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정희
정의길 <이슬람 전사의 탄생>
이다울 <천장의 무늬>

이사무애 사사무애(理事無碍 事事無碍 : 이상에도 걸림이 없고 현실에도 걸림이 없도록 살자)

2부. 글도 잘 쓰고 일도 잘 하는, 입맛 좋은 소녀들
올해는 고정희 시인의 30주기다. 입맛 좋은 소녀들과 나를 연결해준 시인. 겨우 마흔까지 살면서 열 권의 시집을 낸시인, 여성주의 시인의 전범 같은 시인, 나이 들수록 래디컬해진 시인. 그녀의 시를 읽으며 자란 입맛 좋은 소녀들도 대부분 삼십대가 되었다.
글을 잘 쓰려면 밥도 잘하고 설거지도 잘하고 청소도 잘해야 한다는 내 말 따위는 잊어버렸거나 헛소리라는 것쯤 알아버렸을 것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글방의 기원에는 입맛좋은 소녀들이, 아, 그 총명하고 섬세하고 솔직하던, 그렇지만한밤중에 맨발로 집을 뛰쳐나와야 했던, 고립무원의 절벽에섰던, 견고한 벽을 향해 미친 듯 질주하던, 때로 으스러지고부스러지던 나의 그녀들이 있다. 시도이자 예감이자 미래인. - P83

그날 이후 밥 먹고 가자는 말을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큐가 깨트린 건 자본의 질서와 나이의 위계였다. 나도 N분의 1을 내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러므로 밥 자리를 빌려 가르치려거나 생색을 내거나권위를 내세우는 일 따위를 해서는 안 된다. 옳은 개소리도줄여야 한다. 큐는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 하나를 와장창깨부숴주었다. 큐가 만든 이 규칙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나는 여전히 어색하고 무안하지만 그것을 따른다. - P103

나중에야 들었다. 훈훈뿐 아니라 대부분의 글방러들은 대체로 글방이 끝나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고. 일단 분노. 뭐야 글을 제대로 이해도 못 하면서 개뿔 무슨 저는 나보다잘 쓰나 어디 두고 보자. 다음으론 좌절. 아무래도 재능이 없나 봐 백날 쓰면 뭐 하냐 맨날 거지 같은 소리만 듣는데, 다음은 질투. 왜 쟤 글은 재밌지? 나보다 책을 많이 읽는 거 같지도 않고 나보다 노력하는 거 같지도 않은데. 다음으론 오기. 담주엔 보여주겠어, 칼을 가는 거다. 이런 마음의 요동과파고를 경험하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모두들. 눈물로 베갯잇을 적셨다는 고전적인 멘트를 들은 적도 있다. 수련의 과정은 녹록지 않다, 어느 분야든. 제 발로 글방에 오는 이들은 어쨌거나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다. 재능이 작품으로 이어지는 건 오오랜 연마와 수련의 시간을 뼈아프게 보내고 난이후에야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나는 종종 일주일에 한 편씩 한 번도 빠지지않고 3년, 이라고 답하곤 한다. 그곳이 도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는다. 피아노든 무술이든 그 - P106

림이든 춤이든, 가는 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아프거나 바쁘거나, 스승과 사형詞兄들이 있는 곳으로. - P107

젊디젊은 울리가, 푸르디푸른 울리가 아프다고 했을 때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아파본 이력을 바탕으로 한마디씩 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마음의 문제야의지의 문제야. 울리가 이토록 길게 이토록 격렬하게 아플줄 누구도 몰랐다. 그리고 ‘아픈 사람‘ 울리가 이토록 견고하고 치밀한 글을 써낼 줄은 더더욱 몰랐다. 통증이 일상인 사람이 왜 이토록 맹렬히 글을 썼을까?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울리가 쓴 글을 모아 자신의 이름 이다울로「천장의 무늬』라는 책을 내게 되었을 때 나는 이렇게 추천사를 썼다. - P120

하지만 글방의 독자들과 어딘은 인용의 천재는 그럼 이만, 하고 사라지려는 나의 뒷목을 잡아챘다. ‘인용의 천재‘라는 피드백 뒤에는 ‘자신을 속이는 글쓰기‘라는 혹평이 자주 따라붙었다. 나는 매끈한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 정제된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 나를 어지럽게 하는 현실과 아직도 헷갈리는 내 생각을 건너뛰고 삭제했다. 그리고 내 글 속에 표현된 ‘훌륭한‘ 생각이 진짜 내 생각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글을 거울을 들여다보듯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보면 자존 - P164

