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 알라딘 중고책방이 생긴 이래, 전국적으로 알라딘 책방이 우후죽순처럼 그렇게 생겨났다.

 

나처럼 새책보다 중고책을 선호하는 책쟁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복음 같은 소식이었다. 초반에는 알라딘 중고책의 가격이 참 착했다. 그야말로 중고책 다운 그런 가격이었다. 그러다가 우려한 대로, 알라딘이 모든 중고책을 빨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참 그전에 반디앤루니스에서 중고책을 매입하기도 했었다. 알라딘에서 재고과다로 매입불가 판정을 받은 책들도 받아 주더라. 다만 현장에서 중고책 매입보다는 판매에 집중하다 보니, 종종 혼선을 빚기도 했다. 반디가 중고책 값도 알라딘보다 후하게 쳐주었다는 건 안 비밀. 결국 반디도 다 망하고 말았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1탄이라고나 할까.

 

경기도 변두리에 사는 나는 수원과 안산의 알라딘에도 원정을 뛰곤 했다. 오늘 아침에 다 읽은 엔도 슈사쿠의 <바보>도 지난주에 알라딘 안산점에 가서 업어온 녀석이다.

 

알라딘은 전국의 많은 대형마트 중에 유독 홈플러스와 협업을 한 것 같다. 상당히 많은 점포들이 홈플러스에 둥지를 틀었다. 그런데 홈플러스 매장이 문을 닫으면 그곳의 알라딘도 망하게 된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렇게 해서 내 주위에서 사라진 매장이 알라딘 북수원홈플러스와 오늘 안내를 받은 안산 홈플러스였다.

 

지난주에 든든하게 쌓인 적립금을 부여안고 안산 홈플러스로 원정을 나섰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살 책들 3권만 딱 골라서 동선을 최소화했다. 요즘 안산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40명대로 계속 발생해서 매장에 오래 머물고 싶는 생각도 사실 없었다. 고지나 노부오의 <포옹가족>과 엔도 슈사쿠의 <바보> 그리고 알렉산드르 헤몬의 <나의 삶이라는 책> 이렇게 세 권이었다. 그 중에 2권이나 읽었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

 

2층 식료품 매장에 들러서는 홈플러스가 자랑하는 천원짜리 단팥빵과 그롤쉬 비어 2깡통 그리고 간식거리를 쟁여서 부리나케 컴백했다.

 

알라딘 북수원홈플러스 점에서는 타리크 알리의 <술탄 살라딘>을 아마 만났더랬지. <석류나무 그늘 아래>도 거서 샀던가.

 

로또판매점의 할머니는 의자가 자꾸 미끄러지신다면서, 곧 다른 곳으로 이사가신다고 하셨었는데 그게 홈플러스 안산점 폐점 이야기였구나 싶다. 안산 홈플러스점의 매출이 전국에서 상위권이라고 하던데 왜 폐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럼 거기서 일하시고, 장사하시던 분들은 다 어디로 가시는 거지? 가뜩이나 코로나 사태로 자영업하시는 분들이 어렵다고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지난번 방문이 나의 알라딘 안산점의 마지막이었구나. 모든 게 다 그렇지만, 사라져 가는 것들은 항상 아쉽다. 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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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8-19 11:5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중고서점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는데. 코로나 때문에 오히려 서점 외에도 문닫는 각종매장들이 속출해 걱정입니다. 오늘은 신규확진자가 2천명대라는데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 많은 요즘이네요.

레삭매냐 2021-08-19 13:28   좋아요 5 | URL
저도 오늘 코로나 확진자수 보고
경악했습니다. 다시 2천명선이란....
아이들 개학이 이제 막 시작되었는
데 - 참 답답하네요.

중고서점은 책쟁이들 아니면 잘
찾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새책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새파랑 2021-08-19 11: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안산점은 그럼 없어지나보군요. 가보지는 않았어도 거기서 온라인으로 샀던 기억이 있는데 ~~ 좋은건 오래가지 못하나봐요 ㅜㅜ

레삭매냐 2021-08-19 13:29   좋아요 5 | URL
그니깐요.

저도 전국 각지에 있는 알라딘
매장에서 2천원 배송비를 내고
책을 삽니다.

오늘도 송도에서 올 책이 하나
있네요.

coolcat329 2021-08-19 12:1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종로책방 아시죠? 올 봄인가 갔다가 문닫은거 보고 울 뻔했답니다. 알라딘보다 30프로는 저렴, 제가 좋아하는 소설이 많아 참 좋아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못갔더니 그새 문을 닫았더군요 ㅠ

안산 알라딘을 종종 이용하셨군요. 얼마전 갔던 곳이 문을 닫는다니 기분이 이상하실거같아요.ㅠ

레삭매냐 2021-08-19 13:31   좋아요 6 | URL
악! 안돼 ~~~
종로책방은 이제는 코로나 때문
에 중단되었지만 저희 달궁 책모
임하던 곳이라 한 달에 한 번은
꼭꼭 들리던 곳이었답니다.

아예 문을 닫은 건가요? 슬픕니다.
가격도 착하고 좋은 곳이었는데...

***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올해 3월 27일 영업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고 하네요. 아 -

coolcat329 2021-08-19 13:32   좋아요 6 | URL
모르셨군요.ㅠ 아예 없어졌답니다. ㅠㅠ
문닫기전 책 세일까지했다는 얘기듣고 더 속상했었죠.ㅠ

레삭매냐 2021-08-19 13:32   좋아요 4 | URL
아 증맬루...

종로에 가는 낙 중에 하나였는데.
그렇게 사라져 버렸군요...

coolcat329 2021-08-19 13:33   좋아요 4 | URL
네 제가 4월에 갔거든요. 바로 전달에 문을 닫았더라구요.ㅠㅜ

페넬로페 2021-08-19 12: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코로나로 인해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너무 힘들것 같아요. 대형마트까지 문을 닫는 것을 보면 그 여파가 만만치 않은것 같아요. 전엔 한번씩 중고서점에 들렸는데 시국이 그런지 안 간지 오래된 것 같아요.
중고서점이 활성화되어 좋고 적절한 가격에 책을 더 많이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쉬워요^^

레삭매냐 2021-08-19 13:36   좋아요 5 | URL
알라딘이 세상의 모든 책들을
다 빨아 들이면서 중고 책값이
올라 버려서 속이 좀 상하네요.

이럴 줄은 알았지만 그래두...

