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생이 지난번 페이퍼에 쓴 호계서원 복설 추진 확약식 사진이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떼로 혹은 갓쓰고 혹은 유건쓰고 도포입고 행차하는 이런 사진을 보면 놀라고 신기해 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무슨 이슬람 복장한 사람들을 보듯 이상하게 보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른다. 아니면 무슨 고고학적 발견 비슷한 놀라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 아직도 저런 사람들이 있구나. 용케도 안 죽고 남아있네...너 어느 별에서 왔니????? 저분들은 어버이연합 뭐 그런분들은 아닙니다.

 

우리는 양반문화, 유교문화, 안동문화에서 무언가를 얻어 내어야만 한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문화적 상품은 이 것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대로는 안된다. 뭔가 조치가 필요한데 그건 소생 능력밖의 일이다. 하여튼간에 이건 소생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니, “!!! 저 돼지 놈이 되지못한 이상한 소리를 꿀꿀거리고 있네생각하시는 분들도 너무 노여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조선시대 양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 두가지는 바로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이다. 조상 제사 잘 받드는 것과 손님을 기꺼이 접대하는 것이 양반문화의 핵심이다.

 

접빈객(接賓客) 관련하여서는 임청각 생치(生雉)다리 이야기가 유명하다. 임청각은 안동시 법흥동에 있다. 안동댐 인근 낙동가가에 위치한 임청각 고택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생가로 아흔아홉칸의 대저택이다. 석주의 의병운동, 독립운동으로 이미 가세가 기울었고, 그후에는 석주가 가산을 정리해 상해 임시정부로 가버리자 남은 식솔들의 생계는 절박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로 임청각을 출입하는 손님은 줄어들지 않았으니, 양반 법도에 접빈객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여 생각해낸 것이 생치(生雉)다리다. 생치란 살아있는 꿩이란 말이다. 어쨌든 없는 살림에도 임청각을 찾는 손님들 밥상에는 매 끼니마다 고기반찬이 꼭 하나 올라갔는데 그것이 바로 생꿩다리였다. 요리하지 않은 생꿩다리를 어떻게 먹는단 말인가??? 주인이 말한다.“차린 건 없지만... 접구(接口)라도 하시지요.” 그러면 손님은 젓가락으로 생꿩다리를 한번 뒤집어 놓은 것으로 먹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생치다리는 계속 재활용되어 다음 손님상에도, 그 다음 손님상에도 올랐고, 손님들은 모두 젓가락질로 생치다리를 뒤집으며 접구하는 시늉을 했다. 손님들도 모두 임청각의 사정을 아는 것이다. 접구란 음식을 아주 조금 먹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허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형식이 없다면 내용 홀로 어찌 존재할 것이며, 틀이 없다면 그 속의 모양이 찌그러질 수도 있는 것이다.  

 

봉제사(奉祭祀)란 제사를 받드는 것인데, 제사는 흔히 4대까지 지낸다. 이른바 사대봉사(四代奉祀). 그러니까 우리할배의 제사는 아버지, . 손자, 증손자까지만 제사를 지내고 고손자대에 이르면 신주를 땅에 묻어버리고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방귀 꽤나 뀌는 반가에는 불천위(不遷位)라는 것이 있다. 불천위란 신위를 옮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4대 봉사가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자자손손 영원히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신주를 땅에 묻지않고 사당에 모신다. 불천위를 모시기 위해서는 신주와 신주를 모신 함인 감실, 그리고 감실을 봉안하고 제사상을 갖추어 제사를 모실수 있는 사당이 필수적이다.

 

당연히 아무나 불천위가 될 수는 없다. 나라에 큰 공헌이 있거나 도덕성과 덕망이 높은 분들만 가능하다. 나라에서 인정하는 경우도 있고 유림에서 중론을 모아 발의하는 경우도 있다. 퇴계는 물론이고 영남학파의 학통을 잇고 있는 서애, 학봉, 우복, 한강, 여헌, 갈암, 대산, 정재 같은 분들은 모두 불천위다. 불천위는 보통 한 문중의 방계종파의 중시조가 된다. 이 불천위를 모시는 제사는 그야말로 큰 행사다. 학봉 불천위 제사의 경우 유건쓰고 도포입은 사람이 수십명에 제사에 참례하는 사람은 모두 백여명에 이른다. 안동의 불천위 제사는 텔레비전 전통문화 어쩌고 하는 프로에 가끔 방송되기도 한다.

 

제사가 마치 없어져야할 악습이요 폐단처럼 인식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제사 준비에 여성노동이 착취되는 것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또 조상의 기일에 제사를 지내는 것도 재고의 필요가 있다. 직장인들은 평일 멀리 움직이기 어렵다. 꼭 자정넘어 지낼 필요도 없다. 저녁 식사 전에 간단히 식을 올리고 모두 둘러앉아 만찬을 함께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잘 다듬으면 충분히 모두가 즐거운 잔치 혹은 축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크리스마스나 초파일이나 모두 결국은 제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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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5-07-29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매일 등하교길에 지나치던 곳이 바로 법흥동에 있는 임청각이었지요.(저는 처음 1년은 제 모교가 있던 용상동에서 자취를 했고, 나중 2년은 안동댐 아래 동네인 와룡면에서 용상동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답니다.) 생치다리 얘기는 옛날에도 한 번 들었었는데 지금 다시 들어도 여전히 새롭네요.

