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다니는 사람도, 다니지 않은 사람도, 다녔던 사람도 벗어나지 못하는 ‘대학’이라는 굴레.
기울어지고 있는 상아탑을
지탱하며? 변형하며? 살아가는 대학 안팎의 사람들.
이번 한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편은 신하영, 유리관 저자의 글이다.
신하영 – 혼란스러운 강의실 만들기
대학 강의실에서 용감하게
페미니즘 등 민감한 주제를 논하는 ‘혼란스러운 강의실 만들기’를
실현하고 있는신하영 저자의 글. 이런 강의, 이런 선생님이
많아지길. 아. 그렇지만 나조차도 이런 강의 안들었다고, 안들을 것 같다고 반성.
"페미니스트 강의실은 갈등과 긴장의 공간이자 때로는 끊이지 않는 적대감의 공간이 된다. 서로가 가진 차이점을 대면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 관한 생각을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갈등을 무서워하기보다는 새로운 생각을 위해, 그리고 성장을 위해 갈등을 촉매제로 사용해야 한다." [1]
[1] 벨 훅스, 윤은진 옮김,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모티브북, 2008), 138-139쪽 - P59
대학의 위기, 더 정확히는 인문학의 위기 속에 여성주의 관점의 전공 수업을 유지하려 한 투사 같은 교수자들도 있었다. 철학과의 ‘여성주의 철학‘, 사회학과의 ‘젠더사회학‘ 전공 수업은 다양한 분과 학문을 바라보는 세계관으로서의 여성주의를 소개하려는 시도였다.[7]
[7] 전공과목으로 여성주의 철학을 개설한 한림대학교 철학과 고(故)장춘익 교수의 교육 실천은 다음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탁선미 외, 장춘익교육실천연구회 엮음, <삶을 바꾼 페미니즘 강의실>(2022, 곰출판) - P63
유리관 –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
스스로를 교정공이라고
일컫는, 대학전문서적출판사의 아웃소싱 편집회사에서 일하는 교정노동자 유리관 저자의 탄식과 유머가 돋보이는, 높으신(?) 교수님들의 글을 상대해야 하는 교정노동자의 고뇌와 고충이
절절하게 베어 있는 글(이 글을 교수님들이 보신다면? 설마
가명이겠지? 하는 생각이).
이런 황당한 이야기.
얼마 전 인터넷에서, 실험용 쥐 rat을 ‘랫드‘라고 부르는 과학계의 해괴한 표기법에 대한 이야기를 봤다.[1] ‘랫드’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어쩌면 내가, 나조차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문제에 대해 약간은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직업적으로 이런 일에는 나도 약간의 책임감을 느낀다. ‘랫드’는 물론 일하다가 종종 마주치는 단어다. 나도 처음 봤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말이 서로 통할 수 있도록, 또한 책의 바깥과 안의 말이 서로 통할 수 있도록, 정해진 규범을 따르거나 규범을 정해 고치는 것이 우리 교정공의 일이다. 기본적으로 ‘랫드’ 같은 게 나오면 표기법에 맞도록 다 고쳐야 맞는다.
[1] "가장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과학용어 중에 실험용 쥐 rat를 "랫드"라는 해괴한 표기로 쓰는 전통이 있음. 왜 이걸 랫드라고 쓰는지 아무도 모름. 근데 교과서 같은 데도 저렇게 쓴 책 많음. 심지어 국가 법령 같은 데서도 저렇게 씀. 그냥 단체로 이상한 표기인 걸 다 알면서도 그냥 다 같이 틀리는 거임", 곽재식(@JaesikKwak), 2022년 10월 6일, 오후 10:38. Tweet. - P197
직업에 따른 임금 격차, 정규직 여부에 따른 임금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한, 출생률이 떨어져도, 대학이 망해도, 학벌주의를 지향하는 욕구는, 의과대학, 상위대학, 인서울대학을
향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당장 나조차도 몇 년 남지 않은 수험생 부모가 되려니 마음이
움찔움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