암튼 그래도 중고책방 활성화
는 찬성합니다.

mini74 2021-08-19 18: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ㅠㅠ 저도 좋아하던 동네착방 한 군데 남고 다 문 닫았어요. 모여고옆 중고서점들음 폐업수준이고 ㅠㅠ 슬퍼요. 제가 서점을 하고 싶다니까 남편이 고생하며 망하고 싶음 하라고 ㅎㅎㅎ

레삭매냐 2021-08-19 23:10   좋아요 3 | URL
저라도 지인이 서점한다고 하면
말리고 싶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지난 번에 동네 서점에 가
보니 책방은 정말 책을 사는 곳
이 아닌 잠시 둘러 보고 사진
찍는 곳일 따름이었습니다.
그렇더라구요. 에휴...

붕붕툐툐 2021-08-20 0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들 서점 없어지는 거 아쉬워 하시는 이 마당에 저는 제가 좋아하는 식당 없어지면 그렇게 슬프고 아쉽더라구요.. 근데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요즘 특히 더요~
저도 알라딘 중고가가 사악하다고 생각합니다!

레삭매냐 2021-08-20 08:09   좋아요 2 | URL
그렇죠 자주 가던 단골식당이
없어지면 좀 그렇죠.

제가 자주 가던 단골 도넛집
이 있었는데 분당으로 이사
가신다 하니 참 아쉽더라구요.

사악해져 버린 알라딘 중고판
매가!!!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최근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이후 아프간)에서 대테러 전쟁을 벌여온 미군이 철수할 계획을 외신으로 접했다. 원래 올해 911일로 계획된 미군의 철수는 탈레반 게릴라들이 아프간 전역과 수도 카불까지 석권하면서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20년 전, 탈레반 집권했을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프간을 떠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국가수반인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돈다발을 들고 이웃 우즈베키스탄으로 도주했다고 한다. 아직 확인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미국은 지난 20년 동안 자그마치 1조 달러의 전비를 아프간에 투입했는데 결국 실패로 끝이 나 버렸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10년 전에 제거하는 것 말고는 아프간에 건실한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는데 실패한 것이다.

 

지난 주말에 장피에르 필리유와 다비드 베가 협업해서 제작된 <만화로 보는 중동, 만들어진 역사>를 보면서 미국 건국 이래 중동에 개입해온 그동안 미처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됐다. 미국이 세워진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부터 미국은 트리폴리의 이슬람 해적들과 무력투쟁을 벌여왔다. 미국의 군함들이 이슬람 해적들에게 나포되고 미해군 소속 장병들이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중동에서 미국의 최우선 파트너가 된 와하비왕조의 사우디 아라비아의 역사를 시작으로 해서 1950년대 이란의 민족주의 모사데그 정권의 전복활동에 미국 CIA가 개입했다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루홀라 호메이니가 모사데그 시절부터 활동했다는 점도 새로 알게 됐다. 중동의 석유자원은 미국으로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중동의 새로운 패자로 등장한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의 후세인을 부추겨서 8년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는 이라크를 지원했다. 그렇게 미국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괴물인 후세인이 미국에 반기를 들자 이번에는 걸프 워라는 이름으로 그를 응징했다.

 

아프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은 소련에 대항하는 무자헤딘 전사들을 자유의 전사라고 추켜올리며 스팅어 미사일 같은 최신 군사장비들을 대량으로 제공했다. 군사고문단을 파견해서 무자헤딘 전사들에게 소련의 정규군을 상대할 게릴라 전술을 훈련시켜 준 것도 바로 미군이었다. 무자헤딘은 1994년 아프간에 등장한 탈레반의 전신이었다.

 

소련이 철수하고 나서는 탈레반을 상대로 미국이 전쟁을 시작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양도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탈레반 정권이 무시하자, 미국이 전쟁을 개시한 것이다.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가 이끄는 탈레반 정권은 미국이 아프간에 공습으로 전쟁을 시작한 지 3개월만에 수도 카불을 버리고 패주해 버렸다. 아프간에 파견된 미군에게 20세기 초 그레이트 워에서 영국군과 싸우고 냉전 시절 미국와 양강이었던 소련을 패퇴시킨 아프간 게릴라들은 장장 20년에 걸친 전쟁 끝에 결국 다시 승리했다. 놀랍지 않은가.

 

미국과의 정규전에서 혹독한 패배를 경험한 탈레반은 아프간의 다수를 차지하는 파슈툰족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 그리고 파키스탄의 지원이라는 3박자를 바탕으로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그렇게 빨리 아프간을 장악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전략적 판단 착오를 인정했다. 종교와 인종이 다른 미군을 아프간 사람들은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을 도와주러 온 우방이 아닌 침략자로 인식하지 않았나 싶다. 미군 역시 예전의 소련군과 마찬가지로 간선도로와 도시들을 잇는 거점 확보에만 주력했지, 사실상 아프간의 바닥 민심을 대변하는 부족주의 정신을 간과하지 않았나 싶다. 그 결과가 미국의 아프간에서의 비참한 패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의 철수도 철수지만, 구 아프간 정부가 스스로를 지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냉정하게 짚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국가수반인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앞장서서 타국으로 도주했다는 점이다. 미국 시민권자로 알려진 가니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아프간 민중들의 생명과 자산을 지키기보다 자신의 생명과 재산 수호에 열심이었다. 이런 정부가 무너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영국의 그레이트 워 이래 아프간이 중앙아시아의 전략 요충이라는 사실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미국과 달리 탈레반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과 러시아는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대사관을 유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천명했다. 아프간은 미국이 비슷한 시기에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이라크와는 달리 석유라는 자원이 전무했다. 한 마디로 말해 먹을 게 없는 그런 전쟁이었다는 점이다.

 

1조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전비를 들이고서 도대체 미국이 얻은 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질문에 바이든은 물론이고 전임자였던 트럼프 시절부터 아프간 철군은 이미 결정되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대통령이었던 트럼프가 결정하고 바이든이 시행한 철군 결정에 대해 46년 사이공 철수를 운운하는 공화당의 비판이 힘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프간과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제국(諸國)에 민주주의 이식이란 정말 요원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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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8-17 11:25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정말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무수한 메커니즘이 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에 들어 있는것 같아요. 또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될지 안봐도 뻔합니다. 1조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은데는 단지 미국이 아프간만을 위해서는 아닌것 같아요 ㅠㅠ
미군도 많은 사상자가 있기에 또한 안타깝습니다. 오늘 뉴스에는 중국과 러시아는 탈레반 점령을 반긴다고 하네요.
은근히 돈을 대서 도와주었고요.
여전히 고래싸움에 새우등만 터지는 아수라장인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1-08-17 11:50   좋아요 7 | URL
적절하신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열강의 쟁탈부터 시작해서 온갖 메커
니즘이 작동하는 곳이 바로 21세기
아프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발을 빼는 미국의 모습이 참...

