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안 가요. 애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녀는 주먹이 날아올 것을 대비해 여위고 가칠한 목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웃으며 둥근 옥수수빵으로 흩어진 완두콩을 꾹꾹 눌러 계속 먹어 댈 뿐이었다.
"물줘."
그가 오넷에게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녀는 돼지에게 구정물을 갖다 주는 셈 치기로 했다. - P149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고?"
그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녀가 그렇게 읽고 쓰기를 가르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읽고 쓰기를 할 수 없었다. 읽고 쓰기 수업은 구애와 함께 시작되었다가 결혼과 함께 끝이 났다. - P155

옆방에 있던 아이들은 눈물이 어찌나 더디게 흐르는지 재채기가 날 지경이었다. 대프니와 오넷은 부들부들 떨고있는 서로의 여윈 팔을 꽉 쥐고는 따스한 붉은 혀로 짭조름한 눈물을 서로 핥아 주었다. 그들은 아버지가 비틀거리다 자기 칼 위로 넘어져 어떻게든 심장에 칼날이 콱 박히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루스는 계속 울먹이고 있었다.
"이리로 올까?"
오넷은 언니에게 물으며 여기서 달아날 방법과 남자가 되어 언니를 보호할 방법을 궁리했다.
"오겠지."
속삭이는 대프니의 목소리에는 어른의 냉정함이 서려 있었다.
"저 자식이 여기로 들어오면 널 붙잡도록 잠깐만 가만히 있어. 그럼 내가 부엌에 가서 식칼을 가져올게."
그녀는 눈물 자국을 따라 동생의 뺨을 조심스레 핥았다.
"내가 돌아왔을 때 저 새끼가 널 한 대라도 때렸다면 당장 배때기를 확 찔러 버리겠어!"
아이들이 침대 아래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는 사이 새들이 새벽을 알리며 지저귀기 시작했다. 그들은 섬뜩한 살인이 그대로 이루어져 자유를 얻기를 꿈꾸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 P167

그는 냉동 파이 공장에서 일하면서 얻은 만족에 분개했다. 새 일이 목화나 옥수수밭 일이나 낙농장 일보다 더 쉽다는 것이 그에게는 부당하게만 보였다. 사실 조립 라인에서 복숭아 파이 쟁반을 놓는 일은 몹시 지루했다. 하지만 수년간 백인들의 소를 돌보며 돌아다닌 뒤인지라 단조로움은 도리어 그의 고통을 덜어 주었다. 건물 안이 골고루 시원했기에 들판의 찌는 듯한 더위가 어떠했는지 기억조차 아득했다. 손도 덜 축축했다. 손이 젖을 일을 할 때면 언 - P180

제나 고무장갑을 낄 수 있었다. 그는 파이 원료 혼합물을 커다란 통에 쏟아붓는 것을 즐겼고, 압력솥의 물 공급 호스를 조절하는 걸 좋아했으며, 거의 새것 같이 반짝거리는 커다란 기구들을 매일 씻기를 고대했다.
새집에도 개선의 느낌이 감돌았다. 하얀 욕조와 세면기와 거울과 하얀 변기가 딸린 실내 화장실. 이제 그는 비를 맞거나 지독한 냄새에 시달리는 일 없이 볼 일을 보고, 일어나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눈에는 증오스런 핏발이나 사나운 노란 빛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거의 신사나 다름없었다. 아니, 그는 이제 자신이 백인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 P181

그녀는 막내였고 아직 네 살도 채 안 되었다.
"아버진 개새끼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재빨리 담요를 덮었다. 브라운필드가 그녀에게 가한 최초의 주먹질을 느끼지 않기 위해. - P192

내가 남자라면, 하고 멤은 찡그린 얼굴로 접시를 닦으며 생각했다. 내가 남자라면 눈에 띄는 모든 남자와 지금껏 만났던 온갖 남자들을 모조리 두들겨 패 줄 텐데. 그중 몇몇은 칼로 배때기를 확 갈라 버리겠어. 야비하기 짝이 없는 고집불통 개새끼들을 말이야. - P152

대프니는 오넷보다는 너그러웠다. 오직 브라운필드가 멤을 괴롭힐 때만 그녀에게서 살기가 돌았다. 브라운필드가 자신을 때릴 때면 대프나는 불타오르는 완벽한 공허로 마음을 유지함으로써 견뎌 냈다. 어릴 적의 추억 때문이었겠지만 대프니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녀의 신경은 매우 예민해졌다. 그녀는 아주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도 펄쩍 뛰었다. 신경과민이 심해지자 브라운필드는 그녀를 놀렸다. 그는 대프니가 아둔하고 정신이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에게욕설을 퍼부었고, 대프니가 아니라 대피*라고 불렀으며, 옆구리에 멍이 들도록 꼬집었다. 그래도 그녀는 몸의 떨림을 감추려고 애쓰며 용감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그 집을 경멸했다. 깨끗하게 치우는 것이 불가능했고, 브라운필드가 멤에게 강요한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루스나 오넷보다더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집을 증오했다. 겨울엔 추웠고, 사시사철 따뜻할 때라고는 없었다. 그녀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하지만그녀는 집에 대한 증오를 아버지에 대한 감정과 철저히 분리시켰다. 그녀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루스와 오넷은결 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대프니만큼 브라운필드를 너그럽게 봐줄 수 없었다. - P197

루스는 오래도록 유심히 할아버지를 살펴보았다. 그의 눈은 젖어 있었고 뺨은 파르르 떨렸다.
"할아비는 그만 보거라."
그의 목소리는 쓰디썼다.
"네가 아는 것 외에는 나도 전혀 모른단다."
그는 팔을 뻗어 세상 모든 일을 암시했다.
그 후 할아버지가 허풍으로라도 루스에게 그처럼 심각하게 말하는 일은 다시 없었다. - P215

이야기의 뒷부분을 듣던 루스는 웃음을 터트리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와 그레인지는 교회 안에서 전통의 부조리를 흉보며 실없는 여자애들 마냥 나직이 낄낄거리는 일이 잦았다. 교회에 가는 것 또한 전통의 부조리 중 하나였다. 목사나 옷을 쫙 빼입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둘을 무시무시한 신성 모독의 화신으로 여겼다. 하지만 토요일 밤마다 마누라를 두들겨 패고 아이들을 괴롭히는 작자들이 일요일마다 자기 정의감에 불타 하느님에게 경의를 표하며 얌전 빼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레인지와 루스는 우습기 짝이 없었다. - P232

그가 길에 주저앉으려고 들면 루스가 회초리로 그의 다리를 때려서 막았다. 그가 우울해 할 때마다 루스는 자신이 할아버지보다 더 어른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술에서 깨면 그녀는 그의 머리가 아프든 말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담배도 그가 직접 찾아서 불 붙이게 했다. 그렇게 무시해 버리면 월요일 밤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부끄러워할 뿐만 아니라 겁에 질려 뻣뻣해졌다. 자신이 손녀를 너무 멀리 밀어내버렸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아직 어린애라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심지어 오해할지도 몰랐다!) 그는 그녀가 나중에 자신에게 반항하게 될까 봐 걱정했다. 그는 자기 아들의 아버지가 된 것을 저주했고, 아들의 딸이 자신을 아들과 똑같이 여길까 봐 염려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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