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방을 나가고 나서 침대에 누워 과거를, 오빠와 어머니와 내가 입술보다 마음으로 이야기할 때가 더 많았던 세월을 샅샅이 훑어 보았다. 은수카가 등장하기 전까지. 모든 것이 은수카에서 시작됐다. 이페오마 고모의 은수카 집 베란다 앞에 있는 작은 정원이 침묵을 밀어 내기 시작하면서. 지금 내게 오빠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졌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 쿠데타 이후에 정부광장에서 녹색 잎을 흔들던 군중이 외친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자유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
하지만 내 기억은 은수카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 전, 우리 앞마당의 모든 히비스커스꽃이 눈부시게 선명한 빨간색이었을 때에서 시작되었다. - P27

"누니에 음." 이페오마 고모가 부르자 어머니가 돌아봤다.
몇 년 전 이페오마 고모가 우리 어머니를 "누니에 음"이라고 부르는 걸 처음 들었을 때는 한 여자가 다른 여자를 ‘내 아내‘라고 부른다는 데 경악했다. 내가 묻자 아버지는 그것이 불경한 전통, 결혼은 남자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가족 전체가 하는 것이라는 생각의 잔재라고 말했다. 나중에 어머니는, 내 방에 단둘이 있을 때였는데도, 이렇게 속삭였다. "나는 아버지의 아내이니까 고모의 아내이기도 한 거야. 그 호칭은 고모가 나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란다."
"누니에 음, 이리 와서 앉아요. 피곤해 보여요. 몸은 괜찮은 거예요?" 이페오마 고모가 물었다. - P96

"캄빌리, 바지를 입는 게 더 편할 것 같은데." 차를 향해 걸어갈 때 이페오마 고모가 말했다.
"괜찮아요, 고모." 내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왜 고모에게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내 치마는 전부 무릎 한참 밑에서 끝난다고,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은 죄악이라서 나는 바지가 하나도없다고. - P105

"오빠가 왜 이페디오라랑 사이가 안 좋았는 줄 알아요?" 또다시 들리는 이페오마 고모의 속삭임은 아까보다 더 사납고 시끄러웠다. "이페디오라가 오빠 면전에 대고 자기 생각을 말했기 때문이에요. 이페디오라는 진실을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죠. 하지만 오빠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진실에 대해서는 꼭 싸우려 들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죽어 가고 있어요, 알겠어요? 죽어 간다고요. 노인네가 사실 날이 얼마나 남았겠어요, 그보? 그런데 오빠는 아버지를 이 집에 오지도 못하게 하고 인사드리러 가지도 않죠. 오조카! 오빠는 하느님 행세를 그만둬야 해요. 하느님은 다 큰 어른이니까 당신 일은 당신이 하실 수 있어요. 아버지가 조상님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에 대해 하느님이 벌하실 거라면 오빠가 아니라하느님이 벌하시게 놔두란 말이에요." - P124

"아버지가 괜찮다고 하시면요." 오빠가 말했다. 아버지가 오빠를 향해 웃어 보였고 나는 내가 그 말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 P126

캄빌리, 음식이 입에 안 맞니?" 이페오마 고모가 이렇게 물어서 깜짝 놀랐다. 그 자리에 내가 없는 것처럼, 그저 아무 때나 누구한테나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식탁, 자기가 원하는 만큼 숨 쉴 수 있는 식탁을 내가 관찰 중이라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53

"뭐야, 이제는 성모님이 정치적인 동정녀라도 된다는 거야?"
오비오라가 물었고 나는 또다시 그 애를 쳐다봤다. 오비오라는 내가 열네 살 때 절대 될 수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되지 못한 무엇의대담한 남성 버전이었다.
아마디 신부가 웃었다. "하지만 이집트에는 나타나셨잖니, 아마카. 적어도 사람들이 몰려들긴 했지. 지금 아옥페에 모여드는 것처럼. 오 부고디, 마치 이동하는 메뚜기 떼처럼 말이야." - P174

"영국인들이 전쟁에선 이겼지만 수많은 전투에서 졌어."라고 오빠가 말하는 바람에 내 눈은 읽고 있던 페이지에서 몇 줄을 건너뛰었다. 어떻게 한 거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나랑 똑같이 목구멍 속에 공기방울이 있어서 기껏해야 단어를 집어삼키거나 더듬으면서 내뱉을 수만 있는 것 아니었어? 나는 눈을 들어 오빠를 바라봤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땀방울로뒤덮인 오빠의 까만 피부를 쳐다봤다. 그 팔이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페오마 고모의 정원에 있을때 그 눈에 떠오른 꿰뚫는 듯한 빛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P183

