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글에 나온 변진경 기자에 대한 감사 부분을 읽고 이 책이 시사인(과 한겨레21)에 연재된 글임을 알았다.
시사인 구독자여, 그동안 한번도 안 읽었나, 기억을 못하나??

11. 선의만으로 사람을 살릴 수 없을 때

파격적인 소득 보장 정책을 도입하려면 먼저 우리 실정에맞게 각론을 세심하게 설계하고, 핀란드가 했던 것처럼 사회실험을 통해 그 효과를 증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국민 앞에 내놓고 판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정책은 의료 시술처럼 이루어져야 합니다. 엄밀한 연구로정확하게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의사가질병을 정밀하게 진단하고 의학적 근거에 따라 처방 및 치료하는 과정 같은 정책이 사람을 살리는 진짜 정책입니다. - P161

12. 안심 소득 혹은 기본 소득이라는 대안

학자로서 저는 같은 재원으로 불평등 개선 효과(부의 재분배 효과)가 월등한 안심 소득을 지지하는 쪽입니다. 기본 소득은 강력한 누진세제를 도입하는 데 따른 국민의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고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 소득은 낮은 불평등 개선 효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당분간 도입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의 오명을 쓰고 있습니다. 빈곤 상황이 이만큼 위중하기 때문에 어려운 분들을 우선 집중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심 소득과 기본 소득은 모두 실제 현장에서 연구 중입니다. 2023년 7월 처음 지급하기 시작한 안심 소득은 우리나라최초의 사회 실험입니다. 서울시의 지원 가구 중에 무작위로1,300가구를 뽑아 안심 소득을 지원하고, 2,600가구는 기존 방식의 사회복지 혜택을 받게 됩니다. 향후 5년간 시범 사업을지속하면서 그 효과를 연구할 예정입니다. - P172

14. 의사에게도 봉사 정신보다 인생의 성취가 우선이다

즉, 의사들이 스스로 의료 취약 지역에 갈 수 있도록 다양한 인센티브를 도입하고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금전적 인센티브는 기본입니다. 가령, 지방 의료 기관에 가산 수가를 주어 더 많이 보상하는 것이죠. 하지만 단순히 임금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에 더해 이런 의사들이 보람을 찾고, 사회에서 존경받을수 있도록 돕는 비금전적 인센티브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의료 취약 지역에서 자기 인생의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의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좋은 정책은 인간 본연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이용하면서 공공선을 창출해낸다는걸 명심해야 합니다.
2020년 의사들이 파업을 했던 것은 단순히 의사 정원 확대에 반대해서만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장기간 개선되지 않은의료계의 산적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의 흉부외과 교수 김준완이 40세가 넘어서도 집에 잘 가지 못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현실입니다. - P194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이 1990년 그의책 《1천만 명도 넘는 여성이 실종되었다More Than 100 Million Women Are Missing》에서 처음 언급한 ‘실종 여성 missing women‘은 실존했어야 할 여아의 예측치와 실제 여아 수의 차이를 말합니다.‘ <17-1>은 지난 수십 년간 실종된 여성의 수인데, 이런 끔찍한 일은 대부분 남아 선호가 뚜렷한 중국과 인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났습니다.
여아가 사라지는 방법은 2가지입니다. 초음파로 태아의 성별을 감별한 후 낙태를 선택하거나(성별 선택 낙태), 태어난 여아를 죽이는 것(산후 성별 선택)입니다. 여기서는 후자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영·유아 살해‘라고 부르겠습니다. 둘 다 죽음의 현장을 쉽게 포착할 수 없으니 그 수는 추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 P225

17. 우아한 정책이 양성평등을 앞당긴다

가령 여아보다 남아에게 사교육비를 10% 정도 더 씁니다. 남아의 엄마는 여아의 엄마보다 노동시간을 더 줄여가며 아이를 돌봅니다. 집안일도 여아가 더 많이 합니다.
부모의 이런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같은 돈과시간을 투자해도 남아가 누리는 미래 소득이 여아보다 크기때문이죠. 그래도 희망적이게 출생 이후 차별은 크게 줄고 있는 추세입니다.
우리나라는 성별 임금 격차가 31.5%로 OECD 회원국 중독보적인 1위입니다(<17-4> 참조). 이는 동종 업계에서 같은일을 하며 생기는 차별이 아닙니다. 남녀의 직업(직군)과 직위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성은 임금이 더 많은 의학과나이공계로 진학할 확률이 남성보다 낮습니다.
다행히 직군 차이는 지난 20년 동안 많이 개선됐습니다. 이제 행정고시, 외무고시, 변호사 시험 합격자의 남녀 비율은거의 비슷합니다. 여성 의사 비율도 20년 전에는 약 15%였는데, 현재는 의대 입학생의 30%가 여성입니다. 이공계 여학생의 비율도 30%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 P231

양성평등으로 가는 또 하나의 축은 사회 시스템을 ‘가정‘ 친화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저명한 경제학자 클로디아 골딘Claudia Goldin은 많은 정규직 일자리가파트타임이라면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율출퇴근제도는 가정 친화적인 변화이지요. 또 ‘여성‘에게만 초점을 둔 정책보다 ‘가정‘에 초점을 둔 정책이 좋습니다. 가령 여성의 경력단절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 도입보다는, 출산 · 질병 등 다양한 어려움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는 일이 적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오랜 세월 태어나면서부터 차별을받았습니다. 차별의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여성에 대한 추가적 배려가 필요합니다. 배려하는 방법이 우아하면 남성들도 쉽게 수긍할 것입니다. 더 이상 추가적 배려가 필요 없는 세상도 빨리 오겠지요. - P2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