느끼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 무서운 광증은 집단 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광기에 중독된 자들이 법을 가진 자, 법을 쥔 자가 되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죽이고, 시키지 않아도 내 마음대로 죽이고, 닥치는 대로 마구 죽였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인간에게 목숨을 준 신에게만 그것을 빼앗을 권리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을 때 그들은 마치 신의 권능을 부여받은 것 같은 황홀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람 죽이는 일은 죄인데 마음대로 죽여도 좋다니, 게다가 그것이 애국 행위라니, 참으로 기묘한 희열이고 최상의 쾌락이자 최고의 자유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그 힘에 도취되었다. 희생자들은 그렇게 죽어 마땅한 존재처럼 보였다. 매일 한명이라도 죽이지 않으면 밥맛이 없다고 떠벌리는 자들도 생겨났다.


(323)

도대체 우리가 잘못한 게 뭔가? 무얼 잘못했단 말인가? 아아, 우리의 죽음이 아무 보람도, 아무 가치고 없는 죽음이 되어버렸어. 그게 원통해! 도대체 이건 인간의 죽음이 아니여. 짐승이라도 이런 떼죽음은 없어. 너무 억울해, 원통하고 절통해! 우린 결코, 우린 결코 죽어도 죽지 않을 거여! 너무도 원통해 죽어도 죽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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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6 - 제2부 민족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조정래 님의 <아리랑> 6권을 이야기해줄게.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리랑>은 너희들도 나중에 꼭 읽으면 좋겠구나. <아리랑>을 통해 일제 시대 역사를 알 수도 있는 좋은 기회는 당연한 것이고, 우리나라 지리에 대한 묘사도 정말 아름답게 하시는 것 같단다. 그런 부분이 여러 곳 나오는데, 오늘은 백두산과 압록강에 대한 묘사한 부분을 소개해 줄게.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을 뽑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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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양쪽 강변에 완만하고 묵직한 자태로 뻗어나가고 있는 산줄기는 진초록으로 치장한 몸을 압록강에 그림자로 담그고 있었다. 느린 파도의 굽이침처럼 봉우리 봉우리를 이루어나가고 있는 그 긴 산줄기는 동쪽으로 가면서 점점 높아지고 억세지면서 그 모습을 아스라하게 감추고 있었다. 그 산줄기를 따라서 따라서 가면 이르게 되는 곳, 그곳이 백두산이었다. 그러니까 압록강 양쪽으로 뻗어내리고 있는 산줄기는 사방팔방으로 뻗치고 있는 백두산의 서쪽 일부 자태였고, 압록강 철교 부근에서 자취를 감추는 산줄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드리워진 백두산의 머리카락 그 한오라기 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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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면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는데, 우리나라 함경도에 프랑스 파리 식으로 만든 도시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단다. 물론 아빠가 <아리랑> 20여 년 전에 한번 읽었으니 그때도 알았을 텐데, 다 까먹어 버렸으니 처음 알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지. 나남의 옛 사진을 좀 찾아봤는데, 서양식 건물이 몇 개 있는 것 같은데, 파리식으로 보일만한 사진은 찾기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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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남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식으로 꾸며졌다고 했다. 나남은 그야말로 군대가 중심이고 군이니 주인인 도시였다.