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8장
밀크맨이 조심스럽게 정식화한 내용은 평등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향임을 함축하지만, 그녀는 또한 차이를 전적으로 거부하고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만, 그것이 어느 쪽인지가 문제다. 밀크맨의 양가적 태도는 법이론가인 마사미노우가 다른 맥락에서 "차이의 딜레마"라고 부른 것의 일례다. 종속 집단에 관해 이야기할 때 차이를 무시한다면 "잘못된 중립성을 방치하게"되며, 차이에 집중하면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강조하게 될 수 있다고 미노우는 지적한다. "차이에 집중하는 것이나 무시하는 것 모두 차이를 재창조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차이의 딜레마다."" 미노우에 따르면, 평등과 차이가 서로 대립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등 차이에 대해 새로운방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이분법적 한 쌍이 영원불변의 진리인 - P292
것처럼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는 대신, 우리는 평등과 차이가 양분된 한 쌍이 되는 일 그 자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기존 정치적 담론의 용어들을 유지하는 대신, 그 용어들을 비판적 검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개념들이 특정 의미들을 제한하고 구성하는 방식을 이해한 후에야 우리는 그 개념들을 활용할 수 있다. - P293
이에 따르면, 차이는 실제적이고 근본적이기때문에 시어즈의 고용에서 나타난 통계적 격차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별은 (그것이 아무리 역사적·문화적으로 생산된 것이라 할지라도) 단순히 "자연적인" 차이를 인정한 것으로 재정의되었다. 이는 레이건의 보수주의 논리와 잘 어울렸다. 불평등을 대신해 차이가 평등의 반대말이 되면서 차이는 불평등을 설명하고 정당화했다. 이 판결은 문학 연구자 나오미쇼어가 다른 맥락에서 설명한 "차이를 본질화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자연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 P298
평등과 차이가 이분법적으로 대립할 경우 선택은 불가능해진다. 평등을 선택하면, 차이가 그것에 대립된다는 관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차이를 선택하면, 평등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바로 이 장의 시작 부분에 인용된 루스 밀크맨이 말한 딜레마다. 페미니스트들은 "차이"를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차이"는 우리가고안해 낸 가장 창의적인 분석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등도 포기할수 없다. 적어도 우리가 민주적인 정치 체계의 원칙과 가치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한은 말이다. 그런데 페미니즘 운동이 페미니스트들에게 기존 범주들 안에서만 주장을 펼치도록 제한한다거나, 페미니즘의 정치적 논쟁을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닌 이분법으로 특징짓는다는 것은 말도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차의 개념을 인정하고 그것을 활용하면서도 평등을 주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답은 이중적이다. 즉, 평등을 차이의 대립항으로 제시함으로써 구축된 권력관계의 정체를 드러내고, 또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정치적 선택의 이분법적 구조를 거부하는 것이다. 평등론 대 차이론은 페미니즘 정치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그런 대립은 두 용어 사이의 관계를 잘못 재현하고 있다. 평등이란, 권리의 정치이론- 배제된 집단들이 정의를 요구하는 근거의 맥락에서 보면 특정목적을 위해 혹은 특정 맥락에서 개인들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 P299
만약 개인들이나 집단들이 단일하거나 서로 똑같다면 평등을 요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평등을 특정한 차이에 대한 의도적 무관심으로 정의해도 좋을 것이다. - P300
그래서 평등과 차이를 대립적인 관계로 보는 것에는 이중의 효과가있다. 그것은 평등이라는 정치적 개념과 차이가 오랫동안 관련을 맺어 왔음을 부인하며, 동일성만이 평등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토대라고 암시한다. 이는 페미니스트들을 대단히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한다. 이 같은대립을 통해 구축된 담론적 조건에서 논쟁하는 한, 우리는 여성이 모든 면에서 남성과 같아질 수 없으므로 남성과 동등해지는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현재의 보수적 전제를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유일한대안은 평등을 차이와 대립시키기를 거부하고 계속 차이를 주장하는 것이다. 개인과 집단 정체성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차이, 그런 정체성들을고정하려는 시도에 대한 지속적인 도전으로서의 차이, 차이의 작동을 반복된 예시를 통해 보여주는 작업으로서의 역사, 평등 그 자체를 의미하는차이를 주장하자는 것이다. - P303
