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의 해리엇 가스라이팅?

그녀의 다음 시작은 이랬다.
"한 가지 점에서는 어쩌면 엘튼 씨의 매너가 나이틀리 씨나 웨스턴 씨보다 나을지도 몰라. 더 정중하니까. 그러니 본보기로 내세우기는 더 무난할 거야. 웨스턴 씨는 솔직하고 급해서 거의 퉁명스럽기까지 한 면이 있는데, 선의로 가득 찼기 때문에 그분이 그러는 거야 다들 좋아하지만 본보기로 삼기는 곤란할 거야. 직설적이고 단정적이고 명령하는 식의 나이틀리 씨의 매너도 마찬가지고. 그분한테야 아주 잘 어울리지만 말이야. 그분의 용모나 표정이나 지위 때문에 그래도 괜찮게 보이는 것 같아. 그렇지만 젊은 사람이 그분 흉내를 내려 든다면 참아 주기가 힘들 거야. 그 반대로 엘튼 씨라면 얼마든지 젊은 사람한테 본보기로 추천해도 괜찮을 거야. 엘튼 씨는 성격 좋고 쾌활하고 친절하고 정중하잖아. 내가 보기에는 최근에 특히 정중해진 것 같아. 그것으로 우리 중 누구 한 사람의 마음을 사려는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보다 매너가 더 부드러워진 것은 알겠던데. 무슨 속셈이 있다면, 틀림없이 네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걸 거야. 저번 날 너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내가말해주지 않았던가?"
그러고 나서 그녀는 엘튼 씨에게서 이끌어 낸 몇몇 사적인 칭찬을 열렬히 되풀이했는데, 이번에는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다. 해리엇은 얼굴을 붉히고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는 엘튼 씨가 아주 호감 가는 분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 P51

그는 대단한 미남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의 외모에 대해서는 두루칭찬이 자자했는데, 다만 에마 자신은 이 칭찬에 끼지 않았으니 그녀에게는 필수적인 어떤 품격이 그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서 호두를 구하러 말을 타고 시골을 돌아다니는 로버트 마틴 같은 인물한테 만족할 수 있는 소녀라면 엘튼 씨의 찬미에는 마음을 빼앗기고도 남을 것이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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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수전 외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한애경.이봉지 옮김 / 시공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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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이 19살에 쓴 <레이디 수전>과 미완성작인 <왓슨 가족> <샌디턴> 수록. 뼛속까지 팜므파탈인 레이디 수전을 주인공으로 한 과감한 상상력, 약간의 어설픔과 과장이 이후 펼쳐진 오스틴 소설과는 다른 결의 풋풋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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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7-07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이디 수전 정말 재밌지 않나요? 나름 악녀가 주인공이라서 ㅎㅎ 이후 더 다듬어지고 대중친화적으로 변화한 것 같아요 ^^

햇살과함께 2024-07-08 09:46   좋아요 1 | URL
네~ 반전이 숨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끝까지 악녀일 줄은!
 

재구성적 해체
푸코

책머리에

‘재구성적 해체‘란 지식의 재생산에 작용하는 선택과 배제의 차원을 알아내고 그 규칙들을 분석함으로써 현상의 왜곡됨을 인지 가능 - P3

한 대상으로 만들어 이러한 왜곡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그것의 인식론적 근거를 파괴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 전반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기존 현상 너머를 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인식과 방법론은 여성 해방적 전망과 인류학 및 여성학적 방법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 P4

특히 여성 해방 운동은 우리를 억압해온 주체가 정체 분명한 ‘큰 폭군‘만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폭군‘들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밝혀내어왔다. 작은 폭군들은 일상 생활에서, 언어 생활에서, 감정적 생활에서 우리를 지배하며 제도화된 폭군 체제를 더욱 공고히하여가는데 주요 몫을 담당하여왔다. 그들은 남성이며, 때로는 여성이며, 나 - P5

자신으로, 좀체 보이지 않는 형태로 우리 곁에 수만 년 있어온 것이다. 남성과 여성에 관한 논의는 따라서 거대한 인류사의 흐름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주제이면서, 나 자신의 현재에서 시작되는 문제이다. - P6