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건물이 시가지 중앙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고, 바로 그 옆에 있는 원형공원을 중심으로 해서 일곱 개의 도로가 방사선으로 곧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로들에서 다시 가지를 치며 다른 도로가 뻗어나가기도 했다. 나남은 억센 산줄기 많기로 유명한 함경북고의 산들로 에워싸여 있는 자연요새 같은 분지였다. 그 궁벽한 오지에 어찌 그리 멋들어진 서양식 건물들을 즐비하게 세워 도시를 이루어낸 것인지 양치성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데 나남에서는 조선사람들의 집이라고는 기와집이든 초가집이든 간에 단 한 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온통 서양식 관공서들과 일본식 상점이나 집들로 차 있는 것을 양치성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군산이 개명한 줄 알았는데 군산은 나남에 댈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의문은 한마디의 설명으로 쉽게 풀렸다. 일본군이 처음 나남에 주둔한 것은 노일전쟁이 끝나면서였고, 그때 나남은 조선사람들 30호 정도가 마을을 이루고 산 한촌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10년 세월 동안에 순전히 일본사람들 손으로 새 도시가 꾸며졌으니 한옥이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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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아리랑> 6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6권이 제2부 민족혼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구나. 일본 정보부 소속 양치성은 장사꾼으로 위장하여 만주로 떠난단다. 만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군 조직을 색출하기 위함이지. 그 만주땅에는 송수익도 가명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어. 대놓고 독립운동을 할 수 없어서, 겉으로는 대종교로 활동하면서 실제로는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어. 국내에서 살기 어려워진 백성들이 만주로 밀려들었는데, 이 중에는 밀정도 있었어. 그래서 새로 오는 사람들은 아주 철저하게 조사를 했고, 밀정으로 밝혀진 이들은 가차없이 죽였단다. 백성들이 만주에 정착한 마을은 통하현, 유하현, 해룡현 등으로 계속 늘어났단다. 그 와중에 대종교 교주였던 나철의 자살 사건이 있어서 독립운동이 위축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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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나철은 유서 <순명삼조(殉命三條>를 통해 자신이 왜 목숨을 바치는지를 밝히고 있었다. 첫째 배달민족의 번성이 걸린 대교를 위해 죽는 것이며, 둘째 한배님의 은혜를 갚지 못한 죄로 한배님을 위해 죽는 것이며, 셋째 온 천하의 동포 형제자매가 암흑세상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대신 죽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계기로 하여 대종교가 더욱 번창하고, 그 힘으로 일본을 물리쳐 배달민족이 광명을 되찾기를 소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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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국내에서는 군자금 조달을 하려는 노력이 이어졌어. 박상진이라는 사람은 대한광복단을 만들어 친일 부자들에게 경고 편지를 보내고 강제로 돈을 빼앗는 과감성을 보이기도 했어. 주색잡기에 빠진 정재규도 그 경고편지를 받았단다. 그 편지를 받고 겁을 잔뜩 집어 먹은 정재규는 주재소를 찾아가 신고를 하고 신변 보호 요청을 했어. 주재소는 이에 서무룡 일당을 보내주었단다. 서무룡 기억나지? 깡패 집단을 만들고 자신이 오야붕이 된 사람. 도둑을 지키겠다고 집안에 깡패 무리들을 끌어들인 거야. 서무룡 일당들은 정재규의 집에 와서 오히려 온갖 횡포를 부리고, 집을 지켜준다고 큰 돈을 요구하기도 했어. 정재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서무룡의 요구를 들어주었단다. 박상진의 대한광복단은 대구에서 육혈포 강도단 사건으로 친일 부자들을 죽이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못 가 체포 당하고 말았단다.