불천위 제사는 (훌륭한 조상님 덕분에) 저희 집안에서도 모시는데, 임금님의 친필이 종갓집 뒷편 사당에 큼지막하게 걸려 있지요. 저희 집안에서도 1년에 한 번씩 `불천위 제사`를 모실 때면 전국 각지에서 많이들 고향으로 내려오시고, 아직도 갓쓰고 도포입고 제사 지내시는 어르신들도 제법 많답니다.

문득 지난 6월 초에 서울 사는 지인들과 함께 2박 3일 동안 `안동 투어` 다녀온 기억도 나네요. 그 때 도산서원, 퇴계종택, 이육사 문학관, 농암고택 등지를 거쳐 안동댐까지 둘러보고 왔는데, 중앙선 기찻길이 일제시대때 `임청각` 앞으로 빙 둘러 지나가게 된 기막힌 사연을 지인들한테 들려줬던 생각도 나네요.

제 고등학교 동기들 중에는 `학봉`의 직계 종손도 있고, 퇴계의 후손, 서애의 후손들도 많답니다. 삼봉(정도전)의 후손들도 더러 있구요. 어디든 사정은 비슷하겠지만 특히 안동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 함부로 집안 자랑 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일쑤여서 늘 서로 알게 모르게 조심하기도 하지요.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붉은돼지 2015-07-29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거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쓴 거 같은 느낌이 ^^;;;;
저는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선대 고향은 안동입니다.
제가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집안사정으로 저만 외가인 내앞에서
컸는데, 어쩌다 한번 내앞에 가봐도 기억이 하나도 안납니다.

집에 큰형님은 옛날에 학봉 종손하고 내앞 종가에서 같이 놀기도
했다고 하더군요...저는 어릴 때 아버지로 부터 학봉할배와 우리집
불천위 할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 지긋지긋하니 오히려 반감이 생기더군요

가만보면 안동 일대 그 손바닥만한 동네에 무슨 그런 양반입네하는
집안은 또 그리 많은지 서로 잘난체하며 조상 팔아먹고 사는 거 같아
아버지 말씀은 거의 콧등으로도 안듣고 그랬는데

이제는 아버지도 벌써 돌아가시고 저도 나이 먹어 저런 이야기들이
문득문득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이제는 들을 데가 없군요 ㅜㅜ

oren 2015-07-30 12:37   좋아요 0 | URL
붉은돼지 님의 외가가 바로 내앞이었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제 고향은 경북 영양인데 저는 그곳에서 중학교를 마친 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안동으로 나왔답니다.(제 고향 영양은 산골 오지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문인들은 많이 배출했답니다. 흔히 시인 조지훈, 소설가 이문열, 김주영 등을 꼽지요.)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영양과 안동을 이어주는 도로는 소위 `신작로`로 불리는 흙먼지 풀풀 나는 자갈길이었고, 고달픈 자취생활 틈틈이 고향을 다녀올라치면 `내앞`은 어김없이 지나가게 되어 있었지요. 요즘도 가끔씩 고향에 오갈 때 `내앞`을 지날 때면 그저 잠시나마 곁눈질이라도 건넨답니다. ㅎㅎ

저랑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 녀석은 뒤늦게 알고 보니 내앞에 있는 `종가집`이 바로 `저 집`이더라구요. 강 건너에 있는 멋진 정자(백운정)도 `저 꺼`라고 하구요. 어쩄든 그 친구는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재미를 붙인 끝에 과외를 참 열심히 받았었지요. 과외선생님은 `한양에서도 알아주는 영감님들`이었고, 그 친구가 배우는 과목들은 주로 한자로 쓰여진 `사서 오경`들이었지요. 결국 그 친구는 7년 전쯤에 `국립 서울대 정교수`로 부임해서 `가문`을 부끄럽지 않게 하더군요.
* * *
그 친구를 본 지가 어느새 서너 해는 훌쩍 지난 듯하여 오늘 문득 검색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마침 붉은돼지 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양반 문화`를 소개하느라 바쁜 소식이 하나 올라오네요. ㅎㅎ
☞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608780

붉은돼지 2015-07-30 13:2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전에 오렌 님의 희랍고전 이야기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영양이 고향이시군요..정말 산골이죠..ㅎㅎㅎㅎ 영양 석보는 이문열의 고향으로 더 알려진 것 같습니다. 서울대 교수되신 그 친구분은 운천종가 둘째분이라고 하니, 아마도 내앞 작은 종가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찾아보니 운천은 학봉의 형님인 귀봉의 아드님으로 나오더군요. 저도 조금 헷갈려요. 내앞에 가면 청계공의 큰 종가나 귀봉 작은 종가나 뭐 거의 붙어 있고, 또 학봉 종가는 검제에 따로 있고 하니 뭔 종가가 이리 많은지....보통 불천위로 모시게 되면 종가가 되니 그리 되는 모양입니다. ..