페미니즘의 역사와 정치 전략은 차이의 작동 방식에 주목하면서도차이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분법적 차이를 다분법적 차이들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기댈 곳이 모두에게 좋은 다원주의는 아니기 때문이다. "차이의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을 규범적으로 구성된 그대로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포용하는 데서 찾을 수는 없다. 대신 비판적 페미니즘 관점은 항상 두 가지 행동을 포함해야 한다. 첫째는, 범주를통해 설정된 차이들의 작동에 대한 체계적 비판, 그것이 만들어 내는 배제와포함의 유형들 - 그 위계의 폭로, 그리고 그 궁극적인 "진실성"에대한 거부이다. 그렇지만 이런 거부가 동일성 혹은 유사성을 내포하는 평등이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것이 두 번째 움직임인데) 차이들에 근거한 평등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여기서 차이들이라는 것은 모든 고정된 이분법적 대립항의 의미를 혼란스럽게 하고, 방해하고, 모호하게 만드는 것들을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동일성이 평등의 필수 조건이라는 정치적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는데, 권력은 차이를 토대로 구축되며 따라서 권력에 대한 도전도 그 차이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페미니스트들(그리고 역사가들)이라면 이를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 P306
9장
내가 보기에 평등과 차이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사고의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대개의 경우 당연시하는 범주들 - 역사, 여성, 남성, 평등, 차이와 같은 정치 이론의 용어들 그 자체 - 을 비판적으로분석해야 한다. 이 용어들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할 것이 아니라 - P338
그것들이 발생하고 사용된 특정 역사적 맥락을 살펴봐야 하며, 문화적·정치적·시간적 산물로서 이 용어들을 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단일한 이야기로서의 역사라는 것이 보편적 주체에 대한 허구이며 그 보편성은 암묵적차별, 주변화, 배제의 과정을 통해 획득되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성을 역사에 포함할 수 없다. 바꿔 말하자면, 남성man은 한 번도진정으로 보편적 형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남성의 보편타당성을 확립한것은 차이화를 통해 이루어진 배제의 과정들이었다. 이전과 다른, 더 비판적인 역사학을 위해서는 우선 남성의 보편타당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 과정의 한 측면은 "남성과 대립되는 특징, 특성, 역할을 부과함으로써 "여성"을 정의해 온 것과 연관돼 있다. 수많은 여성사에서 역사가들이기록해 온 그 차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 생산된 것이지 여성의 성에 내재하는 어떤 본질적 속성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여성의 경험" 또는 "여성 문화"는 오로지 남성적 보편성과 대비되는 여성의 독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서만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회적 삶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개념들이다. 차이화 과정의 다른 한 측면은 평등과 차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조정하는 것과 연관된다. 평등이 절대적으로실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평등은 특정 차이에 대한 배제가 특정 맥락에서 특정 목적을 위해 유예된 것이라고 보는게 차라리 맞다. 역사적으로 시기에 따라 어떤 차이는 다른 차이보다 더 문제가 되었다. - P339
10장
적극적 차별 수정 정책은 추상적 개인과 개인의 보편성이라는 허구를 전제로 삼았다. 그것은 법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격차, 개인의권리와 그들이 어떤 집단에 소속돼 있다고 추정됨으로써 주어지는 한계사이의 격차를 메우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배제의 문제를 끝내기 위해 포용은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는데, 이는 참으로까다로운 과제였다. "적극적"affirmative이라는 단어는 문제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을 의미했다. 즉, 개인을 인정하기 위해서 스스로 집단의 구 - P361
성원으로 정체화해야 했고, 차별을 뒤엎기 위해서 (다른-긍정적인 목적을 품고) 차별을 실행해야만 했다. 연방정부가 적극적 차별 수정 정책을 확립하는 과정에 일어났던 언쟁은 이런 차별적 관행을 뒤엎는 개념적 틀을세우는 일이 상당히 어려웠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 P362
옮긴이 후기
이 책은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지식 체계와 권력의 관계를 파헤치며 얽힌 의미를 풀어내는 스콧의 작업은 기존에 통용되는 ‘이해‘의 방식에 끊임없이 개입해 들어온다. 깊이 파고들어 세심히 읽어 내는 과정에서다양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를 해결 불가능한 모순과 모호함, 불안정과 불안으로 이끌 것이며, 그 통찰 자체가 변화의 가능성과 그 시작을 보여 줄 것이라고 스콧은 말한다. 명료하게 해결할 수 없는 질문들과 그 질문이 만들어 내는 변화의 가능성을 믿기에 스콧은 역사정치 등 기존의 지식 체계에, 그리고 페미니즘에 지속적인 ‘질문‘을 던진다. 책을 읽는 동안 쉽게 해답을 찾지 못하고 계속 질문이 떠오른다면, 그야말로 대성공이다.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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