 

1.

일제의 탄압은 점점 심해져서 사사건건 통제를 했어. 당시 전국에 서당이 만여 곳이었는데, 일제는 서당 폐쇄법으로 강력 규제를 했단다. 서당을 중심으로 민족의식을 높이려던 노력도 더 이상 할 수 없었어.

불쌍한 보름이도 생각나지? 장칠문이 첩으로 두었다가 일본의 사찰과장 세키야에게 빼앗겼잖아. 보름이를 서무룡이도 탐내고 있었는데, 서무룡은 보름이가 혼자 있을 때를 틈 타 찾아와 겁탈했단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란다. 불쌍한 보름이는 세키야의 아이를 임신했어.

정재규, 정상규, 정도규 삼형제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려줄게. 크게 바뀐 건 없어. 정재규는 여전히 주색잡기로 정신을 못 차리고, 정상규는 재산을 불리는데 혈안이 되어 소작인들을 엄청 괴롭혀서 소문이 났지. 정도규는 이 두 형들을 못 마땅해했고, 자신은 일본에 유학을 하면서 다른 유학생들과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했단다.

다시 만주의 밀정 양치성 이야기를 해줄게. 양치성은 밀정 검사를 통과해서 송수익이 살고 있는 마을 잠입에 성공했단다. 장사꾼을 위장하여 그 마을을 수시로 드나들었어. 그런데 그 사악한 밀정도 보는 눈이 있는데, 그만 수국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단다. 자신이 밀정 일로 그 마을에 오는지, 수국을 보러 오는지 스스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어. 수국에 반한 사람은 양치성 뿐만 아니라, 수국의 동생 방대근의 친구인 김시국도 수국을 좋아했단다. 김시국은 수국에게 고백을 했지만 수국은 거절했어. 예전에 그 일 이후 남자들을 너무 무서워하고 거부했단다.

한편, 송수익은 방대근, 김시국 등과 함께 무기를 얻기 위해 연해주에 왔단다. 당시 연해주는 러시아 혁명 이후 백군과 적군이 내전을 벌이고 있어서 혼란의 시기였어. 연해주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하던 조선 청년들도 이 내전으로 혼란을 가져왔어. 연해주의 이런 혼란으로 무기를 목표량에 한참 미치지 못했단다. 만주에서는 독립운동은 점점 무르익고 있었고 1918 11 18일 만주에서 독립선언을 발표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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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만주땅의 가을은 너무 짧아 9월로 접어들면서 며칠 간 가을빛이 스치는 것 같으면서 나뭇잎들이 와짝 단풍이 들었다. 그 단풍들도 며칠이 못가 낙엽 지며 10월의 문턱에서 얼음이 얼었다. 그리고 설한풍이 몰려오는 11월의 만주땅에 뜻밖의 열풍이 일어났다. 독립지사 39명의 이름으로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된 것이었다. 그 독립선언서는 만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박은식 신채호 박규식을 대표로 하여 중국 전역을, 이동휘 이범윤 등을 대표로 하여 노령 일대를, 박용만 안창호 이승만을 대표로 하여 미주지역까지 포괄하는 그야말로 범민족적 대표성을 확보한 최초의 대한독립선언서였던 것이다. 1918 11 13일 터져오른 함성이었다. 사람들은 그 선언을 무오(戊午)독립선언이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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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19 2 8일에서는 도쿄에서 유학생들 중심으로 독립선언을 발표했단다. 이때 주도한 백관수라는 사람인데, 그가 남긴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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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백관수 : ……오족(吾族)은 생존의 권리를 위하여 모든 자유행동을 수()하여 최후의 일인까지 자유를 위하여 열혈의 투쟁을 불사할 것이다. …… 일본이 만약 오족의 정당한 요구에 응치 않으면 오족은 일본에 대하여 영원히 혈전을 선언하겠다. …… ()에 오족은 일본 또는 세계 각국이 오족에게 민족자결의 기회를 부여할 것을 요구하여 만불성(萬不成)하면 오족은 생존을 위하여 자유행동을 취하여 오족의 독립을 기성(期成)할 것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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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6권에는 삼일운동에 대한 전개 과정을 상세히 잘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삼일운동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란다. 앞서 이야기했던 만주에서의 독립선언, 도쿄에서의 독립선언이 영향을 주었고, 국내외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3.1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거야. 드디어 1919 3 1일 종로에서 3.1 운동의 횃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단다. 33인의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으나 실제 백성들이 모여 있는 종로에는 나타나지 않았단다. 그들의 비겁함은 아빠가 작년에 읽은 <만세열전>에서도 이야기 주었지. 그래서 학생들 중심으로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어.

공허 스님도 그 현장에 있다가 이 큰 물결을 전국으로 퍼트려야겠다고 생각하여 군산으로 독립선언서를 들고 내려갔단다. 공허 스님이 군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군산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 운동을 하고 있었어. 송수익의 첫째 아들인 송중원도 만세 운동에 참가했어. 이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는데, 대부분 학생들과 농민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되었다고 하는구나.

