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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클럽 잔혹사
이시백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1월
평점 :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대한민국 출판계가 아주 난리가 났다. 좋은 일이다. SNS에서는 관련 피드가 넘쳐 흐른다. 그러다 예전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책이 소개된 기사를 만나게 됐다. 모두들 한강 작가의 책에 정신이 팔린 동안, 나는 바로 그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시백 작가의 <사자클럽 잔혹사>를 읽었다. 아, 나도 교보문고에 들러서 한강 작가 품절 사진 하나는 찍어야겠다. 기념비적이지 않은가.
아주 살짝 삼천포로 빠질 뻔 했구나. 이시백 작가의 소설집 <응달 너구리>를 오래 전에 사두었는데, 읽지는 않고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도서관에서 <사자클럽 잔혹사>를 빌리면서 같이 빌렸다. 국가에서 지정한 블랙리스트에 오른 책이라 아주 숭악한 책이 아닐까 싶었지만, 책의 실체는 너무 재밌었다. 아니 너무 재밌어서 블랙리스트에 올렸나?
책의 화자는 사자클럽 4기생 송영탁이다. 이 친구는 어려서 김신조 사건의 후유증으로 심한 말더듬증이 생겼고, 학교와 친구들 사이에서 얼벙어리 취급을 받았다. 국민 총화단결을 강조하는 독재정권 밑에서 자란 영탁과 사자클럽 친구들은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 시절을 겪었다. 저자가 묘사하는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에는 묘한 환멸과 깊은 혐오가 배어 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그 시절이 좋았노라는 타령을 한다. 그런데 냉정하게 말하면 그런 게 어딨나 그래. 학교는 영탁에게 아주 뜨거운 맛을 선사해 주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교사들은 하나 같은 우악스럽고 학생들을 그야말로 공깃돌 가지고 놀 듯이 대하는 그런 폭력교사의 전형이다. 무엇보다 경악스러웠던 건, '자동'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친구들 사이에서의 뺨때리기였다. 아, 그건 나중에 사자클럽 회원들끼리 하는 거였나. 뭐 크게 다르지 않으니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주인공 영탁이 팝송에 물들어 가는 장면도 너무 인상적이었다. 왜냐구? 나도 그랬으니까. 어디에서고 위로를 얻을 수 없었던 우리 청소년들은 학업 대신 다른 해방구를 찾았는데 그게 바로 팝송이었다. 사실 그 시절에 가요는 너무 구려서 들어줄 수가 없었다. 소설에서 나오듯, 아이들이 트로트를 신나게 불러대는 것도 그렇고... 물론 영탁도 그랬지만 나중에 가서는 팝송으로 전향해서 다른 치들처럼 기타도 배운 모양이다. 나는 연주에는 아예 젬병이라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 아, 영탁의 아버지는 아들이 기타 치는 모습에 격분하셔서 바로 기타 대가리를 부수어 버리는 쾌거를 보여 주시기도 하셨다.
동네 양아치들을 원수처럼 여기라는 사자클럽 선배들의 강압에 영탁과 무리들은 서울 근교의 산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체력을 기른다. 아니 이러니 어느 세월에 공부를 한다니 그래. 그런데 문제는 영탁들이 양아치 적군들과 싸우면서 점점 더 그들을 닮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거리에서 보면 양아치들과 전투를 벌이는 이들 역시 양아치로 보이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유비무환'을 국시로 삼고, 빨갱이들을 원수로 여기라는 프로파간다에 젖어 있던 영탁들에게 7-4 공동성명은 충격 그 잡채였다. 각자의 정권 유지를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술수 따위는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알게 무엇인가 말이다. 같은 해에 유신이 선포되는 그야말로 롤로코스터 같은 사건들이 수시로 발생한다.
사자클럽 깡패 영탁이 사실은 문학소년이라는 점도 작가가 예비한 하나의 클리셰이가 아닐까. 워즈워스를 인용해서 서정 넘치는 대필 연애편지를 쓰던 영탁은 첫사랑 보경을 다른 친구에게 빼앗기는 실연의 아픔도 겪게 된다. 뭣도 모르는 철부지 시절의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어라.
그렇게 다사다난한 청소년기를 지나쳐온 영탁이 대학에 가서는 어처구니 없는 일에 휘말려 경찰의 프락치로 변신한다. 그 출발이 사회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기른 장발족 모양 때문이었던가. 국가가 대중들의 사고와 모양새 그리고 입는 옷까지 규제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전체주의적 통제의 발로가 아닌가 싶었다. 대놓고 앙시앵 레짐에 대한 환멸과 혐오를 주제로 삼은 작가는 우회하거나 돌려까지 않고 정면도전장을 내던진다. 점점 왜 이 책이 블랙리스트라는 영광스러운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 같다.
시점은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영탁에게 대형교회로 변신한 친구 성제는 사자클럽 회원으로서의 자신을 모습을 한껏 분칠한 자서전에 가까운 무언가를 대필해 달라고 요청한다. 물론 그에 따르는 금전적 대가는 물론이고. 같은 회사에 다니는 홍비서와 불륜을 저지르는 영탁의 처 미연은 알고 보니, 소싯적에 운동권 여학생이었단다. 과거를 꼭꼭 숨기고 있던 공수부대에 입대했던 사자클럽 친구는 빛고을에 끌려가 애먼 민간인들에게 총을 쐈단다. 또 다른 친구는 요즘 표현으로 하면, 극우 어버이 연합의 전신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뭐 이거 정상인 사람들이 하나도 없나 그래.
솔직하게 말해서 <사자클럽 잔혹사>는 이야기 보부상을 자처하는 작가가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문학이라는 방식의 프레임에 욱여넣은 환멸과 혐오의 다른 표현이다. 낄낄 거리며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문득, 너무 적나라한 현실의 그것과 대면하면서 웃음기가 가신다. 너무 리얼리스틱해서 말이지. 어쩌면 저자가 묘사하는 그런 시절들이 현재가 아닌 과거라서 그렇게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그 때와 별반 다를 게 없긴 하지만.
어쨌든 책은 너무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무언가 개운하지 않은 쓴맛이 입 안에 맴도는 그런 느낌이랄까. 바로 이시백 작가의 <용은 없다>와 <응달 너구리>를 저글링하듯이 번갈아 가면서 읽기 시작했다. 후자에 좀 더 집중할 것 같다. 그나저나 내가 산 <응달 너구리> 책은 도대체 어디에 쳐박혀 있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