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다니는 사람도, 다니지 않은 사람도, 다녔던 사람도 벗어나지 못하는 대학이라는 굴레.

기울어지고 있는 상아탑을 지탱하며? 변형하며? 살아가는 대학 안팎의 사람들.


이번 한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편은 신하영, 유리관 저자의 글이다.


신하영 혼란스러운 강의실 만들기


대학 강의실에서 용감하게 페미니즘 등 민감한 주제를 논하는 혼란스러운 강의실 만들기를 실현하고 있는신하영 저자의 글. 이런 강의, 이런 선생님이 많아지길. . 그렇지만 나조차도 이런 강의 안들었다고, 안들을 것 같다고 반성.


"페미니스트 강의실은 갈등과 긴장의 공간이자 때로는 끊이지 않는 적대감의 공간이 된다서로가 가진 차이점을 대면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 관한 생각을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이다갈등을 무서워하기보다는 새로운 생각을 위해그리고 성장을 위해 갈등을 촉매제로 사용해야 한다." [1]


[1] 벨 훅스윤은진 옮김『벨 훅스경계 넘기를 가르치기』(모티브북, 2008), 138-139 - P59


대학의 위기더 정확히는 인문학의 위기 속에 여성주의 관점의 전공 수업을 유지하려 한 투사 같은 교수자들도 있었다철학과의 ‘여성주의 철학‘사회학과의 ‘젠더사회학‘ 전공 수업은 다양한 분과 학문을 바라보는 세계관으로서의 여성주의를 소개하려는 시도였다.[7]


[7] 전공과목으로 여성주의 철학을 개설한 한림대학교 철학과 고()장춘익 교수의 교육 실천은 다음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탁선미 외장춘익교육실천연구회 엮음, <삶을 바꾼 페미니즘 강의실>(2022, 곰출판) - P63



유리관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


스스로를 교정공이라고 일컫는, 대학전문서적출판사의 아웃소싱 편집회사에서 일하는 교정노동자 유리관 저자의 탄식과 유머가 돋보이는, 높으신(?) 교수님들의 글을 상대해야 하는 교정노동자의 고뇌와 고충이 절절하게 베어 있는 글(이 글을 교수님들이 보신다면? 설마 가명이겠지? 하는 생각이).


이런 황당한 이야기.


얼마 전 인터넷에서실험용 쥐 rat을 ‘랫드‘라고 부르는 과학계의 해괴한 표기법에 대한 이야기를 봤다.[1] ‘랫드’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어쩌면 내가나조차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이 문제에 대해 약간은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직업적으로 이런 일에는 나도 약간의 책임감을 느낀다‘랫드’는 물론 일하다가 종종 마주치는 단어다나도 처음 봤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책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말이 서로 통할 수 있도록또한 책의 바깥과 안의 말이 서로 통할 수 있도록정해진 규범을 따르거나 규범을 정해 고치는 것이 우리 교정공의 일이다기본적으로 ‘랫드’ 같은 게 나오면 표기법에 맞도록 다 고쳐야 맞는다.


[1] "가장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과학용어 중에 실험용 쥐 rat "랫드"라는 해괴한 표기로 쓰는 전통이 있음왜 이걸 랫드라고 쓰는지 아무도 모름근데 교과서 같은 데도 저렇게 쓴 책 많음심지어 국가 법령 같은 데서도 저렇게 씀그냥 단체로 이상한 표기인 걸 다 알면서도 그냥 다 같이 틀리는 거임", 곽재식(@JaesikKwak), 2022 10 6오후 10:38. Tweet. - P197


직업에 따른 임금 격차, 정규직 여부에 따른 임금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한, 출생률이 떨어져도, 대학이 망해도, 학벌주의를 지향하는 욕구는, 의과대학, 상위대학, 인서울대학을 향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당장 나조차도 몇 년 남지 않은 수험생 부모가 되려니 마음이 움찔움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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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0호 대학 별책부록. 공부하는 일


공부란 결국 자기 질문을 가지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임을.

여태껏 나에게는 그 질문이 없었다.

그래서 공부하고 싶다공부나 해볼까 라고 말만 했지정작 공부는 하지 않았던 듯.

