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 같은 여행기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리스티앙 페리생 지음, 톰 티라보스코 그림, 양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영국 작가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을 읽은 지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콩고에 대한 여러 책들을 읽었다. 현대 콩고의 걸출한 지도자였던 파트리스 루뭄바에 대한 책도, 요사스러운 선생이 쓴 로저 케이스먼트의 역사소설도. 그런데 정작 콩고 자유주를 가혹하게 착취한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에 대한 평전은 아직 읽지 못했다. 어제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크리스티앙 페리생의 <콩고>는 알고 보니 절판된 책이었더라. 이런 책이 다 있었구나 싶었다. 1890년 벨기에 선박회사에 고용된 조지프 콘래드가 콩고강을 항해한 일정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콩고 항해 경험은 훗날 <어둠의 심연>의 토대가 되었다.

 

내가 그래픽 노블은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무엇보다 책에 비해 빨리 읽기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읽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의 두뇌에게, 이미지로 전달되는 게 더 수월하다는 점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반대로, 그렇게 형성된 이미지가 나의 자유로운 사유를 제약하고 어떤 특정한 이미지로 고착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겠지.

 

조지프 콘래드의 본명은 유제프 테오도르 콘라트 코르제니오프스키(1857~1924). 몰락한 폴란드 귀족 출신으로 제정 러시아 시절 우크라이나의 베르데치프에서 태어났다. 콘라트의 아버지 아폴로 코르제니오프스키는 폴란드 민족주의자로 정치활동 때문에 가족들은 계속해서 이주를 해야했다. 1865년과 1868년에 차례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여읜 콘라트는 외삼촌보브로프스키에 의해 양육됐다.

 

16세에 학업을 중단한 콘라트는 마르세이유에서 선원 생활을 시작했다. 1878610일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한 콘라트는 영국에서 이등항해사와 일등항해사 자격을 취득하고 동양에서 6년 동안 선원일을 했다. 그리고 188672일 영국 귀화신청을 하고 다음달인 8월에 영국 시민이 되었다. 11월에는 일반선장 자격시험도 통과했다. 당시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던 영국 상선에서 복무 커리어는 4년 뒤, 콘라트 벨기에 회사와 계약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브뤼셀에서 알베르 티스와 3년 장기계약을 맺은 콘라트는 레오폴드 국왕의 사적 소유지인 콩고 자유주로 증기선을 모는 선장 자격으로 출발이 예정되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르그리트 형수에게 이별을 고하고 콩고에서 개발과 원주민 해방이라는 위대한 문명화 작업에 뛰어 들었다.

 

테네리페와 마지막 정착지인 가봉의 리브르빌을 거쳐 콩고의 거점도시인 보마와 마타디를 거쳐 킨샤사에 이르는 험난한 일정이 시작된다. 콩고 항해는 처음부터 양심가인 콘라트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프랑스의 적이라고 간주하고 원주민들에게 대포를 갈기는 모습에 콘라트는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마타디에서 절대 누설안되면 비밀이라고 신신당부 받은 게 바로 상아 집적소라는 사실에 콘라트는 충격 이연타를 받는다. 아프리카 코끼리를 살육하고 상아를 얻어내는 게 그들이 말하는 문명화 작업이란 말인가. 1890613일 마타디에 도착해서는 로저 케이스먼트와 만나 안면을 트기도 했다고 전한다. 훗날 케이스먼트는 콩고 자유주의 비참한 현실을 서구사회에 알린 케이스먼트 보고서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벨기에 지배자들은 마구잡이로 현지인들을 징발해서 강제노역을 할당했다. 철도 부설은 물론이고, 심지어 병에 걸린 백인 지배자들을 등에 지고 운반하는 역할도 맡겼다. 길도 없는 정글에서, 무작위로 평화롭게 살고 있던 마을에서 현지 사람들을 강제로 붙잡아다가 노역 시키고, 말을 듣지 않으면 가차 없이 태형을 가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나중에 서구 사회에서 산업화의 여파로 고무 수요가 폭발하면서 엄청난 돈이 되는 고무 사업을 위해 벨기에 당국은 정말 악질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현지인들을 착취했다.

 

심지어 콩고에 배치된 벨기에 인력들은 본국의 엘리트 계급이 아니었다. 엘리트 계급이 무더위와 말라리아에 시달리며, 새로운 기회를 찾아 머나먼 콩고까지 올 리가 없지. 대신 서민 계층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콩고에서 갖은 악행을 저질렀다. 항해 중, 콘라트 일행 중에 하나가 대구경 총을 쏘겠다고 나섰다가 뒤로 나자빠지는 장면은 콩고를 지배하던 이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백인 식민주의자들에게 콩고는 계몽의 빛을 전파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오로지 착취의 대상일 뿐이었다.