1장 서론: 여성 해방, 사회과학, 그리고 한국 사회

두번째 여성 운동 역시 그 당시의 활발한 사회적 운동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1960년대에 전개되기 시작한 대중적 여성 해방 운동은 당시의 흑인 중심의 민권 운동 · 학생 운동 · 월남전 반대 운동. 신좌파 운동 및 반문화 운동 등과 함께 자라고 성숙해왔으며, 이들이 제기한 문제 의식은 보다 다양하고 근원적이다. - P19

뉴욕의 급진적 여성 해방주의자의 선언문을 보면 "우리는 자본주의나 다른 어떤 경제 체제가 여성 억압의 근원이라고 보지 않으며, 단순히 경제적 혁명으로 여성 억압이 사라지리라고 믿지 않는다"면서 "남성 우위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기본적인 지배의 형태이다. 모든 다른 종류의 착취와 억압은 이 남성 우위 체제의 단순한 확장일 뿐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들은 "사회주의 혁명은 여성을 위해 충분히 혁명적이지 않다" (Firestone, 1980)고 선언하면서, 여성들에게 자신의 감정적 지적 자원을 개인 남성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여성 해방을 위해 전적으로 사용하기를 촉구한다. 남성은 강간을 포함한 갖가지 직접적·간접적 폭력의 기제를 통하여 여성을 예속시켜왔으며(Brownmiller, 1975), 이러한 남성 지배를 타파하기 위해서 여성들은일차적으로 남성들로부터 완전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성만이 서로에게 새로운 자아 정체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레스비어니즘을 여성 자치를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삼을 것을 제시하였다
즉 가부장제의 타파는 남성 (남편이나 애인)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낭비하지 않으며, 한편 적극적인 여성 해방주의자를 파트너로 가진레스비언들이 특공부대가 되어 일으키는, 모든 남성에 대한 급진적인 정치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급진적 여성 해방주의자들은 그 급진성과 과격함으로 여성 운동권 내부와 외부에서 적잖은 저항과 반발을 샀으나, 한편 여성 운동이 순수한 여성의 시각에서여성의 체험을 근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매우 급진적인 사회 이론과 실천 체계를 구축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 P22

미니히는 「우리가 어떻게 여성 해방주의적 학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지구 중심론을 뒤엎은 코페르니쿠스와 인류중심설을 뒤엎은 다윈의 행위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남성 중심의 사고를 뒤엎고 있으며, 우리가 시도하는 변화는 그것들에 못지않게 근본적이고 [기존 체제에] 위태롭고 놀라운 것이다. (Minnich, 1982: 9) - P24

3) 따라서 남성 지배적 체제(가부장제)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 출산력을 갖지 못한 남성에 의해 출산력을 가진 여성이통제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출산에 대한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발달이 여성 해방을 가져오리라고 믿은 일부급진적 여성 해방주의자들의 직관이 비록 근시안적이었으나마 문제의 핵심을 다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여성의 출산자로서의 역할은 또한 여성의 노동자로서의 역할, 그리고 의미를 재구성하는 창조적인 행위 주체자로서의 역할과 여러 가지 형태로 얽혀져 있으며, 이에 근거하여 사회 전체의 구조가 장기간의 역사를 통해 확고히 세워져왔기 때문에 그들의 낙관적 전망과는 달리 성간의 불평등은 단순한 출산력의 문제로 해결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여성 해방의 열쇠는 각 시대에 따른 성 체계의 특수성을 사회 생활의 총체적 과정과연결시켜 파악해내지 않고는 찾아질 수 없다. - P27

이데올로기 차원의 분석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는 또한 푸코Foucault의 공헌이 주목된다. 푸코는 기존의 ‘국가 기구‘ 중심의또는 ‘지배 계급‘ 중심의 논의로부터 한 걸음 벗어나와 보다 포괄적이고 덜 제한적인 시각에서 인간 역사에 나타난 권력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가 다루는 대상은 거대한 기구나 사건이 아니라 이념과 상식이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방식이다. 푸코의 권력 논의의 핵심은 권력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과정 속에 있다는 데 있 - P36

다. 권력은 위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 아래에서부터 오는 것으로 모든 사회적 실천 속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제도적으로(건물 양식으로도) 구현되어 일상 생활을 주도. 규제 · 통제하여온 것이다(Foucault, 1975: 1977). - P37