감 비슷한 것이 고양되는 효과도 있었다. 거울의 군데군데가 깨지고 이가 빠져 있는 것은 모르는 체했다. 글쓰기는 자칫 왜곡된 자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위험한 구석이 있었다. - P1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들어가며. 우리는 모두 쓰는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의 글을 잘 볼 수 있을 때 내 글도 잘 보인다는 말을 믿읍시다. 사실 합평은 다른 사람한테 하는 말이면서 곧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는 걸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우리 모두 쓰는 사람이니까요. 그러니 아픈 말이 나오더라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다음 글 쓸 때 반영하는 걸로 합시다. 제가 글방에 오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 P7

글쓰기는 매주 향상되지 않는다. 지지부진 지리멸렬의답보 상태가 몇 달 혹은 해를 넘기기도 한다. 매주 이토록 충실히 써 오는데 매주 이토록 쓰라린 이야기만 해야 하다니, 쓰는 이에게도 읽는 이에게도 고역이다. 어이하나 그렇다고 재미없는 글을 재미있다고 할 수는 없는 법. 글방의 유일한규칙이라면 글에 관한 한 정직할 것, 그러니 읽은 느낌 그대로 말을 하는 수밖에. 진척 없는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 어느날 ‘점핑‘의 순간이 온다. 지난주까지와는 질적으로 완전히달라진 글이 그야말로 짜잔 하고 나타난다. 재밌는 건 글쓴이는 그 사실을 모른다는 거다. 지난주도 지지난 주도 지지지난 주도 본인은 최선을 다해 썼기 때문에, 한번 점핑한 글 - P13

은 예전의 글로 돌아가지 않는다. 점핑한 그곳에서 주옥같은 글 몇 편을 쓰고 다시 지지부진 지리멸렬의 시간을 보낸다. 다시 점핑, 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 P14

어디까지 쓸 것인가? 알고 보면 글쓰기는 용기와 관련된 행위다. 눈부신 한 편의 글 안에 전투의 상흔이 이곳저곳깊게 배어 있는 까닭이다. 견고한 질서 완고한 관습 치밀한통제를 부수고 깨뜨리고 균열을 내는 것, 글쓰기란 그런 것이므로 우리는 종종 뚝뚝 떨어지는 서로의 피를 지혈하고 깊게 베인 상처를 싸매주고 뜯겨나간 옷자락을 수선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종종 기억과 기록은 동일하지 않으며 문자 안에다 담기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말로도 글로도 복구되어지지 않는 상처, 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인지하게 되었다. 쓰는 일이란 그러므로 공적인 기억의바깥을 떠도는 배제된 혹은 은폐된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일수도, 문자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무덤에서 부장품을 발굴하는 일일 수도, 표현되어지지 않는 것의표정을 더듬는 일일 수도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게 되었다. 끝내 남는 것은 부드럽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 이라는 게 다만 놀라울 뿐. - P15

1부. 글방이 활활발발해지는 순간
내가 쓰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글이린 이야기가 나를 이용해 생을 획득하고 이어가고 확장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작가의 몸이란 어쩌면 이야기를 전하는 경로가 아닐까. 그 길에 꽃 피고 새 울고은성한 그늘 드리우라고 모질고 냉정하게 담금질하는 거 아닐까. 작가의 재능이란 그러므로 행운이면서 동시에 고난일 수밖에.
글방에 오는 이들에게 나는 종종 우아한 독자로 남으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한다. 하지만 우아한 독자로 남고 싶은사람은 결코 글방에 오지 않는다. 재능의 발견이 곧 고초로 이어지는 운명에 이끌린, 자기 의지를 뛰어넘는 ‘이야기의 선택‘을 받은, 해사하고 맑은 눈망울들이 글방 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아직 세상에 없는 이야기가 눈을 빛내며 기지개를 켠다. - P37

글이 주는 위안이란 서로 다른 여러 세계가 교차하고 충돌하고 비껴가고 엇갈리며 만들어내는 우주에 자신이 속해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누추하고 남루할 줄 알았던 내 존재가 맙소사, 다른 수많은 별들과 함께 반짝반짝 빛나고 있구나, 목격할 때다. 내 후회가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내 절망이 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되고 내 뜨거운 눈물에 춥고 쓸쓸한누군가가 밥을 말아 먹는다는 걸 아는 것, 글이 주는 위안일 것이다. - P46

글을 쓰는 일은 재능보다, 성실함보다, ‘용기’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종종 글방러들에게 말하곤 했다. ‘어디까지 쓸것인가‘는 ‘내 마음의 우물을 어디까지 들여다볼 것인가‘라는 말로 바꿔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차곡차곡 입력된 관습과 지식과 정치와 경제와 윤리의 체계를의심하고 살짝 깨물어 부수어보기도 하고 와장창창 깨트려버리기도 하고 심지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가 작가라고, 나는 스스로 두려워하면서, 말하곤 했다. 16세기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목숨을 내어놓는 일이었다. 21세기, 지금 목숨을 내어놓고 말해야 하는 건 무엇인가? 혹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주류의 시스템이 이를부인하고 두려워하고 때로 작가를 위협하는가? 이야기의 핵심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위반의 대가를 치를 용기, 그것을함께 기르자고 글방 같은 걸 계속하는 거라고 예나 지금이나 나는 생각한다. - P52