질문을 찾는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와 생업을 함께 유지하기 위한 고군분투.

생계를 위해 학원 강사 등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기도 하고,

신념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말자는 기준을 가지고 생계를 유지 하기도 하고.

특정 계급만이 공부할 수 있다는 말.

최소한 주거 문제는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다는 말.


인문사회 계열 대학원은 이공계 대학원처럼 진학을 하면 생계가 해결되는 시스템이 아니고, 10여년을 쏟아부어 박사학위까지 마친다고 해도 가질 수 있는 직업은 저임금 비전임교원 정도이죠. 자신이든 가족이든 누군가를 부양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대학원에 오게 돼요. 이런 환경에서는 인문사회 연구자들이 자연히 특정 계급에 편중될 수밖에 없죠. 물론 이건 본업과 작업을 병행하는 모든 분야의 창작자들이 가진 고충이기도 하니, 자리만 바꿔서 똑같은 일을 계속 겪고 있는 셈이에요. 아직 작업을 지속하는 학부 동료들은 모두 생계 문제, 최소한 주거 문제가 없던 사람이라는 생각도 해요. - P79 미학 연구자 남수빈


<여성, 인종, 계급> 정희진 선생님의 해제에도 언급된 지식 생산은 중산층에서 이루어진다는 말과도 연결되는 지점.


페미니즘뿐 아니라 중산층의 경험은 모든 지식의 기반이다삶이 지나치게 고달픈 이들이나 부자들은 언어를 생산할 여력이나 이유가 없다모든 언어지식은 중산층의 삶의 경험에 기반한다(마르크스엥겔스레닌마오쩌둥 등도 마찬가지다). 이는 기존의 페미니즘이 모두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존의 서구 페미니즘을 상대화하고내가 선 자리로컬에 맞는 지속적인 재해석과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 P21 <여성인종계급정희진 해제


6명의 인터뷰이 중 미학 연구자 남수빈의 인터뷰가 가장 흥미로웠다.


저에게 미적 경험은 자아와 세계주체와 대상 사이의 분리가 사라지는 경험이에요종교적 경험도 그렇고요스무 살쯤에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었는데거기에서는 내가 세계에 대해 어떤 것도 알 수 없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인간의 물음에 세계가 응답하지 않는 상황을 문제로 설정하고 있거든요그런데 인간과 세계 사이의 그 거대한 벽이 사라지는 특별한 순간이 있고그게 바로 미적 경험이라고 생각했어요. - P69 남수빈

저는 이 구절이 울프가 그리려던 것을 그대로 설명하는 말이라고 느꼈어요『등대로』가 시적 언어로 더듬는 지속과 영원성의 경험은 결국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세상의 시간 밖에서 어두운 쐐기로 응집되었다가 빛과 침묵 속에서 경계를 잃고 티끌과 하나 되는그런 존재의 순간들이요종교학에 대한 관심은 이처럼 미적 경험이 종교적 경험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에서 생긴 것이었고종교적 경험을 해명한다면 미적 경험의 본성에 어느 정도 닿을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 P71 남수빈

대학 이후의 공부에서는 수용한 지식을 자신의 언어로 구성하여 짜임새를 갖춘 글로 조직해 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기 때문에읽은 것을 요약 정리하는 일이 중요했어요평소 이미지로 사고하고 기억하는 편이라, 도식을 그려 보고 구조를 이해할 때도 많아서 도식화도 많이 사용하고요난해한 철학 원전을 많이 접하게 된 이후부터는 낯선 개념들을 우선 숙지하려 하는데요맥락에서 떨어진 정의 설명만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체적인 문맥 속에 두고 여러 번 읽으면서 의미를 파악합니다누구나 할 법한 뻔한 이야기겠지만 그 이상 특별한 방법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 P76~77 남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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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현아, 대학이 해방구가 될 때
마쓰모토 하지메 <가난뱅이의 역습>

6. 유상운, 탐구는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7. 소진형, ‘실용적인 학문’의 성립 사정