학봉의 이름이 이렇게 높이 난 것은 아마도 그 후손들 중 잘 되신 분들이 많아 학봉을 현창한 덕분도 있는 듯 합니다. 작고하신 포항공대 김호길 총장이 내앞 출신이고, 현재 내앞 큰종가 종손도 아마 포스텍 교수로 재직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성취의 동력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transient-guest 2015-07-30 0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에 살면 제사/한국명절/미국명절이 모두 섞여버리는 어려움과 안타까움이 있어요. 많이들 미국명절에 한국조상을 대입하는 식으로 치루기도 하고요. 저는 위의 말씀에서 위패를 사당에 모시는게 참 좋네요. 집 뒷뜰에 작은 공간이 있어 그곳에 조상의 위패를 모시면 늘 삶과 죽음, 공존에 대한 것들을 떠올릴 것 같고, 내 직계조상을 기억하기도 좋을 듯 합니다만, 좀 무섭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네요.ㅎㅎ

붉은돼지 2015-07-30 10:06   좋아요 0 | URL
미국명절에 한국조상 대입하는 식으로도 하는군요...
뜰 있는 집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서 사당을 두는 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요...
한국에선 보통 대부분이 아파트에 사는 관계로....
그리고 저는....별채로 작은 개인 도서관을 하나 지었으면 하는 바램을 품고있습니다...^^

만병통치약 2015-08-01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계서원이 학봉선생과 서애 선생 (순서무관합니다 ㅋㅋ) 서열문제로 조금 씨끄러웠다까지만 알고 있는데 잘 해결되었나 봅니다. ^^ / 책에서 보던 내용을 사진으로 보니 신기하네요

붉은돼지 2015-08-02 12:28   좋아요 0 | URL
일종의 의전이죠..
사실 요즘도 공식적인 행사에서 이 의전때문에
말썽이 새기는 경우도 꽤 있는 것 같더라구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서애가 왼편에 앉는 것이 맞는 거 같아요
일국의 총리로 미증유의 국난을 극복한 그 노심초사를 생각하면요

학봉도 물론 진주성에서 순국하지만 원죄?가 없다 할 수 없고
 

금일 아내와 혜림씨는 동네 몇몇 학모님들과 워터파크에 가셨는데, 만찬 후 귀가하신다. 소생 그냥 처자없는 텅빈 집구석에서 냄새풍기며 라면이나 끓일까 하다가, 마음 고쳐먹고 집 앞 본죽에 갔다. 전에 한번 먹어보니 맛있는 게 있더라. 바로 강된장냉이두부비빔밥....맞나??? 이거 주문할 때 혀 좀 꼬인다 ㅎㅎ

혼자 밥 먹는 게 어색하지는 않다. 가족과 도란도란 냠냠짭짭도 좋지만 나는 혼자 조용히 신문이나 책을 보면서 밥 먹는 것도 좋아한다. 식구들과 식사할 때는 활자를 가까이 하는 것은 금기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몸빼 바지를 입고 동네 진출했다. 보이나요? 몸빼...움화화화!!! 다행히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내일이면 아내가 동네아줌마들 모이는 놀이터에서 이런 말을 물어올 지도 모른다. ˝어머머멍!, 혜림이 아빠 몸빼입고 돌아댕기데....˝

올 여름에는 이스탄불에 가기로 했다. 이스탄불에만 있을 계획이다. ˝이스탄불 7박8일˝은 작년에 산 책인데, 정체성이 다소 모호하다. 여행안내서로는 조금 부족하고 에세이로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사진은 예쁘다. 이스탄불 다녀오신 분들 꿀팁 좀 주세용~~

추신 : 처음으로 폰으로 쓰는데 손꾸락 하나로 쓰려니 엄청 어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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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7-28 2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이쥬? 닻무늬 몸빼...호호호

북다이제스터 2015-07-28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뎌 가시는군요, 이스탄불. 감축 드리고 정말 부럽습니다. ^^

붉은돼지 2015-07-29 09:42   좋아요 0 | URL
몇 년을 씨루다가 이제야 가게 되었습니다.
응당 휴가란 비치에서 수영하다 파라솔 그늘 아래서 쉬고..감상하고,, 뭘? ㅎㅎㅎ 먹고, 마시고
다시 놀고, 책도 보고 뭐 이런 것이 되어야 하는데...

