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길 : 조정래 사진 여행 - 조정래 사진 여행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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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얼마 전에 20여 년 만에 조정래 님의 <아리랑>( 12)을 다시 한번 읽었잖아. 다시 한번 완독한 기념으로, 조정래 님의 산문집을 하나 추가로 읽었단다. 집에 있던 책들 중에서 오래 전에 사두고 읽지 않았던 <조정래 사진여행>이라는 책이란다. 이 책은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책 속에 사진이 가득 들어 있단다. 조정래 님의 갓난 아기 시절의 사진부터 학창 시절, 젊은 시절을 거쳐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대하 소설을 쓰시면서 취재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이 가득 포함되어 있단다. 책 소개를 읽어보니 410컷의 사진이 담겨 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조정래 님이 그리신 그림 2컷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어. 뿐만 아니라 각 사진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적혀 있었어. 사진으로 보는 조정래 님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단다.

예전에 조정래 님의 <황홀한 글감옥>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은 글로 쓰는 자서전이라고 하면, 이번에 읽은 <조정래 사진 여행>은 사진으로 보는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조정래 님의 문학과 함께 한 인생을 사진을 통해 보니 더 친근함이 가면서,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리고는 나중에 아빠의 인생도 어렸을 때부터 중요한 사진들을 쭉 모아 놓아서 정리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너무 빨리 흘러간 시간과 지금은 연락이 끊긴 사진 속 지인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울컥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너희들이 쑥쑥 자라는 사진도 더 많이 찍어주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단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발명품은 사진기라는 말이 있는데, 아빠도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한단다.

예전에 집에 화재가 발생한다면 사진 앨범부터 챙겨서 도망간다고 했던 어떤 분의 말씀도 생각이 나는구나. 우리의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사진이야말로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고, 잠시나마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조정래 님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삶의 치열함에 대해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단다. 조정래 님을 따라 할 수는 없지만, 그의 방식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게 되는 것 같구나.

오늘을 이렇게 간단히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사진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책의 끝 문장: 이 거장의 발걸음을 따라 오늘의 시대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삶에 대한 열정과 역사에 대한 신념을 필요로 한다.


담배를 하루 평균 3~4갑을 피우고, 커피를 5~6잔 마시며 열흘에서 보름을 자는 시간 빼놓고는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첫째 나타나는 증상이 두 다리가 10배 20배로 퉁퉁 부어오른 착각이 든다. 그래서 얼른 만져보면 그렇지 않아 주무르고는 한다. 두 번째가 변비 증상이다. 옛날에 똥줄이 탄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실감하게 된다. 세 번째가 머리에서부터 차츰 차츰 피가 줄어들어 온몸이 하얗게 표백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네 번째가 걷는데 다리가 내 뜻과는 다르게 휘뚱거릴 뿐만 아니라 발 밑이 어질어질 기울어지고 흔들리고 출렁거린다. 그런 증상들이 날이 갈수록 겹쳐져오다가 막바지에는 잠자리에 누우면서 온몸이 녹아 흘러 땅속으로 잠기는 듯한 느낌 속에서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나고 말지’ 하는 생각으로 정신을 잃듯 잠이 든다. 그 죽음과 소생의 되풀이 속에서 원고지는 쌓여갔다. - P98

하바로프스크의 아무르 강변에 동포들이 일군 마을 이름은 ‘3.1촌’. 조국에서 일어난 3.1운동에서 따온 것이다. 그 독립 의지가 가슴 뭉클하다. 동포들은 짧은 여름에는 농사를 짓고, 긴 겨울에는 아무르강의 두꺼운 얼음을 뚫어 생선 중에서 최고로 치는 철갑상어를 낚었다. 영하 30도의 추위를 견디며, 그것을 판 돈이 독립 자금이 되고 자식들의 학자금이 되었다. - P188

원고를 쓴 기간만 <태백산맥>이 6년. <아리랑>이 4년 8개월이었다. 마흔에 <태백산맥>을 시작했는데 <아리랑>을 끝내고 보니 쉰셋이 되어 있었다. 내 인생 장년의 세월이 정말 ‘눈 깜짝할 아이’에 흘러가버린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쓰느냐고. 삶의 보람이 가장 커서인가? 소설은 사나이의 생애를 바칠 만한 가치가 있어서인가? 그 대답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두 원고를 쌓아놓고 그 사이에 서며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나려 했는지 모른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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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걸 조로 열린책들 세계문학 74
존스턴 매컬리 지음, 김훈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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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여러 번 이야기를 했던 이사벨 아옌데라는 분이 있단다. 그래서 그분의 책들을 몇 권 샀는데 그 중에 <이사벨 아옌데의 조로>라는 책이 있었어. 그 책 소개를 읽다 보니 <조로>는 원작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존스턴 매컬리라는 사람이 <카피스트라노의 재앙>이라는 5부작 시리즈를 잡지에 연재했는데, <카피스트라노의 재앙>가 다름 아닌 조로의 이야기였다는구나. 그래서 혹시 존스턴 매컬리의 책도 있나 검색해보니 아빠가 좋아하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에 존스턴 매컬리의 <쾌걸 조로>라는 책이 있더구나. 그래서 <이사벨 아옌데의 조로>를 읽기 전에 먼저 원작인 존스턴 매컬리의 <쾌걸 조로>를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단다.

지은이 존스턴 매컬리는 1883년 미국에서 태어나서 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앞서 이야기했던 <카피스트라노의 재앙>의 조로 시리즈를 썼고 그 시리즈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구나. 이 소설은 곧바로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그 이후에 많은 만화, 드라마, 영화 등으로 나왔단다. 아빠가 기억하는 영화로는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한 <마스크 오브 조로>라는 영화가 기억나는구나. 지은이 존스턴 매컬리의 약력을 보니, 아빠가 어린 시절 어린이 TV 시리즈를 인기를 끌었던 <검은별>의 원작도 이 사람이 지은 것이라고 하더구나. 그럼 존스턴 매컬리의 <쾌걸 조로>를 이야기해줄게.

 

1.

조로는 여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구나. 배경은 서부 개척 시대이고, 라스 캘리포니아 스페인 식민지가 주무대란다. 그 마을에 얼마 전부터 조로라는 사람이 인디언 같은 억압받는 사람들과 약자의 편에 서서 폭압을 휘두르는 강자를 혼내주고 사라지는 일들이 일어났어. 마치 홍길동처럼 말이야. 그는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검은 망토를 입고 있어서 누구도 그의 정체를 알지 못했어. 강자들이 당하다 보니, 경철과 군대는 그를 노상강도라 하고 쫓고 있었단다.

….

돈 디에고 베가라는 사람이 있어. 부잣집 젊은이로 무능하면서 어리버리한 캐릭터를 가진 사람이야. 그는 결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돈 카를로스의 딸 롤리타를 찾아갔단다. 그리고 어리버리하게 한번도 사랑이란 걸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하게 청혼을 했어. 롤리타의 아버지 카를로스는 부잣집 젊은이의 청혼을 반겼지만, 롤리타는 매력 없는 돈 디에고 베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

어느날 불쑥 찾아왔다가 간 세뇨르 조로라는 의문의 남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단다. 조로는 롤리타를 찾아와서 박력 있으면서 솔직하게 사랑을 고백했거든. 하지만 롤리타도 조로가 노상강도로 경찰과 군인들에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조로에게도 선뜻 마음을 주지 않았어. 돈 디에고 베가가 조로의 반만큼만 박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조로를 쫓는 이 중에 라몬 대위와 곤잘레스 상사가 있는데 그들은 조로와 대면하게 되었을 때 조로한테 조롱당하며 결투에서는 지고 말았단다. 그런데 라몬 대위도 롤리타를 보고는 반해서 구애를 하게 되었어. 어느날은 집에 혼자 있는 롤리타를 강제로 추행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조로에 온갖 창피를 다 당하고 부상까지 입게 되었단다. 조로가 어려움에 빠진 롤리타를 구해준 이후 롤리타는 조로에 푹 빠지게 되었단다.

