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방을 나가고 나서 침대에 누워 과거를, 오빠와 어머니와 내가 입술보다 마음으로 이야기할 때가 더 많았던 세월을 샅샅이 훑어 보았다. 은수카가 등장하기 전까지. 모든 것이 은수카에서 시작됐다. 이페오마 고모의 은수카 집 베란다 앞에 있는 작은 정원이 침묵을 밀어 내기 시작하면서. 지금 내게 오빠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졌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 쿠데타 이후에 정부광장에서 녹색 잎을 흔들던 군중이 외친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자유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
하지만 내 기억은 은수카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 전, 우리 앞마당의 모든 히비스커스꽃이 눈부시게 선명한 빨간색이었을 때에서 시작되었다. - P27

"누니에 음." 이페오마 고모가 부르자 어머니가 돌아봤다.
몇 년 전 이페오마 고모가 우리 어머니를 "누니에 음"이라고 부르는 걸 처음 들었을 때는 한 여자가 다른 여자를 ‘내 아내‘라고 부른다는 데 경악했다. 내가 묻자 아버지는 그것이 불경한 전통, 결혼은 남자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가족 전체가 하는 것이라는 생각의 잔재라고 말했다. 나중에 어머니는, 내 방에 단둘이 있을 때였는데도, 이렇게 속삭였다. "나는 아버지의 아내이니까 고모의 아내이기도 한 거야. 그 호칭은 고모가 나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란다."
"누니에 음, 이리 와서 앉아요. 피곤해 보여요. 몸은 괜찮은 거예요?" 이페오마 고모가 물었다. - P96

"캄빌리, 바지를 입는 게 더 편할 것 같은데." 차를 향해 걸어갈 때 이페오마 고모가 말했다.
"괜찮아요, 고모." 내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왜 고모에게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내 치마는 전부 무릎 한참 밑에서 끝난다고,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은 죄악이라서 나는 바지가 하나도없다고. - P105

"오빠가 왜 이페디오라랑 사이가 안 좋았는 줄 알아요?" 또다시 들리는 이페오마 고모의 속삭임은 아까보다 더 사납고 시끄러웠다. "이페디오라가 오빠 면전에 대고 자기 생각을 말했기 때문이에요. 이페디오라는 진실을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죠. 하지만 오빠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진실에 대해서는 꼭 싸우려 들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죽어 가고 있어요, 알겠어요? 죽어 간다고요. 노인네가 사실 날이 얼마나 남았겠어요, 그보? 그런데 오빠는 아버지를 이 집에 오지도 못하게 하고 인사드리러 가지도 않죠. 오조카! 오빠는 하느님 행세를 그만둬야 해요. 하느님은 다 큰 어른이니까 당신 일은 당신이 하실 수 있어요. 아버지가 조상님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에 대해 하느님이 벌하실 거라면 오빠가 아니라하느님이 벌하시게 놔두란 말이에요." - P124

"아버지가 괜찮다고 하시면요." 오빠가 말했다. 아버지가 오빠를 향해 웃어 보였고 나는 내가 그 말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 P126

캄빌리, 음식이 입에 안 맞니?" 이페오마 고모가 이렇게 물어서 깜짝 놀랐다. 그 자리에 내가 없는 것처럼, 그저 아무 때나 누구한테나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식탁, 자기가 원하는 만큼 숨 쉴 수 있는 식탁을 내가 관찰 중이라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53

"뭐야, 이제는 성모님이 정치적인 동정녀라도 된다는 거야?"
오비오라가 물었고 나는 또다시 그 애를 쳐다봤다. 오비오라는 내가 열네 살 때 절대 될 수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되지 못한 무엇의대담한 남성 버전이었다.
아마디 신부가 웃었다. "하지만 이집트에는 나타나셨잖니, 아마카. 적어도 사람들이 몰려들긴 했지. 지금 아옥페에 모여드는 것처럼. 오 부고디, 마치 이동하는 메뚜기 떼처럼 말이야." - P174

"영국인들이 전쟁에선 이겼지만 수많은 전투에서 졌어."라고 오빠가 말하는 바람에 내 눈은 읽고 있던 페이지에서 몇 줄을 건너뛰었다. 어떻게 한 거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나랑 똑같이 목구멍 속에 공기방울이 있어서 기껏해야 단어를 집어삼키거나 더듬으면서 내뱉을 수만 있는 것 아니었어? 나는 눈을 들어 오빠를 바라봤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땀방울로뒤덮인 오빠의 까만 피부를 쳐다봤다. 그 팔이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페오마 고모의 정원에 있을때 그 눈에 떠오른 꿰뚫는 듯한 빛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P183