"토지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서희가 두 아들에게 아버지의 성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물려주는 거야. 최서희의아들 최환국, 최윤국. 요즘으로 치자면 래디컬페미니스트인 셈이지. 급진적이기 이를 데 없지만 사실 토지를 이야기할 때 이 부분을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박경리 작가를 여성주의 작가라고 말하는 평론가들도 거의 없지. 사실『토지』에는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같아. 6백 명의 등장인물 중에 절반은 여성이니 그 캐릭터의 다양성과 혼종이 얼마나 잘 드러나겠어. 여성의 연대와 우정도 곳곳에서 일어나, 서희의 할머니인 윤씨 부인과 간난할멈의 경우는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이지. 윤씨 부인이 동학도김개주의 아이를 임신했을 때 비밀리에 아이를 낳는 것을 돕고 끝까지 그 비밀을 지키는 사람이 간난할멈이거든." - P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밍웨이의 말 - 은둔 시절의 마지막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권진아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인터뷰 싫어하는 헤밍웨이. 4건의 인터뷰 중 제대로 된 인터뷰는 한 건 뿐이고, 나머지 3건 중 2건은 사전 약속없이 무작정 들이대기. 글쓰기에 대해서는 말로 설명하면 다 사라져 버린다고, 홀로 고독하게 써야만 한다고,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는 헤밍웨이. 서서 글쓰는, 때론 까칠하고 때론 다정한, 노년의 헤밍웨이를 만날 수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3-10-03 19: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헤밍웨이 인터뷰 진짜 싫어하지 않던가요? ㅋㅋㅋㅋ 진짜 무성의한 답변이 기억에 남습니다.

햇살과함께 2023-10-03 19:29   좋아요 2 | URL
ㅋㅋㅋ 그러니까요. 인터뷰는 싫지만 술 한잔 하고 가라고 술 권하는 다정함은 좋았어요! 그런 말년의 헤밍웨이 보는 재미 ㅋㅋㅋ

얄라알라 2023-10-04 0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7년 초판인데 절판이네요. 이 시리즈 중 절판된 책들이 몇 있는 걸로 보아서 인기가 많은 가봐요.

헤밍웨이가 술 권하면 무서울 것 같기도 한데요. ㅎ 왠지 주당일 것 같은 느낌에^^ ㅎ

햇살과함께 2023-10-04 15:02   좋아요 1 | URL
술 안먹는 인터뷰어 싫어함 ㅋㅋ
헤밍웨이 알코올 중독이지 않았을까요??
 

헤밍웨이는 서서 글을 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내 가지고 있는 작업 습관이다. 그는 치수에 맞지 않는 커다란 로퍼를 신은 채 가슴 높이에 놓인 타자기와 독서대를 마주하고 낡은 레서쿠두(소목 솟과의 동물. 쿠두보다 작은 동아프리카산 영양)가죽 위에 선다.
새 작품을 시작할 때 헤밍웨이는 늘 독서대에 반투명한 타자 용지를 올려놓고 연필로 글을 쓴다. 그는 타자기 왼쪽클립보드에 새 종이 한 다발을 끼워두고 금속 클립 아래서 종이를 한 번에 한 장씩 뽑아 쓰는데, 그 클립에는 "꼭 값을 치러야 함"이라고 쓰여 있다. 그는 독서대 위에 종이를 비스듬하게 놓고 왼팔로 기대어 손으로 종이를 누른 채 손 글씨로 종이를 채운다. 해가 갈수록 글씨는 점점 더 커지고, 더 아이 같아지고, 구두점이 줄어들고, 대문자는 거의 없고, 마침표는 종종 X로 표시된다. 종이가 다 차면, 타자기 오른쪽에 둔 또 하나의 클립보드에 글씨 쓴 면을 아래로 해서끼워둔다.
헤밍웨이가 독서대를 치우고 타자기를 쓰기 시작하는 건 오로지 글이 빨리 잘 써지거나 아니면 글이,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는, 단순해질 때다. 예를 들어 대화 부분. - P23

헤밍웨이는 이런 식의 미신을 인정은 하는지 몰라도 이야기는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게 무슨 가치를 가지고있든, 이야기를 하면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태도도 거의 비슷하다. 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그는 몇 번이나 글쓰기라는 공예는 지나치게 자세히 살펴보면서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글에 단단한곳이 있어서 거기에 대해선 말해도 해될 것 없다 해도, 다른 부분은 연약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면 그 구조가 무너져 내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돼요."
그 결과 헤밍웨이는 굉장한 이야기꾼에다 풍부한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고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어마어마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려워한다. 그 문제에 대해 의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은 표현하지 않는 게 낫다고 강력하게 믿고있으며 그런 질문을 받으면 거의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가 잘 쓰는 표현을 쓰자면) "겁을 먹기 때문이다. 이인터뷰에 실린 많은 답변을 그는 독서대 위에서 글로 쓰길원했다. 간간히 나타나는 비꼬는 어조 또한 글쓰기는 작업이 끝날 때까지는 목격자가 필요 없는 사적이고 고독한 업무라는 그의 강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 P27