이스탄불 여행은 어린 딸내미와 극기훈련 비슷한 게 될지는 않을 지 걱정입니다.
너무 배부른 걱정인가요 호호호

스윗듀 2015-07-2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닻무늬라 그래도 세련미가 좀 흐르네요 쿠쿠 강된장비빔밥 맛있겠다요😈

붉은돼지 2015-07-29 09:43   좋아요 0 | URL
아시겠지만 실제로 보시면 잠옷 같아요
저 냉이강된장비빔밥인가 저거 맛 좋아요 ^^

자몽 2015-07-28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서도 밥잘먹는 남편..부럽습니다^^

붉은돼지 2015-07-29 09:44   좋아요 0 | URL
남자들 혼자 집에서 직접 해 먹는 거는 좀 귀찮아해도..뭐, 이것도 즐거이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혼자 밖에서 맛있는 사먹는 거는 다 좋아할걸요....아마..^^

2015-07-29 0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9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5-07-29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러워요~^^
혼자 식사도, 몸빼 외출도,
근데, 이스탄불이 젤 부러운거 있쥬~^^

붉은돼지 2015-07-29 09:50   좋아요 0 | URL
집에서 혼자 밥 해 먹는 것도 뭐 그런대로 좋지만 식후 설거지가 귀찮아서...
밖에서 어디 조용한 데서 혼자 맛있는 거 먹는거는 좋아합니다...책 읽으면서 말이죠...^^
이스탄불 다녀와서 사진 좀 올려볼께요..염장 좀 지르게....홍홍홍..

에이바 2015-07-29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한 몸빼와는 다른데요? 이 정도면 저녁 마실엔 문제 없겠어요ㅎㅎ 이스탄불 잘 다녀오셔요.. 드디어 소피아 성당에.. 흑 본죽인지 본비빔밥인지 아무튼 인천공항에 있는 본 브랜드에서 살짝 매운 굴국밥을 먹었는데 괜찮더라고요. 전 본죽에선 야채죽이 제일 좋아요 그다음 단호박죽..

붉은돼지 2015-07-29 10:55   좋아요 0 | URL
이스탄불에 가면....그 왜.. 알라딘 바지라고 있잖아요..통을 헐렁하고 발목은 꽉 쪼여주는 알리딘이 입고 있는..이게 우리 몸빼와 정말 비슷한 거 같아요...그래서 이걸 한 벌 사올까 생각도 하고 있어요...그러면 신발은 꼬가 뾰족한 알라딘 신발도 사야하나...고민도 하고 있어요..ㅎㅎㅎ
예전에 혼자 밥 먹을 때는 라면에 김밥을 주로 먹었는데 요즘은 주로 본죽을 이용해요 아무래도 건강에도 좋을 것 같아서요...^^

세실 2015-07-29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감하신 붉은돼지님...그러다 나타났다 킨스키님 마주치면 어쩌시려고요~~~~~~
본죽에서 비빔밥도 파는군요^^
이스탄불......저도 부러워유~~~

붉은돼지 2015-07-29 14:43   좋아요 0 | URL
아아아아아 세실님~~~ 나타났다 킨스키님은 이제는 제 마음 속에서 지운 여인입니다. 흑흑흑
네 비빔밥도 팔구요....육계장도 있습니다요...^^

transient-guest 2015-07-30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터키정부가 ISIS를 공격하기로 했고, 여전히 PKK와의 관계도 문제가 있으니 잘 알아보시고 안전하게 다녀오시길..

붉은돼지 2015-07-30 10:07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이스탄불에서 시위대가 관광객을 공격했다는 보도도 보았습니다...
뭐, 그렇다고 지금와서 물릴 수도 없고 조심해서 다녀 와야할 것 같아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jjoo 2015-08-04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요일에 돌아왔어요. 언론에 보도되는 것 처럼 위험한 분위기는 아니였고, 일상은 똑같았어요. 몇년전과 다를것 없었습니다. 이스탄불은 또가도 매력적인 곳인것 같아요^^

붉은돼지 2015-08-05 10: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뭐 크게 걱정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스탄불은 처음인데 정말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도시같습니다. ^^
 

 

오늘자 뉴시스(대구/경북) 인터넷판에 <학봉 후손이라 죄송합니다> 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다음은 발췌한 내용이다. “자신을 의성김씨 34세손 학봉후손으로 밝힌 김씨는 27일 한 인터넷매체 기고를 통해 임란역사문화공원 조성을 위해 학봉(김성일)과 서애(류성룡) 문중에 각 100억원씩 200억원을 지원받게 돼 후손으로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특정 문중을 위한 특례라는 시비 속에 시민단체의 반발 등으로 1년이상 파행을 겪어왔으나 안동시는 사업방향을 일부 수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결국 관련 예산의 의회승인을 이끌어냈다. 안동시는 임란 극복의 주역인 자랑스러운 인물을 기리고 후손의 충의를 다지기 위해 의지를 갖고 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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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잘모르겠지만 학봉과 서애라고 하니 두 문중간 사이에 근 사백년을 끌어온 병호시비(屛虎是非)라는 유명한 논쟁이 생각난다. 조선은 16세기 말에 이르면 안동지역을 중심으로 퇴계 이황의 성리학설과 학통을 계승한 이른바 영남학파라는 것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학파의 시조격인 퇴계의 수제자로는 흔히 서애(류성룡)과 학봉(김성일)을 꼽는다. 서애와 학봉의 뒤를 이어 우복 정경세, 갈암 이현일, 대산 이상정, 손재 남한조, 정재 유치명 등으로 학통은 이어진다.