"고모가 물어보길래 말했어." 오빠는 활기찬 박자에 맞춰 발로 베란다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내 손을, 어렸을 때 아버지가 바짝 깎아 주던 짧은 손톱을 쳐다봤다. 아버지는 나를 다리 사이에 앉혀 놓고 뺨을 내 뺨에비비면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손톱을 깎아줬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손톱을 바짝 깎았다. 오빠는 우리가절대 말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가 절대 말하지 않는 게 너무나 많다는 걸 잊어버렸나? 사람들이 물으면 오빠는 늘 집에서 있었던 "어떤 일" 때문에 손가락이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 거짓말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사고를, 아마 무거운 문에 의한 사고를상상하게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오빠한테 왜 이페오마 고모에게말했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음을, 오빠 자신도 그 대답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 P193

"왜?" 아마카가 버럭 소리쳤다. "부자들은 집에서 오라 손질 안하니까? 그럼 쟤는 오라 수프 안 먹을 거래?"
이페오마 고모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고모는 아마카가아니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 기니디, 캄빌리, 너는 입이 없니? 쟤한테 뭐라고 한마디 해!"
나는 정원의 시든 아가판투스꽃이 줄기에서 떨어지는 것을쳐다봤다. 늦은 아침 바람에 파두가 바스락거렸다. "소리 지를 필요 없어, 아마카." 마침내 내가 말했다. "난 오라 잎을 다듬을 줄 모르지만 네가 가르쳐 주면 되잖아." 그런 차분한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몰랐다. 나는 아마카를 쳐다보고 싶지 않았고, 그 뱁새눈을 보고 싶지 않았고, 그 애를 자극해서 또 한 소리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킥킥대는 소리가 들리길래 내 귀를 의심했지만 아마카를 보니 역시나 그 애가웃고 있었다.
"너도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할 수도 있구나, 캄빌리." 아마카가 말했다. - P211

내가 막 침대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는 게 분명했다. 나는 침대 위에서 몸을 움직여 자세를 바로잡고싶었다. 그렇게 하면 방금 한 짓이 숨겨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버지가 무엇을 아는지, 그림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았는지 눈을 들여다보고 알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공포 때문이었다. 공포라는 감정은 익숙했지만 매번 (다른 맛과 색깔을 띠는 것처럼) 전과는 다른 공포를 느꼈다. - P241

아이들이 딴 데 볼 때 그가 막대를 한 칸 올리고 나서 "한 번 더. 준비, 출발!" 하고 외치면 그들은 차례로 막대를 뛰어넘었다. 그렇게몇 번 더 올리다가 결국 아이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아! 아! 화더!" 그는 웃으면서, 나는 너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이뛸 수 있으리라 믿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금 너희가 내 생각이 맞았음을 증명하지 않았냐고 했다.
그때 나는 이페오마 고모도 사촌들에게 똑같이 해 왔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자식한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통해 그 애들이 뛰어넘어야 할 목표를 점점 더 높였다. 아이들이 반드시 막대를 넘으리라 믿으면서 항상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오빠와 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표정이 왜 그러니?" 아마디 신부가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그의 어깨가 내 어깨에 닿았다. 새로 나기 시작한 땀내와 아까부터 나던 향수 냄새가 내 콧구멍을 채웠다. - P274

아마디 신부가 내 옆에 와서 앉았다. "걱정이 있어 보이는구나." 그가 말했다. 그러고는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채 생각해내기도 전에 손을 뻗어서 내 종아리를 찰싹 때렸다. 그가 손바닥을 펼쳐서 찌부러진 피투성이 모기를 보여 줬다. 내가 너무 아프지 않게 모기를 죽일 수 있도록 손바닥을 오목하게 만들어서 친것이었다. "네 피를 너무 행복하게 빨아 먹고 있더라고." - P321

그의 편지는 내 마음속에 있다. 그것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길고 자세하기 때문에, 내가 가치 있는 사람임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에, 내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몇 달 전 그는 내가 이유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는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일, 그냥 이유가 존재하지 않거나 필요치 않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ㅡ 그는 편지에서 아버지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나 스스로는 무서워서 헤집을 수 없는 곳을 그가 헤집고 있음을 알았다.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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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세 번째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9
앨리스 워커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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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막내였고 아직 네 살도 채 안 되었다.
"아버진 개새끼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재빨리 담요를 덮었다브라운필드가 그녀에게 가한 최초의 주먹질을 느끼지 않기 위해. - P192


아, 잠자냥님이 빡침이 구만리라고.. 정말 구만리다.