아프간 사람들이 제일 불쌍한 것 같
습니다.

그래도 여성부 장관은 끝까지 남아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고 하던데 멋짐
폭발...

단발머리 2021-08-17 11:41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저는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미군 철수 후 수도 점령되자마자 비행기에 몰려가는 사람들 보는데 너무 안타깝더라구요. 정치가 안정이 되지 않을 때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선택이 얼마나 제한되는지....
돈 가방 들고 헬기타고 도망갈 수 있는 대통령이 아닌 경우에 그 사람들이 느끼는 절망이 얼마나 클까 싶어요. 탈레반에 무기 공급했던 미국이 철수한다고 이제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제일 안 된건 탈레반 지배하에 들어간 아프칸 국민들이죠 ㅠㅠㅠ

레삭매냐 2021-08-17 13:09   좋아요 4 | URL
미군에게 협력하던 이들은 탈레반
이 정권을 잡는 순간, 바로 숙청
대상이라 기를 쓰고 탈출하려고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 생각도 보통의 아프간 사람들
이 제일 안된 것 같습니다

coolcat329 2021-08-17 11:4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돈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부정부패 무능한 정부니... 아프간 국민들만 너무 불쌍합니다.
석유도 없는 척박한 아프간 땅, 스스로 일어서려고 노력안하고 사리사욕만 챙기는 정부, 월급만 챙기는 유령군인들 ..미국도 자국 군인 죽여가며 돈 버리고 떠나는게 답이다 생각했겠죠.
대통령이 도망치다니...
답답하고 저 지역은 참 말도 안 나옵니다..

레삭매냐 2021-08-17 13:10   좋아요 3 | URL
그러게요. 미국이 사용한 전비
의 상당 부분이 유령 군인들에게
흘러 갔다고 하더라구요.

이렇게 무력하게 탈레반에게 무
너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겨울호랑이 2021-08-17 13: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재점령으로 꺼져가던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은 중앙아시아에서 다시 탄력을 받게 될 듯 합니다. 2019년 중국 허베이성 최대 관음상 폭파 모습에서 2001년 탈레반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석불 폭파가 연상되었다면 지나친 연결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중국의 발빠른 탈레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접근을 보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아프간 전쟁을 일으킨 후 발빠르게 빠져나간 무책임한 미국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인 탈레반의 압제도 아프간 민중들에겐 원망의 대상일 듯 합니다...

레삭매냐 2021-08-17 17:24   좋아요 3 | URL
아프간의 바미얀 석불이 파괴된 게
벌써 20년 전의 일이로군요.

츠바이크처럼 저도 어떤 종류의
광신에도 반대합니다.

여러 복잡한 이유 때문에 점점 파국
으로 치닫는 아프간 사태가 걱정이
되네요.

초딩 2021-08-17 13: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명시선 잘 보았습니다~ 너무 정리를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계는 왜 싸우는가>를 보면서도 결국 미국은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민주주의니 세계평화니 이런 기치를 걸고 무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자헤딘과 탈레반처럼 이용한 후에는 팽하는 토사구팽의 전형적인 사례도 미국은 참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1-08-17 17:26   좋아요 2 | URL
디모크라시와 월드 피스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국익과 맞아 떨어질 때만 작동
하는 원리일 뿐입니다.

과테말라의 아르벤스 정권, 이란의
모사데그 정권 그리고 칠레의 아옌데
정권 모두 미국의 국익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는 가차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입해서
전복했던 역사적 사실이 있으니까요.

무자헤딘-탈레반 역시 마찬가지죠.

그레이스 2021-08-17 14: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계속해서 분쟁지역을 만들어야 이익을 얻는 나라들과 집단이 있기 때문인거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비판하지 못하고 오히려 편승하는 것은 우리 역시 그 역학관계 안에 있기 때문이겠죠?!

레삭매냐 2021-08-17 17:29   좋아요 3 | URL
마이클 무어의 패런하이트 911인가
에서 미국의 군수회사의 지도자들이
돈이 얼마나 들던 미국 정부가 지불
할 거라는 말에 충격을 먹었던 기억
이 납니다.

그들에게 전쟁은 돈벌이의 수단일
따름이죠.

그레이스 2021-08-18 19:11   좋아요 1 | URL
미국은 철수하고, 무기는 다 놓고 갔으니 탈레반이 중국을 저지하게 하고, 여성인권이나 그밖에 지금 정권이 내놓고 있는 사항과 관련된 물밑 협상이 있었겠죠?!

얄라알라 2021-08-17 16: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자극적인 짤과 제목의 신문기사말고 이런 깊이있고 고민이 담긴 글로 이번.사태진행을 설명해주시니.기사 여러편 읽은 것보다 더 많이 얻고 갑니다. 감사드려요

레삭매냐 2021-08-17 17:30   좋아요 4 | URL
어느 이상한 언론에서 또 46년 전
사이공 철수 타령을 해대서 졸문
을 써보게 되었네요...

읽어 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8-17 17: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멋진 글이네요.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저같이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너무 유익한 정보 같아요~!!

레삭매냐 2021-08-17 17:31   좋아요 3 | URL
보다 전문적으로 다룬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냥 마침 중동
에 대한 책을 읽기도 하고
시의적절하여 다루어 보았습니다.

han22598 2021-08-18 02: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 저에게는 전쟁터로만 인식되었던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작가 칼레드 호세이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는 회상의 글을 보고...한 사람의 소중한 아름다운 삶을 터전을 망쳐버린 건 누구인지.. 망쳐버린 자들은 누구일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질책할 대상이 명확하기라도 하면 탓이라고 하겠는데, 실체가 명확하지 않아요. 참. 답답합니다.

레삭매냐 2021-08-18 10:05   좋아요 1 | URL
정말 오래 전에 칼레드 호세이니
의 소설들이 인기를 끈 적이 있죠.

그런데 정작 책은 사두기만 하고
읽지는 못했네요.

아무래도 이번에 정부를 내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간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지도
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지 싶습니
다. 다민족 국가인 아프간 내부의
고질적인 분열도 문제구요...

말씀해 주신 대로 총체적 난국이
라 해결의 조짐이 보이지 않네요.

다락방 2021-08-18 08: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최근의 뉴스를 보며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었고, 언급하신 <만화로 보는 중동, 만들어진 역사>를 장바구니에 담아두었습니다. 글 써주셔서 좋네요.

레삭매냐 2021-08-18 10:07   좋아요 1 | URL
어제 저녁에도 아프간 뉴스가
계속해서 텔리비전에서 나오더라구요.

160명 정도 타는 미국 수송기에
640명의 아프간 난민이 타고 있는
장면은 정말.

감사합니다.
 