 

1573년 퇴계를 배향하기 위한 여강서원을 세워졌고, 1625년에 이 서원에 서애와 학봉을 추가로 배향하게 되면서 퇴계의 왼편에 누구를 모시느냐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서애측은 벼슬이 영의정이라는 이유, 학봉측은 나이가 연상이라는 이유로 각각 퇴계의 왼편을 주장하여 합의를 보지 못하자 당시 영남 유림의 좌장격인 우복 정경세가 견수와 절석을 설파한다. 연치(年齒)의 차는 견수(絹隋)에 미치지 못하나 작위(爵位)의 차는 절석(絶席)에 있다는 것이다. 서애측의 승리. 그 뒤 여강서원은 숙종으로부터 호계서원의 편액을 받는다.

 

견수(絹隋)의 차라는 것은 예법에 나이가 5살 이상 차이가 나면 연장자로 대접하여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지 않고 조금 뒤쳐저 따라가야 한다는 뜻이다. 학봉은 서애보다 4살 연상이니 견수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 것이고, 절석(絶席)이란 서애는 영의정, 곧 일국의 총리요, 학봉은 관찰사를 지냈을 뿐이니, 영의정과 같은 고위직은 공적인 장소에서는 여러사람과 같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별도의 전용석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1805년 영남유림에서 서애와 학봉, 한강(정구)과 여헌(장현광), 이른바 영남 사현(四賢)을 문묘에 종사키로 조정에 청원하는 과정에서 다시 서애와 학봉의 순서문제가 제기 되었고, 양 문중의 싸움으로 인해 결국 영남 사현의 문묘종사는 기각되었다.

 

1812년 학봉측에서 호계서원에 대산 이상정을 추가로 배향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대산은 학봉 계열이다. 이에 대해서 서애측은 적극 반대하였고 결국 호계서원과 절연하고 서애의 위패를 병산서원으로 옮겨버렸다.

 

2013년 경북도청 강당에서 열린 호계서원 복설 추진 확약식에서 양 문중은 호계서원을 안동시 성곡동 안동 야외민속박물관 일대에 복설 이건하고 서애를 왼쪽에 학복을 오른쪽에 배향하기로 합의하였다고 한다. 안동 유림이 병유 혹은 병파(서애 지지파)와 호유 혹은 호파(학봉 지지파)로 나누어 시비를 따지기 시작한지 근 400년만이다.

 

안동식 유머에 이런 게 있다. 안동 어느 곳에 유생들이 모였다. 한 선비가 다른 선비에게 묻는다. “귀공은 호유이오니까? 병유이오니까?” 선비 왈 소생은 어느쪽도 아니요. 중립이요.” 그러자 처음 선비가 하는 말 , 상놈이었구먼하고 비웃으며 총총히 가벼렸다는 이야기.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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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5-07-28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중립인 것이 상놈이 되는지 미처 몰랐네요. ^^;

붉은돼지 2015-07-28 21:42   좋아요 0 | URL
그릴리가요ㅎㅎㅎ
아마 안동 유림 대부분이 혈연이나 학연 등에 따라 어느 한쪽에 가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구요 세는 학봉쪽이 더 우세한 분위기 일겁니다.
물론 소수지만 중립을 표방한 문중도 있었다고 하네요^^

라스콜린 2015-07-28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반이라면 어느 한편에 참여를 하는군요^^ 오늘날보다 훨 실천하는 지식인들이었네요

붉은돼지 2015-07-28 21:47   좋아요 0 | URL
지금은 다소 개인주의적인 경향이지만 성리학적 유교문화에서는 아마 자신이 속한 혈연에 의거 붕당이나 학파가 자동적으로 정해졌던것 같아요^^

라스콜린 2015-07-28 21:49   좋아요 0 | URL
그런뜻이었군요 ㅎ

만화애니비평 2015-07-28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아버지고향인 강진에서 윤복 선생의 후손이 퇴계 이황과 학문의 교류를 생각해 후손들이 모여들었더군요. 남인이 퇴계와 서애로 이어지어 후에 고산과 다산으로 이어지는데, 조선시대의 붕당은 후손까지 미치는 것을 잘 보이더군요.
정조대왕이 신하에게 문제 내어 다산이 이황보다 이이의 이론에 따르자 남인들이 못마땅한 내용에서 참으로 난해하네요. 유학에 밝지 못하나 저는 다산의 편이지만요.