최악의 빡침이, 빡침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나를 건드린다. 멤에게, 아이들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대프니는 오넷보다는 너그러웠다. 오직 브라운필드가 멤을 괴롭힐 때만 그녀에게서 살기가 돌았다. 브라운필드가 자신을 때릴 때면 대프나는 불타오르는 완벽한 공허로 마음을 유지함으로써 견뎌 냈다. 어릴 적의 추억 때문이었겠지만 대프니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녀의 신경은 매우 예민해졌다. 그녀는 아주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도 펄쩍 뛰었다. 신경과민이 심해지자 브라운필드는 그녀를 놀렸다. 그는 대프니가 아둔하고 정신이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대프니가 아니라 대피*라고 불렀으며, 옆구리에 멍이 들도록 꼬집었다. 그래도 그녀는 몸의 떨림을 감추려고 애쓰며 용감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그 집을 경멸했다. 깨끗하게 치우는 것이 불가능했고, 브라운필드가 멤에게 강요한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루스나 오넷보다 더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집을 증오했다. 겨울엔 추웠고, 사시사철 따뜻할 때라고는 없었다. 그녀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녀는 집에 대한 증오를 아버지에 대한 감정과 철저히 분리시켰다. 그녀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루스와 오넷은 결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대프니만큼 브라운필드를 너그럽게 봐줄 수 없었다. - P197


첫째 대프니의 마음 자기가 아기였을 아주 잠깐이나마 다정했던 아버지 브라운필드의 기억을 계속 소환하고,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동생들에게도 추억을 마치 직접 겪어 것처럼 주입해 주고자 하는 -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이해된다. 살아 내기 위한 심적 발버둥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다른 삶에 관해 그녀가 무엇을 알 수 있었을까그녀는 그 아버지를 사랑했고 그 아들을 두려워했다그녀가 어떻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겠는가루스가 보지도이해하지도 못했던 부부간의 친밀한 생활과 조시에 대해 무엇을 알았겠는가그녀가 알 수 있는 것은 할아버지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결코 아버지 노릇을 한 적이 없었다는 정도에 불과했다브라운필드와 그레인지는 서로를 저주했고 상대방의 연륜이나 젊음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어쩌면 그레인지의 사랑에 결함이 있었을 수도 있다그의 삶이 그러했듯그것도 아니라면 언제 어디서 그런 폭력이 시작된 것일까그리고 조시는 어떤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일까그토록 어린 아이가 파괴된 가족애의 결과와돌덩이와 같은 증오와검게 탄 마음 사이의 영역과울부짖는 영혼의 복수를 어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 P240~241


그레인지는 손녀 루스를 구원했나. 손녀를 통해 구원받았나. 작가의 마지막에 그레인지에 대해 긍정적 멘트가 있지만 나는 동의가 어렵다. 그는 손녀 루스를 구원하기 위해 노력했을 모르지만 손녀를 위해 그를 사랑하던 조시를 이용했다. 자기의 번째 인생의 은둔생활과 손녀 루스의 안락한 생활을 위한 농장을 사기 위해 조시가 평생 일궈온 가게를 팔도록 했고 돈을 사용했다. 그리곤 조시를 무시했다. 조시의 사랑을 이용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브라운필드에게 진정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 개과천선을 것이라면 루스만이 아니라 조시와 브라운필드에게도 동일한 태도를 보여야겠지만, 그에겐 오로지 루스만 있다. 루스를 위해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맹목적이다. 그렇게 루스에게 집착하는 것인지. 그리고 아들 브라운필드가 며느리 멤을 살해한 이후 손녀 중에서 막내인 루스만 데려왔다. 며느리 멤의 부모가 아이들을 데려가려고 왔을 루스를 자매들과 함께 보내지 않았고, 첫째와 둘째도 함께 돌보는 데까지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루스를 진정 생각한다면 언니들과 함께 지낼 있도록 하는 나은 것이 아닌가. 오로지 본인의 열망으로 루스만을 곁에 것은 이기적인 생각 아닌가. 기만적이다.


백인 탓만 하며, 나은 삶을 생각은 없고, 본인들보다 현명하고 똑똑한 아내들이 집안을 개선하고자 하면 가장의 권위가 무너질까 겁이 나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폭력을 쓰고, 아내의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짓밟으며 통쾌해하는 찌질한 흑인 남자들.