...

라몬 대위는 그의 부대를 이끌고 조로를 추격했어. 이 소설의 이야기는 라몬 대위와 조로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가 이어진단다. 그런데 돈 디에고 베가와 조로가 같은 장소에서 나오는 적이 없고, 근소한 시간차로 엇갈려 나오게 되는데 이로 인해 돈 디에고 베가가 바로 조로라는 것을 조로를 처음 알게 된 사람들도 모두 알게 되었을 거야. 하지만 이미 조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소설 초반부에 등장하는 어리버리한 젊은이 돈 디에고 베가가 조로라는 것을 바로 알았을 것 같구나.^^

조로는 나중에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모아 응징자들이라는 비밀 조직을 만들었단다. 라몬 대위와 쫓겨 쫓기는 추격전과 대결로 소설은 이어지고 결국은 조로가 승리한다는, 약간은 뻔한 결과로 끝이 났단다. 그리고 조로의 정체도 밝혀지고 말이야.

….

소설 <쾌걸 조로>속 조로는 그동안 영화나 만화에서 봐왔던 유쾌하고 쾌활한 상남자조로 그대로였단다. 소설이 원작이었으니, 영화나 만화에서 소설 원작을 잘 살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옳겠구나. , 이제 원작을 읽었으니 앞서 이야기했던 <이사벨 아옌데의 조로>는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읽어봐야겠구나. 곧바로 읽을 것 같지는 않고, 오늘 이야기한 <쾌걸 조로>의 기억이 다 사라지기 전에는 읽어보려 해. 그럼 그때 또 한번 조로의 이야기를 해줄게.

, 그럼 오늘은 이렇게 짧게 마무리.

 

PS,

책의 첫 문장: 요란한 빗발이 붉은 스페인식 기와지붕을 다시 두드려 댔다.

책의 끝 문장: “얼씨구,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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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고에너지, 고비용, 저효율의 의료산업 모델은 어떤 식으로든 폐기될 수밖에 없고, 자원을 덜 쓰면서 필요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 의료공공성을 확보하는 일은 몹시 중요하다. 어디에서든 누구든 필수의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일은 앞으로 날이 갈수록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여러 차원에서 실패하고 있는 상품들(의사, 약품, 기술)에 의존하는 시스템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환원주의적, 기계적인 세계관과 문화를 그대로 둔 채 공적인 개입과 비용을 늘리는 방식은 명백히 한계가 있다. 우리는 왜 질병의 결과와 비용을 국가가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원인을 제거하라고 정치에 요구하지 않는 것일까. 더 많은 병원 병원과 의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런 것들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환경과 생활조건을 위해서는 왜 노력하지 않는가.

 

(11-12)

공공의료가 취약하다는 것은 전체 의료시스템의 취약성을 의미한다. 민간 의료기관은 공적 자원을 기대할 수 없어 생존을 위해서도 수익성에 기반한 경영전략을 펼 수밖에 없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진료분야는 기피하거나 소극적이게 된다. 아무리 필수분야 진료기능이어도 기대수익이 약하면 투자하지 않는다. 중소 병원이나 사립대학 병원도 마찬가지이다. 수익성이 높은 분야에 우선적으로 투자해서 가능한 많은 이익을 내고자 한다. 진료기능이 편중될 수밖에 없거니와 의료내용이 적정선을 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비보험 분야의 확대 그리고 피부, 미용 분야로의 의사 쏠림 등은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14)

기후위기는 건강위기이고 심각한 건강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다. 홍수, 가뭄, 이상기온 등 극심한 기후변화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환경재난을 초래한다. 이로 인해 대응력이 부족한 취약 계층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기후위기의 심화로 코로나 같은 전염병 재난은 반드시 반복될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복합적인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의료의 준비는 중요한 분야의 하나이다. 이는 수익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인류의 안전을 위해 아주 시급한 과제이다. 의료분야 탄소 발생 감소를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 지금의 조건에서는 진척이 어렵다. 의료공공성의 토대가 미약하여 이를 추진할 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31)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전 세계 온실가스의 절반가량을 10%의 부유층이 배출하며, 특이 이들이 투자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어내는 거대 기업을 통해서 배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중과세는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핵심적인 과제다. 이는 토마 피케티 등의 세계불평등연구소를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의 제안이기도 하다. 여기서 탄소세와 비교하면서 토론해보자. 흔히 탄소세는 오염자에게 책임을 묻는 과제이며, 또한 탄소 배출(혹은 에너지 소비)을 감축하는 방안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2018년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이 보여준 것처럼, 탄소세는 부가가치게와 유사한 간접세로서 소득역진성으로 핵심 오염자에게 책임을 묻지 못한다. 오히려 조세불평등으로 사회적 저항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공공재생에너지의 조세 전략은 시민들의 필수적인 에너지 소비에 과세하는 것이 아니라, 부유층과 대기업들의 소득과 이익에 과세를 하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정조준한다. 이런 기후정의세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불필요한 소비를 낳는 핵심적 원인이라는 인식에 기반한다. 제이슨 히켈과 같은 탈성장론자의 인식이기도 하다.

 

(40)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둘째 치고, 서울시의 장래 교통정책은 대중교통의 수요를 늘리는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사실이다. 요금을 올려 놓고 이용자가 줄지 않았어!”라고 환호성을 올릴 때 득은 버스를 운영하는 민간사업자와 보조금을 지급하는 서울시로 흘러가는 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부담은 더 커지고 기후위기 대응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교통요금 인상이라는 것은 전형적으로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현재의 부담을 차별적으로 분배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57)

굳이 의료제도가 상이한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한국 의사수가 비정상적으로 적다는 점은 한국 보건의료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상식선에서 납득할 수 있다. 한국의 의대 정원은 1990년대 중반 의대가 9개가 마지막으로 신설되며 3,300여 명으로 늘었다가 의약분업의 여파로 2006 3,058명까지 줄어든 뒤 2024년까지 18년째 동결돼 있다. 그사이 보건의료분야의 규모는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2000년 한국의 경상의료비(총 의료비) 25 1,230억 원이고 GDP 대비 3.9%를 차지했다. 2022년 기준 경상의료비는 209 460억 원(잠정치), GDP 대비 9.7%이다.

 

(71)

미세먼지들이 자욱한 공기를 마시고, 미세플라스틱이 부유하는 물을 마시고, 항생제 투여된 고기를 먹고, 농약 묻은 야채를 먹고, 화약약품으로 숙성시킨 과일을 먹으면서도 우리는 내부로 집착된 시선을 지속한다. 살벌한 경쟁의 기업문화 속 스트레스가 만연한 직장을 다니고, 휴식하고 운동할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365일 자영업장을 운영하면서, 사회적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으로 가시화되는 상황에서도 몸 내부로 향하는 강력한 시선의 방향성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내부에서 다시 나누어진 부분의 내부를 바라보는 시선의 관성을 멈추지 못한다. 발암물질, 미세플라스틱이 이미 하이브리드된 몸인데, 의료는 자꾸 이 몸의 순수성을 말한다. 지금의 의료에서 몸과 몸 밖의 관계성은 무시된다. ‘관계없는 의료가 지금의 의료를 특징짓는다. 그리고 어느 날 찾아간 병원에서 질책의 말을 듣는다. “이렇게 될 때까지 뭐 하셨어요.”