붉은돼지 2015-07-29 10:59   좋아요 0 | URL
정조때 그 왜 있잖아요 남인독상이라는 채제공과 정약용 같은 분들은 아마 기호남인이라고 알고 있어요 영남지역 사람들은 아니죠..붕당도 들어가면 되게 복잡해요..
생각해보면 다산 같은 사람이 뜻을 펴지못하고 또 크게 쓰이지 못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
 

<만부교 사건과 영국개 소동>에 이어서 코끼리의 경우입니다.

 

태종 11(1411) 2 일본 국왕이 우리 나라에 없는 코끼리를 바치니 사복시(궁중의 말과 가마를 관리하던 곳)에서 기르게 했다.

 

태종 12(1412) 12 공조전서 이우가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가보고 그 꼴이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노하여 밟아 죽였다.

 

태종 13(1413) 11 병조판서 유정현이 진언하였다. “일본에서 바친 길들인 코끼리는 이미 성상의 완호하는 물건도 아니요. 또한 나라에 이익도 없습니다. 만약 법으로 논한다면 죽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 일 년에 먹이는 꼴은 콩이 거의 수백석에 이르니 청컨대, 주공이 코뿔소와 코끼리를 몰아낸 고사를 본받아 전라도의 해도에 두소서.” 임금이 웃으면서 그대로 따랐다.

 

태종 14(1414) 5 전라도 관찰사가 보고하기를 길들인 코끼리를 순천부 장도에 방목하는데, 수초를 먹지 않아 날로 수척하여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하니 임금이 불쌍하게 여겨 육지에 보내어 처음과 같이 기르게 하였다.

 

세종 2(1420) 12 전라도 관찰사가 계하기를 코끼리란 것이 쓸 데에 유익되는 점이 없거늘, 도내 네 곳의 변방 지방관에게 명하여 돌려 가면서 먹여 기르라 하였으니, 폐해가 적지 않고, 도내 백성들만 괴로움을 받게 되니, 청컨대, 충청, 경상도까지 아울러 명하여 돌아가면서 기르도록 하게 하소서.” 하니 상왕이 그대로 따랐다.

 

세종 3(1421) 3 충청도 관찰사가 계하기를 공주에 코끼리를 기르는 종이 코끼리에 채여서 죽었습니다. 그것이 나라에 유익한 것이 없고, 먹이는 꼴과 콩이 다른 짐승보다 열 갑절이나 됩니다. 화를 내면 사람을 해치고, 이익을 없을 뿐 도리어 해가 되니 바다 섬 가운데 있는 목장에 내놓으소서.” 하였다. 임금이 선지하기를 물과 풀이 좋은 곳으로 가려서 이를 내어놓고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이야기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에서 물설고 낯선 조선땅으로 실려와서 멸시와 조롱을 당하자 사람을 밟아 죽이고 절해고도로 귀양을 갔다가, 귀양이 풀려서는 충청, 전라, 경상도를 떠돌다가 또 사육하는 종을 채여 죽이고 다시 섬 가운데에 있는 목장으로 가서 살게되니 짐승이지만 그 팔자가 실로 기구하다.

 

태종은 그 손에 골육을 포함하여 수많은 인사들의 피를 묻히고 보위에 올랐으나 짐승에게는 관대했던 모양이다. 사람 죽인 짐승을 살려주는 것은 요즘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말 못하는 짐승을 불쌍히 여긴 어진 임금이 물과 풀이 좋은 곳으로 보내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고 하였으나, 실록에더 이상의 기록이 없어 그 짐승의 끝을 알 수 없고 다만 조선 땅 어디에 코끼리가 살기에 좋은 곳이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소생이 코끼리 이야기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해도 못생겼다고 비웃고 무시하면 큰일 난다는 것이다. 하물며 만물의 수괴인 인간은 말해 무었하겠는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진저 

 

골육도 가차없이 죽인 인정사정없는 비정한 태종이 사람 죽인 짐승을 불쌍하게 여겼다는 것이 조금 가소롭기도 하지만 비정한 놈들의 마음 속에도 측은지심이란 것이 있는 법이다. 측은지심이라고 하니 맹자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하도 오래전에 배워서 기억이 가물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제후가 물었다. (당시는 춘추전국시대로 전쟁과 살육으로 날이 새고 지던 시대였으니 사람 목숨도 뭐 그리 귀한 시절은 아니었다.) “어디에 쓰려고 소를 잡는가?”“흔종에 쓰기위해서 입니다. ” “불쌍해서 차마 못보겠다. 놓아주라.”“그러면, 흔종은 폐할까요?”“아니다. 소를 양으로 바꾸라.”했다는 이야기다.