남편이 아버지라는 작자들의 얘기만 나오면  흥분한다고 하겠지만당신들 인종차별을  당해서  인간들보다  심한 거라고 생각하게 되네 심하긴 했나그럼에도  심한 인간들은 다른 이유를 대겠지.


작가가 앨리스 워커가 아니라 남성 작가였다면 그레인지를 옹호하는 듯한 시선이 편파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삐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컬러 퍼플>은 좀 쉬었다 읽어야겠다. 너무도 처절한 엘리스 워커 책 연달아 읽다가 혈압 올라서 못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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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9-18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총으로 대신 쏴주고 싶지 않습니까?!
저는 <컬러퍼플>이 좀 더 나았습니다.

햇살과함께 2023-09-18 19:21   좋아요 1 | URL
총은 너무 한방이니 총 말고요~ 좀더 오래 고통스로운 방법으로!!!!
컬러 퍼플은 좀 낫다니 다행이네요 ㅋ

독서괭 2023-09-18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빡침 구만리 ㅋㅋㅋㅋㅋ
함부로 손대면 안 되겠네요. 저도 여미쳐 예습해야 하는데..

햇살과함께 2023-09-18 19:25   좋아요 2 | URL
아 조마조마한 맘으로 읽었어요…
아이들이 넘…
그래도 엄청난 작품입니다 ㅋ
관련 책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읽으려고요.

책읽는나무 2023-09-18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빡침의 소설ㅜㅜ
어휴 고생하셨네요.

햇살과함께 2023-09-19 11:04   좋아요 1 | URL
네 ㅎㅎ 읽는 내내 스팀 올라요;;;
 

작가의 말

어느 위대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가 말했듯, 절망과 분노에 빠진 그들은 당연히 서로를 죽인다. (내가 약간 수정한 문장이다.)하지만 억압받는 식민지 사람들에게그 헛됨을 보여 준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곳에 비해 고향의 폭력 사태는 일주일에 몇 번씩 흑인의 장례식에 참석해온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릴 적 나는 옆집에서 베이비시터로 일했고, 언니는 장례식장에서 미용사로 근무했다. 언니는 장례식장 한편에서 산 자들의 머리를 감기고, 고불고불 모양을 냈다. 또한 다른 한쪽 구석에서 수없이많은 시체들에게도 똑같은 일을 해 주었다. 거기다 상처와멍과 총알 구멍과 눈물 자국을 가리기 위해 페인트와 분을 요령껏 이용해 그들의 얼굴과 때로는 몸에까지도 화장을 했다. - P417

구성원의 반이 위협과 폭력을 이용해 다른 절반의 구성원들을 지배한다면 가족, 공동체, 인종, 국가 혹은 세계가어찌 건강하고 강인한 집단이 될 수 있겠는가? 나는 미시시피에서 지내며 인종주의자들의 폭력이 전체 구성원의 힘과 창의성을 어떻게 앗아가는지를 똑똑히 보았다. 미시시피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주였다. 그것은 백인들 주장처럼 남북전쟁 이후 연방 정부가 주의 일에 간섭했기 때문이아니라, 하루하루 먹고사는 데 쓰고 남은 티끌만 한 에너지를 모두 위선적이고 인위적이며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인종 분리에 써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폭력으로 흑인을 지배했다. 구타, 거세, 집단 폭행, 체포, 구속이 비일비재했다. 인종차별 국가인 지금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그때의 모습과 비슷하다. 착취당하고 오염되고 고갈된 이 행성이 인간들의 무게로 비틀거리는 것을 보자면, 예전에, 어떤 지역에서는 지금도,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유색인종을 추방함으로써 평화와 안전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사실이 쓰라린 농담처럼 들린다. - P419

백인이 나를 억압한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다른 이를억압하는 핑계는 될 수 없다. 상대방이 남자든, 여자든, 아이이든, 동물이든, 나무이든 간에 말이다. 나의 자랑스런 자아는 압제자나 다른 사람에게 좌우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 P421

