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11호 : 플랫폼 인문 잡지 한편 11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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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의 [독점으로 향하는 급행열차]에 나온 아래 표를 보자.

플랫폼이라는 용어가 최근에, 단기간 동안, 얼마나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는지, 얼마나 핫한 용어인지 알 수 있다.

팬데믹과 함께 온라인 플랫폼, 배달 플랫폼, 플랫폼 노동자, 메타버스 플랫폼, 플랫폼 비즈니스 등 이제 플랫폼이라는 용어 없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설명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이번 호에는 흥미를 끄는 글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에게 흥미로웠던 글은, 


강미량의 [걷는 로봇과 타는 사람]

가장 흥미로운 글이었다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장애와 플랫폼이라니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지하철 플랫폼을 생각하게 하는 주제다.


나는 걷기를 장애 정치의 포기로, 휠체어를 걷기의 포기로 보기를 멈추었을 때 비로소 다양한 움직임을 몸에 축적한 사람들을 만났다. 휠체어를 타다가 로봇에 옮겨 타 걷는 파일럿들이 있듯이, 로봇을 타다가 훨체어로 옮겨 타 춤을 추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었다. 이제는 걷는 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대신 함께 걷기에서 함께 움직이기로 문제가 확장되었다. 내가 만난 독특한 몸짓들은 여전히 연구실이나 병원 같은 한정된 공간에 머물러 있다. 장애인과 휠체어와 로봇이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단을 낮추고 틈을 메꾸고 적절한 인력을 배치한 공간들. 그러나 이 공간을 나서는 순간, 걷기와 타기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이 사라지고로봇과 휠체어가 멈춘다. 우리가 목도한 지하철 시위는 이렇게 멈추게 된 수많은 휠체어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만약 플랫폼이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손쉽게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우리 사회의 플랫폼은 타는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데 꾸준히 실패하고 있다. 걷는 몸에게 열린 플랫폼이 타는 몸에게는 닫혀 있다. 과연 이 플랫폼이 로봇을 탄 몸을 환영할 수 있을까? 같은 시간에 같은 역에서 내리는 승객들처럼, 타는 몸과 걷는 몸이 동시에 오르고 함께 내리는 플랫폼을 상상한다. 이 공동의 몸짓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남은 숙제다. - P51~52



김민호의 [플랫폼들의 갈라지는 시공간]

철학적 관점에서 플랫폼을 바라보는 글이다. 어렵지만,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글이다.


비선형적 읽기가 일상적으로 실현됐다. 총괄적 체계 속으로 회집되지 않는 파편들이 한꺼번에 제공되는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선형적으로 쓰지 않고 선형적으로 읽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텍스트에 체계적 일관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분석은 단편적 감상들로 대체되고 종합은 감상들의 병렬로 갈음되며 단문은 단순한 미감이나 취향을 넘어서 시대의 미덕이 된다. 이것은 우리 개개인의 무능력이 아니라 세계라는 관념 자체의 갱신과 결부되어 있다. 세계는 조물주라는 저자가 쓴 체계적이고 일관된 책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산만한 글의 파편들로 표상된다. - P83



김혜림의 [K 카다시안의 고백]

비평 플랫폼 기획자의 고뇌와 갈등을 담은 소설인 듯 소설 아닌 글이다.


K가 기획한 플랫폼 노마드는 누구나 비평을 쓰고 ‘공유‘할 수 있다는 가치를 흐릿한 미션으로 잡았다. 누구나 글을 쓰고 보낼 수 있다는 생산 행위가 아닌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교환 행위가 셀링 포인트였다. 비평가 윤아랑이 말한 것처럼 이런 종류의 환상은 건방진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든 ~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이 고도로 대중화되는 흐름을 지시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목적어의 자리에 들어갈 것이 여전히 특권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의식이 숨어 있다. 그 누구도 ‘누구든 숨을 쉴 수 있다‘고 굳이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P135



문호영의 [번역을 공유하는 놀이터]