 

동유럽의 강한 억센트를 가진 콘라트는 영국 시민이지만 여전히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특히 콩고에서 친프랑스적 성향의 벨기에 사람들에게 그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부선장으로 내륙 항해 증기선의 부선장이 되어 선장 라스무스와 사사건건 부딪히기 일쑤였다. 심지어 다른 선원과는 육탄전도 벌였다. 나름 배를 잘 몰던 조타수 필리프가 불의의 사건으로 태형에 처해질 위기에 처하게 되자, 콘라트를 나서서 그를 변호했다. 그러는 동안 필리프는 정글로 도주해 버렸다. 그 결과 무리를 하다가 결국 쓰러진 라스무스를 대신해서, 콘라트는 능숙한 솜씨로 모래톱을 피해 배를 운영했다.

 

현지 문화를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벨기에 식민주의자들과 현지인들의 충돌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별것도 아닌 잡동사니 같은 물건들로, 현지인들이 가진 귀중품들과 거래하려는 식민주의자들의 시도는 정당한 거래가 아닌 사기였다. 현지에서 사망한 사람을 위해 거대한 하얀 십자가를 증기선 꼬리에 달고 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문화다원주의 시대에는 절대 있을 수 없었던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인간의 해골로 장식된 오두막의 그것을 백인 식민주의자들은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총으로 쏴서 박살내 버렸다. 그 결과가 모든 원주민들에게 전파되어, 콘라트 일행은 목적지로 가는 동안 다른 부족들과 식량 거래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백인들은 그나마 비상식량을 먹으며 견딜 수 있었지만, 자신들을 도와주던 현지인들은 쫄쫄 굶는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지배자들에게는 관심 사항이 아니었겠지만.

 

결국 콘라트는 상류 기지인 스탠리 폴스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병들어 있던, 훗날 <어둠의 심연>에 쿠르츠로 등장하는 실존 인물 '클랭'과 만난다. 쿠르츠는 처음에는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에 그리고 나중에는 <지옥의 묵시록>에 나오는 커츠 대령으로 변주를 거듭하게 된다. 18851115,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에 모인 서구 열강 12개국은 아프리카 분할에 합의했다. 여기서 최대 수혜자는 벨기에의 레오폴드 국왕이었다. 콩고 자유국의 실효 지배자로 인정받은 레오폴드 왕은 콩고 내륙의 카탕가까지 지배할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 항해 중에 말라리아에 걸린 콘라트는 계약기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189012월 보마에서 아프리카를 떠나게 된다. 마타디에서 로저 케이스먼트와 만나, 콩고의 내장을 빼먹고 있는 용맹하지도 않고, 악랄한 스탠리 부류의 인간들을 만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떠나는 그를 보며, 케이스먼트는 언젠가 그들이 보고 들은 것들을 증언하게 될 거라고 예언한다.

 

무려 15년 전에 읽은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그 당시에 쓴 리뷰를 찾아봤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역부족이었다. 역시 시간을 내서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하나. <어둠의 심연>의 자양분이 된 콩고 여행에 대한 그래픽 노블을 읽고 나니, 무언가 새롭게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벨기에 식민주의자들은 말로는 계몽의 빛을 검은 대륙의 '가장 방대하고 가장 빈 곳'에 채우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아프리카 진출을 설명했지만, 조지프 콘래드가 콩고 강을 항해하면서 목격했다시피 모두가 거짓이었다. 처음 그들의 관심은 상아였고, 그 다음에는 고무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제국주의자들은 콩고에 사는 원주민들을 야만인이라고 폄하하고, 그들의 노동력 착취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

 

물론 19세기 말, 제국주의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맹위를 떨치던 시절 조지프 콘래드가 보여준 한계 역시 명확하지만, 콩고의 비참한 현실을 문학을 통해 서구 사회에 알렸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폴란드 출신 이방인이 쓴 작품이 걸작 영문 소설로 손꼽힌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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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10-08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이 이런 배경에서 나온거군요. 항상 관심가는 책을 알려주시는 레삭매냐님 감사해요. ^^

레삭매냐 2024-10-10 20:15   좋아요 0 | URL
저도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미처
몰랐네요. <어둠의 심연>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만났더라면
좀 더 깊이 있는 독서가 되지 않았
을까 싶습니다.