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는 서서 글을 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내 가지고 있는 작업 습관이다. 그는 치수에 맞지 않는 커다란 로퍼를 신은 채 가슴 높이에 놓인 타자기와 독서대를 마주하고 낡은 레서쿠두(소목 솟과의 동물. 쿠두보다 작은 동아프리카산 영양)가죽 위에 선다.
새 작품을 시작할 때 헤밍웨이는 늘 독서대에 반투명한 타자 용지를 올려놓고 연필로 글을 쓴다. 그는 타자기 왼쪽클립보드에 새 종이 한 다발을 끼워두고 금속 클립 아래서 종이를 한 번에 한 장씩 뽑아 쓰는데, 그 클립에는 "꼭 값을 치러야 함"이라고 쓰여 있다. 그는 독서대 위에 종이를 비스듬하게 놓고 왼팔로 기대어 손으로 종이를 누른 채 손 글씨로 종이를 채운다. 해가 갈수록 글씨는 점점 더 커지고, 더 아이 같아지고, 구두점이 줄어들고, 대문자는 거의 없고, 마침표는 종종 X로 표시된다. 종이가 다 차면, 타자기 오른쪽에 둔 또 하나의 클립보드에 글씨 쓴 면을 아래로 해서끼워둔다.
헤밍웨이가 독서대를 치우고 타자기를 쓰기 시작하는 건 오로지 글이 빨리 잘 써지거나 아니면 글이,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는, 단순해질 때다. 예를 들어 대화 부분. - P23

헤밍웨이는 이런 식의 미신을 인정은 하는지 몰라도 이야기는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게 무슨 가치를 가지고있든, 이야기를 하면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태도도 거의 비슷하다. 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그는 몇 번이나 글쓰기라는 공예는 지나치게 자세히 살펴보면서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글에 단단한곳이 있어서 거기에 대해선 말해도 해될 것 없다 해도, 다른 부분은 연약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면 그 구조가 무너져 내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돼요."
그 결과 헤밍웨이는 굉장한 이야기꾼에다 풍부한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고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어마어마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려워한다. 그 문제에 대해 의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은 표현하지 않는 게 낫다고 강력하게 믿고있으며 그런 질문을 받으면 거의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가 잘 쓰는 표현을 쓰자면) "겁을 먹기 때문이다. 이인터뷰에 실린 많은 답변을 그는 독서대 위에서 글로 쓰길원했다. 간간히 나타나는 비꼬는 어조 또한 글쓰기는 작업이 끝날 때까지는 목격자가 필요 없는 사적이고 고독한 업무라는 그의 강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 P27

헤밍웨이 내겐 그런 악몽들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가진 악몽들도 압니다. 하지만 그걸 글로 쓸 필요는 없죠. 알면서 생략할 수있는 것들은 모두 여전히 글 속에 남아 있고, 그건 글에 드러날 겁니다. 하지만 몰라서 생략하면 글에 구멍이 생기죠.

플림프턴 그 말은, 선생님 목록에 있는 사람들 작품에 대해 잘 알면좀 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우물"을 채우는 데 도움이된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그 작품들이 글쓰기 기술 개발에의식적으로 도움이 되었습니까?

헤밍웨이 그 작품들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고, 느끼지 않고, 쓰는 걸 배우는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우물은 ‘신명‘이 있는 곳이죠. 그게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특히 자기 자신은요. 아는 건 그게 자기에게 있는지 아니면 그게 돌아오길 기다려야 하는지죠. - P45

헤밍웨이 그건 경험에 따라 다릅니다. 자신의 일부는 처음부터 완전히 거리를 두고 봐요. 다른 일부는 밀접하게 얽혀 있고. 그런 경험을 얼마나 빨리 글로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떤법칙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얼마나 잘 순응하는지와 개개인의 회복력에 달려 있겠죠. 분명 불타는 비행기에서 추락하는 건 훈련된 작가에게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몇가지 중요한 것들을 순식간에 배우죠. 그 경험이 쓸모 있을지는 생존에 달려있어요. 생존하는 것, 명예-구식이지만 늘 중요한 그 단어ㅡ롭게 생존하는 것은 작가에게는 언제나 어렵고 늘 중요한 일입니다. 오래가지 못하는 작가들은 늘 더 사랑받아요. 그들이 죽기 전에 끝내야 한다고 믿는 뭔가를 이루기 위해 길고 지루하고 가차 없고 무자비한싸움을 하는 걸 누구도 보지 못했으니까. 죽거나 일찍 쉽게 온갖 그럴듯한 이유로 그만두는 작가들은 이해할 만하고 인간적이니까 선호받죠. 실패와 잘 위장된 비겁함은 더 인간적이고 더 사랑스럽거든요. - P61

"있잖습니까." 그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총으로 자살했어요."
침묵이 흘렀다. 헤밍웨이가 아버지의 자살에 대해 절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헤밍웨이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모든 사람의 권리지만, 거기에는 약간의 이기주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약간의 경시가 담겨 있어요." 그는 책 몇 권을 집어 들며 화제를 돌렸다. - P95

방에 걸린 그의 인물 사진 몇 점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카시Yousuf Karsh, 1908~2002가 찍은 사진입니다. 알죠? 오타와 출신의 괜찮은 친구." 그가말했다. "여기 들어와서 사진을 술술 찍었어요. 다른 사진작가들은 스트로보 장비에다 카메라 서너 대를 들고 오죠. 아주 정신을 쏙 빼놔요. 인터뷰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P111

"정확히 어떻게 변했습니까?" 나는 물었다.
"전에는 싸움을 많이 했죠. 난 모든 것에 어떤 것에든 강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했다. "이제 난 조용히 있는 법을,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도록 내버려두는 법을 배웠어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죠……… 거짓말하는 게 아니다 싶으면, 그러고는 확실히 알려고 말을 좀 하고요. 이야기는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나한테는 소용없어요. 잘 아는 주제라면 왜 이야기를 합니까? 모르는 주제라면 왜 바보짓을 합니까?"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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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0-03 0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에슐러 르 귄의 말>을 첨 읽었는데, 이 시리즈 다 좋아 보여요^^ 헤밍웨이의 가족적 비극이나 문체, 여성편력 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어서 서서 작품을 썼다는 사실은 처음 듣게 되었어요. ~

햇살과함께 2023-10-03 07:40   좋아요 1 | URL
저도 서서 글을 썼다는 게 신기^^ 인터뷰 무척 싫어하는 헤밍웨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