하나의 시를 여러 번역자가 동시에 번역하여 기고하는 번역 플랫폼 잡지 <초과>를 통해 번역의 매력, 번역의 어려움, 번역의 예술을 알게 되는 글이다. 진은영 시인의 시 [달팽이]의 영어 번역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초과》를 읽으면서 나는 번역가들의 선택이 각각의 번역시라는 세계를 직조하는 방식에 감탄했다. 중영문학번역가 제레미 티앙은 번역가를 두 언어나 문화 사이의 ‘다리’로 비유하는 것은 적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원문을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번역하기에, 번역가는 다리처럼 중립적인 개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리라는 오래된 비유 대신 티앙은 번역가를 곡을 해석하는 피아니스트에 빗댄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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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영의 글. 진은영 시인의 시 [달팽이] 영어번역에 대한 이야기.

문호영 - 번역을 교환하는 놀이터

영어로 쓰인 이 소개를 <초과>에 참여하는 번역가 중 한 명인 류승경은 이렇게 옮겼다.

하나만 있으면 그 하나가 모든 게 되어야 한다. 다른 번역의 존재는 번역가를 조금 더 과감하게, 조금 더뻔뻔하게 만들어 준다. 번역은 이렇게만 해야 하는게 아니라 저렇게도 할 수 있는 거니까! 번역이 늘어날수록 번역가의 놀이터도 넓어진다. - P150

그래서 내 번역이 실렸다는 이메일이 도착했을 때 날아갈 듯 기뻤다. 재빨리 PDF를 열어 보니 편집장은 첫 호에 선정된 번역시들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지옥도에서 자리 하나를 꿰차기위해 경쟁하기보다는 짐을 나눠 들 수 있도록, 투고된 - P153

번역문 열 개 모두를 실었습니다!" 웃음이 나왔다. 안도감이 밀려오는 동시에, 그간 내가 상상했던 ‘성취’가 단숨에 증발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쩌면 익숙한 위계를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 번역이 《초과》에 실린다면 그건 누군가의 글보다는 내 번역이 어떤 의미에서든 월등해서, 어떤 기준을 통과해서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편집장의 소개문은 번역에 정답이 없으며, 적어도 이 공간에서는 우열을 따질 필요도 없다는 걸 명백하게 밝혔다. ‘짐을 나눠 들자’라는 문장은 우리 모두가 번역한 「달팽이」의 가장 까다로운 구절인 "집이 아니야 짐이야"
를 향한 윙크이자, 번역이 하나만 있을 때 느끼게 되는 막중한 책임감과는 다른 태도로 번역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1호 서문은 웹진의 이름에 걸맞게 ‘적당한‘, 또는‘알맞은‘ 번역으로 갈무리되지 않는 모든 시도를 향한 초대였다. - P154

《초과》를 읽으면서 나는 번역가들의 선택이 각각의 번역시라는 세계를 직조하는 방식에 감탄했다. 중영문학번역가 제레미 티앙은 번역가를 두 언어나 문화 사이의 ‘다리’로 비유하는 것은 적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원문을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번역하기에, 번역가는 다리처럼 중립적인 개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리라는 오래된 비유 대신 티앙은 번역가를 곡을 해석하는 피아니스트에 빗댄다. - P156

독자가 어떤 즐거움을 얻는지는 모호하다. 새로운 콘텐츠? 읽는 쾌락? 소설가 엘레나 페란테는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독자를 고려하며 작업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읽히기 위해 출판을 한다. 그것이 내가 출판에 - P160

매료되는 유일한 이유이다. 그래서 나는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 내가 아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며, 페이지를 최대한 밀도 높고 최대한 넘기기 쉽게 만든다. 그러나 일단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은 후에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갈 권리가 있다고 본다. 독자를 소비자로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독자는 소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독자의 취향을 맞춰 주는 문학은 저하된 문학이다. 내 목표는 평소와 같은 기대를 낙담시키고 새로운 기대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 P161