작품 해설

장애인 장학금으로 애틀랜타의 흑인 여자 대학인 스펠먼대학에 들어간 워커는 급진적 역사가인 하워드 진과 스토턴 린드의 영향을 받아 흑인 민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뉴욕의 사라 로런스 대학으로 편입하여 졸업한 후, 함께 민권 운동을 하던 유대인 법률가 멜빈 로즌먼 레벤탈과 1967년에 결혼했다. 이들은 미시시피 주 잭슨에서 다른 인종끼리 합법적으로 결혼한 최초의 부부였다. 1968년 첫시집 『한때 (Once)』를 출간하고, 1970년 첫 장편소설 『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세 번째 인생(The Third Life of GrangeCopland)』을 발표한 이후 많은 소설과 시집, 에세이집을 발표하고, 여러 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했으며, 1980년대에는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함께 페미니스트 저널 《미즈》의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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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다른 삶에 관해 그녀가 무엇을 알 수 있었을까? 그녀는 그 아버지를 사랑했고 그 아들을 두려워했다. 그녀가 어떻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겠는가? 루스가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던 부부간의 친밀한 생활과 조시에 대해 무엇을 알았겠는가? 그녀가 알 수 있는 것은 할아 - P240

버지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결코 아버지 노릇을 한 적이 없었다는 정도에 불과했다. 브라운필드와 그레인지는 서로를 저주했고 상대방의 연륜이나 젊음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레인지의 사랑에 결함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의삶이 그러했듯, 그것도 아니라면 언제 어디서 그런 폭력이 시작된 것일까? 그리고 조시는 어떤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토록 어린 아이가 파괴된 가족애의 결과와, 돌덩이와 같은 증오와, 검게 탄 마음 사이의 영역과,울부짖는 영혼의 복수를 어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 P241

달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멤의 집으로 달려가 멤과 손녀들이 마당 한가운데 함께 쓰러져 있는 것을 목격했던 그날 밤 일을 다시는 떠올리기 싫었다. 손녀들 중 대프니와오넷은 멤의 아버지인 북부 출신의 말씨 부드러운 목사와그의 아내가 급히 데려가 버렸다. 그들의 턱은 경악으로벌벌 떨리고 있었다. 비극에 마음이 갈가리 찢어진 노인은아내보다 더 깊이 슬퍼하며 아이들을 모두 데려가고자 하였다. 오래전 아이들의 엄마를 거부했던 그가 말이다. 루스만은 친할아버지의 품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그레인지가 그 아이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그런 감정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을 만큼 강렬한 열망이었다. - P246

그 모든 일을 겪고 난 후에도 그럴 수 있다니. 처음에조시는 그가 겁에 질린 아이에게 그토록 애정을 쏟는 것을우습게 여겼을 따름이었다. 그녀는 그가 아내인 자신은 그처럼 아낀 적이 없었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가 처음 조시와 결혼하고자 한 동기가 의심스러운 것이니만큼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당연했다. 그녀의 약점은그를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 왔고 그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리석게도 결혼하면 그가 자신에게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으리라 믿었다. - P247

집사들이 그를 달래며 친절하게 교회 밖으로 이끌었다. 그레인지는 깊은 좌절감으로 그들을 증오했다. 남부에서처럼 북부에서도 백인 이웃을 사랑해 봐야 남는 것은 마약에찌든 몸뚱이와 부모를 경멸하는 아이들뿐이었다. 그들은어째서 자기 자신을 전혀 사랑할 수 없고 자식들을 향해분노만을 뿜어 대는지 그 까닭을 감히 헤아려 보기나 했을까? 아니, 전혀 아니다.
그는 7번가의 한 모퉁이에서 소리쳤다.
"그들을 향한 증오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뭉치게 할 것입니다. 단결할 유일한 방법은 증오입니다. 어쨌든 우리는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들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제 말은그 증오를 밖으로 활짝 터트리고, 젊은이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증오를 가르친다면굳이 고통의 학교에서 그것을 배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 P270

그래서 그는 베이커 카운티와 조시에게로 돌아왔다. 이곳은 그의 고향이었고, 그녀는 세상에서 그를 사랑하는일한 사람이었으며, 성스런 안식처를 사기 위해 그가 가진것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오래도록 그에 대한 사랑과 희망으로 살아 왔던 조시는소중한 생계 수단인 듀드롭인을 팔라는 그의 설득에 넘어갔다. 그는 자신과 그녀의 돈을 합쳐 농장을 샀다. 시내와큰길에서 멀리 떨어져 소나무와 오크나무 숲 뒤에 자리한농장이었다. 그는 직접 일용할 양식을 키웠고, 술을 만들었으며, 고기를 소금에 절이거나 말렸다. 마침내 그는 자유로워졌다. - P272