 

(104)

자연환경이 훼손된 곳에는 독성을 가진 식물이 곧잘 번식해서 풀을 먹이로 하는 가축들에 해를 끼치기도 하고, 농업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에 위협이 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데 사실 이 식물들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근원을 제압해서 생태계가 스스로 재생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죠. ()이라는 개념은 생태적인 게 아닙니다. 문화적인 것이지요. 지구의 관점에서는 독()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126-127)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하루라는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지만, 돈은 다르다. 같은 액수의 돈이라도 부자에게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솜방망이 처벌이 되기도 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도저히 마련할 길이 없어 꼼짝없이 감옥에 갇혀야 하는 무거운 형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은 한국 같은 총액 벌금제를 진작 넘어서, 소득, 재산 비례 벌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핀란드는 이미 192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제도다. 2024년의 한국이 1921년의 핀란드보다 못할 수는 없다. 그만큼도 따라 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저 정부와 국회가 가난한 사람들의 곤궁한 처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해 동안 5만 명이 감옥에 갇혀도, 세상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윤석열 정권 들어서는 부자감세로 부쩍 줄어든 세수를 벌금 등의 세외 수입으로 만회하려는 꼼수까지 작동하고 있다. 죄와 벌은 무엇보다 공평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부자에게만 유리하고, 가난한 사람에겐 불리한 상황이다.

 

(143)

금년 봄, 사과값이 상승하면서 드디어 기후변화 문제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이 문제가 기후변화라기보다는 단순한 농산물 유통의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사과 산지로 유명한 곳은 대구이다. 1897년 미국인 선교사들이 대구 주변에 사과나무를 심고 주민들에게 보급한 것이 대구 사과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배경이라고 알려져 있다. 1970년대 대구는 우리나라 사과 생산량의 80%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지후변화로 인해 대구지역 사과 생산량은 크게 줄었다. 최근에는 사과 산지가 북상하여 충주나 포천 지역이 주요 사과 산지가 되었다.

 

(177)

그리고 현재는 있는 줄도 몰랐던 정치행태를 이런 종류의 독재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민주주의라는 현재 인류 최고의 시스템도 악착스런 인간의 탐욕에 대한 제대로의 제어장치는 제어장치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은 무척 변한 것 같아도 그 근본에서는 70년대와 그다지 많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209)

병에 이유가 없다는 건 아프고서야 겨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다. 병을 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나는 애써야 했다. 술을 많이 마셔서, 담배를 자주 피워서, 고기를 많이 먹어서, 운동을 하지 않아서….. 탓하려는 모든 것을 탓해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병균이나 독성물질에 의한 몇 가지 질환을 제외하면 아직 그 원인이 명확히 밝혀져 있거나,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인과관계가 단순한 질환은 거의 없다.”(<죽음을 배우는 시간>, 창비, 2020). 전적으로 나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긴 했지만 나는 현대의학의 무능함에 정말 크게 놀랐다. 지난한 지료과정에서 내가 의학에 대해 단 한가지 제대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이 여타 다른 학문이 그러하듯, ‘모른다의 세계에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당연하다. 몸의 일은 기계와 달라서 정답의 세계에 있지 않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로봇과 AI를 위시한 의료산업이고, 의료진과 환자 모두 자본이 속삭이는 완치의 약속에 휩쓸린다.

 

(236)

국민 여러분께 더 가까이, 민생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서 현장의 어려움을 듣고, 국민의 삶을 더 적극적으로 챙기겠다.” 22대 총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 총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한 말이다. 여당의 총산 패배에 대해 사과하면서 민생을 강조하던 이날의 담화문에[서 윤석열 정부 지난 임기 동안 내내 붙어다니던 원전생태계 복원도 등장했다. 민생(民生). 단어 그대로 일반 국민의 생활 및 생계, 생명을 가진 백성을 의미한다. 민생을 위한다면 그것이 적어도 어떤 특정 이익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할 것이고 정치, 이념과 상관없이 일반 국민의 생활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원전이 민생이라는 이상한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이 나라의 대통령은 핵발전소와 송전탑으로 고통받는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다. 한결없이 핵 진흥에 진심을 다하고 있는 그에게서 핵 진흥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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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 레이 - 혁명과 낭만의 유체 과학사
민태기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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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작년에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이라는 책을 읽고 재미있게 읽고 나서 그 책의 지은이 민태기 님이 아빠가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판타 레이>라는 책의 지은이라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기억날지 모르겠구나. <판타 레이>라는 책을 이번에 읽었단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지은이한테 존경심이 생길 정도로 이 책은 정말 대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 책은 <코스모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책을 뛰어 넘는 책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판타 레이>의 부제가 혁명과 낭만의 유체 과학사여서 유체 역학의 역사를 알려주는 책인가 싶은 생각으로 책을 폈단다.

유체 역학이라는 것은 과학의 한 영역으로 일반 사람들에게는 익숙지 않는 분야란다. 대학 시절 기계공학과 친구들이 배우는 여러 역학들 중에 하나로만 알고 있지,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른단다. 그렇다 보니 이 책이 어려운 내용으로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어. 책도 500페이지도 넘는 분량인데 유체 역학에 대해 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가 싶었어. 그런데 읽는 내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고 그 모든 것들을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내는 지은이의 천재성에 정말 놀랬단다.

이 책은 유체 과학사에 관한 책이지만 그보다 부제의 앞쪽의 있는 혁명과 낭만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어. 이 책은 분명 과학책이지만, 정치, 미술, 음악, 경제, 철학이 모두 포함되어 있단다. 과학 하나만 떼어놓아 설명할 수 없고 모든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단다. 이 무지막지한 책을 너희들에게 아빠가 잘 이야기해줄 자신은 없단다. 이건 직접 읽어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을 것 같구나.

지은이 민태기라는 분이 도대체 어떤 분인가 찾아보다가 지은이가 이 책의 내용을 직접 설명해주는 유튜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 유튜브 영상이 길긴 한데 아빠는 다시 한번 보고, 책에 대한 리뷰를 했단다. 이 영상은 너희들과 다시 한번 보고 싶구나. 지은이 민태기 님은 서울대에서 박사 출신으로 UCLA 연구원으로도 재직을 했고 현재는 누리호 및 차세대 발사체 엔진 개발에 참여하고 계신다고 하는구나. , 그러면 아빠가 적어 놓은 메모와 책을 발췌한 부분을 참고하여 이야기해 보마. 아참, 이 책의 제목 <판타 레이>는 모든 것을 흐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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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나는 이 잃어버린 고리판타 레이라는 개념에서 찾고자 한다. ‘판타 레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의 유명한 언명으로 만물유전(萬物流傳)”, 모든 것은 흐른다라는 뜻이다. 모든 사물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치 흐르는 유체(流體)와 같이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유체 현상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의 물체들은 물, , 공기, 흙의 조합으로 이루저졌다는 4원소설을 제시했다. 그리고 천상 세계의 물체들, 즉 우주와 행성 같은 천체들은 제5원소라 불리는 유체 에테르(aether)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이 여전히 남아 있던 르네상스 시대와 과학 혁명 초기, 학자들은 천체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테르의 움직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 보텍스(vortex, 소용돌이)’라는 유동 현상에 주목했다. (유체 역학에서는 와류(渦流)’, ‘와동(渦動)’이라고 부르지만, 이 책에서는 훨씬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 보텍스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보텍스 스케치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시대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판타 레이의 관점으로 보고, 모든 물리 현상을 유체의 보텍스로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했다. 그것은 그들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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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혁명이라는 말. 이 말의 영어 단어는 Revolution가 혁명이라는 뜻이 된 이유가 코페르니쿠스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Revolution은 원래 천체의 회전을 의미하는데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면서 천체의 회전이라는 의미로 Revolution 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것이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다는 혁신적인 생각이라는 의미여서 나중에는 혁명이라는 뜻까지 발전하게 되었다는구나. Revolution이 혁명이라는 뜻으로 처음 쓰인 것은 영국의 명예혁명 때 처음 사용되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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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7)

