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11호 : 플랫폼 인문 잡지 한편 11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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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의 [독점으로 향하는 급행열차]에 나온 아래 표를 보자.

플랫폼이라는 용어가 최근에, 단기간 동안, 얼마나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는지, 얼마나 핫한 용어인지 알 수 있다.

팬데믹과 함께 온라인 플랫폼, 배달 플랫폼, 플랫폼 노동자, 메타버스 플랫폼, 플랫폼 비즈니스 등 이제 플랫폼이라는 용어 없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설명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이번 호에는 흥미를 끄는 글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에게 흥미로웠던 글은, 


강미량의 [걷는 로봇과 타는 사람]

가장 흥미로운 글이었다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장애와 플랫폼이라니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지하철 플랫폼을 생각하게 하는 주제다.


나는 걷기를 장애 정치의 포기로, 휠체어를 걷기의 포기로 보기를 멈추었을 때 비로소 다양한 움직임을 몸에 축적한 사람들을 만났다. 휠체어를 타다가 로봇에 옮겨 타 걷는 파일럿들이 있듯이, 로봇을 타다가 훨체어로 옮겨 타 춤을 추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었다. 이제는 걷는 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대신 함께 걷기에서 함께 움직이기로 문제가 확장되었다. 내가 만난 독특한 몸짓들은 여전히 연구실이나 병원 같은 한정된 공간에 머물러 있다. 장애인과 휠체어와 로봇이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단을 낮추고 틈을 메꾸고 적절한 인력을 배치한 공간들. 그러나 이 공간을 나서는 순간, 걷기와 타기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이 사라지고로봇과 휠체어가 멈춘다. 우리가 목도한 지하철 시위는 이렇게 멈추게 된 수많은 휠체어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만약 플랫폼이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손쉽게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우리 사회의 플랫폼은 타는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데 꾸준히 실패하고 있다. 걷는 몸에게 열린 플랫폼이 타는 몸에게는 닫혀 있다. 과연 이 플랫폼이 로봇을 탄 몸을 환영할 수 있을까? 같은 시간에 같은 역에서 내리는 승객들처럼, 타는 몸과 걷는 몸이 동시에 오르고 함께 내리는 플랫폼을 상상한다. 이 공동의 몸짓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남은 숙제다. - P51~52



김민호의 [플랫폼들의 갈라지는 시공간]

철학적 관점에서 플랫폼을 바라보는 글이다. 어렵지만,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글이다.


비선형적 읽기가 일상적으로 실현됐다. 총괄적 체계 속으로 회집되지 않는 파편들이 한꺼번에 제공되는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선형적으로 쓰지 않고 선형적으로 읽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텍스트에 체계적 일관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분석은 단편적 감상들로 대체되고 종합은 감상들의 병렬로 갈음되며 단문은 단순한 미감이나 취향을 넘어서 시대의 미덕이 된다. 이것은 우리 개개인의 무능력이 아니라 세계라는 관념 자체의 갱신과 결부되어 있다. 세계는 조물주라는 저자가 쓴 체계적이고 일관된 책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산만한 글의 파편들로 표상된다. - P83



김혜림의 [K 카다시안의 고백]

비평 플랫폼 기획자의 고뇌와 갈등을 담은 소설인 듯 소설 아닌 글이다.


K가 기획한 플랫폼 노마드는 누구나 비평을 쓰고 ‘공유‘할 수 있다는 가치를 흐릿한 미션으로 잡았다. 누구나 글을 쓰고 보낼 수 있다는 생산 행위가 아닌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교환 행위가 셀링 포인트였다. 비평가 윤아랑이 말한 것처럼 이런 종류의 환상은 건방진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든 ~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이 고도로 대중화되는 흐름을 지시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목적어의 자리에 들어갈 것이 여전히 특권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의식이 숨어 있다. 그 누구도 ‘누구든 숨을 쉴 수 있다‘고 굳이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P135



문호영의 [번역을 공유하는 놀이터]

하나의 시를 여러 번역자가 동시에 번역하여 기고하는 번역 플랫폼 잡지 <초과>를 통해 번역의 매력, 번역의 어려움, 번역의 예술을 알게 되는 글이다. 진은영 시인의 시 [달팽이]의 영어 번역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초과》를 읽으면서 나는 번역가들의 선택이 각각의 번역시라는 세계를 직조하는 방식에 감탄했다. 중영문학번역가 제레미 티앙은 번역가를 두 언어나 문화 사이의 ‘다리’로 비유하는 것은 적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원문을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번역하기에, 번역가는 다리처럼 중립적인 개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리라는 오래된 비유 대신 티앙은 번역가를 곡을 해석하는 피아니스트에 빗댄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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