여기서 우리는 세계의 헤게모니를 잡아온 서구 문화나 여성을 지배해온 남성 문화가 현재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제3세계의 문화, 그리고 여성 문화는그 정체성을 확립해가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이는 최근에 일고있는 이러한 논의, 즉 권력과의 연관 속에서 의미 · 상징 · 언어·담화 discourse의 측면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연구 경향과 결코무관하지 않다. 푸코M. Foucault, 부르디외P. Bourdieu, 하버마스JHabermas, 데리다J. Derrida, 더글라스 M. Douglas 등은 문화 분석을위한 탄탄한 토대를 깔아온 이들로서 그들의 연구는 우선 기존의 전제들 즉(1) 문화는 주관적 현상이며 개인이 내면화시켜 갖고 있는것이다: (2) 문화는 잘 통합된 하나의 패턴이다: (3) 문화는 사회 구 - P38

조의 종속 변수이다는 등의 통념을 깨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Wuthnow, et al., 1984; Bourdieu, 1979). 문화는 언어가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듯이 개인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그것은
"집단이 창조해낸 이해와 담화의 양식으로서, 인간들이 자신의 객관적 존재 조건을 해석하고 실현해가는 방법" (Moore, 1981)으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 P39

엄밀히 실천적 지식의 타당성은 세 차원, 즉 (1) 이론적 타당성의 차원: (2) 새로운 이해를 유도하는 차원 inducing enlightenment과 (3)실제적 전략 practical strategy을 다루는 차원에 근거한다(Habermas, 1974: 32~33). 이러한 여러 차원을 구분하지 않고 진행되어온 기존의 성급한 실천 논의는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첫째로 비판적이론 논의의 형성과 확장은 ‘진리‘에 관련된 것으로 어느 정도의 과학성을 확보해야 한다. 두번째 차원은 역사적 체험을 연결하는 과정으로서 진리에 관한 논의가 적용되고 실험되는 방식을 뜻한다. 이는곧 구체적인 집단내의 자아 성찰적 과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신뢰할 수 있는 통찰력이 중시된다. 세번째 차원은 적절한 전략의 선택이 문제되는 차원으로 기술적 문제, 구체적 투쟁의 방식과 조직화의 문제를 포함한다. 곧 정치적 적용성의 문제가 평가되는 영역이다.
전통적인 노동 운동 내지 계급 해방 운동에서는 이론적 논의가 주도적이었으며 이 세 차원의 과제가 모두 이론을 체득하고 재구성해 온 엘리트와 당 조직의 주도에 의해 이루어져온 편이다. 반면 여성해방 운동의 경우는 소규모의 조직이 먼저 형성되어 일상적 체험에 근거한 구체적 투쟁을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벌여왔으나 이론적 논의가 충분히 이를 정리해주지 못한 편이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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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7-07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구성적 해체.
라니 ㅠㅠ 또 용어가 어렵네요 ㅠㅠ 한국인이 쓴 한국책이라 쉬울 줄 알았는데 ㅠㅠ

햇살과함께 2024-07-08 09:44   좋아요 0 | URL
서문과 1장에서 한국 얘기 들어가기 전에 서구 여성해방 운동 개괄과 사회과학 분석방법론에 대해 설명하다 보니 좀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푸코. 페미니즘 책마다 언급되는 푸코. 언젠가 푸코도 읽어야 하네요. 2장부터 한국 얘기 본격 시작되면 나을 것 같습니다~
 

샌디턴

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헤이우드 양, 번스가 메리에게 쓴 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 정말이지, 대단한 비장미가 있죠! 감수성이라면 번스예요. 몽고메리에게는 시의 불꽃이 있고, 워즈워스에게는 시의 영혼이 있어요. 캠벨은 <희망의 기쁨>에서 감각의 극치를 보여주죠. 예를 들어 ‘천사의 방문처럼 드물고 드문드문‘ 같은 구절 말이에요. 이보다 더 저항할 수 없고, 마음을 녹이는 구절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정말이지 깊고 숭고하지요? 하지만 번스는, 헤이우드 양,
최고예요. 스콧의 단점이라면 열정이 없다는 거죠. 부드럽고, 우아하고, 묘사에 능하지만 힘이 약해요. 저는 여성의 매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사람을 경멸합니다. 물론 가끔씩 감정의 섬광이 번쩍할 때도 있죠. 예를 들어 아까 말한 ‘아! 편안한 나날의 여인이여∙∙∙∙∙∙‘ 같은 것 말이에요. 하지만 번스는 언제나 불같아요. 그의 영혼은 사랑스런 여인이 모셔진 제단이에요. 그의 가슴에는 그 여인에게 바치는 영원한 향불이 피워져있어요."
"번스의 시는 저도 여러 편 읽었고, 또 좋아해요." 말할 틈이 생기자 샬럿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는 시와 시인을 - P235