헤밍웨이 내겐 그런 악몽들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가진 악몽들도 압니다. 하지만 그걸 글로 쓸 필요는 없죠. 알면서 생략할 수있는 것들은 모두 여전히 글 속에 남아 있고, 그건 글에 드러날 겁니다. 하지만 몰라서 생략하면 글에 구멍이 생기죠.

플림프턴 그 말은, 선생님 목록에 있는 사람들 작품에 대해 잘 알면좀 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우물"을 채우는 데 도움이된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그 작품들이 글쓰기 기술 개발에의식적으로 도움이 되었습니까?

헤밍웨이 그 작품들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고, 느끼지 않고, 쓰는 걸 배우는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우물은 ‘신명‘이 있는 곳이죠. 그게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특히 자기 자신은요. 아는 건 그게 자기에게 있는지 아니면 그게 돌아오길 기다려야 하는지죠. - P45

헤밍웨이 그건 경험에 따라 다릅니다. 자신의 일부는 처음부터 완전히 거리를 두고 봐요. 다른 일부는 밀접하게 얽혀 있고. 그런 경험을 얼마나 빨리 글로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떤법칙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얼마나 잘 순응하는지와 개개인의 회복력에 달려 있겠죠. 분명 불타는 비행기에서 추락하는 건 훈련된 작가에게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몇가지 중요한 것들을 순식간에 배우죠. 그 경험이 쓸모 있을지는 생존에 달려있어요. 생존하는 것, 명예-구식이지만 늘 중요한 그 단어ㅡ롭게 생존하는 것은 작가에게는 언제나 어렵고 늘 중요한 일입니다. 오래가지 못하는 작가들은 늘 더 사랑받아요. 그들이 죽기 전에 끝내야 한다고 믿는 뭔가를 이루기 위해 길고 지루하고 가차 없고 무자비한싸움을 하는 걸 누구도 보지 못했으니까. 죽거나 일찍 쉽게 온갖 그럴듯한 이유로 그만두는 작가들은 이해할 만하고 인간적이니까 선호받죠. 실패와 잘 위장된 비겁함은 더 인간적이고 더 사랑스럽거든요. - P61

"있잖습니까." 그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총으로 자살했어요."
침묵이 흘렀다. 헤밍웨이가 아버지의 자살에 대해 절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헤밍웨이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모든 사람의 권리지만, 거기에는 약간의 이기주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약간의 경시가 담겨 있어요." 그는 책 몇 권을 집어 들며 화제를 돌렸다. - P95

방에 걸린 그의 인물 사진 몇 점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카시Yousuf Karsh, 1908~2002가 찍은 사진입니다. 알죠? 오타와 출신의 괜찮은 친구." 그가말했다. "여기 들어와서 사진을 술술 찍었어요. 다른 사진작가들은 스트로보 장비에다 카메라 서너 대를 들고 오죠. 아주 정신을 쏙 빼놔요. 인터뷰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P111

"정확히 어떻게 변했습니까?" 나는 물었다.
"전에는 싸움을 많이 했죠. 난 모든 것에 어떤 것에든 강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했다. "이제 난 조용히 있는 법을,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도록 내버려두는 법을 배웠어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죠……… 거짓말하는 게 아니다 싶으면, 그러고는 확실히 알려고 말을 좀 하고요. 이야기는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나한테는 소용없어요. 잘 아는 주제라면 왜 이야기를 합니까? 모르는 주제라면 왜 바보짓을 합니까?" - P11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3-10-03 0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에슐러 르 귄의 말>을 첨 읽었는데, 이 시리즈 다 좋아 보여요^^ 헤밍웨이의 가족적 비극이나 문체, 여성편력 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어서 서서 작품을 썼다는 사실은 처음 듣게 되었어요. ~

햇살과함께 2023-10-03 07:40   좋아요 1 | URL
저도 서서 글을 썼다는 게 신기^^ 인터뷰 무척 싫어하는 헤밍웨이입니다~
 
형사 박미옥
박미옥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렇게 멋진 ‘여’형사가 있었다니. 유명하셨다는데 나는 존재감을 몰랐네. 피해자 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말도 편견없이 듣고 판단하고자 한, 사람을 사랑하는, 철학을 공부하는 형사라니. 어찌 멋지지 않을 수가. 다만, 책은 다소 교훈적 느낌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