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영의 글. 진은영 시인의 시 [달팽이] 영어번역에 대한 이야기.

문호영 - 번역을 교환하는 놀이터

영어로 쓰인 이 소개를 <초과>에 참여하는 번역가 중 한 명인 류승경은 이렇게 옮겼다.

하나만 있으면 그 하나가 모든 게 되어야 한다. 다른 번역의 존재는 번역가를 조금 더 과감하게, 조금 더뻔뻔하게 만들어 준다. 번역은 이렇게만 해야 하는게 아니라 저렇게도 할 수 있는 거니까! 번역이 늘어날수록 번역가의 놀이터도 넓어진다. - P150

그래서 내 번역이 실렸다는 이메일이 도착했을 때 날아갈 듯 기뻤다. 재빨리 PDF를 열어 보니 편집장은 첫 호에 선정된 번역시들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지옥도에서 자리 하나를 꿰차기위해 경쟁하기보다는 짐을 나눠 들 수 있도록, 투고된 - P153

번역문 열 개 모두를 실었습니다!" 웃음이 나왔다. 안도감이 밀려오는 동시에, 그간 내가 상상했던 ‘성취’가 단숨에 증발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쩌면 익숙한 위계를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 번역이 《초과》에 실린다면 그건 누군가의 글보다는 내 번역이 어떤 의미에서든 월등해서, 어떤 기준을 통과해서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편집장의 소개문은 번역에 정답이 없으며, 적어도 이 공간에서는 우열을 따질 필요도 없다는 걸 명백하게 밝혔다. ‘짐을 나눠 들자’라는 문장은 우리 모두가 번역한 「달팽이」의 가장 까다로운 구절인 "집이 아니야 짐이야"
를 향한 윙크이자, 번역이 하나만 있을 때 느끼게 되는 막중한 책임감과는 다른 태도로 번역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1호 서문은 웹진의 이름에 걸맞게 ‘적당한‘, 또는‘알맞은‘ 번역으로 갈무리되지 않는 모든 시도를 향한 초대였다. - P154

《초과》를 읽으면서 나는 번역가들의 선택이 각각의 번역시라는 세계를 직조하는 방식에 감탄했다. 중영문학번역가 제레미 티앙은 번역가를 두 언어나 문화 사이의 ‘다리’로 비유하는 것은 적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원문을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번역하기에, 번역가는 다리처럼 중립적인 개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리라는 오래된 비유 대신 티앙은 번역가를 곡을 해석하는 피아니스트에 빗댄다. - P156

독자가 어떤 즐거움을 얻는지는 모호하다. 새로운 콘텐츠? 읽는 쾌락? 소설가 엘레나 페란테는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독자를 고려하며 작업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읽히기 위해 출판을 한다. 그것이 내가 출판에 - P160

매료되는 유일한 이유이다. 그래서 나는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 내가 아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며, 페이지를 최대한 밀도 높고 최대한 넘기기 쉽게 만든다. 그러나 일단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은 후에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갈 권리가 있다고 본다. 독자를 소비자로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독자는 소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독자의 취향을 맞춰 주는 문학은 저하된 문학이다. 내 목표는 평소와 같은 기대를 낙담시키고 새로운 기대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 P161

눈앞의 제한으로 인해 잊히곤 하는 욕망을 상기시키는 이 질문은 《초과》가 번역가들에게 보내는 초대, ‘하나만이 존재할 때 지게 되는 짐‘을 내려놓고 각자의 해석을 펼쳐 보자는 제안과 공명한다. 동료들과 서로의첫 독자가 되어 이야기를 나눌 때면 각자가 원문의 어떤 요소에 주목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당연히 여겼는지 깨닫게 된다. 나는 후자로부터 특히 많은 것을 배운다. 당연시했던 것은 ‘달리 해석하고 표현할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이기 때문이다. - P162

김예찬 - 잃어버린 시민을 찾아서

모두가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하는 관심 경제 시대에 대중의 관심을 잃은 시민사회단체는 점차 참여와 후원이 감소한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주로 언론을통해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이 알려졌고, 이를 통해 후원회원으로 가입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이 시민사회단체의 중요한 활동이었다. 물론 지금도 어떤 이슈에 대해기자회견을 열거나 보도자료를 배포하면 언론 기사가나온다. 하지만 사람들이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내가 구성한 피드에 올라오지 않는 기사를 찾아 읽지 않고, 기사 제목만 읽고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다. 신문 기사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알리는 일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는 온라인 서명 캠페 - P174

인, 뉴스레터, 심지어 전화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의 연락처를 확보하고 회원을 확보하려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해야 겨우 기존 조직 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 활동가들이 해야 할 일이 더욱 많아진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소규모 단체는 재정을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 P175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폭력 피소 사실이 알려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와 함께 활동했던 선배 세대 활동가 상당수가 개인적인 추모 뜻을 밝혔고, 후배 세대 활동가들은 속으로 불만을 삼켰다. 문제는 추모가 공적인 행위가 되면서 불거졌다. 장례위원회 참여 문제, 추모 성명 발표, 추모 현수막 게시 등을 두고 단체마다 갑론을박이 있었고, 이로 인한 갈등이 때로는 사건 자체에 대한 인식과 판단까지 이어졌다. 문제는 많은 단체에서 이러한 갈등이 충분한 토론으로 해소되지 못하고 서로 이야기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봉합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선배 세대 활동가끼리, 후배 세대 활동가끼리 모여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에 그쳤다.
나 역시 SNS에서 이 주제에 관련해 조용히 ‘팔로우 취소’를 누르거나 술자리에서 화제를 돌리는 일들이 많았다.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지만, 각자가 구독하는 피드가 세대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민사회 역시 부족화 현상을 피하지 못한 셈이다. - P178

구기연 - 인스타스토리로 연대하기

하지만 시민들은 한밤중에 VPN을 이용해 해외의 디아스포라 미디어에 끊임없이 자신들의 영상과 사진을 보냈다. 이란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으며, 영상과 함께 촬영자의 울음과 분노의 목소리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특히 2009년 녹색운동 이후부터 이란 국민들은 위성 미디어를 통해 ‘연대하는 신체들의 힘‘을 인식하게 되었다. 주디스 버틀러는 검열을 피해 가려는 미디어가 거리의 신체들을 보다 주체적으로 만들어 내며, "지역 거리의 현장들은 미디어를 통해 전 지구적으로 시공간을 재현해 낼 수 있음"을 주장한 바 있다. 또한 미디어는 거리의 현장을 보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그 사건과 행동의 일부가 될 때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란의 소셜미디어는 단순한 전달자를 넘어 글로벌 연대성을 끌어내는 정치력을 갖게 되며, 미디어로 매개된 정치로 중요성을 갖는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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