그녀는 한참 후에야 할아버지가 자신이 알고 있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가죽은 후에도 그녀는 모든 것을 완전히 알지 못했다. 잔혹함과 살인이 그의 인내심과 힘을, 그리고 사랑을 키웠다는사실을. - P275

나원 참.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 같으니라고. 나한테 아줌마 같은 마누라만 있었어도요 모양 요 꼴은 안 됐어요."
조시가 완전히 분노에 빠져 그의 말에 장단을 맞춰 줄때면 브라운필드는 신이 났다. 이내 그는 처음 세웠던 계획에 조시를 끌어들였다.
"여기서 나가면 당장 루스를 데려가겠어요. 그러면 예전처럼 두 사람이 오붓하게 지내게 될 거예요.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죠." - P292

"정말요? 거짓말이죠?"
그레인지가 유쾌하게 말했다.
"나랑 있을 때는 ‘거짓말‘ 같은 단어는 입에 올리지도 말아라. 사람들이 네가 본데없이 자랐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지금은 할아버지랑 저뿐이잖아요. 그리고 남들이 뭐라 하든 무슨 상관이에요. 게다가 제가 아무리 할아버지를 낯부끄럽게 한들, 할아버지가 술이랑 도박으로 우리 돈을 다 날리는 것만큼이나 부끄러운 짓이겠어요?" - P297

제 생각을 물으신다면, 하고 루스가 팔베개를 한 채 태양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할아버진 나쁜 사람이에요. 정말 나쁜 노인네라고요. 본데인지 뭔지가 없는 그런 사람 말예요."
그녀는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 - P299

그는 아들이 태어났는데도 전혀 기뻐하지 않으며 물었다.
"아이 이름은 뭘로 하지?"
그녀는 우울해 하며 무심하게 말했다.
"앞에 뭐가 보여요?"
문 앞에 서 있던 그는 가을빛으로 물든 조지아의 목화밭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는 대답했다.
"갈색 들판."
그는 혹시 저 들판이 세상의 나머지 부분까지도 모조리덮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따스한 품안에서 잠든 아기를 내려놓으며말했다. - P302

그는 재빨리 과거를 돌돌 말아 날카로운 곳을 없애고 날선 곳을 지운 뒤 그 위에 드러누웠다.
"내 생전 너처럼 건방진 애는 처음이다." - P304

그녀는 신화, 브론테자매*, 토머스 하디, 그리고 로맨스 작가들을 좋아했다. 만약 무인도에 난파된다면 그녀는 『제인 에어』와 포켓판 유의어 사전과 아프리카에 관한 모든 책을 챙길 것이었다. - P335

네놈이 이 애 어미를 죽여서 말이야. 이 아이가 아빠가 필요했던 그 긴 세월 동안 너는 대체 어디에 있었냐? 그 어디에도 없었어! 심지어 한지붕 아래 살 때조차 너는술독에 빠져 아이 곁에 있어 주지 않았어. 그러곤 네가 유일하게 가진 소중한 사람을 죽여서는 감옥에 처박혔지. 뉘우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보이는 네가 무슨 수로 백인들을 얼러 그렇게 일찍 나왔는지 도통 모르겠군. 하긴 검둥이가 검둥이를 죽였는데 백인이 관심이나 두겠어! 당신나랑 약속했잖아." - P345

"모조리 그놈들 탓이지."
여전히 등을 돌린 그레인지는 브라운필드와 조시에게서 채 계속 루스에게 말했다. 그는 찌르기 춤을 추는 것처럼손을 휘저으며 숨쉴 겨를도 없이 급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자기가 자기 인생을 망쳐 놓고는 남 탓하는 게 얼마나위험한 짓인지 내가 잘 알아. 나도 바로 그런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야! 내가 아무리 똑바로 생각하려고 해도 흰둥이들이 내 머리를 타락시켜 버렸어. 모든 게 그놈들 탓이라고 믿는 그 순간 그놈들은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리지! 모든 잘못이 다 그들 탓이 되는 거야. - P347

그가 그들을 사랑해서 그러는 것이 아님을 조시는 알고 있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남자의 특권이기 때문에 그들(혹은 적어도 그중 한명)을 데려오려는 것이었다. 조시는 악에서 구해 달라고 신에게 믿음 없는 기도를 올렸다. 그때 뒤에서 브라운필드가 걸어오는 기척이 들렸다. 이웃 여인네 두 사람이 안됐다는 표정으로 옆에 서 있었다. 그들은 브라운필드가 들어오자 - P372