다행히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책의 인쇄본을 보고 난 뒤 눈을 감았다. 이렇게 서구 문명에 가장 큰 충격을 준 저작물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 책은 소수의 전문가만이 이해할 수 있었기에 단 400부만 인쇄되었고, 그나마도 다 팔리지도 않았다. 6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원제에서 레볼루티오니부스(revolutionibus)’, 레볼루션(revolution)’은 천체의 회전을 의미한다. ‘레볼루션혁명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출판되던 1688년 영국의 명예 혁명(Glorious Revolution)부터이다. 이처럼 원래 천문학 용어였던 레볼루션은 코페르니쿠스 이후 혁명적인 변화라는 의미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코페르니쿠스의 레볼루션코페르니쿠스적 전환(Kopernikanische Wendung)”이라고 명명했으며, 토머스 쿤(Thomas Kuhn)은 이를 다시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이라고 부르며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과정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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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케플러야. 아빠가 몇 달 전에 케플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잖니. 그 때의 이야기가 이 책에도 등장을 한단다. 케플러의 스승 티코 브라헤는 오줌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려 죽고 말았다는데 안타깝구나. 브라헤는 그렇게 안타깝게 죽었지만 방대한 천문관측에 대한 자료를 남겼어. 케플러는 브라헤가 남긴 그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게 되는데 그 자료를 통해 코페르니쿠스의 오류를 발견하게 된단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맞긴 한데,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것 중에 지구가 태양 주위를 등속원운동을 한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밝혀냈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때 타원형운동을 하고 속도가 바뀐다는 것을 밝혀낸 거야. 이것도 <케플러> 이야기할 때 했었지? 케플러와 거의 동시대 활동한 또 한명의 천재 과학자 갈릴레이갈릴레이의 아버지 빈첸초 갈릴레이는 오페라를 창시한 음악가였다는구나. 갈릴레이는 종교 재판에서는 비록 승복하고 은둔했지만, 지동설을 완벽하게 증명하게 된단다.

 

2.

이제 뉴턴과 데카르트의 논쟁을 살펴보자꾸나. 둘이 논쟁을 했다는 사실 또한 새로 알게 된 사실이란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책으로 알려진 <방법서설>이란 책이 있단다. 그런데 이 책은 사실 <이성을 올바르게 이끄는 방법, 그리고 이 방법에 실험들인 굴절 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 등의 과학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의 서설>이라고 하는 긴 제목의 책의 서설 부문만 해당한다고 하는구나. 그러니까 <이성을 올바르게 이끄는 방법, 그리고 이 방법에 실험들인 굴절 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 등의 과학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의 서설> 500페이지가 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책의 서설 70여 페이지만 번역하여 <방법 서설>로 출간한 것이래. 이 책의 전체 500여페이지 모두를 번역한 우리나라 책은 아직 없다고 하는구나. 출판사들 뭣들 하시나.

앞쪽 70여 페이지만 번역하여 <방법서설>로 출간하다 보니 데카르트를 철학자로만 알고 있는데, 데카르트는 철학자 이전에 과학자였단다. 위 긴 제목의 책제목만 읽어봐도 이 책이 과학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지?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려고 했대. 그리고 그는 x, y 좌표를 만든 사람으로도 유명하단다. 수학의 함수를 x, y 좌표에 표기할 수 있는 것도 데카르트의 덕분이라는 거야. 데카르트 덕분에 고생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데카르트는 운동은 반드시 충돌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구가 움직이는 운동을 하려면 무엇인가 충돌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우주는 에테르라는 물질로 채워져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보텍스(소용돌이)에 의해 지구가 회전한다고 주장했단다. 데카르트가 활동하던 17세기 유럽은 커피하우스가 유행을 했대. 그 전에는 술집에서 사람들이 주로 모였는데, 커피하우스가 유행하면서 커피하우스에서 맨 정신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는구나. 과학, 철학에 대한 토론도 이 커피하우스에서 많이 이루어졌대.

그런데 뉴턴은 이런 커피하우스에 잘 안 갔대. 커피하우스에는 데카르트와 그를 따르는 이들의 목소리가 컸는데 뉴턴은 그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었거든. 뉴턴은 20대에 이미 중력 법칙을 밝혔지만 발표를 하지 않고 있었어. 왜냐하면 데카르트와 당시 대가로 불리는 이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중력 법칙은 에테르 같은 매질이 없이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법칙이었거든. 중력 법칙을 발견한 지 20년이 지나서야 헬리 혜성으로 유명한 헬리가 뉴턴을 찾아와 책을 자신이 내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나온 책이 그 유명한 <프린키피아>였단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데카르트의 보텍스 이론을 비판했대. 보텍스 이론은 케플러의 법칙에도 맞지 않고, 우주에 에테르라는 물질로 가득 차 있으면 저항 때문에 지구의 회전을 멈추게 되기 때문에 잘못된 이론이라고 했어.

뉴턴의 다른 일화들도 이야기해주었는데, 뉴턴이 20대 때 중력 법칙을 발견하고 발표하기 전까지 연금술을 연구했었대. 그리고 조폐국에서 약 30년간 일하기도 했다는구나. 당시 불법 동전들이 통용되고 있었는데, 뉴턴은 동전의 옆면을 빗금 내는 아이디어로 불법 동전의 유통을 막았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말년에 주식으로 엄청난 돈을 날렸다고 하니, 뉴턴 같은 천재에게도 주식은 정말 어려운 것인가 보구나. 암튼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출간되고 나서 뉴턴과 데카르트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다들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 논쟁이 주고 편지로 이루어졌어. 나중에 이 편지를 모아서 책으로 출간했는데, 이렇게 생겨난 것이 <저널>이라고 하는구나.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프랑스에서 번역이 되었는데, 번역한 이는 유명한 철학자 볼테르의 연인인 샤틀레라고 하는구나. 샤틀레는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하지고 있어서 <프린키피아>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면서 번역만 것이 아니라 자세한 주석까지 달았다고 했어. 프랑스에서는 그런 주석 달린 <프린키피아>를 접해서 그런지 오히려 영국보다 뉴턴역학이 더 발전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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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유럽 학계가 뉴턴파와 라이프니츠파로 나뉘어 대립하던 무렵, 1738년 베르누이 정리가 발표되자 샤틀레는 소멸하지 않는 유체의 보존량으로 도입된 속도의 제곱에 주목한다. 이후 라이프니츠의 다니엘 베르누이, 오일러 등과 적극 교류하던 그녀는 연인 볼테르가 너무 뉴턴파의 입장만 고집하자 볼테르와의 관계가 틀어진다. 그녀는 새로운 연하의 연인을 사귀고 그의 아이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당시는 노산의 사망률이 높아 42세인 그녀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하고 평소 추진하던 뉴턴의 <프린키피아>의 프랑스 어 번역을 서두른다. 그녀는 하루에 3~4시간만 자며 마침내 1749 9월 번역을 마무리하고 3일 뒤 출산했으나 일주일 뒤 사망하고 만다. 이 번역본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뉴턴 이 진행된 미적분학의 발전과 논쟁을 정리한 수많은 주석이 달렸고, 이러한 그녀의 방대한 프랑스 어판 주석 덕분에 프랑스는 영국을 제치고 수학과 물리학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하다. 샤틀레는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관점이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조제프루이 라그랑주는 뉴턴의 힘을 시간에 대해 적분하면 운동량이고, 거리에 대해 적분하면 운동 에너지라며, 그녀의 아이디어를 깔끔하게 정리한다. 또한, 보존량이 속도의 제곱이라는 개념은 후에 갈릴레오 좌표 변환이 로렌츠 변환으로 일반화되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유명한 공식 E=mc의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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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자들에 대한 편견을 좀 깨야겠구나. 철학자들 대부분은 과학도 함께 공부하고 그에 관한 책이나 논문도 냈다고 하는구나. 칸트는 <일반자연사와 천체이론>을 발표하여 성운이 모여 행성이 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나중에 라플라스가 증명을 했다는구나. 헤겔도 천체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는구나.

 

3.