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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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엔도 슈사쿠의 신간 <사무라이>를 읽었다. 그리고 <침묵>으로 시작된 나의 엔도 선생에 대한 사랑은 <깊은 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물론 지난주에 산 <바보>도 대기 중이다. 이제는 절판된 <숙적>도 구해서 읽어 보고 싶은데, 책이 없다. 또 헌책사냥에 나서야 하나.

 

엔도 슈사쿠가 1993년에 발표한 <깊은 강>의 시간적 배경은 1984년 가을, 인디라 간디가 암살되기 직전의 시기다. 그리고 제각각 사연을 지닌 네 명의 인물들이 인도 바라나시에 모인다.

 

첫 번째 주자인 오사무 이소베는 최근 35년간의 무난해 보이는 결혼생활의 동반자였던 아내를 잃었다. 일본 남자답게 아내에게 애정 표현을 하지 않았다고 그는 고백한다. 아내는 마지막 순간에 반드시 다시 태어날 테니(환생), 꼭 자신을 찾아오라고 부탁한다. 그의 절대 고독은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이소베는 병상에서 죽어가는 아내를 돌본 자원 봉사자 나루세 미츠코를 알게 된다.

 

다음 주자는 바로 나루세 미츠코다. 기독교 대학 불문과 출신의 시골 처녀 나루세 미츠코는 자유연애의 신봉자로 집안의 도움으로 도쿄에서 화려한 대학생활을 펼친다. 그런 그녀에게 오츠라는 이름의 순진한 피에로가 등장한다. 친구들은 모이라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미츠코를 부추겨서 신실한 남자 오쓰를 유혹하자는 기묘한 게임을 제의한다. 사실 미츠코에게 오츠에게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신이 거대한 사랑의 덩어리라는 둥의 스콜라 철학에서나 나올 법한 타령을 하는 오쓰를 망가뜨려보겠다는 일그러진 욕망을 가지고 그를 유혹한다. 나루세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한 오쓰를 단박에 걷어차 버린 미츠코는 화려했던 대학 시절을 마무리 짓고, 유복한 집안 출신의 일과 자동차 그리고 골프 밖에 모르는 남자와 결혼에 골인한다.

 

동화작가 누마다는 엔도 슈사쿠의 선생의 문학적 페르소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육군 최악의 작전으로 알려진 임팔 작전에서 살아남은 기구치가 차례로 등장한다. 각자 사연을 품은 이들이 모두 인도 바라나시에 모이면서 엔도 슈사쿠 서사의 수레바퀴는 힘차게 굴러가기 시작한다.

 

엔도 슈사쿠 선생이 <깊은 강>에서 다루는 여러 층위의 이야기 중에서는 나는 바로 미츠코와 오쓰가 벌이는 핑퐁게임과 양파에 대한 설전 그리고 처참하게 실패로 끝난 임팔 작전의 생존자 기구치의 고뇌가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일본, 프랑스 그리고 인도로 이어지는 미츠코와 오쓰의 끈질긴 인연의 설정이 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오쓰가 촉발시킨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보겠다는 신념에 찬 미츠코의 긴 여정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삶과 죽음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말라리아에 걸린 기구치를 간호하고, 오쓰와 마지막으로 만나면서 과연 그녀는 그토록 갈구하던 공허로부터 안식을 얻을 수 있었을까? 양파라고 그들이 명명한 신의 존재와 구원에 대한 대화는 결국 엔도 슈사쿠 문학의 핵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마다로부터 출발한 저자의 삶은 자신이 버린 양파에게 다시 귀의하여 프랑스 신학교에 간 오쓰에게 전이되기에 이른다. 그 무엇으로도 자신의 공허함을 달랠 수 없었던 미츠코는 자신의 피에로였던 오쓰를 계속해서 찾아 희롱한다. 물론 그럴수록 자신이 공허 속으로 침잠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사실 난 이 소설을 문제적 인물은 기구치 때문에 읽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얼마 전에 너튜브를 통해 NHK에서 제작한 임팔작전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5년에 걸친 태평양전쟁 당시 300만 정도의 일본군이 전사했다고 하는데, 그 중에 20% 정도가 아사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본군은 전쟁에서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병참 문제에 대한 인식 없이 전쟁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배고픈 병사가 어떻게 최전선에서 보급을 잘 받아 잘 먹고 튼튼한 병사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최악의 사령관 중의 하나였던 무다구치 버마군 사령관의 무모한 작전에 임팔작전에서 숱한 일본군 병사들이 그렇게 죽어 나갔다. 그들을 추격하던 영국군과 구르카 병사들보다, 기아와 말라리아 그리고 이질이 일본군에게는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퇴각하던 중에 빈사의 상태에 빠진 기구치를 구한 동료가 바로 쓰카다였다. 그들이 살아날 수 있었던 데에는 아주 끔찍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생환하는데 성공한 쓰카다는 결국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병상에서 죽어가는 그를 도운 청년이 가스통이라는 이름의 외국 청년이었다.

 

제각각 다른 목표를 가지고 이렇게 모인 일단의 관광객들을 통솔하는 가이드 에나미 또한 흥미로운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4년 동안 인도 철학을 전공했지만, 고국 일본에 그를 위한 일자리를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가이드를 하면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인도의 이모저모를 보여 주는 것이 그의 본업이 되었다. 수박겉핥기식 인도 여행을 하는 자신의 손님들을 경멸하면서, 차문다 여신을 일행에게 소개하는 장면의 역설이란. 결국에 가서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갠지스강에서 시신을 화장하는 장면을 찍어 사단을 내고야 포토그래퍼 산조 부부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엔도 슈사쿠의 다른 작품들처럼, <깊은 강> 역시 독자에게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60억 인류의 사고방식과 얼굴 그리고 살아온 내력이 다른 만큼, 엔도 슈사쿠 문학의 수용 또한 다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지의 어머니 같은 갠지스강은 도도하게 흐르며, 구도와 영혼의 안식을 구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아낌없이 내준다. 아니 스스로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고 해야 하나.

 

소설에서는 인도의 어머니라 불리는 인디라 간디가 시크 교도 경호원에게 암살당하면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종교 갈등이 다시 폭발한다. 산조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결국 아무런 죄 없는 오쓰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되고, 범신론적 신념 때문에 어디서도 환영 받지 못하던 오쓰가 양파의 희생을 재현한다.