8. 황민호, 졸업하기 싫은 학교

9. 현수진, 대학 안팎에서의 역사학

10. 유리관,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

강의 노동은 그 대가가 철저히 ‘강의 시간만을 노동 시간으로 계산하여 시급으로 책정되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노동이 아닌‘ 일들이 따라붙는다. 새로운 강의를 개발해도 개발에 들어간 시간은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고, 그렇게 개발한 강의는 정규직 교수의 것이 되며 강사 배정 역시 정규직 교수의 권한이다. 강사는 강의를 만들고 연구하고 실행하지만 그 강의에 대한 어떤 권한도 가질 수 없다. 심지어 수강생들의 과제와 시험 채점도 강의 시간에 포함되지 않기에 당연히 시급에 산정되지 않는다. 그 외에 학술대회를 열고 장소를대여하고 학회지를 편집하고 논문을 수합하고 심사위 - P104

원을 섭외하는 등 ‘학계‘를 움직이기 위한 수많은 일들또한 노동이 아니었다.
나는 몇 명의 정규직과 수많은 비정규직 및 하청노동자들이 벌처럼 움직여 유지되는 이 대학이 어떤곳인지 새로이 깨달았다. 대학이 매혹적인 공간이라고여겼던 것은 나의 착각이자 짝사랑이었다. 노동자로서다시 마주한 대학은 잔인한 공간이었다.

- 신현아 - P105

실학의 반대에 있다고 여겨지는 성리학에서 가장중요한 학자인 주희(朱熹)도 자신이 하는 성리학이 실학이라고 단언했다. 중국 남송 대에 주희는 문장의 표현이나 형식에 방점을 두는 사장학, 즉 전통적인 관점의 문학으로는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성리학이야말로 개인의 윤리와 국가의 통치를 가 - P136

능하게 하는 실학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실학과 실용적 학문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실‘ 그리고 ‘실용적‘이라는 말은 그 외연이 넓어져 뉘앙스만 남고 정확한 의미를 간취하기 어려운 단어가 된다. - P137

‘실’, ‘실학’, ‘실용적 학문‘은 동아시아에서 몇백 년동안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학문을 비판하는 정치적 단어였다. 12세기에 주희는 아름다운 문장 쓰기를 정치라고 착각하는 기존의 정치가들을 비판하면서 실학이라는 말을 썼고, 사회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했던19세기 지식인들은 변화를 지체시키는 전통적 지식인들을 비판하면서 실용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용적 학문은 배우기만 하면 실용성이 생기는것이 아니라, 제도와 조건이 마련되어 있을 때에만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 소진형 - P147

이러한 지역 언론의 특성은 대학 교육을 수행하는초석이 된다. 비판적 사고와 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무장해 끊임없이 취재하고 글로 쓰기 때문이다. 주요언론의 지면은 연예인 가십과 소모적인 정치인 이야기로 채워지기 일쑤고, 지역의 이슈는 쉽게 사장된다. 반면에 지역 신문은 민주주의를 담보한 언론이다.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에 대한 유용한 정보가 담겨있으며, 일상 속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솔루션 저널리즘[5]이다. 지역 신문은 자발적으로 이슈를 발굴해새로운 담론을 형성한다.

[5] 문제 중심 저널리즘이 사회 문제를 폭로, 반복적으로 조명하는 것에 주목하는 반면 솔루션 저널리즘은 동일한 문제가 올바른 대응을 통해해결된 구체적 사례와 그 증거를 독자에게 제시함으로써 문제에 책임이있는 집단에게 무언의 압력을 줄 수 있는 준거점을 마련한다. 이규원·이미나, 『솔루션 저널리즘』(커뮤니케이션북스, 2021) 참고.

- 황민호 - P160

그러나 학계는 대중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공공역사(publichistory)라는 개념이 대두되었다. 공공역사 개념은 거칠게 말하자면 대학 바깥에 존재하는 공중(公衆)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종류의 역사 생산 및 실천을 의미한다. 학교의 역사 교육과 박물관의 역사 전시, 역사다큐멘터리와 사극, 유튜브의 역사 콘텐츠까지 공공역 - P178

사가 포괄하는 범위는 매우 넓고 다양하다. 공공역사는 학계가 독점하던 역사 지식 및 생산의 독점적 권위를 해체하고 역사의 민주화를 추구한다.