눈앞의 제한으로 인해 잊히곤 하는 욕망을 상기시키는 이 질문은 《초과》가 번역가들에게 보내는 초대, ‘하나만이 존재할 때 지게 되는 짐‘을 내려놓고 각자의 해석을 펼쳐 보자는 제안과 공명한다. 동료들과 서로의첫 독자가 되어 이야기를 나눌 때면 각자가 원문의 어떤 요소에 주목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당연히 여겼는지 깨닫게 된다. 나는 후자로부터 특히 많은 것을 배운다. 당연시했던 것은 ‘달리 해석하고 표현할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이기 때문이다. - P162

김예찬 - 잃어버린 시민을 찾아서

모두가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하는 관심 경제 시대에 대중의 관심을 잃은 시민사회단체는 점차 참여와 후원이 감소한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주로 언론을통해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이 알려졌고, 이를 통해 후원회원으로 가입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이 시민사회단체의 중요한 활동이었다. 물론 지금도 어떤 이슈에 대해기자회견을 열거나 보도자료를 배포하면 언론 기사가나온다. 하지만 사람들이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내가 구성한 피드에 올라오지 않는 기사를 찾아 읽지 않고, 기사 제목만 읽고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다. 신문 기사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알리는 일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는 온라인 서명 캠페 - P174

인, 뉴스레터, 심지어 전화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의 연락처를 확보하고 회원을 확보하려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해야 겨우 기존 조직 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 활동가들이 해야 할 일이 더욱 많아진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소규모 단체는 재정을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 P175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폭력 피소 사실이 알려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와 함께 활동했던 선배 세대 활동가 상당수가 개인적인 추모 뜻을 밝혔고, 후배 세대 활동가들은 속으로 불만을 삼켰다. 문제는 추모가 공적인 행위가 되면서 불거졌다. 장례위원회 참여 문제, 추모 성명 발표, 추모 현수막 게시 등을 두고 단체마다 갑론을박이 있었고, 이로 인한 갈등이 때로는 사건 자체에 대한 인식과 판단까지 이어졌다. 문제는 많은 단체에서 이러한 갈등이 충분한 토론으로 해소되지 못하고 서로 이야기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봉합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선배 세대 활동가끼리, 후배 세대 활동가끼리 모여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에 그쳤다.
나 역시 SNS에서 이 주제에 관련해 조용히 ‘팔로우 취소’를 누르거나 술자리에서 화제를 돌리는 일들이 많았다.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지만, 각자가 구독하는 피드가 세대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민사회 역시 부족화 현상을 피하지 못한 셈이다. - P178

구기연 - 인스타스토리로 연대하기

하지만 시민들은 한밤중에 VPN을 이용해 해외의 디아스포라 미디어에 끊임없이 자신들의 영상과 사진을 보냈다. 이란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으며, 영상과 함께 촬영자의 울음과 분노의 목소리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특히 2009년 녹색운동 이후부터 이란 국민들은 위성 미디어를 통해 ‘연대하는 신체들의 힘‘을 인식하게 되었다. 주디스 버틀러는 검열을 피해 가려는 미디어가 거리의 신체들을 보다 주체적으로 만들어 내며, "지역 거리의 현장들은 미디어를 통해 전 지구적으로 시공간을 재현해 낼 수 있음"을 주장한 바 있다. 또한 미디어는 거리의 현장을 보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그 사건과 행동의 일부가 될 때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란의 소셜미디어는 단순한 전달자를 넘어 글로벌 연대성을 끌어내는 정치력을 갖게 되며, 미디어로 매개된 정치로 중요성을 갖는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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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림의 글. 플랫폼 기획자의 고뇌와 갈등




이두갑 - 창작자의 정당한 몫 찾기

편집증적 관찰자이자 수집가이자 분류가이자 분석가인 플랫폼 기업은 그들의 상품, 즉 인간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알기 위해 수많은 투자를 했으며 이제 사람들의 은밀하고 깊은 선호와 선택까지 예측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정보 접근과 이용, 교류에 대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서비스를 전략적으로 제공하며 자신들의 공간에서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매개하고 확장한다. 카카오톡을 통해 사실상 전 국민의 정보를 보유한 카카오는메신저 앱에 대화 중 나눈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는 검색 및 추천 기능을 탑재했다. 대화창의 사람들은 이벤 - P114