 

엔도 슈사쿠의 작품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구사하는 마성 같은 서사와 양심을 타격하며삶의 본질을 관통하는 질문들이 매혹적이면서도 두렵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들을 계속해서 읽게 되는 모양이다. <깊은 강>을 읽다가 사유의 심연에 빠져 버린 그런 느낌이 들 정도였다. 미리 수배해둔 <바보>를 바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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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17 01:5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2차 세계대전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모두가 식량부족에 시달렸어요. 후방이 전쟁물자를 다 감당할 수가 없었고, 그 후방도 주요 공습대상이 되면서 생산성은 계속 떨어졌으니까요. 실제 2차 세계대전 사진들 보면 유럽에서도 군인들이 들쥐를 잡아서 말리고 있는 사진도 많아요. ㅎㅎ
웃기는 얘기하나요.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이 새파란 미국의 신병들이 연합군의 참호를 보고 기겁한거예요. 곳곳이 질퍽질퍽하고 빗물이 제대로 안 빠지면서 완전 시궁창이었던거죠. 연합군은 그 시궁창에 들어앉아 굶주리면서 싸우고 있었고 - 물론 동맹국쪽도 마찬가지고요.
이 미국 신병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뭐냐하면 자기들이 가지고 온 전투식량 깡통들을 참호안에 집어던져서 참호를 메꾸는거였대요. 시궁창 물에 발 넣기 싫어서요..... 그 귀한 식량을 참호에 던져넣는거 보고 유럽 애들은 기겁을 했고요. 역시 부자 나라 미국이에요. ^^

레삭매냐 2021-08-17 08:10   좋아요 4 | URL
일설에 의하면 독일의 군수장관이었
던 알베르트 슈페어는 독일의 전쟁
물자 생산력이 정점에 달하는 1945년
에 전쟁을 시작하자고 주장했지만,
그 때가 되면 히틀러 자신의 나이가
너무 든다고 생각하고 조기에 전쟁을
시작했다고 하더라구요.

실제로 연합군의 어마무시한 공중폭격
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전쟁물자 생산력
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게 독일이 동서 양쪽에서 연합
군의 엄청난 공격에도 불구하고 바로
무너지지 않은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르겠
네요.

참호를 전투식량 깡통으로 메꿨다는
이야기는 정말 신박합니다. 정말 부자나
라 맞는 것 같습니다 ^^

han22598 2021-08-17 02:0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엔도 슈사쿠 책 다 모으고 싶은데, 전 바보도 없고 숙적도 없어요 ㅋㅋㅋ ㅠㅠ 레샥매냐님이 숙적을 먼저 겟 하시면, 저도 뒤따르겠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1-08-17 08:15   좋아요 4 | URL
전 어제부터 바로 쟁여둔 <바보>를
꺼내 읽기 시작했답니다.

일본어로는 ‘오바카상‘이라고 되어
있네요.

<숙적>은 사냥 난이도가 제법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일단 시도는...

겨울호랑이 2021-08-17 10:5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엔도 슈사큐의 작품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엔도 슈사큐 작품 전반에 담긴 종교에 대한 깊은 성찰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레삭매냐 2021-08-17 08:16   좋아요 6 | URL
국내에 나온 책들이 제법 되어서
계속 구해서 읽을 만한 것 같습
니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는 게
쉽지 않은데, 엔도 슈사쿠 선생은
종교와 개인의 성찰 그리고 구도
라는 점에서 탁월했던 것 같습니
다.

mini74 2021-08-17 08: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도 있었죠. 1.4후퇴때. 군비리로 긂주림과 추위로 군인들이 죽어나간 ㅠㅠ 군민방위군 사건. 전쟁 중 지휘관의 무능이나 부패는 최악인거 같아요. 양파. 뭐라고 불러도 되고 어디에도 있는 종교. 그런 부분들이 기억에 남아요 *^^*

레삭매냐 2021-08-17 09:25   좋아요 3 | URL
군이 정신력으로 싸운다는
말은 구 일본군의 적폐 중의
적폐였는데... 아직도 그 타령
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Deus 토마토 양파... 저자가
프랑스 유학을 하면서 겪은
체험들이 <침묵의 강>에 등장
하는 오쓰 속에 들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파랑 2021-08-17 08: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이분 책은 안읽어봤는데 레삭매냐님이 사냥하신다니 빨리 읽어봐야겠군요. 이 책 표지가 맘에 들던데 ㅎㅎ

레삭매냐 2021-08-17 09:26   좋아요 4 | URL
아직 읽어 보시지 않으셨다면 먼저
<침묵>부터 시작하심을 추천해 드
립니다.

그 다음에 <깊은 강>으로 고고씽
하시구요 :> 아 <바다와 독약>
도 있군요.

coolcat329 2021-08-17 1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책이죠~~

레삭매냐 2021-08-18 07:44   좋아요 0 | URL
존재조차 미처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 엔도 슈사쿠 작가의
책들을 섭렵하면서 만나게
되었네요. 참 좋은 책이었습니다.

책읽기.com글쓰기 2022-06-04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읽어보려구요~~!!
 
포옹가족 대산세계문학총서 158
고지마 노부오 지음, 김상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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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서점에 갔다. 엔도 슈사쿠의 <바보>가 타겟이었다. 그리고 알렉산다르 헤몬의 <나의 삶이라는 책>. 그리고 덤으로 대산총서 시리즈 중의 하나인 고지마 노부오의 <포옹가족>을 데려왔다. 그런데 그 중에 제일 먼저 읽은 책은 <포옹가족>이었다. 분량이 적어서 읽기에 부담이 없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내 예상은 적중했고 심지어 재밌기까지 했다.

 

막장 드라마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에도 그리고 일본에도 있는 모양이다. 미와 가족이 서사의 중심이 되는 <포옹가족>은 바로 그런 막장에 방점을 찍는다. 45세의 지식인으로 번역 일을 하는 미와 슌스케 씨의 마누라가 바람이 나 버렸다. 그것도 젊은 미군 청년과 함께.

 

그 사실을 미와 집안의 실질적인 총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부 미치요 씨가 넌지시 가장에게 불어 버린 것이다. 대판 싸우고 바로 갈라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도키코와 슌스케는 어찌어찌해서 외부인의 도래로 시작된 내분(?)을 봉합하고 다시 일상을 이어간다. 그것은 마치 일본 역사에서 흑선 내항으로 갈기갈기 찢긴 국내 상황을 대충 봉합하고 곧 대대적인 국가 개조에 나선 모양이라고나 할까. 그 때도 지금도, 충격 요인은 외부에서 왔다.

 

아무리 좋게 봐도 슌스케는 공처가인 모양이다. 그저 바람난 아내가 하자는 대로 집도 짓고, 분위기 쇄신을 위해 그야말로 캘리포니아 별장 스타일의 집을 지어 외곽으로 나간다. 순서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도키코가 바람이 나고 새로운 집을 지어 이사를 나갔는지 어쨌는지. 슌스케는 두 아이들은 료이치와 노리코를 위해 단란한 가정을 다시 세울 결심을 했다고 하는데, 자신 역시 외간 여자와 바람을 피운가. 비록 길게 가는 관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집안 꼴 잘 굴러 가는구나 그래.