땅을 일제에 빼앗겨 되찾는 것을 도모하고 있던 박건식, 김춘배도 만세 운동을 통해서 땅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단다. 무리들을 이끌고 주재소까지 밀고 갔는데 일본 경찰들도 강경 대응하였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김춘배도 칼에 찔려 죽고 말았단다. 뿐만 아니라 경찰에 잡힌 만세꾼들은 공개 처형을 당했단다. 만세꾼들도 밤에 친일파 지주들을 습격하곤 했단다. 호남 친화회 회장인 악질 백종두도 습격을 당해 중상을 입고 며칠 지나 숨지고 말았단다. 소설 속에서라도 친일파들이 이렇게 처단되는 것이 시원하더구나.

 

2.

수국의 미모는 중국인 지주까지 반하게 하여 수국을 첩으로 삼으려고 했어. 송수익이 잘 설득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단다. 결국 감골댁, 수국, 방대근은 야반도주하기로 했단다. 송수익이 추천장을 써주어 대근의 식구들은 북간도 용정으로 또 이주했단다. 방대근은 대한정의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했고, 감골댁와 수국도 대한정의단의 살림을 도와주었어.

여자에 눈이 멀면 세상 끝까지 쫓아오는가 보구나. 먼저 방대근의 친구 김시국이 수국을 찾아왔단다. 수국은 여전히 김시국의 구애를 거절했어. 얼마 후에는 장사꾼으로 위장한 양치성까지 찾아왔단다. 양치성은 김치국이 수국에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납치해서 죽여버렸단다.

만세 운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만주까지 퍼졌단다. 3.1운동 이후 서간도와 북간도에서는 많은 독립단체들이 생겨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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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본국에서 3.1 만세가 일어나고 그 불길이 서간도로 옮겨 붙자 북간도의 여러 단체들은 만세시위를 계획했다. 그 단체들은 대종교의 중광단, 기독교계의 간민회, 공자를 모시는 공교도, 성리교 단체 등이었다. 그들은 시위가 벌어진 그날 저녁 연길현 국자가에서 통일조직으로 조선독립기성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4월에 접어들어 명칭을 대한국민회로 바꾸면서 조직을 개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간부직을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광단에서는 그 사태를 묵과하지 않았다. 외래 종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대종교들로서는 기독교인들의 그런 독주를 용납할 수 없었고, 또 그동안 많은 학교를 세우고 무오독립선언을 추진하는 등 북간도의 독립운동을 주도해 왔던 중광단의 명예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중광단은 5월에 대한국민회를 탈퇴하여 대한정의단을 결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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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독립단체들이 생기도 하니, 지향하는 바도 다른 경우도 있는데, 그 단체들 중에는 나라를 되찾으려는 목표가 다시 임금을 받들기 위해서라는 단체도 있었어. 그런 걸 복벽주의자들이었는데, 송수익은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 임금 중심의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새로운 나라는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나라여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빠도 송수익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

만주에서 불이 붙은 독립 운동은 무장투쟁으로까지 이어졌단다.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많은 백성들의 가슴을 뛰게 했단다. 봉오동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은 비겁한 복수를 했단다. 원래 일본 경찰은 만주에 직접 들어오지 못하는데, 훈춘 사건을 조작하여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일본 경찰과 군인들이 만주로 들어와서 독립군들을 토벌하기 시작한 거야. 이때 많은 독립군들이 죽었단다. 송수식의 부하이자 필녀의 남편이었던 배두성도 이때 죽고 말았단다.

하지만 이런 일제의 만행에도 여의치 않고 독립군은 또 하나의 전투를 준비했는데 바로 청산리 전투였단다.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 등이 주도한 이 전투에서도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단다. 방대근도 북로군정서 소속으로 이 전투에 참가했단다. 청산리 전투 이후에 일본은 더 잔혹한 복수를 감행했단다. 조선 민간인들을 마구 죽인 거야. 1920년이 육십갑자로 경신년이었기 때문에 일제의 이 만행을 경신참변이라고 부른단다. 양치성은 이 때가 수국이를 차지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 수국의 어머니 감골댁을 죽이고 수국이를 뒤로 빼돌린 다음 자신이 보호해준다는 척 하면서 수국을 차지하게 된 거야. 소설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겠지만, 양치성이란 놈은 제발 고통스럽게 죄값을 치렀으면 좋겠구나.