 

흔종(釁鍾)이란 새로 종을 만들 때 희생을 잡아 그 피로 종에 바르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라고 네이버 사전에는 나와있는데, 소생이 예전에 배울 때는 주조한 종이 오래되어 갈라지고 틈이 생길 때 소의 피를 발라 고쳐 쓰는 것을 흔종이라고 배운 것 같다. 어쨌든 소를 양으로 바꾸나마나 어차피 죽는 것은 한가진데 무슨 의미가 있냐고 당시에도 아마 누군가 물었다.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으니 차마 보지 못하는 그 마음이 바로 인()의 시초라는 것이다. 이 마음을 잘 키우면 어진 사람(仁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자무적(仁者無敵)!!!

 

 

이런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다. 어느 겨울날 한 늙은이가 개울을 앞에 두고 건너가지 못해 달달 떨고 있는 것을 그 고을 수령이 보고 직접 업어서 건네줬다고 하여 그 수령이 어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맹자가 듣고 이는 소인의 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개울 앞에서 달달 떨고 있는 영감이 백 명이면 그 수령이 혼자서 영감 백 명을 모두 업어 나를 것인가? 라고 물으면서, 수령이면 사람을 부려 그 개울에 다리를 놓는 것이 군자의 인이라고 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도 생각난다.

 

맹자의 말씀대로라면, 소생도 뭐 어진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불쌍해서 차마 보지 못하고, 불쌍해서 차마 하지 못하는 그런 경우는 간혹 가다가 있다. 그런 마음을 잘 키운다면 소생도 소인의 인이든 군자의 인이든 하여튼 인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무적이 된다. 이거 너무 쉬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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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7-27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무지 재미있네요..... 이 사연을 바탕으로 역사소설을 써도 될 것 같습니다. 호호, 진짜 재미있는데용..

붉은돼지 2015-07-27 15:00   좋아요 0 | URL
곰발님~ 이 이야기 전에 텔레비젼에도 나왔던 것 같아요.. 얼핏 봤던 기억이 납니다. 인터넷에도 많이 올라와 있구요... 참 코끼리 팔자가 기구하고 박복하죠...생각하면 측은지심이 막 생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7 15:27   좋아요 0 | URL
진짜 재미있어서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이야, 처음 본 코끼리는 있는데 이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굉장히 상징적이잖아요. 우리가 흔히 낯선 타자를 괴물로 바라보려는 어떤 폭력성...
이 글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이 프랭켄슈타인입니다. 프랭켄슈타인의 괴물과 조선 코끼리는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조선실록 부분 좀 긁어가도 되겠습니까 ?

붉은돼지 2015-07-27 15:57   좋아요 0 | URL
실록 부분은 저도 인터넷에서 가져온 것이어서 저한테 뭐 말씀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귀양 간 코끼리˝ 등으로 검색해 보시면 비슷비슷한 내용들이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도 있구요....
저도 제가 참고한 내용을 다시 찾아봤는데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네요 쩝....

cyrus 2015-07-27 18:16   좋아요 1 | URL
곰발님 // 낮선 대상을 두려움의 존재로 오인하는 사례는 뒤러의 코뿔소 그림도 있습니다. 뒤러는 코뿔소를 철갑을 두른 동물로 그렸어요. 이 뒤러의 코뿔소 그림은 꽤 오랫동안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책읽는나무 2015-07-2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영국개와 코끼리 이야기 흥미롭게 읽고 갑니다!!
그시절의 낯선 것은 죄다 공포였겠죠?
귀양 간 코끼리의 표지그림이 좀 짠하게 보이네요

붉은돼지 2015-07-27 19:54   좋아요 0 | URL
박복한 코끼리님 ㅜㅜ

cyrus 2015-07-27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끼리 이야기를 아주 오래전에 <스펀지>에서 봤어요.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문제가 이랬던 것 같습니다. “조선 시대에 처음으로 귀양을 간 동물 OOO가 있다”

붉은돼지 2015-07-27 19:55   좋아요 0 | URL
EBS에도 나왔던 것 같아요^^

무스탕 2015-07-28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끼리가 우리나라에 들어온게 무척 오래전이군요.
일본은 그때부터 우리나라를 괴롭힌 듯... ㅎ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붉은돼지 2015-07-28 21:50   좋아요 0 | URL
일부러 우릴 괴롭히려고 그런건 아니겠죠^^ 코끼리만 불쌍해요ㅜㅜ

transient-guest 2015-07-30 0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 커다란 생각도 좋지만, 무엇이든 작은 한 걸음부터라고 생각하면 군자의 인과 소인의 인을 따질 수 없다고 봅니다.ㅎ