트에 참여해 받은 무료 이모티콘을 주고받거나 ‘선물하기‘ 탭에서 생일과 기념일을 챙기기도 한다.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웹툰, 게임 등 콘텐츠 서비스나 간편 결제와 같은 금융 서비스에 가입하는 일도 클릭 몇 번만으로 가능하다. - P115

만화가 사라 앤더슨과 일러스트레이터 켈리 맥커넌, 칼라 오티즈는 ‘스테이블 디퓨전‘을 비롯한 세 개의 이미지 생성 AI 플랫폼에 소를 제기하면서 이들 플랫폼이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원작창작물을 무단으로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법률적 차원에서는 생성형 AI가 창작물을 학습에 사용한 것이 저작권법에서 비판과 풍자, 비평, 뉴스 보도, 교육이나 연구 등의 목적으로 특수하게 허용되는 공정 이용(fairuse)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 P119

나는 여전히 창작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고, 풍요롭고 다양한 창작물을 향유하는 것이 다수의 인간이 원하는 세상이라 믿는다. 이 믿음을 실현하려면 인공지능기술 혁신의 현혹에서 벗어나 창작자의 권리와 플랫폼기업의 책임을 요구하는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인간의 창작물에 대한 정당한 보상 방안을 찾고 창작자들이 플랫폼 기업의 디지털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할 시점이다. - P124

김혜림 - K 카다시안의 고백

K가 기획한 플랫폼 노마드는 누구나 비평을 쓰고 ‘공유‘할 수 있다는 가치를 흐릿한 미션으로 잡았다. 누구나 글을 쓰고 보낼 수 있다는 생산 행위가 아닌 다른이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교환 행위가 셀링 포인트였다. 비평가 윤아랑이 말한 것처럼 이런 종류의 환상은 건방진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든 ~을 할 수 있다’는말은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이 고도로 대중화되는 흐름을 지시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목적어의 자리에 들어갈 것이 여전히 특권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의식이숨어 있다. 그 누구도 ‘누구든 숨을 쉴 수 있다‘고 굳이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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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의 철학적 관점의 글. 어렵지만 흥미롭다.

전현우 - 독점으로 향하는 급행열차

무엇이 그 문제인가? 독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플랫폼의 논리는 독점을 지향한다. 이른바 빅테크의 강고한 지위를 떠올려 보라. 카카오톡의 올가미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독점의 문제는 플랫폼 논의에서 그리 주목되지 않았다. 나는 양면시장(two-sided market) 개념이 플랫폼 논의에서 간과되었기 때문에 이런 빈틈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 P61

이 철도망에서 사회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네트워크 효과에 의존하고, 이 효과는 망이 클수록 커진다. 노선이 많을수록 열차로 갈 수 있는 곳도 늘어나니까. 그런데 이들 노선을 환승하기 쉽게 만들려면 모든 노선을 하나의 사업자가 운영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처럼 사업자가 하나일 때 효율이 극대화되는 상황을 자연독점(natural monopoly)이라고 한다. 망을 하나의 사업자로 통합하면 이용자로서는 두 사업자의 망을 환승할 때 생기는 거래 비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고, 공급자로서는 중복 투자를 방지하여 효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망 산업은 설비규모가 큰 만큼 규모의 경제도 성립한다. 철도는 이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산업이다. - P70

김민호 - 플랫폼들의 갈라지는 시공간

쇼츠나 릴스의 가쁜 호흡에 익숙해진 사람은 롱테이크가 많은 영화를 느긋하게 감상하는 데 곤란함을 겪고, 세 줄 요약에 익숙해진 사람은 장문을 읽어 내지 못한다. 이런 정황은 흔히 지구력의 결핍이나 긴 호흡을견뎌 내지 못하는 개개인의 초조함으로 진단되곤 하지만, 길고 짧음에 입각한 이런 진단은 사태의 복잡성, 더 정확히는 복수성을 개인의 역량 부족으로 치환한다. - P80