제임스 와트가 산업혁명을 이끈 증기기관을 개발한 것은 1776, 애덤스미스가 국부론을 발표한 것도 1776, 벤자민 프랭클린이 미국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것도 1776년이라고 하더구나. 이 때 즈음 조지프 블랙이 이산화탄소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4원소를 깨는 첫 번째 증거라는구나. 프리스틀리는 산소를 발견하여 플로지스톤 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했대. 플로지스톤 설은 아빠가 예전에 두어 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산소가 발견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연소는 플로지스톤을 가지고 있는 물질에서 일어나며 연소하게 되면 플로지스톤이 물질에서 빠져나간다고 생각했어. 프리스틀리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소다수도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또한 프리스틀리는 한 모임에서 제임스 와트를 만났는데, 프리스틀리가 제임스 와트에게 보링 기술을 알려주어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완성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구나.

허셜 망원경으로 유명한 허셜은 원래 음악가였대. 교향곡도 많이 작곡했다는구나. 그도 모임에서 과학자들과 교류를 하면서 친분을 쌓았는데 나중에는 아예 천문학자로 직업을 바꾸고 천왕성을 발견하였다는구나. 라부아지에는 얼마 전 Jiny 교과서에서 본 것처럼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해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는데 이로써 물이 4원소 중에 하라고 주장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했단다. 하지만 라부아지에는 프랑스 혁명 당시 조세국에서 일하며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다는 죄목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고 하니 안타깝구나.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군의 군수품을 만들기 위해 에꼴 폴리테크니크라는 학교가 생겼는데, 이후 이 학교는 프랑스 공교육 영재학교로 탈바꿈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했다고 하는구나.

푸리에 변환으로 유명한 조지프 푸리에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물리학자인줄로만 알았는데, 나폴레옹 측근으로 나폴레옹이 정복 작전에도 함께 참여하여 이집트에도 같이 갔다고 하는구나. 이집트에 갔다가 그곳에서 로제타석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포로가 잡히는 바람에 로제타석을 가져오지 못했어. 로제타석은 영국에서 가져갔지만, 푸리에는 다행히 사본을 떠 놓았단다. 나중에 푸리에는 로제타석 사본을 샹폴리앵이라는 사람한테 건네주었고, 샹폴리앵은 로제타석을 통해 처음으로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했다는구나.

프랑스 혁명 이후 정권을 차지한 나폴레옹은 전 유럽에서 승전보를 보내왔지만, 넬슨이 이끄는 영국군에 패배를 했단다. 이후 나폴레옹은 몰락하고 프랑스는 부르봉 왕조가 부활했어. (1814) 1816년 프랑스에서 아프리카로 식민지 구축하려 떠난 메두사호라는 배가 있었는데, 그 메두사호가 모래톱에 걸려 좌초하게 되었어. 그때 뗏목을 이용하여 탈출하게 되는데 귀족들만 탈출하여 논란이 일어났단다.그렇지 않아도 부르봉 왕조에 불만이 늘어나고 있던 시기였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자 민중들은 다시 봉기하게 되었어.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왕정과 공화정이 반복되면서 크고 작은 혁명들이 이어졌단다. 1830 7월혁명도 그런 흐름 중에 하나였는데 이 1830 7월혁명은 너희들도 잘 알고 있는 <레 미제라블>의 배경이 되는 혁명이란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그림은 1830 7월혁명을 기념한 유명한 그림인데 그 그림에서 여신의 오른쪽에 보면 총을 들고 있는 어린 소년이 있단다. 그 소년을 보고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의 소년 혁명가 가부로쉬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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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 7월 혁명을 그린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빅토르 위고는 이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1832 6월 학생 무장 봉기를 배경으로 <레 미제라블>을 집필했다. 이 그림 오른쪽에 권총을 들고 등장하는 소년은 <레 미제라블>가브로쉬의 모델이 되었다. 메두사 호 사고에서 보듯이 왕정 복고 이후 프랑스의 사회 부조리는 더욱 심해진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이 총동원되어 이 모든 게 볼테르 때문이고, 이 모든 게 루소 때문이라며 오히려 진보 진영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프레임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러한 한심한 작태에 분노한 빅토르 위고는 <레 미제라블>에 이 표현을 가브로쉬가 반어적으로 부르는 노래로 삽입했다. 대략적은 내용은 내가 못생긴 것도 가난한 것도 이게 다 볼테르 때문이고 루소 때문이라는. 가브로쉬는 바리케이드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진압군을 조롱하며 실탄을 구하다 진압군의 총에 사망한다. 1985년 캐머런 매킨토시가 <레 미제라블>을 뮤지컬로 각색하며 이 노래의 역사적 배경을 전혀 알지 못하는 영어권 관객들을 위해 “Little People”이라고 가사의 내용을 바꾸었다. 루브르에서는 들라크루아 작품 옆에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을 나란히 전시하고 있어, 7월 혁명의 배경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 준다. 한편, 요즘 제일 인기 있는 록그룹 중 하나인 영국의 콜드플레이(Cold Play)의 대표작 <비바 라 비라(Viva la Vida)> 역시 들라크루아의 바로 이 그림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참고로 제목은 인생 만세라는 뜻의 스페인 어로 20세기 멕시코 혁명 화가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작품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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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 7월 혁명으로 부르봉 왕조가 쫓겨나고 군주가 헌법 내에서 권한을 갖는 입헌군주제가 들어서게 되었단다. 이 시절 천재 수학자 갈루아라는 사람이 있었어. 갈루아는 어린 나이에 권총 결투로 일찍 죽었다는 이야기를 아빠가 전에 한 적이 있는데 기억나니? 갈루아의 아버지는 공화파의 아버지였지만, 갈루아는 공화파에 맞서 학생 운동을 주도했대.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결투를 했는데, 결투 전날 자신이 죽을 걸 예감하고 후대에 길이 남을 논문을 남겼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갈루아가 죽고 난 후 그의 장례식날 좌파 진영은 다시 봉기하였다고 하는구나. 이때가 1832 6월이었대. 프랑스 혁명이 이어지는 동안 과학자, 수학자들도 그 혁명 한 가운데에 있었음을, 그들도 혁명의 일원이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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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바다 건너로 가보자꾸나. 영국 왕립 연구소에서는 과학콘서트를 열어서 과학 대중화에 앞장섰다는구나. 패러데이는 1926년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을 위한 과학 강연도 했는데,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아주 재미있는 강연이었다고 하는구나. 이 강연에 찰스 디킨스도 참석했었다고 하는구나. 유명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연결되어 있으니 읽는 재미가 더 있는 것 같아.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톱니바퀴를 이용하면 손쉽게 계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가 고안한 이 엔진을 사람들이 잘 이해를 하지 못했어. 여기서 엔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엔진이란 자동차를 굴리는 기계장치라고 하면 협소한 의미로 사용한 것이고, 원래 엔진이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고, 엔지니어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 크리에이터라고 하면 생각하면 된단다.. 아무튼 찰스 배비지의 톱니바퀴 엔진을 이해한 사람이 한 명 나타났는데 러브레이스라는 여인이란다. 찰스 배비지도 자신의 엔진을 이해하는 사람은 러브레이스뿐이라고 했어. 러브레이스는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아버지는 철학자이자 시인으로 유명한 바이런이라고 하는구나.

제임스 프레스콧 줄이라는 사람이 있어. 너희들도 학교에서 에너지의 단위로 ''을 배울 텐데 그 단위가 바로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란다. 줄은 성공한 양조장집 아들로 부유하게 살았다는구나. 가정교수가 돌턴이었다고 하니 말 다했지, . 줄은 양조장을 근대화하려는 노력을 했는데 그 일을 하다가 일과 열이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 논문을 발표했대. 윌리엄 톰슨이라는 사람과도 교류를 하여 함께 열열학을 연구하였고, 그들은 칼로릭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단다.

