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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1~6 세트 - 전6권
최규석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라고 하였던 신영복 선생 글귀가 떠오른다.
『나무야, 나무야』에서 바보 온달에 빗대어 얘기했던 그 글귀를 자기소개서에 오래도록 인용하곤 했다. 선생이 얘기한 우직함을 지닌 어리석은 자가 이 만화의 송곳같은 인간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 동아리 밴드에 선배가 올려둔 웹툰, "송곳" 1화에 "우와!" 하고 놀랐었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잊고 있던 웹툰이 생각나 책을 사서 읽었다. 동네에서 유명한 똥이라는 주인공 말에 내 얘기 하나 싶었다. 우리식구들 사이에서 비슷하게 여겨지는 나라서. 엄마가 늘 '자식들 다 키워봐도 너같은 애 없다' 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한다. 독립운동을 했던 것도 아니고 공장에 위장취업해서 노동운동을 한 것도 아닌 시시한 인생을 살면서 똥칠만 해대고 있다.
까르푸 파업이 한창일 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관심도 가지지 않고 치열한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그 사람들을 그저 먼 데서 바라보기만 했다. 시민들 관심과 참여가 절실했을 터인데. 취업, 백수, 재취업 다시 백수, 마음수련... 이런 시기였다. 내 밥벌이와 고민 말고는 아무것에도 눈 돌릴 여유가 없었지. 내가 현실에 눈을 감아도 누군가는 싸우고 피 흘리며 눈물을 철철 쏟고 있구나.
작가는 삶이 그대를 속이면 슬퍼하고 화를 내라고 말한다. 갑의 횡포에 발목 잡혀 동료를 팔고 제 몸 하나 살려보겠다고 발버둥치지만 시기만 조금 늦을 뿐, 결국 다 같이 구렁텅이에 빠지고 마는 을의 현실에 분노하라고. 외국기업의 철저한 자본주의 발상은 제국주의와 참 많이도 닮았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갑이 하는 짓은 어찌 그리 한결같은지 갑질교육이라는 걸 따로 받나보다.
갑이야 그런다 치고 정작 하나같아야 할 을들이 어떻게 어려움을 헤쳐나가는지. 무엇으로 자기 권리를 찾아나가는지가 햄릿이 했던 고민만큼이나 중차대한 문제이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지. 바닥까지 내몰렸을 때 바닥이 되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열 사람이 내딛는 한 걸음이 열 걸음, 백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올까. 한 발이라도 내딛을 수나 있는가. 꿈꾸는 것조차 두려운, 지금처럼 절망적인 시기에 좌절하지 않고 오롯이 오롯이 나와 다른 당신과 손잡고 함께 걸을 용기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