관건은 단순한 장단이 아니라 상이한 호흡들의 공존이다. 무언가가 그저 길기 때문에만 힘든 것이 아니다. 일본만화에 젖은 사람이 DC코믹스에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면, 프랑스 철학에 익숙한독자가 독일이나 영미 철학 텍스트에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면, 이는 그것들이 서로전혀 다른 리듬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어느 한 플랫폼의 특정한 콘텐츠가 아니라 잠재적으로 언제나 쇄도하는 플랫폼‘들‘이 우리를 독촉하며, 우리의 시간은 그것들 사이에서 분열되고 있다. 리듬들 사이를 항해하기 위해서는 언제든 스스로의 시간성을 바꿀 채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실로 피곤한 것은 긴호흡 자체라기보다는 이 채비에 기울이는 상시적 노력이다. 역으로 이제 필수적인 문해력(‘디지털 리터러시‘)이란 긴 텍스트를 읽어 내는 능력 같은 것이 아니라 파편적이거나 체계적인 이 다종의 리듬과 호흡들에, 서로 다른 ‘시간들‘에 적절하게 자신을 동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 P81

비선형적 읽기가 일상적으로 실현됐다. 총괄적 체계 속으로 회집되지 않는 파편들이 한꺼번에 제공되는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선형적으로 쓰지 않고 선형적으로 읽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텍스트에 체계적 일관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분석은 단편적 감상들로 대체되고 종합은 감상들의 병렬로 갈음되며 단문은 단순한 미감이나 취향을 넘어서 시대의 미덕이 된다. 이것은 우리 개개인의 무능력이 아니라 세계라는 관념 자체의 갱신과 결부되어 있다. 세계는 조물주라는 저자가쓴 체계적이고 일관된 책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산만한 글의 파편들로 표상된다. - P83

원근의 삭제는 플랫폼의 이상이다. 원근이란 순정하고 객관적인 3차원 공간으로 환원되지 않는 관점적체험의 심도로, 나와의 상호작용 가능성의 질서를 표상한다. 나는 멀리 있는 막대한 태양을 내 눈앞의 조그만 나무보다 더 큰 것으로 체험할 수 없다. 이것은 내가 2미터 앞의 나무와는 금방 충돌할 수 있지만, 1495억 9787만 700미터 떨어져 있는 태양과는 쉽게 그럴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각종 플랫폼들은 태양을 손바닥 위에 가져다주는 걸 목표로 삼는다. ‘마켓컬리’ 광고가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집의 식탁이 곧 이탈리안 레스토랑이고 초밥집이며 프렌치 다이닝이다. 그런가 하면 ‘버블‘이 제공하는 것은 직접적인 친근함의 가상이다. - P84

김유민 - 알고리즘을 대하는 자세

이 글은 루치아노 플로리디의 정보철학에 기대어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세계상을 그려 보고, 그의철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규범적 관계를 탐구한다. 나는 인간이 인공지능 기술을사용할 때 이루어지는 의사 결정의 양도가 가치 판단의 양도를 함축할 가능성이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P96

루치아노 플로리디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인간과 세계를 정보의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플로리디는 현대 정보통신의 발달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의크기를 문명사적 전환의 수준으로, 즉 ‘정보 전환‘으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지성사에는 급진적 전환이 세 번 있었다. 첫째,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둘째, 인간이 모든 생명체의 중심이 아니라는 다윈적 전환, 셋째, 인간의 이성이 투명하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프로이트적 전환. 그리고 그는 네 번째 전환은 인간이 자신을 정보 존재자(informational entity)라고 인식하는 정보 전환이라고 명명한다. 정보 전환과 정보 존재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전제하고 있는 인식론적 방법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P97

정보 세계의 번영을 윤리적 좋음으로 설명하는 것은 인공지능을 선두로 하는 정보통신기술의 번영이 인간 삶의 번영을 조력할 것이라는 입장의 철학적 근거가된다. "글쓰기를 제일 잘하는 저자는 챗지피티도 인간도 아닌 챗지피티를 통찰력 있게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플로리디의 주장은 그의 정보윤리학이 지향하는 규범 질서는 정보통신 기술의 활용을 바탕으로 정보 세계 자체를 번영시키는 것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 P101