그날 밤 내내 조시가 신세타령을 늘어놓자 브라운필드는화가 치밀었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모든 게 백인 놈들 때문이야."
브라운필드는 별안간 까닭 없이 그 말이 거슬렸다. 그 역시도 자기 삶이 그 모양으로 굴러 떨어진 것을 모두 백인 탓으로 돌렸으면서 말이다. - P376

아줌마 말대로라면 그 녀석이 백인 자식이라서 내가 그렇게 한 셈이지. 하지만 백인 자식이 아니라는 건 나도고 있었어. 하얗긴 해도 나, 아니 아버지를 그대로 빼닮았거든. 손자니깐 당연한 거지. 아기는 우리 부자를 닮아 있었어. 못생겼지. 게다가 시내에 가서 테일러 의사 선생한테 물으니 가끔은 그런 일이 있다더군. 좀 있으니 아기 머리에서 지독히도 꼬불꼬불한 머리가 자랐어. 그 애가 내자식인 게 확실했지. 백인 놈이 쳐다보기만 해도 내가 그년모가지를 부러트릴 걸 멤은 알고 있었어. 설령 백인 새끼가 그년을 두들겨 패서 강간했다고 해도 난 가만 있지 않았을 거야! 그년은 그걸 알고 있었어. 아줌마도 그년이 젊었을 적을 봤으니 알겠지. 빵빵했지. 그래서 백인이 근처에 얼씬거리면 일부러 병신처럼 굴었어. 그러면 놈들이 어떻게 저리도 못생긴 년이랑 결혼했냐고 놀리며 내 성질을건드렸지. 그놈들은 아줌마 조카가 베일 아래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어!"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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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안 가요. 애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녀는 주먹이 날아올 것을 대비해 여위고 가칠한 목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웃으며 둥근 옥수수빵으로 흩어진 완두콩을 꾹꾹 눌러 계속 먹어 댈 뿐이었다.
"물줘."
그가 오넷에게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녀는 돼지에게 구정물을 갖다 주는 셈 치기로 했다. - P149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고?"
그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녀가 그렇게 읽고 쓰기를 가르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읽고 쓰기를 할 수 없었다. 읽고 쓰기 수업은 구애와 함께 시작되었다가 결혼과 함께 끝이 났다. - P155

옆방에 있던 아이들은 눈물이 어찌나 더디게 흐르는지 재채기가 날 지경이었다. 대프니와 오넷은 부들부들 떨고있는 서로의 여윈 팔을 꽉 쥐고는 따스한 붉은 혀로 짭조름한 눈물을 서로 핥아 주었다. 그들은 아버지가 비틀거리다 자기 칼 위로 넘어져 어떻게든 심장에 칼날이 콱 박히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루스는 계속 울먹이고 있었다.
"이리로 올까?"
오넷은 언니에게 물으며 여기서 달아날 방법과 남자가 되어 언니를 보호할 방법을 궁리했다.
"오겠지."
속삭이는 대프니의 목소리에는 어른의 냉정함이 서려 있었다.
"저 자식이 여기로 들어오면 널 붙잡도록 잠깐만 가만히 있어. 그럼 내가 부엌에 가서 식칼을 가져올게."
그녀는 눈물 자국을 따라 동생의 뺨을 조심스레 핥았다.
"내가 돌아왔을 때 저 새끼가 널 한 대라도 때렸다면 당장 배때기를 확 찔러 버리겠어!"
아이들이 침대 아래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는 사이 새들이 새벽을 알리며 지저귀기 시작했다. 그들은 섬뜩한 살인이 그대로 이루어져 자유를 얻기를 꿈꾸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 P167

그는 냉동 파이 공장에서 일하면서 얻은 만족에 분개했다. 새 일이 목화나 옥수수밭 일이나 낙농장 일보다 더 쉽다는 것이 그에게는 부당하게만 보였다. 사실 조립 라인에서 복숭아 파이 쟁반을 놓는 일은 몹시 지루했다. 하지만 수년간 백인들의 소를 돌보며 돌아다닌 뒤인지라 단조로움은 도리어 그의 고통을 덜어 주었다. 건물 안이 골고루 시원했기에 들판의 찌는 듯한 더위가 어떠했는지 기억조차 아득했다. 손도 덜 축축했다. 손이 젖을 일을 할 때면 언 - P180