칼로릭 이론은 열이란 것이 칼로릭이라는 무게가 없는 물질입자라고 생각한 이론으로 그 이전까지 칼로릭이라는 물질이 열을 낸다고 믿고 있었어. 나중에 윌리엄 톰슨은 해저 케이블을 만들게 되는데, 그 업적을 높이 사서 Lord()이라는 호칭까지 얻게 되었대. 그때 경 이름을 켈빈으로 지어서 켈빈 경으로 불렀어. 절대온도의 단위로 그 켈빈 맞단다.

 

4.

프랑스 혁명 이후 유태인들의 지위도 많이 올라갔대. 독일에 사는 유태인 마그누스는 부유한 집안 사람인데, 큰 실험실을 갖춘 집을 만들고, 독일 최초 물리학회를 만들었다는구나. 참고로 마그누스의 사촌은 로이터 통신으로 유명한 로이터라는구나. 헬름홀츠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가난해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의대에 들어갔대. 나중에 마그누스의 실험실이 있는 집에 갔다가 물리학에 대한 연구에 빠지게 되었고, 그 유명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발견했다는구나. 학창 시절 그렇게 골치 아프게 했던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이 분이 발견했구나. 이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제자 중에도 헤르츠, 마이클슨 등 유명한 사람들이 있고 친구 중에는 오늘날까지 영상의료기기의 독보적인 회사 지멘스의 창시자인 베르너 폰 지멘스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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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넬이라는 영국의 과학자가 있어.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사람으로 사업을 하셨는데, 왕당파였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 때 영국으로 도망을 왔다고 하는구나. 브루넬은 영국에서 큰 배를 많이 제작한 사람이래. 우리에게는 익숙한 사람이 아니지만, 영국에서는 처칠 다음으로 존경 받는 위인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그가 큰 배를 많이 제작하여 영국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다는구나. 브루넬이 만든 배 중에 비글호도 있어. 비글호 이야기가 나왔으니, 어디로 이어질 지 감이 오겠지?

비글호는 첫 번째 선장은 항해 중에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고 말았대. 두 번째 선장 피츠로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과학자 한 명을 데리고 갔는데 그 사람이 바로 다윈이란다. 그렇게 다윈의 진화론이 시작된 것이란다. 하지만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신을 거부하는 것이라 출판을 조심했지. 토마스 헉슬리(<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할아버지)가 다윈 이론을 정설로 만들어 주기 위해 과학 관련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에서 학술지를 만들어 다윈의 진화론을 실었단다. 그렇게 만들어진 학술지가 오늘날까지 이어진 <네이처>라는구나. <네이처>라는 학술지를 보고 비슷한 형식으로 에디슨이 만든 학술지는 <사이언스>라고 하는구나.

프랑스는 공화정이 다시 왕정으로 바뀌어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게 되었어.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에 전쟁인 보불전쟁이 일어났고, 프랑스는 보기 좋게 패배했단다. 파리시민은 이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시위를 벌이게 된단다. 프로이센은 프랑스 시민의 시위를 프랑스 군대로 진압하게 했어. 프랑스 시민과 프랑스 군대의 무력 출동이 일어나서 10만여 명이 죽었다고 하는구나. 이 비극적인 사건을 파리코민이라고 한단다. 이 때 루브르박물관의 일부가 불탔는데 그들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불타 사라진 부분은 복원하지 않았대. 우리가 작년에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서쪽이 뻥 뚫려 있었는데, 그 부분이 불타고 사라진 부분이라고 하는구나. 파리코민 당시 시민들은 오페라 극장을 본거지로 사용하다 보니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말았다는구나. 이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바로, 뮤지컬로도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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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파리 코뮌으로 파리 전체가 내전에 휩싸이며 주요 시설물들이 불타 없어진다. 그림은 파리의 상징 루브르 궁이 불타는 장면이다. 이 화재로 루브르 궁의 서쪽 면이었던 튈르리 궁이 전소되었다. 르네상스 군주 프랑수아 1세가 짓기 시작해 앙리 4세를 거치며 프랑스 최고 권력의 중심이던 이곳이 불타 버리자 프랑스 제3공화국 정부는 루브르 궁의 재건을 검토한다. 하지만 치욕의 역사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의견에 따라 루브르 궁을 훼손된 채로 그대로 두게 되었다. 현재 루브르 궁은 서쪽 편이 뻥 뚫린 채로 남아 있다. 루브르 궁 맞은 편에 있던 오르세 궁 역시 불타 없어진다. 이 건물에는 프랑스 정부 주요 부서인 재무부와 최고재판소가 있었다. 폐허로 남아 있던 그 자리에 기차역이 세워졌다가, 훗날 미테랑 대통령에 의해 리노베이션이 시작되어 1986년 오르세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한편, 당시 건축 중이었던 오페라 가르니에는 코뮌 군의 시설로 쓰이던 관계로 참화를 피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1875년 완공된 이 화려한 오페라 극장에서 코뮌 군의 시체가 발견되자 이 건물에 유령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이 소문은 추리 소설 작가 가스통 르루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그는 코뮌 직후의 오페라 가르니에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잘표한다. 이것이 1911년 소설 <오페라의 유령>이다. 그는 소설의 서문에서 축음기를 파묻기 위해 인부들이 오페라 하우스의 바닥을 팠을 때 시신 한 구가 발견되었다. 나는 곧바로 이것이 오페라의 유령의 시신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 이 시신이 파리 코뮌의 희생자 중 한 사람의 것이라고 신문이 아무리 떠들어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가스통 르루의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것이 1986년 런던 여왕 폐하 극장에서 초연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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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코민으로 힘든 시절을 보낸 프랑스는 다시 재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그 유명한 에펠탑을 만들게 되는데, 에펠탑이 자유의 여신상과 동일한 철골 구조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단다. 프랑스에서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은 에펠과 쾨클랭이 함께 만들었는데 철골 구조로 만든 다음 겉을 씌운 것이라고 하는구나. 자유의 여신상이 속도 꽉 찬 그런 동상인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자유의 여신상의 철골구조가 성공한 후, 에펠과 쾨클탱이 철골구조로 최대한 높게 세운 만든 것이 바로 에펠탑이란다. 에펠은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과학자들 72명의 이름을 에펠탑에 새겼다고 하는구나. 작년에 우리가 에펠탑에 갔을 때 이 사실을 알았다면 좀더 유심히 봤을 텐데맨 눈으로 보이지 않겠지만, 줌으로 당겨보면 보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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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마치 기술과 예술의 대결인 듯한 논란이 벌어지자, 에펠은 에펠탑 4면에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72명의 프랑스 과학 기술자들의 이름을 보란듯이 새겼다. 72명 중 상당수가 열유체 관련 인물들이며,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로는 보르다, 쿨롱, 라그랑주, 라부아지에, 몽주, 라플라스, 드장드르, 프로니, 푸리에, 앙페르, 게이뤼삭, 푸아송, 나비에, 코시, 코리올리, 카르노, 클라페롱, 스트럼, 푸코 등이 있다. 여기서 카르노는 카르노 사이클의 사디 카르노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라자르 카르노이다. 여기서 보듯 당시 사디 카르노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고, 마찬가지 이유로 에펠의 고향 선배 다르시 역시 여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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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토마스 영이라는 사람이 빛이 파동이라는 것을 증명하면서 다시 매질 에테르가 수면 위로 올라왔단다. 파동이라고 하면 매질이 있어야 하니까 말이야. 다시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했대.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야. 1900년대 과학은 산업 분야와 더욱 밀접해지면서 발전했다는구나. 존 웨슬리하얏트의 플라스틱 발명, 렌트겐의 X-ray 발견과 이를 상업화한 지멘스, 에디슨의 회사 직원으로 있다가 독립하여 자동차를 대중화 시킨 헨리 포드 등도 이야기해주었어.