기존의 기술이 인간의 신체 편의성을 향상시키는데 주력했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정신 편의성을 향상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의사 결정하기, 알기, 기억하기 처럼 지능과 관련된 일을 나 대신 하게 한다. 이러한 지능 활동의 외주화는 인간이 입력하고 기계가 출력하는 일방향 관계가 아닌, 기계 또한 입력하고 인간에게 특정 출력을 기대하는 양방향 관계를 맺게 한다. 인공지능이 구현된 시스템은 사용자가 기술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결정하고 통제한다. - P105

또는 나의 취향을 잘 분석하여 나에게맞춤화된 결과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알고리즘은 필연적으로 가치 편향되어 있고, 알고리즘 뒤에서 작동하는 의도는 ‘나‘의 복지와는 무관하다. 지속적으로 특정 가치 판단이 전제된 의사 결정에 의존하는 것은 나의 정신 활동에 대한 통제와 자유를 의도치 않게 자발적으로 헌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플랫폼에서 어떤 게시물을 보고 무엇을 살지 선택할 때 누군가의 가치 판단에 끊임없이 영향받고 있음을 지각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되 독립적인 정신 활동을 영위할 균형의 시작점일 것이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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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량의 [걷는 로봇과 타는 사람] 흥미롭다.
내가 관심있는 장애와 플랫폼이라니.
에피에 실린 글도 찾아봐야겠다.

"문제는 인간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자문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계와 사유 그리고
진실은 무엇일 수 있을까?"

미셸 푸코, <말과 사물> - P3

김세영(편집자) - 플랫폼에서 현실감 되찾기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에 따르면 생각은 감각이며, "미심쩍인 것이 우리에게 먼저 주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도무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생각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손쉽게 얻어지는 특정한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나도 몰랐던 욕망을 발견하고 흥미로운 생각을 촉발하는 만남을 원한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잘 질문하는 능력이라기보다는 알고 싶다는 감각을 일깨우는 ‘놀이터‘다. - P13

김리원 - 택배도시에서의 일주일

화요일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주 먼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국가와 도시계획의 의도 아래 매일같이 마주하는 기반 시설인 출근길 인천 송도에서 서울 청량리에 있는 서울시립대까지는 두 시간 30분이 꼬박 걸린다. 아침 6시부터 1호선에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만원전철 안은 격정적인 투쟁의 공간이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흔들리는 손잡이를 동아줄처럼 잡고 있거나, 하차하기 위해 사람들을 헤쳐 나가거나, 앞에 앉은 사람이 혹시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희망을 품고 서로를 염탐하는모습 등은 말 그대로 전장 같다. - P26

쉼 없이 운영되는 플랫폼은 [24시간 사회」의 저자 크라이츠먼이 설명하는 ‘24시간 깨어 있는 사회‘를 만든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직장인 여성이 급증하자가족 구조가 변화하며 사회가 24시간 운용되어야 하는시간적 압력이 발생했다고 얘기한다. 자녀를 둔 25~45세의 일하는 여성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다. 이들은 사회와 가정에서 두 번 근무하기 때문에 항상 낮의 제한된 시간에 쫓기고 24시간 운영되는 사회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새벽배송 서비스를 운영하는 마켓컬리의 주 고객층이 30, 40대의 바쁜 여성이라고 하니 크라이츠먼의 설명이 어느 정도 검증된 셈이다. - P29

강미량 - 걷는 로봇과 타는 사람

나는 오랫동안 이 몸짓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했다. 몸짓에는 일생의 많은 것이 녹아 있다. 타인과 보폭을 맞출 줄 아는 사람은 혼자 멀찍이 앞서 걷는 사람보다 돌봄 경험이 많을 가능성이 높다. 돌봄은 타인에게 시선을 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몸짓 읽기는 타자와 함께 있는 법을 가르쳐 준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과 함께 움직이는 데 익숙한 사람은 바닥을 살핀다. 바퀴를 움직이기에 너무 무른 지면이나 휠라이로 넘기 힘든 턱이 있는 곳을 피하기 위해서다. 몸짓을 읽다보면그 몸짓이 끝나는 경계선을 마주하기도 한다. 2021년 12월부터 지속되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시위는 지하철이 만남의 장소가 아닌 휠체어 타기를 배제하는 장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 P40