요즘 들어 더욱 친일파들이 더 극성인 것 같아 열 받는단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이 없는데, 정부 인사들이나 정치인들 중에 역사를 잊은 이들이 많은 것 같아 걱정이 되더구나.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압록강은 여름답게 강폭이 넓어져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독립군이 밀산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풍문과 함께 사람들은 그 대학살을 경신참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동회는 향촌 어디에서나 저마다 운영하는 마을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동네마다 당산나무가 있듯 동회가 없는 마을은 없었다. 동회에서는 마을을 위해 서로 힘을 모아야 하는 대소사에서부터 공동의 질서와 규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모임이었다.
동네제사 날짜, 계모음, 두레와 품앗이 순서, 농로나 수로 보수의 부역, 명절놀이 계획, 예절과 풍기, 각종 부고, 남녀 품삯, 구휼 같은 것을 결정해서 서로서로 힘을 합쳐 돕고 마을이 화목하고 평온하게 유지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여러가지 마을일들을 결정하는 기본이 되는 규범이 바로 향약이었다.
- P84

윤철훈은 앉음새를 고치며 목례를 차리고는, "제가 동지들을 만나고자 한 뜻을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여기 연해주는 사태가 급박합니다. 일본군은 반혁명군인 백군을 지원하는 동시에 우리 조선 사람들을 회유하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선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적군을 지원하면서 일본군을 치는 빨치산투쟁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건 소비에트 혁명을 돕는 길인 동시에 우리 조선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일본군들을 연해주에서 몰아내야만 우리의 독립투쟁지를 회복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혁명을 도와야 혁명이 완수되면 소비에트는 식민지 약소민족의 해방선언에 입각해 우리의 독립을 한층 더 적극적으로 돕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청년단을 조직했고, 단원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동지들이 오셨다기에 인사도 드릴 겸 해서 찾아뵌 것입니다." - P109

"예, 그 말언 맞구만요. 허나 독립단체라고 혀서 다 똑겉지가 않다는 것얼 명백허니 알아둬야 헐 것이구만요. 시방 독립운 단체덜언 서로 다른 두 가지 주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디, 그것이 무엇인고 허니 보황주의허고 공화주의로구만요. 요것이 무신 뜻이냐 허면 우리가 뺏긴 나라럴 되찾자고 독립투쟁얼 허기넌 허는디, 누구럴 위허는 어떤 나라럴 세울 것이야 허는 중대서럴 논허는 것이올시다. 다른 말로 복벽주의라고도 하는 보황주의넌 나라에 주인언 임금이니 독립운동도 임금얼 다시 받들기 위해 해햐 헌다는 것이고, 공화주의넌 그 반대로 나라에 주인언 백성이니 독립운동도 온 백성의 뜻얼 받드는 나라럴 세우기 위해 해야 헌다는 것이오. 우리 군정부에서넌 공화주의럴 내세우는 것이고, 아까 그 대한독립단언 복벽주의럴 내세움스로 여러분덜얼 끌어갈라고 헌 것이구만요. 그러니 쌈이 안 일어날 수가 있겄소?" - P203

11월의 만주는 한겨울이었다. 북풍은 칼날이었고, 하늘도 땅도 다 얼어붙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엮어내는 소문이나 소식들은 전혀 얼어붙을 줄을 모르고 싱싱하게 살아움직이고 있었다. 서간도의 군정부가 명칭을 바꾸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새로 붙인 이르이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라고 했다. 그 까닭인즉 상해임시정부에서 여운형을 파견하여 군정부도 상해임시정부에 통합해 줄 것을 요청했고, 군정부의 총재 이상룡은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정부를 가져서야 되겠느냐고 간부들을 설득하여 <군정부>라는 명칭을 양보한 것이라 했다. 그것은 곧 상해임시정부를 유일 정부로 인정함과 아울러 그 위상을 높여주는 조처였던 것이다. - P219

그 노랫소리는 금방 독립군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많은 목소리들이 그 노랫소리에 합해졌다.