- 현수진 - P179

그보다도 큰 장탄식이 나오게 만드는 것은 아무리봐도 한 인간의 문장이 아닌 경우다. 어떤 교수님들의원고는 아무리 봐도 거기 적힌 이름보다 많은 사람이쓴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것을 모를 수 없다. 도대체교수님 아닌 누가 그 원고들을 썼단 말인가? 그것은 모른다. 대학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이 아실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들이 썼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번역기의일차 생산물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뭔가를 원고라며넘기는 교수님들도 있다. 이 학부 교재라는 것은 아예별거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걸까? 더 중요한 책은 이렇게 안 하실까? 아니면 이 교수님의 원고는 일괄적으로 다 이런 식인데, 단지 책의 중요도에 따라 교정 - P194

공의 수준이 달라지는 걸까? 여러모로 봤을 때, 적어도교재를 쓰는 일에 있어서는, 이 교수님들이 노고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도대체 얼마를 드려야 노고에 합당하다고 여기실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알 수있는 것은 많지 않다. 좀 기분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교수님들의 얼굴이 궁금해 꼭 한 번 검색해 본다.(하여튼 스무 교수님들 중 두엇의 얼굴은 꼭 검색해 보게 된다.) - P195

얼마 전 인터넷에서, 실험용 쥐 rat을 ‘랫드‘라고 부르는 과학계의 해괴한 표기법에 대한 이야기를 봤다.[1] ‘랫드’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어쩌면 내가, 나조차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문제에 대해 약간은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직업적으로 이런 일에는 나도 약간의 책임감을 느낀다. ‘랫드’는 물론 일하다가 종종 마주치는 단어다. 나도 처음 봤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말이 서로 통할 수 있도록, 또한 책의 바깥과 안의 말이 서로 통할 수 있도록, 정해진 규범을 따르거나 규범을 정해 고치는 것이 우리 교정공의 일이다. 기본적으로 ‘랫드’ 같은 게 나오면 표기법에 맞도록 다 고쳐야 맞는다.


[1] "가장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과학용어 중에 실험용 쥐 rat를 "랫드"라는 해괴한 표기로 쓰는 전통이 있음. 왜 이걸 랫드라고 쓰는지 아무도 모름. 근데 교과서 같은 데도 저렇게 쓴 책 많음. 심지어 국가 법령 같은 데서도 저렇게 씀. 그냥 단체로 이상한 표기인 걸 다 알면서도 그냥 다 같이 틀리는 거임", 곽재식(@JaesikKwak), 2022년 10월 6일, 오후 10:38. Tweet. - P197

자, 사장님은 나를 왼쪽으로 당기고 동료님들은 나를오른쪽으로 당긴다. 원청업체는 앞에서 나를 당기고교수님들은 뒤에서 나를 당긴다.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나를 아래로 당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위로 당긴다.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교정지를 양쪽으로 동시에 당기고 싶다. 이것이 내가 만들고 있는 책이 당하고 있는 얼차려의 구성이고 가련한 예비-책들이 처한 상황이다. 말 못하는 책들, 그러나 만들어져야만 하는. - P200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 나 교정공이란 이를테면 사라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교정공이 개입할 수있는 지면은 오늘날 점점 좁아지고 있다. 또는 교정공이 개입할 수 없는 지면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아와 어의 다름도 점차 사라지는 듯, 아와 어가 다르지 않다고 우기는 사람들과 어와 어가 다르다고 우기는 사람들 사이의 다름도 사라지는 중인 것만 같다. 가끔 우리가 견딜 수 없이 산산조각이 났다는 생각이 든다. 합쳐졌던 적이라고는 처음부터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만 같으니 이상한 생각이다. 대체 어떻게 감히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겠니? 말하는 얼굴들을 보면 그야말로 박살이 나 있다. 전에도 이랬던가? 이러지 않았던가? 우리 산산조각의 양상이 과연 바뀌는 것이라면, 산산조각을 대하는 우리의 양상도 분명 바뀌는 것이겠다. 내가 지금 맞게 대하고 있나?
글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박살 난 우리 사이에 쌓이고 녹고 쌓이기를 반복하며, 서로 합쳐지려고 이어지려고 이를 악문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틀림없이 그렇다.