그러나 장애학자와 장애운동가의 반응은 차가웠다. 엑소스켈레톤을 이용해 마비 장애인을 걷게 하려는 시도가 정상과 비정상의 위계를 재생산한다는 비판이었다.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대신 개개인의 몸을 교정하는 방식은 보행의 정상성을 공고히 할 뿐이다. 장애학에서는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에 - P42

따른 차별을 비장애중심주의라고 정의하는데, 기술철학자 애슐리 슈는 신기술을 매개로 비장애중심주의가 강화되는 현상을 ‘테크노에이블리즘’이라 부르며 엑소스켈레톤 로봇을 대표적인 예시로 들었다. 엑소스켈레톤을 비판한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이 신기술이 걷기에 대한 사회적 선호를 드러낼 뿐 장애인의 실제 삶을 개선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로봇은 장애인의 취약한 경제적 상황에 비해 너무 비싸고, 밖에서 자유롭게사용할 수 없으며, 대소변 관리와 통증 완화 등 지금 당장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유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에서 로봇을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첨단기기의 의학적 효과가 불명확함에도 비장애중심적인 사회의 선호에 따라 걷도록 요구받는 피해자였다. - P43

인류가 네발 보행에서 두발 보행으로 진화하는 그림은 걷기를 강조하는 비장애중심주의적 구조가 과학에 미치는 영향을 떠올리게 했다. 이 무렵에는 걷기에 너무 비판적이었던 나머지 걷는 몸을 가진 사람은 이런 연구를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할 정도였다. 구체적인 몸짓에서 출발한 연구가 추상적인 이론 속에서 허덕일 즈음 현장 연구가 시작됐다. 2019년 가을이었다. - P45

로봇과 휠체어는 대립하거나 서로를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다. 파일럿 대부분은 지금 당장 휠체어에서 벗어나기 위해 로봇을 사용하지 않았다. 속도, 안전성, 독립성 면에서 로봇보다 나은 휠체어를 더 친숙한 기술로 여겼다. 로봇을 타면 기껏해야 시속 2킬로미터 남짓으로 걸을 뿐이지만 휠체어로는 서너 배 빠르게 움직일수 있다. 또 로봇을 탈 때는 낙상에 대비해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휠체어는 혼자서밀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한 파일럿은 로봇은 "보조 도구"이고 휠체어가 "신체의 일부"라고 표현했다. - P49

나는 걷기를 장애 정치의 포기로, 휠체어를 걷기의 포기로 보기를 멈추었을 때 비로소 다양한 움직임을 몸에 축적한 사람들을 만났다. 휠체어를 타다가 로봇에 옮겨 타 걷는 파일럿들이 있듯이, 로봇을 타다가 훨체어로 옮겨 타 춤을 추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었다. 이제는 걷는 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대신 함께 걷기에서 함께 움직이기로 문제가 확장되었다. 내가 만난 독특한 몸짓들은 여전히 연구실이나 병원 같은 한정된공간에 머물러 있다. 장애인과 휠체어와 로봇이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단을 낮추고 틈을 메꾸고 적절한 인력을 배치한 공간들. 그러나 이 공간을 나서는 순간, 걷기와 타기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이 사라지고로봇과 휠체어가 멈춘다. 우리가 목도한 지하철 시위는이렇게 멈추게 된 수많은 휠체어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만약 플랫폼이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손쉽게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우리 사회의 플랫폼은 타는 사 - P51

람들을 이동시키는 데 꾸준히 실패하고 있다. 걷는 몸에게 열린 플랫폼이 타는 몸에게는 닫혀 있다. 과연 이 플랫폼이 로봇을 탄 몸을 환영할 수 있을까? 같은 시간에 같은 역에서 내리는 승객들처럼, 타는 몸과 걷는 몸이 동시에 오르고 함께 내리는 플랫폼을 상상한다. 이 공동의 몸짓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남은 숙제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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