기다리던 독립전쟁 돌아왔다네

노랫소리는 모든 독립군들의 마음을 끌어잡으며 뒤흔들고 있었다. 노래는 마침내 합창이 되었다.

이때를 기다리고 십년 동안데
갈았던 날랜 칼을 시험할 날이
나아가세 대한민국 독립군사야
자유독립 광복함이 오늘이로다
정의의 태극 깃발 날리는 곳에
적의 군대 낙엽같이 쓰러지리라

탄환이 빗발같이 퍼붓더라도
창과 칼이 네 앞을 가로막아도
대한의 용장한 독립군사야
나아가고 나아가고 다시 나아가라
최후의 네 핏방울 떨어지는 날
최후의 네 살점이 떨어지는 날
네 그리던 조상나라 다시 살리라
네 그리던 자유꽃이 다시 피리라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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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미군정이 충격적인 명령을 내린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공식 출범한 미군정이 인민위원회 해체를 명령했던 것이다. 미군정이 삼팔선 이남 조선에서 유일한 정부라고 했다. 인민위원회 체제가 미군정의 행정체제에 반영되기를 원했던 도민들에게 그것은 크나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해방의 기쁨과 열광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었다. 도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인민위원회 간부들 중에서 미군정에 발탁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대개는 친일파의 재등용이었다. 일제의 착취 기구에 종사했던 자들이 미군정의 부름을 받고 그 자리로 복귀하다니, 하급 관리들은 그만두더라도 친일파의 고위직 재등용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면서기를 하던 자들이 버젓이 면장으로 승진하여 복직하기도 하고, 순사 노릇 하던 자들이 경찰서장, 지서 주임이 되었다. 명칭이 순사에서 순경으로, 주재소에서 지서로 바뀌었을 뿐 복장도 검정색 일본 순사 제복 그대로였고, 무기도 일본군으로부터 압수한 99식 혹은 38식 장총과 일본도였다.


(108-109)

해가 바뀌어 1946년이 되자 제주도에서도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맹렬하게 벌어졌다. 미국과 소련이 삼팔선을 경계로 조선을 둘로 분할하여 오년간 통치하려는 음모에 대한 반대였다. 한시바삐 독립하기를 갈구하던 조선 백성들에게, 특히 지난 반년 동안 뜨거운 열정 속에 새 나라 건설의 꿈을 안고 달려온 청년들에게 그것은 정말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해방자를 자처한 미국과 소련이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경악 속에서, 조선 땅을 삼팔선으로 두동강 내어 이북은 소련, 이남은 미국이 차지하려는 음모를 분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천리에서도 오일장이 열릴 때마다 신탁통치 반대 집회가 열렸다.


(131)

해방 후 맞는 첫 봄, 신생의 기운이 제주섬 도처에서 샘솟듯 기운차게 솟아나고 있었다. 새봄, 새 학교, 새 일꾼, 새 나라, 해 희망! 그 모든 것이 청년들, 소년들의 것처럼 생각되었다. 꽃들도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해방의 노래를 부르고, 침울했던 청년들의 가슴도 꽃망울 터지듯이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렸다. 해방 직후 시작된 집단적 열광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전장과 탄광 등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살아 돌아온 귀환 청년들이었다. 그들이 겪은 지독한 절망감이 이제 급격하게 강력한 에너지로 바뀌어 그들을 추동했다. 그들은 생각했다. 지금은 귀향민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상태라 취직난이 극심하지만 친일파들이 물러나면 자리가 생기리라고, 그러한 집단적 열광은 곳곳에 신설 중학원이 등장함으로써 더욱 증폭되었다.


(133)

일제의 노예 경험이 너의 마음에 무엇을 가르쳐주었는지 생각해보아라. 무엇을 가르쳐주었는가? 그렇다, 내 나라, 내 땅을 다시는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점거하여 신탁통치 운운하면서 남북분단을 획책하고 있지만, 그것은 열화 같이 일어난 거족적 반대 투쟁에 의해 반드시 분쇄될 것이다.”


(162)

정두길 : 순태 너는 박헌영파지만 난 여운형이 맘에 들어. 그가 말하는 좌우합작에 나는 찬성이여.