- 유리관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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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3-10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랫드 ㅋㅋㅋ

서곡 2023-03-10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인간의 문장이 아닌 경우 ㅎㅎㅎ

햇살과함께 2023-03-10 22:23   좋아요 1 | URL
교정공의 애환:;; 대학출판사 책이 왜 그렇게 편집이 엉망인지 이해가 되는 글입니다..
 

3. 신하영, 혼란스러운 강의실 만들기
벨 훅스,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
탁선미 외, 장춘익교육실천연구회 엮음, <삶을 바꾼 페미니즘 강의실>

4. 우재형, 노동문제 동아리 활동기

"페미니스트 강의실은 갈등과 긴장의 공간이자 때로는 끊이지 않는 적대감의 공간이 된다. 서로가 가진 차이점을 대면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 관한 생각을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갈등을 무서워하기보다는 새로운 생각을 위해, 그리고 성장을 위해 갈등을 촉매제로 사용해야 한다." [1]

[1] 벨 훅스, 윤은진 옮김,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모티브북,
2008), 138-139쪽 - P59

대학의 위기, 더 정확히는 인문학의 위기 속에 여성주의 관점의 전공 수업을 유지하려 한 투사 같은 교수자들도 있었다. 철학과의 ‘여성주의 철학‘, 사회학과의 ‘젠더사회학‘ 전공 수업은 다양한 분과 학문을 바라보는 세계관으로서의 여성주의를 소개하려는 시도였다.[7]

[7] 전공과목으로 여성주의 철학을 개설한 한림대학교 철학과 고(故)장춘익 교수의 교육 실천은 다음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탁선미 외, 장춘익교육실천연구회 엮음, <삶을 바꾼 페미니즘 강의실>(2022, 곰출판) - P63

20대 초중반의 남녀 대학생들이 성인기로 진입하기 전 준비 단계라는 것을 가정한다면 그 시기의 생각과 주장으로 이들의 정의로움 혹은 선악을 판명해 버린다는 것은 위험한 접근이다. 10대 시절 자신만의 - P67

사고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적어도 대학에서 성인으로 잘 살기 위한 기술을 익혀야 한다. 선택의 기준, 세상의 작동방식, 타인과 공존하는 법, 갈등을 해결하는 법 같은 것들 말이다. 후기 청소년기 대학생들이 마주한 넓고 다양한 생각과 현실 앞에서 느끼는 분노와 억울함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며 그 마음을설명해 주는 이론과 개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바로 페미니즘과 여성학, 여성주의 관점이라는 것을 나는 알려 주고 싶었다. - P68

내가 특히 놀란 것은 여학생들조차 ‘여자인 나를 자꾸 강조하게 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공정함에 민감한 세대의 여학생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정하는 것조차 공정이라는 문법에서 어긋나는 것으로 여겼다. 낯설고 어쩐지 싫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가 무엇인지 알려 주기 위한 첫 단계는 친숙함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 P70

어찌 보면 황당한 일화이지만 내게는 이러한 갈등과 긴장 하나하나가 사소하지 않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반발심과 불편함은 그 자체로 교육적 의미가 있다. 페미니즘 교육은 고정된 지식을 전달하는 강 - P71

의가 아니라 세계관을 익히며 연습하는 워크숍에 가깝다. - P72

그럼에도 나는 이 혼돈을 더 버티고자 한다. 여성·학 수업이 대학 공동체에서 멀어진 과거가 남긴 교훈은 여성학이 하나의 세계관으로서 배움의 주체들에게세상을 보는 감각을 깨우고 그 세상과 화해할 자원을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안전한 공간에서 느끼는 혼란함은 학생들이 성인이 되기 전 다른 관점, 다른 감각을 상상할 수 있는 틈을 허락할 것이다. 아직 성인으로온전히 자리 잡지 못한 후기 청소년기 대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학습과 연습의 기회, 아직은 그래도 되는 공간과 시간이다.