헨리 포드가 자동차 사업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에디슨이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주었기 때문이라는구나. 그런데 그 당시에도 가솔린 자동차가 아닌 전기 자동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랬단다. 전기 자동차와 하이브리드를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포르셰.  정말 놀랄 일이로구나. 포르셰에게 전기자동차를 포기하라고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벤츠라고 하는구나. 비싼 자동차 브랜드가 다 나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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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403)

하지만 석유 못지않게 유동성이 뛰어난 전기를 이용한 자동차의 개발 역시 만만치 않았다. 오스트리아 황실에 자동차를 공급하던 회사에 취직한 엔지니어 페르디난트 포르셰(Ferdinand Porsche) 1898년 전기 자동차를 개발하여 가솔린과 경쟁한다. 그는 전기 자동차의 가장 큰 문제가 무거운 배터리임을 주목하고, 1901년 세계 최초로 벤츠의 가솔린 기관을 발전기로 채택하여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개발한다. 1902년 포르셰가 군대에 입대하면서 그의 전기 자동차와 하이브리드차 개발은 중단된다. 포르셰는 군대에서 황태자의 운전병으로 일했고, 나중에 이 황태자가 암살되며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 한편, 포르셰가 군대에 있는 동안 세계 자동차 시장의 대변화가 미국에서 일어난다.

1903년 에디슨의 전기 회사에서 일하던 헨리 포드가 독립하여 자동차 회사를 설립한다. 아마도 전 직원 테슬라와의 싸움에서 교훈을 얻은 탓인지, 에디슨은 헨리 포드와는 친하게 지냈다. 재미있는 것은, 1903년 대한제국 황실은 포드 자동차를 구입한다. 이는 포드 자동차 회사가 설립된 직후로, 이로 보아 고종과 순종은 상당한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였음을 알 수 있다. 포드 이후 가솔린 자동차의 수요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주류였던 전기 자동차를 추월한다. 포르셰가 군대 복무를 마치고 1906년 현장에 복귀했을 즈음 대세는 이미 가솔린 자동차로 기울고 있었다. 이때 벤츠가 포르셰를 불러 전기 자동차를 포기하도록 설득하고 가솔린 자동차 개발에 투입한다. 이후 포르셰는 가솔린 자동자의 역사에 불멸의 업적들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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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플랑크는 스펙트럼을 통해 온도를 확인하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에너지를 가진 물체의 스펙트럼은 연속 스펙트럼으로만 관찰이 되었는데 어느날 보니 선 스펙트럼이 발견되었고 그로 인해 불연속 에너지의 형태의 양자를 처음으로 가정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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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다. 아빠가 지금 소개해주고 있는 책은 유체과학사를 다룬 책인데 유체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안 한 것 같구나ㅠㅠ 책에 유체에 관한 이야기들도 중간중간 나오는데 그 외에 내용들이 재미있어서 유체의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은 것 같구나. 위에서 언급한 과학자들 대부분이 유체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고 하는구나. 1900년대 들어서는 유체과학이 비행기 쪽에서 많이 발전했대.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이란 낯선 방정식이 있는데 난류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유체역학에서는 무척 유명한 방정식이라고 하는구나.

비행기에서 가장 유명한 회사 보잉도 사람 이름이라는구나. 보잉은 비행기를 통한 항공 우편 사업을 하다가 빈 자리에 사람을 태우기 시작했고, 당시에는 비행기 사고의 위험이 있어 공포를 호소하는 승객들이 많아서 그들의 안전을 위해 간호사를 같이 태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스튜어디스의 시작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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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

1929년의 대공황으로 모든 산업이 타격을 받지만, 보잉의 항공 우편 사업은 정부와 결탁하여 엄청난 성장을 기록한다. 또한, 보잉은 우편 항공기의 빈자리에 사람을 태워, 일반인도 비행기를 탈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항공 승객 사업까지 장악한 보잉은 1910년 에어쇼의 굴욕을 깔끔하게 만회한다. 하지만 아직 항공기는 사고의 위험이 컸고 항공 승객이 늘면서 공포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에 보잉사는 1930년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25세의 여간호사 엘렌 처치를 객실 승무원으로 깜짝 고용한다. 그녀가 최초의 스튜어디스로, 고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큰 인기를 얻자 이후 항공 여객 사업의 표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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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 책에서 소개하지 않은 많은 인물들과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더 있는데, 이미 오늘 독서 편지가 너무 길어진 것 같구나. 나머지 이야기들은 너희들이 나중에 직접 읽는 것으로 남겨두고 마지막으로 헤디 라마드라는 천재 여배우를 소개하고 마무리하련다. 우리가 현재 없어서는 안 되는 블루투스와 와이파이의 기초가 되는 특허를 낸 사람인데, 당시에는 그의 과학적 재능보다 미모에 사람들이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구나. 우리는 그의 과학적 재능에 더욱 감탄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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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

헤디 라마드(Hedy Lamarr)와 빈 중앙 묘지에 있는 그녀의 묘. 그녀는 오스트리아에서 나치의 집권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명인 중 하나였다. 그녀는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타고난 끼로 1930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전신 노출 영화 <엑스터시>에 출현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재벌과의 결혼과 망명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던 인물이다. 어릴 때부터 과학 기술에 심취했던 그녀는 미국 망명 후 저녁마다 화려한 할리우드의 파티보다는 지식인들과의 토론을 즐겼고, 거기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발명하는 것에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어뢰의 무선 조종을 획기적으로 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특허를 등록한다. 당시 기술로 분노하여 특허는 상용화가 힘들었지만, 1990년대 이후 무선 통신이 발달하며 휴대 전화의 기본이 되었고,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에도 응용되면서, 그녀의 업적이 다시 부각되고 다시 한번 전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2000년 미국에서 사망한 그녀는 빈 중앙 묘지 볼츠만의 묘 근처에 묻혔다. 그녀의 묘비에는 영화는 순간이지만, 과학 기술은 영원하다라는, 평소 그녀가 늘 하던 말이 새겨져 있다. 한편, 그녀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폰 트랍 집으로 등장하는 잘츠부르크 저택을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이 영화가 오스트리라와 나치와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사운드 오브 뮤직>에 등장하는 <에델바이스>는 오스트리아 전통곡이 아니라 영화 속 창작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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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 정도에서 오늘 독서 편지는 마무리하자꾸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빠도 지은이 민태기 님만큼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힘이 없어서 두서없이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부분들을 발췌해서 너희들에게 소개해준 것으로 만족하련다. 이 책을 읽기에 너희들이 아직 조금 어릴 수 있으니 나중에 좀더 커서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래. 아빠는 뭔가 꽉 차는 느낌이 들었어. 아빠의 휘발성 기억력으로 다시 빠져나가겠지만 말이야. , 그럼 오늘은 이만. 긴 글 읽느라 고생했어.

 

PS,

책의 첫 문장: 1989년 영국의 음악가 존 엘리엇 가디너(John Eliot Gardiner)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Orchestre Revolutionnaire et Romantique)”라는 이름의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책의 끝 문장: 과학은 고립된 개별 분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탄생시킨 우리 사회의 대한 전체적인 통합적인 사고의 산물이다


전 유럽을 휩쓴 30년 전쟁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마무리된다. 보헤미아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이 전쟁으로 신성 로마 제국은 독일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여 오스트리아와 동유럽으로 축소되었다.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독일은 수많은 제후국으로 분할되어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곳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전쟁 중에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공국과 합병한 프로이센은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대규모 영토를 보장받으며 신흥 강국으로 등장한다. 또하, 80년간의 기나긴 독립 전쟁 끝에 네덜란드의 독립이 최종 확정되어, 신대륙 발견 이후 강대국으로 군림하던 네덜란드의 지배자 스페인의 몰락이 시작된다. 종교의 도그마에 갇혀 국력을 낭비한 스페인과 신성 로마 제국과 달리 철저히 실리를 챙긴 프랑스와 영국이 30년 전쟁 이후 유럽의 강대국으로 급부상한다. - P35