 

이번에는 분위기 쇄신을 위해 내보낸 미치요 후임으로 들어온 마사코와 아들 료이치가 정분이 나고 만다. 그리고 슌스케의 아내 도키코는 유방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게 된다. 아니 미와 집안에는 뭔 놈의 일들이 이렇게 많이 벌어지는 거지? 우리네 일상사가 그렇긴 하지만, 미와네 집에는 행()보다는 불행이 더 많이 발생하지 않나 싶다. 그나마 막내딸 노리코가 그나마 가장 정상적으로 보인다.

 

문제의 발단이었던 도키코는 결국 암이 폐에까지 전이되고, 병원에서 세상을 뜨고 만다. 아내가 위독하다는 말에 슌스케는 아이들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결국 사랑하는 아내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일상이 시작된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을 살아야 한다는 엄중한 일상의 명령 말이다.

 

홀아비가 된 슌스케는 아내의 죽음을 애도할 틈도 없이, 딴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아내의 간호를 맡았던 니시무라 간호사에게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백화점 속옷 매장의 직원에게도 만나자는 의중을 드러낸다. 그것 참... 그리고 아내의 죽음이라는 상실을 달래기 위해 야마기시라는 동료를 집안에 들이고 예전의 내정 총사령관이었던 미치요 씨에게 다시 가정부 취업을 의뢰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방식을 써도 아내와 어머니의 부재는 채울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재혼 선언을 하고 여러 채널을 동원해서 맞선자리에 나간다. 거의 재혼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행동하는 그의 모습에 그만 진저리가 날 뿐이다.

 

1960년대 일본의 모습을 그렸다는 <포옹가족>에서 패전 이후, 새로운 국가 건설에 나선 일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제대로 된 과거청산은 처음부터 이루어지지 않았고, 국민들의 생존과 안위에 앞서 국체보전이라는 이유로 국왕제를 계속해서 유지해 달라는 일본 군부의 요청을 미군이 받아들이면서부터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 게 아닐까.

 

태평양전쟁 중에는 미영귀축이라는 표현으로 미국과 영국을 적으로 규정하던 나라가 패전 뒤에는 점령군으로 받들어 모시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런 점에서 멀쩡한 집안의 내를 취한 미군 청년 조지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다시 한 번, 일본식 동도서기론의 공허함을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도대체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했던 가치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처음 만나는 고지마 노부오 작가는 노골적인 시대에 대한 비판 대신, 블랙 유머를 적당하게 섞은 감칠맛 나는 칵테일 같은 서사로 패전을 딛고 고도성장하던 당시의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 고지마 노부오는 태평양 전쟁 당시, 베이징 연경대학의 정보부대 출신이었다고 하는데 당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메리칸 스쿨> 같은 작품들도 번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래도 한 권으로는 아쉬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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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8-15 11: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이 막장가족의 모습은 패전 후 일본의 복잡했던 상황을 은유로 표현한 것일까요? 🤔

레삭매냐 2021-08-15 12:33   좋아요 4 | URL
문학에 대한 해석이 너무나
다양한지라...

저의 해석은 아마도 그런 전후
의 혼란상과 대미종속적인 태
도를 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붕붕툐툐 2021-08-15 15: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중고 서점에서 사냥 성공하셨네용~👍
막장 드라마의 재미가 쏠쏠할 거 같네용~ 근데 재미있는 걸 기대 안하고 책을 사셨나용? 심지어 재밌었다고 해서 웃겼어요~ㅎㅎ

그레이스 2021-08-15 15:38   좋아요 4 | URL
전 지금 팔고 왔는데...ㅋㅋ

레삭매냐 2021-08-15 17:15   좋아요 1 | URL
기대를 안하고 샀다면
고진말이겠죠 ㅋㅋㅋ

근데 생각보다 더 재밌더라구요.

레삭매냐 2021-08-15 17:15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전 당분간은 소장각으로 -

그레이스 2021-08-15 19:51   좋아요 1 | URL
아! 레샥메냐님 이 책을 팔았다는게 아니라 그동안 2권 소장하고 있던 책들 모아서 팔았어요. 어디 가는길에 들러서...
붕붕툐툐님 오늘도 중고 서점에서 사냥 성공... 에 대한 댓글;;

서니데이 2021-08-15 2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코지마 노부오는 처음 듣는 작가예요.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니, 그 시기 일본 경제가 발전하던 시대의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1-08-16 19:40   좋아요 0 | URL
어느새 주말의 끝자락이네요.

지나고 나면 시간이 어찌 그리
빨리 가 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무라이
엔도 슈사쿠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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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죽어라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러 군웅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가히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버금갈 만한 인물들이 줄지어 등장했고, 군웅할거의 시대는 흥미진진했다. 그중에서도 오슈(현재 센다이현)의 패자로 30년만 더 일찍 태어났다면 도쿠가와 대신 일본의 패자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도쿠간류 다테 마사무네를 알게 됐다. 이 야심가는 게이초 연간에 대형 선박을 건조해서 동아시아를 장악한 스페인 상인들을 거치지 않고, 대양 건너 멕시코와 직접 거래를 트겠다는 원대한 꿈의 소유자였다.

 

내가 만난 역사의 한 끄트머리를 소재로 삼아, 엔도 슈사쿠 작가는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을 엮어 <사무라이>라는 팩션을 창조해냈다. 1613년 가을, 센다이 번의 하급 사무라이였던 하세쿠라 로쿠에몬은 영주의 명을 받아 다른 세 명의 메시다시슈들과 함께 태평양 너머 멕시코와 해외무역을 요청하는 서한을 들고 대원정에 나선다.

 

대전란의 시기에 줄을 잘못 섰던 하세쿠라 집안은 기존의 영지였던 구로카와를 빼앗기고, 척박한 야곡지를 봉토로 받아 거의 농민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전장을 누빈 역장의 노장이었던 그의 숙부는 다시 공을 세워 구로카와를 되찾을 생각에 여념이 없다. 숙부 같은 속세에 대한 미련이 없었던 하세쿠라 로쿠에몬은 그저 아내 리쿠와 두 명의 아이들과 기근이 상례적으로 발생하는 골짜기에서 조용하게 살다가 죽기를 소망한다.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 건 전쟁이 아니라 혹심한 기근이었다. 순종과 인고 그리고 체념의 상징인 하세쿠라에게 왜 이시다 영주는 그런 중요한 임무를 내린 걸까?