- 신하영, 혼란스러운 강의실 만들기 - P73

내가 이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의 이념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그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는말은 결코 아니다. 단지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마땅히 따를 만한 정합적인 논증이 마련되지않는 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섣불리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다. 나는 아직 노동이 인간의 다른 활동에 비하여 특별한 의미나 우위를 갖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 P87

이러한 나의 입장에 대해 같은 동아리의 어느 부원은 지나치게 최소주의적이고 보수적인 견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학내의 노동 환경은 ‘최소한의 인권‘마저도 보장하는 데 실패하지 않았던가? 철학자 칼 포퍼는 이렇게 썼다.

추상적인 선의 실현보다는 구체적인 악의 제거에 집중하라.

- 우재형, 노동문제 동아리 활동기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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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맹미선(편집자)

1. 난다, 학력무관의 세계를 향하여

2. 김종은, 익명을 설득하는 학생 자치

방송과 유튜브, 해외 사이트에서 수많은 지식 콘텐츠를 골라접할 수 있는 지금에 와서는 지식과 진리를 생산한다는 대학의위용도 예전 같지 않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문제를 안은 채로 혹은 일부 문제를 개선하며 대학의 기능은 분명 다양해졌다. 어떤이는 커리어 전환을 위해 수능을 다시 치거나 파트타임 대학원에들어가고, 누군가는 오로지 배움을 위해 원격 대학에 들어간다. 입시 결과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나의 필요로 가는 대학은 학습콘텐츠를 통한 배움과 무엇이 같고 다를까? 사회 속 실전 경험이나의 욕구를 채우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좋은 대학을 판별하고 나에게 필요한 배움을 구할 수 있을까?
《한편》이 제안하는 관점은 대학을 생애 주기 속 경험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 맹미선(편집자) - P9

학력 말고 진짜 능력을 보자는 말과 공부 못하면목소리 내지 말라는 말. 이 둘에 담긴 사고방식은 사실비슷하다. 한쪽에서는 시험 성적으로 노력과 능력을 증명하고 나서야 현실을 비판할 자격을 인정해 주겠다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성적 말고 다른 능력, 창의성이나재능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로 우리의 비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능력 있는 사람들만이 인정받고 성공할 수있다는 생각은 양쪽 모두에 당연하게 깔려 있었다. - P25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와 학력 차별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학력 차별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일자곧장 드러났다. 정부가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려 하자 ‘시험 성적이야말로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능력을 보는 것‘이며, ‘열심히 공부한 결과로 대학에 진학했는데 학력을 안 보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반대 여론이 일어났다. 2021년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안이논의될 때 교육부는 학력이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달라지고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라며 학력을차별금지 사유에서 제외하자는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그러므로 능력주의 자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학력 차별도 해결될 수 없다. - P27

대학을 거부한다는 선언도,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주장도 많은 이들에게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쨌든 모두가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일 아닌가 하는 의아함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단순히 뛰어난 것이 좋다거나 개개인이 역량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믿음과는 다르다. 능력주의는 능력을 측정해 사람을 서열화하며 차별하는 사회적ㅍ제도이자 이를 공정하다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다.
다양한 능력의 차이를 두고 협력하고 공존해야할 이 - P28

유가 아니라 차별의 이유로 만들기 때문에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대학을 거부하고 능력주의에 반대하는나는 교육과 배움을 거부하거나 무능을 지향하지 않는다. 나는 경쟁과 차별에서 해방된 교육을 요구하고대학 등 학교에만 갇히지 않는 배움을 추구한다. 다양한 능력이 평등하게 존중받으며 발휘되고, 특정한 능력의 부족이나 약함이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 난다, 학력무관의 세계를 향하여 - P29

오늘날 대학 사회에서 페미니즘이란 주홍 글씨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조롱처럼 사용하기도 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을 말하기에 앞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으로 운을 띄워야만 할 때도 있다. - P44

누군가는 나에게 그렇게 열심히 해서 무엇인가 변했는지 묻는다. 당연히 많은 것이 변했다. 행동은 어떤 형태로든 결과가 되어 돌아왔다. 얼렁뚱땅 넘어갈 수있는 일이라도 절차를 거쳐 수행하고, 작은 것이라도허투루 넘기지 않고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 이후의 나를 정의하는 토대가 되었다. 끔찍하게 바빠서, 혹은 무서워서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 자부심이자 자신감으로 남았다.

- 김종은, 익명을 설득하는 학생 자치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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