"고모가 물어보길래 말했어." 오빠는 활기찬 박자에 맞춰 발로 베란다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내 손을, 어렸을 때 아버지가 바짝 깎아 주던 짧은 손톱을 쳐다봤다. 아버지는 나를 다리 사이에 앉혀 놓고 뺨을 내 뺨에비비면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손톱을 깎아줬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손톱을 바짝 깎았다. 오빠는 우리가절대 말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가 절대 말하지 않는 게 너무나 많다는 걸 잊어버렸나? 사람들이 물으면 오빠는 늘 집에서 있었던 "어떤 일" 때문에 손가락이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 거짓말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사고를, 아마 무거운 문에 의한 사고를상상하게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오빠한테 왜 이페오마 고모에게말했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음을, 오빠 자신도 그 대답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 P193

"왜?" 아마카가 버럭 소리쳤다. "부자들은 집에서 오라 손질 안하니까? 그럼 쟤는 오라 수프 안 먹을 거래?"
이페오마 고모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고모는 아마카가아니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 기니디, 캄빌리, 너는 입이 없니? 쟤한테 뭐라고 한마디 해!"
나는 정원의 시든 아가판투스꽃이 줄기에서 떨어지는 것을쳐다봤다. 늦은 아침 바람에 파두가 바스락거렸다. "소리 지를 필요 없어, 아마카." 마침내 내가 말했다. "난 오라 잎을 다듬을 줄 모르지만 네가 가르쳐 주면 되잖아." 그런 차분한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몰랐다. 나는 아마카를 쳐다보고 싶지 않았고, 그 뱁새눈을 보고 싶지 않았고, 그 애를 자극해서 또 한 소리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킥킥대는 소리가 들리길래 내 귀를 의심했지만 아마카를 보니 역시나 그 애가웃고 있었다.
"너도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할 수도 있구나, 캄빌리." 아마카가 말했다. - P211

내가 막 침대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는 게 분명했다. 나는 침대 위에서 몸을 움직여 자세를 바로잡고싶었다. 그렇게 하면 방금 한 짓이 숨겨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버지가 무엇을 아는지, 그림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았는지 눈을 들여다보고 알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공포 때문이었다. 공포라는 감정은 익숙했지만 매번 (다른 맛과 색깔을 띠는 것처럼) 전과는 다른 공포를 느꼈다. - P241

아이들이 딴 데 볼 때 그가 막대를 한 칸 올리고 나서 "한 번 더. 준비, 출발!" 하고 외치면 그들은 차례로 막대를 뛰어넘었다. 그렇게몇 번 더 올리다가 결국 아이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아! 아! 화더!" 그는 웃으면서, 나는 너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이뛸 수 있으리라 믿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금 너희가 내 생각이 맞았음을 증명하지 않았냐고 했다.
그때 나는 이페오마 고모도 사촌들에게 똑같이 해 왔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자식한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통해 그 애들이 뛰어넘어야 할 목표를 점점 더 높였다. 아이들이 반드시 막대를 넘으리라 믿으면서 항상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오빠와 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표정이 왜 그러니?" 아마디 신부가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그의 어깨가 내 어깨에 닿았다. 새로 나기 시작한 땀내와 아까부터 나던 향수 냄새가 내 콧구멍을 채웠다. - P274

아마디 신부가 내 옆에 와서 앉았다. "걱정이 있어 보이는구나." 그가 말했다. 그러고는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채 생각해내기도 전에 손을 뻗어서 내 종아리를 찰싹 때렸다. 그가 손바닥을 펼쳐서 찌부러진 피투성이 모기를 보여 줬다. 내가 너무 아프지 않게 모기를 죽일 수 있도록 손바닥을 오목하게 만들어서 친것이었다. "네 피를 너무 행복하게 빨아 먹고 있더라고." - P321

그의 편지는 내 마음속에 있다. 그것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길고 자세하기 때문에, 내가 가치 있는 사람임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에, 내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몇 달 전 그는 내가 이유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는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일, 그냥 이유가 존재하지 않거나 필요치 않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ㅡ 그는 편지에서 아버지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나 스스로는 무서워서 헤집을 수 없는 곳을 그가 헤집고 있음을 알았다.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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