완전히 분리할 정도로 시적이지 못해요. 번스의 부정한 행실이 시 감상을 방해하죠. 시인이 느낀 사랑의 진실성을 믿기 어려우니까 시에서 표현된 사랑의 진정성도 믿지 못하겠어요. 그사람은 사랑을 느끼고, 시로 표현하고, 그러고는 잊어버렸죠."
"아! 아니, 아니죠." 에드워드 경은 무아지경에 빠진 듯 소리쳤다. "그 사람은 열정과 진실로 충만해요! 워낙 천재인 데다 감수성이 뛰어나다 보니 실수도 했죠.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있나요? 그렇게 고결한 천재에게 일반인의 비굴함을 기대하는 것은 과도한 비난이고 가짜 철학이에요. 남자의 가슴속에 들끓는 열정에서 솟아난 재능의 광휘는 산문적 삶이 요구하는 예절에 부합하지 않을지 몰라요. 가없는 열정의 지고한 충동에서 터져 나온 남자의 말과 시, 그리고 그의 행위는, 사랑스러운 헤이우드 양 당신은, 아니, 이 세상 어느 여성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을 겁니다."
그의 말은 매우 유려했다. 하지만 샬럿의 생각으로는 별로 도덕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에 대한 이상한 찬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진중하게 대답했다. "저는 그런 건 잘 몰라요. 정말 날씨가 좋네요. 남풍이 부는 것 같아요."
"헤이우드 양의 관심을 끌다니, 참 행복한 바람이네요."
그녀는 그가 정말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자신과 함께 걸은 이유도 알게 되었다. 브레러턴 양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두 번의 초조한 듯한 그의 곁눈질에서 샬럿은 그것을 읽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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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가 복수형이라고요? 묻지 말라지만 묻고 싶네. 왜요??
셀 수 있는 명사와 셀 수 없는 명사 구분, 그 명사에 대한 ‘느낌’을 가져야 한다고?
어디 그뿐이랴, 명사의 복수형 규칙 불규칙도 ‘느낌’을 가져야겠지.

2장 명사
명사는 언어의 마술 주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류만은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를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셀 수 있는 명사와 셀 수 없는 명사의 구분이다.
어떤 명사들은 셀 수 있다.
one hat, two dogs, three days, four friends...
셀 수 있는 명사는 하나 이상을 말할 때는 복수형을 취한다(하나 이하도 마찬가지다. zero는 영어에서 복수형을 취한다. 왜 그런지 나에게 묻지 말기를!). 어떤 명사들은 셀 수 없다.
air, fire, love... - P59

위의 연습문제로 보건대, 모든 사물을 다 셀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셀 수없는 명사‘가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 둘, 셋・・・ 하고 셀수 있을까?‘라고 생각한 후에 셀 수 있는 명사와 셀 수 없는 명사를 구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명사에 대한 ‘느낌‘을 가져야 한다. 셀수 있는 명사를 알아내기는 쉬울 테니까 셀 수 없는 명사를 알아내는 방법을 살펴보자. 셀 수 없는 명사에는 세 가지가 있다. 바로 질량명사, 집합명사, 추상명사가 그것이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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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4-07-06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zero‘가 복수형이라고 하나요?

‘zero‘는 뒤에 뭐가 오는지에 따라 단수/복수로 되는 것 같은데요..

“After the fire, I had zero chickens left”

“While baking a cake, I spilled zero flour.”

출처
https://www.reddit.com/r/EnglishLearning/comments/194s644/is_it_zero_plural_noun_or_zero_singular_noun_like/?rdt=65088

[Zero, as in the non-number represented by the digits ‘0‘ is the correct way to refer to the number and noun as a singular. Zeros/zeroes are plural.]
출처
https://www.grammarflex.com/whats-the-plural-of-zero/#google_vignette

햇살과함께 2024-07-07 16:24   좋아요 0 | URL
아 여기서는 셀 수 있는 명사 앞에 붙는 zero에 대한 설명이라 젤소민아님의 첫번째 예문에 대한 설명입니다. zero chicken이 아니라 zero chickens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