 

하세쿠라가 더블 캐스팅의 한 축이라면, 역시 실존 인물이었던 루이스 소텔로를 모델로 삼은 스페인 출신의 벨라스코 신부가 다른 축을 맡고 있다. 간파쿠 히데요시의 기리스탄 탄압이 시작되면서 비교적 용이했던 남만 출신 선교사들의 포교 활동은 극도로 위축되었다. 게다가 신교도 국가들인 영국과 네덜란드는 포교보다 무역에 방점을 두면서 가톨릭 선교사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도 이런 부분들이 소개된 바 있다.

 

나중에 드러나게 되지만, 벨라스코 신부는 우레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야고보를 떠올리게 한다. 격정에 넘치는 자기 확신에 찬 이 신부는 장차 일본의 주교가 되어 교활한 일본인들을 반드시 개종시키겠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종교 전사였다. 그의 스승과 동료들 그리고 가족들은 그런 그를 우려했지만, 벨라스코 신부의 불타는 신념 앞에 그런 걱정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직접 만나기도 했던 벨라스코 신부는 센다이 번의 번주 다테 마사무네와 능숙한 일본어 실력을 이용해서 멕시코와의 거래를 성사시킨다면 자신의 영내에서 포교 활동을 눈감아 주겠다는 언질을 받는다.

 

일본 포교에서 숱한 실책을 범한 베드로회에 경쟁 관계에 있던 바울회 소속의 벨라스코 신부의 광신이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대원정에 나선 사무라이 사절단을 속이는 건 기본이고, 온갖 회유와 술책을 구사한다. 그 모든 것이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라는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그런 광신은 위험한데, 21세기에도 그런 광신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걸 보면 예나지금이나 다를 게 무얼까 싶기도 하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왜 다테 마사무네는 자신의 중신이 아닌 하급 사무라이들인 메시다시슈를 기용한 걸까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영지를 잃고 척박한 땅에서 궁핍한 삶을 사는 이들이었다. 대전란의 시대가 끝나고, 공을 세울 수가 없게 되어 평정소나 영주에게 달리 하소연할 수가 없었다. 그런 참에 대양을 건너 멕시코까지 가는 소임을 완수하고 난다면 어쩌면영지 교환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영주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사무라이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지도 모를 그런 위험한 여정에 몸을 내맡긴다.

 

어쨌든 하세쿠라는 어려서 자신의 곁을 지킨 하인 요조와 다른 세 명의 시종들과 함께 정든 골짜기를 떠나 대원정에 나선다. 멕시코로 가는 배 위에서 네 명의 사절단원 중의 하나로 영악했던 마쓰키 주사쿠는 그들이 영주의 버리는 돌이라는 표현으로 그들의 처지를 냉정하게 분석한다. 영주로서는 그들이 이 위험한 임무를 성공해도 그만, 실패해도 그만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하세쿠라는 보통 소설에서 사무라이라는 특별한 호칭으로 언급되는데, 다른 동료인 다나카나 니시와 구분되는 느낌이다. 다나카는 보수적인 사무라이를 대표하고, 보다 젊은 니시는 스페인 말부터 시작해서 모든 새로운 문물을 받아 들이는데 있어 적극적이다.

 

두 번의 폭풍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멕시코의 아카풀코에 상륙한 사무라이 사절단은 멕시코시티로 가서 아쿠냐 총독을 만나 영주의 서한을 전달하지만 총독은 자신에게 그럴 권한이 없다며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3세에게 떠넘긴다. 한편, 그들과 함께 대원정에 나섰던 38명의 상인들은 현세의 이로움을 위해 기리스탄으로 세례를 받는다. 아카풀코, 멕시코시티, 푸에블라, 코르도바를 거쳐 베라크루스에 도달하는 그들이의 여정은 험난하기 짝이 없다. 멕시코시티에서 사절단의 소임이 이미 실패했다는 걸 파악한 마쓰키 주사쿠는 다른 상인들과 함께 본국행을 결정한다. 그 중에서 가장 현명했던 판단이 아닐까 싶다.

 

벨라스코 신부는 그야말로 땅끝까지 가서 스페인의 국왕과 교황을 만나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결기를 보인 진짜 사무라이 다나카의 버프를 받아 결국 스페인의 세비야, 톨레도, 마드리드를 거쳐 프랑스와 로마에 도달하는 어마어마한 여정에 나선다.

 

소설의 한 축에는 격변하는 정치적 배경이 있다면, 또 다른 한 편에는 엔도 슈사쿠의 장끼라고 할 수 있는 종교적인 측면이 자리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엔도 슈사쿠는 현세의 왕과 내세의 왕을 만나는 힘겨운 여정에 방점을 찍는다. 역설적으로 현세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펠리페 3세나 로마의 바오로 5세는 사무라이 사절단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무라이들이 그토록 원하는 자신이 봉토 반환이라는 숙원에 1도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한편, 마드리드에서 벌어진 주교회의의 논쟁은 일본에서의 포교 활동에 대한 최종심이 아닐 까 싶다. 벨라스코 신부보다 앞서 일본에 파견되어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베드로회 소속의 발렌테 신부는 격정에 휩싸여 천지분간하지 못하고 자신을 주교로 세워 주기만 한다면 일본에서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겠다고 나선 벨라스코 신부를 어린아이에게 훈계하듯 달랜다. 그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은 3명의 사절단 사무라이들까지 표면적으로나마 개종시킨 업적을 바탕으로 주교회의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려던 순간, 동방에서 날아온 긴급 서한 한 통은 모든 것을 무위로 돌려 버렸다. 도쿠가와 막부가 그동안의 유화적인 제스처를 포기하고 본격적인 기리스탄 박해에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게 만사휴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사무라이 사절단의 로마행과 교황 알현은 영광이 아니라 슬픈 귀환을 위한 마지막 희망이자 간절한 호소일 뿐이었다. 그리고 슬픈 귀국에 이은 조국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배신의 드라마가 준비되어 있었다. 목숨을 무릅쓰고 나섰던 위험한 임무에 대한 포상이나 격려 따위는 출발 때와는 180도 바뀐 정치적 상황으로 기대할 여지조차 없었다. 마쓰키 주사쿠의 예언대로, 사무라이들은 버리는 돌일 뿐이었다. 본대보다 일찍 귀국한 마쓰키 주사쿠는 시류에 잘 편승해서 평정소의 감찰로 활동하고 있었다. 우직하게 소임을 다한 사무라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비참한 결말이었고, 그때그때 급변하는 시류를 잘 이용한 이들은 호의호식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엔도 슈사카는 소설 <사무라이>에서 다시 한 번 잘 보여준다.