제나 고무장갑을 낄 수 있었다. 그는 파이 원료 혼합물을 커다란 통에 쏟아붓는 것을 즐겼고, 압력솥의 물 공급 호스를 조절하는 걸 좋아했으며, 거의 새것 같이 반짝거리는 커다란 기구들을 매일 씻기를 고대했다.
새집에도 개선의 느낌이 감돌았다. 하얀 욕조와 세면기와 거울과 하얀 변기가 딸린 실내 화장실. 이제 그는 비를 맞거나 지독한 냄새에 시달리는 일 없이 볼 일을 보고, 일어나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눈에는 증오스런 핏발이나 사나운 노란 빛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거의 신사나 다름없었다. 아니, 그는 이제 자신이 백인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 P181

그녀는 막내였고 아직 네 살도 채 안 되었다.
"아버진 개새끼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재빨리 담요를 덮었다. 브라운필드가 그녀에게 가한 최초의 주먹질을 느끼지 않기 위해. - P192

내가 남자라면, 하고 멤은 찡그린 얼굴로 접시를 닦으며 생각했다. 내가 남자라면 눈에 띄는 모든 남자와 지금껏 만났던 온갖 남자들을 모조리 두들겨 패 줄 텐데. 그중 몇몇은 칼로 배때기를 확 갈라 버리겠어. 야비하기 짝이 없는 고집불통 개새끼들을 말이야. - P152

대프니는 오넷보다는 너그러웠다. 오직 브라운필드가 멤을 괴롭힐 때만 그녀에게서 살기가 돌았다. 브라운필드가 자신을 때릴 때면 대프나는 불타오르는 완벽한 공허로 마음을 유지함으로써 견뎌 냈다. 어릴 적의 추억 때문이었겠지만 대프니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녀의 신경은 매우 예민해졌다. 그녀는 아주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도 펄쩍 뛰었다. 신경과민이 심해지자 브라운필드는 그녀를 놀렸다. 그는 대프니가 아둔하고 정신이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에게욕설을 퍼부었고, 대프니가 아니라 대피*라고 불렀으며, 옆구리에 멍이 들도록 꼬집었다. 그래도 그녀는 몸의 떨림을 감추려고 애쓰며 용감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그 집을 경멸했다. 깨끗하게 치우는 것이 불가능했고, 브라운필드가 멤에게 강요한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루스나 오넷보다더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집을 증오했다. 겨울엔 추웠고, 사시사철 따뜻할 때라고는 없었다. 그녀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하지만그녀는 집에 대한 증오를 아버지에 대한 감정과 철저히 분리시켰다. 그녀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루스와 오넷은결 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대프니만큼 브라운필드를 너그럽게 봐줄 수 없었다. - P197

루스는 오래도록 유심히 할아버지를 살펴보았다. 그의 눈은 젖어 있었고 뺨은 파르르 떨렸다.
"할아비는 그만 보거라."
그의 목소리는 쓰디썼다.
"네가 아는 것 외에는 나도 전혀 모른단다."
그는 팔을 뻗어 세상 모든 일을 암시했다.
그 후 할아버지가 허풍으로라도 루스에게 그처럼 심각하게 말하는 일은 다시 없었다. - P215

이야기의 뒷부분을 듣던 루스는 웃음을 터트리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와 그레인지는 교회 안에서 전통의 부조리를 흉보며 실없는 여자애들 마냥 나직이 낄낄거리는 일이 잦았다. 교회에 가는 것 또한 전통의 부조리 중 하나였다. 목사나 옷을 쫙 빼입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둘을 무시무시한 신성 모독의 화신으로 여겼다. 하지만 토요일 밤마다 마누라를 두들겨 패고 아이들을 괴롭히는 작자들이 일요일마다 자기 정의감에 불타 하느님에게 경의를 표하며 얌전 빼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레인지와 루스는 우습기 짝이 없었다. - P232

그가 길에 주저앉으려고 들면 루스가 회초리로 그의 다리를 때려서 막았다. 그가 우울해 할 때마다 루스는 자신이 할아버지보다 더 어른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술에서 깨면 그녀는 그의 머리가 아프든 말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담배도 그가 직접 찾아서 불 붙이게 했다. 그렇게 무시해 버리면 월요일 밤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부끄러워할 뿐만 아니라 겁에 질려 뻣뻣해졌다. 자신이 손녀를 너무 멀리 밀어내버렸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아직 어린애라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심지어 오해할지도 몰랐다!) 그는 그녀가 나중에 자신에게 반항하게 될까 봐 걱정했다. 그는 자기 아들의 아버지가 된 것을 저주했고, 아들의 딸이 자신을 아들과 똑같이 여길까 봐 염려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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