붉은돼지 2015-07-30 10:09   좋아요 0 | URL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무엇이든지 그 실마리를, 단초를 잘 간직해서 키워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영국 신문을 읽는데 광고란에 개가 목을 매달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읽어보니, 그건 애견가협회에서 보내는 메시지로 한국에서는 개를 먹는 습관이 있는데 이건 야만적 행위이니 저지합시다.’ 란 내용이었다. (중략) 내 기억에 의하면 백 년 전쯤에도 한국과 영국 사이에 개소동이 한 번 있었다. 그때 빅토리아 여왕(이었던 것 같다)이 우호의 뜻으로 조선의 왕에게 선물로 보낸 개를 조정에서 완전히 잘못 받아들여 요리해 먹어버리는 바람에, 당시 상당한 정치적 문제가 되었다. 재밌다고 하면 안 되겠지만 재밌다. (하략)” (p230-231, 편식에 대하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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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침대에 누워 위에 적힌 부분을 읽다가 아차차 생각났다. 작년엔가 읽었을 때에 역시 상기한 부분을 보다가 의문이 생겨 알아볼려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어쩌다 보니 그냥 넘어갔다. 영국 여왕이 선물로 보낸 개를 조선 조정에서 잡아 먹어버렸다는 이 황당한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 맞는지 모르겠다. 저 정도 이야기면 제법 인구에 회자되었을 터인데 소생은 처음 듣는 이야기다. 물론 소생 견문이 일천한 탓이겠지만 인터넷을 뒤져봐도 비슷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근현대사 매니아분 계시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외교적 선물로 짐승을 보낸 역사는 유구하다. 가축 자체가 재화였으니 뭐 당연한 이야기다. 과거에는 주로 소, , 낙타, 양 등 이동수단, 먹거리 등의 쓰임이 있는 짐승이 주가 되었고, 점차 근현대로 오면서는 완상용 동물이 대세인 느낌이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정주영은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었다. 어쨌든 중국은 오래전부터 이른바 팬더외교를 펼치고 있으며, 지난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풍산개 두 마리를 선물로 보냈고 김대중 대통령은 답례로 진돗개를 두 마리 보낸 사실도 있다.

 

우리나라에 외교 선물로 보내진 동물 중 이야기 거리가 있어 제법 알려진 놈으로는 낙타와 코끼리가 있다. 먼저 낙타의 경우를 살펴보면(코끼리 이야기는 나중에~), 서기 942년에 거란은 고려에 사신을 보내면서 낙타 50필을 선물로 바쳤는데, 거란을 금수의 나라로 여기는 고려에서는 사신들을 유배하고 낙타는 만부교 다리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이로써 고려와 거란의 외교관계는 단절되었다. 이른바 만부교 사건이다.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배웠다. 총명하신 분들은 기억날 것이다. 그때에 억울하게 굶어 죽은 낙타들의 원혼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메르스 사태에 어떠한 영향을 준 것은 아닌지...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만부교 사건은 고려조정의 정식 외교정책의 일환이었지만 구한말의 개소동은 얼토당토않은 오해로 인한 말하자면 일종의 소동인데, 그래도 일국의 왕 그것도 대영제국의 여왕이 선물로 보냈을 때는 나름 혈통있는 우수한 견종이었을 테고 잘 기르라고 보낸 것을 두들겨 패서(짐작하기에 만약 잡아 먹었다면 죽이기 전에 아마 두들겨 팼을 것이다.) 잡아먹었다는 것은 충분히 외교적 문제가 될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그게 사실이었다면 말이지만.......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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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7-27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 왕실견이라면 웰시코기일텐데 그 작은 개를 먹었을 것 같진 않은데요.. 코끼리 얘기는 알아요! 너무 많이 먹어서 감당도 안 되고 사건사고로 유배가지 않았었나요??

붉은돼지 2015-07-27 14:42   좋아요 0 | URL
인터넷에 보니 그 숏다리 개군요,,다리는 짧지만 똘똘하게 생긴...ㅎㅎㅎ
맞아요 사고쳐 귀양간 코끼리 이야기는 텔레비젼에도 나왔던 것 같아요

만병통치약 2015-07-27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는데 긴가민가하고 있습니다. 강준만의 근대사에 나오지 않는 것을 봐서는 그냥 야사 혹은 뜬 소문인듯합니다. 강준만씨가 모르는 사건은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ㅋㅋ (영국인 : 조선인들은 개를 먹는다면서? 여왕이 하사한 개도 먹을걸? 이렇게 시작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100년 전이면 개먹는 동양인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다문화를 겪고있던 영국입장에서는 말이죠. 유럽도 기근에 말고기와 개고기 고양이 고기를 먹었던 일이 그리 얼마되지 않은 시기였을 테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7 12:31   좋아요 0 | URL
그러면 강준만 님이 만병통치약인 셈이군요... ㅎㅎㅎㅎ

붉은돼지 2015-07-27 14:43   좋아요 0 | URL
저 정도 이야기면 인터넷에도 나오고 할텐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구요
아마도 만병통치약님 말씀대로 하루키가 뭔가 잘 못 알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윗듀 2015-07-27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타의 원혼과 메르스이야기...처음엔 빵터졌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럴듯해요!!!

붉은돼지 2015-07-27 20:06   좋아요 0 | URL
낙타가 무슨 죄가 있겠어요? ㅜㅜ

스윗듀 2015-07-28 10:36   좋아요 0 | URL
동물은 항상 죄가 없지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