 

소설의 한 축을 차지하는 종교 이야기를 하자면 또 한참 걸릴 것 같다. 하세쿠라 로쿠에몬은 벨라스코 신부가 태평양을 건너는 배 안에서부터 내내 들려준 예수 그리스도의 생에와 그의 가르침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 또한 지극히 현세중심적인 일본인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에 건너가서는 소임을 완수하기 위해 비록 기리스탄에 귀의하긴 했지만, 그의 본심을 그게 아니었다. 벨라스코 신부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신의 아들과 관계하게 된다면 신에게 언젠가는 돌아갈 것이라는 신념 아래 자신이 믿는 바를 그대로 밀어 붙인다. 유럽의 모든 도시와 수도원 성당에서 만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왕과의 대면은 그를 회의하게 만든다.

 

귀국 후, 쇄국정책으로 돌아선 막부의 관리들에게 심문을 받던 중 경솔한 니시의 발언으로 그들의 운명은 비극으로 결정됐다. 마닐라나 멕시코의 수도원에 거주하면서 설교할 수 있었던 안락한 삶 대신 막부의 박해에 시달리던 일본의 기리스탄들을 위해 밀항했던 벨라스코 신부는 결국 막부의 관헌에 체포되어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화형에 처해졌다.

 

저자는 인간사의 덧없음을 잔잔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를 위해 맹렬하게 돌진했지만, 나의 마음을 풀어줄 보상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은 버리는 돌일 뿐이었다. 어쩌면 그런 순간에 인간은 초월적 존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어떤 종류의 보상을 바라고 우리가 한 행동들이 결국 헛되고 헛되다는 말일 지도 모르겠다.

 

신의 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제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오류와 실책들을 동료 사제에게 고백한다. <침묵>의 로드리고가 바로 떠올랐다. 우리가 신이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다른 방식으로 역사하는 게 아닌가.

 

엔도 슈사쿠 작가는 실제 역사와 상이하게 소설의 결말을 냈다. 나는 책을 받자마다 단 이틀 만에 다 읽어 버렸다. 졸음이 와서 눈꺼풀이 무시로 내려앉는 가운데서도 도저히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잠이 들 것 같지 않아서. 2021년에 만난 최고의 소설 가운데 하나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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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8-14 10:2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 최근에 나온 책을 벌써 읽으셨군요. 정치와 종교가 버무려진 이야기군요. 저는 제목만 봤을 때 종교이야기는 아닌줄 알았어요.

레삭매냐 2021-08-14 10:39   좋아요 8 | URL
예약도서로 주문했는데
받는데 3일인가 걸렸습니다.

기다리다가 사리 나오는 줄.

너무 재밌었습니다, 영주에게
농락당한 하세쿠라는 정말...

엔도 슈사쿠 작가의 작품에는
거의 종교가 녹아 있는 것 같
습니다.

새파랑 2021-08-14 10:51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직접 별 다섯개를 그리실 정도라니~!!

레삭매냐 2021-08-14 12:08   좋아요 5 | URL
기대한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너무 재밌게 읽었답니다.

잠자냥 2021-08-14 11: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걸 벌써! 전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만 했는데요!

레삭매냐 2021-08-14 12:09   좋아요 5 | URL
지난주에 신간으로 보고
주초에 주문장을 날렸는데
빨랑 배송이 되지 않아 아
주 기냥.

페넬로페 2021-08-14 14: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가 엔도 슈사쿠인데 신간이 나왔네요^^
벌써 읽고 리뷰 올리시는 레삭매냐님은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매번 책사진도 무척 아름다워요.
전 사진이 항상 크게 들어가는데 레삭매냐님의 사진은 크기가 적당하네요^^

레삭매냐 2021-08-14 18:20   좋아요 2 | URL
좋아하는 작가에 주제 그리고
시대상 같이 두루 갖춘 팩션
이니 어찌 아니 읽을 수가...

별 건 아니지만 후닥닥 찍고
약간의 뽀샵 처리를 했습니다.

그레이스 2021-08-14 14: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침묵>만 2번 읽었는데
이 책, <침묵>의 후속편이라고 봐도 좋을듯 하네요.
이 작가는 뮤진트리, 포이에마, 홍성사, 카톨릭출판사....
책마다 출판사가 다 다르네요.
그 이유가 흥미로울듯^^

레삭매냐 2021-08-14 18:21   좋아요 2 | URL
좋아하는 작가에 주제 그리고
시대상 같이 두루 갖춘 팩션
이니 어찌 아니 읽을 수가...

별 건 아니지만 후닥닥 찍고
약간의 뽀샵 처리를 했습니다.

stella.K 2021-08-14 14: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졸음을 참아가면서 읽으셨다니.
문득 학창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전 그때 외엔 졸음을 참아가며
뭘 했던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요
저는 책을 좋아하지만 잠 보다 더 좋아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매냐님이 부럽기도하고 순수해 보이기도 하고.ㅋ
그럴실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침묵>이 생각나기도 하고.
올해 읽은 최고의 책 반열이 놓으셨으니 저도 기억했다 읽어보도록 하겠슴다.^^

레삭매냐 2021-08-14 18:26   좋아요 4 | URL
저는 학창 시절엔 그냥
졸리면 잤던 것 같습니다.
잠을 이길 수가 없었거든요...

<사무라이>는 <침묵>의
연장선에 서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바보>도 구해 두었고, 오늘
도서관에 가서 <깊은 강>도
빌렸습니다. 읽을 수록 진국
이라는 생각이 드는 슈사쿠
선생입니다.

붕붕툐툐 2021-08-14 2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엔도 슈샤큐는 제가 읽은 몇 안되는 일본 작가인데, 이 책도 넘나 흥미롭네용! 소개 감사드려용^^

레삭매냐 2021-08-15 00:38   좋아요 2 | URL
<침묵>으로 그의 책을 읽기
시작한 이래, 꾸준하게 읽고
있습니다.

mini74 2021-08-14 2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깊은 강 무지 감명깊게 읽었어요. 이 책 읽고싶은데 침묵의 연장선에 있는 책이라고 하시니, 그럼 침묵 먼저 읽고 사무라이를 읽는게 더 나은가요. *^^*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 에삭매냐님 ~~

레삭매냐 2021-08-15 00:40   좋아요 2 | URL
어제 도서관에서 <깊은 강> 빌려
왔는데 분량이 제법 되더라구요.

지금 읽고 있는 고지마 노부오의
<포옹가족>을 다 읽고 나면 도전
해 볼 생각입니다.

<침묵> 그리고 <사무라이>를
추천해 드립니다.

위드업 2022-01-06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나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 했고, 출간되어 여러 번 읽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