뉴턴은 조폐국에서 일하던 수십 년간 상당한 재력가가 되었다. 한편, 1714년 앤 여왕이 후사가 없이 사망하자 영국의 스튜어트 왕조는 단절된다. 의회는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앤 여왕의 먼 친척인 독일 하노버 영주 게오르크 1세를 허수아비 국왕으로 데려와 조지 1세로 세웠다. 현재 영국 왕실은 이 하노버 왕조의 후손들이다. 이러한 정권 교체 시기에 1720년 런던의 커피하우스들의 미확인 소문들과 ‘묻지 마’ 투기로 시작된 ‘남해 버블 사건(South Sea Bubble)’이라는 주식 사기 사건이 일어난다. 조폐국장 뉴턴은 여기에 휘말려 2만 파운드를 날렸다. 하지만 자산 관리에 탁월했던 그는 1727년 사망 시에 어머니의 유산을 제외하고도 3만 2000파운드(현재 가치로 약 60억 원)의 유산을 남겼다. - P49

청동은 섭씨 900도에서 녹지만, 주철은 섭씨 1,300도 이상이 되어야 녹는다. 기원전부터 주철을 녹여 제품을 만들었던 중국과 달리 서양은 16세기까지 이 온도에 도달하지 못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주철 기술로 동아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무쇠솥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차이가 동서양의 식생활을 다르게 만들었다. 즉 동양은 솥으로 밥을 지어 먹었고, 솥이 없던 서양은 화덕에 빵을 구워 먹었다. 인류는 수천 년 전부터 철기 시대에 진입했지만, 서양의 철기 문화는 중세까지만 해도 기껏해야 대장간에서 수백 도로 달군 철을 망치로 두들겨 창검이나 농기구를 만드는 수준이었다. 이러한 기술 격차를 만든 것은 바로 ‘풀무’였다. - P117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서양사에서 중세가 종말을 고하고 근대가 시작된 기점이다. 과학 기술의 측면에서는 창과 칼 같은 냉병기에 의존하던 유럽이 대포라는 화기를 앞세운 이슬람에 굴복한 사건이기도 하다. 두 세력 모두 화포를 지니고 있었으나, 오스만 제국은 훨씬 강력한 대포로 1,000년 이상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콘스탄티노플의 3중 성벽을 허물어뜨리며 함락시켰다. 이는 단순한 전쟁의 결과를 넘어서, 인류사에서 전쟁의 패러다임이 활과 창검을 이용한 용맹 무쌍희 기사도에서 화포로 상징되는 과학 기술로 이동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 P145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는 마렝고 전투 당시의 로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796년 1차 나폴레옹 원정으로 로마에 공화정이 수립되지만, 프랑스의 지배력 상실로 공화정은 무너지고 로마의 공화파들은 지하로 숨어 투쟁한다. 이 와중에 알프스를 넘은 나폴레옹이 다시 진격해 오자 로마의 혁명적 공화파가 전면에 나서고 이를 막아내려는 왕당파의 탄압 역시 필사적이었다. 오페라는 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공화파 혁명 지도자와 사랑에 빠진 여인 토스카의 비극적 운명을 담고 있다. - P162

따라서 데카르트에게는 행성을 움직이는 힘의 전달 매체로 우주를 가득 채운 유체 에테르가 필요했고, 에테르의 소멸하지 않는 운동인 보텍스가 행성 운동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해 뉴턴은 유체의 점성 저항을 도입하여 유체 유동은 지속하지 못하고 소멸한다고 지적했다. 대신 행성은 에테르의 보텍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중력에 의해 스스로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턴 역시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중력이 작용하려면 물질의 접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더 나아가 자력이나 전기력에도 마찬가지로 힘의 매개체가 있다고 생각했다. - P229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같은 시기 맨체스터에서 활동하던 동년배 사업가 줄의 성과에 대해 언급한다. 이들은 줄의 실험이 열, 운동, 전기, 자기 등 다양한 에너지와 힘이 서로 다른 형태로 바뀌기도 하고 상호 전환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후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자신들의 경제학에 줄의 성과를 반영하여 노동이 상품이 되고 상품이 화폐가 되고 화폐가 상품으로서의 노동을 구매하는 과정을, 보존량으로서의 ‘가치’가 형태를 바꾸어 가며 전환된다는 물리학적 개념으로 분석한다. 이렇게 하여 카를 마르크스의 최초의 경제학 저술인 <정치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가 1859년에 출판된다. 이 책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매진되자 고무된 마르크스는 이 책을 확장하여 새로운 책을 저술한다. 이것이 바로 1867년의 <자본론>이다. - P267

1938년 듀폰이 개발한 테플론은 핵무기 제조 등 군사용으로 쓰여 사용이 제한적이었다. 1945년 프랑스의 한 주부는 남편이 낚싯대에 사용하는 테플론에 음식물이 잘 묻지 않는 것을 보고, 남편에게 프라이팬에 테플론을 코팅해 달라고 조른다. 하는 수 없이 남편이 알루미늄에 테플론을 코핑하여 프라이팬으로 사용했더니 음식물이 묻지 않아 편리했다. 뿐만 아니라, 이전의 주철이나 스테인리스 소재 프라이팬보다 훨씬 가벼워져 주부의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아 조리가 편해졌다. 무엇보다 열전달이 뛰어나 예열이 필요 없게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회사가 테팔(TEFAL)이다 테팔은 테플론(Teflon)과 알루미늄(aluminum)의 합성어로, 여기서부터 조리 기구의 혁명이 이루어졌다. - P391

"’명백한 것들은 모두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과연 문명이란 무엇인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의 한 문장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배 위에서 일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순간, 보이던 것들이 경계가 불분명해지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실재한다고 믿던 것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생생히 묘사한다.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라 믿었던 유체도 이렇게 사라졌다. 그러나 분명하던 것들이 사라져야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플로지스톤이 사라지며 화학이 탄생했고, 칼로릭이 사라지면 열역학이 탄생했듯이, 마지막 유체 에테르가 사라지며 새로운 과학이 출발한다.
-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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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한때 신경 썼다는 건 안다. 그가 그녀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아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던 시절의 이야기다. 사랑이 언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던 시절의 이야기다. 사랑이 언제 꽃을 피우는지는 잘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눈을 떠보면 꽃이 만개해 있으니까. 시들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보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발코니 식물과 상당히 비슷하다. 가끔은 과탄산소다로도 아무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109)

잉그리드는 우리 언니였어. 죽은 언니. 언니한테서 나쁜 냄새가 날까봐 걱정이 됐거든. 그래서 내가 탄산나트륨에 대해서 알아낸 거야. 우리 몸은 탄산나트륨을 만들어서 산성인 위액을 중화하거든. 그런데 죽으면 몸에서 탄산나트륨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산성 물질들이 피부를 뚫고 바닥으로 나와. 그래서 나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거야.”

그녀는 예전부터 인간의 영혼은 탄산나트륨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말이 되는 소리 같지 않냐고 덧붙일까 고민한다. 영혼이 몸을 떠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투덜대는 이웃 사람들만 남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쓸데없이 성가시게 굴 필요는 없다.

 

(150)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우리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공이 길거리를 굴러오면 발로 찰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사랑에 빠지는 이유와 같다.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278)

토트넘은 나쁜 팀 중에서도 제일 나쁜 팀이에요. 왜냐하면 거의 잘하는 팀에 가깝거든요. 토트넘은 늘 환상적인 경기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해요. 그런 식으로 희망을 심어줘요. 그래서 계속 사랑할 수밖에 없는데, 점점 더 기발한 방법으로 팬들을 실망시키죠.”

 

(432)

축구는 인생을 끌고 가는 힘이 있죠. 늘 새로운 경기가 있으니까요.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니까요., 모든 게 더 좋아질 거라는 꿈도 있고요. 경이로운 스포츠예요.”

 

(433)

나는 어느 팀을 응원해본 적이 없어요. 축구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가봐요. 특정 팀을 향한 열정이 축구라는 스포츠를 사랑하는 마음에 걸림돌이 될 때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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