부대림 : 나도 여운형이 좋아. 한독당 김구 선생의 노선도 좋아 보이고.

박털보 : 미국이나 소련이나 우리에겐 해방군이 아니라 훼방꾼이여, 독립의 훼방꾼!

양순태 : 하아, 해방과 훼방! 거참 딱 맞는 말이네예. 해방군이 아니라 훼방꾼!

정두길 : 그래서 온 나라 온 백성이 이렇게 외치는 거 아니우꽈? (구호를 외치듯이 큰 소리로)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고, 조선 사람 조심하자!


(166-167)

장영발 : 허허, 상옥이 말이 틀린 건 아니주. 무정부주의는 작년에 울던 매미 신세가 돼버린 게 사실이여. 나는 다만 그 자치주의 정신은 지금도 이 제주 땅에 살아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주. 국가 속의 자치 공동체! 그 정신은 죽지 않아. 결코 죽지 않아!(이마에 깊은 골을 만들면서) 물론 제주도 독립은 불가능한 일이주. 그러니 그걸 정치적으로 주장한다면 미친놈의 미친 소리가 되는 거여. 그런디 우린 무슨 본능처럼 은연중에 마음속으로 그것 비슷한 걸 생각한단 말이여. 왜 그럴까? (양미간을 모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가 왜 그런지를 생각해봤주기. 제주인의 성격이 유별하다는 걸 난 일본에서 고학하면서 노동운동 할 때 알았어. 남과 비교해보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잘 모르잖는가. 노동현장에서 보니까, 일본 노동자들은 순종적인 데 반해서 우리 제주 출신들은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더란 말이여. 우리 제주인은 성질이 좀 거칠고 완강해. 사람은 자기가 태어난 산천을 닮는다고 하는디, 우리 제주도가 바람 많고 돌투성이에 거친 화산섬이라 그럴까? 그럴지도 모르주. 그리고 제주 출신은 단결심이 좋았어. 똘똘 뭉쳐 있었주. 바로 그런 단결심이 그 많은 노동쟁의를 조직적으로 전개할 수 있게 만든 거여. 제주인은 집단으로 사고하고, 집단으로 행동하는 것에 익숙하거든.


(265-266)

극심한 불행과 좌절의 연속인 지난 일년이었다. 대흉년의 굶주림과 호열자에 짓눌린 죽음의 시간이었고, 강제공출, 복시환 사건, 친일파 재등용, 단독정부 추진 등등 미군정이 자행한 총체적 모순이 만들어낸 절망의 시간이었다. 해방의 감격과 미래에 대한 꿈이 참혹하게 짓밟힌 한해였다. 이제 사람들은 피폐했던 마음에 다시 활기가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사람마다 가슴속에 환한 빛이 가득해졌다. 정두길은 감격이 북받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미군정을 반대하는 거대한 실체가 거기에 있었다! 정두길에게 그것은 소름 끼치는 강렬한 충격이었다.


(296)

조병옥은 3.1절 발포 사건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정당방위였다고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심지어 사살은 내가 시킨 바다. 발포 명령자를 처벌하라고? 발포는 내가 명령했으니 처벌할 테면 나를 처벌하라라고 싸늘하게 비웃었다. 읍내 공무원들이 모인 시국 강연 사리에서는,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면서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고 협박하듯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방약무인이었다. 너무도 놀라운 발언이어서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 이 말이 도민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337)

무자비한 테러 행위로 전국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던 서북청년단의 존재가 제주 사회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그간 육지부의 각 도시, 각 읍면 지역에 조직을 만들어 대규모로 세력을 확장해온 서청은 좌파 인사와 집회에 무자비한 폭력을 가해 백색테러의 대명서로 떠올랐다. 신임 도지사 유해진이 자신의 경호원으로 일곱명을 데리고 들어온 이래 서청 단원의 입도가 두어차례 이어져 지금은 그 수가 수백명에 이르렀다. 충남 부대의 탄압에 시달리던 도민은 이제 그보다 훨씬 사나운 세력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승냥이가 나가더니 범이 들어온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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